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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4:59:36

괴혈병

비타민C 결핍증
Vitamin C Deficiency
<nopad> 파일:괴혈병.png
괴혈병에 따른 잇몸 사이의 출혈 사진.
<colbgcolor=#3c6,#272727> 이명 <colbgcolor=#fff,#191919>괴혈병(Scurvy, 전통적 명칭;
Scorbutus, 질병으로서의 괴혈병)
묄러병(Moeller's disease)
치들병(Cheadle's disease)
바로우병(Barlow's disease)
국제질병분류기호
(ICD-10)
E54
의학주제표목
(MeSH)
D012614
진료과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치과
질병 원인 비타민C의 섭취 부족 혹은 소화 흡수 장애에 따른 결핍증(영양 장애)
관련 증상 만성 피로, 피부 건조증, 관절 변형, 출혈(내출혈), 각혈, 혈뇨, 혈변, 타박상

1. 개요2. 원인3. 증상4. 치료5. 역사
5.1. 현대의 괴혈병
6.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괴혈병(, Scurvy) 또는 비타민C 결핍증(Vitamin C Deficiency)은 비타민C(아스코르브산)의 결핍으로 인해 나타나는 병이다.

2. 원인

비타민C의 섭취 부족, 장의 흡수장애, 혹은 세균감염으로 인한 체내 수요량 증가 등에 의해 나타난다. 특히 인간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 계열의 동물들은 체내에서 비타민C를 합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타민C를 섭취하지 못하면 잘 걸린다.

비타민C는 인체의 세포조직의 형태를 유지시켜주는 콜라겐 합성에 관여하는데, 비타민C가 없으면 구조단백질인 콜라겐이 견고한 섬유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스러지기 때문에 각종 장기 및 혈관벽 등의 약화가 일어나 내출혈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증상에 따라 잇몸에서 피가 나는 병으로 유명한데, 정도가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3. 증상

괴혈병의 초기 증상은 기본적으로 무기력감, 나른함 등 만성피로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어서 권태감, 식욕부진, 피부건조 등이 나타나며, 피부에 피하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병이 심하면 잇몸 등에도 출혈이 나타나며 잇몸이 약해져 치아가 흔들거린다. 이외에도 혈뇨와 혈변 등 몸 곳곳에서 출혈성 질병이 발생한다.

이러한 증상을 계속 방치할 시 뼈가 약해져 골절이 일어나기 쉽고, 지속적인 내출혈에 의한 빈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어서 구강점막, 피하, 내장 등에 출혈로 인한 혈종이 나타나게 된다. 비타민C가 보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증상이 더 심해지면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지게 되어 최악의 경우 결국 감염 등으로 인해 죽는다.

4. 치료

치료 방법은 매우 간단한데 그냥 비타민C를 먹으면 된다. 수십mg, 하다못해 비타민C 정제 같은 거 말고 비타500(100ml 기준 500mg)이라도 한 병 섭취하면 4~6주는 괴혈병이 안 온다. 괴혈병은 사람이 아파하니까 질병인 거지 치료법은 치료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다.

비타민C는 , 오렌지, 사과, 레몬, 라임, 키위[1], 딸기, 복숭아 등의 과일과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배추[2], 풋고추, 파프리카, 토마토 등의 채소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감자 같은 서류에도 들어있다. 날고기에도 들어있는 데다 탄산음료 같은 가공식품 일부에도 보존제 겸 마케팅의 일환으로 미량의 비타민C가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러다보니 그냥 육지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거나 대충 먹는 정도를 넘어, 두 달 넘게 김치도 없이 라면만 먹고 사는 경우처럼 비타민C가 아예 없을 만큼 극히 불균형한 개막장 식단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정도여야 간신히 걸릴 수 있다. 애초에 중근세에도 배 안에 한달 넘게 고립되는 선원들이나 걸리는 병이었다.

딴 것도 아니고 애들 입맛이라고 듣기 좋은 젤리, 탄산음료, 심지어 한국에서 안 보고 사는 게 더 힘든 김치에까지 들어있기 때문에 의사들도 설마 한국에서 괴혈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하필 나한테 올 가능성이 있을까 싶어 다른 병을 의심해 피검사를 해보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괴혈병 걸려서 병원 가니 의사가 식습관 고치라고 혼을 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3]

인간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 계열[4]기니피그, 박쥐 정도를 제외하고는 포도당비타민C로 바꾸는 유전자가 작동되기 때문에 딱히 채식을 하지 않고서도 비타민C를 스스로 합성할 수 있다. 육식동물은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데다가 사냥에 성공하면 내장부터 먹어 이런저런 영양소를 보충하기에 괴혈병을 비롯한 다른 비타민 문제가 없는 편. 유인원이나 박쥐처럼 비타민C를 합성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비타민C를 매우 효율적으로 대사하기 때문에[5] 괴혈병에 걸린 개체에게 비타민C만 주면 잘 흡수하여 빠르게 완치된다.

5. 역사

상술했듯 괴혈병은 오늘날에는 질병 축에도 못 낄 정도로 정말 간단하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비타민의 개념을 알지 못하던 과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체내에서 충분히 합성되지 못하므로 특정한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화합물(=비타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며, 과학적인 실체는 생화학, 영양학적 지식이 충분히 쌓인 1930년대에 와서야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항해를 시작한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이 원인 모를 질병과 씨름해야 했고, 그렇게 괴혈병은 수백 년간 매우 무시무시한 병으로 군림했다.

특히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인들에 의해 대양을 항해하는 장거리 해로가 개척된 15세기에서 적절한 대처법이 마련되어 보급된 19세기 사이의 400여 년간 괴혈병은 바닷사람들에게 매우 골치 아픈 질환이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야 채집과 수렵, 경작이 가능했으므로 비타민의 존재를 몰라도 자연스레 주변에 있는 과일과 채소를 섭취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말린 콩, 비스킷, 소금에 절인 고기[6] 등 비타민이 파괴된 보존식만 먹으면서 장기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괴혈병은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괴혈병이 생기는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항구에 정박해 좀 있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었으나 당시에는 한 번 출항하면 다음 항구까지는 몇 달씩 항해를 해야했기 때문에 한 번 괴혈병이 발생하면 항구에 다다르기 이전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식문화의 차이도 영향을 줬다. 동아시아의 경우(특히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 육류 섭취를 금기시하는 대승불교와 기후/토질 등의 영향으로 목초지가 적어 채식의 비중이 높았다. 여기에 장거리 항해가 거의 발전하지 않았고 중간 기착을 해가며 식량을 계속 보급한데다가 초절임, 당절임 등의 방법으로 보존 처리를 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선상에서 콩나물을 키우기까지 했기에 괴혈병의 사례가 매우 적었다.[7] 하지만 서구권은 전체적으로 채소와 과일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떨어지는 편이었다. 당장 실제로 유럽에선 한때 채소 도둑은 처벌하지 않은 시대도 있었으며, 끼니를 거르지 않았어도 고기를 먹지 않았으면 끼니를 거른 것으로 취급하던 때도 있었다. 또한 특히 집에서 매일 먹기는 어려웠던 흰 빵과 고기 그리고 술을 마음껏 먹기 위해 선원으로 지원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원들에게 채소와 과일을 먹이기도 어려웠다. 연안을 따라 항해하거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항구들로 촘촘하게 형성된 네트워크 망 형태의 항로를 항해하던 동아시아와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일부 국가들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등 대양을 건너며 장기간 항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신선한 과채는 물론이고 긴 항해 기간을 버틸 보존 처리한 과채를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과거에는 괴혈병 치료법을 모르거나 비타민C를 보충할 수단이 없어 이를 지속적으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 장내 출혈이나 부종,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비타민C와의 연관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고 비타민C를 보충할 방법도 많기 때문에 이 정도의 중태에 이른 환자는 사실상 볼 일이 없다.

