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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일본 관계

발해의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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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초기2.2. 중기2.3. 후기
3. 관련 사건4. 관련 문서

1. 개요

발해일본의 관계를 다루는 문서.

2. 역사

2.1. 초기

건국 후 발해는 일본과 통교하려고 시도했다. 발해 건국 30년째인 727년 8월에 일본으로 처음 사신을 보내 국교를 맺었다. 이때부터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약 200여년 동안 발해사 34회, 견발해사 12회 등 빈번한 교류가 있었다. 다만 상술한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같은 건 거절하기도 했다.

일본으로 가는 루트는 부산 쪽까지 내려가서 대한해협을 넘는 게 가장 가깝고 안전한 루트다.조선 시대의 조선통신사도 대한해협을 통해 넘어갔지만, 그럼에도 날씨가 안 좋고 바닷길이 험해서 고생 고생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쪽은 제3국인 신라의 영역이기 때문에 발해는 동해 바다 한가운데를 그대로 건너는 루트로 일본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발해 사신단의 주요 목적지는 일본 호쿠리쿠 지역 노토 반도 등 카가 지방으로, 이 지방에서는 이사카와현 누가미마치 유적이나 고마츠 시 시바야마가타에서 발굴된 온돌이 포함된 집 등 발해인과의 교류 흔적이 나타난다.

다만, 상기했다시피 이 교류는 절대 녹록한 것이 아니었는데, 일본 측의 기록을 보면 발해인들이 에미시 지역에 실수로 표류해 대부분 살해당하고 간신히 몇몇만 일본으로 도망쳤다는 기록도 있고 일본 배편을 통해 발해로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자 사람들이 절망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심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배에 외지인(발해인)이 타서 신이 노한 것이라며 물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첫 번째 사신단은 서기 727년인 인안 9년 무왕 시기에 일본으로 파견했는데 이들의 목적은 일본에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알리고 대외적으로 당과 흑수말갈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일본을 이용하여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사신단은 영원장군, 낭장 고인의, 고제덕 등 24인의 무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신 파견의 목적이 군사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신들은 표류하여 도착한 곳에서 일부가 살해되었고 12월에야 수도 헤이조쿄에 당도하여 728년 정월 쇼무 천황을 만나고 선물을 전달하였다. 속일본기에 의하면 "발해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간직하고 있다(復高麗之舊居 有夫餘之遺俗)"라고 쓰여 있다.

2.2. 중기

발해의 두 번째 대일 사신은 발해의 당나라 공격 이후 당나라와의 외교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발해 사절단은 선물을 교환하고 활쏘기 대사례에 참석하였으며 발해악을 최초로 일본에서 연주하였다. 이 사절단을 맞이한 통역관은 신라학어(新羅學語)라 불리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에 유학해 있던 신라인 학생들이었는데, 신라인 역관이 발해인들의 말을 통역하였다는 점에서 발해와 신라의 언어가 비슷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던 바 있다.

발해의 세 번째 대일 사신은 서기 752년 대흥 15년 문왕 시기에 보국대장군 모시몽(慕施蒙)을 필두로 파견되었다. 당시 일본은 과거에 고구려가 신하로써 예의를 취했다는 것을 근거로 발해가 일본에 신하로 칭하지 않음을 문제 삼았는데 정확히는 대신라견제책을 모색하고자 고구려쪽에서 형제국임을 칭하였다. 일본에 칭신하였던 고구려는 신라에 세워졌던 안승의 소국 고구려였다. 이 사건을 통해 일본이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왕대 보낸 서신에서 발해왕을 '천손(天孫)'이라 칭하고 발해와 일본간 관계를 외질(숙부와 조카)관계라고 격하시켜 일본 천황이 격노하며 고구려대에도 형제를 칭했지, '외숙과 생질이라 표함은 예를 잃은 것'이라고 예우를 철회하려다가 담당 사신 '만복'이 서식표현을 고쳐주겠다고 하며 만회되었다.(『續日本記』卷32, 寶龜 3年 2月(己卯)])

일본은 758년에 신라정토계획을 세우던 중 발해를 끌어들이기 위해 처음으로 사신을 파견했다. 앞서 신라에 파견되었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갔던 오노노 다모리를 정사로 삼은 사신단이었다. 발해는 양승경(楊承慶)과 양태사(楊泰師), 풍방례(馮方禮) 등을 일본에 보내어 답방했다. 하지만 발해는 당나라의 안사의 난 이후 요동 안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당나라 또한 발해를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책봉하는 등 발해와 화친하면서 동아시아에 평화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후 발해는 대일본 사신을 문관으로 교체하면서 신라정벌 계획을 포기하는 것을 시사하였고 일본은 신라정토계획을 주도하던 후자와라노 나카마로가 반란에서 패사하면서 신라정토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일본이 신라정토계획을 세우는 시기에 일본은 다섯 차례 발해는 네 차례 각기 상대국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762년 왕신복의 일본 파견 이후 발해의 대일 사신 파견은 군사적 목적에서 경제, 문화적 목적으로 바뀌게 된다. 발해는 325명이나 되는 대규모 사신단을 파견하는 등 경제적 목적을 이루는데 적극적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우대신 후지와라노 오쓰구는 발해의 사신을 ‘상여’ 즉 장사꾼 무리라 칭하면서 일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비판하였고 발해의 경제외교에 부담을 느낀 일본은 발해의 사신단을 6년 내지 12년에 한 번씩 파견할 것으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제교류의 수혜를 받고 있던 발해의 수령들과 일본의 귀족들의 반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발해사신이 가지고 온 모피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치품이었으며 일본 황자가 한 여름에(!) 담비 모피를 8장이나 껴입고 나타났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밀납, 인삼, 삼채호, 표범가죽을 구매하기 위한 돈의 꼬리표 등 일본과 발해의 적극적인 경제교류를 증명하는 다양한 증거들이 현재에도 전하고 있다.

문장에 탁월했던 발해 사신들과 일본간의 문화 교류도 활발했는데 일본 고유 문자인 가나로 쓰인 일본 대표 장편문학소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한시에 뛰어난 발해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발해사신과 일본인들간의 문학교류는 발해사신이 오가던 쓰루가의 마쓰바라칸, 노토객원, 고로칸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시를 주고받는 청화라 불리는 연회가 있었다.

2.3. 후기

일본8세기 후반 신라와 관계가 나빠져 공식 교류가 중단되었는데 장보고 집단으로 대표되는 사무역은 계속되었다. 838년 일본의 견당사도 중지되었기 때문에 발해 후기에 이르러 일본의 발해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발해의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는 오악, 대당악과 더불어 일본 궁중음악에 포함되었던 발해악이 울려퍼졌다. 발해 멸망 직전까지 발해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며 교류하였으나 발해 멸망 후에는 단절되어버렸다. 한편, 발해 사신 오효신(吳孝愼)이 전해준 당 선명력을 일본에서는 이후 800여년간 역법으로 썼다.

3. 관련 사건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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