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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994) 活着[2] / To Live | |
장르 | 드라마, 역사 |
원작 | 위화 《인생》 |
감독 | 장이머우 |
출연 | 갈우 공리 외 |
각본 | 호위 |
제작 | 갈복홍 증경초 |
촬영 | 여요 |
편집 | 두원 |
음악 | 조계평 |
제작사 | 상하이영화그룹 연대국제유한공사 |
수입사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영화 |
배급사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영화 |
개봉일 | 1994년 5월 18일 1994년 6월 18일 1994년 6월 30일 1995년 5월 27일 |
화면비 | 1.85 : 1 |
상영 시간 | 132분 |
월드 박스오피스 | HK$ 8,201,911 |
스트리밍 | |
국내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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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화의 소설 인생을 원작으로 하는 장이머우 감독, 갈우, 공리 주연의 1994년작 중국 영화. 원제는 活着(훠저(huó zhe), 살아간다는 것, Lifetimes).영화는 크게 1940년대, 1950년대 그리고 1960년대~1970년대로 나뉜다.
2. 예고편
미국 예고편 |
3. 시놉시스
1940년대 중국,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부귀(갈우 분)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아름다운 아내(공리 분)가 있어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도박에 빠져 전재산을 잃고 아내는 그를 만류하다 못해 떠나버린다. 아버지마저 충격으로 숨을 거두자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후회 뿐이다. 삶의 의욕을 잃은 부귀에게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고 부귀는 가족들을 위해 그림자극을 시작한다.
4. 등장인물
- 푸구이(福贵): 갈우[3] 성은 쉬(徐:서)씨이며, 이름은 복 복, 귀할 귀자를 써서 한국한자음으로 읽으면 서복귀이다.
- 자전(家珍): 공리
- 펑샤(凤霞): 장루(张璐, 어린 펑샤 역), 샤오총(본명 肖聪, 이후 肖婕으로 개명, 청소년 펑샤 역), 류톈치(刘天池, 성인 펑샤 역)[4]
- 요우칭(有庆): 둥페이(董飛)
- 촌장: 뉴번(牛奔, 1935-)[5]
- 춘성: 궈타오(郭涛)[6]
- 완얼시(万二喜): 강무[7]
- 룽얼(龍二): 예대홍[8]
- 촨 씨(老全): 이연의(1939-)[9]
5. 줄거리
5.1. 1940년대 - 국공내전
어느 부유했던 지주의 영식으로 태어났던 푸궤이(福贵)는 도박장에서 세월을 보내는 한량이다. 하지만 한량답게 예술적 소질도 있는지, 가끔 도박장에서 공연하는 그림자극에 직접 공연에 참가하기도 한다. 푸궤이는 아버지와 아내 지아전(家珍)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박을 했고, 도박에 빠진 푸궤이를 견디다 못한 아내는 딸 펑샤(凤霞)를 데리고 아들 요우칭(有庆)을 임신한 채 집을 나가버린다.[10] 이후 아내 지아전이 아들에게 지어준 아명은 부두(不赌). 푸궤이의 도박에 학을 뗀 지아전이 자식은 절대 도박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지었다고…[11]푸궤이의 도박상대였던 룽얼(龍二)은 원래 그림자극을 공연하던 자였는데, 타짜였던지 푸궤이는 계속 그에게 도박에서 진다. 결국 도박빚으로 푸궤이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집문서가 룽얼에게 넘어가고 그 충격으로 푸궤이의 아버지는 사망. 결국 푸궤이는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도박을 끊고 노점상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중 지아전과 펑샤, 아들 요우칭이 푸궤이에게 돌아오고, 이들을 먹여살리는 처지의 푸궤이는 밥벌이를 위해 마을을 돌며 그림자극을 하게 된다. 원래는 가게를 열려고 룽얼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하지만, 룽얼은 돈을 빌려주지 않고 그림자극을 해보라고 하면서 도구를 빌려줬다. 푸구이는 이전부터 도박장에서 허구헌 날 듣던 그림자극에다가 도박에 지고 나면 심심풀이로 그림자극을 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꾸준히 한 탓인지 그림자극을 직업삼자마자 처음부터 꽤 잘한다. 룽얼이 타짜이기는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은 아닌것이, 본인에게 집을 넘겨 갈곳이 없어진 푸궤이가 거처를 찾을 동안 자기가 푸궤이의 병든 노모를 얼마간 모셔주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한다.[12] 이 작품에서 그림자극은 또 하나의 인생을 상징한다. 그 안에 나오는 인물들은 결국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몰락한 푸궤이의 상황과는 역설적인, 즉 푸궤이가 그려내는 그의 이상적인 인생이다. 그림자극 도구를 담고있는 상자는 이상적 인생이 그려지는 세계이자 현실과 구분짓는 도구적 장치이기 때문에 상자마저도 매우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곧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내전. 국공내전이 시작되자 국민혁명군에게 징집되었다. 여기서 동생을 찾아 국민혁명군에 입대한 촨씨를 알게 된다. 국민혁명군은 참패를 하고 있었고, 부상자들은 치료는 커녕 한곳에 모아두고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촨씨는 홍군은 포로에게 친절하니 홍군이 오면 손들고 저항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느날 푸구이, 전씨와 춘성은 눈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벌벌 떨다가 춘셩이 어디선가 구해온 코트 덕에 추위를 이겨낸고 잠이 든다. 눈을 뜨니 국민혁명군이 자신들만 남겨두고 후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코트는 촨씨가 찾는 동생과 같은 대대의 코트였던 것. 촨씨는 이를 보고 어디서 찾아왔냐고 길길이 날뛰고, 손을 들지 않고 시체 더미를 뒤지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촨씨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푸구이와 춘성도 도망치지만, 인민해방군에게 곧 붙잡히고,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살되지 않았다. 아촨, 즉 촨씨는 국부군의 패전을 직감하면서 푸구이와 춘셩한테 홍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고 여차하면 사살될 수 있으니 항상 손들고 다녀라고 충고를 해준다. 정작 본인은 동생 코트에 정신이 팔려 헐레벌떡 뛰어다니다가 저격수의 총을 맞고 죽는다.
