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단의 첫 번째 후신에 대한 내용은 광주 상무 불사조 문서
, 이 구단의 두 번째 후신에 대한 내용은 상주 상무 FC 문서
, 현재의 상무 축구단에 대한 내용은 김천 상무 FC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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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ab146> 상무 축구단 | |
Sangmu FC | |
정식 명칭 | 상무축구단 |
영문 명칭 | Sangmu Football Club |
창단 | 1984년 1월 11일([age(1984-01-11)]주년) |
해체 | 2002년([age(2002-01-01)]주년) |
법인명 | 없음 |
구단 형태 | 군경 구단 (1984~2002) |
소속 리그 변천 | 축구대제전 (1985) 전국실업축구연맹전 (1986~2002) |
연고지 | 무연고 (1984~2002) |
구단명 | 상무 축구단 (1984~2002) |
운영 주체 | 국군체육부대 제2경기대 |
상징색 | 황색, 흑색 |
웹 사이트 | 국군체육부대 |
우승 기록 |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회) | 1996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9회) | 1984, 1991후, 1992전, 1994전, 1996후, 1997후, 1998후, 1999후, 2002후 |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2회) | 1999, 2001 |
전국체육대회 (2회) | 1999,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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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4년에 창단한 과거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소속의 축구단이다.2. 시즌별 일람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ab146> | 상무 축구단 시즌별 일람 |
시즌 | 리그 | 코리아컵 | WMC | ||||||||||
디비전 | 리그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
1985 | 1부 | 축구대제전 | 6 | 21 | 6 | 7 | 8 | 23 | 30 | -7 | 19 | - | - |
1986 | 2부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 - | - | |||||||||
1987 | - | - | |||||||||||
1988 | - | - | |||||||||||
1989 | - | - | |||||||||||
1990 | - | - | |||||||||||
1991 | - | - | |||||||||||
1992 | - | - | |||||||||||
1993 | - | - | |||||||||||
1994 | - | - | |||||||||||
1995 | - | 3위 | |||||||||||
1996 | 16강 | - | |||||||||||
1997 | 1라운드 | - | |||||||||||
1998 | 16강 | - | |||||||||||
1999 | 8강 | 불참 | |||||||||||
2000 | 16강 | - | |||||||||||
2001 | 16강 | - | |||||||||||
2002 | 16강 | - |
3. 역사
자세한 내용은 김천 상무 FC/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본래 대한민국의 주요 3군인 육군, 공군, 해군이 각각 자체적으로 축구단을 운영해 왔다.[1][2] 이 3군 축구단을 하나로 통합해 1984년 국군체육부대 예하 부대로 재창단 된 팀이 바로 상무 축구단이다. 상무 축구단은 창단 원년인 1984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을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고, 당시 기준에 따라 1985년 시즌 프로축구리그인 '축구대제전(수퍼리그)'에도 참가 자격을 얻어 프로 리그에 데뷔까지 했다.[3] 다만 한 시즌만을 소화하고 다시 1986년부터 실업축구 무대로 돌아와 2002년까지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을 소화했다. 특히 90년대가 상무의 전성기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추계대회에서 4년 연속 우승하고, 1999년과 2001년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는 등, 본격적으로 이 때부터 실업 축구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2002년에 상무 1군이 광주와 연고 협약을 맺어 2003 시즌 K리그부터 광주 상무로 다시 K리그에 참가했다. 또한 2군은 이천 상무라는 이름으로 2003년에 창설된 내셔널리그에 원년팀 중 하나로 따로 참가하기 시작해[4] 2003 시즌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천 상무는 2005년까지 활동했다가 2006년부터 K리그 2군 리그로 무대를 옮겨 활동했다.[5] 2011년 부터 광주시에 광주 FC라는 독자적 시민구단이 창단되고 상무는 상주시로 이전하면서 상주 상무로 재탄생했다. 상주에서 10년간 활동한 뒤 2021년 부로 김천시로 이전, 현재의 김천 상무가 되었다.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 리그에 참가하는 유일한 체육부대 구단이다.[6]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기록에서는 상무 축구단, 광주 상무, 상주 상무, 김천 상무를 모두 별개의 구단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록도 모두 분리되어 있다. 그 이유는 상무(국군체육부대)는 선수 공급처일 뿐 광주광역시, 상주시, 김천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구단 운영 주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보잘 것 없는 무명 선수나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을 당당한 주전급으로 훌륭하게 육성하여 기회의 장이라고도 불린다. 상무 축구단은 크게는 국군체육부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다른 종목 선수들과의 교류가 많으며, 여기서 자칫 선수생활을 하며 소홀히 할수 있던 부분을 타 종목과 비교하며 발견해 단련할 기회가 많다. 전역할때가 되면 입대 전보다 여러 면에서 성장한 선수가 돼서 돌아오는 경우도 꽤 잦다.
