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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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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근대 화기의 발전과 용병 쇠퇴2.2. 1~2차 세계대전2.3. 현대
3. 징병제의 장점
3.1. 병력 확보의 용이3.2. 저항권의 강화
4. 징병제의 단점부작용
4.1. 오합지졸, 떨어지는 전투력
4.1.1. 반론
4.2. 인간관계 스트레스와 사기 저하4.3. 사회 진출, 혼인, 출산 연령의 지연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4.4. 전문성 문제4.5. 인권탄압 문제4.6. 재정 부담 및 경제적 손실4.7. 천차만별인 징집기준
4.7.1. 그렇다면 모병제는 인력 관련 문제가 없는가?
4.8. 불평등4.9. 적절한 보상의 부재
5. 국가별 현황6. 언어별 명칭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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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징병제()는 군대를 유지할 목적으로 국민에게 병역을 강제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말로 국민개병제()가 있다.[1]

모병제 국가에서는 징병제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사회 일원들이 집단적으로 군대로 가는 게 아니고 선택한 소수만 가다 보니 군대가 사회에 주는 영향도 미미하기 때문이고 직업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2. 역사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전쟁사는 인류사와 맥을 같이 하므로 씨족이나 부족이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부터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중동에서는 일쿰(Ilkum)이라고 해서 함무라비가 다스리던 때에도 있었고 동아시아에는 중국전국시대 이전부터 있던 유서 깊은 제도이다. 하지만 전근대의 징병제는 대부분 '전쟁 때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긴급 소집'의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최소 수만 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던 동아시아 쪽은 징병이 없으면 전쟁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대에는 동아시아유럽이든 간에 징병되는 병사가 직접 무장을 챙기거나 해야 하였기에 상비군을 징병제로 유지하는 지금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고대 유럽의 경우, 전쟁 시 군대가 소집되어 의무를 마치면 등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런 건 고대 로마에서나 가능했던 것이고, 중세 이후부터는 둔전제나 농민을 전시에 군인으로 부리는 부병제로 전이되었다. 고대 동아시아의 경우, 늦어도 기원전 770년인 춘추전국시대부터는 각 국가들 간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상호 간에 숫자로 밀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한국의 경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징병제(=양인개병제, 농병일치제)를 시행하였다. 반도라는 지리 환경으로 인해 전선이 2중, 심하면 3중으로 형성되기 쉬웠기 때문에 국경을 방어하고, 전선에서 싸울 병력이 많이 필요했다. 여기서 전선의 2중화 즉 양각이란 북방에 한족, 여진족 등이 있고 남방에는 왜(일본)가 있었다. 지킬 국경이 두 개나 되기에 병력도 둘로 나뉜다. 영토의 70% 이상이 산지임에도 북방의 기병 전력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기병 양성에 꾸준히 힘쓰며 조총이 도입되기 전에는 활과 쇠뇌가, 조총 도입이후에는 조총이 보병의 주력 무기로 자리잡았다.

특히 조선 시대 전시에는 의병이 많이 활동했기에 그 전통을 이어 의병이 현재의 예비군, 조선군이 현재의 현역군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상비군으로 국경을 막는 것 외에 국방을 위한 정기적인 소집[2]의 형태로 군역을 가졌는데 민간인을 징집해서 병사로 써먹는단 면에서 징병제와 유사하며 수군의 경우는 아예 군역을 지워서 충원했다.

인공 비료로 농업 생산량이 폭증하기 전에는 중상주의 도시 국가 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식량 문제 때문에 농업이 국가 최대의 업무였는데, 농부들을 징집해 전쟁터로 보낼 경우 농사 지을 인력이 모자라게 되고 농부들이 파산에 이르는 까닭에 농사철은 전쟁 기간에서 기피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성계위화도 회군을 한 이유 중 하나로도 거론된다. 또 전쟁이 길어지면 흉작이 나거나 국가 재정과 치안이 거덜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징집되는 병력의 질적 하향과 전투력 감소가 일어났기에 징병은 최소한으로 자제하거나 자원병 제도로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3] 삼국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전쟁이 없는 시기에 병사들이 농사를 짓고 군량미를 확보하다가 군량미가 충분히 쌓이고, 농사가 마무리되면 슬슬 전투 준비를 하는 것. 그러나 대규모 병력 동원이 가능한 시기가 농번기 직후나 겨울로 제한되어 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로마 때부터 군제 개혁을 통한 자원병 제도로 상비군을 운용하거나 농사와 관련 없는 직업 군인인 용병들이 각광 받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징병제는 근대 국가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지방 단위로 뿔뿔히 흩어진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을 대규모로 징집해, 군인으로 양성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형성시켜 국가 전체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징병제를 통한 "사회적 단합"에는 한계가 있는데, 징병제를 통한 사회화가 획일성, 동질성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뒤집어 말하면 다름과 차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특징을 가진다. 결국 징병제를 통한 사회적 단합은 "저 사람이 설령 나와 다를지라도 차별할 이유가 없다"가 아니라, "저 사람이 나와 같기 때문에 차별할 이유가 없다, 만약 다르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에 해당한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모두가 군복무에 적합할 수는 없으므로, 징병제 제도 하에서는 복무 부적격 판정을 받고 징병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징병을 통해 획일성, 동질성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이들을 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징병을 경험한 이들이 사회에 나와 이런 저런 이유로 징병에서 제외된 동료 시민들을 비국민 내지는 2등 시민으로 여겨 경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현상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세기 서방 세계에서 징병제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심하게 겪은 후, 많은 서방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한편 세계적으로 징병제는 오히려 권리의 확대를 가져 왔다. 이것은 국가주의의 확산과 국민국가 성립에 중요한 요소인데, 대부분의 국가들은 징병을 시행함으로서 민주주의의 바깥에 있던 노동자, 청년 등 피지배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참정권 확대나 의회 구성 등 보다 나은 조건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앤서니 기든스는 "지배의 변증법"(dialectics of control)이라 부르는데, 지속적인 자원 동원을 위해서 자원 제공자의 최소한의 동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일정한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은 소위 말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왔고, 2차 세계 대전은 전체주의와 압제로부터의 해방 및 식민지 해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권이란 전쟁 동원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 그리고 국가와의 협상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제도화되면서 '권리'와 '의무'의 평화로운 교환처럼 포장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시민들을 군대에 끌고 가려는 국가의 탄압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치열한 저항이 깔려있던 것이다[4].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과정 없이 징병제가 도입되어 버리는 바람에[5], 징병제를 단순히 교육 제도 같은 것처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6]이 강하다.

근대화 이후 국민 개병제를 도입한 일본군도 징병제가 가지는 근대 사상적인 측면에 주목해 서남전쟁 당시 농민 출신의 징집군이 사족 출신의 군인들에게 당시 일본의 특수한 전장 환경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던 근접전에서 크게 밀렸는데도 징병제를 유지하며 타개책을 찾으려 했지 국민개병제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징병제를 근대화라는 큰 틀에서의 요소로 바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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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근대 화기의 발전과 용병 쇠퇴

용병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칼, 창, 활과 같은 무기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무장과 훈련이 부실한 농민 징집병과 비교하여 용병이 가진 방어구의 유무와 이러한 훈련의 차이가 냉병기 시대 때는 심각한 전투력 차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의 개발로 이야기가 달라졌다. 얼마나 훈련을 받았는가와 아무리 두터운 갑옷을 입었는가와 상관없이 총 앞에서는 생존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총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총의 관리와 사격을 훈련시키는 데에는 보통 한 두 달, 극단적으로 단축한다면 수 주 내에도 가능했기 때문에 징집병의 문제점이었던 전투력 문제가 크게 해결된 것이다. 거기에 봉건 시대와 다르게 중앙집권화된 국가 입장에선 국가의 총기 숫자와 제조 능력만 충분하면 유사시 징집한 병사들을 훈련시키면 용병 집단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숫자의 전투력 확보가 가능해졌다. 그 덕에 상비군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용병의 몰락 이후 국가에서 자원병을 모집해 군대를 굴렸으며, 30년 전쟁 당시 이미 스웨덴이 징병제에 기반한 상비군과 전시 동원 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함으로서 가능성을 입증해보였고, 결정적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 당시 프랑스 혁명 정부가 대규모 징병을 통해 수십만 명의 병사들을 굴려 전 유럽을 상대로[7] 홀로 싸워서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당시의 상식을 초월하는 무시무시한 전과를 이뤄내자 주변 국가들도 전부 징병제를 시도하게 된다.[8]

영국 같은 경우, 이런 군인들의 체력과 건강 상태를 개선하려 하던 것이 효과가 좋자 국민 복지와 의료 제도에도 적용하게 되었고, 프랑스의 경우도 군인에게 최소한의 자질(의사소통[9]+훈련 과정 이해)을 갖춰주기 위해서 나폴레옹 시절부터 공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일본 제국 역시도 사회화 수준이 낮은 일반인들에게는 군대가 공교육의 기능을 수행했으며, 역시 교육 수준이 낮았던 산업화 시절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했다. 특히 이런 식으로 사회화를 받을 경우 국가와 군대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도 불어넣을 수 있어서, 애국심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즉, 근대 국가의 정치 사상은 시민혁명에서 나왔지만, 근대 국가를 뒷받침해 준 역량은 징병제였던 셈이다.

