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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couver Whitecaps FC Ambassador | |||||
<colbgcolor=#00245E><colcolor=#fff> 이름 | 이영표 李榮杓 | Lee Young-Pyo | ||||
출생 | 1977년 4월 23일[1] ([age(1977-04-23)]세) |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면 창촌리[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6cm / 체중 69kg / O형[3] | ||||
주발 | 오른발(양발) | ||||
직업 | 축구 선수 (레프트백[4] / 은퇴) 축구 해설가 축구 행정가 기업인 | ||||
소속 | <colbgcolor=#00245E><colcolor=#ffffff> 선수 | 안양 LG 치타스 (2000~2003) → PSV 에인트호번 (2003 / 임대)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토트넘 홋스퍼 FC (2005~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09) 알 힐랄 SFC (2009~2011)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1~2013) | |||
기타 |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6~ / 앰버서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2017~ / 고문 이사) 강원 FC (2021~2022 / 대표이사) 대한축구협회 (2021~2023 / 부회장) KBS (2014~2018, 2022, 2023~ )[5] | ||||
국가대표 | 127경기 5골[6] (대한민국 / 1999~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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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이하엘(2005년생) 차녀 이나엘(2008년생) 삼녀 이다엘(2015년생) | |||||
어머니 박정순(1937년생)[7] | |||||
형 이태호(1959년생) 형 이완표(1961년생) 누나 이규희(1965년생) 누나 이복희(1968년생) 누나 이미희(1971년생) | |||||
본관 | 전주 이씨 (全州 李氏)[8] | ||||
종교 | 개신교 (예장통합)[9] | ||||
학력 | 홍천창촌초등학교 (전학)[10] 안양초등학교 (졸업)[11] 안양중학교 (졸업) 안양공업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정치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 ||||
병역 | 예술체육요원[12] | ||||
서명 |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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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해설가, 행정가, 기업인. 현재는 삭스업의 창업자이자 KBS 축구 해설 위원.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도 조별리그[13] 최종전 포르투갈과의 결승골 어시스트,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결승골 어시스트를 올리면서 맹활약했다. 8강과 4강 독일전에서도 상대편을 위협하는 강한 모습을 남겼다. 이 때 구축한 '좌영표-우종국' 라인은 지금도 회자되며,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축구는 무려 10년 동안 박지성과 이영표가 버티고 있는 좌측 라인은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다.
A매치 127경기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무척 유명한데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폼이 떨어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보여준 적 없을 정도로 '기복없는 플레이하면 이영표'로 정평이 나있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 개인기도 유명하다.[14] 대한민국 축구에선 보기 힘든 풀백이 드리블로 상대팀의 수비 한 축을 허무는 모습도 이영표식 드리블 플레이는 축구팬들이 항상 즐거워하는 요소였다.
성실함과 모범의 대명사로서 그의 축구 인생 역시 매우 탄탄한 성장 가도를 달려 후배들이 본받을 만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15] K리그에 입단,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거쳐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다. 이후 바로 주력 주전으로 팀의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등을 이끌고 빅리그 팀 중의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팀 토트넘 홋스퍼와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진출하여 활약했다. 노장으로 접어든 이후로는 중동팀을 거쳐 북미 리그에도 진출, 36살의 나이로 전 경기 풀타임 출전 기록을 세우며 축구 인생을 마무리했다.
비록 차범근-박지성-손흥민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 에이스 계보가 등장하며 이영표의 존재감이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이영표의 축구는 여전히 한국 축구계에서 의미가 크다. 2020년대로 들어온 현재에 와서야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한국 선수들이 1대1로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을 제압하는 것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영표가 유럽에 진출하였던 2000년대에 아시아 선수가 유럽이나 남미의 슈퍼스타들을 화려한 개인기와 탁월한 수 읽기를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1대1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유럽무대에서 성공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다. 동시대 대한민국 최고의 크랙이라고 평가받았던 이천수가 오히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영표 방식의 축구가 유럽에서 성공한 것은 한국축구에서 굉장히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16] 특히나 1990 ~ 2000년대까지도 한국 축구 지도자들이 1대1을 극도로 지양하고, 창의성을 무시하며 패스를 하도록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영표의 유럽에서의 성공은 이후 축구 후배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팬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초롱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이미 만 25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엽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현재는 항상 철두철미했던 현역 선수 시절 모습을 해설자로서 보여주고 있다. 경기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날카로운 안목으로 경기를 연이어 정확히 예측해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대표팀에 대해 따뜻하면서도 가끔은 따끔하게 짚어내는 해설로 해설자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기장의 '초롱이'는 텔레비전에서 이제 '초롱도사'로서 팬들과 만나고 있다.
그가 KBS 해설을 맡은 이후로 KBS 축구중계는 계속해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승률도 가장 좋다. SBS는 차범근 이후 선출 해설이 없자 장지현을 쓰고 있으며, MBC는 파업 이후 김성주를 쓰지 않고, 해설 역시 사생활 문제가 불거진 송종국을 쓰지 않으며 안정환을 배치했던 터라 가장 화제성이나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거 아닌가 했는데 오히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리그 F조 스웨덴전, 멕시코전, 독일전 모두 3개 방송사 중 시청률 1위를 달렸다.
처음 해설자로서 데뷔한 2014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축구 3사 시청률 맞대결에서 거의 매번 1위 자리를 지켰다. 그 뒤 해설 위원 5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양말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20여년간 축구경험을 살려 만든 풋웨어 스타트업 삭스업. 사업을 통해 '받은 기회를 패스하고 살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인터뷰 전문
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이영표/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플레이 스타일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특유의 '헛다리 짚기' 개인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실제로 그는 개인기를 통해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데서 재미를 느껴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무던히도 개인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소위 '헛다리'라 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중심축을 잃지 않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성기 시절 그의 헛다리 드리블만큼은 월드클래스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정작 이영표 자신은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는 "프리스타일" 에 대해서 그리 좋게 보지 않고 있다. 프리스타일 외국인 유망주가 개인기가 뛰어난 토트넘의 이영표 앞에서 자신의 기술을 시연한 적이 있는데 축구에서 저런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며 혹평한 적이 있다.[17][18]
프리미어 리그 이적 첫 경기였던 대 리버풀 FC전에서는 측면에서 리그 탑 클래스 리버풀 수비 2명, 스티브 피넌과 제이미 캐러거를 보란듯이 제껴버리고 크로스를 올리는 등 리버풀의 오른쪽을 경기 내내 제 집 드나들듯 유린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이날 이영표는 MOM에 선정되었다. 그 외 PSV 시절,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대 AC 밀란과의 홈 경기에서[19]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카푸를 완벽히 제치고 멋진 크로스를 올려 코쿠의 헤더 골을 돕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영표의 전성기 시절 클래스를 대표하는 명장면이다.
