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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EAFF 챔피언십 | 2026 FIFA 월드컵 (유럽 PO D팀전 · 멕시코전 · 남아공전) | 2027 AFC 아시안컵 | ||
| 선임 과정 (반응 · 문제점) | ||
| <colbgcolor=#E6002D> | |
| <nopad> | |
| 제75대 감독 홍명보 | |
| <colcolor=#ffffff> 감독 | 홍명보 / 제75대 |
| 코치 | 주앙 아로소 / 수석 코치 김동진 / 코치김진규 / 코치 페드로 로마 / 골키퍼 코치누노 마티아스 / 피지컬 코치 이재홍 / 피지컬 코치 티아고 마이아 / 전력 분석관 |
| 주장 | 손흥민 |
| 계약 기간 | 2024년 7월 13일 ~ 2027년 2월 28일 (1년 경과 / [dday(2024-07-13)]일) |
| 계약 중 ( 기준) | |
| 연봉 | 20억 원 ~ 25억 원 (감독 / 추정치) |
| 전술 스타일 | 라볼피아나, 변형 3백 ┗ 유연한 전술 변화 + 용병술 + 매니지먼트 기반 ┗ 4-2-3-1 또는 4-3-3 포메이션 ┗ 공격전개시 3-1-5-1 대형을 통한 공격진영에서의 수적우위 활용 |
| 성적 | A매치 19전 12승 5무 2패 (승률 63%) 2025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준우승) 2026 FIFA 월드컵 2027 AFC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 |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75대 감독 홍명보의 대표팀에 대해 정리한 문서.2. 감독 선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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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홍명보호(성인 2기)/선임 과정#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호(성인 2기)/선임 과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코칭스태프
| 감독 | 수석 코치 | 코치 | 코치 |
| <bgcolor=#dee2e5> | <bgcolor=#ebebee> | <bgcolor=#f0f0f0> | <bgcolor=#e9eae5> |
| 홍명보 | 주앙 아로소 | 김동진 | 김진규 |
| 골키퍼 코치 | 피지컬 코치 | 피지컬 코치 | 전력 분석관 |
| <bgcolor=#dfe3e6> | <bgcolor=#dfe3e6> | <bgcolor=#dfe3e6> | <bgcolor=#dfe3e6> |
| 페드로 로마 | 누노 마티아스 | 이재홍 | 티아고 마이아 |
| <rowcolor=#f2013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호 2기 / 코칭스태프 | |||
| <colcolor=#fff><rowcolor=#ffffff> 직책 | 이름 | 국적 | 생년월일 |
| <colbgcolor=#0b090c> 감독 | 홍명보 HONG Myungbo | | 1969년 2월 12일 ([age(1969-02-12)]세) |
| 수석 코치 | 주앙 아로소 João AROSO | | 1972년 10월 29일 ([age(1972-10-29)]세) |
| 코치 | 김동진 KIM Dongjin | | 1982년 1월 29일 ([age(1982-01-29)]세) |
| 김진규 KIM Jinkyu | | 1984년 12월 16일 ([age(1984-12-16)]세) | |
| 골키퍼 코치 | 페드로 로마 Pedro ROMA | | 1970년 8월 13일 ([age(1970-08-13)]세) |
| 피지컬 코치 | 누노 마티아스 Nuno MATIAS | | 1983년 11월 25일 ([age(1983-11-25)]세) |
| 이재홍 LEE Jaehong | | 1983년 3월 23일 ([age(1983-03-23)]세) | |
| 전력 분석관 | 티아고 마이아 Tiago MAIA | | 1984년 3월 15일 ([age(1984-03-15)]세) |
| 기준 | |||
선임 당시 외국인 코치 2명 이상을 선임하겠다고 이임생 기술이사가 밝혔고, 실제로 홍명보 감독은 외국인 코치 선임을 위해 유럽으로 출장을 갔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이 공항에서 두 번의 기자 인터뷰와 한 번의 공식 선임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에도 코칭스태프 구성은 감독 선임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외국에 가서 코치 면접까지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았으며, 국내 코치진 선임조차 미루어졌다.
당장 9월 A매치가 9월 5일이기에 적어도 8월 20일 전후로는 선수 명단이 나와야 하지만 감독을 보좌할 코칭스태프가 여전히 없어 선수 선발이나 전술 구성을 할 시간이 촉박할 것으로 보인다. 늦어도 8월 중순에 선임을 마친다 해도 보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코칭스태프들이 다 모여서 선수 선발을 논의하고 그에 맞게 전술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1]
현대 축구에서는 대부분의 감독들이 본인 전술을 구현할 코칭스태프 사단을 데리고 다닌다. 홍명보의 경우는 울산 HD FC에서 급하게 넘어오느라 함께하던 코치들은 대부분 울산의 코치로 남았고, 당연하게도 울산은 이들을 같이 내주지 않았다. 최신 축구 트렌드는 감독 혼자서 전술 구상을 하고 선수단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좌하는 코칭스태프들이 함께 전술을 만들기 때문에 본인의 사단을 꾸릴 수 없는 감독을 선임한다는 것은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뛰어나지 않으면 리스크가 크다.
한 달 넘게 코치 선임에 관한 소식이 없었으나, 8월 13일 풋볼리스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박건하 프로축구연맹 TSG 위원이 수석코치를 맡고, 김동진 킷치 U-23 B팀 감독이 코치로 합류한다고 한다. 이후 16일 대한축구협회가 박건하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김동진 킷치 SC 감독대행, 김진규 FC 서울 전력강화실장을 대표팀 코치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임시 감독 체제로 치러진 지난 6월 월드컵 2차 예선 2연전 당시 대표팀과 함께 했던 양영민 골키퍼 코치와 이재홍, 정현규 피지컬 코치도 합류한다고 밝혔다.
