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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국 Empire français[1] French Empire | ||
<rowcolor=#fff> 국기 | 국장 | |
1804년 5월 18일 ~ 1814년 4월 11일 1815년 3월 19일 ~ 1815년 6월 22일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프랑스 제1공화국 | 부르봉 왕정복고[2] | |
국가 | 출발의 노래 (Chant du départ)(공식) 제국의 안녕을 보우하자 (Veillons au salut de l'Empire)(사실상) | |
위치 | 서유럽 대부분과 중부유럽 상당 부분 (진한 초록: 제국 본토, 연한 초록: 속국 및 동맹국[3]) | |
수도 | 파리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입헌군주제[4] | |
국가원수 | 황제(나폴레옹 1세) | |
언어 | 프랑스어, 라틴어[5] | |
종교 | 가톨릭 | |
민족 | 프랑스인을 비롯한 각종 유럽인 | |
주요사건 | 1804년 5월 18일 - 프랑스 상원의 나폴레옹 황제 추대, 헌법 채택 1804년 12월 2일 -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식 1806년 11월 21일 - 대륙 봉쇄령 발표 1807년 7월 7일 - 틸지트 조약 체결 1812년 6월 24일 - 러시아 원정 1814년 4월 11일 - 퐁텐블로 조약으로 1차 멸망 1815년 3월 19일 - 백일천하 1815년 6월 22일 - 나폴레옹의 퇴위 선언, 제국 멸망 | |
통화 | 프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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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룩한 제국.프랑스 제국이라고 하지만 나폴레옹 한 사람이 활약해서 만든 제국이니만큼 통상 나폴레옹 제국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나폴레옹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스스로 황제관을 쓰고 즉위한 1804년에 시작되어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난 1814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815년의 백일천하가 잠깐 있었지만 워털루 전투로 인해 완전히 멸망했다.
2. 역사
2.1. 탄생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세운 눈부신 공적을 바탕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통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한 뒤 스스로 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마렝고 전투와 아미앵 조약을 통해 적대국과의 평화 협정 체결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1802년 자신의 종신 통령 즉위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투표 결과 찬성 300만 표 반대 8,000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종신 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며 이후 1804년 4월 18일 프랑스 제1공화국의 상원이 나폴레옹에게 황제 자리를 수여하는 안건을 비준하면서 12월 2일 나폴레옹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제1제국의 탄생이다.2.2. 전성기
거칠 것 없는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위세에, 바이에른 왕국, 바덴 공국, 뷔르템베르크 공국과 같은 신성 로마 제국의 주요 제후국들조차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체결하고 라인 동맹의 일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외교 상황은 프랑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재집권한 영국의 총리 소(小) 윌리엄 피트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게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유럽으로 전염되는 것을 막자'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었다.이에 나폴레옹은 군사적으로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통해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붕괴시키는 한편으로, 외교적으로는 네덜란드와 나폴리 등 유럽 곳곳에 자신들의 피붙이와 믿을 만한 부하 장수들을 왕으로 부임시켜 이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또한 기존의 선제후가 대거 사라졌다는 이유로[6]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선제후로 대거 임명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노렸다. 한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독일 내 투톱인 프로이센 왕국을 프랑스 편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한 반감은 독일 내에서 점차 확산되어 갔고, 1806년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7]을 맺고 라인 동맹에 가입한 바이에른 왕국을 침공하는데, 프로이센군은 개전 후 불과 1달도 안 돼서 수도 베를린까지 털려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틸지트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 및 군비 제한 조치를 당하고 만다.
또한 틸지트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한다. 동맹의 조건은 프랑스가 러시아의 오스만 제국 침공을 묵인하는 대가로 러시아는 프랑스가 주도하는 대륙 봉쇄령을 성실히 이행할 것. 당시 러시아 황제는 혁명을 이단이자 사탄과 동일시하기 전이었고 거기에 프로이센과 다르게 러시아에겐 패전의 대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후한 조약이었기에 무리없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유럽 대륙의 강자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모두 영향권에 넣어둔 프랑스의 국력은 그 당시엔 절정인 것처럼 보였다.
