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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국

송종국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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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송종국프로필.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송종국
宋鍾國 | Song Chong-Gug
출생 1978년 3월 9일[1] ([age(1978-03-09)]세)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대가리[2]
본관 진천 송씨 (鎭川 宋氏)[3]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 체중 74kg / 혈액형 O형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4], 미드필더[5] / 은퇴)
축구행정가
학력 서울명원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사회체육학 / 학사)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2번
부산 아이콘스 - 24번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24번
수원 삼성 블루윙즈 - 8번
울산 현대 - 14번
톈진 터다 - 44번
프로 입단 2001년 부산 아이콘스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부산 아이콘스 (2001~200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2~200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10)
알 샤바브 FC (2010~2011)
울산 현대 호랑이 (2011)
톈진 터다 (2011~2012)
건융 FC[6] (2017~2021)
행정 FC 안양 (2021 / 어드바이저)
국가대표 60경기 3골 (대한민국 / 2000~2007)
종교 개신교[7]
가족 아버지 송민배[8], 어머니 김성자
송종환[9], 누나 송은주[10]
딸 송지아 (2007년 6월 21일생)[A]
아들 송지욱 (2008년 12월 10일생)[A]
병역 예술체육요원[13]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기록
3.1. 대회 기록3.2. 통산 성적
3.2.1. 국가대표
3.3. 개인 수상3.4. 수훈
4. 은퇴 후5. 논란
5.1. 사생활 논란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인.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출전해 당시 히딩크호의 황태자로서 4강[14]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은퇴 이후에는 축구 해설자, 방송인, 행정가 등을 거쳤으며, 2021시즌 FC 안양 어드바이저를 맡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부산 아이콘스

배재중학교 2학년에 축구를 시작했다. 배재고등학교, 연세대학교졸업하고 2001년에 부산 아이콘스에서 프로데뷔를 하게 된다. 당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K리그의 떠오르는 수비수로 활약하였다.[15]

2.1.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파일:attachment/Song_Feyenoord.jpg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부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며 맹활약, 결국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이 400만 달러[16]의 이적료로 영입해가게 된다. 당시 페예노르트 외에도 아스날 FC에서 영입 제안을 했으나 구단간 사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부산 쪽이 시간을 끌어 영국 이적시장 시간을 지났다고 한다. 화가 난 송종국은 구단에서 짐을 모두 빼 집으로 와버리는 시위를 했었다고 한다. 이후 아직 이적시장이 닫히지 않은 페예노르트로 결국 이적하게 되었다고 꽁병지TV에서 송종국이 스스로 밝혔다.[17] 최근과는 달리 그 때만 하더라도 에레디비시에는 유럽 수위의 리그로 통했고 페예노르트 또한 2001/02 UEFA컵우승하였고, 2002/03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한 강호였기에 주전경쟁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아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꽁병지TV에서 그 당시 자신은 히딩크 감독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고 누구랑 붙어도 다 이긴다는 마인드였다고 한다. 아스날에 갔어도 잘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김병지 선수는 제 1의 주멘이 되었을 거라고 깠다. 송종국은 그당시 데뷔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는등 대활약을 펼쳤다.

이 당시 부산 아이콘스 측은 송종국이 달고 있던 24번을 영구결번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는데 그 당시만 해도 김주성(16번)과 같이 부산에서만 계속 뛴 선수에게만 이뤄진 영구결번을 달랑 2년 정도 뛴 선수에게 준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 논란을 무시하고 24번을 영구결번하기는 했으나, 송종국이 국내 복귀 후 이적료로 높은금액을 지불한 수원으로 이적하자 결국 슬그머니 영구결번이 없어졌다.
파일:UCL Feyenoord 2002-03.jpg
이제는 국내팬들에게도 추억이 된 2002-03 UEFA 챔피언스 리그 디나모 키에프와 조별리그 5차전 라인업
파울 보스펠트, 토마시 르종사, 피에르 판호이동크, 토마스 부펠, 페리 드 한, 에드윈 주테비에[18]
오노 신지, 송종국, 파트릭 파우웨,세바스티안 파르도, 브렛 에머튼[19]

페예노르트 이적 후에는 바로 주전으로 풀타임 활약을 펼치며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특히 2002/03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 유벤투스 전에서 폭풍 활약은 지금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인생 경기 중 하나. 당시 파벨 네드베드, 에드가 다비즈,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릴리앙 튀랑, 다비드 트레제게 등이 활약하던 유벤투스는 명실공히 유럽 최강의 팀이었으나 월드컵을 마치고 곧장 날아온 동양의 한 무명 선수에게 측면을 탈탈 털리며 힘겨운 원정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후 페예노르트는 유럽 대항전에서 낙마하였으나 송종국은 이후로도 팀내 붙박이 주전 자리를 굳힌 채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 한다. 송종국 축구인생에선 이때가 최고 정점이었고, 연이은 부상으로 그 이후로는 차츰차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다. 이 당시에는 비슷한 시기 이적한 한국 선수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플레이를 보였고, 말 그대로 정점의 활약을 펼쳤다. 페예노르트보다 더 높은 팀을 무조건 갈수 있다고 확언하는 평가가 많을정도였다.
파일:attachment/Persie_Feyenoord_song.jpg
페예노르트 시절. 바로 옆에 로빈 반 페르시도 보인다.[20]

그 다음 시즌에도 초반에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자신을 기용해준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사임과 신임 루드 굴리트[21] 감독과의 불화(송종국이 예스맨이라는 이유로 싫어했다고 한다), 잦은 부상 및 재활, 꽤 오래 머물렀음에도 네덜란드어를 잘 못하던 현지 부적응, 그리고 2003년에 결혼한 김정아 씨와의 불화건으로 선수생활에서도 문제를 보이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1.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후 송종국을 데려간 팀은 수원이었다. 수원의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고, 멀티포지션 능력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 등 여러 포지션에서 활약하였다. 2002년 당시의 그 실력이나 위상까지는 아니었으나 멀티 포지셔닝 능력을 살려 나름 괜찮은 활약을 했다.