푸궤이는 가지고 있던 그림자극 인형 덕분에 밤에는 해방군 병사들 대상으로 위문공연을 하고 낮에는 보급품 운반이나 대포 미는일 등의 짐꾼 생활을 하며 인민해방군에 종군한다.
전쟁이 끝나자 푸궤이는 이렇게 인민해방군과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한 제대군인임을 알리는 증명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포로가 되었던 춘셩은 국민당군 때부터 자동차광이어서 차를 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고, 운전병으로서 홍군에 입대하여 계속 군에 남는다.
5.2. 1950년대
5.2.1. 반혁명진압운동 (1950-51)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푸궤이는, 생계를 위해 물배달을 하고 있는 아내와 마주치게 된다. 중국에는 물이 귀한지방이 많기 때문에, 우유배달하듯이 이렇게 물을 끓여 배달하는 일이 있어서 물배달을 했던 것. 그리고 그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딸 펑샤가 열을 앓다가 농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가 완전히 먹은 것은 아닌 듯, 자전이 펑샤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푸궤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을 촌장인 뉴촌장은 푸구이의 집을 차지했던 룽얼이 반동분자로 인민재판에 회부되었음을 알려준다.[13]룽얼이 인민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공산당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롱얼의 대저택(이전 푸궈이의 집)을 인민들의 숙소로 제공할 것과 곡식창고를 열어 인민들에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격분한 롱얼이 공산당 관리를 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 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반혁명 사보타지죄로 기소된 것이다. 이 때 뉴촌장이 "자네 집 목재 참 좋던데? 7일 동안 계속 불탔지" 라고 가볍게 농담을 하자 거기에 푸궤이는 "그거 우리집 목재 아니라. 반혁명자 집 목재죠"라며 둘러대버린다.[14] "도박으로 재산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고 생각한 푸궤이는 몸서리치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룽얼이 사형당한 이유는 공산당 관리를 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다 불태워 사보타지죄로 사형당했기 때문에, 푸궤이가 집을 안 잃었다는 가정하에 순순히 공산당 관리 말을 들었다면 사형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전에 지아전이 푸궤이에게 돌아올 때 친정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서 많은 돈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녀 또한 친정에 있었으면 인민재판의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15]
룽얼의 인민재판을 구경하던 푸궤이는 갑자기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자기도 위험하지 않을까 불안해했고, 마침 사형선고를 받고 끌려가는 롱얼과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곧장 집으로 뛰어가는데[16] 집으로 허겁지겁 돌아가던 중 총성이 들린다. 잠깐 근처 나무에 오줌을 싸려던 푸궤이는 총성에 놀라 그만 바지에 지려버린다(...) 집으로 돌아간 푸궤이은 지아전에게 롱얼의 총살형을 알리고 온 집안을 뒤져 인민해방군의 제대군인 증명서를 허겁지겁 찾게 된다. 그러나 그 증명서는 푸궤이의 겉옷 주머니에 들어간 채로 지아전이 세탁하는 중이었다. 푸궤이는 급히 옷을 꺼내 군데군데 찢어진 증명서를 잘 말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그제서야 안심한다. 훗날 푸궤이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한 펑샤의 남편 완얼시가 이 증명서를 보고는 어르신 혁명영웅이셨네요!라고 놀라며, 마치 영웅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푸궤이를 바라봤다.
