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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21:45:50

페르난도 토레스

페르난도 토레스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주장
카를로스 아길레라
(2001~2004)
페르난도 토레스
(2004~2007)
막시 로드리게스
(2007~2010)
}}} ||
페르난도 토레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리버풀 FC 로고.svg
베스트팀
파일:attachment/FIFPro_logo.png
2008 · 2009
파일:PFA_UK_logo.png
2007-08 · 2008-09
파일:ESM.png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2008 Ballond'or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2008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2008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8 2012
}}} ||
페르난도 토레스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6
안드리 셰브첸코
(4600만 €)
<colbgcolor=#ffce00> 2007
페르난도 토레스
(3800만 €)
2008
호비뉴
(4300만 €)
2010
다비드 비야
(4000만 €)
2011
페르난도 토레스
(5850만 €)
2012
헐크
(5500만 €)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E3246 2%, #FDC743 2%, #FDC743 3%, #E1002A 3%, #E1002A 10%, transparent 10%, transparent 90%, #E1002A 90%, #E1002A 97%, #FDC743 97%, #FDC743 98%, #2E3246 98%), linear-gradient(to bottom, #E1002A, #E1002A)"<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1002A> 파일: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EC4B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EC4B>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세르히오 라모스 180회 2005.3.26 2021.3.31
2 이케르 카시야스 167회 2000.6.3 2016.6.1
3 세르히오 부스케츠 143회 2009.4.1 2022.12.6
4 사비 에르난데스 133회 2000.11.15 2014.6.13
5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131회 2006.5.27 2018.7.1
6 안도니 수비사레타 126회 1985.1.23 1998.6.24
7 다비드 실바 125회 2006.11.15 2018.7.1
8 샤비 알론소 114회 2003.4.30 2014.6.23
9 페르난도 토레스 110회 2003.9.6 2014.6.23
세스크 파브레가스 2006.3.1 2016.6.27
11 제라르 피케 102회 2009.2.11 2018.7.1
라울 곤살레스 1996.10.9 2006.9.6
13 카를레스 푸욜 100회 2000.11.15 2013.2.6
}}}}}}}}}}}}}}} ||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베닐 A
Club Atlético de Madrid Juvenil A
파일:fernandotorres.0.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페르난도 토레스
Fernando Torres
본명 페르난도 호세 토레스 산스
Fernando José Torres Sanz
출생 1984년 3월 20일 ([age(1984-03-20)]세)
스페인 마드리드 푸엔라브라다
국적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7cm, 79kg[1], O형
직업 축구 선수 (중앙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주발 오른발
소속 유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5~2001)
프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1~2007)
리버풀 FC (2007~2011)
첼시 FC (2011~2015)
AC 밀란 (2014~2015 / 임대)
AC 밀란 (2015~201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5~2016 / 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6~2018)
사간 도스 (2018~2019)
감독 사간 도스 (2019~2021 / 고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B (2021 / 코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베닐 A (2021~ )
국가대표 110경기 38골[2] (스페인 / 2003~2014)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a81f29> 역대 등번호 스페인 대표팀 - 9번, 14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9번, 19번, 35번
리버풀 FC - 9번
첼시 FC - 9번
AC 밀란 - 9번
사간 도스 - 9번
가족 배우자 올라야 토레스
장녀 노라 토레스
장남 레오 토레스
차녀 엘사 토레스
}}}}}}}}}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기록
6.1. 출전 기록6.2. 대회 기록6.3. 개인 수상6.4. 수훈
7. 여담
7.1. 외모
8. 페르난도 토레스에 대한 말, 말, 말9.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스페인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였다.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베닐 A 감독을 맡고 있다.

어린 나이에 수많은 골들을 집어넣으며 엘니뇨(El Niño)로 불렸으며 전성기 때인 리버풀에서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제토 라인을 가동하며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 3위에 이름을 올렸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페르난도 토레스/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2001년 2월, 토레스는 스페인 16세 이하 팀 선수로 참가하여 알가레브 토너먼트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16세 이하 팀은 5월에 열린 2001년 UEFA U-16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역시 우승하였다. 2001년 11월에는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하였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하지는 못하였다. 2002년 7월에는 UEFA U-19 챔피언십에서 우승, 토레스는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더불어서 결승전에서의 유일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2003년 9월 6일,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04년 4월 28일에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UEFA 유로 2004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조별리그 처음 두 경기에 후반 종료 무렵 교체로 출전하였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주전으로서 출전하였으나, 1:0으로 패하며 광속 탈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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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11경기 6골을 기록하며 스페인의 예선전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3] 첫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토레스는 우크라이나와의 4:0 승리 경기에서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본선 첫 골을 신고하였다.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인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는데, 첫 골은 76분에 2:1로 리드하는 골이었고 두 번째는 90분에 페널티 킥으로 넣은 득점이다. 토레스는 다비드 비야와 함께 3골을 넣어 스페인의 공동 최다 득점자로 대회를 마쳤다.