비타민C는 설익은 과일과 식용 식물에 모두 들어있고 신선한 고기에서도 얻을 수 있으므로 굳이 잘 익은 과일이나 채소만 찾지 않아도 된다.[8] 다만 조리하기보다는 날것이나 되도록이면 덜 익힌 것으로. 실제로 초창기 남극, 북극을 탐험하던 모험가들은 괴혈병으로 고생하다가 갓 잡은 물개 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으로 병을 치료했다고들 한다. 아문센의 회고록에서 한번은 경험이 별로 없는 선장과 선원들과 항해를 갔다가 결빙 때문에 고립되어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픽픽 쓰러지고 있었는데, 본인은 신선한 물개펭귄 고기를 먹으면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적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이를 선장이 극구 반대하여 결국 선원 거의 전원이 앓아누운 사건을 언급했다. 결국 선장마저 쓰러지고 나서야 아문센이 펭귄 날고기를 거의 강제로 먹이다시피 해서 병세를 호전시켰다고. 일부 함선에서는 를 잡아 먹어서 괴혈병이 나아졌다고도 한다.[9]

오래전부터 고기를 선호하던 서양에서는 아직 비타민C의 존재를 몰랐음에도 경험을 통해 괴혈병의 특효약 중 하나가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레어 스테이크라는 건 일단 알고 있었다. 매우 적절한 대응법 중 하나였지만, 이는 육지에서나 가능한 처치였고 장기 항해 중인 배 안에서 신선한 고기를 구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 시절의 바다에선 배 안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선장이나 함장도 고기를 매일 먹기 힘들었고 기껏해야 바다에서 낚은 물고기를 굽거나 배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염장육이나 삶아 먹는 게 고작이었으니 배 위에서 신선한 고기를 찾아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실 선장이나 함장 정도면 고위층이라 육지였다면 생고기를 매일 먹기가 가능했으나, 바다에선 예외였을 정도로 이 당시엔 염장 고기가 주류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건 선상 낚시로 생선을 잡아 신선할 때 곧바로 회쳐먹는 것. 바다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신선식품인 생선로 먹어도 비타민C가 보충이 되기에 치료 효과가 있어서, 경험적으로 이 방법이 구전된 함선이나 상선 등에선 함장이나 선장이 허락하거나 지시해서 낚시를 하면 우선 병실에 입원한 환자에게 먹일 생선을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신선한 생선만큼은 선장이나 함장이 아닌 병실에 입원 중인 환자가 배급에 있어서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이 방법도 마냥 해결책은 아니었는데, 우선 식량은 되도록 장기 보존이 원칙이었던 건 둘째치고 당시의 어업 기술도 그리 발달하지 않은데다가 장기 항해용 배는 어선이 아니다보니 낚시도 쉬운 게 아니었다.[10] 당시 해군과 선원들의 주식이 생선이 아닌 쉽비스켓과 염장육이었던 것은 제아무리 바다 위의 배라 해도 고기잡이가 쉽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잡은 생선 몇 마리는 즉석에서 해체해 회 쳐 먹는 장면이 나온다. 차라리 내륙이라도 강이나 호수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면 신선한 (민물) 생선이 그렇게까지 먹기 어려운 음식은 아닌데, 이 당시의 항해 중인 배에선 선장이나 함장도 먹기 어려운 음식 중 하나였다. 결국 상선이나 군함에서 생선을 확보하려면 항구에 있는 동안 최대한 고기잡이를 하는 게 방법이었는데 이마저도 확보한 생선들 대부분은 염장생선으로 만들어야 했고, 일부는 즉석에서 구워먹어야 했으니 결국 이 방법으론 냉장 기술도 없던 그 당시엔 싱싱한 생선을 확보할 수 없었다. 또한 이 당시 범선들은 함재묘를 태우고 다녔으나, 그 고양이들은 배에서 잡아도 잡아도 끊임없이 나오는 쥐들과 벌레들을 잡는 용도로 태운 데다, 벌레들과 쥐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기에 굳이 생선을 먹이지 않더라도 고양이의 먹이는 자동으로 확보되기도 해서 굳이 배를 멈춰가며까지 고기잡이를 할 필요성도 적었다.

고춧가루같이 말린 식품은 어떨까 싶지만, 일단 고추는 콜럼버스 이후에 등장한데다 비타민C는 항산화제다. 열풍이나 뙤약볕에 말리면 대부분 파괴된다. 그늘에 말린다면 한결 나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가루를 내려면 분쇄해야 하므로 여기서 또 아웃. 품종과 건조 및 가공 방법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USDA 기준으로 고추가루 100g당 표준권장섭취량의 1%라는 괴멸적인 감소량을 보여준다.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생각만큼 큰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당시의 고추는 지금 우리가 먹는 고추처럼 맛있는 게 아니고 그냥 무지막지하게 맵기만 한 물건[11]이었던지라 비타민C의 존재를 알아도 안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12]

심각한 문제는 과거의 저장방법인 염장이나 훈제, 건조 등의 방법으로 음식물을 처리하면 비타민C가 파괴될뿐더러, 설령 남아있다고 해도 얼마 가지 못해 빛 등에 의해 분해된다는 것. 이는 각기병을 예방하는 비타민B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다.

