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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18:46:14

삐라


파일:한시적 넘겨주기 아이콘.svg   2024년 5월 28일부터 밤마다 불규칙적으로 북한이 살포한 오물 풍선과 관련 재난문자에 대한 내용은 2024년 북한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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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직 스트리머에 대한 내용은 삐라(인터넷 방송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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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시3. 상세4. 대남삐라 목록
4.1. 세부 목록
5. 대북 삐라
5.1. 임진각 소동
6. 북한 내 반체제 문건
6.1. 예시
7. 대중매체에서
7.1. 영화7.2. 게임7.3. 예능/광고7.4. 만화

1. 개요

전단지를 가리키는 일본어 비라(ビラ)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어 빌(bill, 비루)에서 변형되었다는 설, 조각을 나타내는 히라(片)에서 유래했다는 설, 의태어 비라비라(팔랑팔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찌라시(チラシ)와 동의어로 사용하는데, 정치적 선전을 위한 경우에는 비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는 'bill'에서 유래된 단어라고 하며 '전단'을 잘 안 쓰고 오히려 '삐라'를 많이 쓰는데, 북한의 언어 순화 선전에 심각히 모순되는 단어라 그런지 사전에서조차 일본어 단어인 비라가 변형된 단어라는 것은 숨기고 있다. 일제 시대에 들어서는 '전단지'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남북한 휴전상황에서 대북 또는 대남 심리전 용도로 사용하는 전단지만을 일컫는 말이 되어버렸다.

2. 예시


1952년 유엔군이 북한에 뿌린 공습 경고 삐라와 폭격 장면을 보도하는 British Pathé. 첫 삐라에는 "경고, 철로와 큰 길가에 있는 모든 군사목표는 유엔군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파일:external/blog.joins.com/016(4).jpg
중공군은 좋은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쓸무기만 북한군에게 넘겨주고있다.
왜?
북한이 약해져야집어먹기 쉬우니까……
북한주민들이어! 인젠 여러분이 중공군이 북한군에게 쓰지 못할무기만 넘겨주는지를 알았을것이다!
중공군은 여러분의 적이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북한군을 상대로 살포한 삐라의 모습으로 모델은 마오쩌둥. 시대상 세로쓰기도 같이 적혀있다. 이 삐라의 논지에는 나름 근거가 있는데, 전쟁 당시 북한군에게서 노획한 PPSh-41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소련에서 쓰고 남은걸 줬다는 말도 있다. 지금도 북한제 AK-47/AKM은 다른 나라에서 제작된 것보다 질이 매우 낮다고 한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0610B3KT8GU_1.jpg
안전보장 증명서
SAFE CONDUCT PASS
SOLDIERS OF THE UN FORCES:(UN군 장병들에게)

This certificate guarantees good treatment to any enemy soldier desiring to cease fighting. Take this man to your nearest officer and treat him as an honorable prisoner of war.
(이 증서는 싸움을 멈추려는 모든 적군 병사에 대한 좋은 대우를 보장한다. 이 사람을 가까운 장교에게 인도하고 명예로운 전쟁 포로로서 대우하라.)
Douglas MacArthur(더글러스 맥아더)
General of The Army(육군 원수)
Commander-in-Chief(총사령관)
대한민국 병사에게

이것은 적의 군인으로서 누구나 항복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인도적 대우를 보증하는 증명서이다。 이 사람들을 가까이 있는 상관에게 데리고 가시오。 이 사람을 명예스러운 포로로 대우하시오。
맥아—더 장군명령
[1]
북한군 장병에게!

귀순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전국이 급박해저서 저항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는것외에 도리가 없어 졌을 때 귀순하는 일이야 말로 이 사태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저 히생자를 많이 내는것은 전술상 졸열한것이다。 귀순해서 사느냐 소용없는 저항을 계속해서 죽느냐하는 막달은 골목에 들어갔을때 저항을 중지하고 귀순하는 길이야말로 군인으로서 택할 떳떳한 길이다。 후면에 있는 그림과 설명을 자세히보고 유엔군 진지에 안전히 도달하도록 하라。 음식 치료 기타 좋은 대우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6.25 전쟁 초창기 유엔군에서 북한군에 살포한 안전 보장 증명서. 이 증서를 소지한 채 항복하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외에도 항복하고 싶은데 삐라가 부족해 곤란한 귀순자를 위해 1장당 머릿수 제한 없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 치료와 음식, 의복 외에도 담배도 제공하겠다 등의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파일:external/www.dailynk.com/D.jpg 파일:external/www.dailynk.com/A.jpg
안전 보장 증명서 SAFE CONDUCT CERTIFICATE 單路全安[2]



