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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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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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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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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김기동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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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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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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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7대 8대 9대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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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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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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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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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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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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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8월
주제 모라이스
(전북 현대 모터스)
9월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10월
박진섭
(광주 FC)
10월
박진섭
(광주 FC)
11월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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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8월
남기일
(제주 유나이티드)
9월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10월
남기일
(제주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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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의 기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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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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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창립자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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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감독
(1973~1984)
이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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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멤버, 3대 감독
(1973~1980), (1987~1992)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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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11대 감독
(1980~1988, 1991~1992)
박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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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리그 MVP, 원클럽맨
(1984~1992)
이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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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리그 MVP
(1985~1992)
공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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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
(1987~1998)
이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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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
(1990~1999)
박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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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 13대 감독
(1991~2001)
황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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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감독
(1993~1998)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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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리그 MVP
(1992~1997, 2002)
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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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최다 득점자
(1992~1996)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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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감독
(1991~1993, 2003~2011)
신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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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최다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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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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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출장
(2002~2020)
황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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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공격P 및 도움
(2003-2013)
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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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 U18 감독
(200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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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감독
FC Seoul
파일:김기동2024.png
<colbgcolor=#b5191a><colcolor=#ffffff> 이름 김기동
金基東 | Kim Gi-dong
출생 1972년 1월 12일 ([age(1972-01-12)]세)[1]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1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b5191a><colcolor=#ffffff> 선수 포항제철 아톰즈 (1991~1992)
유공 코끼리/부천 SK (1993~2002)
포항 스틸러스 (2003~2012)
감독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3~2016 / 코치)
포항 스틸러스 (2016~2019 / 수석 코치)
포항 스틸러스 (2019~2023)[3]
FC 서울 (2024~ )
기타 성남 일화 천마 (2013 / 스카우트)
국가대표 3경기 (대한민국 / 1997)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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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5191a><colcolor=#ffffff> 학력 송악초등학교 (졸업)
신평중학교 (졸업)
신평고등학교 (졸업)
위덕대학교 (사회체육학 / 학사)
영남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체육학 / 석사)
등번호 6번
가족 아내 조현경(1976년생, 1998년 12월 결혼)
딸 김하늘(1999년생), 아들 김준호(2002년생)
서명
파일:김기동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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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감독 스타일
4.1. 전술 능력4.2. 지도 방식
5. 수상
5.1. 선수
5.1.1. 대회 기록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現 FC 서울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

선수 시절 K리그 통산 501경기 출전으로 역대 필드 플레이어 출전 2위[4]에 현재까지 최고령 선수, 최고령 출전 선수 기록[5]을 가지고 있는 K리그의 레전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2011년 12월 12일, K리그 통산 501경기 39득점 40도움으로 현역 은퇴했으며, 이후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 13인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으로서도 친정 포항 스틸러스 시절이던 2023년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20년 K리그 감독상, 2023년 KFA 올해의 지도자상을 수상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포항제철 아톰즈

신평중-신평고 축구부 모두 창단 멤버로 축구 불모지인 당진시에서 축구를 시작한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김기동은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 대신 대학을 희망했으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지 못하자 대학교에 갈 수 있는 티켓을 다른 동료에게 양보하고 죽마고우 황연환과 같이 허정무 코치의 눈에 띄어 연습생 신분으로 1991년 포항제철에 입단했다.

그러나 2년 동안 2군에만 머물며 1군에선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당시 포항제철의 1군은 홍명보, 박태하, 박창현, 최문식, 유동관, 공문배 등 당대 최고의 선수가 가득했고 김기동의 입단 2년 차인 1992년에는 리그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김기동은 이 시기 1군과 훈련 및 생활도 같이 하지 않아 우승에 대해 전혀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2.1.2. 유공 코끼리 / 부천 유공 / 부천 SK

1993년 유공 코끼리로 이적했다. 박성화 감독 밑에서 프로에 데뷔하는 등 점차 기회를 받았다.

1995년 유공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아래에서 그의 축구 인생의 극적 반전이 찾아온다.

