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리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데이비드 베컴 (2000~2006) | ▶ | 존 테리 (2006~2010) | ▶ | 리오 퍼디난드 (2010~2011) |
첼시 FC 주장 | ||||
마르셀 드사이 (2001~2004) | ▶ | 존 테리 (2004~2017) | ▶ | 게리 케이힐 (2017~2019) |
아스톤 빌라 FC 주장 | ||||
제임스 체스터 (2016~2017) | ▶ | 존 테리 (2017~2018) | ▶ | 제임스 체스터 (2018~2019) |
존 테리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
| 2000-01 · 2005-06 | |||
베스트팀 | ||||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 2005 · 2007 · 2008 · 2009 | |||
| 2003-04 · 2004-05 · 2005-06 · 2014-15 | |||
| 2004-05 · 2008-09 · 2009-10 | |||
|
존 테리의 기타 정보 | |||||||||||||||||||||||||||||||||||||||||||||||||||||||||||||||||||||||||||||||||||||||||||||||||||||||||||||||||||||||||||||||||||||||||||||||||||||||||||||||||||||||||||||||||||||||||||||||||||||||||||||||||||||||||||||||||||||||||||||||||||||||||||||||||||||||||||||||||||||||||||||||||||||||||||||||||||||||||||||||||||||||||||||||||||||||||||||||||||||||||||||||||||||||||||||||||||||||||||||||||||||||||||||||||||||||||||
|
첼시 FC | ||||
Chelsea Football Club | ||||
<colbgcolor=#034694><colcolor=#ffffff> 이름 | 존 테리 John Terry | |||
본명 | 존 조지 테리 John George Terry | |||
출생 | 1980년 12월 7일 ([age(1980-12-07)]세) | |||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런던 런던시 바킹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7cm / 체중 90kg | |||
직업 | 축구 선수 (센터백[1] / 은퇴) 축구 코치 | |||
소속 | <colbgcolor=#034694><colcolor=#ffffff> 선수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91~1995 / 유스) 첼시 FC (1995~1998 / 유스) 첼시 FC (1998~2017) → 노팅엄 포레스트 FC (2000 / 임대) 아스톤 빌라 FC (2017~2018) | ||
감독 | 아스톤 빌라 FC (2018~2021 / 수석 코치) 첼시 FC (2021~2023 / 유스 코칭 컨설턴트) 레스터 시티 FC (2023 / 수석 코치) 첼시 FC (2023~ / 유스 코치) | |||
국가대표 | 78경기 6골 (잉글랜드 / 2003~2012) | |||
SNS | |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34694><colcolor=#ffffff> 등번호 | 잉글랜드 대표팀 - 5번, 6번, 14번 첼시 FC - 26번[2] 아스톤 빌라 FC - 26번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첼시 유스 출신으로, 첼시에서 19년동안 717경기를 뛰며 PL 5회 우승, UCL 1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PFA 올해의 선수 1회, FIFA FIFPro 월드 XI에 5차례, UEFA 올해의 팀에 4차례, 그리고 UEFA 올해의 수비수를 3회 수상하였다. 23세의 나이로 주장을 맡아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첼시의 주장직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존 테리/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2003년 6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유로 2004 이후부터 리오 퍼디난드와 주전 센터백을 담당하게 되었다.2006년 5월 30일 헝가리와 월드컵을 앞두고 펼쳐진 친선 경기에서 테리는 자신의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며, 비록 잉글랜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본인은 16강 에콰도르전에서 MOM으로 선정되는 등 대회 기간 동안 맹활약을 펼치면서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한편, 독일 월드컵 종료 후 데이비드 베컴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주장 완장을 차고 치른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자축했다.
하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유로 2008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 등 마냥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았다. 거기에다 웨인 브리지의 전 여친과의 불륜도 드러나면서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주장 완장을 박탈 당하기까지 했으며, 파비오 카펠로와의 사이도 그리 좋지 못했다.
부상 문제만 아니면 우승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본인이 부상 트러블을 일으킨 잉글랜드의 캡틴 |
2011-12 시즌 QPR 원정경기에서의 리오 퍼디난드의 동생 안톤 퍼디난드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 혐의로 구설에 올랐고 결국 2012년 9월 24일, 유로 2012를 끝으로 결국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걸레수비의 창시자이자 첼시의 팀컬러를 만든 대표적인 선수이다.존 테리는 지능, 리더십, 태클, 클리어링, 가로채기, 빌드업, 공격 가담, 몸싸움, 제공권 등 커맨더형 센터백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기량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갖춘데다가 수비수로서는 당대 최강의 독보적인 득점력까지 갖췄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월드클래스 센터백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카를레스 푸욜과 함께 역대급이라고 해도 무방한 게임 리딩 능력. 즉 수비지능이다. 최고의 커맨더형 수비수로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합을 맞추던 2000년대 중반부터 계속해서 입증되어 왔으며 2010년 이후에도 게리 케이힐, 다비드 루이스, 퀴르트 주마 등 여러 선수들과 조합을 맞출 때마다 뛰어난 수비 리딩 능력이 빛을 발한다. 테리가 없으면 우왕좌왕하거나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잦지만 테리가 이끌어주면 전체적인 수비 라인이 안정된다.[3] 이 밖에도 공격적인 태클, 뛰어난 위치 선정에도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경고누적으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어지간해서 부상당하지 않는데다가 경기 내내 실수를 거의 범하지 않기에 감독 입장에서는 항상 믿음직한 인물이다.