북한공산군에게
이 유엔안전보장증명서는 제군의 생명의안전을 보장한다。 언제든지 제군이 적대행위를 그만두려고 결심했을때 어느 유엔 장병에게나 이것을 보이기만하면 된다。 나는 모든 유엔장병에게 제군이 이것을 가지고 유엔측으로 넘어오면 잘 대우하라고 엄격히 지시하였다。 (가운데 영문참조)
마디우 비 리지웨이
유엔군총사령관
Attention U. N. Soldiers:
(UN군 장병들에게)
This certificate guarantees good treatment to any Chinese or North Korean soldier desiring to cease fighting. Take this man to your nearest officer and treat him as an honorable prisoner of war.
(이 증서는 적대 행위를 중지하려는 모든 중공군 및 북한군 병사에 대한 좋은 대우를 보장한다. 이 사람을 가까운 장교에게 인도하고 전쟁 포로로서 대우하라.)
Matthew B. Ridgway
Commander in Chief
United Nations Force
(매튜 B.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中國士兵們注意;
(중국군 장병들에게)
這是聯合國擔保你安全的正式證件。當你決心停止戰鬥時,你可將此證件提交任何聯合國士兵
(이것은 유엔군이 당신의 안전을 정식으로 담보하는 증서이다. 당신이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 증서를 유엔군 병사에게 제시하면 된다.)
中間用英文寫的是我發聯合國軍各部隊的正式命令; 當你來到聯軍陣線時,給你榮譽的優待。
(가운데의 영문은 내가 유엔군 각 부대에 정식으로 내린 명령이다. 이것을 가지고 유엔군 측으로 넘어오면 당신은 영예로운 대우를 받을 것이다.)
陸軍上將李奇威 聯合國軍總司令
(육군 상장[3] 리지웨이[4], 유엔군 총사령관)[5]




[6]
안전 보장 증명서 SAFE CONDUCT CERTIFICATE 單路全安
리지웨이 장군 시기 제작된 유엔군이 북한군과 더불어 중공군을 대상으로 살포한 안전보장증명서. 뒷면은 북한 100원 지폐를 인쇄해서 내부 검열 등으로 인해 소지한 장병이 적발되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도쿄 대공습 때 미국에서 일본에 뿌린 삐라와 6.25 전쟁의 삐라, 남북한이 서로 뿌려대는 삐라가 유명하지만 삐라가 이들만 사용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나름 유서 깊은 전통이어서 대부분의 군대는 전단지 살포용 포탄을 보유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군은 볼가 방송이라는 텔레그램 방송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내용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 상세

파일:Leaf001.jpg
종이 뒷면의 내용이 살짝 비쳐보이는데 만화에서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쓴 것이다. '방문할 때까지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라는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비라'가 탄생한 경위는 2차 대전 당시에 미군이 엄청난 양의 전단을 일본 곳곳에 투하시켰기 때문인데, 이 비라는 삐라와는 달리 항복 권유 문서가 아닌 융단 폭격 예정 도시 일람을 안내해주는 안내문의 성격이 강했다. 도쿄 대공습 문서의 후일담을 참조.

