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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19:45 (UTC+1) | ||
밀레니엄 스타디움 (웨일스, 카디프) | ||
주심: 랍샨 이르마토프 | ||
관중: 56,393명 | ||
2 : 0 | | |
대한민국 | 일본 | |
38' 박주영 57' 구자철 | -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병역특례 여부를 결정하는 경기가 하필 한일전이라는 점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과 구도가 같다. 단, 그렇다 하더라도 전 세계가 참여하는 올림픽과 아시아 국가만 참가하는 아시안 게임의 주목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두 대회 모두 메달을 받기란 쉽지 않다. 이 경기와 성적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위,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 준우승, 2020 AFC U-23 챔피언십 태국 우승[1]과 함께 대한민국 남자 축구 역사상 최고 성적으로 꼽힌다.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경기 중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2012년 8월 10일에 열린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경기를 의미한다. 그 전까지의 경기 진행 상황은 홍명보호(U-23) 참고.
2. 경기 전 예측
2.1. 양국 성적
대한민국 | vs | 일본 | ||||
날짜 | 상대팀 | 결과 | 라운드 | 날짜 | 상대팀 | 결과 |
7월 26일 | 멕시코 | 0:0 무 | 조별리그 1차전 | 7월 26일 | 스페인 | 1:0 승 |
7월 29일 | 스위스 | 2:1 승 | 조별리그 2차전 | 7월 29일 | 모로코 | 1:0 승 |
8월 1일 | 가봉 | 0:0 무 | 조별리그 3차전 | 8월 1일 | 온두라스 | 0:0 무 |
B조 2위 8강 진출 | vs | D조 1위 8강 진출 | ||||
8월 4일 | 영국 | 1:1 무 PSO 5:4 승 | 8강 | 8월 4일 | 이집트 | 3:0 승 |
8월 7일 | 브라질 | 0:3 패 | 4강 | 8월 7일 | 멕시코 | 1:3 패 |
2.2. 운명의 대결
사실 단순한 동메달 결정전이 아니었는데,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느냐, 일본 축구 입장에선 44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획득할 기회나 다름없는 사활이 걸린 시합이었다.또한, 그동안 무수히 많은 한일전 축구 경기가 열렸지만,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가운데 치러진 한일전은 사실상 첫 번째다.[2][3] 또한 축구 종목은 육상 100m, 마라톤[4]과 함께 올림픽 3대 종목이자 상업적 가치가 매우 높은 독보적인 인지도의 종목이다.
사실 그 동안 한일전이 라이벌이니 뭐니 해도 한국과 일본 내에서나 지면 열받는 것이고 그 외에는 아시아권에서 살짝 관심이 있는 정도였고, 타 대륙까지 넘어가면 딱히 관심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물론 한일관계의 라이벌이야 유명하지만, 유럽과 남미가 꽉 잡고 있는 축구계에서 두 팀은 모두 유명하지 않아서 경기 자체만으로는 이목을 끌기 어렵다. 하지만 본 경기만큼은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였으며, 때마침 장소도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영국이었던 만큼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모으는 경기가 되었다.
또한 한일 양국 모두 AFC 소속이니[5] 주심을 AFC의 이마토프(우즈베키스탄 국적)에게 맡겼다. 이마토프는 AFC 올해의 심판상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수상했을 정도로 명성이 높으며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결승전 주심이기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초의 메달 매치 한일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분명히 동메달 결정전이지만, 한일 양국 팬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특히나 한국 선수들은 병역 문제까지 걸려있어서 거의 필드 위에서 죽을 각오로 사력을 다해서 승리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당시 박주영은 대표팀 승선 전부터 병역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만큼 해당 경기가 사실상 마지막 병역면제의 기회이기도 했다.
최초로 아시아 2개 나라가 올림픽 4강에 오른 순간이기도 했는데 청소년 월드컵을 빼고[6][7]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 16강 이후 대진표에서 아시아끼리 격돌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4강(4위)에 올라가서 아시아 국가로 첫 올림픽 축구 4강에 오른 인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한 이라크,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받은 아시아 유일의 축구 메달 국가 일본까지, 그 동안 아시아권 국가로 4강에 올라온 건 이 세 나라밖에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튀르키예는 러시아처럼 대부분의 지역이 아시아에 속하나 축구 대표팀 소속은 유럽 축구 연맹이고 그 밖에 경제, 사회적인 면에서 반쯤 유럽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논외로 한다.
올림픽이라는 한일전 역사상 최고의 스테이지에서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로 메달을 걸고 격돌, 한일전 특유 분위기, 병역 등의 요인이 모두 겹친 덕분에 결국 모든 게 걸린 마지막 한판에서 숙명의 상대와 사생결단의 데스매치를 벌이게 된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최고의 무대는 당연히 월드컵이고 객관적인 연령별 축구대회로서의 위치는 올림픽 축구보다 A매치 대회인 아시안컵이 더 높으나, 세계적 인지도와 유럽, 남미와 멕시코가 단골로 출전하는 올림픽 축구가 높은 면도 있다. 올림픽 대표팀은 U-23 대표팀+와일드카드 23세 이상 선수 3명이 출전한다. 다만 월드컵 본선 32강 조별리그에서는 아시아 국가끼리의 매치업이 성사될 수 없고 설령 두 나라가 16강에 올라간다고 한들 둘 다 웬만하면 조 2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므로 16강에서 맞붙기도 힘들다. 8강 이상이라면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하다. 애초에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가 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낸 사례는 대한민국 4위와 북한 8강(8위)밖에 없다. 일본은 2라운드 16강에 네 번(2002 16강 9위, 2010 16강 9위, 2018 16강 15위, 2022 16강 9위)올라갔고 그 중 2002 월드컵 9위(16강), 2010 월드컵 9위(16강), 2022 월드컵 9위(16강)가 가장 높은 성적이다.