그리고 뛰어난 수비 지능에서 나오는 방대한 커버 범위 또한 그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테리의 유일한 단점이 순간 속도라서 수비 커버 범위가 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오산이다. 테리는 패스가 공격진으로 날아들 때 성큼성큼 달려와서 상대 공격수가 공을 터치하기 전에 클리어링 하거나 아예 피지컬로 담가버리는 수비에 매우 능한 선수였다.[4]
커맨더 수비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센터백이지만 스타일만 보면 파이터형 수비수이기도 한데, 굉장히 터프한 수비 방식을 즐기는 편이다. 그게 맨유의 네마냐 비디치 정도는 아니더라도[5] 보통 커맨더형 수비수라고 일컬어지는 페어 메르테자커나 리오 퍼디난드에 비해 도전적인 태클이나 공격 차단을 많이 시도하고 성공률도 매우 높다.[6] 이는 존 테리와 경기했던 선수들의 평가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점이라면 느린 스피드가 있는데, 이 때문에 뒷공간을 자주 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7] 전성기 시절에는 아예 느리다고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나마의 주력도 감소하여 뒤에서 쫒아가는 수비를 할 때 꽤나 고생을 했다. 때문에 키가 작으면서 스피드가 빠르고 라인브레이킹 능력이 뛰어난 공격수에게는 약한 경향이 있다. 또한 테리의 느린 스피드는 공격에도 지장을 주는데, 수비진을 올려 가둬놓고 패야 되는 상황인데 라인을 올리자니 스루패스로 뒷공간이 털리고, 내리자니 3선 미드필더진과 간격이 벌어져서 실점 빌미를 제공한다. 테리가 수비라인을 올린 전술을 사용한 보아스 감독시절 크게 고생한 이유다.
통칭 걸레수비로 불리는 특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로 슈팅이나 키패스 등을 온 몸으로 막는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땅볼 슛을 다이빙 헤더로 막으려는 시도도 했다. 물론, 이게 굉장히 위험한 수비방식이라 슈팅을 막으려다 발이 얼굴로 향해버려서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다. 이런 수비 형태는 대체로 골키퍼의 시야를 가리는 주범이 되는데, 테리의 경우 위치 선정이 굉장히 좋고 실수를 거의 범하지 않기에 실점의 빌미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테리의 존재 하나가 체흐의 부담을 반 이상 덜어주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7년 현재 비슷한 스타일의 수비를 하는 선수로 필 존스를 꼽을 수 있다.[8] 이런 존 테리의 몸을 아끼지 않는 자세는 이후 첼시 후배들에게도 전해지게 되면서 튼튼한 수비와 함께 승리를 위하여 몸을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투지로 무장한 선수들이 있다는 팀컬러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9][10][11]
몸싸움 능력과 점프력, 헤더 능력이 상당히 좋아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력이 대단했다.[12] 특히 제공권에 있어서는 감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13] 헤더 좀 한다는 네마냐 비디치의 득점 기록조차도 테리의 기록에 비하면 그저 애송이 수준. 다비드 루이스처럼 공격 본능이나 중거리 슈팅 능력이 있는 선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가 EPL 역대 수비수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된 것은 8할이 헤더 능력. 2004-05 챔피언스리그에서만 무려 4골을 넣었고 12/13시즌 리그에서 단 14경기만 출장하고도 4골을 득점하였다. 첼시 소속으로 리그에서만 41골, 통산 67골을 넣었다.
또한 현대 축구에서 요구되는 후방 빌드업 능력이 훌륭했던 센터백이기도 하다. 일단 패스미스를 거의 범하지 않을 뿐더러, 시야도 넓은 데다 양발로[14] 중장거리 패스를 정확하게 뿌려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는 공을 걷어낼 때 단순히 걷어내기보다는 최대한 바로 팀원에게 롱패스처럼 이어지도록 지능적으로 클리어링을 해서 팀의 공격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다.