오른쪽 풀백도 소화가 가능해서 아드보카트호 시절 김동진이 흥할 때는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오른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20]특히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 위치할 때는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최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있는 동안 대표팀 왼쪽 측면은 아르헨티나를 만나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가 유명하다보니 공격에 특화된 윙백으로 인식된 적도 있지만, 실상 공수불균형이 심한 풀백이었다. 90년대부터 대표팀 래프트백 계보가 구상범-신홍기-하석주-이영표로 이어지는데 킥과 주력은 가장 떨어지는 선수였다.[21]
네덜란드 리그 시절 이후론 공격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다.[22] 수비는 상대와의 수싸움을 통한 자리 잡고 막는 방식과 피지컬로 커버하는 방식이 있는데 전성기 이영표는 꾀돌이라는 별명답게 상대와 수싸움도 능해 어지간하면 위험한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2002월드컵에서 피구의 영상을 보며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다라는 일화가 유명하며 평소 본인의 성격도 그렇고 상대 공격수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 점이 수비에서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 하다.
이영표의 약점은 우선 피지컬이다. 민첩성은 좋았으나 풀백으로서 스피드는 평범했고 힘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 때문인지 상대 선수에게 붙어서 수비를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게 대표팀 시절도 클럽팀 시절도 이영표의 약점 중 하나였다. 측면 수비수는 공격수에게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면 윙포워드의 방향전환이나 개인기에 제껴지기 쉽고, 윙어와의 거리를 벌리면 윙포워드가 여유롭게 슛이나 크로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거리를 벌리지도 좁히지도 못한다는 딜레마가 있다.[23] 이영표는 상대방 윙포워드를 제압하기 위해 뛰쳐 나갔을 때 상대방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신체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고, 제껴졌을 때 바로 커버할 수 있는 스피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상대방 윙포워드와의 거리가 너무 벌어지지 않는 선에서 뒤로 무르며 러닝디펜스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영표가 들러붙는 성향이 아니다보니 공격자에 대한 대인압박은 헐거워지기 마련이고 상대적으로 손쉽게 크로스 등 후속 동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크로스 허용률이 매우 높았다.[24]
대표팀 풀백 선배인 신홍기, 하석주와 달리 킥력이 나빴다. 킥의 속도나 파워가 프리미어리그 수준에서는 부족했다.[25] 왼발로 올리는 러닝크로스가 붕 뜨는 아리랑 크로스였기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파고들어서 날리는 중거리슛이 강한 것도 아니었기에 상대 입장에서는 접고 올리는 오른발 크로스만 조심하면 되었던 것이다. 왼발의 킥력이 상당히 약했기 때문에 이영표는 어지간하면 한 번 접고 오른발로 크로스를 해야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한 번 접는 과정에서 타이밍이 빼앗기게 되고, 이영표를 막는 수비수는 오른발 킥 각도만 좁히면 된다는 약점이 있었다.[26] 2002년 월드컵 때 이영표가 기록한 두 번의 어시스트는 각각 포르투갈전과 이탈리아전에서 나왔다는 점은, 이영표의 이러한 단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어시스트 모두 상대 팀 선수들이 퇴장당한 경기 막판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상대팀은 수적 열세와 이로 인한 경기 막판의 체력적 열세 때문에 이영표를 충분히 대인 마킹할 수 없었고, 이 덕분에 이영표가 아주 편하게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이영표가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킥력 문제는 풀백이 전술적으로 본격적으로 대두하지 않은 2000년대에도 약점이어서 토트넘 2년차인 06/07 시즌 베누아 아수 에코토와 경쟁해야했고[27], 07/08 시즌 당시에 좌측 윙백 유망주로 가레스 베일까지 들어오자 점점 출전시간이 줄어들었다.[28] 도르트문트 시절에는 이러한 왼발 킥력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은 그를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시키기도 하였다.
