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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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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역대 대한민국 U-23 대회 주장
박용호
2004 아테네 올림픽
이천수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김진규
2008 베이징 올림픽
}}} ||
이천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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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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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FC 불나방 이천수.png
<colbgcolor=#001c48> 이름 이천수
李天秀|Lee Chun-soo
출생 1981년 7월 9일 ([age(1981-07-09)]세)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現 인천광역시 계양구)[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2.4cm[2], 77kg[3], A형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행정가
축구 심판
소속 <colbgcolor=#001c48>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CD 누만시아 (2004~2005 /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09 / 임대)
알 나스르 FC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3~2015)
행정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8~2020 / 전력강화실장)
대한축구협회 (2021~2022 / 사회공헌위원장)
국가대표 78경기 10골 (대한민국 / 2000~2008)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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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1c48><colcolor=#ffffff,#e5e5e5> 가족 아버지 이준만(1955년생)
어머니 박희야(1957년생)[4]
형 이천석[5](1979년생)
배우자 심하은(2012년 결혼)[6]
자녀 장녀 이주은(2013년 6월 20일생)
장남 이태강, 차녀 이주율(2020년 1월 11일생)[7]
종교 불교개신교(감리회)[8]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9]
학력 인천부평초등학교 (졸업)
부평동중학교 (졸업)
부평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중퇴)
병역 예술체육요원[10]
등번호 7번[11] 9번[12], 10번[13], 14번[14] 16번[15], 19번[16], 22번[17], 28번[18]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게으른 천재? - 박지성과의 비교
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수훈4.4. 통산 성적
4.4.1. 국가대표
5. 은퇴 이후
5.1. 방송인 경력5.2. 인천 유나이티드 FC 전력강화실장
5.2.1. 선임 과정5.2.2. 2019 시즌5.2.3. 2020 시즌5.2.4. 평가
5.3. 축구 심판 경력5.4. 해설자 경력5.5. 기타 활동(정치 관련 활동)
6. 별명
6.1. 리춘수6.2. 혀컴6.3. 축구계의 풍운아
7. 논란 및 사건 사고8. 여담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해설자, 방송인, 유튜버.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킥과 프리킥 능력이 특징이었다. 라리가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선수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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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을 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전성기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만큼 빠르고 박지성만큼 많이 뛴다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후술할 멘탈 문제와 자기 관리 소홀로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사례.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처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 된다. 고종수, 나카무라 슌스케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 할 만큼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19] 또한 국가대표 무대에서 시원하게 돌파하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오기도 했다.[20]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이천수의 스피드나 가속력, 방향전환 능력이 국가대표 수비수들을 상대로 상당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분명 상당한 위협을 가할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천수 역시 박지성처럼 투쟁심이 엄청나서 활동량이 비록 박지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활동량도 좋은데 공 없을 때 움직임까지 좋고, 성격 때문인지 좋을 때는 정말 과감하고 저돌적이라서 침투능력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알다시피 킥력도 상당했다. 박지성과 이천수가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 둘 다 공 없을 때 움직임과 침투능력, 활동량과 투쟁심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 대처하기 난처하고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다.[21]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22]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23] PK의 경우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 챔피언스컵 2006년 대회 도쿄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J리그 제프에게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도쿄에서 니시노 아키라[24]의 감바 오사카[25]전에서 감기몸살로 인해 후반에 교체로 들어온 이천수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0으로 대승리[26]하고 우승했다.
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5.gif
두 번의 유럽 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 번의 울산현대 시절의 이천수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며, 특히 유럽 복귀 후 시즌의 절반을 손해봤음에도 뛰고 MVP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기도 하였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차기[27]와 같이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나 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행위도 있었으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국내 국대 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28]

긍정과 부정 양 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다.[29] 다행히 말년인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술집 폭행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갱생한 듯 사고가 크게 줄었으며, 특히 말년에 고향 팀 인천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설기현의 통수질로 분노가 극에 달한 인천 팬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실력의 수준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 안토니오 카사노와 커리어가 묘하게 비슷하다.[30] 또한 체력과 활동량도 최상급이다.

3.1. 게으른 천재? - 박지성과의 비교

동갑내기[31] 축구 선수이자 비슷한 시기에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과 비교되며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노력하는 수재 박지성과 노력하지 않는 천재 이천수. 이러한 비교가 흥하게 된건 두 선수의 축구 인생이 상당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대학 축구 최고 명문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고, 히딩크와 박지성조차도 박지성보다 이천수가 뛰어나다고 말한 사실 때문에 천재 이미지가 강했고 박지성은 받아주는 대학도 없었고[32] 촉망받는 천재로 유명했던 이천수와 달리 대학을 간신히 들어가고 졸업도 하기 전에 바로 일본 J리그의 교토 상가에 바로 입단하며 거의 무명 선수로서 선수 시절을 보낸 뒤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며 '노력 끝에 성공한 수재'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했는데,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과 함께 PSV에 합류하고 굉장한 활약을 펼치며 다시 한번 성공 신화를 작성하며 빅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에 성공했지만 이천수는 여기서 성공해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겠다는 당당한 포부와 다르게,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적응 실패와 더불어 경기장 벤치를 면치 못하게 된다, 이후 귀국하고 여러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저니맨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선수 커리어가 상당히 꼬인데 비해 박지성은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맨유로 간 이후에도 거의 도닦는 승려[33] 수준의 멘탈을 보였으니 두 선수는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스타에서 출발하여 여러가지 스캔들 등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와 무명 선수에서 출발하여 현세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국민적 스타가 된 선수의 대비이니 축구 인생 자체로만 놓고보면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으른 천재 vs 성실한 수재의 전형이었던 것. 또한 박지성과 대비되는 잦은 방송 출연과 연예계 활동으로 인한 이런 저런 스캔들 때문에 안 좋은 의미의 풍운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천수도 노력파 선수였다. 이천수가 재학 중이던 시절 부평고에는 한 명의 천재와 한 명의 노력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천재는 이천수, 노력가는 최태욱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최태욱이 천재였고 이천수가 노력파였다고 한다. 부평고 시절 고교 축구계를 씹어먹던 동갑내기 최태욱에게 실력의 벽을 느끼고, 최태욱을 이기기 위해 미친듯이 연습했다고 한다.[34] 비교대상인 박지성 역시 전국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초등학생 6명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능이 좋았던 선수였다. 다만 중고교 시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무명 시절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가로 보였을 뿐이다. 물론 노력가는 맞지만 노력 이상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박지성과 이천수를 재능과 노력의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한국 학원 축구를 통해 성장한 선수가 월드컵에서 유럽 최강국들과 대등하게 맞섰다는 데에서 이미 두 선수는 한국에서 재능과 노력 모두 끝판을 찍은 것이다.스페인전에서 이천수가 투입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20살에 경기 내용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거 자체가 실력 포텐 모두 최상급이라는 얘기이다. 이 두 선수 중 한 선수는 세계 최고의 감독에게 '미친듯이 공간창출 해내는 월드클래스'라는 찬사를 받고 한 선수는 유럽에서 숱하게 방출된 이유를 찾자면 축구외적인 멘탈관리와 적응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앞으로도 있기 힘들 너무 큰 성과를 거두었고 그 주역들 역시 단숨에 톱스타 반열로 올라갔다. 이는 박지성과 이천수 모두 관련되는 얘기이다. 고참 선수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이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한국에서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스타 반열에 올라간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을 케어해줄 에이전트 시스템 역시 전무했다. 그당시 한국의 에이전트 시스템이라 해봤자 세계적으로 자기 선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줄도 모른 채 그저 4강 가고 유럽 강국들을 상대로 깜짝 활약을 했으니 유럽에서도 먹힐 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었고 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해 광고나 뮤직비디오 출연 등 단기적인 수익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박지성은 성격 자체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던 반면, 이천수 자체가 워낙 에고가 강한 선수라 이러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흠뻑 빠져있었다.[35] 수많은 B급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며 20살 축구 선수 치고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서전[36], 수많은 TV 광고와 예능 출연으로 한국에서의 톱스타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즐겼다.