테리가 은퇴한 이후 여러 역대급 센터백들이 출현했지만, 테리처럼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공백과 기복없이 자신의 좋은 폼을 유지해내는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15][16]
4.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여부를 두고 유럽 내 여러 클럽[17]들과 협상을 하다가 결국 선수로서는 은퇴를 하고 첼시의 리저브 팀 감독을 맡는 듯 했으나 전 시즌 까지 선수로 뛰었던 아스톤 빌라의 수석코치직에 선임됐다.이후 수석코치로서 딘 스미스를 보좌하며 18-19 시즌을 잘 이끌며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도 마우리치오 사리가 갑작스럽게 나간 첼시의 사령탑에 잠깐 언급되긴 했으나, 실제 감독직을 맡아보지 않아 크게 가능성은 없었으며 같은 첼시 레전드인 프랭크 램파드가 첼시 감독직을 이어받으며 일단락되었다.
에디 하우 감독이 떠난 AFC 본머스의 감독 부임설이 돌고 있는 중이다. 현재 아스톤 빌라 측에서 크레이그 셰익스피어를 새 수석 코치로 선임하며 존 테리가 빌라를 떠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상태. 그러나 본머스가 제이슨 틴달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본머스 감독 부임설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제이슨 틴달이 2020-21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 당하면서 다시금 AFC 본머스 감독 부임설이 돌고있다.
감독 도전을 위해 아스톤 빌라의 코치직에서 사임했다. 조디 모리스와 함께 스완지 시티의 감독 링크가 도는 중.
딘 스미스가 아스톤 빌라에서 경질되었을 때는 빌라의 주요 후임 중 한명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스티븐 제라드가 선임되면서 빌라로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무직 상태로 남아있다가, 2022년부터 자신의 친정 팀인 첼시의 유스 감독으로 복귀 할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원래는 어느 정도 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PL이나 챔피언십 팀의 감독을 원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2023년 4월 5일, 프랭크 램파드의 임시감독직 2개월 단기 계약기간 동안 첼시의 수석코치를 담당할 가능성이 거론되었으나, 돌연 레스터 시티에 부임할 것으로 유력한 딘 스미스의 부임이 확정될 경우 딘 스미스 사단의 일원으로 레스터행이 예정되었다는 데이비드 온스테인과 존 퍼시의 보도가 나왔다.
2023년 4월 10일, 딘 스미스를 따라 레스터 시티의 코치로 합류했다.#
2023년 6월 16일, 딘 스미스, 크레이그 셰익스피어와 함께 레스터 시티를 떠나게 되었다.#
2023년 7월 8일, 첼시로 다시 돌아왔다.# 유스 코치로 일할 것이라고 한다.
5. 평가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를레스 푸욜과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자 PL 역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다.[18] 동시에 첼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다. 첼시에서는 지안프랑코 졸라와 함께 비공식 영구결번 취급을 받아왔으며 첼시의 '영원한 캡틴'이라고 불릴 정도의 레전드이다.국가대표 커리어는 유로 2004부터 주전으로 출전하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8강에 그쳤지만 그래도 대회 내내 맹활약하면서 올스타팀에 선정된다. 이후 데이비드 베컴의 뒤를 이어 주장이 되었지만 유로 2008 본선 진출 실패,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유로 2012 8강에 그치면서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하면 매우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였다.
개인 커리어는 FIFA FIFPro 월드 XI 5회, UEFA 올해의 팀 4회, PFA 올해의 팀 4회, ESM 올해의 팀 3회, 2006 독일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심지어 수비수로서는 정말 드물게 2004-05 시즌 PFA 올해의 선수도 수상하였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 첼시 FC (1998~2017)
- 프리미어 리그: 2004-05, 2005-06, 2009-10, 2014-15, 2016-17
- FA컵: 1999-00, 2006-07, 2008-09, 2009-10, 2011-12
- 풋볼 리그컵: 2004-05, 2006-07, 2014-15
- FA 커뮤니티 실드: 2005, 2009
- UEFA 챔피언스 리그: 2011-12
- UEFA 유로파 리그: 2012-13
6.2. 개인 수상
- FIFA FIFPro 월드 XI: 2005, 2006, 2007, 2008, 2009
- UEFA 올해의 수비수: 2004-05, 2007-08, 2008-09
- UEFA 올해의 팀: 2005, 2007, 2008, 2009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19]: 2015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6
- PFA 올해의 선수: 2004-05
- PFA 올해의 팀: 2003-04, 2004-05, 2005-06, 2014-15
- PFA 세기의 팀 (1997–2007)[20]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5년 1월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2024
- 풋볼 리그컵 결승전 MOTM: 2005
- 첼시 올해의 선수: 2000-01, 2005-06
- 첼시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7-98
- ESM 올해의 팀: 2004-05, 2008-09, 2009-10
- 옹즈 드 옹즈: 2005, 2007, 2008, 2009
- 앨런 허데이커 트로피: 2005, 2015
7. 테리에 대한 말, 말, 말
프리미어리그에는 수많은 정상급 수비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 최고는 존 테리라고 생각한다. 위치 선정과 특히 경기를 읽는 능력에 관해서 그보다 뛰어난 수비수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센터백 포지션에서 누군가 잘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그를 존 테리의 후계자라고 부를 것이다. 아마 우리는 그보다 나은 센터백을 영영 못 볼지도 모르겠다.
