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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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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명보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코치 경력

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파일:홍명보아드보카트.jpg
홍명보와 아드보카트

MLS에서 은퇴한 뒤 축구행정가로 진로를 정했으나, 갑작스런 조 본프레레 감독의 사임 사태를 맞아 2006년,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만, 문제는 축구협회 규정상 유소년부터 대표팀까지는 클래스별로 일정 자격증이 필요한데,[1] 홍명보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야매 코치.

축협 스스로 축협 규정을 위반한 초법적 행위라 잡음이 일었으나, 비상시국이란 공감 하에 일단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단 언론에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를 보좌할 코치로 홍명보를 원했다는 모양새였다. 참고 기사[2]. 그러나 뒷날 자격 문제가 다시 한 번 불거졌다.

이후 2010년에 P급을 취득했다.

2.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

2006 FIFA 월드컵 독일이 끝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물러나고 핌 베어백이 새 감독이 되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발탁되었다.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3·4위전인 일본전 때에는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핌 베어백 감독, 코사 골키퍼 코치와 함께 퇴장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3위를 차지하였다. 그 뒤에 핌 베어백 감독이 사퇴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남아 있었다.

2.3.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

한때 올림픽 대표팀 감독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되지 않고 대신 박성화 감독 취임 이후 올림픽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합류했다.[3]

2.4. FC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

최강희 감독이 처음 공언한대로 예선전까지 맡고 대표팀 지휘봉을 놓기를 고집하면서, 찌라시들은 신나게 차기 국대 감독 설레발을 쳤다. 그러나 홍명보는 이를 일축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초청으로 러시아 FC 안지 마하치칼라로 가서 코치 연수를 받는 쪽을 선택했고, 일단 6월 22일에 귀국할 예정이았다.

최강희 감독이 퇴임한 뒤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놓고 어떤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할 테고 그 때 과연 홍명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강희 감독이 본선 진출 확정 후 사임하자마자 홍명보 감독이 후임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축협은 후보 중의 한 명이라고 부인하했으나, 허정무 부회장이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내정되었다고 시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언론들도 사실상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였으며 당시 홍명보 본인은 침묵중이었다.

그런데 6월 20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홍명보는 대표팀 감독을 고사했다고 한다. 차근차근 장기적 계획을 세워서 팀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성향상 불과 1년도 안되는 시간에 최악의 상황에 있는 국대를 바로잡아서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과를 낸다는건 너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일. 그런데도 축협은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서 끌어앉히려는 2년 전 최강희 감독 선임때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홍명보라고 해도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천하의 홍명보라고 해도 장기 계약을 해서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기려는 건 여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홍명보의 커리어에도 심한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어하는 국내외 유능한 감독에게 브라질 월드컵을 맡기고 홍명보는 브라질 이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부터 국대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결국 그는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3.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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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aaa
U-20
2009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
U-23
2010~201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 2012 런던 올림픽 (일본전)
성인 1기
2013~2014
2013201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러시아전 · 알제리전 · 벨기에전)
논란과 평가
성인 2기
2024~2027
202420252026 | 2027
2025 E-1 챔피언십 | 2026 FIFA 월드컵 | 2027 AFC 아시안컵
선임 과정 (반응 ·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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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조동현호 홍명보호(U-20) 이광종호(U-20)

3.1.1.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

2009 FIFA U-20 WORLDCUP
번호 포지션 이름 생년월일(당시 나이) U-20 소속팀 비고
출전 득점[4]
1GK이범영1989년 04월 02일 (20세)2-1부산 아이파크
2DF오재석1990년 01월 04일 (19세)120경희대학교 2학년
3DF김민우1990년 02월 25일 (19세)62연세대학교 1학년
4DF임종은1990년 06월 18일 (19세)20울산 현대
5DF김영권1990년 02월 27일 (19세)151전주대학교 2학년
6DF홍정호1989년 08월 12일 (20세)192조선대학교 2학년
7MF구자철1989년 02월 27일 (20세)114제주 유나이티드 FC주장
8MF서용덕1989년 09월 10일 (20세)151오미야 아르디자
9FW김동섭1989년 03월 29일 (20세)1610시미즈 S펄스
10FW조영철1989년 05월 31일 (20세)1215알비렉스 니가타
11MF서정진1989년 09월 06일 (20세)83전북 현대 모터스
12GK김승규1990년 09월 30일 (18세)12-7울산 현대
13DF정동호1990년 03월 07일 (19세)40요코하마 F. 마리노스
14MF문기한1989년 03월 17일 (20세)101FC 서울
15MF최성근1991년 07월 28일 (18세)40언남고등학교 3학년
16DF장석원1989년 08월 11일 (20세)10단국대학교 2학년
17DF윤석영1990년 02월 13일 (19세)70전남 드래곤즈
18FW이승렬1989년 03월 06일 (20세)21FC 서울
19MF김보경1989년 10월 06일 (19세)174홍익대학교 2학년
20FW박희성1990년 04월 07일 (19세)80고려대학교 1학년
21GK김다솔1989년 01월 04일 (20세)5-6연세대학교 3학년
감독 홍명보