폭격 예정지에 조만간 우리가 폭격하겠다고 대놓고 알려주면 당연히 상대가 충분히 대비를 할 테니까 전술적으로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지만, 충분히 이럴 만한 이유는 있다. 우선 전술적인 이득을 보기 이전에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살생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우리는 대놓고 폭격할 곳을 알려주고 폭격하고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즉 '너희는 무슨 짓을 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렇게 대놓고 말할 만큼 실제로 일본군의 다 녹아내린 항공 전력은 미군의 공습을 막을 수 없었다 진지 한 두개가 아닌 대규모 공단, 도심지와 같은 목표를 타격하는 전략폭격기는 매우 크고, 비행 고도도 높다. 일본에 비해 공업력이 월등한 독일도 이 폭격기를 잡기 위해 절륜한 요격기를 개발-양산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처를 할 수 없었다. 고고도 폭격기를 요격할 대공포는 구경 100mm에 달하는 대구경 대공포인데, 단발성이기 때문에 수백 발을 퍼부어 폭격기 한 기를 잡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좋은 평을 들은 독일의 88mm 대공포 역시 유효사격고도가 폭격기 고도에 간신히 미치는 수준이라 큰 격추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고고도 요격기와 대구경 대공포는커녕 기관총, 야포 한 문도 모자라던 일본군이 이를 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실 미군의 폭격 예정지를 일본군이 미리 알 수 있다 한들 어찌 할 방도도 없었다. 국제적으로는 '우리는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깨끗한 군대이다'란 인식을 심을 수 있고, 적 세력에겐 저런 무기력함을 심어줄 수 있으니 이만 한 심리전도 없다. 미군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폭격할 때 뿐만 아니라, 대규모 공격 직전에 미리 사전 경고를 날리곤 했다. 현대 미군도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에서 공격 직전에 예상 작전 지역에 사전 경고를 날렸다. 더불어 사실은 기만용으로도 날려댔는데, 폭격을 할 위치는 알려줬지만 시간은 안 알려줬기 때문에 전단에 적혀있는 도시 주민과 방공군의 입장에서는 언제 폭격이 떨어질 지 모르는 심리적인 공포를 안겨주었다. 이렇게 대놓고 기습을 공표한 이상 방어 측에서는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실한 정보가 없다면 그 지역에 대한 방어를 신경쓸 수 밖에 없다. 대놓고 경고했는데 방비를 안 했다가 점령당하기라도 하면 방어 측만 바보가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결국 삐라가 뿌려진 지역을 신경쓸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삐라를 뿌린 측은 방어군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만 해도 '삐라'는 단순 전단지를 일컫는 단어였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단어의 의미가 변형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UN군 진영에서는 비교적 초창기부터 심리전을 중요시하여 수많은 삐라를 공산군 진영 측에 뿌려댔다. 그리고 전쟁 이후, 북한은 최대한 남한 내에 각종 협력 인사들을 확보하기 위해 간첩 파견, 주민 선동, 각종 정치/경제/군대 및 각종 사회 관련 고위급 인사들 매수 등을 일삼았으며, 그 일환 중 하나로 이용된 공산주의 선전 매개체로 공산주의나 북한의 장점들을 최대한 적어놓은 각종 선전물을 남한 영토 내에 살포하는 행위도 있었다. 바로 이렇게 살포된 선전물들을 '삐라'라고 불렀으며, 당연히 발견 즉시 해당 전단물을 소각하거나 살포 당사자를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괜시리 갖고 있다가 걸려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남한 내부는 전쟁 이후 국토가 초토화되고 정경계는 잔뜩 부패해 있었으며 국민들 생활 수준은 매우 비참하여 이런 선전물 등에 보고 혹해 월북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북한처럼 무식하게 선전을 하는 것이 아니고, 6.25 전쟁 당시에는 부자들의 땅을 토지 개혁으로 가지게 해주겠다든지, 혈연 인식이 강한 한민족의 정서를 바탕으로 권세를 가진 저놈들이 치료비를 못 쓰게 하여 아내도 죽이는 현실에 직면한 '서민'은 남한의 체제에선 양산될 수밖에 없다며# 피해의식을 교묘하게 조장하고는 했다. 오늘날에는 북한에서 저런 것을 못해주고 한국의 체제도 북한에서 속일 수 없을만큼 약자를 보호하려는 이념은 보장되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삐라 단속을 간첩 단속과 동일하게 엄하게 했고(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당시 높으신 분들 인식은 그랬다)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에게 발견 즉시 신고하도록 교육했다.

