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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5:41:04

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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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의 원류가 되는 유럽권의 쉽비스킷
파일:1024px-Japanese_Hardtack_Kanpan.jpg
한국, 일본 및 대만 등지에서 널리 제조, 소비되는 일본식 건빵

1. 개요2. 역사3. 국가별 특징
3.1. 서양
3.1.1. 육군3.1.2. 해군
3.2. 일본3.3. 한국
3.3.1. 전시에 활용한다면3.3.2. 건빵을 맛있게 먹는 법
3.4. 북한
4. 창작물
4.1. 서양식 건빵4.2. 동양식 건빵
5. 기타6. 동음이의어
6.1. SOOP은어6.2. 브레드 이발소의 등장 인물6.3. 유튜버6.4.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 3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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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건빵(-) 또는 하드택(hardtack)은 밀가루를 주 재료로 하여 수분 함량이 6% 이하가 되도록 구워 건조시킨 의 일종이다. 반죽은 보통 빵과 거의 같지만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냥 두 번 구워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인 비스킷과는 달리 수분을 한계까지 제거한다.

수분이 적어 세균이 번식하기 힘든 데다가 수분의 무게가 사라진 만큼 가벼워지고 부피도 줄어들어서 휴대 및 장기 보관이 용이해지기에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애용되는 비상식량이자 보존식품이며, 군인들의 전투식량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인간사료 건빵을 먹고 물을 마시면 위에서 건빵이 불어나기 때문에 포만감이 들고, 물이 없어도 취식이 가능하기 때문에[1] 비상식량과 전투식량으로서는 최적의 식품이다.

한국에 시판되는 건빵 제품에는 가끔 별사탕이 동봉되는데 당분 보충, 기호품의 역할도 있지만, 침샘을 자극해 침을 많이 흘리게 만들어 물 없이도 건빵을 취식하기 쉽게 만드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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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어쩔 수 없이 섭취하던 밋밋하고 딱딱한 비스킷."

위 그림에 묘사된 인물과 건빵의 종류는 왼쪽부터 차례로 고대 이집트 선원들의 '두라'(dhourra cake), 로마군의 '부켈룸'(buccellum), 리처드 1세 십자군의 '무슬린의 비스킷'(biskit of muslin), 영국 해군의 '쉽 비스킷'(ship's biscuit), 남북전쟁기 연방군 육군[2]의 '하드택'(hardtack)[3], 일본 제국 육군의 '칸판'[4](乾パン/kanpan), 러시아 해군의 '갈레타'(Галеты/Galeta), 하와이 주민의 '크래커'(cracker), 탐험가들의 건빵이다.

'수분 없는 바싹마른 구운 밀가루빵'이라는 개념 자체는 이집트의 '두라'처럼 상당히 예전부터 있었지만 현대 '건빵'의 원형격인 '쉽 비스킷'은 고대 로마시대에 개발된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밀이 주식인 유럽환경에서 긴 항해동안 배(ship)에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식량으로 만들어졌다. 미각의 즐거움을 크게 주지 않는, 미식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라는 점은 고대든 현대든 거기서 거기였는지 고대 로마의 항해사들과 선원들도 이 물건에 애증을 가졌다는 식의 기록이 꽤 잘 나온다.

구하기 쉬운 밀가루와 약간의 소금만 가지고 반죽해서 오븐에서 불로 굽기만 하면 되니 제조가 쉽고 싸고 수송이 간편하고 보존기간이 길어 중세나 근대 시대에는 전쟁 때 전투식량이나 휴대식량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또한 장기보관이나 휴대용이 아니라도 밀가루 반죽을 그자리에서 그냥 모닥불 위에서 대충 구우면 어떻게든 참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간편한 조리 방식이기도 했다. 즉 중세의 햇반. 그래서 중세에는 전쟁중인 군대 뿐 아니라 행상인들도 이동중 식량으로 이용했고 농노들도 빵을 구할 사정이 안되면 집안 화덕에서 밀가루를 즉석에서 하드텍으로 구워 먹었다.

영국의 Hardtack이 건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들어온 것은 일본의 근대기에 일본 육군에서 만든 건면포(乾麺麭)[5]라고 한다. 일본 육군이 처음에 비상식량으로 유럽식 하드택을 그대로 도입했다가 병사들의 엄청난 불만에 직면했고, 이후 병사들의 기호에 맞추는 과정에서 개량되어 원판과는 달라진 것. 별사탕 역시 일본식 건빵이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온 것이다. 자위대에서는 지금도 전투식량으로 건빵이 지급된다.

그러다가 일본의 제과점에서 일하던 한인 제빵사 이순택이 건빵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해방 이후 민간에 판매한 것이 인기를 끌자 대한민국 국군에도 공급되어 건빵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이순택이 북한군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북한 조선인민군에 강제로 건빵을 공급했다가 대한민국 국군에게 구출되면서 다시 건빵을 국군에 납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조선인민군도 건빵이 있다.
6.25 전쟁을 거치며 만들어진 우리나라 건빵에 대한 이야기
대한민국에선 징병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군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1봉지 기준 250g이었고 장병 1인당 하루 1/3봉지인 80g가량이 지급되었는데, 이를 위해 사단별로 건빵을 만들어서 지급했다. 사실 그 당시 국군의 주머니 사정상 증식이라기보다는 주식에 가까웠다. 1952년 초부터는 서울에 건빵공장이 세워져서 한국군의 수요를 충당하였다. 당시에는 실탄의 은어이기도 했다. #

오늘날에는 증식(增食)용으로 지급하는데, 말 그대로 정규 식사로 부족할 거 같으면 별도로 먹으라고 주는 것으로 맛스타와 함께 군대식량 필수요소로 군림하고 있다. 다만 보급 사정이 크게 좋아진 오늘날에는 군대에서도 대체식량보다는 과자와 같은 기호품 취급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현대 한국군에서 보급되는 건빵은 겉에 인쇄된 유통기한은 일단 수개월이지만 실제 먹을 수 있는 기한은 3년이고, 밀봉된 봉지 그대로 보관하면 3년 이상 지나도 곰팡이가 슬지 않은 멀쩡한 상태라면 건강에 문제없이 먹을 수 있다. 코스트코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에서 파는 건빵은 봉지 표면에 적혀있는 유통기한이 1년이 넘는다.

3. 국가별 특징

3.1. 서양

158년 전 남북전쟁 때 만들어진 육군용 건빵
160년 된 건빵을 먹는 영상
각종 전투식량을 먹고[6] 리뷰를 남기는 걸로 유명한 이 유튜버 Steve1989MREInfo의 말로는 냄새는 오래된 도서관 책과 좀약 같다고 하는데, 맛은 밍밍하지만 크래커와 비슷한 맛도 나고, 물에 불려먹으니 타이어 고무맛이 나며, 커피에 불려먹은 게 그나마 조금 낫다고 한다. 60년쯤 된 크래커들도 많이 먹어봤지만 오히려 160년된 이 건빵이 더 낫다는 평.[7]

오리지널 건빵은 앞서 언급한 것들보다는 크래커에 가깝다. 그냥 크래커를 사와서 꺼내면 갓 구운 전통식 건빵의 맛과 동일하다 여기면 된다. 현대에도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우크라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 유럽권과 아메리카 국가에서 전투식량으로 빵 대신 먹으라고 건빵이 나오기는 하지만, 포장기술이 발달한 만큼 전근대 시대처럼 더럽게 딱딱하지는 않다.

일반 식빵이 추운 겨울 날씨와 건조한 기후 때문에 건빵이 되는 일도 있다. 러시아 제국 멸망 후 광활한 러시아를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어 가려는 적군과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 사이에 벌어진 러시아 내전 때 러시아인들은 가난과 식량난에 시달렸는데, 어떨 때는 한 두어 달 지나버려서 딱딱하게 굳은 식빵을 조리해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8] 러시아의 경우 서민들은 호밀로 만든 딱딱한 흑빵을 주식으로 삼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제된 밀가루 식빵보다 보존성이 높아 건빵으로 변하기가 더 쉬웠다. 같은 원리로 일반식빵도 저온에서 얼리고 수증기를 승화시켜 수분을 제거하는 동결건조를 이용하면 건빵으로 변화시킬 수는 있으나, 비용과 시간문제로 그냥 처음부터 건빵을 대량으로 굽고 개별포장하는 쪽이 낫기 때문에 널리 쓰이지는 않고 있다.

