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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1:00

알베르토 아퀼라니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1000007248.jpg
<colbgcolor=#eeeeee>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알베르토 아퀼라니
Alberto Aquilani[1]
출생 1984년 7월 7일 ([age(1984-07-07)]세)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6cm
직업 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경력 <colbgcolor=#eeeeee> 선수 AS 로마 (1999~2002 / 유스)
AS 로마 (2002~2009)
US 트리에스티나 칼초 (2003~2004 / 임대)
리버풀 FC (2009~2012)
유벤투스 FC (2010~2011 / 임대)
AC 밀란 (2011~2012 / 임대)
ACF 피오렌티나 (2012~2015)
스포르팅 CP (2015~2016)
델피노 페스카라 (2016~2017)
US 사수올로 칼초 (2017 / 임대)
UD 라스팔마스 (2017~2018)
감독 ACF 피오렌티나 (2019 / U18)
ACF 피오렌티나 (2019~2020 / 수석 코치)
ACF 피오렌티나 (2020~2023 / U19)
피사 SC (2023~2024)
국가대표 38경기 5골 (이탈리아 / 2006~201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수상
6.1. 클럽6.2. 국가대표6.3. 개인
7. 여담8.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그는 AS 로마에서 데뷔했고 그곳에서 리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성장하여 로마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정확한 패스, 정확도 높은 롱슛, 그리고 우아하게 보일 정도로 화려한 개인기까지 보유한 그는 다니엘레 데 로시와 함께 로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중원을 책임질 핵심 요원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러나 지독한 유리몸으로 인해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2009년 여름 리버풀 FC로 이적한 후 먹튀로 전락하여 결국 실패한 선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리버풀에서 실패한 후 이탈리아로 돌아가 임대를 거쳐 ACF 피오렌티나에서 자리를 잡으며 다시 기량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또다시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고 결국 포르투갈의 축구 클럽인 스포르팅 CP와 자유계약으로 1시즌을 보내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1시즌을 뛴 다음 스페인의 UD 라스팔마스로 이적했으나 첫 시즌에 클럽이 2부 리그로 강등당하면서 계약이 해지되었다. 이후 2018-19 시즌을 소속 팀 없이 통으로 날린 후 2019년 6월 28일, 은퇴를 선언하였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알베르토 아퀼라니/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external/cdn.forzaitalianfootball.com/alberto-aquilani.jpg

유스 시절, 아퀼라니는 2001 U16 축구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이후 그는 U19 축구 챔피언쉽에서도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2006 U21 축구 챔피언쉽에서도 참가했지만 결승전은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결승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아퀼라니는 2006년 11월 15일 터키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로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 이탈리아는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는 2007년에도 U21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네덜란드를 상대로 2골을 넣는 등 활약했다. 유로 2008에는 23인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벤치에 앉아 대기했다. 그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교체 출전했지만 이탈리아는 0:0 무승부를 거둔 후 승부차기에서 4:2로 패했다.

아퀼라니는 2010 월드컵 지역 예선에도 종종 출전했고 2008년 10월 15일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로서 첫 골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몬테네그로와의 2차전에서는 2골을 기록했다. 이러한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마르셀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은 2010 월드컵에서 그를 최종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유로 2012 지역 예선에서, 아퀼라니는 슬로베니아와의 에선 1차전에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또한 그는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도 출전했지만 머리 부상으로 인해 교체되었다. 2011년 8월 10일, 그는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아퀼라니는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에 의해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의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등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이탈리아는 대회를 3위로 마쳤다. 2013년 10월 11일, 아퀼라니는 덴마크아의 경기에서 인저리 타임에 골을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이 골은 그의 국가대표로서 5번째 골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4 월드컵 로스터에서도 또다시 뽑히지 못했으나 주전 미드필더 리카르도 몬톨리보가 정강이가 골절되는 큰부상을 당하여 월드컵 출전이 무산되자 대체자로 뽑혔다. 그러나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이탈리아의 탈락을 벤치에서 지켜보았다.(...)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비인기팀인 스포르팅으로 이적했으니 국가대표로 뛸 기회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4. 플레이 스타일

아퀼라니는 전형적인 플레이 메이커보다는 현대의 다재다능한 플레이 메이커에 가깝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많은 역할을 거의 동시에 수행하는 데 능했다. 그의 주요 역할은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로, 후방에서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데 능하다. 하지만 데뷔했을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그 점을 살려서 트레콰르티스타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진면모는 역시 중앙 미드필더에서 최대한도로 발휘된다. 그는 중원을 씹어먹으면서 공격 전개를 이끌고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윙이나 윙백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또한 그는 기술, 빠른 패스 및 롱 슛에 능하며 팀워크, 축구지능에서도 탁월하다. 또한 186cm인 큰 키를 활용하여 세트피스에서 헤더를 따내 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엄청난 재능은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사그라들었다. 리버풀에서도 이런 재능을 뽐냈었지만 그정도로 부상으로 거하게 날려먹어서였다.[2]

5.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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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피오렌티나 U-18 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동년 12월 주세페 이아키니 감독의 부름을 받고 1군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긴다. 2020년 7월부터 피오렌티나 프리마베라 팀의 감독을 맡았으며 2020년에서 2022년까지 3년 간 코파 이탈리아 프리마베라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5.1. 피사 SC

2023년 6월 29일, 피사 SC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정식 감독 데뷔에 나선다.#

리그 13위를 기록한 뒤 2024년 6월 18일에 피사를 떠났다.

6. 수상

6.1. 클럽

6.2. 국가대표

6.3. 개인

7. 여담

눈이 중앙으로 몰려있는 기묘한 외모로도 유명하여 티아라지연과 비슷하다는 평이라던지 옆모습만 잘생긴 선수라는 등의 수식어로도 회자되곤 한다.

7.1. WAGs

파일:아퀼라니1.jpg

파일:아퀼라니4.jpg

미첼라 콰트로시오체 (Michela Quattrociocche). 1988년생, 로마 출신 배우이며 2012년에 아퀼라니와 결혼하여 아이 두 명이 있다.

2020년에 이혼하였다.

8. 같이 보기

1 부폰 · 2 파누치 · 3 그로소 · 4 키엘리니 · 5 감베리니 · 6 바르잘리 · 7 델 피에로 ⓒ · 8 가투소 · 9 토니
10 데 로시 · 11 디 나탈레 · 12 보리엘로 · 13 암브로시니 · 14 아멜리아 · 15 콸리아렐라 · 16 카모라네시 · 17 데 산치스
18 카사노 · 19 잠브로타 · 20 페로타 · 21 피를로 · 22 아퀼라니 · 23 마테라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로베르토 도나도니


[1] 이탈리아 공화국 4등급 공로 훈장.[2] 다만 아퀼라니가 먹튀라 까인 적도 있긴 했어도 전체적인 커리어에서 실력적인 면에서는 먹튀라고 까이는건 없었다. 실력은 확실한데 그놈의 심각한 유리몸 때문에 경기를 제대로 뛰는 경우가 적었던 게 문제라서 그럴 뿐이었다. 그 티아고 알칸타라보다 더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