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10년 허정무호 2기에 대한 내용은 허정무호 문서 참고하십시오.
관련 문서: 허정무호(U-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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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대 감독 허정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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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정해성 (코치)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김현태 (GK 코치) |
주장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김병지 (1998)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홍명보 (1999~2000) |
계약 기간 | 1998년 8월 14일 ~ 2000년 11월 30일[1] (2년 3개월 / 840일) |
계약 종료 (계약 기간 종료) | |
연봉 | 3억 원 (감독) # |
전술 스타일 | 선수 맞춤 전술 ┗ 3-4-3 포메이션 |
성적 | A매치 33전 17승 11무 5패 (승률 52%)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6위 / 8강)[2] 2000 CONCACAF 골드컵 (9위 / 조별리그)[3]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3위)[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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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61대 감독 허정무의 1기 대표팀에 대해 다룬 문서. 1998년 8월 14일부터 2000년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허정무는 이후 2007년에 제67대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2기 대표팀에 대해서는 허정무호 문서 참조.
2. 활동
2.1. 1998년
2.1.1. 감독 취임
1998년 6월 20일 21시(현지 시간)에 킥오프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조별리그 32강 E조 2차전에서 5:0으로 대패 탈락하고, 차범근 전 감독이 현지에서 경질됨에 따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이 공석이 되었다. 김평석 전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벨기에를 탈락시키고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승점 1점 1무 2패 30등으로 마쳤으며, 이후 차기 감독을 물색하게 되었다.대한축구협회에서는 경쟁 청문회를 통해 감독을 선발하였다. 당시 함께 후보에 오른 지도자는 부산 대우 로얄즈 감독 이차만과 연세대학교 감독 김호곤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1998년 8월 14일에 최종적으로 허정무를 차기 축구대표팀 감독에 선임하기로 결정하였다. 1998년 10월 13일에 허정무와 계약을 체결하며 계약 조건이 공개되었다. 2000년까지 2년 동안 연봉 3억원에 계약금 1억원을 포함한 총액 4억원에 계약했다. 감독 선발 경쟁에서 승리한 허정무는 올림픽 대표팀을 겸하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1995년 8월 12일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를 임시 감독으로 지휘한 이후로 전임 감독으로서는 처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2.1.2.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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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1. 친선 경기
경기일 | 1998년 11월 22일 15:55 (현지시각) | |
경기장 | 상하이 스타디움(중국, 상하이) | |
국가 | 중국 | 대한민국 |
점수 | 0 | 0 |
득점 | - | - |
2.1.2.2. vs 투르크메니스탄 - 2:3 패 (1라운드[23강] A조 1차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1라운드 A조 1차전 1998년 12월 2일 15:30(UTC+7) | ||
나콘사완 스타디움 (태국, 나콘사완) | ||
주심: 사드 카멜 마네 (쿠웨이트) | ||
| 2 : 3 | |
