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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0 16:31:59

이영표/논란 및 사건 사고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영표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K리그 복귀 불발 논란3. FC 서울과의 관계4. 이승우와의 트러블 논란5. 김병수 감독에 대한 갑질 및 월권행위 논란6. 볼보이 경기 지연 옹호 논란7.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묵인 논란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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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영표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서술한 문서.

2. K리그 복귀 불발 논란

2011년 알 힐랄 퇴단 후 무적 시절 국내에 거주하면서 구리시FC 서울의 연습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이때 서울 영입설이 나돌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서울 입단 타진하다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서 바로 튀었다는 근거없는 루머가 나와 FC 서울 팬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이영표가 자기 팀에 온다며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감에 서울의 연습시설을 이용하기만 하고 실리를 찾아 해외팀과 계약 했다며 FC 서울의 팬들에게 비난받은 것인데, 더 나아가 그 동안 K리그에 대해 말로는 K리그에 대한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K리그에서 선수경력을 마치지 않는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일반 K리그 팬들에게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 이적이 확정된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K리그팬들.

2012년 말, 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에서 1년 더 선수생활 후 은퇴가 확정되자 다시 한번 K리그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며, 밴쿠버에서 은퇴 확정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K리그팬들. 이에 대해 이영표는 "많은 팬들에게서 K리그로 돌아와 달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수로 돌아와 도움을 주는 것과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나중에 도움을 주는 것 중에 후자가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여 K리그 복귀를 하지 않은 것이란 입장 표명을 하였다. 기사링크.

3. FC 서울과의 관계

2011년 알 힐랄 퇴단 후 무적 시절 국내에 거주하면서 구리의 FC 서울 연습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이때 서울 영입설이 나돌기도했는데 이때문에 서울 입단 타진하다 계약조건이 맞지 않으니까, 바로 날랐다는 근거없는 루머가 나와 우리 영표형 영입하는거 아니냐는 기대에 차있던 FC 서울 팬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입단설부터가 출처 불명의 루머였던 것을 생각하면 난데없이 날벼락이었다. 이영표가 자기 팀에 온다는 기대감이 워낙 커서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실망감이 커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말로는 K리그에 대한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K리그에서 선수경력을 마치치 않는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다른 팀팬까지 합세해서 한동안 시끌시끌 했다.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 이적이 확정된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FC서울팬과 K리그팬들[1]

2012년말 K리그 복귀없이 밴쿠버에서 1년 더 선수생활 후 은퇴가 확정되자 다시 한번 커뮤니티가 시끄러워졌는데 이에 대해 이영표는 "많은 팬들에게서 K리그로 돌아와 달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수로 돌아와 도움을 주는 것과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나중에 도움을 주는 것 중에 후자가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여 K리그 복귀를 하지 않은 것이란 입장 표명을 하였다.기사링크

2013년 밴쿠버에서 은퇴 후 FC 서울에서는 이영표의 14년 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이영표를 위한 은퇴 기념 행사를 마련했고 이영표는 이 행사에 참석하여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서 FC 서울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은퇴소감을 전했다.기사링크

이영표는 은퇴식도 치뤘고 은퇴 후에 FC 서울 행사에도 참여하고 해설하면서 자신이 FC 서울에서 뛸 때라고 발언하는 자신이 FC 서울 출신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FC 서울 안티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영표가 FC 서울의 안양 연고 시절에만 뛰었다니 서울 레전드가 아니며 안양 연고에서만 뛰었던 선수를 서울 연고의 레전드라며 띄워준 것은, FC 서울이란 구단의 정체성이 서울이란 지역이 아닌 LG-GS라는 모기업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만천하에 인증한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FC 서울이 싫은 거 + 반기업 정서를 기본적으로 포함하는 유럽식 연고주의에 대한 무한한 숭배가 빚어낸 현상. 범 LG가 GS그룹 소유의 기업구단인 FC 서울이 허창수거지, 그럼 누구의 소유란 말인가? 이들은 더 나아가 FC 서울 팬덤에서도 이영표를 부정한다는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한다. FC 서울 팬덤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유럽식 연고주의를 숭상하는 강경 소모임 일부 뿐이다.

