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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07:45:59

안정환/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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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장점2.2. 약점
3.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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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정환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상세

안정환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다시피한 판타지스타의 모습을 보인 선수였다. 주된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1선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아니라 2선과 1.5선을 넘나드는 전형적인 9.5번, 트레콰르티스타의 플레이를 즐겼다. 이러한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당시 한국 축구는 물론, 현재까지도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유형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1]

이탈리아에서 활약했던 시절에는 득점에 성공하지 못해도 경기 MOM으로 뽑히거나, 이달의 플레이메이커에 뽑히는 등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좋을 활약을 보여줬다.[2] 단,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마찬가지인 프리롤 공격형 미드필더 스타일이기 때문에, 2:1 패스나 중앙에서 측면으로 열어주는 윙패스, 전방에서 본인의 볼 소유로 수비를 끌어들이며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며 뿌려주는 킬패스는 날카로웠지만 지공상황에서 후방에서부터 풀어나가는 빌드업 리더로서는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3]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것은 3-4-1-2나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었을 때다. 이탈리아에 가서 기술이 더 좋아졌다는 소리도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토탈 사커라는 새로운 개념에 맞추는 과정에서 한국 시절만큼의 기술이 사라져, 언젠가는 잃어버린 기술을 되찾고 싶다는 인터뷰를 이탈리아의 한국 취재진에게 말하기도 했다. 2000년 코리아컵 멕시코 전에서는 개구리 점프로 수비수를 농락하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폴란드, 미국, 터키의 수비진을 헤집고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주었으며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도 퍼스트 터치와 바디 페이크만으로 스페인 수비 셋을 한번에 뚫기도 했다. 이영표는 안정환을 축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작을 선보이며 그러한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했고,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세리에 A의 중위권 팀인 페루자에서도 사무국장이 구단 역사상 가장 기술이 뛰어난 선수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안정환이 뛰었던 모든 유럽 리그에서 안정환의 기술은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능력이 탁월했으나, 박스 내에서의 공간 창출 능력과 뛰어난 슈팅 기술 때문에 종종 포워드로 기용되었다. 부족한 피지컬과 저조한 수비 경합능력[4] 때문에 2톱 기준으로 세컨드를 뛰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2002년 이후로는 원톱에 적합한 선수라는 오해를 많이 사게 된다. 이는 2002년의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약팀하고 싸울 때는 안정환보다는 최용수가 더 적합하지만,[5] 강팀하고의 대결에서는 개인능력으로 돌파도 가능하고 패스도 더 원활하게 뿌릴 수 있는 안정환이 훨씬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6] 어쨌든 02년 임팩트가 너무나 강해 끊임없이 각종 스포츠 프로그램은 물론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안정환의 골장면이 재방송된 나머지, 안정환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는 굉장했다. 또 안정환도 국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편이다.[7]

2.1. 장점

안정환은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가[8]에 어울리게 다양한 기술에 능했고 이를 실전에서 적용해서 쓸 정도의 재치도 있었다. 뛰어난 볼 컨트롤과 퍼스트 터치[9] 및 개인기를 바탕으로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냈는데, 이 과정에서 주발에 국한되지 않고 양발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었다. 오른발잡이로 오른발 골의 비율이 높았지만, 슈팅과 드리블, 패스, 심지어 데드볼 상황인 코너킥과 프리킥까지 페널티킥만 빼고 왼발을 쓰는게 유리한 상황이면 언제든지 왼발을 자유롭게 사용했다.[10] 반댓발로의 슈팅, 백숏이나 안느 턴 같은 개인 기술을 구사함에 있어서도 양발 사용이 완벽했으며, 이러한 양발 사용 능력 덕에 기술의 완성도는 더욱 올라갔다.

마르세유 턴이나 라보나 킥을 리그 경기에서 유효하게 사용한 적도 있고, 양발잡이답게 라 크로케타도 익숙하게 사용하는 등 대부분의 축구 기술을 언제든지 실전에 써먹을 수 있었지만, 가장 뛰어난 시그니쳐 기술은 힐 찹크루이프 턴을 결합하여 자기 식으로 해석한 안느 턴[11]이다.

