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서는 1948년 이전의 한국 역사에서의 징병제를 포함한 병역 제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1948년 이후 한국의 병역 제도 중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징병제에 대한 내용은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문서
, 북한의 징병제에 대한 내용은 징병제/북한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
한국 역사 중 고대 이래 분단 이전 한국의 병역제도를 다룬 문서. 한국 역사에서 일제강점기 이전의 병역은 군역(軍役)으로 부른다.2. 삼국시대
3. 후삼국시대
4. 고려시대
5. 조선시대
태종과 세종 시기였던 1400~1450년경에 사병 제도를 폐지하고 정군과 봉족으로 바뀌었고, 16세부터 59세까지(16세 이상 60세 미만)의 양반 계급, 평민을 대상으로 군역의 의무를 부과했다. 이 조선의 군역제도는 병농일치를 기반으로 했으며, 양반, 평민을 합쳐 양인으로도 불렀기 때문에 조선의 징병제는 양인개병제로도 부르기도 한다.질병, 장애를 제외한 사유로 군역이 면제된 경우는 관직에 근무하는 자(향리나 아전으로 불린 관직의 하급관리 포함), 왕족, 외척(왕가의 외가 친척), 향교의 학생, 노비를 포함한 천민이었다.
정군은 현역 군인과 동일하며, 봉족(奉足)은 군포라는 이름으로 현역 군인에게 필요한 재물을 바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1464년 봉족제를 보법으로 개편하면서 봉족이 보인(保人) 제도로 바뀌었다.
6.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군정기
일제강점기 하의 조선에서 시행된 징병제의 근거가 되는 제도에 대한 내용은 징병제/일본 문서 참고하십시오.
징병제를 제외한 다른 제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일본 본토에서도 적용되는 법과 제도가 시행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징병제는 식민지가 된 해인 1910년부터 일본 제국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인 1943년까지 조선인은 일본 제국 징병제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이 식민지 조선인에 대해 심한 불신감과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했을 때의 우려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우려는 조선인의 정치적 발언권이 강화되고,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집단으로 무장 탈영하여 항일단체에 가담할 가능성을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던 1938년에 육군특별지원병 제도에 의해 조선인도 지원시 일본군에 입대할 수 있게 되었고, 1943년 일본 병역법의 개정으로 조선인 남성에게도 일본 제국의 병역의무를 부과해 조선인 남성도 일본 제국의 징병 대상자가 되었다. 이에 따라 1944년 4월 1일부터 8월 20일 사이에 처음으로 조선인 남성에 대한 징병검사를 실시했으며, 이들은 일본제국이 패전할 때까지 일본군에 징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