여담으로 K리그1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손꼽히는 2008년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전반 36분 결승골을 넣고 곽희주, 서동현 등과 함께 기성용을 도발하는 세레모니를 펼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2.1.4. 알 샤바브 FC

계속된 부진에서 통 탈피할 기미가 없던 상황에 수원에서 입지도 끝끝내 줄어들던 2010년 6월, 성직부진으로 팀에서 사임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윤성효 감독이 수원의 감독이 부임하던 상황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에서 거액의 주급으로 이적제의를 하게되어, 그렇게 알 샤밥으로 이적하였다. 사우디 리그에서 7경기 출장 2골을 넣는 등 활약을 펼쳤고, 2010년 팀에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에도 공헌하면서 당시 또 4강에 오른 K리그의 성남 일화와 자웅을 겨루게 되었고 송종국은 1, 2차전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하였지만 결과는 1차전 홈경기 4-3(승), 2차전 원정경기 0-1(패)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2.1.5. 울산 현대 축구단

허나 입단 반년만에 자신을 영입했던 포사티 감독이 경질되고 팀에서 바로 계약해지를 요청 받고 바로 팀을 떠나게 되어 2011년 2월에 자신의 연세대 시절 은사였던 김호곤 감독의 제의를 받아 K리그의 울산 현대로 복귀하여 당시 새로이 싹 바뀐 울산 수비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경렬이도 가고 범석이도 가고~

2.1.6. 톈진 테다

울산에서 상반기 동안 19경기를 뛰던 중 갑작스럽게 울산으로부터 7월 5일부로 다시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면서 중국텐진 테다에 단기계약으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이때 울산 측의 설명으로는 당시 송종국과의 계약옵션에 따라서 연봉 및 계약기간에 대한 협상을 벌였으나 서로 이견이 있어 이루지 못하던 상황에서 팀에 입단할때 본인이 해외이적을 원할경우 자유롭게 계약해지 조항을 넣었던것이 알려지면서 결국 자유계약으로 바로 풀어주게 되어 중국의 텐진 터다로 가게 된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송종국의 영입에 있어서 전 수원 삼성 시절 동료이자 텐진 소속이었던 리웨이펑의 추천 또한 이적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이후 텐진에서도 남은시즌동안 16경기 1골로 주전으로 활약을 펼쳤으나 시즌이 끝나고 2012년 1월 10일, 이미 나이가 많았던 상황에서 더 젊은 선수를 원했전 구단의 뜻에 의해 재계약에 실패하고 결국 반년만에 또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었다.

2.1.7. 현역 은퇴

이후 여러팀들의 제의를 받았음에도 2012년 3월 27일, 다소 예상치도 못한 은퇴를 선언하였는데, 후에 어느 방송에 출현해 밝히기를 본인도 새로운 팀을 다시 알아보던 중 당시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도저히 선수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 송종국의 어머니는 운동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22] 갑자기 쓰러지게 되어, 송종국은 어머니의 임종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송종국[23]은 더 이상 축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바로 은퇴 선택을 하게 된것이라고 한다. 항간에는 '이제 갈 데가 없어서 은퇴하는거 아니냐'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미 서술했던대로 실제 여러 구단에서 이미 입단 제의를 받은 상황이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2.2.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
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거스 히딩크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항서
스태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며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하게 된다.[24]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2000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루이스 피구를 지워서 이영표와 더불어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25]

4강 신화를 기록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황태자라 불리며 활약했다.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2002년 월드컵에서 전 경기에 교체 없이 출장[26]했으며 대표팀의 마지막 골까지 기록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일찍이 붙박이 주전으로 발탁되어 탁월한 볼 관리, 완급조절, 강철 체력, 슈팅 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였다. 특히 당시 지네딘 지단과 함께 세계 최고 미드필더라 불린 루이스 피구를 꽁꽁 묶은 역대급 수비력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27][28]


터키와의 3/4위전에서는 공격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그래서 비록 차두리의 몸궁뎅이을 맞고 굴절되어 들어가긴 했지만 중거리 슛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그의 골로 경기 결과는 2대 3으로 최종 4위.

