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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상무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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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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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 구단은 회색 바탕으로 처리했다.
◀ K리그1 참가 구단 K리그2 참가 구단 ▶
◁ K리그1 과거 참가 구단 K리그2 과거 참가 구단 ▷
◁ 내셔널리그 구 K3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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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4420><colcolor=#ffffff> 광주 상무 불사조
Gwanju Sangmu Bulsajo
정식 명칭 광주상무불사조프로축구단
영문 명칭 Gwangju Sangmu Bulsajo Football Club
애칭 불사조
법인명 광주광역시청[1] (2002~2010)
구단 형태 군경 구단[2] (1984~2010)
창단 1984년 1월 11일([age(1984-01-11)]주년)
K리그 참가 2003년([age(2003-01-01)]주년)
해체 2010년([age(2010-01-01)]주년)
연고지 광주광역시 (2003~2010)
홈구장 변천 광주월드컵경기장 (2003~2010 / 39,655석)
구단명 변천 상무 축구단 (1984~2002)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10)[3]
운영 주체 국군체육부대 제2경기대
용품 스폰서 울스포츠
셔츠 프린팅 UNIVERSIADE GWANGJU 2015
상징색 적색, 흑색, 백색
마스코트[4] 빛돌이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파일:광주 상무 불사조 엠블럼.svg
팬 커뮤니티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FC광주서포터스클럽 1980
해체 당시의 구단 주요 인물
구단주 곽합 (국군체육부대장)
강운태 (광주광역시장)
단장 나무석
감독 이강조
주장 최원권
우승 기록
전국체육대회
(1회)
2004[5]
구단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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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000000,#ffffff> 2004 K리그 페어플레이상
2005 K리그 페어플레이상
}}}}}}}}} ||
유소년 체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f4420> 18세 이하
(U-18)
<colcolor=#000000,#ffffff>(미상)
15세 이하
(U-15)
광덕중학교[6]
12세 이하
(U-12)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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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즌별 일람3. 상세4. 성적5. 군인 겸 선수6. 연고지 문제7. 역사
7.1. 2010 시즌7.2. 2011 시즌의 운명
8. 코칭 스태프 명단9. 선수 명단10. 역대 감독11. 유니폼12. 응원단13. 특이점1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과거 K리그(現 K리그1) 소속 프로 축구단으로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였다.

2. 시즌별 일람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4420> 파일:광주 상무 불사조 엠블럼.svg 광주 상무 불사조
시즌별 일람
}}} ||
시즌 리그 코리아컵 WMC
디비전 리그 순위 경기 승점
1985 1부 축구대제전 6 21 6 7 8 23 30 -7 19 - -
1986 2부 전국실업축구연맹전 - -
1987 - -
1988 - -
1989 - -
1990 - -
1991 - -
1992 - -
1993 - -
1994 - -
1995 - 3위
1996 16강 -
1997 1라운드 -
1998 16강 -
1999 8강 불참
2000 16강 -
2001 16강 -
2002 16강 -
2003 1부 K-리그 10 44 13 7 24 41 60 -19 46 16강 불참
2004 K-리그 8 24 6 11 7 18 20 -2 29 8강 -
2005 K-리그 13 24 4 5 15 23 38 -15 17 16강 -
2006 K-리그 14 26 5 8 13 17 29 -12 23 16강 -
2007 K-리그 14 26 2 6 18 14 44 -30 12 16강 불참
2008 K-리그 14 26 3 7 16 22 46 -24 16 8강 -
2009 K-리그 11 28 9 3 16 33 40 -7 30 16강 -
2010 K리그 14 28 3 10 15 17 43 -26 19 8강 -

