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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07><colcolor=#ffffff> 최홍만 崔洪萬 | Choi Hong-man | |||
별명 | 테크노 골리앗[1] | ||
출생 | 1980년 10월 30일 ([age(1980-10-30)]세) | ||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본관 | 해주 최씨 (海州 崔氏) | ||
신체 | 218cm, 160kg[2], 235cm[3], 370mm, B형[4] | ||
데뷔 | 2000년 LG투자증권 황소 입단(씨름 선수) 2005년 3월 19일 K-1 서울 그랑프리 2005(입식격투기) | ||
씨름 | LG투자증권 황소 (2000~2004) | ||
입식 전적 | 22전 13승 9패 | ||
승 | 7KO 6판정 | ||
패 | 3KO 5판정 1기권 | ||
종합격투기 전적 | 9전 4승 5패 | ||
승 | 3KO, 1SUB | ||
패 | 3KO, 2SUB | ||
타이틀 | K-1 2005 서울 그랑프리 우승[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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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형[8] | ||
종교 | 개신교[9] | ||
병역 | 전시근로역 | ||
학력 | 서울자양초등학교 (졸업) 한림중학교 (졸업) 경원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동아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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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씨름, 킥복싱, 종합격투기 선수.2. 선수 경력
2.1. 씨름 경력
학창시절부터 큰 키와 힘을 가졌었기에 배구, 농구 등 여러 곳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었고 당시 먹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 시절 최홍만은 씨름부에 들어가면 맛있는 걸 많이 준다고 해서 씨름부에 들어갔다. 실제로 트레이닝이나 훈련 만큼 증량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스포츠인 만큼 식사나 간식을 많이 지원해주는게 씨름이다.
2002년, 부산 동아대학교를 나오고 같은 해에 LG투자증권 황소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씨름에 입문함으로써 데뷔했다. 프로 대회 첫 출전은 동아대학 시절 초청 선수 자격으로 했었는데 누가 봐도 상체에 비해 빈약한 하체가 눈에 보일 정도였고 당시 해설자도 이를 지적할 정도였다. LG에 입단 후 첫 대회에선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하체를 보강하고 나왔다.
씨름 선수였을 때도 최상위권의 강자로 천하장사 1회, 백두장사 3회를 기록하는 등 우승 경력이 좀 되는 프로씨름의 레전드 중 한 선수였다. 민속씨름 2년간 통산 전적은 79경기에 출전해 51승 28패(승률 64.6%)를 기록했다. 하지만 강호동 이후부터 시작된 기술을 배제한 힘씨름빨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굉장히 루즈한 진행으로 특히 같은 거인인 선배 김영현하고 붙으면 경기 시간이 씨름인지 축구인지 구별이 안 갔을 정도.
인간극장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인의 꿈은 자신에게 맞는 집을 지을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었다.[10]인간극장
218cm에 160㎏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외모를 가지기도 했고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과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 시절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오며 엔터테이너 이미지을 쌓았다.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 차츰 씨름판이 막장이 되자[11]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하지 않고 K-1으로 전향했다.
당시 최홍만과 LG의 팀 메이트들은 프로씨름의 사장화를 크게 우려하면서 길거리로 나가 씨름 팀 해체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씨름 선수이면서도 단식투쟁을 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든 씨름판을 살리지는 못했다.
최홍만이 K-1 진출을 선언하자 씨름연맹은 최홍만을 영구제명을 때림과 동시에 그간의 타이틀 획득 경력도 모두 삭제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타이틀 박탈에도 최홍만은 K-1 등에서 한국의 요코즈나[12]로 홍보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홍만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프로 씨름 천하장사 출신인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2.2. 입식 타격기 전적
- 주요 승: 와카쇼요, 아케보노(3),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 톰 하워드, 밥 샙, 실베스터 터케이, 세미 슐트, 마이크 말론, 개리 굿리지, 우치다 노보루
- 주요 패: 레미 본야스키, 제롬 르 밴너(2), 마이티 모, 바다 하리, 레이 세포, 저우진펑, 이롱, 다비드 미하일로프
2.2.1. K-1
한국인으로는 3번째로 K-1에 진출했다.[13] 등장 신 테마 음악은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N.EX.T - <Lazenca, Save us>[14][15]엄청나게 큰 덩치와 씨름 선수였을 당시의 경력으로 인해서 꽤 주목을 받았으며, 격투기 실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등장과 동시에 2005년 3월 서울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아시아 챔피언이 돼 버렸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 토너먼트 출전 선수들과 대진표가 막장이었다.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 중 (그나마) 가장 강한 선수가 카오클라이었는데 최홍만과의 체중 차이가 거의 80kg 가까이 났다...[16] 게다가 최홍만이 있는 토너먼트 블럭에서는 그 유명한 아케보노와 당시 45세였던 '심판 카쿠다 노부아키, 당시 39세였던 스모 선수 출신 와카쇼요 등
같은 해 6월 히로시마에서 프로레슬러 '그린베레' 톰 하워드를 1라운드만에 KO시키면서 '살인 니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18] 또한 7월 하와이 대회에서 아케보노와 2차전을 가져 1라운드에 다운만 2번 뺏어내는 등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며 KO승으로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사실 이 경기는 승리를 거둔 것보다 경기 후 관중석에 앉아있던 마이크 타이슨을 도발한 것이 큰 이슈가 되었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야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스탠딩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보다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 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했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다만 경기시간 무제한으로 두고 맞붙었더라면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최홍만이 본야스키 앞에서 눕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경기 내용인 만큼 본야스키가 판정승을 거뒀다 한들 부당한 경기 내용은 결코 아니었다. 둘의 격투센스는 넘사벽이기 때문이며 그나마 최홍만은 신체스펙빨로 여기까지 버텼을 뿐인데 맷집 빼고 모두 가진 본야스키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백과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은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회피하거나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데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케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 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케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시키며 판정에서 한 라운드를 가져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 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19]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며 까이는 게 많이 줄었다.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격투머신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인다. 세미 슐트는 실력이 분명 뛰어나지만 어디 가서도 안 꿀릴 무지막지한 피지컬도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데, 최홍만은 세미 슐트의 피지컬을 더욱 능가하는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 중 한 명이므로 슐트가 여지껏 상대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생소한 유형의 상대라 파이팅이 좀 꼬인 부분이 있는 반면, 최홍만은 밥 샙, 아케보노 등을 당시까지 많이 상대해봤으므로 거인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했던 시점이기도 하다.
최홍만은 슐트의 코쪽 부위에 출혈을 일으키거나[20]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21]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반적인 경기 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였기에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음에도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22]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23]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절대 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최홍만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승부가 가장 적절한 판정이었을거라며 자신의 판정승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밥 샙에게 먹인 니킥과 더불어 한국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
2006년 7월, 최홍만에게는 잠시 쉬어가는 매치로 이미 두 번이나 붙어 이겼던 아케보노와 마침내 3차전을 치렀다. 220kg의 몸무게에서 193kg까지 감량을 하고 나름 아웃파이트를 준비해 온 아케보노였지만 경기에서는 샌드백이나 다름없이 공격을 제대로 막지도 못 했다.
심지어 최홍만이 이전까지 잘 안 사용하던 미들킥, 심지어 1라운드 막판에는 플라잉 니킥까지 보였다(...). 거의 빵셔틀 때리는 일진 수준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결국 2라운드에 스트레이트, 어퍼컷으로 KO승을 거두며 총 3전의 경기에서 3승 전 KO를 거두었다.
2006년에도 이렇게 상승세를 끌어 나가다가 전년도 8강 진출자 자격으로 월드 그랑프리 16강에 진출해 제롬 르 밴너와 대결, 연장까지 가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끝내 판정패한다. 슐트에게는 석연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본야스키와 벤너에게 패했으나 K-1 최강자들을 상대로 꽤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선전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다.[24] 게다가 한국에서의 흥행을 책임지는 선수였기에 K-1은 여전히 최홍만을 중용하였다. 스펙빨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톱 파이터들을 상대로 판정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기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까지가 최홍만의 리즈 시절.
그러나 2007년 3월 요코하마 스페셜 매치에서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했다. 시합은 최홍만이 긴 리치를 이용하여 공세를 펼치고, 모가 간간히 오버핸드 라이트로 카운터를 노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2라운드 57초 모의 오버핸드 풀스윙 라이트가 작렬했고 최홍만은 그대로 다운당했다. 충격적인 첫 KO패.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최홍만이 이 무렵부터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시합을 계기로 그동안의 최홍만의 행태, 즉 격투기를 등한시하고 한국과 일본 예능 활동에만 치중하는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폭발하였다. 카오클라이나 밥 샙, 아케보노를 꺾을 때까지만 해도 호의적이었던 여론이 이 시합을 기점으로 완전히 돌아선다. 커리어 전체를 봐도 급격한 하락세가 시작된 것이 바로 이 때 즈음. 그리고 이 때는 후술할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 전이었다. 기량하락에 수술의 영향이 컸겠지만 그 전에도 이미 하락세는 시작이었다는 것.
이 때 한국 킥복싱 최강자 유양래가 최홍만에게 선배 대접 받을 생각도 말라며 쳐부숴버리겠다고 디스하며 K-1에 진출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기도 했다.[25]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26]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당시 경기 후 인터뷰 사진인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마이티 모는 다음에 최홍만과 다시 경기를 한다면 서울에서는 절대 안 할 것이며 1라운드에 KO시키겠다라고 말했다.[27]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제롬 르 밴너에게 또 다시 판정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실제로 시합전 음반 제작 활동으로 평소보다 살이 6kg 불어났다고.. 시합에서도 단조로운 패턴에 이전보다도 느려진 스피드로 고전을 면치 못 했고 특히 3라운드에서는 밴너에게 다운당하지 않은 게 대단해보일 정도로 정말 흠씬 두들겨 맞았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28]으로 부정적 여론은 잠시 가라앉긴 했는데... 이 경기 이후 뇌종양 수술로 인한 신체 스펙의 하락으로 최홍만은 더더욱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 수술 전 군면제 처리를 일부러 늦게 하고 훈련소에 민폐를 끼친 부분[29]에서 안티를 더 늘리게 되었다. 수술은 2008년 6월 10일에 받았으며 이후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수술 후 2008년 9월 한국에서 복귀전을 가졌는데 상대가 다름 아닌 바다 하리였다. 복귀전에 너무 기량이 높은 상대를 만나긴 했지만 경기내내 공격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 하면서 일방적으로 공략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30] 그러나 판정에서는 1:0으로 최홍만이 우세하게 나와 또다시 홈 어드벤티지 비판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바다 하리가 모든 라운드를 앞서간 경기였기 때문,[31] 어쨌든 연장전이 선언되었지만 최홍만의 갈비뼈쪽 부상으로 인해 기권패를 한다.