심지어 경찰청 훈령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규칙'에 따라 학교, 등산로, 유원지 등에 수거함을 설치하고 북서풍이 부는 4월 및 10월을 집중 수거기간으로 지정해 현상금을 내걸기도 하였다. 물론 현상금이라고 해봐야 공책이나 자, 연필 같은 학용품을 주는 수준이지만, 전쟁 직후라서 학용품을 마음대로 사서 쓸 수 있던 학생들이 적었던 데다가 휴전 이후로 상당한 시일이 지나고 나서도 학용품의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다. 심지어 1970년대 초반까지 가방이 따로 없어서 책을 보자기에다가 챙기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으며, 80년대 말까지도 책가방을 '책보'라고 하는 어른들이 대다수였다.때문에 그 당시에는 학용품이라고 해도 그 가치는 상당했고, 생활 수준이 많이 좋아진 8,90년대라도 어쨌든 학생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공짜로 주는 것이니까, 일명 '삐라 사냥'을 위해 산골짜기 구석구석을 누비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개그맨 박명수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특집에서 삐라와 관련된 일화를 얘기한 바 있었다. 어린 시절 살던 서울 강서구까지 날아오는 삐라를 모아서 파출소에 가져다 주면, 학용품 같은 유용한 것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삐라를 수집하느라고 온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당시 박명수가 처음 가져왔을때는 칭찬과 함께 학용품을 주었으나 허구헌 날 삐라를 주워다 갖고 와서 학용품을 달라고 귀찮게하는 통에 나중에는 파출소의 경찰들이 순찰을 돈다는 핑계로 박명수가 올 타이밍에 파출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해버렸다고 한다. 유재석의 어린 시절 친구는 간혹 오물이 묻어있는 것을 파출소에 제출하는 바람에 파출소 측이 당황해하며 "이런 건 안 받는다."며 퇴짜를 먹였다고 한다. 그런데 핑계고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친구가 아니라 본인 이야기인 듯하다.

그리고 휴전선과 같은 최전방 지역에 근무하거나 농민으로 거주한 노인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대남전단을 장작이나 추위를 녹이는 일시적 땔감으로 써먹었다고 한다. 대남전단 모아 고구마, 옥수수, 감자를 구워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11204215724.jpg
참고로 왼쪽에서 두 번째 있는 김세연의 경우, 부대명이 안 나오고 머슴이라고 나왔는데, 1975년 대성동에서 납치된 농민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필우의 소속부대라는 88사는 88여단의 오기로 보이고, 윤치기의 소속부대인 동경사는 동해안경비사령부를 뜻한다.

류경호텔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사진인 듯 한데 저 당시 남한 경제는 3저호황 시기로 '중진국의 최대'에 진입하면서 이미 북한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21세기인 지금이야 북한이 거지인걸 누구나 다 알다 보니 "뭔 개소리야" 하겠지만 대한민국이 경제개발을 하기 전(1970년대 이전)까지는 북한이 잘 사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선전이 가능했다. 북한이 평양에 극도로 자원을 집중하여 평양만큼은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 주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탈북민 신장으로 미루어보면 해방 이후조차 남한을 앞선 적이 없다. 참고로 탈북민의 주된 고향은 한반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 살던 함경도 일대다. 당시 남한은 엉망진창인 인프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아 체제에 대해 잘 모른 채 삐라에 적힌 감언이설만 보고 현혹당해 월북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삐라의 내용은 다양해서 주로 "부의 평등" 같은 저소득층이 현혹될 만한 내용의 공산주의의 우월함과 북한의 부유함을 선전하는 삐라에서부터 남한에서 각종 주요 기술들을 연마해서 북한으로 넘어오면 사진과 같이 높은 수준의 고액 연봉 등을 주겠다며 괜찮은 조건을 제시하는 현혹성 삐라도 있었다.