한편 북이탈리아에는 교황령 및 기타 군소 공국들을 싹 다 통합하여 괴뢰국인 이탈리아 왕국을 세운다.
2.3. 쇠퇴기
그렇지만 절정기라고 보이던 바로 그 순간에 몰락이 시작되었다.나폴레옹이 정복욕은 끝이 없었고, 포르투갈이 대륙 봉쇄령에 참가하지 않는 것을 빌미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발발한다. 현지의 게릴라 저항 세력과 이들을 후원하는 영국에 의해 반도 전쟁에서 프랑스군은 고전을 계속하고, 이렇게 프랑스군의 주력이 이베리아반도에서 발목이 잡히자 겉으로는 나폴레옹에게 평정당한 듯 했지만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중/동부 유럽에서 다시 반 프랑스의 움직임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삽시간에 관광태우며 아직까지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한편, 후계자를 얻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마리 루이즈를 아내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이미 프랑스의 인적 동원 능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1805~1814년 동안 무려 150만 명 이상의 프랑스 청년들이 징병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죽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건장한 청년들을 군사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가 생산력이 감소한다. 그걸 막기 위해 나이대가 안 맞는 인원을 동원할 경우 병력의 질의 저하를 가져왔다.
그런 와중에 러시아가 영국, 스웨덴과 연합해서 나폴레옹에게 반항을 시작한다. 이에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패였다. 러시아에서의 참패로 다시 고무된 프로이센이 대 프랑스 동맹에 재가담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공주인 마리 루이즈의 안위를 걱정해서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이지 대놓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다. 한편 전쟁에 지친 프랑스 내부에서도 나폴레옹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미 러시아 원정이 한창이던 1812년 12월에 파리에서 쿠데타 기도가 있었으며, 징집에 반항하는 움직임도 거세졌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먼치킨인 자신의 군사적 능력으로 어떻게 어떻게 군대를 재건하고 대프랑스 동맹군들을 몰아붙였지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의 참패로 1814년이 되자 이제 나폴레옹은 이전과는 정반대로 동맹군의 프랑스 침략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고, 결국 파리가 함락당하고 만다. 이후 나폴레옹은 1814년 4월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2.4. 멸망
그렇게 나폴레옹을 대체할 인물로 루이 16세의 동생이 루이 18세로 즉위했지만 나폴레옹과 현저히 차이나는 카리스마와 대혁명 이전으로의 완전 복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혁명과 제국으로 수립된 신질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정책으로 나폴레옹 몰락 시기에 얻은 지지층을 잃고 반대파를 양산했다.[8] 대프랑스 동맹 측도 나폴레옹이라는 타도할 대상이 사라지자 빈 회의에서 각자의 이권을 챙기려고 신나게 쌈박질만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이듬해인 1815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다시 정권을 장악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프로이센-네덜란드 동맹군에게 패하고 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백일천하. 그리고 이로써 프랑스 제1제국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3. 사회
4. 영향
11년간 존재했던 나라지만, 세계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름만 제국이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을 복속시킨 유럽의 패권국이었고, 프랑스 혁명 사상의 전파 등 세계의 역사적 흐름을 아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마 제국 이후로 유럽을 통일할 뻔했던 유이한 제국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역사의 흐름으로 권력에 오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제국을 세운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그 덕에 프랑스 혁명의 불길이 잠재적으론 유지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쑤셔놓은 전 유럽에는 나폴레옹 법전이 퍼지고 이 법전은 현대 대륙법 체계의 기본적 밑받침이 되었고 이후 영미법 체계 나라들(영국과 그 식민지였던 나라들 대부분)을 뺀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코르시카 출신의 군인이 황제가 되었으므로 '군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프랑스 혁명의 잔불꽃과 묘하게 얽혀 유럽에 혁명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 더불어 프랑스에서 도입된 미터법이 유럽으로 퍼지고 더 나아가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의 도량형이 통일되는 계기가 되었다.
