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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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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룡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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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ea3dc><colcolor=#ffffff> 가와사키 프론탈레 No. 1
정성룡
鄭成龍 | Jung Sung-Ryong | チョン ソンリョン
출생 1985년 1월 4일 ([age(1985-01-04)]세)
경기도 성남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91kg[1]
포지션 골키퍼
소속 구단 포항 스틸러스 (2003~2007)
성남 일화 천마 (2008~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5)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6~ )
국가대표 67경기 67실점
(대한민국 / 2008~2016)
25경기 1골 13실점
(대한민국 U-23 / 2008~2012)
후원사 프리커버리 (장갑), 미즈노
기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이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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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중앙초등학교 (1996)
광주초등학교 (1996~1997)
광주중학교 (1997~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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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고등학교 (2000~2003)
대구사이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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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
6. 평가7. 여담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골키퍼로 현재 일본 J1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이다.

2.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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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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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월드컵 주전 수문장
이운재
(2002 한국-일본, 2006 독일)
정성룡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조현우
(2018 러시아)

국가대표팀 기록 (2007~2016): 67경기 67실점

4. 플레이 스타일



흔히 생각되는 골키퍼들의 이미지는 날렵한 다이빙으로 상대 공격수의 슈팅을 막아내는 모습이지만, 정성룡은 그러한 모습과 거리가 멀다.

정성룡은 골키퍼에게 필요한 동물적 감각이 타 골키퍼에 비해 확연히 떨어졌다. 결정적인 위기 상황이 되면 신체가 경직된 모습이 자주 보인 것. 운동 능력이 특출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이빙의 범위가 좁았으며, 그 다이빙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12] 즉, 골키퍼의 미덕으로 꼽히는 슈퍼 세이브가 몹시 드문 편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골키퍼와는 상반된 움직임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정성룡의 평가는 별로 썩 좋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성룡이 골키퍼로서 국가대표 주전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술할 다른 장점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정성룡은 부족한 운동 능력을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메웠다. 침착하게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수비를 조율하는 동시에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을 이용해 위기를 해결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의외로 근거리 1:1 상황에서는 매우 강했다. 근거리 1:1은 패널티킥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이므로 아예 차기 전부터 좋은 위치를 잡고 상대의 슈팅 각을 좁혀야만 막을 수 있다. 빈틈이 적은 굵직한 체형을 이용해서 침착하게 타이밍을 맞춰서 슈팅 각을 좁혔으며, 이 부분은 마누엘 노이어의 자세를 연상시킬 정도로 훌륭했다.

둘째는 선방 후의 볼 처리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대신에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냈으며, 캐칭 능력 역시 다른 골키퍼들보다 좋은 편이라 근거리에서 때린 슛도 침착하게 잡아냈다. 잘 알려져 있는 실수인 덩크 슛처럼 공을 잡다가 흘리는 등의 실수는 사실 잘 나오지 않았다. 잡기 어려운 볼이라면 아예 최대한 멀리 쳐내거나, 코너 아웃 방향으로 쳐내는 등 펀칭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 상대 공격수가 세컨볼을 가져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골키퍼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2~3단 연속 선방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첫 번째 장점과 마찬가지로 선방을 할 기회를 최대한 줄여서 부족한 선방 능력을 커버했던 것이다.[13]

셋째는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의 빠르고 정확한 킥력이다. 정성룡이 기용될 수 있었던 최고의 장점으로, 킥만큼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내로라하는 골키퍼 중에서도 손꼽을만큼 뛰어나다. 정성룡이 길게 골킥을 한 후 불과 몇 터치 만에 득점이 나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전성기의 박주영 같은 뛰어난 타겟맨이 있을 때 그 위력이 극대화된다.[14] 무엇보다 심지어는 롱 킥을 그대로 골로 연결시킨 적도 있다. 아래 여담 항목 참조.

정성룡의 장점들은 수비진에 훌륭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가끔씩 나오는 실수의 임팩트로 인해 많은 팬들이 이에 공감 못하겠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슈퍼 세이브를 많이 만드는 능력만큼 슈퍼 세이브가 필요한 위기 상황을 적게 만드는 능력 또한 중요하며, 여러 감독들이 정성룡을 기용한 이유다.[15]

그렇지만 운동 신경이 아니라 지능적인 플레이에 의존했기에 한계 또한 명확했다. 수비에 맞고 굴절되는 슛, 변칙적인 세트피스 등 예측 외의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처에 어려움을 겪였으며,[16] 상대의 페인팅 동작, 창의적이면서 낮고 빠른 크로스에도 취약했다. 그리고 근거리가 아니라 뒷공간이 넓은 상황에서의 1:1에는 빠른 민첩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각을 좁히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속수무책으로 실점했다.

