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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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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감독 }}}}}}}}}
홍명보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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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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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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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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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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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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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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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김병지
(1998)
홍명보
(1999~2002)
유상철
(2003~2004)

가시와 레이솔 주장
시모타이라 다카히로
(1998~1999)
홍명보
(2000~2001)
와타나베 타케시
(200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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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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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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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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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브론즈볼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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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1994 · 1995 · 1996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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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심볼.svg

파일:K리그 로고(흰색/가로형).svg
2021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7월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FC)
8월
홍명보
(울산 현대)
9월
이병근
(대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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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3월
홍명보
(울산 현대)
4월
고정운
(김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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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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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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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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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선수 및 현 소속 구단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홍명보 은퇴 <colbgcolor=#eeeeef,#191919> 137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2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손흥민 토트넘 홋스퍼 FC 131회 2010.12.30
(vs 시리아)
2024.11.19
(vs 팔레스타인)
4 차범근 은퇴 130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5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6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7 김호곤 은퇴 117회 1971.11.14
(vs 베트남)
1979.03.04
(vs 일본)
8 김영권 울산 HD FC 112회 2010.08.11
(vs 나이지리아)
2024.09.05
(vs 팔레스타인)
9 기성용 FC 서울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10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UAE)
2004.07.19
(vs 요르단)
이동국 은퇴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2017.09.05
(vs 우즈베키스탄)
12 조영증 은퇴 102회 1975.03.19
(vs 베트남)
1986.10.05
(vs 사우디아라비아)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4 박성화 은퇴 101회 1975.07.29
(vs 말레이시아)
1984.12.10
(vs 카타르)
15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FIFA 센추리 클럽 명단 기준 (2024.03.14. 기준)
※ FIFA에서 공인한 기록과 대한축구협회에서 집계한 기록은 차이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 기록실 참고.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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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창립자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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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감독
(1973~1984)
이회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창단 멤버, 3대 감독
(1973~1980), (1987~1992)
최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6대, 11대 감독
(1980~1988, 1991~1992)
박경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두 번째 리그 MVP, 원클럽맨
(1984~1992)
이흥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첫 번째 리그 MVP
(1985~1992)
공문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1987~1998)
이영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1990~1999)
박태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13대 감독
(1991~2001)
황선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대 감독
(1993~1998)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세 번째 리그 MVP
(1992~1997, 2002)
라데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통산 최다 득점자
(1992~1996)
김기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2대 감독
(1991~1993, 2003~2011)
신화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최다 출장
(2004~2016)
김광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다 출장
(2002~2020)
황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다 공격P 및 도움
(2003-2013)
황지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U18 감독
(2004~2017)
}}}}}}}}}}}} ||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FW
황선홍
FW
최순호
MF
김주성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서정원
DF
최강희
DF
김태영
DF
홍명보
DF
박경훈
GK
신의손

파일:K리그 40주년 엠블럼.svg
일간스포츠 선정 K리그 40주년 베스트 11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김주성
DF
하석주
DF
홍명보
DF
최강희
DF
박경훈
GK
김병지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STARS ★
<rowcolor=#000000> 이름 포지션 구단 선정 기준 비고
최순호 공격수 포항제철축구단
럭키금성 황소
K리그 베스트 11 1회
홍명보 수비수 포항 제철 아톰즈 K리그 MVP 1회
K리그 베스트 11 5회
신태용 미드필더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MVP 2회
K리그 득점왕 1회
K리그 베스트 11 9회
K리그 통산 401경기 출전
통산 최다 베스트 11
이동국 공격수 포항 스틸러스
광주 상무 불사조
성남 일화 천마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MVP 4회
K리그 득점왕 1회
K리그 도움왕 1회
K리그 베스트 11 5회
K리그 통산 548경기 출전
K리그 통산 228득점
통산 최다 MVP
통산 최다 득점
LEADERS ▲
<rowcolor=#000> 이름 지도자 경력 수상 비고
김정남 유공 코끼리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우승 2회
올해의 감독상 1회
HONORS ◆
<rowcolor=#000> 이름 공헌 이력 비고
박태준 1973 포항제철 축구단 창단
1990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 포항스틸야드 건립
1992 광양축구전용구장 건립
1994 전남 드래곤즈 창단
2001 국내 최초의 클럽 하우스 건립
2003 국내 최초 유소년 체계 도입
}}}}}}}}} ||

파일:한국갤럽 CI_White.svg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승엽 박찬호 안정환 박세리 홍명보
6위 7위 8위 공동 9위
허재 박지성 차범근 이종범 선동열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박지성 김연아 이승엽 박태환 박찬호
6위 공동 7위 10위
김태균 이용대 이종범 박세리 안정환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 손연재 박태환
공동 6위 공동 8위 10위
손흥민 이승엽 추신수 박찬호 기성용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wiki style="margin: -16px -11px" 1위 2위 3위 4위 공동 5위
손흥민 류현진 김연아 박지성 추신수 이대호 }}}
7위 공동 8위 공동 10위
박찬호 기성용 차범근 이승엽 이동국
2024년
※ 202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손흥민 이강인 류현진 김연아 김연경
{{{#!wiki style="margin: -16px -11px" 6위 공동 7위 9위 공동 10위
김민재 박지성 이정후 박세리 김하성 박찬호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
}}} ||
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파일:홍명보 2024.jpg
<colbgcolor=#e6002d><colcolor=#fff> 이름 홍명보
洪明甫|Hong Myung-Bo
출생 1969년 2월 12일[1] ([age(1969-02-12)]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장동
(現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1cm, 74kg[2], B형[3]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4],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e6002d><colcolor=#fff> 선수 상무 축구단 (1991 / 군 복무)
유공 코끼리[5] (1992)
포항 제철 아톰즈[6] (1992~1997)
벨마레 히라츠카[7] (1997~1998)
가시와 레이솔 (1999~2001)
포항 스틸러스 (2002)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03~2004)
감독 대한민국 대표팀 (2005~2007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7~2008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9~2012)
안지 마하치칼라 (2013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4)
항저우 뤼청 (2016~2017)
울산 HD FC[8] (2021~2024)
대한민국 대표팀 (2024~ )
행정 대한축구협회 (2017~2020 / 전무이사)
국가대표 137경기[9] 10골 (대한민국 / 1990~200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6002d><colcolor=#fff> 등번호 <colcolor=#1c1d1f,#dddddd>20[10]
학력 서울광장초등학교 (졸업)
광희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87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11])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12])
본관 남양 홍씨 (南陽 洪氏)[13]
종교 무종교[14]
가족 본인 1남 2녀 중 첫째
배우자 조수미
장남 홍성민, 차남 홍경민[15]
서명
파일:홍명보서명.png
}}}}}}}}}

1. 개요2. 경력3. 기록
3.1. 선수
3.1.1. 대회 기록3.1.2. 개인 수상3.1.3. 수훈3.1.4. 통산 기록
3.1.4.1. 클럽3.1.4.2. 국가대표
3.2. 감독
3.2.1. 대회 기록3.2.2. 개인 수상
4. 논란 및 사건 사고5. 홍명보에 대한 언사6. 어록7. 별명8. 여담
8.1. 10년 주기설?
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現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