5.2.2. 대약진운동 (1959-61)
얼마 후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푸궤이가 사는 마을 사람들도 좋아라 하면서 집집마다 철 공수를 하여 토법고로를 돌리고 조리기구가 없어지자 난생 처음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이 공동식당을 흔히 캔틴(Cantin)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대약진운동 후의 대기근으로 인한 초대형 아사 사태의 전조가 된다. 대약진 운동의 농업집단화 항목에 써 있는 공동식당(허삼관 매혈기에서 발췌) 참고. 영화에서는 이 공동식당에 대해서 니우는 '배고프면 공동식당으로 오면 고기고 생선이고 배터지게 먹을 수 있어.'라고 한다. 이게 처음에는 (1958)에는 너나할거없이 음식을 풍성하게 먹고 그랬지만, 이후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기근이 찾아오자 풀죽같은 음식이나 먹으며 겨우 끼니를 잊거나 이마저도 없어 쭐쭐 굶거나 풀뿌리, 나무껍질이나 벗겨먹는것이 일상이 되었고, 결국 이후 정권을 잡은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이런 공동식사제도를 폐지했다.펑샤는 여전히 어머니의 배달 일을 돕고 있었는데 동네 개구쟁이 꼬마들이 귀가 안들리는 그녀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이를 요우칭이 목격한다. 화가 나서 달려들지만 쪽수에 밀려 이기질 못하자, 골목대장 아이가 밥먹는 틈을 노려서 뜨거운 국수에 매운 소스를 듬뿍 담아 머리에 퍼부어 복수를 한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화가 나 길길이 날뛰자 처음에는 푸구이도 애들끼리 싸움인데 진정하라고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반동적인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그러자 총살당한 룽얼이 생각났는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아들을 개패듯이 두들겨 패 무마시킨다.[17]
이런 환경 속에서 푸궤이의 아들 요우칭은 집에서 염소를 길렀는데, 이를 어찌나 소중히 여기던지 평소에도 근처에 올라가 염소 먹일 풀을 가득 뜯어오고, 학교에 있는 도중에도 집에 뛰어와 염소에게 먹이를 줄 정도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으로 철 공출이 되며 이 염소 역시 공수되고 마는데, 염소를 보낼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은 마을에 염소를 모아놓은 곳까지 따라가서 자신의 염소에게 밥을 주는 일을 계속한다.
대약진운동이 지속되며 어른부터 어린애까지 밤낮으로 혹사 당한다. 이 마을에선 제철생산작업을 하고 있었고[18] 요우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이런 일 때문에 요우칭이 잠이 모자라 너무 피곤해 학교를 가기 싫어했는데 푸궤이는 부득불 아들을 업어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도 담장 밑에서 졸다가,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무너진 담 밑에 깔려 사망한다. 그런데 하필 그 트럭에 타고있는 높으신 사람은 국공내전 시기 푸궤이와 그림자극을 같이 하며 다니던 후배인 춘셩으로, 간부인 구장이 되어 마을로 금의환향하려 오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초창기의 직책으로 현재는 시당 서기(공산당의 시 우두머리로, 당이 행정에 우위를 가진 중국의 사정상, 시장보다 높다)이나 현(군)당 서기에 해당한다. 춘성이 국공내전이전에 떠돌이 그림자극단 단원이었음을 상기하면 몇년만에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다.
춘셩은 푸궤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에서 보상을 하려고 하지만, 푸궤이와 자전은 아들을 죽인 춘셩을 용서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는 요칭은 교통사고가 아닌 매혈하다가 과다출혈로 죽고, 매혈을 담당한 여자의 남편이 춘셩이었다. 요우칭과 사이가 좋은 남매였던 펑샤 역시 동생의 죽음에 분노해, 동생을 죽인 차의 유리창을 깨고 한바탕 난동을 피운다. 이때 운전수와 실랑이가 붙지만, 춘셩은 죄책감에 펑샤를 놔주고 본인은 혼자서 걸어간다. 춘셩이 차를 좋아한걸 보면 진짜 충격이 매우 컸는듯 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춘셩은 단 한번도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5.3. 1960년대 문화대혁명
세월이 흘러 1960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이 뒤흔든다. 푸구이는 예전에 룽얼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고, 요우칭을 치어 숨지게 한 춘성이 미안한 감정에 푸구이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지만 이것도 다 거절하고 아내와 함께 물장사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낸다.이 시기에 뉴촌장의 중매로 딸 펑샤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 완얼시(万二喜)와 결혼하게 된다. 완얼시는 원래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친후 발을 절게 되었다. 마오쩌둥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데다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혜택을 받아서 근로 감독관이 되었다. 단지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여 같은 장애인인 펑샤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완얼시는 공장의 홍위병 지도자이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장인에게는 매우 예의바르게 행동한다.