4. 성적
여타 팀들이 스카우터들을 고용해서 열심히 선수를 발굴하고 설득하고 원소속팀과 협상을 벌여 이적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어렵게 선수를 영입해 오는 것은 물론 수준급의 외국인 선수 영입 시도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이 팀은 군인팀으로, 국가의 권한인 징병제로 연령 제한인 만 27세까지의 선수가 알아서 충원된다. 축구선수의 전성기는 통상 만 23세부터 30세까지지만, 징병의 부작용으로 선수들이 상무와의 계약 기간 동안 열심히 뛰기보다는 적당히 뛰면서 부상당하지 않고 무사히 원소속팀으로 방출[7]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K리그1 하위권 단골팀이었다. 게다가 군대라는 팀의 특수성으로 인해 선수들은 훈련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키는 일도 병행해야 하고, 또한 군팀 특성상 전력도 자주 바뀌고 말이다.5. 신분
병역 특례가 걸려있는 대회에서 선수들이 삽질을 하거나 졸전을 펼치면 상무나 가라는 욕설을 얻어먹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프로축구 선수들 사이에서는 축구도 하면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 팀에서 뛰는 것이 누구든지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다.[8]급여도 일반병과 다를 바가 없는 진짜 군인이다. 농담이 아니라 전역이 가까워진 말년병장 선수들의 몸은 무겁기 그지 없다.[9] 선수들이 말년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광주 시절의 축구팬들이 상무를 싫어하던 이유다. 다만 최근의 조규성처럼 상무에서 포텐을 터뜨려 국가대표 승선과 월드컵 출전이 눈앞에 다가온 선수들은 예외다. 조규성은 실제로 전역전 휴가 전 치른 마지막 상무 고별전에서 골을 넣으며 끝까지 잘했다.
한편 여자 축구 리그에도 상무가 참여하고 있는데, 보은 상무 참조. 다만 이 쪽은 여자팀이기 때문에 당연히 용사 입대가 아니라 부사관 임관이다. 참고로 선수단 규모가 국군체육부대 중에서 큰 편인데, 이유는 다른 종목 TO를 끌어다 썼기 때문. 이 쪽은 부사관 신분이기 때문에 병역의무복무기간만 지나면 원 소속팀으로 임대 해제가 되는 남자팀과는 달리 계속 눌러앉을 수 있다. 그에 따라 계급도 중사 - 상사 등으로 계속 올라간다.[10]
참고로 외국에도 상무와 비슷한 팀이 있는데, 태국의 에어 포스 센트럴 FC로, 과거 한국에 태국 공군팀으로 알려진 구단이다. 현재 워리어스 FC로 개명한 싱가포르 리그의 싱가포르 암드 포스도 군인팀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 두 구단은 현재 명칭에 군대물만 남아 있을 뿐, 프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용병 선수도 쓰고 있다. 한국인 선수들도 몸담았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 알제리의 경우 선수가 징병 되면 프로팀으로 임대를 보낸다. 보통 원소속팀에 뛰게 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에 연봉은 군대에서 낼름했다. 세계 군인체육대회를 할 때면 이렇게 임대 보낸 선수들을 일단 군인 신분이란 이유로 차출해서 대표로 보내는데, 그 때문인지 굉장히 강하다.
이 밖에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군경 구단이 많았으나, 현재는 해체되었거나 프로 구단으로 전환하였거나 정규 리그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단 베트남은 비엣텔이나 꽁안난단 등 군경팀이 프로에 참여하고 있다. 공산권 문화가 남아 있는 북한에서는 여전히 리그에 군 구단이 많다.