투르크메니스탄 | ||
1′, 44' 최용수 | 59′ 최윤열 (OG) 85′ 무슬림 아가에프 88′ 이호르 키슬로프 | |
경기 영상 |
2.1.2.3. vs 베트남 - 4:0 승 (1라운드[23강] A조 2차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1라운드 A조 2차전 1998년 12월 4일 15:30(UTC+7) | ||
나콘사완 스타디움 (태국, 나콘사완) | ||
주심: 한루 무앙 (태국) | ||
0 : 4 | | |
베트남 | ||
- | 30′ 김은중 42′, 86' 최용수 66' 윤정환 | |
경기 영상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투르크메니스탄 | 2 | 2 | 0 | 0 | 5 | 2 | +3 | 6 | |
2 | 대한민국 | 2 | 1 | 0 | 1 | 6 | 3 | +3 | 3 | |
3 | 베트남 | 2 | 0 | 0 | 2 | 0 | 6 | -6 | 0 |
2.1.2.4. vs 일본 - 2:0 승 (2라운드[16강] 2조 1차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2라운드 2조 1차전 1998년 12월 7일 15:00(UTC+7) | ||
라차망칼라 국립 경기장 (태국, 방콕) | ||
주심: 루사메 진다마이 (태국) | ||
| 2 : 0 | |
31′, 47' (P) 최용수 | - | |
경기 영상 |
2.1.2.5. vs UAE - 2:1 승 (2라운드[16강] 2조 2차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2라운드 2조 2차전 1998년 12월 9일 15:00(UTC+7) | ||
라차망칼라 국립 경기장 (태국, 방콕) | ||
주심: 루쥔 (중국) | ||
1 : 2 | | |
62′ 모드 이브라임 | 37' 윤정환 55' (P) 유상철 | |
경기 영상 |
2.1.2.6. vs 쿠웨이트 - 1:0 승 (2라운드[16강] 2조 3차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2라운드 2조 3차전 1998년 12월 11일 17:00(UTC+7) | ||
라차망칼라 국립 경기장 (태국, 방콕) | ||
주심: 피롬 운-프라세르트 (태국) | ||
| 1 : 0 | |
58' 최용수 | - | |
경기 영상 |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대한민국 | 3 | 3 | 0 | 0 | 5 | 1 | +4 | 9 | |
2 | 쿠웨이트 | 3 | 1 | 0 | 2 | 6 | 3 | +3 | 3 | |
3 | 일본 | 3 | 1 | 0 | 2 | 2 | 4 | -2 | 3 | |
4 | UAE | 3 | 1 | 0 | 2 | 2 | 7 | -5 | 3 |
2.1.2.7. vs 태국 - 1 : 2 패 (8강)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8강 1998년 12월 14일 월요일 14:00 (UTC+7) | ||
라차망칼라 국립 경기장 (태국, 방콕) | ||
주심: 아부 하란 (이란) | ||
| 1 : 2 A.E.T. | |
86' 유상철 | 81' 키아티숙 세나무앙 95' (골든골) 타와차이 옹트라쿨 | |
- | 54' 스리마카 84' 지라시리초테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2.2. 1999년
당시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은 물론 2000년에 열릴 시드니 올림픽 감독까지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1999년에는 단 5번의 A매치만 가졌다. 이마저도 3월에 1경기, 6월에 4경기로 끝난 것으로 9월 이후에는 대표팀이 사실상 개점휴업을 한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상이 안되는 대표팀 운영방식으로, 얼마나 이 시기 축구협회가 대표팀을 주먹구구로 운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2.2.1. A매치 평가전
2.2.1.1. vs 브라질 - 1 : 0 승
경기일 | 1999년 3월 28일 일요일 19:00 (대한민국 시각) | |
경기장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국가 | 대한민국 | 브라질 |
점수 | 1 | 0 |
득점 | 90' 김도훈 | - |
[age(1999-03-28)]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아시아팀이 유일하게 A매치에서[10] 브라질[11]을 상대로 거둔 최초이자, 유일한 승리이다. 1999년 당시 히바우두는 호나우두를 제치고 FIFA 발롱도르와 FIFA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브라질 1인자였던 시절이었다. 이 날 결승골을 득점한 김도훈은 이 때의 활약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폐막 이후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 발탁되기도 했다.