완얼시의 경우는 지역내 작업장 즉 공장의 근로 감독관이므로 현재의 직위로 따지면 부장~상무 사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공산당의 공무직은 등급제에 따라 23~1등급까지 나뉘어서 급여 및 배급도 차등을 두었다.[19]
이 시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배하던 시기라서 결혼예물은 마오쩌둥 어록과 마오쩌둥 뱃지, 결혼예복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아닌 인민복이고, 축시는 마오주시, 축가도 마오찬양가가 나온다. 이때 요우칭을 본의 아니게 죽인 이후로 아직도 이 가족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춘셩은 나중에 푸궤이에게 선물을 전달하지만 지아전은 그 선물을 돌려보내라고 한다. 그 뒤에 푸궤이의 말이 걸작인데, 바로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들면서 '뭐? 이거 마오주석님인데?'(…)
이후 푸구이는 사위 얼시로부터 춘셩이 주자파로 찍혀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비투회는 홍위병의 사설 인민재판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왕교수처럼 조리돌림으로 끝났지만, 심한경우는 홍위병의 린치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춘성은 주자파로 찍혀 모진 고생을 당하고, 아내까지 자살하는 비극이 닥치게 된다. 견딜 수 없게 된 춘셩은 자신의 모든 돈을 푸궤이에게 건내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나 푸궤이는 통장을 다시 돌려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야 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려고 하나?'라고 하면서 춘셩을 다독인다. 지아전 또한 돌아가는 춘셩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으니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격려해준다. 지아전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춘셩을 용서해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장면. 한편 매번 소식을 전해주던 뉴촌장도 푸궤이를 찾아와, 그림자극 도구도 반동으로 몰리니 태울 것을 강요한다. 결국 다 태우는 것을 지켜본 후 쓸쓸히 사라진다. 얼마안가 푸궤이는 뉴촌장에게 중매해줘 고맙다고 예물(달걀)을 들고 찾아오는데 뉴촌장은 씁쓸하게, 자신이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때 뉴촌장의 아내는 울면서 자기라도 광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보따리에 짐을 싸고 있었다. 푸궤이도 여기에 대해서는 '왜 죄다 주자파 반동으로 몰리는거지?'라고 불만을 표한다.
펑샤는 만삭이 되어 산통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병원에 있던 의사란 의사들은 죄다 반동으로 분류되어 홍위병들이 죄 잡아가 버려,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을 지키고 있었던 건 생초짜나 마찬가지인 학생들 뿐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병원에 베테랑 의사-간호사는 모두 반동으로 비투회에 끌려가고, 졸업도 안한 의대생과 간호대생들이 의사, 간호사랍시고 병원에 진을 치고 있었던 거다.
병원에 온 푸궤이 가족은 베테랑 의사가 하나도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완얼시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비투회에 끌려가 있던 대학 교수급 전문의 왕교수를 빼와 진료를 보게 하려 한다. 홍위병들이 이를 거부하려 들자 "왕교수는 이전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한 적 있소. 우리가 그의 눈 앞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아 그가 틀렸음을 보여 줍시다!"라고 즉석에서 말을 지어냈고, 홍위병들이 그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꿔 바로 그를 데려온다. 석방된 왕교수는 홍위병의 등쌀에 며칠간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어, 이를 안타깝게 본 푸궤이는 밖에 나가 만터우를 사와 왕교수에게 준다. 그 와중에 완얼시와 펑샤의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왕교수는 허기에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고, 이를 본 푸궤이는 물을 가져다주지만, 위속에서 만터우가 물을 만나 불어서 혼절한다.[20] 문혁때는 미식도 부르주아의 행동이라는 이유로 음식점들이 죄다 문닫거나, 만터우나 죽같은 음식만 팔았다. 그리고 지금도 중국 서민들이 만터우를 먹는 이유가, 차와 같이 마시면 배를 값싸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펑샤가 산후 출혈을 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홍위병 의대생들이 어버버 하고 있는 가운데서 왕교수는 혼절해 있어서 도움을 주지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21] 여기서 재밌는것은 펑샤의 아들은 이름을 만터우로 짓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옛 사람들이 말하길, 음식 이름으로 사람 이름을 지으면 염라대왕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수명을 일찍 정하지 않아서, 그만큼 더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홍위병들이 들었다면 봉건사회의 잔재+미신을 믿는 반동이라면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 이후 후일담에서 혼절했던 왕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만터우 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푸궤이 왈 "그럼 쌀만 먹을 텐데, 쌀값은 꽤 비싼데…"
5.4. 1970년대 에필로그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 등 역사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사건들이 모두 끝나고 평온한 시대가 찾아온 이후의 이야기… 노년이 된 푸궤이와 지아전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만터우의 나이로 봤을 때는 1970년대 중반이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공식적인 종말은 마오쩌둥이 사망하는 1976년이지만, 실제로는 1969년이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홍위병 덕으로 정권을 되찾은 마오쩌둥은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쓸모없어진 홍위병들을 진압했고, 이후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나 반달행위와 같은 일은 더이상 없어진다. 이후 홍위병들을 포함한 학생들은 상산하향 운동으로 시골로 보내져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삽질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골로 간 홍위병들의 후일담 소설들이 90년대부터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늑대 토템이다.그들에게 남겨진 가족은 사위인 완얼시와 그의 아들이자 외손자인 만터우(馒头)뿐. 에필로그에 나온 만터우의 외관이나 펑샤의 묘 앞에 늘어진 만터우의 연령대별 사진이 담긴 액자들의 숫자를 고려해보면 아마 만터우는 에필로그 당시 7~8세쯤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할아버지 옆에서 할머니의 약을 들고 오거나 할아버지가 밥 지을 때 불을 피우는 식으로 돕겠다고 말하고, 할머니께 '착한 아이' 라는 칭찬을 듣는 걸 보면 나잇대에 안 맞게 꽤 의젓한 아이로 추정된다. 딸인 펑샤가 그랬던 것 처럼...