만약 이천수가 한국에서만 뛸 것이었으면 리그 탑급 선수로 자리잡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이천수의 재능은 충분히 탈 아시아 급이었다. 에이전트 또한 유럽에서 통할 것으로 봤기에 전 시즌 라리가 2위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레알 소시에다드에 이적시켰다.[37] 그러나 아무리 월드컵 깜짝 스타라고 하더라도 이천수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자세로 도전자의 자세로 이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안정환은 '유럽에서 축구를 아예 새로 배웠다,'고 언급할 정도로 한국 축구와 유럽 축구는 수준차가 매우 컸다.

반면 박지성의 경우, 도전자의 자세에서 이적을 임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초반에의 부진 역시 부상 여파도 있었지만 유럽 수위리그에서의 완전히 다른 축구를 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전자의 자세로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J리그 리턴의 유혹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03/04 아인트호벤의 역대급 스쿼드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그는 퍼거슨의 콜을 받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하게 된다. 거기다 박지성은 같은 팀의 감독인 히딩크가 애정을 가지고 그를 지도했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에게 일반적인 유럽 구단과 감독들이 하는 것 이상의 애정과 관심을 쏟아서 키워냈다.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와 냉정한 평가 속에 던져진 이천수와,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지닌 베테랑 감독과 이영표라는 의지할만한 한국인이 함께하고 있던 박지성의 차이는 유럽 적응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38][39]

결국 두 선수의 이러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것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성공 후의 멘탈 관리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스포츠 언론인들 사이에서의 중평은, 해외 진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적응력이라는 것이다.[40][41] 비슷한 시기 선수 중 이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 박지성, 이영표, 안정환, 설기현 등이고, 약한 사람이 이천수, 이동국, 송종국 등이다.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축구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해외 리그에서 성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질 레벨은 아니지만, 시즌 준비부터 시작해서 한 시즌이라는 긴 기간 동안 용병이라는 입장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사생활 관리를 하며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커다랗게 수준 차이가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1월 녹화한 지역민방 프로그램 <토크콘서트 화통>에 출연해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하면서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42]는 이야기를 전한다. 끈기의 사나이. 목표 의식[43]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축구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 한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도 '게으른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를 직접 언급했는데, 자신은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주의이며 현역 시절 노력파였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천수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와 별개로, 은퇴 후에도 박지성과 비교되며 까이고, 게으른 천재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재능을 보고 기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44][45]

또 이천수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는 노력파였다는 것과 별개로, 놀 때는 논다라는 말을 본인도 본인 입으로 하기도 했다. 물론 이천수가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00년대 초반은 한국은 물론이고 빅리그에서조차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엄격한 자기 관리가 널리 요구되는 환경은 아니었다. 매일 이태리 클럽에서 날밤을 새웠다는 호나우두도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선수들과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이천수가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던 것과는 별개로, 자기 관리 측면에서는 그렇게까지 엄격하고 모범이 될 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악!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있겠지만 냉정하게 꾸준히 자기 관리하는 선수는 결코 아니었다. 2002년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박지성, 이천수와 함께했던 박항서 감독도 "이천수는 선수로서의 능력은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지만 자기 관리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박지성에 대해 이천수는 동시대에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라이벌 의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두명 모두 은퇴한 현시점에서 박지성을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이천수 본인보다 더 나은 선수로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국가대표로서 초창기에는 박지성과 이천수가 경쟁을 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그런 치열한 환경 속에서 동년배끼리 그 정도 경쟁 의식은 생기기 마련일 것이다.[46]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수훈

4.4. 통산 성적

4.4.1.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17 0 0
U-20 13 20
U-23 27 11
A대표 78 10
종합기록 118 41

5. 은퇴 이후

5.1. 방송인 경력

1993년 개봉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1기 : 액션가면 vs. 그래그래 마왕"편에 19:00 즈음 등장한다. 하지만 이천수는 이 당시 13살. (한국 공개 96년에도 중3, 작중, 같이 등장한 설기현(19:03 즈음 등장) 역시, 한국 기준 고등학생)
파일:마이 리틀 텔레비전 로고.svg 파일:MBC 로고.svg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대 우승자
MLT-37 ~ 38 MLT-39 MLT-40
No. 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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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글박
No. 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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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059
양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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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치
조코치st
홍혜걸
여에스더
이천수 박지우
김동현
양정원
조준호
조준현

은퇴하고서는 연예계 진출을 선언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선수 전성기 시절 광고나 방송을 통해 대중 매체에 자주 출연한 것도 있고 방송계에 흥미가 있던터라 적극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안정환, 송종국2002 월드컵 동료들이 연예계에서 잘 나가는 것도 영향을 끼친 듯. 그리고 마침내 MBC 엔터테이너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 참가했다. 출전 이름은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며 현역 은퇴 후 처음으로 선 무대라고 언급했다.[48]

기믹으로 독일 월드컵 전에 열렸던 투표로 뽑혔던 2006 월드컵에 나온 세계 추남 축구 선수 중 2위에 오른걸 밀고 있다. 1위는 호나우지뉴, 3위는 카를로스 테베즈.[49]

1 대 100 422회에서 1인으로 참가해서 6단계까지 갔으며 자신의 현역 은퇴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하자 쿨하게 수락했다고 언급했다.

상술한 추남 선수 2위 기믹으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2에 출연했고, 아육대에도 출연했다. 아육대에서 상대편 감독을 맡은 하석주는 "이천수 한 번 이겨보고 싶다"라고 말했다.[50]

O tvN어쩌다 어른 12회[51]에 출연했다.

2016년 3월부터 한등안 JTBC3 FOX Sports에서 K리그 클래식 해설을 맡있으며, JTBC에서 생중계로 편성되는 경기의 해설 위원으로도 출연했다. K리그 해설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안 좋다. 축구 팬들이 정말 싫어하는 형식의 해설[52]+그 해설도 잘 못함. 이 겹쳐져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또한 경기 전 선수들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김보경이 골을 넣자 당당하게 K리그 복귀골이에요라고 하여 김보경이 K리그에 처음 입단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뒷목을 잡았다. 그래도 나중에는 평가가 많이 좋아지긴 했다.