3. 상세

국군체육부대 축구단이다. 선수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프로리그에서 뛸 수 있게 하여 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국방부 측의 명분과 더불어 K리그의 구단 수 부족 해소를 위해 고심하던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프로 구단처럼 K리그에 참여하지만 실상은 기존의 상무 축구단이라고 보면 된다. 최초 연고 협약을 맺은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이며 가끔씩 영광스포티움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1984년 국군체육부대에서 출발하여 상무 축구단으로 1985년에는 프로 축구 리그인 '축구대제전(수퍼리그)'에도 참가했다가[7] 이후 2002년까지 실업 축구 무대로 옮겼다. 이때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추계대회에서 4년 연속 우승하고, 1999년과 2001년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는 등 실업 축구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2년에 1군은 광주와 연고 협약을 맺어 2003년부터 K리그광주 상무로 참가했고 2군은 이천 상무라는 이름으로 2003년에 창설된 내셔널리그의 원년 구단 중 하나로 참가해[8] 준우승을 한 뒤 2005년까지 활동했다가 2006년에 K리그 2군 리그에 참가한다.[9] 2011년부로 상주시로 이전했다. 또한 4대 프로 스포츠 리그에 참가하는 유일한 국군체육부대 구단이다.[10]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역사와 기록 상으로는 1980년대 상무 축구단, 광주 상무, 상주 상무를 별개의 구단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록들도 모두 분리되어 있다. 이유는 상무는 선수 공급처일 뿐 운영 주체는 광주광역시와 상주시와 같은 지자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보잘 것 없는 무명 선수나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을 당당한 주전급으로 훌륭하게 육성하여 기회의 장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대에는 김명중, 남궁도, 이동국, 조원희, 조재진2010년대에는 이정협, 박준태, 박기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K리그에서 현재는 폐지한 드래프트 제도에서 선수가 발탁되어 입대하게 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11] 프로축구연맹에서 라이센스를 요구함에 따라 사단법인을 만들어 지자체 구단의 성격을 띄고있으나 군경 구단의 특수성 때문에 K리그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거두거나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서 우승을 한다 해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없다. 만일 AFC 참가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리그 차상위 구단이 얻게 된다.

대표 서포터즈FC광주 1980이 있었지만 광주광역시가 구단 창단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자 상무가 옮겨 가기도 전에 보이콧 선언을 했다. 다른 구단 서포터즈에게는 건빵 소리를 듣기도 했다. 건빵 먹으라면서 구장에 건빵을 투척하거나 군필자들이 개구리 마크 달린 전투복 입고 와서 놀리는 퍼포먼스를 하기까지 했다.

4. 성적

리그 내 여타의 구단이 이적료를 지불하고 브로커가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구단을 설득해가면서 어렵게 선수를 영입해오는 것과는 달리 상무는 징병제 특유의 강제 징집으로 선발해오는 지라 선수들도 열심히 뛰기 보다는 적당히 뛰어 부상 당하지 않고 무사히 원소속 구단으로 방출 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K리그 하위권 단골이었다.

2004년 쯤엔 "상무보다 순위가 낮으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냐."라는 말이 타 구단 서포터즈 사이에서 오갔다. 2009 시즌에 최성국, 김용대(모두 성남), 김명중(포항), 최원권(서울) 등 수준급 선수들의 활약을 앞세워 리그가 중반을 넘어가는 14라운드까지 상무는 리그 1위를 달렸고, 언론에선 "이러다 상무가 챔피언쉽까지 진출하면 연맹은 어떻게 해야 할까?"하고 설레발을 쳤으나, 병장들이 제대한 15라운드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1무 1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겨우 11위로 시즌을 마쳤다. 전반기에 단 1경기라도 더 졌으면 11위는 커녕 14위를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12]

광주 연고 시절의 최고 성적은 이동국, 조재진이 있었던 2004년의 8위다.

5. 군인 겸 선수

구단 자체의 특성상 기업인 다른 구단과는 달리 군부대이다. 그러다 보니 구단주 자리에는 구단주가 아니라 부대장이라고 표기되고 실제로도 국군체육부대의 부대장이 구단주 역할을 한다.

병역 특례가 걸려있는 대회에서 선수들이 삽질을 하거나 졸전을 펼치면 상무나 가라는 욕설을 얻어먹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프로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는 병역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상무에서 뛰는 것이 누구든지 간절하게 원하는 이다.[13] 입단하는 경쟁률이 국가대표에 비견할 만큼 치열했다. 상무에 들어가지 못하는 무명 선수들은 프로 구단에 더 있어봐야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은퇴를 선택하고 일반병으로 군대 가는 경우도 정말 많다.

각 선수들의 원 소속 구단 서포터즈의 관점에서는 '우리 애들 상무에 있는 동안 다치게 하지 말고 잘 키워서 있다 돌려다오' 정도로 생각한다.