3.1.1.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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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부터 애틀랜타 지역에서 보존되어온 건빵
육군의 빵 보급은 일반 빵보다 보존기한이 긴 건빵으로 이루어졌다. 이 크래커들은 엄청난 수의 벌레들이 꼬여 있는 일이 많아 병사들은 "벌레의 성"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미지 출처
유럽/중동판 건빵인 하드택(Hardtack)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시대로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듀우라(Dhourra)라는 이름의 딱딱하고 잘 부서지는 과자류를 항해용 보존식으로 사용했는데, 이 과자빵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람세스 2세인 걸로 봐서 적어도 이 때부터는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제빵기술은 로마로 넘어가서 개량되었는데, 로마인들은 이 과자빵을 두 번 구워서 수분을 최소화함으로써 보존기한을 극단으로 늘렸다.

로마인들은 이렇게 2번 구운 빵을 싸구려 작은 빵이라는 뜻의 부켈룸(Buccellum), 혹은 두 번 구운 빵이라는 뜻의 파니스 비스 콕투스(Panis Bis Coctus)라고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이름이 Biscoctus → Bescuit → Biscuict → Biscuit으로 변화한다. 지금은 과자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적어도 14세기 중세 영어까지는 비스킷이 유럽/중동식 건빵을 뜻했다는 것이다.

맛보다는 장기보존을 가장 중요시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빵을 부드럽게 해주는 이스트 등 기타 재료 없이 밀가루와 소금, 물만 이용했다. 유럽/중동의 주식인 빵만 해도 저장 방법에 따라선 보존기간이 길어 보존식으로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유럽/중동식 건빵이 빵을 밀어내고 항해용/군용 보존식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극단적으로 쉬운 제조방법 때문이었다. 빵은 효모를 넣고 며칠간 발효를 시키는 등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지만 건빵은 밀가루를 적당히 반죽해서 포크 등으로 구멍을 낸 후 두 번 굽기만 하면 되니까, 생산단가와 생산량에서 압도적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부패를 막기 위해 수분을 최대한 줄임과 동시에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서너번 이상 구워내는 것이 기본인데, 보관설비마저 좋지 않아 그 상태로 방치되다 보니 벽돌처럼 단단해져서 도끼 같은 연장을 쓰지 않으면 절대 쪼갤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판금 비스킷(Iron Plate Biscuits)이라거나 이빨 파괴자(Teeth Duller), 철판 크래커(Sheet Iron Cracker),[9] 시멘트 판(Cement Plate)[10] 같이 음식에 붙어서는 절대 안 될 수식어와 함께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별명들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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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을 벽돌에 내려쳤는데, 건빵은 멀쩡하고 벽돌이 부서진다.[11]

바싹 마른 건빵은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로 튼튼하다. 당연히 그냥 먹으려다가는 턱과 이가 나갈 판이라,[12] 보통은 음용 목적으로 저질 군납 커피를 우려낸 청수에 푹 담가서 불려 먹거나, 염장 돼지고기와 함께 물에 넣고 끓여서 처럼 만들어 간이로 랍스카우스(lobscouse)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물론 엄청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먹는 것보다야 훨씬 먹을 만했고, 소금 퍼먹는 맛이 나는 염장고기와[13] 밀가루맛만 나는 건빵이 합쳐져서 간도 그럭저럭 맞았다고 한다. 혹은 어떻게든 빻은 가루를 물에 개서 유지와 소금 등을 첨가한 다음, 팬케이크처럼 구워서 먹었다고도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엔 그나마 불을 피울 수 있는 환경에서 건빵을 마대 자루 등에 담고 물을 뿌려 땅에 묻고 위에다 불을 피워 불린 후 다시 파내서 먹는 조리법도 있었다.[14]

하여튼 사람이 그냥 씹어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고, 병사들은 이 딱딱한 물건을 짱돌로 찍어 부수어 가면서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써야 했다. 어느 정도냐면 깨물었더니 튕겨져나가서 반합에 부딪쳤는데 그야말로 쇠와 쇠끼리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났다고 하고, 어떻게든 먹으려고 돌에 내리쳤는데 돌이 부서졌다는 괴악한 이야기도 나돌 지경. 실제로 이런 건빵으로 인해 장난치다 사고가 일어났는지 영국군의 경우 식사시간 중 전우에게 장난이라도 건빵을 던지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적이 있다.

남북 전쟁 때도 남북 양군의 군용식량이었는데,[15]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이딴 게 식량이랍시고 내려오니 이 맛대가리라곤 전혀 없는 것을 허구한 날 먹던 장병들은 갈수록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허구헌 날 맛없는 것을 먹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인들 기준. 당시 북군 짬밥은 나름 고급이었다. 전쟁 중에 전쟁터에서 조리하다 보니 아무리 재료가 좋다 한들 맛이 팍팍 죽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만... 그래도 아침은 건빵, 커피, 베이컨이었고, 점심은 커피, 베이컨, 건빵이었으며 저녁은 베이컨, 건빵, 커피라는 규칙적 병영식이 제공되었다.[16] 북군 병사들은 건빵을 베이컨과 함께 물에 끓인 뒤 후추로 맵게 간을 해서 만드는 헬파이어 스튜(Helfire stew)를 만들어 먹곤 했다.

하지만 그거라도 먹었던 북군[17]과는 반대로 남군은 상당한 보급난에 시달렸다. 빈약한 철도 운송망에, 그마저도 북군에게 자꾸 파괴당하고 복구하기를 반복하다 보니[18] 나중에 가서는 건빵이고 뭐고 그나마 남군에게 배급된 식량이라고는 겨우 땅콩이나 옥수수 가루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든 먹으려고 물을 넣고 반죽해서 총신에 감아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느니, 그나마 소금도 없어서 간도 못 한 맨빵을 그냥 먹었다느니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후 미국에서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을 '조니 케이크'라고 부르기도 했다. 왜 '조니' 가 들어가냐면 북군에서는 남군을 '조니렙스'라고 불렀기 때문. 즉 남군의 빵 = 조니가 먹는 케이크라는 뜻.[19] 이에 남군 병사들과 북군 병사들이 몰래 만나 남군의 버지니아산 담배[20]를 북군의 식량과 바꿔 먹은 일화도 있다.

150년 묵은 남북전쟁 시절 건빵 영상 섬네일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근대 구미권 군대의 건빵은 무지 컸다. 이 건빵은 엄연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프랑스의 '식사용 빵'인 바게트만 봐도 원래 식사용 빵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차돌만한 놈을 붙잡고서 도끼로 찍어가면서 죽자사자 먹었다는 이야기. 가끔 이런 물건이 전쟁 영화에도 나온다. 핀란드군을 소재로 한 핀란드 영화에서 보면 마치 ᄎᆞᆷ크래커를 어른 얼굴 크기로 구운 것 같은 정사각형의 크래커를 사람 키만한 포장에 넣어와서 증식용으로 배급하는 장면도 있다.

야외에서 잘때면 이 거대한 건빵을 배게삼아 자다가 일어나서 아침식사용으로 조리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21]

3.1.2.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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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에 만들어진 덴마크 해군의 쉽 비스킷[22]
이미지 출처
육군이야 보통 땅에서 활동하니 상황이 좋으면 이 더러운 건빵 말고 다른 제대로 된 배식이 나올 여건이 되기 때문에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베이컨이라도 먹을 수 있는 육군과는 달리 해군은 한번 배에 타면 다음에 육지에 오를 때까지 오로지 배 안에 있는 장기보관용 식량만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결국은 건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 목제 범선 시절에는 배가 불에 잘 타는 목재로 만들어지다 보니 불 관리가 매우 중요했고, 범선의 크기가 작다 보니(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넜을 때 쓴 배가 만재배수량 100톤이었는데 현대에는 통통배 수준에 불과했다) 배에서 빵을 굽기에는 불 관리도 힘들었고 연료로 쓸 땔감을 싣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결과 출항할 때 실었던 다른 식량들이 점차 소모되다가 다 떨어지면 쉽 비스킷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배수량이 작아 항구에 자주 들어갈 수 있었던 함선들은 신선한 식재료를 자주 공급받을 수 있어서 나았지만 원양 항해를 하는 배일 경우에는 답이 없었다.

