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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 내
자세한 내용은 김거김/사례/경기 내 문서 참고하십시오.2. 선수 선발이나 감독 영입 등
2.1. KBO 리그
드래프트 삽질을 했을 때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류거나라든가 오거정이라든가.[1] SK 와이번스가 실제로 2001년 드래프트와 2006년 드래프트에서 이 짓을 했다. 이거김이라든가[2], 류거이[3]이라든가. 물론 위의 두 케이스보다 결과는 좋지만[4], 만일 조선의 4번 타자와 당대 최고의 왼손 원투펀치가 결합했다면?하위 지명에서 잭팟이 터진 사례는 워낙 많아서 아무렇게나 막 쓰이지는 않고 보통 1차 지명~2라운드 1순위(구), 1라운드 1순위(현)에서나 쓰이고, 그 외에는 포지션이 겹칠 때만 쓰인다. 이를테면 삼성 라이온즈가 2004년 드래프트에서 시전한 강거이와 같은 케이스가 있다. 삼성빠들은 무려 10년 이상 '삼민호'를 외치며 억울해했는데, 삼민호는 드래프트 후 14년이 지난 2018년에 갑작스럽게 현실이 된다.
롯데 자이언츠는 류거나를 시전한 그 해, 김거김을 작렬했다. 근데 이건 단순히 롯데 탓만 하기도 뭐한 게 김현수는 이 해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에도 지명받지 못하고 결국 신고선수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즉, 모든 팀들이 다 하나같이 김거X를 시전한 것. 원조는 데뷔부터가 걸러지고 시작했다.
SK는 2011년 이현호를 거르고 서진용과 김민식을 뽑았다. 이현호는 2015년 두산 좌완왕국의 일원이 되었지만, 서진용은 김원형 투수코치의 조련을 받은 후 상무 입대에 성공하여 복무를 마치고 본격적인 첫 시즌인 2015 시즌에 드디어 터지나 했지만 수술행. 하지만 2016년에는 별 차이는 안 나지만 서진용이 상대적으로 더 선방하면서 따지기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이현호는 제구 문제로 여전히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하는 반면 서진용은 그래도 거의 1군 붙박이에 가깝게 정착하면서 SK의 우세로 점차 변하는 상태.[5] 그리고 2015년 드래프트에서도 SK는 김택형을 거르고 1차 지명으로 이현석을 선택하였는데, 김택형은 이후 2015년 2차 2라운드 지명을 통해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가... 지풍볼에 힘입어 구속을 무려 12km나 증가시키면서 1년차부터 넥센 좌완 불펜의 핵으로 군림한다. SK가 이 아쉬움을 만회하려면 올 시즌부터 이현석이 이재원의 백업으로 얼마나 잘 성장하냐가 중요할 듯 했는데... 트레이드로 드디어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또한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서도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정거임. 2013 WBC 예비 엔트리 발표 이후에서는 박거홍 드립도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유망주나 용병 선발에서 저울 재기를 하고 실패한 사례들도 많다.
다만 주의할 점은 아무리 전문 스카우트라고 해도 아마추어 선수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에는 학생부 야구 시즌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 역시 마찬가지로 결국 KBO에서 긁어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다. 물론 일부는 선택 당시에도 의문을 샀고 결과가 최악이라 비판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쉬움을 토로하거나 서로 놀려먹으려고 언급하는 것에 가깝다. 또한 1차 지명이나 1라운드 최상위 지명이 아니라면, 무수한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므로 포지션이 겹치거나 원래 고려됐던 후보끼리만 비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1. OB/두산 베어스
- 김거이(김기범 → 이진)
1989년 신인 드래프트 때 국가대표 좌완에이스 김기범을 거르고 이진을 지명했지만 이진은 제몫을 해내지 못하고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지만, 김기범은 2000년 선수생활 마감할 때까지 제 몫을 해 줬다. 거기다 김기범은 자신을 거른 OB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통산성적에서 보면 OB에 상당히 강해서 OB팬들에게 악몽같은 존재였다.
- 유거류(유지현 → 류택현)
1994년 신인 드래프트 때 OB 구단 고위층에서 류택현, 유지현 두 선수를 저울질한 결과 구단 내에 좌완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류택현을 지명했다. 당시 OB 스카우터였던 양승호는 류택현이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유지현 지명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좌완투수에 대한 구단 상층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정작 유지현은 LG 트윈스에서 펄펄 날았고, 류택현은 OB에서는 별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다른 구단으로 가서야 꽃을 피우는데 그게 또 하필 LG. 결국 OB는 손해만 봤다.
- 오거서, 윤거서(오승환, 윤석민 → 서동환)
2005년 신인 드래프트 때는 1차지명 때 휘문고의 김명제를 뽑았고, 2라운드에서는 전체 2번 픽으로 신일고의 서동환을 뽑았다. 그리고 두산은 김명제에 6억, 서동환에 5억의 계약금을 안겨주며 둘을 11억 듀오라고 불렀는데, 이 둘은 결국 11억 먹튀가 되며 나란히 망했다. 김명제는 선발에 조금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으나 2009년 폭망 후 음주운전 사고로 중상을 입고 선수 생명이 끝나버렸으며, 서동환은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다가 결국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 삼성에서도 시원찮은 모습만 보여주다가 결국 방출되었다. 그리고 이 해 드래프트 1라운드 5번으로 삼성에 입단한 선수가 바로 오승환이었다.[6] 그리고 오승환 바로 다음 순번에 지명된 선수가 윤석민이니 '윤거서'도 성립한다. 사실 오승환과는 달리 윤석민의 경우 2차지명 전체 1번픽을 가져간 롯데가 서동환을 지명했다면 두산이 윤석민을 지명했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지명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팬들에게 남는 아쉬움은 윤석민 쪽이 더 크다.[7] 다만 이 때만 해도 이미 서동환은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나올 정도의 특급 유망주였고, 전학으로 인해 1차 지명이 불가능했을 뿐이지 전학만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1차 지명을 받고도 남았을 거라는 평이 많았다. 두산이 고졸 대형 유망주 둘을 쓸어갔는데, 결과적으로 이 둘의 재능이 만개하지 못한 것이었으니 이상한 지명을 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 소거반(소크라테스 브리토 → 스캇 반 슬라이크)
2018 시즌 희대의 폭망 용병타자 지미 파레디스를 방출하고 두산은 빠르게 대체 용병을 물색했는데, 이 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퇴출 위기였던 소크라테스 브리토와 먼저 접촉했고 협상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인스타그램에서 KBO 관련 계정들을 팔로우하고 다수의 썰쟁이들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두산 프런트 관계자가 협상중인 선수들 중에 소크라테스가 있다고 인정도 하였지만 계약으로 이어지진 못했고, 대신 스캇 반 슬라이크가 왔다. 그리고 알다시피 반슬라이크는 그 파레디스가 그리워질 정도로 심각하게 못했다. 당시 두산이 눈독들인 선수 중에는 제레미 해즐베이커 등 나중에 다른 팀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되는 선수들도 많았는데, 소크라테스도 2022년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KBO에 오게 되며 처음 한 달은 부진해서 퇴출설까지 돌았으나 이후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며 리그를 씹어먹는 중. 다만 소크라테스 브리토는 여러 구단에서 거를 만한 사유가 명확하게 있어서 결과적으로 반 슬라이크가 폭망한 것이 아쉬운 정도로만 남았다고 봐도 무방한데, 바로 금지약물 복용 이력이 있었다는 것. 이 때문에 당시 두산이 안 그래도 금지약물 이슈로 구단이 내내 십자포화를 맞던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데려오기 쉽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8]
- 이거장(이주형 → 장규빈)
2020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은 추후 김재환의 뒤를 이을 좌타 슬러거 자원인 전의산 혹은 야수 최대어였던 이주형을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박세혁의 뒤를 이을 포수 자원을 생각했던 두산은 이 두 선수를 거르고 장규빈을 지명하면서 두산 팬들은 물론 드래프트 현장에서도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9] 이후 이주형은 당초 LG에서 2라운드로 지명되었으나 우승을 위해 확실한 선발투수가 필요했던 LG와 이정후의 시즌 아웃으로 리빌딩에 돌입한 키움의 의견이 맞아 떨어지면서 최원태 ↔ 이주형, 김동규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이주형은 키움에 들어오자마자 중심타자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는 동안 장규빈은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현역으로 군입대를 했으며 군입대 이후에 그나마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나 햄스트링 부상으로 재활에 들어가면서 두산 팬들의 속을 더욱 앓게 만들고 있다. 다만 전의산은 SSG에서 차기 4번타자로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려고 시도했으나, 2022년 첫 시즌의 기대치와는 다르게 2024년에는 공갈포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10] 사실 전의산은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여겨지는 2022년도 후반기부터 서서히 약점이 들어나 삼진머신으로 전락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23,24년의 부진은 충분히 예상 범위 안의 결과였다. 군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결과가 나올 듯 하다.
2. 현대 유니콘스 - 이거정(이종욱 → 정수성)
당시 이종욱은 만년 2군 선수였고 반대로 정수성은 비록 백업이긴 해도 1군과 2군을 왔다갔다하는 1.5군이었다. 또한 2005년은 정수성의 커리어 하이 시즌[11]이었고, 향후 성적 향상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 현대 구단은 미련없이 정수성을 택하고 이종욱을 방출한다.[12] 그 후 이종욱은 고교 동기 손시헌의 추천으로 어렵사리 두산 베어스의 입단 테스트를 봤고 두산 베어스에 정식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2013년까지 정수성의 통산 타율은 0.241, 127도루, 212득점. 이종욱은 통산 타율 0.293, 283도루 570득점. 그리고 올림픽 -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FA 대박. 게다가 이종욱이 정수근보다 5년 더 활약했다.
3. LG 트윈스 & KIA 타이거즈 - 이거이(이용규 → 이대형)
2번 항목과 비스~읏한 경우. 이용규와 이대형은 같은 컨셉의 발 빠른 테이블 세터 역할이었고 심지어 수비 포지션도 외야수로 같았다. LG 트윈스는 고민 끝에 이용규를 KIA로 보내고 이대형을 택하는데[13],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2013년 11월, KIA도 FA가 된 두 선수를 두고 똑같은 선택을 하고 만다. 그런데 이대형은 2014 시즌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고, 이용규는 부상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이대형은 바로 다음 해 신생팀 kt wiz로 이적하면서 KIA는 1년만에 둘 다 내주고 말았다.