급여도 일반병과 다를바가 없는 진짜 군인이다. 농담이 아니라 전역이 가까워진 말년 병장 선수들의 몸은 무겁기 그지 없다.[14] 선수들이 말년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광주 시절의 축구 팬들이 상무를 싫어하던 이유다.

군 소속 축구단이기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나온다. 2009 시즌 K리그 10월 24일 29라운드. 광주 상무 소속이던 고슬기와 김명중은 제대한 지 이틀 만에 원 소속 구단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후임들인 광주 상무와 리턴 매치를 하게 되었고, 경기는 3:2로 포항이 승리했다. 그리고 김명중은 이 날 골을 넣으며 상무에게 비수를 제대로 꽂았다. 성남 일화 천마 소속의 김정우는 성남을 K리그 챔피언 결정전까지 이끌었지만 상무 입대가 확정되면서 결승전은 뛰어보지도 못하고 상무로 입대하기도 했다. 결승전까지 이끌었는데 왜 뛰지를 못해

한편 WK리그에도 상무가 참여하고 있는데 보은 상무 참고. 이쪽은 여자 축구단이기 때문에 당연히 병사 입대가 아니라 부사관 임관이다. 참고로 선수단 규모가 상무 체육단 중에서 큰 편인데, 다른 종목 TO를 끌어다 썼기 때문. 이쪽은 부사관 신분이기 때문에 병역의무복무기간만 지나면 원 소속 구단으로 임대해제가 되는 남자 상무와는 달리 계속 눌러앉을 수 있다. 그에 따라 계급도 중사 - 상사 등으로 계속 올라간다. 그래봤자 소위보다 아래지만[15]
몇 년 전까지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던 상주는 구단이 직접 나서 실마리를 찾았다. 실제 정원은 25명이었지만 당시 구단 대표이사가 부대와 협의해 다른 종목 정원을 끌어왔다. 지금은 가을이 지나도 22~23명 정도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기사

참고로 외국에 상무와 비슷한 구단이 태국의 에어 포스 센트럴 FC, 과거 한국에 태국 공군 축구단으로 알려진 구단이다. 현재 워리어스 FC로 개명한 싱가포르 리그의 싱가포르 암드 포스도 군인 구단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 두 구단은 현재 명칭에 군대물만 남아 있을 뿐, 프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용병 선수도 쓰고 있다. 한국인 선수들도 몸담았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 알제리의 경우 선수가 징병되면 프로 구단으로 임대를 보낸다. 보통 원소속 구단에 뛰게 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에 연봉은 군대에서 낼름(...). 세계 군인체육대회를 할 때면 이렇게 임대 보낸 선수들을 일단 군인 신분이란 이유로 차출해서 대표로 보내는데, 그 때문인지 굉장히 강하다.

이 밖에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군경 구단이 많았으나 현재는 해체되거나 프로 구단으로 전환하거나 정규 리그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단 베트남은 비엣텔이나 꽁안난단등 군경 구단이 프로에 참여하고 있다.

공산권 문화가 남아 있는 북한에서는 여전히 리그에 군 구단이 많다.

6. 연고지 문제

파일:광주 상무 불사조 엠블럼.svg 파일:상주 상무 피닉스 엠블럼.svg 파일:상주 상무 FC 엠블럼.svg
광주 상무 불사조 상주 상무 FC
GWANGJU SANGMU BULSAJO SANGJU SANGMU FC

광주광역시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문에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지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단이 없었기 때문에에 경기장은 방치될 수 밖에 없었고, 광주광역시는 큰 비난을 받게 된다. 광주광역시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돈 안드는 상무를 광주로 입성시킬 준비를 했고, 이에 광주의 축구팬들은 크게 반발한다.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당시 박광태 광주시장은 "상무를 6년 동안만 도와주면 상무와의 연고 협약이 끝나는 2008년 말에는 프로 축구단을 창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광역시의 축구팬들은 6년만 버티면 진정한 자신들의 프로 축구단이 생긴다는 기대심을 가지고 상무를 응원했다.