쉽 비스킷은 육군용 건빵을 초월한 단단함을 자랑했고 무엇보다 다습한 바다의 특성상 육지보다 음식이 상하기 쉬웠기 때문에 보존성 확보를 위해 수분을 더 확실하게 날릴 수 있도록 2번은 기본이고 4번이라도 구웠다. 덕택에 정말 뛰어난 보존성을 얻었지만 2번 구워도 경도로 벽돌을 이기는 건빵을 두배 가까이 구웠으니 당연히 사람이 제대로 먹을만한 물건이 됐을 리가 없다. 말 그대로 먹을 수 있는 돌 취급.

그런데 벌레들은 몇 번씩 구워서 사람이 씹기조차 힘든 이 건빵들을 마구 파먹어놨다.[23] 벌레들을 어떻게 해보려고 건빵 상자를 끓는 물이나 알코올로 소독했지만 소용없었고, 캐러웨이 씨앗 같은 독한 냄새가 나는 재료를 넣어봤더니 더욱 사람이 먹을 수가 없는 물건이 되었다.

그래서 건빵의 별명 중에는 "벌레의 성(Worm Castle)", "어두운 곳에서 먹는 것(바구미 안 보려고)"이라는 별명도 존재한다. 이 건빵 파먹는 바구미 애벌레에게도 방앗간집 주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별명은 흔히 건빵통 속을 뒹굴다 튀어나와 밀가루 투성이가 되곤 했던 쥐들의 별명이기도 했다.

이 건빵을 먹기 위해서는 건빵을 먹기 전 겉을 툭툭 두들겨서 속에서 애벌레가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이도저도 귀찮으면 단백질을 섭취할 겸 애벌레째로 먹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물론 그 시대 사람들이라고 딱히 벌레를 먹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굶는 마당에 먹을걸 가릴 처지가 뭐가 있겠는가. 그나마 형편이 괜찮을 때는 건빵에서 기어나오는 애벌레나 성충이 된 바구미들을 모아서 배에서 키우는 에게 먹이기도 했지만 항해가 길어져 식량이 부족해지면 이 바구미들로 쥐를 키워서 팔거나 아예 바구미조차 돈 주고 사 먹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영국 해군의 선상 생활 묘사가 본좌급인 소설 혼블로워에서 주인공이 다른 배에 식사 초대를 갔는데, 오랜 봉쇄작전으로 배에 실어놓은 닭들 상태가 구릴 것이 분명한데도 닭고기 맛이 좋았다. 사정을 알아보니 건빵 속의 벌레를 닭들한테 먹여서라나?

먹을 것이라곤 오로지 이 강철 같이 단단한 쉽 비스킷, 그리고 매우 짜고 질긴 염장고기 정도밖에 없었던 수병, 상선 선원들은 건빵을 저주하는 노래를 불러가며 다시 육지에 오를 때까지 건빵으로 배를 채워야 했다.

특히 당시 유행했던 괴혈병에 걸리면[24] 치아가 흔들거리며 빠지고 잇몸에서 피가 나오는데, 그 상황에서 돌이 따로 없는 건빵까지 씹으려면 말 그대로 피눈물이 나올 지경이있다. 오죽하면 선원들을 처벌하는 방법 중에 바닷물이 들이치는 함수에 가둬놓고 건빵과 물만 지급하는 것이 있었을 정도였다.

예외로 포경선 선원들은 고래기름에 튀긴 건빵을 꽤 맛있게 먹곤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도 별미로 언급되는데, 주인공도 불침번을 서다가 고래기름 통에 건빵을 살짝 담갔다가 튀겨 먹은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 물론 포경선 선원들만 튀겨 먹은 건 아니고, 다른 배에서도 요리할 때 건져낸 기름(돼지기름 등)으로 튀겼다. 그러나 이것도 포경선처럼 고래 기름이 썩어나는 곳이 아니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하거나 몰래 해 먹어야 했다. 범선시대에 요리 중 나온 기름은 대부분 방수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반 선원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가 없었다. 영국 해군에서는 관례상 준사관조리장만 방수 작업 후 남은 기름을 가질 권리가 있었으며, 항구에 도착하면 주로 이런 삭구용 기름을 사가는 업자에게 팔아 용돈벌이를 했다.

저런 기름으로 튀겨도 먹을 만했는지 짐승 기름으로 튀긴 건빵은 오래도록 전해져 왔다.[25] 역시 기름에 튀긴 건빵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빵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쉽 비스킷이 육군용 건빵 부럽지 않게 단단했기에 19세기 영국 해군 군율에는 '절대로 식사시간 중에 건빵을 던지지 말 것'이라는 규칙이 있었다고 하며, 떨어지는 건빵에 맞아 사망한 수병도 종종 있다는 괴담까지도 나돌았다고 한다.

당장 미국 군가 They Say That In The Army에도 이런 노래가 있다.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Biscuit is mighty fine
The Biscuit ran off the table
and killed a friend of mine[26]
사람들이 말하기를 육군에서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육군에서는
빵이 정말 죽여준다고들 하더니[27]
빵이 식탁에서 굴러떨어져
내 친구를 죽여줬어요.
이 노래는 아직도 미 육군에 전하는 노래로, 행군 시에 부른다. 미 육군에선 행군 때 부르는 군가들 중 상당수가 이런 '자학성' 가사들인 게 많다.[28]

영국 과자인 카스 테이블워터 크래커가 대항해시대 때의 건빵 맛이 비교적 잘 재현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두께가 얇고 현대식 생산에 보존방법을 통하여 유통되므로, 더럽게 딱딱하지는 않다. 먹어보면 담백한 맛에 좋아하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 국내 과자 중에서는 ᄎᆞᆷ 크래커나 아이비 크래커가 꽤 유사하다고 한다. 다만 소금기가 좀더 강하고 이스트 등의 발효로 인해 약간 부풀어 있어 방식이 좀 다르다고.

3.2. 일본

19세기가 되면서 유럽식 하드택이 동아시아에 군용식품으로 전래가 된다. 흑선내항 이후 험악해지는 일본 내 사정 탓에 각 다이묘들은 경쟁적으로 군비와 전시물자를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주먹밥이나 같은 기존 전투식량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에 보존식으로 보다 더 유리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사쓰마 번은 증병(蒸餅), 미토 번은 병량환(兵糧丸), 조슈 번은 비급병(備急餅) 등의 이름으로 유럽식 하드택을 생산했다. 이것들은 원래 찐빵(증병), 전투식량용 경단(병량환), 비상시용 (비급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건빵은 이 떨어지고 나서야 먹는 보조비상식이었다. 휴대는 떡보다 편하지만 먹기는 불편했기 때문이다.

1868년 일본은 에도 막부를 무력으로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룩하여 쇄국을 하려는 도막파와, 기존 체제인 에도 막부의 쇼군을 중심으로 영국식 의회정치를 도입하고 입헌군주정으로 개혁을 주장하는 좌막파가 존재했다. 도막파에게 쇼군이 항복함으로써 도막파가 에도에 무혈 입성하고 신정부를 수립했지만, 막부의 충신들이 이에 불복하고 병력을 모아 신정부에 선전포고를 했고 사가 번과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군이 진압에 나서게 되었다. 이것이 무진전쟁이다

이 때 사쓰마 번은 에도에서 가장 큰 제과점인 후게츠도(風月堂 풍월당)에 군용식량으로 빵 5000인분을 제조해서 납품할 것을 주문했다. 풍월당에서는 유럽식 건빵을 참조해서 검정를 박은 건빵을 생산해서 납품했다. 이때부터 일본군은 본격으로 건빵을 군용식량화한다.

특히 건빵은 보급 측면에서 천황파에게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서남전쟁(西南戦争 세이난 전쟁)이 일어났을 때인 1877년 3월 당시, 때이른 장마가 내렸다. 17일 간 계속된 비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반란군은 폭우로 인해 불을 붙이기 어렵다 보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천황파 신정부군은 건면포(乾麺包:마른 밀가루 떡)라고 불리는 23만 7,063근, 약 142,000kg의 유럽식 하드택을 주문했고 이를 먹을 수 있었다. 영양 면에서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못 먹고 싸우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또한 그냥 건빵만 먹은 것이 아닌 당시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지 몇 년 되지 않은 단팥빵 또한 지급되었다고 한다.