은퇴식에서 이영표에게 안양에서 뛸 때 달던 12번 달아준 것도 꼬투리를 잡아 수호신에게 헌정한 번호를 이영표에게 줬는데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은 우스운 서울 팬들이란 비난까지 했는데 이영표가 12번 달고 뛴 것도 아니고 그저 이영표가 현역 때 달았으니 행사 때 달아준 것일 뿐이다. 연고정착을 내세우며 기업명 배제 같은 온갖 사소한 문제에 거품 물고 집착하는 서포터즈들의 좁은 소견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영표는 FC 서울의 연고이전 당시 A매치를 위해 입국한 자리에서 "선수를 떠나 학창시절부터 계속 팬이라서 애석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며 연고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었고 기사링크, 이후에도 꾸준히 안양 연고 축구팀의 부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며[2] FC 안양이 창단되자 시즌권을 대량 구매해서 보육원에 기부하기도 했다.기사링크 하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이 뛴 팀은 FC 서울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즉, 이영표는 난 FC 서울 출신이지만 팀을 잃은 안양팬들의 심정도 헤아리며 역시 우호적으로 대해줬는데 패륜 프레임에 매몰된 이들은 이영표의 발언까지 무시하며 억지 논란을 만들고 있다.

4. 이승우와의 트러블 논란

이 부분 역시 이영표의 잘못은 아니지만 매우 유명한 논란이다. 이영표는 2015년 개인 SNS를 통해 이승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우려와 이승우 본인에 대한 조언을 남긴 바 있다. 히딩크 감독이 17세의 로번을 지도할 때 경기력보다는 올바른 마음가짐과 인성을 중요시한 사례를 예시로, "축구 잘 하는 아이 기죽이지 마라"는 식으로 이승우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승우"직접 만나서 내게 얘기를 해주셨다면 더 많이 와 닿았을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하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이게 뭐지?’란 반응이 나온다.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승우를 버릇 없다, 꾸중도 아니고 충고일 뿐인데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반응도 많았지만, 놀랍게도 2015년도 당시엔 이승우가 성역처럼 취급되던 분위기라 팬들에 의해 이승우를 소위 멕이려고 한 발언이라며 오히려 이영표가 꼰대, 당신이 유럽 축구에 대해 뭘 안다고 승우에게 뭐라하냐는 논리로 욕을 상당히 먹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소수의 극성 이승우 팬덤에게는 욕먹고 있다.

물론 국내파 출신 선수를 상대로 유럽 축구 경험도 못해봤으면 충고할 자격도 없다는 논리를 들이댔어도 당연히 잘못된 일이었겠으나, 문제는 이영표는 박지성과 함께 히딩크가 직접 유럽으로 데려간 유이한 선수였으며 2002 레전드인건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리그에서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은 대표 주자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한테 '유럽 축구 알지도 못하면서 조언한다'고 욕한다는게 오히려 당시의 이승우야말로 제대로 된 유럽 프로 리그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유스 경력 하나로 포장되었을 뿐 국대에서건 클럽에서건 아무 성과도 없는 선수였고 유럽에서는 2021년까지도 리그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 끝에 결국 2022년부터 한국 K 리그에서 뛰게 되면서 유럽리그 활약도에선 압도적으로 이영표에게 뒤쳐져버렸다.

칼럼 내용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띄워주는 언론과 팬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쪽에 더 가까웠고, 팬들의 유럽 환상향 이론과 다르게 유럽 감독들도 선수의 태도나 멘탈을 중시하며 이를 길들이려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결국 이승우가 점점더 몰락해가며, 특히 19/20 시즌 전반기인 현재는 유럽 리그에서조차 태도 면에 문제가 있다, 과거의 환상에 취해 살고 있다 는 비판을 받고 쫓겨나는 해프닝까지 터져나오며 최진철과 이영표의 조언이 다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사실 이후 이승우의 친형이 서형욱이 쓴 칼럼을 보고 남자 답지 못하다느니 인신공격하면서 또다시 "직접 와서 얼굴 보고 말해라"는 논리를 들이미는 해프닝이 터지며 이미 이 논란의 과실은 100% 이승우 측에 있다는게 증명되었다. 비난이 아닌 충고나 비판에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팩트폭력을 당해 할말이 없으면 무조건 직접 와서 말하라고 우기는 게 이들 형제의 습관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이영표가 이승우에게 나쁜 의도나 꾸중을 하기 위해 이런 말을 남긴 것조차도 아니라는 점이다. 상기했듯이 이승우 본인과 팬들의 과민반응과 다르게 이승우를 나쁘게 말하는 부분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후 이 일에 대해 언급하자 그것도 다 순수해서 할수 있는 말이라며 오히려 감싸주었다. 선수가 여론에 같이 취하면 망가진다는 의미심장한 충고도 남겼다. 심지어 이승우가 유럽리그인 벨기에에서도 태도 불량을 지적받아 라커룸으로 쫓겨나고 감독에게 공개 인터뷰로 과거에 취해 살지말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유럽리그에서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고 국내 여론까지 돌아서는 상황이 왔는 데도 감싸주었다.# 유럽은 태도나 인성을 따지지 않는다는 팬들의 유럽 환상향설과 다르게 사실상 이영표 자신의 조언을 무시한 덕에 그 지경이 됐음에도 "전반기이니 아직 모른다, 일단 국대 선배이니 만큼 응원과 격려부터 해주고 싶다."며 오히려 안타까워 했다. 이쯤되면 이정도로 우호적인 선배에게 그따위 태도를 보인 이승우와 그 팬들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이후에도, 문어 이영표는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입단 초창기(1~2년차) 시절[3] 부진할 때 "2년 내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월드클래스 공격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던 맥락으로 이승우를 악플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싸주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등 이승우 선수 앞으로의 충분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인터뷰[4]를 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승우는 몇 해 안가 유럽에서 입지 잃고 K리그에 입성하여 재기를 노리고 있다.