아시안컵에서는 만날 때도 있지만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아시안컵에서의 목표는 우승이므로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는 이상 본 경기만큼의 긴장감과 쉽게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유럽, 아메리카 대륙팀까지 출전하는 올림픽이라는 상징성, 병역특례 여부가 걸린 경기, 올림픽 대표 중 월드컵 대표로 차출되는 선수가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A대표팀이 아니라고 무시할 수는 없으며 아시안컵보다 올림픽의 위상이 한국에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본 시합 이전까지 한일 양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끼리의 상대 전적은 똑같이 4승 4무 4패였으며 이번 시합은 13번째 대결이다. 숫자와 역대 전적마저 참으로 절묘하다. 하여튼 안 그래도 스포츠 아닌 전쟁이 한일전 고유 특성이라고는 하나 대회 규모부터 병역까지 여러 요인이 겹치며 정말로 '전쟁 아닌 전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또한 운명인지, 한국의 경우 무려 광복절을 단 4일 앞두고 있었고, 일본의 경우 영국 현지 기준으로 삿포로 참사 1주년이었다. 그야말로 양국 국민들에게 이 시합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서 그 해가 하필이면 임진년이었다.
거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하기로 했고, 이에 일본 측에서 강력히 반발하는 외교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로서 양쪽 모두 감정이 안 좋은 상태인 것은 말 안해도 다들 알 것이다. 선수들 역시나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참전용사같은 비장한 표정으로 등장, 이 한일전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듯한 모션을 보였다.
타 종목까지 포함하자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남자 마라톤의 황영조 vs 모리시타 고이치,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김연아 vs 아사다 마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부 준결승전과 더불어 올림픽 역사에 남을 한일전 명승부이다.
2.3. 경기 예상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모두, 패하는 순간 올림픽 4강 진출이라는 쾌거가 무색하게 자국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경기였다.당시 일본은 FIFA 랭킹 1위(당시) 스페인을 격파한 직후였기에 본인들이 우승 후보라고 호언장담한 형편이었고 그런 상황 속에 대한민국이 개최국 영국의 연합팀을 격파하여 영국과 세계를 놀라게 하고 4강까지 올라오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단지 최악의 경우가 한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이라며 결승에 갈 것을 자신했다. 하지만 멕시코에게 처참히 패했고, 한국 역시 브라질에게 밀려 떨어지면서 기구하게도 한일전 동메달 결정전이 성사됐다.
일본의 축구팬들이 그리도 꺼리던 최악의 축구 한일전이지만 올림픽 축구 전적만 보면 일본이 불리한 시합은 아니었다.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성인 대표팀과는 달리, 1999년 한일전에선 4:1로 일본이 이기는 것을 비롯하여 일본과 한국이 막상막하고, 한국과 일본의 역대 올림픽 대표팀 전적은 12전 4승 4무 4패로 팽팽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본 대회 기준 4년 전에 있었던 2008년 AFC U-19 대회에선 한국이 8강에서 일본을 3:0으로 완승해서 이집트행을 가로막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4년 전 U-19 아시안컵에서 뛴 그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치르는 리턴매치. 일본은 조 1위를 했다는 이점 덕에 편한 상대를 만나 승승장구하면서 우승후보라고 자신들을 지칭하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높였고, 대한민국은 애써 올라온 8강에서 떡하니 홈팀과 붙게 되며 국민들을 멘붕시켰으나 위풍당당하게 4강 진출을 이루어 메달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 게다가 한국 대표팀의 감독은 일본전 스페셜리스트 홍명보였다.
홍명보가 참여한 한일전 중 패배는 1994 미국 월드컵 지역 예선이 유일하다. 이 경기에서 패배한 홍명보는 다음부터 한일전에서 패배하면 축구화를 벗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홍명보가 은퇴할 때까지 출전한 한일전에서는 진 적이 없다. 1998 월드컵 예선 홈경기에서 일본에게 진 적이 있지만, 이때 홍명보는 경고누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J리그에서 오래 뛰어서 일본 축구의 약점을 아주 잘 알았다. 두 팀 모두 이때까지 쌓은 업적이 인정 받을 수 있느냐는 이 한 경기에 달렸다.
