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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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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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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colcolor=#000000> 이름 김정우
金正友 | Kim Jung-woo
출생 1982년 5월 9일 ([age(1982-05-09)]세)
인천직할시
(現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74kg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colcolor=#000000>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3~2005)
나고야 그램퍼스 (2006~2007)
성남 일화 천마 (2008~2011)
광주 상무 불사조-상주 상무 피닉스 (2010~2011.9 / 군 복무)
전북 현대 모터스 (2012~2014)
알 샤르자 SC (2013~2014 / 임대)
바니야스 SC (2014~2015)
BEC 테로 사사나 (2016)
감독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2] (2019~2020 / 코치)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 (2019~2020)
안산 그리너스 FC (2023 / 수석 코치)
안산 그리너스 FC (2023 / 감독 대행)
국가대표 71경기 6골 (대한민국 / 2003~2012)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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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colcolor=#000000> 가족 1남 1녀 중 둘째
배우자 한혜경, 1남 1녀
학력 인천부평초등학교 (졸업)
부평동중학교 (졸업)
부평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종교 천주교(세례명 : 헤르마)
등번호 6[3], 7[4], 8[5], 10[6], 14[7], 15[8], 16[9], 17[10], 18[11], 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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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지도자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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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뼈.[13]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쉐도우 스트라이커, 센터백까지 중앙에서 뛰는 포지션은 거의 다 소화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의 주역 중 하나다.

2. 클럽 경력

2.1. 울산 현대 호랑이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차두리, 이천수[14], 최성국 등과 함께 이미 각급 대표팀을 들락날락 거리던 슈퍼스타급 유망주였다.

2003년 동기 최성국과 함께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계약금 3억에 울산 현대 호랑이로 입단했다. 구단 레전드인 김현석이 달고 있던 16번을 넘겨받았고 신인 시절부터 리그에서만 34경기 1골 3도움을 기록, 김정남 감독의 신뢰 아래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올림픽 대표팀으로서 거의 1년을 보낸 2004년 18경기를 뛰었다. 특히 2005 시즌에는 이호와 중원에서 짝을 이뤄 울산을 이끌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2.2. 나고야 그램퍼스

파일:attachment/Kim_Jung-Woo_Nagoya_Grampus.jpg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 형식으로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와 2년 계약했다.[15]나고야에서는 과거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주문받으면서 이전까지 김정우가 보여주던 플레이 외에도 다양한 것이 가능한 선수임을 증명했다. 특히 2008 시즌 스리백을 쓰는 팀에서 공미로 나오며 개막전 득점,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재능을 뽐내며 대표팀에도 다시 차출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2.3. 성남 일화 천마

2008 시즌 종료 이후 김정우는 FA로 풀려 PSV 아인트호벤, 레인저스 FC, 위건 애슬레틱과 이적설이 났으나 소문만 무성했고, 구체적인 제의는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당시 빵빵한 재정이 뒷받침되던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다. 이때 울산 현대와 위약금 논쟁이 벌어지며 6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언급되며 2008년 내내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하지만 결국 울산이 위약금을 포기하면서 소송이 가라앉았다.

2009 시즌 팀을 떠난 김상식에 이어 주장을 맡으며 시즌 내내 마우리시오 몰리나와 함께 성남을 먹여살리다시피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ACL과 리그컵에 이어 트레블을 노리던 포항을 누르고 팀을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11월 말에 입대하며 12월에 펼쳐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는 출전할 수 없었다. [16]

2.4. 광주 상무 불사조-상주 상무 피닉스 (군 복무)

광주 상무 입대 이후에도 활약을 이어갔고, 월드컵에도 출전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미드필더로의 활약을 이어가던 김정우는 2011 시즌 상무가 광주에서 상주로 이전하고 이수철 감독이 새로 취임하면서 포지션을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옮겼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 맡은 스트라이커 역할이었으나, 놀라운 재능을 보이면서 리그 15골(득점순위 3위), 컵대회 포함 18골을 기록했고, 명실상부 상주의 에이스로 꼽혔다. 승부조작 사태로 상주의 분위기가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하면서 김정우의 활약도 같이 감소했으나, 이 시즌 그의 활약은 주목할 만했다. 2011년 9월 21일 부로 전역해서 성남으로 복귀했지만, 복귀전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에서 후반전 교체된 지 20분 만에 부상당해 시즌을 조용히 마감했다.