-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란 개념이 확산된 것 또한 이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의 기초가 된 사상과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이 기반이 되어 프랑스라는 국민국가(Nation-State)가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9] 국가(nation)라는 이름 아래 국민들이 일치단결한 근대적 국민국가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낀 유럽인들은 자신들 역시 국민국가를 성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프랑스에게 점령당한 독일인들을 보며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가 작성한 '독일 민족에게 고함'이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통일, 이탈리아 통일은 모두 나폴레옹이 유럽에 뿌린 씨앗이 맺은 최종 결실이며 이 과정을 거쳐 유럽은 민족 아래 하나로 뭉친 국민국가들로 합산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발칸반도 내의 그리스인,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등의 다양한 민족들이 내셔널리즘을 내세우며 독립운동을 펼쳤고 각각의 국민국가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 국가들이 서로 이익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제1차 세계 대전이니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퍼뜨린 사상이 엄청난 결과물이 된 셈이다.
- 프로이센은 프랑스 제1제국에게 점령당한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게 되어 독일 통일의 발판을 간접적으로 다지고, 직접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수백 개의 독일 공국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주권을 행사하며 치고 박다가 수십 개로 통일되면서 독일 제국 통일을 이룩하게 된다.
- 세계적 질서인 메테르니히 체제가 정리되었다.
- 프랑스 국내에는 보나파르트주의(Bonapartisme)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효과를 그대로 받은 나폴레옹의 조카가 황제가 되고 프랑스 제2제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프랑스 제2제국과 함께 보나파르트주의도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프랑스는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5. 행정구역
제국의 최대 영토인 1812년경 행정구역. |
걸쳐있는 나라들만 하더라도 거의 카롤루스 왕조의 프랑크 왕국급 이다. 프랑스 본토는 물론 베네룩스 3국, 라인강 서쪽 및 프리지아를 포함한 독일 북서부, 스페인 북동부, 로마를 포함한 북이탈리아, 스위스 남부, 오스트리아 남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까지 포함된다. 또한 나폴레옹 제국의 고유 영토만 해도 이 정도인데, 나폴레옹 제국이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지역까지 합하면 거의 모든 유럽이 들어간다.
5.1. 130개의 데파르트망 목록
5.1.1. 기존 프랑스 왕국 영토 내의 데파르트망
앵 Ain | 엔 Aisne | 알리에 Allier | 아르데슈 Ardèche | 아르덴 Ardennes |
아리에주 Ariège | 오브 Aube | 오드 Aude | 아베롱 Aveyron | 바랭 Bas-Rhin |
바스잘프 Basses-Alpes | 바스피레네 Basse-Pyrènèes | 부슈뒤론 Bouches-du-Rhône | 칼바도스 Calvados | 캉탈 Cantal |
샤랑트 Charente | 샤랑트앵페리외르 Charente-Inférieure | 셰르 Cher | 코레즈 Corrèze | 코르스 Corse |
코트도르 Côte-d'Or | 코트뒤노르 Côtes-du-Nord | 크뢰즈 Creuse | 되세브르 Deux-Sèvres | 도르도뉴 Dordogne |
두 Doubs | 드롬 Drôme | 외르 Eure | 외르에루아르 Eure-et-Loire | 피니스테르 Finistère |
가르 Gard | 제르 Gers | 지롱드 Gironde | 오랭 Haut-Rhin | 오트가론 Haute-Garonne |
오트루아르 Haute-Loire | 오트마른 Haute-Marne | 오트손 Haute-Saône | 오트비엔 Haute-Vienne | 오트잘프 Hautes-Alpes |
오트피레네 Hautes-Pyrénées | 에로 Hérault | 일에빌렌 Ille-et-Vilaine | 앵드르 Indre | 앵드르에루아르 Indre-et-Loire |
