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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2:16:48

제이미 캐러거

제이미 캐러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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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각 년대별로 2명을 헌액한다.
출처: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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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스포츠
Sky Sports
파일:Jamie Carragher.jpg
제이미 캐러거
Jamie Carragher
본명 <colbgcolor=#ffffff,#191919>제임스 "제이미" 리 덩컨 캐러거
James "Jamie" Lee Duncan Carragher
출생 1978년 1월 28일 ([age(1978-01-28)]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부틀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체중 83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풀백[1],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저널리스트
소속 선수 리버풀 FC (1988~1996 / 유스)
리버풀 FC (1996~2013)
방송 Sky Sports (축구해설가)
국가대표 38경기 (잉글랜드 / 1999~2010)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기록
3.1. 대회 기록3.2. 개인 수상
4. 플레이 스타일5. 은퇴 이후6. 논란 및 사건사고7. 여담8.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수비수.[2][3]

과거 리버풀 FC의 주전 센터백이자 팀의 부주장으로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리버풀의 암흑기를 지킨 원클럽맨이다. 90년대 후반 리버풀 황금 유스 3인방 중 1명이기도 하다.[4]

2. 선수 경력

스티븐 제라드마이클 오언과 같은 리버풀 유스 출신으로, 유스 시절 1년정도 에버튼에서 뛴 것 빼면 시작부터 은퇴까지 리버풀에서 한 진정한 원클럽맨이다.[5] 어린시절에는 에버튼 FC의 팬이었으나, 리버풀 FC의 유소년 팀에 입단 했고 1996년 FA 유스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후 1996년에 1군 무대에 데뷔했다.

사미 히피아, 다니엘 아게르 등과 짝을 맞추며 평균 리그 30경기 이상씩 출전하며 견실한 모습을 보였으며 2008년 1월 15일, 홈에서 벌어진 FA컵 홈 경기 루턴 타운전에서 리버풀 소속으로 모든 대회를 통틀어 자신의 500번째 경기에 출장했으며, 그는 이 경기에서 주장으로 출전했다.

다만 국대에서는 존 테리리오 퍼디난드라는 EPL 역사상 거의 최고 수비수로 꼽히는 두 선수의 존재로 인해 주전을 꿰차기가 쉽진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맥클라렌의 뻘짓[6]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은퇴하고, 잉글랜드는 결국 러시아, 크로아티아에게 연패하면서 유로 2008 본선 진출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맥클라렌의 후임으로 부임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다시 캐러거에게 복귀를 요청하였지만, 이미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후라 거절하면서 대표팀에서는 완전히 은퇴하게 된다.

2012년 이후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많이 하락하였다.
파일:external/www.whoateallthepies.tv/tumblr_liriypr8QE1qe35yro1_500.gif

같은 리버풀 출신 마르틴 슈크르텔과 함께 7골로 EPL 역대 최다 자책골 2위를 기록하고 있다.[7] 그런데 리버풀에서만 17년 동안 수백 경기를 소화한 선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리버풀 상대 득점 3위의 위엄(?)을 달성했다(...) 물론 본인 포함 모두가 빵 터질 정도로 좀 웃기긴 하지만 이 정도로 캐러거의 실력이나 커리어가 폄하될 이유는 없다.

이후 로저스 감독의 만류에도 2013년 2월 7일, 12-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http://www.liverpoolfc.com/news/latest-news/lfc-statement-on-jamie-carragher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4. 플레이 스타일

풀백 출신답지 않게 느린 편인데다가 특별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유하지는 않았지만 빠른 순간 판단과 뛰어난 집중력과 악바리같은 투쟁심과 활동량을 앞세운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또한, 수비진 전체가 90분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지휘하는 뛰어난 리더십과 투쟁심을 갖고 있어 리버풀 수비의 핵심적인 지휘자 역할을 담당하며 주장인 제라드와 함께 팀 내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였다.[8]

다만 2012년 이후로는 기량이 많이 떨어져서, 전성기 시절에도 심했던 오락가락하는 플레이와 항상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색으로 인해 만취성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실제로 위에도 나와 있지만 자책골 같은 뜬금 실수가 많았던 편.