2. 경력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14년간 국가대표팀에서 137경기를 출전한 대한민국 역대 최다 A매치 출전자이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4번의 월드컵에 출전하였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팀 공격의 핵심 역할을 했고,[16] 유럽 강호들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이 때부터 유럽 클럽들도 여러 이적설을 띄우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득표하여 21위에 올랐다.[17] 그의 명성이 정점에 다다른 대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고 한국을 4위에 올려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볼과 월드컵 올스타팀, FIFA 올해의 선수 17위, FIFA 100 등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다.[18]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극과 극을 경험하게 되는데, 2009 U-20 월드컵 8강[19],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차지하는 등 초반에는 연령별 대표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에게서 극찬을 들었으나, 런던 올림픽 이후 감독 경험과 선수 분석 활동도 없었던 상태에서 A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기존에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뜨리고 자신이 올림픽에서 썼던 '런던 세대'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여 '으리 축구' 논란을 일으켰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쇼크를 당하며 부진한 성적으로 국민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20] 결국 월드컵이 끝나고 사임, 이후 2016년 중국 슈퍼 리그항저우 뤼청 감독을 맡았으나 1년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며 사실상 지도자로서 커리어가 끝난 것으로 보였으나 2021년,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으면서 명예회복과 재기를 노렸으며 2022년과 2023년, K리그 2연패를 달성하면서 감독으로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10년 만에 A대표팀을 다시 맡게 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협회와 함께 내외적으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고, 홍명보 본인의 전술적 능력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아 있는 상황.

행정가로서는 호평을 받았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했다. 초반에는 A대표팀 감독 시절의 비판, 낙하산 인사 문제, 당시 축구협회의 논란에 의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다가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에 김판곤홍콩 감독을 초빙하여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 처리를 상당히 개선시켰다. 대체로 감독 시절보다는 행정가로서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실제 재능도 이쪽이 더 높아 보인다. 원래 본인의 꿈은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였는데, 처음부터 협회에서 앉혀준 국가대표 코치 말고 행정가로서의 말단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면 지금보단 평가가 백배 나았을 수도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 때문에 긍정적인 면도 저평가 받았지만, 꾸준히 행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데다 K리그 승부조작범의 사면과 관련해서 완강하게 거부를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2.1.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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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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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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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감독 스타일

전술적인 성향이나 철학, 개인만의 축구관념이 아예 없는 감독은 아니지만, 전술 능력보다는 매니지먼트 능력으로 팀을 휘어잡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형적인 매니저형 감독이며, 펩 과르디올라안익수보단 카를로 안첼로티최강희 같은 유형에 가깝다. 사실 한국에는 전술가형 감독보다는 매니저형 감독이 더 많고, 전술보다는 리더십이나 원팀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강했다. 그러다가 2020년대 들어서부터 한국이 축구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며[21] 서서히 전술가형 감독으로 대세가 변하고 있으며, 매니저형 감독들이 자리를 잃어가는 와중 압도적인 매니지먼트 능력으로 국내 최고 반열에 오른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2.2.1.1. 전술
2.2.1.1.1. 울산 현대 부임 전
홍명보의 초기 감독으로서의 문제점은 홍명보호(성인 1기)/논란과 평가, 홍명보호(성인 1기)/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에 너무나도 잘 정리되어 있으니 이 문서들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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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술 폭이 너무 좁은 감독이라 전술에 관해 논하기는 애매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시절의 홍명보는 4-2-3-1을 응용한 두 줄 수비를 즐겨 사용했다. 국대 시절의 명보볼을 점유율 축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오히려 기성용의 롱패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전형적인 뻥축구+텐백에 가까웠다. 실제로 득점들도 대부분 뻥축구로 얻어낸 득점이 대부분이었고, 이 당시의 득점 루트를 보면 기성용이나 김영권, 정성룡, 윤석영 등이 공을 높이 띄우면 제공권이 받쳐주는 박주영이 떨궈주고 공미인 구자철이나 측면 미드필더 자리로 내려간 윙어인 손흥민, 이청용, 지동원, 김보경[22] 등이 순간적으로 공격 라인까지 치고 올라가 주워먹는 패턴이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윙어들을 철저히 갈아버리는 전술이다. 윙어들로 하여금 피치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게 하며 수비랑 공격을 번갈아 뛰게 해야 되는 전술이라 윙어들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손흥민, 이청용, 지동원, 김보경은 모두 강철 체력으로 유명한 선수들이니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인 전술은 아니지 않냐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력만 문제인 게 아니란 것이 문제다. 당시 손흥민은 아직 포텐이 터지기 전인 유망주였고 이청용, 지동원은 부상으로 부진했으며 김보경도 폼이 엄청 떨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이들을 이용해 텐백+롱볼 역습으로 빈약한 전력을 극복해 보려던 나름의 현실주의 노선 전술은 이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으로 완전히 만화축구로 전락해 버렸다. 애시당초에 구자철은 공미를 소화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처진 공격수에 가깝게 플레이했고, 박주영은 분명 제로톱 같은데 타겟맨에 가깝게 뛰는 등 전체적으로 굉장히 괴상하게 돌아가던 팀이었다. 그리고 이 전술을 들고 나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용병술 솜씨는 미묘한 편이었다. 잘 쓸 때는 진짜 예지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천재적이고 번뜩이는 용병술을 보여주지만[23], 못 쓸 때는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황당한 용병술을 보여주었다.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뜬금없는 용병술을 보여주는 감독.

안타깝게도 홍명보는 감독 스타일상 기본적으로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새로운 선수에 대한 적응 기간이 너무 길어서 원래 아는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말더듬이라 불릴 정도의 눌변으로 악명이 높은 홍명보답게 언변 능력이 워낙 떨어져서 비호감으로 낙인찍히기 딱 좋다. 그리고 추억보정에 약해서 과거에 자신이 한 번 믿어줬을 때 잘해줬던 선수가 지금 엄청 부진해도 이번에도 믿어주다 보면 잘하겠지 하고 굳게 믿으며 팬들이 제발 걔 좀 그만 쓰라 해도 끝까지 믿으며 기적이 일어나길 비는 경향이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때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때 박주영을 끝까지 신임한 것이 대표적인데, 결과적으론 런던 올림픽 때는 진짜 믿음 끝에 기적이 일어났지만 브라질 월드컵 때는 홍명보와 박주영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2.2.1.1.2. 울산 현대 부임 후
자신의 너무나도 좁은 전술 폭의 한계를 깨달은 것인지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은 후에는 4-1-4-1 등 전술의 변화를 주면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2 시즌부터는 경기마다 다른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K리그 감독 중에서는 다채로운 전술 변화를 보여주는 편이다.