아들 요우칭과 딸 펑샤를 잃었기에 매년 요우칭과 펑샤의 묘에 온 가족이 성묘를 하고 만터우의 성장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펑샤 묘에 보여주며, 성묘가 끝난 뒤 가족의 오붓한 식사장면과 함께 만터우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푸궤이의 말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전에 만터우가 병아리를 사와서 병아리는 어디에 두면 좋냐고 자꾸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만터우의 말을 들은 푸궤이는 식사하기 전에 자기가 썼던 그림자 연극의 소품들을 담아놨던 상자를 꺼내며, 병아리를 여기에 담으라고 한다. 병아리는 보다 더 큰 집에서 살아야한다는 게 그 이유. 한평생 그림자극용 소품상자를 그토록 소중히 여겼으나 이제는 외손자에게 병아리를 키울 수 있게 주는 것을 통해 푸궤이의 삶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앞서 그림자극이 푸궤이가 그려내는 또 하나의 이상적인 인생을 나타낸다 하였는데, 그것을 담고 있던 세계(상자)를 공식적으로 외손자에게 승계하는 장면이다. 그림자 도구처럼 병아리는 만터우의 또하나의 인생을 대변하며, 이는 병아리(닭)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증명된다. 푸궤이가 이야기할땐 이미 성장한 닭이었는데, 닭의 새끼가 병아리라는점에서 만터우에 비유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병아리를 키워서 더 큰 동물을 사서 부자가 되자는 말은 자기 아들이었던 요우칭이 처음 동물을 기르게 될 때 나눴던 대화이다. 다만 그땐 푸궤이가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라 손자 만터우에게 얘기를 할 때는 이 이야기의 결론이 다르게 된다. 그리고 이 씬 주변 장면 중에 손자의 이름과 같이 만두가 나오는 씬이 있다.
비교적 희망적인 방향으로 여운을 주는 열린 결말인 영화와 달리 원작 결말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특히 푸궤이는 끝까지 불행한데 그가 사랑하는 아내 지아전은 곧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사위는 작업 중 시멘트에 깔려 죽고, 혼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손자 만터우(원작에서는 이즈음 아명 만터우가 아닌 본명 쿠건(苦根)으로 불린다)조차 콩을 많이 먹다 급체로 죽는다. 결말은 오히려 영화가 더 나은 편으로, 결말까지 원작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이 정도 걸작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 영화 개봉 당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영화관을 나가는 사람들이 극소수였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 몸이 아픈 외할머니, 그런 아내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외할아버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홀로 장인, 장모를 부모처럼 모시며 아들을 아끼는 사위이자 아버지… 본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주연들의 인생과 가족애를 거짓 없고 애절하게 보여주었던 식사 장면은 지금도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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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없음 / 100 | 점수 없음 / 10 | 상세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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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87% | 관객 점수 96%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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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4.1 / 5.0 | 관람객 별점 없음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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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7.9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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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1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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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5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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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3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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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1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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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91.89% | 별점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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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9.1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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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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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Live (Huo zhe) offers a gut-wrenching overview of Chinese political upheaval through the lens of one family's unforgettable experiences.
인생은 한 가족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의 창을 통해 중국의 뼈아팠던 정치적 격동사의 조감도를 보여준다.
로튼 토마토 평론가 총평
인생은 한 가족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의 창을 통해 중국의 뼈아팠던 정치적 격동사의 조감도를 보여준다.