제이미 캐러거
앞으로 센터백 포지션에서 누군가 잘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그를 존 테리의 후계자라고 부를 것이다. 아마 우리는 그보다 나은 센터백을 영영 못 볼지도 모르겠다.
제이미 캐러거
그는 경기의 흐름을 잘 읽고, 신체적으로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롭다. 그를 상대하게 되면, 터프한 경기에 나선다는 걸 알고 나가야 한다.
웨인 루니
웨인 루니
피치 위의 또다른 훌륭한 코치다. 그는 훌륭한 리더고, 그의 커리어는 훌륭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아르센 벵거
아르센 벵거
그가 주장으로서 일궈낸 모든 커리어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그는 훌륭한 선수고 리더이며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선수이다.
엠마누엘 프티
엠마누엘 프티
센터백이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존 테리를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는 다른 동료들의 경기력도 끌어올릴 능력을 가졌다. 그에겐 클래스가 있다.
크리스 스몰링
크리스 스몰링
그는 전술적으로 굉장히 똑똑하고, 상대방의 길목을 차단할 줄 알며, 공간을 내주지 않고, 신체적인 경합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그는 육중한 편이지만 잠을 자는 습관이나 식습관을 바꿔가면서 자신에게 엄격함을 유지한다. 리더십 측면에서는 그가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전성기를 유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팀의 정말 위대한 리더이다.
마르셀 드사이
마르셀 드사이
존 테리는 우리 모두의 캡틴이었다. 그는 암밴드를 그의 팔에 찬 채로 태어났다. 암밴드 없이도 암밴드를 찬 것만 같았다. 테리는 다른 사람의 2배로 열심히 일했고, 회사를 경영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그의 철학은 항상 승리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 속에 두 번째 방은 없었다. 우리를 위한 방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첼시에 관련된 것에 있어서 그는 다른 누구보다 2배 더 열심히 한다. 마치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과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중앙 수비수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알레산드로 네스타, 파비오 칸나바로, 릴리앙 튀랑, 야프 스탐 등을 봤는데 그래도 실바와 테리를 택하겠다.[21]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에 관련된 것에 있어서 그는 다른 누구보다 2배 더 열심히 한다. 마치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과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중앙 수비수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알레산드로 네스타, 파비오 칸나바로, 릴리앙 튀랑, 야프 스탐 등을 봤는데 그래도 실바와 테리를 택하겠다.[21]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에는 테리가 있다. 어떤 선수든 테리와 플레이하면 그 선수는 제 기량을 십분 발휘한다. 이것이 첼시가 최고의 팀 중 하나인 이유다.
루드 굴리트
루드 굴리트
내 커리어에서 만나본 가장 위대한 주장이다. 그는 위닝 멘탈리티를 지닌 대단한 프로페셔널이다.
줄리아누 벨레티
줄리아누 벨레티
내가 상대해 본 잉글랜드 선수 중 최고는 존 테리였다. 그는 가장 헌신적인 선수 중 한 명이다.
사비 에르난데스
사비 에르난데스
단호한 수비수이자 타고난 리더인 그는 선수들의 패닉적인 행동을 진정시킬 수 있다. 그의 상징은 예측과 판단이다. 세트피스에서도 상당히 위협적이다.
안드리 셰브첸코
안드리 셰브첸코
그는 세계 축구사에 두고두고 남을 최고의 센터백이다.
프랭크 램파드
프랭크 램파드
첼시가 최근 몇년간 성공을 거둔 것은 모두 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안프랑코 졸라
지안프랑코 졸라
바르사의 푸욜과 굉장히 비슷하다. 테리가 은퇴하면 그를 대체하기란 쉽지 않을것이다.
데쿠
데쿠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을 꼽는다면 그의 이름이 우선적으로 거론되어야 한다.
이안 라이트
이안 라이트
나는 어릴적 항상 그의 비디오를 시청하곤 했습니다. 시합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가 하는 대로 정확하게 플레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플레이는 젊은 센터백이 우러러볼 만한 훌륭한 우상입니다.
데클란 라이스
데클란 라이스
선수 경력 초반, 테리를 상대했을 때 그는 정말 똑똑한 수비수였다. 테리는 몸을 어디 둬야 하는지, 그리고 내 질주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와의 경합은 훌륭한 학습 곡선이었다.
