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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6:10:08

이동국

이동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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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
공정환 김광규 김서윤 김승현 김호창
문희경 손호준 안지환 이철민 주하경
Singer
강예슬 금잔디 김호중 소연 안성훈
안예인 영기 정다경 홍지윤 TAN
Entertainer
김선근 김원효 봉중근 이동국 정호영
한영 한태웅 허경환 홍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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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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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역대 대한민국 U-23 대회 주장
김도균
2000 시드니 올림픽
이동국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박용호
2004 아테네 올림픽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svg
전북 현대 모터스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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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f9d800> 초대 2대 3대 4대 5대
이경춘
(1995~1998)
최진철
(1999~2000)
김도훈
(2001)
최진철
(2002~2005)
김현수
(2005~2007)
<rowcolor=#f9d800> 6대 7대 8대 9대 10대
정경호
(2008)
김상식
(2009~2010)
조성환
(2011~2012)
이동국
(2013~2015)
권순태
(2016)
<rowcolor=#f9d800> 11대 12대 13대 14대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워드마크.svg
신형민
(2017~2018)
이동국
(2019~2020)
홍정호
(2021~2023)
김진수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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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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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1f4d> 파일:K리그1 로고(흰색).svg MVP 수상자
}}}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K리그1 로고.svg
2009 · 2011 · 2014 · 2015
파일:K리그1 로고.svg
파일:2000_아시안컵_로고.png
파일:K리그1 로고.svg
파일:East Asian Football Championship 2010.gif
파일:K리그1 로고.svg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베스트팀
파일:K리그1 로고.svg
2009 · 2011 · 2012 · 2014 · 2015
파일:2000_아시안컵_로고.png

파일:K리그 클래식(2013~2017) 로고(가로형).svg 팬타스틱 플레이어
2009년 2010년
상 제정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0년 2011년 2012년
구자철
(제주 유나이티드 FC)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데얀 다미아노비치
(FC 서울)
2013년 2014~2015년 2016년
김신욱
(울산 현대 호랑이)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레오나르도
(전북 현대 모터스)

{{{#!wiki style="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C5ABB 0%, #FFF 20%, #FFF 80%, #2C5ABB); margin: 0 -11px -5px; padding: 0px 0px 5px;"
{{{#2C5ABB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0 0 -5px;"
{{{#000,#e5e5e5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MVP, 득점왕, 베스트 Ⅺ
,
김은중
,제주 유나이티드 FC
K-리그 MVP, 베스트 Ⅺ
,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MVP, 도움왕, 베스트 Ⅺ
,
하대성
,FC 서울
K-리그 베스트 Ⅺ
,
김신욱
,울산 현대
K리그 클래식 MVP, 베스트 Ⅺ
,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MVP, 베스트 Ⅺ
,
염기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도움왕, 베스트 Ⅺ
,
정조국
,광주 FC
K리그 클래식 MVP, 득점왕, 베스트 Ⅺ
,
이재성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MVP, 베스트 Ⅺ
,
이용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1 베스트 Ⅺ
,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김보경
,울산 현대
K리그1 MVP, 베스트 Ⅺ
,
손준호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1 MVP, 베스트 Ⅺ
,
주민규
,제주 유나이티드 FC
K리그1 득점왕, 베스트 Ⅺ
,
신진호
,포항 스틸러스
K리그1 베스트 Ⅺ
,
주민규
,울산 현대
K리그1 득점왕, 베스트 Ⅺ
,
}}}}}}}}}}}}}}} ||

}}} ||
이동국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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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E6002D 30%, #E6002D 70%, #B71D27)"<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6002D>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svg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순위 선수 및 현 소속 구단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홍명보 은퇴 <colbgcolor=#eeeeef,#191919>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2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차범근 은퇴 130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4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5 손흥민 토트넘 홋스퍼 FC 125회 2010.12.30
(vs 시리아)
2024.03.26
(vs 태국)
6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7 김호곤 은퇴 117회 1971.11.14
(vs 베트남)
1979.03.04
(vs 일본)
8 기성용 FC 서울 112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9 김영권 울산 HD FC 111회 2010.08.11
(vs 나이지리아)
2024.03.26
(vs 태국)
10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UAE)
2004.07.19
(vs 요르단)
이동국 은퇴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2017.09.05
(vs 우즈베키스탄)
12 조영증 은퇴 102회 1975.03.19
(vs 베트남)
1986.10.05
(vs 사우디아라비아)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4 박성화 은퇴 101회 1975.07.29
(vs 말레이시아)
1984.12.10
(vs 카타르)
15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FIFA 센추리 클럽 명단 기준 (2024.03.14. 기준)
※ FIFA에서 공인한 기록과 대한축구협회에서 집계한 기록은 차이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 기록실 참고.
}}}}}}}}} ||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영구 결번 12번.png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영구 결번 20번.png
매드 그린 보이즈
(일자 미상)
이동국
(2020.11.01.)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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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STARS ★
<rowcolor=#000000> 이름 포지션 구단 선정 기준 비고
최순호 공격수 포항제철축구단
럭키금성 황소
K리그 베스트 11 1회
홍명보 수비수 포항 제철 아톰즈 K리그 MVP 1회
K리그 베스트 11 5회
신태용 미드필더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MVP 2회
K리그 득점왕 1회
K리그 베스트 11 9회
K리그 통산 401경기 출전
통산 최다 베스트 11
이동국 공격수 포항 스틸러스
광주 상무 불사조
성남 일화 천마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MVP 4회
K리그 득점왕 1회
K리그 도움왕 1회
K리그 베스트 11 5회
K리그 통산 548경기 출전
K리그 통산 228득점
통산 최다 MVP
통산 최다 득점
LEADERS ▲
<rowcolor=#000> 이름 지도자 경력 수상 비고
김정남 유공 코끼리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우승 2회
올해의 감독상 1회
HONORS ◆
<rowcolor=#000> 이름 공헌 이력 비고
박태준 1973 포항제철 축구단 창단
1990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 포항스틸야드 건립
1992 광양축구전용구장 건립
1994 전남 드래곤즈 창단
2001 국내 최초의 클럽 하우스 건립
2003 국내 최초 유소년 체계 도입
}}}}}}}}} ||