단 경기에 따라서 좋은 해설과 나쁜 해설의 차이가 심하게 나는게 단점.

슛포러브 캠페인에서 35m밖에서 농구 골대에 5회 시도만에 넣었다. 여담으로 이천수는 첫 시도만에 백보드를 맞췄는데, 맞추고 난 다음에 축구공의 탄력이 농구공과 다르기 때문에, 백보드에 맞춰 뱅크슛을 노리기보다는 클린샷을 목표로 하여 첫 시도에서 찬 것보다 살짝 천천히 차자는 마음가짐으로 차서 성공시켰다고 한다. 이 영상이 대박이 난 뒤로,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라는 이미지로 대부 업체 CF 제의가 오고 심지어 콘티까지 왔으나 거절했다.

파일:/image/011/2016/08/11/1L03M3ND2A_1_99_20160811063404.jpg

슛 포 러브 일원과 함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 직관을 하다가 한국의 8강 진출이 확정된 뒤 손흥민을 필두로 선수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MLT-39에 출연하여 모르모트 PD에게 축구를 가르쳐 줬다. 강력한 1위 후보 이경규도 나왔지만 이경규를 제치고 1위를 차지.

2017년 8월 방영되는 소사이어티 게임 2 플레이어로 참가 확정되었다. 이천수/소사이어티 게임 참고. 이곳에서도 초반부터 강력한 입담과 정치질을 보여주었다.

히딩크의 축구의 신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본인의 자신감에 비해 방송쪽 재능이 없어 연예계에서 안정환, 서장훈 같이 자리잡는 데 실패하고 현재는 인터넷 방송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입담 자체는 좋지만 가끔 선을 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무엇보다 대중의 시선이 예전보다는 많이 온화해졌지만 이천수가 또다시 방송에서 말 실수를 할 경우 과거의 행적까지 다시 끄집어내져서 비난 받을 우려가 있어서 그런지 본인 자체도 말을 아끼는 편이기 때문에 차라리 인터넷 방송 같이 제약이 없는 경우가 나은 듯. 다만 전력강화실장 사퇴 이후에는 다시 방송에 활발하게 출연하였다. 2022년 들어 본인의 유튜브 채널이 흥행하면서 방송보다는 유튜브 채널이 더 주목받고 있다.

2020년 8월 인천 유나이티드 FC 전력강화실장에서 사퇴한 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박현빈 가족 편에 딸 이주은(현재 나이 [age(2013-06-21)]세)과 같이 게스트로 등장했으며, 이후 스폐셜 가족으로 단독 출연. 2020년 1월에 태어난 쌍둥이 남매(현나이 [age(2020-01-11)]세)들이 공개되었다. 제작진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2021년부터 공식 사이트에 고정 가족으로 소개가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고정 가족으로 합류한 게 확정이 되었으며, 쌍둥이 남매를 돌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53] 그러나 2021년 6월 방송 이후로 출연이 없으며, 특별한 언급이 없이 하차하였다. 2022년 3월 출연자 명단에서 내려가면서 하차한 게 확정되었다.

2020년 9월 '시켜서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 김민경의 축구 코치로 출연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온화하게 가르쳐주는 모습에 그의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파일:골 때리는 그녀들 로고.svg 골 때리는 그
[ 선수 명단 ]
||<tablewidth=100%><rowbgcolor=#0dac55><rowcolor=#fff><-6> MC ||
이수근 배성재
FC 월드 클라쓰
<rowcolor=#0000ff>
NO.452

