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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國民國家 / Nation state근대 국가의 형태 중 하나로, 하나의 네이션(nation)이 거주하는 국가를 말한다. 대한민국도 국민국가라 할 수 있다.
2. 상세
2.1. Nation
Nation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는 국가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인구 집단의 뜻으로 쓰일 때에는 의미가 다소 복잡하다. 이 경우 국민(한 국가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할 때도 있지만, 에스니시티(혈통, 역사, 종교, 문화 등으로 구성될 수 있는 단일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를 지칭할 때도 있다. 전자는 시민 내셔널리즘 전통에 기반하며, 후자는 에스닉 내셔널리즘(소위 '민족주의') 전통에 기반한다.여하간 네이션은 '국가'라는 뜻도 있기에 '인구집단'의 뜻 역시 '국가'와 결부되어 있기는 하지만, 바로 '국민'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메리엄웹스터의 nation에 대한 정의는 동질적인 유래, 전통과 언어를 지니고 국민국가를 수립할 여건이 되거나 이미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되어 있는데,[원문] 이는 앞서 제시한 두 의미의 절충안으로 볼 수 있다.
예시로 미국 서부의 Navajo Nation은 국가가 아니며, 벨기에는 엄연한 국가이지만 Belgium Nation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이 정의에 따르면 '인구집단'으로서 미국 Nation을 정의하긴 어려울 수는 있으나 '국가'의 의미로서 미국에서 'national league' 등의 단어는 흔히 쓰이고 있다.
2.2. Nation State
Nation state는 상술했듯 nation에 명확하게 부합하는 한국어 단어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Nation의 국민이라는 의미를 살려 국민국가로도 번역할 수 있고, 에스니시티라는 의미를 좀 더 살려 민족국가로도 번역할 수 있다.서양에서는 nation state가 주로 국민국가의 뜻으로 쓰이며, 이는 봉건국가적 요소를 탈피하고 국민주권(national sovereignty)을 실현한 국가(state)라는 뜻이다.[2] 반면,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nation state가 실제 용례를 보면 주로 민족국가의 뜻으로 쓰이며, 이는 특정 에스니시티의 국가라는 의미이다.
국민국가가 프랑스 혁명 이후 권력이 귀족에게서 인민대중으로 옮겨지면서 탄생했다면, 민족국가의 개념은 유럽에서는 언어적,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있는 지역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생겨났고 동아시아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문화적, 역사적 동질감을 가진 지역들이 발전하면서 일찍이 형성됐다.[3]
한국에서는 실제 용례와는 달리 nation state를 학술적으로 국민국가라고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민족국가라 번역하는 경우, 문제는 ethno-state도 민족국가라고 번역하기에 혼동을 빚을 수 있다. 따라서 본 문서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번역어인 국민국가를 사용한다.
3. 역사
봉건제 사회의 중세 유럽에서 영토와 국민은 귀족들의 재산에 불과했다. 실제로 계몽시대가 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귀족과 왕실의 결혼관계에 따라 국경선이 바뀌기도 했다. 귀족들은 국가가 아닌 쌍무적 계약관계에 따라 자신이 충성하기로 되어있는 군주에게 충성을 했고, 기사들은 조국과 백성들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따라 진영을 쉽게 바꾸었다. 이러한 경향은 동양과는 매우 다른 모양이었는데, 유럽과 아랍 외의 지역에서는 에스니시티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않던 시절에도 어느정도 에스니라는 정체성이 존재한 반면, 이 두 지역에서는 종교(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 아랍에서는 이슬람교)가 국적이나 개인이 향유하는 에스닉 문화를 초월했기 때문에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깨지게 된다. 그 전에 영국에서 1688년에 명예혁명이 터짐으로써 기존 봉건적인 왕정이 주도권을 잃고 근대적 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명예혁명은 귀족과 젠트리 중심의 상류층에 의한 혁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기에 이 혁명이 국민주권이란 개념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은 인민대중들로부터 시작되어[4] 국민주권이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었고, 1804년에 나폴레옹의 제정이 세워질 때는 확고히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프랑스 시민들에게 보편화되었다.