2.5. 전북 현대 모터스

2011년 시즌을 마치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으며 연봉 15억 가량으로 K리그 최고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김정우의 전성기는 이 해가 마지막이었다. 2012 시즌에는 잔부상에 시달리며 5골 2도움에 그쳤고 특히 팀이 상위스플릿에 진출한 리그 후반기에는 완전히 침묵하여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임시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공백이었던 팀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김정우가 평범한 미드필더였다면 5골 2도움이 나쁜 성적은 아니겠지만 김정우에 대한 기대치는 국가대표와 상주에서 공격수로 뛰며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월등히 높아졌고, 그 기대치에는 못 미친 것이 사실이었다. 주전 센터백 조성환, 임유환, 심우연이 줄부상과 경고누적 등으로 빠지자 김상식과 함께 센터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부상에 심리적 압박감까지 겹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심지어는 중간에 임유환과 더불어 무단이탈설이 돌기도 했다.

2.6. 말년

최강희 감독 복귀 후 팀 리빌딩 과정에서 알 샤르자로 임대되었다. 전북 측에서는 아예 이적시키길 원했으나 워낙 연봉이 높아서 실패했다. 중동 이적 후에는 어느 정도 폼을 회복하여 팀의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데 이바지하며 13~14시즌 UAE 리그 베스트 11에 뽑혔다. 시즌 종료 후 아부다비를 연고로 하는 구단인 바니야스로 이적했다. 2015년 2월 부상으로 소속팀과 계약을 해지하였고, 태국의 BEC 테로 사사나로 이적하였다. 기사 그러나 이적 직후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였다. 2019년 3월 22일 볼리비아전 하프타임 때 은퇴식이 열렸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축구선수 김정우.jpg

허정무호의 숨은 주역으로[17] 부평고 선배 김남일의 뒤를 이어 대표팀 중원을 책임졌던 살림꾼.

2003년, 울산 현대 입단 이후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올라서면서 가치가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때는 멕시코전에서 통쾌한 중거리슛 득점으로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도움을 주었다.

국가대표팀 데뷔는 2003년 10월의 오만과의 2004 아시안컵 예선에서 첫 출장하였다. 이후 김남일, 이호, 백지훈 등과 중앙 미드필더 주전 경쟁을 벌였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예비 명단에만 포함되었고, 최종 명단에서는 탈락하였다.[18]

1 이운재
C
· 2 송종국 · 3 김진규 · 4 김동진 · 6 이호 · 7 최성국 · 8 김두현 · 9 조재진
10 이천수 · 11 이근호 · 12 이동국 · 13 김치곤 · 14 김상식 · 15 김치우 · 16 오범석 · 17 김정우
18 우성용 · 19 염기훈 · 20 손대호 · 21 김용대 · 22 강민수 · 23 정성룡 · 27 오장은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코치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브라질 국기.svg 코사


이후 절치부심하여 월드컵 이후 핌 베어벡 체제에서 중용받으면서 경험치를 쌓은 끝에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였다.[19] 조별리그 2차전 바레인전 어이없는 백패스로 인해 팀의 패배의 원흉이 되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다음 경기인 개최국 인도네시아와의 3차전에서 엄청난 빈공으로 답답한 축구를 하던 중 이천수가 상대 수비를 헤집고 내어준 패스를 다이렉트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넣으면서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는 김정우의 A매치 데뷔골이기도 하다. 대회 내내 공격형 미드필더 내지는 중앙 미드필더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베어벡호의 황태자로 부상하며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3위에 기여했다.

2008년 허정무호 출범 이후에도 대표팀 주축 선수로 부상한 이래 안티가 꽤 많았다. 그전까지 붙박이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남일 팬들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해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까지 진출했던 조원희 팬들에게 특히 욕을 많이 먹었다. 결정적인 찬스 상황을 내주기 전에 끊어버리는 역할도 하기에 카드 수집도 많은 편이고, 대표팀에서 쓰는 홀딩을 쓰지 않는 시스템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까인다.

사실 허정무호 시기 김정우 이상의 선수는 없었다. 김남일은 30줄에 접어든 나이, 수원과의 갈등과 해외진출로 부침을 겪는 와중에 폼이 하락했고, 조원희는 EPL에서 벤치만 달구며 폼이 급격히 하락했고 결국 잊혀진 선수가 되었다. 무엇보다 김남일, 김정우와 달리 공격 전개능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김두현은 수비 능력을 기대할 수 없었고 당시 기대주로 떠올르던 신형민, 김재성은 대표팀에선 많이 뛰는 선수 이상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2006년 대표팀에서 주목받던 이호는 제니트에서의 실패로 정체되었고 백지훈은 수비는 아예 안 되고, 공격 전개도 기대할 수 없는 킥 원툴 선수였다.