신체능력이 정점에 있었던 네덜란드 시절엔 현란한 드리블과 강인한 체력을 활용한 무한 오버래핑으로 맞은편 상대 윙백을 밀어붙이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으나[29] 토트넘 3년차부터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수싸움에서 지레 지고 들어가는 장면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상대팀은 이영표가 있는 왼쪽 측면을 공격에서 일단 쉬어가는 전진기지로 삼기도 했기 때문에 은퇴 직전 시점 받았던 공수겸장으로서의 칭호는 사실 과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도 은퇴하면서도 프리미어리거라는 간판 덕에 칭송받은 경향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영표의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과 장단점이 에드가 다비즈, 마르크 판보멀, 그리고 김남일, 김정우와 궁합이 좋았기 때문에 PSV 시절, 토트넘에서의 커리어 전반부와 김남일, 김정우가 주전으로 있던 시절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이 좋았다는 해석도 있다. 에드가 다비즈는 170cm가 채 되지 않는 선수지만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유럽 최상위 클럽에서 활약했을 정도로 신체능력이 탁월했고 활동량도 좋았다. 덕분에 에드가 다비즈와 함께 세워두면 이영표의 단점이 상당부분 상쇄될 수 있었다. 여기에 마이클 캐릭도 있었다. 토트넘에서의 첫 시즌에는 에드가 다비즈를 믿고 이영표가 오버래핑을 하면 캐릭이 뒤에서 공을 뿌려줬다. 캐릭 역시 활동량과 수비력이 좋은 선수라 이영표의 오버래핑으로 인해 생기는 뒷공간을 커버해줄 수 있었다. PSV 시절 동료였던 판보멀은 뛰어난 피지컬과 높은 활동량과 강인한 체력의 삼위일체를 갖춘 홀딩 미드필더여서 마찬가지로 이영표의 단점을 커버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이후 FC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구단 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부주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과 카리스마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같이 뛴 김남일은 볼 터치를 비롯해 볼을 다루는 능력 자체는 분명히 투박했지만 진공청소기란 별명답게 투지넘치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몸싸움과 태클에 적극적이고 대인마크에 능했으며 거기에 높은 활동량, 뛰어난 전술 이해도, 적재적소에 찔러주는 전진패스 능력도 가지고 있어 이영표의 단점을 상당부분 커버해주었다. 그리고 후일 대표팀에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하는 김정우도 큰 키에 비해선 몹시 마른 체형이지만, 몸싸움 잘하고 터프하며 시야 또한 넓었고 특히 패스커트 능력은 국내에서는 거의 달인 수준이었다. 또한 한국 수비형 미드필더 중에서 몇 없는 볼간수가 가능한 미드필더여서 마찬가지로 이영표가 허정무호에서도 꾸준한 활약이 가능했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 에레디비시: 2002-03, 2004-05
- KNVB 베이커: 2004-05
- 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3
- 토트넘 홋스퍼 FC (2005~2008)
- EFL컵: 2007-08
- 알 힐랄 FC (2009~2011)
-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2009-10, 2010-11
- 크라운 프린스컵: 2009-10, 2010-11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4.2. 개인 수상
- K리그 베스트 XI: 2001
- KBS배 추계 축구선수권대회 MVP: 1995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2
- 밴쿠버 화이트캡스 올해의 선수: 2012
- AFC 아시아 월드컵 올타임 XI: 2020[30]
4.3. 서훈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4.4. 통산 기록
4.4.1. 국가대표
연령 | 출전 | 골 |
U-17 | 0 | 0 |
U-20 | 0 | 0 |
U-23 | 23 | 1 |
A대표 | 127 | 5 |
종합기록 | 150 | 6 |
5. 은퇴 이후
은퇴 이후 해설자로 나오고 있지만 사실 굵직한 A매치 대회에서나 나오는 것이고 직업이라 보긴 애매하다. 이 외에도 축구와 관련해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으며 예능에도 가끔 출연하다 2020년도에 예능 출연 비율이 확 늘어 안정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예측되기도 한다.- 2019년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을 위한 '스포츠혁신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 정글의 법칙 IN 코른편에 출연했다.
- 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에 감독으로 출연했다.
- 나이키의 광고 '너를 외쳐 봐' 편에서는 각종 운동을 하는 사람들 옆에서 딴죽을 거는데,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내뱉는 한마디가 인상적. 이를 본 팬들 사이에서는 공익광고 수준이라며 대호평. 너를 외쳐 봐 공식 인터뷰
은퇴 후 양말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20여년간 축구경험을 살려 만든 풋웨어 스타트업 삭스업.
삭스업 공식사이트
이영표 축구도 삶도, 나는 이기적으로 헌신을 선택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 전문
삭스업의 사이트에서 밝힌 브랜드의 의미에서 이영표의 경험이 묻어난다.
축구를 하다가 넘어지면 일어나기 전 무의식적으로 양말을 잡아 올립니다. 프리킥을 찰 때도 양말부터 당기죠. 그걸 ‘Socks - Up’이라고 합니다. 도전에 앞서 자신을 추스르는 루틴 같은 것. 그런데 축구장에서만 그런가요? 우리 삶에서도 ‘삭스업’이 필요하잖아요. 비록 우리의 삶이 바닥이지만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추스려 일어나는 정신, 우리는 이 ‘삭스업’ 스피릿을 가지고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기회’를 흘려 보내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
- 2002년 월드컵 멤버인 황선홍, 김병지, 최진철, 이천수가 출연했던 골 때리는 그녀들이 정규편성 되면서 최용수와 함께 감독으로 들어갔다. 감독을 맡은 팀은 액션배우로 팀이 이루어진 FC 액셔니스타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문서 참조.
5.1. 해설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이영표/해설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5.2. 프런트 경력
5.2.1. 강원 FC 대표 이사
2020년 12월 8일, 당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퇴임하는 박종완 현 대표의 뒤를 이어 K리그1 참가팀 강원 FC의 대표이사로 취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원도 체육계 인사들은 공직자 출신의 박종완 현 대표 체제에서 투명 경영을 재정립한 강원 FC 구단이 이영표 차기 대표 체제를 통해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특히 2020년 12월 현재 연구용역이 추진 중인 강원 FC 전용구장 건립 사업도 이영표 내정자의 대표 임명 이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강원 FC는 12월 말 이사회를 열어 차기 대표 선임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강원 FC를 위한 축구전용구장 건립 계획이 진행되는 도중인 2021년 1월 6일, 이재수 춘천시장과 만나 구 주한미군 부지 캠프 페이지를 직접적으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춘천역에서 춘천시청을 비롯한 시내쪽으로 들어가는 길목 바로 앞에 자리한 이 부지는 2005년 철거되어 토지오염 수복후 2013년부터 춘천평화생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에 공개된 곳인데, 이것은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그 3배 가량 되는 넓은 땅이 미사용되는 상태로 함석가림판을 통해 격리된채 남아있다. 이 대표이사는 전용구장이 지어진다면 위치가 가장 중요한데, 걸어서 올수 있어야 하고[32], 경기장 안에 대형마트를 입점시켜 근처 사람들이 먹고 마실수 있게 해야한다며[33] 캠프 페이지 부지가 가장 최적지임을 강조했다. 심지어 이 대표이사는 해당 자리에서 손흥민이 춘천시 출신의 토트넘 핫스퍼 소속 선수이고, 자신도 토트넘에서 뛴 만큼 관계자들을 잘 안다며 전용구장이 세워지면 토트넘을 초대해 강원 FC와 개장 경기를 가지겠다는 놀랄만한 제안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강원 FC 문서의 13.1.1 문단 참조.이 대표이사는 며칠 뒤인 1월 19일에 이번에는 원주시청을 방문해 원창묵 원주시장을 접견하였고, 이곳에서 원 시장은 교통의 요지인 원주가 강원 FC 전용구장의 최적지라며 전용구장 유치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이 대표이사 또한 구장이 어느 지역에 유치되든 경기장을 갖는 도시는 발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원도에 축구붐이 일어날 수 있도록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2021년 2월 1일에는 강원 FC B를 신설하여 K4리그에 참가시키는 등, 미래를 내다보는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3월 3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되었으며, 강원 FC 대표이사를 그만둔게 아니라 겸직이다.
