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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16:00:03

징병제/반대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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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관 병무청(대한민국) · 역정서(대만) · Selective Service System(미국) · 중화인민공화국 국방부 징병판공실(중국)
관련 제도 병역법 · 병역제도 · 병역제도/한국역사 · 징병제 · 징병제/시행현황 · 징병제/폐지현황 · 모병제 · 대한민국의 모병제 도입 찬반 논쟁 · 병역판정검사 · 장애인 징병 · 여성 징병제 · 징집소집통지서 · 대체복무 · 국방세 · 군가산점 제도 · 병역기피자 공개제도
관련 문서 병영국가 · 군국주의 · 반군국주의 · 군사화 · 병역기피 · 양심적 병역 거부 · 병역비리 · 징병제/반대활동 · 군백기
관련 사건 Fuck the Draft · 뉴욕 징병거부 폭동 · 혈세잇키 · 병역문제대책위원회 사건 ·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 · 2016년 대한민국 대체복무 폐지 논란 · 2022년 뇌전증 병역비리 적발 사건 }}}}}}}}}


1. 개요2. 형태와 특징3. 사례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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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nti-conscription movement

징병제를 반대하는 활동으로 징병제에 대하여 반대하는 활동으로 징병제 특유의 단점 때문에 생기는 활동이다. 주로 징병 당사자가 주로 활동하며, 아래와 같은 원인으로 일어난다.

2. 형태와 특징

합법적 범위 안의 활동이 허가받은 집회 또는 시위 뿐이며, 징병제를 반대하기 위한 활동 특성상 징병제 국가 기준으로 합법적이지 않은 활동, 즉 불법적인 활동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1] 이는 징병제를 반대하기 위한 활동 특성상 징병제 반대활동가이면서 징병대상자인 사람[2]징병이나 지원 상관없이 입대를 거부병역법을 위반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징병제는 당연하게도 개악으로 간주된다. 이들은 병역법 위반으로 받게 되는 처벌은 당연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3. 사례

3.1. 한국

한국 역사에서 징병제와 관련된 활동이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된 사례를 제외하면 찾을 수 없으며, 징병제 반대와 관련된 활동을 찾기 힘들다. 일제강점기8.15 광복 이전에도 이러한 사례를 찾기 힘들며, 광복절과 남북분단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실효 통치지역인 남한에서는 독재정권 하에서 일어난 반독재 시위 등은 있었어도, 군과 관련된 시위 중 징병제를 목표로 한 시위는 없었다. 징병제와 관련된 항의사건이라고 해도 1979년 병역문제대책위원회 사건이 있었지만 이 사건도 징병제 반대가 아니라 독재정권이 징병제를 이용한다는 것에서 일어난 항의사건이다. 1980년대 역시 징병제 반대와 관련된 시위는 없었고, 시기의 군과 관련된 시위는 반미성향의 운동권 학생을 중심으로 한 문무대 입소훈련과 전방입소훈련을 미제 용병교육, 양키 용병교육이라고 말하면서 반대하는 시위 정도만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최초의 정치적 병역거부자인 오태양이 등장하고, 반전주의와 평화주의를 내세운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한다.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평화운동 단체들이 결성되에 진보진영 일각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이어지게 된다.

이들의 운동은 2018년 대체복무제 실현으로 첫 결실을 거두게 되었지만 대체복무제의 형태 때문에 이 역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도 병역거부 운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들 외에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평화운동/시민운동 계열 단체들이 반군사주의/반징병제 관련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5]