주전 선수 대부분이 출전할 수 없을 때는 남은 주전 멤버의 과감한 포변과 교체 멤버들을 활용한 파격적인 용병술로[24] 하늘이 대놓고 지라고 짜놓은 경기에서까지 꾸역승을 해내는 스퀴즈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묘하다는 평가를 듣던 교체 전술도 울산 부임 이후 일취월장해 교체 선수를 투입하고 승리한 경기가 굉장히 많다. 2022년 K리그 파이널 라운드의 사실상의 결승전이라고 볼 수 있는 35라운드 현대가 더비에서 이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김태환을 빼고 마틴 아담을 투입했는데 교체로 들어간 마틴 아담이 추가 시간에만 멀티 골을 꽂아넣고 역전승을 거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발전 덕분에 첫 시즌은 비록 우승은 실패했지만 공격 축구를 보여준 덕에 선수와 관중 모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2022년에는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리그 초반 선두로 치고 나갔고 중반 이후 전북의 급반등으로 매서운 추격을 받았으나 결국 승점 3점 차이로 우승을 이뤄냈다.[25] 이 때문에 2020년 이후 김기동, 이정효보다는 덜하지만 K리그에서 현대 축구를 잘 따라가는 감독이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으니 정말 8년 전과는 다른 감독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홍명보가 명장병 걸린 감독이란 뜻은 아니다. 홍명보의 뜬금포 용병술로 전해지는 사례들은 런던 올림픽 시절 김기희의 군 면제를 위한 센터백 교체나 인천전에서의 설영우 센터백 포변 등 대부분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냥 엔트리 선발 자체가 문제라고 하면 모를까 적어도 용병술 면에선 딱히 비판거리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또한 울산 감독 부임 이후에는 용병술은 잘 들어맞는 모습을 보여주며 적어도 용병술 하나만큼은 K리그 감독 중 상위권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전술가로서의 능력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데, 비록 K리그1 2연패를 이뤄내긴 했지만 2023 시즌 후반기 박용우의 이적 후 팀이 급격하게 흔들린 점[26], 리그 2연패와 별개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연이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끝에 2022 시즌은 조별리그 탈락, 2023 시즌도 하마터면 조별리그 탈락할 뻔하는 위기를 겪었으며[27], 2023 시즌 이후 구스타브 루드빅손에사카 아타루의 인터뷰에서 미묘하게 홍명보가 전술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별로 없다는 듯 지적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 있기도 했기 때문.

울산 현대에서 그의 모습을 조합하자면 여전히 전술가로서의 면모는 조금 떨어지지만 국가대표 시절에 비하면 어느 정도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28], 무엇보다 무난한 용병술, 그리고 압도적인 매니지먼트 능력을 앞세워 울산 현대를 K리그 최강 팀으로 변모시켰다고 할 수 있다.
2.2.1.2. 매니지먼트
감독 생활 내내 전술적 평가에 관해서는 말이 많았지만, 그와 별개로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매니지먼트 능력만큼은 국내에선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평가 받는다.[29] 당장 K리그 감독 P급 라이센스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인 2020년 이전인 2010년에 이미 이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가 신기하게도 홍명보 체제 하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홍명보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국대 감독들을 보면 박종환 시절엔 최순호, 최인영, 이태호, 변병주, 박경훈이 무단이탈 사건을 일으켰고, 김호, 아나톨리 비쇼베츠 시절에는 홍명보가 항명을 했으며, 차범근은 울산 감독 시절 최강희와 대판 싸웠던 적이 있었고, 조 본프레레이을용과 불화를 빚었고, 최강희는 기성용을 위시한 해외파에게 아예 감독으로서 무시당하는 최악의 곤욕을 치렀고, 울리 슈틸리케 시절엔 선수단 전체가 항명을 했으며# 신태용성남 감독 시절 윤빛가람의 태업과 라돈치치와의 불화로 고생했고, 위르겐 클린스만은 팀을 아예 방치해서 손흥민이 은유적으로 감독을 비판하는 등 선수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결국 아시안컵에서 선수단 불화 사태로 이어졌다.[30] 하지만 홍명보가 국대 감독이던 시절만큼은 신기하게도 이 골때릴 정도로 개성이 강한 국대 선수들이 하나같이 순한 양 모드가 되어서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보였다.[31]

전임 감독과의 불화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 기성용과 자기 친구와 불화를 겪고 캐삭빵을 하기도 했던 박주영 등등 성격이 특이하기로 유명한 해외파 선수들을 모조리 품어내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그 악동 집단인 해외파 선수들은 신기할 정도로 홍명보 체제에선 큰 말썽 없이 조용했다. 심지어 월드컵 마지막 벨기에전 이전까진 계속 벤치에만 앉아있었던 김승규, 김신욱과 부상에도 불구하고 감독 명령에 악깡버로 뛰어야 했던 홍정호 등은 홍명보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법한데도 홍명보가 사퇴할 때 격렬히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고, 대표팀 내의 파벌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했던 곽태휘 역시 홍명보를 은근히 실드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저 선수들이 대인배인 게 제일 크긴 하겠지만 그래도 위 사례들이랑 비교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홍명보가 김호, 박종환 같은 소위 '호랑이' 스타일은 아니다. 대표팀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화를 거의 안 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세간에 알려진 꼰대 이미지와 정반대로 선수들과 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군기도 널널하게 잡는 편이다. 자칫하면 호구잡히기 쉬운 성향 탓에 당시 수비 코치인 김태영이 총대 메고 군기반장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데, 김태영이 선수들을 잡고 다니자 오히려 홍명보가 김태영에게 애들 잡지 말라고 혼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고 덕장이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일단 마틴 오닐이나 해리 레드냅마냥 쓸놈쓸 성향도 있고, 코치 시절 미들즈브러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던 이동국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 데려가기 위해 간청하거나 월드컵 시절 부상 여파로 폼이 엉망이던 홍정호, 김영권, 곽태휘를 악깡버로 강제로 경기를 뛰게 하는 등 쌍팔년도 스타일 기질도 있다.[32] 그렇다고 또 그렇게까지 무지성으로 까라면 까 주의자인 건 아니고 선수들을 챙겨줄 땐 확실히 챙겨준다. 덕장과 독재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이것이 조화가 잘못 되면 이도저도 아닌 미묘한 성격의 리더가 될 수도 있지만 홍명보는 이런 두 성향의 조화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된 팀'을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게 말만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이걸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단 게 문제. 사람 사는 세상에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고 그건 팀 내에서도 마찬가진데 홍명보는 이런 팀 내의 분열을 아예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홍명보호의 예를 들면 당시엔 감독 부임 전부터 해외파 VS 국내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고 이 두 파벌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팀내 분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명보가 (자신이 해외파[33]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국내파를 아예 포기하고 해외파로만 대표팀을 꾸린다는 최악의 선택을 했던 걸 생각해 보자.[34]

홍명보의 이런 병적으로 '하나된 팀'에 집착하는 성향은 특유의 인터뷰 스킬에서도 드러나는데, 우선 공식석상에서 자기 선수들을 절대 함부로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선수들의 책임을 홀로 책임지는 등 선수진이 흔들리지 않게 세심하게 신경써 가며 인터뷰를 하는 편이라 팀 내 선수들의 지지도가 상당하다. 타 감독들 중에 경솔하게 자기 선수를 비판하다 팀 내 분위기를 망쳤던 케이스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이건 분명 홍명보만의 장점이 맞다.

