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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대 감독 조 본프레레 | |
<colbgcolor=#6677aa,#556599><colcolor=white> 감독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조 본프레레 / 제64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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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이운재 |
계약 기간 | 2004년 6월 24일 ~ 2005년 8월 23일 # (1년 2개월 / 426일) |
계약 종료 (성적 부진에 따른 자진 사퇴) | |
연봉 | 6억 원 (감독 / 추정치) # |
전술 스타일 | 롱볼축구 ┗ 3-4-3 포메이션 |
성적 | A매치 24전 10승 8무 6패 (승률 41.67%)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6위 / 8강)[2]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진출)[3]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4위) |
[clearfix]
1. 개요
조 본프레레 대표팀 부임 당일 |
3골을 먹으면 4골을 넣으면 된다라는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대표팀이다. 전임 코엘류호에 비해 훨씬 직선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부임 초반의 낮은 기대보다는 더 괜찮은 경기력을 보였던 대표팀이다. 그러나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대회 8강 탈락,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최하위 등 성적의 실속은 전혀 챙기지 못했으며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력의 기복도 심해져 결국 2006 FIFA 월드컵 독일 진출을 확정했음에도 감독이 경질되어 끝난 대표팀이다.
당시 대표팀에서 멀어졌었던 이동국이 이 시기부터 다시 대표팀 핵심이 되었고 신예 수비수 김진규가 발탁되어 주전 수비수가 되었던 팀이다.
2. 선임 과정
알 알리 감독직에서 해고된 이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0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움베르투 코엘류 전 감독이 해고된 후 후임 감독을 물색하던 중 당초에는 브루노 메추[4] 감독과 협상했으나, 연봉 문제에 입장차이를 보인데다 위약금 문제마저 겹치며 협상은 결렬되었고 후순위로 거론되던 조 본프레레는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는다. 당시 코엘류호는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예선전에서 베트남과 오만 등에 연패하며 이른바 오만 쇼크를 겪었으며,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몰디브와 비김으로써 심각한 부진의 정점을 찍고 있는 상태였다.사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전 KBS 해설위원에 따르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앞두고 축구협회가 허정무 전 감독의 사퇴 후 후임감독, 즉 외국인 명장 감독을 물색할때 1순위가 프랑스를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 2순위가 거스 히딩크, 그리고 3순위가 조 본프레레, 4순위가 크로아티아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3위로 이끈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였다고 한다.
그런데 거스 히딩크 전 감독 이후 눈이 높아진 팬들에겐 그저 듣보잡으로 보인데다가,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 감독 시절 이후에는 성공한 적이 없어 불신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대표팀 스태프로 활동한 얀 룰프스가 대놓고 '3류 감독'으로 디스했고, 거스 히딩크 전 감독 역시 대놓고 폄하하지는 않았으나, 영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 취임하기도 전부터 불신이 팽배했다.[5] 본인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했는지, 같은 나라 출신인 거스 히딩크처럼 성공할 것을 자신하며 거스 히딩크 방식 그대로 가겠다고 언론 앞에서 호언장담했다.
3. 활동
3.1. 2004년
자세한 내용은 본프레레호/200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2. 2005년
자세한 내용은 본프레레호/200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4. 자진 사퇴[6]
결과적으로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동아시안컵과 사우디아라비아전 부진으로 강한 카리스마로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심한 모습까지 보이고 선수들에게 신뢰감까지 잃자, 2002 4위 신화로 눈만 높아진 한국 축구 팬들의 곳곳에서 야유를 듣고 축구협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어지는 등 폭발한 비난 여론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 물론 말이 자진 사퇴지 바로 그 며칠 전까지는 자진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처음에는 경질이라고 보도 되고 이후 다른 감독들의 대표팀 감독 퇴진 관련 기사에서도 본프레레의 잔여연봉이 지급 되었다고 언급 되기도 한 것으로 봐서 축구협회에서 잔여 연봉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퇴진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1, 2, 3, 4, 5
마침 이 때는 조 본프레레의 친아들이 여자친구와 직접 대한민국으로 여행을 왔을 때였다. #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 감독 자리에는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이 앉게 된다. 거스 히딩크 - 조 본프레레 - 딕 아드보카트, 그리고 마지막 핌 베어벡으로까지 이어지던 이른바 '더치 커넥션'이었다.
