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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은

오장은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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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코치
파일:이미지_2024-03-25_221220730.png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이름 오장은
吳章銀 | Oh Jangeun
출생 1985년 7월 24일 ([age(1985-07-24)]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군위 오씨
신체 175cm / 체중 73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 은퇴)
축구 코치
프로 입단 2002년 FC 도쿄
소속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FC 도쿄 (2002~2004)
대구 FC (2005~2006)
울산 현대 (2007~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6)

성남 FC (2017)
대전 시티즌 (2018)
지도자 FC 도쿄 (2020 / 유소년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1~2022 / 2군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2~2023 /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4/ 수석 코치)
국가대표 14경기 (대한민국 / 2006~20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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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학력 서귀포초등학교 (졸업)
조천중학교 (졸업)
서귀포고등학교 (중퇴)
등번호 대구 FC - 30번
울산 현대 축구단 - 16번
수원 삼성 블루윙즈 - 9번, 66번
성남 FC - 49번
대전 시티즌 -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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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이전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지도자 경력6. 에피소드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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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

2. 프로 이전

1985년 7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에서 아버지 오상훈(吳尙勳, 1960. 2. 4 ~ )과 어머니 강금자(康金子, 1959. 11. 26 ~ )[2]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축구 입문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오장은은 서귀포중학교로 진학을 했다가,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보내기 위해 경희중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러나 여러 문제로 정착에 실패한 오장은은 조천중학교로 전학을 왔지만, 제주도에서 축구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상황 타개를 모색하다가 에이전트를 통해 벨기에 축구 유학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결국 중학교 3학년인 2000년 11월 벨기에 2부리그인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B 소속 몰렌베이크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됐다. 그러나,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00-01 시즌이 끝난 2001년 여름 국내로 복귀하게 됐다.

이후 서귀포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다가, 당시 윤성효 감독이 이끌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팀에 연습생 신분으로서 합류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렇게 약 2달 동안 수원 2군에서 서서히 몸을 끌어올리던 오장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3. 클럽 경력

3.1. FC 도쿄

파일:FB_IMG_1564661679075.jpg

2001년 여름, J리그FC 도쿄의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고 도쿄에서 훈련 후 연습생 신분으로 계약하게 됐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아마추어 계약을 체결했고, 2002년 4월 13일 J리그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J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다.[3] 하지만 외국인 용병 제한으로 3시즌간 13경기에 출장하였으나 2003년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친선전에서 데이비드 베컴을 꽁꽁 묶어 많은 스포트라이트 받고 U-19 대표팀에 승전하는 등 당시 최고 유망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입단할 당시에는 센터 포워드, 즉 공격수였지만 포지션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경했다.

2004년에 프로 계약을 맺었으나 팀에선 J2리그로 임대 보내며 경험을 쌓게 할 생각이었지만, 오장은과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고,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대구 FC,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 이적 협상을 벌인다.

3.2. 대구 FC

파일:M20060927_010240714410001i1.jpg

도쿄에서 2부 리그로의 임대를 추진했고, 실제로 입단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J2리그로 가야하냐는 생각이 들었었고, 이 때 노상래와 오주포의 은퇴로 공격이 약하된 대구가 오장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고, 결국 대구 FC로 2005년 김근철과 함께 이적한다. 계약 기간 2년.

입단 초기에는 U-20 월드컵 멤버로 뽑혀 많은 활약을 못하였다. 이후, 전지훈련을 가서는 오른쪽 윙백으로 뛰었는데, U-20 당시 포지션을 보고 스태프들이 윙백으로 알았던 듯 하다. 결국엔 돌고 돌아 중앙 미드필더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분명 위에서는 중원이 헐거워서 영입했다고 했는데?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2005 시즌 25경기 3골 2도움을 올린 오장은은 박종환의 지도 아래서 잠시나마 대구가 리그 1위에 오르는 이변에 주인공이 되었다.

이 당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활약했다. 몇몇 언론에서는 포스트 김남일이라는 설레발을 치기도 했지만, 선수 본인은 오장은 스타일이라는 말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10월 19일 FC 서울전에서 2대1 승리에 기여했다. 전반 28분 동점골을 넣어 그 당시 3무 3패로 침체된 서울의 분위기 반전에 제대로 고추가루를 끼얹는데 일조했다.