그나마 이런 장면을 보여준게 위안거리다. 하리에게는 인터뷰때 최홍만을 무시한 것과 달리 꽤 난적이었는지 중간중간 당황한 표정과[32] 경기후 그의 손을 들어올리며 리스펙트성 매너를 보여주는 등 평소 악동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3연패 중인 최홍만에게 K-1측은 2008년 12월 WGP 리저브 매치에서 레이 세포를 붙여준다. 당시 세포는 37세로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한 기량저하로 6연패중이었고 그간 커리어로 봤을때 떡밥으로 거론되던 선수에게도 패하는 등 하락세가 뚜렷 했던터라 최홍만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일종의 K-1측의 배려였다.
그러나 전혀 발전되지 않은 공격 전술과 느릿느릿한 스피드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33]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34] 레이 세포는 경기전 인터뷰에서 최홍만을 두고 "발전한 게 없다''라면서 날카롭게 비판했는데 이때만 해도 대다수의 팬들이나 전문가들은 최홍만의 우세를 점쳤다. 그런데 결과는...
이 무렵을 계기로 그는 입식무대를 떠나 종합선수로 전향을 결행하게 된다. '더 이상 입식에서는 경쟁력이 없으니 종합에서 뛰어라'는 K-1 측의 권고였다.
2.3. 종합격투기 전적
2.3.1. K-1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일본의 개그맨 겸 무술가인 바비 올로건이었다.[35]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고 전직 씨름선수로서 차라리 MMA에서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겹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이후 2007년 6월에 K-1 다이너마이트 USA에서 브록 레스너를 상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최홍만이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되었다.[36] 비록 무산되었지만 당시로선 제법 흥미로운 매치업이었기에 지금도 둘이 실제로 격돌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물론 MMA에서 이룬 업적으로 따지면 최홍만과 레스너는 비교가 안 되지만, 당시 레스너는 MMA 전적이 없는 신인이었고, 최홍만은 뇌하수체 수술을 하기 전이었기에 승패 여부와는 상관없이 제법 볼만한 그림이 나왔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는 '마지막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효도르의 스피드에 밀리면서도 클린치 싸움에서 2번이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상위에서 파운딩을 날리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리버스 암바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하고 말았다. 패배하긴 했으나 확실히 레슬링에 있어서 강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이티 모전 패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37]
그런데 이 때도 논란은 있었다. 사람들이 효도르의 첫 번째 암바를 최홍만이 힘으로 풀어냈다고 역시 괴물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최홍만이 이미 첫 번째 암바에서 탭을 쳤는데 탭을 대충 치는 바람에 심판이 보지 못했고 탭에 반응한 효도르의 암바가 느슨해지자 그것을 힘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이후 최홍만이 탭을 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흐름을 잡고 효도르를 몰아쳐서 선전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니 부적절하다는 얘기가 있엇다. 방송 카메라에서는 탭을 치는 것 같은 장면이 아주 잠깐 잡혔는데 바로 심판으로 인해 각도가 사라져버렸기에 약간의 논란이 되었다. 여기서 반박을 해보자면 첫번째 암바에 최홍만이 탭을 쳤다고 하기엔 좀 애매한 것이 만약 탭을 쳤던 게 사실이라면 효도르측에서 최홍만이 탭을 쳤는데 심판이 그대로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방관하고만 있었다던가라는 어필 같은 게 있어야 되는데 효도르는 억울해하는듯한 모습도 없었고 오히려 암바가 풀어지자 자연스럽게 스탠딩양상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게다가 심판이 못봤다고 하기에도 좀 무리가 있는 점이 당시 심판은 최홍만이 효도르한테 암바걸리는 순간에 멀리 떨어져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걸 못봤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이 점들을 미루어봤을 때 추측을 해보자면 최홍만이 탭쳤던 걸로 보이는 부분은 사실 탭쳤던 게 아니라 주먹으로 두들이듯이 때렸던 걸로 추정된다. 단지 그 두들이듯이 때리는 게 묘하게 탭치는 모션이랑 비슷했고 하필이면 그 때 심판에 의해 손부분이 가려져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일 뿐. 무엇보다 그 당시 심판이 그 악명높은 시마다 유지라서 진짜 못 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2008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Pride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 미르코 크로캅이라는 또 하나의 빅네임과 대결했다. 최홍만은 6분 내내 바디 킥과 레그 킥에 난타당하다 결국 왼쪽 무릎에 인사이드 레그 킥을 맞고 TKO로 패했다. 첨예했던 사전 대립 각본과는 달리 거의 일방적으로 크로캅의 전략에 끌려다니는 모습에 종합룰임에도 적극적으로 클린치나 테이크 다운을 하려는 시도도 없이[38] 거리만 재다 패했고 2007년 입식에서 밴너에게, MMA에서 효도르전을 시작으로 5연패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호의적인 여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경기력 외에도 이때부터 최홍만의 근육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이기는 건 둘째치고 선수로써 계속 뛸 건강 상태는 되나라는 의문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쯤 입식 무대를 떠나 본격적으로 종합 무대로 전환을 감행한다.
2.3.2. DREAM
그리하여 출전한 것이 MMA 역사에 길이 남을 막장 매치인 DREEM 2009 페더급 그랑프리 속칭 '슈퍼 헐크 토너먼트'였다.2009년 5월의 2회전에서 그는 쿠바의 전직 야구 선수인 호세 칸세코를 상대했다. 올로건과는 달리 이쪽은 진짜 '일반인'으로 두말 할 필요가 없는 희대의 개그 매치였다. 게다가 1964년 생의 호세 칸세코는 이 시점에서 이미 40대 중반. 운동선수를 하기 힘든 나이에 도달했다. 프로 격투가인 최홍만으로서는 지면 죽어야 할 정도의 시합. 결과는 1분만에 최홍만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물론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꽤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정도로 무시못할 선수였다지만 그 잡은 헤비급 선수들조차 하나같이 약체 떡밥이거나 기량저하로 하락세 중인 선수들이었고[39] 무엇보다 상대가 체급내 정상급 선수도 아니고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뿐만 아니라 키차이와 리치 차이까지 엄청 나는데도 패배했다는건 최홍만이 이제 MMA 선수로서의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걸 보여준 셈이다.
굴욕의 최홍만. 더군다나 이때까지만 해도 약체, 개그맨 이미지가 있었던 김민수도 이전에 미노와를 압도적으로 이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최홍만의 괴물 이미지는 밑도 끝도 없이 하락했다.
이 시합을 끝으로 최홍만은 잠정적으로 격투계를 떠나 연예활동에 전념한다. 미노와맨의 경기 이후 동년 2009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 연말 대회에서 전 UFC 헤비급 챔피언 팀 실비아와의 대결이 거의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떴지만, 실제로 성사된 건지도 불확실하고 결국 무산되었었다(...). 2010년 초에는 샤킬 오닐과 대결할 지도 모른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파이터 활동을 그만두고 일본 예능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2010년 하반기에 격투기에 복귀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동년 12월 모든 격투기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라고 밝혔고, 이후 격투기 경기를 뛰지 않고 있으며, 정치 활동에 사업도 하는 등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격투 기계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14년 9월 12일 레볼루션이란 국내 대회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펑크를 냈다. 다만 주최측이 사전 계약을 지키지 않았고, 대회 일정도 멋대로 취소한 전례가 있어 마니아들은 최홍만보다 주최측을 비난하고 있다. #
2.3.3. ROAD FC
2015년 4월 27일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Road FC와 계약했다. # 동년 7월 25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ROAD FC 24 대회에서 첫 경기가 잡혔으며, 상대선수로 레볼루션에서 원래 맞붙기로 했다가 엎어졌던 카를로스 도요타와 다시 맞붙었으나 1R 1분 11초만에 상대 강력한 오른손 훅에 실신하며 KO로 허무하게 패했다. 영상자세히 보면 최홍만도 카운터를 동시에 적중시켜 상대 토요타의 다리가 풀렸지만 최홍만은 정확히 턱에 맞았다.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패배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최홍만, 눈물의 소감 "예민해진 탓에 성급했다..경기 기억 안 나"
최홍만 "원거리 타격전이 원래 전술..난타전 후회"
최홍만과 로드FC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최홍만의 경우 사기사건에 연루되면서 일본 방송이 취소되기도.#
두 방 맞고 쓰러진 최홍만, 이제 나오지 마라
'예견된 참사' 최홍만, 로드 FC가 경찰보다 더 알 수 없다
로드 FC 최홍만 재기 프로젝트.."빚 갚아주겠다"
난타전 감행 최홍만 죄 없다..화근은 로드FC 과욕
그러나 12월 26일 벌어진 로드 FC 27 중국대회에서 루오췐차오를 펀치 TKO로 화끈한(?)
최홍만의 다음 상대는 로드FC027에서 김재훈을 광폭하게 난타해서 유명세를 탄 아오르꺼러가 될 예정이다. 최홍만은 당차게(?) 아오르꺼러의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 만에 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
그리고 2016년 9월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샤오미 로드FC 033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과거에 맞붙었던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와 다시 겨루게 된다. 전성기 때 몸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도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전적이 있고, 승리를 한번 하긴 했지만 석연찮은 판정승이었기에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다 빠져버린 최홍만이, 아무리 나이가 불혹이지만 베테랑 헤비급인 최무배, 명현만마저 잡아낸 마이티 모의 펀치를 버텨내기 힘들 거란 관측이 많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마이티 모의 펀치에 몇 차례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고, 최홍만도 나름 반격한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이티 모의 펀치를 허용한 최홍만이 미소를 보였고, 곧바로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이 최홍만의 얼굴에 적중하면서 그대로 KO패 당했다.영상
근육이 빠진 상태에서 이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눈에 보일 만큼 벌크업에 성공했으나[44] 맞추질 못했으니... 이 날 마이티 모는 챔피언이 됐음에도 환호성은커녕, 박수 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젠 관중들도 별 기대를 안했다는 뜻이다.[45]
최홍만 '생각대로 안 풀렸다.'