파일:external/makoz.air-nifty.com/tores.jpg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 명단에 포함되었고, 러시아와의 대회 첫 경기에서 비야의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토레스는 당시 스페인 감독이었던 루이스 아라고네스에게 교체된 후에 외관상으로 악수를 거절한 것으로 보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토레스는 이 사건을 코치진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토레스의 대회 첫 번째 골은 스웨덴과의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에서 나왔다. 토레스는 독일과의 UEFA 유로 2008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1:0 승리를 거두게 해준 결승골을 넣으며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또한 골 넣은 것 뿐만 아니라 리버풀 전성기급으로 종횡무진하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참가, 조국 스페인은 최초로 우승을 했으나 토레스의 활약은 없었고 한 골도 득점하지 못했다. 온두라스와의 조별리그 2차전부터 파라과이와의 8강전까지 4경기 연속 선발로 나왔지만, 나올 때마다 눈에 띄는 활약도 하지 못한 채 교체 아웃되는 등 아쉬운 모습만 보였다. 더불어 월드컵 기간 동안 수많은 찬스들을 말아 먹어서 잠시 동안 '토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러한 토레스의 부진으로 스페인 대표팀은 압도적인 점유율과 패스 정확도, 그리고 슈팅 수에 비해 골은 8골밖에 넣지 못했다. 사실 월드컵 직전 부상의 여파로 폼이 확연하게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폼이 확 떨어진 선수를 계속해서 주전으로 기용한 감독의 용병술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4]

UEFA 유로 2012에서 다시 한번 국가대표로 승선하였는데, 이탈리아 전에서는 부진했지만 아일랜드전에서 2골을 넣으며 기대를 모았는데, 다시 부진했다.[5]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최종 성적은 3골 1도움. 주목할 점은 이 기록이 192분만에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3골을 넣은 선수들 중에서 어시스트를 1개 기록했고, 그 중에서도 경기 시간이 짧아 결국 마리오 고메스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전성기급의 돌파력은 떨어지지만 여전한 뒷공간 창출, 수준급의 패싱 플레이는 토레스가 여전히 수준급의 선수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다만, 스페인이 포워드를 뺀 제로톱 전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구사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이에 토레스는 다소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파일:external/f.ptcdn.info/1416402822-2012euro14-o.jpg
유로컵 2연속 결승전 득점을 기록한 토레스

애초에 위 기록은 스탯만 보면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는 기록이다. 물론 스탯도 중요하지만 토레스가 UEFA 유로 2012에서 제대로 기용된 경기는 조별리그 아일랜드전 딱 한번 뿐 나머지는 모조리 교체 출전했다. 아일랜드가 감독이 화려하더라도 그다지 강한 팀이 아닌데 이런 팀을 상대로 2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1명이 부상으로 빠지고 체력 다 떨어진 이탈리아 상대로 교체출전해서 1골 1어시스트를 올린 것이다. 즉, 토레스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던 경기는 모두 4:0으로 이겼던 아일랜드 전과 결승 이탈리아 전이었기에 토레스가 넣었던 골들이 그렇게 순도 높은 골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이미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스페인이 앉아서 가지고 놀 만큼 폼이 안 좋았다. 게다가 교체 출전해서 무조건 잘 한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 두 번을 모두 말아먹었고 특히 잔루이지 부폰과의 1:1 찬스에서는 자신의 특기인 골키퍼 제치기를 하려다가 오히려 부폰의 개인기에 놀아나며 개털렸다.[6]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크로아티아전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후 토너먼트에서도 꾸준히 기용되지 않다가 마지막 결승전 후반에야 후안 마타와 함께 투입되어 스탯만 쌓은 것아다. 득점왕도 좀 그런 게 전 경기 풀타임 출전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1경기 선발 3경기 교체 출전으로 득점왕을 수상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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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왕을 차지하다.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최약체 타히티에게 4골 1도움을 기록했고[8] 나이지리아 전에서 교체투입, 한 골을 추가하여 총 5골로 동률을 이룬 프레드보다 경기 시간이 짧아 유로 2012 이후 국가대항전에서 또 다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2009년 컨페드컵에서 실버부츠를 수상하였기 때문에 이번 골든부츠 수상은 한 단계 뛰어넘은 업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프레드가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몰아넣는 등 브라질의 우승주역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다소 민망한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컨페드컵 이후 아틀레티코에서 대활약을 보인 디에고 코스타의 귀화와 알바로 네그레도, 로베르토 솔다도, 페르난도 요렌테 등의 경쟁자들로 인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출전은 매우 불투명해 보였으나,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의 선수 선발의 보수적인 성향과 이러저러한 상황이 어찌저찌 맞아들어서 스페인 대표팀 최종 명단에는 승선했다. 이후 첫 평가전인 볼리비아전에서 PK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기는 했다. 허나 도중에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환상적인 패스를 어이없는 트래핑으로 날려먹었다.