2.2. 1~2차 세계대전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세계 대전급 전쟁이 터지면서 총력전이라는 방식이 생겨 났다. 전시 체제에 돌입할 경우 모든 국력을 전쟁 수행에 맞추어 전력함을 의미한다. 전근대와 달리 이 시점부터는 전문 군인층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용 가능한 성인 남성들을 최대한 전투에 동원하는 국민개병제라는 방식이 확산되었으며, 각국에서는 국방을 하나의 의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조차도 국민개병제를 시행한 시절이 있다. 국민개병제는 전시나 국가적 급변 사태 시 엄청난 병력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또한 각계각층의 남자들을 강제적으로 복무시킨다는 점에서 병사의 질이 제각각인 데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다들 다를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다.[10]

2.3. 현대

베트남전 때의 미군의 경우, 사회 전반에 반 전쟁 분위기가 만연하고, 문화적 격변이 벌어지던 시기에 장정들을 징집해다 전쟁터로 몰아넣다 보니, 군의 사기나 인적 자원의 질이 급격히 떨어져 역효과가 났다.

반면에, 1990년대 이후의 한국의 경우 교육열 덕택에 성인 남성 대부분이 최소 고졸이나 대학생인 경우가 많은데, 징병제를 통해 성인 남성들을 징집하다 보니 장병들의 학력 수준이 그야말로 세계 최고 레벨인 희한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육군훈련소 기준으로 대학에서 2학년 1학기 이상(그것도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외교학, 행정학, 법학, 컴퓨터공학 관련 전공자 한정) 다니다 온 자원이 아니면, 본인이 따로 자격증이 없는 이상 행정병 특기 분류 시험을 응시조차 못한다! 무릎팍도사에서 성시경의 증언에 따르면 세계 군악대회에 다른 나라 군악대에서는 그냥 노래 잘하는 군인을 내보내는데 한국군은 군 입대한 서울대 음대 바리톤 전공자를 내보내서 모두 닥버로우시켰다는 얘기도 있다.성시경 증언실제 공연

그러나 이는 국가적 입장에서도 개인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인력 낭비다. 사회에 계속 남아있었으면, 아니면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충역이었으면, 계속해서 틈틈이 실력을 갈고 닦으며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있었을 쓸 만한 인재들을 공연히 군대에 입대시켜 총질이나 시키며 실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대체복무제(전문연구요원 등)에 지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인력에 비해 자리가 너무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안보문제가 화두되자 다시 징병제가 떠오르고 있다.#

3. 징병제의 장점

3.1. 병력 확보의 용이

징병제 최고의 장점으로, 후술할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국가들이 징병제를 손에서 놓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11]

예로부터 병력 수와 사기는 그 국가가 전쟁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나를 가늠할 수 있는, 소위 '맷집'과도 같았다. 전쟁에서 병력 수 차이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냉병기로 싸우던 고대의 병법에서부터 첨단 무기를 포함한 현대의 군사학에 이르기까지 부정된 적이 없는 진리이다.[12] 징병제는 유사시 국가의 젊은이들을 그대로 군인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에 군대의 수적 팽창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또한 우수한 인적 자원들을 대거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13] 1810년 예나 회전에서 프랑스군이 그 사례를 증명한 바가 있으며 그 영향으로 독일의 경우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에 의해 의무 병역제의 역사를 열기도 했다.
(2014년 괴 잠수함이 스웨덴 수도 앞바다에 나타난 상황이었지만, 일주일 간의 포획 작전은 실패하였다.[14])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고작 200명에 불과했다."
작전에 참가한 스웨덴 해군사령관#
제 아무리 현대전이 병사 개인의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한들, 그리고 모병제가 소위 말하는 '정예'를 뽑아낼 수 있다고 한들, 순수하게 전투 병력에 대한 보급이라는 측면에서는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명백하게 우월하다. 모병제의 장점은 소위 말하는 가성비의 차원이며, 순수한 병력보급에서는 징병제의 우월성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인구 자체를 병력으로 전환이 가능하기에 징병제를 주로 사용한 동아시아에는 모병제였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초대규모의 전면전이 많았다. 과장이 어느 정도 있다지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병력동원력은 전투 한 번에 기본이 한쪽만 수만 단위였고 격변기에는 10만 단위가 심심치 않게 나왔으며 100만 대군의 동원도 불가능이 아니었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인 임진왜란 때만 해도 쳐들어온 왜군 병력 수만 수십만[15]이었고 수비측 조선은 10만여 명을 동원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제도와 기술의 발달로 병력 동원이 더 쉬워졌기에 이후 1차 세계 대전에선 한 전장에서 수십만 명의 병력이 증발하기도 하였고 2차 세계 대전 동안 소련은 독일의 침공에 맞서 거의 3천만 명에 달하는 인적 소모를 겪으면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고, 종전 시점까지 유지하고 있는 병력이 천만 명에 달했다. 독일 역시 전쟁 후반에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소련군을 막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징집해서 전장에 내몰았으며, 미국의 경우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징병제를 실시하였고 그 징병제는 1973년 베트남 전쟁 휴전을 맺은 후 완전 철수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런 방대한 병력수는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 국가들이었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지상전의 경우 병력의 질만큼이나 숫자도 중요한 까닭에, 숫자가 많으면 전투력에서 우위를 갖게 된다. 특히 시가전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정예병이라 할지라도 은밀한 구석에 숨어있던 신병이 쏘는 총탄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16] 병사의 질이 무위로 돌아가고 오로지 양으로만 승부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며,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현대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병력 수를 결코 등한시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충분한 화력과 장비를 갖고 있지 않은 중소규모의 국가들은 병력의 숫자로 화력과 장비의 부재에서 나오는 전투력을 때우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 어차피 군대를 가야만 된다면 자기가 선택권을 갖고 가고 싶은 군으로 가려는 병사들이 지원을 더 하기 때문에, 육군뿐만이 아닌 해군, 공군, 해병대까지 덩달아 지원율이 오르는 현상도 실제로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한민국 국군이 그렇다.

모병제의 경우 대다수 선진국형 문화권에서 군인이 선호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병력 규모를 징병제를 시행 중일 때에 비해 적게 잡는 것이 현실이다.[17] 그리고 전시에 즉시 가용한 병력이 얼마냐는 생각보다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민족 명절 욤 키푸르를 지내느라 현역병 상당수가 휴가를 떠난 상태에서 아랍 국가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스라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라 예비군 동원 체계가 잘 잡혀있는데도 불구하고 예비군을 풀로 동원하는데 수일이 걸렸고, 그 동안 전선이 국토 안쪽으로 깊게 밀려드는 등 즉시 가용 병력의 중요성에 대해 전훈을 주는 전쟁이 되었다.

징병은 인원을 대폭 증가시키는 데 장점이 있다.[18] 설령 '평균적인 20대 성인' 수준에서 비정규직을 모집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징병제 국가에서도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건 원론적으로 간부에게 시킨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고난이도'로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이는 간부 T/O를 늘리는 등 징병제라는 틀 내에서도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

3.2. 저항권의 강화

이것은 국가와 군대가 징집을 함으로써 의도한 장점이 아니라 징집의 부수적인 영항 중 하나지만, 어쨌든 징집 국가의 시민들은 징집병 시절 얻은 군사 훈련의 경험을 통해 국가의 폭정에 저항할 수 있게 된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시민군이 대단히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는 이유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남자들 대부분이 징집병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던 데다, 일부는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실전 경험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LA에서 흑인들이 한인타운에서 난동을 피웠던 LA 폭동때도 베트남 전쟁경험이 있는 한국인 아저씨들이 직접 본인들을 지키며 일명 루프탑 코리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 중 총기 규제까지 엄격한 국가에서는 전략 전술과 병기를 다루는 조직 생활의 경험을 가진 사람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시민이 무장 봉기하더라도 불량 정권의 군대는커녕 경찰조직에조차도 제대로 저항하기 힘들다. 그리고 심지어 4.19 혁명처럼 징집병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시위대를 돕기도 한다.

4. 징병제의 단점부작용

4.1. 오합지졸, 떨어지는 전투력

사공! 적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적이 어중이떠중이를 모은 100만이라면 우리는 가려뽑은 10만입니다. 우리 병사 한 명이 적병 10명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순욱, 관도대전조조에게 조언하며.

이미 지휘관들은 2000여년 전부터 징병제의 단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하게 일하던 사람들을 돈도 안주고 갑자기 징집해서 무기 주고 싸우라고 해도 훈련도도, 사기도, 열의도 낮고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사람이 죽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공포가 번지면 순식간에 부대가 무너지거나 탈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극적인 사례를 살피면 폴란드 윙드 후사르 100기와 판체르니 300기로 40,000의 크림 칸국 주력을 갈아버린 적이 있다. 당시 타타르 칸국은 문화적 뿌리를 몽골에 두었기에 군역이 있었고, 그에 따라 동원된 4만의 침공군이었던 반면, 폴란드 윙드 후사르는 발칸계 자원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고도로 훈련된 병력이었다. 이 훈련의 차이가 말 그대로 일당백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후스 전쟁에서 혁신적인 농민병 훈련 및 전술로 황제의 잘 훈련된 기사와 용병을 무참히 박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얀 지슈카 전 까지는 상식이었다.

