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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10:32:48

파비오 그로소

파비오 그로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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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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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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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오 그로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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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Grosso.jpg
<colbgcolor=#14387f> 이름 파비오 그로소
Fabio Grosso
출생 1977년 11월 28일 ([age(1977-11-28)]세)
이탈리아 라치오주 로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0cm | 체중 82kg
직업 축구 선수 (레프트백 / 은퇴)
축구 감독
경력 <colbgcolor=#14387f> 선수 레나토 쿠리 (1995~1998)
칼초 키에티 (1998~2001)
AC 페루자 칼초 (2001~2004)
US 팔레르모 (2004~2006)
인테르나치오날레 (2006~2007)
올랭피크 리옹 (2007~2009)
유벤투스 FC (2009~2012)
감독 유벤투스 FC (2014~2017 / 유스 감독)
FC 바리 (2017~2018)
엘라스 베로나 FC (2018~2019)
브레시아 칼초 (2019)
FC 시옹 (2020~2021)
프로시노네 칼초 (2021~2023)
올랭피크 리옹 (2023)[1]
국가대표 48경기 4골 (이탈리아 / 2003~2009)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축구인 경력
2.1. 선수 경력2.2. 지도자 경력
3. 기록
3.1. 대회 기록3.2. 개인 수상3.3. 수훈
4. 평가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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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축구 선수 출신 감독.

축구팬들에게는 2006 독일 월드컵때 호주와의 16강전에서 논란의 PK를 얻어낸 주인공이자 독일과의 4강전에서 연장 후반 14분에 이탈리아의 선제골을 넣은 것과 프랑스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서 성공시키며 이탈리아의 통산 4번째 우승을 일궈낸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2. 축구인 경력

2.1. 선수 경력

파일:fabio grosso world cup.jpg
2003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에 의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05년 9월 2일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첫 골을 뽑아내어 1-1 무승부로 이끌었다. 이후 마르첼로 리피 감독에 의해 이탈리아 대표팀 레프트백 주전이 되었고 30살에 가까운 나이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여 첫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1 부폰 · 2 자카르도 · 3 그로소 · 4 데 로시 · 5 칸나바로 ⓒ · 6 바르잘리 · 7 델 피에로 · 8 가투소 · 9 토니
10 토티 · 11 질라르디노 · 12 페루치 · 13 네스타 · 14 아멜리아 · 15 이아퀸타 · 16 카모라네시 · 17 바로네
18 인자기 · 19 잠브로타 · 20 페로타 · 21 피를로 · 22 오도 · 23 마테라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미국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발 출전했다. 그로소는 당시 마르코 마테라치 - 파비오 칸나바로 - 잔루카 잠브로타와 함께 철의 4백을 형성하여 견고한 방어를 보여주었고 역대 최소 실점(2실점)으로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16강전에서 호주를 상대로 후반전 종료 약 8초를 남긴 상태에서 루카스 닐의 태클을 피하다 닐의 상체에 걸려 넘어져 패널티 킥을 따냈다. 판정에 논란이 많았지만 어찌됐든 주심은 패널티 킥을 선언하고 프란체스코 토티가 키커로 나서 패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이탈리아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파일:파비오 그로소.gif
독일과의 4강전에서는 연장 후반 14분 피를로의 패스를 받아 논스톱 감아차기로 결승골을 터뜨린다. 2분 뒤에는 델 피에로의 쐐기골까지 터지며 이탈리아는 독일을 2-0으로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한다. 경기 종료 직전 선제골을 넣은 그로소는 당시 이 경기에서 무려 평점 9점을 받았다.

결승전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했으며 프랑스와 연장전까지 동점으로 이어져 승부차기[2]에 돌입하는데 마지막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이탈리아는 월드컵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컵 이전, "저 듣보잡 뭥미?" 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대회 내내 맹활약을 펼쳐 월드컵의 활약을 바탕으로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지만 실망스러운 활약 끝에 하비에르 사네티, 막스웰에게 밀려 시즌이 끝나고 바로 리옹으로 쫒겨나듯이 이적한다. 리옹에서 뛰던 시기에 유로 2008에 출전하여 조별 리그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위협적인 프리킥을 차고 스페인과의 8강전에선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켰지만 다니엘레 데 로시안토니오 디 나탈레가 실패하면서 8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리옹에서는 자리를 잡는가 싶었지만 알리 시소코[3]가 영입된 후 명가 재건을 위해 유벤투스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하였지만 노쇠화와 더불어 부진한 경기력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4] 당연히 2010 남아공 월드컵 명단에서도 도메니코 크리시토에 밀려 뽑히지 않았고. 이후 2011-12 시즌이 끝나고 은퇴.[5]

2.2. 지도자 경력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줬어도 좋은 인간성 덕에 프런트와의 관계는 좋았는지 2014년부터 유베의 프리마베라(유스팀) 감독을 맡고 있다가 2017년에 세리에 B 소속 바리 감독으로 옮겼다.