이후 월드컵에서는 디에고 코스타에 이은 두번째 옵션으로 활용되었으며, 조별리그 1차전이었던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리벤지 매치에서 교체 출전했지만, 막판에 환상적인 개뻘짓을 보여주면서 팀의 대패에 일조하였으며, 칠레전에서도 교체 투입 되었으나 클로킹 모드를 발휘하며 스페인의 광탈에까지 일조하였다. 광탈 확정 후 3차전 호주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추가골을 득점하였다. 그 이후로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9년 6월 21일,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국가대표 마크도 자연스럽게 반납하게 되었다.

FIFA 센추리 클럽 가입에 국가대표 역대 득점 3위, FIFA 월드컵 1회 우승,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유로컵) 2회 우승을 했으니 최소한 스페인 국가대표 황금 세대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월드컵 우승 당시에는 경기력이 매우 좋지 않았고 UEFA 유로 2012 우승 때도 득점왕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실속 있는 활약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워서 토레스의 국대 경력이 평가절하되는 경향은 있다. 또한 스페인 대표팀의 또 다른 주포인 다비드 비야UEFA 유로 2008에서 4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과 동시에 조국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총 5골을 넣으며 조국의 우승에 다시 한 번 더 크게 일조하고, 대회 브론즈볼, 실버부츠를 수상한 것과 너무 대조되면서 토레스의 국가대표 경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인식되는 것도 있다. 물론 토레스 본인도 UEFA 유로 2008에서 2골 1도움, 그 중에서도 1골은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로 넣은 골이어서 대회 우승에 크게 일조한 부분도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개인기나 드리블이 특출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고, 볼터치도 상당히 투박하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능력과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결정력도 뛰어나다. 키가 큰 편이고 중앙에 배치하다 보니 윙어들처럼 스피드가 부각되는 선수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 2000년대 후반 기준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빠른 선수 TOP10에 들어갔다. 특히 순간 속도와 민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앞서 터치가 투박하다고 썼지만 빡빡한 압박 사이에서도 칼같이 트래핑하는 스페인 대표팀의 동료들과 비교했을때나 그렇지 상대의 압박 강도가 아주 강하지않다면 준수한 수준.

전성기 시절 토레스의 골 결정력은 유럽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으로, 어려운 각도나 어정쩡한 자세에서도 절묘하게 골을 넣어 주는 능력도 있다. 이 모든 장점이 결합되어서, 라인을 올리고 뒷공간을 넓힌 팀 상대로 뒷공간을 선점하고 골을 넣는 능력은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였다. 토레스의 특징 중 하나가 유독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매우 강하다는 것인데[9] 저 경기들은 토레스의 전성기였던 리버풀 시절이 아니라 대부분 유망주 시절, 폼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떨어진 첼시 시절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복귀 후 경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특히 11-12 시즌 챔스 준결승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넣은 골은 토레스 하이라이트를 틀면 높은 확률로 맨 마지막에 나온다. 물론 바르셀로나가 전통적으로 라인을 높게 잡는 팀이라는 점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비단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다수의 강팀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는 강팀에 강한 선수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된 바르셀로나는 말할 필요도 없고 EPL에 있었을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를 비롯한 강팀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강팀들이 라인을 올리고 경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토레스의 장점이 극대화될 여지가 많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큰 경기에서도 은근히 한 방씩 해주기도 한다. 유로 2008 결승전, 11-12 시즌 챔스 준결승 2차전, 유로 2012 결승전, 12-13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 등등 큰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10]