파일:K리그 40주년 엠블럼.svg
일간스포츠 선정 K리그 40주년 베스트 11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김주성
DF
하석주
DF
홍명보
DF
최강희
DF
박경훈
GK
김병지

파일:뭉쳐야쏜다로고.png
상암 불낙스 선수단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역대 소속 선수
<rowcolor=#FFFFFF> 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농구 허재 감독 -
농구 현주엽 해설/코치 -
쇼트트랙 김기훈 선수 7
체조 여홍철 선수 15
유도/격투기 윤동식 선수 11
배구 방신봉 선수 5
축구 안정환 선수 19
테니스 이형택 선수 36
야구 홍성흔 선수 22
야구 김병현 선수 18
축구 이동국 주장/선수 20
격투기 김동현 선수 9
핸드볼 윤경신 선수 77
연예 김용만 선수 10
연예 김성주 중계/선수 6
}}}}}}}}} ||


파일:뭉쳐야 찬다 2.png
어쩌다벤져스 FC 선수단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현재 소속 선수
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축구 안정환 감독 -
축구 이동국 수석코치 -
축구 조원희 코치/중계 -
유도 윤동식 선수 7
테니스 이형택 선수(GK) 3
격투기 김동현 선수(GK) 8
스키점프 강칠구 선수 63
농구 김태술 선수 1
배구 김요한 선수(GK) 5
럭비 한건규 선수(GK) 23
레슬링 김현우 선수 12
스케이트 모태범 선수 10
수영 박태환 선수 11
가라테 이지환 선수 6
루지 임남규 주장/선수 22
트라이애슬론 허민호 선수 20
럭비 안드레 진 선수 15
격투기 박준용 선수 88
태권도 이대훈 선수 77
스켈레톤 김준현 선수 92
카바디 이장군 선수 4
라크로스 류은규 선수 99
노르딕 복합 박제언 선수 79
펜싱 김준호 선수 21
요트 조원우 선수 9
태권도 김용식 선수 19
럭비 장정민 선수 14
럭비 이준이 선수 7
연예 김용만 중계 -
연예 김성주 중계 -
}}}}}}}}}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c48> 파일:K리그1 로고(흰색).svgK리그1
역대 최다 득점자
}}}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34f36>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svg전북 현대 모터스
역대 최다 득점자
}}} ||
}}} ||
}}} ||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파일:LDG_Retire.jpg
<colbgcolor=#f0f0f0><colcolor=#000000> 이름 이동국
李同國[1] | Lee Dong-gook
출생 1979년 4월 29일 ([age(1979-04-29)]세)
경상북도 포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이씨 (慶州 李氏)[2]
신체 187cm, 90kg, A형, 280mm
주발 오른발 (양발)
학력 포항제철동초등학교[3] (졸업)
포항제철중학교 (졸업)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
위덕대학교 (사회과학 / 학사)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방송인, 축구 해설 위원, 기업인
프로 입단 1998년 포항 스틸러스
소속 <colbgcolor=#f0f0f0><colcolor=#000000> 선수 포항 스틸러스 (1998~2007)
SV 베르더 브레멘 (2001 / 임대)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05 / 군 복무)
미들즈브러 FC (2007~2008)
성남 일화 천마 (2008)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20)
행정 대한축구협회 (2023 / 부회장)[4]
해설 CJ ENM-tvN SPORTS (2021~2022)
국가대표 105경기[5] 33골[6] (대한민국 / 1998~2017)
소속사 생각엔터테인먼트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373a3c,#dddddd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0f0f0><colcolor=#000000> 등번호 대한민국 대표팀 11[7], 12[8], 18[9], 20[10], 21[11]
포항 스틸러스 33, 20, 10
SV 베르더 브레멘 21
광주 상무 불사조 10, 20, 46
미들즈브러 FC 18
성남 일화 천마 22
전북 현대 모터스 20[12][13]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 전역[14]
가족 아버지 이길남(1949년생)
어머니 김명자(1949년생)
누나, 형, 외조카 배재익
배우자 이수진(2005년 12월 18일 결혼)
자녀 장녀 이재시, 차녀 이재아[이란성]
삼녀 이설아, 사녀 이수아[이란성]
장남 이시안[17]
종교 무종교[18]
}}}}}}}}}}}}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개인 기록
4.3.1. 클럽4.3.2. 국가대표
4.4. 통산 기록
4.4.1. 클럽4.4.2. 국가대표
5. 플레이 스타일
5.1. 대표팀 공격진과의 호흡
6. 평가7. 미디어 활동8. 논란 및 사건·사고9. 관련 언사10. 여담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해설자.