2.4. 입식 복귀 및 AFC 활동
2016년 11월 중국 PFC가 개최하는 격투기 대회에 참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 입식타격은 2008 K-1 월드그랑프리 16강전 이후 2891일만이다.ROAD FC와 계약 중이었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11월 6일 중국 후난의 PFC에서 입식 시합을 가졌다. 그런데 상대방과의 스펙 차이가 신장 41cm·체중 88kg... 원래 70kg에서 활동하는 선수와 시합을 가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졌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저우진펑은 K-1 MAX 2013 WGP 8강에서 쁘아카오와 맞붙었을 정도로 실력있는 선수이긴 하다. 그러나 체급차이를 감안하면 정말 충격적인 패배이다. 생각해봐라. 쁘아카오가 70kg에서 레전드라고 한들 세미 슐트같은 선수를 이기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그나마 KO패 당하지는 않았지만 핵꿀밤으로 저우진펑이 잠시 휘청거린 것을 제외하면 경기 내내 한번도 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아웃복싱에 말려 로우킥과 바디를 후드려맞고 패배했다. 심지어 턱에 카운터 훅을 맞고 휘청거린 것은 덤.
사실상 격투기 선수로서 최소한의 경쟁력도 상실했음을 보여준 경기. 중국 내의 흥행을 위한 주작이라 생각하는 팬들도 있지만 저우진펑이 주작으로 푸시를 받아야 할 만큼 허접한 선수도 아닐뿐더러 정말 그렇다 쳐도 격투가로써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돈과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로드FC "최홍만, 차라리 권아솔하고 싸우지.."(공식입장)
이후, 자신을 이긴 저우진펑을 위대하다 찬양했다. 관련기사 실제로 기네스북에 등록될 기록이니, 진짜 실력으로 이긴 것이라면 위대한 것이 맞다. 농담이 아니라 이제 까놓고 최홍만이 격투가로서 제대로 된 복귀할 생각이 있다면 저우진펑이 킥복싱 계의 매니 파퀴아오같은 인물이 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46]
'돈 앞에 명예 포기…'밥 샙의 길' 걷는 최홍만'
2017년 11월 엔젤스에서 복귀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일본의 노장 우치다 노보루를 판정으로 이겼다.[47] 우치다는 과감하게 계속해서 최홍만의 얼굴을 노렸는데, 가드와 긴 팔에 막혀 유효타를 얻지 못했다. 3라운드에 레프트 펀치로 다운시킨게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 입식경기로는 무려 10년 만에 거둔 승리.
경기에 대한 평이 좀 갈리는게 우치다가 전성기 땐 제법 잘나가는 킥복서였다지만, 전성기 때에도 피지컬은 좋지 않은 축에 속했고 이제는 너무 나이가 많아 적절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우치다전에서 보여준 안면가드가 K-1 시절보다 나아져, 킥복싱으로 재전향한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평도 있다.
다만, 이젠 나이도 있고 원래부터 기본기가 좋았던 선수는 아닌 만큼 일류로 돌아오기는 어렵다는게 중평.
이제라도 격투기에서 10년간의 부진에 대해 반성한 건지,
그런데 AFC에서 2018년 12월에 경기가 잡혔음에도 MASS Fight에서 소림사 파이터로 알려진 이롱과 다음 대전이 잡혔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는 불명이다. 이롱은 저우진펑과 마찬가지로 라이트급 파이터이다(...). 결국 프릭쇼 서커스 매치...
이롱은 국내에선 금강불괴(?)를 시전(?)하다가 실신 KO를 당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중국 킥복싱 단체 무림풍의 챔프 경력이 있으며 쁘아카오나 싯티차이 등의 레전드급 낙무아이들과도 겨룬 바가 있어 저우진펑 전 때의 굴욕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하다. 룰이 괴악한데, KO가 나오질 않으면 무승부가 되는데다가 휴식 없이 9분 1라운드제로 경기한다.
2018년 11월 10일, 경기 도중 이롱이 스피닝 킥을 차다가 로블로를 맞은 듯 했고, 최홍만이 속행 불가 의사를 밝히자 이롱의 승리를 선언했다.
엔젤스파이팅 챔피언십(AFC) 대표 박호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홍만 선수의 경기 사진과 함께 “최홍만 선수, 엔젤스파이팅 09 대회 출전하지 마라. 격투기 선수로서 기본을 지켜라”라는 글을 남겼다. 즉 쉬운 경기에도 졌고 별개로 어필했다는 측면으로 분석된다. 다만 AFC측은 직접 최홍만을 만나서 결정할 것이라고 하였다.기사
AFC 대표 박호준이 최홍만의 고환 부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하며 이에 대해 파울컵이 킥에 쓸려올라가며 충격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다시는 서커스 매치를 뛰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박호준 대표가 다음 상대로 쿠스노키 자이로를 내정했다고 하였지만 오피셜로 잡힌 일정은 아니기 때문에 복귀전의 경기 상대는 불분명하다. 명현만이 권장원과의 대결 이후 다음에 가장 붙고 싶은 상대로 최홍만을 콜했는데, 복귀전을 앞두고 있는 최홍만으로서 정말 붙게될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
그리고 마침내 상대가 결정되었는데, 헝가리의 킥복서 다비드 미하일로프. 이번에도 AFC 경기에 앞서 타 단체로 파견을 다녀왔는데 장외패라는 독특한 룰이 존재하는 일본의 격투기 대회 '간류지마'에서 과거 판크라스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카와무라 료를 상대하였으나, 일방적으로 구타를 허용한 끝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2019년 6월 10일 10일 서울 KBS아레나에서 열린 AFC 12 입식 무제한급 스페셜 경기에서 다비드 미하일로프(24, 헝가리)에게 1라운드에, 그것도 49초만에(...) KO당했다. 최홍만 1라운드 KO패…생애 첫 3연패 수렁[48] 패배 이후, 국내 무대에만 서면 공황장애가 생긴다며 국내 안티들을 탓하는 듯한 뉘앙스로 인터뷰에서 발언하여 욕을 사서 먹었다. 국내 팬들을 탓하기에는 해외 무대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우치다 노보루를 상대했을 때에는 국내에서의 경기였다는 걸 감안하면 딱히 공황장애가 있는 모습도 아니었기에...
3. 파이팅 스타일
VS 196cm의 밥 샙 |
vs 212cm의 세미 슐트 |
거기다 수술 전에는 저 거대한 신체에 근육량이 140kg에 체지방이 9.3%였다.# 즉 온 몸이 근육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소리다. 최홍만 외에도 단순히 키가 큰 격투기 선수들은 여럿 있었지만,[51] 최홍만의 경우 엘리트 체육, 그것도 체력 단련을 엄청나게 시키는 투기 종목인 씨름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다른 장신 선수들과는 한 차원 다른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리치가 235cm(93인치)나 되는데 이는 역대 격투기 선수들을 통틀어 두 번째로 긴 리치이다.[52]
긴 리치 때문에 상대방이 거리를 잡기가 어렵고 안으로 파고들면 곧바로 니킥이 날아온다. 때리는 최홍만은 미들에 꽂는 느낌으로 쓰지만 맞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이킥 타점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빰 클린치가 허용되던 시절에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전법이었다. 클린치 싸움에서는 안그래도 미친 피지컬에 씨름 천하장사 출신이라는 경력 덕분에 그 세미 슐츠를 상대로도 지지 않았다. 사실상 기술이 없다고 평가받던 최홍만에게 있어서 거의 유일하게 장착된 기술중 하나였다. 또한 키가 워낙 커서 얼굴을 치는 것이 어렵고, 마이티 모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맷집도 강화되었기 때문에 안면을 겨냥해서는 잡기 어렵다.
핵꿀밤, 오지마 킥 등 개그 기술로 악명이 높은데, 실은 리치(사거리)와 파워가 워낙 사기적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펀치 동작이 엉성하고 작은 선수들에게 타격을 하기 위해 위에서 내려찍는 형태로 때리는데 이게 멸칭으로 핵꿀밤이라 불리지만 160kg의 체중이 실렸기 때문에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53] 수술로 근육이 빠지고 하락세에 접어들었을 때도 어쨌든 그 체중이 실린 펀치는 절대 만만하지 않아 아오르꺼러를 단발에 실신 KO시키기도 했다.
완력이 어마어마하여 밥 샙이나 제롬 르 밴너같은 당시 K-1 최고의 멧돼지들도 최홍만과 정면으로 힘 대결하는 것은 피했을 정도다.[54] 최홍만보다야 작지만 거인 파이터인 212cm, 130kg의 세미 슐트 또한 완력은 상대가 되지 않아 클린치에서 많이 밀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효도르는 태클을 시도했지만 역으로 깔려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왼손잡이[55] 오른손잡이처럼 왼팔을 앞으로 향하는 오소독스 자세를 썼는데,[56] 이는 타격 베이스가 없는 최홍만에게 빠르게 타격 기술을 연마시키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B급 선수들은 정확하고 강력한 왼손 잽만으로도 갖고 노는 수준이었으니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셈.
전성기 때 맷집은 그야말로 인간을 넘어섰다. 키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반적인 선수들이 맞는 데미지보다 반감되는 영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순수 맷집이 엄청난 건 맞았다. K-1 입식 경기에서 18전을 치르는 동안 마이티 모에게 당한 KO패가 유일한 다운이며 현재까지도 입식에서 다운 횟수는 2회 뿐이다.[57]
윗짤에서 보이듯이 170kg에 가까운 근육질의 밥 샙의 니킥을 관자쪽에 제대로 맞았는데 약간의 비틀거림도 없이 바로 공격 자세를 취했으며 세미 슐트의 잽에 들어가다 턱에 맞았음에도 씹고 계속 주먹을 날렸다.[58] 마이티 모와의 1차전에서는 마이티 모의 라이트 훅을 턱에 정통으로 맞고 KO패 당했지만 2차전에서는 똑같은 훅을 여러번 맞았음에도 다운 한 번 당하지 않았다. 뇌수술 후에는 맷집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앞서 언급된 큰 키로 인한 타점과 자체 사이즈로 인해 마이티 모처럼 펀치력이 강하거나 다비드 미하일로프처럼 신장이 크지 않다면 여전히 KO패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신체 조건과 완력을 가져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음에도 탑 랭킹에는 들 수 없었는데 핸드 스피드와 스텝 둘 다 느리고,[59] 평생 씨름만 하다가 격투기는 속성으로 익힌 초보자였던 탓에 기술적 완성도나 격투지능도 좋지 못했으며, 체중 문제로 체력도 나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프릭쇼 일환으로 K-1, 프라이드에서 활동했던 거구의 파이터들 중에서는 가장 선전한 편에 든다.[60]
격투기 선수로서는 엄청난 무기라고 볼 수 있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리치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위에 서술된 스피드의 문제도 있지만 최홍만 본인의 격투 스타일이 그다지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있다. 격투기 데뷔 시절부터 최홍만은 거리를 유지하며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보다는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큰 스윙을 날리는 스타일을 썼는데, 이는 그가 본인의 리치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61] 전성기 시절에는 맷집이라도 강해서 얼굴 몇 대 맞아도 그냥 씹고 달려드는 게 가능했지만, 안면 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부터는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중 및 시청자들이 볼 때 최홍만의 문제는 안면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저돌적인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반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62]
유일한 살 길은 뺨 클린치 니킥인데 마사토를 위해[63] 이게 금지되어버린다. K-1은 단지 펀치, 킥의 숙련도와 스피드 대결 같은 양상으로 변했는데, 그 덕에 예전 같은 KO율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힘들게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입식에서의 부진은 룰의 변경 탓도 크다. 다만 비슷한 유형의 선수인 세미 슐트가 룰 변경 이후에도 충실한 기본기로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것을 보면 룰 탓만 할 일은 아닌 듯.