2007년 아시안컵 수석 코치, 2008년 올림픽 수석 코치에 이어 2009년 U-20 청소년 대표 감독에 임명되었고, 언론에선 2012년 올림픽 대표를 그에게 맡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전에 언급되었던 자격증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하물며 지도자로서의 검증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 마당에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임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황선홍과는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20 대표팀을 이끌며 2009 FIFA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시켰다.

언론에서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벌써부터 명장 탄생이네 뭐네 하면서 찬양했으며, 축협도 공적을 인정해 그를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청소년 대표팀이 전임 조동현 감독에 의해 90% 이상 완성되었던 팀이었고, 별다른 신예 선수 없이 사실상 물려받은 선수단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이 멤버들은 골짜기 세대 소리를 들으면서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2009년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오른 성과는 축협의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선수 시절 K리그 및 국대에서 홍명보와 같이 활약했던 황선홍, 신태용, 유상철 등이 K리그 감독으로 먼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착착 경험치를 쌓고 있는 것에 비하면 클럽 운영 경험 없이 국가대표팀 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결국 이는 후일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 선수 중에서 이범영, 오재석, 김영권, 구자철, 윤석영, 김보경 등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거쳐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홍명보 감독도 광저우 아시안 게임과 런던 올림픽을 지휘하며 이들과 함께하게 된다.

3.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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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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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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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삼락
(김삼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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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아나톨리 비쇼베츠
(비쇼베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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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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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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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 베어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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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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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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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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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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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012 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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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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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축구의 달인 홍명보 분석

대한축구협회2013년 6월 24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최강희의 후임으로 홍명보를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2년, 2015 호주 아시안컵까지이기는 하나 월드컵아시안컵 성적에 따라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3년 재계약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홍명보호(성인 1기), 홍명보호(성인 1기)/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 참조.

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 이후

3.4.1. 2014년

2014년 10월에 잠시 귀국했다. 후진 육성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 하지만 이 후진 육성도 대다수 축구팬들은 안 좋게 바라보고 있다. 이걸 빌미로 다시 축구계에 발을 들여서 재기를 노리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보내는 중이지만 이건 홍명보가 선수를 은퇴한 시점부터 계속 해오던 것이다.

3.4.2. 2015년

2015년 이리저리 축구계 활동을 하면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데, 향간에는 K리그 감독직을 노리고 있다는 말도 있다. 2010년에는 차범근 감독이 사퇴한 수원 삼성행이 나온것을 시작으로 이미 작년에 어느 K리그 구단이 제의를 했는데 거절했고, 현재 다른 감독직을 알아보고 있다는 루머가 있는데 홍명보의 신중함과 계산적 성향상 전력이 잘 꾸려져 있고 지원이 잘되는 구단으로 갈게 뻔하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그런 구단은 거의 기업구단이고 그 구단 감독들 자리는 나름 탄탄하다. 딱 한구단 빼고. 덕분에 그 구단의 팬들이 이 루머로 벌벌 떨고 있다. [5]

그런데 5월 21일자로 대전 시티즌조진호 감독이 사퇴하면서, 일부 팬들의 입에서 홍명보 감독에 대한 말이 오가고 있었으나 대전은 올대 코치인 최문식을 후임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저 위의 루머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한동안 감독관련 루머도 없이 잘 지나갔는데 최용수 FC 서울 감독이 중국 슈퍼 리그의 장수 세인티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말았다. 이에 따라 서울빠들은 혹시 지난 루머대로 홍명보 오는 게 아니냐고 다시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용수 감독이 FC 서울 잔류를 결정하면서 다시 없던 일이 돼버렸다. 다만, 현재 울산 현대조예스 시절보다 더 막장인 상태라 시즌이 끝나고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모른다. 만약 울산 현대가 다음 시즌 감독으로 홍명보를 영입한다면 포항과 동해안 더비는 피튀기는 혈전이 될 듯 하다. 하지만 최근 윤정환 체제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울산 현대 축구단도 믿고 맡기겠다는 의사가 나와 울산도 제외다. 그리고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인 황선홍 감독이 2015년을 끝으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팬들 사이에서 홍명보 감독이 선임된다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2002년 포항 시절 당시 홍명보의 이적 잡음을 기억하는 포항 골수팬들이 많아서 반대가 심한 모양이다.[6] 한편 포항의 새 감독은 한일 월드컵 때 함께 최강의 방패를 자랑했던 후배인 최진철 전 U-17 대표팀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3.5. 항저우 뤼청 감독

