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가수에 대한 내용은 리분희(가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름 | 리분희(李粉姬, Ri Pun-hui)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68년 12월 29일 ([age(1968-12-29)]세)[1] |
종목 | 탁구 |
전형 | 왼손, 셰이크핸드 전진속공 |
[clearfix]
1. 개요
북한의 전(前) 여자 탁구 선수.2. 생애
1991년 4~5월 일본에서 열린 치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46일간 같이 훈련한 남북 단일팀 멤버로 출전, 여자 단식에서는 당시 세계랭킹 1위 덩야핑한테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 단체전에서는 현정화 등과 함께[2] 당시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때의 일화는 2012년 영화 코리아로 영상화되기도 했다.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단식, 여자복식 동메달을 땄다.
1993년 예테보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하고 현역 은퇴하였다.[3]
은퇴 후 북한 기관차체육단 소속 탁구 국가대표 김성희와 결혼하였다. 허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남편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가산 대부분을 탕진했고, 결국 2000년대 중반 북한 당국에 적발되어 온 가족이 함경북도 명천군으로 터를 옮겨 1년간 강제노역을 하면서 결혼 예물까지 팔아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리분희는 평양에 복귀하여 압록강체육단 탁구 코치로 활동하다, 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을 맡았다. 허나 남편이 마약을 계속 투약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느니 이혼 직전이라느니 하는 루머들이 돌기도 했다.
2014년 10월 열렸던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서기장 신분으로 선수단을 이끌고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대회 개막을 얼마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언론에선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고 보도했으나, 이후 북한 농아축구팀을 이끌고 2014년 12월 호주를 방문한 리분희 본인이 직접 해명하길 "차를 몰고 가던 중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목과 팔을 좀 다쳤는데 엄청난 중상인 것처럼 보도됐다"면서 "현재 회복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연찮게 자신의 교통사고 일주일 후 음주교통사고를 낸 현정화 감독 보고 "공교롭게도 내가 먼저 사고를 내고 일주일도 안 돼 정화가 사고를 냈다고 들었다"면서 "생활하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 것이니 앞으로는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빨리 나아서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다.#
3. 여담
- 아들이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아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2012년 5월 남북 단일팀의 실화를 반영한 영화 코리아가 개봉하면서 리분희의 행적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 현정화는 1991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리분희와 헤어질 당시 자기를 잊지 말라고 '정화&분희'라고 새겨진 금반지를 줬는데, 2012년 외신 인터뷰에서 리분희는 여전히 그 금반지를 가지고 있으며, 나도 현정화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 ||
동메달 | 1992 바르셀로나 | 여자 복식 |
동메달 | 1992 바르셀로나 | 단식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1 치바 | 단체전[4] |
은메달 | 1985 예테보리 | 단체전 |
은메달 | 1989 도르트문트 | 단식 |
은메달 | 1991 치바 | 단식 |
은메달 | 1993 예테보리 | 단체전 |
동메달 | 1983 도쿄 | 단체전 |
동메달 | 1987 뉴델리 | 단체전 |
동메달 | 1991 치바 | 혼합 복식 |
아시안 게임 | ||
동메달 | 1990 베이징 | 여자 복식 |
[1] 다만 68년생인 홍차옥이 언니라고 하는걸 보면, 나이가 헷갈렸거나 더 많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2] 유순복, 홍차옥도 (아마도 예비 멤버로) 참여했다. 당시 팀의 주축은 세계랭킹 5위 안에 드는 현정화, 리분희였으나, 막상 결승에선 그동안 활약하던 리분희가 지병인 간염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간염이 있으면 정상인보다 피로도가 훨씬 빨리 오기 때문에 경기들이 겹치면서 감당이 안된 것으로 보인다) 복식만 참가, 리분희의 단식 경기에 대신 출전한 류순복이 덩야핑을 잡는 등 미쳐 날뛰면서 우승을 캐리한다.[3] 현정화와 리분희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도 이 예테보리세계선수권이었다. 참고로 현정화는 1년 후인 1994년 현역 은퇴한다.[4]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해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