근대전에서는 서남전쟁 당시 사츠마군은 낡은 전장식 화기와 냉병기로 무장한 사무라이들로 이루어졌는데 근대식 화기로 무장한 징집병들을 압도하였으며, 결국 사무라이들을 모아서 경찰 발도대를 창설하여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 그것도 장기전으로 보자면 로디지아군은 게릴라에게 밀리고 있던 걸 징집까지 하며 버티려고 했지만 무리였고, 결국 용병을 고용하는 데 1 : 8의 교환비를 내며 게릴라를 완전히 압도하였고, 게릴라를 괴멸 직전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결국 남아공의 지원이 끊기면서 이기진 못했지만.

이는 물론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는다. 과거의 사례를 살피면 완안진화상은 20배 정도의 몽골 기병을 격파한 적 있다. 당시 몽골이 점점 강력하게 되던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병력의 질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병사들만이 아니라 지휘관 역시 질적 우수성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4.1.1. 반론

징병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꼭 오합지졸인 것은 아니며, 모병제라고 해서 꼭 정예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예군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화와 훈련이다. 선진적인 병영문화와 체계적이고 실전적인 훈련만 있다면 징병이든 모병이든 정예병이 될 수 있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까지 징병되는 이스라엘군은 전우애 넘치는 병영분위기[19]와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병영문화, 그리고 실전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복합적으로 융합되어 정예군대로 평가되고 있다. 정예군대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모병제냐 징병제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병영문화이고 병영 분위기이다. 문화와 분위기만 좋으면 훈련에도 적극적이게 되며, 전문적인 양성 프로그램만 있다면 정예군 양성은 매우 쉬워진다.

또 다른 예시로는 프로이센군이 있다. 징병제를 실시했지만 선진적인 병영문화와 전문적인 훈련 덕분에 정예군대로 평가받는다.

4.2. 인간관계 스트레스와 사기 저하

군대와 관련된 뚜렷한 목적 의식과 사명감을 가졌거나, 못해도 돈 벌어먹고 살기 위해 군을 업으로써 삼기로 한, 즉, 계기야 어쨌든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만 모아 놓은 모병제와 달리, 징병제 군대는 사회에서 서로 접점이 없는 사람들을 각자 의사와 관계없이, 때로는 의사에 반하게 강제로 모아 놓고 의무적으로 군역을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병영 내 인간관계에서 큰 스트레스가 발생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사기를 저하시키게 된다. 사회에서는 비슷한 성향과 가치관, 비슷한 사회적 배경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다. 서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아놓아도 스트레스가 많이 발생하는데, 군대 내에서는 친해질려야 친해질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니, 더더욱 많이 충돌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군 간 마찰은 전시 프래깅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20], 군대 입장에서도 전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이 스트레스 문제는 특히 군대에서 의무적으로 지정해주는 보직과 잘 맞지 않는 자일수록 더욱 심해진다. 예를 들어, 대개의 징집 군대에서는 고학력자들이나 어느 분야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십중팔구 전공이나 개인의 자질과 전혀 무관한 소총수나 기타 보직으로 배정해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이 가진 재능/취미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게 되니 일의 효율도 떨어지고, 일을 잘 못하니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온갖 갈굼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나아가서 부대 전체의 사기까지 깎아 먹게 되는데, 부대원들은 사기 감소의 원인으로 해당 인원을 지목하고, 병영 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문제가 된다.[21]

현대의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개인주의합리주의 가치관이 형성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애국심을 들먹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으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원래부터 국가에 헌신할 정도로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 아닌 이상, 개인주의적, 합리주의적인 가치관이 자리 잡은 경우에, 서로 상반되는 공동체주의적, 보수주의적인 감정인 애국심이 자리잡기가 힘든데, 여기에 더해 짧으면 수 개월, 길면 몇 년에 달하는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일을 시키는 상황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정훈교육을 아무리 하더라도,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대부분의 병사들이 의문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4.3. 사회 진출, 혼인, 출산 연령의 지연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

20대 초반의 청년들을 병영에 묶어두는 제도인 만큼, 복무 기간 만큼 장병들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이에 따라 혼인 연령, 출산 연령이 잇따라 지연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혼인, 출산 연령이 늦춰진다는 건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초저출산 국가(대표적으로 대한민국)들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현역 육군 18개월, 보충역 사회 복무 21개월로 다른 징병제 국가에 비해 긴 복무 기간에다가 전체 병역판정검사자 중 95%에게 현역 또는 보충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다른 징병제 국가들보다 이런 문제를 더욱 극심하게 겪고 있다.

물론, 징병제 국가중에서도 의무복무기간 자체가 짧거나, 징병률(전체 입영대상자 숫자 중 실제로 복무하는 숫자의 비율)이 낮거나, 늦어진 사회진출을 만회할만큼 복리후생 수준이 높을 경우 이런 문제는 완화될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처럼 결혼이나 출산/임신 관련 병역 면제 혜택이 있는 경우 역설적으로 면제를 위해 혼인 및 출산 연령이 오히려 더 낮아졌다. 현재 OECD 출산율 1위는 이스라엘이다.

4.4. 전문성 문제

대개의 경우, 인력 안배가 매우 부실하다. 작전장교는 고심해서 뽑지만 작전병은 아무렇게나 뽑는다. 명문대 나온 장정을 작전병이 아닌 소총수로 배정하기도 한다. 행보관이나 주임원사가 보다못해 인사장교에게 졸라서[22] 정리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현대전은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해지고 있어, 요즘에는 말단 병까지 직분에 맞는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고 있다. 따라서 진심으로 전쟁에 잘 대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군대라면 적어도 평상시에는 병사도 적성검사 등 시험을 쳐서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야 한다.
현대전의 기술과 전술은 복잡화되고 있는데 겨우 1년 6개월 군대 생활하는 병, 더군다나 억지로 복무하는 징집병이 업무를 할 경우 이제 좀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구나 싶은 인재가 곧 전역해 대체 인원을 뽑아야하는 뻘쭘한 상황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군 경력 5년 미만의 병이나 단기 복무하는 간부들에 대다수의 절대 분야를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그 결과 중장거리 투사수단과 화력으로 적을 미리 제압해놓지 않으면 전투를 어렵게 끌어가야 하는 군대가 되고 말았다.

인력을 오직 선발에만 집중한 구조가 되다 보니 이미 익숙해져서 자리를 잡은 인원들을 새로 뽑은 미숙련 인원들을 배치하기 위해 해고시켜야 한다. 이는 굳이 군대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어느 조직도 마찬가지이며 회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조직에서 물갈이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대교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빠른 세대교체가 바로 징병제의 문제점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병력의 전문화도가 떨어질뿐만 아니라 속된 말로 지휘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제 자기 휘하의 병력들이 누군지 알게 되는 순간 병력들의 제대를 겪게 되기 때문에 지휘 부담도 상당하다. 병사가 직업군인일 경우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면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온 사이이기 때문에 손발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징병제는 충원이 생명이므로 정말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병사가 누군지 알게 되는 순간 그 병사가 제대하는 꼴을 계속 보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군이 추진하고 있는 첨단화라는 입장에서의 군대의 기술 숙련도를 요구하는 현실상 징병제의 짧은 복무기간으로는 모병제에 비해 숙련도를 지속 유지 가능하게 하는 난이도는 어려운 편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군이 마음대로 복무기간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직업군인을 최대한 오래 존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4.5. 인권탄압 문제

불공정하고 자의적이고, 자기 인생을 설계하려는 젊은이들의 자유를 심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모르긴 해도 시장이 제공하는 대안보다 더 큰 비용이 들 것이다.
- 밀턴 프리드먼

사회적으로 개인주의자유주의적 사고가 생김에 따른 공공성의 저하 문제도 징병제를 지속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가가 주도해서 사람의 자유를 일정 기간 동안 빼앗고 더 나아가 목숨이 위협받는 전쟁터에 강제로 끌고 가기도 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인권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한 표면적인 문제보다 폐쇄적인 군 특성상 그 내부 문제로 들어가면 인권침해 여지는 훨씬 많으며, 전투력만 생각하고 인권 문제는 관심이 없었던 소련군[23], 일본군이 어떤 꼴이 났는지는 역사속에 처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한국의 군대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저시급은 고사하고 국민건강보험, 군인보험, 심지어 생명보험도 들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온갖 노역에 다 동원한다. 이건 정부의 노동력 착취라고 볼 수밖에 없을 뿐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 공수부대 대원들이 실전에 투입되기 이전에 생명보험에 서명을 한다.

이에 대한 병사들의 스트레스도 정말 장난이 아니다. 미국이 징병제를 버리고 모병제를 채택한 것도, 베트남 전쟁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사병들을 자신의 진급을 위한 수단으로 삼은 지휘관들이 부당한 처사를 가했고 이에 따라서 엄청난 비율로 발생한 프레깅에 치를 떨었기 때문이다.[24]

평균 학력이 매우 높은 대한민국의 경우 대부분의 징집병들의 나이는 20대 초중반으로 대학에서 전공 공부를 하다가 끌려온 경우가 다반사다. 전역을 한 이후에는 같이 입학했던 여자 동기들이 대부분 고학년이거나 이미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 혹은 취업에 성공한 상태이며 자신은 학년만 낮은 고학번이어서 암묵적으로 화석 취급을 받고 공백기 동안 벌어진 격차를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때 남성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크다. 군대에서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으나 애초에 하루종일 고된 군사훈련을 받다가 끝난 후에 남는 쥐꼬리만한 시간에 무언가를 독하게 한다는게 상당히 어렵다.(육, 해, 공 중 공군이 자기계발 시간이 가장 많다고 하나 복무기간이 3개월 더 길다.)