애초에 주력을 비롯한 신체 능력에 약점이 있는 선수였고 그대신 수비 리딩 능력이 있었다. 동시대의 푸욜이나 테리만큼 당대 최고 수준은 아니었던지라 월드클래스 선수라고 하기엔 꽤나 약점이 있는 선수였다. 그러한 단점들을 투지로 극복하는 케이스[9]였고, 때문에 월클급 기량의 선수들과 만나면 유달리 굴욕적인 장면도 많이 나왔다. 특히 티에리 앙리는 거의 쥐약이나 다름 없어서 앙리에게 탈탈 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10][11] 자신의 마지막 유럽대항전 경기가 된 제니트와 유로파리그 32강전 홈경기에서도 실수로 헐크에게 골을 내줬고 팀은 원정골 다득점 규칙에 따라 탈락하게 된다.[12]

5.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언론계 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선수 시절에도 의외로 신문에 정연한 칼럼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싹수가 보였으며, 2013년부터 스카이스포츠에서 게리 네빌과 함께 일하고 있다. 현역 시절 투닥투닥했던 것과 다르게 서로 말장난도 주고받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등 찰떡 콤비를 이루고 있다. 해설과 경기 분석도 나쁘지 않게 하고 어그로도 끌지 않는 편. 사투리가 매우 심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꽤 많았으나 별 말 없는걸보면 잘 하고 있는 듯 하다. 애초에 영국은 악센트가 워낙 다양한 나라라 스포츠 코멘테이터같은 경우에는 사투리에 관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현재 로이 킨, 제이미 레드냅, 마이카 리처즈, 그레이엄 수네스 등 네빌을 위시한 레전드 패널 사단과 함께 스카이스포츠 풋볼의 얼굴마담 격 패널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2020/21 시즌 맨유와 리버풀이 우승 경쟁을 하고 있음에 따라 매 경기 결과가 나올때마다 캐러거와 네빌의 sns에서 서로의 팀을 놀리는 게시글이 올라와 재미를 주고 있다. 그리고 리버풀이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자 이에 대해 한탄하면서도 그와중에 네빌을 놀리는 진풍경을 보여주었다.[13] 리버풀이 골을 넣을때마다 엄청 환호한다. #

초반에는 중립적인 해설가라는 평이 강했지만 리버풀이 강세를 보인 이후 리버풀과 붙는 팀에게 무분별한 비판을 가하는 듯 해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 스포츠 방송계가 특히 타국 팀에 비판적인 것을 감안해도 다른 선출 패널들보다 도드라지는 편이다. 특히나 캐러거 본인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비판을 하는 편으로 매시즌 이기면 운이 좋았다, 지면 내가 그럴줄 알았다식의 해설로 일관해서 CBS, 스카이 스포츠 등의 댓글란에는 당혹스러워 하는 시청자들의 항변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14][15]

6. 논란 및 사건사고

7. 여담




파일:external/bhu.co.kr/92c5e6417f39097a8c223d10d0a53eea_r29n2yJUtasa8OJhkSTLPlkZ7t7a.jpg

8. 같이 보기

1 제임스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테리 · 6 캠벨 · 7 베컴 · 8 스콜스 · 9 루니
10 오언 · 11 램파드 · 12 브리지 · 13 로빈슨 · 14 P. 네빌 · 15 · 16 캐러거 · 17 버트
18 하그리브스 · 19 J. 콜 · 20 다이어 · 21 헤스키 · 22 워커 · 23 바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벤예란 에릭손

1 로빈슨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퍼디난드 · 6 테리 · 7 베컴 · 8 램파드 · 9 루니
10 오언 · 11 J. 콜 · 12 캠벨 · 13 제임스 · 14 브리지 · 15 캐러거 · 16 하그리브스 · 17 제나스
18 캐릭 · 19 레넌 · 20 다우닝 · 21 피터 크라우치 · 22 카슨 · 23 월콧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벤예란 에릭손