4. 삼성 라이온즈 -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 거르고 지명의 끝판왕으로, 너무 사례가 많아서 별도로 정리가 필요할 정도다. LG가 선수 보는 눈은 좋은데 키워내지 못해서 멸망했다면 삼성은 아예 애초에 뽑는 선수들부터 하자가 아주 심하다.
- 데거홀(제이 데이비스 → 빌리 홀)
당시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쓸만한 용병을 찾던 중, 서정환 감독에 눈에 들었던 제이 데이비스를 발견해서 1라운드에 찰스 스미스를 지명하고, 2라운드에 당초 제이 데이비스를 지명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팀 내에 외야수가 이미 포화상태였다는 거고, 내야수 뎁스에 문제가 있었던 데다가 플래툰이나 대타 요원 등이 부족했던 문제로 인해 부득이하게 외야수 제이 데이비스를 포기하고 내야수 지명으로 플랜을 바꾸고 빌리 홀을 대신 영입한다. 하지만 빌리 홀은 기대와는 달리 내야 수비가 너무 형편없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했고, 왜 육상 선수가 되지 않고 야구 선수가 됐는지 의문을 가질 정도로 다리만은 빨랐기에 결국 중견수로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중견수로 보내는 선택까지 했으니 타격은 잘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왜 육상 선수를 하지 않고 야구 선수를 해서 이 모양 이 꼴인지 모를 정도인 미스테리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1999년은 희대의 타고투저였음에도 불구하고 타율 0.244 4홈런 47도루[14]를 기록한다.
반대로 한화 이글스는 2라운드에서 당시 이희수 감독의 판단하에 껄렁껄렁해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팀 내에 독한 선수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한번 긁어나보자 하는 심정으로 제이 데이비스를 2라운드에 지명했는데, 그 결과 1999년 제이 데이비스는 타율 0.328 30홈런 35도루로 첫 해에 30-30 클럽까지 가입하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수비가 부실하냐면 그것도 아니었고, 결국 그 시즌 한화는 챔피언을 먹었다. 그 후 데이비스는 총 7시즌 동안 한화에서 활동하며 외국인 선수 사상 최초로 통산 비율 스텟 집계 기준인 3천 타석을 만족하고 통산 타율 0.313(당시 3위) 출루율 0.383 장타율 0.533(당시 3위) 167홈런 108도루를 기록하며 한화 이글스의 중견수를 책임지게 된다.[15] 물론 이 당시에는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제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 구조였던 데다가 당시까지만 해도 스카우트보다 감독의 권한이 훨씬 더 막강했고, 이 결정을 내린 사람은 서정환 감독이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에게 책임을 묻기엔 어폐가 있기도 하다.
- 강거이(강민호 → 이정식)
2004년 드래프트 시점에서 삼성은 진갑용이 사실상 단독으로 포수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백업 포수가 시급했다. 대다수의 야구 팬들은 지역 연고 선수이기도 한 포철공고 강민호를 뽑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1차 지명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경쟁자가 박석민이었기 때문에 2차 지명에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포수를 뽑을 수 있는 타이밍이 되자 삼성은 고려하고 있던 포지션이 백업 포수라 그런지 대학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발휘하고 있던 이정식을 선택한다. 이정식이 비록 데뷔 첫 해부터 1군 백업으로 활약하며 목적은 달성하긴 했으나, 강민호의 이후 성장세를 감안하면 신인드래프트에서 팀 상황을 고려하는 선택의 위험성을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다. 그리고 강민호는 드래프트 후 14년이 지난 2018년이 되어서야 FA로 삼성으로 이적하여 삼성 팬들은 한을 풀 수 있었다.
- 발거가(블라디미르 발렌틴 → 라이언 가코)
삼성은 블라디미르 발렌틴과 라이언 가코를 놓고 고민하다 발렌틴이 일본 구단과 접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렌틴을 포기, 가코와 계약했다. 발렌틴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201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60개)과 MVP를 수상하는 등 괴물이 되었으나, 가코는 나믿가믿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 경우는 일본 구단과 돈싸움이 붙을 상황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차피 계약을 시도했어도 못 이겼을 것이 기정사실이긴 한데, 실제로도 외국인 연봉 상한선 제도가 없을 당시에도 일본 구단과 붙은 돈싸움을 KBO 리그 구단이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16]
- 박거이(박세웅 → 이수민)
2014년 1차 지명이 부활하고 경북고의 박세웅과 상원고의 이수민이 1차 지명 후보군에 올랐는데, 당시에 부족했던 삼성의 좌완 불펜진과 더불어서 10이닝 26k의 임팩트를 보여준 이수민을 지명하고 박세웅은 KT가 지명하게 된다. 하지만 박세웅은 KT에서 싹을 보여주고 트레이드로 롯데로 가서 안경 쓴 우완 에이스의 계보를 걷는다는 호평을 들을 정도로 롯데의 국내 1선발을 차지했지만, 이수민은 첫 년 박병호를 삼진 잡는 모습을 보여주며 삼성팬들을 기대하게 하였으나 상무 전역 후 큰 활약을 못 보여 주었고, 사실상 2군 뎁스 채우는 선수로만 남다가 선수 생활이 끝나버렸다.
- 김거박(김하성 → 박계범)
1차지명 이후 2014년 신인 2차 드래프트 당시 이전 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정현을 지명한 것처럼 김상수의 대체자를 꾸준하게 찾고 있던 삼성은 김하성을 지명할 수 있었으나, 류중일의 유격수 제일주의에 따라 당시에 박효준에 밀려 2루수를 보고 있던 김하성을 지명하지 않고, 이후에 박계범을 뽑는다. 물론 김거박과 이 사례는 다른 팀들도 한 번 거르고 넥센에서 뽑아서 잘 키운 사례로 보기에 오히려 류중일의 유격수, 멸치 쌕쌕이 제일주의를 비판하는 근거로 쓰이지 거르고 뽑았다는 예시로는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이 당시의 김하성은 박효준에 가려져서 유격수로 평가를 하기 힘들었다는 점과 여러 사정들로 인해 3라운드에서야 간신히 지명되었다.
- 보거벨(마이클 보우덴 → 콜린 벨레스터)
마이클 보우덴과 먼저 접촉한 구단은 삼성이었지만, 금액차로 의견 조정 중일 때 콜린 벨레스터가 삼성 프런트에 연락을 넣었고,그 놈의 합리 때문에중간에 두산이 스틸, 11월 16일에 보우덴과 65만달러 계약을 발표한다. 결국 삼성은 12월 19일 벨레스터와 5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보우덴은 KBO 역사상 13번째 노히트노런과 160K로 탈삼진왕을 거머쥐며 판타스틱 4의 일원이 되고 통합우승에도 기여했지만, 벨레스터는 2016 시즌 1호 퇴출 용병. 참고로 금액으로 봤을 때 웹스터 - 보우덴이 아니라 보우덴 - 벨레스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 노거이(노시환 → 이학주), 문거양(문보경 → 양우현)
2019년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기 이전 6월달 1차 지명 쯤에는 타자 리빌딩을 위해서 노시환을 1라운드에 염두에 두고 있던 삼성은 내핵으로 치닫던 김상수의 대체자를 구한다로 방향을 틀어서 AAA에 뛴 적 있고 상위권 유망주까지 평가받던 이학주를 1라운드에 지명하기로 선회한다.또 김상수 스노우볼또한 본래 문보경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가 이학주가 국내에서 연습하던 모교 충암고에서 발견한 양우현을 문보경 대신 3라운드에 지명한다. 하지만 결과는 노시환과 문보경은 각각 2023년부터 국가대표 주전 멤버로 발돋움하지만, 이학주는 구단 분위기에 부적응하고, 클러치 에러를 저지르며 찍히게 되고 결국 롯데로 트레이드 된다. 양우현은 신동수 SNS 막말 파문에 얽혔고 기대하던 좋은 성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학주의 경우는 앞의 사례와는 좀 다른 상황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대은이 전체 1순위가 기정사실이였고 2순위도 노시환보다는 이학주가 더 유력하다는 예측이 많았을 정도로 삼성의 이학주 지명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었을 정도라 대놓고 걸렀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여기에 2019년 당시에는 삼성이 고질적인 키스톤난에 시달리기도 했고 병역면제 판정으로 인해 병역 문제도 자동으로 해결된 이학주를 뽑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만약 한화와 삼성의 순위가 반대였다면 이학주가 한화로, 노시환이 삼성으로 갔을 것이다.
문거양의 경우는 잘잘못을 가릴 것 없이 명백하다. 문보경이 3년 연속 3할에 잠실 22홈런 타자 + 국가대표 병역면제 혜택은 물론 LG의 29년만에 우승에 혁혁하게 기여[17] 하며 문거양은 희대의 삽질이 되어 버렸다. 특히 문보경은 2024 시즌 마지막 경기인 대구에서의 경기에서 4안타(2홈런) 6타점을 몰아치며 3할 22홈런 101타점을 달성하였는데 라팍에서의 통산 OPS가 0.95에 달해 삼성팬들이 땅을 치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양우현은 아예 1군에도 못 올라올 정도로 폭망한 스카우트의 대삽질 케이스.