또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비쌌던 종이를 대량으로 뿌려댐으로써 뿌리는 쪽의 재력을 과시하는 용도도 있었다. 당시 남북한에서 흔했던 갱지(재생종이)가 아닌 불에 잘 타지않는 코팅한 빳빳한 종이재질의 삐라가 많았다. 그러한 삐라의 근원이 된 일제시대 미군의 폭격 경고 전단지 또한 질이 좋은 종이에 인쇄되었기에 종이가 부족하여 위문 편지조차 제대로 보낼 수 없었던 일본인들에게 미국의 부강함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었고, 충격과 무기력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삐라는 전체적으로 붉은색으로 인쇄된 것이 많았다. 보내는 방식도 다양해서 증언들에 따르면 간첩이 잔뜩 지니고 다니다가 거리에 하나 둘씩 살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혹은 비행기나 강풍을 통해 뿌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무렵까지도 비행기로 적국 상공에 침투하여 삐라를 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에서 독일 쪽으로 침투하여 반나치스 삐라를 뿌리는 임무를 맡았던 비행사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자신들의 임무를 비꼬아 "우리는 휴지 배달부."라고 자칭하는가 하면, "지나가는 게슈타포의 머리 위로 떨어져 주기나 하면 대박!"이라며 삐라 뭉치의 끈을 풀지 않은 채 투하하기도 했다. 이게 반영되어서인지 땡땡의 모험에서는 비행기로 살포한 삐라 뭉치에 머리를 얻어맞는 연출이 나온다. 알기 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 제2권 영국 본토 항공전 파트에 서술된 바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삐라 살포 경험이 훗날 연합군이 "진짜 폭탄"으로 폭격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보내오는 삐라는 2018년까지만 해도 내용은 트럼프, 아베 신조 등을 비하하는 내용이며, 예전처럼 글씨만 보내지 않고 그림도 같이 보내지만, 발견한다고 해도 이제는 예전처럼 신고할 때마다 이득을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게 되었다. 북한 측이 더이상 삐라를 날리지 않는 이유는, 우선 남북의 국력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젠 뿌려봐야 원하는 인원을 모시기가 쉽지 않기 때문. 북한이 원하는 사람들은 정치인, 기술자, 과학자 및 외국인 등이다. 이들은 1차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양껏 써먹을 수가 있으며, 2차적으로 대외 선전효과가 좋기 때문에 북한 측이 선호한다. 하지만 남한사회의 그런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높아 북한의 가난에 대해 잘 알고있기때문에 남한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버리고 말지 딱히 북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 빈곤층이라면 북한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지금 북한은 자국민 먹여살리기도 빠듯한 상황이라 별 능력도 안 되는데다가 먹여살릴 입만 더 늘어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대남삐라를 날리게 되면 남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대북삐라를 날리거나 대북방송을 틀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엄청난 역효과만 난다.

결정적으로 북한 경제 상황이 막장이라 북한은 삐라를 찍어내고 뿌릴 돈이 없다. 그나마 돌아가는 인쇄소는 로동신문 같이 내적 홍보용으로 쓸 물건을 뽑는 게 전부. 2000년 4월 남북 상호비방 중지 합의에 따라 한동안 중단됐고, 2007년에는 경찰청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규칙'을 폐지하면서 학용품 포상조차 없어졌다.

역으로 북한에서 날리는 삐라가 사라진 뒤로는 국내에서 운동권이 만드는 새로운 양식의 삐라가 간간히 모습을 보인다. 주로 한총련, 한대련, 다함께 등에서 만들어 배포하는데, 범 한나라당계 정치인들과, 박정희, 박근혜 등의 군부정권 사람들을 친일파로 규정하며 나라의 평화를 방해하는 역적, 주한미군 철수, 천안함 음모론, 조국통일 등으로 친북,반미,반일에 입각한 유인물들을 뿌렸다. 주로 보수계의 정치인이나 인물을 저격하는 용도, 혹은 대학교 운동권 사회단체에서 이용해 먹는다.

다만 현재로서는 미지의 국가인 북한에서 만든 물건이라는 점 때문에 나름대로의 희소성 프리미엄(...)을 지닌 사적인 수집품 정도의 가치는 될지도 모른다.

4. 대남삐라 목록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 악화로 상호 비방과 심리전이 재개됐고, 2013년 들어 장성택의 숙청 이후 백령도로 첫 대남 삐라를 살포하였다. 대충 내용은 백령도에 주둔 중인 해병대에게 백령도를 언제든지 포격해서 불바다로 만들 수 있으니 투항하라는 내용인이다.# 이는 역으로 이렇게 효과가 없음이 분명한 수단까지 동원할 정도로 북한 시국이 막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북한은 전통적인 종이 쪽지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홍보로 방향을 바꿔잡았다. 물론 여전히 효과가 있는 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북한 입장에서는 비용도 줄고 간편하게 홍보를 할 수 있으니 나름대로 만족해 하는 중. 허나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실제로 남한에서의 반응은 디시인사이드웃긴대학을 능가하는 새로운 유머 사이트 정도의 취급밖에 안 된다. 사실 북한과 교류가 가능했던 소련은 옛날부터 북한 삐라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

이런 인터넷 삐라의 대표적인 예로는 일명 '얼짱 여대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자랑이야기'라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박진주'라는 여대생이 국가에서 무상으로 준 집에서 잘 살면서 북한 체제를 자랑하며, 자본주의 사회를 욕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막상 여대생이 쓰는 노트북은 그렇게 욕하던 미국HP 노트북이다.