2.2.1.2. vs 벨기에 - 1 : 2 패
경기일 | 1999년 6월 5일 토요일 20:00 (대한민국 시각) | |
경기장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국가 | 대한민국 | 벨기에 |
점수 | 1 | 2 |
득점 | 89' (PK) 고종수 | 23', 31' 산디 메르텐스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다시 만난 벨기에와 경기하였으며, 이날 벨기에는 대한민국을 2:1로 승리하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한테 1:1 무승부로 발목 잡혀 탈락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했다.[12]
2.2.1.3. vs 멕시코 - 1:1 무 (1차전)
1999 현대자동차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1차전 1999년 6월 12일 19:00(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루쥔 (중국) | ||
| 1 : 1 | |
16′ 안정환 | 14′ 이삭 테사라스 | |
경기 영상 |
2.2.1.4. vs 이집트 - 0:0 무 (2차전)
1999 현대자동차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2차전 1999년 6월 15일 19:00(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타자딘 파레스 (시리아) | ||
| 0 : 0 | |
이집트 | ||
- | - | |
경기 영상 |
2.2.1.5. vs 크로아티아 - 1:1 무 (3차전)
1999 현대자동차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3차전 1999년 6월 19일 19:00(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타자딘 파레스 (시리아) | ||
| 1 : 1 | |
크로아티아 | ||
58′ 노정윤 | 88′ 스테판 토마스 | |
경기 영상 |
2.3. 2000년
자세한 내용은 허정무호(성인 1기)/200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1999년 시드니 올림픽 16개국 본선에 진출하는 티켓을 따내면서 2000년부터는 성인 국가대표와 U-23 대표팀을 동시에 감독한다. 이게 어느정도였냐면, 1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약간의 시차를 두긴 했지만 U-23 대표팀과 A대표팀을 동시에 지휘하며 진행했고, 심지어 1월 21일에는 현지 시간 오후 5시 45분에 올림픽대표팀의 뉴질랜드와의 평가전 - 현지 시간 오후 8시에 A대표팀의 뉴질랜드와의 A매치를 모두 감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2월 북중미 골드컵에선 캐나다, 코스타리카와 연이어 비기고 동전던지기 추첨으로 1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9등)하는 또 하나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결국 이 전지훈련 이후 허정무호는 A대표팀의 올림픽 대표화로 업무 과중을 해결했다. 덕분에 이천수,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 등 젊은 영건들이 대거 A대표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4월 아시안컵 예선부터 이들이 성인대표팀 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5월 유고슬라비아와의 2연전에서 젊은 선수들을 내고도 2무승부로 선전했고 6월 LG컵에선 2연승으로 우승했다.
이후 A대표팀 경험치를 먹인 선수들을 다시 올림픽 대표팀으로 이끌고 들어와 8월부터 시드니 올림픽 체제로 팀을 운영했다. 그러나 9월 올림픽 16개국 본선에서 2승을 하고도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9등)하며 이 계획은 실패한다. 또한 10월 열린 아시안컵에 올림픽 멤버들을 대거 선발해갔음에도 결국 우승에 실패하며 두번째 좌절을 맛봤고, 당초 2002년 월드컵 32개국 본선까지로 예정되어있던 허정무 감독은 결국 아시안컵 우승 실패로 결정타를 맞고 대표팀 감독직에서 중도 사임하게 되었다.
3. 총평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성인 대표팀은 덜 주목을 받은 부분이 있다. 아시아 최초로 A매치에서 FIFA 랭킹 1위 브라질에 1:0으로 승리[13][14],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에서 3위에 오르는 등[15]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그러나 나름대로의 성과와는 다르게 1기 시절에는 잡음이 너무 많았고 결국 아시안컵 우승 실패가 결정타가 되면서 불명예스럽게 감독직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취임 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8강전에서 홈팀 태국에 1:2로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까지는 성인 대표팀이 출전하는 무대였는데, 이 때 8강전에서 태국에 패배한 것은 큰 실책이었으니 첫 단추부터 크게 잘못 꿰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올림픽 축구 9위 탈락(8강 진출 실패)에 이은 아시안컵 3위로 우승 실패로 라이벌 일본이 더 승승장구하자, 그것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구식인 면모가 문제였다. 허정무는 이후에도 그랬지만 이때도 역시 지면 선수탓을 하고, 특히 정신력과 국가관을 수없이 강조하는 구식 감독이다. 이 어이없는 기사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허정무는 1월달 전지훈련까지 하고 나서 대한민국 해병대나 유격부대에 입소시켜 극기훈련을 시켰다.[16][17] 비시즌이면 최대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선수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 것도 모자라 쓸데없는 정신훈련으로 앉아 있게 시키고, 군부대 입소 훈련이나 시켰다. 결국 이런 비과학적이고 무식한 행태 끝에 대표적으로 이동국이 무릎을 크게 다치게 되는 등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은 감독이었다.
