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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8:06:27

현정화

<colbgcolor=#131230><colcolor=#eee156> 현정화
玄靜和|Hyun Jung-hwa
파일:현정화 파리.jpg
출생 1969년 10월 6일 ([age(1969-10-06)]세)
부산직할시 동구 좌천동
(現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1]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연주 현씨 (延州 玄氏)[2]
학력 수정초등학교 (전학)
대신초등학교 (졸업)
계성여자중학교 (졸업)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유아교육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3])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 박사 수료)
직업 탁구 선수 (오른손 펜홀더 전진 속공)
탁구 해설자
탁구 감독
신체 168cm, 55kg[4], 240~245mm
종교 개신교
가족 아버지 故 현진호(1937~1982)[5]
어머니 김말순(1940년생)
배우자 김석만(1998년 결혼 - 현재)
장녀 김서연(2000년생)
장남 김원준(2002년생)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수상 기록5. 사건 사고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탁구 선수 출신 감독. 現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다.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부산수정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9년부터 탁구를 시작하여, 탁구부가 있던 계성여자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계성여자중학교와 같은 재단 소속이던 대신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후 중학교 2학년부터 단식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등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다가,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85년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이후 1987 세계 선수권 복식 금메달,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선배 양영자와 함께 복식 금메달[6][7] 등 한국 탁구사에 화려한 전력을 남겼다. 1991 세계 선수권에선 코리아 남북 단일팀에 참여하여 복식을 함께 한 리분희 등과 함께[8] 단체전 금메달을 딴 걸로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이 일화는 2012년 영화 코리아로 영화화됐다. 이후 1993 탁구 세계선수권에서 단식 우승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선수 시절 커리어를 종합하면, 1987 세계 선수권에서 선배 양영자와 함께 '여자복식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8 여자복식 '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 1989 세계 선수권에서 유남규와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1991년에는 세계 선수권에 코리아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하여 단체전에서 우승'했고, 1993 예테보리 세계 선수권 대회에선 '단식까지 우승'하며 세계 선수권 전 종목을 석권했다.[9]

국내 여성 탁구사에서 이정도 커리어를 달성한 선수는 현재까지 전무하다. 또 국제 대회 금메달이 가장 많은 국내 선수이기도 하다.[10] 덕분인지, 현정화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이자 아직까진 유일하게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되었다.

1994년 3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이후

1994년 은퇴 이후 방송가 러브콜을 받기도 했고, MBC 뽀뽀뽀의 뽀미 언니(!)로 활동해 달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여담으로, 당시 주변에서 강호동과 잘 어울릴 것 같으니까 '한 번 만나보라'는 권유 혹은 오지랖이 있었다고 한다. 헌데, 정작 1988년 이후 현정화와 스캔들이 났던 사람은 또다른 유명 탁구선수인 유남규였다. 유남규와의 스캔들은 강호동보다 좀 더 유명해서 이 둘이 진짜 부부인줄 아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종종 있을 정도다. 게다가 둘 다 국내 탁구계를 대표하는 선수긴 했던지라, 이 둘은 이후 각각 국가대표 남녀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다만, 2010년대 예능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현정화 왈 "유남규는 내 이상형이 아니다"라며 학을 뗐다.[11]

1996년부터 한국마사회(KRA) 코치로 일했는데, 2007년 이대섭 전 감독이 정년 퇴임함에 따라 감독으로 승격됐다. 대표팀과 실업팀의 사령탑을 동시에 맡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이후 2020년대까지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을 맡고 있다.

쓰는 것도 좋아해서 <여왕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도 냈다.

후술할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건 이후 약 1년여 만인 2015년 11월에 복귀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돕기 위한 생활인 탁구대회에 참석하였고, 향후 소속팀(한국마사회) 감독 이외 재능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국민에 봉사하겠다고 한다.

2018년 9월 당시 3차 남북정상회담에 문화체육계 사절단으로 합류해서 평양에 방문했는데, 이때 1991년 지바 남북 단일팀의 또다른 주인공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과의 재회를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마지막 날 백두산을 방문하는 일정이 추가되는 등 바빠지면서 끝내 성사되진 않았다.

이전까진 MBC에서 주로 해설을 맡았지만, 음주운전 사고로 자숙하다 복귀한 이후부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020 도쿄 올림픽, 2024 파리 올림픽까지 SBS 해설을 맡았다.