하지만 동년 7월 22일, 에이전트라 주장하는 모 폭로자가 강원 FC의 전력강화부장이 자신에게 일삼은 금전적 갈취와 협박을 이영표 대표이사에게 알렸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일었으며, 이후 김병수 감독이 박효진 코치를 폭행하고, 강원 선수 두명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이영표의 구단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여기에 강원이 리그 성적마저 부진을 이어가며 리그 최하위에 떨어지자 9월 29일 포항 스틸러스전에서는 강원 팬들이 '예능인 사장 필요없다 이영표 OUT’이라는 걸개도 내걸기도 하였다.
애초에 팀 성적이 좋지 않은 가운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34]
결국 팀이 하위스플릿으로 추락하고 11위로 강등 위기에 처하자, 3경기 남은 시점에 김병수 감독을 경질[35]하였다. 그런데 경질 시점과 방식에 대하여 논란이 또 되고 있다.[36][37] 강등 위기에 처한 지금 적어도 프런트 경력에서는 좋은 평을 듣지를 못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해 11월 5일, 서호정 기자가 자신이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개인방송인 "썰호정"에서 이영표 대표이사가 김병수 감독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마치 상왕처럼 군림하였다고 폭로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11월 8일, 강원도의회 사회문화위원회 행정사무 감사에 출석하게 되었고 그간의 논란, 성적 부진 등으로 도의원들에게 강하게 질타받았다. 이 와중에 '염치불구하고 예산을 더 달라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38][39]
11월 16일, 최용수 감독을 선임하는 승부수를 띄웠고, 결국 강원FC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잔류할 수 있었다. 이로서 21 시즌의 부정적인 평가를 조금은 씻어냈다.
2022년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인 겨울 영입 시장에서 선수 수혈을 원활하게 한 것도 아닌 상황에 외국인 용병 선수도 시즌 개막이 임박한 시점에서 영입이 이뤄졌다. 시즌 개막 전 스폰서 계약을 많이 체결함으로써 지난 시즌의 비판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전력 구축이 원활하지 않음에도 잦은 방송 출연으로 시즌 시작 전부터 비판이 따르고 있다.[40]
2022년 시즌이 개막하였지만 성적이 중하위권을 머무르고 있음에도 방송 출연의 빈도가 줄지 않는 모습으로 이영표 대표이사는 과연 강원 FC를 원활하게 운영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따르고 있다.[41]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어서인지 K3리그와 K4리그를 홍보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등장해 강성주와 동네축구 고수와도 콘텐츠를 촬영했다. 여러모로 미디어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
2022년 7월 강원FC가 쿠팡플레이와 공식 후원계약을 맺었다.# 거의 동시에 쿠팡플레이에서 주관하는 팀 K리그vs토트넘 경기의 해설을 이영표가 맡기로 발표가 났는데, 이것을 계기로 서로의 필요로 스폰서쉽에 대한 교감을 가진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42]
여름부터 강원의 경기력이 많이 향상되고 성적도 6강 경쟁을 할 수준까지 올라오면서 여론이 많이 호의적으로 변했다.
비록 아챔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상위 스플릿에 안착해 6위로 리그를 마무리하며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던 지난 시즌과는 완전히 상반된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으며 2022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가 커지면서 강원도 재정에도 여유가 없어졌다. 당연히 도민 구단 특성상 다가오는 겨울 이적 시장에도 추운 겨울을 보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0월 31일 2년 계약이 만료되고 재계약이 무산되어 23년 부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는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일부 논란점들도 있었다고는 하나, 최종적으로 이영표 대표는 팀의 최고 성적을 냈고, K리그 구단 운영 수익률 1위를 비롯해 많은 스폰서를 유치하며 강원 FC에 공헌하였다. 이런 대표와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정치적 뒷배경이 의심되는 형태로 재계약을 하지 않자 당연히 강원FC 공식 서포터즈 나르샤는 이에 반발하였고, 31일 공식 SNS를 통해 재계약을 강하게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포터들 뿐만 아니라 축구인들도 납득할 수 없는 정치적 판단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12월 15일 김병지 대표이사가 선임완료되면서 2022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퇴임할 예정이다.
퇴임 후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 후보에 오른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 2023년 1월 4일 기술발전위원장이었던 마이클 뮐러가 선임되면서 루머로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영표는 잉글랜드, 독일 등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해왔고 강원 FC에서 행정가 경력이 있으며 영어도 유창하기 때문에 신임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인 마이클 뮐러와의 협력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이 길어지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축구협회는 노력하고 있으며 들으면 깜짝 놀랄 클롭급의 감독과 연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축구팬들의 반응은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연락만 했다, 국내 감독 선임해 놓고 열정이 클롭급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비아냥이 많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이영표/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7. 어록
Our all. Our honour.[43]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직후 인터뷰에서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하자, KBS에서 해설을 하던 이영표의 일침[44]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직후 인터뷰에서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하자, KBS에서 해설을 하던 이영표의 일침[44]
"선진 리그는 경기력이나 환경, 선수도 좋지만 좋은 팬도 있다. 팬이 없이는 좋은 리그가 될 수 없다. K리그의 수준 안에는 팬도 포함이 된다. 수준 높은 팬 의식을 갖춰야 한다. 팬들도 자신이 K리그의 수준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 제가 박지성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까? 어쩐지 항상 시원하다 했습니다. 저는 그늘을 좋아합니다. 그늘은 서늘해서 낮잠을 자기도 좋습니다. 누군가 제게 그늘을 허락한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해 할 것입니다."[45]
진짜 정신력은 내가 강한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고, 약한 상대를 만나도 얕보지 않는 것.