해리 케인
해리 케인
8. 사건 사고
2017년 첼시를 떠날 것을 선언하면서, 존 테리의 프로 의식과 실력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으나, 동시에 그동안 그가 저질렀던 많은 논란들은, 팬들 사이에서 '과연 레전드로 인정 받을 만큼 훌륭한 선수인가?' 라는 논란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알려지며 회자되면서, 많은 축구팬들에게 실력은 있으나 인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애증의 아이콘으로 남게 되었다. 국내 축구 팬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프로 축구 선수로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첼시의 레전드이나 인간으로서 존 테리는 절대 좋은 인물이 아니라는 평이 많다.[23][취재파일] '떠나는 전설' 존 테리의 요란했던 사생활(네이버)
[취재파일] '떠나는 전설' 존 테리의 요란했던 사생활(네이트)
8.1. 9.11 테러 모욕 사건
9.11 테러 다음날인 2001년 9월 12일, 존 테리는 당시 팀 동료인 프랭크 램파드, 에이두르 구드욘센, 조디 모리스와 함께 술에 취한 상태에서 히드로 공항에서 미국인 관광객을 조롱하였고, 이 일 때문에 2002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8.2. 인종차별 혐의
2011년, 리오 퍼디난드의 동생인 안톤 퍼디난드에게 "검둥이"라고 하였고, 22만 파운드의 벌금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또한 이로 인해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맨유에서 뛰었던 박지성이 훗날 QPR에서 첼시와의 경기 주장으로 출전했을때 첼시의 주장이었던 존 테리와 악수를 거부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24]그러나 2011년의 이 사건은 여러 공방 끝에 결국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 인종차별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 애초에 당시 스쿼드 주전 절반 이상이 흑인이었던 첼시의 주장이 인종차별을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는 했다. 법정 당시 팀 동료였던 애슐리 콜에게 변호를 받기도.[25]그리고 당시 잉글랜드의 감독이었던 카펠로는 존 테리의 국가대표 주장직 박탈건을 맹비난하면서 감독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이후 퍼디난드가 2011년 국가대표를 은퇴하며 이사건 이후 둘은 같이 뛰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하여 퍼디난드 형제와 존 테리의 사이는 아직도 좋지 않아서 트윗으로 설전이 오가기도 한다.
8.3. 불륜 스캔들
2010년 1월 30일. 그 동안 보도 금지령에 묶여있던 충격적인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선수 인생 최악의 상황에 마주치게 된다.
그 내용은 존 테리가 결혼하기 이전인 2006년부터 국가대표팀 동료이자, 과거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웨인 브리지의 애인 바넷사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바넷사는 테리와 성관계를 갖고 임신까지 했으며, 결국 낙태를 했다고 한다[28]. 게다가 이번 기사로 인해 과거 존 테리가 저질렀던 수 많은 문제들이 다시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존 테리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에서 쫒겨나다시피 물러나게 되었다.[29] 웨인 브리지는 잉글랜드 국대 감독인 카펠로의 국대 승선 권유를 거절하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잉글랜드 현지에 나온 기사 중엔 웨인 브리지가 국대 승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존 테리가 사과 한 마디 없는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맨시티의 서포터이자 원래부터 존 테리를 싫어했던 노엘 갤러거도[30] 이 일을 언급하면서 존 테리는 X새끼이며, 맨시티 팬들이 존 테리를 더 욕해줬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게다가 테리는 그 전 해인 2009년에 영국인이 뽑은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았기 때문에 배로 까였다.인디펜던트지 기사
이 사건 이후,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는 테리와 브리지의 이른바 불륜더비로 다시 태어났다. 2월 28일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벌어진 제1차 불륜 더비에서 맨시티는 모든 선수들이 분기탱천해 첼시를 4-2로 대파했다. 참고로 경기 시작 전 서로 악수할 때 과연 테리와 브리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에 대해 전 세계 축구팬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모두의 예상대로 브리지는 테리의 악수를 무시했다.
[31]
웨인 브리지는 경기 내내 존 테리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았지만, 아무런 위해나 시비 없이 프로답게 경기에 임했다. 오히려 테베즈가 펄펄 날뛰면서 테리에게 덤비려 했다.
형인 폴 테리 또한 팀 동료의 애인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이 쪽은 팀 동료 선수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까지 했다(참고). 자살한 축구선수는 데일 로버츠라는 5부 리그의 선수다. 이 선수는 선덜랜드의 젊은 윙어인 아담 존슨의 절친.[32] 이에 관련하여 아담 존슨은 자신의 이너웨어에 R.I.P. DALE이라는 글귀를 적고 탈의 세레모니를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8.4. 기타 사건 사고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고급 외제차를 주차시켜 놓은 장면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된통 욕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고는 2015년 9월 27일, 같은 짓을 반복했다.2010년 3월 16일에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인테르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중 뺑소니 사건까지 일으켰다.