당시 부천은 미드필더 윤정환을 제외하고는 이름값이 크게 떨어지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이들을 조련하면서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진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한다. 윤정춘, 쇼모지 요제프, 조성환 등과 함께 말이다.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던 김기동의 왕성한 활동량과 탄탄한 기본기를 눈여겨 본 니폼니시 감독은 김기동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 시킨다. 그렇게 김기동은 그 중심에서 활약했다. 본인 역시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발레리 니폼니시를 꼽는데, 그 때까지 맨투맨 수비에 동네 축구처럼 공만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K리그에 처음으로 존 디펜스와 패스워크의 개념을 실어 줬다고 한다.

1997년 무릎 수술을 받으며 잠시 전력에서 이탈하긴 했지만 1998년 화려하게 부활했고 니폼니시가 부천을 떠난 이후 조윤환, 최윤겸 감독 아래 그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을용, 남기일, 전경준 등과 미드필더진을 구성했으며 주장이자 핵심 선수로 팀을 이끌었다. 2000년 리그 준우승에 앞장섰다. 또한 2002년 전경기 무교체 출장으로 커리어 첫 수상(특별상)을 기록했다.

부천에서 K리그 통산 274경기에 나와 17골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는 구단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이다.

컵대회를 포함하면 포항에서보다 많은 경기를 뛰었고, 실제로 더 오랫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며 포항뿐 아니라 부천의 레전드 선수 반열에도 올랐다고 평가받는다.

2.1.3. 포항 스틸러스 복귀

파일:external/img.sportalkorea.com/SK004_20120312_290301.jpg

2003년 자신이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했다. 당시 부천 감독이었던 트나즈 트르판은 구단에 다른 선수들은 내보내더라도 김기동과 이임생만은 잔류시켜야 한다고 했으나[6] 계약조건에 따른 선수와 구단의 이견으로 결국 이적했다. 김기동과 이임생을 떠나보낸 부천은 2003년 K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당시 최순호 감독과는 김기동이 포항제철 신인 시절 2군에서 인연이 있었다.

팀에 복귀하자마자 포항 핵심으로 활약했으며 2년 만에 최순호 감독 밑에서 주장으로 임명되어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나 2004년 왼쪽 무릎 부상이 재발하며 은퇴 얘기가 오갔고, 새로 부임한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 아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주장 완장도 김성근에게 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해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2007년 다시 주장직에 복귀했다. 2007년 K리그 7라운드 FC 서울전에서 통산 400경기 출장을 기록했고, 이후 대구 FC전에서 통산 402경기 출장으로 신태용을 넘어 프로 축구 통산 필드플레이어 역대 최다 출장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 해 개인 커리어 첫 우승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우승에 앞장섰다.[7]

이때 리그 MVP 얘기가 오가기도 했으나 결국 따바레즈가 연맹 공식 리그 MVP에 선정됐다. 대신, 커리어 첫 리그 베스트 XI & 2007 윈저어워즈 축구대상 & 스포츠조선 제정 '2007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상' 등을 수상받으며 공식적으로 2007년 K리그 최고의 국내 선수임을 인정받았다. 남들은 웬만하면 은퇴하는 시기에 본인에게는 첫 리그 우승 및 개인상 수상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 것이다.

2008시즌엔 전반기를 발가락 부상으로 날렸지만, 34세의 나이에 악착같이 복귀해 2008년 10월, 대전과의 경기에서 프로 통산 30번째 골을 기록하며 K-리그 통산 23번째로 30-30클럽에 가입했다. 또한 2008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2009시즌을 앞두고 황재원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줬다. 대신 K-리그 최고령 득점자가 됐고,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2009 피스컵 코리아 우승을 거두며 데뷔 첫 더블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0시즌에는 포항이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김기동도 덩달아 출전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

2011시즌을 앞두고 자신과 선수 입단 동기였던 황선홍 감독이 부임한 뒤 500경기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연봉 5천만원 삭감과 동시에 시즌 종료 후 은퇴를 밝혔다. 그래도 당시 포항 감독이었던 황선홍은 유리한 경기에선 김기동을 후반 교체 카드로 많이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8]

2011년 10월 22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리그 29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출전하면서 K-리그 필드플레이어 최초 500경기 출전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경기에서 소속 팀 포항 스틸러스는 그를 기려 발 모양을 본뜬 황금발을 수여하는 가 하면, 경기 후 카 퍼레이드, 레드카펫, 500경기 기념 티셔츠 관중들에게 배포하는 등 K리그 어느 선수보다 화려한 기념식을 열어주어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확실히 해 주었다. 그리고 2011 시즌 종료 후 그대로 은퇴를 발표했다.