다만 상대가 라인을 낮추고 뒷공간을 줄이면 파괴력이 줄어들고, 이를 보완할만한 연계 플레이나 고립된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력은 탁월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 덕분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처럼 볼의 점유율에 집중하며 천천히 만들어가는 전술에서는 보다 더 다재다능한 다비드 비야에 비해 훨씬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소속팀인 리버풀은 빠른 스피드, 많은 활동량, 정밀한 스루 패스로 적극적으로 뒷공간을 노렸기에 1.5선의 제라드와 더불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상을 안고 있는 상태로 출전하였고, 여기에서 무리한 여파로 인해 기존의 장점을 잃어버리게 되자 확연하게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1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거액의 이적료로 이적한 첼시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비판은 물론이고 조롱도 받는 대상이 되었다.

첼시 시절 부진의 원인은 토레스 본인의 폼 저하도 있었지만 전술상의 이유 그 중에서도 미드필더나 2선의 선수들이 창조적인 패스를 못 하거나 토레스가 좋은 움직임을 보여도 미드필더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바빠서 토레스가 부진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단, 토레스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려면 토레스가 이적할 당시의 첼시 상황을 알 필요가 있는데 당시 첼시는 팀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있는 상태였다. 수비진과 중원은 히카르두 카르발류미하엘 발락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었고,[11] 프랭크 램파드의 장기 부상과 그로 인한 노쇠화, 마이클 에시엔의 폼 저하로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었고 디디에 드록바는 말라리아로 고생 중이었다. 측면은 그 악명 높은 말루다-칼루 라인이 주축이었다.[12] 게다가 팀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상태여서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 급하게 영입된 것이 토레스와 다비드 루이스이다. 하지만 중원 보강도 없었고 완전히 무너져있는 팀에 토레스같은 유형의 스트라이커가 왔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13] 즉, 토레스가 영입된 시즌에는 토레스가 제대로 활약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이후에 첼시가 리빌딩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첼시가 2선을 뜯어고치면서 후안 마타, 에덴 아자르라는 최고의 2선 자원이 영입되었고 그 외에도 오스카, 빅터 모지스, 안드레 쉬얼레, 윌리안 등 한가락 하는 선수들이 대거 들어왔다. 비록 선수 영입이 너무 2선에 치우치다보니 밸런스가 맞지 않는 감은 있었으나 토레스에게 훌륭한 동료들이 생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특히, 후안 마타는 12-13 시즌에 19골 35어시스트[14]라는 놀라운 스탯을 쌓으며 커리어 하이에 있었고[15] 아자르도 리그에서 11어시스트로 도움 2위에 랭크되었다. 이런 동료들을 두고 토레스는 그 시즌에 리그 8골밖에 넣지 못하였다. 비록 유로파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고는 하나 유로파리그는 아무래도 한 단계 낮은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고 소속팀과 선수에게 가장 메인이 되어야 할 대회는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이다. 이적료 5,000만 파운드의 스트라이커가 리그 도움 1, 2위를 동료로 두고 리그에서 단 8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리고 팀의 전술만을 탓하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혹자는 토레스가 만약 첼시가 아니라 수준 높은 패서가 있는 클럽으로 이적했더라면 매 시즌 두자리 골은 넣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정확한 사실을 짚자면 첼시에 있는 동안 마타, 아자르, 오스카, 램파드 등등 미드필더진이 떠먹여 주는 것만 제대로 받아먹기만 했어도 10골 이상 넣었다.[16]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타, 아자르, 오스카, 램파드가 슛하고 튕겨져 나온 것들만 정확하게 밀어넣었어도 역대 최악의 먹튀 소리는 안들었다. 그리고 과장도 아닌 것이 토레스가 첼시 시절에 정말 어이없게 놓친 골 찬스가 매시즌 4~5번 있었는데 그것들만 다 넣었어도 매 시즌 리그 두자리수 골은 된다. 토레스가 첼시에 있었을때 첼시 팬들이 가장 답답해했던 부분은 토레스의 저하된 폼도 아니고 전술적인 문제도 아닌 1부 리그 선수, 그것도 우승권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의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토레스의 결정력이었다. 팬들이 흔히 말하는 '저건 내 할머니도 넣는다.'류의 찬스도 놓치는데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스트라이커는 골만 잘 넣어도 절반은 간다는데 EPL의 또 다른 강팀인 리버풀에서는 유럽 최고의 결정력을 가지고 있었고 득점왕까지 했던 선수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종합해 보자면 토레스가 첼시에 있었을 때의 부진의 주된 원인은 잘못된 시기에의 이적, 개인의 폼 저하, 과도한 이적료로 인해 부담감, 기복, 그리고 이것들 모두가 종합되어 생긴 자신감 저하로 인한 결정력 부재 때문이지 패서의 부재, 팀 전술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토레스도 첼시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첼시의 전술에 어느 정도 적응하였지만[17] 문제는 그것을 골로 결정짓지 못했다는 점이다. 토레스의 첼시 시절에 수많은 팬들이 움직임은 좋은데 결정력이 한심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보자.