2.4. 그 외
이 경기가 시작할 시간은 한국과 일본 시간으로 8월 11일 새벽 3시 45분[8]이었다. 사실 축구를 보기엔 정말 좋지 않은 시간대지만 시합의 중요도에 더해 마침 11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9]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아예 밤을 새거나 이 시합을 보기 위해 10일 저녁에 잠들어 11일 새벽에 일어나는 등 유독 생방송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이 날은 한국이 홈 배정을 받았음에도 원정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색약 문제와 더불어 흑백 TV[10]로 보면 유니폼이 헷갈린다며 둘 중 하나는 하얀 옷으로 해야 한다는 권고가 들어왔는데, 일본이 원정 유니폼으로 가져온 게 하얀 세컨드 킷이 아닌 빨간 서드 킷이어서 한국이 양보했다. 어차피 원정 유니폼을 입고 영국을 떨어뜨린 좋은 기억도 있어서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크게 불만은 없었다.[11]
해외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오죽하면 "결승전을 보지 말고 동메달 결정전을 봐라!"라고 했을 정도. 그리고 마침내 3시 45분 한국 축구의 역사에 길이 남겨질 사상 최강의 한일전이 시작되었다.
3. 경기 실황
대한민국 선발 명단 4-2-3-1 감독: 홍명보 | |||||||
GK 1. 정성룡 | |||||||
RB 2. 오재석 25' | CB 12. 황석호 | CB 4. 김영권 | LB 3. 윤석영 | ||||
CM 15. 박종우 | CM 6. 기성용 22'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RW 13. 구자철 34' 57′ ▼ 88′ 5. 김기희 ▲ 88′ | CAM 9. 지동원 ▼ 68′ 11. 남태희 ▲ 68′ | LW 7. 김보경 | }}} | |||
CF 10. 박주영 38′ ▼ 85′ 17. 김현성 ▲ 85′ | |||||||
CF 11. 나가이 겐스케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 7. 오츠 유키 | CAM 10. 히가시 게오 | RW 17. 기요타케 히로시 | }}} | |||
CM 3. 오기하라 다카히로 | CM 16. 야마구치 호타루 | ||||||
LB 2. 도쿠나가 유헤이 | CB 5. 요시다 마야 | CB 13. 스즈키 다이스케 | RB 4. 사카이 히로키 | ||||
GK 1. 곤다 슈이치 | |||||||
일본 선발 명단 # 4-2-3-1 감독: 세키즈카 다카시 |
올림픽 공식 하이라이트
SBS 풀버전[12]
KBS 하이라이트
경기장은 73%에 달하는 습기로 잔디의 상태가 좋지 않아 선수들이 미끄러지거나 헛발질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좋은 환경이었으며 그 탓인지 이 날 유독 볼이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치솟는 경우가 많았다.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의 일본을 상대로 홍명보 감독은 피지컬을 앞세운 압박을 주문했고 그래서인지 경기 내용은 거친 몸싸움의 향연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헤딩 경합 같은 상황에서 일본 선수들과 볼다툼을 하게 되면 바셔버려.라는 무시무시한 주문을 했고 홍명보 감독의 승리에 대한 절박함을 읽은 선수들은 그걸 그대로 실현. 옆의 일본선수를 견제해야 하겠다 싶으면 동료 선수에게 야! 박아!라고 하며 거친 몸싸움을 보여줬다.
경기 시작 후 역시나 한일전답게 초반부터 구자철이 1분에 파울 하나씩을 쏟아내며 다소 과열된 양상으로 흘러가다 결국 피까지 봤다. 전반 42분에는 박주영이 오기하라 타카히로와 헤딩 경합 도중 오기하라의 팔꿈치에 맞아 뺨에서 피가 나는 부상을 입었고, 이를 되돌려주기라도 하듯 후반전에서 또 다른 자리 싸움에서 야마무라 선수와 팔꿈치가 부딪혀서 야마무라가 피를 쏟았다. 그 후 야마무라는 붕대를 감고 다시 복귀.
전체적으로 기세등등하고 거센 플레이가 이어져 브라질 전에서 보여주었던 섬세한 패스보다는 피지컬로 때려박는 강한 압박플레이가 이어졌다. 전반전에만 대한민국은 몇분만에 세 명의 선수가 카드 3개를 받아내었다. 기성용과 오재석은 쿨하게 카드 수용. 반면 유독 캡틴인 구자철은 미친 듯이 뛰면서 평소의 상당히 침착한 모습과는 다른 면을 과시했다. 다른 선수들이 그냥 절박하게 뛰면 구자철은 그냥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분노의 질주를 하는 수준.
그리고 전반 태클이 깊었다는 다소 미심쩍은 이유로 옐로카드를 받자 눈알 튀어나오는 비주얼에 핏대까지 세우며 심판한테 잡아먹을 듯이 와이?! 와이?! 왜왜왜?!하면서 달려들었다. 사실 앞의 두 선수의 경우 몸싸움이라도 하고 받았지, 구자철은 모션만 과격했지 정말로 공만 건드렸으므로 카드를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뭐... 이 경기에서 뛴 대한민국 선수들 중 가장 전투적이었던 선수가 구자철이라는 건 맞지만... 심지어 반발하는 일본의 기요타케 히로시와 충돌까지 할 정도로 미친듯이 폭주했으나 기성용이(!) 말려서 상황 종료. 평상시엔 기성용이 날뛰고 구자철이 말리는데... 기성용이 후에 힐링캠프에서 자신과 구자철의 역할이 뒤바뀌었다고 인증하며 말하길, 이때 기성용은 짜증내면서 구자철을 떼어놓았다고 한다.