사오리
FW | 주장
NO.14

나티
FW
NO.01

케시
GK
NO.13

애기
MF
NO.8

이야누
MF
NO.720

카라인
DF
<rowcolor=#0000ff> 감독: 오범석 / 코치: 이태호
FC 스트리밍파이터
<rowcolor=#ffffff>
NO.67

일주어터
GK | 주장
NO.707

깡미
DF
NO.23

심으뜸
FW
NO.777

앙예원
MF
NO.01

진절미
DF
NO.5

히밥
MF
<rowcolor=#ffffff> 감독: 이을용 / 코치: 김상균
FC 액셔니스타
<rowcolor=#adff2f>
NO.8

정혜인
MF | 주장
NO.10

이혜정
DF
NO.11

문지인
MF
NO.250

이채영
GK
NO.1

박하나
FW
NO.14

김용지
MF
<rowcolor=#adff2f> 감독: 김태영 / 코치: 전재홍
FC 불나비
<rowcolor=#ffffff>
NO.10

안혜경
GK | 주장
NO.99

박가령
DF
NO.20

채연
FW
NO.0

강보람
MF
NO.32

이주리
FW
NO.21

이승연
DF
<rowcolor=#ffffff> 감독: 백지훈 / 코치: 김기수
FC 원더우먼
<rowcolor=#ffc0cb>
NO.23

김희정
DF | 주장
NO.10

키썸
GK
NO.7

김가영
FW
NO.31

김설희
DF
NO.11

트루디
FW
NO.13

소유미
FW
<rowcolor=#ffc0cb> 감독: 정대세 / 코치: 정주일
FC 탑걸
<rowcolor=#000000>
NO.3

채리나
DF | 주장
NO.111

유빈
DF
NO.2

김보경
FW
NO.59

다영
FW
NO.21

공민지
MF
NO.00

태미
GK
<rowcolor=#000000> 감독: 최진철 / 코치: 이원영
FC 구척장신
<rowcolor=#000>
NO.100

이현이
FW | 주장
NO.18

김진경
MF
NO.1

허경희
MF
NO.21

진정선
DF
NO.66

차서린
FW
NO.22

요요
GK
<rowcolor=#000> 감독: 하석주 / 코치: 안동혁
FC 국대 패밀리
<rowcolor=#fff>
NO.1

김수연
DF | 주장
NO.9

명서현
GK
NO.10

박승희
DF
NO.11

황희정
FW
NO.17

나미해
MF
NO.690

김민지
MF
<rowcolor=#fff> 감독: 김병지 / 코치: 김종원
FC 아나콘다
<rowcolor=#2f38b2>
NO.5

오정연
GK | 주장
NO.10

윤태진
MF
NO.8

주시은
DF
NO.11

노윤주
FW
NO.101

배혜지
DF
NO.20

박지혜
DF
<rowcolor=#2f38b2> 감독: 이영표 / 코치: 김현수
FC 발라드림
<rowcolor=#ec118f>
NO.7

경서
FW | 주장
NO.10

서기
FW
NO.27

민서
DF
NO.3

서문탁
DF
NO.24

리사
GK
NO.-

(공석)
-
<rowcolor=#ec118f> 감독: 최성용 / 코치: 최승호
FC 개벤져스
<rowcolor=#7f00ff>
NO.7

조혜련
GK | 주장
NO.34

김민경
FW
NO.5

오나미
FW
NO.35

김혜선
MF
NO.13

김승혜
MF
NO.74

허민
FW
<rowcolor=#7f00ff> 감독: 조재진 / 코치: 정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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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불나방
<rowcolor=#ffa500> NO.18 강경헌 MF 파일럿
<rowcolor=#ffa500> NO.18 신효범 DF 파일럿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ffa500> NO.2 조하나 MF 파일럿
<rowcolor=#ffa500> FW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ffa500> NO.37 서동주 FW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ffa500> DF 시즌 2 (승강 PO)
<rowcolor=#ffa500> NO.7 송은영 MF 파일럿
<rowcolor=#ffa500> FW 시즌 1
<rowcolor=#ffa500> NO.4 DF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ffa500> NO.7 박선영 MF | 1대 주장 파일럿 ~ 시즌 2 (프리시즌)
<rowcolor=#ffa500> NO.30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ffa500> NO.77 홍수아 FW 시즌 2 (승강 PO) ~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ffa500> NO.88 강소연 MF 시즌 3 (챌린지리그) ~ 제1회 SBS컵
<rowcolor=#ffa500> NO.33 윤수현 FW 제1회 SBS컵
<rowcolor=#ffa500> NO.78 한초임 FW
<rowcolor=#ffa500> 감독 이천수 파일럿 ~ 시즌 1
<rowcolor=#ffa500> 하석주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2 (승강 PO)
<rowcolor=#ffa500> 현영민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ffa500> 조재진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ffa500> 코치 문경민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2 (승강 PO)
<rowcolor=#ffa500> 정종봉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ffa500> 원용진 시즌 4 (슈퍼리그)
FC 국대 패밀리
<rowcolor=#fff> NO.11 한채아 MF 파일럿
<rowcolor=#fff> FW | 2대 주장 시즌 1
<rowcolor=#fff> NO.14 [[FC 국대 패밀리#심하은|{{{#fff 심하은}}}]] DF 파일럿 ~ 시즌 2 (프리시즌)
<rowcolor=#fff> NO.3 남현희 DF | 1대 주장 시즌 1
<rowcolor=#fff> NO.19 [[FC 국대 패밀리/이정은|{{{#fff 이정은}}}]] MF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fff> NO.21 [[FC 국대 패밀리#이희영|{{{#fff 이희영}}}]] MF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fff> NO.3 [[전미라/골 때리는 그녀들|{{{#fff 전미라}}}]] FW 파일럿
<rowcolor=#fff> FW | 임대선수 시즌 1
<rowcolor=#fff> FW | 3대 주장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fff> NO.8 [[양은지/골 때리는 그녀들|{{{#fff 양은지}}}]] GK 시즌 1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fff> NO.123 곽민정 FW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4 (챌린지리그)
<rowcolor=#fff> 감독 조재진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fff> 김병지 파일럿 ~ 시즌 1,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fff> 김태영 시즌 4 (챌린지리그)
<rowcolor=#fff> 코치 원용진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fff> 이준원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fff> 김종원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fff> 전재홍 시즌 4 (챌린지리그)
FC 개벤져스
<rowcolor=#7f00ff> NO.7 이성미 DF 파일럿
<rowcolor=#7f00ff> 매니저 시즌 1
<rowcolor=#7f00ff> NO.11 이경실 FW 파일럿 ~ 시즌 1
<rowcolor=#7f00ff> NO.02 안영미 DF 파일럿 ~ 시즌 1
<rowcolor=#7f00ff> NO.80 신봉선 MF 파일럿
<rowcolor=#7f00ff> FW | 1대 주장 시즌 1
<rowcolor=#7f00ff> NO.48 이은형 DF 시즌 2 (리그) ~ 시즌 5 (챌린지리그)
<rowcolor=#7f00ff> 감독 황선홍 파일럿 ~ 시즌 1
<rowcolor=#7f00ff> 김병지 시즌 2 (리그)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7f00ff> 이영표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 4 (승강 PO)
<rowcolor=#7f00ff> 코치 배정현 시즌 2 (리그) ~ 시즌 4 (승강 PO)
<rowcolor=#7f00ff> 원용진 제1회 SBS컵
FC 구척장신
<rowcolor=#000> NO.1 송경아 MF 파일럿
<rowcolor=#000> NO.12 진아름 FW 파일럿
<rowcolor=#000> NO.9 한혜진 MF 파일럿
<rowcolor=#000> NO.14 FW | 1대 주장 시즌 1
<rowcolor=#000> NO.11 [[차수민(모델)/골 때리는 그녀들|{{{#000 차수민}}}]] DF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000> NO.3 아이린 GK 파일럿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000> NO.7 (영구 결번) 송해나 DF 파일럿 ~ 제1회 SBS컵
<rowcolor=#000> 감독 최진철 파일럿
<rowcolor=#000> 최용수 시즌 1
<rowcolor=#000> 백지훈 시즌 2 (리그)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000> 오범석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000> 코치 김태현 시즌 2 (리그)
<rowcolor=#000> 박태윤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000> 오창현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FC 월드 클라쓰
<rowcolor=#0000ff> NO.7 구잘 FW 시즌 1
<rowcolor=#0000ff> NO.77 아비가일 FW 시즌 1
<rowcolor=#0000ff> NO.00 마리아 DF 시즌 1
<rowcolor=#0000ff> NO.23 에바 DF | 1대 주장 시즌 1 ~ 제1회 SBS컵
<rowcolor=#0000ff> NO.119 엘로디 MF 시즌 1 ~ 제1회 SBS컵
<rowcolor=#0000ff> NO.27 라라 DF 시즌 2 (슈퍼리그) ~ 제1회 SBS컵
<rowcolor=#0000ff> 감독 최진철 시즌 1,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0000ff> 이을용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0000ff> 코치 서영덕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0000ff> 김상균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FC 액셔니스타
<rowcolor=#adff2f> NO.9 이미도 DF | 1대 주장 시즌 1
<rowcolor=#adff2f> NO.7 지이수 FW 시즌 1
<rowcolor=#adff2f> NO.41 김재화 FW 시즌 1
<rowcolor=#adff2f> DF 시즌 2 (리그)
<rowcolor=#adff2f> NO.14 장진희 GK | +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adff2f> NO.10 최여진 FW | 2대 주장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adff2f> NO.1 최윤영 DF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adff2f> FW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adff2f> MF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adff2f> NO.02 이영진 DF | 3대 주장 시즌 2 (리그) ~ 제1회 SBS컵
<rowcolor=#adff2f> 감독 이영표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adff2f> 백지훈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adff2f> 코치 황인욱 시즌 2 (리그)
<rowcolor=#adff2f> 김병채 시즌 2 (슈퍼리그)
<rowcolor=#adff2f> 김기수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FC 원더우먼
<rowcolor=#ffc0cb> NO.7 송소희 FW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NO.1 황소윤 FW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NO.110 치타 DF | +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NO.11 주명 DF | 임대선수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NO.819 박슬기 DF | 1대 주장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DF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ffc0cb> NO.81 요니P GK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GK | 2대 주장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ffc0cb> NO.8 에이미 FW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4 (챌린지리그)
<rowcolor=#ffc0cb> NO.29 홍자 FW 시즌 2 (챌린지리그) ~ 제1회 SBS컵
<rowcolor=#ffc0cb> 감독 이천수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오범석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ffc0cb> 하석주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 4 (챌린지리그)
<rowcolor=#ffc0cb> 코치 심서연 시즌 2 (리그)
<rowcolor=#ffc0cb> 오창현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ffc0cb> 문경민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 4 (챌린지리그)
FC 탑걸
<rowcolor=#000000> NO.9 바다 DF 시즌 2 (리그)
<rowcolor=#000000> NO.22 문별 FW 시즌 2 (리그) ~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000000> NO.7 간미연 FW 시즌 2 (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000000> NO.99 아유미 GK 시즌 2 (리그) ~ 제1회 SBS컵
<rowcolor=#000000> 감독 최성용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000000> 김병지 시즌 4 (슈퍼리그)
<rowcolor=#000000> 코치 이범직 시즌 2 (리그)
<rowcolor=#000000> 최승호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000000> 김종원 시즌 4 (슈퍼리그)
FC 아나콘다
<rowcolor=#2f38b2> NO.1 신아영 DF | 1대 주장 시즌 2 (리그)
<rowcolor=#2f38b2> NO.82 최은경 DF 시즌 2 (리그)
<rowcolor=#2f38b2> NO.23 박은영 FW 시즌 2 (리그)
<rowcolor=#2f38b2> FW | 2대 주장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NO.77 차해리 MF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NO.10 김다영 DF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NO.12 이나연 FW 제 1회 SBS컵 ~ 시즌 5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감독 현영민 시즌 2 (리그) ~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조재진 시즌 3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코치 정종봉 시즌 2 (리그) ~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2f38b2> 원용진 시즌 3 (챌린지리그)
FC 발라드림
<rowcolor=#ec118f> NO.4 박기영 GK | 1대 주장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ec118f> NO.36 알리 DF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ec118f> NO.5 손승연 DF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ec118f> DF | 2대 주장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ec118f> NO.95 케이시 DF 시즌 4 (챌린지리그) ~ 제1회 챔피언 매치
<rowcolor=#ec118f> 감독 김태영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ec118f> 정대세 시즌 4 (챌린지리그)
<rowcolor=#ec118f> 코치 김종현 시즌 2 (챌린지리그)
<rowcolor=#ec118f> 전재홍 시즌 3 (슈퍼리그)
<rowcolor=#ec118f> 정주일 시즌 4 (챌린지리그)
FC 스트리밍파이터
<rowcolor=#ffffff> NO.22 이수날 FW 시즌 4 (챌린지리그) ~ 제1회 SBS컵
<rowcolor=#ffffff> 감독 최진철 시즌 4 (챌린지리그) ~ 시즌 4 (승강 PO)
<rowcolor=#ffffff> 코치 황인성 시즌 4 (챌린지리그) ~ 시즌 4 (승강 PO) }}}}}}}}}
[ 관련 문서 ]