전북 현대 모터스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이자 K리그 역사상 최초로 70-70 클럽에 가입한 선수다.

일명 '대박이 아빠'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축구 해설 위원이자 방송인, 주식회사 대박드림스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동국/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동국/국가대표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개인 기록

4.3.1. 클럽

* 2021년 10월 기준
* 548경기, K리그 통산 출전 3위[19]
* 228골, K리그 통산 득점 1위
* 77도움, K리그 통산 도움 2위[20]
* 305포인트, K리그 통산 공격 포인트 1위
* 37골, ACL 통산 득점 2위[21]
* 13골, FA컵 통산 득점 공동 3위[22]

4.3.2. 국가대표

* 2017년 7월 23일 기준
* 10골, 아시안컵 통산 득점 2위, 한국 선수로는 1위
* 33골, 대한민국 A매치 통산 득점 5위[23]
* 105경기, 대한민국에서 13번째로 센추리 클럽 가입
* 대륙 상대 A매치 득점자[24][25]

4.4. 통산 기록

4.4.1. 클럽

* 2017년 기준
<rowcolor=#ffffff>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ffffff>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998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5 7 2 0 0 0 9 4 0 - 24 11 2
1999 15 7 3 0 0 0 3 1 1 18 8 4
2000 7 4 1 0 0 0 1 0 0 8 4 1
3시즌 합계 37 18 6 0 0 0 13 5 1 - 50 23 7
<rowcolor=#ffffff>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007642>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0-01 SV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7 0 0 0 0 0 - 0 0 0 7 0 0
1시즌 합계 7 0 0 0 0 0 - 0 0 0 7 0 0
<rowcolor=#ffffff>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ffffff>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1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7 3 1 2 1 0 - - 19 4 1
2002 21 7 3 4 3 0 0 0 0 25 10 3
2시즌 합계 38 10 4 6 4 0 0 0 0 - 44 14 4
<rowcolor=#ffffff>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ffffff>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K-리그 27 11 6 0 0 0 - - 27 11 6
2004 19 1 5 2 0 0 4 3 0 25 4 5
2005 0 0 0 0 0 0 0 0 0 0 0 0
3시즌 합계 46 12 11 2 0 0 4 3 0 - 52 15 11
<rowcolor=#ffffff>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ffffff>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5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7 3 3 3 0 0 7 4 1 - 27 7 4
2006 10 7 1 0 0 0 - 10 7 1
2시즌 합계 27 10 4 3 0 0 7 4 1 - 37 14 5
<rowcolor=#ffffff>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d5002e>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6-07 미들즈브러 FC 프리미어 리그 9 0 0 2 0 0 0 0 0 - 11 0 0
2007-08 14 0 0 2 1 0 2 1 0 18 2 0
2시즌 합계 23 0 0 4 1 0 2 1 0 - 29 2 0
<rowcolor=#ed145a>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ffe462>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8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10 2 2 0 0 0 3 0 0 - 13 2 2
1시즌 합계 10 2 2 0 0 0 3 0 0 - 13 2 2
<rowcolor=#ffdd00> 시즌 구단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 대항전 총합
<rowcolor=#034f36>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1 29 21 0 4 4 0 3 1 0 - 36 26 0
2010 28 12 2 2 0 1 2 1 1 8 4 4 40 17 8
2011 29 16 15 1 0 0 - 8 9 0 38 25 15
2012 40 26 6 2 2 1 -[26] 6 4 1 48 32 8
2013 30 13 2 2 2 1 8 3 3 40 18 6
2014 31 13 6 2 0 0 7 3 0 40 16 6
2015 33 13 5 1 1 0 7 4 0 41 18 5
2016 27 12 0 - 13 5 1 40 17 1
2017 30 10 5 1 0 0 - 31 10 5
2018 35 13 4 2 0 1 8 4 0 45 17 5
2019 33 9 2 0 0 0 8 1 1 41 10 3
2020 11 4 0 1 0 0 1 0 0 13 4 0
12시즌 합계 356 162 47 18 9 4 5 2 1 74 37 10 453 210 62
통산 544 214 74 33 14 4 34[27] 15 3 74 37 10 685 280 91

4.4.2. 국가대표

* 2017년 9월 5일 기준
소속 대표팀}}} ||
연령
||
경기
||
득점
||
대한민국 U - 17 0 0
U - 20 9 6
U - 23 28 20
A 대표 105 33
통산 142 59

5. 플레이 스타일

발리마스터 이동국 발리슛 깎는 장인
'548경기 228골⚽' 레전드 이동국의 TOP 10 Goals [K리그 레전드SSUL] 올타임 넘버원! '라이온 킹' 이동국편

포항 시절과 외국 진출 시절에 잠깐 투톱으로 뛰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커리어를 원톱으로 뛰었다.