단일 월드컵 최장시간 출전한 한국 선수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무려 687분을 뛰었다.[29] 이운재와 타이 기록이지만 골키퍼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로 국한시켜보면 단연 유일하다. 게다가 송종국은 단일 월드컵에서 출장할 수 있는 최다 경기인 7경기에 모두 나와 풀타임을 뛰었고, 거기에 한국은 2002 월드컵에서 연장전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한국 축구사에서 도저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또한 이렇게 긴 출전시간을 가져가면서도 유럽 국가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의 왼쪽 측면에서의 공격을 훌륭하게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며 02년 월드컵 대회동안 세계적인 수준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수비력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공격 작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육각형 라이트백의 모습을 대회 기간동안 잘 보여주었다. 이처럼 월드컵 내내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02 월드컵 이후 한국선수들의 유럽 이적 돌풍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선수는 박지성, 이천수 등도 아닌 송종국이었다.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간 것은 박지성, 이영표 등이였지만, 2002년 당시만 보면 가장 두드러진 선수는 단연 송종국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박지성, 이영표와 함께 송종국을 데려가려 했지만, 이미 다른 팀과 계약을 해버려 박지성, 이영표만 데려갔다는 뒷 얘기가 나올 정도.[30] 2002년의 좌영표-우종국 라인은 대표팀 역사를 통틀어 최정상급 윙백 라인으로 평가받았다. 전성기가 너무 짧아서 문제였지만.[31][32] 그래도 한국 축구 최전성기에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이다. 물론 방송에서도 피구를 막는 장면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니 너무 식상하다는 팬도 있지만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팀이나 선수입장에서도 역대급 임팩트였다. 또한 피구를 막은것만 부각되어서 그렇지 02-03 시즌 자체도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풀백 위치라 활약상이 잘 남지 않은 탓에 기억에서 잊혀진게 많지만, 풀백 그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2.2.2. 2006 FIFA 월드컵 독일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딕 아드보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스태프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기동


이후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2002년 월드컵 때 가장 각광받던 선수였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한 폼 저하로 대표팀에서의 위상이 많이 변했다. 마침 2005년 K리그로 다시 돌아오는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그 해 대표팀 경기를 한 차례도 치르지 못했고, 월드컵 직전인 2006년 5월 23일 세네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했다. 소속팀 수원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기 때문에 우측 풀백으로서의 기량은 의문기호가 붙었고, 결국 평가전에서 수원에서 송종국 대신 우측 윙백을 맡고 있던 조원희가 주로 우측 풀백을 맡게 되지만 수비력에서 혹평을 받자 왼쪽 풀백에서 김동진이 맹활약하자 이영표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33]

이후 23인 최종 명단의 한 자리를 두고 이제 막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경기를 치르던 차두리와 경쟁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풀백 몇 경기 뛰었다는 것만으로 수비력을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사실상 차두리의 탈락이 유력하게 점쳐졌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2002년때의 위상과 비교하면 굴욕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1차전 토고와의 경기에만 선발 출전했지만 매우 부진하였고, 부상을 당했다. 이후에는 좌동진-우영표로 풀백 라인을 가동하면서 송종국의 월드컵 커리어가 마무리되었다.

2.2.3. 2007 AFC 아시안컵 아세안

1 이운재
C
· 2 송종국 · 3 김진규 · 4 김동진 · 6 이호 · 7 최성국 · 8 김두현 · 9 조재진
10 이천수 · 11 이근호 · 12 이동국 · 13 김치곤 · 14 김상식 · 15 김치우 · 16 오범석 · 17 김정우
18 우성용 · 19 염기훈 · 20 손대호 · 21 김용대 · 22 강민수 · 23 정성룡 · 27 오장은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코치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브라질 국기.svg 코사

이어진 2007년 AFC 아시안컵에도 선발되었지만 세간의 인식을 뒤집진 못했다. 이 대회에서 공수 모두 답답한 경기력을 보인 대표팀의 몇 안되는 성과물로 주목받은 양풀백 김치우오범석과는 달리 송종국은 공수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뻥크로스나 날리며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결국 허정무호 출범 이후로는 오범석이 주전으로 올라서면서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사실상 낙마하게 된다.

2011년엔 국대에 발탁될 수도 있다는 기사가 종종 떴지만, 예전 송종국이 해 오던 롤을 차두리가 잘 소화해주고 있으며 백업으로 오범석, 최효진 등이 있기에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지 못했다.

2.3. 플레이 스타일


2002 월드컵때부터 커리어의 거의 모든 기간동안 오른쪽 윙백/풀백으로 많이 회자되지만 히딩크호 초창기에는 전력에서 이탈한 홍명보를 대신하여 스위퍼로 중용을 받는 등 온갖 포지션을 다 소화했다. 2001년 2월 히딩크호 데뷔전을 치른뒤 수비형 미드필더, 쓰리백의 스위퍼, 포백의 센터백,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 원톱 제외 필드 포지션은 거의 다 소화했고 어느 포지션을 서든 그의 주전출장은 확실 시 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기에 히딩크호 초기, 히딩크호의 황태자라는 별명도 붙었었다.[34]

일단 외모도 곱상하고, 근육질이 아닌 호리호리한 체형에 키도 축구선수치고는 작고, 말씨도 운동선수답지 않게 온화하지만 알고보면 피지컬 능력이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2002 월드컵 전 경기에서 687분 풀타임을 뛰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력이 특히 대단했다. 게다가 피구는 유럽 무대에서도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는데, 이런 루이스 피구를 상대로 어깨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다.

양발잡이라고 하기에는 왼발 킥력이 미묘하지만 2002 월드컵 선수들이 대게 그러하듯 양발을 잘 쓰는 편에 속한다. 히딩크호에서는 오른쪽 측면에서 발생하는 세트피스를 담당하며 오른발킥력을 자랑하기도.

맨 위의 프로필에서 보이듯이 전성기는 굉장히 짧았다. 2001년에 프로에 데뷔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2년 ~ 2003년에 정점을 찍었으나, 그 이후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 완만하기는 했지만 내리막길 일변도였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통산 성적

3.2.1.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17 0 0
U-20 11 0
U-23 2 0
A대표 60 3
종합기록 73 3

3.3. 개인 수상

3.4. 수훈

4. 은퇴 후

은퇴 후 한동안 TV조선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 안 그래도 수원 경기 많이 해 주는 채널인데 중립적이지 못하고 친 수원적 해설을 한다고 얘기가 있다.