반면 (좋지 않게) 자신을 떠난 선수에게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울산의 뒤통수를 치고 J리그로 이적한 오세훈을 두고서는 '우리 선수가 아니니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또한 울산과 임대 연장 계약을 논의하던 중 전북과도 임대 계약에 대해 논의하면서 전북으로 이적한 아마노 준을 두고서는 모두를 당혹케 할 정도로 강한 수위의 비난 발언을 KBS 9시 뉴스 인터뷰 등에서 하기도 했다.[35] 이처럼 자기 선수냐 아니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갈린다.[36]

사실 이건 홍명보의 전략적인 인터뷰라 보는 시각이 많은데, 주축 선수들이 계속 팀과 좋지 않게 헤어지며 팀 내 선수진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위험이 있으면 '탈영병공개처형하는' 방식으로 팀을 하나로 결집시키려 한다는 것. 이렇듯 철두철미할 정도로 팀 분위기를 확실히 휘어잡는 그의 언론플레이는 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지만 (인간적인 면과 별개로) 팀의 감독으로선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대부분인 듯하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다른 국가의 리그에 비해서 조용하고 화제거리가 없는 K리그에서 이런 화제를 만들어 K리그에 관심을 끄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사실 홍명보가 선수들에게 안 먹히고 대접받는 것은 국대 레전드 출신 감독이라는 메리트가 꽤 크다. 카리스마고 뭐고 딴 거 다 집어치우고 그 팀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대선배인데 후배들 입장에선 말 안 듣고 개길 수도 없는 것. 참고로 해외에서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37], 앨런 시어러, 젠나로 가투소, 게리 몽크[38], 지네딘 지단 등 구단 레전드가 그 구단 감독을 맡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들은 감독으로서의 성패와 별개로 높은 확률로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특유의 느낌을 쉽게 설명하자면 군대에서 일이병 시절 군생활 가장 열심히 하던 에이스가 말년 되면 후임들에게 화 안 내고 착해빠지게 행동해도 후임들이 알아서 선임으로서 대우하는 경우랑 비슷하다 보면 된다. 특히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감독 말을 들으면 군면제라는 최고의 포상까지 더해지니 선수들 입장에선 충성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특징들 탓에 국대 감독 시절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감독으로서의) 홍명보를 안 좋게 보지만, 정작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은 가장 존경하는 은사로 홍명보를 꼽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현역 시절 후광빨로 장악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과묵하고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성격, 그리고 언론으로 부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거기에 대한 시선과 비판을 본인에게 돌림으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는 성격과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 리더십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런 리더십은 그동안 울산에게 모자랐던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주며 17년만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쌓아올린 멘탈리티는 다음 해에도 그 진가가 드러났는데, 4번의 동해안 더비와 현대가 더비, 총 8번의 더비 매치에서 겪은 패배는 단 1번 뿐이었다. 즉 아무리 다른 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도 더비에서 잡아야 할 경기는 귀신같이 잡아냈단 소리이며, 근 몇년간 울산이 우승을 놓친 결정적 이유가 결정적 순간에 라이벌 팀들을 만났을 때 이전에 당한 기억이 되살아나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경기를 내주는 바람에 다 잡은 우승이 날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이 위닝 멘탈리티가 홍명보의 울산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들의 인성과 기본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 하다. 울산 현대축구단 일부 선수가 2023년 초 포르투갈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서도 무례하게 행동해 홍명보 감독에게 혼났다는 일화가 있다. 전지훈련 식당 아주머니한테 버릇없이 굴자, 홍명보가 "너희 그러는 게 어른으로서 할 짓이냐?"고 말하며 선수들을 진지하게 혼냈다고. 선수들은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안 치우고 그냥 갔고 홍명보가 이 모습을 목격하고는 "난 축구만 잘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예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그리고 울산 현대의 2023 시즌 우승 이후, 인종차별 사건, 김태환 이적 사가 등을 통해 팀 내부가 상당히 시끄러웠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 와중에도 팀을 휘어잡아 관리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시즌 막판 전술적 능력이 지적되며 고생한 것과는 별개로 다시 한번 매니지먼트 능력 하나만큼은 압도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고평가를 받았다.

2.3. 행정가 경력

2017년 대한축구협회의 파동에 따른 조직 개편에서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39][40] 분명 감독 시절의 실책이 크기는 하지만 선수 시절의 훌륭한 경력과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성과 등 실적이 없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다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홍명보 본인은 이전부터 지도자보다 행정가 쪽으로 꿈꾸고 있었다.

본인의 자서전에도 행정가가 되는 것을 더 희망하기도 했으니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론 본인이 원하던 대로 행정가가 된 셈. 다시 감독직을 절대로 수행하지 않으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단 감독 생활의 끝이 썩 유쾌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로 다시 가닥을 잡았으니 감독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지도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행정가의 길을 갈 작정이라고 한다.

단, 홍명보의 행적에서 드러나듯 축구협회 파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치라인을 탄 인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축구팬들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박지성, 홍명보를 발탁한 협회의 깜짝인사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이자 2002년 추억보정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구조 개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했던 협회의 이미지는 좋아지기는커녕 바닥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41] 애초에 전무이사라고 하면 고위 임원급 보직인데 홍명보는 행정가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행정 실무를 수행한 적은 없으니 못 해도 전무급의 고위직은 아닌 위치에서 시작해야 정상이다. 사실상 낙하산이다.

애초에 행정가라는 어감 때문에 착각하기 쉬울 뿐 우리가 생각하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은퇴 이후 한국 축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고위직을 지망했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서 뛰기 보다는 바로 고위직에 오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해설가들 비판 발언들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2018년 3월 22일 서울특별시 중구 두타몰 특설무대에서 열린 2018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컬렉션 런칭 이벤트 '이빨을 드러내라' 토크쇼에 참석했다.[42]

김판곤을 협회 부회장 겸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데에 홍명보 전무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김판곤 말로는 서로 간의 연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본인을 추천했는지 놀랐다고. [43]

바이에른 뮌헨과 MOU 계약을 맺거나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김판곤과 같이 선수 차출을 위한 협상을 뛰는 등 행정가로서는 큰 실책이라 할 것 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축구협회는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홍명보가 전무이사로 부임하기 전에는 비주류 인사가 선임되기 힘든 구조였으나, 다름아닌 축협의 황태자 소리를 듣던 홍명보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면서 비주류 인사 섭외가 전보다 늘어났다. 김판곤 체제가 결과를 내며 팬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를 초빙하고 뒤에서 힘을 실어준 홍명보 역시 호평을 받았다.

2021년에 KFA의 전무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행정에는 잠시 손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홍명보가 협회에서 물러나더니 김판곤도 손발이 하나씩 잘리면서 그가 구축한 시스템이 무너지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잦아졌고,[44] 결국 김판곤이 물러난 이후 축협이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홍명보와 김판곤이 계속 재평가되고 있다.

한편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이 터지면서 난리가 났는데, 그동안 협회 내부에서 사면론이 꾸준히 일었지만 홍명보 전무가 이러한 주장을 원천 차단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홍명보가 물러나고 나서야 이런 불순한 건의가 협회 윗선에 올라갔다고 한다. 행정가로서 홍명보의 능력이 한번 더 주목된 셈, 덕분에 사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이영표, 이동국, 이임생 등과는 달리 홍명보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아졌다.