세이난 전쟁에서 건면포의 이점을 확인한 일본은 계속해서 건면포를 개량해 나간다. 기존의 건면포는 한 번만 구웠기 때문에 딱딱하지 않아서 운반 중에 부스러지고 박살나는 단점이 있었다. 청일전쟁 즈음부터 여기저기 군사활동이 활발해지며, 일본 정부는 제빵사들을 유럽에 조사단으로 파견해 건면포를 개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기존의 전투식량으로서는 작전활동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 때 파견된 조사단은 독일에서 두 번 굽는 건빵 제조법을 배워왔고, 이후 유럽식의 비스킷을 일본식으로 만든 중소면포(重焼麺包)라는 물건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동아시아식 건빵의 시초이다.

중소면포는 완전한 유럽식 건빵이 아니고 유럽식 건빵 제조법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었다. 예컨데 밀가루찹쌀 등의 곡물가루를 섞는 등으로.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일단 중소면포는 유럽식 건빵과 달리 수분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다. 겉은 퍽퍽하고 속은 촉촉해서 남아있는 수분 때문에 쉽게 물러지고 상하곤 했다. 또한 미국산 박력분을 사용해서 점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밀이 아닌 다른 곡물가루를 섞어서 쉽게 깨지고 바스라지는 단점도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 중에 일본군에 지급되었는데, 맛도 괴이한 데다가 먹으려고 꺼내보면 가루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게다가 병사들은 갖고 다니는 그 자체를 꺼렸는데, 이는 두 번 굽는다는 뜻인 중소(重焼)가 깊은 상처를 뜻하는 중상(重傷)과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29]. 일본군은 시행착오 끝에 미국산 박력분을 유럽산 강력분으로 바꾸고 곡물 배합비율을 바꾸어가며 잘 부스러지지 않게 개량해 나갔다. 여기에 감자 전분을 섞어 점성을 높이고, 소금설탕, 참깨를 섞어 맛을 개선한 신형 중소면포가 개발되었다. 이는 1914년 1차대전 때 일본군에 지급되었다.

그런데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일본의 한 제과점에서 구형 중소면포에 계란맥주 이스트를 배합해 발효시킨 뒤 작은 크기로 구워낸 과자를 개발했다. 이 과자에 갑면포(甲麺麭)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사람들은 갑면포라는 이름보다는 마른 빵이라는 뜻의 건빵(乾パン)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916년이 되자 일본군은 이 건빵 제조기술을 도입하여 중소면포의 크기를 현재의 건빵 크기로 줄이고 계란을 배합하여 빵을 구웠다. 거기다 굽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2개의 구멍을 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이 빵을 건빵이라고 불렀고 현재 형태의 건빵이 탄생하였다.이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일본의 만주침략이 개시된 1931년 즈음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또한 이 시점에 건빵이 민간인에게도 비상식량으로 배급되었는데, 이는 시민들에게 전쟁 중이라는 위기의식을 높여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전후에는 그냥 간식으로 소모되는 편이다.

별사탕러일전쟁 즈음부터 시베리아 출병이다 뭐다 해서 러시아와 한판 뜰 준비를 하면서 혹한지에서의 당분보충을 위해 단당류를 전투식량에 포함시켰는데 당시 자국에서 유행하던 별사탕을 넣어 병사들이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게 한 것. 거기다 별사탕이 하얀색이었는데, 하필이면 눈밭에서 작전하는 병사들에게 눈처럼 생긴 사탕이 들어와서 불만이 생기자 알록달록하게 색깔도 입혀줬다고 한다. 즉 별사탕의 원래 목적은 단순한 기호품이자 열량보충이며 나머지는 부수 효과일 뿐이다.

1920년에 일본이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한랭지 열량 보급을 위해 건빵에 별사탕 10g를 추가하였다. 이것이 반응이 좋아 일본군은 1931년 만주침략이 개시되며 건빵 225g에 별사탕을 함께 넣기 시작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 일본군은 육군전시급여규칙을 개정하며 건빵 1인분에 대해 건빵 220g과 별사탕 10g, 보존기간 7년이 될 것을 규정하였다. 즉, 대략 이 시점이 우리가 아는 건빵의 형태와 내용물이 완전히 정립된 셈이다. 이후 1945년 일본군이 패전으로 해체되면서 전투식량으로서의 건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1954년에 자위대가 다시 채택하며 지금에 이른다.

3.3.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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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의 보급용 건빵

한국군 보급 건빵 1봉지의 규격상 건빵 100g(밀건빵 405kcal, 쌀건빵 437kcal)에 별사탕 5g(20kcal)이 동봉됐다가 최근엔[30] 식생활 변화 때문인지 1봉지당 65g(별사탕 5g포함. 밀건빵 275kcal, 쌀건빵 270kcal)규격으로 바뀌었다.

밀건빵 성분은 아래와 같다.
밀가루 53.87%, 팽화미[31] 13.47%(수입산), 설탕 14.08%, 식염 0.98%, 쇼트닝 5.82%, 기타전분 : 옥수수3.98%, 탈지분유 3.06%, 계란 3.06%

그 뒤에 성분이 바뀐 쌀건빵이 새로 나와 밀건빵과 섞여 보급되었는데, 쌀건빵의 성분은 다음과 같다.
밀가루 31.61%, 쌀가루 30%(국내산), 설탕 14.01%, 식염 0.95%, 쇼트닝 7.6%, 활성글루텐 4.44%, 기타전분 : 옥수수3.92%, 탈지분유 2.67%, 계란 3.09%, 산도조절제 1.69%, 효소제 0.02%
사제 건빵과 성분 차이는 사제 건빵은 옛날의 맛을 강조하기 위해 보리 등을 첨가하는 것이 많은 반면 군대 건빵은 국내의 잉여 생산분을 처리하고 의무 수입되는 쌀을 소비하기 위해 쌀이 들어가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때문인지 보통 사제보다 식감이 좋고 단맛이 조금 강해서 더 맛있다는 의견도 있고, 고소한 맛이 적고 오히려 단맛이 강해 더 빨리 질린다는 의견도 있다.

보급건빵인 밀건빵과 쌀건빵은 재료 차이 때문인지 식감이 다른데, 밀건빵이 좀 더 단단하고 씹을 때 찰진 반면 쌀건빵은 약간 더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나지만 씹을 때 찰기가 덜하고 약간 쌀가루 같은 입자가 입 안에 남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판되는 건빵 중에 그리 유명한 업체도 없는 데다가 군필자들의 추억 보정도 있는 고로 군용 물품 중 인기가 많은 몇 안 되는 품목이다. 전투복의 바지 옆주머니를 '건빵 주머니'라고 부를 정도다. 어찌나 뿌리깊게 박혔는지 이걸 정식 명칭으로 아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훈련소 간부나 조교들조차 건빵주머니라고 할 정도니...

아무도 먹는 사람이 없어서 배낭에 잔뜩 넣어서 휴가 나오면 간부들이 이상하게 보는 동시에 또 없애줘서 고맙다는 눈빛도 같이 보인다. 가끔 군대에 있는 병사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택배를 보낼 때 이 건빵을 넣어주기도 한다. 원래 건빵도 군용 마크가 찍힌 보급품으로서 원칙상으로는 외부 반출이 금지되어 있지만 먹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렇게 중요한 물건도 아니라서 대부분의 간부들은 눈감아 주는 편이다. 행여나 건빵으로 식중독이 걸리는 수가 있는 등의 여러 단점 때문에 보급품은 외부 반출이 안되지만, 적 특작부대 입장에서도 물독에다가 독극물을 푸는 게 더 쉽고 가성비도 좋지, 일일이 뜯어가면서 먹을지 안 먹을지 보장도 없는 건빵에 독을 타는 건 미련한 짓이다. 얘들은 그냥 본인들이 먹겠지 보급라면과 같이 맛없는 애증의 물건인지라[32] 보급관들이야 재고떨이 해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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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식용 건빵
건빵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 수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꾸역꾸역 먹기는 힘들며 과자처럼 하나씩 꼭꼭 씹어먹거나 물이나 음료수 등 마실 것과 같이 먹어야 먹기 쉽다. 일부 건빵에 별사탕을 넣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사탕으로 하여금 침이 나오도록 하여 건빵을 먹기 쉽도록 하려는 것이다.