평균학력이 매우 낮은 외국의 경우는 대학에 입학하면 병역이 면제되거나(러시아)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제대하거나(튀르키예) 하는 등 고급 인재로 분류되어 병역의 의무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진다. 물론 이 문제로 인해 저학력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징병제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한국은 아직 휴전국가잖아", "강대국에 끼여 사는데 당연한거 아니니?"[25] 같은 말들을 인정하여 징병제와 국군 전투력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골프병, 테니스병, 공관병, 심지어 간부 집 애들 과외시키기 같은 간부에 의한 군 인력의 사적 이용도 비일비재하고 정작 그렇게 안보가 소중하면 더욱 더 소중히 여겨야 할 병사들의 처우는 전시 상태도 아닌 1인당 GDP 3만 달러 국가의 군대 내부가 위생이나 시설, 식사 등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다는 점에서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다는 것과 군사훈련보다 진지공사 및 대민지원에 더욱 집중되어 있는 군인 일과 등 여러가지 문제들 같이 논리적으로 상당히 모순된 요소들이 징병제를 말그대로 국가가 인력을 공출해서 착취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특이케이스지만 전쟁 중에는 외국인을 징집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급하게 털리는 상황에서 병력이 모자라다 보니 자세한 서류를 보지 않고 아무나 끌어가던 중, 국적만 외국인 같은 민족 사람이나 같은 인종인 이웃국가 국민을 자국민으로 오인하여 끌어가는 것이 이 케이스.[26] 보통 외국 국적임을 증명하면 바로 전역시켜주지만 막장 국가는 그런 것 없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인이던 아돌프 히틀러가 이런 식으로 독일군에 입대했다.[27]

4.6. 재정 부담 및 경제적 손실

하는 일에 비해 머리 숫자가 많기에 개인당 들어가는 돈이 적어 순수 모병제보다 국방비 지출이 적을 것 같지만 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재정착각이다.

징병제는 돈(Money) 대신 노동(Labor)으로 세금을 걷는 제도다. 한창 경제 활동을 하거나 교육을 받고 있을 나이의 사람을 몇 년간 총 들고 서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 규모에서는 결국 경제적 손해다. 군 장병들을 계속 전역시키고 징집하는 과정에서 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겉으로는 1인당 연 500만원 정도의 비용만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인당 GDP 연 3천만원씩 세금을 걷고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성격상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제도는 연 3천만원씩 세금을 걷는 것보다 훨씬 큰 비효율을 불러온다.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예를 하자 들어보자. 어떤 유망한 프로 스포츠 선수(이를테면 메시, 마이클 조던같은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1년에 1000억을 벌어들이고 400억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징병당해 군대에 왔다. 그래서 이 선수를 1년간 교육 시키고 군인으로 써먹는데 드는 비용이 1000만원이라고 치자. 이 경우 징병제 국가 하에서 병사 하나를 기르는데 드는 명시적 비용은 1000만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병사 하나를 얻기 위해 포기한 총 가치는 사회 전체로 보면 1000억 1000만원이고 국가 입장에서만 봐도 400억 1000만원이다. (차액 600억은 해당 스포츠 선수 귀속 손해 분) 즉, 징병제는 명시적 비용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암묵적 비용이 드는 비효율적인 제도인 것이다.[28]

위에는 예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초특급 스포츠 선수를 예로 들었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금액이나 기회비용에 차이는 있어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총을 드는 것보단 펜을 들거나 공을 들거나 하다못해 책을 드는 게 나은 사람도 징병제 하에서는 그 거대한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자기가 잘하지도 못하는 총을 드는 것이다.

즉 경제학적으로 보면 최적은 군대를 '강제'하지 않고 '선택'사항으로 둬서 총을 드는 게 자기의 효용을 가장 높일 수 있는 사람(= 군인이 되는 것이 적성에 맞는 사람)은 입대를 하고 총을 드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군입대를 선택하지 않는 게 베스트다.[29]

또한 군대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사회로 복귀하려면 필연적으로 재사회화[30]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징병제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대단히 큰 비용이 든다. 문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징병제로 인해 군인색이 들어버린 사람을 민간인으로 탈바꿈 하는데 드는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는 타인에게 전가된 비용이라 할지라도 사회 전체에서 소거되지 않으면 여전히 비용으로 본다. 아니, 오히려 본인이 10의 비용을 들여서 없앨 수 있었던 비효용을 자신이 지불하지 않고 타인에게 15의 비용을 들여서 없애게 하면 오히려 사회 전체에서는 5만큼의 덜 쓸 수 있었던 자원이 낭비 되었으므로 이를 실패로 규정한다. 이런 재사회화 비용을 나라에서 부담하면 그나마 징병제의 명시적 비용이 높아 보이니 징병제를 포기할 유인이 커지겠지만 대부분의 징병제 국가는 개인에게 떠넘긴 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징병제를 유지하는데 오히려 혈안이 되어있다. 즉 징병제는 명백하게 국가가 부담해야할 여러가지 비용(기회비용, 재사회화 비용, 스트레스 비용 등등)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런 예시를 현실에서 대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케이스가 바로 북한군이다. 징병 기간이 남녀 불문하고 8 ~ 10년으로 극단적으로 긴데 이게 만약 대한민국에서도 똑같다고 생각해보자. 즉 20대가 넘은 모든 남녀는 무조건 20대를 내내 군에 쳐박혀서 외부랑 접촉도 못하고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이럴 경우 나라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감이 올 것이다. 물론 북한의 처참한 경제 상황이 100% 징병제 탓은 아니고 다른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징병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사실 정확히는 북한에서는 병력을 민간 부분에 무분별하게 동원하고 있어서 징집병의 경제적 효용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사실 징집 인원 중 소수의 병력만 전쟁 수행에 필요한 훈련을 받고 근무에 투입되며 대부분은 건설병으로 분류되어 각종 토목공사에 끌려간다.[31][32]

이런 '경제적 손실을 완화'하고 '기회비용을 고려'하기 위해 대부분 징병제 국가는 병역특례 제도를 두고 있긴하다. 예컨대 위에 설명한 예시에서 스포츠 선수 같은 경우 최상의 컨디션을 낼 수 있는 기간에는 징병을 유예한다거나 아예 면하는 경우다. 또 유망한 과학인재에게 총을 드는 대신 국방연구소에서 일하게 하는 대체복무 제도도 이런 완화책의 하나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극단적인 징병제 국가를 보자.

A 국가는 기회 비용 측면에서 공평성을 조금 이루고 있을지는 몰라도 같은 국민인데 누구는 가치 창출을 많이 한다 해서 군대를 안 가고 어떤 이는 끌려가는 불평등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 같은 국민인데 쟤는 왜 안 가고 나는 가냐? 하는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B 국가는 그런 측면에서는 완전히 평등할지 몰라도 기회 비용 측면에서 불평등이 발생한다. 같은 1년을 군복무를 하더라도 누구는 1년에 1,000억의 가치 창출을 포기하고 가는데 누구는 1년에 1억원 정도의 가치 창출만 포기하고 가는 것이다. 단지 가치 창출 측면에서만 보면 전자인 사람은 사실상 후자인 사람이 1,000년 군 복무할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즉,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가 어느 쪽을 택하든 불평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극단적인 A국과 B국 사이에서 위치하게 되는데 당연히 이 경우 추가적인 문제가 생긴다. 병역특례를 A국처럼 세밀하게 할 수 있는 나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결국 정치인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메달을 딴 스포츠 선수는 법에 의해 4주만 군대를 가면 되는데 왜 그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어도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고 해서 2년 의무 복무해야 하는가', 같은 식의 불평등이 추가로 생긴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징집된 군인들의 군생활에 대한 가치관과 생각도 가지가지다. 장교와 부사관 같은 간부층은 징병제로 뽑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당연하게도 복무 의지와 전문성에 문제가 생길 테니 모병제가 완전히 배제된 국민개병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교를 징집할 경우 사병으로 징집된 사람과의 차별 논란도 심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모병제를 선택하는 이유가 인권적 측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징병제가 장기적으로는 국가에 손실을 더 초래하기 때문에 경제학적 효율성 달성을 위해 모병제를 택하는 것이다. 반대로 징병제를 택하는 일부 나라가 자국의 특수성[33] 때문, 혹은 정치인들이 굳이 자기 임기 때에 바꾸기 귀찮다는 이유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징병제를 택하는 것에 가깝다.

