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닐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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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루카스 닐 Lucas Neill | |
본명 | 루카스 에드워드 닐 Lucas Edward Neill | |
출생 | 1978년 3월 9일 ([age(1978-03-09)]세) 호주 빅토리아주 워동가 | |
국적 | [[호주|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5cm |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1] / 은퇴) | |
소속 | 선수 | 맨리 유나이티드 FC (1991~1993 / 유스) AIS (1994~1995 / 유스) 밀월 FC (1996~2001) 블랙번 로버스 FC (2001~200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7~2009) 에버튼 FC (2009~2010) 갈라타사라이 SK (2010~2011) 알 자지라 클럽 (2011~2012) 알 와슬 (2012~2013) 시드니 FC (2013) 오미야 아르디자 (2013) 왓포드 FC (2014) → 동커스터 로버스 (2014 / 임대) |
국가대표 | 96경기 1골 (호주 / 1996~2013) | |
가족 | 부모: 프랜 닐, 애드 닐 형제자매: 팀 닐 배우자: 린제이 모리스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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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주의 前 축구선수. 수비수로 뛰었으며 종종 풀백뿐만 아니라 센터백으로도 뛰었으며 그의 커리어 중 거의 15년을 잉글랜드 무대에서 뛰었다. 닐의 아버지는 북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이었으며 북아일랜드에서 지역 축구 클럽인 브렌트우드 FC, 린필드 FC 및 클리프턴빌 FC에서 뛰었었다. 닐은 시드니의 맨리에서 자랐으며 벨로즈의 웨이크허스트 공립학교와 브룩베일의 세인트 어거스틴 칼리지에서 학생으로 재학한 후 1994년부터 95년까지 축구 장학생으로 호주 스포츠 연구소에 다녔다.2.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루카스 닐/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국가대표 경력
1996년 10월, 그는 18살의 나이에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면서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는 해리 큐얼과 던컨 커밍스에 이은 역대 3번째 최연소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였다.2000년에는 자국에서 열린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블랙번에서 두드러진 기량 발전을 이루어내자 2004년부터는 A대표팀에 자주 소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동안 마크 슈워처 등과 함께 후방을 든든히 지키며 대륙간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를 꺾고 32년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데 크게 기여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팀의 4경기 모두 출전하여 맹활약했지만,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에리어에서 파비오 그로소를 넘어뜨려 실점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2]
월드컵을 마친 뒤에는 사커루의 50번째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은퇴할 때까지 주장으로서 기록적인 61경기를 뛰게 된다. 파라과이전(경기 결과는 1:1)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달았다. 그리고 조국의 2007 AFC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1년 뒤 본선에 참가하여 우승을 노렸으나, 이라크와의 조별라운드에서 특유의 다혈질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고, 8강에서는 일본을 만나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범해 패배의 원흉으로 비판받으면서 대회기간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1 AFC 아시안컵 두 대회 모두 주장으로 참가였고,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었다.
이후에는 급격한 노쇠화로 실력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대표팀에서 철밥통 신세로 지내자 호주의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2013년 9월 7일에 치러진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와 10월 11일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2경기 연속으로 6:0으로 패하자 비난의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폭스 스포츠 오스트레일리아는 경기 후 가진 비디오 분석에서 호주가 2경기동안 내준 12골 실점 중 절반 이상이 닐에게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몇몇 전문가들은 이제는 닐이 주장 자리는 물론이고, 대표팀 자리에서도 물러나야된다며 은퇴를 촉구하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6일,엔지 포스테코글루 대표팀 감독은 그를 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그의 대표팀 커리어도 막을 내렸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밀월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 2000-01
- 블랙번 로버스
- 풋볼 리그 컵 : 2000-01
-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 OFC 네이션스컵 : 2004
- 호주 U-20 축구 국가대표팀
- OFC U-20 챔피언쉽: 1997
4.2. 개인 수상
5. 여담
- 리버풀과의 악연이 꽤 있는 선수다. 블랙번 시절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전투적인 플레이로 서포터즈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반대로 상대팬들은 그를 싫어했다. 그 중에서도 리버풀 팬들은 더욱 심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03년 9월 13일, 리버풀 FC과의 경기에서 그의 거친 태클로 제이미 캐러거의 다리를 부러뜨렸고, 즉시 닐은 퇴장당했다. 캐러거는 이후 6개월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블랙번과 닐은 즉각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두 구단 사이에는 불꽃 튀는 설전이 벌어졌었다. 두 팀은 한달 후 다시 만났고, 닐은 그 경기에서도 또다시 퇴장당했다. (..) 이후 상술했던 이적 사건으로 콥들의 가슴에 두번 못 박으면서 쐐기를 박았다. 아이러니한건 정작 닐은 어린 시절 콥이었다고 한다.
행보를 봤을때 뻥일 수도 있다. - 닐의 아들인 마커스는 현재 선더랜드 유소년에서 뛰고 있으며 이전에는 리버풀과 블랙번 유소년팀에서 뛰었습니다.
- 2016년 5월 2일 영국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 그는 Th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임대 주택에 살고 있으며 더 이상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자녀들이 학교를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재정 상태가 어려워서 현재 지역 여성팀에서 축구를 코치하고 있으며 지역 디지털 회사의 프로젝트 관리자로도 일하고 있다고 신문에 밝혔다.
[1] 센터백, 라이트백[2] 다만 이 판정은 오심 논란이 있다. 닐은 수비적인 임무를 다하고나서 넘어져있던 상태에서 그로소가 얼떨결에 걸려 넘어졌고 처음 페널티 킥을 주었을때는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 몇명은 이게 왜 페널티 킥인지 궁금해했다고 한다.[3] 2022년은 사상 첫 호주의 A매치가 1922년 더니딘에서 시작된지 100년이 되는 해#
분류
- 1978년 출생
- 1996년 데뷔
- 2014년 은퇴
- 빅토리아 주 출신 인물
- 호주의 남자 축구 선수
- 밀월 FC/은퇴, 이적
- 블랙번 로버스 FC/은퇴, 이적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에버튼 FC/은퇴, 이적
- 갈라타사라이 SK/은퇴, 이적
- 알 자지라 클럽/은퇴, 이적
- 알 와슬 FC/은퇴, 이적
- 시드니 FC/은퇴, 이적
- 오미야 아르디자/은퇴, 이적
- 왓포드 FC/은퇴, 이적
- 동커스터 로버스 FC/은퇴, 이적
- 호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호주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참가 선수
-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 참가 선수
- 호주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호주의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
- 1997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말레이시아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