애매하게 작은 크기 때문에 빨리 먹기 쉬울 것 같지만 여러 개를 한번에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입 안의 모든 수분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나며 퍽퍽해서 좀처럼 씹기도, 삼키기도 어렵다.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씩 씹어먹을 때 1분 안에 먹을 수 있는 양은 7개 내외로, 스펀지에서도 직접 실험해본 결과 그나마 7개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악질 선임병은 이렇게 먹기 힘든 특징을 악용해 후임병들에게 식고문을 가하기도 한다. 건빵을 물이나 우유도 없이 마구잡이로 먹이는 것으로 군대에서 행해지는 식고문 중 하나다. 워낙 구식인 가혹행위라 코렁탕처럼 상징적 의미로 남아 있고, 현 국군에서 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악기바리로 악명높은 해병대특전사조차 식고문은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 , 냉동식품 등으로 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도저히 맛으로 먹을 수 없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름대로 간식삼아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PX도 이용하지 못하거나 이용하기 힘든 훈련소 훈련병들이나 신병들은 어디 짱박아뒀다가 심심하면 조금씩 꺼내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뻑뻑하다는 것을 이용해서 학교 축제 등에서도 사행성 부스에 쓰인다. '몇 십 초 내에 몇 개 이상 먹으면 만원 드립니다'라는 식으로. 빨리 먹으려고 건빵을 대충 씹거나 씹지도 않고 삼키다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이는 건빵뿐만 아니라 어떤 음식이든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군용으로 납품되는 건빵은 신흥식품과 상일푸드 두 곳에서 생산된다.[33] 그리고 다른 군납품들이 으레 그렇듯 포장만 바꿔서 민간에서 판매하는 건 이 건빵도 마찬가지다. 신흥식품에서 나온 건빵의 민수판매용인 "일등병 건빵"이 2010년에 홈플러스 PB(자체브랜드)상품으로 판매된 적이 있다. 군용 대신 일등병이라 써있고 홈플러스 로고가 찍힌 거 빼고는 논산 육군훈련소 등에서 보급 나오는 군용과 동일하다. 그리고 신흥식품 제품은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의 민간판인 을지연습 때 몇몇 기관에서는 전투식량과 함께 불출된다.

해당 내용

위의 사진의 건빵은 대명식품에서 한 때 만든 민수용품으로, 군인연료라고 씌어있다. 임진각 휴게소 인근 매점에서 민수판매하는 가격은 1000원.

이것 아니라도 인터넷 판매 등으로 두 회사 제품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다. 대명은 진짜 사나이 같은 예능 프로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재미를 좀 봤는지 나중에는 아예 건빵명가라는 타이틀까지 붙여 기존의 2종류의 건빵 외에 검은깨건빵, 땅콩건빵, 부추건빵 등을 팔고 있다. 가격은 40개들이 박스로 계산했을 때 1봉지에 5~600원 정도.

2014년에 들어 바뀐 점이 있는데, 봉지 색깔이 약간 변하고 건빵의 맛이 좀 더 고소해졌다. 마치 시판되는 제크에서 소금이 조금 빠진 맛과 비슷하다. 그리고 과거 별사탕 특유의 쇳내가 사라졌다.

2019년 들어 기존의 쌀, 밀건빵에서 참깨, 야채건빵으로 바뀌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건빵에 비해 용량은 좀 줄었지만, 맛이 시판용 과자와 거의 비슷해진[34] 장족의 발전을 이뤄내서 줘도 안먹는다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금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까지 성장했다. 상술한 민수용 건빵을 반대로 군납화한 듯. 논산 육군훈련소뿐 아니라 일선 부대들, 그리고 공군 등 타군에도 다 보급되고 있다. 여하튼 맛이 과거에 비해서 매우 좋아진지라 옛날처럼 쌓이고 쌓이던 이미지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 한두명이 모조리 쓸어가는 진풍경도 자주 보인다.

군용 건빵은 흔히 파는 추억의 건빵에서 바닐라향을 조금 뺀 다음 쫄깃해지고 달아졌다. 처음에 반 봉지는 먹다 보면 추억의 건빵보다 맛있다. 그리고 의외로 전부 밀가루라 배도 부르다. 그러나 별사탕이 지뢰이다. 추억의 건빵의 별사탕은 달고 침이 고이는 정도지만 여기는 그 별사탕을 올리고당에 넣고 졸인 것이다.

한국에 건빵을 처음으로 알린 건 1920년 한국 최초의 양과자점 메이지야(明治屋)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광역시 북성로 미나카이 백화점 옆에 있던 이마사카(今阪) 제과점 종업원 출신 진병수 사장이 창립한 수형당(秀亨堂)에서 한국인 주도로는 최초로 건빵을 팔기 시작했다. 한국군 창설 초기, 일본군 출신 한국군 고위 장교들의 주도로 건빵이 한국군의 전투식량이 되었으며 각지의 제과점이 이를 납품하며 성장하였다. 특히 그 중 가장 크게 성장한 것이 해태제과이다.[35]

한국군은 쌀이나 보리의 함량이 크게 늘어나도록 건빵을 개량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식 건빵과 한국식 건빵은 배합비와 보존기간에서 차이가 생겼다.

도시전설로 건빵만 먹고 나중에 물을 마셨더니 배가 터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거짓이다. 사실 인간의 위장 구조상 속에서 내용물이 부풀어 오르면 배가 터지는 게 아니라 구토를 해서 게워낸다. 사실 이런 식으로 밀가루 반죽이 뱃속에서 부풀어오르면 속이 엄청나게 거북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영화 인생을 보면 밀가루로 만든 만터우 7개를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신 노의사가 급체해서 거의 의식을 잃는 것이 나오는데, 뻥은 아닌 셈.[36] 또 KBS 스펀지에서는 미역을 계속 집어먹다가 위장에서 불어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례를 소개한 미역괴담을 소개했는데[37] 터지기는커녕 줄창 구토만 해 댔다고 한다. 디스커버리 채널Mythbusters에서 동물의 위장으로 이런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위장이 터지지 않았다. 그런데 황석영의 수기 중 훈련소 시절 건빵을 과하게 먹고 물을 마시고 자다가 죽은 동기 얘기가 나온다. 구토물로 인해 기도가 막혀 죽은 것인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위험하긴 한 모양.

군대에는 첨가된 별사탕이 정력감퇴제라는 소문이 있지만 당연히 사실 무근. 군대에 들어간 병사들이 발기가 잘 안 된다고 해서 하는 우스갯소리인데, 실제로는 정신/육체의 피로 때문이다. 또한 별사탕의 가운데에 들어있는 작은 알갱이를 정력감퇴제라고 지목하는 때가 있는데 실은 별사탕의 제조 공법상 들어가는 설탕 씨앗이다. 당장 별사탕의 제조 과정을 보면 45도 정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솥을 약한 불로 가열하면서 서서히 돌리며, 그 사이 녹인 설탕물을 전용 기구를 이용해 완성될 때까지 며칠 동안 가늘게 뿌려 별사탕의 크기를 점점 키워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설탕 씨앗은 반드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 설탕물이 뭉쳐지는 핵으로 좁쌀 등을 썼기 때문에 별사탕을 쪼갰을 때 가운데 황갈색 알갱이가 보였고, 이것이 "정력감퇴제가 아니냐?" 라는 식으로 의심을 하게 된 것. 2010년 중앙일보의 김윤판 중령(제3군수지원사령부 급양대장)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90년대는 정력감퇴제 풍문이 거의 ‘진실’처럼 믿어지는 바람에 군납업자들이 1998년 9월부터 별사탕이 빠진 건빵을 납품했다고 한다. 논란이 좀 수그러든 2002년 3월부터야 별사탕을 다시 넣기 시작했을 정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윤광웅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의 대담 도중 해당 소문에 대해 물어봤는데, 장관은 자신도 현역 시절에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보고받지 못했다고 한다. #

초창기와 달리 별사탕 제조기술이 개량되어 설탕 자체가 핵이 되어 따로 식물의 씨앗 등의 핵을 쓰지 않지만 그와 상관없이 별사탕 말고도 군대의 각종 음식에 문제의 감퇴제를 섞는다는 뜬소문은 대를 이어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가고 있다. 근래엔 주로 콩나물이나 맛스타가 의혹을 샀다. 아마도 특유의 화학조합물 맛 때문이었던 듯. 맛스타가 미닛메이드로 교체된 다음부터는 그런 소리가 사라졌다. 혹은 정력 감퇴제를 넣는 게 아니라 특정 재료가 자주 나오면 그 재료에는 정력을 감퇴시키는 성분이 있다는 버전도 있고 아예 음식 말고 담배 등의 기호품에 감퇴제를 넣는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정말 억지로 따지면 정력의 유의미하게 실제로 영향을 주는 유명한 군대 음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건빵의 절친이자 매일 아침 부식으로 배급되는 우유로, 지나치게 먹으면 우유의 칼슘때문에 비타민D가 낮아져 전립선의 기능이 약해져 정력저하로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다만 이것도 하루에 1리터급은 마셔야 되는거지, 보통은 오히려 단백질덕에 정액 형성이 좋아져서 하루 한두잔정도는 조절해서 마시는게 정력에 더 좋다.