2012년 3월 17일 부산과의 리그 홈 개막전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은퇴 이후에는 포항 구단의 지원을 받아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틈틈이 스포츠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2013년에는 U-22 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의 '최초의 13인' 중 한 명으로 올라갔다. 적어도 포항 내에서는 황선홍, 라데, 최순호, 이회택 등 레전드들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됐다.

2.2. 국가대표 경력

니폼니시가 유공에 부임한 이후 팀의 중심에서 맹활약을 펼쳐, 이에 힘입어 1997년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1997년 10월 4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4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38분에 교체출전하면서 데뷔전을 치렀고, 대한민국의 3-0 승리의 공헌하였다.

1997년 10월 11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5차전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후반 31분 교체출전했다. 경기는 1-1로 비겼다.

1997년 11월 1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8차전 일본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였으나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던 경기에서 팀은 0-2로 패배하였고, 본인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않으면서 단 3경기 출장으로 남게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선수시절 후원을 받던 2012년부터 카파코리아와 함께 자신의 모교 당진 송악초등학교에 유소년 축구팀 '카파FC'를 창단해 단장으로서 고향의 유소년 축구 육성에 힘썼다.

2013년, 포항 시절 선배였던 안익수가 부임한 성남 일화 천마의 스카우터직을 역임했다.

3.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 김승규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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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최성근 · 3 김진수 · 4 김민혁 · 5 이주영 · 6 손준호 · 7 안용우
8 박주호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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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이용재 · 10 김승대 · 11 윤일록 · 12 노동건 · 13 곽해성 · 14 김영욱
15 임창우 · 16 이종호 · 17 이재성 · 18 김신욱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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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문상윤 · 20 장현수
C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광종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최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기동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운재

2013년 12월부로 U-22 코칭스태프 명단에 등재되었다. 당시 감독인 이광종 감독과는 유공 시절 한솥밥을 먹던 사이이다. 이광종 감독을 보좌하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어 냈다.

1 김동준 · 2 심상민 · 3 이슬찬 · 4 김민태 · 5 최규백 · 6 장현수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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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7 손흥민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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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문창진 · 9 석현준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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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류승우 · 11 황희찬 · 12 이찬동
13 박동진 · 14 박용우 · 15 정승현 · 16 권창훈 · 17 이창민 · 18 구성윤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신태용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기동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전경준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운재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신상규 · 파일:브라질 국기.svg 루이스 플라비오

2015년 초 후임으로 부임한 신태용 감독 아래 대표팀에 남았고, 2016 AFC U-23 챔피언십 카타르 준우승, 2016 리우 올림픽 8강(5위) 성과를 내었다.

3.2. 포항 스틸러스 수석 코치

리우올림픽 이후 2016년 9월 최진철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직에서 사퇴하자, 후임으로 선임된 최순호 감독과 같이 수석 코치로 5년 만에 친정에 복귀했다. 이에 팬들의 반응은 기껏 최진철을 내보냈더니 후임으로 온 감독이 과거에도 팀을 맡아 좋은기억이 없었던 최순호였던지라 거의 절망한 상황이었지만 수석 코치로 김기동이 오는 것에는 크게 환영했다. 게다가 사실상 낙하산으로 꽂힌 최진철 감독과는 달리 김기동은 수년간 이광종과 신태용 밑에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험적인 부분에서도 충분히 검증된 상황이여서 더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최순호 부임 초인 2017 시즌에 포항은 강등권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리그 선두를 다투는 강호로 부활하게 되었다. 당시 포항 팬들의 의견은 달라진 최순호의 리더십도 대단하지만 밑에서 확실히 역할 분담을 하며 선수들을 다독이는 김기동 코치의 형님 리더십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하였으며, 만에 하나 최순호가 감독에서 물러나더라도 당분간 감독 걱정은 없겠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팬들의 평은 이미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2019 시즌 초반 포항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감독이자 당사자인 최순호 감독이 경기 내내 지시는 안하고 기도만 할 때 수석 코치인 김기동 코치가 결국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진풍경이 나오기도 했다.[9] 성적이 계속 부진하고 원정 무득점 3연패 FA컵 32강 4년 연속 광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 속에 4월 20일 K리그 8라운드 대구 원정에서 0-3으로 완패한 후 자신이 보좌했던 최순호 감독이 끝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는데, 이윽고 감독 대행이 아닌 바로 정식 감독이 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3.3. 포항 스틸러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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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FC 서울 부임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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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FC 서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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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dseoul.jpg