5. 평가
재임 기간 동안 조 본프레레는 전임자 움베르투 코엘류에게 등용되지 않던 이동국을 재발탁, 주전으로 기용하며 월드컵 예선전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 시기 이동국은 본프레레의 황태자로 불리며 본프레레호의 모든 경기들에 전부 출석했으며, 그가 지휘한 25경기 중에서 23경기 출전 11득점을 올렸다. 이후 이동국은 아드보카트호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기용되었으나, 애석하게도 본선을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다. 훗날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원톱 자리를 맡은 조재진은 이동국이 정상 컨디션으로 본선에 나왔다면 결과는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실제로 월드컵 최종예선과 동아시안컵을 제외한 유럽/남미 쪽 팀들과의 경기들을 종합해봤을 때 본프레레 체제로 월드컵 본선까지 갔다면 충분히 해볼 만 했다. 독일, 스웨덴,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모두 선제골을 넣었을 정도의 저력이 있었다.또한 조재진과 정경호 등 전반적으로 피지컬이 좋거나 발이 빠른 선수들을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나온 독일전 엔트리도 김두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 체격 하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당시 청소년 대표팀이나 K리그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던 박주영은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이유로 아직은 벤치 신세. 더군다나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당시 박주영은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의 강력한 피지컬과 압박을 이겨낼 힘이 부족했다. 다만 이는 후임자 딕 아드보카트가 본선 직전 준비 과정이나 본선에서의 경기 운영 및 용병술이 많이 아쉬운 수준이었기에 월드컵 본선에 한정해서 본프레레 체제를 그대로 적용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론적일 가정일 뿐이지 그렇다고 본프레레가 월드컵 본선까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거스 히딩크처럼 강한 카리스마로 믿음을 보여주며 여론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박주영과 안정환을 전방에 기용해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프레레호 시절이 미스테리한 점이 너무 많은 느낌이지만, 분명한 것들은 여러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7]과 독일 월드컵 최종 멤버 구성에 공헌하였다는 것 두 가지라는 거다.
훗날 조원희와 김남일이 안정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사람들이 본프레레 감독의 커리어가 다른 감독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당시 본프레레를 어떻게든 밀어내고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이 많았다."라고 폭로했다. 김남일도 "그때 당시에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어떤 느낌이었냐면 감독이 두 명으로 느껴졌다."라며 같이 동참했다. #
6. 경기 결과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8] |
<rowcolor=#ffffff> 24 | 10 | 8 | 6 | 34 | 20 | 41.67% |
- [정식 A매치 기록에서 제외된 2005년 8월 14일 북한과의 전적을 포함하고 계산할 시]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d313a><tablebgcolor=#cd313a><width=15%> 경기수 ||<width=14%> 승 ||<width=14%> 무 ||<width=14%> 패 ||<width=14%> 득점 ||<width=14%> 실점 ||<width=15%> 승률[9] ||
25 11 8 6 37 20 44%
일시 / 장소 | 상대팀 | 결과 | 대회 | 득점 | 비고 |
2004년 | |||||
2004년 7월 10일 (광주) | 바레인 | 2 : 0 승 | 평가전 | 이동국, 최진철 | 본프레레 데뷔전 |
2004년 7월 14일 (서울)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 : 1 무 | 차두리 | ||
2004년 7월 19일 (중국, 지난) | 요르단 | 0 : 0 무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 [10] | |
2004년 7월 23일 (중국, 지난) | 아랍에미리트 | 2 : 0 승 | 이동국, 안정환 | ||
2004년 7월 27일 (중국, 지난) | 쿠웨이트 | 4 : 0 승 | 이동국(2골) 차두리 안정환 | ||
2004년 7월 31일 (중국, 지난) | 이란 | 3 : 4 패 | 설기현, 이동국 김남일 | [11] | |
2004년 9월 8일 (베트남, 호치민) | 베트남 | 2 : 1 승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2차예선 | 이동국, 이천수 | |
2004년 10월 13일 (레바논, 베이루트) | 레바논 | 1 : 1 무 | 최진철 | ||
2004년 11월 17일 (서울) | 몰디브 | 2 : 0 승 | 김두현, 이동국 | ||
2004년 12월 19일 (부산) | 독일 | 3 : 1 승 | 평가전 |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 | [12][13] |
2005년 | |||||
2005년 1월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 콜롬비아 | 1 : 2 패 | 평가전 | ||