따라서 당시 뱃사람들의 배에는 비타민C가 들어가 있을 음식이 전무했다. 대부분이 럼주, 브랜디 등 도수 높은 [13]이라든지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고기, 벽돌 같이 단단한 비스킷[14], 상한 물이나 곰팡이가 피고 돌덩이 같은 치즈, 바싹 말라 비틀어진 완두콩 같은 것뿐이었다. 신선한 과일도 생고기도 하여튼 비타민C를 구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15세기 이전의 유럽의 선원들은 대양 항해가 별로 없이 지중해와 북해, 발트해 등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바다에서 연안을 따라 주로 항해하며 자주 항구에 들렀기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시간이 흘러 대항해시대 이후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먼 바다를 건너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선원들에게는 괴혈병의 발병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자비로 항해 중 도축해 먹을 가축이나 과일, 채소 등을 사들여 올 수 있는 장교상선사관 등은 이 병에 그나마 잘 걸리지 않았지만, 인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말단 수병과 선원들은 괴혈병에 자주 시달렸다. 그나마 과업이 낚시던 어선이나 포경선에선 하급 선원들도 물고기와 고래가 꾸준히 잡혀 준다면 신선한 날생선과 고래고기를 자주 섭취해서 괴혈병에 잘 안 걸렸다.[15] 그 외에도 해적들의 경우 주로 카리브해나 동아프리카, 말라카 등의 연안에서 활동하여 육지에 들르기 용이한 편이었고, 해군이나 무역선과 달리 고기잡이를 자주하였고(약탈이 없을 땐 주로 고기잡이와 생선을 염장 처리해 보관하는 일을 했다.) 과일이 들어간 술을 자주 마셨으며 일반 선원들도 평생 먹고 살 정도로[16] 돈이 많아서 상선으로 위장하고 항구에 들러 과일, 채소를 자비로 사들여 올 수 있어서 괴혈병이 드문 편이었다.

괴혈병으로 큰 타격을 입은 대표적인 사례가 1740년 영국 해군이 아메리카 식민지 원정을 위해 파견한 조지 앤슨[17] 제독(George Anson 1697~1762)이 이끌었던 함대이다. 출발할 당시 총 1955명의 장병들로 구성된 함대였으나 세계일주를 하여 4년 후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앤슨 제독 본인을 포함해 634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 중 전투로 죽은 사람이 4명, 열병과 이질로 죽은 사람이 320명이며, 절반 이상인 997명은 모두 괴혈병으로 죽었다.

이러한 괴혈병의 막강한 힘 앞에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았는데 술을 한 병 원샷한다든지, 목만 남기고 땅에 파 묻는다든지, 배에서 추출된 황산을 마신다든지(!!) 등의 극단적인 방법까지 썼지만 이런 걸로 괴혈병이 나을 리가 없었다. 레몬같이 신맛이 나는 과일을 먹으면 괴혈병이 낫는 경험에 따라 신맛, 정확히는 산성 성분이 괴혈병을 치료한다고 믿은 쪽에서 황산을 먹이는 실험을 했다. 희석한 황산을 먹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죽거나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자우어크라우트와 레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식초를 먹는다는 발상이 생겨서 실험도 했다.

또한 이 병이 냄새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18][19], 배 내부를 수시로 유황 피워 낸 연기로 소독하거나 청소를 자주 하는 등의 노력도 해 보았다. 이 또한 다른 질병 예방의 부수적 효과는 있었다지만 괴혈병에 효과가 없기는 매한가지.

그러던 중 1747년,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James Lind, 1716 ~ 1794) 박사는 제대로 실험을 해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괴혈병 환자들을 나누어서 그 당시에 알려진 여러 치료법들을 적용시켜보았다.[20] 그 결과 레몬오렌지 같은 과일을 먹은 환자들의 증상이 완화되어 갔고 결국 치유까지 된 것을 발견한다.

린드는 이후 1753년논문을 통해서 오렌지레몬과 같은 과일이 괴혈병을 낫게 해줄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당시 영국은 물론 유럽 의학계 전반에서 린드의 의견을 어떻게 그런 과일 따위가 괴혈병을 치료하겠느냐면서 철저하게 무시하였다. 영국 해군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해군들 또한 린드의 연구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비용적인 측면[21]이 겹쳐 적극적인 대응에 미온적이었다.[22]

하지만 각국의 해군 수뇌부 역시 괴혈병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다. 과일을 사서 보급해 줌으로써 나가는 비용이 괴혈병으로 죽는 숙련 수병들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에 비하면 매우 적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기된 앤슨 제독의 4년간의 세계일주에서 괴혈병으로 잃은 인원이 1000명에 육박했는데 이 정도 숫자면 1급 전열함 3~4척을 조함할 수 있는 병력이다. 더구나 군함의 수병이나 상선선원은 어느 정도 이상 숙련되지 않으면 아무런 쓸 데가 없었다. 즉 숙련된 선원이 괴혈병으로 죽어나가는 건 인력 손실 면에서 숫자 이상으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돈지랄을 해서 수병을 충원해도 단지 별 쓸모없는 비숙련자로 머릿수만 채울 수 있지, 숙련된 인적 자원을 순식간에 복구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혈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를 반복하는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섭취하면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제임스 쿡 선장이다. 1768, 1772, 1776년의 세 차례 장기 항해 중에서도 쿡 선장의 함대에서는 괴혈병으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급할 때마다 채소, 과일을 꽉꽉 채우고 수병들에게 최대한 자주 먹게끔 하고 틈만 나면 상륙해서 선원들에게 신선한 식품을 먹이고 항해 도중 사용할 신선한 식품들의 확보에 열성적이었으며 배의 위생관리에 철저히 신경 쓴 덕택이었다. 특히 한번 항해를 나갈 때마다 양배추 소금절임인 자우어크라우트[23]를 3가량 준비해서 괴혈병에 대비했으며 선원들이 반드시 양배추를 섭취하도록 명령했으며, 고기보다 양배추가 많이 보급되는 것에 불만을 터트리는 선원을 군법에 따라 채찍질을 해서라도 채소를 많이 먹도록 다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선원들은 차라리 죽이려면 죽이라는 투로 안 먹었다![24] 결국 강제로는 먹일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쿡은 발상의 전환을 감행하여, 되려 자우어크라우트의 배급을 확 줄여버리고는, 장교급 고위계급자들에게만 두둑히 배급하도록 바꿔버렸다. 처음 며칠간은 선원들은 좋다고 했으나,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도대체 저 절인 양배추를 왜 장교들한테만 주냐며 불만이 오가자 수병들의 의견을 듣고 자우어크라우트를 풀어서 선원들이 스스로 먹게끔 조련했다.[25] 그렇게 하여 쿡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괴혈병으로 인한 사망자 없이 세계 일주를 해낸 선장이 되었다.[26]

또 다른 경우로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있는데, 넬슨 제독의 경우 함대에 양파 보급을 중요시하여 기항할 때마다 양파를 충분히 실어놨다가 배식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양파는 껍질을 까지 않으면 상온에서도 보관성이 제법 좋아 장기간 보존하기 좋았다. 또한 당시 선원들과 수병들 사이에서도 양파는 다른 과채류에 비해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에 거부반응 없이 먹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양파를 잘 보급하여 먹이는 것은 괴혈병을 비롯한 영양 결핍증 예방과 체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됐다.