- 윤거차(윤동희 → 차동영)
2022년 신인 드래프트 때 윤동희가 3라운드까지 밀렸는데 삼성은 윤동희 대신 포수 차동영을 지명했다. 지명 후 스카우트팀장은 이미 1차 지명으로 이재현을, 2차 1라운드에서 김영웅을 이미 지명했기에 여기에 내야수 윤동희까지 지명한다면 포지션이 중복된다는 게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동희가 3라운드까지 밀린 건 수비 때문이라서 지명 전 팬들 사이에서도 윤동희에 대해서는 프로에서는 외야수로 전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삼성 스카우트는 외야수 전향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했는데, 그럼 또 이상한 게 6라운드에서 지명한 내야수 조민성에 대해서는 외야수 전향도 고려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윤동희 대신 지명한 차동영의 경우 당시 삼성 미래 포수진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지명했다는 반응도 있으나,[18] 아무리 그래도 3라운드감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다. 윤동희는 2023년 들어 주전 외야수로 성장했으나, 차동영은 입단 첫 해 2군에서 1할대의 타율을 기록하고 입대했다. 위의 문거양과 함께 명분도 없고 결과도 최악인, 대표적인 스카우트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19]
- 데거맥(맷 데이비슨 → 데이비드 맥키넌)
2024년 시즌에는 외국인 타자를 선발할 당시 두 명의 후보를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결국 삼성은 데이비드 맥키넌을 선택하면서 맥키넌과 계약을 맺었다. 맥키넌은 마이너리그에서도 홈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점 때문에 홈런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못하는 대신 컨택을 기반으로 중장거리 안타 생산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계약을 한 거였는데, 문제는 5월 이후 맥키넌이 큰 부진에 빠지며 팀의 외국인 타자 구실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맥키넌을 계약하면서 거른 후보가 NC 다이노스에 입단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삼성이 거른 이 선수는 2024 시즌에 홈런왕 타이틀을 획득한 맷 데이비슨.
사실 삼성이라는 구단 자체가 워낙 선수 육성이 잘 안 되는 팀이라 저 선수들이 과연 삼성에 와서도 터졌을지는 의문이다. 그 이유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체격 상관없이 고교 성적을 우선시로 보는 경향이 생겼을지도...
6. KIA 타이거즈 - 니거트(더스틴 니퍼트 → 트래비스 블랙클리)
구톰슨과의 재계약 무산으로 새로운 용병을 물색하던 중 니퍼트에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좌완이라는 메리트로 니퍼트를 포기하고 트래비스와 계약을 하게 되고, 니퍼트는 아킬리노 로페즈의 조언으로(?!) 두산 베어스와 계약한다.[20]
두산은 기아가 버린 투수를 주워다 쓰면 잘 되는 성향이 있는데(다니엘 리오스, 게리 레스, 마크 키퍼 등이 그 사례), 니퍼트도 예외 없었다. 2011년 최종 성적은 15승(3위) 6패 평균자책점 2.55(2위) 187이닝(2위) 150삼진(2위)로 리그를 씹어먹는 활약을 했고 2014 시즌까지 두산의 에이스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4년간 외국인 투수 최초로 4년연속 10승, 한 팀에서 5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5 시즌도 용병 최고 대우로 두산과 재계약, 정규 시즌에는 부진했지만 PS에 부활하면서 팀의 14년만의 우승에 기여를 했고, 16 시즌 MVP를 넘어 17년 현재 최고 몸값의 외국인 선수로 두산에 남아 있다.
그에 비해 트래비스는 전반부에는 준수한 활약을 했으나 후반부에 부진함을 보이며 평균자책점 3.48 7승 5패 1홀드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덕아웃에서 성격 때문에 문제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오면서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그 후 메이져에서도 활약한 걸 보면 그저 기아랑 스타일이 안 맞는 선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7. NC 다이노스 - 박거강(박세웅 → 강민국)
NC 팬덤에서 드래프트 얘기를 할 때 주로 나오는 소재다. 201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NC 다이노스와 kt wiz는 신생팀 자격으로 연고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1차 지명을 할 수 있었다. NC가 먼저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내야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졸 즉전감이었던 강민국을 먼저 지명하고 그 다음 kt가 박세웅을 지명하게 된 것이었다. 박세웅이 2015 시즌 초반 kt에서 에이스 노릇을 하다가 트레이드 이후 NC의 최대 라이벌팀, 나아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성장한 데 비해 강민국은 2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그저 그런 선수로 있다가 2018 시즌이 끝나고 홍성무와 맞트레이드되면서 kt wiz로 이적했다. 게다가 강민국은 kt에서도 방출되며 또다시 이적하게 되었다.
8. 롯데 자이언츠
- 강거손(강봉규 → 손균환)
1996년도 신인 드래프트는 기존의 고졸 연고 자유 계약에서 고졸 우선 지명으로 바뀐 첫 시기였다. 롯데가 지명한 3명 중 이정훈과 이재섭은 이해가 가는 지명이었지만 손균환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검증도 덜 된 데다가 투타에 걸쳐 맹활약했던 강봉규를 거르고 택한 선수였다. 손균환은 입단 후 오래 지나자 않아 방출되었지만, 강봉규는 OB의 지명을 받고 고려대로 진학해 타자로 완전히 정착한 후 뒤늦게 프로에 들어와서 특급까지는 아니어도 주전급 선수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 박거정, 김거정, 오거정(박건우, 김재환, 오재일 → 정재훈)
2014 시즌 후 장원준이 FA로 두산으로 이적하자 롯데는 FA 보상 선수를 지명했는데, 이 때 박건우, 김재환, 오재일 이 세 명 중 두 명, 그 중에서도 박건우는 거의 확실하게 풀렸던 상황이었다. 이런 기사가 나왔을 정도. 심지어 팬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 그러나 롯데의 선택은 아무도 예상을 못했던 베테랑 투수 정재훈이었고, 저 세 명이 이듬해와 그 다음해 골고루 포텐이 터지며 두산의 2연패를 이끌고 심지어는 박건우의 친누나와 장원준이 결혼하는 겹경사가 겹치는 와중에 롯데가 지목한 정재훈은 시즌 내내 2군에 있다가 2차 드래프트로 두산에 복귀한 뒤 대활약을 펼친 후 두산에서 은퇴식까지 하면서하지만 우승반지는 못 꼈지.이래저래 롯데 입장에서는 손해가 된 지명이 됐다.
- 린거듀(조쉬 린드블럼 → 펠릭스 듀브론트)
2017 시즌 종료 후 조쉬 린드블럼이 프런트와의 잡음 끝에 롯데와 결별을 택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두산이 더스틴 니퍼트와 재계약하지 않고 린드블럼과 계약했다는 핵폭탄급 소식이 터졌다. 이후 롯데는 메이저리그 선발+우승 경력이 있는 펠릭스 듀브론트와 100만달러에 계약했다. 하지만 린드블럼은 린철순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니퍼트의 향수를 완전히 지워버리며 두산에서 커리어 하이를 써 나가고 있으나, 듀브론트는 오락가락하는 애매한 성적만 찍다가 9월 11일 두산에게 거하게 털린 다음날 팀에서 방출되고 말았다.심지어 듀브론트는 두산만 만났다 하면 패했지. - 노거서(노시환 → 서준원)
2019년 드래프트에서는 부산 출신 내야수 노시환을 당시 지역 연고 내에서 지명이 가능했던 롯데는 투수가 필요했던 사정으로 인해 노시환을 거르고 서준원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노시환은 2년차인 2020 시즌부터 한화의 3루 자리를 확고히 차지하면서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어갔지만, 1차 지명에서 노시환 대신 지명한 서준원은 지지부진한 성장세는 둘째치고 미성년자 대상 범법 행위로 방출당했다.[21] 덤으로 똑같이 노시환을 거른 삼성이 뽑은 이학주 또한 롯데로 트레이드 됐는데 영건 투수와 지명권을 희생한 것치고 성적이 좋지 않아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9. SSG 랜더스
- 문거이(문경찬 → 이현석)
2015년 1차 지명에서 문경찬, 김택형을 거르고 이현석을 선택했다. 문경찬은 KIA로 가서 처음엔 패전조였으나 2019년 각성하여 평자 1점대 특급 마무리가 되었고, 김택형은 트레이드되어 고향팀으로 와서 부진하긴 하지만 1군에 꾸준히 얼굴을 보이는 중인데, 이현석은 2군에서도 2할 치는 백업 포수 신세다. SK빠들은 문경찬의 호투 소식이 들릴 때마다 끄동님을 욕하는 중.
- 김거이(김혜성 → 이원준)
2017년 1차 지명에서 김혜성과 김민수를 거르고 이원준을 선택했다. 지명 당시에도 SK팬들 사이에서 원체 내야 팜이 황폐화되어 있다 보니 김혜성이나 김민수를 뽑았다는 주장이 많았는데, 그 중 김혜성은 국가대표 내야수로 완전히 터지고 이원준은 성장세가 멈춰 있다가 후배를 배트로 폭행한 사건을 저지르고 방출되면서 최악의 망픽으로 남았다. 게다가 이 때 1차 지명 후보로 언급조차 안 되던 박치국은 두산으로 가서 터진 덕분에 박거이까지 탄생했다. 그나마 이 해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박성한을 건지는 데에 성공하면서 결과적으로 최악은 피하긴 했다.
11. kt wiz - 김거권(김주원 → 권동진)
김주원은 당시 1차 지명 후보로도 틈틈히 언급되었을 정도로 유신고등학교 야구부에서 각광받던 스위치 히터 유격수였지만, 이 당시 1차 지명은 무난하게 신범준이 지명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예상대로 2차 1라운드까지 내려왔고, 이 때까지만 해도 kt wiz가 2차 1라운드에서 무난하게 김주원을 지명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 당시 kt wiz는 2차 1라운드 지명권으로 즉전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김주원을 거르고 권동진을 지명했고, 결국 김주원은 NC 다이노스가 2차 1라운드에서 지명하게 된다. 하지만 권동진은 2년차까지도 팀에 그렇게까지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하면서 즉전감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전혀 못 살리고 있는 반면, 김주원은 NC 다이노스에서 2년차만에 팀의 주전 키스톤으로 자리를 잡으며 노진혁을 3루로 보내버리기도 할 정도로 유격수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데에 성공했다. 즉전감 뽑으려고 고졸을 거르고 대졸을 골랐더니 오히려 거른 고졸 선수가 즉전감이 되어 버리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23] 참고로 둘의 통산 sWAR은 2년차인 걸 감안해도 차이가 2 이상이나 벌어지고 말았고, 현 시점대로면 남태혁과 이대은에 이어 kt wiz 1라운드 잔혹사의 계보를 이어갈 것이 유력하다.
12. 키움 히어로즈 - 문거주(문보경 → 주성원)
문보경 거르고 주성원은 삼성의 문거양과 비슷하게 보면 된다. 김범석 거르고 김건희도 언급되고 있지만. 김건희 역시 투타겸업을 버리고 포수로 나름 잘 해주고 있어서 맹목적으로 김범석 거르고 김건희 소리는 줄어들고 있다.