가장 특징적으로 발리 깎던 노인이라는 별명에 맞게 발리슛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슈팅 능력[28]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노장이 된 시점에서도 발목 힘과 슈팅력은 다른 어린 선수 이상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사실 발리슛이란 게 그저 떠있는 공을 갖다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발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다른 한 발만으로 정확한 임팩트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하체 피지컬이 요구되는데, 젊었을 때부터 허벅지 하나가 웬만한 여자 허리 둘레 급이었던 이동국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29]

특유의 슈팅 감각은 왼발, 오른발, 헤더 가리지 않으며 거기다 본인이 어떤 자세에 있고 어떤 공이 오더라도 원투 터치 이내에 위협적인 슛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독보적이었다. 더불어 오프사이드를 뚫는 능력이나 등지고 있는 수비가 눈치채지 못한 타이밍에 쇄도하는 능력도 국내 선수로는 최상급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묻지마 강슈터의 기질이 간혹 보였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개선되어 중거리 슛 등의 정확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이동국 하면 발리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중거리의 정확도와 슈팅센스도 뛰어났다. 패싱력도 있는 편이여서 2011년에는 K리그 도움왕도 차지했다. 시야가 넓어 경기중 미드필더 존으로 내려와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동료에게 좋은 공을 연결하기도 하며 짬이 안 되던 2002년 이전에는 그의 패싱 능력을 눈여겨 본 국내 지도자들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내려서 사용하곤 하였다. 포항 스틸러스에 파리아스 감독이 있던 시절에도 종종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곤 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다만 드리블 센스는 빈말로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과 노련함이 더해지면서 좋아지기는 했으나 이번엔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된 것이다.[30] 젊은 나이일 때엔 우당탕탕식의 치고 달리기도 종종 보여줬으나 나이가 들고 나서는 노련미를 활용해서 간단한 바디페인트로 슈팅각을 열거나 동료에게 연결하는 식의 플레이를 선호하였다. 활동량이 부족하다는 것도 지적받는데, 이 자료를 보면 활동량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최근 국가대표 경기나 리그에서의 모습을 보면 활동량 부족에 대한 지적은 이미 지나간 얘기라 할 수 있다.[31]

진짜 약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심리적 압박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클럽 경력이나 국가대표 경력을 보면 누적스탯은 역대 한국인 스트라이커들 중 최상위권이지만, 이에 비해 큰 무대 큰 대회에서의 기록은 아쉬운 편이다.

심리적 압박에 강하다는 것도 축구 선수의 엄연한 실력[32]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33] 이동국이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것은 완벽한 국가대표 칭호를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움직임 자체는 그래도 비교적 멀쩡하게 가져가는 편인데, 슈팅이나 패스의 정확도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34]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때도 신나게 골대를 맞추다가 리드를 잡으니 그제야 득점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았다. 토너먼트 승부차기에서도 실축이 많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국대 해결사였는데 비난을 이길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런 면은 클럽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이 돼서 유망주 시절 갔다 온 브레멘은 그렇다 쳐도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계속 실수가 나오면서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비판을 받고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해 더 자신감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크게 작용했고[35][36] 성남에서도 이동국의 영입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김학범 감독 밑에서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중동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큰손들의 영입 제한을 뿌리친 것도 스스로 이런 면을 깨달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젊었을 때는 피지컬을 활용하며 우당탕탕 부딪히는 플레이를 했지만 선수 말년 기준으로서는 스피드나 템포를 상당히 늦추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세컨드 스트라이커 비슷하게 변한 본인의 기질과 더불어 나이와 부상 탓이 크다.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의 얘기뿐만이 아니라, 이동국은 어린 시절부터 몸을 쓰면서 상대와 부딪히고 아군에게 공간을 가져다주는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내려간 자리에서 공간을 보거나 패스를 넣어주는 플레이를 더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는 한국에서도 몸으로 부딪히고 열어주는 플레이는 별로 시도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오히려 동갑내기이자 청소년대표 파트너였던 김은중이 더 잘했다.[37] 박주영과 비교할 때 이런 점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통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가 강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이동국에 대한 저평가에는 톱 외에는 거의 쓰기가 힘들다는 좁은 활용 폭도 있다. 몸싸움은 좋지만 스피드가 많이 떨어지고[38] 전북 시절엔 간혹 세컨톱으로 뛰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 임시변통으로 뛰는 정도였다. 톱으로 뛴다면 원톱, 투톱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만 원톱에서는 양 측면에 크랙형 선수가 있어야 장점이 극대화되는 타입이기도 하다.[39] 전북이 대대로 양 날개 쪽에 최고급 외국인을 데려와 놓는 것은 이동국 혹은 김신욱을 살리기 위한 전술이다.

