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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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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52427> 김천 상무 FC 수석 코치
Gimcheon Sangmu FC
파일:uOThAF.jpg
<colcolor=#ffffff> 이름 성한수
Sang Han-soo
출생 1976년 3월 27일 ([age(1976-03-27)]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69kg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b52427><colcolor=#ffffff> 선수 대전 시티즌 (1999~2001)
전남 드래곤즈 (2002~2004)
창원시청 축구단 (2005~2007)
감독 한민대학교 (2007~2010 / 코치)
호남대학교 (2011~2012 / 코치)
호남대학교 (2014 / 감독 대행)
호남대학교 (2015~2016)
서울 중랑 축구단 (2017)
김천 상무 FC (2021~2022 / 수석 코치)
김천 상무 FC (2023 / 임시 감독)
김천 상무 FC (2023~ / 수석 코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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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52427><colcolor=#ffffff> 병역 전시근로역[2]
학력 문일중학교 (졸업)
문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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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지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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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인.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문일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권을 뒤흔드는 대형 스트라이커로 이름이 높았다.

성한수의 활약도는 1996년 이동국 선수의 등장 이전까지 가장 충격적인 것이었으며 덕분에 유수의 프로축구팀들도 적극 영입을 검토할 정도였으나 성한수 선수가 주축이 된 199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당시 성적 저조로 U-20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일고 소속으로 고교 대회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 폭언을 퍼붓는 사태를 벌이면서 2년간 축구 경기 출장을 금지 징계를 받고 선수 생명 위기를 맞았다.

이런 성한수를 입학시킨 것은 김호곤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학교 축구부였으며 2년의 공백기 이후 연세대 4학년 시절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1998년 1월,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대비 새해 전지훈련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무서운 새내기로 주목을 받았다.

2.2. 대전 시티즌

파일:20011115181558251B5.jpg

1999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한 성한수 선수는 1998년 K리그 최하위팀이었던 대전 시티즌에 1순위로 지명되었다.

당시 축구계는 이구동성으로 성한수 선수가 99시즌 K리그 신인왕을 수상할 것이라 시즌 시작전부터 설레발을 쳤으나, 무릎 부상과 발목 부상이 연달아 찾아오며 99년 데뷔 시즌을 14경기 출장에 그쳤고 신인왕 수상에도 실패했지만, 14경기에서 4골 2도움으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며 부상만 나으면 대전 시티즌에 큰 힘이 될 것이라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 시즌에는 작년처럼 잠깐이나마 번뜩이는 활약도 보여주지 못한채 무릎 부상 재발로 독일로 재활치료를 떠나고 말았고, 결국 2001년도 재활 여파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하자 구단도 팬들도 성선수를 그저그런 공격수로 잊어가고 있었다.

2.3. 전남 드래곤즈

파일:8010345.jpg

이처럼 대전에서 부진하고 있던 성한수를 주목한 것은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이회택이었다.

건국대학교 시절의 황선홍 대표팀 발탁을 비롯, 최문식, 노상래, 노병준 등 공격수 발굴에 단연 두각을 나타냈던 이회택은 성한수를 당대 최고급 공격 유망주로 평가했고, 당시 이감독이 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 우승을 천명하며 모기업 포스코에 읍소해가며 얻어낸 수십억의 자금력을 앞세워 성한수 선수를 대전으로부터 영입하게 된다.

당시 대전은 2002년 불어닥친 팀 해체 위기로 자금줄이 급했기에, 8억원이라는 거금에 성한수를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전남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무릎연골 파열로 또 기나긴 재활의 늪에 빠졌고, 수십억을 쏟아부은 결과물들이 모조리 철저한 실패로 끝나면서 이회택도 불명예 퇴진, 성한수도 이회택 감독 사임과 함께 전남 2군으로 전락 후 2005년 방출되고 말았다.

2.4. 창원시청 축구단

전남을 떠난 뒤, 2005년 창단된 창원시청 축구단에 입단하며 내셔널리그 생활을 시작하였고, 2005년 6골 3도움을 올리는등 대활약하였으며, 창원에서 3시즌을 소화한 뒤 2007년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경력

3.1. 김천 상무 FC 이전

은퇴 후 한민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전남 시절 동료였던 임관식 감독의 부임을 받아 호남대학교 코치로 활동하였다.

2014년 6월부터는 임관식이 광주 FC 스카우터로 부임하자, 호남대학교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고, 자신의 이름을 따 '성한수 FC'라는 축구 클럽을 만들어 유소년 축구계에서도 활동했다.

이후 2015년 호남대학교 감독으로 승진, 2015년 추계 1·2학년대학축구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지도자상 수상하며 지도력을 입증했고, 2016년 제3회 아시아대학축구연맹(AUFF) 아시아대학축구선수권대회 대학선발 C팀 코치로 선임되기도 했다.