국내 코치진 선임은 8월 16일에 마무리했지만, 외국인 코치진은 여전히 선임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제대로 협상이 되지 않은 것인지, 2명의 외국인 코치는 유럽에 체류하며 A매치 때만 국내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기사로 나오면서 다시 재택근무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
감독 본인이 사단과 함께 부임하는 것의 이점은 단순히 코칭스태프 구성 시간이 단축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감독과 코치 서로가 검증하고 신뢰하고 합을 맞출 별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큰 이득을 지닌다. 전임 감독들을 보면 거스 히딩크, 움베르투 코엘류, 파울루 벤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홍명보호는 한국인 코치뿐만 아니라 외국인 코치까지도 전부 다 새로운 인물들로 선임해야 하는데, 만약 그 인물들이 홍명보 감독과 합이 맞지 않으면 다시 계약을 해지하고 재선임을 해야 하는 불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 경우에 따라선 추가로 위약금이 발생할 수도 있다.[2]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21일 주앙 아로소, 티아고 마이아 두 포르투갈 출신 코치를 선임하였다고 밝혔다. 아로소 코치는 수석코치 겸 전술 코치 역할을 맡고, 마이아 코치는 전술분석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외국인 피지컬 코치는 영입하려 했으나 최종 계약 단계에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두 코치의 선임이 늦어진 이유는 원 소속팀이 있었기 때문에 협상에서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이다.[3] 두 외국인 코치는 주말 사이 입국해 선수 파악에 나선다. 문제는 아로소 수석코치가 유럽에 상주한다 하며, 유럽파들을 점검하다 A매치 때만 귀국한다는 것이다. 축구협회 측이 설명한 이유는 유럽의 현지 트랜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한국에 제공하고 해외파 선수들을 직접 체크하기 위함이라 하며, A매치 전에는 들어와서 전술을 짜고 K리그 파악도 하겠다고 한다. 홍명보 감독의 출국 전 인터뷰에 따르면 현대 축구의 트랜드가 분업화이며 본인의 역할이 코치들에게 적합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밝힌 만큼 업무 분장의 일환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후 코칭스태프진은 큰 변화가 없다가 2025년 7월 24일 포르투갈 국적의 페드로 로마 골키퍼 코치와 누노 마티아스 피키컬 코치를 영입했다. 기존의 박건하 코치와 양영민 코치와는 계약이 종료되었다. 이로 인해 대표팀에는 포르투갈 국적 코치만 네 명이 되어 포르투갈 국적의 벤투감독이 이끌던 벤투호와 코칭스태프로만 따졌을 때에는 포르투갈 국적의 코치가 동일해지는 진귀한 상황이 되었다.
4. 활동
2024년 7월 8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5대 감독이 공식적으로 홍명보로 선임되었음을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표했다.계약 기간은 2027 AFC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까지로 3년으로 정했으나 2026 FIFA 월드컵 이후 중간 평가를 거칠 것이라고 한다.[4] 10년 전에도 브라질 월드컵 이후 2015 아시안컵까지 계약이 되어 있었지만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인한 사퇴 여론을 이겨내지 못하고 월드컵 직후 사퇴했었다.
4.1.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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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홍명보호(성인 2기)/2024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2.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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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홍명보호(성인 2기)/2025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3.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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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홍명보호(성인 2기)/2026년#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호(성인 2기)/2026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전술 스타일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을 통틀어 가장 수비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런 성향의 감독이 대부분 포백을 선호하는 것과는 달리 홍명보는 특이하게 리베로 시스템을 들고 나온 것이 특징이다.[5]
다만 고전적인 카테나치오가 리베로를 포함한 선수들이 자기 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에 반해, 홍명보식 카테나치오는 선수들이 계속 자리를 바꾸는 현대 축구의 메타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6]
즉 홍명보호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단단한 빗장수비 스탠스에서 끊임없는 포지션 플레이로 상대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실수를 유도하다 생긴 뒷공간의 빈틈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일반적인 강팀의 감독들이 광전사마냥 정신없이 칼춤을 춰대며 몰아붙이는 느낌이라면, 홍명보는 지루한 코등이 싸움 끝에 상대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그대로 칼끝으로 목을 겨눈다는 느낌이다.
보면 알겠지만 공격 찬스 자체가 적어서 다득점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전반전 내내 지루한 교착 상태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에[7] 경기력과 별개로 그냥 재미가 없다는 악평도 많다. 무엇보다 강팀도 아닌 약팀한테까지 이런 전술을 고집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도 많은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전략이긴 하다.
한국 축구선수들의 기량은 분명 우수하지만, 은근히 잔실수가 잦아서 약팀한테까지 빌빌대는 등 그저 도깨비 취급받으며 조롱받기 일쑤였다.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유럽파 선수들 역시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가끔 터무니없는 실수를 할 때가 많은데, 이런 경우 소속팀에선 비슷한 급의 동료들이 똥을 치워줄 수 있지만 대표팀에선 저런 똥받이 동료들이 없다는 것이 기존 한국 대표팀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홍명보가 들고 나온 전략의 기본 골자는 애시당초에 실수할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다[8]는 것이다. 굳이 공격하겠답시고 무리하다가 턴오버 남발해서 역습으로 골먹힐 바엔 좀 답답하더라도 선수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단단한 수비진을 구축한 채 U자 빌드업이건 2선 해줘 축구건 뭐건 간에 역습으로 어떻게든 득점 찬스를 만들겠다는 전략인 셈.
여기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팀컬러인 선수비 후역습을 어떻게든 현대 축구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뻥축구는 분명 강력하긴 하지만 너무 대놓고 날빌이라 불안정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만큼 안전빵인 점유율 축구로 역습을 하겠다는 간단한 발상인 것이다.
다만 아직 대표팀의 메인 전술도 3백인지 4백인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아 공격에서는 클린스만호 때처럼 손흥민 아니면 이강인의 기량에 의존하는 축구를 선보이고 있다.[9] 이 문제는 월드컵 땐 더욱 도드라질 문제이므로 반드시 확고한 전술을 계획해야 한다.
6. 평가
===# 계약 당시 평가 #===- 7월 7일 선임이 결정된 이후 대부분의 축구 팬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울산 HD FC 팬들이 가장 분노했다. 특히나 김광국 대표이사의 경우 접촉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발표할지는 몰랐다는 말과 함께 부임 시기는 울산 구단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며 인터뷰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에 대해 불쾌한 반응들을 쏟아내었다. 김광국 대표이사의 반응을 보면 비단 협회 뿐만 아니라 현직 울산 감독 홍명보조차도 구단 측에 협상 내용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10] 언론들 역시 이번 결정은 상도덕을 어긴 행위라며 대한축구협회를 맹비난하고 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도 결국 엔딩은 위르겐 클린스만 당시와 똑같은 날치기 선임이었으며, 바뀐 게 하나도 없는 막장 시스템으로 인해 불만이 높다.
- 홍명보 감독의 능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2014년 월드컵을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이후 울산 HD FC에서 재기에 성공했으나, 문제는 당시 김도훈이 떠난 울산에 가장 필요했던 것이 동해안 더비, 현대가 더비 때마다 겁쟁이식 축구를 일삼다 한 시즌을 말아먹는 울산이라는 팀을 하나로 다 잡으며 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줄 감독이었기에 홍명보의 관리 능력이 이러한 울산과 시너지를 일으켜 호성적을 냈던 것이지, 홍명보의 전술적 능력이 아무리 10년 전에 비해 발전했다 한들 FIFA 월드컵에서 한국 정도의 전력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세계의 강호들과 맞설 수준은 절대 아니다라는 것이 울산 HD FC와 K리그 팬들의 중론이기 때문. 유능한 외국인 감독까지 갈 것도 없이 신태용, 김기동, 이정효, 김도훈, 정정용, 윤정환 등 현재 전술적 역량에서 가장 호평을 받고 있는 여러 국내 감독들과 비교해 봐도 홍명보의 임팩트가 가장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본인이 대표팀 감독으로 계속 경기를 치르면서 여론의 안목이 틀렸다는 것을 결과로 직접 증명하는 수밖에 없고[11], 대한축구협회 역시 홍명보의 전술을 보완하기 위해 유럽 코치를 2명 이상 붙여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본인들이 그렇게 원하던 감독을 억지로 선임한 이상 똑바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홍명보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한 것은 단순히 전술이나 결과에 대한 우려보다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분노가 크기 때문에 결과를 잘 내면 잘못된 선례를 만든 것이기에 그것대로 별개의 문제가 된다.