MMA에서는 여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더해진다. 그래플링. 종합 무대에 진출한 입식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최홍만 역시 그라운드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거대한 체구와 엄청난 힘이 있어서 클린치 싸움이 강력하고 씨름 베이스라 상대를 눕히는 능력까지는 있는데, 그 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관절기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정교한 파운딩과 포지셔닝으로 상대를 질식시키는 능력도 없다 보니 상위를 잡고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다가 관절기에 걸려 탭을 치는 경우가 빈번했다.
결론은 한대만 맞아도 엄청난데 그 한대를 못 맞춘다(...).
수술 이후 근력과 맷집이 폭락하면서, 그 한대만까지 사라져버렸다. 한대를 때리지도 못하고, 때려도 상대방이 예전처럼 큰 충격을 받지도 않으며,[64] 맷집도 약해져 한 방이 강한 상대를 만나면 바로 그로기에 빠지다가 KO 당한다. 사실상 제 2의 밥 샙이 된 셈이다. 수술 이후에는 아웃복싱(...)을 하고 있는데, 아웃복싱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고 있다.
이런 큰 KO패가 자꾸 나올 경우 갈수록 맷집도 약해지고, 뇌에도 안 좋은 영향이 미치는 것은 당연하기에 격투팬들은 은퇴를 하는 것이 어떨까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그놈의 돈이...
사실 수술한 시점까지의 최홍만은 초창기의 서커스 파이터라는 멸칭이 무색하게 나름 K-1에서 네임드급의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고,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의 중요성을 입증하듯 그런 전성기의 자신이 이룩한 활약이 최근의 행보로 인해 저평가받는 점 때문에 무척 안타까운 파이터. 사실 최홍만은 사실상 진작에 은퇴했고, 지금은 그냥 진지함 없는 이벤트성 개그쑈로 나온다 봐야 한다는 게 격투 마니아들의 평가다.
한마디로 덩치는 코끼리만한 괴물이 링 위에선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작은 선수에게 쫄아서 허우적허우적거리다 그 허우적거리던 주먹이 들어가서 그 한방으로 KO승이 나와서 결과적으로는 이겨있는 등 여하튼 격투기계에서 몹시 보기 힘들었던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 다만 위는 하락세에 들어간 최홍만 얘기고, 소위 말하는 천연 스테로이드 시절 최전성기 최홍만은 심하게 떨어지는 기술에도 무지막지한 피지컬로 들이대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는 선수였다.[65]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K-1의 흥행면에서 엄청난 공헌을 한 파이터이다.
4. 기타 활동
4.1. 예능 활동
데뷔 초부터 최홍만은 예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방송 출연이 잦은 것이 격투기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한때는 음반까지 낸다고 해서 가수라고 까이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격투 갤러리에선 그를 凶物(흉물)이라고 부른다(…).2007년경부터 연예계로 외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격투기 성적이 시원찮게 되면서 까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6년부터는 등장할 때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서 들어오는 둥 "경기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건가." 하면서 까였다. 결국 마이티 모에게 KO당하고 나서야 모든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한국에서만.
여담이지만 노래도 불렀다. 2006년 강수희와 듀엣으로 한 미녀와 야수(…)를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틀고 입장했다. 의외로 2008년 정식 가요무대에서 공공연하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연예 활동은 중지했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더욱 활발한 연예 활동을 이어갔다.
2009년 10월에는 미노와 이쿠히사와의 경기를 앞두고 3일 전 일본 쇼프로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2009년 격투기 활동을 잠시 중단한 후부터는 일본의 쇼프로, 영화 등에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주로 거구를 살린 악역 겸 개그 캐릭터 역을 맡는데, 외모가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와 닮은 점도 화제꺼리가 되는 등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 본인도 예능 생활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모양. 소질도 이쪽 분야에 더 있는 듯 하다. 심지어 2010년에는 포켓몬스터 관련 TV프로인 포켓몬 스매시에도 출연한다(...). 일본어도 나름대로 잘하게 된 모양.[66] 시무라 켄의 바카도노에도 특별 게스트로 나온 적 있고, 여러 모로 일본 연예인 다 됐다. 사사키 노조미와 사귀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사실은 아닌듯 하다.
2010년 3월 즈음 일본의 괴물군[67]의 드라마 버전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프랑켄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분장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여기 저기서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냐는 악플이 달렸고 촬영을 위해 아예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까이기도 했다.[68] 하지만 원작자는 더 없이 완벽한 싱크로라고 극찬했다.
2011년부터는 현재는 주점을 운영하면서 조용히 지내는 듯. 그러다가 태국 영화 똠얌꿍 2에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 5월 무릎팍도사에 출연, 방안을 온통 헬로 키티 굿즈로 도배한 키티 덕후로 커밍아웃해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기사
2013년 슈퍼맨이 돌아왔다 정식방영 6화에서 이휘재의 집에 찾아왔다. 키가 하도 커서 방 전체 잡는 화면에 얼굴이 빈번히 짤려버린다. 애기들을 같이 보는데 아이들이 무슨 조막만한 신생아 같아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70] 무서워하며 애들이 울까 걱정을 했는데 최홍만의 파워 애교로 서준이와 교감까지 시도하는 등 오히려 아주 잘 지낸다.2015년 7월 런닝맨에 특별 출연하여 이광수의 등짝을 내리치거나 수영의 설득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런닝맨 내에서 힘이 가장 센 김종국을 힘으로 가볍게 제압하여 이름표를 뗐다.[71] 오죽하면 김종국이 최홍만 앞에서는 초딩같이 작아 보이기까지 했다.[참고]
2019년에는 뜬금없이 일본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드래곤 게이트의 'KOBE 프로레슬링 페스티벌 2019' 흥행에 참가해 짧은 개그 매치를 치렀다.
2019년 12월 2일 아이콘택트라는 프로그램에 아버지와 같이 출연했다.
2019년 12월 20일 한 일본 방송에 출연해 멘탈 치유를 목적으로 K-1의 전설 피터 아츠와 미트 치는 훈련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츠는 초반에 상당한 독설을 날렸지만 이는 최홍만의 자존심을 끌어 올리려는 목적이었고 미트 후 최홍만에게 격려의 말을 하며 훈훈하게 끝냈다.
그리고 전성기 시절 때는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예능에서 연예인들과 놀기 바쁘냐면서 종종 까였지만 현재는 제발 격투기에 미련 버리고 거인+스포츠맨 캐릭터를 살려 서장훈처럼 예능인으로 전환하던가 하승진처럼 유튜버로 전환해 제2의 전성기를 보내라는 반응이 조금씩 나오고있다.
4.2. 정치 관련
2012년 11월 대선의 열기가 절정에 달할때 쯤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한 바 있다. 새누리당 당사에서 입당식을 가진 뒤 조직 특보를 맡게 되었고, 이때 연설하면서 밝히기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게 된 계기는 박근혜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4.3.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새누리당|]] | 2012 - 2013 | 입당 정계 입문 박근혜 조직특보 임명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3 - 현재 | 탈당 정계 은퇴 |
5. 논란
5.1. 과대 평가 논란
최홍만의 전성기 시절에 대해서는 살짝 여론이 갈리는 편인데 대부분의 여론에서는 "최홍만 전성기 때는 대단했다", "최홍만 전성기 때는 괴물이었다"라고 보는가 하면 일부 여론에서는 최홍만은 전성기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떡밥 선수만 잡으며 승수를 쌓았고 결정적으로 정상급 선수한테는 다 져버려서 최홍만이 과대평가 됐다고 보기도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성기 때의 피지컬만큼은 대단한 괴물이었던 건 맞지만 격투기 선수로서의 완성도, 업적 등은 대단했다고 보기엔 매우 아쉽다. 실제로 최홍만이 이긴 상대 중에서는 와카쇼요, 아케보노, 톰 하워드 같이 승리와 인연이 없는 수준 이하인 선수들도 있는데 그중 톰하워드와 아케보노는 입식 뿐만 아니라 종합에서도 경기를 가져보았지만 다 전패했고 아케보노는 입식에서 1승이 있긴 하지만 그 1승마저도 상대가 현역에서 은퇴한지 오래된 심판이었고 그것마저 워크 의혹 논란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입식에서도 무승인 셈이다.
그리고 카오클라이 전은 최홍만이 연장전 끝에 판정으로 잡았지만 둘의 체급차가 너무 심하게 났는데 어느 정도였나면 키 37cm, 몸무게는 무려 80kg나 차이가 났다. 비록 최홍만이 이기긴 했지만 둘의 체급차를 고려하면 ko시키지 못하고 연장전까지 간게 굴욕인 셈이다.
그나마 네임드 있는 선수인 밥 샙과 난타전을 펼치며 니킥으로 다운을 빼앗은 끝에 승리하긴 했지만 밥 샙도 최홍만처럼 피지컬로 먹고 사는 선수이고, 기량 자체는 정상급과 거리가 먼 선수다.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았지만 굿리지도 일종의 수문장 정도지 정상급 선수는 아니며[73] 당시 이미 40세로 전성기가 지나서 한계를 보이던 선수였고 세미 슐트전은 편파판정으로 말이 많았다. 물론 당시 입식의 끝판왕격인 세미슐트를 상대로 유효타도 어느정도 맞추고 중간에 등을 보이게 할 정도로 꽤나 선전했던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경기 내용 자체를 보면 편파인게 맞다.