5. 김병수 감독에 대한 갑질 및 월권행위 논란

2021년 11월 5일, 서호정 기자가 자신이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개인방송인 "썰호정"에서 이영표 대표이사가 김병수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였다고 폭로했다. 경기 하프타임에 마음대로 라커룸에 출입해 자기가 직접 선수들에게 전술 지시를 내리기도 하는 등, 감독에게 주어진 고유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틀 뒤인 11월 7일 썰호정 방송에서 강원 프런트 측 해명이 나왔는데, 포항전 때 라커룸의 출입하긴 했지만 전술 지시는 하지 않았고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 내지 팁 정도만 이야기 했단다. 감독실에 들어갔지만 격려 뿐이었다라고 주장했고, 박효진 코치의 감독 대행 선임 건에 대해서는 박효진 코치가 먼저 거절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6. 볼보이 경기 지연 옹호 논란

2021년 대전 하나 시티즌강원 FC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강원 볼보이가 경기를 지연시킨 논란이 일어난 후, 이를 두고 유럽에서는 자연스럽고 흔한 일, 유럽 서포터즈 문화라는 말로 옹호하며 대전 팬은 물론 대다수 리그팬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문제를 일으킨 볼보이들은 강원의 U-18팀인 2021년 강릉제일고 축구부 선수들이며, 이영표는 강원 구단의 대표로서 이들을 관리하고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인데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미화한 것이나 다름 없다.

만약 유럽에서 볼보이가 저런 행동을 했다면 대전 선수들처럼 볼보이를 지켜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5] 그리고 설령 유럽에서는 정말 볼보이의 저런 경기 지연 행동이 자연스러운 서포터즈식 문화라고 쳐도 여기는 한국이지 유럽이 아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며, 애초에 유럽과 한국은 정서와 문화, 그에 관련된 법이나 규정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둘을 똑같이 보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며, 설령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흔한 일이라고 하도 이영표처럼 단순히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행동이라는 식으로 단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 것이다.

프로축구 구단 관계자들은 “그런 논리라면 앞으로 강원을 상대로 홈 경기를 할 땐 볼보이가 똑같이 해도 괜찮다는 뜻 아닌가. 어린 유소년 선수가 잘못을 했으면 대표이사가 사과를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두둔하고 있다”라며 지적했으며, 또 다른 지도자도 “앞으로 잘 가르치겠다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것을 너무한 것 아닌가. 프로축구 구성원으로서 배려가 없다. 일을 더 크게 만드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에 대전 하나 시티즌 서포터즈 대전러버스는 공식 성명서를 통해 이영표의 사과를 촉구했으며, 묵과 할 시 강경 대응할 것임을 경고했다.#
■ 대전 러버스 성명서 ■

강원fc 이영표 대표이사의 책임있는 사과를 바란다.

2021년 12월12일 플레이오프 2차전은 서로에게 아주 씻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승자인 강원FC는 1부 리그 생존과 함께 성숙하지 않은 경기운영을 보였으며
패자인 대전하니시티즌은 1부 리그 승격을 다시 22년 도전하는 기다림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멋진 승부에서 강원FC 대표이사 이영표 대표의 태도는 K리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언으로 즉각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 하는 바이다.

경기의 결과는 승복하며, 우리의 부족함을 다시 보완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으나, 강원FC의 경기운영 및 현재 볼보이 Issue의 대한 강원FC 대표이사의 태도는 분명 많은 이의 공분을 사기 충분하다.

계속되는 체육계의 인성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몇몇은 인성문제로 인해 국가대표도 선발되지 못하는 문제를 모든 체육계가 보지 않았던가?

대전하나시티즌은 유소년이 우리팀의 미래가 될 중요한 뿌리인 만큼 경기력 외에, 인성교육 등을 통해 잠재력 및 인격체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강원FC 유소년 볼보이 사태를 대표이사가 직접 두둔하며, 잘못된 일을 정당화 하는 태도는 반드시 대전하나시티즌이 아닌 모든 축구인과 축구팬에게 사과해야 할 부분이다.