2005년 23경기 출전해 3골 2도움을 기록해,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2006 시즌에는 36경기 4골 기록하게 된다. 이 때 대구의 순위가 리그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자, K리그 팬들의 반응은 충공깽 자체였다.

9월 24일에는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물오른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에 핌 베어벡 감독의 눈에 띄어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왔는데 공격형 미드필더인 홍순학이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 빈자리를 메꾸기 위함이었다. 오장은의 자리에는 박종진이 뛰었다.

이 시절의 별명이 대장은이었다.

3.3. 울산 현대

파일:koreafootball_co_kr_20080630_536eff04a0f4df77.jpg

2006년 대구와의 계약 만료로 FA로 풀린 오장은은 여러팀에게 구애를 받았는데, 이에 적극적이게 구애한 울산 현대로 입단하였다. 이 때 당시 울산은 김정우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고,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대구는 28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챙겼다고 한다.[4] 계약 기간은 4년이다.

당시 울산 감독이었던 김정남 감독은 오장은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오장은도 이에 보답하듯이 27경기 1골을 기록하여 울산의 리그 컵 우승과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하였고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돼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2008년에도 36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불박이 주전이 되어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2009년에는 새로운 감독인 김호곤 아래서 더욱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으며 32경기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여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다골이자 팀내 공격 포인트 2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7월 제주와의 리그컵 8강 2차전에서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기록 사상 26번째 기록자가 됐다.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기존 주장 유경렬에 이어 울산의 주장으로 선임돼 35경기 3골로 울산 현대의 미드필더 핵심으로 활약했다.

3.4.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파일:SK004_20110907_470301.jpg

울산과 계약 만료 후 2011 시즌을 앞두고 해외 이적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조원희와 맞트레이드로 수원행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이내 조원희가 울산 대신 광저우 헝다를 선택하며 이적이 무산되나 했지만, 윤성효 감독이 적극적으로 구단에 요청해 결국 약 15억원에 수원행이 완료됐다.

윤성효 감독은 오장은이 유럽에서 국내로 돌아와 고교 진학을 알아보던 차에 수원 2군 팀 감독이었다. 둘은 정확히 10년 만에 사제의 연을 다시 맺게 됐다.

호세모따가 팀을 떠난 후 남아있던 등번호 9번을 달았다.

2011 시즌 공식 데뷔전인 리그 개막전 슈퍼매치 원정 경기에서 헤더로 추가골을 기록했다. 함께 영입된 이용래, 여름부터 수원으로 복귀한 박현범과 함께 3미들 조합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우승제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팀을 떠나 오범석의 백업 라이트백이 없었고, 오장은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팀의 트레블 도전에 함께 했지만 모두 문턱에서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12 시즌 FA컵 16강 슈퍼매치에서 김진규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고, 개천절 슈퍼매치 홈경기에서 후반 초반 크로스를 올리는 과정에서 빗맞았지만 그게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며 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고, 이후로도 유독 서울에게 강한 모습을 유지했다.

2013 시즌에는 주장 김두현을 보좌할 부주장으로 선임되며 울산 시절 이후 주장단에 다시 임명됐다. 하지만 김두현이 시즌 초반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오장은은 사실상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리그 34경기 1득점 5도움으로 자신의 한 시즌 리그 최다 출전 신기록을 세웠다. 5월에는 구단 선정 5월의 MVP에 선정됐고, 올해도 슈퍼매치에서 김진규와 충돌했다.

2014년 5월 갑상선 항진증 판정으로 거의 1년을 결장했고, 2015년에는 4월 8일에 있었던 AFC 챔피언스 리그 브리즈번 로어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무난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 경기를 끝으로 무릎 부상으로 또다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후 5월, 부상 부위 악화로 인한 무릎 수술을 결정하면서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어느 시즌보다 숨막히는 일정을 소화하는 수원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은 셈. 이관우와 백지훈을 이어 수원의 미드필더 고인 라인 추가요

2016년 1월 14일, 높은 주급에 비해서 꾸준하지 못한 출전시간으로 수원을 떠난다는 기사까지 나왔었지만 2월 말에 재계약이 확정되었다. 풍문으로는 주급을 상당히 깎았고,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면 바로 보내주는 계약조건이었다고 한다.