2021년부터 2022년까지 SBS의 여자 셀럽 풋살 예능인 골 때리는 그녀들에 감독으로 출연했다. 시즌 1에선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로 이루어진 FC 불나방을 맡았고,[54] 시즌 2에선 FC 원더우먼을 맡았으나 시즌 2 종료 후 소리소문없이 하차했다.[55]

2022년 2월 살림하는 남자들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에서 안 좋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줘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56]

2022년 KBS 연예대상 리얼리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5.2. 인천 유나이티드 FC 전력강화실장

5.2.1. 선임 과정

2018년 10월 즈음부터 친정팀이자 고향팀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비상대책위원회 멤버로 합류하였다. 박남춘 전 시장 부임 이후 체질 개선에 돌입한 인천 구단이 과거 선수로 활약해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천수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후 11월에는 이천수가 새 전력강화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천 팬들은 이천수의 인천 복귀를 환영했는데, 정확히는 이천수 그 자체보다는 대표이사 강인덕의 퇴임을 원했기 때문이다. 강인덕 대표이사와 김석현 단장 등이 팀을 떠나게 됐고, 대신하여 전달수 인천전국시도민연합회 회장이 새로운 대표이사로 팀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강인덕이 빠르게 퇴임하지 않으면서 전달수의 선임이 다소 미뤄졌지만, 비공식적임에도 꾸준히 인천 경기장에 등장하며 이미 팀의 일원이 된 행보를 보여줬다. 결국 12월 28일 주주총회에서 강인덕이 해임되면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5.2.2. 2019 시즌

2019 시즌이 시작되기 전 프리시즌 내내 팀의 이적시장을 주도했다. 새로 입단한 선수들 다수가 이천수의 설득을 받고 인천으로 왔다는 말을 했고, 부평고 동기인 박용호 코치 역시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했다. 특히 이재성의 경우 본인이 현역 시절 상대했을 때 정말 뚫기 어려운 선수라고 추천했으며, 양준아 등의 선수들은 직접 설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적시장에서 실제로 움직인 것 외에도 전지훈련지에 동행하는 등 구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거의 코치에 준하는 정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고, 이적시장에서의 행보가 공격적이었기에 시즌 시작 전에는 제법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즌 시작 후 인천의 순위가 끝없이 내려가고, 기대했던 선수들이 크게 부진하면서 이적시장을 주도한 이천수 역시 비판을 받게 됐다. 이재성은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렸고, 양준아나 허용준은 심각한 부진에 빠졌으며, 그나마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문창진도 부상으로 자주 팀을 이탈하였다. 거기에 일부 이적생들은 경기에 제대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는데, 영입 당시부터 의아한 평가를 받던 선수들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터져나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 채널 운영을 활발하게 하고, 국가대표팀 비판으로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하자 팀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이 시작되던 당시 팀의 주요 선수였던 남준재김호남과 트레이드한다는 소식이 나왔고, 이 시점에서 팬덤의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여론이 과열되자 이천수는 구단 간담회에 참석하여 해명했고, 남준재 측이 이적을 요청했다고 주장하였다. 때마침 남준재 측의 행보도 인천 팬들을 자극하면서 이천수를 향한 비난 여론이 일단락되고, 남준재가 큰 비판을 받게 되었다. 사건 당시에는 이렇게 무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준재의 인터뷰 등이 나온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적의 최종 결정자인 이천수 실장 역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이 중론이다.

해당 트레이드 사태가 종결된 후 이천수는 유상철 감독과 함께 적극적으로 선수를 물색하여 여름에만 8명을 영입하는 행보를 보여줬다. 이들 대다수가 팀에 잘 적응하여 성적이 개선됐고, 팀도 최종적으로 잔류를 달성했다. 여름 이적시장의 성과 자체는 인정하는 팬들도 많았으나, 시즌 전체로 보면 여름에 지나친 선수단 개편이 일어나게 만든 그 자체에 대한 비판도 피해갈 수 없었다. 거기에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이나 방식에 대한 반발도 많았기에 공과 과를 동시에 남긴 시즌으로 여겨졌다.

이와 별개로 유상철 감독의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이천수 역시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났다. 2019 시즌 34라운드 성남 원정에 동행했는데, 경기 종료 후 선수단 전체가 눈물을 보이자 이천수도 덩달아 눈물을 보였다. 평소의 이천수 이미지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이라 인터넷 상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아예 인천 구단, 유상철, 그리고 이천수가 모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정도. 그리고 그 눈물의 원인이 유상철의 건강 악화였음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줬다.