1년 차에는 발음이 꽤 부정확하고, 말의 리듬과 높낮이가 안정되지 못하고, 긴장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조금 횡설수설 전달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2년차에 접어든 2013년에는 해설 외에도 방송 짬밥이 많이 쌓였는지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으며 농담과 선수 사생활, 왕년 전성기 영원히 고통받는 피구.등을 언급하는 류의 완급조절도 능숙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킥 오프 후 20분 정도 지나고 경기 상황이 급박해지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간다.

2013년에 TV조선에서 K리그 중계를 중단한 이후에는 MBC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김성주가 MBC와 축구 중계 캐스터 계약을 맺은 덕분에 아빠! 어디가?에 이어 김성주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로는 차차 예능 쪽으로도 활동을 넓히기 시작했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37],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 도전 1000곡, 기분 좋은날, 라디오 스타 등에도 출연했으며, 고정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가 대박이 나자 지아 아빠로 유명해지고 국민 딸바보로 등극하며 불멸의 국가대표 시즌 2에도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2013년 11월에는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인 풋볼데이의 CF에 출연했다. 1인 4역으로 감독, 행정가, 팀 닥터 등을 연기했는데 그중 압권은 자그마치 아랍 구단주(...). 능청스러운 아랍어 연기가 일품이다. CF 영상

2002 한일 월드컵을 보았던 세대들에게는 저 사람이 정말 피구를 막았던 그 송종국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송에 굉장히 잘 적응하고 있다. 토크쇼에 나오면 아예 저 피구 막았다는 이야기를 곰탕마냥 우려먹는 기믹을 얻었을 정도(…). 안정환도 라디오 스타에서 농담으로 '방송 많이 하더니 변했어'라고 하기도 했을 정도다.

2014년에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중계를 위해 브라질 현지에 입성해서 열심히 해설을 하는 중이었다. 주로 김성주 캐스터, 안정환 해설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자신보다 방송 경력이 짧은 안정환을 해설 중에 틈틈히 돕는 중이다. 해설을 할 때는 자신이 주로 섰던 포지션인 미들과 수비를 중점적으로 보면서 말을 하는 편. 해설 외적으론 안정환에게 딴지를 걸어주는 역할(...)이며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드립이 MBC 중계를 보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하는 팬들도 있다.

6월 18일, 홍명보호 1기의 첫 경기인 러시아전을 중계했으며 안정환 해설과 괜찮은 호흡을 보였다. 대체로 선수들을 격려하며 상황을 조근조근 짚어주며 해설을 하고 있었으나 이근호의 선제골 이후 5분도 안돼서 실점하는 과정을 보고는 드물게도 큰 소리로 "이러면 안되죠!"라며 발언하는 모습을 보였다.[38]

알제리전에도 어김없이 안정환 해설과 호흡을 맞췄지만 아주 눈알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처절한 경기력에 단단히 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첫 번째 실점에서부터 수비수가 두 명이나 붙었는데 공격수 하나도 못 막고, 정성룡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골을 먹히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코너킥 상황에서 실점을 하자, 안정환 해설과 함께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세 번째 실점 상황에서는 기가 찼는지 허탈하게 웃기까지 했다. 본인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혼자서 루이스 피구를 막고 포르투갈을 털었는데, 수비수들이 공격수 하나를 못 막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히 선배로서 빡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송종국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 안정환 해설은 아예 포기한 모양인지 10분 동안 침묵하기도 했다.

이 경기 후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내가 지금까지 우리 애들을 너무 아끼기만 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쓴소리도 좀 해야겠다" 라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했다.

여담이지만, 딸 송지아가 러시아 VS 벨기에 전에 에스코트 키드에 깜짝 발탁되기도 했었다. 관련기사

월드컵이 끝난 후인 2014년 7월 23일, MBC SPORTS+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 VS 포항 스틸러스 경기의 해설을 맡으며 오랜만에 K리그 경기 해설을 했다.

2017 시즌 MBC SPORTS+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방송에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술하겠지만, 불륜 사건 때문에 여론은 영 좋지 않다.

히딩크의 축구의 신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여기서도 왜 나오냐고 개까였다.

2018년 8월 4일, FC 서울제주 유나이티드 FC 경기의 해설을 맡았다. 그러나 극심한 편파 해설, 말도 안 되는 농담 따먹기,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자신은 보지 못했다는 등 매우 수준 낮은 해설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선배이을용 감독대행을 향해 "옷차림이 촌스럽다"느니 "우기고 있다"느니 하며 직접적으로 디스하였고, 심지어는 선배를 반말로 툭툭 부르기도 했다! 당연히 경기 종료 후 폭풍까임을 당했다. 오죽하면 경기 기사 베댓 1위가 송종국 해설 실화냐는 글일 정도.

해설 관련 논란 및 개같은 사생활 때문이었는지 이후로의 해설가로서의 활동은 전무하며, 현재는 김병지와 함께 꽁병지TV에서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후 개인 사정으로 꽁병지TV에서 하차하였는데 후에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 송타크로스를 만들어서 활동 중이다.