13. 한화 이글스 - 레거윌(빅터 레이예스 → 닉 윌리엄스)
2024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에 알려진 사실인데, 2023 시즌 당시 브라이언 오그레디의 교체 외국인을 찾던 한화 이글스는 당시 대체 선수감을 구하지 못해서 심사숙고를 한 끝에 닉 윌리엄스를 대체 외국인 선수로 데려온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장타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인지 5툴 플레이어 타입의 교타자 한 명을 거르고 닉 윌리엄스를 선택한 거였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선수는 2024년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단일 시즌 202안타라는 신기록을 달성한 빅터 레이예스였다고 한다.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이 분야의 레전드는 1라운드 전체 1번으로 저스틴 벌랜더를 거르고 맷 부시를 택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2004년 드래프트가 있다. 벌랜더의 성공이야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고, 문제는 부시가 훗날 교도소 생활을 할 정도로 역대급 쓰레기 멘탈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결국 부시는 돌고 돌아 14년만에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벌랜더 외에도 부시를 뽑기 위해 걸러진 선수로 제러드 위버, 지오 곤잘레스, 닐 워커 등이 있다.[24]
- 1966년 2년차 신생팀인 뉴욕 메츠는 1라운드 1번으로 스티브 칠콧을 지명했고 이 지명은 훗날 두 가지 이유로 전설이 되었다. 왜냐하면 칠콧은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로 전체 1번으로 뽑히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한 첫번째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고, 칠콧을 뽑기 위해 거른 전체 2번 선수가 훗날 명예의 전당에 첫 투표로 입성하는 레지 잭슨이었기 때문이다.
- 1973년 텍사스 레인저스가 1라운드 1번으로 뽑은 데이비드 클라이드 역시 레전드로 꼽힌다. 긴 말이 필요없다. 전체 3번이 로빈 욘트, 전체 4번이 데이브 윈필드였다. 이 2명은 훗날 첫 기자단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전체 2번 존 스턴스 역시 올스타에 4번 뽑힌 훌륭한 포수였다. 반면 데이비드 클라이드는 18승 33패를 거둔 실패한 선수가 되었다.
- 2002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전체 1번으로 뽑은 브라이언 벌링턴도 역대급으로 꼽히는데, 이 선수를 뽑기 위해 거른 선수 중 명예의 전당을 노릴 수 있는 선수로 잭 그레인키, 조이 보토, 올스타급 선수인 프린스 필더, 스캇 카즈미어, 닉 스위셔, 콜 해멀스, 맷 케인, 존 레스터, 브라이언 맥캔, 커티스 그랜더슨 등이 있고, 대나드 스판처럼 올스타에 뽑히지 못했지만 커리어가 괜찮은 선수도 있고, 조 블랜튼, 제임스 로니, 제프 프랑코어, 조 선더스 같은 평범한 레벨의 주전급 선수도 있고, 멜빈 업튼 주니어 처럼 높은 기대치를 받고 전체 2번으로 뽑혔지만 불성실한 멘탈로 인해 기대치에 못 미쳤다고 평가받는 선수도 있다. 물론 이들 중 아무나 뽑아도 메이저리그에서 1승 9패로 폭망한 브라이언 벌링턴보다 몇 배는 나은 선수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래도 벌링턴은 훗날 NPB에 진출하여 5년간 좋은 활약을 펼친 덕에[25] 야구 인생 자체는 나름 성공한 편이다.
- 1992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으로 필 네빈[26]을 택했는데, 이 선수를 뽑기 위해 거른 선수가 바로 데릭 지터. 네빈은 199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휴스턴에서 고작 18경기만 뛰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7]로 간 뒤 2001년과 2004년에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활약해 휴스턴은 1라운드 유망주 골라서 남 좋은 일만 했다.[28] 그리고 휴스턴이 넘기고 양키스가 전체 6순위로 지명한 데릭 지터가 어떤 선수가 됐는지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 휴스턴 외에 지터를 거른 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신시내티 레즈였다. 물론 클리블랜드는 오마 비즈켈[29], 볼티모어는 칼 립켄 주니어, 신시내티는 배리 라킨이라는 전설적인 유격수들을 보유하고 있던 팀들이었기 때문에 굳이 유격수를 뽑을 이유가 없긴 했다.
- 휴스턴은 이에 그치지 않고 21년 후에 201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마크 어펠을 지명하게 된다. 그러나 어펠은 1차 은퇴를 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결국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결국 1차 은퇴까지 하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3번째로 전체 1순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은퇴하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될 뻔하기까지 했다가 2022년 은퇴를 번복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데에 겨우 성공했다. 그리고 휴스턴이 어펠을 픽하면서 거른 전체 2순위가 다름아닌 크리스 브라이언트. 여기에 전체 3순위로 지명된 콜로라도 로키스의 존 그레이도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30]
- 시애틀 매리너스는 2006년 드래프트에서 연고지 시애틀 출신이자 대학무대에서 활약하던 팀 린스컴을 먼저 지명할 수 있었지만 린스컴의 작은 체구와 불안한 내구성을 이유로 그를 거르고 브랜든 모로우를 지명했다. 문제는 내구성을 이유로 린스컴을 거르고 모로우를 픽했는데 모로우는 선천적 당뇨를 가지고 있어서 똑같이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때다 싶어 바로 린스컴을 지명해 2010년과 2012년 월드시리즈 우승 때 요긴하게 썼고, 린스컴은 사이 영 상 두 번을 타며 전성기를 보낸다. 물론 린스컴은 이후 내구성 리스크가 제대로 터지며 2014년 이후 몰락했지만, 전성기 시절 포스와 팀의 두 차례 우승을 이끈 활약상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을 한참 넘겼다.
같은 해 드래프트 6순위 지명권을 가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지명차례가 앤드류 밀러를 선택했는데, 이때 포기한 선수 중에는 클레이튼 커쇼가 있었다. 팀 린스컴도 같이 지명순위가 내려왔지만 디트로이트는 이 둘을 거르고 앤드류 밀러를 선택. 하지만 앤드류 밀러는 선발 투수로 성장하지 못하며 2012년에 불펜 요원으로 전향하면서 그나마 나아졌으나 이미 디트로이트를 떠나있었고[31] 이미 위에서 언급한 린스컴도 린스컴이지만 지명 7순위이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이때다 싶어 냉큼 지명한 클레이튼 커쇼가 어떤 선수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자세한 설명은 생략...[32]
참고로 이 해 드래프트는[33] 커쇼와 린스컴을 제외하고도 전체 3순위가 에반 롱고리아, 11순위가 맥스 슈어저였으며, 심지어 이 뒤에는 잭 브리튼, 알렉스 콥, 크리스 데이비스, 제프 사마자, 마크 멜란슨, 맷 레이토스, 데이비드 로버트슨 등이 있었다.
- 시애틀은 2005년 드래프트에서는 트로이 툴로위츠키를 거르고 제프 클레멘트를 택했다.[34] 그리고 2007년에는 제이슨 헤이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선수들을 거르고[35] 펠리페 오몽을 픽하는 등 신인지명 잔혹사를 이어나갔다. 빌 버베이시 시절 시애틀의 대표적인 삽질중 하나. 참고로 이 사람은 트레이드나 FA 영입에서도 재밌는 이야기거리를 많이 만들어냈다. 물론 시애틀에 안좋은 쪽으로(…).
-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등을 누르고 2번이나 지구우승을 시켜 명단장에 반열에 오른 앤드류 프리드먼의 얼마 안되는 삽질이자 흑역사로 2008년 드래프트를 들 수 있는데, 이때 템파베이는 5툴 유격수 팀 베컴, 공수에서 툴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 버스터 포지, 당시 대학리그를 지배하던 거포 3루수 페드로 알바레즈 셋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망주로써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던 페드로 알바레즈가 부상을 당하자 탬파는 베컴이 5툴을 두루 갖춘데 비해 포지의 파워툴이 조금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베컴을 1픽으로 지명한다. 그 이후 팀 베컴은 여러차례 부상이 겹치면서 메이저리그에서 2014년까지 단 3개의 안타를 때려내는데 그쳤지만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체 5순위 지명을 받은 버스터 포지는 자이언츠의 공수겸장으로 맹활약하고 MVP까지 수상했고 5년간 3번이나 월드시리즈를 우승하게 되니
같은 3인데 이렇게 다르다, 그것도 뉴욕 시절인 1954년 이후 56년만에 우승을 차지하고, 이후 두 번이나 더 우승을 차지한다! 이 계약에 대한 레이스와 자이언츠 팬의 반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6] 참고로 베컴과 포지를 제외한 주요 드래프트 결과는 2순위 페드로 알바레스, 3순위 에릭 호스머, 10순위 제이슨 카스트로, 28순위 게릿 콜.[37] 여기서 나온 말이 '포거베'. 이 지명은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공헌아닌 공헌을 했다.
- 드래프트는 아니지만 유망주 저울질 실패 역시 MLB도 존재한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제프 배그웰[38]이라는 호타준족 3루 유망주가 있었으나, 3루에는 이미 웨이드 보그스가 자리잡고 있었고, 1루에도 거포유망주 모 본이 있었다. 결국 1990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배그웰을 내주고 래리 앤더슨이라는 불펜 투수를 받아왔다. 이후 웨이드 보그스는 하락세를 보이자 FA때 뉴욕 양키스로 이적, 부활하며 우승반지도 차지하면서 보스턴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고, 모 본은 MVP급 성적을 내며 틀리지 않은 선택인가 했더니만 FA때 협상이 결렬되며 LA 에인절스로 이적했고 이후 먹튀로 전락하며 완전 망한데다 미첼 리포트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3관왕불명예를 달성한다. 그리고 래리 앤더슨은 1달밖에 못 썼다. 반면 배그웰은 휴스턴에서 신인왕-MVP 모두 수상했으며, 등번호 5번이 영구결번 처리되고 훗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다.