5.2.3. 2020 시즌

새 시즌을 앞두고 유상철 감독의 유임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결국에는 유상철 감독이 퇴임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후임 감독 선임이 늦어졌고, 1차 전지훈련이 끝난 뒤 2월에서야 임완섭 감독이 선임되었다. 이 과정으로 인해 이천수 실장의 계획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팬들이 상당히 늘었다. 이적시장의 행보 자체는 2019년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이었고 구단에 대한 영향력도 여전했지만, 팀 전체를 운영하는 부분에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한 셈.

시즌 시작 후 첫 경기까지는 평가가 나쁘진 않았으나, 그 후 지독한 무승 행진이 이어지면서 이천수는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애초에 임완섭 감독이 원하는 선수 영입은 감독 선임 절차가 너무 늦어져서 전혀 없었고, 이런 상황을 자초한 이천수는 나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팀 분위기도 주장 이재성과 감독이 충돌하는 등의 사건으로 무너져 있었고, 강등이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말았다.

결국 2무 7패라는 끔찍한 기록만을 남긴 채 임완섭 감독이 사퇴했고, 우선 임중용 수석코치가 다시 한번 팀의 감독대행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전에도 감독 선임을 질질 끌었던 전례가 있기에 이천수가 이 상황을 깔끔하게 수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 일단 임중용은 P급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두 달 안에는 새 감독이 필요하지만, 현재 인천의 상황이 너무 나쁘다는 점도 걸림돌.

이 와중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구스타부 쿠스토지우를 영입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꽤나 논란이 됐었다. 당시 이천수는 구스타보에 대해 호언장담하며 기다려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팬들은 이전 경력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외국인 선수를 굳이 영입한 데에 불만을 표시했다.

감독 선임 과정 역시 썩 매끄럽지 못했는데, 이임생의 선임으로 가닥이 잡히나 했지만 이 딜이 다시 무산되면서 팬들에게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다가 8월 7일, 조성환 감독의 선임 소식이 들리면서 마침내 감독 문제를 매듭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0년 8월 9일, 인천 전력강화실장직에서 사퇴했다. 조성환 감독의 선임이 인천에서의 마지막 행보였던 셈이다.

5.2.4. 평가

'프런트' 이천수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부정적인 편이다. 두 시즌 연속으로 이적 시장에서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줬으나, 정작 팀의 내부를 결속시키거나 운영이 정상적으로 되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결국 인천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와 별개로 하위권을 맴도는 상황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선수를 보는 눈 자체는 괜찮았다. 2019년에 영입한 이재성, 허용준은 인천에서 마무리가 좋진 못했지만 당시의 경력 상으로는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선수였다. 양준아, 문창진 등도 인천이 나름 쏠쏠하게 기용한 선수였으며, 2019년 여름에 대거 영입한 선수들도 대체적으로 팀에 잘 녹아들었다. 2020년의 이적생인 김연수, 문지환, 김준범 등은 이천수가 떠난 후에도 몇 년간 인천에서 활약하여 팀의 상승세에 일조한 주요 멤버가 됐다.

그러나 이런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도 철학 없이 무작정 영입만 하는 구도가 이어져서 이들이 융화되지 못했고, 일부 선수들의 영입은 너무 뜬금이 없거나 의아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쁘지는 않은 스쿼드를 만들었으나, 말 그대로 모아만 둔 정도였던 셈. 여기에 유튜브 관련 구설수 등이 계속 발생하면서 행보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는 여론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2020 시즌에는 감독 선임 문제로 겨울에도, 여름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로 인천은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고, 조성환 감독의 노력으로 살아남기는 했으나 상처가 가득한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조성환 감독을 선임한 점은 분명한 업적이지만, 그 전까지의 수많은 과정들이 불만족스러웠고 팀을 15경기 무승까지 몰아넣었던 것 역시 이천수 실장의 책임이었다.

전반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과도하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었다. 이적시장을 짜는 과정도 그랬고, 팀을 운영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전력강화실장이라는 위치임에도 과도하게 팀에 관여하여 위화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결국 이천수 실장이 떠난 후 임중용 실장-전달수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프런트가 개편된 이후부터는 인천의 행보가 크게 달라졌고, 구단 운영이 정상화되자 자연스레 성적도 따라오게 됐다. 이천수는 강인덕 대표 시절까지 쌓여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사였으나, 결국에는 그 역시 다른 문제들을 낳았고 그가 떠난 이후에야 구단은 마침내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5.3. 축구 심판 경력

그라운드의 악동이었던 과거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2021년 축구 심판 자격증에 도전한다고 유튜브를 통해 밝혔다. 컨텐츠 제목 부터가 '이런 심판'이다. 심판 자격 취득 과정이 영상콘텐츠화 되었으며 2021년 6월 KFA 5급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57]

5.4. 해설자 경력

2016년부터 2019년까지 JTBC GOLF&SPORTS의 K리그 해설로 참여한다.

2023년부터 TV조선의 국가대표 A매치 해설로 참여한다.

5.5. 기타 활동(정치 관련 활동)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박찬대, 송영길등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유세에 참가하여 그들을 도왔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희룡의 후원회장을 맡게 되었다. 계산동이 고향같은 곳이라고 밝히며, 선거 유세 마지막 날까지 원희룡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TV 출연도 자제한다. 원희룡과의 인연은 원희룡이 제주도지사시절 제주 유소년 축구팀을 논의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고. 지지 정당을 바꾼 데에 관하여는 '정치색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 선거 당일날 상황실에서도 원희룡 옆에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

원희룡과 인상이 묘하게 비슷해서인지 유세때마다 원희룡과 똑같이 코트에 빨간 목도리 차림으로 다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6. 별명

6.1. 리춘수

라 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던 시절 얻은 별명인데 당시 현지 팬이 어눌한 발음으로 이천수를 가리키면서 ‘리춘수’로 발음했는데 하필 이 발음이 입에 착 달라붙어 유행어가 됐다. 근데 사실 이천수를 알고 있는 현지 팬들이 의외로 많아서 산 세바스티안에서는 리춘수라는 이름을 스페인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인연이 됐는지 2021년 4월 개설한 그의 축구 유튜브 채널 이름도 ‘리춘수’다.

이어 2019년 당시 빌바오에서 스페인에 교환 학생으로 가있던 유튜브 출연자가 '리춘수'를 연호하는 현지인들의 영상을 재차 인증하였다. # 스페인어바스크어에서 모음에 'ㅓ'와 유사한 음가는 없고 Chun은 '춘'으로밖에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발음하는 것.

