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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6 10:23:16

파르마


1. 에밀리아도시
1.1. 개요1.2. 어원1.3. 역사1.4. 음식1.5. 경제1.6. 랜드마크1.7. 출신인물1.8. 자매도시
2. 에밀리아로마냐주의 3. 방패

1. 에밀리아도시

파일:Flag_of_Parma.svg.png
파르마
Parma
국가 이탈리아
지역 에밀리아로마냐
면적 260.77 km2
인구 198,292명[1]
시장 미켈레 게라
시간대 UTC+1 (서머타임: UTC+2)
파일:파르마.jpg

1.1. 개요

에밀리아로마냐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파르마 칼초 1913의 연고지이자 볼로냐, 밀라노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이탈리아에서 잘 사는 도시 중 하나라 식품산업이 발달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프로슈토가 유래됐다. 파르마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볼로냐 대학교에 밀려 세계 최초는 아니나 11세기 건립된 파르마 대학교가 위치해있고, 파르마 공국수도이기도 했다.

한때 세리에 7공주의 일원었던 강팀으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했던 파르마 칼초 1913가 이 도시를 연고로 한다.

1.2. 어원

라틴어로 원형 방패를 의미하는 팔마(Palma)에서 유래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로마인들이 에르투리아인들의 방패를 모방하였는데, 이 것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3. 역사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파르마는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 사이 에밀리아 서부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에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183년 로마가 북부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파르마는 로마의 식민 도시가 되었고 이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고 로마인 2000가구를 이주시키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파르마는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의 약탈, 반달·고트 전쟁으로 인한 비잔틴 제국의 점령, 593년 롬바르디아족의 침공, 8세기경 프랑크족의 침공, 9세기경 마자르족의 침공 등 여러 세력의 침략을 받았다. 1160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는 파르마를 점령한 뒤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했지만, 이에 반발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저항하였고, 끝내 레나노에서 신성 로마 제국군이 패배하자 1183년 콘스탄츠 조약으로 도시의 자치권이 확립되었다.

12세기 부터 14세기까지 이탈리아 정계를 지배했던 구엘프기벨린사이의 세력 다툼 때 파르마는 처음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을 지지했다가 나중에는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프를 지지하였다. 그런 가운데 파르마는 밀라노 공국의 침공으로 점령당해, 밀라노 공국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1521년 교황과 스페인 군대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한 밀라노 공국을 공격하였고 그 결과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파르마 공국을 창설하여 자신의 사생아인 피에트로 루이지 파르네세에게 파르마의 통치를 맡겼다.

하지만 1731년 파르네세 가문이 단절되어서, 스페인의 보르본 왕가가 공작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으로 보르본 왕가가 양시칠리아를 정복을 인정하는 대가로 파르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6세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는 다시 파르마를 보르본 왕가에게 주었고 스페인의 국왕인 카를로스 3세의 동복형인 필리포 1세에게 파르마 공작 자리를 주었다. 그러나 1802년 나폴레옹이 파르마 공국을 프랑스에 합병시켰고 이 때 여러 예술 작품이 약탈당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게되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파르마는 다시 합스부르크의 차지가 되었다.

빈 회의 이후 파르마 공국은 오스트리아 공주이자 나폴레옹의 황후였던 마리 루이즈의 영지가 되었다. 마리 루이즈가 사망하고 다시 보르본 왕가가 계승했지만 2월 혁명의 여파가 파르마까지 번져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1848년 제1차 이탈리아 통일전쟁으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일시적으로 파르마를 병합했으나 요제프 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이 피에몬테군을 격파하여 다시 보르본 왕가가 복귀했다.

이후 오스트리아가 사실상 파르마를 속국화했다.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재개되자 파르마에서는 이웃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레조 공국, 교황령볼로냐 일대 지역과 함께 혁명이 일어났고, 외국 지배자들이 축출되었다. 이후 혁명이 일어난 중부 지역은 서로 '중앙이탈리아 연합주'(Province Unite del Centro Italia)를 구성하여 국민 투표를 거쳐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병합되었고, 이후 이탈리아 왕국으로 이어진다.

1922년 파르마는 무솔리니가 권력을 장악하자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이탈로 발보가 지휘하는 파시스트 민병대에 맞서서 바리케이드를 세웠지만 실패하고 많은 파르마 시민들이 즉결 처형을 당했다. 1945년 4월 23일 독일군살로 공화국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자 이탈리아 레지스텐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후퇴하는 독일군과 살로 공화국군을 공격하였다. 결국 4월 26일 파르마는 파시스트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1.4. 음식

파르마는 음식과 풍부한 미식 전통으로 유명하다. 특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프로슈토는 파르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세계 최대의 파스타 생산업체인 바릴라와 다국적 식품 기업인 파르말라가 파르마에 본사가 있어서 식품 산업이 매우 발전하였다.

또한 와인으로도 유명한다. 알코올 함량이 10~11도를 넘지않는 적당한 농도의 레드 와인이라서 디저트 와인으로 매우 인기가 많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 만화 맛의 달인 81권 이탈리아 대결편의 주요 무대가 파르마이다.

1.5. 경제

파르마가 속한 에밀리아는 농토가 비옥해서 농축산업이 매우 발전하였다. 토마토, 완두콩, 옥수수가 주 농작물이며, 치즈를 만들기 위해서 우유도 많이 생산한다.

또한 파르마는 푸드 밸리의 심장부라 불릴 만큼 글로벌 농식품 무역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고품질의 우유와 유제품, 프로슈토를 위시한 훈제육, 야채 보존 식품, 파스타, 제빵류 등을 파르마에 위치한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1.6. 랜드마크

1.7. 출신인물

1.8. 자매도시

2. 에밀리아로마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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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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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10월 28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