- 간혹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벌랜더를 거르고 다르빗슈 유를 영입했다는 식의 우스갯소리가 2017년 월드 시리즈 종료 후에 나오는 경우가 잦고 다저스가 벌랜더를 영입했어야 했다. 라는 의견이 꽤 많은데, 정확히는 이 벌거다는 성립할 수 없는 케이스다. 바로 다르빗슈 유는 논웨이버 데드라인에서 영입한 선수고 저스틴 벌랜더는 웨이버 데드라인에서 영입된 선수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39] 당시의 다저스는 사치세 리셋과 페이롤 문제, 그리고 구단 부채 문제로 인해 처음부터 저스틴 벌랜더를 영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었기 때문이다.[40] 그럼에도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이 휴스턴의 다르빗슈 유 트레이드 요청을 사심으로 거부한 여파와 함께 논웨이버 데드라인에서의 미적지근한 무브로 선수단의 불만이 터지자 결국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8월 31일 웨이버 데드라인 마감시한에 연 800만 달러의 연봉보조를 받아가며 저스틴 벌랜더를 영입해서 성공한 임팩트가 너무 커서 이런 이야기가 생긴 것이다.[41] 이 시기 다저스는 페이롤 감축과 사치세 리셋을 하기 위해 논웨이버 데드라인에 반 년만 쓰고 떠나보낼 수 있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형 매물을 찾다보니 발생한 일인데,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음에도 다저스는 2018년 시즌 개막 전에 사치세 리셋에 성공했다. 즉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과 스탠 카스탠 구단주는 기존의 방향대로 사치세 리셋을 우선시하는 방향을 그대로 고수를 한 것.[42] 결국 존 대니얼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시전한 다르빗슈 유 트레이드 거부와 함께 당시 다저스의 넉넉하지 못했던 페이롤과 사치세 등의 구단 사정, 그리고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극한의 탱킹을 하면서 텅텅 비운 페이롤과 함께 꼬박꼬박 받아먹은 사치세와 중계권료 등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적으로 이래저래 맞물려서 나온 특이한 케이스다.[43]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01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0번 픽으로 헌터 비숍을 지명했지만 비숍은 부상 등의 문제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며 4년차인데도 하이 싱글 A에 머무르다가 2023 시즌에는 아예 팀내 TOP 30 유망주 명단에서도 사라지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자. 그러나 고졸이긴 하지만 포지션이 같은 외야수인 6순위 뒤의 코빈 캐롤이 2023년 내셔널 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며 빼도박도 못할 캐거비가 되어버렸다. 이외에도 비숍 바로 뒤 순번에 뽑힌 알렉 마노아는 2022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마노아 외에도 자이언츠가 거른 선수로는 브라이슨 스탓, 조지 커비, 앤서니 볼피 등[44]이 있는데, 사실 자이언츠는 비숍말고도 애런 저지 거르고 크리스티안 아로요, 워커 뷸러 거르고 필 빅포드를 뽑는 등 2006년~2008년 3년간 팀 린스컴-매디슨 범가너-버스터 포지라는 3연타석 홈런을 날린 뒤 1라운더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45] 그래도 이 다음 해의 드래프트였던 2020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된 포수 패트릭 베일리가 2023 시즌에 데뷔 후 조이 바트[46]까지 밀어낼 정도의 기량으로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연착하면서 자이언츠의 1라운드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2.3. 일본프로야구
- 야나기타 유키, 아키야마 쇼고를 거르고 이시미네 쇼타를 뽑은 2010년 드래프트에서의 치바 롯데 마린즈는 역대급 개삽질 중 하나로 꼽힌다. 심지어 저 둘뿐만 아니라 야마다 테츠토도 걸렀다! 그나마 야마다는 고졸 내야수라서 롯데가 원하던 즉전감 외야수랑은 맞지 않아서 그랬다 쳐도 30-30을 밥먹듯이 기록한 야나기타와 홈런, 도루는 좀 적어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까지 이뤄낸 일본 최고의 중견수 중 하나 아키야마 쇼고를 전부 걸러놓고 발만 빠른 똑딱이에 컨택도 안 좋고 유리몸인 이시미네 쇼타를 뽑아버린 것은 그야말로 대실책. 당시 평가로는 이시미네는 대졸 외야수 최대어기는 했지만 그때도 장타포텐은 없었기에 소프트뱅크나 세이부는 이시미네를 포기하고 준족에 장타까지 겸비한 야나기타와 아키야마로 돌렸지만 롯데는 최대어라는 말에 덥썩 이시미네를 지명하고 제대로 망했다. 결국 2020년 기준 아키야마는 메이저리그에, 야나기타는 소프트뱅크와 대박계약을 맺고 여전히 주전 중견수로 뛰지만 이시미네는 방출당해서 코치로 전업했다. 참고로 고졸이라 거른 야마다도 입단 3년 차만에 주전 자리를 잡아 FA 대박계약을 맺었다.
-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역시 롯데에 버금가는 개삽질을 했다. 이 해에 오릭스는 1라운드 지명에서 3번이나 실패하면서 결국 고졸 외야수 최대어지만 1라감은 아녔던 고토 슌타를 어거지로 지명하고 고토는 예상대로 프로에서 망테크를 타고 있는데, 고토를 뽑을 당시 야나기타와 아키야마는 여전히 지명되지 않은 상태였다.[47] 고토는 그래도 수비에서 강점을 보여 한동안 백업멤버로 뛰어주다 주니치로 트레이드되어 어찌저찌 살아남긴 했다.
-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아키야마 쇼고를 건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역시 오노 유다이[48]를 거르고 오이시 타츠야를 시전... 다만 오이시는 당해 드래프트에서 사이토 유키와 함께 대졸 최대어였고, 오노는 4학년 시즌 중 어깨 부상을 입어서 4학년 때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오이시는 우완이고 오노는 좌완이라 우완 투수를 원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3. 타 종목의 사례
3.1. 축구
- 포항 스틸러스 - 최거최
- 사장 낙하산으로 선임된 최진철이 자진사퇴하고 데려온 사람이 포항의 레전드 중 한명인 최순호...이긴 한데 문제는 이미 최순호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포항 감독을 하면서 팀을 일거에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는 것. 이 시기 포항의 성적은 5-6-7-2인데 문제는 2도 제대로 된 2가 아니란것. 2004년 K리그는 전후기 리그로 성적 테이블을 따로 돌렸는데 전기 리그에서 아슬아슬하게 우승하긴 했지만 후기 리그에서 2승밖에 못거두며 팀을 꼴찌로 처박아버렸다. 게다가 1골 넣고 잠궈 버리는 10백 축구를 구사해[49] 팬들을 빡치게 만들었고 결국 2004년 감독 퇴진 운동이 일어났다.
- FC 바이에른 뮌헨 - 훔거브, 네거괴
- 2007년 12월 뮌헨은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과의 경쟁을 이기고 브라질의 신성 수비수 브레누를 영입했고 그러면서 자리가 없어진 성골 유스 출신 수비수 마츠 후멜스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임대 보냈다. 문제는 이후 도르트문트로 완전 이적한 후멜스가 월드클래스 리베로형 센터백으로 성장하는 동안 브레누는 보험금을 노리고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징역 살이를 했다. 그래도 후멜스가 결국엔 뮌헨으로 돌아왔으니 해피엔딩...인 줄 알았으나 2019-20 시즌을 앞두고 구단에서 매각을 결정하면서 도르트문트로 돌아간다.
- 이후 13/14시즌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하면서 보드진은 빅 네임 영입을 약속하고 펩은 네이마르 주니오르 영입을 요구하는데, 보드진에서는 위의 브레누의 전례 때문에 브라질 선수의 유럽을 거치지 않은 직행을 꺼리고 있었던 터라 네이마르 대신에 당시 도르트문트에서 떠오르고 있던 같은 나이의 신성 마리오 괴체를 영입한다. 그러나 네이마르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MSN의 일원이 되는 등 대활약한 데에 비해, 괴체는 신진대사장애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팀을 떠나게 되고, 심지어는 괴체의 영입으로 주급체계가 망가져 토니 크로스가 팀을 떠나는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팀을 떠나 도르트문트로 리턴을 하면서 페북 배경사진을 도르트문트 시절 바이언 상대로 골 넣고 세레머니하는 사진으로 변경해 뒤통수를 때린 것은 덤.[50]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남거염
- 2023시즌 수원은 이병근 감독과 김병수 감독 체제에서도 계속 강등권에 머물자 P급 라이센스를 준비 중이었던 염기훈에게 감독 대행을 맡기며 강등을 피하고자 하였으나[51]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결국 최초로 K리그2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수원 팬들은 염기훈이 감독 대행으로 맡아준 것에 대해서는 수고했으며 더 이상의 레전드를 잃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염기훈 대신 검증된 감독을 원했고, 실제로 승격 전도사라는 별명이 있는 남기일 감독이 수원 감독직 제안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원 삼성 구단은 남기일에게는 결국 끝끝내 접촉을 하지 않고 염기훈에게 정식 감독을 제안했고 염기훈이 이를 수락하면서 수원 팬들을 뒷목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기일은 결국 K리그에서 감독직을 찾지 못하고, 중국 슈퍼 리그의 허난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염기훈은 1~2위권을 유지하며 승격권에서 좀 하나 싶더니 어김없이 연패를 박고 승격권에서 멀어지다가 결국 자진 사임했는데, 정작 남기일도 허난 FC의 원체 답이 없는 팀 사정으로 인해 꽤나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본인의 역량 문제와 선수단 장악 이슈가 다시 터지다가 어찌저찌 생존을 하긴 했다.