2016년 1월 13일에 북한이 간만에 삐라를 뿌렸다. 원하는 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물론 북한의 실상을 잘 아는 한국 국민들에게 통했을 지는 의문. 삐라 내용도 그저 협박적, 원색적 비난으로 남한 정서를 고려도 안한 수준이라 그저 김정은 보여주기식 삐라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하다 못해 북한 삐라는 신고를 해주면 고맙고[7] 집에 가져가든 말든 수거 후 쓰레기로 분류되어 처리된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은 삐라만 발견되면 검열은커녕 언론, 페이스북 등지에서 내용을 그대로 노출하는데 비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북은 일개 민간단체가 날리는 전단지에도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하고 성을 낸다는 점이 현재의 남북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흩뿌려진 삐라는 되려 초등학생 컴퓨터 과목 숙제 같은 촌스러운 퀄리티로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샀다. 다만 내용은 항상 뉴스로 접하던 헛소리라 별 웃음을 주지 못했다.

다음 날인 14일 오전에는 경기도 고양시에 삐라 살포기가 떨어져서 주차된 차가 파손이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보험처리가 된다고.

내부에 전단지 대신 흙과, 쓰레기 오물 등이 섞인 경우도 있는데 주성하 기자는 이를 심리전 담당자가 무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

얼마 후인 2016년 2월 2일에는 수원에도 삐라 뭉치가 떨어져 빌라 옥상의 물탱크가 파손되고 테라스의 유리 지붕이 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7년 9월 20일에도 민간인 차량이 파손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내부에는 이물질이 가득했고 이것이 차량에 직격한 것. 이 정도면 심리전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테러에 가까운 수준이다.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삐라 살포는 한동안 중지됐으나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사무소 폭파 사태를 계기로 북측은 관영 매체를 통해 대남삐라를 뿌릴 계획을 보도하면서 한국에서도 파장이 인 바 있다.
2016년 이후, 언론에 소개된 북한의 대남삐라는 다음과 같다.
날짜 지역 발견된 장소 비고
1월 <colcolor=#FFF> 13일 동두천시 상패동 15장
파주시 광탄면 50여 장
의정부시 호원동 3천여 장
14일 파주시 탄현면 9천 5백여 장
고양시 일산동구 9천여 장
15일 파주시 조리읍 2백여 장
고양시 일산동구 1만여 장
20일 용인시 기흥구 7백여 장
안양시 동안구 16여 장
21일 고양시 덕양구 3백여 장
25일 성남시 분당구 20여 장
안양시 만안구 2만 3천여 장
28일 안양시 동안구 10여 장
2월 2일 고양시 일산동구 1만 5천여 장 CD 18장 발견.
수원시 영통구 5천여 장
수원시 장안구 6만여 장
위 표의 출처
2월 3일 성남시 상대원동 ?장 CD 발견.
광진구 화양동 ?장(수십장 추정)
4일 남양주시 진접읍 수 천여 장 CD 10여 장 발견.
5일 안양시 만안구 27장 출처
6일 은평구 응암동 1만여 장 출처
7월 22일 김포 일대(한강) - #
10월 4일 서울 양천구, 여의도 1,300장 #
12일 서울 여의도, 강화도 #
이 중에서 2월 2일에 일산에서 발견된 삐라에는 1만 5천여 장의 대남전단과 함께 CD도 18장 발견됐다고 한다. # 그리고 2월 4일에 남양주 진접에서도 수천여 장의 대남전단과 함께 CD 10여 장이 발견됐다고 한다. #