2020년대 들어 서울에서 징병제 폐지, 강제 예비군 훈련 및 민방위 폐지, 사회복무요원 폐지, 군 복무자에 대한 배상(전역 군인 공무원 할당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 2020년과 2021년에는 징병제 폐지를 요구하는 단체인 모병제추진시민연대의 회원들이 헌법재판소병역법 제88조 제1항[6]을 비롯한 9개 조항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징병제 반대 단체 대표들이 생겨나고 있다.[7]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게 신경이 쓰일지도 모르겠지만 위 영상에 나온 사람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룰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평화가 오고 나서야 모병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모병제를 해야 평화가 온다고 주장한다. 즉 국군이 병력 수를 줄이면 그만큼 적국도 군 감축을 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이들은 징병제로 청년들을 죽여가는것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 때문에 모병제 안 된다는 의견도 이들 앞에서 당연히 통하지 않고[8] 여성징병제(양성징병제)는 징병제의 강화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정의당 심상정의원, 배진교 국회의원과의 면담도 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파일:병무청금지한글1.png 파일:병무청금지한글2.png
병무청 금지 표지판 그림(2016년 이후 한글 로고)
파일:병무청금지영문1.png 파일:병무청금지영문2.png
병무청 금지 표지판 그림(2016년 이후 영문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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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 금지 표지판 그림(2016년 이전 로고)
파일:굳건이금지1.png 파일:굳건이금지2.png
파일:굳건이금지3.png 파일:굳건이금지4.png
굳건이 금지 표지판 그림
파일:힘찬이금지1.png 파일:힘찬이금지2.png
힘찬이 금지 표지판 그림

이러한 징병제 반대와 관련해서 병무청 금지, 굳건이 금지, 힘찬이 금지 표지판 그림까지 나올 정도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체제 특성상 시위가 일어날수 없는 구조라서 징병제를 목표로 한 시위도 없다.[9]

3.2. 미국 (1973년 폐지)

미국은 남북 전쟁 시기인 1863년 뉴욕시에서 일어난 뉴욕 징병거부 폭동이 있었으며, 베트남 전쟁 시기에 Fuck the Draft로 대표되는 병역거부 운동이 있었다.


파일:애리조나 턱슨 징병제 반대 시위.jpg

베트남 전쟁 시기 애리조나 주 투손에서 벌어진 징병제 반대 시위

3.3. 일본 (1945년 폐지)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3년에 징병제를 실시[10]했는데, 이 당시에는 평민은 물론이고 기득권층이던 무사 계층에서도 징병제를 반대했다.

당시 실시된 일본 제국의 징병 대상자는 평민이었다. 농민이 죽창, 낫 등으로 무장봉기하여 징병사무소 등의 관청을 습격하고 학교를 방화하거나 파괴하는 등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형태로 징병제를 반대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1873년에 벌어진 혈세잇키이다.

징병제가 실시되기 시작하던 당시 기득권층이던 무사 계층은 평민은 용맹한 전사가 될수 없다는 이유로 징병제에 반대했으며, 징병제 실시 이후 제대한 무사 계층의 불만으로 세이난 전쟁이 일어났다.

3.4.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4년 폐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되던 시절에 백인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했는데 1980년대에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징병제 반대활동까지 있었다. 당시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백인 징집병과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징병제를 반대하는 활동을 했으며, 당시 존재하던 징병제 종식 운동(End Conscription Campaign)이라는 단체가 남아공군의 탈영병도 지원을 했다.

3.5. 이스라엘

2003년 베냐민 네타냐후의 조카인 요나탄 벤 아르치(Jonathan Ben-Artzi)가 정치인 친인척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하다 처벌된 사례가 있다. #

예루살렘에서 징병제에 반대하는 원리주의 유대인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

3.6. 중화민국

2013년 중화민국 타이페이에 10만명 이상이 모여서 징병제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3.7. 스페인 (2001년 폐지)




2001년까지 징병제가 존재하던 스페인은 인수미시온 운동(Movimiento insumiso)이라는 징병제 반대활동이 있었는데, 1970년대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 단체가 생긴 후 스페인에서 징병제 반대활동이 있어왔다. 1989년에는 스페인어로 불복종을 의미하는 단어인 "인수미시온"(Insumisión)으로 칭해 인수미시온 운동으로 이어져 인수미시온은 스페인의 징병제 반대활동과 관련된 단어로도 알려졌다.