2018년 세리에 B로 강등된, 이승우의 소속팀인 엘라스 베로나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

2019년 에우제니오 코리니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후임으로 브레시아를 이끌었으나 첫경기인 토리노와의 홈경기에서 0대4 대패를 당하고 다음 경기인 AS 로마 원정 경기에서 3대0으로 털리더니 그 다음 경기인 아탈란타와의 홈 경기에서도 0대3 패배를 당한 뒤 3경기만에 경질되었다. 참고로 후임으로 전임 감독인 에우제니오 코리니가 다시 선임 되었다.

2021년 3월 23일 알레산드로 네스타의 후임으로 프로시노네 칼초 감독에 선임되었다.

2021-22 시즌 세리에 B 최종 9위를 차지하였다.

2022-23 시즌, 파르마와 피사 등 기존의 승격 유력 후보들에 더해 칼리아리와 제노아가 1부에서 강등되며 시즌 전 프로시노네를 승격팀으로 점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으나, 개막 후에는 거의 시즌 내내 1위를 질주하며 여유롭게 우승을 차지하는 위용을 보여주었다.

2023년 5월 1일, 레지나를 3-1로 제압하고 4년만에 세리에 A로 승격하는 위업을 달성하고, 5월 13일에는 제노아와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하고 세리에 B 리그 우승과 코파 넥서스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러나 엄청난 성적을 달성했음에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프로시노네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팀을 세리에 A로 승격시키고도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황하고 자신들을 버린 거냐는 팬들도 있지만 대체로 팀의 승격을 이끌어준 업적에 고마워하는 반응이다.

이후 현재 로랑 블랑의 후임 감독으로써 수 많은 후보자들 중에 선택받아 올랭피크 리옹의 새감독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황이다. 비록 하부리그였지만 프로시노네를 이끌고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명문구단 리옹의 부활을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리고 2023년 9월 16일, 올랭피크 리옹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부임 이후 치른 6경기에서 1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2무 4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고있다.

2023년 10월 30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원정경기를 떠났는데. 구단 버스가 마르세유 팬들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경기가 취소되었다. 또한 팬들이 돌을 던져서 그로소를 공격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프랑스 축구협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경기를 취소하였다. 리옹 구단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그로소 감독과 라파엘레 롱고 코치가 얼굴에 직격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고 버스에 함께 있던 선수들과 스태프들 또한 이번 공격의 폭력성에 악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하였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구단도 리옹 서포터 버스를 상대로 발생한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을 규탄하고 파비오 그라소 감독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다는 성명서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진에 빠졌고, 결국 11월 30일자로 리옹에서 경질되었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3.3. 수훈

4. 평가

루카 토니, 마르코 마테라치와 더불어 대기만성형 선수의 표본.[6] 젊은 시절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 페루자 시절을 기점으로 능력이 개화하더니, 팔레르모 시절 토니와 더불어 기량이 만개했다. 당시 이탈리아2002 한일 월드컵이후 파올로 말디니의 은퇴, 기대주였던 프란체스코 코코의 부진과 더불어 잔루카 잠브로타를 제외하면 측면 수비수의 부재로 고심 중이었으나, 그로소의 발탁으로 걱정은 사라졌다. 그로소의 활약은 이때를 기점으로 월드컵까지 그야말로 아주리 군단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다.[7] 수비수지만 킥이 뛰어나고 공격에도 재능이 있어서 프리킥이나 페널티 킥도 잘 찼다.

하지만 풀백치고는 장신이라 유연성과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고, 무엇보다 기복이 너무 심했다. 특히나 저 기복으로 인해서 2006 월드컵 이후에는 클럽팀에서도 부진하며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래도 유로 2008과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이탈리아 대표팀에 뽑히기는 했으나 결국 2006 월드컵 때만큼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이후에는 국가대표와는 멀어지고 말았으며 결국 리피 감독에게 2010년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된다. 대체로 뽑힌선수는 도메니코 크리시토.[8]

5. 기타



[1] 2023-24 시즌 도중 부임 및 경질.[2] 이탈리아가 선축.[3] 일명 몽소코 사건으로 유명한 선수. AC 밀란아드리아노 갈리아니가 선수 가격을 깎기 위해 시전했던 언플이 메디컬 테스트 결과 "치아에 이상이 있어 심장마비가 올수 있다. 그러니 가격좀 깎아달라"였고 빡친 포르투는 밀란과의 거래를 취소하고 리옹에 팔아버렸다. 이후 발치를 해 병역비리를 일으킨 MC몽을 이 선수에 빗대어 몽소코 등으로 조롱했다.[4] 아이러니하게도 그로소가 오자마자 주전에서 밀려 유벤투스를 떠난 크리스티안 몰리나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귀신같이 부활하며 맹활약을 펼쳤다.[5] 이 시즌 유벤투스세리에 A 무패 우승을 기록한다. 그로소는 물론 후보(...).[6] 루카 토니는 공격수였다.[7] 덕분에 당시 최강의 왼쪽 풀백이라는 잠브로타가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잠브로타는 본래 오른쪽 윙 출신으로, 양발잡이지만 오른발을 더 잘썼다.[8] 그러나 정작 2010 월드컵의 이탈리아는 꿀조라고 평가받았던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대참사를 겪으며 그로소는 선발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책임을 피해갈 수 있었다.[9] 이외의 유명한 선수로는 마르코 마테라치가 있다. 그로소는 이후 2006년 인터 밀란에서 다시 한번 마테라치와 재회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