대남전단과 함께 발견된 CD는 겉모습이 이렇게 생겼다. 조선일보 기사 2020년까지도 지속적으로 CD 형태의 삐라를 뿌리고는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이미 플래시 메모리가 오래 전에 상용화되고 2010년도 즈음해서는 아예 물리적 저장장치가 아니라 메신저 및 클라우드 저장소를 쓰고있는 게 현실이라서 특별히 필요한 이유가 있어서 따로 ODD를 구비하지 않은 다음에야 보려고 해도 볼 수조차 없다. 북한조차 일반인들은 2010년대 중후반 들어 '불법'이 된 외부 출처 영상물을 볼 때 CD가 발각되기 쉬워 USB, SD카드를 사용하는 추세가 는다는 주장도 있다.북한에 영상을 반입하는 단체도 있는데 이 단체들은 대개 CD가 아니라 USB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IT를 잘 모르는 상급자의 지시로 어거지로 뿌리는 듯한 모습도 있다. 이쯤 되면 차라리 종이로 보내는 게 나을 지경. 만약 발견해도 악성코드나 바이러스가 심어져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니 실행하지 않는게 좋다.
날짜 지역 발견된 장수 비고
2월 <colcolor=#FFF> 17일 경기도 고양시 약 150여 장,1장 추가 2016년 6월 23일 덕양구 일대서 1장 추가 발견
3월 2일 용인시 수지구 약 10여 장
24일 경북 안동시 약 10여 장 기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2장
?? 경기도 가평군 1장
4월 26일 성북구 장위동 2장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보성고등학교 운동장 3장
5월 11일 고양시 일산동구 5장
17일 강북구 수유동 여러 장
종로구 혜화동 여러 장
경기도 화성시 1장
19일 종로구 혜화동 여러 장 17일자 삐라의 추가 발견
7월 14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2장 #

4.1. 세부 목록

5. 대북 삐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북전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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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북한으로 날리는 삐라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 정부 차원의 전단 살포는 한동안 중지되었지만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인터넷을 통한 홍보로 방향을 바꾼 북한과는 달리 대한민국 측은 아직도 구식인 쪽지성 삐라를 계속 사용하는데, 이는 익히 알려진대로 북한에서 인터넷은 일부 계층만 쓸 수 있는 것이라 이를 통한 홍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정부 차원에서 날리는 것도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전환하였고 2018년[8]부터는 그마저도 종료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조직한 대북 민간단체에서 직접 비닐제 풍선에 매달아서 날리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특히 북한 주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듯 하다. 북한 정부에서 귀찮게 자꾸 날려보낸다고 징징댈 정도니 어지간히도 머리 아픈 모양.

날리는 방식은 주로 보통 풍선을 사용하지만, 군대에서는 로 살포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병 용어 문서의 "전단탄" 참조.) 물론 포로 살포하는 것보다 풍선을 이용하는 것이 살포할 수 있는 삐라 양이 현격하게 많기 때문에 주로 쓰이는 방식은 아니며, 이렇게 포를 이용한 살포는 특수한 상황에만 쓰인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특수 포탄을 이용한 전단 살포는 비단 남북 사이 뿐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쓰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대북민간단체에서 전단지 날리는 기술은 탈북자 출신 과학자의 개량을 거쳐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수준은 5시간 이상 비행가능한 대형 수소 비닐풍선과 몇몇 시한장치를 조합하여, 풍선 하나당 크기에 따라 1만 ~ 6만 장인 7㎏ 분량의 삐라를 12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최장 평양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 정도. 재질 또한 종이가 아닌 비닐을 사용하여 젖는 것을 방지하고 경량화를 도모하였다고 한다.

수소를 사용하는 것은 어차피 사람 태울 것도 아니니 꼭 비싼 헬륨을 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타는 비행선에 수소를 쓰지 않는 이유는 미량의 정전기로도 폭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힌덴부르크도 비행선 내부 수소 폭발로 인해 추락했다. 그리고 시한장치의 경우 전자장치가 아니라 화학약품을 이용한다. 농도를 조정하여 낙하 시간을 조절한다. 그러나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북전단 금지령을 내리자 한 탈북자단체 리더가 이 지사의 자택에 수소 가스통에 불을 붙여 폭파 테러를 하겠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때로는 북한 라디오는 채널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라디오를 날리거나, 먹을 것, 미국 달러, 각종 간단한 생활용품을 함께 날리기도 한다. 가끔 빈 라면 봉지 등 빈 봉지들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라면 등 식품을 그대로 보내면, 이를 수거해 독을 타서 다시 뿌리는 식으로 한국을 악선전 할 수 있어서 그 점을 우려하여 빈 봉지만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고로 현재는 마요네즈나, 기타 음식물 포장지를 넣어서 보내는 모양이다.