5. 지도자 경력

일본 J리그 사간 도스에서 선수 은퇴를 하고 2019년 6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구단 고문직을 역임했다. 사간 도스는 그의 은퇴시즌에 리그 15위를 기록했고 2020 시즌에는 13위를 기록했다.

2021년 1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B 코치직을 맡으며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1-22 시즌에는 U-19 팀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났다. 그리고 아틀레티코와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한 조에 편성되면서 UEFA 유스 리그에 출전하는 U-19 팀을 이끌고 리버풀과 재회하게 되었다.

6. 기록

6.1.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0/0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군다 리가 4 1 2 0 - -
2001/02 36 6 1 1 - -
2002/03 라리가 29 13 3 1 - -
2003/04 35 19 5 2 - -
2004/05 38 16 6 2 5 2
2005/06 36 13 4 0 - -
2006/07 36 14 4 1 - -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7/08 리버풀 FC EPL 33 24 1+1[18] 1+3 11 6
2008/09 24 14 3+2 1+0 9 2
2009/10 22 18 2+0 0+0 8 4
2010/11 23 9 1+0 0+0 2 0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10/11 첼시 FC EPL 14 1 - - 4 0
2011/12 32 6 6+2 2+0 10 3
2012/13 36 8 5+4 1+2 16 9
2013/14 28 5 2+1 0+1 10 5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14/15 AC 밀란 세리에 A 10 1 0 0 - -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14/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19 3 4 3 3 0
2015/16 30 11 2 0 12 1
2016/17 31 8 5 1 9 1
2017/18 27 5 6 3 12 2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J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18 사간 도스 J리그 17 3 0 0 0 0
2019 8 0 1 0 0 0

6.2. 대회 기록

6.3. 개인 수상

6.4. 수훈

7. 여담

7.1. 외모

파일:페르난도 토레스3.jpg

파일:페르난도 토레스5.jpg

파일:페르난도 토레스6.gif

2000년대에 데이비드 베컴, 카카, 로케 산타 크루즈 등과 함께 대표 미남 축구선수로 많이 언급되었다.

금발 + 미소년 + 큰 키 + 멋진 몸[23] + 정상급 스트라이커 + 첫사랑과 결혼 등 만화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이다 보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외모로 실력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의견들도 분분하다. 과대평가 논란과는 별개로 부진해있던 첼시 시절 해외축구 팬들 사이에서 토레스 얼굴이 대니 웰벡이었으면 진작에 방출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 생겼다. 묘하게 미국의 여배우 데미 무어와도 닮았다는 평이 있었다. 특히 삭발을 했을 때.

동시대에 활약했고 실력적으로나 커리어상으로 좀 더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사무엘 에투와 비교가 자주 됐었는데, 둘의 외모적인 부분만 바뀌었다면 에투와 토레스는 비교조차 안 됐을 거란 이야기도 있다.[24] 그도 그럴 만한 게 어느 팀에서건 에투는 포지션이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에서도 전술에 구애를 덜 받는 탁월한 활약을 했고, 말년을 제외하면 커리어 대부분을 이름값을 했다. 토레스도 정상급 레벨에 올랐던 스트라이커는 맞지만, 몰락 이후로는 사실상 얼굴이 아니었다면 그저그런 과거의 영광을 지닌 스트라이커이지만 에투는 꾸준히 좋은 활약을 했음에도 두 선수의 호감도나 평가를 보면 토레스쪽을 좀 더 후하게 치는 경우가 많으니. 하지만 가수도 가창력으로만 평가되는게 아니듯, 스포츠도 결국 팬들의 지지와 열광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외모로 인한 인기도 토레스가 가진 타고난 행운이라 봐야할 것이다.