4.7. 천차만별인 징집기준

▲ [뉴스토리] 군대 우울증 병사 꾸준히 느는데…병역 판정 검사의 문제점 / SBS
징병제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청년들을 나이만 차면 징집해 군 병력으로 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국가가 저출산이나 기타 문제들로 인해 징병제를 유지하기 무리가 가해질 정도로 청년들의 수가 줄어듬에도 불구 모병제로 전환하여 군대를 정예화 시키는 것도 아닌 경우, 인원을 맞추기 위해 징집 기준이 점점 느슨해지게 된다. 이때는 신체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는 군대에 징집이 불가능한 소년이 징병 검사에서 대충 우기기만하면 통과가 돼서 전선으로 투입되는 일이 벌어지거나[34] 범선 시절 영국 해군처럼 아예 대놓고 끌고가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병력 공급을 위해 윤리적으로 반발되는 행위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징병제의 폐해들은 세계 역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문서에서는 한국군의 징집 기준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서술하겠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얘기들은 징병제만의 문제점은 아니므로 주의를 요한다. 모병제에서도 아예 대놓고 끌고 가는 것만 제외하면(모병제 하면서 대놓고 끌고 갈 정도로 막장짓을 해야 될 상황이면 징병제로 전환하거나 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쟁이 벌어지면 평소의 상비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병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모병제라고 해서 필요한 만큼의 인적 자원을 즉각즉각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목표 모병 인원을 맞추기 위해서 기준을 무시하고 부적격자로 숫자를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이는 크림 전쟁,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 미국 독립 전쟁, 영미 전쟁 등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전시가 아니라 평시라고 하더라도 군인 처우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지원자 숫자가 부족해질 텐데 군인 처우를 향상시키는 것은 돈이 많이 들고 국가 예산에 얽힌 정치적인 문제도 따르므로 암묵적으로 부적격자를 더 많이 통과시키는 편법이 애용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년병 문제 역시 모병제에서도 있었던 문제다. 징병제에서는 막장 상태가 아닌 이상 소년을 징집하려는 시도 자체를 안 하지만, 모병제에서는 단순히 어린 나이에 돈을 벌고 싶다거나 혹은 깡촌에서 벗어나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스스로 나이를 속이면서 모병에 자원하면서 경우가 꽤 있었고 앞에서 언급한 목표 모병 인원을 맞춰야 하는 상황 때문에 나이 검사를 본인 진술에만 의존해서 대충 넘어간 경우가 실제 역사에서 종종 나온다. (징병제 하에서의 군인들의 처우는 대개 안 좋기 때문에 나이를 속이면서 자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소년들을 막 징집해야 정도로 막장인 상황이라면 말했듯이 진작에 징병제로 전환하고 막장 짓을 할 테니 모병제라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한국은 출산율 저하로 점점 징집 가능한 성인 남성층의 비율과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입영 기준을 매년 완화하느라 점차 병력의 질도 떨어지고 있는 판국인데 가령 70년대에는 평발과 3대 독자가 군 면제 사유였으나, 2018년 기준 평발은 심한 경우에만 4급 보충역(기초 군사 훈련 4주 포함)이며 독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본인밖에 없는 게 아니라면 타 결격 사유(아버지가 상이군경, 신체등위 4급 등)가 없는 이상 무조건 현역이다. 정치인 황교안의 경우는 담마진을 사유로 군 복무를 면제 받았는데, 2019년부터는 무조건 얄짤없이 현역으로 복무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초졸, 중졸도 현역으로 입영할 수 있으며 전신에 문신을 해도 현역 입영 대상으로 분류되어 웬만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은 거의 다 징집 대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디스크 환자 정도는 물론이고 웬만한 희귀병 환자도 그냥 입영이다. 신장, 체중 기준도 극도로 완화되어 초장신 종합 격투기 선수 최홍만도 입영 통지서가 나오는 단계까지 갔었다.[35]

다만, 아직 징병 자원의 부족은 바로 닥칠 일이 아니었음에도, 병무청이 설레발을 떨어 쓸데없이 병역 자원을 많이 뽑는답시고 부적격 자원을 대량으로 현역 입영 대상자로 만들어, 2015년에는 입대하고 싶어도 2 ~ 3년을 기다려야만 겨우 입대하는 이들이 대거 늘어나는 이른바 입영 대란이 터져버렸다.

보통 나이가 많은 인원부터 입영시키다 보니 입영 장정들의 평균 연령이 상승하고, 현역에 부적합한 인원들이[36] 잔뜩 입대하면서 병들의 질적인 부분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징집 대상인 남성들이 병역 문제를 장기간 해결하지 못하여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학업에 지장을 받는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 결국 병무청에서는 상당수의 인원을 재검해 도로 보충역으로 환원해야 했다. 물론 이제는 당연히 보충역의 입영 대란이 또 다른 문제가 됐지만 병무청이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다. 이에 따라 현역 부적합 심사에 넘어가는 인원도 대폭 늘었으며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는 장병도 많이 늘었다.

이렇게 애초에 군대에 절대 들어오지 말아야 할 인원까지 강제로 입대를 시키다 보니 이들을 지휘해야 할 지휘관들의 고충은 갈수록 심해지게 된다.[37] 자기 휘하에서 사고가 터지면 근무평정이 무조건 깎이고 이는 진급에도 악영향을 끼치는데 직업군인은 계급정년 때문에 그 나이까지 진급 못 하면 무조건 전역해야 하기 때문에 진급에 곤두서는 지휘관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그러다보니 뉴스토리에서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에피소드의 제목을 "묻지마 징병비극"이라고 지었을 정도이다. 해당 영상을 보면 우울증 등의 군대에 적합하지 않은 질환이 있음에도 무작정 징병부터 하는 바람에 자살한 청년의 유족의 인터뷰와 현재의 징병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
징병검사에서 병의 입증 책임이 국가가 아닌 징병 대상자에게 있습니다. 보통은 채용 검진할 때 고용자가 하지 피고용자가 하지 않거든요. 검증 책임이 국가에 있는 거거든요. 사실은. 국가가 데려다 쓸 거니까.[38]
김대희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4.7.1. 그렇다면 모병제는 인력 관련 문제가 없는가?

징병제는 아무나 나이만 차면 다 군대로 끌고 오는 만큼 신병의 평균적인 자질만 따지면 그 사회의 평균과 같거나 부적격자를 거르므로 다소 높을 수도 있다. 도리어 모병제일 때보다 병력 모집이 쉬워지는 만큼, 일정 형량 이상의 범죄자 및 징집 기준 미달 자원 등을 가려내기 쉬워진다.

이는 모병제인가 징병제에 문제라기보다 병력자원의 질과 군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다른데 자질이 있는, 소위 말하는 '우수' 자원들은 징집을 피할 수 없을 테고, 한국군 역시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과 몇몇 연예인의 잇단 병역비리 때문에 징병 기준이 빡빡해진 거지, 현재는 3급 현역인 인원들도 옛날엔 면제를 받았다.# 심지어 입대자가 너무 많아서 커트라인 뒤로 면제를 시키는 과밀 면제도 있었다.[39] 한국만 해도 상당수의 징병 대상자는 쓸데없이 높은 대학교 진학률 덕분에, (전문대학도 엄연히 고등교육기관이자 대학 기관이니 전문대학까지 함께 포함하면) 대학교를 재학 하던 중에 군대에 온다. 애초에, 포병의 탄착군을 계산하는데 있어서 삼각함수가 들어간다.

총기를 들고 근무할 사람이 반드시 대학 재학 수준의 학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냐는 반박도 있을 수 있는데, 보병 전투병이라면 몰라도 군대는 각종 행정 부서와 지원 부서도 만만치 않게 큰 비율을 차지하기에 군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고학력자가 많을수록 더 좋다. 병력 수가 48만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인 만큼, 대기업 중에도 군대보다 인력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곳도 많다.[40] 또한 현대전에 사용되는 첨단 화기는 그 사용법을 숙지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수학과 영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대학교 재학 수준의 학력 소지자라면 이 정도는 이미 배워온다는 점도 메리트가 있다. 한국군은 아직까지 냉전식 대규모 전면전 교리를 유지 중이라 잘 와 닿지 않는 부분이지만 현대전은 이미 2차대전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분대 이하 단위, 심지어 전투원 개개인의 전술적 판단과 행동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전술적 측면을 이해할만한 학력을 갖춘 자원이 많을수록 좋다.

반면에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군대란 곳이 사회적으로 기피되는 영역이므로 여간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는 이상 사회 기준으로 우수한 인원은 군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일반병으로 복무하는 것은 3D 업종 취급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결국 다른 사회영역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원이 군대로 흘러들어가는 문제는 모병제에서 오히려 더 큰 문제이다.[41] 미군의 경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지원자가 줄자 입영기준을 극단적으로 완화시킨 덕분에 병력자원의 질적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이것은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의 병력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9.11 이전에는 미군 병력자원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우수한 인원이라 할지라도 1년 6개월 가량만 복무하면 제대하고 나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없고 매년마다 들어오는 신병 훈련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징병제와는 달리 모병제는 학력이 떨어지는 병력자원이라 할지라도 다년간의 훈련과 학습으로 인해 고학력 징병제 군인보다 훨씬 우수한 전문성을 갖추게 할 수 있다고 일각에선 반박하는 사람이 많으나, 군대뿐만 아니라 주경야독하는것이 어려운것은 군대라고 예외가 아니며 전투만 한다면 훈련으로 해결 되나 전쟁중인 국가의 군대라 하더라도 교전하는 시간보단 행군 숙영등 교전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으며 민간인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잦다.