이외에도 레미 본야스키한테는 제대로 된 정타도 맞추지 못하고 경기내내 로우킥만 수십 대 허용한 끝에 허무하게 판정패를 하였고 제롬 르 밴너와 붙을 때는 1차전은 지긴 했어도 꽤나 빅네임인 밴너를 상대로 난타전을 펼치며 연장전까지도 가는 등 나름 잘 싸웠지만 07년 이후 마이티 모에게 생애 첫 KO를 당한 이후 훈련을 게을리하고 연예계 활동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밴너와 2차전 당일에는 전날 앨범 작곡을 하느라 체중도 늘어나서 안그래도 느렸던 스피드도 더 느려져 1차전과 달리 밴너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며 판정패 했다.
종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첫 상대가 다름 아닌 이벤트성 선수이자 일본의 코미디언 바비 올로건이었고 이후 당시 60억분 1의 사나이라 불리던 효도르와 붙을 때는 처음에 효도르의 기습적인 테이크다운을 역으로 성공시키며 파운딩을 날리지만 암바에 걸릴 위기에 처한다. 이후 엄청난 괴력으로 어찌어찌 풀고 다시 한 번 효도르를 역으로 테이크다운하지만 또 그 과정에서 파운딩을 날리다가 암바에 걸려 탭을 치는 등 똑같은 패턴에 두번이나 당하면서 낮은 그라운드 이해도라는 한계를 보이며 허무하게 패배했다.
총평을 내리자면 격투기 선수로써 테크닉이 부족하고 스피드도 느려서 전성기 기준으로도 한계가 명확했음에도 우월한 피지컬 덕에 하위권 선수는 잘 잡았고, 정상급 선수를 상대로도 이기진 못해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어찌어찌 비벼볼 수는 있는 선수였다. 더구나 격투기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K-1 정상급 선수들을 상대로 그나마 가장 선전했던 선수라고 볼 수 있겠다.[74] 이러한 점이 추억보정으로 작용하여 과대평가를 낳는 면이 없지 않다.
5.2. 사기 혐의
2015년 5월 20일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으며, 15년 7월 22일 최홍만의 사기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다만 실제 검찰 송치 시점은 5월 말이었다고 한다.2015년 10월 26일 사기 혐의에 대해 검찰이 체포 영장을 청구, 영장을 발부받아 지명 수배에 들어갔음에도 잇따른 검찰의 출석 통보를 무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레진코믹스의 태양초고추장 연재 만화가인 개호주가 일본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개호주가 또! 그러나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 최홍만이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으며, 향후 사건의 전개에 따라 내용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13일 기자 회견을 열고 피해자들과 합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최홍만에게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했지만 이에 항소하기로 결정했다.
6. 여담
6.1. 뇌하수체 종양 발견과 수술
전성기인 뇌수술 전인 2005년 모습과 뇌수술 후인 2016년 모습의 비교 사진이다. 한 눈에 봐도 근육량이 차이가 난다. 참고로 두 사진 모두 160kg대다.
미국 네바다 주에서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를 가지기 위해 신체 검사를 받다가 뇌하수체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결과가 나와서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75] 최홍만 측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서 검사 결과에 반발했다.
최홍만은 이전부터 거인증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거인증은 뇌하수체 종양에서 과도한 성장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 그 원인이다. 최홍만은 그전부터 "저는 씨름선수 때도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고, 격투기를 하고서는 한끼에 밥 한공기 분량만 먹었다"고 방송에서 말하거나, 가족 중에 특출나게 큰 사람이 없고[76] 부친의 키가 160cm도 안 된다는 부분도 방송에서 공개하는 등 거인증 의혹을 살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77]
최홍만 측에서는 거인증 의혹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몇몇 의사는 최홍만의 상태는 심각하며 이대로 놔두면 급사나 수명 단축이 우려된다면서 언론을 통해 수술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계속 이에 대해 답하지 않으며 부정했지만 결국에 군 면제 후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정확한 수술일은 관련 기사에 의하면 2008년 6월 10일. 수술 후 얼마동안 시합을 미루고 휴식을 가졌으며, 이후에는 별 문제 없이 격투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거인증이 맞다면 지금까지의 최홍만은 '성장 호르몬 과잉분비'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자연도핑을 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 없으며,[78] 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괴력을 잃게 되었고 이후의 부진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술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 변화인지는 의사의 진단이 없어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수술을 전후하여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보일 정도로 근육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뇌수술과 같은 큰 수술을 받았다면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부담이 많이 걸릴 것이고, 위 두 사진의 세월 차이는 약 11년이며 최홍만이 입식 격투기를 입문하기 직전까지는 근육 펌핑이 비교적 잘 되는 훈련을 하는 씨름 선수였다는 것 역시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1999년도에 이미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았는데[79] 이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 후 아예 면제를 받았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었던 게 그가 면제가 된 시점이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 입대를 이미 통지받고 나서 언론 주목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2008년 4월 21일에 강원도에 있는 훈련사단에 입소 후 48시간만에 퇴소하였다. 사실 그냥 그 전에 재검받고 면제가 되었다면 그렇게 주목받지 않았을 텐데, 입대가 결정되면서 그에게 맞는 특별 훈련복 제작이라든가 훈련장에서 체격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 등 여러 이슈들이 나오고, 최홍만 입대 후 생길 수 있는 문제[80]들에 대해서도 연예 정보 프로그램과 인터넷 미디어 등에 얘기가 나오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최홍만 측도 이런 관심들에 "재밌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 기대된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하고 나오겠다. 오히려 같이 생활할 훈련소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등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입대일에도 연예 정보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면서 입대를 하는데, 알고보니 이미 뇌하수체 종양에 대한 의사 진단서를 가지고 온 상태였고, 그 진단서로 훈련소 내 신검을 받아 입소 48시간만에 귀가 조치를 받고, 귀가하여 한달 뒤 최종 재검으로 면제까지 받게 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훈련소 입소 같은 이슈를 만들지 말고 본인이 먼저 재검 신청을 했으면 훈련소 같은 곳 갈 일 없이 면제를 받을 수 있던 부분인데 한달 이상 관심을 끌고, 훈련소 생활을 할 마음 없이 자신이 가져온 진단서로 귀가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입대할 것처럼 언론에 말한 부분에 대해 비난이 있었다.[81][82] 아마 본인도 최대한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을 하는 걸로 이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버티다가 군입대 및 면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이슈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훈련소 입소 영장이 나오기 전에 재검 신청으로 해결했다거나, 그 작업이 늦어져도 뇌하수체 종양 수술을 통해 영장이 나왔어도 입소일 전에 연기가 쉽게 가능하므로 연기를 한다든지, 숨기기를 빨리 포기하고 몸 상태에 대해 언론에 미리 알리는 등의 합리적 행동을 했다면 대중들에게 별다른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을 것이라 아쉽다. 실제 최홍만의 안티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8년 이후 한국 예능 방송이나 일본 방송 등 격투기와 무관한 미디어에 최홍만이 출연할 때마다 일반인들에게 부정적인 반응들이 늘어났다.
6.2. 기타
- 가장 큰 의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에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K-1의 로컬라이징 전략이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떡밥과 빅매치를 적절히 섞은 후 언론으로 잘 포장하여 어필한 케이스다. 데뷔 초기 한국에서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어서 K-1이 방송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등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던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가 메이저 컨텐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을 계기로 국내 프로 격투단체들이 창설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 하지만 지나치게 한 명의 스타에게 의지한 흥행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락세를 그리면서 격투기 붐도 동시에 수그러들었다. 사실 최홍만 한 명에만 의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최홍만에 뒤이어 씨름계 동료들과 그 외 태권도계 등 한국 체육계 여러 분야의 선수들이 격투기 진입을 시도했는데 종목의 차이로 거의 다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그 기세를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도 그가 데뷔하기 이전보다는 저변과 격투기 종목 팬층이 넓어진 상태이긴 하다. 한국 한정으로 격투기가 복싱을 압도하는 인지도까지 올라섰는데 여기에는 최홍만이 큰 한몫을 했다.
- K-1 마니아들은 K-1 서커스화의 주범이라면서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격투기 경험이 전무한 선수가 갑툭튀해서 주최 측으로부터 혜택을 받으며 상위권 강자들과 경쟁을 하는 반면, 유럽에선 선수가 넘쳐서 실력은 좋으나 지역 GP 출전권조차 못 얻을 정도로 조명을 받지 못해 마이너급으로 전락한 파이터들이 수두룩했으니 이걸 마니아들이 좋게 봐줬을리가 없다.[83]
-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그냥 강한 한국 파이터 정도로 내보내고 있지만, K-1 내부에서의 역할은 악역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일부러 건방진 어조나 태도를 보이고 있다(본인 성격이 그런 것은 아니고 프로모터에 의한 것). 때문에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84]에서도 안티가 많은 상태.
- 최홍만 본인은 키가 218cm임에도 마이티 모는 물론이고 이롱이나 저우진펑 등 키가 183cm도 안 되는 상대들에게 쓰러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탓에 예전에 지어졌던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바로 최홍만과 맞붙으면 누구나 다윗이 된다라는 식의 재평가가 그것인데 최홍만은 말 그대로 링 위에서 다윗에게 당해 쓰러지는 골리앗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라면 최홍만과 맞붙기만 하면 누구나 다윗이 됩니다. - 본업인 격투기를 도외시하고 예능활동에만 치중한다며 쌓여온 팬들의 불만이 마이티 모 전 KO패를 계기로 폭발하였는데, 당시 인터넷에선 이런 합성 사진이 크게 유행했다.참고
- 하지만 그 거체와 특이한 얼굴 때문에 은근히 팬도 많으며 하라 테츠오가 그린 K-1 포스터에서는 맨 뒤에서 엄청나게 큰 주먹을 쥐고 있는 포즈로 북두의 권의 최종 보스격인 라오우처럼 나왔다(…).
- 레미 본야스키와 밥 샙을 검은 콩이라고 깐 적이 있다.#, # 문제는 그 후로 본야스키와 밥 샙이 정말로 각기 분야에서 콩라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최홍만의 저주레미는 다른 선수는 다 넘어섰으나 세미 슐트를 넘지 못해서 만년 준우승자 라인에만 머무르게 되었고, 밥 샙은 본인의 괴물 캐릭터를 최홍만에게 뺏겨서 TV 프로그램 출연이나 CF 등도 죄다 최홍만이 독점하는 등 괴물계(?)의 콩 라인이 되어버렸다.콩의 저주[85] - 바다 하리로부터 "너무 못생겼다"며 꾸준히 까이고 있다. 바다 하리가 데뷔 초의 지나친 독설 기믹을 그만둔 후에도 정도만 약해졌을 뿐이지 못생겼다는 얘기는 계속 하고 있다. 안티들의 멸칭인 '흉물'도 바다 하리의 발언에서 유래한 것.