사실 구자철이 이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게,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일본에 패했을 때 첫 번째 키커로 구자철이 나섰는데, 성공시키지 못했다. 거기다 7개월 후 삿포로에서 0:3으로 완패하면서 대차게 비난받은 바도 있다. 본인도 삿포로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 난투극은 일본 역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기에 후반 20분을 지났을 때 한국 파울 16개, 일본 파울 21개, 대한민국 옐로카드 4장, 일본 옐로카드 2장이라는 대난투전이 기록되었다. 특히 후반전에는 구자철에게 또 한 골 먹고 마음 급해진 일본팀의 맞불작전으로 거친 파울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나중에는 심판이 파울을 불다 불다 지쳐서 포기하고 파울 선언이 줄어들었을 정도. 표정을 보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젊은 애들 지도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전 경기들과 달리 시종일관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롱볼 전술을 들고 나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쏠쏠한 실적을 자랑하는 이 전술에 역시나 일본은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했다. 거기다 위에 서술된 거친 압박이 상당히 효과를 봤는지 후에 일본은 대한민국 선수들의 피지컬 어택이 유럽 선수와 맞먹는다고 패배 요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 역시 거친 몸싸움으로 맞서려 했지만 대한민국은 애초에 리그 스타일부터가 피지컬 위주인데다, 많은 국대 경험과 해외 경기로 거친 몸싸움에는 도가 튼 선수들이 대부분인지라 대한민국의 피지컬 어택에는 다소 못 미쳤다.[13]
초반에는 대한민국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다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일본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는 브라질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지만, 일본 개개인의 능력이 브라질급이 아닌지라 딱히 위협적인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전반 37분경, 역습상황에서 박주영이 구자철의 패스를 받아서 혼자 수비수 4명을 제끼고 들어가 골을 넣었다.
이후에도 일본이 공세를 유지했으나 득점없이 전반전 종료. 후반전에도 전반과 비슷한 경기양상을 보였고, 일본은 계속해서 공격을 펼쳤으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플레이를 보이면서 헛수고만 했으며 오히려 후반 14분 김보경한테 한 골 더 헌납할 뻔했다.[14]
후반 종료를 5분여 남겨 놓고 일본이 코너킥 상황에서 만회골을 기록하나 했지만, 골키퍼 차징 반칙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대한민국은 한숨을 돌렸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결국 일본이 아무런 반전 기회도 얻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이 축구 종목에서 사상 첫 메달과 병역면제를 모두 가져갔다. 일본 선수 11명은 전원 필드에 주저앉아 멘붕 상태에 빠졌으며 대한민국 선수들은 금메달 딴 것마냥 기뻐하는 모습이 대조되기도.[15]
3.1. 박주영의 병역면제슛과 구자철의 추가골
전반 37분, 일본 진영에서 홀로 패스를 넘겨받아 혼자서 드리블로 3명을 따돌린 후 골을 넣는 이 장면은 그동안 박주영을 까던 사람들마저 닥치고 칭찬을 하게 할 정도였다. 특히나 드리블로 수비수 3명을 굴비엮듯이 엮어 관광태우는게 리오넬 메시와 흡사하다고 하여 박메시 혹은 메시 빙의라는 별명도 추가 획득했다.
이 골은 2002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발리슛, 2022년 황희찬의 포르투갈전 추가시간 역전골과 함께 한국축구 대표팀 베스트 골로 반드시 회자될 정도의 역사적인 골이 되었다. A대표팀이 아닌데도 그 어느 A팀 경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하긴 올림픽 메달 자체가 최초이고 그 메달을 따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골이자 국제 축구대회의 한일전 중 가장 높은 단계였으니 그 임팩트로 따지면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과 비교할 만한 사실상 유일한 골이다. 당시 SBS 해설위원 차범근도 박주영 일생의 골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전까지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헤딩셔틀과 수비 가담만 하던 박주영이 유독 이날 메시를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득점 장면을 연출하자, 누리꾼들은 농담 반 진담 반 '저 놈 저거 군대 가기 싫어서 저렇게 필사적으로 넣은 거 아냐?'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려고 죽을 힘을 다한 것이 골을 넣은 원동력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슛의 이름은 그대로 니가 가라 군대 슛, 군대안가 슛, 병역면제슛, 또는 논산거부슛이 되었다.
축구팬으로선 데자뷔를 느낄 만한 장면인데, 2004년 아시아 청소년 대회 때 중국과의 경기에서 수비수 네 명을 농락하며 만들어냈던 골을 연상케 했다. 순간적인 바디페인팅과 수비수가 움직일 타이밍을 뺏는 드리블로 슈팅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본래 박주영이 가진 강력한 무기였지만, 2012년 들어서 떨어진 폼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닥쳐도 아예 볼 키핑을 못하거나 슛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림픽 동메달과 병역면제가 걸린 경기인데다가, 한일전이라는 일생일대의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결국 이 인생역전 골과 후반전에서 구자철에게 준 백헤딩 어시스트로 사실상 '한일전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사실 박주영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슛은 빗맞은 슛이었다고 한다.[17] 일반적으로 골키퍼와 1:1 상황일때는 가급적이면 먼쪽을 보고 슛하는게 일반적(박지성이 일본 조깅 관광을 생각해봐도)이다. 키퍼 입장에서도 모르지 않기에 오른쪽으로 언제 올지 타이밍만 잡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으로 슛하니 타이밍을 늦게 잡아서 들어간 골.