페널티 킥 선방 능력은 크게 뛰어나지도, 저열하지도 않은 딱 보통 수준이다. 원래는 기본적인 순발력 부족 탓에 PK 선방 능력이 전무한 수준이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17][18] 반사 신경이 부족한 만큼 끝까지 공을 보고 다이빙해서 동물적인 선방을 하는 타입은 아니고, 키커의 움직임을 계산하거나 사전 분석을 기반으로 미리 예측해서 막아내는 타입이다.

결론적으로, 골키퍼로서 갖출 건 하나 빼고는 다 갖췄는데 그 하나가 하필 가장 중요한 운동 능력이었던 선수. 그에 따른 둔한 모습과 실수들, 그리고 특유의 멍해보이는 표정이 큰 임팩트를 남겨 많은 팬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흥미로운 점도 있는데, 보통의 골키퍼들이 약체팀에서 더 빛나는 반면 그는 강팀과 상성이 잘 맞았다. 약팀일수록 상대팀에게 공격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소속팀의 수비 실수가 잦을 가능성이 높기에 필연적으로 슛을 많이 내줄 수 밖에 없는 약팀의 특성상 선방 능력이 다소 아쉬운 정성룡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강팀일수록 수비진이 최소한의 기본 역량은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성룡의 좋은 수비 리딩을 이행해줄 수 있는 수비수들이 조직력의 상승이나 좋은 판단력에 의한 움직임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성룡의 훌륭한 킥을 받아 찬스로 이어갈 공격수들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정성룡이 국적은 불행하게도 축구 강국과 거리가 먼 대한민국이었다. 또 정성룡이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들 나이대의 소속팀이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정성룡 들어가기 전까지는 잘나가는 팀이었으나 들어오고 나서는 당시 감독의 삽질로 막대한 돈을 쓰고도 그가 있을 당시 최고 성적이 리그 준우승에 그쳤고, 약점이 부각되며 그의 안 좋은 장면들이 이 기간에 한꺼번에 나왔다. 반면, 리그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던 성남 일화 천마 시절엔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K리그의 정상급 골키퍼다운 모습을 보여줬고,[19] 말년에 J1리그의 강팀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을 땐 바로 부활한 모습을 보이더니 J1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올라섰다. 가와사키는 정성룡 이전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자주 출전하는 강팀이었지만, 평균 이하의 수비로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즉 강팀의 기본은 다 맞춰져 있었으나 수비 하나 때문에 2%가 모자랐던 것. 그러나 이 자리를 경험이 많은 베테랑 골키퍼 정성룡이 채워줬다.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수비가 빠르게 안정화되어 정성룡이 가세한 후 리그 4회 우승을 차지하는 일본 최강팀으로 굳혀지고, 정성룡 역시 J1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를 단순히 팀빨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반사 신경과 다이빙 능력이 좋은 골키퍼가 우승권 팀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적은 실점 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0]

5. 기록

5.1. 대회 기록

6. 평가

"나의 골키퍼 베스트 1은 정성룡이다. 전성기 때 성룡이 형의 안정감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구자철, 이광용의 옐로우카드3에 출연해 한국 국가대표 베스트 11을 선정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남아공 월드컵, 2011 카타르 아시안컵, 2012 런던 올림픽, 2014 브라질 월드컵 등 많은 주요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출전했다. 당대 민첩한 골키퍼들인 김영광, 신화용, 권순태 등을 밀어내고 부동의 주전을 차지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앞 세대 선배들이자 역대급 골키퍼라 평가 받는 김병지, 이운재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가장 중요한 무대인 월드컵에서의 부진이 그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21]

두 차례 월드컵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는데, 월드컵의 레벨이 높아서 긴장한 것인지 그의 무기인 안정감과 판단력마저 반감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후배들인 김승규조현우가 뛰어난 운동 신경을 앞세워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그의 능력들이 더욱 저평가를 받았다.[22] 결과적으로 전성기에는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할 수 있는 좋은 선수였지만, 중요한 대회에서의 부진과 기타 논란[23]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국가대표 커리어에 아쉬움을 남겼다.