3.2. NBA
NBA에도 찾아보면 유사한 사례가 많은데 일단 가장 임팩트가 큰 것은 이 짓을 자주 저지르는 것으로 유명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다.- 1984년 드래프트 순서는 휴스턴 - 포틀랜드 - 시카고 순이었다. 빅맨이 우대받던 당시 분위기상 휴스턴은 1픽으로 하킴 올라주원을 선택하였고[52], 포틀랜드는 샘 보위라는 센터를 지명하게 된다. 대학 졸업생인 이 센터는 대학 무대에서 우수한 활약을 남겼지만, 이미 무릎 부상 경력이 있어 위험하지 않나 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이미 가드 포지션이 클라이드 드렉슬러같은 유능한 가드들로 포화상태였기 때문에 센터인 샘 보위를 지명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샘 보위는 NBA에서 10년 정도 뛰기는 했지만 대학시절의 활약과는 달리 부상이 도져 출장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으며 성적도 10점 8리바 정도로 포텐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남긴 채 은퇴를 선택하고 만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프로스포츠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위픽 실패사례일 뿐,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다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이다. 문제는 샘 보위를 지명해서 포틀랜드가 놓친 선수가 다름아닌 마이클 조던이었다는 것으로, 이것이 지금까지도 미국판 김거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조롱의 대상이 되는 Sam Bowie Picks 사건이다. NBA 관련 인물란의 영상에는 역대 NBA 선수들로 판타지 드래프트 게임을 하는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에서 마이클 조던을 선택하려는 레지 밀러에게 찰스 바클리가본인은 착각해서 앨런 아이버슨 골라놓고"샘 보위?"라고 할 정도로 대중화된 일화. 게다가 설령 마이클 조던을 고르지 않는다 해도 아직 찰스 바클리와 존 스탁턴이라는 역대급 선수들이 2명이나 더 있었다.[53] 하다못해 샘 퍼킨스나 오티스 도프 같은 쏠쏠한 활약을 펼쳐준 급의 선수들도 있었다... 결국 ESPN 선정 'Worst Draft Pick 100'에서 영예의 1위로 선정되었다. - 2003년 드래프트는 1984년, 1996년과 더불어 NBA 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로 꼽히는 때였다. 1순위 픽은 역대 최고의 기대를 받은 유망주라고 봐도 무방한 르브론 제임스로 클리블랜드가 지명하는 행운을 누렸다. 문제는 2순위인데, 디트로이트의 차례였다. 카멜로 앤서니(이 해 3순위), 드웨인 웨이드(5순위), 크리스 보시(4순위)와 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망주들이 즐비했음에도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세르비아 출신의 18살짜리 신예 다르코 밀리시치를 뽑는다. 디트로이트로서는 먼 훗날을 내다보고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인데, 이런 모험을 해놓고는 정작 많은 출장시간을 보장해주지도 않았고 이로인해 밀리시치의 기량도 늘지 못했다. 이럴거면 대체 얘를 왜 뽑은거냐며 많은 비판이 나왔고, 밀리시치는 3시즌 정도 뛰고 올랜도로 트레이드되었다. NBA에서 10여년간 뛰었으나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우승은 루키 시즌에 버스탑승을 하며 동기들 중 제일 먼저 했다 - 2007년. 이번에는 포틀랜드가 1픽이었다. 이미 브랜든 로이나 라마커스 알드리지 같은 가드와 포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센터를 뽑자는 일념에서 포틀랜드는 대학농구판를 휩쓴 그렉 오든을 골랐다. 그러나 오든은
겉보기 나이에 걸맞게온갖 부상에 시달리며 제대로 채 뛰어보지도 못한 채 5년을 허송세월하다 결국 방출당하고 NBA에서 모습을 감췄다. 역시 여기까지만 보면 그러려니 할텐데, 2픽은 나중에 MVP를 차지하게 되는 케빈 듀란트였다. 물론 1984년 샘 보위와는 달리 그렉 오든은 2000년대 들어 희귀해진 정통센터로서 "잠재력은 데이비드 로빈슨이나 빌 러셀급"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유망주였고 드래프트 당시에도 많은 팀이 오든을 노리고 있었던 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예측조차도 1픽은 무조건 오든이라고 봤을 정도였기 때문에 포틀랜드의 선택 자체는 합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든이 저렇게 유리몸으로 전락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 2009년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픽을 2개나 가지고도 독박을 쓰게 되었다. 당시 미네소타는 트레이드를 통해 워싱턴 위저즈에게 받아온 5픽으로 스페인의 유망주 포인트가드 리키 루비오를 선택했다. 하지만 루비오가 바로 오지 않고 스페인에 잔류할것이라 예상했던 미네소타는 자신들의 6픽으로 또 다른 포인트가드 조니 플린을 뽑았다. 그러나 루비오는 슛 능력이 하나도 없는 반쪽짜리 선수로 정체되었고 플린은 3점 슈터로 활약을 펼치다 엉덩이 수술로 인해 2012년 이후 NBA에서 모습을 감추며 둘 다 꽝으로 드러났다. 한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루비오와 플린 바로 뒤인 7픽으로 또 다른 포인트 가드를 선택했는데, 7픽으로 뽑은 선수가 2015, 2016년 MVP이자 역대 최고의 3점 슈터인 스테판 커리였다.[54][55] 여기에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원래는 골든스테이트 다음 픽인 뉴욕 닉스가 커리를 지명할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얘기하였고 미네소타가 삽질을 하며 현실이 되는 듯 했으나.. 뜬금없이 골든스테이트가 커리를 지명한다. 커리의 지명 발표 직후 건물 안은 뉴욕 팬들의 한숨과 야유로 가득찼다. 골든스테이트가 커리를 지명한 이유는 당시 감독 돈 넬슨이 커리의 영입을 팀에 강력 추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넬슨은 "일생일대의 행운"이라며 커리를 극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뉴욕은 다음 순위로 조던 힐이라는 무명의 선수를 뽑았고, 결과는 실패했다.
- 2013년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1라운드 1픽을 가지고 앤서니 베넷을 지명한다. 그리고 그는 4년 만에 NBA에서 쫒겨나 역대 최악의 1픽이라는 불명예적인 타이틀을 얻었다. 클리블랜드를 굳이 변호하자면 2013 드래프트 당시엔 흉년이라 불릴 정도로 확실한 자원이 없었던 건 맞지만, 이후 픽에서 12픽 스티븐 아담스, 17픽 데니스 슈뢰더 등의 준척급 선수들과, 2픽 빅터 올라디포, 3픽 오토 포터 주니어, 10픽 CJ 맥컬럼, 27픽 루디 고베어 등의 스타들이 쏟아져 나왔고, 특히 15픽은 2021년 NBA를 말 그대로 씹어먹으며 역대 최초로 MIP-MVP-DPOY-파이널 MVP를 모두 수상한 그리스 괴인 야니스 아데토쿤보였다는 걸 생각 해보면 클리블랜드의 베넷 1픽은 그야말로 흑역사라 할 수 있다. 그나마 클리블랜드가 베넷을 트레이드로 빨리 손절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손해는 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NBA 파이널 우승으로 이어졌는데, 그 당시 받아온 선수가 케빈 러브다.
- 2014년 2라운드 41픽은 2020,2021년 백투백 시즌 MVP이자 2023 파이널 MVP 니콜라 요키치[56]였다. 위로는 30개가 넘는 무수한 픽들..
- 2017년 드래프트는 무려 1라운드 1,2픽이 모두 버스트였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1픽으로 마켈 펄츠를, LA 레이커스가
라바 볼의 관종짓으로 인해2픽으로 론조 볼을 지명했는데, 두 선수 모두 커리어 내내 부상으로 신음하며 실패하고 만다. 사실 두 선수 모두 아예 버스트라고 말하긴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으나,[57] 문제는 이후 픽에서 3픽 제이슨 테이텀, 5픽 디애런 팍스, 7픽 라우리 마카넨, 13픽 도노반 미첼,14픽 뱀 아데바요, 22픽 재럿 앨런 등등 올스타들이 줄줄히 쏟아져 나온 것. - 2018년 드래프트에서 새크라멘토 킹스는 1라운드 2픽이라는 높은 픽을 황금드래프트라 불리는 18드래프트에서 갖고 있었다. 그런 높은 픽으로 픽한 선수가 마빈 베글리 3세 이다. 4년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난 만큼 그 자체로도 버스트인데, 그다음 순위 3픽이 루카 돈치치, 5픽이 트레이 영이다. 심지어 11픽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에이스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3.3. 내셔널 풋볼 리그
드래프트를 무려 7라운드씩이나 하고, 미국 4대 스포츠 중 드래프트를 통한 선수 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리그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례는 당연히 셀 수 없이 많다.- 2000년 드래프트는 전체 1번인 팀 카우치를 포함해, 유난히 쿼터백들이 이후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망해버리는 일이 많은 해였다. 와중에 유일하다시피 프로 무대에서 통한 선수는 상위 라운드도 아니고 6라운드 199번으로 지명된 선수인데, 그 선수의 이름이 바로 톰 브래디다.
- 2005년 드래프트 당시, 전체 1픽을 쥐고있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는 새로운 주전 쿼터백으로 두명을 두고 고민한 끝에, 그 중 알렉스 스미스를 지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냥저냥한 활약만 보이다 결국
이젠 사회운동가가 된콜린 캐퍼닉에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서 캔자스시티 치프스로 이적한다. 물론 그곳에서는 반등하여 플레이오프에 거의 매년 나가기는 했지만...그리고 나이너스는 지금까지도 고질적인 쿼터백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진출한 두 번의 슈퍼볼도 어중간한 QB를 코칭과 다른 스타급 선수들로 메꾼 느낌. 나이너스는 스미스를 지명하기 위해 로컬 보이였던 다른 선수를 걸렀고, 그는 1라운드 후반까지도 호명되지 않으며 그린 룸에 초청받은 선수가 2라운드로 밀려나는 본인에게는 엄청난 굴욕과 사무국에는 갑분싸 상황이 연출될 뻔했지만, 결국 24픽에 그린베이 패커스에 지명되었다. 그가 바로 애런 로저스로, 그는 드래프트 후 슈퍼볼 1회 우승, 시즌 MVP 4번, 슈퍼볼 MVP 1번, 5번의 올프로(1st team 4회, 2nd team 1회)에 순수 실력은 역대 최고라는 말까지도 나오는???레전드가 되었다.[58] - 2007년 드래프트는 캘빈 존슨, 조 토마스, 아드리안 피터슨, 마션 린치, 대럴 리비스, 그리고 나무위키 항목은 없지만 패트릭 윌리스, 에릭 웨들, 마샬 얀다 등 레전드급 활약을 펼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거나 차후 입성이 확실시되는 선수들이 쏟아져 나온 해였다. 그리고 당해년도 1픽을 가지고 있던 오클랜드 레이더스가 뽑은 선수는 쿼터백 자마커스 러셀이었고, 그는 리그 역사상 최악의 폭망픽 중 하나가 되어 레이더스의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일조했다. 그나마 2007년 드래프트된 쿼터백 중에서는 성공사례가 없으니 아래의 마홈스 거르고 트루비스키가 김거김에 더 알맞는 사례로 꼽힌다.