린드 박사의 의견은 묵살되고 잊혀지는 듯하였지만 제임스 쿡 선장의 성공적인 항해도 있었고 1781년 길버트 블레인이 다시금 괴혈병의 치료법을 이야기하였고 더 이상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견디지 못한 수병들의 항의도 있었기에 결국 영국 정부는 1795년에서야[27] 해군에 라임을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대안책은 레몬이었다. 그러나 라임에 비해 레몬은 수확량도 적은 데다 영국이 점령한 땅들에서는 잘 나지가 않아 많이 비쌌고, 생으로 먹기에는 무리가 있어 설탕을 넣어야 하니까 비용 문제 때문에 공급을 거부했다. 반면 라임은 카리브나 인도, 말레이 반도 같은 영국령 식민지들에서 대량으로 재배되어 값이 훨씬 싼 덕분에 괴혈병 대응책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여전히 함장들과 군의관들의 의심이 팽배했고 선원들과 수병들의 거부감도 있었기 때문에 배급음료가 아니라 괴혈병 치료제, 그러니까 의약품으로서 라임 주스를 제공했다. 예방은 못 해도 환자 발생 시 금방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그 외에도 여전히 보급이 어려운 문제 때문에 질병 예비를 위한 라임 주스 제공이 정상적으로 실행된 때는 1820년부터였다. 라임은 레몬보다 비타민C 함량이 다소 적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었고 비타민 자체가 인체에 극히 소량만 요구되었기에 라임을 갈거나 짜내 만든 주스 정도면 괴혈병 문제 해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때문에 영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영국 해군의 별칭은 라임 주스나 먹는 꼬맹이이라는 의미에서 라이미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거칠고 남자다운 성격과 체질을 유지하려면 채식을 멀리하고 육식과 음주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28] 때문에 라임 주스나 마시는 영국 해군을 보고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우리로 치면 성인 남성이 어른의 음식인 커피는 못 마시고 애들처럼 사탕이나 빠냐고 비웃는 것과 같다. 나중에는 이것이 대명사처럼 굳어져 지금도 종종 영국 군인을 해군, 육군, 공군 가리지 않고 라이미라고 부르곤 한다. 미국에서는 직업과는 관련 없이 영국인 자체를 비하하는 단어로 변질되었다. 이는 중국인을 짱꼴라로, 일본인을 쪽바리로 부르는 것과 동급의 심한 욕인데 당시 영국은 미국의 적성국이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나라 비하 표현이 널리 쓰인 것이다.[29]

영국인들의 식단이 육류 위주로 구성되기는 했지만, 스테이크는 레어로 많이 먹고, 당근양파, 완두콩, 깍지콩, 토마토, 사과, 베리류 같은 채소과일들은 식단에 반드시 포함되었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비타민C와 관련된 문제가 없었다. 통조림 기술, 더 나아가서는 냉장-냉동 보관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선박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비타민C 섭취가 어려웠을 뿐이다. 애초에 육지에서 비타민C 부족이란 극지 탐험가나 겪는 일이다.

어찌 되었건 이 시절 생으로 먹기에는 시고 향이 강한 라임을 어떻게든 맛있게 만들기 위한 온갖 노력들이 있었고, 이때 탄생한 라임 관련 레시피들이 영연방 각지로 퍼져나갔다. 라임 주스를 이용한 칵테일들, 라임 에이드를 비롯한 음료들, 라임 파이 등이 그 산물이다. 오늘날에도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이 라임을 이용한 요리들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 해군의 주요 기항지이자 영국의 핵심 식민지-자치령이었고, 오늘날에도 영국과 교류가 활발한 싱가포르의 경우 웬만한 호커 센터나 음료 가판대에서 영국식 라임 음료들을 기본적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덕에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에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특히 라임이 민트와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에 아예 라임 민트라는 조합법도 있다.

다만 여전히 그 발병원인이 비타민C 부족에 의한 것이라는 걸 정확히 몰랐던 탓에, 대충 신맛은 나지만 비타민은 거의 없는 식초과실주를 지급하기도 했고 또는 분명 레몬이나 라임이지만 그것을 시럽처럼 불에 졸여서 먹이기도 해서[30] 언제나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오지만은 않았다.

다른 유럽 해군들이나 뱃사람들의 경우 다른 해결방안이 있었다. 채소를 먹지 않으니 이렇다는 분석이 나와서 채소를 절여서 먹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를 먹고 있었다. 물론 소금과 식초도 비타민C를 보존하는 데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원양 항해에서 괴혈병을 완벽히 예방하기는 어려웠고, 때문에 영국과 비슷한 시기부터 레몬, 오렌지 등의 운향과 과일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와 달리 이슬람권에서는 괴혈병에 대해 유럽보다 이른 시기에 발전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의사들이 채소를 먹으면 괴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무려 15세기부터였을 정도. 이슬람권은 비교적 일찍부터 인도양 대양 무역의 중심에 있었고[31], 그들도 기나긴 항해로 괴혈병에 걸리거나 물 문제로 골치를 겪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괴혈병의 치료법을 경험적으로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권의 경우 인도양 곳곳에 거점을 마련해 놓고 이런 거점 항구들에서 과일과 채소들을 구매해 보급하는 방식을 썼다. 물론 거점이 없는 대양으로 향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보존 처리한 과채류와 차를 섭취하며 버텼으나 서구권의 맨땅에 헤딩 수준인 괴혈병 원인 분석의 역사에 비하면 훨씬 발전된 부류였다. 서구권 의사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아랍인들의 이런 괴혈병 예방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상술한 대로 비용문제와 함께 이슬람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도입이 늦어졌다.