J리그 내에서는 가와사키가 정성룡있을 때 리그 최강으로 자리잡고 정성룡의 활약이 길어지면서 J리그 골키퍼 GOAT 논쟁이 나올 정도까지 되었다.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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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프론탈레 2024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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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프론탈레 2024 시즌 스쿼드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일문/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체격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정성룡 Jung Sung Ryong 1985.01.04 191cm/91kg
2 파일:일본 국기.svg DF 타카이 코타 高井 幸大 2004.09.04 164cm/60kg
3 파일:일본 국기.svg DF 오미나미 타쿠마 大南 拓磨 1997.12.13 183cm/76kg
4 파일:브라질 국기.svg DF 제지제우 Jesiel 1994.03.05 186cm/84kg
5 파일:일본 국기.svg DF 사사키 아사히 佐々木 旭 2000.01.26 180cm/74kg
6 파일:브라질 국기.svg MF 제 히카르두 Ze Ricardo 1999.02.03 180cm/72kg
7 파일:일본 국기.svg DF 쿠루마야 신타로 車屋 紳太郎 1992.04.05 178cm/73kg
8 파일:일본 국기.svg MF 타치바나다 켄토 橘田 健人 1998.05.29 169cm/68kg
9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이리손 Erison 1999.04.13 180cm/83kg
10 파일:일본 국기.svg MF 오오시마 료타 大島 僚太 1993.01.23 168cm/64kg
11 파일:일본 국기.svg FW 고바야시 유 小林 悠 1987.09.23 177cm/73kg
13 파일:일본 국기.svg DF 미우라 소타 三浦 颯太 2000. 09. 07 178cm/74kg
14 파일:일본 국기.svg MF 와키자카 야스토 脇坂 泰斗 1995.06.11 173cm/69kg
15 파일:일본 국기.svg DF 타나베 슈토 田邉 秀斗 2002.02.05 181cm/69kg
16 파일:일본 국기.svg MF 세코 타츠키 瀬古 樹 1997.12.22 175cm/71kg
17 파일:일본 국기.svg FW 토노 다이야 遠野 大弥 1999.03.14 166cm/66kg
18 파일:프랑스 국기.svg FW 바페팀비 고미스 Bafetimbi Gomis 1985.08.06 184cm/77kg
20 파일:일본 국기.svg FW 야마다 신 山田 新 2000.05.30 175cm/75kg
21 파일:일본 국기.svg GK 안도 슌스케 安藤 駿介 1990.08.10 185cm/81kg
22 파일:일본 국기.svg GK 하야사카 유키 早坂 勇希 1999.05.22 184cm/80kg
23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마르시뉴 Marcinho 1992.01.31 173cm/64kg
24 파일:일본 국기.svg FW 미야기 텐 宮城 天 2001.06.02 177cm/70kg
25 파일:일본 국기.svg MF 마츠이 렌지 松井 蓮之 2000.02.27 178cm/73kg
26 파일:일본 국기.svg MF 야마우치 히나타 山内 日向汰 1994.02.07 170cm/67kg
28 파일:브라질 국기.svg MF 파트리크 베르온 Patrick Verhon 2004.09.08 174cm/71kg
30 파일:일본 국기.svg MF 세가와 유스케 瀬川 祐輔 1994.02.07 170cm/67kg
31 파일:일본 국기.svg DF 사이 반 베르메스케르켄 ファン ウェルメスケルケン 際 1994.06.28 178cm/73kg
32 파일:일본 국기.svg DF 소마 칸다 神田 奏真 2005.12.29 178cm/73kg
34 파일:일본 국기.svg MF 유이 코타 由井 航太 2005.06.10 180cm/68kg
35 파일:일본 국기.svg DF 마루야마 유이치 丸山 祐市 1989.06.16 184cm/77kg
39 파일:일본 국기.svg DF 카이토 스치야 土屋 櫂大 2006.05.12 181cm/74kg
41 파일:일본 국기.svg MF 이에나가 아키히로 家長 昭博 1986.06.13 173cm/70kg
77 파일:일본 국기.svg MF 야마모토 유키 山本 悠樹 1997.11.06 173cm/64kg
99 파일:일본 국기.svg GK 카미후쿠모토 나오토 上福元 直人 1989.11.17 182cm/76kg
<colbgcolor=#33a1db> 구단 정보
감독: 오니키 토루 / 구장: 도도로키 육상 경기장
출처: 가와사키 프론탈레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마켓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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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월드컵 주전 수문장
이운재
(2002 한국-일본, 2006 독일)
정성룡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조현우