일례로 2010년 2월 14일 열린 동아시안컵 일본전을 보면 김정우가 퇴장당하자마자 한국의 중원은 피지컬에서 열세인 일본 상대로도 줄곧 밀렸다. 당시 구자철과 김재성, 신형민은 김정우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20]

이러한 이유 때문에 허정무호에서 중원의 중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대표팀의 주축을 양박쌍용으로 기억하지만, 대표팀의 진짜 에이스는 김정우였다. 2010 월드컵 대회 당시 4경기 다 선발은 김정우, 기성용이었으나 김정우는 4경기 풀타임을 다 뛰었던 반면 기성용은 매경기 교체아웃이 된 것만 봐도 둘 사이 비중의 차이는 명확했다. 기성용의 수비력은 국가대표 생활 내내 안 좋았지만 신인이었던 이 시기는 더욱 안 좋았고 셀틱 이적 후 현지 적응 문제로 폼 저하가 심각했던 시기여서 빌드업하나 보고 기용한 카드였다. 따라서 김정우에게 주어진 부담이 굉장히 컸다.[21] 김정우-기성용 라인은 김정우가 전천후로 뛰어다니면서 수비, 압박, 연결에 힘을 쓰는 가운데 기성용이 조용형-이정수등의 국가대표 센터백을 보좌해 가며 특유의 시야와 짧고 길고를 가리지 않는 정확한 패스능력으로 공격루트의 다변화를 꾀하는 식이었고 이기든 지든 승부가 갈린다 싶으면 기성용을 빼고 중원에서 압박에 기여할 수 있는 김남일을 투입했다.

2009년 11월 열린 덴마크 국가대표와의 평가전에서 덴마크의 미친개 크리스티안 폴센[22] 상대해서 발라버리는 기염을 토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몇 주 앞두고 벌어진 몇차례 평가전에서 그를 저평가 해온 팬들도 눈치챌 만큼 기량이 급상승한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대표팀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특히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펼쳐진 스페인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도 좋은활약을 보여주었는데 당시 스페인 대표팀 라이트백이였던 세르지오 라모스가 경기이후 가장 기억이 남는 선수로 김정우를 뽑았다. 강팀과 상대하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으며, 상대 미드필더들을 씹어먹으며 중원을 장악하여 폼이 처참하게 떨어진 기성용의 구멍을 훌륭히 메꾸었다. 단점으로 지적받던 카드수집도 태클실력이 늘어났는지 상당히 줄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 메시를 태클하며 공을 종종 뺏는 대활약을 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도 박지성과 함께 중원의 핵심 역할을 책임졌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광주 상무 소속으로 계급은 일병이었다.[23]

그랬던 그가 이후 출범한 조광래호 초반인 이란전 후반 교체 투입했으나 21분 만에 재교체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이후 아시안컵 명단에서 충격 탈락하며 불화설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다시 중용을 받는 듯 했으나 조광래 감독은 금방 경질되고 말았다.

그리고 2012년 전북 이적 이후부터 점점 하향세를 그리다가 2012년 8월 이후 더 이상 국대에서는 볼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점에서 분명 주목도가 떨어졌고, 더불어 급격히 떨어진 폼 때문에 남아공 월드컵 이후 사라져버려 오랫동안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비판은 좀 받을지언정 확고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담당해주는 정우영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오랜 시간 국대에서 느껴지던 김정우의 공백을 잘 메워줬다.

4. 지도자 경력

4.1.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2019년 3월 고향 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U-18인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첫 시즌부터 K리그 주니어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에서 모두 3위를 차지했으며 전국체전에서 우승도 차지하는 등 좋은 성과를 냈으며, 2020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4.2. 안산 그리너스 FC 코치-감독 대행

2021년 11월 29일,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임종헌과 함께 대학 시절 은사인 조민국 감독이 부임한 K리그2 안산 그리너스 FC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2022 시즌 기존의 수석 코치였던 임종헌이 감독 대행을 거쳐 감독으로 승진하면서 김정우 또한 수석 코치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 임종헌 감독이 선수 선발 비리 문제로 경질되면서 수석 코치였던 김정우가 감독 대행으로 6월 25일 충남 아산 FC전을 이끌었다.

이후 송한복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면서 안산 구단을 떠났다.