로튼 토마토 평론가 총평
1990년대 장이머우 감독의 최고 작품 중 하나다. 중국 현대사를 그린 수많은 영화중에서도 최고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재까지도 중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명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7. 기타
- 원작 소설은 지나가던 화자가 노인이 된 푸궤이의 이야기를 듣는 액자식 구성이지만 영화에서는 화자 없이 푸궤이의 이야기만 나온다. 그 외에도 원작과 영화가 소소하게 다른 점이 몇 있다. 푸궤이가 집을 잃고 나서 룽얼에게 빌린 것은 원작에서는 농사지을 땅 다섯 묘이지만, 영화에서는 그림자극 소품으로 나온다. 당연히 소설에서는 나중에 해방군 앞에서 그림자극을 하는 묘사도 없다. 또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화병으로 쓰러져 돌아가시는데, 소설에서는 아들의 파산을 인정한 후 나중에 변소에서 미끄러져 목이 꺾여 사망한다. 그리고 아들 요우칭이 다른 아이 머리에 음식을 쏟는 행동도 소설에 없는 내용인데 영화에 추가되었다. 요우칭의 죽음도 다른데, 소설에서는 높으신 분이 된 춘셩의 부인(요우칭네 학교의 교장)에게 헌혈을 해주다가 의사가 피를 너무 많이 뽑아버리는 바람에 죽어버리나, 영화에서는 대약진운동 때문에 힘들어서 학교를 가기 싫어했음에도 억지로 학교에 갔다가 춘셩이 모는 차에 치어 사망한다. 이후 소설에서는 춘셩이 위로금을 가지고 푸궤이의 집 앞에 찾아오지만 지아전이 문전박대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춘셩이 요우칭의 무덤 앞에 있던 푸궤이와 지아전을 찾아온다. 그리고 사위인 얼시는 소설에서는 머리가 한쪽 어깨로 비뚤어진 사람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절름발이라고 묘사된다. 펑샤와 얼시의 결혼 당시에도 소설에서는 얼시가 구경꾼들에게 고급 담배를 갑째 나눠주었지만 영화에서는 몇 개비씩 던져주는 것으로 나온다. 또 결말부도 다르다. 원작은 주인공 푸구이를 제외한 모두가 다 죽는 결말이지만, 영화에서는 그래도 푸구이와 사위, 손자는 끝까지 살아남았으며 지아전도 건강이 안 좋긴 하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 10년 단위로 씬이 전환되면서 첫 장면마다 똑같은 거리를 비춰주는 연출이 나온다. 1940년대에는 깔끔하기 그지 없던 거리가 10년이 지난 1950년대부터 서서히 낡아가기 시작하더니, 1960년대에는 벽마다 문화혁명 대자보가 붙여진 모습을 지나 에필로그의 1970년대에는 세월의 풍파를 맞고 완전히 낡아버린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도 영화의 흥미로운 포인트.
- 주목할만한 것은 작품 중반 50년대에 푸궤이와 요우칭이 제철작업에 갈 때 푸궤이는 요우칭에게 '우리집은 닭과 같다.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되고, 소 다음에는 바로 공산주의다. 매일 고기랑 만두(고기만두)를 먹을 수 있지.'라고 하지만, 에필로그에서는 푸궤이가 만터우에게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 양이 자라면 소가 되지. 그리고 소 이후에는... 그때면 만터우 너도 어른이 될 거란다. 그때쯤이면 너는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살기 더 좋아질 거야.' 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마치 미래에 당부하듯이, "만터우는 행복해질 거야" 하고 말한다. 푸궤이의 아들과 딸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매우 슬퍼지는 장면이다. 이미 공산주의 혁명이 퇴색되고, 덩샤오핑 시대를 담담하게 예상하는 푸궤이 집안, 나아가 당시 중국 인민들의 시선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 더 여운을 남긴다. 심승현의 파페포포 시리즈에서도 내용을 조금 바꿔 인용된 바 있다.
- 이 영화는 제작 당시에는 중국에서 개봉되지 못했고, 1990년대 말에서야 중국에서 비디오 CD로 풀렸다. 현재는 중국 웹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다. # 개봉 금지된 이유는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같은 현대 중국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나와있기 때문이다. 장이머우는 이후에도 여러편 (5일의 마중(2014), 원 세컨드(2020))에도 문화대혁명을 직접 비판하는 작품을 감독했다. 일부에서는 시진핑 시대에 이런 작품을 냈으면 장이머우가 감방에 갔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위에서 말한 5일의 마중이나 원 세컨드 모두 시진핑 시대에 나온 작품이다. 시진핑 및 현재의 중국 집권층 대다수는 문화대혁명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중국 영화에서 문화대혁명 비판에는 전혀 규제가 없다.[22]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홍위병에 구타당했고, 시진핑의 누나인 시허핑은 홍위병에 맞아죽었을 뿐만 아니라, 시진핑 본인도 시골에 끌려가 5년간 삽질을 했다. 다만 문화대혁명 비판은 오직 문화대혁명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문화대혁명 비판에서 나아가 시진핑 정권이나 공산당의 지배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면 영화면 상영금지, 책이면 금서조치다. 옌롄커의 소설 <사서>가 이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다.
- 위에서 말한대로, 이 영화는 너무나 중국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장이머우, 갈우, 공리는 5년간 영화제작 금지에 처해졌지만, 이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예술성이 칭송되자 곧 풀렸다고 한다.