홍명보(울산 현대 감독), 이민성(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박지성(전북 현대 모터스 어드바이저), 이영표(강원 FC 대표이사) 등 2002년 멤버들이 2021시즌 K리그에 참여한 가운데 FC 안양의 어드바이저로서 축구 행정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어 2021년 7월 28일,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산에서 약초를 캐며 지내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혼후 불미스러운 소문을 피해 칩거하고 싶어서 산속에 이동식 주택을 지어놓고 텃밭 가꾸고 약초 캐면서 혼자 지내고 있지만 FC 안양 어드바이저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안양과 홍천을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계약 종료로 물러났고 축구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 가끔 출연하기도 한다.

5. 논란

5.1. 사생활 논란

???: 종국이의 라이벌은 피구도 앙리도 아니고 라이언 긱스야!

뛰어난 실력과는 별개로 사생활로는 상당히 말이 많다. 후배 이천수자서전에서 어떤 선배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가 말하기를 '선수들끼리 있을 때와 팬들 앞에 있을 때가 너무 다르고 가식적인데다 여자를 너무 밝히는 선배'라고 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쉽사리 누군가를 떠올리기 힘든 묘사겠지만,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책에 묘사된 선배가 송종국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 수준으로 퍼져 있었다고 한다.[39] [40]

이는 라디오 스타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송종국은 그 소문에 대한 사실을 부인했고, 이천수는 자신을 디스할 선수가 아니다라며 쉬쉬했지만, 옆에 있던 안정환은 오히려 잘 썼네, 별명이 안개였어요, 조용히 몰래 다닌다고 라고 평했다. 김구라의 말에 의하면, 축구계에선 이미 선수 시절 때부터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선수로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이혼을 모두 두 번씩이나 했는데, 이 두 결혼에 관해서도 상당히 말이 많다.

첫 번째 부인인 김정아씨는 이영표의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이영표의 부인이 다니던 교회 신도이자, 송종국의 팬클럽 회장이었고 연을 이어오다 2003년 6월에 결혼에 골인했다...라고 알려졌으나, 첫 번째 결혼에 대해서도 상당히 말이 많았는데, 일단 확실한 팩트로는 송종국이랑 김정아 씨는 김정아 씨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다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송종국은 신애[41], 이진 등과 스캔들이 나는 등,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다가 이혼을 하면서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MBC 섹션 TV에서 그 당시 결혼식 장면을 공개했는데, 송종국은 결혼식 내내 굳은 표정으로만 일관했으며, 폐백 때도 손을 놓아서 신부가 넘어지는 장면이 그대로 나왔다. 안 그래도 결혼 소식이 갑작스러웠는데, 결혼식에서 저러는거 자체가 억지로 하는 결혼이냐며 말이 많았다. 그래서 이혼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송종국 표정이 다했다며 회자되었다.

이후 2006년 12월에 탤런트 출신인 박잎선과 결혼해[42]2007년엔 송지아[43]가, 2008년엔 아들 송지욱[44]이 태어났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가 싶더니만...

2015년 10월 6일에 이혼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친권, 양육권, 살고 있는 집 등은 모두 부인 쪽이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SNS에는 벌써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자의 실명과 둘이 찍은 사진까지 공개됐다.

처음 의혹이 제기됐던건 아내 박잎선의 인스타에 올라왔던 난로의 사진인데, 이 사진에는 '건강한 커플이라... 우리 지아와 지욱이를 아프게 한 만큼 너에게 돌려줄게'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적혀있었고 곧 얼마 안 가 삭제되었다. 이때 올렸던 난로 사진은 여자친구로 추정된 여성의 인스타의 올려진 사진이었고, 그 게시글에는 남자친구와 운동을 다녀왔으며, 자신들을 '건강한 커플'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은 송종국이 이 여성과 불륜(간통) 관계가 아닌가 의심하였고, 난로 사진 외에도 이 여성의 남자친구라는 인물이 송종국임을 의심하게 되는 사진들이 발견된다. 우선 이 여성이 남자친구와 다정히 찍은 사진에서 남성은 얼굴이 가려져 있으나, 남성이 입은 모자와 옷이 송종국이 방송에서 입고 나왔던 옷들과 같았으며, 남자친구의 생일이라는 날과 송종국의 생일이 얼추 일치한다. 또 이 여성은 아육대의 방청객으로 갔던 걸 인증했는데, 이 당시 송종국이 아육대의 감독으로 있었다.[45] 페이스북에선 남자친구가 남동생에게 선물로 줬다며 박지성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운동화를 올렸다. 다른 경위로 받았을 수도 있지만, 일단 박지성과 친분이 있거나 같은 업계의 종사자가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별거 상태였다고는 하나, 아직 송종국은 이혼하기 전이었으며 방송에서는 딸바보 아빠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모으던 상태였는데, 이 운동화를 부러워하는 친구의 댓글에 이 여성이 '다들 왜 이래 '처남'에게 잘 보이겠다고 내 남자친구가 준 거야'라고 댓글을 남겼다. 해당 SNS들은 논란이 되자, 계정을 지워 현재는 당시의 네티즌들이 찍은 캡쳐본으로만 확인 가능하다.

증언으로는 올림픽 중 해외에서 해당 여성과 다정히 여행 중인 송종국을 알아본 한국 관광객이 여성을 누구냐 묻자 '조카'라고 소개했다고 하며, 논란이 되자, 해당 여성이 친조카가 아니라 '의리로 맺은 조카'라는 한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의조카'라는 관계로 소개해서 한층 더 논란이 되었다.