전쟁범죄까지 아니더라도 타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생긴 적대감 생성을 막는것은 중요한 숙제이며 이것은 훈련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아프간전에서 고전한 주요이유가 저학력 수준의 일부 낮은 인력들이 문화제 차이를 모르고 금기시될만한 행동을 벌이는 문제들로 탈레반등의 게릴라에 협조하고 빈라덴 찾는데만 수년이 걸렸다. 지역유지의 자녀가 결혼해서 아프간 정부쪽 인사와 탈레반지도자가 서로 합의해서 휴전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 정보전달도 안된상태에서 폭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군은 인간 이하의 사람들이고 이들에 협조하는 쓰레기 취급받게 된 상황에서 빈라덴 찾은게 기적일 정도였는데, 만약에 자이툰부대 수준의 민사작전을 미군 전체가 실행하였으면, 그렇게 까지 전쟁을 오래 끌었을까 하면 전쟁은 전투행위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훈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고, 일정 이상의 교육이 필요할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육은, 군대가 아닌 민간에서 획득해야하는 것이다.

징병제는 모병제에 비해 인사적체가 덜하다는 장점도 있다. 정해진 기간만 복무하면 전역하고 전역할 때는 또 미련없이 나가기 때문에 진급 문제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병력의 노령화도 모병제보다 훨씬 덜하다. 특히 한국은 초급 장교 및 부사관도 현역병 복무를 대체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장점이 두드러지지만, 외환위기 이후엔 그러한 장점도 빛이 바래며 대다수의 초급간부들이 의무복무를 마친 뒤에도 장기복무를 지망하여 헬게이트가 된 상황이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4.8. 불평등

왜 징병제는 평등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비록 현재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병역 의무 불평등을 남성이 더욱 전투에 적합한 신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라는 간단한 이유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 중 한 가지는 '신체의 자유'이다. 신체의 자유를 갖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며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하고 살 수 있다. 병역 의무가 국민으로서 의무 중 하나이고 이런 수준의 헌법적 자유 침해가 만일 불가피하다면, 절대로 그러한 침해는 특정한 시민들 일부를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 예외 조항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모병제의 제도적 계급 착취 논란과 징병제의 병역 비리(범죄)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징병제의 '평등한 병역'을 무색케 하는 일이 빈번하다. 우선 여자는 병역을 지지 않는다.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체 인구의 절반을 성별을 이유로 병역에서 제외하는 시점부터 '평등'이란 단어 자체가 모순된다. 고대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병역기피가 있었고, 금수저들은 병역을 가도 큰 특혜를 보았다. 특히나 한국에서 높으신 분들 집안의 금수저 자식들의 병역 면제율이 높다는 이유로,# 병역 제도는 보다 공정하게 열외 없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군대에 가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부대마다 인프라가 확 갈리는 데다, 이미 학력과 다양한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부대나 보직이 배정되고 있고, 군대 내부의 연줄에 따라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며[44], 상급 부대[45][46]의 징집병과 말단 부대[47]의 징집병이 느끼는 군 생활 질의 차이나 복무 수준의 차이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서울, 대전권 육직, 국직 부대 소속 징집병이 영내 스낵바에서 치킨, 피자나 사제 빵을 사 먹는 동안에 강원도 최전방 오지에 있는 말단 보병 부대의 징집병은 PX도 없어서 황금 마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따져 볼 때 공평한 병역 부여는 사실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다. 괜히 육군 본부가 자대배치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이야기가[48] 자주 나오고 있다. #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랍시고 인프라가 좋은 부대의 병역 의무 기간을 추가시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문제점/병영시설 문제 및 천차만별인 복무 환경 문서 참조.

그리고, 병역 비리 및 보직별 임무 난이도 차이를 제외하고서라도 징병제가 과연 공평하게 의무를 수행하는 제도인 게 사실이기는 하냐고도 질문할 수 있다. 흔히 징병제가 공평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은근슬쩍 '모든 성년 병역 가능자들이 예외없이 군대에 복무하고 나오는 제도'라고 정의하는데, 인류 역사상 그러한 징병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의 군대가 상정하고 있는 군대의 규모가 있다. 가령 중국은 인구가 14억명이 넘는 세계 최다 인구의 나라이다. 만일 이 나라의 모든 청년층들을 모두 징병한다면 중국군은 1000만 대군을 운용하는 나라일 것이다.[49] 그러나 중국군은 그 정도 규모를 운용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천만 대군을 운용하면 비용부터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군은 실질적으로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나머지 청년층들은 모두 '유사시 민병대로서 소집'한다고만 규정한다.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총력전 체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만 하더라도 가용한 병역 자원의 약 60% 정도만 실제 현역 병사로서 복무하였다. 국가의 존망을 걸고 추축국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던 바로 그 시점에서도 영국의 징병대상 남성들의 40%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스웨덴노르웨이군은 형식적으로 징병제를 수행하지만, 현역 자원 가동률은 고작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 나라 젊은 남녀들의 90%는 애초에 징집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50][51]

태국군 입대 여부가 제비뽑기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유명하고, 튀르키예군같은 경우에는 국방세를 지불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튀르키예는 2010년대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이 노후 장비를 대체하기 위한 급전을 모집하려는 목적으로 약 350만원을 내면 병역 면제 제도를 시행한 적 있었다. 튀르키예군 같은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모병제 반대자'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만 군대로 내몰리는 체제의 현실판이다. 그런데 튀르키예군은 징병제이다. 징병제인데도 가난한 사람들만 군대에 가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징병제가 공평한 의무 수행이라지만 정작 많은 징병제 군대들은 정해놓은 군대 규모가 충족되고 병역 자원이 남으면 나머지 인력들은 군대에 부르지도 않는다. 한국만 하더라도 2010년대부터 저출산 기조에 의해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들도 군대로 끌고 가는 것 뿐이지,[52] 1970~80년대 징병 대상자가 넘쳐 나던 시절에는 비염 있다고 빼주고, 평발이라고 빼주고, 피부병 있다고 빼주고(사실 이런 사람들은 빼주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나마 앞의 사안들은 그나마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다'라는 사유라도 있었지 3대 독자라고 면제, 집안에 형제가 많아서 형제들 중 몇 명이 군대 갔으니까 나머지는 방위 형태로 징집이 감면되었거나 면제 등으로 군대에 징집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전체 징병 대상자 중 50%만 현역 내지는 방위로 복무했다. 이렇게 되면 일부 남성(그리고 경우에 따라 여성)들만 군대에서 힘든 일을 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군대에서 부를 생각조차 없다. 과연 이것이 공평한 의무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만 대한민국 국방부는 출산율이 엄청 높았던 시절인 1960년대 출생자를 기준으로 정한 국군의 규모를 2020년 현재도 적용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당시에는 병력이 너무 남아돌아서 회관병 같은 보직에도 병력을 배치했으나 현재는 그러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꼭 필요한 보직에만 배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이를 전혀 개선하지 않아 만성적인 병력 부족 아닌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예상 가능한 반론 중 하나는 '그들 또한 유사시에는 징집될 수 있다' 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전쟁 상태보다는 평화 상태인 경우가 더욱 길다. 힘과 폭력을 숭상하여 언제나 전쟁을 벌이는 세력은 창작물에나 존재할 뿐이다. 앞서 예시로 언급된 태국군에서, 제비뽑기에서 현역 제비를 뽑지 않아 군대에 가지 않은 남성이, 대략 60세가 먹었다고 치자(막장 국가가 아닌 한, 60세 이상이 지난 노년층은 현역병, 예비역, 민방위, 전시 근로역 등 어떠한 형태의 국방 임무에도 배정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 이 남성은 아무런 의무를 수행하지도 않고, 60세가 되었으니 더 이상 징집될 일도 없는 것이다. 과연 이 사람이 군대를 다녀온 태국 남성과 비교해서 공평하게 의무를 수행했는가?

징병을 공평하게 응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공평하지 않게 보이고, 그렇다고 징병제를 공평하게 면제 기준을 최대한 없애는 방향으로 운용한다면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는 공평하게 면제 기준을 최대한 없애는 방향으로 운영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까지 공정성, 공평성이라는 이름으로 복무해야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4.9. 적절한 보상의 부재

군 가산점 논란에서 보듯이, 징집병들이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방법이 난해하다. 그나마 무난한 방법이 빵빵한 봉급이지만, 징병제의 목적 자체가 '대규모 병력을 굴리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한국의 사례가 극단적이긴 하더라도,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가 '빵빵한 병사 봉급'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빵빵한 봉급'도 나가서 벌면 되지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므로 한계를 가진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서 우수인원에 대해서 포상 휴가를 지급하고 있으나 북한군 같은 케이스를 제외한 타 징병제 국가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참정권교육'이라는 당근으로 해결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권을 받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고, 시민들은 사실상 귀족에 준하는 상당한 권리를 누렸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중장보병대의 일원으로서 정예병이 되어 가치를 인정받았다. 시민계급의 위상이 하락한 고대 로마에서도 여전히 시민들은 무상으로 식량을 받을 수 있었고, 민회 등의 참정활동도 함께 할 수 있었다.[53] 근대 국가의 경우 징병제는 '국가를 지킨다'라는 명분을 성인 남성들이 취득하게 되어 참정권의 확대로 이어졌다. 즉 시민 한 명 한 명이 기사로 대우 받게 되는 것이다. 괜히 공화주의에서 시민군을 부르짖은 게 아니다. 또한 교육 수준이 낮았던 시대인 만큼, "군대에 보냈더니 글과 기술을 배워오더라"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보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징병제를 통한 참정권 논의는 필연적으로 여성 참정권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은 나라를 지키지도 않으면서 참정권은 무슨..."이라는 식의 논의들이 그것이다. 지금에서야 꼰대 같은 소리이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분명히 설득력을 지녔던 논리이다. 물론 시대가 지나면서 여성 참정권이 이루어졌지만,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징병제는 제 명분을 상당수 잃어버렸다. 더군다나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서, 군대가 교육을 해준다는 당근도 없어졌다.[54] 아니, 없어지는 것을 넘어 이공계의 경우 오히려 징집 기간 동안 지식이 뒤처진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군대가 지식을 앗아간다는 말도 가능할 정도이다.