실패와 좌절을 많이 해봐야 겸손해질 수 있다.
겸손함이 곧 정신력
실패와 좌절을 많이 해봐야 겸손해질 수 있다.
겸손함이 곧 정신력
우리는 문제점을 원인에서 찾아야지 자꾸 현상에서만 문제점을 찾으니까 어떤 때에 현상이 잠깐 좋으면 좋았다고 착각하는 현상, 안 좋으면 왜 안 좋냐고 뭐라고 하는데 원인부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경기를 볼 때마다 현상보다는 원인 분석에 초점이 더 가는거죠.
월드컵이 매번 4년마다 바뀔텐데 4년마다 항상 우리는 우리가 잘할지 못할지 모르는 거에요. 이런 상태로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면 월드컵이 4년마다 팬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월드컵이 4년마다 팬들에게 스트레스가 돼요, 지금.
그래서 팬들이 월드컵 때문에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현상을 주는 것은 그저 저를 포함해서 축구인 모두의 책임이죠, 사실은...
이영표 KBS 축구 해설 위원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멕시코 전날에 했던 작심 발언 # #
월드컵이 매번 4년마다 바뀔텐데 4년마다 항상 우리는 우리가 잘할지 못할지 모르는 거에요. 이런 상태로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면 월드컵이 4년마다 팬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월드컵이 4년마다 팬들에게 스트레스가 돼요, 지금.
그래서 팬들이 월드컵 때문에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현상을 주는 것은 그저 저를 포함해서 축구인 모두의 책임이죠, 사실은...
이영표 KBS 축구 해설 위원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멕시코 전날에 했던 작심 발언 # #
K리그가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신은 축구보는 수준이 높아서 유럽축구만 본다는 사람들... 한가지 맛만 느끼는 사람과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사람... 누가 더 미식가입니까?
우리가 K리그에서 울산이나 전북 같이 우리보다 큰 클럽의 탑 3 선수를 데려올 능력은 없다. 하지만, 강원의 탑 3 선수는 우리가 지킨다.
강원의 핵심 선수 한국영을 장기 계약으로 잔류시킨 이후 전화 통화에서 남긴 말
강원의 핵심 선수 한국영을 장기 계약으로 잔류시킨 이후 전화 통화에서 남긴 말
8. 여담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마르셀 슈멜처, 마츠 후멜스와 가장 친했다고 한다. 위르겐 클롭과도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 2011년, 국가대표 축구팀이 너무 부진하자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박지성 복귀 가능성을 말했지만, 박지성 측에서 바로 부인했다.
- 부천 SK(現 제주 유나이티드 FC)와 안양 LG(現 FC 서울)의 경기를 했을 때 이임생 선수와 충돌한 적이 있다. # 당시 이임생은 큰 부상, 재활 후 복귀한 단계였는데 이영표가 부상 부위를 차징하자 살살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다시 한 번 같은 행동이 되자 서로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 본래 한국식 선/후배 문화를 지키자는 성향이 있었지만 2003년 이후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면서 사고방식이 바뀌었다고 한다.[47] 당시 같이 팀 생활을 한 아르연 로번에게 자신의 이름을 영표형으로 알려주고 형이라는 말을 들었단 일화는 매우 유명하며, 지금도 로번이 '영표형 결혼 축하한다'고 남긴 영상편지가 남아있다.
- 현재는 서비스를 종료한 온라인 리듬게임 O2Jam에 이영표가 부른 버전의 찬송가인 "주의 자비가 내려와"가 잠깐 수록된 적이 있었다. 가창력은 그냥 그런 정도다.
- 2016 리우 올림픽 축구 8강에서 올림픽 대표팀이 온두라스에서 패한 경기에서 "완벽한 골찬스가 났는데도 골을 못 넣는 것은 저로서도 뭐라 해설을 할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 상징하는 배번이라면 국가대표 시절의 12번을 들 수 있는데 처음엔 특별히 12번에 애착을 가져서 택한 건 아니고 계속 달다보니 본인의 번호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클럽에서는 주로 왼쪽 윙백이 많이 사용하는 3번을 달았다.[48] 또한 FC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12번을 달게 된 선수가 되었다. 이영표가 PSV로 떠난 후, 12번은 서포터즈들을 위해 현재까지도 암묵적으로 결번된 상태이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KBS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받은 돈 전부를 기부했다. 조우종 캐스터의 말에 의하면 입금이 되었다는 얘길 전해듣고 액수를 확인도 하지 않고 유니세프에 기부했다고 한다. 조우종 캐스터가 이영표 해설 위원에게 "왜 입금액을 확인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금액을 확인하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그리고 어차피 내가 가질 돈이 아니라 기부하기로 마음 먹은 돈인데.."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 오고 있다고 한다.
-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팬이며, 특히 앙헬 디 마리아의 열렬한 팬이다. # 링크에 있는 인증샷은 이영표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에서 아르헨티나 대 스위스전에서 이영표가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찍으며 밥 내기를 했는데 디 마리아의 골로 아르헨티나가 이겨서 얻어먹은 밥을 인증한 사진이다.
- 네덜란드의 에이스였던 前 축구 선수 아르연 로번과 친하기도 했는데 PSV 에인트호번에 있을 당시부터 그랬다고 한다. 독특하게도, 로번이 이영표를 보고 한국어인 '형'을 붙여서 '영표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49][50] 그런데 로번이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노안이고 이영표는 동안이라 위아래가 바뀐 거 아니냐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51]
- 2017년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명성교회 부자 세습을 강하게 비난했다. "오늘 수십년 간 한국 교회를 대표했던 한 목사의 마지막 퇴장이 비참하게 '세습'이라는 이름으로 끝나고 말았다.", "모든 인간에게 등장보다 퇴장이 훨씬 중요한 이유는 누구든지 자신의 마지막 무대에서 퇴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역사 속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즉시 재등장하기 때문", "아무리 판단력과 분별력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판단과 분별 의 경계가 희미해진 사람들에게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작은 생각으로 그저 다를 뿐인 것을 틀렸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그러나 분별력을 상실한 채 틀린 것을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상실의 사람은 더더욱 되지 말자" 라며 독실한 개신교신자로 알려진 이영표가 이정도로 강하게 비난할 정도니 그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2018년 6월 15일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와 사우디의 경기에서 알 힐랄 SFC 시절 경험을 언급하며 사우디의 대패를 정말 안타까워 했다.