파일:fernando torreskin.jpg

단점을 뽑자면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수많은 주근깨와 점 때문에 피부가 매우 안 좋다는 점. 나름 잘생긴 외모도 심각한 피부 상태때문에 후광을 잃는다.

그래서 토레스의 얼굴을 좋아하는 팬들은 위에 게시된 3개의 얼굴 사진처럼 피부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는 사진 또는 포토샵이 된 사진을 쓰곤 한다.

파일:Torres_bulk_up.jpg

은퇴 이후인 2021년에는 보디 빌딩을 위한 벌크업으로 근육이 많이 붙은 몸매를 보여줬다. 미소년의 모습이었던 현역 시절을 뒤로하고 야성미 넘치는 근육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5]

8. 페르난도 토레스에 대한 말, 말, 말

파일:elnino fernando torres si9.jpg
토레스의 가치가 얼마나 되냐고? 글쎄 적어도 7,000만 파운드 정도는 될 것이다. 지금 그가 세계 최고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토레스는 아직 젊고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토레스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올해 우리는 다른 잉글랜드 클럽들이 토레스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에이전트를 통해 들은 바 있다. 하지만 토레스는 어떠한 가격에도 팔 수 없는 선수이다.
라파엘 베니테스
토레스가 골을 넣든 넣지 못 하든 이곳에서 그는 이미 우상이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가 지금껏 이 클럽에서 열심히 뛰었기에 지금의 지위와 존경을 얻은 것이다.
디에고 시메오네
토레스가 우리 팀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는 어리지만 이미 자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보여줬다.
스티븐 제라드
우선 비디치와 나는 EPL 역사상 최고의 파트너다. 장담한다. 공격수들은 우리와 맞서기 싫어했다. 누군가의 경력엔 항상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가 있을 것이다. 그 선수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스타일상 자신을 힘들게 하는 선수일 것이다. 비디치와 토레스는 그런 관계였다. 토레스는 비디치를 항상 힘들게 했던 유일한 선수다. 비디치는 토레스와 맞대결에서 두 번이나 퇴장당했다. 토레스는 그 당시 굉장한 공격수였다.
리오 퍼디난드
리버풀 선수들은 토레스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좋은 활약을 펼치고 많은 골을 득점하고 있어 보기 좋다. 그는 빠르고 몸싸움도 강하며 결정력까지 뛰어나다. 토레스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 그를 막기란 매우 힘들다. 그가 공을 잡으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세계에서 그보다 나은 공격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시즌 내내 이 정도의 활약을 유지하길 바란다.
루카스 레이바
토레스는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였던 이안 러쉬를 연상케 한다. 토레스는 최고의 몸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도 언제나 상대편 수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선수이다. 공을 소유한 상황 혹은 소유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고의 모습을 보인다.
앤디 콜
난 토레스가 리버풀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항상 TV를 통해 그의 플레이를 즐겨봤다. 누가 뭐래도 그는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공격수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토레스와 같이 상대 수비 라인을 빠른 스피드로 무너뜨리는 공격수와 함께 뛰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게 수많은 득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조 콜
토레스는 스타플레이어다. 그는 아틀레티코에 가장 적합한 공격수이고, 시메오네 감독은 역습 축구를 추구한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의 시스템에 맞는 가장 완벽한 공격수고 적합한 선수다.
펩 과르디올라
미드필더로서 토레스 같은 선수와 함께 뛰는 건 굉장한 일이다. 내 생각에 토레스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그는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많은 골을 터트리게 될 것이다.
요시 베나윤
내가 보기에 세계 최고의 공격수는 토레스다. 그가 특별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해낼 거라 믿는다. 드록바도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그가 두렵지 않다.
페페 레이나

9. 같이 보기

1 카시야스 · 2 알비올 · 3 피케 · 4 마르체나 · 5 푸욜 · 6 A. 이니에스타 · 7 다비드 비야 · 8 사비 · 9 토레스
10 파브레가스 · 11 카프데빌라 · 12 V. 발데스 · 13 마타 · 14 알론소 · 15 라모스 · 16 부스케츠 · 17 A. 아르벨로아
18 페드로 · 19 요렌테 · 20 J. 마르티네스 · 21 실바 · 22 J. 나바스 · 23 레이나
파일:스페인 국기.svg 비센테 델보스케