2023년 12월 14일, 공식적으로 FC 서울 제15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포항 팬들에게 남기는 자필 편지를 공개하며 포항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한편 K리그 관계자와 팬들의 논쟁 중 하나가 돈 많은 팀의 김기동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낼 것인가였는데, 서울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약속한 만큼 GS수호신들의 기대대로 서울의 무관을 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문제는 이전의 황선홍이나 박진섭처럼 에서 K리그 수준급 명장으로 대우받았지만 막상 서울에서는 부진을 겪으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 특히 황선홍의 경우 김기동처럼 포항 시절 전성기를 맞아 당시 무조건 국대 감독으로 승격시키라 할 정도로 엄청난 명장 대접을 받았으나, 정작 서울 부임 이후 추락한 바 있다.

또한 FC 서울에 부임하면서 K리그 감독 최고 연봉을 받게 되었는데, 루머에 따르면 기본 연봉 11억에 성과금 이 4~7억 사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결과에 목마른 서울의 파격 대우인 셈.

투자와 지원의 일환으로 코치진 역시 포항에서 함께 한 사단을 거의 그대로 데려왔으며, 한편으론 권완규, 이승모, 임상협, 팔로세비치, 일류첸코, 강상우[10] 등 포항 시절 함께 했던 선수들과 재회하게 되었다. 이들 모두 지난 시즌 포항 시절에 전혀 못 미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김기동 감독의 부임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기대를 품기 충분한 부분. 포항 팬들은 아쉽게 기동타격대를 보내게 되었으나 FC 서울 팬들은 기동타격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또한 서울이 7년째 이기지 못하고 있는 현대가 팀들을 몇 차례 잡아 봤으니 이번에야말로 악연의 고리를 끊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팬들도 있다.[11] 그리고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2024년 6월 29일전북 현대 모터스를 원정에서 1-5로 대파하면서 2554일 만에 서울에게 전북전 승리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시즌 초반 홈경기 5연패를 비롯한 부진을 이겨 내고 기어코 서울을 5년 만에 상위 스플릿에 올려놓았다.

4. 감독 스타일

4.1. 전술 능력

계획을 세운다 → 실행한다 → 잘 됐다 → 팀이 적응할 때까지 유지한다 → 플랜A로 자리 잡으면 새 계획을 세운다 → 실행한다 → 안 됐다 → 고집 안 부리고 깔끔하게 포기한다 → 잘 하던 걸로 돌아간다 → 다른 계획을 세운다 → 실행한다 → 잘 됐다 → 팀이 적응할 때까지 더 해 본다 → 플랜B가 나왔다!