파일:external/cphoto.asiae.co.kr/2015121714432649220_1.jpg
감독 계약 직후 홈페이지의 장면
아무튼 K리그에 심한 말을 했다보니 그쪽으로는 진출이 쉽지는 않아 보이고 중국, 일본 등 해외 리그로 타진을 시도했는데, 마침 J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현재는 후진 육성을 하고 있다 한다. 그래도 세월이 약인지 댓글을 읽어보면 이전의 부정적인 여론과는 달리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크다.

2016 시즌부터 중국 슈퍼 리그 소속 항저우 뤼청 그린타운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알비렉스 니가타 및 여타 일본, 중국 리그 팀 등지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항저우 행을 염두에 두었고, 결국 항저우행이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이로써 홍 감독은 다시금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며, 여기서 성공하면 그런대로 재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때 "그동안 모든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누구보다 많았는데 더 이상 그 기대에 부응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평가가 엇갈리는 편이다.[7]

[人사이드] 홍명보의 고백 ① “의리로 뽑은 선수는 없다”
[人사이드] 홍명보의 고백 ② “나는 자유로워졌다"

3.5.1. 2016 시즌

중국 슈퍼 리그가 10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8경기 연속 무승 행진으로 2승 3무 6패 승점 9점으로 14위를 달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꽤나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경질설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참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계약기간은 다 채울꺼라는 얘기도 돈다. 구단주가 성적에는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고, 홍명보 감독에게 성적보다는 어린 선수 육성을 잘해달라고 부탁했으니 항저우 서포터들만 속이 부글부글 끓을 판이다.

공교롭게도 브라질의 전설적인 수비수 둥가가 비슷한 시기 선수 시절에 같이 J리그에서 활약한[8]데다가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고 경질당하자, 선수 시절은 물론 감독으로서의 모습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서로 비교되고 있다. 더구나 둥가 같은 경우는 홍명보와 달리 국가대표팀을 두 차례나 이끌고도 모두 부진했다는 점에서 브라질 현지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0경기 연속 무승을 찍으며 구단의 한 고위 인사가 매우 실망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현재 성적도 사실상 꼴찌.[9] 홍명보로서는 폭망한 입지와 이미지를 반전시키기 위해 중국 진출을 했을테지만, 현재로서 반전은커녕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중국 축구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항저우 구단주는 성적에 관심이 없고, 그저 슈퍼 리그에만 남아있는 게 목적이라고 하니 홍명보를 심하게 압박했을 것 같지는 않다.

상하이 선화와의 경기에서는 뎀바 바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0:4로 완패한다. 14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유일하게 한 자릿수 승점을 획득하며 최하위로 쳐졌다.

그러나 6월 25일 허베이 화샤 싱푸를 1:0으로 꺾는 것을 시작으로 7월 3일, 박태하 감독의 옌볜 푸더를 4:2로, 그리고 7월 10일 이장수 감독의 창춘 야타이를 1:0으로 꺾으면서 3연승으로 강등권을 탈출했다. 이어 산둥 루넝 타이산에는 1:4로 참패했지만, 톈진 터다와의 대결에서는 3:1로 승리하여 강등권을 확실히 벗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후 3경기에서 승점을 단 1점밖에 거두지 못하면서 한 경기를 덜 치른 15위 창춘 야타이와 3점차 16위로 떨어졌다. 그 후 남은 경기 상대는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장쑤(2위), 광저우 푸리(8위), 상하이 선화(3위), 허베이(5위) 그리고 연변(9위)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다.

9월 24일 열린 최용수 감독의 장쑤 쑤닝과의 홈경기에서는 의외로 선전하여 3:0으로 승리, 한숨 돌렸다. 리그 2위를 달리던 장쑤는 이 패배로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항저우도 강등권인 15위 스자좡과 승점 5점을 벌려 한숨 돌렸다.