A매치 기간 중 팀을 이탈해서 술집에서 노상방뇨를 하며 추태를 부리거나, 25살때 17살 짜리 여자애한테 '니 끈팬티가 좋아'라는 문자를 보냈거나[33] 도박으로 거액을 잃은 사건 등이다.
9. 여담
노안이며 심지어 탈모도 있다. 믿기 힘들지만, 존 테리가 앨런 스미스, 스티븐 제라드와 동갑이다. 그래서 프랭크 램파드나 첼시 FC 감독인 주제 무리뉴 감독 같은 사람들과 같이 서 있으면 상당히 비교된다.불륜 뿐만 아니라 잊을 만하면 나오는 챔스 결승에서의 실축도 흑역사. 맨유쪽에서 호날두가 실축을 했고 첼시쪽은 모두 성공해서 자신만 넣으면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비로 인해 발이 미끄러지면서 날려먹었고 그대로 러시안 룰렛 돌입. 아넬카의 슈팅이 반 데 사르에게 막히면서 맨유가 우승을 한다. 첼시의 주장 존 테리! 이것은 뭐 대단한 선택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빅이어를 들어올린 이후인 2015년까지도 이 실축을 생각하면 무척 괴롭다고 한다.[34]
2011-12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전에서 퇴장당하며 대단한 선택을 다시 볼 수는 없게 되었고, 첼시는 기적적으로 빅 이어를 들어올리게 된다.
2012-13 시즌에서도 부상으로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다만 팀이 우승하면서 아쉬움을 달랬고, 조제 보싱와가 없어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 때의 부상으로 인해 올해도 결승 불운이 계속되는 건가했는데 2차전 때 복귀했다. 그런데 팀은 3-1로 패하며 또 결승전 출전에 실패했다.
어릴때는 맨유빠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맨유빠. 알렉스 퍼거슨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
프로 의식과 팬 서비스는 좋다는 평을 듣는다. 지금까지 주장으로서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어왔으며, 어렸을 때부터 첼시에서만 있었던 원 클럽 맨이고 첼시 팬들에 대한 팬 서비스만큼은 흠 잡을 데 없기 때문에 첼시 팬들의 사랑도 독차지한다. 게다가 2013-14 시즌이 끝난 후에 휴가까지 반납하고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니, 인간으로서의 그는 비난받을 점이 많지만 그 외에 축구선수로만 봤을 때는 존경을 받을 만한 선수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는 선수이며,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평이 있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자신의 전술에 부합하지 않아 존 테리를 주전에서 제외했을 때 애슐리 콜 등 고참선수들과 작당해 태업하며 빌라스-보아스의 경질에 큰 힘을 보탰다는 얘기는 기정사실화되었다.[35][36] 거기다가 2015-16 시즌 태업 논란에서는 본인이 주도를 했어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인 상황이다. 했으면 당연히 문제고, 안 했어도 본인을 다시 주전으로 앉혀 준 무리뉴를 상대로 태업을 하는 선수단을 주장이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는 뜻밖에 안 된다.[37] 그렇지만 2015-16 시즌을 단순 태업으로 두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우선 전 시즌 우승에 대한 보상으로 긴 휴식시간에 의해 프리 시즌이 짧았던 점, 스쿼드의 부실한 보강, 부상, 스태프와 감독간의 관계 등 첼시에 여러 악재가 겹쳤던 시즌이었고, 무리뉴는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는데 그것이 팀에 썩은 사과 한 두개가 있다 식의 발언인지라 다수가 태업을 했을 가능성도 적고 그저 열심히 뛰려고 안한다던지, 훈련 태도가 나쁘다던지 등의 선수 한 두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38] 물론 은퇴 이후에는 축구팬들에게 첼시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9년에는 해체 위기에 놓여 있던 첼시 레이디스 FC[39]에 자기가 직접 투자해서 회장 자리에 앉았다.