고대, 중세, 근대 국가에서는 "여러분. 참정권은 무장한 시민들이 가지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기술 배워서 전역 후 생계에도 도움이 됩니다."라고 당근을 줄 수 있지만, 현대 국가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지가 않는다. 정리하자면 한국에서는 사실상 실질적인 보상이 어렵다. 취업에 가산점을 주면 장애로 인해 군에 입대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고 반발할 것이고,[55] 급여도 세금으로 주는 만큼 대폭 인상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도의적으로 "국방의 의무니까 어쩔 수 없다. 다녀와라."는 막연한 설득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현역 복무를 하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부당한지의 여부는 그렇다 쳐도 최소한 개인 입장에서 '불합리'하다는 의견에는 딱히 반박이 없다.

앞서 재정 부담 및 경제적 손실 문단에서 서술한 재사회화의 문제가 있어서 병역 종료 이후 민간인 신분이 되어 여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이 드는데, 상술했듯 현실에서는 이를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점 때문에 사회를 군사화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

5. 국가별 현황

5.1. 시행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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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폐지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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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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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월부터 실시되었으며 당시에는 여타 국가들처럼 다소 느슨하게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출산이 심각해지면서 입영률을 확 올려버려 여러 문제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크게 현역, 보충역, 전시근로역으로 나뉜다. 또한 201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의해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자에게 부과되는 대체역을 신설하게 되었다.[56]

징병제 자체는 존치의 정당성이 있으나, 남성에 국한한 병역 의무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지도, 합리적인 보상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여성에 대한 징병 여론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여성 징병제 참조.

6.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징병제()
중국어 [ruby(征, ruby=zhēng)][ruby(兵, ruby=bīng)][ruby(制, ruby=zhì)][간체]
[ruby(徴, ruby=ㄓㄥ)][ruby(兵, ruby=ㄅㄧㄥ)][ruby(制, ruby=ㄓˋ)][정체]
일본어 [ruby(徴, ruby=ちょう)][ruby(兵, ruby=へい)][ruby(制, ruby=せい)]
라트비아어 Karaklausība
리투아니아어 Karinis paklusnumas
태국어 การเกณฑ์ทหาร
영어 Conscription / Draft
핀란드어 Asevelvollisuus
에스토니아어 Ajateenistuskohustus
러시아어 Воинская обязанность
아랍어 تجنيد الزامي
덴마크어 Værnepligt
베트남어 Chế độ quân dịch bắt buộc
(制度軍役--)
페르시아어 خدمت اجباری
포르투갈어 Conscrição
노르웨이어 Verneplikt
히브리어 גיוס חובה
그리스어 Στρατολόγηση
스웨덴어 värnplikt
독일어 Wehrpflicht