4. 수상 기록

대회 <colbgcolor=#ffd700,#554600> <colbgcolor=#9a9a9a,#444><colcolor=#fff> <colbgcolor=#cd7f32,#442910><colcolor=#fff>
올림픽 1 0 2
세계 선수권 4 3 2
아시안 게임 2 2 2
아시아 선수권 5 1 2
월드컵(복식) 1 1 0
월드컵(단체전) 0 1 0
주니어 아시아 선수권 1 0 2
합계 14 8 10
<colcolor=#000> 올림픽
금메달 1988 서울 여자 복식
동메달 1992 바르셀로나 여자 복식
동메달 1992 바르셀로나 단식
세계 선수권
금메달 1987 뉴델리 여자 복식
금메달 1989 도르트문트 혼합 복식
금메달 1991 치바 단체전
금메달 1993 예테보리 단식
은메달 1987 뉴델리 단체전
은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체전
은메달 1993 예테보리 혼합 복식
동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식
동메달 1993 예테보리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 서울 단체전
금메달 1990 베이징 여자 복식
은메달 1990 베이징 단체전
은메달 1990 베이징 혼합 복식
동메달 1986 서울 혼합 복식
동메달 1986 서울 여자 복식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1988 니가타 단체전
금메달 1988 니가타 혼합 복식
금메달 1988 니가타 여자 복식
금메달 1990 콸라룸푸르 단체전
금메달 1990 콸라룸푸르 혼합 복식
은메달 1986 선전 혼합 복식
동메달 1988 니가타 단식
동메달 1990 콸라룸푸르 여자 복식
월드컵(복식)
금메달 1990 서울 여자 복식
은메달 1992 라스베가스 여자 복식
월드컵(단체전)
은메달 1991 바르셀로나 단체전
주니어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1986 나고야 단식
은메달 1986 나고야 단체전
은메달 1986 나고야 여자 복식

5.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14년 10월 1일 오전 12시 50분, 만취한 상태로 음주운전택시를 들이받아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 수치인 0.201% 상태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201%면 작정하고 퍼먹은 수준이다.[12] 술을 마신 이유는 전날 오후에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은메달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물론 어떤 이유였던 간에 음주운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 행위다.

게다가 한가지 더 문제는, 아시안 게임 동안 현정화는 MBC의 탁구 해설 위원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사고 당일 오후에는 당장 MBC에서 혼합 복식 8강전 생중계가 잡혀 있었다.[13] 발등에 불이 떨어진 MBC는 부랴부랴 대한탁구협회에 해설 위원 대타를 뛸 사람을 찾았고,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인 김분식을 대타로 다급히 영입했다.[14]

이 때문에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 선수촌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사실 현정화가 장애인 아시안 게임 선수촌장을 맡는 데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남북 단일팀으로 뛰었던 지난 1991 세계 선수권에서 복식 파트너였던 리분희와 만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분희가 당시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 동안 선수단과 함께 인천을 찾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1년 만의 재회가 가능하나 싶었지만, 이번 음주운전 사고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건 다음날 리분희가 이미 현정화 사고 전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운명의 데스티니 이 당시엔 목뼈가 부러진 중상이라고 보도되었으나, 몇달 후 리분희 본인이 그정돈 아니라고 직접 해명했다. 이때 현정화 감독도 교통사고 냈다는 소식 들었다며 "생활하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 것이니 앞으로는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빨리 나아서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다.#[15]