6년이 지난 2008년 연맹은 상무를 충청남도 천안시로 옮기려 했으나 광주광역시지금은 프로 축구단을 못 만들겠다고 하는 바람에 상무는 2년 더 광주에 남게 되었다. 광주광역시가 약속을 어기자 대표 서포터스 클럽인 1980은 2008년 10월을 끝으로 응원을 중단한다. 이 시절 광주의 스포츠 팬이면 반드시 믿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돌았다. 하나는 야구장, 다른 하나는 프로 축구단. 전자는 삽 뜨기 전에 믿으면 안 되고 후자는 선수 뽑아서 창단식 열기 전까지는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팬들은 지쳐 있었다. 이 기약 없던 약속 두 개는 2010년에야 지켜졌다.

엄밀히 말하면 광주광역시는 경기장만 빌려 주는 곳이었지 진정한 연고지라고 보기는 어려운 편이었다. 2013년 9월까지 국군체육부대는 성남시에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평소엔 성남에서 지내다 홈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광주로 원정을 와야 했다. 즉 성남시에서 개최하는 경기를 제외하곤 전부 원정 경기나 다름없었다.[16][17] 광주시도 시한부 연고라고 못박았고 서포터즈도 시민 구단 창단을 전제를 '시한부 응원'을 했으니 프로 야구 두산 베어스의 충청도 시절같은 '임시 연고'였다.

201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상주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것을 확정했다. 당초에는 경기도 안양시가 유력했으나 막판 협상 과정에서 상주시로 확정했다. 국군체육부대의 이전 예정지인 문경시와 가까운 것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18]

갑작스레 정해진 감이 있어 상주시민운동장은 야간 조명 시설도 없었고 잔디도 엉망이라 K리그 팬들의 우려를 자아냈으나, 광주광역시의 찬밥 대우와 달리 스포츠 단이라 부를 만한 구단이 없었던 상주시청에서는 쌍수들고 대환영했다. 홈 개막전에서는 상주시민운동장 15,000석을 사뿐히 매진크리 찍어주면서 16,400명의 관중을 모으며 상주시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가 된 잔디와 야간 조명 시설 역시 2011년 상주시청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여 시의회를 통과하자마자 시에서 전폭적인 지원으로 개막 3개월 만에 모두 보수와 설치를 완료했다.

7. 역사

7.1. 2010 시즌

개막전에서 최성국의 2골에 힘입어 대구 FC에게 2-1 승리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2라운드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0-2 패배를 당했다. 3라운드에서는 포항을 맞아 1-1 무, 4라운드는 부산에게 0-2 패, 5라운드는 당시 1위였던 제주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승이나 연승도, 대패나 연패도 없이 그냥저냥 굴러가고 있는 중이다.

2010년 9월 17일에 국방부 행사의 일환으로 터키군 축구단과 경기를 가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날 대전 시티즌과 경기가 있었다는 것. 야구처럼 더블헤더를 치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보니 미x신 분들의 의향으로 터키군과의 경기에는 1군, K리그 경기에서는 1.5군을 내세웠고, 당연하게도 3:1로 대전에게 깨졌다.

시즌 구단 득점이 17득점. 리그 득점왕 유병수는 22득점을 했다. 한마디로 1년 동안 구단 전체가 넣은 골이 유병수 혼자 넣은 것보다도 적다는 것. 흠좀무.

시즌 내내 강원 FC, 대전 시티즌, 대구 FC와 함께 하위권을 맴돌다 간신히 대구 FC를 골득실로 제치고 꼴찌는 면했다. 그리고 대대광강이 사이좋게 밑바닥을 깔았다.[19]

7.2. 2011 시즌의 운명

2010년 4월 2일 광주 FC 창단이 결정됨에 따라 연고지가 옮겨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K리그에는 계속 남아있을지는 미지수로 관측되었다. 월간 베스트일레븐 10월호 기사에 의하면 AFC에서도 군대 축구단을 프로 축구단으로 볼 수 없다[20]고 하는 뜻을 보였기에 내셔널리그로 강등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한 바 있다지만 AFC에서 상무는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에 징병제이기 때문에 프로리그에서 뛰는걸 인정하였다. 다만 AFC 챔피언스 리그에는 참여하지 못한다고 못 박아놨다.[21]

2011년 K리그 잔류가 확정되었으며, 연고지는 상주시다. 한때 언론에서 안양에 상무가 들어설 수 있다는 설레발성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상무의 존재 이유가 축구 선수의 병역 문제에 도움이 되고 지역축구 발전에 보탬이 되는것 이기에 팬들은 안양 LG 치타스의 아픔을 겪었던 안양에 축구단이 생길까 기대했지만 결국 상주가 되었다.