예: 팔라시오스, 전민광, 이승모
축구 기자 서호정의 김기동 감독 평가
이번 경기[12]도 그렇겠지만 경기 중에 우리는 계속 변화를 준다. 솔직히 대부분 경기 중에 서너 번 변화를 주면 상대는 대응이 쉽지 않다. 그런데 포항은 그걸 대응을 한다. 정말 김기동 감독님은 보통 인간이 아니다. 계속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정효[13]
부임 이후 K리그 최고의 전술가로 거듭난 감독. K리그 축구팬들에게 가장 호평받는 부분은 바로 재미있는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스코어를 앞서는 상황에서도 라인을 뒤로 물리는 경우가 잘 없으며, 상대 맞춤형 전술을 준비해오는 분야에선 국내 정상급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전술의 폭이 굉장히 넓고 유동적이며, 교체 선수를 활용한 경기 중 전술 변화는 국내 감독 중 가장 높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어떤 팀을 상대로 하건 그에 대응하는 전술을 들고 나오며, 경기마다 다른 전략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경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술적으로는 4백 기반의 4-2-3-1을 주로 쓰며, 공격수부터 전방 압박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려 애쓰고 있다. 최순호에게 감독직을 이어받은 2019 시즌 후반에는 몇몇 경기에서 수비적인 운영을 하긴 했으나, 2020 시즌 동계훈련부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후로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이후 실종된 포항의 공격적인 팀 컬러를 다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상대팀과의 경기에서 1:0, 2:0으로 앞서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수비 라인을 내리는 일이 없이 다득점을 노리는지라 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눈이 호강하는 경기가 여럿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의 포메이션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서호정 기자의 평가대로 베스트 11을 꾸리기 힘든 포항의 상황에 맞물려 여러모로 전술 시도를 하여 임기응변에 강하며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버릴 부분은 버리면서 재빠르게 대처하며 결국 문제를 해결한다. 대다수의 K리그 감독들이 한 가지의 전술만을 고집하다가 팀이 휘청일 때 수습을 못하는 반면, 김기동은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팀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전북, 울산을 상대로 리그 초반에는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를 당하더라도 리그 후반에는 어떻게든 전략을 짜서 기어이 발목을 잡으며 이러한 맞춤형 전술로 2021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부족한 전력에도 있는 선수들을 조합하여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맞춤형 전술로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여담으로 팀 상황에 맞춘 전술 역량을 엿볼 수 있는 것이, 2020 시즌에는 일류첸코, 팔로세비치를 활용하여 포항을 리그 최다 득점팀에 올려놨는데 2021 시즌에는 이 둘을 비롯한 핵심 선수들의 이적과 부실한 전력 보강으로 인해 도저히 공격으로는 답이 없다 판단하고 바로 전술을 바꿔 같은 팀을 최소 실점 3위 팀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나마 이것도 시즌 막판 주전 골리 강현무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해서 3위가 된 것이지 스플릿 전까지는 최소 실점 1위였다. 고로 1년 사이에 화끈한 공격 전술과 끈끈한 수비 전술을 매우 높은 완성도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술적 유연성과 후술할 선수 보는 안목 덕분인지 교체 카드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단순히 체력 문제로 같은 역할의 선수를 갈아끼우는 것이 아니라 교체 투입된 선수가 분위기를 바꿔주거나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경기 도중 상대팀의 전술에 대한 재빠른 대응력, 명확한 플랜 A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양한 전술 변화를 가져가며 높은 완성도와 명확한 컨셉까지 갖추면서 도전적이고 과감한 전술 변화로 승부를 보는 지략가로 이름을 날렸던 마르첼로 리피와 가장 유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선수 구성에 따라 공격 축구를 하든, 티키타카를 하든, 주제 무리뉴식 수비 축구를 하든 모든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덕분에 2023 시즌 K리그 최고의 지략가로 평가받았다. 고로 팬들에게는 '갓기동' 혹은 '기동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4.2. 지도 방식

"(김기동 감독님은) 정체성이 분명한 축구를 하고 계시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확실한 경기 플랜이 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다. 선수들이 크게 혼란스럽지 않게 전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시즌 초반에는 밸런스가 맞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잘 인지하는 것 같다. 경기장에 들어가면 특정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어떻게 움직이면 다른 선수들이 움직이는지 이해시켜준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이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제시 린가드
K리그의 대표적인 형님 스타일 감독이며 이로 인해 선수나 팀 분위기를 잡는데는 거의 수준급이다.

본인이 K리그 500경기 이상 출전한 팀의 레전드이자 리그의 레전드이기도 하고, 최용수황선홍하고는 다르게 오로지 K리그 내에서만 선수 시절 온갖 경험을 다 한 덕에 상황에 따라 팀 분위기를 잡는데 일가견이 있다. 게다가 본인이 2011 시즌까지 선수생활을 한 덕분에 꼰대가 되기 쉬운 다른 선수 출신 감독과 달리 선수들과 골 세레모니를 주고 받는 등[14] 몸소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최우수 감독' 김기동 "나 땐 말이야? 제가 맞춰야죠"

선수를 보는 안목도 좋아서 송민규를 포항 유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입단 테스트에서 눈여겨 보고 팀에 추천했고 2020 시즌 포텐이 터졌다. 전임 감독들과 달리 외국인 선수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며 2019 시즌에는 완델손, 2020 시즌에는 팔라시오스를 수준급 용병으로 탈바꿈 시켰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도 골을 넣으면 김기동에게 먼저 달려올 정도로 사이도 원만한 편이다.