지소연 선수가 지목해 슛포러브에 나왔다! 참여 후 유니폼을 제작진에게 주면서 자선경매에 부쳐 기부금으로 써 달라는 말을 하며 훈훈한 마음씨를 보여줬다. 여기로
마음의 소리 901화에서 행인으로 출연했다. # 같이 나온 선수는 로랑 코시엘니와 뱅상 콤파니
현역 시절 가장 상대하기 두려웠던 선수 한 명을 뽑아달라는 질문에 티에리 앙리라고 답하였다. 2017년 12월, 인터뷰에서 "그 누구도 이런 걱정을 안긴 상대는 없었다." 면서 앙리의 엄청난 스피드와 놀라운 움직임을 칭찬했다. 그래서 아스날과의 경기 전날 밤에는 내일 고생좀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적이 있는데, 하필 가족이 모두 웨스트햄의 팬인지라 아버지와 삼촌이 관중석에 있었다. 그리고 세리머니를 하다가 존 테리의 아버지와 삼촌이 그에게 욕을 날리고 있었다고 한다.[40]
10. 같이 보기
1 제임스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테리 · 6 캠벨 · 7 베컴 ⓒ · 8 스콜스 · 9 루니 10 오언 · 11 램파드 · 12 브리지 · 13 로빈슨 · 14 P. 네빌 · 15 킹 · 16 캐러거 · 17 버트 18 하그리브스 · 19 J. 콜 · 20 다이어 · 21 헤스키 · 22 워커 · 23 바셀 |
스벤예란 에릭손 |
1 로빈슨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퍼디난드 · 6 테리 · 7 베컴 ⓒ · 8 램파드 · 9 루니 10 오언 · 11 J. 콜 · 12 캠벨 · 13 제임스 · 14 브리지 · 15 캐러거 · 16 하그리브스 · 17 제나스 18 캐릭 · 19 레넌 · 20 다우닝 · 21 피터 크라우치 · 22 카슨 · 23 월콧 |
스벤예란 에릭손 |
1 하트 · 2 존슨 · 3 A. 콜 · 4 제라드 ⓒ · 5 켈리 · 6 테리 · 7 월콧 · 8 헨더슨 · 9 캐롤 10 루니 · 11 영 · 12 베인스 · 13 그린 · 14 존스 · 15 레스콧 · 16 밀너 · 17 파커 18 야기엘카 · 19 다우닝 · 20 체임벌린 · 21 데포 · 22 웰벡 · 23 버틀랜드 |
로이 호지슨 |
[1] 2006년 10월 14일, 레딩 FC과의 경기에서 주전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가 그 끔찍한 두개골 골절 중상을 입고 교체로 나온 쿠디치니까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임시로 골키퍼로 뛴 적이 있다.[2] 첼시 FC의 레전드 세컨드 스트라이커인 잔프랑코 졸라의 25번을 뛰어넘을 포부로 선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는 출처를 찾기 힘든 발언이고 본인이 직접 밝히길 1군에 들어갔더니 자신의 유니폼에 26번이 박혀있었는데 데뷔 초 자신의 유니폼을 사준 팬들이 다시 유니폼을 사는 것이 싫어 등번호를 변경하지 않고 그냥 유지했다고 한다. 이후 아무도 26번을 사용하지 않다가 칼리두 쿨리발리가 2022-23 시즌 사용했다. 이후에는 리바이 콜윌이 2023-24 시즌부터 사용 중이다. 티아고 실바의 플루미넨시 이적 이후 콜윌은 등번호를 실바의 번호였던 6번으로 변경하여 현재 첼시의 26번은 공석인 상태이다.[3] 특히 다비드 루이스가 이러한 성향이 강하다. 혼자 나올 땐 끔찍한 경기력을 선보이지만 존 테리와 함께 서면 안정적인 수비 능력을 되찾는다.[4] 탄탄한 발밑에서 나오는 정확한 클리어링 - 역습 전개방식 또한 그의 장기이자 첼시의 대표 공격루트 중 하나였다.[5] 비디치가 수비하는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위험하게 수비한다. 덕분에 카드도 많이 받았다. 그나마 심판 파울콜이 관대한 EPL에서 뛰었기에 비디치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이 많은데, 세리에 A의 인테르로 가서 폭망한 것을 보면 그게 어느 정도 맞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디치가 인테르로 이적했던 시기에는 이미 폼이 상당히 떨어진 후였다.[6] 실제로 그의 첼시 커리어에서 레드 카드를 받은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나마 받은 것도 폼이 많이 떨어져있던 첼시 커리어 극후반기에 몰려 있을 정도다.[7] 함께 뛰던 히카르두 카르발류가 준족이라서 테리의 부족한 스피드를 커버해 주었다.[8] 그러나 필 존스는 의욕은 앞서지만 실력이 따라주지 않아 쓸데없는 파울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부상도 많다.[9] 첼시의 팀컬러를 걸레수비로 만드는 데 일조한 후세 선수들은 애슐리 콜, 게리 케이힐,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등이 있다.[10] 다만 애슐리 콜은 아스날에서 첼시로 넘어와 존 테리와 같은 시대에서 뛰었다.[11] 여기서 케이힐과 아스필리쿠에타는 테리 이후 첼시의 주장직을 역임하게 된다.[12] EPL 내에선 대표적인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하다.[13] 2012-13 시즌 당시 매 경기 공중볼 경합률이 70~80%에 육박하던 피터 크라우치 마저도 테리와 부딪히면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큰 신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순전히 높이 자체는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런 그가 이런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던 건 그의 서전트 점프 능력과 더불어 헤더 타점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름을 의미한다.