8. 코칭 스태프 명단

광주 상무 불사조 2010 시즌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국적 생년월일
감독이강조Lee, Kang Jo파일:대한민국 국기.svg1954년 10월 27일
수석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피지컬 트레이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의무 트레이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물리치료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전력분석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플레잉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 선수 명단


10.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20><tablebordercolor=#B81C22><tablebgcolor=#B81C22> 파일:김천 상무 FC 로고.svg상무 축구단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c5a77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ffffff> 1대
(광주 1대)
2대
(광주 2대)
3대
(상주 1대)
4대
(상주 2대)
이강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2010)
이수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
감독 대행
김태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
박항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2015)
조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
<rowcolor=#ffffff> 5대
(상주 3대 / 김천 1대)
6대
(김천 2대)
김태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22)
감독 대행
성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정정용
(정정용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K리그1 우승 / : K리그2 우승 / : 코리아컵 우승
}}}}}}}}}}}} ||

순서 이름 재임 기간 비고
초대 이강조 1990~2010 군무원 출신 감독

11.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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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응원단

2010 시즌 응원단
응원단장
치어리더

13. 특이점


2003년 5월 4일 부산과의 경기에서는 체육부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반에 0-2로 지고 있다가 후반에 갈굼을 당한 이동국이 프로무대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대역전승을 거두었고, 2004년에는 역시 체육부대장이 보는 가운데 디펜딩 챔피언인 성남 일화를 1-0으로 꺾었다.

2005년 5월 18일에는 FC 서울을 상대로 5-3으로 승리했다. 2007년 4월, 광주 상무 시절에 당시 체육부대장이었던 양세일 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원 삼성을 2:1로 격파[22]했다.

이런 '사단장 효과'는 언론에서 말하길 특박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무는 경기 승리를 하면 특박이나 외식을 전통적으로 행하는 구단이고 '사단장 효과'는 그저 생존욕(...)에 불과하다. 군대스리가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높으신 분이 관전하는 경기에서 져버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23].

본 구단의 운영 주체는 상무가 아닌 광주광역시라는 이유를 들어 이전 역사를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K리그 정관에는 반드시 법인화된 프로 구단만이 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 군 구단 특성상 법인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후의 상주시는 구단을 법인화하고 상무와 계약하여 선수단만 상무인 상태였다. 고로 광주 상무의 후신은 상주 상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법인화가 불가능한 군 구단이 왜 존재하는지, 한국의 특수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다.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불가능한 구단이다. 자격이 프로 구단이기 때문인데 상무는 프로계약인 선수단이 아니라 군인 구단이다. 규정이 바뀐다면 몰라도 국내 우승이 한계인 구단이다.

징병제로 인해 영입된 선수로 운영하는 탓에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여타의 구단과는 달라서 상위권 성적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곳으로 오는 과정이 병역의 의무라는 특징이 있어서 강제로 영입하는 형식이고 2년 있으면 원 소속 구단으로 임대 해제가 되는 형식이다. 게다가 급여도 현역병을 적용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무슨 짓을 해서든 우승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최대한 부상 당하지 않고 시간을 때워서 원 소속 구단으로 복귀하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국군체육부대 경기병이 최고의 땡보로 운동 선수에서 옷만 갈아입은 것이라지만 그 옷이라는 게 군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합하는데 자신의 영혼을 불사르는 수준으로 하진 않는다. 같은 원리로 대한민국 의료 체계에서 민간 의사는 세계 최고 수준인 데에 비해 군의관은 개판인 것을 생각하면 된다. 정말로 ○○○[24]만 간신히 면하는 수준으로 뛴다.