6. 연고지 변천
상무 축구단 (1984~2002) |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10) |
6년이 지난 2008년. 연맹은 상무를 충청남도 천안시로 옮기려 했으나 광주광역시가 지금은 프로축구단을 못 만들겠다고 하는 바람에 상무는 2년 더 광주에 남게 되었다. 광주광역시가 약속을 어기자 대표 서포터스 클럽인 1980은 2008년 10월을 끝으로 응원을 중단한다. 이 시절 광주의 스포츠 팬이면 반드시 믿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돌았다. 하나는 야구장, 다른 하나는 프로축구단. 전자는 삽 뜨기 전에 믿으면 안 되고 후자는 선수 뽑아서 창단식 열기 전까지는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팬들은 지쳐 있었다. 이 기약없는 약속 두개는 2010년에야 지켜졌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광주광역시는 경기장만 빌려 주는 곳이었지 진정한 연고지라고 보기는 어려운 편이다. 2013년 9월까지 국군체육부대는 경기도 성남시에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평소엔 성남에서 지내다 홈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광주로 원정을 와야했다. 즉 성남시에서 열리는 경기를 제외하곤 다 원정 경기나 다름없었다.[11][12] 광주시도 시한부 연고라고 못박았고 서포터즈도 시민구단 창단을 전제를 '시한부 응원'을 했으니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충청도 시절같은 '임시 연고'였다.
7. 코칭 스태프 명단
8. 선수 명단
9.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B81C22><tablebgcolor=#B81C22> | 상무 축구단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0 -10px -5px" {{{#c5a77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ffffff> 1대 (광주 1대) | 2대 (광주 2대) | 3대 (상주 1대) | 4대 (상주 2대) | |
이강조 (1990~2010) | 이수철 (2011) | 감독 대행 김태완 (2011) | 박항서 (2012~2015) ☆☆ | 조진호 (2016) | |
<rowcolor=#ffffff> 5대 (상주 3대 / 김천 1대) | 6대 (김천 2대) | ||||
김태완 (2017~2022) ☆ | 감독 대행 성한수 (2023) | 정정용 (정정용호) (2023~) ☆ |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초대 | 이강조 | 1990~2002 | 군무원 출신 감독 |
10. 국가대표 배출
상무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발탁/배출되어 월드컵에 출전을 하게 되는 경우, 이들은 애국가 연주와 골 세레모니 후, 선수교체 시에 거수 경례를 하게 된다. 이들은 월드컵에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여 국위선양을 목표로 하여 출전하게 된다.1994년 이후 대부분의 월드컵 대회에서 국가대표를 배출했다.
11. 유니폼
자세한 내용은 김천 상무 FC/유니폼 문서 참고하십시오.12. 여담
- 연고지가 바뀔 때마다 지자체에서 새로 법인을 만들기에 연고지가 바뀌는 것 자체가 재창단이다.
- 군경 구단이기 때문인지 체육부대장이 경기를 보러 오는 날에는 버프가 굉장히 유효하게 걸리곤 한다.
- 군경 구단이라서 모든 구성원이 전부 다 계급이 있다. 선수는 용사 신분이다. 주무는 소위 계급이며 구단주가 부대장으로 2급 군무원이고[13] 단장이 중령 계급이다.