5.1. 대표팀 공격진과의 호흡

이동국이 한참 대표팀 붙박이이던 초창기 시절 대세는 투톱이었고 이동국도 소속팀에서나 국대에서나 주로 투톱으로 뛰었으며 이후 원톱으로 더 긴 세월을 뛰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동국의 플레이 특성상 적성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지만 국제 대회에 데려갈만한 공격수 가운데 몸빵이 되고 짬이 쌓인 지금은 사실 원톱 전문이고 투톱도 가능함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6. 평가

K리그 통산 득점 1위[46], 통산 도움 2위, 통산 공격 포인트 1위, AFC 챔피언스 리그 통산 득점 2위[47] 등의 기록을 남긴 레전드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등번호 20번은 전북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비운의 축구 선수로 항상 뽑히기도 했고 한국 축구 팬들에게 가장 애증이 많은 선수 중 하나였다.[48]

K리그에서 MVP, 신인왕,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석권하고[49] K리그 통산 최다 득점[50]ACL 통산 최다 득점 2위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또한 대한민국 축구 선수로는 유일하게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에 모두 리그에서 득점을 올린 기록도 가지고 있다.[51][52]

또한 국가대표팀에서도 A매치 100경기를 넘게 출전한 FIFA 센추리 클럽 가입멤버이자 33골로 대한민국 역대 A매치 득점 공동 5위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개인 커리어에도 2000 아시안컵 득점왕을 달성하는 등 괜찮은 활약상을 남겼다. 이러한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국가대표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53]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부진한 행보를 보이며 월드컵과 인연이 없는 선수로 더 유명한데 자국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낙마, 절치부심 후 좋은 컨디션을 보였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조차 못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3명 최종엔트리에 발탁 받았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박지성이 찔러준 택배 기사급 킬패스를 일명 '물회오리슛'으로 마무리함으로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월드컵 통산 0골'이러한 이유로 월드컵과 다소 인연이 먼 선수여서 비운의 선수란 이미지가 있다.[54]

그러나 국가대표로 활약상을 보면 비운의 선수로 단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 많은 족적을 남긴 선수다. 먼저 대한민국에서 오직 넷뿐인 A매치 전 대륙 상대 득점자다. 월드컵 본선으로 한정해도 최종 엔트리에 들더라도 본선 경기를 뛰지 못하고 귀국하는 선수에 비하면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 통산 3경기를 뛰었다. 아시안컵 본선으로 한정하면 대한민국에서 이동국보다 AFC 아시안컵에서 더 많은 득점(10득점)을 올린 선수는 없다. 한편, 연령별 대표로 FIFA U-20 월드컵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아봤으며 득점까지 기록했다. 즉,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국제대회에 거의 다 뛰어본 셈이다. 또한 상기된 우루과이전의 아쉬운 모습때문에 가려져있지만 대한민국 최초 원정 월드컵 16강 멤버 중 1인이다.

과거에는 이승엽과 같은 라이온 킹이 별명이었으나 미들즈브러에서 크게 삽을 푼 다음부터는 영국에서 품바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요새 국내에서는 품바라고는 하지 않지만 라이온 킹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리동궈라고 부르는 사람은 간간이 있다.[55]

이동국 논쟁은 박주영, 정성룡의 국대 합류 건과 더불어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떡밥거리로 동빠와 동까가 만날 때마다 대규모의 키워가 벌어지며 국가대표 발탁 그 자체도 찬반 여론이 들끓는 부분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온순한 아이러브사커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국대 발탁 찬성론자의 경우에는 그만한 골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상당히 준수하기 때문에 뽑아야 하는 입장이고 반대론자의 경우에는 뽑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 다만 반대론자의 경우 단순히 이동국의 안티만이 아니라 전북의 팬들도 어느 정도는 그의 차출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강희 감독처럼 국대에서 욕 먹고 오느니, 그냥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이나 나이가 많으니 몸을 생각해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내세워 국대 차출을 반대하기도 했다.

7. 미디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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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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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련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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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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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의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 이동국 마이너 갤러리#

*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의 활약으로 2018년 KBS 연예대상에서 연예대상 후보에 올랐다. 현역 스포츠 선수가 연예대상 후보에 오르는 것은 최초다.

*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시대상이 맞아떨어진 케이스다.[70] 병역비리 역시 현재는 국가대표 제명 수준의 중징계감이지만 당시에는 군대를 갔다오면 완수한 것으로 쳤다. 룸살롱 역시 2020년대 기준으로 환원하면 중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병역 비리와 대회 출전 문제에는 박주영도 어느 정도 걸리는 등 이를 용인해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막차나 막차에서 두 번째 차 정도를 탄 느낌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 출연하면서 애들 잘 보는 가정적인 이미지로 이미지 세탁이 된 것도 저런 구설수들에서 그럭저럭 잘 넘어간 또 하나의 이유이긴 하다. 그래도 한편으로 변명을 해주자면 이미지 세탁이란 것도 세탁이 될 만한 좋은 모습들을 보여줘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것 정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큰 사고 없이 경기장 내외나 기타 방송에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던 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 어쨌던 본인이 잘 한 게 없지는 않다. 그런 측면에서 개과천선 비슷한 걸로 판단할지 아니면 이미지 세탁인지는 판단하는 사람마다 다를 일...[71]
''' 일단 뭐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그동안 고생 많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큰 선물 또 해줘가지고 너무 감사하고, 형한테는 첫 (FA컵) 타이틀이기 때문에 더 값진 것 같고, 끝까지 너희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 보니까 울컥하더라고. 고맙고 우리가 어떻게 되든 항상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만나니까 끝이 아니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또 연락하면서 보자 너무나 고생 많았고, 고맙다. '

* 선수로서의 롤 모델은 데니스 베르캄프라고 한다.