- 한국의 전통 스포츠인 씨름 천하장사 출신으로서, 격투기 데뷔 초창기에는 일본의 국기 취급받는 스모 요코즈나 출신인 아케보노와 라이벌 구도가 있었는데 실상은 아케보노가 일방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86] 이는 최홍만의 홈인 서울에서 한번, 아케보노의 홈인 하와이에서 한번, 아케보노의 제 2의 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삿포로에서 한번, 총 3번에 걸쳐 세 경기 모두 KO로 제압하므로써 끝나게 된다. 그러나 아케보노는 3차전 패배 이후에도 이런 인터뷰를 하면서 의지의 끝을 보여주었다(...).
- 2009년 경부터 샤킬 오닐과의 대립 구도가 생겨 2011년 경기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돈 문제로 무산되었던 적도 있다. 이후 2020년 샤킬 오닐 본인이 인터뷰에서 경기가 성사되지 못 했던 것에 다시 한 번 아쉬움을 표명했다.#
- 브록 레스너가 자서전에서 최홍만을 만났을 때의 소감을 얘기했는데 자신이 살면서 본 아시아인들중 가장 거대했고 빅 쇼보다도 훨씬 더 컸다고 했다. 악수를 했을 때도 손에서 거인다운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고
- 2010년 말에 갤럭시 탭 구매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또한 아이패드 미니가 출시되기도 전에 한국의 누군가가 이미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 개그맨 조세호가 그의 성대모사를 잘 하기로 유명하다. 최홍만은 처음엔 자기 성대모사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우연히 조세호를 직접 만나게 되자 다신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 이후 반응이 좋자 자신이 직접 조세호에게 연락해서 계속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한다(...).
- 국내 초장신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대표 거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정도냐면 서장훈 같은 신장 2m가 넘는 사람들부터 김병오나 하승진처럼 최홍만보다 키가 약간 더 큰 이들까지 최홍만으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고 했으나 반대로 최홍만은 그런 경우가 없다.
- 부산 경원고등학교[87] 출신이며 경원고 교사들이나 최홍만의 동창들이 타인에게 그에 대한 언급을 종종 하는 모양이다. 주로 거구로 인해 빚어진 에피소드들이다.
- 일본 영화에도 출연했다. 특명 계장 타다노 히토시의 극장판에서 악역으로 출연 하였다. 또 다른 일본 영화 'GOEMON(국내 개봉명 폭렬닌자 고에몽)'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 경호원으로 나왔는데, 당연히 이것도 악역.
- 고교 시절 씨름 유망주이자 전례없던 거인으로 주목받고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소년 최홍만이 소변기가 너무 작아서(...) 변기칸에서 볼일 보는 모습이 나갔다. 그조차 키가 너무 커서 변기칸 위로 머리가 삐죽 솟을 정도였으니 본인도 꽤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 악력을 쟀을 때 90kg이 나왔는데 손이 너무 커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잰 악력이다. 새끼손가락까지 사용했으면 100kg 이상은 나올듯.
- 블리치의 사도 야스토라를 닮았다는 소리가 가끔 들린다.
- 크레용팝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출발 드림팀의 걸그룹 씨름 대회 때 크레용팝 전담 감독으로 나왔다.
- 제주도 출신이지만 부산광역시에서 오래 거주했기 때문에 부산에서는 목격담이 많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목격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압도적인 체격 때문에 눈에 띄며, 시장 족발집에서 의자에 앉아있었는데도 사장님보다 키가 컸다든가 하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 밥 샙과 묘하게 공통점이 많다. 둘다 엄청난 거구에[88] 쉽게 떨어지는 체력, 기술 없이 피지컬로만 몰아붙이는 스타일, 둘 다 각각 펀치의 쓴맛을 제대로 본 이후 하향세를 타게 되었다는 점 등이다.[89]
- 현재 한국에서 의외로[90] 키가 세 번째로 큰 사람이다.[91]
- 윤동식 말에 따르면 전성기 시절 풀업 10개를 가볍게 땡겼다고 한다.
- 전성기 시절 마이크 타이슨한테 링위로 올라오라고 도발한 적이 있다. 타이슨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고 결국엔 둘이 서로 악수만 하고 상황은 종료됐으나 당시 최홍만은 그야말로 최전성기 시절이었고 타이슨은 전성기가 한참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이때 둘이 실제로 붙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다.
- 2021년 기준 한국의 악플 문화에 시달리다가 오사카로 건너가 생활하고 있다고 본인이 밝혔다. 이후 2022년 4월에 진행된 김민수가 라이브에서 한 말에 의하면 최근엔 다시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이제는 격투기가 아닌 건강을 위한 운동을 조금씩 하고 있다고 한다. 최무배 역시 최근에 만난 홍만이가 이제 격투계에는 손을 땐 상태였다고 하였다.
- 악플 때문에 대인기피증 진단을 받았다고 하며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 아직도 관심을 받는 게 두렵고 사람들 앞에만 서면 모든 게 캄캄해진다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고민을 밝혔다.
- 2024년 2월 20일,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며 근황을 알렸다. 5년째 제주도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계와 격투기 단체서도 여러 출연(출전) 제의를 받았고 본인도 그것을 위해 운동을 계속 하고 있었으나 막상 링 위에 오르려니 공황장애가 와서 은퇴를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은퇴전 포함해서 2경기를 더 할 것이라고 한다.
- 복귀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최근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근황 모습들을 보면 이전의 수척해졌던 모습과 다르게 눈에 띄게 벌크업이 된 상태라 눈길을 끌고 있다.
6.3. 미디어 믹스
- 오나니 마스터 쿠로사와 초반에 언급된 일이 있고,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도 작중 만화잡지의 이름으로 언급된 적도 있다. 월간 최홍만.
- 그래플러 바키의 작가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다른 작품인 아랑전 코믹스판에서는 그와 유사한 인물이 '최호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다만 작중에는 작중 최강자인 마츠오 쇼잔(최영의가 모티브)에게 '강하긴 하지만 격투가를 상대하는 법을 모른다'는 소리를 들으며 묵사발이 돼서 실려나가는 역할.
- 바바 야스시의 만화 공수도소공자 코히나타 미노루에는 '천만홍'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냥 엑스트라.
- 도라에몽 정발판(신판)에서 노진구와 친구들을 괴롭히는 덩치 큰 고등학생이 "홍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 밖에도 홍만이라는 이름이 이곳저곳에 등장한다.
-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5권에서 카라스마 모미지가 오사카베 아키히메에게 텐구계의 최홍만이라고 소질을 칭찬한다.
- Megpoid와 가쿠포이드의 듀엣곡인 aniimo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Megpoid가 최홍만을 숨겼다고 언급한다. 가쿠포이드왈 숨기기에는 너무 크지 않아?
- 신 연예인 지옥의 최홍 대대장과 청춘병법 아미아미의 최억만은 최홍만을 모티브로 하였다.
- 레전드 오브 곡괭이에서는 '메카 홍만이'라는 보스가 나온다. 소개로는 전설 속의 거인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로봇이라고 한다. 아마 최홍만의 체격이 커서 그런 설정이 붙은 듯하다.
- 톰과 제리 한국 방영 오프닝 중 '최홍만'이 언급되기도 했다.
6.4. 별명
- 테크노 골리앗 - 씨름 선수 시절 경기에서 승리한 뒤 테크노 댄스를 췄기 때문에 얻은 사실상 최홍만을 상징하는 별명.
- 홍만초이 - 외국인들이 최홍만을 발음할 때 나오는 소리지만[92] 어감이 괜찮아서인지 국내팬들도 이런 식으로 많이 부른다.
- 온노쇼 쵸몬도 - 원래는 "안녕하세요. 최홍만입니다."이지만 최홍만의 저음으로 인해 이렇게 들린다. 성대모사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대사다.[93]
- 링위의 간디 - 펀치 공포증이 생긴 이후 이전에 보여줬던 저돌성이 사라져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비폭력, 무저항의 파이터라는 말이 나왔을 때 생긴 별명이다.
- 최키티: 말 그대로 헬로키티 덕후이기 때문에 나온 별명이다.
- 홍마이/홍마니 - 주로 친근한 어감으로 부를 때 쓰는 별명으로 뒤에 '형' 자가 붙기도 한다.
- 홍맨 - 영어 표기로 Hong Man이기 때문이다. 더러는 HM의 이니셜을 홍만이 아닌 Help Me로 부르기도 했다.
- 최홍(紅)만, 박사모 - 당 색깔이 빨간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하여 조직 특보를 맡게 된 이후 불린 별명.