일명 '건빵 다이어트'라는 식이요법이 알려져 있다. 칼로리 대비 포만감이 높음을 이용하며, 일부 끼니를 건빵과 우유, 계란으로 때우는 것이다. 다만 건빵도 탄수화물이니만큼 많이 먹으면 살 찌긴 똑같다. 무엇보다 식이요법 중에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거나 일부 체질에만 맞는 경우가 많으므로 살을 빼고 싶다면 나무위키를 맹신하지 말고 전문의와 상의해보자. 영화보며, 야구보며 한입씩 먹다 보면 그게 다 살로 간다. 포만감? 그런 게 어디 있어!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몰,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쌀포대처럼 생긴 10kg 이상의 대용량 건빵, 1kg 정도의 튀김건빵을 판매하기도 한다. 가격이 저렴하여 과자 대용품으로 사 먹을 정도.

1990년대 초반 혹은 그 이전 시기에는 증식용 외에 전투식량으로 나오던 건빵이 있었는데, 용도별로 별도로 나오는 게 아니라 납품하는 유통업체가 달라서 다른 건빵이 존재하였으며 보통 사령부 단위로 달라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투식량으로 나오는 건빵의 경우 포장재의 경우 보통 국방부 별마크가 찍힌 누런 마분지 봉지를 주로 사용[38]했으며 삼양식품 등의 일부 제조사에서는 레토르트 식품에 쓰이는 포장재를 쓰기도 했다.#1#2 검정 단색의 인쇄로, 앞면은 국방부 마크와 군용건빵 로고, 제조 회사 등이 있고, 뒷면엔 주로 반공 문구나 군인 정신을 고양하는 문구 등이 적혀있었다. 이 봉지 안에 건빵과 미숫가루별사탕이 동봉된 형태였다.

동일한 포장과 구성으로 전투경찰교도소 건빵도 존재했다고 한다. 증식용 건빵 두 봉지쯤 되는 양에 별사탕이 빠지고 미숫가루만 들어갔으며, 포장에는 국방부 별마크 대신 각각 경찰마크와 교도소용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물론 교도소용은 수감자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폐지된 교정시설경비교도대에게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빵도 유통기한이 있다 보니 기한이 다 되면 재소자들에게 식사 대신 나가는 일도 있었다.

전투식량용은 증식용에 비해 씹는 느낌이 거칠고 푸석거리는 편이다. 지금은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먹거리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는 현역병이 아닌 동원예비군들도 군용 건빵을 보급 받았으며, 훈련 다녀온 아빠들의 자식들 간식 선물로 호평받았다고 한다.

3.3.1. 전시에 활용한다면

파일:건빵 영양성분.png파일:칼로리 섭취 영양표.png
왼쪽은 군용 건빵 영양성분표이며 오른쪽은 나이, 성별에 따른 권장 칼로리 섭취량이다. 건빵 1봉지는 270칼로리며 물과 비타민 보충제가 있다면 이론상 오래 버틸 수 있다.[39]

무게 대비 칼로리와 탄수화물 양과 휴대성, 잘 상하지 않는다는 효율성이 좋아 보급이 어렵고 비축분 만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건빵만 한 전투식량은 없다.[40] 다만 위에 표에 나와있듯이 군대에 있을 나이의 남자가 전투같은 활동량이 많은 일을 수행한다면 못해도 하루 3000칼로리가 필요한데 이를 건빵으로만 채우게 된다면 하루 12봉지나 먹어야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 오래 버티는 것일 뿐이지 이것만 먹으면 사기가 떨어진다. 당장 식감으로만 봐도 푸석푸석해 목이 막히고 맛의 풍미가 적어 금방 질린다. 당장 맛은 없어도 가짓수라도 좀 있는 한국군 병영식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장병들이 먹기 싫다고 하는데 하물며 건빵은 며칠을 못 갈 것이다. 실제로 전쟁 역사에 건빵에 대한 병사들의 평가들을 보면 대부분 최악이라고 나온다. 별사탕이 개발된 후에야 약간이나마 먹을만한 형태가 되었다. 괜히 전투식량 개발 역사가 긴 것이 아니다.

사기가 중요한 전투인원에게는 주 식량보다는 비상식량으로 건빵이 보급되고[41],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중단되어 생존이 더 중요한 민간에 구호 물자로 보급될 가능성이 더 크다.

3.3.2. 건빵을 맛있게 먹는 법


그리고 이 튀김 건빵은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다. 대형 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구할 수 있으며, 국내 편의점 브랜드 업체인 CU에서도 건방진 건빵이라는 이름의 PB상품으로 출하했다. 가격은 1000원으로, 맛은 그냥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튀겨서 시럽 뿌린 건빵 맛. GS25에서도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공식 상품으로 튀김건빵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가격은 1200원으로 CU의 '건방진 건빵'보다 덜 끈적하고 더 바삭하다.

설탕 대신 소금이나 맛소금을 뿌리는 경우도 있다. 적절하게 소금간을 하면 짭짤하면서도 고소해 제법 맛있어서, 부대에서도 다 달게 하면 질리니까 반 정도는 소금간을 하기도 한다. 특히 치킨이냐 야채 등을 튀겼던 기름으로 건빵을 튀겼을 땐 소금간이 잘 어울린다. 시판 튀김건빵 중에도 이런 제품이 있다. 이 경우 소금간을 한 딱딱한 과자라는 점에서 프레첼과 유사해진다.

건빵이 그러하듯 튀김건빵도 생각보다 오래된 조리 방법이라서,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고래 포경선의 조업자들이 고래기름에 건빵을 튀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여기도 조리장의 협조는 필수였지만.

3.4. 북한

북한군 출신 탈북자의 증언으로는 가끔 보급이 나오는데, 여기처럼 개별포장이 아니라 1인당 10~20알씩 세서 나눠준다고 한다. 전방부대에게는 봉지 단위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사정때문에 계란이나 마가린, 버터는 잘 안들어가있고,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랑 소금 정도만 섞는 등 남한 건빵보다는 오히려 전통 서양식 건빵에 가까운 모습이다.

4. 창작물

4.1. 서양식 건빵

4.2. 동양식 건빵

5. 기타

성경 출애굽기 16장 일부에는 광야생활 10년간 튀긴 건빵 맛 나는 식품만 먹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곡물을 가공하여 음식으로 만든 뒤 수분을 날려버린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의외로 누룽지가 건빵과 비슷한 면이 있다. 실제로 누룽지도 그냥 먹을 수도 있긴 하지만 물에 풀어서 죽처럼 먹을 수도 있는 등 응용법도 건빵과 비슷하다. 하지만 누룽지가 건빵처럼 비상식량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까닭은 쌀의 비중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문제점 때문일 것이다. 쌀은 점성이 있어서 일정한 모양으로 가공하기가 쉽지만 전근대까지는 100% 흰 쌀밥을 먹는 것이 어려웠고[50] 대부분은 콩이나 보리가 들어간, 정확히 말하자면 콩이나 보리에 쌀이 소량 첨가된[51] 수준의 밥이 주식이었던 만큼 이렇게 잡곡의 비중이 높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드는 건 여간 고된 게 아니기 때문. 실제로도 현대에는 순 쌀밥이 아닌 잡곡으로 만든 누룽지도 시판되고 있긴 하나 대부분은 잡곡의 비중이 상당히 낮은 물건들로, 반대로 쌀의 비중이 제로에 가깝고 잡곡의 비중이 대다수인 전근대 시절까지의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어서 보급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옥수수나 다른 잡곡을 가루 내에 반죽한 다음에 솥뚜껑 등에 눌러서 구워 만드는 요리가 전식으로 사용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만주 등지로 근거지를 옮긴 독립군들이 이런 요리를 많이 만들어 이용했는데, '옥수수 건떡'이라고 불렀다. 저장기간이 길고 휴대가 간편해서 건빵과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독립군은 주로 옥수수를 주식을 삼았는데, 이로 인해 생기는 비타민 B3 결핍으로 인한 펠라그라 병을 방지하기 위해 종종 콩가루나 북어 가루를 섞었다.