* MBTI는 ENTJ에서 ESFJ로 변했다고 한다.

* 은퇴 이후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종종 찾고 있다. 2021 시즌 최종전이자 홈 폐막전, 2022년 10월 30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FA컵 2차전 등을 보기 위해 전주성을 찾았다.https://www.fmkorea.com/5161260117, 2023년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킷치 SC와의 전주성 홈경기에도 방문했다.

* 타로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3/01/39170/

11. 관련 문서



[1] 2007년에 李東國에서 개명했다. 여담 문단의 첫 번째 단락 참조.[2] 파와 항렬은 불명.[3] 現 포항제철초등학교[4]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영표, 조원희와 함께 사퇴했다.[5] FIFA 공인 기록 (104경기)[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A매치 득점 공동 5위[7] 2000 시드니 올림픽,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8]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9] 1999 FIFA U-20 월드컵[10]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10 남아공 월드컵[11] 1998 프랑스 월드컵[12] 영구 결번[13] 현역 시절 본인이 선호하던 등번호다. 그래선지 뭉쳐야 쏜다 출연 당시에도 20번을 사용했다.[14] 국군체육부대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복무[이란성] [이란성] [17] 태명은 '대박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서도 대박이로 불려 왔는데 이쯤 되면 태명이 아니라 아명 수준. '대박이'라는 이름은 왕가네 식구들등장인물에서 따온 태명인 것으로 보인다. 누나가 넷이나 되는 막내 아들이라는 점이 같다. 이로써 이시안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고모가 무려 네 명이나 생기게 되는 것이다.[18] 본인의 공식 프로필상에는 무종교로 되어 있어서 딱히 신앙심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집안 자체는 상당히 독실한 불교 집안이다. 특히 부친이 꾸준히 절에 다닌다고 한다. 아들이 월드컵에서 골만 넣어 준다면 머리 깎고 스님이 되는 게 대수겠냐는 말로 아들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19] 1위 김병지(706경기), 2위 김영광(549경기/현역)[20] 1위 염기훈(110도움)[21] 2021년 6월 26일까지는 1위였으나 27일부로 데얀 다먀노비치에게 추월 당했다.[22] 1위 노병준(18골), 2위 김영기(15골), 3위 김은중과 동률[23] 김재한과 동률[24] 2014년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면서 황선홍, 박주영에 이어 3번째로 전대륙 상대로 득점한 선수가 되었다. 박주영의 경우 호주가 OFC에서 AFC로 소속을 바꾼뒤 득점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동국의 경우 호주가 OFC 시절에 득점했다. 어찌보면 황선홍에 이어 두 번째 전대륙 상대 득점자다. 2017년 손흥민이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하면서 역대 4번째 전대륙 상대 득점자가 됐고 현재까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 등 네 명의 선수만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25] 전대륙 상대 득점 기록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오세아니아 국가를 상대로 득점하기가 어려워서다. 대륙도 다른데다 전체적인 실력도 떨어져 국제 대회에도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A매치에서 맞붙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호주가 OFC에서 AFC로 소속을 바꾸면서 호주를 상대로한 득점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논란 없이 전대륙 상대 득점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이재성이다. 국가대표 데뷔한지 얼마 안돼 뉴질랜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현재까지 5대륙(오세아니아 - 뉴질랜드, 아시아 - 미얀마, 유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중미·카리브 - 코스타리카, 남미 - 콜롬비아)을 상대로 득점했다. 이게 얼마나 기록하기 힘든 것이냐고 하면 지금 세계 6대륙 득점에 성공한 선수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치차리토, 호나우두, 호마리우, 오카자키 신지, 팀 케이힐 등 몇 안 되는 편이다. 즉 유명한 선수들도 보유하지 못하는 이러한 기록을 지녔다는 자체가 꽤 의미있다 볼 수 있다.[26] 2011년을 끝으로 K리그 리그컵을 폐지했다.[27] 국내 32 + 해외 2[28] 국대에서는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발리슛만큼은 칭찬을 받았다. 전북이 리그 강호라는 것을 감안해보아도 리그 내에서 슈팅당 골 비율이 가장 높은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이동국이 개발이라면 리그 내 모든 용병들도 개발, 아시아에서 개발이 강을 메울 것이다. 다른 능력이 지적받아도 순수 결정력만큼은 절대 나쁘지 않다.