그 외 킥 페인팅, 바운드 슈팅도 굉장히 자주 사용하고 능숙했다.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유효 슈팅을 만들어낼 만큼 슈팅 기술이 상당히 좋았으며, 요한 크루이프안정환의 유연함과 슈팅 기술은 남미 기준으로도 수준급이라고 평했다. 킥이나 슈팅의 정교함이 뛰어나서 데드볼 상황에서 키커로 나섰으며, 패스에 있어서도 '축구공으로 당구를 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스핀을 걸어서 정확한 구질의 패스를 보낼 수 있었다. 패스를 보내줄 때의 시야와 패스를 받고 공간으로 침투하는 오프 더 볼 움직임도 준수했다.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12]을 바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큰 경기에 강한 선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안정환의 경우 2002년 미국전에서의 동점골, 이탈리아전에서의 골든골, 2006 월드컵 토고전에서의 결승골을 성공했으므로 이 경기와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팬들은 일본 시절에는 아챔에서 10경기 10골을 넣었으니 큰 경기에 강하다고 하지만 주로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팀들을 혼내주다 한국이나 중국 팀에 밀려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큰 경기에 정말로 강한지 약한지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안정환의 정말 큰 장점은 강한 정신력과 투쟁심이다. 기술적인 선수는 이따금 기술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우가 있으나 안정환은 기술을 이용해 상대에게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도전 했다. 이런 특색을 바탕으로, 안정환은 조커로 나왔을 때도 강하게 도전하면서 영향력을 발휘 했다. 본인은 더티 플레이를 잘 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더티 플레이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데, 중국 시절에는 상대방이 거친 태클을 하자 다투다 벤치의 유리벽을 부술 정도로 터프하고, 터키전에서는 남들 모두가 4위는 했다고 좋아할 때 혼자서 라커에서 씩씩거리며 화를 낼 정도로 승부욕도 대단하다.

2.2. 약점

안정환의 가장 큰 약점은 피지컬이었다. 비슷한 세대나 한세대 이전의 테크니션인 윤정환, 최문식 같이 세계 수준에서 피지컬 때문에 아예 경기에 뛰지 못할 정도로 피지컬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피지컬적으로 강한 상대와 매치업이 되면 자주 지워지곤 했다. 이란과 같은 국가와의 대진에서 이 특징이 크게 나타났다.[13] 피지컬적인 약점은 건장함 뿐만이 아니라, 제공권[14]이나 활동량의 부족 또한 뼈아프게 다가온다. 또, 공을 오래 끈다는 것, 이와 더불어 패스 능력도 있고 결정력이 최상급은 아닌데도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한편 1.5선에서 2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플레이를 주로 한 것은, 피지컬 때문에 몸싸움이 안 됐기 때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슈팅 기술과 온 더 볼 기술 때문에 경기당 0.5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었다.[15]

3. 총평

가장 유사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는 한세대 앞선 로베르토 바조와 동시대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그리고 이후 세대에서는 파울로 디발라.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훌륭하지만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는 아니며, 투톱의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프리롤 공격형 미드필더가 최적의 포지션이며 골도 잘 넣을 수 있는 선수들이다. 반대로 이것이 안정환의 단점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된 선수들 모두 벤제마같은 9.5번이라 하기에도, 9번이나 10번이라 하기에도 어딘가 하나씩은 모자란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이고 나쁘게 말하면 애매하게 다루기 어려운 선수들이었다. 즉 중원 싸움이나 안정성을 희생하는 전술적인 보조[16]가 꽤 많이 필요한 선수들이었고 이런 전술적 디메리트를 클래스로 커버해야 하는 유형이었다.