- 2017년 드래프트 당시, 시카고 베어스는 제이 커틀러를 내보내고 새로운 쿼터백을 지명하여 리빌딩을 하려 하였다. 그런데 시카고는 불안했는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로부터 17년 1라운드 2픽을 받아오는 대가로, 17년 1라운드 3픽과 3라운드, 4라운드, 그리고 18년 3라운드 픽을 내주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건 나이너스는 쿼터백을 지명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베어스는 괜히 픽만 3개 낭비한 셈이 되었다.[59] 그리고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고른 선수는 바로 미첼 트루비스키였는데, 이 선택 또한 비록 그가 직전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고는 하나, 1년 반짝한 선수였다는 점에서 엄청난 욕을 먹었다. 2018년에는 무려 프로볼에 선발되고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면서 베어스는 드디어 프랜차이즈 쿼터백이 나타나는 듯 했다. 그러나 2019시즌 3년차가 된 그는 리그 최상급 수비력을 보유한 팀의 발목을 잡으며 리그 최악의 주전 쿼터백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4년차인 2020시즌에는 어찌저찌 주전으로 나왔으나 결국 베어스는 5년차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트루비스키는 팀을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트루비스키를 주전 QB로 원하는 팀이 전혀 없어 트루비스키는 조쉬 앨런이 건재한 버팔로 빌스에 백업 쿼터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트루비스키보다도 더 한 버스트는 많다.[60] 의외로 트루비스키는 버스트의 대명사임에도 프로볼 선정 경험이 있고, 2022 시즌에는 무주공산이 된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주전 QB 자리를 일단 차지하는 등 꾸준히 찾는 팀이 존재한다. 그러나 트루비스키 픽의 평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못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를 뽑기 위해 지불한 대가와 그 대신 뽑을 수 있었던 다른 선수들의 존재 때문이다. 불행히도 베어스는 트루비스키를 지명하기 위해 풀타임 첫해인 2018 시즌 리그 MVP에 팀을 AFC 챔피언십까지 인도하고 두 번째 해인 2019시즌 슈퍼볼 우승과 함께 MVP를 차지한 리그 최고의 쿼터백[61]케찹맨패트릭 마홈스[62], 그리고 꾸준히 프로볼에 선정되며 휴스턴 텍산스의 쿼터백 잔혹사를 끝낼 것이 유력했으나 언해피를 띄우고 다수의 성폭행 혐의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결국 팀을 떠난드션 왓슨[63]을 걸렀다. 아무리 시카고가 전통적으로 쿼터백으로 대표되는 패싱공격보다는 수비와 러싱에 강점을 가진 팀이라지만, 이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다고밖에 볼 수 없고, 차후에 마홈스와 왓슨의 활약에 따라 평가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사실 이미 더 내려갈 곳도 없다다른 포지션까지도 포함한다면이미 전체 1번에서 불려가서 없었지만마일스 개럿이 있고, 러닝백들만 해도 2019시즌 또 다른 MVP 후보 크리스티안 맥카프리[64], 2020시즌 동 포지션 리그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달빈 쿡[65]과 알빈 카마라[66], 그 외에도 레너드 포넷[67] 등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들이 그 해에 드래프트되었다. 결론적으로, NFL 역사상 최악의 픽을 고르라면 1순위로 꼽히는 짓거리였다는것.[68] 결국 해당 삽질은 밈으로 자리잡아 구글에 bears를 치면 'Bears draft Trubisky'가 자동완성 되기에 이르렀다. - 2018년 드래프트 당시, 전체 3번 픽을 가진 뉴욕 제츠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베이커 메이필드를 지명하자 오히려 대학 최고의 쿼터백이라고 불리던
butt fumbler 마크 산체스의 직속후배샘 다놀드를 지명했다. 그리고 제츠의 디비전 라이벌 버팔로 빌스는 트레이드로 픽 순번을 올려서 전체 7번으로 조시 앨런을 지명했다. 드래프트 당시에는 제츠는 대성공, 빌스는 뻘픽이라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평은 180도 뒤집어져 버렸다. 다놀드는 발전 없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3년만에 트레이드되어 제츠의 잔혹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당시에 뻘픽이라고 여겨지던 조시 앨런은 팀을 2년 연속 지구 우승으로 이끄는 엘리트 쿼터백으로 성장해 빌스의 암흑기를 끝냈다. 또한, 이 시즌에 1라운드 마지막인 32번 픽으로 지명된 라마 잭슨은 2019년 MVP를 수상했다. 물론 제츠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 드래프트 당시의 평가는 베이커 메이필드나 다놀드가 조시 앨런이나 라마 잭슨보다 압도적인 우위였다.[69] 게다가 샘 다놀드는 트레이드된 캐롤라이나 팬서스에서도 부진하면서 오히려 그냥 제츠가 운이 더럽게 없었다는 평이 우세하다.안 될 팀은 뭘 해도 안된다[70][71] -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2020년도 드래프트에서 WR 보강을 위해 1라운드 21픽으로 제일런 리거를 뽑았으나, 리거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바로 뒤에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뽑힌 저스틴 제퍼슨은 데뷔 후 2년 연속 올프로 팀에 들며 리그 최정상급 리시버가 되었다. 그리고 이글스는 결국 2022년도 오프시즌에 리거를 버렸는데, 그렇게 버린 리거를 주워간 팀이 하필 바이킹스였다(...)
- 2023년 전체 최하위는 시카고 베어스, 뒤에서 2위는 휴스턴 텍산스였다. 그런데, 시카고는 2023 드래프트의 전체 1번 픽을 다수의 픽을 받고 캐롤라이나 팬서스에 팔아버렸다.[72] 팬서느는 전체 1번으로 브라이스 영, 텍산스는 전체 2번으로 C.J. 스트라우드를 지명했다. 그런데 1년차부터 스트라우드가 대폭발했고, 반대로 영은 여전히 못하고 팀은 전체 꼴찌로 떨어져서[73] 벌써부터 스거영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팬서스의 웨폰이나 오라인이 32개 팀 중 32개일 정도로 처참하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브라이스 영한테는 이러한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겠지만, 1픽 QB 하나 얻겠다고 팀의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린 팬서스 구단주 데이비드 테퍼 및 프런트진은 쉴드의 여지 없이 리빌딩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혹평 세례가 이어지고 있다.[74][75]
3.4. 한국프로농구
남자 농구의 경우 서울 SK 나이츠의 '문거박', 문태종 거르고 박승리가 대표사례로 언급된다. 오랜 암흑기를 끊어낸 SK 나이츠는 2013년 혼혈드래프트에서 1순위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문태종을 거르고 KBL이 처음인 박승리를 지명했다. 문경은 감독은 당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이 후 SK 구단에서 3년간 성장해나가면서 괜찮은 수비형 선수가 되었지만, 2016년 3년 안에 귀화해야 한다는 규정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 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구단에서 성장시키려고 믿고 뽑았던 선수인데 이렇게 짧은 시즌밖에 뛰지 못하고 떠나버리게 됨으로서 실망한 팬들이 많았다.여기까지라면 잘못된 선택을 한 드래프트로 그칠 화제이지만, 2015-16시즌 SK 나이츠에서 3년간 뛰었던 헤인즈, 그리고 문태종을 영입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구단이 SK가 플레이오프에서 2번이나 물을 먹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를 3-0 전승으로 꺾어버리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해 문거박은 다시금 농구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거기다 해당 시즌에 SK 나이츠는 영입한 선수들[76]이 전부 먹튀가 되어버리는 대참사가 터져, 선수단이 거의 와해되어버렸다. 3년이나 더 젊었던 애런 헤인즈, 문태종, 김선형, 김민수, 박상오, 최부경, 변기훈. 주희정과 함께 우승에 도전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이후 2017-18 시즌에 헤인즈 없이 우승을 하긴 했다.
인천 전자랜드의 '벤거박' 또한 유명한 사례이다. 벤슨 거르고 박성진. 차기 드래프트 최대어였던 김종규 지명을 위해 시즌 버리기 모드(…)에 들어간 LG는 로드 벤슨을 팔아서 유망주 데려오기에 힘쓴다. 당시 LG와 접촉을 한 구단은 우승을 노리던 모비스와 전자랜드. 그리고 벤슨의 친정팀이자 일단 6강만 가면 사고 칠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던 디펜딩 챔피언 원주 동부였는데, LG는 이 때 우선적으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모비스에게 함지훈, 전자랜드에게 정영삼, 동부에게 윤호영을 제시해버린다. 당연히 구단들의 입장은 '이뭐병...' 이에 울산 모비스는 LG에 있던 또 다른 용병인 아이라 클라크로 눈을 돌렸고, 동부는 포기하고 시장에서 철수.
결국 남아있는 전자랜드와 협상을 하게 되었는데 정영삼으로 이미 퇴짜를 맞은 LG는 차선책으로 박성진을 요구한다. 사실 박성진은 당시 군 복귀 선수는 한 명만 등록 가능하기 때문에 12-13시즌 뛸 수 없었던데다가 군입대 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전자랜드 입장에서는 거저먹는 트레이드. 전자랜드는 사전에 이미 코트니 심스를 영입한 SK에겐 약세였지만, 울산 모비스에게는 3승 1패로 강세였다. 게다가 올해 뛰지 않는 선수+식물 용병으로 당시 KBL 최고의 센터와 최고의 테크니션의 용병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 그런데 이 트레이드를 전자랜드가 거절했다! 이유는 우리 선수를 줘가면서 까지 하기 보다는 있는 선수로 성과를 내고 싶어서. 뭐 당시 전자랜드는 강한 편이였으니까 그럴 수는 있었겠지만 여기서 전자랜드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울산 모비스가 로드 벤슨을 영입한 것이다! 모비스는 커티스 위더스와 향후 3년의 신인 드래프트 중 LG가 원하는 연도 하나를 택해서 그 해의 1라운드 픽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를 했다. 모비스는 선수 출혈이 없이 식물 용병을 처리하고 역대급 트윈타워를 구축하며 4강에서 전자랜드를 만나 리바운드에서 압도하며 전랜을 압살한다. 그리고 모비스는 우승한 다음날 김시래가 LG로 이적하며 앞서 발표된 향후 3년 중 LG의 택 1 신인픽 행사는 없던 조건이 되었음을 알린다. 사실 김시래와 신인픽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고 플레이오프에서 김시래가 날아다니자 바로 김시래를 선택.