강원FC 이영표 대표이사의 빠르고 과감한 결단이 없을 시 대표이사가 이야기한 “유럽식 서포터 문화”가 무엇인지 보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대전하나시티즌 서포터 대전러버스는 강원FC 이영표 대표이사의 사과를 요청하며,
이를 묵과할 시 하기와 같이 행동을 취할 것 이다.

하나. 대전러버스는 2021년 강릉제일고 1~3학년 선수명단을 공식홈페이지에 3년간 게시한다

하나. 대전러버스는 이영표 대표이사가 재직하는 기간 중 강원유소년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다시 한번 강원FC 이영표 대표이사의 조속한 사과를 바라며, 대전하나시티즌 구단 또한 현재의 사태를 구단이 아닌 연맹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해 명확한 결과를 팬들에게 공유해야 할 것이다.

위의 사태는 대전하나시티즌 외 다른 피해 구단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축구팬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모든 K리그 팀과 팬들의 지지를 부탁하는 바이다.

대전 하나시티즌 서포터즈 대전 러버스

결국 이번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는지 이후 K리그 일원으로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아서 축구팬들의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

파일:FB_IMG_1639451620897.jpg

결국 강원 구단 sns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글을 남겼다.

논란을 인지했는지 강원 FC 구단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구체적인 언급없이 "매끄럽지 못했던 경기 진행"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 때문에 "사과문을 빙자한 입장 표명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강원 FC/사건사고 문서 참조.

7.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묵인 논란

2023년 3월 28일, 클린스만호의 두번째 평가전인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 시작 직전 대한축구협회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과 축구 통합을 명분으로 승부조작범 48인 포함 징계 중이던 축구인 100명을 전격 사면한다는 결정을 내릴 때 회의에 이동국, 조원희, 이임생, 박경훈 등과 함께 협회 임원으로 참여하였으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안건 가결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축구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영표는 평소 유소년 및 후배 선수들에 대하여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자신만큼 노력 해봤냐는 등의 쓴소리들을 해왔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에 대해서는 당시 감독인 홍명보를 저격하며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라며 강한 일침을 날렸다.[6] 특히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한국프로축구연맹 측의 솜방망이 제재에 대해 "승부조작을 합리화시켰고, 지금 세대의 과오를 다음 세대에 떠넘긴 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렇게 평소 축구 팬들에게는 소신있는 축구인 이미지를 쌓았던 이영표였기 때문에 일련의 사태에 침묵하는 위선적이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자 상단에 기록된 여러 논란들까지 다시금 재조명되기 시작하였고 "그러고도 당신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냐?" 처럼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많은 편이다.

2023년 4월 3일 본인의 인스타를 통해 승부조작 관련 사면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에서 사퇴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사진들에게 그 날 회의록에서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진상규명 요구나 제대로 된 해명이나 소명도 없이 비겁하게 도망치는거 아니냐?" 라면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영표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이라는 고위급 직책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소명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스타의 글을 잘 살펴보면 논점을 흐리는 궤변인데 축구팬들이 이영표에게 실망한 이유는 사면을 막지 못한 것[7]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사면 진행에 찬성도, 반대도 아닌 침묵[8]했으며, 사면령이 공식 발표된 이후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영표의 여러 발언과 행동이 다시 재발굴되고 있다.

8. 기타



[1] 당연한 얘기지만 K리그에서 뛰지 않는다고 해서 K리그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몇몇 축구 커뮤니티의 일부 K리그 팬들의 여론은 K리그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었고, K리그에 입단하지 않고 해외진출을 하는 축구선수들에 대한 인신공격도 아무런 제재없이 남발되고 있던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영표를 두고도 말로만 K리그 사랑을 외친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이 가해졌던 것이다.[2] 2004년 FC 서울이 연고 이전을 하자 이영표가 "나의 친정팀은 죽었다" 이런 강경한 발언을 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이 발언은 FC 서울팬들이 지적한대로 국내 축구 갤러리에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3] 손흥민/토트넘/2015-16 시즌[4] 박지성-손흥민도 같았다. 이영표, “이승우는 이제 21세, 평가 일러”[5] 실제로 과거 에덴 아자르는 엎드려 있는 볼보이 옆에 공을 발로 차서 빼내다가 볼보이가 맞은 척 연기를 했던 적이 있다. 관중은 욕설을 하며 물병을 던졌는데 유럽이었다면 맥주병이 날아오고 경기장으로 난입해 볼보이를 해하는 팬도 있었을지 모른다.[6] 이 발언으로 이영표는 홍명보와 이후 3년 간 연락이 끊길 정도로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한다.[7] "지난 주 대한축구협회의 징계 사면 관련 이사회 '통과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라는 내용이 있다.[8] 유일하게 조연상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만 반대했다.[9] 현재 원본 게시물은 삭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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