6. 여담



[1] 참조. #[2] 판관공파(判官公派) 28세 병(柄) 항렬이나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았다.[3] 석사 학위 논문: 漸增負荷 最大運動이 女子 卓球 選手의 心肺持久力 및 運動前後 血中脂質에 미치는 影響(점증부하 최대운동이 여자 탁구 선수의 심폐지구력 및 운동전후 혈중지질에 미치는 영향)[4] 네이버 프로필 기준[5] 부산상업고등학교 탁구 선수 출신이다. 1955년 7월 30일 제1회 전국 남자 중·고등학교 학생 선수권 대회 남자고등부에서 박현준과 함께 조를 이뤄 출전했다. 준결승전에서 서울상업고등학교, 결승전에서 용산고등학교를 모두 2대 0으로 물리쳐 우승기록이 있다. 패결핵 투병 끝에 현정화 중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6] 올림픽 여자 탁구 역사상 중국 출신 이외의 선수가 따낸 최초이자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한 금메달이다. 남자 탁구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유남규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얀오베 발드네르(스웨덴)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이 모두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그리고 이후 추가된 2020 도쿄 올림픽 혼성 복식에서 일본팀이 중국팀을 꺾고 금메달을 딴다. 굳이 따지자면, 혼합복식도 여성이 있긴 하지만, 여성 복식은 다시 올림픽 종목에 추가되지 않는 이상 현정화-양영자팀이 유일하다.[7] 사족으로 많은 사람들이 현정화를 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정화는 1993 세계선수권을 제외하곤 단식 금메달을 따본 적이 없다. 국제 대회 은퇴 전이었던 1993 세계 선수권 단식 우승으로 인해 이런 인상이 남아 오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8] 오늘날엔 당시 세계랭킹 5위 안에 들던 팀의 주축 현정화, 리분희만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 단일팀 소속으로 (아마도 예비 멤버인) 유순복, 홍차옥도 참가했다. 심지어 단체전 결승에선 지병이 도진 리분희 대신 단식에 출전한 유순복이 당시 세계랭킹 1위 덩야핑을 잡는 등 그날따라 미쳐 날뛰면서 우승을 캐리한다.[9]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말도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탁구 그랜드슬램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단식 3관왕을 말하는거라 올림픽 단식은 동메달이 최고인 현정화는 좁게 보면 현대적 의미의 그랜드슬래머는 아니다. (복식 우승도 대단한 성과긴 하지만, 탁구에선 단식을 좀 더 쳐주는 경향이 있다. 굳이 따지면 일반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세계선수권 그랜드슬램을 했다고 볼 순 있다. 물론 이 역시 대단한 업적이긴 하다.) 또 일각에선 1993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 무렵 세계랭킹 1위도 잠깐 찍었다는 자료를 봤다는 주장도 하는데, 3위가 최고라고 부정하는 의견이 더 많아 정확한 출처 자료가 필요해보인다.[10] 때문에 남녀 선수 다 포함해서 한국 탁구계 GOAT라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올림픽 단식 금메달 유무 등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있어 탁구인들의 심심풀이 키워토론거리 정도로 남아있다.[11] 사실 현정화와 유남규는 둘 다 부산 출신에 나이도 유남규가 1살 오빠일 뿐이라, 탁구 관련되어 10세 전후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한다. 게다가 탁구는 원래 혼합 복식 등의 문제로 남녀 대표팀이 같이 훈련을 하기 때문에, 대표팀 소집되면 매일 얼굴을 보게 된다. 그래서 사실 유남규 외 김택수 등과도 두루두루 친하며, 남편보다도 탁구 선수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12] 일반 성인 남성이 소주 2병을 마시고 음주 측정을 해도 0.1이다. 물론 혈중알코올 농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개인 차가 존재하지만, 본인이 술을 한 방울이라도 먹었다 싶으면 그냥 대리를 부르는 것이 좋다.[13] 사건의 근원이 된 남자 단체전 결승은 KBS만 생중계를 했고, MBC는 하이라이트 시간에 방송하기 위해 녹화 중계를 했다.[14] 이후 김분식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MBC 해설을 담당했다.[15] 여담으로 2018년 현정화가 남북정상회담 특별 사절단으로 북한에 파견되어 리분희와 재회할 기회가 생겼지만, 마지막 날 백두산을 방문하는 일정이 추가되는 등 바빠지면서 이번에도 재회하진 못했다.[16] 영화 작품성과 별개로 현정화에 대한 싱크로율은 최고였다는 평가가 많다.[17] 삽입곡이 트랜스포머 더 무비의 오프닝이었다.[18] 물론 육상 선수 임춘애가 맞긴 하다.[19] 당연한 것이, 수비수는 전통적으로 펜홀더에게 약하고, 또한 드라이브가 아닌 전진 속공 전형을 상대하게 되면 상대방의 공이 스핀이 거의 없이 넘어오기 때문에 역회전을 걸어넘기기 매우 까다롭다. 즉 수비수가 어려워하는 이 두 가지 포인트를 모두 갖춘 현정화는 서효원의 하드 카운터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