또한 최용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때 뭔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이후로 최용수는 허정무가 감독으로 있는 한 계속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황선홍과도 2000년 골드컵 이후로는 엔트리에 부르지 않고 김도훈만 계속 중용했다. 그러나 시드니 올림픽 이후로는 또 그 김도훈 또한 아시안컵에 데려가지 않으면서 베테랑 포워드와는 상당히 뭔가 잡음이 있음을 보여왔다.
2008년에 다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이 시기는 상당히 거칠고 야박하면서 능력이 없어 보이지만, 세대교체를 위한 젊은 세대의 발굴이라는 의의 정도는 있다. 이 당시 국가대표 주전으로 발돋움한 선수로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천수, 송종국 등이 있으며, 이때 발굴된 선수들은 후임 감독 거스 히딩크의 인정을 받아 그의 지도 아래 잠재력을 폭발시켜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되었다.
허정무에게는 정말이지 세상이 야속하다 느꼈을 법한 불운한 일이 두 번이나 발생하였다. 두 번 모두 한국 축구사에 남을 불운인데, 하나는 2000년 골드컵 12강 조별리그에서 동전 던지기 탈락(대회 9위)[18][19]이며, 또 하나는 겸임한 올림픽 대표가 시드니 올림픽 16강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를 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대회 9위로 8강 진출 실패[20]한 사건이다. 이렇게 조별리그에서 2승을 하고도 탈락하는 일은 매우 드문데, 불과 1년 후 A대표인 히딩크호도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승 1패 조 3위 대회 5위로 아쉽게 4강 진출 실패를 똑같이 겪게 되었다. 동전던지기 탈락 1회, 2승 1패 탈락 2회라는 일부러 하기도 어려운 불운들이 불과 1년 반 사이에 한국 축구사에 3번이나 일어나게 된 셈. 결과적으로는 2002 월드컵에서의 영광이 오기까지 겪은 시련이 된 셈이다. 그나마 훗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 원정 2라운드[21] 16강 진출(15위)의 영광을 달성하면서 이 시절의 불운은 한때의 힘들었던 추억 정도로 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4. 경기 결과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22] |
33 | 17 | 11 | 5 | 57 | 22 | 52% |
일시 / 장소 | 상대팀 | 결과 | 대회 | 득점 | 비고 |
1998년 | |||||
1998년 11월 22일 (중국, 상하이) | 중국 | 0 : 0 무 | A매치 평가전 | ||
1998년 12월 2일 (태국, 나콘사완) | 투르크메니스탄 | 2 : 3 패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1라운드(23강) A조 1차전 | 최용수(2골) | |
1998년 12월 4일 (태국, 나콘사완) | 베트남 | 4 : 0 승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1라운드(23강) A조 2차전 | 김은중, 윤정환 최용수(2골) | |
1998년 12월 7일 (태국, 방콕) | 일본 | 2 : 0 승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2라운드(16강) 2조 1차전 | 최용수(2골) | |
1998년 12월 9일 (태국, 방콕) | 아랍에미리트 | 2 : 1 승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2라운드(16강) 2조 2차전 | 윤정환, 유상철 | |
1998년 12월 11일 (태국, 방콕) | 쿠웨이트 | 1 : 0 승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2라운드(16강) 2조 3차전 | 최용수 | |
1998년 12월 14일 (태국, 방콕) | 태국 | 1 : 2 패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8강전 | 유상철 | |
1999년 | |||||