- 2018년 6월 25일 일본과 세네갈의 경기에서는 '세네갈은 일본보다 평균 신장이 4cm 높다. 합치면 40cm 차이.'라는 황당한 계산법을 보여줬다.
- 한 유튜브에서 2018년에 토트넘 현지 팬들은 이영표를 얼마나 기억할까로 유튜브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연령대가 높은 팬들은 아예 기억하지 못 하거나 희미하게 기억하였고, 일부 3~40대 정도로 보이는 상대적으로 젊은 팬층들만 그를 확실하게 기억하였다. 사실 3년이라는 기간의 활약이 모든 팬들에게 각인될 만큼의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 중 3년차 후반기에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거의 출전하지 못 한데다가, 타포지션에 비해 풀백은 유난히 인지도가 낮은 포지션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비슷한 경우를 예로 들자면, 레알 마드리드 올드 팬들에게 아르헨티나 출신의 왼쪽 풀백을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가브리엘 에인세가 즉답으로 나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굉장히 찾기 힘들 것이다.
- 최근에도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 우승할 것이라 발언한 게 화제가 되었다. #
- 시그니처로 통하는 스텝오버 개인기를 비롯해 사이드에서 템포를 늦추는 경향 때문에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들이 언제 크로스가 올라올지 타이밍을 잡기 어려워[53] 꽤나 고역이었다고 한다. 황선홍이 대표팀 시절 이런 이영표의 플레이에 오죽 질렸는지, 최용수에게 '네가 가서 이야기 좀 해 보라'고 자주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최용수 본인은 물론 안정환 역시 예능에 출연시 이영표에 대해 언급할 일이 생기면 거의 매번 나오는 이야기다.
- 2021년 4월 23일 토트넘 홋스퍼 FC는 SNS를 통해 이영표의 생일을 축하했으며 EFL컵 결승 국내 트위터 이벤트로 이영표의 사인볼 증정 이벤트를 개최했다.
- PSV 에인트호번 시절 동료였던 판 데르 샤프가 네덜란드 매체 ‘BN데스템’과의 인터뷰에서 일화를 언급했다. “(히딩크 감독이 데려온 두 한국인 선수) 이영표와 박지성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다. 젊은 브라질 선수인 레안드로도 있었는데 우리는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훈련에 임했다”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이들은 서로 짓궂은 장난도 서슴치 않았다. 판 데르 샤프는 “이영표는 정말 종교적 신앙심이 깊은 것으로 기억한다. 캠프 기간 동안 박지성이 한 번 우리에게 자신들의 방 키를 준 적이 있다. 우리는 그들 방을 플레이보이 포스터로 가득 채웠다. 이영표는 의심 없이 방으로 들어왔고 엄청 부끄러워했다. 손으로 그의 눈을 가린 채 방을 가로질러서 갔다. 그때 박지성은 웃고 있었다”라며 두 한국인 선수들과 추억을 회상했다.
- 현역 시절에 한일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역대 전적은 2승 3무.
- 헤어스타일 변화가 전혀 없다.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 짧은 스포츠머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심지어 염색한 적도 없다.
- 슛 포 러브에서 진행하는 월드클래스 FC 2의 감독 외르크 하인리히와 2019년 홍콩에서 열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레전드 vs 리버풀 FC 레전드 매치 경기에 함께 출전했다. 이미지 링크
- 나의 사랑하는 교회에 한번 온적 있다.
- 2024년 10월 20일 넥슨 아이콘 매치에 Shield UTD의 선수 겸 코치로 출전하였다.
9. 관련 문서
[1] 존 시나와 생년월일이 같다.[2] 홍천군에서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85년까지 다니다가 이후 1986년부터 경기도 안양시로 이사해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3] 이에 윤석영은 "2002 월드컵 4강 - 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2012 올림픽 동메달 - 윤석영, 김영권, 김창수 그리고 아쉽게 빠진 홍정호. 이상 모두 혈액형 O형. 그 외 최고의 수비력 박지성 O형"이라고 적었다. 누가 봐도 윤석영의 글은 최 감독의 인터뷰에 대해 반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사[4] 왼쪽과 오른쪽 모두 수행할 수 있으나 주로 왼쪽을 맡았다.[5]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조 추첨식 때 KBS 중계진에 합류했으며 이후 2023년 다시 KBS로 돌아왔다.[6] 대표팀 역대 출장 5위.[7] 아버지 이규환(1937년생)은 200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8] 광평대군 21세손, 시조 45세손 ○杓 항렬.[9] 온누리교회 집사다. 모태신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반기독교였다고.[10] 2학년이던 1985년까지 다녔다.[11] 4학년이던 1987년부터 축구를 시작했다.[1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진출로 인한 병역 특례.[13] 32강 조별리그.[14] 다만 헛다리 짚기 개인기를 선보였던 선수들은 이영표 데뷔 이전에도 많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가레스 상윤으로 유명한 성남 일화 천마의 레전드 이상윤이 처음으로 헛다리 짚기를 선보였다.[15] 같은 세대에 활약했던 박지성, 이천수의 경우 각각 명지대학교와 고려대학교를 휴학, 중퇴하고 프로에 입문했다. 또한 요즘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들도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뛰어드는 경향이 많다.[16] 박지성과 이영표가 유럽 진출에 성공하기 이전까지 유럽 스카우터들은 아시아 선수는 빠르고 슈팅이 좋기라도 해야 유럽에서 통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17] 호나우지뉴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네이마르 주니오르 등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들은 프리스타일에도 일가견이 있어 프리스타일 자체가 축구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진짜 프리스타일만 전문으로 파는 프리스타일러의 기술들은 축구보다는 서커스에 어울릴 정도로 동작도 크고 잔 움직임이 많다.[18] 프리스타일이 카포에라라면 축구는 격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저런 혹평이 유망주에게는 일시적인 상처로 남았겠지만 축구선수로서는 오히려 좋은 조언인 셈이었다.[19] 박지성이 선제골을 넣은 바로 그 경기다.[20] 경쟁에서 밀렸다기 보단 당시 대표팀 오른쪽 풀백자원이 송종국의 부상으로 마땅하지 않아 본래 오른발잡이인 이영표가 오른쪽을 책임진 것으로 보는 게 옳은 시선이다. 당시에도 위상이나 기량이나 왼쪽 풀백으로 이영표가 김동진보다 뛰어났다.[21] 대신 이 선배들은 공간활용과 수비력 문제가 두드러졌다. 