프랑스가 국민국가로 가장 먼저 발돋움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유럽의 각 에스니시티 중, 영국과 함께 가장 먼저 가까운 문화권에 해당하는 지역들을 흡수해서 에스닉 내셔널리즘을 발흥시킬 수 있던 여건을 충족하고 있었고, 이미 공교육 제도를 활용하여 국민들의 동질성과 단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국민국가가 된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유럽 최초의 국민군을 이용하여 전 유럽을 석권했는데, 봉건적인 체계로 인하여 참패한 다른 국가들은 국민국가와 봉건국가의 체제적 격차를 실감하게 되었고, 프랑스 군대에 의해 에스닉 내셔널리즘이 퍼져서 차츰차츰 다른 유럽의 국가들도 국민국가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국민국가란 개념은 작위적인 단위로 나뉘어져 있던 국가들을 에스니시티 단위로 재편하여 하나 혹은 몇 개의 에스니시티들을 하나의 국민국가로 묶어 버렸고, 에스닉 내셔널리즘, 자본주의, 산업 혁명의 힘으로 유럽의 국민국가들 중에 규모가 있던 국가들은 제국주의로 나아가기도 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와 벨 에포크 시대는 국민국가들의 절정기였는데, 이 시기에 국민국가의 개념에서 국민주권보다는 에스닉 내셔널리즘이 강조되었고 이는 근현대사의 많은 비극을 불러왔다. 이 시기는 봉건적 사고방식이 유지되었던 최말기이자 에스닉 내셔널리즘이 모든 가치를 뛰어넘어서 올라가던 때였는데, 결국 국민국가가 보편화되자 각 에스니시티들은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사고로 자신들의 국민국가 혹은 에스니시티에 충성하여 세계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에스니시티의 강조로,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여러 에스니시티로 구성된 국민국가인 다민족국가들은 에스니시티 단위로 쪼개지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진행된 이유는 봉건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진행되던 와중에 국가를 통일시켜야 하는 나라들(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이나 후발주자들(일본 제국, 중화민국, 대한제국 등)은 국민국가로 진행할 때, 국민주권적 요소보다는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요소를 강화하여 국민 중심이 아닌 에스니시티 중심의 국민국가를 건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전자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인 독일 제국은 오랜 시간 분열되어 있었던 탓에 각 지역의 괴리감이 커서 국민주권적 요소를 거의 다 버리고 강렬한 에스닉 내셔널리즘으로 국민들을 묶었다. 이는 분명 독일민족의 통일을 제공했지만, 독일인들은 이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애국심을 통제하지 못한 탓에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킨 원흉이 되기도 했다.
- 후자의 예시인 동양 국가들은 이미 제국주의를 행하는 서구 열강들에게 침략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 열망은 자신들의 군주를 타도해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침략하고 동포를 수탈하는 외세와 싸우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미 오랜 중앙집권과 통일된 에스니시티를 가졌기에 당시 서구 열강의 침탈 하에서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열기가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국민주권이란 것도 국가가 있어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이들 지역은 오랜 종교통치를 겪은 바가 없었기에 왕정들이 어느 정도 민권과 타협하고 있었서 왕정을 굳이 끌어내릴 필요도 없었다.[5] 이처럼 이들은 이미 민본주의라는 국민국가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 중심 국민국가로의 진행을 생략하고 에스니시티 중심 국민국가로 발돋움하여 근대국가로 나아가려고 했다.
어쨌거나 국민국가가 보편화된 시점인 벨 에포크 말에 세계는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열기가 지배했다. 상술했듯 이는 다민족국가들을 위협했는데, 특히 여러 주요 에스니시티와 타협해가면서 겨우 국민국가적 요소를 확립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국민주권은 흉내내는 수준이었으나 에스닉 내셔널리즘을 튀르크인들에게 주입하여 겨우 제국을 유지하던 오스만 제국같은 다민족국가들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다민족제국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범에스니시티적 전쟁에서 패배한 뒤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결국 1차 대전과 2차 대전 이후에는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더이상 다민족국가라는 개념을 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다민족지역은 에스니시티적 분쟁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전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렇게 유럽이 국민국가로 발전한 뒤 에스니시티 중심 국가관이 지배하게 되어서 에스닉 내셔널리즘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안, 동양은 오랜 세월 이미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요소가 발전해온 지역인 만큼 다른 과정 없이 바로 근대산업국가를 지향하여 기존의 에스니시티 중심 국가를 근대화시키는데 주력했고, 이를 통해 국민국가 형성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끝낼 수 있었다. 냉전 이전에는 대표적으로 일본 제국이 있었고 냉전기에는 대한민국이 있었다.
21세기 현재, 부족 중심의 정치관이 너무 강한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국민국가란 개념은 당연한 개념이 되었다. 탈냉전기 세계화와 맞물려서 국민 중심, 에스니시티 중심의 국민국가관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 그에 반발해 국민국가 관념을 고수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뚜렷해졌다.
4. 국가별 양상
4.1. 유럽
국민국가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유럽 지역은 세 가지의 방향을 가지고 변화해 왔다.- 먼저 프랑스와 영국처럼 혁명을 통해 발전할 기회를 선행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국민국가의 개념을 정의해나가면서 천천히 발전할 여유가 있었던 곳은 국민주권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여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었다.