홍명보와 김판곤이 나간 이후의 대한축구협회예상대로 '이보다 더 밑바닥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최악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축협 직원이 아시안컵 기간 동안 선수들과 칩을 걸고 카드게임을 하는 건 차라리 애교 수준이고, 심지어 축협 직원이 아시안컵 기간에 홈 유니폼을 횡령해서(...) 요르단전 때 어웨이 유니폼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45]는 어처구니없고 충격적인 기사까지 나오면서, 홍명보는 도대체 혼자 축협에서 무슨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냐며 경악하는 여론이 많아졌다.

2.4. 아시아베켄바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명보가 프란츠 베켄바워를 롤모델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는 홍명보의 자서전을 보면 명확히 드러나는데, 자신의 수많은 별명 중 '아시아의 베켄바워' 라는 별명을 제일 먼저 올려놓았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홍명보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별명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후배 선수들이 홍명보를 존경해서 제2의 홍명보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듯이, 홍명보도 베켄바워를 존경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 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단 당시의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축구팬들은 홍명보를 진짜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고 인식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사실 선수로서의 홍명보와 베켄바워는 선수로서의 클래스는 둘째치더라도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며 홍명보는 사실 리베로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물론, 홍명보의 실질적인 포지션이 바이에른 뮌헨식 앵커맨이었고 베켄바워도 이 포지션에서 자주 뛰었던 걸 생각하면,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호칭도 완전 엉터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홍명보는 자기 자서전에 본인은 은퇴한다면 감독이 아닌 행정가 쪽으로 가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책이 나온 시점인 2002년 월드컵 직전은 바로 베켄바워가 DFB 수뇌부이자 FIFA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서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 베켄바워는 자신의 충실한 오른팔인 페도르 라트만을 대동해 역사상 가장 깔끔한 월드컵 유치전 승리를 거머쥐는 등, 그야말로 축구행정가로서는 전성기를 찍던 시점이다. 그리고 베켄바워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행정가 중에선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나마 미셸 플라티니가 베켄바워랑 비슷한 위상까지 올랐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축구행정가인데, 막후 거래와 관련해서 말은 많아도 적어도 일은 잘한다는 평을 받는 베켄바워와는 달리 플라티니는 부패한데다가 일도 못한다는 평을 듣는 것을 보면 사실상 베켄바워 말고는 세계구급 축구행정가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타플레이어는 없다고 봐도 좋다. 홍명보도 그런 베켄바워를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아 배우고 싶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베켄바워는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성공했는데 홍명보는 베켄바워랑 비교하면 감독 경력은 초라한 편이었다. 물론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과 같은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나 항저우 뤼청 감독 시절처럼 안 좋은 기억이 많았다. 그래도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해서 다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고 2022년에 울산을 17년 만의 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감독으로서도 자랑할만한 경력을 만들어내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이미지를 점점 각인시키고 있다.

어쨌거나 홍명보는 베켄바워가 거쳤던 길인 스타플레이어 → 명장 감독 → 행정가 수뇌부의 길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중이다.[46][47] 적어도 행정가로 뽑히는 선임 과정에 관해선 굉장히 논란이 많은 홍명보였지만 그가 행정가로 일했을 때는 유능하단 평을 듣고 있다. 홍명보를 싫어하는 안티들마저도 행정가로 일하는 부분에서는 비판이 거의 없을 정도다.

3. 기록

3.1. 선수

3.1.1. 대회 기록

3.1.2. 개인 수상

3.1.3. 수훈

3.1.4. 통산 기록

3.1.4.1. 클럽
<rowcolor=#fff>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rowcolor=#fff>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2 포항제철 아톰즈 한국프로축구대회 29 1 - - 8 0
1993 포항제철 아톰즈 한국프로축구대회 11 1 - - 1 0
1994 포항제철 아톰즈 코리안리그 17 4 - - 0 0
1995 포항 아톰즈 코리안리그 24 1 - - 7 0
1996 포항 아톰즈 프로축구대회 29 7 0 0 5 0
1997 포항 스틸러스 프로축구대회 0 0 0 0 6 0
1997 벨마레 히라쓰카 J리그 10 0 3 1 0 0
1998 벨마레 히라쓰카 J리그 32 2 2 0 0 0
1999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1 28 5 4 2 5 2
2000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1 29 2 2 0 2 0
2001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1 15 0 0 0 3 0
2002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9 0 0 0 0 0
2003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25 0 2 0 - -
2004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31 0 0 0 - -
3.1.4.2. 국가대표
2002년 11월 20일 기준이다.
<rowcolor=#fff> 연령 출전
U-17 0 0
U-20 0 0
U-23 1 0
A대표 136[54] 10
합계 137 10

3.2. 감독

3.2.1. 대회 기록

3.2.2. 개인 수상

4.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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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홍명보에 대한 언사

파일:na1339632097.jpg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해설자[55]
"홍명보가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지금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리스트 랍 휴스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 있는 것 같군요."
이탈리아 해설자, 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는 홍명보를 보고[56]
"나폴리를 떠나 유벤투스로 가게 된 치로 페라라의 자리를 홍명보로 메우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SSC 나폴리 구단주, 1994년 홍명보의 영입에 실패한 후
"한국이 예선탈락한 것은 결코 한국 축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차범근 감독은 홍명보같은 유능한 선수를 몰라봐 그를 공격수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57]
아나톨리 비쇼베츠
"그 주장(홍명보)의 플레이를 정말 좋아한다. 경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뛰어난 수비수다. 그런 수비수가 있어서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리오 퍼디난드[58]
"골대를 지키고 있다 보면 앞에 선 등번호 20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미나미(가시와 레이솔 골키퍼)
"좋은 선수는 많지만 위대한 선수는 많지 않다. 위대한 선수란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성품, 태도, 마음가짐 모두가 균형을 이루는 선수다. 그런 면에서 선수 홍명보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이영표
"선수 시절 홍명보에게서 나오던 아우라는 김민재도 따라하기 힘들 것이다. 실력도 정말 좋아서 전성기였다면 유럽 5대 리그 빅클럽에서도 기용되었을만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천수