7. 관련 문서



[1] 정확하게는 국민 개병제 ⊂ 징병제이다. 이를테면 조선 전기의 군사 제도에서는 징병제를 실시했으나, 그 대상은 양인으로 천민은 제외했다. 따라서 당시 조선은 징병제 국가일지언정, 국민 개병제 국가는 아니고 양인 개병제 국가였던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민 개병제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대의 징병제 국가들은 국민개병제라기보단 남성 개병제에 가깝지만(일부 유럽 국가들이나 이스라엘, 중국, 북한은 아니다.) 남성 개병제라는 용어의 문제는 단순하게 웃어 넘길 문제가 아닌데, 국민을 자연스럽게 남성으로 한정하고 투표권도 남성에게만 주었던 구시대적 발상을 전제하였기 때문이다.[2] 상비군보다는 민방위나 예비군 같은 개념이다. 한 번 소집되면 몇 달씩 가는 게 문제여서 그렇지.[3] 물론 나라가 망할 위기라든가 전국 시대 같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경우 농업 인력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끌어 썼다.[4] 참고 문헌 임재성 저,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5] 독재정권 하에서 시위는 무수히 일어났으나, 징병제를 겨냥한 시위는 없었다.[6] 한국인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남자는 군대 다녀와야 철든다." 같은 발언들은 군대를 일종의 교육기관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7] 그 상대는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스페인,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공화국,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제국 등으로, 당시 유럽의 힘 좀 쓴다는 나라는 죄다 대 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였다.[8] 러시아 등의 국가는 프랑스 혁명 전쟁 이전인 표트르 대제 시절 이미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창안한 징병제 제도를 벤치마킹해 도입하고 있었다. 골자 자체는 무려 1차 세계 대전 때까지 유지되었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긴 복무 기간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9] 프랑스19세기 초까지도 지방에서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지방 고유어(사투리 수준이 아니라 진짜 별개의 언어)나 인접 국가 언어(독일어, 스페인어 등)를 썼기 때문에 타 지방과의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 점은 공교육이 정립되면서 전 국민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해결된다.[10] 다만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차이보다는 병사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징병제 병사는 비록 강제로 끌려 나왔다지만 자기 고향과 가족을 지켜야만 할 이유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며, 반면 모병제 병사라 하더라도 자기 조국에 대해 애착이 없이 그저 돈벌이를 위해 입대했던 사람이라면 "그냥 내 한 몸이나 건사하고 말자." 정도의 마인드로 전쟁에 임할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11] 이 글에서 장점 부분은 구색맞추기 수준으로 있고, 단점 부분만 엄청나게 많이 서술되어 있으나 그건 병사나 초급장교, 부사관 출신이 대부분인 개인의 입장 한정. 국가와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구색맞추기 수준의 단락 단 하나만으로 모든 단점을 상쇄해버릴 수 있다.[12] 독소전쟁만 봐도 그렇다.[13] 근대적 징병제의 시초인 프랑스 혁명 전쟁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한 나폴레옹의 26인 원수가 대표적인 케이스. 혁명이 아니었으면 이들 중 상당수는 군사적 재능을 모른 채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갔을 것이다.[14] 이 잠수함은 러시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스웨덴은 모병제 군을 운용 중 이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 등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군사 위협은 커지는 중이었다.[15] 임진왜란 16만, 정유재란 13만.[16] 실제로 미군 교범에서는 인질이 없는 상황에서 적대 인원 1명 이상이 숨어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실내에 진입하기 위해 최소 1개 팀, 즉 4명이 필요하다고 가정한다. A가 문을 부수고 가시 범위 확보 및 엄호, B가 진입하여 문이 열리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진입, C가 정면으로 진입 후 적당한 엄폐 상황에서 문이 열리는 방향 관측, D가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진입, 이후 방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A 진입 후 상황 종료[17] 과거 모병제의 국내 적용에 대한 TV토론이 있었을 당시 모병제 반대 측에서 주로 들었던 근거로, 앞서 말한 것처럼 군인 직업의 선호도가 낮은 것도 있지만 국내 경제 상황에 따라 모병 자원이 들쑥날쑥하다는 것도 문제다. 경제가 호황이면 고소득 직종으로 인적 자원이 몰려가고, 경제가 불황이면 유사 공무원인 군인으로 인적 자원이 몰려간다. 단순히 재원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병력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넓게 보면 이것도 선호도와 관련이 있기는 하다.[18] 롯데가 건설을 할 때 병사들을 시키면 안되겠냐고 하다가 당사자 격인 공군에게 걸려 크게 털렸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정부는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19] 위계질서적이지 않고 꽤 수평적인 분위기다.[20] 실제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서도 프래깅의 원인 중 하나로, 징병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지목되었었다.[21] 알바라면 자신에게 배치된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으면 (받아들여질 지 여부는 차치하고) 재배치를 요구할 수도 있고 퇴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에버랜드 캐스트를 지원한 사람이 본인은 어트랙션을 지망했는데 F&B(음식점)로 배치 받은 경우다. 하지만 군대는 배치 받은 보직에서 일하는 것도 명령이기 때문에 강제로 그 보직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군대는 그만둘 자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22] 다만 계급은 인사장교가 훨씬 높기 때문에 아랫사람 대하듯 쪼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계속 떼를 쓰는 형태일 수밖에 없다. 부사관은 장교에게 언성만 높여도 징계 사유가 된다.[23] 소련군은 그나마 공산당에서 파견 나온 부대병력을 감시감독하는 장교가 있어서 내무부조리를 감소시킬 수 있었지만, 소련 붕괴 직후 정치장교가 사라진 뒤 러시아군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24] 당연하겠지만 징병제든 모병제든 간에 지휘관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똥군기를 가해서는 안된다.[25] 한국도 강대국까진 아니여도 세계적인 수준에선 매우 강력한 군사강국이다.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이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국력이나 군사력이 훨씬 막강하며 패권 전선의 한복판이라는 게 문제이다.[26] 가끔 모국의 적국 군대에 징집되는 경우 국적을 밝히면 즉결처분될까봐 일부러 잠자코 입대하는 경우도 있다.[27] 다만 히틀러는 자원입대한 케이스다. 본래 국적을 따지면 독일의 동맹국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징집되어야 했지만 다민족국가를 혐오하던 히틀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징집을 회피하고 독일군에 입대했다.[28] 그래서 한때 월드컵 4강, WBC 4강, 프로바둑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었다. 이걸로 인해 이창호는 바둑으로 세계제패를 했고 박지성, 이영표는 EPL 진출에 걸림돌이 없어졌고 박지성같은 경우 맨유에 입단하게 되었다. 빌보드 1위를 기록한 BTS도 병역혜택 이야기가 나왔지만 형평성 문제로 연기혜택을 주었다. 그리고 2023년 12월 결국 모든 멤버가 군 복무를 이행하고 있다.[29] 참고로 경제학에서는 설령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라도 억지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은 비효용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조직 전체의 효율성에 비효율적인 영향을 미친다거나 그 사람이 스트레스 받는 문제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30] 직업 탐색 비용이나 학생이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머리가 굳어버린'것을 다시 원래대로 복귀시키는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한다.[31]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경제적 비효율은 아예 어떤 사람이 군복무를 함으로 인해 경제적 가치가 0이 창출된다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사회에서 100의 효용을 낼 수 있는 사람을 강제로 징집해서 30의 효용을 내면 70의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북한군이 건설에 동원되므로 경제에 기여한다는 것은 경제적 손실에 대해 오해하는 것으로 당연히 국방서비스나 대민지원을 제공하는 군인이 경제 창출 능력이 0인 건 아니다.[32] 북한이 군인을 사회 간접 자본 확충에 이용하므로 경제적 효용이 0이 아니란 주장이야말로 첫 문단에 나온 재정착각의 대표적 사례인데 북한이란 국가 입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인 징병군을 이용해 토목공사를 하거나 농사를 하니 마치 매우 싼값에 경제적 효용을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에서 보면 그냥 징병군을 이용하지 않고 전문 건설업자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주고 건설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용이 높다. 당장 북한군의 상당수는 농사에 동원 되는데 징병군으로 강제로 나라에서 시키는 농병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징병되지 않고 똑같은 농사 행위를 하더라도 자기 고향에서 자기 부모님의 밭에서 농사를 지었다면 의욕이든 효율이든 여러모로 더 나았을 것이다.[33] 노르웨이는 러시아가 분탕질을 하는 바람에 징병제를 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노르웨이 역시 모병제의 '모'자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초긴장 상태이다.[34] 실제 1차대전기 유럽이나 2차대전기 미국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었다.[35] 이전 군 복무 기간 축소방침하에서는 일반 징집병을 줄이고 유급 지원병 확대, 부사관 정원 확대, 복지와 장비의 첨단화로 숙련병을 양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정작 일반 병의 급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복무기간 역시 단축되는 것에 비해 간부들의 급여는 그다지 오르지 않으면서 기왕 가는 거 일반 병으로 가느니 좀 더 길게 가더라도 나은 처우를 받자는 사유로 유지되던 유급 지원병이나 단기 부사관의 유입이 줄어든 상황이다. 게다가 복무기간 단축의 경우 부적합자의 입영율을 올려 외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병 복무기간 단축은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간부 처우 상승이 중요해진 게 현실이다.[36] 속된 말로 폐급 병사를 말한다.[37] 사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입영인원이 부족하더라도 이스라엘처럼 부적합자에 대한 복무부여는 피하는 게 맞다.[38] 사실상 병무청의 무능함을 제대로 비판하는 말 중 하나다.[39] 학력으로도 면제가 되기도 하고, 몇 대 독자라고 해서 면제되기도 했으며, 입영 장정이 너무 많아서 대기시키다가 면제시키기도 했다. 1950~1960년대에도 군대에 안 가려고 손에 못을 박기도 하고 별별 짓을 하며 발버둥쳤다. 물론 국민개병제 초기에는 전과자 등을 걸러내는 일이 없어서, 징병제 시행 초기의 프랑스군에서는 초급 장교들이 '깡패나 양아치들이 순박한 시골 청년들에게 나쁜 물을 들인다' 고 걱정하며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40] 당장 행정병 문서만 봐도, 군복무에 있어 학력 수준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학벌이 좋은 병사들은 대대장급 이상 간부들의 입김에 의해 지휘통제실이나 인사과 등 대대 참모부로 보직 변경 당하기도 한다.[41] 아이러니하게도, 미군 등에서는 이런 이유로 군대에 오래 남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 사회에 나가봐야 할 게 없다는 이유. 한국군의 경우에도 장교는 질이 유지되고 있지만 부사관급은 이야기가 달라서 사회로 나가봐야 할 거 없다고 남는 사람들이 많다.[42] 다만 군대도 민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엄연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기도 하니 만큼 4년제 대학교의 체육대학이나 한국체육대학교 출신의 학사 이상의 학위를 이미 가지고 있는 부사관들 또한 의외로 몇몇 있으며, 또한 신체를 어떻게 격하게 다루는지 배우는 체육과 관련한 전공이 설령 아니더라도 고졸 혹은 초대졸인 부사관들 중에서도 야간대학이나 사이버대학 등 원격대학을 통해서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경우가 그래도 종종 있다.[43] 원래 부사관은 병 출신이 하는 것이다. 엘리트 출신으로 장교를 구성하고 평민들이 사병을 맡았기에 평민 출신 병사들과 엘리트 출신 장교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탄생한 계급이 숙련병(고참병) 출신으로 구성된 부사관이다. 징병제 모병제 상관없이 대부분의 군대는 부사관이 병 출신이며, 이렇게 병으로 복무한 경험 없이 그냥 민간에서 바로 부사관을 임관시키는 군대는 대한민국 국군 이외에는 거의 없다. 한국군의 부사관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단순히 학력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부사관들의 병 복무 경험이 없는 것도 한몫 한다. 이는 장교의 하위 호환으로 자연스럽게 인식이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44] 예를 들면, 운과 빽이 없으면 사소한 잘못도 영창 갈 수 있는 반면에, 운과 빽이 있으면 아주 큰 잘못이 아니면 징계위원회 회부조차도 무마되는 식.[45] 특히 서울, 대전권 육직, 국직 부대[46] 국방부 근지단, 계룡대, 국군재정관리단, 수방사, 정보사, 연합사, 군수사, 교육사 등[47] 예를 들어 전방 보병 사단 예하 말단 전투부대[48] 심지어 병역 비리 척결로 상류층 자제들의 병역 수행을 촉구하는 쪽에서조차도[49] 실제로 중소 국경 분쟁 당시 마오쩌둥은 900만 명의 병사가 유사시 집결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50] 노르웨이 같은 경우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의사 표현에 따른 대체복무마저도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모병제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인식이 일부 있는데, 이렇게 현역 자원 이용률이 10% 대로 적다 보니 대부분 군대 가기를 자원하는 사람들 위주로 병력을 충원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르웨이는 현역과 예비역(Home Guard) 중에서 하나만 복무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예비역을 택한 사람들(예를 들면 아쿠아의 보컬 레니)은 징집인원에서 집계되지 않는다.[51] 반대로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닿고 있는 핀란드는 북유럽 국가답지 않게 여성 징병제가 없고 남성만 징병하는 데다 징병율도 80%가 넘어가고,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까지 거부하면 친히 감옥으로 보내는 등 빡빡한 징병제를 시행 중이다. 노르웨이랑 스웨덴은 핀란드를 방패막 삼아 놀고 있는 셈이다.[52] 예를 들어 정치인 황교안담마진을 사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으나, 2019년 현재는 같은 질병을 갖고 있어도 현역으로 간다.[53] 사도 바오로는 신약성서에서 예수 사후 내용 중 70% 가까이 되는 분량을 혼자 먹어버린 능력자인데, 그 이유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여타 사도들이 로마 외곽이나 아예 국외에서 전도해야 했던 것과 달리 사도 바오로는 박해나 탄압의 걱정 없이 마음놓고 로마 내국에서 활개를 칠 수 있었다.[54] 재밌는 점은, 모병제미군에는 대학 학자금 지원을 노리고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몇몇은 ‘돈이 없어서 입대하게 되는 모병제나, 돈을 내고 면제받는 징병제나 사실상 똑같은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그러나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과 아무런 혜택도 없이 인생의 18개월을 버려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거니와, 미군은 한국군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은 대우를 군 내외에서 받는다.[55] 실제로 대한민국의 군 가산점이 이 논리로 폐지됐다.[56] 하지만 다른 징병제 국가의 대체 복무 제도와는 차이가 크며, 사회복무요원이 다른 나라의 대체 복무 제도와 비슷하다.[간체]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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