이 선수들이 축구아이큐가 나쁘거나 수비에 소질이 없었던게 아니라 시대 문제. 90년대 한국 대표팀은 포백 쓸줄도 몰라서 풀백을 '사이드 어태커'라는 일본식 명칭으로 부르며 쓰리백의 윙백 위치에 두고 실제로는 측면 미드필더처럼 써먹었다. 당연히 월드컵만 나가면 허술한 중원이 박살나고, 오버래핑 간 사이에 뒷공간은 다 뚫렸으며 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체력적으로 대등한 서아시아팀들은 발빠른 공격수로 뒷공간 파고들어 경합능력 떨어지는 홍명보를 유린하는 전술로 재미를 봤다.[22] PSV 시절에는 04/05 시즌 1골 10도움을 올렸을 정도로 공격에서도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었다. 특히 10도움은 14/15 시즌 예트로 빌럼스가 12도움으로 갱신하기 전까지 10년 동안이나 네덜란드 리그 단일시즌 수비수 도움 최다 기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빅리그(EPL+분데스리가) 스탯은 4시즌동안 0골 2도움으로 좋은 편은 아니다.[23] 이는 모든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수비에 가담한 공격수에게도 해당되는 점이다. 그러나 측면수비수가 상대하는 윙포워드들은 대부분 상대팀에서 스피드가 제일 좋거나, 공격형 미드필더와 더불어서 공을 가장 잘 다루는 선수인 경우가 많다.[24] 한경기로만 평가 절하할 수는 없지만 이영표의 이런 약점이 드러난 경기가 있다. 호날두가 맨유 시절 이영표를 개인능력으로 제압한 장면에서 이영표의 단점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호날두가 크로스를 한 번 올렸는데, 그 세컨볼이 호날두에게 다시 떨어졌다. 이영표는 이미 크로스를 허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시 공이 호날두 쪽으로 오자 호날두를 향해 달려들 수 밖에 없었다. 크로스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호날두는 이를 역이용해 차마 치달을 이용해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진입하며 완전히 이영표를 털어버려 페널티킥을 얻어낸 적이 있다. 또 같은 경기에서 호날두는 후반전에는 직각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사이드 라인 쪽으로 치고 들어오며 이영표를 끊어내고 크로스를 올려서 한 골을 뽑아낸 적이 있다. 호날두의 사례가 극단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거리슛이나 크로스에 취약하다는 점이 이영표처럼 기다리며 수비를 하는 선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약점이다. 그만큼 중앙수비수의 커팅이나 슛블락 부담은 커진다. 이 때문에 토트넘은 2008년 맨유와 FA컵에서 마주쳤을땐 이영표를 오른쪽으로 보내서 기술은 뛰어나지만 신체능력은 노쇠한 긱스와 매칭시키고 왼쪽엔 제이미 오하라를 배치하는 궁여지책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25] 이영표가 2002 월드컵에서 어시스트를 2개나 기록해서 일반 국민들은 크로스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킥력이 좋거나 정확도가 높은 축은 아니다. 안정환에게 올린 오른발 크로스의 속도가 굉장히 느리게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박지성에게 올린 오른발 크로스도 혼신의 힘을 다해 후려갈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26] 실제로 2010년대 들어서 반댓발 윙어는 나왔어도 풀백은 어지간하면 정발이 선호된다. 반댓발 풀백/윙백도 크로스보다는 안쪽으로 치고들어와 플레이메이킹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크로스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땐 크로스의 타이밍은 기대하긴 힘든 대신 동료들을 이용하여 상대 수비진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공격수의 머리에 정확히 갖다댈 수 있는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야 하기에 킥력 이외에도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수준급의 볼키핑 능력도 필요하게 된다.[27] 정확히는 AS로마 계약 파기 후 괘씸죄로 찍혀 시즌 초에 몇 달 간 경기에 못 나왔다. 그러나 아수에코토의 아스날전 호러쇼 덕에 주전으로 다시 복귀하는데 성공한 후로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30경기에 출전할만큼 꾸준했다.[29] 이영표의 이런 공격 특징의 하이라이트는 앞서 언급한 PSV와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4강 경기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풀백이라고 불리던 밀란의 우측 윙백 카푸를 맞아 90분간 무한 오버래핑을 시전하여 '그' 카푸를 제대로 발라버렸다. A매치에서도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사이드를 탈탈탈 털어버리면서 이영표 커리어의 역대급 하이라이트로 불릴 수 있는 경기가 있다.[30] 팬 투표[31] 11월 2일부터 방송 될 예정이었지만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경기가 11시 넘어서 끝나는 바람에 방송이 연기됐다.[32] 실제로 2019년 완공된 대구 FC의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만 봐도, 기존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고 규모도 과도하게 컸던 대구스타디움을 사용할 때에 비해 상전벽해의 수준으로 달라진 대구 구단의 연이은 매진 및 흥행행진에 크게 한건 했다는 평이다.[33] 축구전용경기장은 경기를 하지 않을 때는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부가수익을 창출해내기위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홈플러스를 입점시킨 것처럼 대형마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면 경기장 주변 주민들에게도 건설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낼수 있다.[34] 다만 골 때리는 그녀들의 10월 20일 방송분의 인터뷰 시간에서 골때녀 출연은 축구협회의 강한 권유가 있었다고 해명했다.[35] 보통 감독을 경질할 때는 상호합의 등으로 명예롭게 물러나게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해임"으로 처리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36] 갑작스럽게 해임된 김병수 감독의 폭로에 의하면, 선수 영입 관련해서 잡음이 있었다고 한다.[37] 단 김병수 감독은 서울 이랜드에서 잘렸을 때도 동일한 얘기를 했다.[38] 이영표의 선수시절 명성만 아는 국대팬들과 달리 강원 FC 팬들은 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강원 부진의 원인은 예산이 아니라 대표이사의 미숙한 행정처리, 감독/코치진과의 불협화음 등으로 인한 사건사고, 이로 인한 팀의 불안정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강원은 시민구단서도 꽤 투자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특히 이번 시즌은 상위스플릿엔 무조건 들어갔어야 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강등 위기에 몰아놓고 예산을 더 달라는 말이나 하니 강원 팬들은 열받을 수밖에 없다.