이제르 Isère | 쥐라 Jura | 랑드 Landes | 루아르에셰르 Loir-et-Cher | 루아르 Loire |
루아르앵페리외르 Loire-Inférieure | 루아레 Loiret | 로트 Lot | 로트에가론 Lot-et-Garonne | 로제르 Lozère |
멘에루아르 Maine-et-Loire | 망슈 Manche | 마른 Marne | 마옌 Mayenne | 뫼르트 Meurthe |
뫼즈 Meuse | 모르비앙 Morbihan | 모젤 Moselle | 니에브르 Nièvre | 노르 Nord |
우아즈 Oise | 오른 Orne | 파드칼레 Pas-de-Calais | 퓌드돔 Puy-de-Dôme | 피레네조리앙탈 Pyrénées-Orientales |
론 Rhône | 손에루아르 Saône-et-Loire | 사르트 Sarthe | 센[10] Seine | 센에마른 Seine-et-Marne |
센에우아즈 Seine-et-Oise | 센앵페리외르 Seine-Inférieure | 솜 Somme | 타른 Tarn | 타른에가론 Tarn-et-Garonne |
바르 Var | 보클뤼즈 Vaucluse | 방데 Vendée | 비엔 Vienne | 보주 Vosges |
욘 Yonne | 총 86개 |
5.1.2. 영토 확장을 통해 새로 설치한 데파르트망
알프마리팀 Alpes-Maritimes | 레망 Léman | 몽블랑 Mont-Blanc |
딜 Dyle | 에스코 Escaut | 포레 Forêts[11] | 제마프 Jemmapes[12] |
리 Lys[13] | 우르트 Ourthe[14] | 상브르에뫼즈 Sambre-et-Meuse[15] |
되네트 Deux-Nèthes | 뫼즈앵페리외르 Meuse-Inférieure |
몽토네르 Mont-Tonnerre[17] | 랭에모젤 Rhin-et-Moselle[18] | 뢰르 Roer[19] | 자르 Sarre[20] |
아펭냉 Apennins[21] | 두아르 Doire[22] | 젠 Gênes[23] | 마렝고 Marengo[24] |
몽트노트 Montenotte[25] | 포 Pô[26] | 세시아 Sésia[27] | 스튀라 Stura |
아르노 Arno[28] | 메디테라네 Méditerranée | 옹브론 Ombrone[29] | 타로 Taro[30] |
롬 Rome | 트라시멘 Trasimène[31] |
부슈드렐브 Bouches-de-l'Elbe[32] | 부슈뒤베제르 Bouches-du-Weser[33] | 엥쉬페리외르 Ems-Supérieur[34] | 리프 Lippe[35] |
부슈드레스코 Bouches-de-l'Escaut | 부슈드리젤 Bouches-de-l'Yssel | 부슈드라뫼즈 Bouches-de-la-Meuse | 부슈뒤랭 Bouches-du-Rhin | 엥족시당탈 Ems-Occidental |
엥조리앙탈 Ems-Oriental | 프리즈 Frise | 이젤쉬페리외르 Yssel-Supérieur | 쥐데르제 Zuyderzée |
생플롱 Simplon[36] |
이 밖에도 1802년 수발피나 공화국을 합병할 당시 타나로(Tanaro) 데파르트망을 설치하였으나 1805년 이를 폐지하고 마렝고, 몽트노트, 스튀라 데파르트망에 분할, 편입시켰다.
5.2. 데파르트망 이외의 행정구역
130개나 되는 데파르트망을 설치한 프랑스 제1제국이었지만 하지만 데파르트망이 제국 전 지역에 설치된 것은 아니었는데 일부 지역의 경우 다른 형태의 행정구역을 운영했다. 또한 데파르트망을 설치하긴 하였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지역도 있었다. 카랭티 Carinthie[37] | 카르니올 Carniole[38] | 크로아티 시빌 Croatie civile | 크로아티 밀리테르 Croatie Militaire |
달마티 Dalmatie[39] | 이스트리 Istrie[40] | 라귀스 Raguse[41] |
부슈드레브르 Bouches-de-l'Èbre[42] | 몽세라 Montserrat | 세그르 Sègre | 테르 Ter[43] |
6. 군대
자세한 내용은 대육군 문서 참고하십시오.7. 대중매체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상, 게임 등엔 무조건 나온다.- Holdfast: Nations At War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 로블록스 게임 Blood & Iron, Guts & Blackpowder[44]
- 나폴레옹(영화)
[1] 프랑스 제국이라는 국명을 채택한 국가가 둘 있다 보니 이를 구분하기 위해 후대에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을 "Premier Empire françai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라틴어로는 Imperium Francicum이다.[2]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 남은 영토는 독일 연방, 스페인 왕국, 연합 네덜란드 주권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올덴부르크 대공국, 토스카나 대공국, 모나코, 중립 모레스네, 교황령으로 갈라졌다.[3] 자신의 심복이 다스리던 나폴리 왕국과 형이 다스리던 스페인 왕국, 자신이 의장이던 라인 동맹, 그리고 라인 동맹 구성국이던 작센 왕국의 동군연합국 바르샤바 공국까지 다양했다.