유진그룹은 1969년 건빵 군납을 하면서부터 커진 기업이다. 2000년대쯤 들어서 공격적 M&A를 하는 등, 급성장을 하였다가 너무 M&A를 많이 해서 탈이 난 모양이다.

어느 밀봉포장 제품에나 적용되는 중요한 확인법이 있다. 일단 봉지를 움켜잡고 가볍게 눌러봐서 내부에 충전된 기체가 빵빵한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풍선에서 천천히 바람빠지듯 쪼그라드는데다 내부 물건이 만져질 정도로 기체가 없다면 포장지에 새는곳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버리는게 좋다. 곰팡이 및 오염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재수없으면 화랑곡나방이 안에 들어가서 파먹다가 죽어있거나 알을 까놓은 상태일수도 있다. 당연히 먹지 않는게 좋다.

간혹 동물원(특히 에버랜드 사파리월드)이나 서커스 등지에서 동물 조련, 훈련중에 보상으로 주는 간식으로 사용할 때가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구하기도 쉽고, 알이 작아서 동물들도 먹기 편하고, 별다른 첨가물이 거의 안 들어있으며 곡물이 주를 이뤄서 훈련용으로는 적당하다고 한다.

법무부에서 공무원들 출장시에 비상식량이란 이름으로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각종 재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컵라면초코파이가 우선 공급되는데, 일본에서는 건빵, 알파미[52]가 우선 보급된다. 알파미가 출시되기 이전에는 건빵만이 우선 보급됐다.

밀과 쌀로 만들어져 탄수화물 덩어리일 것 같지만 군용식량이니만큼 의외로 탄단지 비율이 적절하다. 군납 건빵 기준 1일 권장량 대비 탄단지 비율이 25%:15%:20%로, 생각보다 훌륭한 편. 계란이나 분유, 옥수수가루 등으로 단백가를 맞추기 때문인 듯. 대신 옛 유럽/중동의 원조 하드택만큼의 보존성은 상실했지만 그래도 오래 가고 모양이 치즈 같다. 그런데 그렇게 보존성을 상실한 것도 아니다. 위생과 포장기술의 발달로 1~3년은 저장해둬도 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무보급으로 그렇게 오래 항해하는 배는 거의 없다.