1999년 3월 28일 (서울) | 브라질 | 1 : 0 승 | A매치 평가전 | 김도훈 | [23] |
1999년 6월 5일 (서울) | 벨기에 | 1 : 2 패 | 고종수 | ||
1999년 6월 12일 (서울) | 멕시코 | 1 : 1 무 |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 안정환 | |
1999년 6월 15일 (서울) | 이집트 | 0 : 0 무 | |||
1999년 6월 19일 (서울) | 크로아티아 | 1 : 1 무 | 노정윤 | ||
2000년 | |||||
2000년 1월 21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 뉴질랜드 | 1 : 0 승 | A매치 평가전 | 서동원 | |
2000년 1월 23일 (뉴질랜드, 파머스톤) | 0 : 0 무 | ||||
2000년 2월 15일 (미국, LA) | 캐나다 | 0 : 0 무 | 2000 CONCACAF 골드컵 12강 조별리그 D조 1차전 | ||
2000년 2월 17일 (미국, LA) | 코스타리카 | 2 : 2 무 | 2000 CONCACAF 골드컵 12강 조별리그 D조 2차전 | 이동국, 이민성 | |
2000년 4월 5일 (서울) | 라오스 | 9 : 0 승 | 2000 AFC 아시안컵 지역예선 | 심재원, 이천수 김은중(3골) 설기현(3골) 안효연 | |
2000년 4월 7일 (서울) | 몽골 | 6 : 0 승 | 안효연(2골) 최태욱(2골) 최철우, 이천수 | ||
2000년 4월 9일 (서울) | 미얀마 | 4 : 0 승 | 설기현(2골) 안효연(2골) | ||
2000년 4월 26일 (서울) | 일본 | 1 : 0 승 | A매치 평가전 | 하석주 | |
2000년 5월 28일 (서울) | 유고슬라비아 | 0 : 0 무 | |||
2000년 5월 30일 (성남) | 0 : 0 무 | ||||
2000년 6월 7일 (이란, 테헤란) | 마케도니아 | 2 : 1 승 | LG컵 4개국 친선대회 | 최철우, 박지성 | |
2000년 6월 9일 (이란, 테헤란) | 이집트 | 1 : 0 승 | 박강조 | ||
2000년 7월 28일 (중국, 베이징) | 중국 | 1 : 0 승 | 친선경기 | 이영표 | |
2000년 10월 4일 (UAE, 두바이) | 아랍에미리트 | 1 : 1 PSO (2 : 3) 무 | LG컵 4개국 친선대회 | 이영표 | |
2000년 10월 7일 (UAE, 두바이) | 호주 | 4 : 2 승 | 심재원, 노정윤 설기현, 이동국 | ||
2000년 10월 13일 (레바논, 트리폴리) | 중국 | 2 : 2 무 | 2000 AFC 아시안컵 12강 조별리그 B조 1차전 | 이영표, 노정윤 | |
2000년 10월 16일 (레바논, 트리폴리) | 쿠웨이트 | 0 : 1 패 | 2000 AFC 아시안컵 12강 조별리그 B조 2차전 | ||
2000년 10월 19일 (레바논, 베이루트) | 인도네시아 | 3 : 0 승 | 2000 AFC 아시안컵 12강 조별리그 B조 3차전 | 이동국(3골) | |
2000년 10월 23일 (레바논, 트리폴리) | 이란 | 2 : 1 승 | 2000 AFC 아시안컵 8강전 | 김상식, 이동국 | |
2000년 10월 26일 (레바논, 베이루트) | 사우디아라비아 | 1 : 2 패 | 2000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 | 이동국 | |
2000년 10월 29일 (레바논, 베이루트) | 중국 | 1 : 0 승 | 2000 AFC 아시안컵 3위·4위전 | 이동국 |
[1] 계약 기간은 2000 시드니 올림픽까지 2년 동안이며, 성적이 좋으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연장하는 옵션이 있었다. 기사(연합뉴스) 하지만 허정무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대회 9위로 8강 실패한 후 같은 해 있었던 아시안컵까지만 치르고 성인 대표팀 및 U-23 대표팀 감독직에서 모두 하차했다.[2] 23개 진출팀 중 6위 기록.[3] 12개 진출팀 중 9위 기록.[4] 12개 진출팀 중 3위 기록.[23강] [23강] [16강] [16강] [16강] [10] U-23 일본 대표팀이 아시아 최초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에서 피파랭킹 1위이자 마리우 자갈루 전 감독의 호나우두 브라질을 이겼으며, A매치에서 브라질을 이긴 것은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이다.