6. 어록

선수 시절 및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는 말을 잘 더듬고 말실수가 있었으나 울산 현대 감독 부임 후에는 매니지먼트 문단에도 나와있듯이 온갖 명대사를 기깔나게 잘 뽑는다.[59]
볼이 뜨는 경합 상황이 오면 바셔버려.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동메달 결정전 당시, 경기 시작 전 미팅에서.[60]
니네 거짓말쟁이야 새끼들아!?
그 사람들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해. 그 사람들은 그 결과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이야.
자 수고했고 경기 결과 아쉽지만... 이거는 경기 결과, 결과를 떠나서 다른 이야기이지만 너네 왜 경기 계속하면서 조금만 부딪히면 아! 하고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 심판 쳐다보고. 여기는 내가 얘기했지! 인터내셔널 매치라고. 그러고 골 먹고 전부 다 심판(보고) 손 들고. (운동가방을 걷어차며) 이게 팀이야?? 이게 팀이야!?!? 전부 다 넘어지면 "아!", "아!"! 내가 분명히 얘기했지! 이건 또 다른 경기라고, K리그 아니라고!! 더 힘들면, 넘어지면 빨리 일어나서 다음 갈 생각을 해야지. 넘어지면 손 들고 레프리 쳐다보고! 이거는 경기 결과하고 다른 얘기야. 니들의 이 부분은 오늘 분명 최악이었어 내가 보기엔!
푸른파도2 4화에서 나온 대사로, 아마도 축구팬들에게 제일 유명할 발언이다.
우리 서포터를 솔직히 이야기하면 굉장히 다른 서포터들에 비해서 양반이야.
한가지만 딱 얘기할게. 오늘 끝나고 니네들이 정말로 좋은 선수, 잘하는 선수라고 한다고 하면 이번주 주말에 이겨. 경기 내용이고 컨디션이고 필요 없어. 이겨. 이기는 길밖에 없어. 무슨 얘긴지 알겠어? 이길 수 있어. 빨리 이틀동안 회복해가지고 주말에는 진짜로 우리 팬들 실망시키지 말자.
22년 FA컵 4강 현대가 더비 탈락 후
마지막 날 여러분한테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유감이고... 우리는 지금 계속 이 과정에서 어떤 선수가 어떤 선수와 조합이 잘 맞는지 계속 지켜보는 과정인데 내가 그 안에서 조끼를 못 입었다고 해서 벌써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 보이고 그런 선수 몇 명 있어. 용병도 마찬가지고. 나한테 중요한 것은 누구였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한테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만큼 좋은 태도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중요하지. 내가 누구였나, 지난 해 어떻게 했다,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여기는 모두 다 11명을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자리고, 조금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경기장에 나가야 하는 게 맞아. 그렇게 아니면은 너네 다 죽어. 올해 다 죽는다고. 작년에 우승한 거? 작년에 우승한 거 누가 지금 기억해? 어제 내린 눈이야 보이지도 않아.[61] 작년에 우승했다고 올해 쉬울 것 같아? 내가 얘기했잖아. 더 어려울 거라고. 내가 굉장히 오늘 마지막 날이라서 내가 너네한테 이런 얘기 하는 게 굉장히 유감이야. 진짜로
푸른파도3 1화
세상에는 완벽한 준비라는 건 없어. 그 준비가 얼마만큼 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도 결과를 낼 수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고. 이제 개막전, 38경기 중에 한 경기야. 3점을 따도 되고, 1점을 따도 되고, 0점을 따도 되는 경기야. 근데 세상 살다 보면 똑같은 일이지만 어떤 걸 너무 많이 잃을 수도 있고, 어떤 건 너무 많이 얻을 수도 있는 거야. 우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또 어떤 내용을 가져오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많은걸 잃을 수도 있고, 또 많은걸 얻을 수도 있다고. 전북? OK, 다 인정해. 걔들이 얼마나 칼을 갈겠어? 얼마나 우릴 죽이고 싶겠어? 근데 그걸 알고도 그냥 칼을 맞아? 걔들이 정말 총칼을 들고나올걸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고 거기에 맞으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니야. 예측하고 대비해. 개인적으로도, 팀으로도.
푸른파도3 2화
승점 3점 딴 거 축하할 일이고 기뻐할 일이야. 근데 그거 외에는 후반전은 내가 보기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아. 여러분 만족해, 후반전? 이런 축구 계속 할 거야? (중략) 승점 3점 딴 거 OK, 6연승 OK. 그거는 여러분들이 축하받을 일이고 기뻐해야될 일이야.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나은 팀으로, 더 강한 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즐겁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하게 반성할 때는 반성하자고.
푸른파도3 3화
축구란 게 내 마음대로, 준비한 대로 되면 그게 축구야? 축구 아니라고.
푸른파도3 5화
내가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항상 어떤 상황이라도 배움의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모든 일들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지. 여러분한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러분 인생이나 축구가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러분이 제일 잘해야 되는 건 축구야. 괜히 SNS에 감성글 올리고 '내 기분이 어떻다', '나 어디 가서 옷 샀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럴 수 있다'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거는 그게 아니라 운동장에서 좀 더 시간을 내서 땀 흘리고, 부족한 거 메워야 되고, 그게 제일 여러분한테는 중요한 거라고. 근데 여러분이 축구만 잘하면, 문수경기장 안에 가면 그건 내가 직접 느낄 수 있어. 아니 눈으로도 볼 수 있어. 거기에 여러분 보이지 않는 거에 자꾸 손 뻗으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거기에 좀 더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어.

내가 여러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패배에 대해서, 물론 패배라는 거는 굉장히 뼈아프고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돼. 하지만 특히 우리 울산 같은 경우는 이제 1번 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약올리고 더 해. 내가 얼마 전에 얘기했지?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우리가 경기장에서 이기는 거야. 그거 외에는 답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우릴 시기해? 경기장에서 더 얄밉게 축구하면 돼. 그리고 승리를 가져오면 되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푸른파도3 7화
지금은 운동장에서 웃지 마. 웃지 말고 고통 느끼면서 전북전 이길 때까지 참아. 그 다음에 웃어. 그 다음에 전북 박살낸 다음에 웃으라고.

오늘 지금 밖에 날씨 덥고, 습도 높고, 여러분 집중력 떨어져. 하지만 어느 누구도 90분동안 휘슬 불기 전까지 집중력 떨어뜨리지 말잔 말이야. (중략) 오늘 팬들도 많이 왔는데 오래간만에 우리가 팬들한테 결과? OK. 결과 주는 게 제일 좋아.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뭔가 감동 있는 경기를 한번 해보자고.

세상에 예를 들면은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좋지 않을 때 일반 사람들하고 달라. 더 그만큼 혹독한 시간을 보낸단 말이야. 여러분도 마찬가지야. 나는 매일매일 웃으면서 운동할 수 있어. 근데 그게 꼭 답은 아니야. 어떨 때는 우리가 힘든 모습도 보여야 되고, 힘들어 해야 되고, 그래야지 오늘같이 통쾌한 승리가 있단 말이야.
푸른파도3 8화
상대 선수 명단 보지 말고 팀을 보라고 얘기한 적 있어. 뭔가 안도하는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왜? 여기 지금 나온 멤버 보고. 경기는 뭔가 우리가 만들어 가는가 하지만 또 중요한 순간에 어택 해가지고, 서로 우왕좌왕하다가 실점할 거고 그럴 거라고. 여러분들 내 말 명심해. 내 말대로 다 되니까.
푸른파도3 11화
자신감이란거는 행동하는 거야. 시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거기에서 실수하더라도, 생각해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여러분들이 뭔가 또 배우면서, 느끼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푸른파도4 3화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밖에 없습니다. 이게 제가 팬들에게 말한 것과 달리 마음 바꾼 이유입니다.[62]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실패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반대로 강한 승부욕이 생겼습니다.[63]
"그 사람들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해. 그 사람들은 그 결과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이야."
푸른파도2 EP 2

7.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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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담

파일:9b7600a4a311f25c3d70d985cdde2795.jpg* 울산 감독 부임 후 주목받고 있는 사실인데 아주 높은 확률로 ~하자고 라는 말투를 사용한다.

파일:20121011033566.jpg

8.1. 10년 주기설?