6. 동음이의어

6.1. SOOP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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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브레드 이발소의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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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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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 3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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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먹을 수는 있다뿐이지 빠르게 먹을 수는 없다.[2] 사진에 있는 인물은 흑인인데, 이는 남부에 노예로 노역하던 흑인들 중 일부가 탈출하여 북군으로 참전하여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북부군중엔 북부 출신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도 있었다.[3] 그림의 정가운데 인물이다.[4] 물기를 더 빼고 더 납작하게 만든 버전으로 '카타판(堅パン)'이라는 것도 있다. 오늘날에는 키타큐슈의 특산품으로 유명하며,비주얼이 정말 얼핏보면 전투식량처럼 보인다.자칫하면 턱이 나갈 만큼 단단하기 때문에 주로 우유에 찍어 먹는다.[5] 면포는 빵을 뜻하는 한자어. 이연복 셰프의 시그니처 요리로 널리 알려진 중화요리 '멘보샤도 한자로 쓰면 면포하(빵새우)가 된다.[6] 20~30년된 것은 기본, 2차 대전 것도 조금씩 먹은 적이 있고 110년된 것도 먹어본 적이 있다. 물론 최신 전투식량도 구해다 먹는다.[7] 대개 2차대전~한국전 시기 크래커들이 해당된다. 장기 보존보다는 버터와 소금을 쳐 먹을 만하게 만드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 데 반해 밀봉기술이 부족하거나 기타 여러 이유로 크래커가 산화되어 오늘날 먹으려고 뜯어 보면 썩은내가 풀풀 나는 경우가 많다.[8] 이럴 때는 프렌치 토스트처럼 지져먹거나, 그럴 여유가 없을 땐 그냥 물에 삶아먹었다고 한다. 예시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수기(手記)를 보면, 원동피압박민족대회에 가던 길에 새카맣게 말라붙고 추워서 더 딱딱해진 식빵을 아무리 깨부셔보려고 해도 안 되자 그냥 통째로 삶아먹었다고 한다.[9] 남북 전쟁 당시의 미군 병사들이 붙인 별명.[10] 독일군 병사들이 붙인 별명.[11] 외형에서 보면 알겠지만 건빵보다는 빵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저런 정신나간 강도가 이상한 것도 아닌데 중세나 근세의 민간인들의 빵도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단단해서 빵을 도끼로 쪼겠다느니 빵을 맨손으로 혼자 떼내면 어른으로 취급했다느니 하는 상황이었다. 즉 바싹 마른 건빵은 저것과 대등하거나 심지어 더 단단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12] 겨우 건빵이나 보급되는 최전방에 신선한 야채가 들어오기도 힘들었기에 군인들은 괴혈병까지는 아니라도 비타민 C 부족으로 잇몸과 이빨 상태가 부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도 깨는 건빵을 맨이빨로 씹어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13] 오늘날 우리가 먹는 육포같은 고기가 아니라 소금에 파묻는 형식으로 만들어서 염장고기를 바닷물에 씻어먹어야 할 정도였다.[14] 이렇게 하면 2번 굽기 전의 빵의 식감을 어느 정도 살릴수 있다. 그 대신 흙냄새가 베어버리지만.[15] 약 10개씩 지급되었다고.[16] 남북전쟁 당시 한 군의관의 일기에서 나왔던 기록이다. 냉소적 유머로 먹을 건 괜찮게 나온다면서 저렇게 쓴 것. 물론 아래의 남군 상황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17] 사실 아무리 그래도 흰 밀가루로 만든 건빵과, '베이컨을 싸 오다'라는 숙어가 있을 만큼 그 당시 부의 상징이던 베이컨을 짬밥으로 먹은 건 보통내기는 아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 중에선 순전히 저 보급에 혹해서 북군에 입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동시대 유럽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반 고흐의 그림에 묘사된 유럽 서민들의 식단은 커피 + 찐 감자가 전부. 호밀이나 귀리, 옥수수 로 만든 에 고기라고는 짜고 질긴 염장육이나 먹던 유럽 이민자들의 눈에는 미군 식단이 진수성찬일 수밖에 없었다.[18] 운송이 안 되어서 문제였을 뿐, 후방의 도시 지역은 북군의 포위-봉쇄로 인한 식량난을 <쇠고기양고기, 밀가루의 가격이 폭등하여 부자가 아니면 입에 대지도 못한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옥수수가루나 야채, 닭고기 뿐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풍족했고, 노예들조차도 닭고기, 돼지 내장, 수박 정도는 실컷 먹을 만한 생산력이 있었다. 북군 역시 딱히 타국에서 식량이나 물자를 지원 받은 것도 아니었다.[19] 반대로 남군은 북군을 양키라고 불렀다.[20] 남부연합군 구성 주들 중 담배 생산량이 많은 버지니아 주도 포함되어 있었다[21] 빵을 생활용품 대용으로 쓰다가 먹었다는건 의외로 역사가 오래된 개념이다. 가령 파이는 원래는 내용물만 긁어먹고 빵 부분은 접시 대용에 지나지 않아서 키우는 개에게 개밥으로 주거나 빈민에게 나눠주는게 기원인데, 생활상이 개선되면서 집집마다 식기가 넉넉히 확보되자 반죽에 버터를 넣는 식으로 부드럽게 만들어서 빵부분도 먹을 수 있게 바꾼 것이다. 아이네이스 신화에서도 아이네이스와 일행들이 신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도중 하피들의 섬에 들러 식량확보를 위해 사냥을 하자 분노한 하피들이 '너희들이 신대륙에 도착할때즈음엔 배가 고파서 식탁도 뜯어먹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는데, 후일 아이네이스와 일행들은 항해 도중 어느 이름모를 대륙에 내린 뒤 파이 빵을 그릇삼아 요리를 만들어서 식사를 한 뒤 그러고도 배고파서 파이 빵 부분까지 뜯어먹었는데, 이 때 일행중 한명이 그때 그 하피들이 말한대로 식탁까지 뜯어먹은 격이라며 너스레를 떨자 아이네이스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신대륙에 왔음을 깨닫는 장면이 있다. 즉 파이 빵도 식사용이라기보다는 여차하면 섭취도 가능한 생활용품이었던 것.[22] 꼭 그런건 아니지만 건빵의 형태, 즉 사각형이냐 원형이냐는 보관하는 용기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사각형 건빵은 상자에 담아서 운송 및 보관하는 경우가 많고 원형 건빵은 통에 담아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23] 쌀벌레들은 원래 화학효소를 분비해서 비쩍 말라 단단해진 곡물씨앗조차 갉아 먹기 때문에 견고함이 강철에 비견되는 건빵도 쉽게 파먹었다.[24] 원인은 비타민 C 결핍. 지금이야 종합비타민제나 과일, 채소를 아예 먹지 않는게 아닌 이상 걸릴 일이 없는 병이지만 18세기에, 그것도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범선에 과일이나 채소같은 사치품이 있을 리가... 어지간히 심하게 돌았는지 괴혈병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25] 사실 돼지 기름도 콩팥 지방막에서 뽑은 것은 저급 식재료가 아니다. 지짐 음식용 기름으로는 돼지 콩팥 지방막에서 추출한 '라드'가 제일이기도 하고.[26] 그리고 후렴으로 "Oh lord, I wanna go, But drill sergeant won't let me go~..."로 이어진다.[27]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mighty fine'이라고 되어있다. 합금강을 뜻하는 영어 단어 'fine steel'에서 볼 수 있듯이 fine이 '훌륭하다'는 뜻 외에도 '강하다'는 뜻도 있다. 즉 빵이 꽤 훌륭하다는 뜻과 꽤 강하다는 뜻의, 중의적 단어를 이용한 말장난이다. 그런데 한국어로도 '죽여준다'는 표현이 '훌륭하다'와 '죽인다'라는 중의성을 가진지라 초월번역이 된다. 덤으로 두 줄 아래에 나오는 "and killed a friend of mine"의 mine과 운율도 맞추어졌다.[28] 건빵 맞아 사망한 버전 말고도 수많은 버전이 구전되어왔다. 그 중 하나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군대에서는/ 월급도 정말 많이 준다더니/ 100달러를 받긴 받았는데/ 99달러를 가져갔어요" 정도로 구전되는 식. 전근대엔 군인은 군장을 사비로 구입해야 했는데 보급의 일원화를 위해서 공동구매를 하고 구매금액을 제외한 금액을 월급으로 주어서 아주 헛소리는 아니다. 카투사라면 KTA에서 한번쯤은 배워봤을지도.[29] 히라가나로 표기해 보면 둘 다 "じゅうしょう" 로 똑같다. 한글로 최대한 비슷하게 표기해 보면 "쥬-쇼-".[30] 2019년 5월정도 부터인듯.[31] 뻥튀기로 부피를 늘린 쌀.[32] 군용품 최저가 낙찰은 콜 오브 듀티에서 사망 시에 나오는 격언에도 있는 세계적인 불문율이다.[33] 그 전에는 영양제과에서도 군용 건빵을 납품했다.[34] 참깨건빵은 설탕이 덜들어간 고소미, 야채건빵은 야채크래커와 완전 똑같은 맛이 난다![35] 사실 각자 원조라고 주장해댄다. 예를 들어 해태 제과는 자기들이 한국식 건빵 원조라고 주장한다.[36] 이 노의사는 오랫동안 옥에 갇혀 굶다가 가석방되고 나와서 음식을 급히 먹고 체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37] 당시 이 장면에서 구토물이 거의 그대로 방영되는 병크를 저지름으로써 욕을 먹기도 했다.[38] 누런 마분지 봉지를 사용하는 전투식량용 건빵은 2020년대 초반 현재도 영양제과에서 팔고 있는 '추억의 건빵' 이라는 제품의 포장과 흡사하다.[39] 육포 같이 동물성 단백질이 있으면 더 좋다.[40] 후술하겠지만 전시에 여유롭다면 취향에 따라 나름 건빵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다[41] 비상식량의 조건 중 하나가 애매하게 맛이 없는 것.(맛있으면 다 까서 먹으니까.) 다트렉스 같은 곡물 블럭보다는 그래도 음식의 형태를 하고 있으므로 더 먹을 만 하다.[42] 2014년부터 군용 건빵 포장지에 건플레이크 레시피가 적혀 나온다. 단, 모든 군용 건빵에 적혀 나오는 건 아니고, 특정 업체에서 제조한 건빵 포장지에만 적혀 있다. 부대에 따라 건플레이크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건푸로스트, 건푸라이트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43] 특히 쉽게 구할 수 있는 통조림. 대표로는 스팸과 콘비프.[44] 이건 절여진 고기의 특성상 조미료는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45] 밀가루가 마차에 있는 상태에서 식량이 적을 때 발생한다.[46] 밀가루는 5칸을 차지하며 최대 갯수가 175개이고,건빵은 1칸을 차지하며 최대 갯수가 50개이다. 즉,건빵 200개는 고기 자루만큼만 차지한다.[47] 근데 툭 집안 페레그린은 이걸 4개나 먹어치우고도, 나중에 연회에서 폭식한다.[48] 시즌 1, 30화. <나 돌아갈래>편.[49] 다만 진짜 짬과는 달리 '부식'류인 건빵은 의외로 말년이 되어서도 먹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대신 건빵을 아낀 간식값을 PX에서 다른 곳에 쓴다.[50] 당장 북한의 지상락원의 조건이 '이팝(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임만 봐도, 조선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남북 분단 시절에조차 흰 쌀밥을 먹는 것이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51] 지금이야 식량 사정이 넉넉해서 풍부한 쌀알 사이사이에 콩이나 보리가 알맞게 조금조금 섞여 들어가서 부들부들한 쌀밥 사이사이에 오독오독한 콩이나 고슬고슬 씹히는 보리의 색다른 식감을 즐길 수 있지만, 전근대까지만 해도 콩밥이라고 하는건 콩이 대부분에 쌀은 밥 흉내나 낼만큼 살짝 들어있는 수준이였으니 쌀 맛은 콩의 푸석푸석한 식감에 죄다 눌려버리고 여기에 더해 콩 비린내가 개쩔었으며, 보리밥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쌀은 한 톨도 안 들어가고 100% 순 보리로만 채워진 이른바 '꽁보리밥(통 보리밥)'이여서 식감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오돌오돌한데다가 포만감은 지독하게 낮았다. 옛날 어르신들 중에 잡곡이 단 한 톨이라도 들어간 밥은 쳐다도 안 보고 100% 순 쌀밥만 죽어라 고집하는 분들이 계신 까닭은 단순 밥 투정이 아니라 이 때 지겹도록 먹은 콩 비린내나 보리 식감에 트라우마가 생길대로 생겨서 그런 것이다. 유명인 중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런 이유로 잡곡밥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군대 짬밥도 싹싹 긁어먹는 식성을 지녔음에도 잡곡밥만큼은 절대 안 먹는다.[52] α-米: 물을 넣어 놔 두면 쌀밥이 된다. 원래 일본의 전통 보존식량인 쪄서 말린 쌀을 개량한 물건인데, 유통기한이 길고 불 없이도 밥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맛이 더럽게 없다는 것. 그래도 요즘은 맛을 개량한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불을 피우기 어렵거나 장비의 무게를 줄여야 할 고산 등반대가 60년대부터 우선으로 챙겨가는 식량이 알파미였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군대 가면 먹어볼 기회가 있는 동결건조 전투식량 속 마른 밥알이 알파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