[29] 발리슛은 슛 중에서도 그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유럽 상위 리그 선수들도 경기중 발리 슛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제대로 임팩트하지 못해서 공이 민망하게 빗나가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30] 화려한 드리블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기본기는 잘 다져진 편이라 볼을 쉽게 뺏기는 타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데뷔 초기에 종종 공미로 뛰기도 했고 또 프로리그에서 종종 관찮은 드리블과 패스 감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비교대상이 어디까지나 이천수안정환과 같이 국내 탑급의 테크니션이어서 그렇지 이동국도 발기술이 약점인 편도 딱히 아니었다.[31] 이제 와서는 활동량이 적다고 까는 사람은 그냥 국대조차 제대로 안 보는 사람으로 취급해도 될 정도다. 전체적으로 어린 시절 묻지마 강슈터 기질과 그 둔해 보이는 움직임이 이런 편견에 기여한 바가 크다. 사실 이동국은 원래부터 활동량이 약점인 선수는 절대 아니었는데, 흔히 '받아먹기'식으로 연명하는 선수들도 골을 넣는 그 장면에만 보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 상대 수비수들 사이의 빈 공간을 헤집고 다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오프사이드 라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도 라인 근처에서 수시로 움직여야 한다. 활동량이 적은 스타일이라면 위치 선정으로 연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동국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는 타입의 공격수는 원래 아니었지만 이런 점 때문에 활동량이 적다는 편견이 생긴 것이지, 사실 활동량이 단점이라고 보긴 어렵다.[32] 히딩크가 이동국을 심리적 압박에 약한 것 때문에 쫓아냈다고 말한 적이 없다. 혹설에 의하면 게으른 천재여서 쫓겨났다는 말도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며 황선홍, 최용수와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 약간 아래서 뛸 수 있는 안정환이 극강의 폼이었고 실패했지만 설기현도 꾸준히 그 자리에 테스트했다. 김도훈 같은 선수도 경쟁에서 떨어지던 와중에 그냥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33] 심리적 압박에 강한 선수가 박주영이나 기성용이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완벽한 국대 칭호를 듣는 박지성은 클럽 업적과 국대 업적이 고루 좋은 편이다.[34] 유명한 우루과이전 카페베네 슛처럼 판단 자체는 괜찮았다. 오히려 패스를 받기 위해 침투하는 움직임은 모범적인 수준이다. 차기도 적당히 찼는데 들어가기에는 아주 조금 모자란 그런 슛이 나오고는 한다. 우루과이전 실축도 위치선정, 침투, 턴 등 슈팅 직전까지의 움직임은 정말 훌륭했지만 그러나 골이 되지 않았다.[35] 이동국은 독일 월드컵 직전에 전방 십자인대를 다치는 치명적일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미들즈브러에서의 활약이 안타까운 것은 무엇보다도 이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기력이 크게 떨어진 시점에 이적한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돈의 규모가 다른 epl팀이라지만 예나 지금이나 미들즈브로는 양질의 메디컬케어를 해줄 수 있는 팀이 아니다. 더군다나 십자인대 부상은 축구 선수에게 치명적인데다가 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더 많다.[36] 이런 큰 부상을 끝내 극복해낸 이동국이 정말 대단한 것이고 부상과는 별개로 당시 보로를 이끌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동국의 실력에 대해 큰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37] 사실 패스나 움직임에 자신있어하는 선수일수록 몸싸움을 좋아하지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38] 워낙 선수 생활을 오래하고 부상이 많아서 느리다고 하는 것이다. 육상부 출신인 것도 있고 부상이나 나이를 빼고 본다면 원래는 꽤 빠른 편이었다.[39] 근데 이건 원래 최전방 원톱을 살리기 위해 전세계 모든 팀들이 시도하는 전술이기도 하다.[40] 사실 황선홍 이후 한국의 전통적인 대형 공격수는 최용수였다. 실제로 황선홍 은퇴 이후 최용수가 원톱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미국전 실수로 인해서 이미지가 안 좋았고 나이도 많았던 지라 설기현과 조재진에 밀려났다.[41] 2002 월드컵의 인상 때문에 안정환의 주 포지션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 안정환의 주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이며 실제로 본인은 아예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언급하기도 한다.[42] 실제로 안정환은 이동국보다도 몸싸움에 약했지만 대신 이동국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더 뛰어난 선수였다. 안정환이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였을 때는 10번 혹은 9.5번 자리에 섰을 때였다.[43] 하지만 둘의 부조화와 별개로 사적으로는 절친한 사이다. 안정환의 "국동아!"와 이동국의 "아유 진짜!"도 둘이 거리낌 없이 지내다보니 나온 말이고 안정환도 이것에 대해 유머거리로 언급할 정도다. 2020년에 뭉쳐야 찬다에 같이 출연해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참고로 안정환은 1976년 1월생이고(심지어 빠른 생일) 이동국은 1979년생이라 안정환이 4년 선배인데도 저렇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것부터 격없이 지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표팀이 히딩크의 영향으로 선후배 관계나 나이 차이에 개의치 않고 지내게 된 것도 있겠지만. 