의혹 이후, 얼마 안 가 이혼 기사가 나와 사실상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송종국의 바람으로 이혼'이라는 게 확정되었고, 자녀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만큼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자, 박잎선이 이혼에 대해 해당 사건은 루머이고,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좋은 아버지였다고 해명함으로써 일단은 잠잠해졌긴 했지만, 루머는 실시간으로 퍼졌고, 결국 2013년 MBC 축구 해설위원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2017년 MBC SPORTS+로 4년만에 K리그 해설위원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리고 박잎선이 SNS에 홍상수 & 김민희에 대한 저격글을 올린 것과 한 게시글의 올린 해시태그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46] 해당 글들은 현재 전부 삭제되었다.

현재는 서로 간의 상처, 오해를 풀면서 딸인 송지아, 아들 송지욱은 前 아내인 박잎선이 맡고 있으며, 양육권을 주면서 前 아내인 박잎선과 이제는 친구 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2018년 11월 13일 방송된 tvN둥지탈출 시즌3에서 5년이 지난 송지아, 송지욱 남매의 삶이 방송되었다. 물론 5년 전 출연은 안 하지만, 아빠! 어디가? 시즌1의 인연으로 김유곤 CP 덕에 두 아이의 성장 과정이 현재까지 실검에 오르고 있었다. # 이 방송 때문인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연속 오르기도 했다.

송종국은 언론사 인터뷰에서 "루머 때문에 1년간 칩거 즉 산에서 살았으며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며, 아이들 엄마와 부부로 살면서 좋은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함께 있으면 아이들까지 불행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결국 제가 집을 나와서 따로 살았다”며 “그런데 많은 분들이 ‘송종국의 귀책으로 가정이 망가졌다‘고 알고 계신다. 어떻게 가정사 하나하나를 꺼내어 밝힐 수 있겠는가? 관련해서 수많은 확대 해석과 사실과 다른 억측이 생겨났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사실과 다른 것들이 사실처럼 여겨지면서 지난 4년간 많은 상처를 받았다. 2년 가량 집 밖으로 못 나가고, 1년간 산에서 살았다. 사회생활도 못했고 안했다. 우리 가정에서 ‘욕’은 한 사람이 먹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참고 참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컸고, 휴대폰을 통해서 언제라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나이가 됐다”며 “저에 대한 루머나 사실과 다른 부분, 악의적 비방에다 심지어 아이들에 대한 욕설까지도 난무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악성 댓글과 루머를 적은 사람들에게 고소 방침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딸인 지아는 일주일에 2~3회 만나고 있으며, 아들인 지욱이는 축구클럽 회원이기도 하기에 주 4회 연습하러 온다며, 이제는 아이들도 컸고 휴대폰으로 기사도 볼 나이가 돼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게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

또한 2018년 11월 14일 SPOTV 해설위원이자, 2002년 월드컵 멤버 인연이기도 한 김병지 해설위원의 유튜브 채널인 꽁병지TV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출연해서 오늘 이슈가 된 해당 내용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악성 댓글에 주의를 주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꽁병지TV. 그리고 결국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개인 사정을 이유로 꽁병지TV에서 하차하였다. 이후 잠잠해지자, 개인 유튜브 채널 '송타크로스'를 만들었다.

2021년 6월 인터뷰를 통해서 이혼을 비롯한 사생활과 관련된 무분별한 악플 고소상황을 얘기했다. 악플러와 직접 연락을 했는데 '죄 없는 사람 가만두라' 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6. 여담

동탄신도시에 본인의 이름을 건 스포츠센터를 열고 개인사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것저것 갖출 것은 갖춰놓은 피트니스 센터에 가깝다고. 아주 가까운 곳에는 이관우가 개업해서 장사 잘하던 식당도 있었다.

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한 온라인 리듬 게임 오투잼에 송종국이 부른 버전의 찬송가 "주는 나의..."가 잠깐 수록된 적이 있었다. 아빠! 어디가?에서 음치 인증을 한 적이 있어서 음치로 알려져 있었다더니만, 의외로 가창력이 준수한 편.

취미는 통기타 연주다.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정도로 통기타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한다.

2015년에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로 이사하였다. 2017년에 근처에 본인의 이름을 건 축구교실을 건설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MBC SPORTS+ K리그 해설 위원이 되었다. #[47]

2018년 둥지탈출 시즌3에서 송지아와 통화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후 송지아가 머리를 자른후 셀카를 찍어 송종국에게 톡으로 보내기도 하였는데, 아빠 송종국과 자주보지 못하는게 슬프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후 송종국이 본인인스타에 송지아랑 아들 송지욱과 시간이 허락할때마다 등하교를 하며 왕래를 쌓고있다고 말했다.