2021 시즌을 앞두고는 핵심선수들이 또 한번 다 털린 상황에서 제주 이적을 고민하던 신진호에게 전화를 걸어 영입하고, ACL에서의 반짝 활약 외에는 의문 부호가 붙던 임상협을 데려와서 리그 두자릿수 공격수로 다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여름 이적 시장에 송민규를 빼앗기는 와중에 3부 리그에서 박승욱을 발굴하여 부족한 팀의 풀백 자원을 해소하면서 훗날 국가대표까지 승선시켰고 신광훈강상우의 위치 조정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2021 시즌 중반에는 상무에서 전역한 이석현을 전남으로 보내고 마찬가지로 상무 시절 눈여겨 봐둔 정재희를 시즌 끝나기 전에 미리 계약 했는데, 당시에는 시즌 끝나고 데려올 선수를 위해 왜 이석현을 보내느냐 의문이 붙었지만 이후 정재희가 FA컵 결승전에서 전남을 우승으로 이끌고 MVP를 차지하자 결국 김기동의 선픽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정재희는 2022 시즌 포항에서 맹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담으로 박승욱과 정재희 모두 김기동이 K리그와 연습경기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관찰한 다음 뽑은 만큼 김기동의 선수 보는 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이 형님 스타일이라는 것이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나 선수들과 너무 친해져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김기동의 경우 질책을 할 때나 선을 그을 때는 확실히 긋는다. 단적인 예로 유스 출신이면서 아시안 게임으로 군문제까지 해결한 이진현을 김기동 본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구로 보내버렸고, 언론의 주목을 받던 FC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인 장결희는 포항 복귀 후 1년 반만에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가차없이 팀에서 방출시켰다.[15] 팔라시오스 역시 구단이 2020 시즌에 야심차게 영입했음에도 영입 6개월만에 본인 스타일과 맞지 않고 1부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자 곧바로 임대로 보낼 것을 고민하다가 팔라시오스 본인이 단점으로 지적된 수비가담과 스타일의 변화를 약속하자 김기동도 활용방안을 찾아 리그에서 통하는 수준급 용병으로 탈바꿈시켰다.[16]

평소에는 웃으며 선수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팀의 지향점과 본인의 지도에 벗어난 경우는 가차없이 바깥으로 쳐내버린다. 이러한 부분은 인정과 고집으로 실력이 안 되는 선수들을 끌고 가던 전임 감독 최순호와는 확실히 대비가 되는 점이며 덕분에 최순호 시절 쓸데없이 하부리그에서 데려와 자리만 차지하던 잉여자원들 대부분이 김기동 감독 부임 2년차에 모두 정리가 되었다. 김기동 감독 부임 이전까지 유스 선수들은 어떻게든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었으나 부임 이후 포철중-포철고 성골유스라도 입단 1년차에 과감하게 모두 정리해버리고 있으며 자연스레 포항 주전자리로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다고 방심하던 포철고 출신 유스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은 덤이고 스쿼드에 바로 못 들어올 유스 자원들은 모두 임대를 보내 하부리그에서부터 경험치부터 쌓게 하고 있다. 일례로 송민규 이적 이후 포항의 차세대 에이스로 낙점받은 고영준 역시 스쿼드가 얇은 2021 시즌에 꼭 필요한 자원임에도 훈련 태도와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하게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다시 정신을 차릴 때는 적극 기용하는 등 젋은 선수들을 조련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편이며 매번 고정된 스쿼드에 팬들이 제발 이호재라든가 유스를 쓰라고 닦달이지만 정작 이들이 출전한 경기의 경기력을 보면 "김기동이 안 쓰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턱대고 젋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본인이 확신이 들 때 기회를 주는 편이고 놀랍게도 그렇게 선수를 투입하면 대부분 성과를 낸다.