13.1. 풋볼매니저

현실성으로 유명한 축구 게임 풋볼매니저에도 등장하는데, 이중 국적이 아닌 모든 한국 국적 선수들은 '병역'이라는 항목을 가지고 있고 이는 K리그 구단으로 구현된 광주 상무에 강제로 임대되는 것으로 구현했다. 또한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을 따거나 아시안 게임을 우승한 경우 병역이 면제되는 것도 구현되어 있다. 자유 계약으로 방출된 선수를 영입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주급 0원의 전임 계약으로 표시한다.[25]

상당히 잘 구현된 것이지만 현실과 꽤 차이가 있다. 일단 현실의 상무가 경쟁률이 엄청나게 치열한 것과 달리[26] 여기선 군 입대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K리그 선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또 K리그가 아닌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절대로 입대하지 않는다.[27] 아예 처음부터 해외에서 뛰거나 K리그에서 뛰던 선수도 해외로 이적하면 자동으로 면제가 된다. 이는 K리그를 비활성화해두었거나 상무의 존재를 모르는 외국인 플레이어[28]들이 해외리그 플레이 중 한국인 선수를 영입했다가 엿을 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항상 선수 부족에 시달린다. 실축에서 다크호스로 꼽히는 아시아 변방의 국가들은 FM에서 선수 구현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한국은 아시안 게임 우승 확률이 꽤 높은데, 이 때문에 23세 이하의 선수들이 대거 병역면제를 받기 때문. 거기에 K리그에서 웬만큼 괜찮은 유망주들은 어린 나이부터 해외로 이적해서 면제를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 실제 선수는 10명 남짓 혹은 그 이하이고 나머지는 죄다 머릿수 채우기용 회색 생성 선수들이 메꾸고 있다. 몇 명 없는 선수들이 매 경기 출전하면서 시달려야 하기에 부상도 심하다. 덕분에 만년 2부리그 신세다. 드물게 국내파 중 최상급 선수가 입대하면 1부를 올라가기도 하는데 금방 다시 강등된다.

K리그 내 선수를 짜증나게 하는 주범 중 하나로 주전 선수 여럿이 동시에 입대하면 앞날이 캄캄해진다. 그래서 유망주 위주로 구단을 꾸리면 피를 볼 가능성이 크다.