4월 1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702일만에 선발 출전하였고, 4월 16일, 인천 원정전에서는 948일만에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득점까지 기록하며 부활을 알리나 싶었지만 이후 계속되는 컨디션 저하로 R리그 단골 손님이 되며 정규 리그 7경기 출장에 그쳤다.

3.5. 성남 FC

파일:96273_34696_5021.jpg

그리고 해가 바뀐 2017년, 성남 FC로의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다. 부상으로 경력을 끝낸 상태로 묻히기는 싫었다며, 성남을 다시 K리그 클래식으로 복귀시켜 팬들의 가슴 속에 불꽃남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

하지만 시즌 초에 출전한 경기에서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이후부터는 부상 등의 이유로 시즌 초 몇번 나온 것 이외에는 전혀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였으며, 1년간 리그 단 4경기 출장에 그쳤다.

3.6. 대전 시티즌

파일:20180122145156871.jpg

2018시즌을 앞두고 동남아시아 무대로 떠날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팀동료 안재준과 함께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노쇠화 됐을 뿐더러 2017시즌 성남에서 부상으로 거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오장은 역시 김진규처럼 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어찌됐든 커리어가 화려한 오장은 영입은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도 하였다.[5]

한편 은퇴한 김진규의 후임으로 대전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3월 3일 부천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안상현과 대전의 중원을 지켰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상대에게 잘 뚫리는 모습을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으며, 전체적으로 노쇠화되고 체력이 안되는 탓에 중원에서 상대를 잘 압박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후에도 상당히 노쇠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만큼의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으며, 4월 1일 광주 FC전 이후부터는 부상 등을 이유로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면서 2017년의 김진규처럼 돼버렸으며, 2018년 한해 6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8시즌을 끝으로 대전과의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대전 구단이 이미 시의회를 통해 선수단 규모를 기존의 59명에서 35명 규모로 축소함에 따라 계약 만료 선수를 전원 내보낼 것임을 밝히면서 대전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독일에 5부리그 클럽에서 유소년 지도 연수를 받으면서 운동을 지속해왔지만 끝내 7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4. 국가대표 경력

1 이운재
C
· 2 송종국 · 3 김진규 · 4 김동진 · 6 이호 · 7 최성국 · 8 김두현 · 9 조재진
10 이천수 · 11 이근호 · 12 이동국 · 13 김치곤 · 14 김상식 · 15 김치우 · 16 오범석 · 17 김정우
18 우성용 · 19 염기훈 · 20 손대호 · 21 김용대 · 22 강민수 · 23 정성룡 · 27 오장은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코치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브라질 국기.svg 코사


2006년 10월 8일, 가나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였으며,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였다. 또한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부상으로 아웃된 염기훈의 대체선수로 승선되었다.

5. 지도자 경력

파일:downloadfile-10오짱3.jpg

은퇴 이후 J리그 FC 도쿄 사커스쿨코치로 계약해 도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축구 프로그램을 기획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2021년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2군 코치로 부임하였다. 기사

2022년 8월부터 조재민 코치와 바꾸어 1군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으며, 공격 포지션 강화에 힘을 더했고, 2024 시즌을 앞두고 염기훈 감독 체제에서는 수석코치에 승진하였다.

2024년 5월 25일 사임한 염기훈을 대신하여 감독 대행을 맡았으나, 후임 감독인 변성환이 빠른 속도로 임명되면서 감독 대행으로의 경기 지휘는 하지 않은채 수석 코치로 돌아왔다.

2024년 6월 5일 변성환감독이 수원의 새로운 감독이 선임되면서 코치진 개편으로 수원에서 떠나게 되었다.

6. 에피소드

파일:2016042000810_0.jpg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인근의 상예동, 서호동, 호근동, 서홍동, 동홍동, 상효동, 신효동, 하효동과 함께 군위 오씨 집성촌이다.[2] 강용남(康龍男)의 딸이다.[3] 종전에 가지고 있던 아베 유키의 16세 333일을 100여일 앞당긴 기록이다.[4]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5] 김진규는 2017년 대전에 입단해 주장으로 선임되며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았으나 시즌 중반 접어들면서 노쇠화라는 한계와 더불어 극심한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채 부진했고, 1년만에 은퇴했다.[6] 이 사고 때문에 결국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