이전부터 축구팬들 사이에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 4강을 이뤄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으니,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한국이 다시 한번 호성적을 내는 게 아니냐" 라는 10년 주기설(?)이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가 울산 감독으로서 17년 만에 울산 현대에 우승을 안기자, "사실 10년 주기설의 주체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홍명보가 아니냐" 라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고 실제로 홍명보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데,
그리고 결국 대표팀 역시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서 10년 주기설은 대표팀과 홍명보 모두에게 적용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2032 브리즈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을 홍명보가 맡으면 무조건 금메달이라는 드립도 있다. 한술 더 떠서 2042년까지 월드컵 감독을 시키면 우승할 거란 드립까지 나왔는데 물론 이때 홍명보의 나이는 74세가 되기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를 통해 월드컵 최고령 감독 기록을 갱신한 루이 판할 전 감독이 7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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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68년 12월 26일. 당시에 있었던 빠른 생일로 1968년생인 황선홍과 친구로 지내고, 1969년생인 사람들은 홍명보를 선배라고 부른다.[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프로필[3] https://m.blog.naver.com/trues7/60006431845[4] 스위퍼[5] 신인 지명 후 1대3 트레이드로 포항 이적[6] 현 포항 스틸러스.[7] 현 쇼난 벨마레.[8] 2023년(23-24 ACL 포함)까지는 울산 현대.[9]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1위. 1998년 3월 7일에 열린 홍콩 대표팀과의 다이너스티컵 경기를 포함하여 137경기로 대한민국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로, 홍콩 팀에 게리 매키언(Gary McKeown)이라는 잉글랜드 국적의 외국인 선수가 기용되어 있어서 대한축구협회와 홍콩 축구 협회는 A매치로 인정하지 않아 136경기로 기록되었지만 FIFA에서는 이 경기를 A매치로 인정하여 총 137경기로 기록한다.[10] 홍명보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 이후 국가대표에서 장현수, 권경원 등 대체적으로 수비수들의 고정 등번호가 되면서 K리그 내에서도 주로 수비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기도 하다.[11] 석사 학위 논문: 운동선수의 무산소와 유산소 훈련 특성이 항산화 효소와 지질과산화에 미치는 영향(2005. 2, 지도교수: 김성수)[12] 박사 학위 논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2016. 8, 지도교수: 강현민)[13] 당홍계(唐洪系) 34세손 ○표(杓), ○식(植)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고, 장남 홍성민이 35세손 성(性)○ 항렬을 사용했다.[14] #[15] 공교롭게도 두 아들 모두 가수 홍경민과 동명이인이 됐는데, 바로 홍경민의 본명이 장남의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16] 스페인과의 24강 조별리그 1차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득점에 모두 관여했고, 최종전인 독일전에서는 0:3으로 뒤진 후반전 상황에서 황선홍과 함께 연달아 득점하여 2:3까지 치고 올라갔었다.[17] 다만, 이 시기에는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 대표팀이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고 홍명보 본인도 태업 의혹을 받던 시기였다.[18]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급 선수가 나오기 힘든 포지션이 센터백과 골키퍼인데 동양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체구가 작고, 체구가 클 경우 민첩성 등에서 손해를 보는데 이 부분이 센터백으로서 가져야 할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아 센터백들 중 이 만한 수상 경력을 쌓은 선수는 없으며, 독보적인 위상을 가졌기에 역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시아 베스트 11을 뽑을 때 그의 파트너로 거론될 수 있는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에서 활동한 요시다 마야, 라만 레자에이, 쑨지하이 정도. 사실 굳이 센터백으로 한정하지 않고 차범근, 손흥민을 포함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와 비교했을 때도 홍명보는 국가대표로서 이룰 수 있는 걸 대부분 이뤘다고 볼 수 있다.[19] 6위[20]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문서와 홍명보호(성인 1기)/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 참고.[21] K리그나 한국 국가대표 축구 자체가 워낙 저평가가 심하게 당해서 그렇지 한국도 이제 어엿한 축구 선진국이 맞다. 다만 아직까진 그 끝물에 겨우 합류한 데다가, 돈의 흐름이 지나치게 적고, 중동마냥 스타 선수 영입이 아닌 유스에 투자하는 스타일이라 일본이나 중동처럼 스타 플레이어들이 잘 오지 않기에 저평가받을 뿐이며, 세간의 오해와는 다르게 세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 리그도 아니다. 애초에 전 세계 어느 스포츠나 세금이 안 들어가는 스포츠는 없다.[22] 아마 박지성이 국대 은퇴를 번복했다면 박지성도 무조건 이 윙어 포지션에 투입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술에는 체력이 되고 수비력도 좋은 윙어가 필수이기 때문.[23] 대표적인 게 런던 올림픽 영국전 때 지동원을 투입했던 것이다.[24] 코로나 집단 감염과 국대 차출로 기용 가능한 센터백 자원이 부족할 때 풀백을 좌우 스토퍼로 놓았고 윙어를 윙백에 놓는 3-4-3 전술로 풀 주전 상태인 포항을 상대해 이겼다. 당시 포항의 감독이 졸장도 아니고 명장인 김기동이었음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25] 물론 이는 라이벌 전북 현대 모터스김상식의 지휘 하에 졸전을 펼치며 초반 우승 레이스에서 승점을 많이 잃은 탓도 크다. 그래도 김상식이 크게 비판 받을 일이지 어쨌든 리그 선두를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홍명보의 지휘가 그렇게 폄하될 이유는 없다.[26] 물론 이는 외부적인 문제가 크게 터진 때라 전술 하나로 커버치기는 어려웠다.[27] 저장 FC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99분 극장골을 넣은 덕분에 멜버른 시티를 조 2위 경쟁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만약 그 골이 없었으면 결과적으로 울산은 2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이였다.[28] 다만 이러한 평가도, 23-24 AFC 챔피언스리그 4강 요코하마와의 2차전에서의 경기로 인해 퇴색되었다. 10년 전 본인이 저지른 실수였던 믿음의 축구, 상대가 전반 퇴장 당했음에도 위협적인 공세를 전혀 펼치지 못하고 승부차기까지 끌고가 결국 떨어졌기 때문. 무려 10여년전의 대참사를 통해 성장한 부분이 있었다면 보여선 안될 모습들을 그대로 보였다. 심지어 요코하마가 퇴장당해서 망정이였지 그렇지 않았으면 전반부터 3:0이라는 대참사격인 스코어로 시작했던 것은 덤.[29] 이로 인해 울산에 부임하면서부터는 이런 저런 명대사도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 개요 문단의 대사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팀 드립까지 있었다.[30] 거스 히딩크허정무는 성적으로 선수들에게 인정받은 특이 케이스니 제외. 조광래이청용이 그의 전술을 어려워한 탓에 불평한 적이 있긴 하나 선수와의 관계는 결코 나쁘지 않았으며, 파울루 벤투는 아시안컵 도중 이승우가 출전하지 못 한 것에 불만을 갖고 물병을 걷어찬 사건이 있었지만 이걸 제외하면 국가대표 팀에 뽑힌 선수들이 벤투의 능력을 상당히 신뢰하며 그를 잘 따르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결국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로 따라와주었다.