상무의 감독으로 직접 플레이할 수는 없다. 선수 영입도 유망주 육성도 할 수 없고 랜덤하게 입대하는 선수들만 써야 하기에 구현되어 있더라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어려울 듯.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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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 관리는 국군체육부대가, 구단 운영은 광주광역시청이 맡은 것으로 보인다. [2] 다만 지자체의 세금 지원을 받아서 실질적으로 시민 구단이었다.[3] 2002년 4월 13일 광주와 연고 협약을 맺었고 이때부터 완전히는 아니지만 광주 상무 불사조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구단 명칭을 완전히 광주 상무 불사조로 변경했다.[4] 연고지의 특산물을 응용/형상화한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내세웠다.[5] 2군으로 내셔널리그에 참가했던 이천 상무의 성적으로 추정[6] 2009년에 창단했으며 불사조 해체, 연고 이전 재창단과 광주 FC 창단 이후 광주가 승계했다.[7] 전년도에 실업 축구 리그인 실업 축구 코리안리그의 우승 구단 자격으로 '편입'(일종의 승격)되어 참가했다. 반대로 전 시즌에 프로 리그 최하위 성적으로 강등된 구단은 국민은행 까치였다.[8] 다만 '이천 상무'의 창단은 2003년이 아닌 1999년으로 기록하는 듯 하다. 또한 유니폼 색상은 오렌지 색을 쓰던 광주 상무와 달리 광주 상무 출범 전부터 쓰던 파랑과 검정의 스트라이프 무늬 상의를 홈 유니폼으로, 백색 상의를 원정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하의는 동일하게 검은색. 아카이브 링크.[9] 이때 '이천 상무'가 아닌 '광주 상무 2군'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10] 야구농구는 2군 리그에 참가중이고 배구성남시를 연고로 상무 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서 신협이라는 금융 회사에서 후원까지 한 적도 있으나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이후 신협과의 연도 끊고 기존의 여느 상무 구단으로 재전환한 뒤에 세미프로로 내려갔다.[11] 여자 축구단인 보은 상무에서 발생했던 WK리그 드래프트로 인한 강제 입대 논란과는 상황이 다르다. 여자는 병역 의무가 없기 때문에 직업 선택에 대한 자유에서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고, 남자는 어차피 언젠가는 병역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도 병역 해결을 위해 상무 입대 경쟁률이 치열한 상황에서 드래프트로 선발이 된다면 병역 문제 해결도 되니 선수 입장에선 오히려 이득이고 다른 남자 선수들이 볼 때는 특혜가 될 수 있다.[12] 이게 상무의 문제점인데, 시즌 도중에 선수들이 제대를 하게 되기 때문에 선수단 구성이 매우 어렵다. 물론 새로운 선수도 들어오긴 하지만. 상무가 잘나가던 시즌은 언제나 선수 제대를 기점으로 순위가 하락했다.[13] 물론 예술체육요원으로 지정받는 것이 (소속 구단에서 그대로 뛸 수 있으므로) 더 좋긴 하지만 기회를 잃었거나 아예 포기한 경우 상무 입대를 원하는 선수가 많다. 그러나 상무 입대를 못하거나 현역 대상이 아닌 경우 축구를 포기(은퇴 등)하고 군 복무를 해야한다.[14] 다만 골키퍼가 말년이고 수비수들이 상병 이하일 경우, 수비력이 높아질 때가 있다. 김용대가 말년일 때 실제로 그랬다.[15] 군대에서 운동선수를 무조건 사병으로만 규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며 외국의 경우는 되려 장교 신분을 준다. 저 유명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페렌츠 푸스카스계급이 무려 소령이었다.[16] 2013년 9월 이후 문경시로 옮겼기에 여전히 체육 부대 연고지와 홈구장이 다른 곳에 있지만 상주시는 문경시 바로 아랫동네로 차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도착할 정도로 위치도 가깝고 문화권도 동일하며 역사적으로는 한 동네나 다름없기 때문에 광주 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졌다.[17] 참고로 연고지와 근거지가 따로 노는 현상은 농구 한국프로농구과 배구 V-리그에서 두드러지는데, 대부분의 구단의 숙소와 훈련장이 수도권에 있다. 그래서 지방에 연고를 둔 구단은 홈경기만 연고지에서 하고 평소엔 숙소가 있는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 연고지 밀착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지역 팬들의 불만이 좀 있는 편이다.[18] 그리고 이렇게 상무를 놓친 안양시는 시장의 주도로 축구단을 만들자고 움직여 FC 안양을 만들었으나 창단 과정에서부터 부실심사와 주먹구구 예산 운영으로 말이 많았고 아니나 다를까 골칫거리 전시 행정으로 전락했다.[19] 이 당시 상무의 연고지가 광주였으므로 어쨌든 대대광강은 맞다.[20] 싱가포르 S리그워리어스 FC는 스폰서가 군대일 뿐 누구나 뛸 수 있는 일반 프로 구단이라 상무하고 성격이 다르다.[21] AFC에서 보는 축구단이 자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법인화 클럽"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K리그에서의 존립과 그 혜택은 인정하지만 AFC의 기준에는 미달되기 때문.[22] 아나운서들이 아예 대놓고 경기 MVP는 사단장이다(...)라고 할 정도였다.[23] 농담이 아니라 진짜 못하면 일반 부대로 전출가는 악몽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건 당연할 수 밖에.[24] 경기병 자격이 박탈되어 일반 부대로 전출 당하거나 현역 부적합 전역을 당하거나 하는 등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정도의 징계를 받는 경우[25] 구 버전에서는 한국에 진출해서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용병이 뜬금없이 상무에 입대하거나 선수들이 복무 기간도 다 안 채우고 해외 빅클럽으로 진출하는 등 부실하게 구현했다.[26] 현실에서는 리그에서 날고 기거나 연령별 혹은 A팀 국가대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나 겨우 합격될 정도다. 상무 지원에 실패한 선수들은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소집되어 세미프로 레벨의 대한민국 4부 축구리그인 K4리그에서 뛰는 경우가 많은데, 이마저도 실패하면 소위 말하는 "막군", 즉 현역병 입대를 해야한다.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포항 스틸러스에서 신화를 쓴 김원일이 이러한 케이스. 다만 막군 선수는 경기 경험을 유지하는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에, 여기까지 온 선수들은 축구선수의 길을 접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경우가 많다. 김원일이 매우 특이한 사례인 것이다.[27] 상술한 주급 0원 전임 계약으로 입대하는 선수는 보통 해외파였다가 해외 구단에서 자유계약으로 방출되면서 이 해외파 보호가 풀린 즉시 입대하는 선수들이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뒤늦게 입대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28] 종종 외국 FM 커뮤니티에 "한국 리그에 모든 선수가 임대 선수인 이상한 구단이 있더라"같은 글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