[11] 당시 브라질은 FIFA 랭킹 1위이며,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 1997년 코파아메리카 전승 우승, 1997년 사우디컨페드컵 우승,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 1999년 코파아메리카 전승 우승, 1999년 멕시코컨페드컵 준우승, 2002년 한일 월드컵 7전승 우승으로 최전성기 시절이었다.[12]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벨기에는 3무 승점 3점 최종 19위로 16강에 실패했다. 당시 상황에서 대한민국에게 승리를 거둔다면 스코어에 따라 멕시코를 제치고 16강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13] 1999.3.28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우측을 파고든 최성용의 크로스를 김도훈이 발리 슛으로 마무리하며 대어를 잡았다.[14] 이 경기는 카잔의 기적이 벌어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이 FIFA 랭킹 1위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리였다.[15] 1992 일본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실업 선수 위주로 준비했다가 지역예선 탈락하여 8개국(8강) 본선에 진출 실패한 것과 1996년 8강전에서 이란에게 2:6이라는 참패를 당하며 마무리한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월드컵 공동개최국 일본이 승승장구하며 우승했기 때문에 비교가 되었을 뿐.[16] 아시안 게임 태국 전에서의 패배는 감독 본인이 선수 선발을 안일하게 했고, 대회 대비도 안일하게 한 탓이다. 당시 태국에서 우승을 노린다면 17일이라는 기간 동안 8전, 거의 이틀 간격으로 8번씩이나 동남아에서 싸워야 했다. 이런 가혹한 대회에 데려다 놓은 선수들은 정작 프로의 경기 체력도 갖추지 못한 프로 초년생이나 대학생들이 절반을 훌쩍 넘는 비율이었다. 이들이 동남아에서 12일 동안 6전을 치른 끝에 뛰지 않는다고 선수들의 정신력 탓, 국가관 탓, 애국심 탓을 한, 가히 낙제점에 가까운 인물이다.[17] 비슷한 상황은 2020 도쿄 올림픽 예선을 겸한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발생하는데, 이 대회도 3일 간격으로 경기를 진행해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당연히 이 점을 알았던 김학범은 허정무와 달리 23명 전원을 주전화해서 풀 로테이션 형식으로 돌려서 체력 안배에 성공해 이란, 우즈베키스탄이 있던 죽음의 조를 통과하고 전승으로 대회 우승을 달성한다.[18] 이때 동전던지기에서 승리한 캐나다는 우리 속을 긁기라도 하듯 결국 이 대회 우승을 했다.[19] 이 대회는 운만 따라준다면 1무 1패를 하고도 8강에 갈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땐 2무를 했기 때문에 정말 억울한 탈락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년후 또 초청국 자격으로 2002 골드컵에 나서게 된 히딩크호는 12강 조별리그에서 1무 1패를 했음에도 조 상황이 따라줘 2위로 8강에 진출, 멕시코와 승부차기 승리로 4강까지 올라 결국 4위까지 했다. 유일한 승리는 멕시코전 승부차기 승리로 탈락시킨 것이라 정말 전적상 1승도 없이 4위까지 해버린 것이다.[20] 공교롭게도 골드컵 때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이때 이 조에서 같은 2승 1패로 대한민국을 제치고 올라간 스페인과 칠레 역시 우리 속을 긁듯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21] 1954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16개국 본선에 진출한 적이 있고(54월드컵 한국 16위), 당시는 1라운드 16강 조별리그였다.[22] 축구는 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23] 아시아 최초로 A매치에서 피파랭킹 1위 브라질에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