하지만 10월 말 현재 강등권 15위인 이장수 감독의 창춘 야타이와 승점 1점차로 강등의 기로에 있다. 잘하면 한국인 감독끼리의 단두대 매치도 볼 수 있다.

이후 10월 30일 리그 최종전 날, 창춘 야타이가 최종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뤼청은 최종전은 옌볜 푸더와의 승부와 무관하게 중국 갑급 리그로 강등이 확정되었다.

3.5.2. 2017 시즌

항저우 구단 측은 강등 여부에 관계 없이 홍명보 감독과 계약을 존중하여 2017년에도 항저우를 맡길 것이라고 한다. 기사.

하지만 2017년 5월 25일 자로 성적 부진으로 결국 감독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기사. 본인의 설명으로는 구단은 성적보다는 선수팔이로 연명을 했고, 자기가 키운 유망주들을 모두 팔아치우면서 2부 리그로 진입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연패를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어린 선수(20세 이하)들을 대거 기용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자기는 성적에 책임을 지는 입장에서 이런 무리한 주문을 하는 구단 측과 충돌을 빚은 끝에 사임했다고. 구단 측에서는 성적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3부 리그로 강등만 되지 말라는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맥락을 보면 슈퍼 리그에서 중도에 해임된 대부분의 한국 감독[10]들과는 달리 성적 부진으로 구단 측 주동으로 잘린 건 아닌 것 같고[11] 결국 구단 측과 의견 충돌로 자진 사임한 건 맞는 듯. 원래 항저우가 그렇게 선수팔이로 팀을 운영하던 팀이었는데, 본인과 생각이 다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그런 운영 마인드를 가진 팀과 계약을 했으니 결과적인 실패도 본인 책임이다.[12]

한편 후임 감독 세르지 바르주안의 지휘 아래, 항저우는 2부리그 3위를 기록했다.[13]

3.6. 울산 현대/울산 HD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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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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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단


[1] 흔히 말하는 P급 라이선스가 이 중 하나다. 유소년 D급, 초등학교 C급, 중,고교 B급, 모든 팀이 가능한 A급(프로팀은 감독 불가)과 P급.[2] 당시 대표팀의 수비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기에, 홍명보의 코치진 합류에 대한 여론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3] 핌 베어백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겸임하고 있었으며, 사퇴한 이후 결국 박성화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한편 국대 감독 자리는 2007년 하반기 내내 A매치도 치르지 않기로 합의한 채 공석으로 남겨두다가 그 해 겨울허정무를 임명하였다.[4] 골키퍼의 경우, 실점[5] 다만 윤정환의 경우 그 전 감독이 하도 죽을 쒔는지라 잘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6] 포항은 박성화 다음 최순호, 세르지오 파리아스 다음 와우데마르 레무스 식으로 좋은 성적을 낸 감독 후임으로 함량 미달 감독을 선임했다 말아먹고 다시 유능한 사람 찾는 역사가 있다.[7] LA 갤럭시 이적을 목적으로 한 포항에서의 태업, 올림픽에서의 박주영 기용, 브라질 월드컵의 엔트으리 등 홍명보가 모든 사람의 기대대로만 행동한 것은 전혀 아니다.[8] 다만, 소속팀은 달랐다. 홍명보는 쇼난 벨마레(당시 팀명은 벨마레 히라츠카), 둥가는 주빌로 이와타.[9] 현재까지 13경기 진행에 승점 9점으로 15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16위 팀의 승점이 9점이라 동률인데다 이 팀은 아직 한 경기 덜 치렀다.[10] 이장수, 최용수[11] 성적 부진으로 자르려고 했으면 강등되었을 때 잘랐을 것이다. 당시 홍명보도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주가 사표를 반려했다고 한다.[12] 홍명보로서는 중도 사퇴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선수팔이에만 관심을 갖는 항저우 구단주가 다른 중국 구단처럼 특급 외국인 선수[14]를 사올 리 만무하니, 성적이 좋아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지도하에 팀이 갑급 리그에서도 하위권에서 마감하면 정말로 앞으로 전도가 불투명하고, 지금 사퇴하면 어쨌건 2016시즌 때 뭔가를 해볼려고 노력한 건 인정받고 있고, 그럼에도 구단주와 방향이 맞지 않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나갔다는 항변은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 조금 연봉 더 받겠다고 계약기간 종료까지 감독을 맡았다가 항저우가 3부 리그로 추락하거나 혹은 하위 스플릿에 머문다면 홍명보는 무능한 감독으로 찍혀 정말로 재기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13] 바르주안도 그 다음시즌 팀이 하위권을 전전하자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