- 비극적이고 암울한 내용과 달리 등장인물 푸궤이 일가의 이름은 다들 집안의 보물, 경사스러운 일, 부귀함 등등 좋은 뜻을 담은 이름이라 독자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한국에도 일부러 의도적으로 작명한 소설이 있는데 전영택의 화수분이 그것이다. 좋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끝내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다는 점에 똑같다. 이 때문인지, 푸궤이의 외손자 만터우의 본명 쿠건은 고난의 뿌리라는 뜻으로 푸궤이 일가에서 유일하게 좋은 뜻의 이름이 아니다. 복된 이름을 가진 어른들이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아이만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23]
- 주인공 푸궤이 역의 배우 갈우는 이 영화를 통해 1994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감독 장이머우도 동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 이 영화와 거의 비슷한 영화로 장이머우와 같은 5세대 감독중의 하나인 톈좡좡이 감독한 <남풍쟁 (또는 푸른연)>(1993) 이 있다. <남풍쟁>은 갓 결혼한 새색시가 마오쩌둥 체제가 일으킨 여러 변란 (반우파 투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서 남편을 잃고 재혼, 삼혼을 하지만 새 남편도 계속 잃어버리는 내용이다. 이런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눈을 통해 마오쩌둥 체제를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어느 정도 우화가 들어가 오픈결말로 맺고 있는 <인생>과는 달리 이 남풍쟁은 마지막 의붓아버지도 홍위병에 맞아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어머니도 반동으로 몰려 수용소로 끌려가고 관찰자인 아들도 폭행을 당하는 등, 끝도 희망도 없는 결말로 끝난다. 그리하여 <인생>과 비슷하게 제작당시(1993)년에는 중국에서 상영이 금지되었고, 톈좡좡은 8년간 제작금지에 처해졌다. 2000년대가 되어서야 이 영화는 규제가 풀려 중국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이 영화의 대표적인 OST는 여기서 들을 수 있다. #
[1] 해당 상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심사위원그랑프리 (Grand Prix du Jury)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현재의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2]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뜻이다.[3] 이 배우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대배우이다. 같은해 나온 패왕별희에서는 비슷한 한량이자 거부인 위안스칭(원세경)역을 맡았다. 이사람도 후반부에 나오는 문혁의 피해자인데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문화대혁명 기간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진학하지 못하고 상산하향 운동에 휘말려 시골에서 돼지를 치며 일했다. 1979년 문화대혁명 이후 예술계 대학에 입시를 치르지만, 합격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4] 성인 펑샤 역 유천지는 출연 당시 중앙희극학원 재학중이었다. 연기보다는 교단으로 가서, 일본에 유학갔다가 모교에서 교수를 맡았고, 이때 유천지에게 배운 제자들이 덩차오, 당언 등, 현재의 중국의 톱스타들이다. 청소년 펑샤 역 초총은 1982년생으로 현재 스튜어디스인 것으로 보인다. https://www.zhihu.com/question/20770370/answer/367456313[5] 뉴번은 예명이고, 본명은 장학경(장쉐징). 중국 일급배우로 국가에서 지정한 배우다. 북한의 인민배우와 동격. 이후 없어졌다. 배우는 매우 고령이지만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6] 2014년작인 5일의 마중에서도 당간부로 나온다.[7] 주조연급으로 꽤 많은 영화에 나왔다. 가장 최근 작품은 800(영화)의 랴오톄. 유명 영화감독 강문의 이부동생으로도 유명하다.[8] 이후 신삼국의 사마의 역으로 나왔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의 주인공 되시겠다.[9] 일급배우.[10] 사실 푸궤이가 이렇게 방탕하게 지낸 것도 집안 내력이다. 푸궤이의 늙은 아버지는 젊은 시절 엄청난 바람둥이였고 푸궤이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도 축첩에 열을 올려 돈을 펑펑 쓰는 바람에 푸궤이 대에서 가세가 많이 기운 편이였다. 작중에서도 원래 집이 세 채였는데 지금은 한채뿐이라는 대사도 나오고, 자기를 나무라는 아버지에게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도 맑다고 응수하는 푸궤이에게 노인은 한마디도 못한다.[11] 이 때의 일이 지아전에겐 큰 상처였는지, 푸궤이가 개심하고 한참이 지난 후 사위인 얼시가 펑샤의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바빠도 짬을 내어 펑샤 곁에 있어줄 것을 당부하면서 '이 양반은 내가 펑샤를 가졌을 때엔 코빼기도 안 보였다'고 뒤끝을 보였다. 머쓱해 하면서 그 때 일은 좀 그만 말했으면 하는 푸궤이는 덤이다.[12] 룽얼은 쭈뼛거리며 구걸하는 푸궤이에게 자신은 이 집을 물려받은 후 도박을 끊었다며 거드름을 피우고, 푸궤이도 사심없이 자기도 도박을 끊었고 막 태어난 아들 이름도 도박 안 한다는 의미의 부두라고 짓자(도박을 끊다와 아들 이름이 같은 언어유희)룽얼이 심사가 잠시 틀려 너 지금 나 비꼬는거? 