(2018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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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와사키 프론탈레 공식 프로필[2] 해외파 이사.[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4] 청백적의 정성룡! My Number One! My Only One![5]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6] ソンリョン ソンリョンチョンソンリョン 川崎のゴール守り抜け 성룡 성룡 정성룡 가와사키의 골문을 지켜라[7]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8] 2022년 8월 23일 작고. #[9] 2006 미스코리아 경남 진 출신 前 모델.[10] 16개국 본선 16강 조별리그[11] 와일드카드 발탁[12] 2008 올림픽, 2012년 올림픽과 2010 월드컵, 2014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실점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실점할 때 다이빙을 하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13]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스즈키 자이온이 잇따른 볼 처리 실패로 몇 번이나 실점을 허용하여 팀의 탈락에 일조한 걸 생각하면 이는 분명한 강점이다.[14] 20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정성룡의 킥을 박주영이 따내고 떨어진 볼을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잡았으나 빠르게 쇄도한 이청용이 볼을 탈취해 골로 연결했다. 2012 런던 올림픽 한일전에서도 정성룡의 킥을 박주영이 백헤딩으로 구자철에게 연결했고 구자철이 그대로 마무리 지었다.[15] 수비 조율이 우수한 이운재가 최고의 민첩성을 가진 김병지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성룡은 순발력이 떨어져 슈퍼 세이브가 없었지만, 신체 조건과 캐칭 능력, 수비 조율에 높은 평가를 받아 여러 감독들이 선호했다.[16] 세트피스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반사 신경 문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세트피스 상황은 정지된 모션 속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오는데, 높은 크로스나 일반적인 패스는 제공권이 우위인 수비가 그나마 유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상대가 공을 빠르고 낮게 차거나 변칙적인 작전을 쓰면 골키퍼와 수비들의 빠른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그에서 그의 실점 장면을 보면 세트피스 상황에서 세컨볼 실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방어를 성공했을 경우, 최대 강점인 롱킥을 통해 역습 기회를 얻는 등 세트피스에서도 정성룡만의 강점이 있다.[17] 2011 아시안컵 한일전에서는 혼다 케이스케의 페널티 킥을 막았다. 리바운드 슈팅에서 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실점했지만, 이는 혼다가 페널티 킥을 차기 전에 호소가이가 박스 안으로 먼저 침투했기 때문에 사실 오심이다. 반면, 이 경기의 승부차기에서는 일본의 키커들의 방향을 모두 읽긴 하였으나, 이들이 강력하고 빠르게 슈팅을 날린 탓에 하나도 막지 못했고, 1~3번 키커가 모두 실축하며 허무하게 대회를 마감했다. 사실 정성룡에게 주어진 기회는 3번뿐이었기에 하나도 못 막았다고 뭐라 할 건 아니다.[18] 2011년 6월 7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도 아사모아 기안의 페널티 킥을 선방했고, 2012 런던 올림픽 8강전에서 아론 램지의 페널티 킥을 선방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 이전에 램지의 페널티 킥을 한 차례 막지 못해 동점골을 허용한 상황에서 만약 이것마저 막지 못했다면 역전을 당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선방을 해냈다.[19] 신태용 감독 1~2년차에 리그 준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20] 이를 보여준 사례는 정성룡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갖춘 송범근이 당시 최고로 민첩하다고 평가 받은 조현우를 누르고 리그 우승과 최소 실점 타이틀을 가져갔다. 마찬가지의 우승 후보라 평가 받던 울산이 전북보다 약한 수비진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21] 브라질 월드컵 당시 같이 삼대장으로 묶여서 비난 받던 홍명보, 박주영은 각각 울산 감독으로써 우승을 이끌었고, 비록 국가대표 경력은 브라질 월드컵 직후 바로 끝장이 나버렸지만, K리그에서 돌아와서 회복한 폼 등으로 현 시점에는 여론이 많이 희석 된 상황이지만 정성룡은 J리그의 탑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여론 등을 보면 도저히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대중들에게는 '못하는 골키퍼' 하면 대놓고 떠올리는게 정성룡일 정도로 이미지가 안 좋은 상황.[22]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 전에서 자신 대신 투입된 김승규와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뛴 조현우가 맹활약을 할때마다 그의 이름이 네티즌들에게 거론되며 "정성룡이였으면 벌써 먹혔다." 이런 조롱까지 들을 정도였다.[23] SNS 퐈이야♡, 브라질에서 귀국때 면세점 사건[24]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정성룡 이외에도 중고등학교 시절 스카우트를 받아서 제주도에서 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꽤 있는데 막상 대다수의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에서의 출생이 아니면 제주도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뛴 구자철과 제주 출생이기도 한 홍정호가 더 인기가 많다.[25] U-23 대표팀에서의 골이므로 차후 성인 대표팀에서 기록이 나오더라도 최초의 기록을 쓸 수는 있다.[26] 구단이 마케팅 의지라곤 하나도 없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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