[31] 현재 울산 홍명보 감독의 핵심 주전인 김영권이 BJ 감스트와 합방에서 이야기하길 본인이 청대시절 당시 홍명보 감독에게 몇 안되는 쌍욕을 먹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는데, 일화로 훈련 중 집중력이 떨어진 나머지 기본적인 실수를 엄청해 훈련을 중단시키고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 불러세운뒤 "야 김영권 네가 축구를 그렇게 잘해?"라며 팀에서 나가라고 들었었고 나중에 숙소 도착 후 "진짜 짐을 싸야 하나?"라고 고민할 때 홍명보가 감독실에 따로 본인을 불러 "오늘같은 정신 상태면 짐싸서 나가라. 하지만 앞으로 오늘 같은 정신 상태를 갖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하면 너는 내가 앞으로 데리고 가겠다."라고 이야기 해 김영권이 홍명보 감독에게 감동을 먹었다고 이야기했다.[32] 이 탓에 이동국은 커리어가 꼬여버렸고, 월드컵 수비진의 경우 말 그대로 시원하게 멸망했다.[33] 해외파의 주축은 거의 대부분 런던 올림픽 당시의 멤버들이다.[34] 사실 이 대표팀 내의 균열은 홍명보뿐 아니라 후임 감독들조차 완전히 봉합하는 데 실패했고 이 모든 사태의 만악의 근원기성용이 은퇴한 뒤에야 수그러들었다.[35] 49초부터[36] 그리고 2023 시즌 홈 개막전에서 전북을 상대했는데 울산 서포터들이 うそつき あまの(거짓말쟁이 아마노의 일본어) 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아마노를 디스했다.[37]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미들즈브러의 감독인 스티브 맥클라렌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미들즈브러를 떠나자 선수 생활 은퇴와 동시에 미들즈브러의 임시 감독을 맡았다. 사실 감독 부임 당시에 제대로 된 자격증이 없어서 임시 감독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전 시즌부터 맥클라렌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임시 감독 부임 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후에 정식 감독으로 임명된다.[38]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 도중에 전임 감독 미카엘 라우드럽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고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정식 감독이 되었다. 사우스게이트와 비슷하지만 시즌 도중에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다는 차이가 있다.[39] '축구협회 조직개편... 전무 홍명보, 유스본부장 박지성', 김태현, 국민일보, 2017년 11월 8일[40] 참고로 박지성은 유스전략본부장이고 기술발전위원장은 놀랍게도 이임생. 19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카리스마 캡틴이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란 점을 높게 산 듯하다.[41] '한국축구 쇄신 핵심 '홍명보·박지성' 위기 탈출 '특급 조커'로 나선다', 권영준, 스포츠월드, 2017년 11월 8일[42] 인사말하는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이사, 2018년 3월 22일, 네이버 스포츠 박지혜 기자.[43] 당시 김판곤은 홍콩 국가 대표팀 감독을 비롯, 홍콩 축구협회의 전반적인 큰 역할을 맡으면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으나,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감독님이 적격 인 것 같습니다.‘ 라는 홍명보의 설득에 ‘도저히 거절을 할 수 없었다.’ 라고 회상 하였다.[44] 대표적으로 U-23 대표팀 감독 선임이 있다. 김판곤파울루 벤투 때처럼 검토, 인터뷰, 재검토 등 절차를 거치려 했으나, 감독 후보 인터뷰도 다 안 끝났는데 협회 높으신 분들이 냅다 황선홍으로 결정해버렸다.[45] 사실 이 경기는 요르단 측이 홈 유니폼을 입은 경기였지만, 어차피 요르단 홈 유니폼은 상하의 둘다 흰색이다. 홈, 어웨이라곤 해도 원래 흑백TV에서 상대팀과 겹치지만 않으면 홈 유니폼을 입는 게 원칙이다.[46] 미셸 플라티니도 의외로 베켄바워랑 비슷한 행보를 걸었었는데, 플라티니 역시 베켄바워처럼 은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인 프랑스의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그러나 베켄바워가 2번의 월드컵 결승 및 한번의 우승, 1번의 유로 준결승을 찍은것에 비해 플라티니는 1990년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유로 1992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초라하게 감독 커리어를 마무리했다.[47] 홍명보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의 부진과 항저우 시절이 흠이지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동메달을 따기도 했고, 2021 시즌 울산 현대에서는 무관에 그치긴 했지만 전북 왕조를 위협하며 다음 시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22 시즌에는 다양한 전술로 1위를 지켜 우승을 시켰다.[48] 1996, 2002[49] 팬 투표[50] 2000년 폐지[51] 이광종과 공동 수상[52] 팬투표,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모두 포함되었다.[53] 02 월드컵 선수단 전원 수훈[54] 근거 대한축구협회 기록실 https://www.kfa.or.kr/archive/etc_record.php[55] 어찌보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홍명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로도 볼 수 있다. 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조.[56] 다만 이 말은 해설자가 홍명보를 칭찬한 게 아니라 그 말디니를 두고도 옆에서 수비를 조율하려 드는 걸 보고 비꼰 거라는 의견도 있다.[57] 이 발언은 여러모로 이상한 게, 홍명보는 미드필더로 놓기에도 기본기가 부족한 편이었지만 탁월한 축구 지능으로 리베로 역할을 맡은 선수인데 이런 선수를 공격수로 놓지 않았기에 탈락했다는 얘기는 상당히 기괴하다. 오하려 차범근호에서 홍명보는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그나마 좋은 평을 받았었다.[58] 2005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박지성이 리오 퍼디난드 본인에게 들었던 내용을 인터뷰에서 밝혔다.[59] P급 라이센스 과정에 면접과 논문도 있기에 감독들은 무조건 말을 잘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죽어라 연습한듯.[60] 이 말은 2023년 K리그 공식 유튜브 채널 인터뷰를 통해, 홍명보 본인이 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았다.[61]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가 결승에서 서독에게 패한 후 한 말을 인용했다.[62] 거절의사를 밝혔던 국가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이유를 밝히면서[63] 로빈 반 페르시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면서 남긴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속삭였다"는 말과 유사하여 화제가 되었다.[64] 홍명보는 2012년 올림픽 대표팀에서 동메달을 지휘하여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김영권, 지동원 등이 병역특례를 받았고, 황선홍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서 금메달을 지휘하여 백승호, 정우영, 홍현석, 이강인 등이 병역특례를 받았다.[65] 홍명보는 기분이 수틀리면 욕 대신 그 특유의 돌부처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살짝 깔고 노려보는 버릇이 있다. 대표적으로 술집에서 홍명보를 만난 알바가 술을 잘못 내왔던 썰 등이 있다.[66] 이 만화는 학산문화사에서 정발되었다.[67] 몇몇 자막에서는 제이온스라고 되어 있다. 뜻은 같고 발음의 차이다.[68] 하석주월드컵 때 자신이 한 실책이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이후로 차범근과 연락을 못 했다고 한다.[69] 2022년 기준 한국 남성 평균키가 172.5cm인 것을 감안하면 홍명보의 연령대는 물론 요즘 젊은 사람들과도 비교했을 때 매우 크다.[70]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정규리그, 플레이오프, EASL을 모두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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