[39] 그러나 사장으로서 해야 할 말이었다는 평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건 사장 입장에서 예산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40] 2022년 해설로 데뷔하게 된 오범석의 평에 따르면 강원FC는 생각보다 팀의 밸런스나 전력이 좋아서 그렇게까지 많은 보강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범석이 강원FC를 약팀으로 꼽았는데, 해당 프로에 출연해서 했던 얘기에 따르면 팀컬러가 약하거나 전통이 없는 등의 정신적이거나 팀역사적인 차원에서의 약점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 최용수 감독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종종 하고 있다.[41] 3경기만에 외인공격수 디노가 이탈하며 시작된 강원의 부상 퍼레이드와 본래 두텁지는 않은 뎁스를 감안하면 전력만큼 성적나오는 것일 뿐이다. 시민구단 강원에 과연 조용히 서류작업만 하는 대표가 도움이 될지 생각해볼 일이다.[42] 쿠팡플레이는 23 시즌부터 K리그 독점중계 계약을 맺은 상태라 K리그 팬들에게 좀 더 좋은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고, 이영표 역시 본문에 적혀있듯 대표이사로서 성과가 필요했던 부분이 있었다.[43]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이영표의 은퇴경기를 위해 제작한 티켓.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향으로 honor라는 스펠링이 더 익숙하겠지만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honour라고 쓴다.[44] 브라질 월드컵 때부터 축구팬들 사이에서 크게 공감을 얻으며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발언이긴 하나, 이 발언 이후 홍명보와 3년간 연락이 끊겼다고 하며, 이렇게까지 큰 파문이 일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였다고 한다.[45] 인터뷰 중 '항상 박지성이란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게 아쉽지 않느냐' 질문에 대해서.[46] 중3 때 같은 반이었던 신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운동부치고는 수업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고 한다.[47] 사실 이영표는 선후배 문화에 익숙하던 시절에도 특유의 온화한 성격 때문에 후배를 괴롭히거나 군기를 잡는 편은 아니었다.[48] 참고로 2002년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10번이다. 당시 월드컵 엔트리 규정에 따르면 골키퍼는 1번, 12번, 18번, 23번만 배번이 가능해서 김병지에게 12번을 주고 10번을 단 것이다. 10번은 엔트리 제출일에 거스 히딩크 감독이 고심하다 준 것이다. 10번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대표팀 선수들이 내심 달기를 원했지만, 팀의 단합을 중시하던 히딩크는 가장 성실히 훈련에 임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영표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국가대표 팀에서 수비수가 10번을 달은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49] 이영표 선수의 결혼식 당시 로번이 네덜란드에서 보낸 축하 영상에서도 '영표 형'이라고 언급한다.[50] 이건 나이도 어린 로번이 이영표를 부를 때 'Lee' 라고 부르는 게 맘에 안들어 아예 자기 이름을 '영표 형'이라고 부르게 해서 그렇다. 해피투게더 3 460화 참고.[51] 이영표 본인의 말에 의하면 로번을 처음 보고 3가지 이유로 놀랐다고 한다. 축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한 번, 실력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 두 번, 나이에 비해 너무 늙어보여서 세 번이었다.[52] 반면 MBC나 SBS가 중계 시 승률은 떨어진다. 특히 SBS가 승률이 가장 낮다.[53] 오프사이드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타이밍에 맞추어 라인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이영표의 은퇴경기를 위해 제작한 티켓.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향으로 honor라는 스펠링이 더 익숙하겠지만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honour라고 쓴다.[44] 브라질 월드컵 때부터 축구팬들 사이에서 크게 공감을 얻으며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발언이긴 하나, 이 발언 이후 홍명보와 3년간 연락이 끊겼다고 하며, 이렇게까지 큰 파문이 일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였다고 한다.[45] 인터뷰 중 '항상 박지성이란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게 아쉽지 않느냐' 질문에 대해서.[46] 중3 때 같은 반이었던 신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운동부치고는 수업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고 한다.[47] 사실 이영표는 선후배 문화에 익숙하던 시절에도 특유의 온화한 성격 때문에 후배를 괴롭히거나 군기를 잡는 편은 아니었다.[48] 참고로 2002년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10번이다. 당시 월드컵 엔트리 규정에 따르면 골키퍼는 1번, 12번, 18번, 23번만 배번이 가능해서 김병지에게 12번을 주고 10번을 단 것이다. 10번은 엔트리 제출일에 거스 히딩크 감독이 고심하다 준 것이다. 10번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대표팀 선수들이 내심 달기를 원했지만, 팀의 단합을 중시하던 히딩크는 가장 성실히 훈련에 임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영표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국가대표 팀에서 수비수가 10번을 달은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49] 이영표 선수의 결혼식 당시 로번이 네덜란드에서 보낸 축하 영상에서도 '영표 형'이라고 언급한다.[50] 이건 나이도 어린 로번이 이영표를 부를 때 'Lee' 라고 부르는 게 맘에 안들어 아예 자기 이름을 '영표 형'이라고 부르게 해서 그렇다. 해피투게더 3 460화 참고.[51] 이영표 본인의 말에 의하면 로번을 처음 보고 3가지 이유로 놀랐다고 한다. 축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한 번, 실력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 두 번, 나이에 비해 너무 늙어보여서 세 번이었다.[52] 반면 MBC나 SBS가 중계 시 승률은 떨어진다. 특히 SBS가 승률이 가장 낮다.[53] 오프사이드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타이밍에 맞추어 라인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