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일본 |
1. 개요
네덜란드와 일본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고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은 일을 계기로 미국이나 호주처럼 피해자들은 일본에 대해 그리 감정이 좋지 않으나,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매우 우호적이다.[1]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일본과는 에도 막부 때부터 관계를 맺었다. 당시 에도 막부는 기독교를 금지하면서 예수회를 추방했고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톨릭을 믿지 않고 개신교를 믿는 네덜란드는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본과 제한적인 교류를 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1641년부터 1859년까지 데지마를 통해 에도 막부와 제한적인 무역 및 교류를 하면서 동시에 서양의 기술 및 문물들을 전파했고 서양의 학문인 난학이 발전했다.[2] 또한 에도 막부는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과 세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어에도 네덜란드어 차용어가 들어가게 되었다. 네덜란드어로 된 일본어 사전도 나왔다. 네덜란드 역시 일본산 도자기를 많이 수입하고 이를 유럽에 공급하여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1868년에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되었고 일화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성립되었다.
2.2. 20세기
2차 세계 대전기 일본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우호적이었다.하지만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자 영국에 본부를 두던 네덜란드 망명 정부는 영국과 함께 일본에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일본군이 남방작전을 통해 1942년에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현지의 네덜란드인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았다.[3]
이러한 일제의 전쟁범죄는 네덜란드 내 반일 감정으로 이어졌다.[4] 실제 1971년에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 부부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많은 네덜란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며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를 향해 야유하며 "히로히토 꺼져라"(HIROHITO GO!)라는 팻말로 항의했고, 심지어 68혁명에 가담했던 신좌파들은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에 죽음을!"(DOOD AAN HET HERLEEFD JAPANS MILITARISME)이라는 플래카드로 조롱했다.[5]
설상가상으로 1981년 사가와 잇세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식인 살인마에 의해 르네 하르테벨트(Renée Hartevelt)라는 여성이 살해당하고 인육으로 먹힌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네덜란드 내 반일 감정이 더욱 증폭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1986년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의 방일이 내부의 반발 여론으로 무산되었으며,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새 덴노가 되고 나서야 방일할 수 있었다.
1989년 일본 쇼와 덴노의 장례식 때도 영국,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요르단,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모로코 등 많은 군주국들의 왕족들이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조전을 보냈지만 네덜란드 왕족들은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불참했다.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일본 새 덴노가 된 이후인 1991년에 일본을 방문한 베아트릭스 여왕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과 1956년 일-네덜란드 의정서에서는 배상 문제가 법적으로 국가 간에 있어서 해결되고 있는데도 궁중 만찬회에서 "일본의 네덜란드인 포로 문제는 고향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역사의 한장입니다"라면서 배상을 요구했다. 이후 일본은 아시아 여성 기금에 총액 2억 5,500만 엔의 의료 복지 지원을 했다.
2.3. 21세기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일부 갈등이 있다. 네덜란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연대해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다만 이런 내용들을 보고 네덜란드-일본 관계가 안 좋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상술한 내용처럼 일본 황실을 격렬히 반대하던 건 68혁명의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있을 때의 이야기이고[6], 현대 네덜란드에는 소수 노년층을 제외하면 반일 감정이 거의 없다. 실제로 두 나라는 지금도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교류가 상당히 많으며 일본과 관계가 좋은 국가를 꼽을 때 네덜란드는 거의 항상 포함되며 네덜란드의 여론 역시 일본에 매우 우호적이다.
이후 2013년 나루히토 황태자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방문 했는데 과거의 험악했던 반응과 달리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같은 해에 새로 즉위한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일본에 국빈 방문했는데, 내각이 주최한 만찬에서 후쿠시마산 토마토로 만든 스파게티 요리를 대접받았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이를 보고 외교 결례라며 비판했다.[7]
2019년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에도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부부가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참고로 전세계에서도 유래없는 훌륭한 자전거 인프라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일본 포함 세계 각지에서 네덜란드의 자전거 인프라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했는데 성공적인 사례로 일본의 센다이시가 있다. 센다이시 역시 보도 옆에 자전거 전용 도로[8]가 있으며 자전거 전용 신호등까지 도입했다.
2023년 1월 27일, 네덜란드와 일본 양국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방침에 동참하기로 했다.#
네덜란드와 일본이 대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준비 중인 것이 알려지자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대비하기 시작했다.#
3. 문화 교류
오랜 교류의 역사로 양국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상술했듯 일본에서는 네덜란드를 공부하는 난학이 발달하였으며 네덜란드에서도 일본의 도자기나 우키요에가 인기를 끌었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일본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현재도 이러한 영향으로 양국의 문화 교류가 많다. 일본의 서브컬처는 네덜란드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양국의 상호 언어 교육 역시 활발하다.
4. 대사관
네덜란드는 도쿄에, 일본은 헤이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5. 관련 문서
- 네덜란드/외교
- 일본/외교
- 네덜란드/역사
- 일본/역사
- 데지마
- 하우스 텐 보스
- 네덜란드/경제
- 일본/경제
- 네덜란드/문화
- 일본/문화
- 네덜란드인 / 일본인
- 네덜란드어 / 일본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화한삼재도회
[1] 2차 대전을 이유로 현대 네덜란드가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당장 미국이나 호주는 일제로부터 더 많은 피해를 더 받았으나 현대 미국, 호주가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2] 난파 이후 조선에 억류되었던 헨드릭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밀항하자, 조선과 공식적으로 외교관계가 없던 네덜란드 측은 일본 측에 협조를 요청해 남은 생존자들을 송환받았다.[3] 다만,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군정사령관이었던 이마무라 히토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네덜란드인 등 연합국 국민들을 유화적으로 대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4] 네덜란다는 유럽에서 러시아와 함께 반일 감정이 어느 정도 있는 나라다.[5] 쉴 새 없이 벽돌과 보온병이 날아드는 바람에 수행원들이 거의 죽어나갔다는 후문이 있다.[6] 70년대초였다.[7] 한국 네티즌들도 대한민국 대통령과 중국 총리가 후쿠시마산 오이를 대접받은 사건을 떠올리며 비난했다.[8]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일본은 자전거 인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