후반 11분경 정성룡 골키퍼가 길게 보내준 골킥을 박주영이 백헤딩으로 침투하는 구자철에게 전달, 왼발로 가볍게 한 번 트래핑한 후 오른발로 슈팅을 날려 일본 수비수에게 알까기를 먹이며 추가골을 성공했다. 정성룡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좋은 발밑에 이어 구자철의 위치를 본 박주영의 좋은 패스, 그리고 구자철의 완벽한 마무리로 이어지는 완벽한 골이었다.
3.2. 오츠 유키의 파울
후반 41분경 일본의 코너킥 상황에서 오츠 유키가 정성룡 골키퍼를 차징해 쓰러뜨린 사이 주장 요시다 마야가 헤더로 골을 성공시면서 경기장이 잠시 술렁였다. 하지만 이내 차징파울이 선언되고 골이 무효화됐다.리플레이를 보면 코너킥을 차자마자 오츠가 달려나오면서 정성룡 골키퍼를 팔로 밀쳐 쓰러뜨리는 모습이 정확히 포착된다. 너무 완벽한 파울이라 일본에서도 판정 드립도 못하고 오츠를 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신 못 차린 일부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 심판이 오심이 아니냐는 헛웃음 나오는 드립을 쳤다. 설사 골로 인정한다 해도 경기 결과에는 영향이 없으니 무의미한 말이다.
참고로 오츠 유키는 경기 이전 일본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일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겠다"며 대회 득점왕에 대한 포부를 밝혔던 바 있다.[19] 결과적으로 본인의 해트트릭 기록은 커녕 일본의 완패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4. 반응
4.1. 대한민국
홍명보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경기 직후 한국팀 라커룸은 미친놈들 집합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홍명보 감독과 그 선수들은 동메달을 받아서 현 국대 감독인 최강희를 바로 사퇴시키고 그 차기 감독에 홍명보를 넣으라는 말까지 나왔다.[20]
이로부터 6년 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 병역 특례를 놓고 한일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연장 접전 끝에 대한민국이 2:1로 승리하며 한일전 승리+금메달+병역 특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고, 그로부터 5년 뒤 1년 연기된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도 병역 특례를 놓고 한일전을 치렀으며 이번에도 대한민국이 2:1로 승리해 병역 특례가 달린 경기에서 일본 상대로 3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
런던 올림픽은 다양한 종목에서 많은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거둔데다가 종합 성적도 훌륭해서 한국에서 흥행한 대회였는데, 이러한 흥행과 인기에 축구 대표팀의 선전과 동메달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이 메달로 지동원은 강민호에 이은 2번째 제주도 출신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4.2. 일본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이후 만들어진 짤 |
2ch 역시 당연히 대폭발. 패배한 자국 선수들을 두고 '헤엄쳐 돌아오라', '한국 선수 대신 군에 입대시켜야 한다' 라며 격분하는 한편 야구팬이 와서 "축빠들이 안 죽었나 보러 왔음ㅋㅋ 병신같은 춍에게 발린 기분은 어떠셔?"[23] 라며 자학에 가까운 도발(168)도 가하는 등 각양각색의멘붕 반응이 나왔다. 대략 소개해주자면, 전부 죽어라, 계란을 쳐맞아도 찍소리도 못할 수준이다, 이코노미도 사치다, 패스를 300번 이어도 골은 안 들어간다, 옐로카드 수로는 이겼다, 곤다[24][25] 군대 보내라, 백패스 재팬으로 이름 바꿔라, 또 뻥축구에 졌다, 이집트한테 지는 게 나았다, 런던에서 걸어 돌아와라, 곤다 징병 결정, 일본은 역시 야구의 나라였어[26], 골키퍼한테 태클은 왜 하는데 등이다(...) 꼭 2ch 찌질이들이 아니더라도 몇 십년째 롱볼축구 전술에 계속 털리고 있고, 이걸 막아낼 대형 수비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자신들의 오랜 라이벌 나라와의 데스매치에서 져버렸으니 일본 축구팬들의 입장에서도 욕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오죽하면, J리그를 경험한 홍명보 영향인지, J리그에 한국인 데려오지말라며, 데려오면 이적행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2ch는 초상집 분위기였다.[27]
일본은 16강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꺾는 등 2승 1무를 기록했고 8강전에서도 이집트를 3:0으로 꺾는 등 파죽지세로 4강에 진출했지만, 결국 목메달만 가져갔다. 일본의 세키즈카 전 감독은 경기장 잔디 상태가 안 좋았다는 말과 체력적으로 딸렸다는 말을 했지만, 별로 수긍하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같은 잔디에서 하는데다가 대한민국은 8강전에서 승부차기를 하고 왔다..