- 7월 8일 선임 브리핑 당시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의 말에 의하면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은 전권으로 자신이 선임했단다. 물론 실권도 제대로 없는 기술발전위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실상은 정몽규 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 위와 같은 졸속 선임으로 인하여 한국 축구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출발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여러 국내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대표팀 1기 시절의 의리 축구 논란, 자국 리그 비하 논란, 울산 감독 시절 아마노 준 전북 현대 이적 과정 논란 당시 홍명보 본인이 한 말 등이 재조명되며 아직 공식적으로 홍명보 체제가 출범하지도 않았는데 부정적 측면이 강하게 회자되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나온 정보가 사실일 경우 홍명보가 지금까지 축구협회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인 이유가 협회의 졸속 행정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대우[12]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고, 이임생이 만족할 만한 제안을 내놓자[13] 덥석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매우 강한 점도 한 몫 했다.[14]
- 당장 9월부터 시작될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지금 대한민국이 속한 B조에 속한 타 국가들의 면면과 대한민국의 스쿼드를 생각한다면 본선 직행 따위야 껌씹기고 닥치고 1위로 통과해야 본전이라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만약 홍명보가 대표팀을 이끌고 이에 걸맞지 않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한국인들의 집중 포화를 맞을 가능성이 크고, 최악의 경우 본선 직행마저 실패하게 된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15]
- 무엇보다도 이번 감독 선임의 가장 큰 최악의 문제는 월드컵, 아시안컵과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홍명보호가 성공을 거두더라도 한국 축구의 상황이 매우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선임 과정은 홍명보가 FIFA 월드컵을 지휘할 자질이 있는 감독이 맞는지에 대한 문제보다도 또다시 K리그를 희생시키는 졸속 행정을 반복하며 홍명보를 선임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데, 만약 이런 식의 졸속 행정으로 선임한 홍명보가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체계적인 선임 절차 없어도 된다. K리그 현직 감독을 급하게 선임해도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축구팬들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냐?"고 협회가 스스로의 선택이 옳았다고 정신승리할 것이 자명하며, 대한축구협회의 졸속 행정은 대한민국 A대표팀이 거둔 훌륭한 성과의 후광과 극성팬들의 태세전환 및 논점 흐리기[16]에 또다시 묻혀버리며 앞으로도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17] 결국 홍명보호가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축구를 병들게 만드는 일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 대한민국 A대표팀을 맡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던 해외 감독들 또한 홍명보 선임 기사를 보고 본인들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분개했다고 한다. 사실상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지 않는 졸속 행정처리로 인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는 것과 더불어, 추후 해외 감독을 선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7월 10일 광주 FC와 홈경기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표팀 부임 관련 입장을 발표하였다. 부임을 결정한 계기에 대해서는 "많은 축구 팬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4년에 월드컵을 끝마친 직후였다. 그래서 대표팀에서 실패한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대표팀을 맡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올해 초에 대표팀 감독 후보로 내 이름이 거론됐을 때는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거절하는 인터뷰를 한 것도 그 이유였고, 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시 도전해서 그때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다는 승부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내 안에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과 부딪혔고,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감독직을 수락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버리기로 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내 축구 인생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겠다."라고 밝혔다.[18]
- 한 달 넘게 코칭스태프 구성조차 하지 않은 채 홍명보는 7월 31일 U-19 대표팀 연습경기에 참관했다. 이후 8월 6일에는 문제의 한국축구기술철학 MIK(Made in Korea) 워크숍에 이임생 총괄이사 등과 함께 참석했다. 두 자리에서 모두 취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각급 대표팀의 연계성을 재차 강조했다. 코치진이 없어 어떤 전술을 펼 것인지 정하지도 못 한 팀의 감독이 연령별 전술 연계성이니 기술철학이니 하는 것들을 논하러 다니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 간의 연계성, 연속성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그 성인 대표팀은 아직 정해진 전술이 전혀 없다. 공개된 MIK 워크숍 자료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울산 시절 대구 FC와 김천 상무를 상대로 한 경기 영상을 기반으로 본인 전술을 설명하는 장면이 공개되었는데, 당연히 울산 HD는 국가대표팀이 아니다. 취임 1달 시점 홍명보의 행보를 보면 이게 KFA 전무이사인지 국가대표팀 감독인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홍명보가 감독에 선임된 가장 큰 요인은 전술이 아니라 MIK 기술철학 실현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홍명보는 한 국가의 U-20 대표팀, U-23 대표팀, 성인 대표팀까지 모두 맡은 찾기 드문 인물이고 KFA 전무이사에 K리그 감독 경험까지 있으므로 한국 축구에 끼치는 영향력 하나만으로는 압도적이다. 현재 한국 축구계의 주요 인물 태반이 홍명보의 선수 시절 동료, 후배였거나 감독 시절 지도를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축구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인물을 한 명 뽑으라면 좋든 싫든 거론될 사람이다.[19][20] 이런 인물을 내세워 한국 축구를 관통할 하나의 철학을 만들어 나가자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려면 단순히 인맥이 많다고 될 일이 아니고 감독의 확고한 전술철학을 각 세대별 대표팀에 입힐 수 있어야 하는데, 홍명보가 그러한 류의 전략가는 아니라는 것이다.[21][22]
- 이 탓에 홍명보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현재까지의 홍명보의 행보를 지켜본 축구팬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대충 한국 축구를 위해 뭘 하고 싶은 건진 알겠는데, 그걸 왜 하필 행정가가 아닌 감독으로서 하고 있는 거냐?다. 차라리 여론 좋을 때 축협 회장, 아니 하다못해 전무 2기라도 해서 본인이 원하는 장기 플랜을 구현하는 게 맞지, 왜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대표팀 감독직을 굳이 석연찮은 절차를 거쳐 억지로 맡아서 화를 자초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이 많다. 심지어 정몽규의 자서전 축구의 시대에 의하면 정몽규가 2선을 마지막으로 홍명보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려 했으나 홍명보 본인이 거절했다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가 안 갈 따름. 홍명보 본인은 MIK 철학 실현에 가장 적합한 것이 현장직인 감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팬들은 홍명보 본인의 행보나 역량 상 축구협회회장 출마를 했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다.