6.2. 혀컴

혀컴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입만 산 베컴이라는 뜻도 있고, 2003년 신인 가수 루다의 1집 앨범 '투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상대 배역이었던 걸그룹 투야의 멤버 김지혜에게 과한 키스신을 시도해 논란이 되면서(...) 붙은 별명이다. 당시 이천수는 촬영 제의를 받았을 때 키스신이 없다면 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결국 3번의 키스신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이천수는 키스신 과정에서 를 사용한 프렌치 키스를 했고 결국 키스신 장면은 선정성 논란으로 삭제되었다고 한다.(혐짤주의) 요즘 같았으면 매장당했을 이천수 과거.jpg

6.3. 축구계의 풍운아

이천수의 반칙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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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계의 풍운아, 악동 같은 별명들이 설명해 주듯 심심할 때마다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휘말린다. 파란색 유니폼만 보면 눈이 돈다고 한다. 다음은 이천수의 숱한 사건사고들 중 일부. 토고전 세레모니는 사실이 아니다. 언더셔츠에 Y를 쓴게 아니라 땀자국이 Y자처럼 보인게 기레기들이 팩트체크도 안하고 넘겨짚은 걸 기사로 쓴 것이다. 실제 저 당시 연애 중인 상대는 배우 김지유로 기레기들이 이름에 들어간 유를 Y와 억지로 연관시켜서 기사를 쓴 것으로 보인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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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담