5. 플레이 스타일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도어 락 축구의 달인인 김정남 감독 밑에서 수비적인 롤을 많이 맡으면서 균형잡힌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큰 키에 비해선 몹시 마른 체형이지만 몸싸움 잘하고 터프하며 시야 또한 넓었다. 특히 패스커트의 달인수준인데 상대의 패스 길목을 파악하고 미리 위치를 차지하고 뛰어드는 타이밍이 일품으로 태클로 볼을 뺐는 것이 아니라 커트로 수많은 공격권을 가져왔다.[24]

또한 괜찮은 중거리 슛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애당초 공미 출신이라 당시 한국 수미 중 몇 없는 볼간수가 가능한 미드필더였다. 다만 큰 키에 비해 헤딩 경합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 많은 활동량과 투지 그리고 영리한 축구 지능으로 중앙 개싸움에 능하고 특히 커팅 능력이 우수하면서 3선에서는 볼 간수가 가능한 딥 라잉 미드필더 또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라고 볼 수 있다.

중앙 미드필더로 우승을 경험한 이후 팀을 옮겨다니며 여러 롤을 맡게 되는데 나고야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고, 성남에선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갔으며 베어백호에선 공격형 미드필더,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김동진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참가)에서는 다시 중앙 미드필더, 허정무호에서는 전천후 중앙 미드필더 역할, 상무에선 쉐도우 스트라이커, 전북에선 임시로나마 센터백까지 겸했다. 초기에는 다소 거친 플레이 스타일 탓에 카드 캡터 소리를 들었으나 경험이 쌓인 이후에는 개선되었다. 유사시 공미 역할도 해줄 수 있는 패싱력과 깡마른 몸과 전혀 상이한 뛰어난 경합 능력으로 감독들의 사랑을 받았다.

6. 여담

7. 관련 문서



[1]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상무 시절에는 중앙 공격수로 뛰기도 했다.[2] 인천 유나이티드 U-18 구단[3] 알 샤르자 SC, 바니야스 SC[4]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시즌, 2005 시즌[5] 나고야 그램퍼스,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10 남아공 월드컵[6] 상주 상무 피닉스[7] 2004 아테네 올림픽, 성남 일화 천마 2009 시즌, 광주 상무 불사조, 전북 현대 모터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8]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9] 울산 현대 호랑이 2003시즌[10] 2007 AFC 아시안컵 아세안[11] 성남 일화 천마 2008 시즌[12] 성남 일화 천마 2011 시즌[13] 본인은 정작 '뼈'가 들어가는 별명은 좋아하지 않는 편.[14] 여담으로 이천수와 김정우는 초-중-고-대 1년 선후배 관계이다.[15] 나고야는 이 때 프랑스 리그의 메츠에서 뛰던 안정환까지 영입하려고 했으나, 안정환이 월드컵 대표팀 선발을 위해 독일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좌절되었다.[16] 재미있게도 전북을 먹여살린 수비형 미드필더는 성남의 리빌딩 과정에서 쫓겨난 김상식이었다.[17]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의 특성, 그리고 당시 허정무호의 간판은 양박쌍용으로 불리는 4인방이어서 대중적으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가 얼마나 어려운 역할인지 아는 축구팬들에겐 당연히 극찬을 받았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대표팀에 수비형 미드필더 품귀현상이 생기면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18] 선수 본인의 회고로 TV로 술 한잔 하면서 경기는 봤다고 한다.[19] 당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안정환, 김남일 등 기존 유럽파 및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들 모두 부상 및 부진으로 인해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2000년대 이후 역대 최악의 전력으로 대회를 꾸려가게 되었다.[20] 순간적인 역습 기회를 살린 김재성의 쐐기골이 없었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21] 기성용이 그때는 수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형들 따라서 뛰었다고 밝힌 인터뷰가 있다. 사실 기성용의 발전한 수비력이라는 것도 그냥 최대한 뒤로 물러나면서 공간과 각을 지키면서 아군 선수를 기다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 아군 선수가 상대방과 다투다가 흘러나온 볼을 채는 걸로 인터셉트 스탯을 채우는 식이다.[22] 당시를 직접 보지 않은 팬들은 누군지 잘 실감이 안 나겠지만 샬케, 세비야, 유벤투스, 리버풀을 거쳐갔던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입지를 가진 선수였다.[23] 당시 그의 경기를 보던 모부대에서는 국가연주가 나올적에 그가 거수경례자세로 서있자 괴성을 지르면서 그를 응원하였다.[24] 동료들에 의하면 김정우는 다리가 길고, 그 긴 다리를 이용하여 귀신같이 볼을 커트 해낸다고 한다.[25] 대런 플레처+ 해골. 사실 플레처도 EPL 최상위권 팀의 주전 중미라는 위상에 비해 몸이 마른 편이다.[26] 민간인인 다른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하면 된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당시 군인 신분인 김정우의 상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거수 경례를 해야 한다. 대통령과 악수 할 때 '관등성명'을 잊어서도 안된다.[27] 은퇴식 기준은 70경기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