- 첫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역대 축구대표팀 감독들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감독이다.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이 정도로 여론이 최악을 달린 감독은 여태까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선임된 것만으로 정치권까지 움직이게 만든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홍명보가 유일무이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홍명보 부임 이전 축협에 대한 민심이 너무 흉흉했고, 그 민심에 불을 부은 축협의 언론플레이, 세계적인 명장을 기대하던 축구팬들의 희망고문, 홍명보 본인의 대실패했던 대표적인 흑역사의 재조명, 처신, 홍명보의 선수 시절의 유명세로 인한 화제성 등 복합적인 요소가 최악의 타이밍에 한꺼번에 터지며 그야말로 끌릴 수 있는 어그로란 다 끌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으로 보인다.
6.1. 긍정적 평가
홍명보 감독이 10년 전과 비교해 가장 나아진 점을 꼽으라면 단연 선수 보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대표팀 1기 시절 지동원, 이청용, 김영권, 홍정호 등 부상으로 골골대던 선수들을 무리하게 출장시켰다가 최악의 결과를 냈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은 것인지, 대표팀 2기 체제에선 행정가 출신답게 선수들의 몸 상태를 세심히 체크하며 확실하게 챙겨주는 덕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부상을 당한 선수들은 과감하게 명단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소집한 선수들에게도 무리하게 풀타임을 고집하지 않고 당사자와 출전시간을 상의하며 선수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선수 본인의 출전의사가 강하더라도 감독 입장에서 선수가 경기를 뛸 몸 상태가 아니라 판단되면 과감히 소집해제 or 명단 제외를 시켜주기도 한다.[23]3월 예선 당시 김민재의 명단 제외를 두고 (그냥 바이에른 뮌헨이 안 놔준 것 뿐인데 홍명보라고 별 수 있었겠냐며) 그게 뭐가 잘한 거냐는 반응이 많지만, 적어도 이 기사를 보면 홍명보가 분명 (뮌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김민재를 소집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몸 상태를 보고 명단 제외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24] 김민재 명단 제외는 순전히 홍명보의 호의가 맞다. 그후 6월 예선에선 여전히 부상을 달고 있는 김민재를 과감하게 처음부터 명단에서 제외해주기까지 했다.[25]
6월 소집 때도 손흥민 본인의 의지가 강해서 소집했지만 선수 안전을 위해 중요한 이라크 원정 경기였음에도 과감하게 명단 제외를 하는 등 선수 보호에 아주 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쿠웨이트전 후반전 때는 교체되어 출전하긴 했지만 대승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팬서비스의 목적이 강했던 출전이라 무리가 가는 수준의 경기를 뛰지는 않았기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홍명보 감독의 장점은 용병술이다. 교체 선수의 득점 관여율은 50%에 가까울 정도로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이라크 원정 경기에서도 교체로 들어온 김진규와 오현규가 골을 넣어 승리했다.
월드컵 3차예선을 최종 성적 6승 4무 조 1위로 마무리하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물론 3차예선 조 중 가장 수월한 조편성을 받았음에도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달성해야 했던 최소한의 결과는 가져왔다는 점에서 엄연히 긍정적인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만약 향후에 경기 내용 측면에서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가 여론 반전의 발판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다.
월드컵 대비 친선경기로 FIFA 랭킹 23위인 우리보다 강팀이고 상성이 좋지 않은 FIFA 랭킹 15위 미국과 FIFA 랭킹 13위 멕시코 상대로 1승 1무를 거뒀고[26], 3-4-2-1 기반의 새로운 전술 경기력이 매우 좋아 이번 친선 2연전이 여론 반전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경기에선 브라질에 대패했지만 파라과이 상대로 승리하여 여론이 꽤나 반전된 편. 12월 볼리비아와 가나 상대로 무실점 전승하고 2포트를 확정지었으며 동아시안컵 제외 10승 5무 1패라는 좋은 성적이 대두되면서 재평가론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황금세대론을 들며 홍명보의 전적을 폄하하고 있지만, 사실 현재의 축구 국대의 객관적인 전력은 벤투호 대비 강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선수단 개개인의 이름값과 커리어 상 고점을 생각하면 한국 축구 역사상 손꼽히게 훌륭한 수준의 멤버인 것은 맞고 실제로 벤투호 시절 이를 입증하며 황금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벤투호 당시보다 주전 선수들의 폼 하락이나 노쇠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인데, 벤투호-홍명보호를 관통하는 빅리그 수준 선수는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재성, 이강인 정도로 이 중 2025년 기준까지 여전히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는 김민재[27], 이재성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각자의 이유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28] 벤투호 대비 유망주 해외파 선수는 크게 늘긴 했지만 그 어린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상은 그렇게 주목을 받을 만한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기존의 주전들을 보완할 수준까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고질적 구멍으로 꼽히던 3선은 그나마 옌스 카스트로프가 가담하긴 했으나 애초에 3선이 주포지션인 선수도 아니고 큰우영, 박용우 등의 이탈을 감안하면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도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핵심 멤버 다수가 황금세대 소리 듣던 벤투호 시절에서 넘어오기는 했지만, 실상은 벤투호 시절보다 노쇠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팀이다. 세대교체를 운운하기도 애매한 것이 국대 감독에게 손흥민, 황희찬 등을 대체할 레벨의 선수를 키워내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이다.[29] 이런 상황에서 피파랭킹이 비슷한 1~3포트 팀들에게 2승 1무를 거둔 홍명보의 성과는 저평가되고 있는게 현실이다.[30]
그래도 기존의 베테랑 선수들 폼이 급격하게 망가진 수준은 아니고 여전히 공수 핵심인 손흥민-김민재가 국가대표에서 건재하기 때문에, 최소한 원정 16강 멤버였던 양박쌍용이 각자의 이유로 완전히 붕괴되어버린 홍명보호 1기 시절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다. 그리고 벤투호와 홍명보호의 선수단 퀄리티 비교는 사람마다 평가가 조금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 벤투호는 월드컵 본선 시점에 핵심자원인 손흥민, 김민재가 각각 부상을 안고 뛰어서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오현규도 예비 엔트리에 불과한 선수였기에, 벤투호 시절보다 나아진 부분도 아주 없는건 아니다. 따라서 벤투호 시절의 좋은 부분을 충분히 계승하고 있는 홍명보호도 선수단 면면만 놓고 보면 벤투호보다는 약해졌지만 황금세대라 불릴만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좋은 자원을 가지고도 말아먹은 클린스만의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2025년 시점 홍명보호의 아시아 예선 및 평가전 성적은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전임 감독 대비 확실히 나아졌으므로 일단 팀을 정상 궤도로 올려 놓기는 했다.