사실 잔디 상태는 양팀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고, 체력적으로 달린다는 말은 사실 대한민국 쪽이 더 안 좋았다. 대한민국은 토너먼트 때 연장전+승부차기까지 하면서 올라왔고 부상자도 발생했으며, 일본에 비해 체력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브라질과 준결승전을 치렀다. 동메달 결정전 때도 대한민국이 좀 더 쉴 시간이 적었다. 굳이 변호하자면 정말 잔디 상태가 영 안 좋았을 경우, 정교한 패싱 게임이 주특기인 일본팀에게는 나름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잔디 핑계나 대는 덕분에 일본 감독의 이 말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어차피 메달 여부 상관없이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감독을 그만둔다고 밝혀왔는데 불명예스럽게 그만둔 셈이 되었다. 한편 일본 극우언론인 산케이신문은 습기 탓에 일본이 졌다고 보도하면서 역시 웃음거리를 주었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동메달을 획득했던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는데도 대표팀 귀국 현장에 나와있던 기자는 딸랑 4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장 요시다 마야는 일본의 올림픽 도전 중에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9년 뒤 일본은 홈에서 다시 멕시코를 상대로 동메달에 도전했으나, 이번에도 경기를 1:3으로 패하며 또 다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5. 뒷이야기
5.1. 김기희의 4분 면제[28]
올림픽 대표팀 중에서 유일하게 조별리그, 토너먼트 모두 출전 기록이 없어 동메달을 따고도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를 받지 못하는게 아닌가 주목을 받았던 김기희도[29] 승리가 확정적이었던 후반 45분 구자철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됐다. 이로써 올림픽 대표팀 전원이 병역특례를 받게 되는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다른 선수들도 김기희에게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라고 놀렸을 정도라고 하니 홍명보 감독이 팀을 더 중시한 것은 사실인 듯. 물론 농담이다. 같이 훈련하는 동료인 만큼 한명만 혜택을 못 받으면 양껏 기뻐할 수가 없을 테니 모두들 전원 병역특례를 간절히 바랐고, 훗날 오재석은 김기희가 경기장 들어오는 순간이 골 들어갔을 때보다 더 행복해했다고 인터뷰했다.
1점차였으면 못 넣었을거라니 절묘한 상황. 참고로 이범영의 경우 골키퍼를 교체하기란 쉬운 게 아닌 만큼 영국전에서 정성룡의 부상으로 대타로 뛴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던 셈.# 이에 대해서 백업요원의 존재 자체가 전력인데다가[30], 백업요원이라고 노는 것도 아닌데 꼭 1분이라도 뛰어야 병역 혜택을 받는 형식적인 규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꽤 있었으며 결국 규정이 바뀌어서 등록만 되더라도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후 김기희는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고 2년 3개월이 지난 2014년 11월에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예술체육요원으로서의 복무를 시작하였으며, 2017년 9월에 복무만료 처분을 받고 병역의무를 마무리지었다.[31]
5.2.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이 경기가 끝난 후 박종우가 경기 종료 직후 '독도 세리머니'를 한 게 밝혀져 문제가 되었는데 올림픽 규정상 선수들은 경기 도중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나 언행, 선전 활동도 금지되어 있기에 이건 큰 사건이다. IOC는 이 사건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으며, 박종우에게 메달 시상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보했다.또한 구자철이 골을 넣은 후 몇몇 동료들과 함께 보였던 '대한민국 만세' 세리머니가 원래는 독도 세리머니를 하려고 했던 걸 기성용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인 건 당연한 사실이니 거기서 독도 세리머니를 하는 건 유치하다고 주장해서' 바꾼 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러 네티즌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수들은 이 규정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하다고. 하마터면, 대표팀 전원이 조사회에 강제 정모로 끌려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을 수도…
실제로 구자철이 경기 도중 독도 세리머니를 단체로 했으면 몰수패를 선언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선수 여러명이 중징계를 받는 건 피할 수 없으므로 외신들의 가십거리로 구설수에 올랐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독도 문서나 2012 런던 올림픽/사건사고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일본 네티즌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32]
이에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분개했던 게, 체조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딴 일본 팀의 경우 욱일기 디자인의 경기복을 입고 참가했고, 이 사실에 대해 자크 로게 위원장이 그게 문제가 된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면서 딱 잘라 말했기 때문. 물론 일본에서는 욱일기가 아니라 자국기인 일장기를 모티브로 디자인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5월달 아사히 신문 영문판 기사에서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을 형상화한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게 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일장기가 아닌 욱일기를 상징한다. 기사링크 물론 일본이 저렇게 강력하게 잡아떼고 있는데다가, IOC에서 문제삼지 않는다고 말한 이상 흐지부지되는 분위기.
IOC뿐만 아니라, FIFA 역시 같은 원칙을 갖고 있다. FIFA 규정에서는 "Players must not reveal undergarments showing slogans or advertising. The basic compulsory equipment must not have any political, religious or personal statements.", 속옷은 슬로건이나 광고를 하여서는 안 되며, 기본 장비(선수 포함)는 정치적, 종교적, 개인적 선전문구를 포함하여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실제로 이 규정 때문에 중동에서는 히잡을 쓰고 A매치를 해서 몰수패를 왕왕 당했고 세르비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 선수들이 유니폼에 "내 조국에 폭격하지 마라!" 글을 쓰고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면서 윗옷을 벗어 이걸 보여주다가 FIFA에게 징계를 먹은 바 있다.