노려보자 푸궤이가 급히 꼬리를 내리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된다.[13] 이것은 반혁명진압운동의 일환이었다. 1950-51년에 벌어졌던 운동으로, 주로 대만으로 피난가지 못한 국민당 잔당, 악덕지주나 자본가, 친국민당성향 정치깡패나 유격대, 마약상등이 70만명 가량 처형되었다. 패왕별희에서는 갈우가 맡았던 배역인 원세경이 이 운동에 걸려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14] 물론 촌장도 거기에 대해서는 "그야 물론이지. 자네랑 그자랑 같나?" 라고 하며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집을 뺏기지 않았다면 빼도박도 못할 지주의 아들 신분이었을 푸궤이 입장에서는 농담이라고 해도 어떻게 보면 상당히 식은땀이 흐르는 뼈있는 농담이었던 셈. 자고로 이 시기는 출신성분 만으로도 죽임을 당할 수 있던 시기라 푸궤이 입장에서는 저 농담 하나로도 정말 목숨이 간당간당 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밀고했으면 푸궤이의 인생과 함께 영화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15] 실제로 지주와 자본가라해도, 재산권을 국가에게 넘기는 대신에 기업관리자로 전직하거나, 고위 직책을 맡는 방식으로 지역유지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 당시 지주들과 자본가들 중에서 많은 경우에는 국민당과의 연관성이 문제가 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20년 뒤 문혁의 광풍을 생각하면, 멀쩡히 지주로 살아 공산당에 재산을 들어바치고 적극 협력했어도 이때 부농, 지주라는 출신성분과 경력이 문제돼 피해를 봤을 확률이 높고, 실제로 문혁때도 지역유지 자리를 유지하던 전직 지주들과 자본가들이 습격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16] 룽얼은 이 때 푸궤이를 목격하고 무어라고 외치지만, 인파에 묻혀버렸다. 아마 푸궤이를 알아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입모양을 보면 '살려달라'는 뜻의 '救命阿(주밍아)'에 가까웠다.[17] 조금만 이웃들에게 반동으로 몰려도 목숨이 위험했던 시절인데다, 그것도 푸궤이는 지주 출신이라 가족을 위해 푸궤이가 총대를 맨 것이었지만, 아직 어린 아이라 어른들의 사정을 몰랐던 요우칭은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고, 지아전도 어머니 된 입장으로 화가 나서 '애를 그렇게 때려야 했느냐'며 푸궤이와 부부싸움을 했다. 이후 요우칭은 아버지 푸궤이의 공연장에 차를 들고 찾아갔는데, 그 차에는 요우칭이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고 넣은 식초가 최소 세 큰술, 어머니 지아전이 거들어서 넣은 고춧가루 한 큰술이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보고 신나서 웃는 펑샤는 덤이다.[18] 이 와중에 완성된 철을 중앙 정부에 보내는 축하 행사를 여는데, 그 품질이 영화상에서도 조악한 품질로 묘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촌장은 ‘우리가 만든 강철이 포탄이 되어 장제스에게 날아갈 것이다’라며 너스레를 떤다.[19] 장융의 대륙의 딸에선 쓰촨(사천)시를 관할하는 시장이자 국장인 실제 아버지가 10등급, 실제 어머니인 샤오홍은 열렬한 공산당원이자 청렴했던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17등급에서 훗날 15등급까지 승진되었는데 어머니의 직함은 쓰촨시 여성 노동국 부국장이었다. 완얼시의 경우엔 적어도 21~20등급 정도로 추정된다. 10등급인 아버지에게 주어진 배급 혜택은 전용 관리인 1명과 2~3명의 무장한 보초병이 지키는 현대식 아파트에 전화가 개통되어있고 2일에 한 번씩 뜨거운 온수샤워가 가능했으며 아버지 봉급 외에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노랑 쿠폰을 바꿔 달걀 10개, 식용유 800g, 설탕 600g, 고기 및 육류 1.2Kg, 사과 같은 과일류는 작황 사정만큼, 포풀러 광목 등을 포함한 옷감 3필인데 비해 어머니의 초록 쿠폰은 그의 1/4 수준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에서 금지된 서구의 문화, 즉 마돈나나 비틀스 같은 것도 극장에서 수시로 봤었다고 회고한다. 소설 중 장융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배급소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쿠폰을 바꿔서 장을 봤다고 회고하고 있다.[20] 실제로 오래 굶주린 사람에게 씹어먹는 음식을 주면 급체하여 탈나는 경우가 많다.[21] 이후 푸궤이와 지아전은 딸의 무덤 앞에서 당시의 사실을 담담하게 읊조리는데, 그때 그 교수가 앉은 자리에서 만터우를 무려 7개를 먹었다. 만터우 1개가 물을 만나면 거의 7배로 불어나는데 결국 그는 만터우를 49개(...) 먹은 셈이었다고.[22] 문혁은 중공에서 공식적으로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로 규정되어 있으며, 오히려 문혁무오론을 제기할 경우 보시라이파로 몰려 숙청 될 가능성이 크다.[23]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화수분이 태어날 때만 해도 그의 집안이 엄청난 부잣집이었기 때문. 그의 부친은 아들들이 오래오래 부자로 살라고 첫아들에게는 장자, 둘째아들에게는 거부, 셋째아들에게는 화수분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친 사후 집안은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맏형 장자는 일찍 죽고 둘째형 거부는 중병으로 운신을 못하고 화수분도 보다시피 얼어 죽고 만다. 아이러니의 극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