중국의 경우, 대원정을 했던 명나라 정화의 경우는 선내에서 콩나물을 재배해서 해결했다고 한다. 콩나물의 경우 생장 중에 비타민C가 생합성되기 때문이다.[32] 다만 이 방법은 선내에 선원들에게 지급할 충분한 양의 콩나물을 키울 공간이 필요했고, 더 큰 문제는 콩나물 재배에 막대한 양의 물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식수도 구하기 힘든 원양 항해에서 쓸 만한 해법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화의 항해 자체가 미지의 해역을 향한 탐험, 또는 장기간 보급이 불가능한 원양 원거리 항해가 아니라 고대부터 이미 교역망이 구축되어 있던 동남아시아+인도양+아프리카 동해안 지역에서의 연안항해였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화가 거친 항로 자체가 1세기부터 이미 확립되어 있던 실크로드의 바닷길을 따라간 것이며, 따라서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 구축되어 있던 환 인도양 교역권의 보급 거점 및 교역항들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 즉 정화의 항해는 탐험이나 원거리 교역이라기보다는 명나라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대규모 대외 원정에 가까웠고, 여기서 보급 문제는 '보관과 운송'의 문제라기보다는 '거래를 통한 구입'의 문제였던 것이다. 콩나물 재배 역시 계속 보급거점을 거치며 깨끗한 물을 보급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비타민C를 공급하기 위해 필수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장거리 원정에서 식량 보급 안정성을 위한 다양한 수단 중 하나로 차라리 둔전에 더 가깝다. 괴혈병의 위협에 심하게 시달리던 원거리 항해의 사례에 비교할 수는 없는 것. 또 이와는 별개로 정화의 함대는 물 관리에 실패하여 괴혈병 대신 수인성 전염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또한 이후 명나라 조정에서 정화 함대의 항해 일지들을 소각시키고 자세한 기록들을 파기한 바람에 정확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

비슷한 이야기로 일본군도 러일전쟁 시 콩나물을 재배해 먹어서 비타민C를 섭취했다는 얘기가 있다. 링크 반면 러시아군은 콩을 그냥 수프로만 먹어서 상대적으로 비타민C가 부족했다는 설.

괴혈병이 크게 줄어든 이유 중 또 하나는 감자의 전래와 일상식화였다. 감자는 주식 작물치고 상당한 양의 비타민C를 함유하고 있고, 자체 전분이 비타민C가 열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서 열을 가해도 어느 정도 비타민C가 남는다. 또한 햇빛이 드는 곳에 두지 않는다면 저장성도 나쁘지 않아 선원들에게 주식으로 보급하기에 제격이었다. 그리하여 유럽에 힘들게 전래되어 퍼진 감자는, 18세기 말부터는 유럽 선원들의 식단에도 반드시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유럽인들이 개척한 항로를 따라 전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예방법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이후에도 인류가 괴혈병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초반 러일전쟁 당시에도 러시아 해군 발트함대는 극단적인 장거리 항해를 하다 보니 신선한 채소를 지속적으로 보급받기 힘들어 수병들이 괴혈병에 시달려야 했다. 근현대의 함대가 괴혈병에 걸린 좀 특이한 경우.[33][34]

지금까지의 서술을 읽어 보고 감이 잡혔을 수도 있지만, 괴혈병은 철저히 대증적인 연구를 통해 극복한 병이다. 비타민이 뭔지 아예 몰랐으니 당연한 것이다. 비타민은 현대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지만, 사실 꽤 어려운 개념이었다. 비타민C의 개념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1930년대의 일이며 비타민D 등 다른 종류의 비타민은 더욱 늦게 발견/정립되었을 만큼. 즉, 그 이전까지는 경험적으로 '이런 것을 먹었더니 괴혈병이 낫더라.' 정도로만 알았던 것.

다만 원인 혹은 해결 방법을 아는 것과 완전한 해결을 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 영국 해군의 경우 라임을 지급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라임을 장기 보관할 방법이 없어 라임 주스 착즙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괴혈병에 적극적인 대처가 힘들었다. 이후 라임 주스 착즙법 개발을 시작으로 병조림과 통조림의 도입, 현대 영양학과 냉장-냉동술의 등장, 싼 값으로 비타민C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극빈국을 제외하고는 비타민C 결핍증 환자를 찾기 어렵다. 오늘날 괴혈병은 사실상 사라진 질병이 되었다.

5.1. 현대의 괴혈병

괴혈병은 비타민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현대와는 거리가 먼 질병으로 취급된다. 괴혈병의 원인과 치료법이 일반상식으로 널리 알려져있고 비타민이 함유된 채소와 과일을 구하기 쉬워진데다, 비타민제까지 개발된 현재에는 걸리고 싶어도 못 걸릴 질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원양 항해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자취인들에게서 매우 드물게 괴혈병 환자가 보고될 때가 있다. 실제사례
60세 남성이, 보름 전부터 기력이 없고 어지러웠으며 10일 전 맥주 반 컵 가량의 붉은색 토혈을 하여 내원하였다. 당뇨가 있었으나 7개월 전부터 자의로 약물 중단한 상태였고, 내원 1년 전부터 라면만 먹다가, 1개월 전부터 두부만 먹고 생활하는 자였다.
「토혈로 내원한 괴혈병 환자의 상부 위장관 내시경 1례」 홍익병원 내과, 김성주, 주형준. 2020년 제71차 대한내과학회 추계학술대회 中

원인은 비타민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잘못된 식습관 때문이다. 특히 자취하는 대학생의 경우 배달 음식과 라면, 통조림, 3분 카레 같은 레토르트 식품 등으로만 식사를 대충 때우는 것을 반복하다 영양섭취가 엉망진창이 되어 결국 비타민C 부족이 선을 넘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35] 채소, 과일 같은 청과들은 자취생들에게 고가이기에 자주 사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비타민이 부족해지게 된 것이다. 다만 근처 슈퍼편의점이나 약국에 들러 과일, 과일 농축액, 비타민 영양제 등을 하나 사 먹으면 즉시 완치되고, 심지어 레모나, 비타500 같은 저가품을 먹어도 해결된다. 그래서 장애가 생기거나 죽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물자가 부족한 재난이나 전시에도 그런 때를 대비한 키트와 비축물자에 반드시 비타민제가 들어가 있다.

사실 자취생이 아니더라도 채소과일을 잘 안 먹는 사람이면 걸릴 수 있다. 실제로 채소, 과일을 잘 안 먹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느날 잇몸에서 피가 나는 등 괴혈병 증세가 나타나자 과일 한번 먹고 나았다는 사례도 있다.

괴혈병은 병원에서 준 약이나 혹은 과일과 채소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야단만 좀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기 때문에 현대에서 이 병에 걸려 병원을 가면 의사들이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어떻게 생활했기에 이런 병에 걸리냐고 한소리 들을 정도로 현대로 와서 그 위용은 매우 낮아졌다. 오히려 현대에 병원 진단으로 괴혈병이 나타났다면 괴혈병보다는,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엉망으로 섭취한 영양으로 인해 생겼을 몸의 악영향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병에 걸리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6. 창작물에서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 요삭이 이 병에 걸린 묘사가 나왔다. 당시 동료였던 조니는 치료법은커녕 정확한 원인조차 몰라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지만, 다행히 괴혈병에 대해 알고 있던 나미가 임시 치료로 라임을 짜낸 즙 한 통을 요삭에게 먹였고, 덕분에 요삭은 회복하게 된다.[36] 나미의 말로는 한 세대 전만 해도 항해에 뒤따르는 절망적인 병이라고 했는데 고작 한 세대 전에만 해도 이 지경이었다는 소리니[37] 많은 등장인물들이 모를 법도 하다. 특히 상식이 부족한 루피나 조로는 더더욱... 하여튼 이로 인해서 밀짚모자 일당은 배에서는 영양관리를 담당할 훌륭한 요리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로 가 동료를 영입하게 된다.