6.2. 부정적 평가
단, 위의 장점인 용병술이 잘 먹혔다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플랜 A가 잘 먹히지 않는다는 해석이 된다. 전반전에 공격을 잘 풀어나가 선제골을 넣은 경기도 있었으나, 수비 문제로 인한 실점 때문에 비기거나 패할 뻔한 경기를 교체 전술로 어렵사리 막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전술에 대해서는 클린스만호처럼 마냥 무전술 수준은 아니나[31], 수비 조직력 문제와 세트피스 상황 대비 부족으로 인해 계속 지적을 받는데, 월드컵 3차 예선의 1차전 팔레스타인전과 3차전 요르단전, 이라크전, 쿠웨이트전을 빼면 클린시트 경기가 없다. 또한 같은 조의 최약체들 팀에게 자책골과 백패스 미스로 어이없게 실점을 내주는 몇몇 경기들도 나오면서 수비 집중력 문제도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본 경기력을 보면 과연 월드컵에서 강팀하고 붙었을 때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 외에도 세대교체를 할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있다. 대표팀에 새 유망주들을 꾸준히 계속 발탁하는 건 분명 고무적인 부분이지만 이 유망주들의 대부분은 그저 벤치만 달구기 일쑤고, 그나마 홍명보호 체제에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는 유망주들은 오현규, 배준호, 이태석 정도가 전부다.[32] 대표팀 1기 시절에 역사상 가장 어린 스쿼드로 도전했다가 비록 철저히 실패하긴 했어도 이때 처음 발탁되어 경험치를 쌓은 손흥민, 김영권, 이용, 김승규 등이 이후 대표팀의 주축이 되었단 걸 감안하면 오히려 10년 전보다 퇴보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33]
물론 국대가 경험치를 쌓는 곳이 아니라곤 하지만[34] 처음 대표팀에 발탁되어 국가대항전을 앞두고 느끼는 숨막히는 필드의 공기와 라커룸에서 대표팀 선배들에게서 전달받는 애국심과 위닝멘탈리티, 자신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는 동기부여와 주전이 되기 위한 경쟁의식 등이 어린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걸 입증하고 있는 게 다름아닌 홍명보 감독 본인이다. 실제로 홍명보호 2기 체제에서 꾸준히 기회가 주어지는 오현규, 배준호, 설영우, 이태석 등은 대표팀에 소집된 이후 (소집되기 전보다) 기량 면에서 월등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싹수가 보이니까 대표팀에서 기회가 주어진 거긴 하겠지만, 이런 대표팀에서의 건강한 주전경쟁을 통한 동기부여가 유망주들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그저 노련하다는 이유만으로 고참 선수들만을 닥주전에 박을 거면 유망주를 뽑는 의미가 있냐는 게 비판의 주요 골자다.[35]
무엇보다 비판하는 측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월드컵에서의 선전 여부인데 아무리 노장들이 베테랑으로서 뛰어난 안정감과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한들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들이 모인 월드컵 무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불과 1,2년 사이 노장들의 폼이 떨어질 수 있는게 축구의 현실이며, 아무리 경험치가 높다고 해도 신체조건이 우선인 스포츠에서 물리적인 나이는 무시하기 어렵다. 실제로도 내로라하는 여러 축구 강국들도 세대교체를 소홀히 한 나라들은 예외없이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2010년의 이탈리아, 2014년의 스페인, 2018년의 독일, 2022년의 벨기에가 그 예시다. 때문에 부상 등 변수를 대비해서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주축 선수들을 대신할 선수들을 찾아서 기용하며 조직력을 다져놓아도 한국 레벨로 윌드컵에서 선전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판국에 지금 홍명보 감독은 본선 진출을 안정적으로 확정한 A조의 이란, C조의 일본과 달리 1포트임에도 아직까지 아시아 예선에서 헤매면서 세대교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향후 북중미 월드컵 성적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그래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선 어린 신예들을 적극 투입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4:0의 승전보와 함께 홍명보 본인도 어린 선수들의 기대 이상의 활약에 만족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면서 세대교체 의지가 없지만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최악인 건 1기 시절과 마찬가지로 인터뷰 스킬이 여전히 최악이다. 본인을 향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데 말 주변도 없어서 인터뷰로 온갖 논란을 더 키운다. 부임 당시 ‘나는 나를 버렸다’부터 시작해서 김민재와 황인범의 부상을 두고 한 소속 구단을 향한 비난, 동아시안컵 한일전 패배 이후엔 '경기력은 우리가 더 좋았다',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보았다'같은 황당한 정신승리, 손흥민 주장 관련 실언, 김민재 실수 언급까지 벤투 이전 감독들보다도 실언이 너무 잦다.[36]
7. 여담
- 역량과는 별개로 운 하나만큼은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역사상 최고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2기의 홍명보호가 맞이한 행운들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37][38]
- 홍명보가 정식 감독으로 선임 되기 이전 이라크-요르단-오만-팔레스타인-쿠웨이트라는 역대급으로 편안한 조에 배정되며 포트별 최악의 상대들인 호주-사우디-UAE-중국-북한, 인도네시아를 죄다 피했다.[39][40]
- 첫 경기 팔레스타인전 충격 무승부를 거뒀지만 요르단이 쿠웨이트와 비겨서 최악을 피했다.
- 오만 원정 경기에서 시원찮게 승리하였지만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비겨서 2위를 유지하였다.
- 요르단 원정을 앞두고 요르단의 에이스 무사 알 타마리와 야잔 알 나이마트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0:2로 무난하게 승리하였다.[41]
- 쿠웨이트전과 같은 라운드에 치뤄진 이라크와 요르단의 경기가 서로 사이좋게 무승부로 끝나는 덕에 양팀과 한국과의 승점 격차가 벌어졌다.
- 팔레스타인과의 중립 구장 경기[42]에서 또 무승부를 하는 졸전을 펼쳤지만 요르단도 마찬가지로 쿠웨이트와 또 비기는 바람에 1위를 무난히 사수하고 2위 자리 유지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 홈에서 오만과 비기고도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또 비기는 바람에 최소 2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였다.
- 홈에서 요르단과 비기고도 팔레스타인이 이라크를 상대로 승리하는 이변이 터진 덕분에 승점 1점만 추가해도 본선 직행이 확정되는 편안한 경우의 수를 받았다.[43]
- 6월에 있을 이라크 원정에서 이라크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아이만 후세인이 팔레스타인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출전을 못하게 되었고,[44] 이 때문에 대체자로 나온 알리 알하마디마저 경기 도중 전반 26분에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0:2로 무난하게 승리하였다.
- 9차전에서 한국이 이라크 원정에서 승리하는 동안 일본과 이란이 각각 호주 원정과 카타르 원정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한국이 유일한 아시아 예선 무패 행진을 달리는 팀이 되었고, 10차전 역시 무난히 대승하면서 아시아 예선을 유일하게 무패로 통과한 감독이 되었다.
- 월드컵 예선과 동아시안컵 이후 이어진 2025년의 친선 경기에서는 비록 한국이 4승 1무 1패라는 호성적을 통해 스스로 피파랭킹 점수를 지켜내 2포트에 들었긴 하지만, 2포트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오스트리아, 에콰도르, 호주 모두 예선과 친선경기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부진하며 패하거나 비기는 바람에 스스로들 지리멸렬하게 미끄러져 2포트 경쟁에서 무난하게 이길 수 있었다.