2017년 K3리그 서울 중랑 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처음으로 성인팀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2017년 K3리그 베이직 무패 우승을 일궈냈지만 부임 1년 만에 사임했다.

3.2. 김천 상무 FC 코치

2021년을 앞두고 과거 대전 시절 동료였던 김태완 감독의 부름을 받고 김태수 코치가 떠난 김천 상무의 코치로 부임하였고, 2021년 말 2022년 P급 지도자 수강생 명단에 합격해 P급 지도자가 됐다.

2022년 11월에는 김태완 감독이 사임 의사를 표명하면서 김천 상무의 감독 대행으로 부임해 23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즌 중반도 아니고 새 시즌이 시작되기까지 한참 남았는데 따로 정식 감독을 선임하거나 성한수를 감독을 시킬거면 정식 감독으로 계약해 승진시키는 것이 맞는거지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가겠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아마추어식 경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3]

특히 P급 라이센스까지 취득했기 때문에 감독 대행 기간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4] 일단은 성한수를 대행으로 임명한 후에 새로운 감독을 찾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후 2023년 1월 3일 임시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임기는 일단 7월까지라 하며 만일 새로운 감독을 찾게 될 경우 반시즌만 지휘하고 물러날 수 있다. #

이는 국군체육부대의 특성상 공식 선임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조치로서 상무축구단 감독으로 정식 선임되기 위해선 병무청에 의해 군무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만큼 성한수도 타 종목 군무원 지도자 채용 조건에 준하는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이어서 해당 결과에 따라 향후 동행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3월 1일 충남 아산 FC와의 개막전을 통해 감독 데뷔전을 치렀고 2:1 승리를 거두며 데뷔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절대 1강으로 군림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김포, 안양 등에 선두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지도력에 의문을 드러냈다.

결국 5월 26일 정정용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수석 코치로 복귀하게 됐다.

이후 정정용 감독 체제에서 김천 상무는 선전한 끝에 다이렉트 승격에 성공했으며 2024 시즌에도 팀에 잔류했다.

4. 지도 스타일

빠른 공수전환과 측면 부분 전술을 중요시하며 4-3-3 포메이션을 즐겨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술이 너무 단조롭다고 평가받는데, 4-3-3을 정말 있는 그대로 위치한다.

윙어들은 측면에서 가운데로 움직임을 가져가고, 스트라이커는 직선적인 침투 움직임을 지시라고, 쓰리미들 역시 김동현이 살짝 내려와 빌드업에 관여하고, 김진규와 이영재에게는 마치 프리롤을 준듯 수비 가담과 공격 가담을 동시에 진행시킨다.

공격을 할 땐, 온더볼 상황에서 확실히 K리그2 치고는 선수단 구상이 좋기 때문에 원투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전진하는 모습들도 보이지만 이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춰오던 선수들이 아니기에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런 공격이 잘 맞을리가 없고, 그나마 공격이 되었던 오른쪽에서는 이영재와 김진규가 가담해주고 강윤성이 공격적으로 올라가서 크로스를 올리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에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동현을 내리고 3-4-3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사실 4-3-3에서 3-4-3으로 전술을 변화한다고 하면 윙백과 윙어들의 유기적인 스위칭도 필요하고 미드필더들에게 수비와 공격 관여도에 관련해서 전술적으로 변화를 가져가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5]

또한 3-4-3으로 변화하다 보니 중앙에서 볼이 순환되기보단 결국 측면으로 빠져서 크로스밖에 공격 루트가 없었다.


[1] 2023년 임시 감독을 맡았으나 5월 26일 정정용 감독의 부임으로 수석 코치로 복귀.[2] 무릎 인대 파열[3] 하지만 후술했듯 김천 상무의 감독직은 특수한 구단 특성상 아무나하지 못하기에 일단 구단 사정을 잘 아는 P급 라이센스 보유자를 급히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4]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 대행이었던 임중용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P급 라이센스가 없는 지도자들은 감독 대행 기간이 최대 60일로 제한된다. P급 보유자였던 이병근은 20시즌을 통으로 치렀고 시즌 종료 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지만, P급이 없었던 최원권은 22시즌 대행 수행 중에 60일이 경과하면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22시즌은 카타르 월드컵의 영향으로 시즌이 이전보다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되어 시즌이 빨리 끝난다는 점을 감안해 60일이 지난 후에도 대행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AFC의 양해를 구하였고 결국 AFC가 이를 허락한데다, 최원권 본인도 시즌 종료 후 P급 라이센스를 취득하면서 정식 감독으로 취임함에 따라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5] 당시 김천의 톱 자원이 헤딩을 엄청나게 잘 따내는 선수도 연계가 좋은 선수도 딱히 없었던 것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