하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은 것이 본인이 현역 시절 500경기 이상을 소화한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서 그런지 어지간해서는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는다. 다만 이는 포항의 팀 사정이 로테이션을 돌릴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에 김기동 감독도 어쩔 수 없는 부분. 이 때문에 몇몇 경기에서는 체력을 못 따라간 선수들로 인해 망치는 경기가 나왔지만 2020 시즌 후반 이후에는 본인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게다가 선수를 갈아먹는 다른 감독들과 다르게 부상선수들 관리도 철저한 편이라, 부족한 선수층에 유혹을 느낄 법 해도 노장선수 본인들이 출전을 자청해도 부상이 완치될 때까지 절대 내보지 않으며 선수들을 관리해준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 모기업 포스코의 투자가 줄어든 시점에서 김기동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는 선수가 팀에 많지 않다는 것 또한 본인이 이겨내야 할 부분이다. 더욱이 2021 시즌에는 감독 몰래 에이스를 시즌 중에 팔아버릴 정도로 포항의 팀 운영이 막장이 되고, 대체로 영입해 온 선수는 오자마자 장기부상으로 나가 떨어지고 베스트 일레븐을 꾸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정말 김기동 감독의 전략과 전술 하나로 인해 포항의 성적이 유지됐으며, 기어코 2009년 이후 12년만에 ACL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팀 선수들에게도 평판도 좋아 프로 부임 2년차인데 축구 커뮤니티 썰들을 종합 해보면 김기동 감독 밑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젊은 선수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2019 시즌 K리그 감독상 투표를 할 때 선수들 사이에서의 투표만큼은 감독상을 수상한 주제 모라이스보다 더 높게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2020 시즌에는 결국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구단의 인색한 지원으로 팀 성적이 나빴던 2021 시즌에도 타 팀 선수들 상대로 가장 지도를 받고 싶은 감독 1위로 뽑혔다.#

2021 시즌에는 송민규 이적 건으로 구단 고위층과 신뢰가 깨져 버리는 바람에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K리그 팀들의 이적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썰이 나돌기도 했다. 게다가 ACL 토너먼트에서 역대급 업셋을 보여준 덕분에 K리그를 넘어 중동, 중국, 일본 클럽들의 영입 대상은 물론 차기 국가대표 감독 후보 1순위로 위상이 급격히 오르기도 했다.[17]

이러한 명성이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는지 2021 시즌에는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에서 발표한 2021년 올해의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출신 감독으로는 유일.#경쟁자가 투헬·펩… 김기동 감독, IFFHS 올해의 감독상 후보에 선정

이러한 스타일 덕에 선수단 뿐만 아니라 팬들로부터 지지 기반도 굉장히 탄탄한데, 2023 FA컵 결승 종료 후 심판상 시상식에서 포항 팬들이 야유를 날리자 김기동이 팬들에게 자제를 요청했고, 이에 팬들이 바로 야유를 멈추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본인도 지난 리그 동해안더비 판정으로 심판상을 수상한 이동준 심판에게 불만이 있을 법 한데도 팬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대인배스러움을 보여주었다.#