9. 관련 문서



[1] 1989년에 계양면은 인천직할시 북구에 편입되었으며 북구가 계양구와 부평구로 분할한 해는 1995년이다.[2]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공개한 신체 검사 결과다. 출처 기사[3] 선수 시절은 65kg. 이천수 본인이 2022년 3월 23일에 업로드된 유튜브 방송 라커룸 시즌2: 오프더볼 EP07에 출연해서 자신의 체중이 77kg이라고 밝혔다. 출처 영상[4] 살림남에서 아버지와 오빠(이천수의 외조부와 외삼촌)를 일찍이 사고로 잃자 당시 18세였을 때 본인이 맏이, 가장 노릇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천수가 태어나기 전에 고인이 되었다 보니 외삼촌의 존재를 몰랐던 눈치를 보였다.[5]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생의 합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새벽에 배를 탔다고 하며 이천수의 회고에 따르면 묵묵히 자신을 위해 희생해서 형만 보면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6] 혼인 신고일은 2012년 3월 7일인데 결혼식은 2016년 12월 17일에 올렸다.[7] 아들과 차녀는 쌍둥이다.[8] 대표팀 내 형들로부터 전도를 받고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한 이 선수는 인천 간석 감리교회(조석상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9] 유튜브 채널 "EA SPORTS TM FIFA 온라인 4"에 출연하여 말하길 인천 이씨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출생지와 활동 지역이 인천이라 사람들이 착각한 것 같다며 이천수 본인이 전주 이씨로 수정해 달라고 했다.[10]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 진출로 인한 병역 특례.[11] 알 나스르 FC, 오미야 아르디자 2011년[12] 울산 현대 1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4 아테네 올림픽, 전남 드래곤즈[13] 2000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2000 시드니 올림픽, 울산 현대 2기,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2007 AFC 아시안컵, 인천 유나이티드 FC[14]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6 FIFA 월드컵 독일[15]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오미야 아르디자 2010년[16] 레알 소시에다드[17] CD 누만시아[18] 수원 삼성 블루윙즈[19] 이 분야에선 설기현이나 고정운이 압도적이다.[20] 그래서 올드 팬들 중에서도 이천수에 대해 데드볼을 제외하면 거품이라는 의견이 결코 적지 않다.[21] 06 월드컵에서도 이 둘이 선발로 나가서 상대를 흔들다가 테크닉이 뛰어난 안정환이나 피지컬이 막강하고 크로스가 강한 설기현을 투입해서 재미를 보곤 했다.[22]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 기록한 프리킥 득점도 각도상으로는 왼발 키커인 이을용이 차기에 좀 더 유리한 위치였으나, 본인이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키커로 나서서 4년 전 누구보다 욕심을 냈으나 이루지 못했던 월드컵 본선에서의 골을 이때 기록하게 된다.[23] 오른발 킥력만큼은 한국에서 역대급으로 꼽는다. 그와 비견되는 오른발 키커는 김형범 정도.[24] 2018 월드컵 일본 16강 15위 기록 감독[25] 당시 J리그 우승팀[26] 한일전 모든 축구 매치 최다 점수차 경기[27] 당시에는 경기중에 순간적으로 공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했으나, 훗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무릎팍도사뉴스룸,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는 일부러 걷어찼다고 인정했다. 무릎팍도사에선 "아니 사람 머리를 공으로 착각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라면서 셀프디스까지 시전.[28] 소위 이런 캐릭터는 국대에서는 엄청난 활력소가 된다. 2015년 프리미어 12의 오재원과 흡사하다. 이런 유형은 남의 편이면 굉장히 밉상이지만 우리 팀일때는 좋은 선수[29] 지금도 여전히 이천수를 그리워 하는 팬들이 많다. 사건사고는 많았어도 지금 이천수급으로 잘하는 국가대표 선수는 손흥민을 제외한다면 거의 없다. 이승우가 비슷한 캐릭터지만 이승우는 국대에서는 활약도는 물론이고 클럽에서도 활약이 전혀 없다. 프로가 인성이 중요하지만 선수 평가에 있어서는 실력이 중요한 법이다. 물론 야구 김동주처럼 아예 인성파탄급이면 평가가 떨어지지만 말이다. 기성용도 SNS로 구설수가 있지만 국대 활약으로 인해 평가가 올라간 편이다. 허재, 서장훈보고 인성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최소한 한국 농구에서 이 두명을 빼놓고는 이야기되지를 않는 것처럼 말이다.[30] 어린 시절 천재로 주목받음, 그러나 멘탈이 극도로 나빠 전성기 때 평가는 이중적, 해외 진출 실패(카사노는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나서야 정신차렸다.[31] 실제로는 3월생 박지성이 음력으로 출생신고를 해 실질적인 조기입학을 하여 1년 선후배 관계다. 그래서 박지성을 언급할 때는 ‘지성이형’이라고 부른다.[32] 간신히 인원 수가 남는 명지대 테니스부로 입학했다.[33] 실제 박지성의 종교는 공식적으로 불교로 알려져 있다.[34] 그리고 이천수와 최태욱이 3학년이 된 해에, 부평고는 학성고, 포항제철고, 풍생고, 강릉농고 등 전통의 강호들을 그야말로 압살해버린다.[35] 사실 서장훈도 에고가 강한 성격이긴 하지만 서장훈은 자기주장이 심하게 강할 뿐이고 까칠할 뿐이지 이천수처럼 아예 멘탈 문제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리고 서장훈은 말도 잘하고 독서도 열심히 하는 똑똑한 선수라서 경기장 내에서 과한 승부욕을 보여서 논란이 된 것은 있어도 망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36]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라는 것이 인생을 회고하면서 쓰는 것임을 생각하면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세의 선수가 월드컵 한 번 경험했다고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회고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사실 자서전을 쓸 레벨이라면,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고 쓰는 것이 맞다. 축구 선배인 홍명보는 2002 월드컵 이후에 썼고 박지성도 첫 자서전을 맨유 입단 이후에 썼다.[37] 이 선택은 이천수에겐 매우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이천수 자신도 함부로 레알 마드리드를 운운할 정도로 분에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유럽 중하위권 팀에서 차근차근 배우며 현지 적응에 노력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라는 라리가에서 우승을 노리던 돌풍의 팀으로 입단해서 막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니 실패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초반에야 꽤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외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큰 기대가 전부 부담감으로 돌아가자, 현지에 딱히 친한 선수나 믿음을 주던 감독도 없었던 이천수는 그대로 국내에 유턴하고 만다.[38] 실제로 근본 투어에서 이천수는 외지에서 어머니와 둘이 생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지성도 유럽 진출 초기에는 홈 팀 팬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고, 팀원에게 디스를 당할 정도로 부진했지만, 그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애정으로 지켜봐준 히딩크 덕에 자신감을 얻고 주전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39] 이영표의 영향도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박지성과 이천수는 유럽 무대를 노크한 2003년에 우리 나이로 고작 23세였다. 물론 23세가 법적으로 성인이긴 하지만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영표는 박지성보다 4살 많은 선배로 아인트호벤에서도 더 빨리 적응했고, 의지할 만한 한국인 선수가 있고 없고는 아직 어린 선수가 적응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40] 리그의 플레이 색깔이 다른 건 스카우터의 몫이지만 선택을 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선수의 책임이 된다. 이는 어느 프로 스포츠에서도 공통된 사항이다. 감독이나 프런트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차기 시즌 연봉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41] 잘 와닿지 않다면, 옆동네 KBO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KBO보다 살짝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는 AAA에서 한끗 날리던 선수들을 100만달러 꽉꽉 채워서 데리고 왔는데 한 시즌, 혹은 그마저도 다 못 채우고 집에 가는 선수들이 몇 명씩은 꼭 나오니.[42] 과거 다른 방송에서는 고교 시절 이천수가 새벽 동 트기도 전에 부평 공원묘역에서 러닝을 하던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담력과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것.[43] 이천수 본인이 생각하는 의미는 단어 본연의 뜻인 목표에 대한 인식과 함께 목표 추진의 과감함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어린 노력과 끈기, 정열을 말한다.[44] 노력을 안해서 재능을 망쳤다며 박지성과 비교를 한다는 건, 곧, 노력만 열심히 했다면 박지성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45] 이천수의 국가대표 활약이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꾸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드팬들 중에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천수 말고는 아직도 k리그에서 라리가 직행한 선수가 없고, 빅리그 직행으로만 따져도 k리그에서 빅리그 직행한 사람은 거의 없다. 4대리그로만 한정하면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 홍정호, 윤석영, 조원희, 이동국뿐이다. 게다가 이천수는 나이도 한국나이로 23이라는 아직 유망주 나이에 라리가 전시즌 2위팀에 직행한 것이다. k리그에서 빅리그 챔스진출팀으로 바로 이적한 케이스는 아직까지도 이천수뿐이다.[46] 이천수가 안 보이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하지만 축구인들이 속속 인방에 출연하고 있는 현재 이런 저런 증언의 특징이 있다. 이천수가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축구인들은 이천수 학생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이천수가 열심히 했다고 들으면 피식 웃으면서 괴담을 하나 뱉고 딴 데 보는 사람들은 이천수 프로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걸 보면 부와 명성을 얻은 이후의 자기 관리 문제가 심했던 듯.[47] 당해 대상 후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무관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48] 참고로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7현인 이후의 소크라테스 철학을 상징하는 말이 됐을 뿐. 델포이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인 프로나오스에 새겨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다.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탈레스가 제일 유력하다고.[49] 사실 한국 네티즌들이 투표 사실을 알고 몰빵한 것. 이런 류의 투표는 얼마나 못생겼느냐보다 얼마나 인지도가 높으냐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투표였으면 이천수는 순위권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50] 이천수가 전남에 있을 당시 코치가 하석주였다.[51] 2016년 2월 18일분[52] 전술 해석이 아닌 노닥거리면서 하는 해설.[53] 2020년 방송에는 첫째 딸과 함께 출연하였으나, 2021년에 들어서는 첫째 딸은 방송에 나오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학교를 다닐 시기라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54] 참고로 서동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이천수보다 누나다.[55] 여담으로 부인인 심하은도 FC 국대 패밀리 팀 선수로 출연하다가 이천수와 동반하차했다.[56] 실제로 SNS에선 그를 비판하는 댓글과 욕하는 댓글로 가득 차 있다.[57] 초등학교 축구팀 8:8 경기 및 5~7부 리그, 아마추어 축구 경기 심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58] 유일한 케이스는 아닌 것이 와일드카드가 아닌 연속 2회 올림픽 출전기성용도 2008년과 2012년에 달성하였으며, 4년 월반 출전은 기성용과 2008년 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조영철도 달성하였다. 이때 올림픽에 같이 나간 기성용은 조영철과 같은 1989년생이긴 하지만, 이쪽은 빠른 생일이라 1988년생인 이청용과 동기이므로 3년 월반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59] 거스 히딩크 자서전 마이웨이에서도 이 선후배 문화를 없애는 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선후배 문화를 선수들이 보이는 순간 엄한 경고 조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천수의 당돌함을 좋아했던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이천수에게 시킨 이유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저런 문제를 없앤 결과... 다들 알다시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성공을 거둔다.[60] 기사 내에서는 이천수가 3위, 호나우지뉴가 4위였지만 기사가 화제가 되면서 호나우지뉴와 이천수의 순위가 급상승 했다.[61] 참고로 같이 해설로 발탁된 유상철 역시 저 발언 이후, "우리도 1, 2년 조기축구회 뛰면 조기 축구화된다"는 첨언을 남겼다.[62] 짤방이 악마의 편집이긴 한 것이 원래는 중국 슈퍼리그가 유럽리그 출신 초고액 용병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수준이 올라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63] 프로그램 이름이 걸작인 이유가 현 소시에다드 스쿼드에 근본론 그 자체이신 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64] 아마도 이천수의 성격상 아무래도 상처를 받긴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15년 전에 그것도 마지막 시즌은 다른 팀으로 임대갔고 한 골도 기록 못한 선수를 팬들이 기억할 리가...[65] 이름은 기억 못하는 듯하였으나 '공격수였잖아요', '별로 안 뛰어서 못 알아봤어요'라는 식으로 말하는걸 보니 진짜로 기억은 나는 게 맞는 듯하다.[66] 이 분도 얼굴과 이름이 '리' 였다는 사실 정도만 기억난다고 하셨다.[67] 이게 정말 대단한 것이, 아무리 현지 팬이라도 본인이 5살 때 응원하던 팀에서 폭망해버린 아시아 국가 선수를 기억하는 현지 축구 팬이 과연 몇이나 될지 잘 생각해 보자. 아마도 레알 소시에다드의 골수 팬인듯하다.[68] 마침 송영길의 국회의원 시절 정치적 텃밭이 이천수의 고향계양구였고 이천수의 아내 심하은은 송영길과 같은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이다.[69] 정치적 성향보다는 계양이라는 도시를 좋아하며, 사람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70] 해당 뺑소니범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 이상으로 면허 취소 대상이라고 밝혀졌다.[71] 이 말을 들은 이천수의 어머니: 난 그 경찰관이 이해가 된다(....)[72] 영상 145초 부근의 이천수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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