[1] 잠깐 좌-우 풀백을 본적이 있다, 그러나 풀백으로서 뛸때에는 해당 포지션 활동량 문제로 인해 어정쩡 했었다.[2] 이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좌우 풀백까지 뛰는 등 다재다능함을 보였지만, 센터백을 제외하면 모두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주고,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 부임 이후 센터백으로 정착했다.[3] 풀백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활동량 부족이다. 캐러거가 파이터형 플레이를 보이긴 해도 애초에 센터백이라 활동량은 전문 풀백에 비할 바가 못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월드컵에서 캐러거는 게리 네빌의 부상 때문에 센터백이 아닌 라이트백으로 출전했다. 그나마 그 자리도 오언 하그리브스 때문에 완전 주전은 아니었다.[4] 잉글랜드의 프로팀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유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리버풀 유스에는 당시 리버풀의 미래를 10년 이상 책임질 것으로 촉망받던 유스가 각 포지션마다 한 명씩 있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에 마이클 오언, 중앙 미드필더에는 스티븐 제라드, 그리고 중앙 수비수에 제이미 캐러거. 이 세 명의 선수 모두가 1군에 데뷔한 지 4년차에 접어든 2000-01 시즌, 리버풀은 세 선수의 활약을 앞세워서 리그컵, FA컵, UEFA컵을 모두 들어올리는 쾌거를 달성한다. 그리고 오언은 이 활약으로 발롱도르까지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길 수 없어서 합류하게 된다.[5] 오언은 2005년에 우승을 하고 싶다고 리버풀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으며 제라드 역시 말년에 LA 갤럭시로 이적해 2시즌을 더 소화한 후 은퇴했다.[6]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던 데이비드 베컴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국대에 선발하지 않았고, 제라드와 램파드의 조합에 실패하면서 미드필드에서의 균형을 잃게 된다.[7] 1위는 10골(...)을 넣은 리차드 던[8] 제라드는 팀내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리버풀에서의 위상이 워낙에 높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별말 하지 않아도 카리스마가 저절로 발산되는 타입이었다면, 캐러거는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무장을 강조하고 엄청나게 잔소리를 퍼붓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베니테즈가 당시 좌우풀백을 전전했던 캐러거를 센터백으로 정착시킨 것도 캐러거가 워낙에 말을 많이 하니까 중앙에 배치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9] 즉 자신의 수비 단점을 터프한 수비와 열정적인 플레이로 지능이나 리딩 능력을 극복하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스타일 센터백이라고 보면 된다.[10] 앙리랑 속도 경합을 하다가 밀려 자빠진다던지 앙리의 가벼운 발재간에 휘청휘청 하다가 넘어진다던지... 다만 당시 아스날의 앙리-피레스-콜로 이어지는 왼쪽 라인은 정말 위협적이었고, 특히 앙리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에 포지션상 직접적인 맞대결을 해야하는 오른쪽 센터백 내지는 오른쪽 풀백이었던 캐러거가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까지 막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에 실패한 것에 대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캐러거의 수비능력이 월등하지 않았던 것이지 당시 앙리의 실력이나 포스를 생각하면 캐러거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샘.[11] 당대 최고의 풀백들이던 게리 네빌, 하비에르 사네티 역시 앙리의 속도에 맥을 못추던 시기이기도 했다.[12] 원정 0:2패였고 홈 3:1승이여서 탈락했는데 캐러거의 실수만 아니었으면 3:0승으로 다득점 규칙에 따라 리버풀이 올라갔다.[13] 네빌: 리버풀 얼마나 안 좋음? 캐러거: 니 발렌시아보다 심각함[14] 예 중 하나로 레알 마드리드가 운이 좋았다는 비판 https://www.mirror.co.uk/sport/football/news/real-madrid-liverpool-jamie-carragher-29287062[15] 저 말을 하고 리버풀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홈에서 2:5로 패배했다.[16] 루이스 수아레스는 한 인터뷰에서 스티비가 말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캐러거가 말하는 건 못 알아듣겠어서 적당히 알겠다고만 한다고 털어놓았다. 제라드는 그래도 타국이나 타지에서 온 선수들이 억양을 못 알아들을까봐 최대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17] 한 A매치 중계에서 경기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ex. 존 테리~ 디펜더~), 배컴의 깨는 목소리와 함께 캐러거의 독특한 발음이 확 튀기도 했다. 거기서 자신의 성인 캐러거를 '까라가'로, 디펜더를 '디뺀다'로 발음했다.[18] 스티븐 제라드도 여기에 속한다. 루니, 스콜스 등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선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적인 관계일 뿐이고, 맨유 유니폼을 집에 두거나 입은 사람 옆에 서는 것도 꺼릴 정도였으며 자서전을 읽어보면 맨유에 대한 적개심이 소름 돋을 정도로 진지한데, 이게 현지 리버풀 팬들 대다수의 마인드다.[19] 완전히 리버풀을 까지 않는 건 아니다.[20] 실제로 둘이 사적으로도 꽤 친하다고 한다.[21] 현대축구에서 공격과 수비 양면으로 활약하는 풀백이 갖는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물론 그 중요성에 비해 경기에서 활약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든 포지션인 것도 현실이다.[22] 현재는 람스 파크를 신축하여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23] 튀르키예는 자신들의 스포츠 자존심, 특히 축구에서의 자존심이 상당하다. 타 SNS에서는 부각되지 않지만 인스타에서 축구 릴스를 보면 터키가 조금만 언급되도 터키 국기로 도배된다. 이 조금만이 피파 카드팩 영상에서 터키 플레이어가 잠깐만 나와도 그러며 심지어 본인 국가대표가 네덜란드보다 강하다고 하거나 아르다 귈러킬리안 음바페보다 강하다(...)고 하며, 심지어 자국 팀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해 원래 터키와의 인연이 없던 치로 임모빌레베식타스로 이적하자 임모빌레 관련 게시글이 터키 국기로 도배되었다.[24] 참고로 이 영상에서 캐러거는 21/25점을 얻었고 네빌은 8/25점을 얻는데 그쳤는데 캐러거는 네빌이 발렌시아에서 얻은 승점이 저것보다는 높다고 해맑게 디스했다.[25] 주로 로이 킨, 개리 네빌, 리오 퍼디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