이 때문에 한일전처럼 민감한 경기가 열릴 경우, 대한축구협회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사전에 선수들에게 주의를 당부한다.[33] home|top 일단 대한체육회는 나름대로 이 원칙을 선수들에게 알려준다고 하지만 문제는 축구팀의 경우 다른 종목의 선수들과 다른 곳에서 훈련한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나섰든 안 나섰든 축협이 신경 써줬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런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애당초 대한축구협회가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를 돌파하고 메달까지 딴다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 뒤 이 사건은 2012년 12월 3일, FIFA로부터 박종우의 A매치 2경기 출장 정지와 함께 메달은 수여하되 수여 관련 세리머니를 일절하지 않는다는 징계를 먹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5.3. 펠레의 축복?
2012년 8월 10일 한일전이 열리기 전에, 펠레가 런던에서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딸 것이라고 발언을 했다. 이때 그는 "중국 축구가 2016년 올림픽 본선에 진출할 것"이라는 덕담을 했으며 중국 축구 팬들은 2016년에도 올림픽 진출은 다 틀렸다고 멘붕.그리고 3년 6개월 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6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A조에 속한 중국은 결국 본선 조별리그 3전 전패로 올림픽에 진출하지 못했다. #[35]
6. 중계
중계 방송 | ||
서기철 | 이용수 | |
[36] | 김창옥 | 허정무 |
배성재 | 차범근 |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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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vs 대한민국 1:4 패 | ||||||
아시안 게임 | ||||||
(2018) vs 대한민국 1:2 (연장) 패 | (2023) vs 대한민국 1:2 패 | |||||
AFC 아시안컵 | ||||||
(2011) vs 대한민국 2:2 무 (PSO 3:0 승) | (2019) vs 카타르 1:3 패 | (2024) vs 이라크 1:2 패 | (2024) vs 이란 1:2 패 | |||
FIFA 월드컵 | ||||||
(2018) vs 폴란드 0:1 패 | (2018) vs 벨기에 2:3 패 | (2022) vs 독일 2:1 승 | (2022) vs 스페인 2:1 승 | |||
기타 경기 | ||||||
<colbgcolor=#fec,#320> (1993) vs 이라크 2:2 무 | (1997) vs 대한민국 1:2 패 | (1997) vs 이란 3:2 승 | (2011) vs 대한민국 3:0 승 |
[1] 그냥 우승한 게 아닌 6경기 전승 우승이라는 굉장히 드물면서도 명예로운 업적이다.[2] 두 번째는 그 유명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이었다. 단,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의 한일전이 국제적인 이목을 끈 것은 경기 자체보다는 손흥민의 군면제 여부 때문이었으니 굳이 한일전이 아니었어도 되었다. 즉, 대한민국이 흔히 생각하는 '한일 양국 간의 피 튀기는 라이벌전' 이라는 의미에서 세계적인 이목을 끈 한일전 축구 경기는 바로 이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전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로부터 10년 뒤에 열린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한국과 일본이 둘 다 16강에 올랐고, 대진표상 양 팀이 8강 진출에 성공했다면 월드컵 4강 진출이 걸린 역대급 죽음의 한일전이 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크로아티아에게, 한국은 브라질에게 패하며 16강전 탈락으로 무산되었다.[4] 공교롭게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33km 지점부터 대한민국의 황영조와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가 1대1의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였고, 40km 지점을 목전에 두고 황영조가 라스트 스퍼트로 모리시타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경기는 공교롭게도 조선인 손기정이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와 같은 날짜(현지시간 기준 2012년 8월 9일)에 열렸기 때문에 의미가 깊었다.[5] 흔히 알고 있는 타 대륙 심판이 맡는다는 것은 두 팀이 소속된 대륙 단체가 다를 때 이야기다. 같은 대륙 단체 대결이면 웬만하면 같은 대륙 심판을 배정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6] 2003년 U-20 아랍에미리트 월드컵에서 16강전에서 한국-일본 대결 결과 2:1로 일본 승리. 그 뒤 일본은 8강전에서 대회 우승팀 브라질에게 1:5로 참패했다.[7] 이로부터 16년 뒤 2019년 U-20 폴란드 월드컵에서도 16강에서 한일전이 성사됐는데, 이번에는 한국이 오세훈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 세네갈, 4강에서 에콰도르를 이기며 남자 대표팀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8] 영국 현지 시간 기준 8월 10일 저녁 7시 45분(19시 45분). 서머타임 적용.[9]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10] 빈국에서는 아직도 흑백 TV를 쓰는 곳이 적지 않다.[11] 실제로 한국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선 유독 원정 유니폼을 입었을 때 좋은 결과를 냈던 때가 많으며, 흰 유니폼은 올림픽 축구 무패라는 기록을 쓰고 있다.