4. 관련 문서




[1] 사실 반대활동과 관련된 것에서 불법적인 활동이 수반되는 경우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의 요건에 해당되는 경우도 있으며, 폭동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2] 징병제 국가의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북한처럼 여성까지 징병하는 국가를 제외하면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에 징병대상자인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다.[3] 국적이 징병제 국가만으로 되어있는 복수국적인 경우와 대한민국 등 징병제 국가 국적에 싱가포르 영주권자인 경우에는 제외한다. 이는 징병제 국가만으로 되어 있는 복수국적자인 경우에는 인종이나 다른 사유로 징병면제판정을 받을 수 있어도 어느 한 나라에서는 징병 대상자로 판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속 국가에서 전부 징병면제를 받을수 없고(주로 인종에 따른 징병면제 제도가 없는 경우) 징병대상 연령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징병면제사유 없이 징병 대상자로 판정받은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 두번 또는 그 이상 군복무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싱가포르의 징병제가 자국 국적자 뿐만 아니라 영주권자에게까지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4] 실제로 후술할 모병제추진시민연대는 징집소집통지서도 파기하고 굳건이도 대놓고 4월20일(장애인의 날)에 화형시킬정도로 과감하게 징병제 반대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언젠가 힘찬이도 이 단체에 의해 처형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체가 모병제 해야 나라가 산다라는 도서를 발간한 이후로는 정말 필요할시에만 시위를 한다고 밝혔다.[5] 이 영상은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이 참여한 군대부실급식비판 및 샤워금지 시위 영상이다. 국방부에 돈이 없어서 모병제 못한다는 것에 대해 정면규탄 하고 있으며 전쟁중인 이라크, 시리아 같은 나라도 모병제라 언급하면서 이보다 평화로운 한반도가 모병제를 못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6] 입영거부자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하는 조항이다.[7] '강제징용 반대', '징병거부 운동연합', 그리고 이들 모두가 연대한 단체인 '모병제 도입 청년운동본부' 등 다양한 단체들이 징병제 폐지를 외치고 있다.[8] 북한이 존재할 수록 모병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9] 탈북자, 북한 인권단체, 징병제 반대활동가가 대북전단을 통해 북한의 징병제를 반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 방법은 아래의 징병제 반대 포스터를 통한 방법으로 기구를 통해 날리거나 남한 기준으로 한강 하류, 인천 강화군 교동도나 석모도 등지에서 빈 페트병에 북한 징병제를 반대하는 포스터를 넣어 대북전단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파일:디씨갤북한징병제반대포스터.png
이 포스터는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모 비회원이 만든 북한의 징병제를 반대하는 포스터로 바꿔 만든 것으로 원본은 북한의 반미 프로파간다 포스터이다. 원본 포스터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먼저 바꿔 만들었는데 자유복한운동연합에서 북핵 반대 포스터로 바꿔 만들어 대북전단으로 사용되었다. 만약 북한 징병제를 반대하는 대북전단을 북한에 살포하면 북한 정권이 다른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을 비난할때와 마찬가지로 남한 정부 뿐만 아니라, 북한 징병제를 반대하는 징병제 반대활동가와 징병제 반대단체를 비난, 비방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 주민이 조선인민군 복무를 거부하자는 내용의 징병제 반대포스터와 대북전단에 영향을 받아 징병제 반대활동을 실제로 하면 군사복무 기피 뿐만 아니라 징병제 반대활동 자체가 반국가적 행위로 몰려 주동자와 참가자는 북한 형법에서 정한 죄로 최고 사형(국가전복음모죄의 최고형)에 처할수 있다.
[10] 센고쿠 시대에도 일본은 모병제였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선을 침략할 병력을 모으려고 징병제를 실시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징병제를 폐지했다. 공교롭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할 때만 징병제를 했다.[11] 모병제추진시민연대랑 연계된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