- 게다가 유럽 예선에서도 독일은 기어코 자력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이탈리아는 끝내 노르웨이에게 밀려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게다가 예상 외로 덴마크마저 스코틀랜드에 일격을 얻어맞고 PO까지 떨어져 버려 2포트에 공석이 두 자리나 발생하게 되어 2포트 경쟁의 꼴찌였던 호주마저 2포트 막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친선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뒀더라도 2포트는 확실했겠지만, 여전히 의문부호의 경기력을 보이는 홍명보호가 성적마저 부진했다면 여론이 말 그대로 뒤집어졌을 게 뻔하다.[45]
- 월드컵 조별예선 조 추첨에서도 꿀조 내지는 무난한 조가 나왔다는 평가이다. 또한 3경기를 모두 멕시코에서 치르며 조 1위로 진출할 시 32강~16강에서도 멕시코에서 경기를 치른다.
- 일단 감독부터가 홍명보이고 잦은 감독 교체 뒤에 소방수로 부임했다는 점, 라이벌팀 일본의 약진[46]으로 인한 상대적인 대조, 부임 이전 대표팀의 파벌 논란[47], 하필이면 또 세대교체의 기로[48]에 꾸려진 팀 등 여러 면에서 2014 월드컵 당시 악몽의 데자뷰를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세세하게 따져 보면 그때랑은 여러모로 다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8. 경기 결과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49] |
| 19 | 12 | 5 | 2 | 34 | 15 | 63.1% |
9. 랭킹 추이
| <rowcolor=white> 발표 기간 | FIFA 랭킹 (위) | FIFA 포인트 (Pts) | 비고 |
| 2024년 | |||
| 2024년 7월 | 23[62] (▼ 1) | 1572.87 (◀▶) | AFC 3위 |
| 2024년 8월 | |||
| 2024년 9월 | 23[63] (◀▶) | 1572.61 (▼ 0.26) | |
| 2024년 10월 | 22[64] (▲ 1) | 1589.93 (▲ 17.32) | |
| 2024년 11월 | 23[65] (▼ 1) | 1585.45 (▼ 4.48) | |
| 2024년 12월 | 23[66] (◀▶) | 1585.45 (◀▶) | |
| 2025년 | |||
| 2025년 4월 | 23[67] (◀▶) | 1574.93 (▼ 10.52) | |
| 2025년 7월 | 23[68] (◀▶) | 1587.08 (▲ 12.15) | |
[1] 앞선 임시 감독들인 황선홍과 김도훈은 모두 본인의 사단들을 데려오거나 축구협회의 지원을 받고 코치진 구성에는 차질 없이 활동했다.[2] 홍명보 감독과 이임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전술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외국인 코치의 주 역할이었다. 감독직 내정 브리핑에서 이임생 이사는 홍명보 감독의 전술적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외국인 코치를 선임하기로 상호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이 해외에 상주하면 할 수 있는 역할은 유럽 팀 경기 분석과 유럽파 선수 체크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한 마디로 홍명보호의 전술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상대팀 전력분석관이 이들이 역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분석하는 상대팀도 유럽 팀 위주일 것이다.[3] 주앙 아로소 코치는 FC 파말리캉 부임 1달 만에 빼왔다. 감독부터 코치진까지 리그에서 빼오는 것이 상습적인 수준이다.[4] 일부 기사에서는 2027년까지 보장이 되어 있다고 언급했지만 이렇게 되면 실제 계약 기간은 2+1년인 셈이다. 협회 차원에서 본인들을 위한 일종의 안전 장치를 걸어둔 것으로, 홍명보가 또 다시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 계약을 해지하고, 월드컵 성적이 좋으면 아시안컵까지 부임한다는 것이다.[5] 다만 그놈의 라볼피아나 밈 때문에 홍명보가 쓰리백 성애자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문단만 봐도 알 수 있듯 홍명보는 원래 오히려 철저하게 4-2-3-1만 고집하던 감독이다. 그의 전술에 영향을 끼친 거스 히딩크,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도 원래 포백 전술로 명성을 떨친 감독들이다. 홍명보의 지도자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면 오히려 전형적인 포백 전문 감독에 가깝다.[6] 당장 리베로만 해도 수미가 내려와서 맡기도 하고, 김민재가 맡기도 한다.[7] 이 탓에 홍명보호 체제의 A매치 경기를 본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우리도 진짜 못하긴 하는데, 상대도 참 어지간히 못한다고 혹평한다. 다만 이는 두 양팀이 진짜로 실력이 없는 거라기보단 그만큼 한국팀의 빗장수비가 의외로 촘촘해서 상대가 제대로 된 기량을 펴기 어려웠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8] 정확히는 실수를 하더라도 곧바로 수습할 수 있도록 하겠다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9] 수비수 출신 감독들과 이탈리아 출신 감독들이 유독 자주 겪는 문제로, 수비 전술은 세세하게 짜지만 공격에서의 세부 전술에 약해 선수에게 맡기는 식이 상당히 많다. 홍명보 역시 센터백 출신이며 같은 문제를 자주 보인다.[10] 그나마 협회가 구단으로부터 감독을 강제 차출 가능 조항이 있는 국가대표팀 감독이라 넘어가는 것이지 만일 클럽 간에 이렇게 했다간 템퍼링으로 징계를 당해도 모자란 사안이다.[11] 의외로 신태용호도 승률이 홍명보 다음으로 낮다. 또한 결론적으로만 따지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신태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했던 것은 당시 신태용의 커리어가 성남 일화 천마 시절을 정점으로 점차 하락세를 타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 대역전패까지 당하면서 감독으로써의 자질에 의구심이 커졌다.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은 덤. 게다가 신태용이 재평가를 받는 분야 역시 감독 선임 당시에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태용이 감독으로 부임하는 과정 자체에는 홍명보와 같은 문제가 전혀 없었기에 신태용을 믿고 가자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12] 자신을 외국인 감독보다 후순위에 두며 최우선 순위가 아닌 대안으로 생각한 점, 협회의 지원에 대한 불확실성[13] 외국인 감독은 선임하지 않을 것이며, 홍명보만이 현재 한국 축구를 살릴 수 있다는 뉘앙스의 호소, 연봉 및 코치진 구성에서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14] 2024년 6월 하순에 이미 국내 감독 1순위 1명, 외국인 감독 3명으로 윗선에 보고를 올렸으며 1순위에 오른 대상이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홍명보 감독 선임 확정 이후 이 감독이 홍명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선임 확정 이전에 뜬 거절 언급은 사실 거절이 아니라 흥정이 아니었냐는 시각이 있다.[15] 당장 오는 9월 5일 최종예선 1차전에서 붙을 팔레스타인은 이번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데뷔전이며, 심지어 한창 전쟁 중인 국가라 자국 대표팀의 훈련조차도 쉽지 않다. 이런 팀에게 만약에 한국이 홈에서 졸전을 펼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특히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의 파울루 벤투와 크게 비교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벤투호 시절에도 지금처럼 중동밭이었으나 거기에 이란까지 끼어 있어 더 어려운 조였기 때문이다. 벤투 시절에는 이란에게 1승 1무를 거두고 무패 행진을 유지하는 등 본선 진출이 손쉽게 확정된 뒤에 치른 최종 라운드에서 UAE에게 패배하여 불운하게 조 2위로 내려앉은 것 뿐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교된다.