[12] SBS 공식 앱에서 로그인을 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13] 대한민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32개국 중 평균 키 5위까지 찍어본 나라다. 당시 일본은 31위.[14] 골키퍼 손을 스친 후 골대를 강타하고 튕겨 나왔다. 거의 다 들어간 것 같아서 당시 SBS 배성재 캐스터와 차범근 해설위원도 슛!!!! 골!! 아!!!!.......라고 했다.[15] 동메달을 딴 선수가 금메달이나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도 행복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6] 다만, 국방의 의무를 대신해서 하는 경우는 불법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홍명보 감독의 언플이라고 보면 된다.[17] 다만 박주영은 인터뷰에서 습관적(?)으로 빗맞은, 잘못 맞은 슛이라고 언급을 많이 하긴 한다. 진실은 선수 본인만 알겠지만.[18] 홍명보 감독은 하술했듯이 1점 차였으면 김기희를 교체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으며, 이 경우 김기희는 한국 대표팀 중 유일하게 출전 기록이 없어서 동메달을 따고도 병역 면제를 못 받는 대참사를 겪을 위기였으나, 승부가 어느 정도 굳혀지자 홍명보의 배려로 마지막 4분간 출전하게 되어서 결국 병역 면제를 받았다. 오츠의 골이 들어갔으면 얄짤없이 (당시 원칙 상으로는) 군대로 끌려갈 뻔 했다. 참고로 홍명보는 경기 전에 이 고민을 하다가 만약에 1점차로 이기고 김기희를 투입하지 못했다면 대통령이라도 찾아가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19] 오츠 유키는 한일전 이전까지 3골로 득점 3위를 달리고 있었다.[20] 그리고 2년 뒤에 월드컵에서 쓴맛을 봤다.[21]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일본 뿐 아니라 제3국에서 봤을 땐 대체로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약간 강하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해당 경기의 배당도 일본이 살짝 낮았다. 이는 객관적인 평가라기 보다는 국가 인지도가 투영된 결과에 가깝다. 실제로 양국의 축구 역대 전적은 대한민국이 압도하기도 하고.[22] 실제로 일본 여자 축구팀은 이번에 이코노미로 끊어서 입성한 뒤 은메달을 땄다. 참고로 일본 여자 축구 성인 대표팀은 직전 FIFA 여자 월드컵을 우승한 팀이다.[23] 각색한 것이 아니라 원문(번역본)이 이렇게 쓰여 있다. 축빠들의 추한 행태를 보다 대참사(클린시트 참패, 동메달 획득 실패)를 목도하자 비웃으면서 쓴 댓글로 보인다.[24] 이 경기에서 두골을 내준 골키퍼.[25] 훗날 그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스페인 맹공을 막아내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 된다.[26]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언제나 그렇진 않다. 그리고 이 현상은 우습게도 야구 한일전에서 패배하면 축구 혹은 타 구기종목(배구,농구 등)의 나라라고 하기도 한다.[27]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수준급 골키퍼 자원이 거의 씨가 말라 J리그 구단에서 앞다퉈 한국인 골키퍼를 모셔오려는 판국에 실리적으로라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한때 대한민국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정성룡은 선방능력이 K리그 최상위권이라곤 할 수 없었으나 J리그 이적 후에는 명실상부한 J리그 원탑 골키퍼가 되었다.[28] 엄밀히 말하면 병역면제를 받는 것이 아니지만 '4분 면제'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29] 병역특례는 날먹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조건 그 대회에서 출전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다른 구기 종목이었다면 선수 교체가 자유롭기 때문에 약한 상대와 대결할 때 선발이나 교체선수로 잠시라도 넣어 출전 기회를 줄 수도 있었겠지만 축구는 한 경기에서 3명 이내로 최대 3명까지만 교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게 어렵다.[30] 주전으로 나선 골키퍼가 부상이나 퇴장 등의 사유로 못뛰게 되면 아무도 골키퍼 할 사람이 없다. 해당 포지션에 교체 멤버가 있는 것만으로 당연히 더 도움이 된다. 거기다 훈련도 같이 하고 있기에 전력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병역특례를 위해 억지로 교체 투입을 고려해야 하는 것부터가 팀에 긍정적이지 않고 이마저도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실제로 전술한대로 이범영이나 김기희 모두 운이 좋아서 투입된 것이지, 특정 선수 빼고 전원 병역 혜택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가 원치 않았을 것이다.[31] 다만 김기희는 2024년 현 시점에서는 실제 훈련이 부과되지 않는 예비군 7년차이긴 하나 미국 MLS 소속의 시애틀 사운더스에서 뛰었던 2018년~2019년(김기희가 예비군 1년차~2년차였던 시기)의 두 해 동안 연속 365일 이상 해외거주를 하지 않았을 경우 2018년과 2019년에 받아야 했던 훈련을 7년차 혹은 8년차(2025년)에 받아야 한다.[32] 5ch 등 우익 커뮤니티 사이트 등.[33] 2008년 한일 올스타전 기사[34] 2018년 당시 한반도기에 독도가 표기되어 있자 일본 측에서 항의를 했고, IOC도 정치적 행위라 규정하고 독도를 제외시킬 것을 권고했었다.[35] 그 대신 여자 축구팀은 본선진출에 성공했으나 메달은 커녕 8강 8위로 대회를 마감하면서 2008년 이후 8년 만의 본선진출 및 8강 토너먼트 진출 1회를 쌓는 정도에 그쳤다.[36] 녹화 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