송타크로스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복면을 쓴 게스트들을 섭외해 외부에서 섭외한 팀과 3쿼터 3:3 축구 대결을 한 후 송타크로스가 골을 넣을 때마다 1만 원, 도전 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2만 원이 기부되는 '복면 풋살'을 주 컨텐츠로 하고 있다. 복면 게스트로 출연한 프로 축구 선수가 송종국 축구교실의 어린이들에게 축구 레슨을 하는 컨텐츠도 있다.[48] 현재까지 출연한 복면 게스트는 설기현, 김용대, 조재진, 이영표, 안정환. 고정 멤버로는 송종국, 노우진, 이강, 윤창희, 남윤아가 있다. 그 외 송종국의 딸 지아와 지아의 친구(영상통화)가 첫 영상에서 출연했고, 박문성이 해설 게스트로 출연한 바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발언이 종종 있는데, 본인들이 2002년 시절 장기 합숙을 한 것을 가지고 "한국이 발전되려면 리그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내뱉어 김병지마저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병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자, "우리 때는 되지 않았냐."하면서 K리그 팬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2002년 리그의 희생 및 장기 합숙은 구단주들의 세대가 교체되는 시운도 맞아떨어지고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축구협회가 간곡히 부탁하여 구단들이 2001-2002년에 과감히 희생해준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감독이 장기적으로 팀을 완성시켜나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정석적이며,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49][50]

2019년 이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와 볼란치 역할을 맡은 백승호를 공격형 미드필더의 잣대로 평가해 혹평을 내려서 비판받고 있다.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에 출연했을 때, 벌칙 딱밤에서 도발했다가 3연속으로 맞았다.

2021년 7월 29일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 나와 근황을 알렸다. 본인이 밝히길 자연인처럼 살고 있다고...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아직까지도 싸늘하기 짝이 없다. 정황상 앞으로도 방송 활동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51] 다만, 박연수도 아이들을 훈육하는 방식 등에 이미지가 좋지 않아졌고, 안 그래도 이혼 과정을 놓고 시끄러웠던 가족이 계속 방송이나 언론에 출연하면서도 SNS로 여론전을 펴는 행위가 이어지자,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며 송종국과 박연수 모두에게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졌다.

2022년 전설이 떴다 군대스리가의 선수단으로 출연했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송종국의 아들인 송지욱도 송종국의 뒤를 이어, 축구선수의 꿈을키우며 송종국 축구교실을 다니고 있다.

2023년 살림하는 남자들 이천수 편에 출연했다.

이천수가 유튜브에서 태릉선수촌 축구 선수들중 가장 체력이 좋은 선수였다고 썰을 풀었다.

2024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 캠핑카에서 거주중이며 평일에는 평택에서 축구 교실을 운영하며 농사를 짓고, 주말에는 홍천 별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밝혔다. #