- 이런 '사단장 효과'는 언론에서 말하길 특박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무는 경기 승리를 하면 특박이나 외식이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팀이고, '사단장 효과'는 그저 생존욕에 불과하다. 군대스리가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높으신 분이 관전하는 경기에서 져버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군경 구단이다보니 코칭 스태프들도 군부대 내에서 군인 선수들과 숙식을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코칭 스태프들의 경우 외부에서 따로 생활한다고 한다.[14]
- 군경 구단이다 보니 만일 선수가 상무로 가서 뛰다 와도 타 구단 커리어로 쳐주지 않고 원 소속 구단에서 쭉 뛰다 은퇴하면 원클럽맨 대우를 받는다. 당연히 원 소속 구단으로 원정을 온다면 상대 선수 소개 때 자기 선수마냥 박수를 받고 이들도 득점 시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한다.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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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 구단은 회색 바탕으로 처리한다. | ||||
▲ K리그1 현재 참가 구단 | ||||
▽ K리그 과거 참가 구단 |
[1] 한국전쟁 직후 아무래도 군 조직이 매우 커져 있었기 때문에 공병단, 헌병감실, 특무부대, 첩보부대, 병참단 등 각 부대별로 축구단이 세분화되어 운영되었고, 자체적으로 군 축구대회까지 열 정도였다. 그러나 1969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이 확장될 조짐이 보이자, 국방부에서는 이들을 하나의 팀으로 통합하여 육군 축구단으로 재출범시켰다. 반면 해군 축구단은 1973년 해병대 축구단을 이관받아 운영하게 된 것이 유일한 변화였고, 공군 축구단은 1972년 창설 이후 1983년까지 변함없이 운영되어왔다.[2] 당시 3군 축구단은 각각 육군 웅비, 해군 해룡, 공군 성무라는 구단명을 사용했다. 이 이름은 다른 스포츠단도 공통적으로 사용했다.(단, 육군 야구단은 웅비라고 하지 않고 운영 주체인 육군중앙경리단(現 국군재정관리단, 보통은 줄여서 경리단)이라는 이름으로 뛰었다.[3] 전년도에 실업축구 리그인 실업축구 코리안리그의 우승팀 자격으로 '편입'(일종의 승격)되어 참가했다. 반대로 전 시즌에 프로리그 최하위 성적으로 강등된 팀은 국민은행 까치였다.[4] 다만 '이천 상무'라는 팀의 창단은 2003년이 아닌 1999년으로 기록되는 듯 하다. 또한 유니폼 색상은 주황색을 쓰던 광주 상무와 달리, 광주 상무 출범 전부터 쓰던 파랑과 검정의 스트라이프 무늬 상의를 홈 유니폼으로, 흰색 상의를 원정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하의는 동일하게 검은색. 아카이브 링크.[5] 이 때 '이천 상무'가 아닌 '광주 상무 2군'으로 참가하였기에, 이천 상무는 해체 아닌 해체를 하게 됐다.[6] 야구와 농구는 2군 리그에 참가 중이고 배구는 성남시를 연고로 상무 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여서 신협에서 후원까지 한 적도 있으나,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이후 신협과의 연도 끊고 기존의 여느 상무팀으로 재전환한 뒤에 세미프로로 내려갔다.[7] 상무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임대 계약 만료로 원 소속팀에 복귀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8] 물론 예술체육요원으로 지정받는 것이 (소속팀에서 그대로 뛸 수 있으므로) 더 좋긴 하지만, 일단 U-23 대표팀에 뽑혀야 노려볼 수 있는 기회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건 고사하고 대표팀에 소집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K리그에서 준수한 기량을 유지해 국대급은 아니더라도 리그에서 수준급 선수로 평가받아 상무 입대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때문에 상무 입대를 원하는 선수는 늘 많다.[9] 다만 골키퍼가 말년이고 수비수들이 상병 이하일 경우, 수비력이 높아질 때가 있다. 김용대가 말년일 때 실제로 그랬다.[10] 군대에서 운동선수를 무조건 사병으로만 규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며, 외국의 경우는 되려 장교 신분을 준다. 그 예시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였던 페렌츠 푸스카스는 계급이 무려 소령이었다.[11] 2013년 9월 이후 문경시로 옮겼기에 여전히 체육부대 연고지와 홈구장이 다른 곳에 있지만 상주시는 문경시 바로 아랫동네로 차 타고 1시간 남짓 가면 도착할 정도로 위치도 가깝고 문화권도 동일하며 역사적으로는 한 동네나 다름없기 때문에 광주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12] 참고로 연고지와 근거지가 따로 노는 현상은 프로농구 KBL과 프로배구 V-리그에서 두드러지는데, 대부분의 팀들이 숙소와 훈련장이 수도권에 있다. 그래서 지방에 연고를 둔 팀들은 홈경기만 연고지에서 하고 평소엔 숙소가 있는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 연고지 밀착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지역 팬들의 불만이 좀 있는 편이다.[13] 2019년 12월 1일 이전까지는 준장 계급이었으나 국방부의 장성 축소 정책의 일환으로 군무원이 부대장을 맡는 것으로 전환되었다.[14] 군복무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어떤 부대던 군무원 혹은 간부들이 지낼 공간은 마련되어 있으나 거주 여부는 본인 선택인데 그냥 밖에서 사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