유명한 해적 이야기 보물섬에서도 소금에 절인 사과를 담는 나무통들을 배에 싣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38]

미국보다 한국에서 1992년 출판되어 대박을 거둔 리차드 쇼 휠러 (Richard S. Wheeler 1935~2019)의 소설 <지상에서 가장 슬픈 약속>[39](Where The River Runs,1990년 미국 출판. )에서도 19세기를 배경으로 미국 원주민들과 협상하러 간 미국 정부 대표단이 길을 잃고 산지에서 낙오되어 다 죽어가고 주인공 홀로 살아남았으나 괴혈병으로 죽어간다. 그를 구해준게 원주민인데 원주민들은 괴혈병을 알고 신선한 열매를 먹어서 고칠 수 있음을 알고 있어 그 열매를 줘서 병이 낫게 된다. 참으로 허무한 게, 괴혈병으로 일행들이 죽어갈 때 이 열매가 바로 주인공네 주변에 가득히 있었거늘 누구도 먹는 건 줄 몰라 다 죽었던 것이다.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만 이걸 먹으면서 동료들의 죽음을 한탄한다.

2009년 드라마 정화하서양에서는 선원들이 괴혈병에 걸리자 동료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웹소설 화산귀환에서는 폐관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북해에서 부잣집 빼고 도는 의문의 유행병이 이 병으로 밝혀진다. 청명 일행이 가져온 곡식들, 혜연이 직접 호수에 들어가 잡아온 생선을 날로 먹는 것으로 해결.

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는 시리즈 전통적으로 오래 항해를 하면 괴혈병이 걸리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피로도가 올라 선원들이 하나 둘 죽어가면서 게임오버. 하지만 게임 내 세계관에서는 이미 라임주스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있는지[40] 라임주스 아이템을 사용하면 해소된다. 혹은 그 외의 치료 가능한 음식을 먹거나 아니면 그냥 근처 항구에 정박만 해도 해결된다. 시리즈에 따라 특정 선수상을 달면 예방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라임 주스를 괴혈병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냥 사용하면 '맛있다' 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소비되기만 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갱플랭크는 리메이크 이전까지 언제나 괴혈병이란 디버프에 걸려 있었다. 리메이크 이후에는 괴혈병 디버프가 사라졌다. 물론 W는 리메이크 전이나 후나 여전히 괴혈병 치료로 불리며, 쓰는 즉시 귤을 까먹어 체력을 회복하고 에어본을 제외한 CC 효과를 제거하는 스킬이다.

Europa Universalis IV에서는 함대의 항해 시간이 길어지면 소모율이 마구잡이로 증가하여 결과적으론 함선들이 모조리 침몰한다. 그 원인은 바로 괴혈병으로, 외교기술이 후반테크로 들어가면 괴혈병 치료법이 발견되어(...)[41] 항해 시간에 따른 소모 증가가 사라진다.

같은 회사의 크루세이더 킹즈 2에도 있는데 캐릭터가 함선을 오래 이끌면 발생한다. 근데 끽해야 지중해에서 북해까지가 다이므로 일반적으론 걸리지 않는다. 일부러 함선에 올려놓고 자살시키는 용도로 많이 쓴다.

카리브해 해적을 다루는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에서도 등장하는데 히로인인 일레인 말리 총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괴혈병 퇴치를 위해 라임 농장을 차렸다고 나온다. 다만 작중 시점에서는 공익 홍보가 잘 안 먹혀서 고민이고 이걸 해결하는 게 퀘스트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풍자로 은유되는 경향이 크다.

생존 게임 더 롱 다크에서도 등장한다. 게임 배경이 끝나지 않는 겨울 배경의 자연이라 비타민 섭취 루트가 매우 제한되며 발병 시 체력이 무서운 속도로 깎여나가 위협적이다.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에서는 주인공 박하정이 괴혈병의 원인과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로즈힙 차를 추천하여 제국 여성 최초로 은독수리 훈장을 받는다.