[1] 호적상으로는 1979년 2월 20일생이지만, 실제로는 1978년 3월 생이라고 한다. 기사 1, 기사 2. 1979년 음력 3월 9일생이라는 자료도 있다.[2] # 배우 장근석 또한 이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3] # 낭장공파(郎將公派) 28세 종(鍾) 항렬.[4] 라이트백, 센터백[5]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6] 현역 선수 은퇴 이후 아마추어 선수로서 입단한 것이다. 입단 당시 39세, 계약 종료로 방출될 당시 43세로 선수로서는 상당한 고령이었음에도 활동한 것이다.[7] 하나님의 황태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8] 宋民培.#[9] 宋鍾煥.[10] 宋恩珠.#.[A] 박연수 소생.[A] [13]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진출로 인한 병역 특례.[14] 4강전에서 독일에게 패하여 탈락 후 3,4위전 터키전에서 패하며, 월드컵 4위를 기록했다.[15] 여담으로 이 신인상 이후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 kt 소닉붐, 부산 아이파크를 통틀어서 신인상 수상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롯데는 이 기간 동안 비참한 육성능력으로 인해, kt는 드래프트 픽의 불운으로 인해 2020년까지 신인상을 받지 못한채 2021년 연고지를 수원으로 옮겼다. 그나마 2023년 8월 30일 1973년에 지어 50년된 전주실내체육관이 낙후돼서 연고지를 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온 KCC가 있는데 상위권이라 높은 순번의 선수를 뽑기 어려워서 좋은 신인이 등장 할지는 알 수 없다.[16] 페루자에서 뛰던 안정환이 10배 올린 이적료가 400만 달러였으니 2002년 당시에는 꽤 큰 이적료였다.[17]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후에도 아스날은 통 관심을 버리지 않아서 잊을 만하면 송종국과 링크가 뜨기도 했다.[18] 윗줄 좌측부터[19] 아랫줄 좌측부터[20] 이 사진은 2003년 6월 23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부산 아이콘스와의 친선경기였다. 다만 송종국이 나왔음에도 예상 유료관중 30,000명의 1/5인 6,000명만이 경기장을 찾았다. 기사. 이 때문에 송종국이 눈물을 흘렸다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21] 유상철과 같은 멀티 플레이어 출신이다.[22]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선수들의 식사는 물론 원정 응원과 숙소 청소 등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23] 전 아내 박잎선씨에 따르면 아직도 침대에서 잠을 안 잔다고 하면서 자기가 두 발 뻗고 편하게 자면 어머니한테 미안하다며 맨날 쇼파에서 잔다고 한다.[24] 원래 히딩크 감독은 송종국을 홍명보를 대신할 중앙수비수 겸 멀티 플레이어로 쓰려 했으나 평가전에서 보여준 중앙수비수로서의 모습에서 잔실수가 많다는 점이 드러났고, 이에 다시 홍명보를 불러들이며, 송종국은 오른쪽 윙백으로 돌려쓰게 된다.[25] 은퇴 이후 송종국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 당시의 활약상을 언급할 때면 피구지우개라는 별칭과 함께 칭송받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26] 이 출장 기록은 역대 월드컵 필드 플레이어 최장시간 출전 기록이다. 이후 12년 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아르연 로번에 의하여 경신된다.[27] 이경규가 간다에서 당시 막간 화면식으로 활약상을 보여줬는데, 급기야 나중에는 피구가 노마크 상황에서 공을 달라고 신호를 보내도 공이 오지 않았다. 하여간 피구가 공을 잡기만 하면 달려들어 틀어막는 통에 그 천하의 피구조차도 쩔쩔매는 모습이 보였을 정도.[28] 당시 피구는 전 세계 축구선수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최강의 스타 중의 스타였고, 세계 4대 미드필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세계구급 선수가 동방의 어느 나라 듣보잡 수비수에게 지워졌으니... 당시 외신들도 상당히 경악한 경기였다.[29] 세계 기록으로는 199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후안 시몬, 디에고 마라도나가 연장전 두번을 거치며 690분을 뛴 적이 있다. 2014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의 노장 아르연 로번이 7경기 690분을 뛰었고 루카 모드리치2018 월드컵에서 694분을 뛰면서 기록을 갱신한다.[30] 송종국 본인의 입으로는 히딩크가 자신을 영입하려 한적은 한번도 없다고 한다.# 이천수, 안정환, 유상철, 전부 자기가 먼저 PSV를 갈뻔했다고 한다고 박지성이 불평할 정도니 선수들의 부러움의 표현이나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 만들기 정도로 걸러들으면 될 듯. 말이 많으니 아예 방송에서 직접 히딩크에게 원픽을 물어보기도 했다.#[31] 전성기 임팩트는 우리나라 최고였지만 그 기간이 너무 짧았기에 전문가들과 올드팬들은 박경훈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준다. 2013년에 발표된 K리그 30주년 베스트 11에서 박경훈에게 밀리며 선정되지 못했고 한준희, 장지현 두 해설위원 또한 한국 역대 베스트 11에서 송종국이 아닌 박경훈을 선택했다. 젊은 팬들은 송종국보단 유럽, 아프리카의 강팀 선수들과 맞부딪쳐도 대등하게 맞설수 있었던 차두리를 더 높이친다.[32] 피지컬로 유럽과 아프리카 선수들을 압도했던 차두리만큼은 아니었지만, 송종국 또한 피지컬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선수였다. 강인한 체력은 물론이요, 외국인 선수와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이렇듯 피지컬적으로도 빼어났지만, 송종국의 강점은 안정적인 볼 간수 능력과 높은 전술 이해도에 있다.[33] 실제로 아드보카트, 본프레레 두 감독이 좌측에 김동진을 기용하고 우측에 이영표를 기용하여 경기에 나선 적이 많았지만 김동진이 부진한 경기가 많고 이영표도 좌측에서만큼의 실력은 보여주지 못하자 논란이 되며 결국 좌측 풀백은 로테이션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김동진이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발전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우측 풀백이 아쉬워지기 시작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된 것.[34] 북중미 골드컵을 통해 최진철과 김태영이 합격점을 받고, 홍명보 없이 빌드업이 어렵다는게 지속적으로 증명되어 수비진에서 중원으로 옮겼고 김남일이 유상철의 파트너로 낙점받으며 최종적으론 오른쪽 측면에 자리를 잡았다.[35] 아빠! 어디가? 단체 대상[36] 한일 월드컵 선수단 전원에게 대통령령으로 수훈[37] 딸 송지아, 아들 송지욱과 공동으로 출연했다.[38]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방송 3사의 중계진엔 2002년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골고루 포진되어 있는데 이들은 월드컵 전의 각 방송사의 특집 방송에서 한 목소리로 '자의적으로 파울을 판단하지 말 것, 넥스트 플레이에 집중할 것'을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며 후배들에게 조언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39] 다만 송종국과 이천수 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후 방송 등에서 사적인 친분을 나누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40] 이천수도 선수시절 스캔들이 여러 번 났던 선수라서 사생활이 영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본인 얘기를 선배로 에둘러서 표현한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41] 한강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사진이 찍혀버리는 바람에 파장이 컸다. 처음에는 둘 다 부인했지만, 대중들은 믿지않았다.[42] 이 과정에서 결혼 상대자의 이름을 놓고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 당시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쓰던 개명 전의 본명 박근영, 개명 후의 본명 박연수, 그리고 예명 박잎선까지 죄다 달라서...[43] 태어날 당시 이름은 송은환이었으나, 너무 남자 이름 같았는지 이후 개명했다고 한다. 축구에 재능이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지금은 골프를 하고 있는 듯 하다.[44] 송종국의 뒤를 이어서 아들 송지욱도 축구를 하고 있다.[45] 같은 날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당시 송종국의 딸 송지아도 자신의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아육대를 방청하러 왔다.[46] 해시태그는 #가족#책임감#어른이라면#짜증나고질리면#물건바꾸듯이#쉽게버리고바꿈#가족버리는남자#매력없음[47] 기사의 이주원은 이주헌의 오타로 보인다.[48] 설기현은 크로스, 조재진은 헤딩, 이영표는 드리블을 전수했다.[49] 다만,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제외하곤 조직력 등 여러가지 문제로 성적이 나오고 있지 않아, 송종국 발언이 이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50] 우리나라 축구는 항상 유럽과 남미에 피지컬이 밀려 유일한 강점인 조직력이 와해되면 걷잡을수 없이 무너지게 된다. 2020 도쿄 올림픽/축구(남자)/8강 멕시코전만 보더라도 피지컬에 완벽히 밀리는 통에 조직력이 와해되어 버렸다.[51] 전 부인인 박연수는 방송에서 아이들이 했던 말들은 억지로 시켜서 한 방송용 멘트였다며, 본인 SNS에 폭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