북한 당국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일으킬 때 대북삐라를 이유로 들어서 남한 측이 먼저 도발했다며 폭파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5.1. 임진각 소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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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14년 10월 11일 날려보낸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에 14.5mm 고사포 사격을 가했다. 이 사격으로 몇몇 탄이 민통선 이남 지역에 착탄되었다. 이걸로 남북 고위층 접촉도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허나 인천 아시안 게임때 북한 고위층 간부들이 방한을 하며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는 듯 보였으나 최근 탈북자 단체들이 자주 김정은독재하는 체제를 비난하는 삐라를 보낸 것이 짜증났던지 북한당국은 더 삐라를 보내면 무차별 폭격을 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탈북자 단체는 10월 25일 추가 삐라살포를 예고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민통선 주민들, 민통선 주민들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단체와 두 단체의 충돌을 저지하기 위한 경찰들이 출동하면서 임진각국민관광지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삐라 풍선들을 강제로 수거, 제거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된듯 보였으나 탈북자 단체는 이에 굴하지않고 자리를 옮겨 삐라를 보냈다. 하지만 북한의 무차별 포격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 인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좋은 목적의 전단이기는 하나 이 과정에서 일부 실탄이 실제 민통선 부근에 거주 중인 거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떨어졌다. 운이 좋아서 사상자는 없었지만 몇 번 계속 되다보면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상당한 재물 손괴가 발생할수도 있다.

6. 북한 내 반체제 문건

북한 당국은 북한 내의 반체제 문건이 남한이 살포한 심리전용 수단이 아님에도 이 역시 삐라로 부르는데, 이는 사실상의 심리전용 선전물로 의미가 확대된 남한의 용례와 달리 전단지를 의미하는 용례가 그대로 남은 것이다.

체제에 불만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심야를 틈타 익명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으며 주로 동시다발적으로 살포하거나 공공장소에 벽보 형식으로 붙여 많은 이들이 보게끔 하고 있다.

6.1. 예시

"로태우 대통령이여 명령만 내리시라 우리는 명령을 기다린다"
* 1989년 6월 평안남도 순천시 공중변소 문에 벽보 형태로 게시됨

7. 대중매체에서

7.1. 영화

7.2. 게임

7.3. 예능/광고

7.4. 만화


[1] 옆의 영어 원문과 비교해볼 때 올바른 번역은 "총사령관"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는 Commander를 commander로 직역하여 명령이라 쓴 것으로 보이는데(해방 직후 대한민국 영어 사용자 실력이래봐야 거기서 거기였다.), 오히려 명령이라 오역한 덕에 국군에게는 포로 학살 및 학대행위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후퇴하는 북한군이 벌인 잔악한 행동에 당시는 국군도 있는대로 눈이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2] 안전로단.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3] 준장-소장-중장-대장이 중국식으로는 각각 '소장-중장-상장-대장'이 된다.[4] 리지웨이라는 이름을 음차하여 이기위라고 적어 놓았다. 성조를 무시하고 병음으로 표기하면 Li ji wei.(본래 qi라고 읽지만 때로는 ji자로 읽히기도 한다.)역시 리지웨이로 읽힌다.[5] 아직 이 때는 중국에서 간화자가 정식 문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체자로 적혔다. 간화자의 보급은 1960년대에 이루어졌다.[6] 보증안전[7] 그래도 종류 별로 몇 장씩은 수집을 한다고 한다. 큰 의미는 없지만 일단 분석은 해봐야 한다나.[8] 남북 화해모드가 일시 작동된 시기이다.[9] 남한으로 치면 곽산군수[10] 정황상 북한 1천원 권으로 추정.[11] 남한으로 치면 구청.[12] 정작 상대에겐 안 들린다(...). 그냥 휘날리는 종잇장과 함께 퇴각하는 보병만 보일 뿐.[13] 초탄은 이 효과로 무조건 적용된다.[14] 원작 동화에는 이런 장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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