5. 수상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6. 여담

7. 둘러보기

파일:FC서울 엠블럼(검빨배경).svg
FC 서울 2025 시즌 코칭 스태프
직책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국적 생년월일
감독 김기동 KIM Gid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2.01.12
수석 코치 김대건 KIM Daeke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7.04.27
코치 이광재 LEE Kwangjae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01.01
코치 오승범 OH Seungbum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02.26
GK 코치 박호진 PARK Hoji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6.10.22
피지컬 코치 주닝요 JUNINHO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3.07.01
지원 스태프 명단
직책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국적 생년월일
팀닥터 조윤상 CHO Yunsa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팀닥터 한덕현 HAN Deokhyu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트레이너 박성률 PARK Sungryul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2.04.09
전력분석관 이창주 LEE Changju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비담당 이천길 LEE Cheonkil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물리치료사 서성태 SEO Sungtae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물리치료사 문지원 MOON Jiw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물리치료사 김하진 KIM Haji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통역 이환 Lee 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통역 김윤환 Kim Yoon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통역 이석진(Brian) LEE Seokji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통역 기지용 KI Jiy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기사 김용기 KIM Yongki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기사 김영락 KIM Youngra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 주민 등록상의 생년월일로 실제로는 1971년 5월 26일생이라고 한다.[2]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3] 시즌 도중 부임.[4] 1위는 이동국. 2018 K리그 3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면서 502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김기동 다음으로 K리그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필드 플레이어는 2013년 기준 458경기의 김상식. 500경기 출전 기록을 가진 선수는 골키퍼인 김병지(706경기)와 최은성(532경기), 필드 플레이어로는 이동국(539경기, 2020년 5월 29일 기준) 밖에 없으며 400경기 출전으로 기준을 낮춰도 필드 플레이어는 김기동 말고 신태용이나 김상식, 김한윤, 김은중, 우성용 등으로 손에 꼽는다. 골키퍼와는 달리 포지션 중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미드필더로 500경기 이상을 뛴 김기동의 기록은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5] 최고령 도움 기록은 골키퍼 최은성이 갖고 있다. 39세 5개월 14일[6] 당시 두 선수 모두 32세로 그만큼 팀에 꼭 필요한 고참 선수였다.[7] 사실 1992년에도 포항 소속으로 우승하긴 했으나 당시에는 2군에 있었고 본인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고 밝혔다.[8] 당시 김기동의 실력도 후배들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았다. 황선홍 감독은 그를 수비쪽 뿐만 아니라 쉐도우 스트라이커로도 활용했었다.[9] 이 장면은 사실 이전 2018 시즌 부터 쭉 이어져 왔다.[10] 2라운드 시작 전 영입[11] 양 팀 상대로의 마지막 승리가 둘 다 2017년이었다. 특히 전북 최악의 감독으로 불리던 김상식 시절에도 서울은 전북을 1번도 이기지 못했다.[12] 2023 K리그1 26라운드 포항 vs 광주전[13] 출처: 기사 이정효 감독 역시 2023 시즌 광주 FC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유망한 젊은 감독이고, 엄밀히 말하면 서로 경쟁하는 입장임에도 상대 감독의 능력에 대해 인정하고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김기동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직설적인 인터뷰를 자주 구사하는 이정효 감독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적으로는 김기동 감독 몰래 뒤에 다가가 장난을 칠 정도로 축구 후배로서도 잘 따르는 편이다. 심지어 2023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레 김종우가 광주에서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 되었을 때도 다른 팀이면 안 보냈는데 기동쌤이 있는 포항이라 보내준다고 했을 정도.[14] 허리를 90도로 뒤로 꺾는 특유의 골 리액션으로 아예 눕기동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15] K리그의 정서상 이 정도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팀 스쿼드 한 자리를 주고 살려보려고 애를 쓰는 편인데다, 장결희가 포항 유스 출신이라 충분한 기회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김기동 본인이 장결희를 몇 번 지도해보고 조언도 해봤으나 답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되자 바로 팀에서 방출시켰다.[16] 이 부분에서 김기동의 선수 보는 안목과 전술 활용 능력이 뛰어남을 증명했는데, 팔라시오스의 장점인 돌파력과 스피드, 그리고 기존 포항 윙어들의 고질적인 문제이던 크로스의 정확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팔라시오스가 부족한 세밀한 플레이는 과감하게 버리고 돌격대장 역할을 맡겼다. 덕분에 팔라시오스가 밀고 들어가서 헤집어 놓은 공간을 일류첸코, 송민규가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두 선수에게 수비가 집중될 때는 그 빈공간을 팔라시오스가 활약하는 방법으로 기어이 팔라시오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더욱이 이러한 김기동의 믿음으로 팔라시오스 역시 1부 리그의 경험치를 쌓으며 초반의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김기동 감독의 지도력을 엿볼 수 있다.[17] 파울루 벤투의 계약만료 후 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김학범, 황선홍 등의 국내파 감독 루머에 정색하던 극성 축구팬들조차 김기동이 후보로 올라오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을 정도다.[18] 2018년 대전 시티즌의 이기범 2군 감독과 아들 이지호가 같이 팀에 소속되면서 팬들로부터 큰 반발을 산 것과는 대조적이다.[19] 홍명보가 세 살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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