2005년 1월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 파라과이 | 1 : 1 무 | 김진규 | ||
2005년 1월 22일 (미국, 카슨) | 스웨덴 | 1 : 1 무 | 정경호 | ||
2005년 2월 4일 (서울) | 이집트 | 0 : 1 패 | |||
2005년 2월 9일 (서울) | 쿠웨이트 | 2 : 0 승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 이동국, 이영표 | |
2005년 3월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 부르키나파소 | 1 : 0 승 | 평가전 | 김상식 | |
200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 담맘) | 사우디아라비아 | 0 : 2 패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 ||
2005년 3월 31일 (서울) | 우즈베키스탄 | 2 : 1 승 | 이영표, 이동국 | ||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1 : 1 무 | 박주영 | |||
2005년 6월 8일 (쿠웨이트, 쿠웨이트) | 쿠웨이트 | 4 : 0 승 | 박주영, 이동국 정경호, 박지성 | [14] | |
2005년 7월 31일 (대전) | 중국 | 1 : 1 무 | 2005년 동아시아연맹컵 | 김진규 | |
2005년 8월 4일 (전주) | 북한 | 0 : 0 무 | |||
2005년 8월 8일 (대구) | 일본 | 0 : 1 패 | [15] | ||
<rowcolor=#000000> 2005년 8월 14일 (서울) | 북한 | 3 : 0 승 | 평가전 | 정경호, 김진용 박주영 | [16] |
2005년 8월 17일 (서울) | 사우디아라비아 | 0 : 1 패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
[1] 호주 출신 독일인으로 조 본프레레와는 이전에 함께 일 한 적이 없고 이후로도 함께 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조 본프레레 사단 출신이 아니다. 몇몇 기사에서는 본프레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는 언급이 가끔 있었으나 조 본프레레 퇴임 후 일부 기사에선 본프레레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다고 언급된 적도 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선 피지컬 코치 역할을 했으나 일부 외국 쪽 정보에선 수석 코치를 맡았다고 언급 되기도 한 걸 보면 외국 정보가 틀린 것일 확률이 높지만 허정무가 수석 코치에서 퇴임한 이후 비공식적으로 수석코치 역할도 겸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기 전인 1999년에는 당시 2. 분데스리가에 있던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임시 감독을 맡았고 이어서 해당 클럽이 재정난으로 레기오날리가로 강등 된 2000-2001 시즌에는 정식으로 감독이 되었으나 최하위로 당시 4부 리그 이하에 해당되는 리그로 강등 되었고, 2001년에 2. 분데스리가 소속의 MSV 뒤스부르크에서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잠깐 있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 코치를 맡은 이후에는 2008년에서 2010년 FC 파두츠 감독, 2013년에서 2015년 1. FC 우니온 베를린 2군 감독, 2015년에 FC 빅토리아 1889 베를린 감독으로 활동한 걸 제외하면 레바논과 이란, 바레인 등 중동 리그 쪽에서 감독으로 주로 활동했으며, 2020-2021 시즌 레바논 리그 알 안사르의 감독으로 리그 우승과 FA컵, 슈퍼컵 우승을 하기도 했다.[2] 16개 진출팀 중 6위 기록.[3] 32개국 본선에 진출.[4]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세네갈 쇼크를 이끌었던 그 감독 맞다.[5] 2005년 피스컵 참가를 위해 PSV 에인트호벤 감독으로 내한한 히딩크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이 만난 적이 있는데, 훈련장에서 만난 사진을 보면 친분이 있지는 않은 사이라서 그런지 영 어색한 분위기다.1 2 그래도 같은 날 저녁 행사 만찬에서의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어색함은 풀고 대화를 나누긴 했던 모양이다. 3[6] 사실상 경질.[7] 기회를 부여받은 여러 유망주 중에서 그 기회를 잘 살린 대표적인 선수들은 중앙 수비수 김진규, 측면 수비수 김동진, 공격수 박주영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후임자 딕 아드보카트가 이끄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 대표팀에 승선하여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8] 축구는 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률상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물론 상대팀의 승률도 하락시킨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9] 축구는 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률상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물론 상대팀의 승률도 하락시킨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10] 본선 조별리그 B조[11] 8강 6위[12] 독일은 앞에 열린 일본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는 3:0으로 이겼다.[13] 아시아 최초로 독일전 승리[14]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15] 2무 1패 4위[16] 이 경기는 북한 측의 요청으로 인하여 정식 A매치 기록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