[14] 센터백한테 양발 능력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테리는 4백의 중앙 수비수 중에서 주로 왼쪽 중앙 수비수로 출전한 선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왼쪽 풀백과 공을 주고받을 일이 잦아서 필연적으로 왼발 볼터치와 왼발 패스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준수한 왼발 능력 덕분에 빌드업 과정에서의 실수도 적었고 오른발로 공을 옮겨서 패스를 할 필요 없이 바로 왼발로 숏패스, 롱패스를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빌드업 템포도 빨랐다. 펩 과르디올라와 같은 최고 명장들이 왼쪽 센터백 내지는 왼쪽 스토퍼에 왜 그렇게 왼발잡이를 고집하는 지만 봐도 테리의 양발 능력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15] 말이 10년이지 2003년을 시작점으로 잡더라도 테리의 폼이 떨어진 2016년까지는 쭉 이름값을 해왔다.[16] 전문가들의 평에 따르면 알렉산드로 네스타, 카를레스 푸욜, 파비오 칸나바로 등 2000년대 역대급 센터백들 사이에서도 존 테리 또한 이름을 내세울 수 있다고.[17]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더비 카운티[18] 보통 토니 아담스, 리오 퍼디난드, 네마냐 비디치, 뱅상 콤파니, 버질 반 다이크 등과 함께 거론되며 이들 중에서도 1명만 뽑으라면 단연 가장 많이 뽑히며 PL 베스트 11 같은 자리에도 센터백 자리 1명에 테리는 고정적으로 넣고 시작한다.[19] 서브[20] 링크[21] 자신이 지도했던 선수들의 베스트 XI을 뽑으면서.[22] 그런데 정작 이 발언을 한 페르난도 토레스는 첼시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킬러급으로 강력했다.[23] 비슷한 경우에 해당되는 선수로 라이언 긱스가 있다. 다만 축구계에서나 축구팬들 사이에서나 인간성으로 따졌을 때 긱스를 테리 위에 놓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것이 긱스의 불륜 행각은 존 테리의 그것을 초월하기 때문.[24] 당시 QPR에 안톤 퍼디난드가 속해 있었다.[25] 하지만 애슐리 콜이 법정에서 존 테리를 옹호하는 증언을 하면서 리오 퍼디난드가 이에 대해 애슐리 콜을 맹비난하면서 둘은 아예 절교를 하였다. 트위터에 '초코 아이스'(겉은 흑인, 속은 백인)라는 표현을 하면서 벌금을 받기도 했다.[26] 참고로 이 사진은 존 테리 부부가 애슐리 콜-셰릴, 웨인 루니-콜린 루니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인데, 세 남자가 모두 불륜을 저질렀다.결국 애슐리 콜은 이혼했고, 나머지 둘은 이혼은 면했다.[27] 이들을 능가하는 불륜 원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라이언 긱스다.[28] 영국은 조건에 따라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가 가능한 국가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경제적 문제, 임산부의 육체적/정신적 건강문제가 있을 경우, 낙태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29] 주장 자리는 리오 퍼디난드가 맡게 되었다.[30] 09-10 시즌이 시작하기 전 맨시티가 존 테리를 영입한다는 설이 돌 때부터 반대하였다.[31] 사실 존테리가 앞인데 카메라 초점이 다른곳이라 존테리가 뒤처럼 보이는 것이다.[32] 그리고 2015년 3월 현재 아담 존슨은 15세 소녀와 성관계 혐의로 체포되었다.[33] 그 소녀는 뉴스 오브 더 월드에 그 문자를 팔아넘겼다. 다만 영국에서 만 16세 이상과의 성관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영국뿐만 아니라 절대 다수의 국가에서 합법이다.[34] 출처.[35] 애슐리 콜이 2014년 겨울에 이를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다. 이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태업한 선수단에게 선수 모두를 해고하는 것보다는 감독을 교체하는 게 품이 덜 들기 때문에 너네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며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 차례는 너네들이다'가 요지인 발언을 했다고 한다.[36] 다만 테리는 첼시의 주요 선수들의 권력이 감독 이상 아니냐는 루머는 늘 부정한다.[37] 2016-17 시즌에 무리뉴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 받은 것을 보면 무리뉴와의 관계에는 문제 없는 것으로 보인다.[38] 대부분은 오스카로 추정한다.[39] 지소연 선수가 있었던 그 팀이다.[40] 그런데 알려진 사진은 실제와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진의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분류
- 1980년 출생
- 바킹 출신 인물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남자 축구 센터백
-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 1998년 데뷔
- 2018년 은퇴
- 노팅엄 포레스트 FC/은퇴, 이적
- 첼시 FC/은퇴, 이적
- 아스톤 빌라 FC/은퇴, 이적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12 참가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골키퍼 출장 기록이 있는 필드 플레이어
- PFA 올해의 선수 수상자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