[1] 과일 중에서 사실상 비타민C 함유량이 가장 많다.[2] 배추의 비타민C는 김치나 자우어크라우트 등 염장 보관했을 때에도 크게 손실되지 않는다고 한다.#[3] 피자에 야채가 있긴 하지만 비타민C는 고열을 가하면 파괴된다.[4] 유전자 돌연변이로 비타민C 합성 효소가 결핍되었다. 참고로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이 포도당을 비타민C로 바꾸는 유전자가 결핍 되었다는 사실은, 지적설계의 대표적인 카운터이다.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왜 지적설계자는 인간에게 포도당을 비타민C로 만드는 유전자를 넣지 않아 수천년 동안 인류가 괴혈병으로 고생하게 만드냐?" 라고 물어볼 때 제대로 된 답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5] 이미 한번 쓰여서 산화된 비타민C인 DHA 까지 알뜰하게 재활용한다.[6] 간간한 정도가 아니라 보존을 위해 소금 반 고기 반 정도의 염도로, 물에 헹궈서 소금기를 빼야만 먹을 수 있고, 바닷물보다도 더 높은 염도를 자랑했다. 이 엄청나게 짠 염장고기 때문에 당시엔 과다한 염분 섭취가 괴혈병의 원인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였다.[7] 대신 각기병이 자주 발생했다. 특히 적당히 부유하여 잡곡과 현미를 먹지 않지만 수산물, 육류, 유제품, 난류를 자주 챙겨 먹기에는 가난한 이들이 많이 걸렸다. 원래 동아시아는 적당히 부유한 이들도 두부된장 같은 콩을 가공한 식품을 즐겨먹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거의 없었으나, 근대화가 이뤄지며 식단의 변화가 생기며 콩을 베이스로 한 가공 식품들의 섭취가 중단되며 각기병이 유행했다. 이런 각기병 유행은 비단 동아시아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쌀을 주식으로 삼는 지역들에서도 자주 발생하였다. 깨끗하게 정제한 흰 밀가루만 먹어도 각기병에 걸릴 수 있지만, 서구권에선 육식의 비중이 비교적 높았고 고기(특히 돼지고기)에는 비타민 B1이 풍부하다. 또한 밀은 벼에 비해 껍질이 두껍고 도정이 매우 어려운 곡식이라, 현대 이전엔 그 시대 기준으로 깨끗한 흰 밀가루라 하여도 밀기울이 10% 가량은 함유되어 있었다. 서민들이 먹는 거친 통밀가루는 더 말할 것도 없고.[8] 그래서 과일이나 채소를 구하기 힘들었던 유목민들도 의외로 괴혈병에는 잘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이누이트들이 사냥한 고기를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극지방에서는 연료를 구하기 어려워 식재료를 불로 조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9] 물론 쥐라는 동물이 그리 청결한 곳에 사는 동물은 아닌지라 기생충 감염 등의 위험이 있어서,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권장하지 않는다.[10] 특히 이런 배들은 군함이나 상선인데 이 배들의 속도는 엔진으로 움직이는 현대적인 배들보다는 느렸지만 낚시와 같은 조업활동을 하기엔 너무 빠르게 항해했다. 비유하자면 달리는 말에 타서 나뭇가지에 열린 과일을 따려고 손 뻗는 셈이다. 그렇다고 함선을 멈추자니 낚시를 하겠다고 함선을 멈추는 것도 당시엔 시일을 다투는 상황에서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상선은 비타민 공급하겠답시고 멈춰대면 그게 전부 손해였고 군함은 해적 소탕의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박 내의 작은 배인 함재선을 고기잡이 한다고 물에 띄워놓기엔 작은 배를 띄운 이상 선박 속도를 낮춰야 하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시일을 다투는 상황이라 역시 못할 짓이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한몫했다. 해적들이 고기잡이를 일상적으로 했던 것도 간혹 항구를 들릴 때를 제외하곤 무인도의 기지에서 지내거나 바다 위에서 지냈기에 먹고 살기를 위해서라도 고기잡이를 해야 했다.[11] 할라피뇨를 생각해보자. 그것도 그나마 사람이 먹을 만큼 개량된 놈이다. 초기 야생고추는 야생동물이 매워서 두 번 다시는 못 먹도록 무지막지하게 매운 열매를 맺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12] 지금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들의 상당수들은 '인간이 섭취하기 알맞게 개량된 품종'들이 대다수이다.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은 물론 이나 옥수수, 감자 등도 이미 모두 개량되어 있다. 같은 식품이지만 야생에서 자라는 품종들을 먹어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맛이 전혀 안 난다![13] 그마저도 도수가 낮은 물건은 (무균 처리에 밀봉하지 않는 이상은) 시간이 지나면 산패한다. 정확히는 식초가 되어서 식수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물론 물을 타서 마시면 물도 살균이 되고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되기에 로마군에서도 그런 식으로 마시긴 했지만 담수조차 구하기 힘든 배 위에선 택도 없는 소리다.[14] 이 벽돌 같은 비스킷은 괴혈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이와 잇몸을 더욱 빨리 약해지게 만드는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15] 다만, 이 경우에도 서양권은 동양권에 비해 생선을 날로 먹는 문화에 거부감이 심한 편이었다. 생선을 서양의 관습대로 익혀 먹는 순간 비타민C 섭취는..... 거기다 동양에선 이나 미역, 다시마 등 해초를 먹기도 한 반면, 서양에선 20세기 후반에나 와서야 미식가들을 중심으로 해초류를 먹는 문화가 조금씩 전래되었다. 현대에도 서양에서의 1인당 해조류 수요는 그다지 높지 않다.[16] 당시 해적이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큰 돈을 벌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해군이나 무역상들 중에도 해적을 만났을 때 그대로 해적에 가담한 경우도 많았다.[17] KGV급 전함 4번함의 이름이 이 사람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18] 중세시대엔 어지간한 질병은 죄다 냄새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이 때 개발된 방독면은 유독성 대기 물질을 걸러내는 정화 기능이 달린 게 아니라 향수가 들어있었다. 드라큘라마늘을 무서워한다는 속설도 냄새 때문에 생겨난 속설. 때문에 냄새가 안 나게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말 그대로 주변이 청결해지니 병원균에 감염될 가능성을 낮춰주므로 방향은 다르지만 간접적으로나마 효과가 있긴 있었던 셈이다. 그 유명한 흑사병 창궐기 역병 의사 마스크도 매한가지로 앞쪽 새부리에 향수를 넣어놓고 있었다.[19] 현대에도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 노출되고 깨끗히 씻지도 못한다면 아무래도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건 마찬가지라, 불결한 환경에서 나오는 악취가 질병 매개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20] 린드 박사는 괴혈병이 몸의 부패에 의해 일어난다 생각했으며, 산이 그걸 막아준다 생각했다. 린드 박사는 자신이 탄 배에서 두 달의 항해 뒤 선원들이 괴혈병에 걸리기 시작하자 2인 1조로 6조를 만들어 실험을 시작했다. 모두 똑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거기다 추가로 1조는 사과주 약 1리터, 2조는 황산 25방울, 3조는 식초 6숫갈, 4조는 바닷물 약 500ml, 5조는 오렌지 2개와 레몬 1개, 6조는 매운 양념과 보리 음료를 지급 받았다. 5조의 경우 실험 6일차 때 과일이 다 떨어져서 실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이미 1명은 완전히 회복을 하고, 다른 한 명은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 나머지는 사과주를 지급 받은 1조를 제외하곤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21] 설령 연구가 신빙성이 있다 한들, 레몬과 오렌지는 값도 비싸고 선내 보관 비용도 비싸서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22] 과학적 방법론이 철저하게 굳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유독 의학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과학적 방법론을 제대로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경우와 같이 손 씻기의 예방효과를 무시해서 산파보다 의사가 더 많은 산모를 죽인 것 등... 