[1]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좀 더 먼저 활동한 김영현이 이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현과 비슷한 체격이면서 구분하기 위해 앞에 '테크노'를 붙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출연한 아이콘택트라는 방송에서는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2] K-1 시절 프로필, 실제론 168kg까지도 나갔다. 또한 수술 전에는 인바디 근육량이 무려 141kg였다고 한다.[3] 윙스팬. 이룽과의 경기 당시 공개된 최홍만의 신체 프로필 표. 다만 다비드 미하일로비치와의 경기 당시 헤럴드경제는 최홍민의 윙스팬이 230cm에 가깝다고 보도했다.#[4] 네이버 프로필 기준.[5] 카오클라이와의 결승전은 2009년 셔독이 선정한 '역대 괴상한 경기 베스트 10(10 Great Freak Matches)'에 8위로 랭크되어 있다.[6] 159cm.[7] 159cm.[8] 170cm.[9] 시편 구절을 올리기도 했다.[10] 자신의 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보통 집 높이로는 모든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며 높이가 정말 높은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11]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단 해체 등으로 씨름판은 존속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고, 영구 제명의 최종 소명 및 선고를 위해 협회에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다 공중분해되어 이만기 본인에게 징계를 내릴 사람조차도 없을 정도였다.[12] 더 정확하게는 K-1에서 일본 요코즈나와 같은 '천하장사(天下壯士/텐카소우시)'라고 정확하게 알렸다. 당시 요코즈나 출신인 아케보노와 대결했기 때문에 이를 더 명확하게 했다.[13] 첫번째는 한국 무에타이 챔피언인 이면주, 두번째는 소년원 출신의 복서 서철.[14] 야구 선수 오승환의 등장곡과 같다.[15] 초창기에는 오 필승 코리아를 사용하기도 했다.[16] 카오클라이는 오히려 무려 자신과 50kg이상 차이나는 마이티모를 KO 시키기도 하는 등 윗체급 선수들과 잘 싸웠지만 정작 본인과 비슷한 체급인 선수한테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오클라이 입장에서는 오히려 완전히 손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 볼 수 있었으나 앞서 싸웠던 마이티 모랑은 체중차는 크게 났어도 신장과 리치차는 비교적 차이가 덜 났었기에 카오클라이가 공략할 수 있었으나 최홍만은 체중은 물론 카오클라이의 다리와 최홍만의 팔길이가 비슷했던 수준이었기에 스피드와 기술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17] 당시 최홍만은 격투기의 기본이라곤 전혀 갖춰지지 않은 선수였지만, K-1에서도 역대 손에 꼽히는 피지컬과 리치를 가진 선수가 힘, 유연성, 순발력을 모두 요구하는 씨름에서 활약했기에 이전 서커스 매치를 하던 선수들과는 본질적으로 신체를 활용하는 능력이 달랐다. 물론 수술 이후에는 급격하게 줄어든 근육량과 그에 비례하는 승률을 보여줬지만, 당시에는 하드웨어가 너무나 훌륭했다.[18] 최홍만의 니킥을 맞은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19]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이 당시 레미 본야스키는 K-1선수들 중에서도 보통 선수가 아니라 챔피언만 2번 따낸 레전드급 선수들 중 한 명이었는데 반해 터케이는 본야스키전이 첫 입식데뷔전이었다. 그런 레전드급 선수를 상대로 입식격투기에 처음 발을 딛인 선수가 몇달도 아니고 일주일도 안된 고작 5일을 준비하고 2-1판정까지 했다는 게 두 선수 전적차이나 터케이의 준비기간을 감안해보면 어떤 의미로는 터케이가 이긴 거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놀라울 수준인데 그런 터케이를 두 번이나 다운시키고 난타전을 펼친 최홍만도 나름 선전한 수준이다.[20] 최홍만도 눈썹 옆에서 피가 흘러나와 닥터체크를 받았는데 이때 화면에 잡힌 슐트의 얼굴을 보면 코옆이 찢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1] 입식 격투기에서 상대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로, 아무리 유효타에서 최홍만이 밀렸을지라도 이 장면이 심판 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22] K-1 룰에서는 무승부 판정이 나오면 최대 2라운드까지(토너먼트의 경우 1라운드) 추가 연장전을 하며, 마지막 라운드까지 KO가 나오지 않으면 심판이 승패 판정을 해야 한다.[23]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24] 심지어 최홍만이 이긴경기라고 보는 여론도 있었다.[25] 물론 유양래의 이후 실적은... 전성기 최홍만과 붙었으면 깨강정이 됐을 것이다.[26]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27] 후술하겠지만 실제 3차전은 서울에서 열렸지만 이때 말한대로 1라운드에 최홍만을 실신시켰다.[28] 전직 씨름 선수답게 표도르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후 파운딩을 엄청나게 날렸다. 정타는 없었지만. 파운딩을 열심히 날리다가 암바로 패.[29] 그냥 입대 전에 뇌하수체 종양 진단서를 제출하여 연기한 뒤, 수술을 하고 재검으로 면제를 받으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입대를 결정하면서, 입소 전부터 그 부대에서 최홍만의 훈련소 생활을 위해 최홍만 한명만을 위한 옷이나 화장실, 훈련장 내 시설 등을 따로 준비하는 모습을 언론에 다 보이게 해놓고, 막상 입소 당일 종양 진단서를 제출하며 훈련소 내 정밀신검 신청을 하고 다음날 정밀신검을 받은 뒤, 그 다음날 퇴소했고, 이후 수술로 면제가 된다. 사실상 군생활을 안할 거였으면서, 법적으로 단순한 문제라 당연히 얼마든지 훈련소를 안 가고, 간단하게 면제받을 방법(입소 전 연기신청이나 재검신청 후 수술, 이후 재검으로 면제)이 있었음에도, 괜히 복잡하게 입소한다고 인터뷰하고 일을 만들어 국방부 예산만 낭비하고 국민들에게 어그로만 끌게 된 것이다. 2일 있다가 귀가할 정식 서류를 가지고 있으면서, 훈련소 잘 다녀오겠습니다 같은 말은 왜 한건지 끝까지 거인증을 인정하기 싫었던 듯하나, 병역의무상 인정 안할 방법이 없던 상황에서 시간을 끈 것은 안티팬 수만 더 늘리는 독이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후술.[30] 2라운드에 최홍만이 다운을 빼앗긴 했지만 럭키 단발성 펀치였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 해 기껏 얻은 포인트도 다 깎였다.[31] 마이티 모의 2차전 결과와 달리 바다 하리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큰 비난은 없이 묻혔다.[32] 두 선수의 기량차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하리는 헤비급에서도 최상급의 신장과 리치를 자랑하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긴 리치를 가진 최홍만이었기에 슐트와 마찬가지로 피지컬이 잘 먹히지 않았고 저때까지만 해도 강철턱이었던 최홍만에게 유효타를 내내 넣었는데도 맷집으로 씹고 간간히 터지는 펀치의 파워가 보통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니 하리로썬 당황할 법 한 상대긴 했다.[33]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거의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34] 여담이지만 세포가 이전 마이티 모 2차전에서 로블로를 터트린 것을 의식했는지, 최홍만이 프론트킥을 급소 위치에 날리자 바로 캣치하며 이럼 안되지라는 사인을 보낸다.[35] 일본에선 꽤 유명한 방송인으로 시릴 아비디에게 이기기도 했다. 유명세 덕에 비디오게임 호혈사에서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일본인들에게 일반인 중 최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36] 이에 김민수가 대타로 출전했고 TKO로 패했다. 최홍만은 관중석에서 관전만 했다.[37] 훗날 이 경기는 K-1의 농간으로 인해 경기 5일 전에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가 결국 3일 전에 오퍼를 수락하고 이틀 훈련해서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 본인은 주장했지만 대회 18일 전인 2007년 12월 13일에 대전 확정 기사가 뜬 걸로 봐서 별로 신빙성은 없다.#[38] 아무리 최홍만의 리치가 길어도 스피드와 기술이 떨어지는데다 MMA 역사상 최강급 타격가를 거론할 때 나오는 인물이 크로캅이라 사실 스탠딩에서는 최홍만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기에 어떻게든 붙잡는데 주력하는 전략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스탠딩에서 레미 본야스키 전만큼 적극적으로 공격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39] 자이언트 실바나 에롤 짐머맨 등 그래플링과는 관련 없는 운동 선수 출신들이거나 밥 샙, 돈 프라이 등 원래 관절기나 그래플링에 약한 퇴물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나마도 에롤 짐머맨에게는 파운딩 세례를 맞고 KO당할 뻔하다 간신히 이겼다.[40] 일단 TKO이긴 한데... 코피가 흐를 뿐 상대가 쓰러지지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다고 한다. 이때 최홍만이 '아 뭐야~'하는 것도 들린다[41] 경기중 최홍만측 세컨에서 클린치 상황에 니킥을 날리라고 수차례나 오더를 내렸지만 최홍만은 심리적 압박감 때문인지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42]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43] 원체 뜬금 없어보이던 다운이다보니, 당시에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었다. 고혈압, 당뇨, 급성심근경색(...)이 왔다는 이야기부터, 누가 밖에서 사냥총으로 쐈다(?!)는 말까지 나왔다.[44] 특히 팔 근육은 아오르꺼러 전에 비하면 확실히 근육이 드러날 만큼 불어있었다.[45]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지에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도 이 모양이기에 실망한 부분도 있고.[46] 김동현이 신예 콜비 코빙턴에게 패했을 때 비난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이후 코빙턴이 웰터급 강자들을 줄줄이 격파하고 잠정 챔피언까지 오르자 여론이 바뀌었다.[47] 상대가 약체여서인지는 몰라도 평소 최홍만답지 않게(?) 꽤나 적극적으로 공격했다.[48] 참고로 생애 첫 3연패라 적혀져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위에 종합 전적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2007년 밴너와의 대결에서 패한 것을 시작으로 호세 칸세코를 꺾기 전까지 5연패, 입식으로 한정해도 3연패를 겪은 적이 있었다.[49] 신장 212cm의 세미 슐트가 작아보이니 말 다했다. 그 밥 샙도 최홍만 앞에서는 성인 앞에 선 덩치 큰 중학생에 불과해보일 정도였으니.[50] 그 당시 세미 슐트보다 신장과 리치가 긴 선수는 최홍만이 유일했다. 체급은 밥 샙까지 더해 2명. 다만 세미 슐트의 경우 최홍만에게 "발전이 없다."라며 디스하기도 했다. 확실히 기술적인 측면이 많이 부족했던 최홍만의 정곡을 찌른 셈.[51] 몬타냐 실바(211cm), 얀 노르키아(210cm), 비욘 브레기(208cm), 자이언트 실바(218cm), 김영현은 현재 최홍만처럼 뇌수술을 한 상태였으니 제외.[52] 가장 긴 리치를 가진 선수는 자이언트 실바로 240cm에 달했다.[53] 전성기 시절의 영상을 보면 느릿느릿해 보이는 핵꿀밤 펀치지만 이게 적중하면 상대방 선수들 머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효도르와의 일전에서도 패배했지만 몇 대 맞은 효도르의 얼굴이 팅팅 붓고 멍이 들 정도였다. 