[16] 당장 클린스만호가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를 치르던 당시 계속되는 졸전에도 토너먼트 상위 단계로 꾸역꾸역 올라가자 마찬가지로 선임 프로세스에 문제가 많았던 위르겐 클린스만을 옹호하는 여론이 많이 형성되기도 했다.[17] 또한 커뮤니티의 경우 본질적인 목표가 특정 대상에 대한 불만 표출인 경우가 많아서 성적이 저조하다면 선수단과 홍명보, 혹은 축협을 욕하면 되고, 성적이 좋게 나오면 현재 반대 여론을 피고 있었던 타인을 싸잡아 욕하면 그만이기에 어느 쪽이든 결국 누군가가 비난받는 쪽으로 귀결될 것은 변함이 없다.[18]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적어놓긴 했지만 실제 인터뷰는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는 인터뷰였다. 울산 감독 시기의 담백한 기자회견과는 달리 빙빙돌리는 말이 너무 많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며, 분노한 팬덤을 달래기는 커녕 오히려 기름만 붓는 엉터리 인터뷰가 되었다.[19] MIK 자체는 일리가 있는 것이 한국 축구는 시도때도 없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되면서 대표팀을 상징하는 전술 철학은 없이 그저 뛰어난 선수 개개인의 역량과 투지에 의존한 축구를 이어 나가고 있다. 그때마다 외국인 전술가 감독을 선임하는 여론의 성토 속에 외국인 감독을 물색하지만 현대 축구의 높아진 감독 연봉을 감당하지 못 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껏 부임한 외국인 감독들도 한국 축구를 통해 다시 유럽에 복귀하고 싶어하지 장기 부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즉, 한국 전체를 관통하는 전술적 철학을 만들고 거기에 맞게 한국인 감독과 선수를 육성해 나가자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옆의 일본 국가대표팀이 좋은 사례인데 일본은 성적을 떠나 어느 감독이 부임하든 하나의 전술 철학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모리야스 하지메가 최근 처참한 실패를 겪었음에도 2026년까지 장기 계약을 맺는 등 신뢰를 받고 있다. 심심하면 감독을 갈아치우는 한국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20] 이는 유럽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많은 유럽 축구 국가대표팀들이 자국인 감독을 애국심에 호소하며 꾸역꾸역 쓰고 있으며, 종종 잔 피에로 벤투라 같은 졸장이 선임되어 대참사를 내기도 한다. 유명 S급 감독들 대부분은 클럽에서 고연봉을 수령하고 있기에 대표팀 감독직은 반쯤 애국심에 호소하는 명예직에 가깝다.[21] 직전 감독 클린스만이 완벽한 사례이다. 독일 축구계 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크고 인맥은 넓지만,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서 철학을 실행할 능력은 제로였던 양반이었다.[22] 홍명보가 울산 감독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리그 우승을 하는 등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전보다 더 나아진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라는게 문제다. 전전임 감독인 벤투는 한국을 맡은 1, 2년 동안 전술적으로 팬들과 전문가 사이에 논쟁이 오갔지만 옹호자든 비판자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확고한 전술적 철학이 있었고 그 전술을 위해 선수를 지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전문가들에겐 대체로 호평을 받은 전술가였다. 반면에 홍명보는 1기에는 엄청나게 전술적 폭이 좁은데다가, 울산 시절에는 어디까지나 1기 때보다 융통성이 생긴 정도의 발전만 보여줬을 뿐이지 이것이 홍명보 볼이다 할 전술 컨셉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참고로 벤투의 전술은 세계 축구 트랜드와도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3] 3차 예선 8차전 당시, 이강인과 배준호의 경우 본인의 출전의사가 강했고 또 의료진의 소견으로는 충분히 경기를 뛸 수 있는 몸상태였음에도 선수들의 부상을 우려한 홍감독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24] 혹자는 이를 두고 아무리 빅클럽의 주전 선수고 심각한 부상이라 소속팀에서 안 놔준다 한들 대표팀 감독이 부르는데 안 따를 수 있겠냐며 사실상 홍명보가 김민재를 배려해서 놔준 것이라 보고 있다.[25] 3월 예선 당시 부상이 의심되었던 김민재를 소집했다가 부상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하고 소집을 취소하자 일관성 없는 선발 때문에 혼란을 야기한다든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를 의식하여 부상이 6월까지 장기화 되자 처음부터 소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26] 이마저도 멕시코전은 종료 2분 전까지 2-1로 앞서고 있었다.[27]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준주전으로 충분히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뮌헨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나폴리 시절의 최고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8] 손흥민은 그나마 여전히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지닐 만 한 폼을 보이고 있지만, 월드컵 준비와 은퇴 수순을 밟기 위해 MLS로 무대를 옮겼다. 이강인은 파리에서 조금씩 출전 기회를 잡고 있지만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아직 빅리그 수준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황희찬으로 24-25시즌부터 심각한 폼 하락을 겪으며 거의 전력 외로 분류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29] 물론 향후 한국 축구를 책임질 인재를 육성할 책임은 국가대표 감독에게도 있는 것은 사실이나, 월드컵이 끝나기 전까지는 실험적인 선수 기용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폼이 하락세인 선수들 대부분이 한국 축구 역사에 손꼽히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이기에, 국대 감독이 혼자만의 힘으로 이를 대체할 자원을 육성하기는 한계가 있다. 손흥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황희찬만 해도 유럽 커리어만 놓고 보면 한국 축구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흔치 않은 성공 사례로 국대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육성이나 발굴 가능한 선수가 아니다. 국대 감독의 훈련 시간은 1년에 겨우 한두달 가량에 불과하기에, 현대 축구에 들어서는 이러한 육성은 대부분 클럽에서 이루어지는 편이고, 한국도 K리그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국대 육성에 동참했던 2002년 월드컵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클럽이나 협회 차원에서 선수를 육성하지 국대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뉴페이스를 발굴하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다.[30] 더군다나, 클린스만호 시절 대표팀이 완벽하게 무너졌던 걸 감안하면 1년 3개월만에 결과는 낼 수 있는 팀으로 회복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만하다.[31] 다만 오히려 어설프게 전술에 선수를 끼워맞추고 있는지라 차라리 대놓고 선수들의 순수 기량에 맡기고 자유로운 플레이를 유도한 클린스만이 낫다는 의견도 소수 있다.