안정환이 이탈리아, 이동국이 독일에 있을 때 휴일에 중간 지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44] 그래서 이동국-박주영 투톱의 롤을 바꾸자는 의견도 좀 있었다.[45] 주로 이근호가 이 역할을 맡았다.[46] 2위는 데얀[47] 2020. 11. 1. 은퇴 시점 기준에선 1위였으며 이후 또 다른 레전드인 데얀이 갱신했다.[48] 비슷한 사례로 박주영이 있다. 두 명 모두 한국 축구 정통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재능으로 평가 받았지만 이동국은 혹사와 부상, 박주영은 아스날에서의 몰락으로 기대만큼 대성하지 못했다.[49] 근접했던 선수로 득점왕이 없는 이흥실, 고정운, 이천수, 도움왕이 없는 신태용, 정조국이 있다.[50] 548출장 228골 77도움[51] 전세계적으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엠레 벨로조글루, 로케 산타 크루즈만 가지고 있는 희귀한 기록이다.[52] 90년대 포항에서 데뷔해 첫 성인무대 골을 넣은 후 200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고 유럽 무대를 경험했으며 2010년대 전북에 입단해 전북 왕조의 개막을 알리며 K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되었고 2020년 자신의 마지막 현역 시즌에서 시즌 개막골을 넣는 등 은퇴할 때까지 교체와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했다.[53] A매치가 1년에 10경기라고 가정한다면 10년을 넘게 대표팀에서 꾸준히 출장해야 이룰 수 있는 기록이다. 즉 선수로서 활동하는 기간 내내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되고 출전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직관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이동국과 동시대인 2000년대에서 활약한 선수 중에서는 박지성이영표 밖에 없으며 한 세대 후인 2010년대라고 치면 기성용손흥민, 김영권 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또한 FIFA 공인 기준상으로 23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센추리 클럽 가입 멤버는 15명 밖에 없다.[54] 사실 대표팀 주력 공격수였는데도 월드컵에서 1골도 득점하지 못한 선수가 이동국뿐만은 아니며 이동국 이후로도 부상으로 출전의 꿈이 좌절된 선수도 한둘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동국에게 그런 이미지가 있는건 그만큼 아이콘으로서의 스타성이 있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선수 초기 극심한 국대 혹사와 언론의 피해자로서 해피엔딩을 볼 수 없게 된 아쉬움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55] 중국 축구팬들이 중국을 상대로 할 때 활약한 그를 중국식 발음으로 부르던 것이 한국에서 놀림거리로 된 경우다.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빠도 까도 다들 동궈라고 부른다. 이승엽의 오푼, 홍진호의 콩과 같은 케이스. 심지어 축구계 후배들도 동궈형으로 부른다.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032008243657512_3.jpg[56] 이름 때문에 많이 엮이는 그 대학교한자 이름도 바로 저것이다. 東國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이 한반도를 지칭할 때 흔히 쓰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57] 李 7획+東 8획+國 11획, 합 26획[58] 음은 그대로 두고 한자만 바꾸는 개명은 어지간해선 잘 받아준다.[반론] 정작 고향집은 "북구 죽도동"(죽도시장 주변지역)이다. 다만 초중고를 방언을 거의 쓰지 않는서울사람들이 경상도말 따라하는 듯한 지곡동에 있는 학교에 다녀서 사투리를 거의 구사하지 않을 뿐이다. 이동국의 고향 집이 북구 죽도동이라는 사실은 과거 기사들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60] 이동국이 자기보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뜻.[61] 2017년에 현영민이 은퇴하면서 2002 월드컵 멤버는 모두 은퇴했음에도 이동국은 현역을 유지했다.[62] 이동국 은퇴 이후에 1998 월드컵에 출전했던 현역 선수는 잔루이지 부폰, 오노 신지, 이토 테루요시였으며 부폰이 2023년에 은퇴하면서 2023년 기준 단 두 명만 남았다.[63] 만 19세 1개월 22일.[64] 그래서 S급이 아니라 애매하게 국대에 뽑힐 듯 말 듯한 A급 중 최상위 선수와 리그 씹는 용병을 보유한 성남이 잘 나가던 시기였다.[65]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축구에서의 불문율이다. 안 그러면 대차게 까인다.[66] 2005년쯔음에 곽희주가 조절을 못해 뒷다리를 걷어차이자 멘탈이 나간 이동국이 곽희주를 때리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67] 대체역사물 영화로 만약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에 실패했다면 이란 전제로 진행되는 나비효과로 인해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남은 세계를 그린다. 오프닝 신 마지막에 나오는 2002 일본 월드컵에서 기뻐하는 이동국의 왼쪽 가슴에 박힌 일장기가 클라이막스. 당연히 이동국과 그 가족들에게 허락받은 장면이라 한다.[68] 3경기 4골[69] 2020년 9월 8일 기준 53.4만 명.[70] 이는 농구계에서의 허재, 서장훈 등과 비슷하다.[71] 사실 이동국이 까이는 이유 중에서는 사건, 사고보다는 실력적인 부분이 크다. 국내용이라는 멸칭과 물회오리 슈팅때문에 유튜브에서는 저평가가 심하게 되었다. 대부분 2030 남성들이 비판을 하고있다. 물론 유튜브처럼 인터넷 댓글은 쓰는 사람만 글을 쓰기 때문에 모든 대중의 의견을 담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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