커리어에서도 이런 플레이 스타일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기본적으로 피지컬과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인데다가 간혹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이를 메워줄 만한 전술과 동료들과 함께할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클럽 경력 중 프랑스와 독일에서 저조한 활약을 보인 것은 몸 상태 문제도 있었지만, 팀이 강등권일 정도로 전력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대우 로얄즈 시절에는 앞뒤옆에 샤샤, 뚜레, 마니치라는 역대급 외인들이 함께 했고, 페루자 시절에는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팀의 전력이 평균 수준은 됐으며, 요코하마나 다롄 시절에는 팀이 우승권에 있을 정도로 전력이 좋았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후방 빌드업 리더는 홍명보, 이을용이, 수비는 유상철, 김남일, 박지성이, 전방에서 피지컬과 공중볼 싸움은 설기현, 유상철, 조재진이 메꿔줬고, 명장인 거스 히딩크의 전술적 보조가 있거나 그게 아니면 대부분 상대가 지친 후반에 투입되었으며, 이러한 팀들에 속할 때는 모두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1] 안정환이 축구를 배우던 시기에는 한국에 토털 사커의 개념조차 없을 정도였고, 유소년 시스템은 당연히 없었고 학교에서 축구를 배워야 했다. 더구나 잔디도 없는 맨땅에서 축구를 해야했고, 안정환은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노가다를 뛰고, 대학 1년 동안은 축구를 포기할 정도였다. 안정환의 어려운 집안 사정은 빈민층 (밥 먹기도 어려운 수준) 수준이며, 한국의 열악한 축구 환경 때문에 남미의 빈민층 축구 스타들보다 더 고된 환경에서 축구를 해야 했다. 즉, 소위 말하는 천재에 해당하는 선수다. 참고로 이영표도 어려운 환경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약은 지어 먹을 형편은 됐다. 그러나 안정환은 그 보약도 이영표에게 얻어 먹을 정도로 매우 살림이 어려웠고, 한때 철가방을 들고 다녔던 이을용도 안정환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2]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 이탈리아전 연장 전반의 역습 상황으로, 차두리에게서 패스를 받은 안정환은 프란체스코 코코를 안느턴으로 속이고 가랑이 사이로 황선홍에게 패스, 파올로 말디니를 등지며 버티던 황선홍이 다시 안정환에게 백패스, 우측 측면 공간으로 엄청난 스피드로 뛰어가는 차두리에게 왼발로 로빙 스루 패스를 찔러줘 크로스를 올리게 한다.[3] 빌드업 리더가 되는 것이 가능했으면 프랑스나 독일 시절 밑에 내려가서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4] 이영표에 의하면 수비 가담은 2002년 전까지는 아예 안했지만 히딩크 이후에는 공격수 또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수비적으로 해야 하는 역할은 완벽히 해줬다고.[5] 적은 기회에도 확실하게 골을 넣는 것은 안정환이라는 식의 서술이 있었으나 그런 부분에서는 최용수가 더 낫다. 한국 국대는 아무래도 아시아와의 싸움이 많고 안정환 시절의 아시아는 지금에 비해서는 상당히 수준이 낮았는데, 02~06년 국대에서 공격수로 많이 뛴 안정환의 득점 기록은 좋은 편이 아니다.[6] 2006 월드컵 프랑스전에서도 안정환이 들어가자 그 이전보다 미드필더에서 볼이 훨씬 잘 돌고 공격 전개가 가능해졌으며, 박지성의 동점골도 안정환의 패스에서부터 시작됐다. 설기현의 크로스에 이은 조재진의 헤더 패스를 받으러 들어간 것도 박지성과 안정환 둘이었다. 물론 안정환이 들어간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나아졌을 뿐, 경기력에서 계속 열세였던 것은 맞다.[7] 하지만 정작 안정환이 찔러주는 킬 패스를 주워먹을 수 있는 선수가 국내에 거의 없었다. 안정환의 킬 패스는 윤정환과는 다른 개념인데, 윤정환은 누구나 받기 쉽게 좋은 패스를 찔러주었지만, 안정환은 상대편 수비진의 헛점을 찌르는 다소 모험적이지만 송곳같은 패스를 찔러주었다. 이는 패스의 대상이 되는 선수가 받아서 처리할 수만 있다면 완벽한 골 찬스를 얻을 정도로 예리했지만, 정작 국내에는 그걸 제대로 받을 정도로 빠르거나, 받아서 한 번에 슛으로 연결할 정도로 퍼스트 터치가 좋은 공격수가 국대에 없었다. 안정환과 차두리의 조합이 좋았다는 평을 들은 건, 차두리가 안정환의 킬 패스를 받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반면 네덜란드 유소년 교육에서 패스에 대해 가지는 관점은 한국과는 다르게, 그와 같이 패스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못 받은 선수가 잘못하는 게 아니라 주는 선수가 잘못 준 게 무조건 더 크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적절한 공간으로 누구나 받을 수 있게 혹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동료의 움직임에 맞춰서 적절하게 주는 게 중요하지 패스를 주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는 축구관으로 축구를 보기 때문이라고. 