[1] 선수 은퇴 후에 벌크업을 했으므로 몸무게는 늘었을 것이다.[2]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공동 9위, 득점 3위.[3] 여담이지만 토레스는 그 후 월드컵 예선에서는 단 한 번도 득점하지 못했다.[4] 좋은 예로 포르투갈과의 16강전을 들 수 있다. 선수비 후역습으로 나오는 포르투갈에 스페인은 비야 - 토레스 투톱으로 나섰지만 찬스가 번번히 무산되었고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은 후반에 토레스를 빼고 피지컬 좋고 키 큰 타겟맨 페르난도 요렌테를 투입하였다. 그 뒤 공격이 확실히 살아나 결국 비야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5] 일단 부진이라 표현하기도 뭣 한 게 그 이후로 딱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경쟁 공격수들도 페드로 로드리게스를 빼면 워낙에 못해서…[6] 이 사진이 바로 토레스 선수 커리어 희대의 굴욕으로 남을 부폰의 발재간 농락 사진이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부폰의 드리블을 이용한 선방에 제대로 막혔다.[7] 이전 버전에서 석연찮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다. 출전 횟수야 어쨌든 미리 정해져 있던 룰에 따라 득점왕이 된 것이고, 원래 더 적게 출전한 선수가 이득을 보는 것이 맞다.[8] 이 때 토레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타히티의 팬이 되었다. 단순히 우리가 이겨서 아니라 지고 있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다른 팀들도 타히티를 보고 배워야 된다."는 겸손한 인터뷰를 했다. 이 발언은 3년 후 독일의 토마스 뮐러산마리노와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8:0으로 이긴 후 산마리노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과 대조되기도 했다.[9] 2016년 4월 기준 17경기 11골. 기사 이 기사 이후 2015-16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서 1골을 추가함.[10] 11-12 시즌 챔스 준결승에서 토레스가 득점을 하지 않았어도 첼시가 진출하는 상황이었고 유로 2012에서도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별 영양가 없는 득점이기는 하지만 기록은 기록이다. 특히, 유로 2012 결승전에서는 유로 역사상 최초로 두 대회 연속 결승전 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11] 수비진은 카르발류 이적 이후로 추가적인 영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전 센터백을 보던 존 테리알레스가 전반기 말미에 부상으로 아웃되자 파울루 페헤이라를 땜빵으로 기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고, 중원에는 하미레스를 영입했으나 팀 적응 문제로 인해 첫 시즌에 발락만큼 활약해주진 못 했다.[12] 물론 말루다와 칼루 모두 전성기때는 한가락 하는 선수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폼이 급격하게 떨어졌다.[13] 이런 상황에서 창의성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옵션인 요시 베나윤도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소화하지 못했다.[14] 리그에서는 17어시스트로 도움왕.[15] 마타는 팀이 리그에서 6위까지 떨어졌던 11-12 시즌에도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첼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16] 만약 정말로 전술이 문제였다면, 스트라이커를 겨냥한 역습 위주의 전술과는 상극인 전술을 쓰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유로 2012 득점왕, 2013 컨페드컵 득점왕을 하는 등 토레스가 잠깐이나마 반짝였던 것은 설명이 불가능하다.[17] 그리고 5,000만 파운드 몸값의 선수가 세 시즌 반동안 새 팀 전술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18] FA컵+풋볼 리그 컵[19] 사실 토레스는 전성기 시절, 먹튀 시절 가리지 않고 볼 헌납이 많았다. 공격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플레이 스타일이 정교함보다는 다이나믹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20] 정확히는 1부 리그 우승. 데뷔 초인 01-02 시즌에 아틀레티코에서 2부 리그 우승은 있다.[21] 마침 모라타도 레알 유스에 입단하기 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에 입단한 적이 있다.[22] 손흥민도 이에 정색하며 주심에게 항의했다.[23] 사실 선수 시절에는 187cm의 큰 키에 80kg를 넘지 않는 마른 체형이었다. 다만 얼굴이 워낙 잘생기고 키도 컸기 때문에 탑 모델같은 느낌의 모습이었다.[24] 사실상 객관적인 축구팬들은 100이면 100 다 에투를 고른다.[25] 축구선수들이야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근육질 몸매를 다지지만 현역일 때는 보디빌딩 선수 수준의 벌크업은 체중 증가에 따른 부상을 부르는 등 매우 비효율적이다. 엄청난 떡대로 유명한 아데바요 아킨펜와 같은 경우엔 꾸준한 관리로 예외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