[4] 백일천하[5] 이 2개 언어가 공식 언어였다. 그외에 제국 내에서 게르만어, 슬라브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됐다.[6] 18세기 말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팔츠 선제후 카를 4세 테오도어가 바이에른을 물려받았으나 비텔스바흐 가문의 한쪽 대가 끊겨 다른 한쪽이 물려받을 경우 황제 선출권을 1표로 제한하기로 결정한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팔츠-바이에른 선제후 1표로 통합되었고, 쾰른, 트리어, 마인츠의 세 주교선제후는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프랑스에 합병당하며 사라졌다. 또한 하노버 선제후는 프랑스와의 밀약으로 프로이센이 하노버를 합병하면서 사라져 버렸다.[7] 이것이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이다.[8] 그래도 루이 18세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동생인 샤를 10세는 혁명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여 결국에는 왕위에서 쫓겨났다.[9] Nationalism을 흔히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 데, 민족을 흔히 혈통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주로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개념이며, 유럽 정치사학계에서의 민족은 언어, 문화, 풍습 등을 공유하는 상상의 공동체이자 정치사회적 근대화의 결과물로 보는 경우가 많다.[10] 수도 파리가 여기 있었다.[11] 현재 룩셈부르크 일대.[12] 현재 에노. 이 지명의 현재 명칭은 Jemappes(주마프)이며, 에노의 하위 구역으로 존재한다.[13] 현재 벨기에 브뤼헤 일대.[14] 현재 벨기에 리에주 일대[15] 현재 뫼즈 강 유역[16] 리에주 주교령, 스타브로말메디 제국수도원령, 토른 제국수도원령[17] 현재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 일대. 한편 토네르는 독일 도너스베르크 봉#(독일 팔츠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유래하였다.[18] 현재 모젤 강 유역[19] 현재 독일 루르 지역 및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일대[20] 현재 독일 자를란트 주 일대[21] 아펜니노 산맥에서 따온 이름. 현재 이탈리아 리구리아 주 키아바리 일대.[22] 현재 이탈리아 발레다오스타 주의 도라 발테아 강 일대. 두아르 자체가 도라의 프랑스식 표기다. 도라 발테아 강은 포 강의 지류이기도 하다.[23] 현재 이탈리아 제노바 일대. 리구리아 공화국이 이 지방이었다.[24] 현재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알레산드리아 일대. 포 데파르트망과 같이 피에몬테주 이지만, 이 일대에서 일어난 마렝고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데파르트망.[25] 현재 이탈리아 사보나 일대.[26] 현재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 일대.[27] 현재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베르첼리 일대. 베르첼리를 흐르는 세시아 강에서 따왔고, 포 강의 지류이다.[28]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일대.[29] 현재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 일대.[30] 파르마 공국의 모체. 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르마 일대.[31] 현재 이탈리아 트라시메노 호수 일대. 트라시메노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32] 엘베 강 하구. 현재 독일 함부르크 일대.[33] 베저 강 하구. 현재 독일 브레멘 일대.[34] 현 독일 엠스 강 서편[35] 리페 공령 일대.[36] 현재 스위스 발레 주 및 시옹 일대. 참고로 발레 주가 스위스 연방에 가맹한 것은 프랑스 제1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였다.[37] 카린티아. 현 오스트리아 케른텐 일대.[38] 크라인 공국. 현 슬로베니아 일대.[39] 현 달마티아 일대.[40] 현 이스트리아반도 일대.[41] 전 라구사 공화국 및 현 두브로브니크 일대[42] 에브로강 하구란 뜻이다.[43] 현재 스페인 카탈루냐 주 북동부 지역. 이 지역을 흐르는 테르 강에서 따왔다.[44] 나폴레옹 전쟁도중 좀비사태가 터져 탈출하는 게임이다, 작중 프랑스 파리가 좀비들한테 함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