네덜란드가 다 옳은 건 아니고 축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안정환 본인도 동시대의 지단처럼 피지컬과 테크닉으로 다 부수고 받기도 쉽게 주는 거 아니다.[8]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등 대표팀 동료들과 팬들이 주로 이런 평가를 한다. 반면, 90년대 이전부터의 축구팬들이나 전문가들은 안정환이 뛰어나고 아름답다는 것은 다 동의하나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안정환을 꼽지 않는 사람도 꽤 있다. 대부분 이런 경우 최문식을 꼽는다. 단, 안정환 이전의 테크니션들은 국내나 아시아권에서밖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안정환은 유럽 리그와 국제 대회에서 세계 최상위 팀들의 강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본인의 기술을 유효하게 써먹었다는 큰 차이가 있다.[9] 안정환이 하는 접기 강의를 보면, 공을 수비수가 태클을 걸고 싶지만 자신이 언제든지 볼을 회수할 수 있는 애매한 위치에 놓는다고 하는데, 여기는 굉장히 좁은 영역이기 때문에 안정환 급의 퍼스트 터치가 없으면 안정환 같은 접기를 할 수 없다.[10] 유명한 스코틀랜드전의 칩샷은 왼발로 찼으며 본인이 직접 밝히길, 어린 시절 오른발 부상이 잦았던 터라 그 때 왼발 연습을 많이 하여 왼발도 잘 쓰게 되었다 한다.[11] 맥기디 스핀과 거의 동일하다. 당연히 76년생인 안정환이 86년생인 맥기디보다 훨씬 먼저 썼다. 티에리 앙리는 안느 턴에 대하여 매우 아름다운 기술이라며 안정환에게 직접 배우고 싶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12] 2번의 결승골, 1번의 동점골, MOM 2회.[13]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도 2002년 이탈리아전 당시 피지컬이 뛰어난 송종국만 만나면 공을 뺏겼고, 후반에 잠그기 겸 젠나로 가투소로 교체된다.[14] 점프력과 방향을 트는 헤더 기술은 좋았지만 피지컬이 밀려서 경합이 잘 안된다.[15] 그래서 안정환의 팬들은 안정환의 집안이 좋았다면 피지컬적으로도 더 좋은 조건이 갖춰졌을 것이기 때문에 대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안정환이 그 테크닉에다 피지컬이 좀 더 보강되어 있었더라면 당연히 더 어렸을 때부터 성인무대나 청소년 무대에서 월반하는 식으로 두각을 나타내었을 것이고, 이동국 버금가는 혹사를 당해 3년에 한 번 정도 부상과 혹사에 져버린 비운의 미남 천재 현재 대학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 하는 식으로 네이버 기사에나 올라오는 정도로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났을 수도 있다.피지컬이 보강되었다면 커리어가 망할지 안 망할지는 몰라도 혹사 자체는 99프로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이동국보다 나이는 형이지만 포항 데뷔 동기인 백승철의 경우 데뷔시즌에 케이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수였지만 부상을 입었음에도 무리하게 혹사당하면서 1998년, 1999년까지 축구를 하고 접어야만 했다. 안정환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16] 판타지스타류 선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선수 클래스가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 상 공격의 핵심 축이 되어야 하는데 원톱이나 미드필더, 윙어 모두 애매하므로 셋 중 하나의 포지션을 희생하고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에 배치하게 되며, 이는 타 포지션, 특히 수비에서의 열세를 이들의 능력으로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한단 뜻이기에 필연적으로 판타지스타에게 팀의 비중, 특히 공격 비중이 적지 않게 쏠리게 된다. 중원 싸움과 후방 빌드업이 매우 중요해졌으며 한 선수,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나 공격수에게 공격 전권을 쥐어주는 것을 지양하는 현대 축구에서 이들의 자리가 사라져가는 이유다. 디발라는 그나마 커리어가 진행되면서 전술적인 문제에선 많이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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