실제 경기 끝나고 효도르 왈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는 수준이니.[54] 정확히 말하면 밥 샙은 정면으로 힘대결했는데 밀렸다. 특유의 무식하게 돌진하는 스타일로 펀치를 퍼부었는데 맷집이나 힘에서 두려울게 없는 최홍만이 맞펀치를 퍼부으면서 두 선수 모두 체력이 고갈되었고, 후반부에 최홍만은 긴 다리를 이용해 계속 킥을 날리며 대미지를 주었지만 체력이 다한 밥 샙은 할 수 있는게 없어 허무하게 패했다. 사실 중반쯤 될 때부터 러쉬를 하다가 힘이 빠져 넘어질 뻔하는 등 무리하는게 보였다. 근육질 거구를 앞세워 돌진하는 것 밖에 못 하는 밥 샙이 더 힘이 세고 리치가 긴 최홍만을 만나니 밀릴 수 밖에 없었다.[55] 예능에 나가면 펀칭 머신을 종종 했는데,#임에도 왼손잡이임을 이야기하면서 왼손으로 펀치를 했다.[56] 보통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사우스 포 자세를 취한다.[57] 그 입식 상대 중엔 하드 펀처 제롬 르 밴너와 너무 강력한 잽, 일명 벽돌잽이라 불린 세미 슐트도 포함되어 있다.[58] 슐트가 최홍만보다는 키도 작고 가볍지만 신장 212cm에 체중 130kg 이상 나가는 슈퍼헤비급 거인 파이터이며 그 맷집 좋은 레이 세포를 실신시켰던 게 슐트의 벽돌잽이다. 애초에 저 체중에서 나오는 주먹을 견디는 거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맷집이다.[59] 종양 제거 수술 이전에는 그래도 온몸이 근육질이라 체격 대비 움직임이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종양 제거 수술 이후 근육이 크게 줄어들면서 속도가 크게 줄어들어 버렸다.[60] 밥 샙, 아케보노, 자이언트 실바, 김영현, 줄루징요, 엠마누엘 야브로 등.[61] 물론 격투기 선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격투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리치가 상대보다 길면 인파이팅보다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때릴 수 없는데 자신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격투기 선수로서 굉장히 큰 장점이자 무기이다.[62] 그래도 엔젤스파이팅에서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으며 러쉬를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긴 했다.[63] 경량급 낙무아이들의 기량이 넘사벽으로 강했기 때문에 자국 파이터들에게 유리한 룰로 고쳐버렸다. 중량급의 세미 슐트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물론 이 룰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쁘아까오와 슐트는 복싱 스킬을 향상시킴으로써 더 강해졌다(...). 그럼 주먹질 금지?[64] 최근에 아오르꺼러를 펀치 한 방에 쓰러뜨렸고 우치다 노보루전에는 최홍만이 휘두른 펀치에 우치다 노보루가 코피를 흘린 것을 보면 아직까지 어느정도 파워는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성기에 비해서 형편없이 약해진건 사실이다.[65] 위에 언급된 멘탈 문제도 초창기이자 전성기엔 없었다. 자신과 같은 몸무게에 무지막지한 파워로 유명한 밥 샙의 펀치세례를 가드도 없이 그냥 맞아주며 본인도 막 펀치를 날리며, 레미 본야스키의 유명한 로우킥을 경기 내내 맞으면서도 별 타격 없다는 듯 (물론 허세긴 하다) 씨익 웃으며 손을 과장되게 양옆으로 뻗는, 말 그대로 괴물.[66] 사실, 일본어는 2006년경부터 잘 하기는 했다.[67] 한국에서는 몬스터 왕자 몽짱으로 알려진 만화다.[68] 출신이 어떻든 일단 연예인으로 나선 만큼, 기괴한 분장을 마다하지 않고 연기하고 활동을 위해 해외에서 거주하는 것이 칭찬을 할 수는 있어도 잘못된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메이저 리그 활동 야구 선수나 LPGA 활동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 있는 선수들도 다 까야 한다.[69] 여자친구와의 사이는 매우 좋았으며 최홍만이 직접 뜬 십자수를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여자친구는 최홍만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옷을 사 주는 등 돈독했다. 운동을 할 때 항상 응원해 주고 충고도 해 주어 정말 고마웠다고 최홍만 본인도 밝혔다.[70] 쌍둥이의 바지가 최홍만 얼굴만 했다.[71] 민호가 붙잡아서 제압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대일로 붙었어도 100% 김종국이 제압당했을 것이다. 다만 김종국이 정면대결을 피하고 도망갔으면 잡는 건 불가능했을듯.혹시 모르지 최홍만도 은근 빠를수도[참고] 이때 자막에 '이름표 떼고도 이어지는 홍만 어른의 꾸중'이라 떠서 최홍만이 더 나이가 많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김종국이 1976년생, 최홍만이 1980년생으로 김종국보다 4살 아래다.[73] 그래도 리즈 시절 때는 UFC 토너먼트 준우승, K-1 지역 토너먼트 챔피언 경력이 있는 등 세계 레벨에서 어느정도 통하는 기량이긴 했다.[74] 실제로 당시 많은 씨름 선수들이 최홍만의 뒤를 이어 격투계에 뛰어들었지만 전부 다 처참히 당하고 얼마 못가 은퇴하거나 다시 씨름계로 돌아간 걸 생각하면 당시 국내에서 최홍만만큼 K-1 네임드 정상급 선수와 겨뤄서 나름 선전한 한국 선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중에선 최홍만과 피지컬이 비슷한 김영현도 있었다.[75] 경기 일주일 전까지는 경기를 치르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3~4일을 앞두고 최홍만을 포함한 대다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장하여 큰 돈을 들인 다이나마이트 미국 대회가 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에서 열었던 대회 때처럼 3~4일 전 대회 준비를 하려다가 미국 주 체육위원회의 대회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K-1의 병크다(PRIDE도 미국 진출 당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미국 주 체육위원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국내와 일본 격투 언론들은 UFC의 K-1 진출을 막기 위한 음모다는 음모론 기사를 쏟아내었다.[76] 돌아가신 조부의 사진을 방송에서 공개하면서 조부께서 키가 조금 큰 편이셨다고는 하나, 190cm가 됐거나 하는 게 아니었고 최홍만과 비견될 수준도 아닌 일반인 중에서 큰 정도였다.[77] 이 점은 최홍만보다 약간 큰 신장에 거인증 의혹을 산 하승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하승진의 아버지 하동기는 205cm, 누나 하은주는 202cm로 엄청난 거인 집안이며, 결정적으로 세 사람은 붕어빵 수준으로 닮았다. 거인증 의혹을 촉발한 하승진 특유의 큰 광대나 턱은 그냥 하씨 집안 특유의 외모이며 이들은 손발이나 신체비율도 정상적인 수준이고 60대인 하동기도 연령보다 훨씬 젊은 신체나이인만큼 장신 유전자를 타고났을 뿐인 그냥 정상적으로 키가 큰 건강한 집안이다. 반면 최홍만의 양친은 둘 다 159cm의 단신이고 형 역시 170cm인데다 최홍만은 양친 모두와 닮지 않았고 머리와 손발이 비정상적으로 큰 등 거인증의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사실 양친과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면 최홍만의 외모는 어머니와 닮았는데 아래위로 쭉 늘여놓은 꼴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78] 실제로 성장 호르몬은 운동선수들이 도핑을 위해 사용하는 호르몬이다.[79] 키와 몸무게 모두 현역입영대상은 아니다. 1996년 기준 153cm 이하면 징집이 무조건 면제되고 196cm 이상의 경우는 현역입영 대신 보충역으로 편입된다. 몸무게 또한 141kg 이상이면 무조건 면제였다. 97년 개정으로 면제에서 공익근무로 대체 복무로 전환되었다. 참고로 개정전 90년대 이 기준으로 면제 받은 사람은 연평균 3000~4000명 사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2023년 현재 장신 공익 기준은 204cm 이상이기 때문에 현재 기준으로도 신체검사를 받아도 체중에 관계 없이 무조건 4급 보충역 판정이다. 즉 뭘 어떻게 해도 현역 판정은 절대 안 받는다는 소리.[80] 생활관 침상이 안 맞을 것이다. 화장실이 좁아서 볼일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등. 그리고 최홍만을 위한 특수 훈련복과 총기를 제작하니 어쩌니 부산을 떠는 후속 뉴스들도 나왔었다.[81] 실제로 나중에 재검에서 면제가 되건 다른 등급이 나오건, 귀가는 이런 신경과 관련 진단서가 있으면 어렵지 않고 그 정도는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82] 특히 그의 훈련소 생활에 대해 상상하면서 응원하던 대중들이나 그의 입대를 위해 특별하게 대책을 준비하던 훈련소 내의 장교나 사병들 같은 관계자들은 그가 훈련없이 2박 3일만에 금방 귀가하여 면제 판정 받은 일로 인해 바보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훈련소 상황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래도 2박 3일이나 있었는데 며칠이나마 의미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할 수도 있으나, 최홍만은 훈련소에 들어가서 5급을 위해 귀가 후 병무청 재검을 원하는 훈련병들만 신청해서 하는 훈련소 내 정밀신검을 신청했기 때문에, 첫날은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에 가까운 상황만 겪기에 훈련을 안했고, 다음날은 정밀신검, 그 다음날 정오에 바로 퇴소를 한 거라 훈련은 전혀 할 일 없이 사실상 그냥 두 밤 자고 나온 것이다.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 바로 훈련을 시작하는 게 아니다. 논산의 경우 3박 4일간의 입영심사대라는 곳에서 보급품 지급과 개인 신상(자소서)을 제출한다든가 진단서 등을 제출하는 시간 등을 보내고 난 뒤에야(정말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낸다) 교육 연대로 이동한 뒤 신병교육 훈련이 시작된다. 최홍만이 입대한 36사단 훈련소라고 시스템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특별 제작 전투복 정도는 한번쯤 입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전투복 입고는 할 수 없는 정밀 신검 탓에 오래 입을 시간도 없었겠으나[83] 원래 K-1단체가 일본 단체인만큼 일본 선수들과 체격차이가 별로없는 MAX급 -70kg 외 외국 선수들의 독무대인 무제한급 체급 밖에 없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정도로 실력좋은 선수들이 뛸수있는 체급이 한정적이였다. 괜히 80kg 급인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 선수가 무제한급에서 뛰었던게 아니다.[84] 특히 2ch에서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85] 다만 이 문단은 그냥 웃자고 쓴 얘기고, 레미는 K-1 월드 그랑프리 3회 우승자다. 역대 K-1 월드 그랑프리 우승 순위는 4회 우승의 후스트, 슐츠 다음은 3회 우승의 아츠, 레미다.[86] 데뷔초에는 그래도 최홍만도 어느정도 인지했었던 거 같았지만 3차전이 추진되었을때 인터뷰서 대놓고 '그 선수랑은 더 이상 비교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87] 예정화도 이 학교 출신이다.[88] 물론 키는 최홍만 쪽이 20cm 이상 크다.[89] 이 외에도 둘 다 킥을 쓰는 장면이 드물고 느리다는 공통점이 있다.[90] 의외인 이유는 예능에서의 거인 이미지 때문에 최홍만이 한국에서 키가 가장 큰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91] 1위는 하승진, 2위는 김병오다.[92] 빅(Big)초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93] 조세호가 개인기로 많이 따라해서 유행하기도 함. 관련 에피소드도 방송에서도 많이 언급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