사실 저 시대에는 과학의학이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심했다. 박테리아의 존재가 밝혀질 쯤에야 의학이 제대로 과학과 연결되어 과학적 방법론이 굳어진다. 증거 기반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은 서양에서도 오래된 개념이 아니라 조선에 서양의학이 소개되기 얼마 전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아무리 21세기 현대에는 의료 산업이 거대해지고 과학이나 산업과 결합하여, 엄청난 지식을 요구하게 됐다지만, 17세기 이전에는 거의 모든 나라의 의학이 구전지식이나 민간요법으로 이어져왔다. 1665년에 로버트 훅이 최초로 현미경 비슷한 것으로 코르크의 세포를 볼 때까지만 해도, 인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음식이나 시체를 썩게 하거나 그 냄새가 나면 주변에 병이 퍼진다는 것을 대충 때려맞힌 것이다. 그것의 원인이 세균임을 알게 된 것은 적어도 근대의 일이다.[23] 영국 이전에 상업제국을 이루었던 네덜란드 등 북해를 항해하던 선원들의 저장식이자 괴혈병 예방책이었다. 영국 해군이 전 세계 바다를 호령할 때 전쟁보다 더 많은 선원을 잃은 원인이 괴혈병이라서 가장 널리 알려져서 그렇지, 영국 이전의 해양국가들도 이런 일을 겪고 또 저마다 해법을 발명했다.[24] 이런 현상은 나중에 일본제국군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당시 쌀밥은 고사하고 잡곡밥도 제대로 못먹던 서민들이 쌀밥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에 군에 많이 지원했는데, 정작 군에서는 각기병 예방을 위해 쌀밥에 현미밥과 보리밥을 주다보니 병사들 "쌀밥 먹으러 군에 왔는데, 정작 주는 건 잡곡밥이구나!"라며 불만을 터트렸다는 이야기.[25] 비슷한 에피소드가 프랑스프로이센감자가 보급된 계기에서도 등장한다. 감자를 심어 먹으라니까 은 거둬가고 이딴 걸 어떻게 먹냐며 백성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프리드리히 대왕의 수랏상에 매끼마다 감자 요리를 올렸지만 여전히 감자 보급이 제자리걸음이자, 발상의 전환으로 감자들을 모두 회수한 뒤 그걸 귀족층들만 먹게끔 특권마냥 설정했고, 서민들도 감자 맛이 궁금해서 귀족들의 밭에 있는 감자들(일부러 경비를 느슨하게 해서 훔쳐가기 쉽게끔 판을 짰다.)을 서리해 먹어보자 그 맛이 소문이 퍼져 감자가 퍼졌다는 이야기.[26] 물론 괴혈병이 없었을 뿐 다른 원인으로 인한 희생자는 당연히 있었다. 항해 도중 바타비아(자카르타)에 기항했다가 이질말라리아가 선원들 사이에 창궐하면서 엄청나게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사인 중에 괴혈병은 없었다.[27] 상술했듯 린드의 논문이 나온 게 53년도이니 40년하고도 한참 넘었고, 린든이 1794년에 죽었기 때문에 린든 사망 직후에야 결실을 본 셈이다. 심지어 길버트의 논문이 나온 지도 10년이나 넘은 시기.[28]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범선시대에 머물러있는 식습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자세한 건 마초 문서 참조.[29]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금주법 이후 미군 내의 주류 유통이 심하게 통제되어, 미군 수병들은 몰래 밀주를 만들어먹는 게 아니면 술은 입에도 못 대고 아이스크림, 초콜릿 같은 기호품을 즐겨먹게 되었다. 정작 영국 해군은 1970년대까지 이 공식적으로 보급되어서 그런 기호품들을 별로 안 찾았다고. 미군의 아이스크림 사랑이 얼마나 심했는지 아예 바다에 아이스크림 보급함을 따로 띄웠다. 쿼츠급 보급함 문서 참조.[30] 비타민C는 열에 약하기에 가열하면 대부분이 파괴된다.[31] 이슬람 지역의 아랍 상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인도양 무역에 나섰느냐 하면, 912년에 죽은 아랍 학자인 이븐 후르다드비(Ibn khurdadbih)는 그의 책인 '여러 도로들과 나라들에 대한 안내서(Kitab al-masalik wa’l-mamalik)'에서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먼 동쪽에 떨어진 한반도의 왕국인 신라에 대해 "신라(al-shila)는 황금이 풍부하며, 이슬람 교도들이 신라로 가면 그곳의 아름다움이 좋아서 떠나려 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했다. 이는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 아랍 상인들이 바닷길을 통해 중국이나 한반도를 방문하여 신라에 대한 인상을 고향으로 돌아와서 알린 탓에 저런 서술이 나왔던 것이다. 반면 10세기의 유럽인들이 한반도의 존재조차 몰랐던 것에 비하면, 아랍인들의 활동 범위가 굉장히 방대했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에 들어 유럽의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양으로 진출하기 이전인 7세기부터 15세기까지 무려 8백 년 동안 아프리카와 아랍과 페르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인도양의 무역로는 거의 아랍 상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들/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32] 사실 식물들은 비타민C 합성 관련 유전자가 죄다 변이 되어 써먹질 못하는 대부분의 동물들과 달리 비타민C 합성 유전자가 죄다 멀쩡하다. 문제는 합성하는 양 자체가 적거나 아니면 정작 만들어 놓고 분해해 버린다는 것.[33] 러시아의 동북아 진출을 방해하려는 나라들이 러시아 함대의 보급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언제나 기존 영토에 새 점령지를 덧붙이는 전쟁을 해왔지 아프리카와 동남아같은 원격지에 식민지가 없었다. 참고로 시베리아로 진출할 때는 사냥에서 얻은 고기로 레어 스테이크를 먹는 방법으로 비타민C를 보충했다. 하지만 당시 해군에 그런게 있을 리가...[34] 일본군의 경우엔 정화와 마찬가지로 콩나물로 문제를 해결했으나, 이쪽은 흰 밥만 먹어대다 각기병으로 고생했다. 그러다가 일본 해군이 서구식 식단을 일부 도입해 해결한 뒤 일본 육군도 해결했다.[35] 특히 위 사례의 경우는 식생활이 너무 막장이라 잘못되면 각기병까지 와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식품 회사에서 각기병 예방 및 해로운 음식이란 인식을 피하기 위해 비타민B를 라면에 인위적으로 넣기 때문에 겨우 피한 것이다.[36] 정확히 말하자면 요삭의 입에 억지로 잔뜩 쑤셔 넣었더니 "나았다!"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물론 이는 나미도 그 광경을 보고 그렇게 빨리 낫는 게 말이 되냐면서 태클을 걸 정도의, 재미를 위한 만화적 과장이다. 그 직후 요삭도 날뛰다가 도로 쓰러졌다. 덤으로 루피와 우솝이 요삭의 입에 라임즙을 투입하는 이 장면은 괴혈병 관련으로 프랑스교과서에도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37] 추정상 록스 D. 지벡, 골드 로저 등이 활동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38] 괴혈병 예방을 위해서 선원들이 자유롭게 오가다 꺼내서 먹을 수 있도록 놔둔 것인데, 주인공 짐은 이 사과통에 숨어 있다가 친하게 지내던 외다리 선원 존 실버가 사실은 해적 일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39] 표절/공식 판정에도 나온 대로 당시, 표절이 드러나 책을 회수하고 수억 원 대 큰 피해를 본 홍익출판사를 되살린 소설이다. 미국에서 그냥 그런 평가였지만 한국에서 6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박을 거뒀다. 작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대박을 거둔 작품.[40] 시대가 명시된 1, 2편 기준으로 200년이나 뒤에 정식으로 발견된 지식이다.[41] 실제 역사 보다는 훨씬 빨리 연구되지만, 그래도 정말 늦게 나온다. 감귤류 과일 하나만 먹어도 낫는다는걸 아는 플레이어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니! 오렌지 까는법을 얼마나 연구하고 앉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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