-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처럼 오랜시간 분열되어 있던 곳은 국민주권을 확립하는 것보다 통일을 해서 체급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국민주권의 개념은 법리상의 개념으로 두고 에스닉 내셔널리즘을 중심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하려고 했다. 이들 국가는 봉건왕정 이후의 절대군주정의 요소가 강하게 남아서 국민주권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늦었기는 하지만 에스닉 내셔널리즘적 요소를 확립하기 위한 공교육 제도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폴란드, 헝가리, 체코처럼 다민족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에스니시티들은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우선적이었으므로 근대가 시작되었을 때, 에스닉 내셔널리즘 위주로 빠르게 정신무장을 했으며, 이들이 독립국가를 세웠을 때, 국민주권적 요소를 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이들이 자신들을 지배한 이민족 정부를 타도한 것은 프랑스나 영국의 봉건왕조를 타도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냈으므로 이들은 독립 직후 곧바로 국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한편, 동유럽 및 발칸 반도 국가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에스닉 내셔널리즘을 대신하여 국민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동구권 국가들은 공산주의 이념에 기반한 국민국가를 세웠는데, 냉전 시대에는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이념이 국민들을 묶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나, 이념 대립의 시대가 끝나자 공산주의는 에스닉 내셔널리즘으로 대체되었고, 그들의 국가는 개별 에스니시티 단위로 해체되었다. 대표적으로 소련과 유고슬라비아가 있다.
4.2. 아랍권
아랍권에서는 튀르키예를 제외하고는 에스닉 내셔널리즘이 발전하지 못했다. 다른 지역의 무슬림들이 에스닉 내셔널리즘과 이슬람을 어느정도 조화시킨 것에 비하여 이 지역은 이슬람교가 너무 강세여서 에스닉 내셔널리즘이 국가를 지배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랍은 에스닉 내셔널리즘+세속주의 세력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간의 알력다툼이 주를 이루었다. 그나마 냉전 시대에는 세속주의 공화국들이 우세했으나, 탈냉전 후, 미국이 아랍을 민주화시키겠다고 세속주의 국가들을 압박하거나 무너뜨리는 삽질을 하는 바람에 상당수의 아랍 국가들(리비아, 이라크, 이집트 등)에서 정세 혼란이 가중되고, 이슬람근본주의가 우세를 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6]4.3. 동아시아
이미 에스니시티 정신이 강했고, 민본주의적 왕정으로 국민국가적 요소를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근대국가 창출이 시대의 과업이었다.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제국만이 제국주의 열강 자리를 얻었고, 실패한 조선, 베트남[7] 등은 식민지 시기를 겪고 해방된 이후 근대화되는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 중국 등이 선진 공업화를 달성하는 등, 유럽에 못지 않은 국민국가 지역으로 발돋움했다.4.4. 아메리카 대륙
아메리카 대륙은 국민국가(nation state)로서 발돋움했지만, 특이하게도 유럽으로부터 여러 에스니시티들이 이민을 오게 됨에 따라 다민족국가가 형성되었고 에스니시티 중심 국민국가로 바뀌지는 않았다. 즉, 이 지역의 네이션(nation)은 상술한 의미 중 시민 내셔널리즘 전통에 기반한 국민(한 국가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뜻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국가들은 국민국가이면서 에스니시티 중심 국민국가는 아닌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다.북아메리카는 이를 잘 활용하여 큰 발전을 이룩했으나, 남아메리카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몰락했다.[8]
5. 관련 문서
[원문] a people having a common origin, tradition, and language and capable of forming or actually constituting a nation-state[2] 실제로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national sovereignty를 검색하면 Nation State 문서로 리다이렉트 된다.[3] 다만 동양에서 민족국가가 개념화된 것은 서구에서 에스닉 내셔널리즘이라는 정형화된 이론이 들어온 이후다. 이러한 문제로 동아시아에서 오랜시간 민족국가를 형성했던 민족들도 민족국가 형성을 근대 시대부터로 치는 경우가 있다.[4] 물론 부르주아와 귀족 간의 알력다툼이라는 주장도 있다.[5] 특히 한자문화권은 과거제를 실시하여 근대관료제와 비슷한 체계적인 관료제를 만들어낸 이후다. 조선만 하더라도 지배층은 귀족이 아니라 지식인 계급인 사대부였다.[6] 그나마 이라크와 이집트는 안정이라도 되보기라도 했지, 리비아는 현재에도 정세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7]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에 가깝다.[8] 남미 국가들은 카우디요 등 토지에 기반한 전통적 지주 계급의 주도하에 독립을 달성했기에 탈식민화 이후에도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지키기 위해 토지개혁을 저지하여 산업화에 발목을 잡은 것이 몰락의 요인이 되었다. 또한 잦은 군부 쿠데타로 정치적 혼란까지 야기되어 장기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웠다는 점 역시 발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