[32] 이천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세대교체를 하긴 했는데 벤치멤버만 세대교체가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33] 홍명보가 대표팀 1기 시절에 어린 해외파들만 선호했다는 이유로 엄청 까이긴 했지만 분명 당시에도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전적 탓에 대표팀 감독 자리에 재부임했을 당시 부정적인 여론 사이에서도 아시아리거로만 구성된 노쇠화된 대표팀 스쿼드를 (브라질 월드컵 때 그랬듯) 어린 유럽파 위주로 바꿔줄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는 소수의 의견도 있었지만 막상 홍감독이 부임한 이후의 행보는 저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34] 홍명보가 대표팀 2기 체제에서 세대교체에 소극적인 게 10년 전 자신이 들었던 비판인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는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거 아니냐는 관점도 있다.[35] 그 대표적인 예가 클럽에서는 맹활약을 펼치다가 국대만 오면 아쉬운 모습만 보이는 박용우의 기용이다. 요르단전 실책으로 인한 실점으로 아시안컵 결승 진출 좌절하게 했으며, 3차예선 요르단과의 경기에서도 실수로 인한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하게 했다. 물론 이 날 패스 정확도 91%, 롱패스 정확도 4/5(80%), 태클 성공 5/6(83%), 지상 볼 경합 성공 6/8(75%), 공중 볼 경합 성공 10/12(83%) 등으로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꽤나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러나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는 패스미스 후 역습 미대비 및 어슬렁거리며 뛰는 등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홍명보는 계속 박용우를 주구장창 기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팬들이 홍명보를 박용우의 양아버지, 박용우를 홍명보의 양아들이라고 비꼴 만하다. 그나마 혼혈 선수 옌스 카스트로프를 비롯해 이강희, 권혁규 등의 새로운 유망주 자원들이 꾸준하게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팬들은 이제 박용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36] 홍명보는 특히 선임 과정부터 상당히 잡음이 많았기 때문에 인터뷰에서 더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으나 오히려 논란이 될 만한 발언들을 서슴치 않게 내뱉으며 그나마 나아지고 있는 경기력마저 묻히게 만들고 있다.[37] 재밌게도 홍명보는 1기 시절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도 상대적으로 편안한 조에 배정되는 행운이 터진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행운의 기회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는 것이 문제였지만...[38] 사실 행운 못지 않게 불운도 많이 따랐다. 일단 부임 후 첫 경기인 팔레스타인 홈경기는 관중의 야유 속에서 선수들의 사기가 전부 떨어져서 홈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고, 3월 예선에선 사실상 한국 대표팀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평가받는 김민재와 이강인의 이탈로 사실상 차포 뗀 상태로 예선을 치뤄야 했다. 심지어 6월 예선조차 클럽 월드컵 때문에 저 둘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전들이 빠지는 걸 피할 길이 없었고 최종예선 이후에도 일부 주전들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이들 없이 A매치를 치룬 적이 있었다.[39] 여기에 대해선 좀 반론이 있을 수 있는데, 중국과 북한을 과연 20세기 시절 아시아의 무서운 강호였던 쿠웨이트와 2010년대 들어 전력이 상승하고 있는 오만보다 강호로 볼 수 있는지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전통의 강호 이라크는 유독 한국과의 상성이 약하기로 유명하니 그렇다 쳐도 요르단도 일단은 바로 전 아시안컵에서 (뭐 이유야 어찌됐건) 한국을 2:0으로 꺾은 준우승팀이다. 하다못해 최약체로 평가받는 팔레스타인조차 2차 예선에서 레바논을 탈락시키고 올라온 무시 못 할 팀이다. 3차 예선 B조가 유난히 예측불허의 이변이 자주 터져 나오며 '전부 똑같이 못하는 조'로 조롱받고 있지만, 좀더 자세히 면면을 따져보면 누가 누굴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조에 더 가깝단 걸 알 수 있다.[40] 참고로, 저들 중 호주-사우디-중국-인도네시아는 일본이 있는 조로 몰빵되었으며 결국 그 사우디가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41] 아이러니한 건 두 선수는 아시안컵 준결승 당시 한국을 상대로 대굴욕을 안겨 주었던 선수들이었다.[42] 요르단의 암만 경기장에서 열렸다.[43] 심지어 2패를 하는 극단적인 경우에도 경우의 수가 맞으면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44] 그 외에도 레빈 술라카 등의 주전 수비수들마저도 경고 1장이 누적되어 있어서 만악 한국전에서 또 경고를 받으면 10차전인 요르단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된다.[45] 다만 2025년을 마무리하는 기준으로 홈에서는 부진했지만 원정에서는 성적과 경기력 모두 우수한 수준을 선보였다. 이 징크스는 홍명보호 2기를 처음부터 지켜봐온 팬들의 주요 관심사항 중 하나로, 월드컵 무대도 결국 원정 경기이기 때문에 못미더워도 끝까지 지켜보자는 의견이 있는 편이다.[46] 홍명보호 1기 시절에도 일본은 그 유명한 자케로니 재팬 시절로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강호와도 해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던 무시무시한 팀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홍명보가 감독으로 재부임한 시점의 동시기 일본은 모리야스 재팬이 또 아시아를 씹어먹고 있는 상황이다.[47]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에 처음 부임했을 땐 해외파 VS 국내파 갈등으로 인해 대표팀 분위기가 최악에 치달은 상황이었고 본인 또한 그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채 감독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난 바 있는데, 이후 감독직에 돌아온 현 시점에서도 선수 개인 트레이너와 대표팀 의료진 (그리고 양측과 관련된 선수들) 간의 갈등이나 고참 선수들과 신예 선수들 간의 파벌 논란 등 대표팀이 사분오열된 상황이다.[48] 홍명보가 처음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을 땐 2002 멤버들이 슬슬 은퇴하던 시점이라 런던 멤버 위주로 구성된 새로운 팀으로의 리빌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절묘하게도 그 런던 멤버들이 은퇴하고 벤투호 때 중용되던 베테랑들의 노쇠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2000년대생 유망주들 위주의 팀을 꾸려야 되는 위기 상황에 홍명보가 다시 부임해오게 됐다.[49] 축구는 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승률상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물론 상대팀의 승률도 하락시킨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50] 대한민국 표준시 기준.[51] 경기 당시 기준.[52]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의 득점을 기준으로 서술하며, 자책골은 미포함한다.[a] 2026 FIFA 월드컵 본선 진출팀.[54]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인하여 중립 지역인 요르단 암만에서 치러졌다.[a] [a] [a] [a] [a] [a] [a] [62] 2024년 7월 18일[63] 2024년 9월 19일[64] 2024년 10월 24일[65] 2024년 11월 28일[66] 2024년 12월 19일[67] 2025년 4월 3일[68] 2025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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