아무튼 전자랜드가 이렇게 좋은 조건을 발로 차버리고 지킨 박성진은 기대에도 한참 못미치는 성적을 보이며 자팀팬들에게 미움을 받기에 이르렀고, 결국 FA로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한 뒤에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계약 만료 후 조용히 은퇴했다. 그리고 전자랜드는 이후 4년 뒤에 버튼 거르고 셀비, 이른바 '버거셀'로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고 말았다.
2018년 KBL 드래프트에서 '변거박' 사례 역시 유명하다. 1순위 지명권을 얻은 부산 KT 소닉붐이 당초 예상을 뒤엎고 박준영을 지명하였고, 2순위 지명권을 가진 안양 KGC 인삼공사는 변준형을 지명했다. 다만 이 사건을 일으킨 진짜 원흉은 김기윤, 박철호로, 이들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부상 및 임의탈퇴 조치가 컸다.
또한 같은 날 KT가 KGC로부터 한희원과 김윤태를 받는 조건으로 박지훈을 보내는 2:1 트레이드가 있었고 실제로 몇몇 기사들이 드래프트 픽이 2:1 트레이드와 연계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저 2:1 트레이드 자체 또한 당시에도 팬들이 납득하기 힘든 트레이드였고 이후 나타난 결과 또한 KT에게 이득이 없었다.[77][78]
이후 KGC는 KT 덕분에 순식간에 이재도-박지훈-변준형으로 이어지는 가드 리빌딩을 할수 있었고, 반면 KT는 트레이드 이후 가드진의 줄부상으로 잠시 위기에 빠졌었다.[79] 다만, 2020-21 시즌 들어서 박준영이 정규 시즌에서 점차 밥값을 하고, 변준형이 그 이후 주춤하면서 윈윈이 되는듯 했지만, 6강 PO에서 변준형의 맹활약과 대조된 박준영의 버로우로 인해서 올해도 100% 변거박 탈출에는 실패했고 그 해에 KGC는 플레이오프에서 10연승으로 우승을 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KGC와 KT가 4강에서 만났는데, 4쿼터 79:79에 20초가 남은 상황에서 변준형이 김승기 감독의 작전을 이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인지 혼자서 순간적으로 빈 공간을 파고들어버려서 4쿼터 0.8초를 남겨두고 결승 위닝샷을 본인이 직접 해결하면서 KGC의 챔프전 진출과 KT의 4강 탈락을 결정지어버려서 KT는 또 변거박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그 밖에는 허웅 거르고 김지후, 이른바 웅거후도 간간히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이쪽은 4순위 픽을 받았던 전주 KCC 이지스의 허재 감독이 당시 아직 지명되지 않았던 자신의 아들 허웅을 지명할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아들의 실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지만 팀에게나 허웅에게나 KCC의 지명은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다른 선수를 뽑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80] 결국 허웅 대신 다른 선수를 지명하기로 한 뒤에 고민 끝에 지명한 선수가 김지후라서 변거박만큼 많이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 편. 대신 지명을 한 김지후가 부상으로 인해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떠났지만, 허웅은 원주 DB 프로미의 핵심 가드로 자리를 잡는 데에 성공했으니 허재가 당시 허웅을 지명하지 않은 이유 자체는 이뤄진 셈이긴 했다.[81] 또한 후에 허웅은 KCC로 FA 이적하며 결국 KCC와도 연을 맺게된다.
KCC는 이후 2017년 드래프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16-17 시즌을 앞두고 김태술과 전태풍의 공존에서 실패했던 KCC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과 트레이드로 김태술 + 2017 2라운드 지명권 <-> 이현민 + 2017 1라운드 지명권을 트레이드 하는데에 성공했다. 그 후 삼성이 실제로 1.5%의 확률을 뚫고 3순위에 지명되었으나 이미 지명권 트레이드가 된 상황이라 KCC에게 3순위가 돌아갔고 KCC는 본인 픽인 5순위까지 얻으며 가장 유리한 순번을 얻는 데에 성공하였다. KCC는 3순위로 포인트가드 유망주인 유현준을 지명했고 5순위로는 슈터인 김국찬을 지명했다. 그런데 4순위가 안영준이고 6순위가 김낙현이다. 안영준과 김낙현이 모두 각 소속팀에서 핵심 멤버로 성장한 동안 유현준은 전창진 감독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밀어주었으나 부족한 피지컬과 슈팅 정확력 등에서 발목이 잡히며 KCC 팬들의 뒷목만 잡게 만들고 결국 허웅의 FA 보상선수로 DB로 가게 되었고, 김국찬 역시 잠시나마 좋은 활약을 보여주긴 했으나 19-20 시즌 도중 울산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82][83]
서울 삼성이 2021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뽑은 이원석과는 반대로 2순위 하윤기, 3순위 이정현의 활약이 부각되면서 하거이와 이거이가 나오고 있다. 다만 이는 구단에서 외국인 농사에 처참하게 실패하는 바람에 이원석을 받혀줄 빅맨이 없었던 점도 한몫을 했고, 여기에 팀의 색깔이나 플랜까지도 프런트와 현장에서 제대로 만들지 못하며 그 때문에 출전 시간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다가 부상이 오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여기에 이원석 본인도 첫 두 시즌까지는 못했던 적은 없고 나올 때마다 그래도 미래가 기대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답이 없는 팀 상황이 지속되면서 세 번째 시즌에는 성장이 정체되면서 슛마저 소극적으로 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나마 하는 공격마저도 야투 성공률이 빅맨인데도 불구하고 40프로 미만일 만큼 실력이 퇴보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점 수비 전용 선수가 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3.5. V-리그
남자 배구의 경우, 이경수에 올인했던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가 결국 지명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그 대가로 수많은 알짜 선수를 놓치며 현재까지도 고생 중이다. 이후 건진 선수는 겨우 하현용과 김요한뿐이고, 성적 또한 단 다섯 번의 봄 배구(2005, 2005-06, 2010-11, 2020-21, 2021-22)에 그쳤다. 그나마도 2005 시즌은 시범 시즌이었고, 2005-06 시즌은 대한항공의 외국인 선수가 부실한 덕을, 2010-11 시즌은 당시 첫 시행되었던 준플옵 제도 덕을 봤다. 오랜만에 오른 2020-21 시즌은 단판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단 한 경기로 끝났다. 그래도 2021-22 시즌에 V-리그 출범 이래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준우승을 하며 조금씩 암흑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또 2010년 드래프트 당시 1라 픽에서 곽승석 거르고 정성민(일명 곽거정)이라는 병크를 터뜨리면서 팀의 리베로, 세터는 실력도 그저 그런데 카드만 많고, 정작 써먹을 윙 공격수가 모자라게 되는 사태를 초래했다.[84]세 시즌 연속 신인상 수상자를 낸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도 15-16시즌 들어 신영철 감독의 2013 드래프트 당시 진성태 거르고 우상조, 2014 드래프트 당시 노재욱 거르고 오재성으로 배갤서 왈가왈부했다.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두 시즌 연속으로 드래프트를 삽질했다. 2020 드래프트 직전 김재휘를 KB손해보험으로 보내면서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온 뒤 해당 지명권이 1순위 지명권이 되면서 당시 최대어 임성진을 뽑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정작 뽑은 선수는 김선호. 이렇게 현대캐피탈에서 거른 임성진은 다음 지명이었던 한국전력이 바로 지명했고, 첫 해는 김선호가 신인상을 받으며 앞서가나 했지만 그 이후 임성진이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역전이 되다 못해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2020-21시즌 도중 신영석을 비롯한 다수의 선수를 한국전력으로 보내면서 역시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왔는데 이 지명권도 1순위 지명권이 되면서 2021 드래프트 최대어 정한용을 뽑을 기회가 두 번[86]이나 있었으나 정작 뽑은 선수는 홍동선과 정태준. 이렇게 현대캐피탈에서 거른 정한용은 삼성화재와 지명권 트레이드로 3순위 지명권을 들고 있던 대한항공이 지명했고 홍동선과 정태준의 거의 경기에 못 나오는 사이 정한용은 2023-24 시즌 잠재력을 대폭발시키면서 순식간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렇게 임성진 거르고 김선호(일명 임거김), 정한용 거르고 홍동선(일명 정거홍)[87]은 최태웅 감독의 대표적인 드래프트 뻘짓으로 손꼽히고 있다.
여자 배구는 다양한데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만 빼면 사례가 많다.
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제니스(現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드래프트 삽질도 있는데, 팀 센터진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센터 유망주를 거르고 이도저도 아닌 라이트 공격수만 지명하고 센터로 돌리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양효진 거르고 하준임[88]은 전설급. 그리고 7년 뒤인 2014 드래프트에서는 문명화를 거르고
GS칼텍스 서울 KIXX의 드래프트 삽질도 있다. 오죽하면 해당 항목에 별도 설명이 따로 있을 정도.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쌍으로 백목화를 날려먹는 뻘짓을 저질렀다. 2008년 여름 FA였던 한송이를 현대로 보내면 지들이 꼴찌할까 봐[90] 두려웠던 도공이 대놓고 현대 이적을 사업권을 무기로 막았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고속도로와 관계 있는 팀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등) 노골적으로 막았고, 결국 한송이는 차선책으로 고등학교 후배가 많았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이적했다.
또 하나의 사실은 2007 드래프트 당시 도로공사가 2라운드에서 백목화를 지명하려는 생각은 했는데 앞에서 현대건설이 픽하면서 못 데리고 왔다고.
2013 드래프트에서도 병신짓을 저지르는데, 바로 고거공(
그리고 2014년 또 실수를 저질렀는데, 2012-13년 시즌 종료 후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떠났던 김사니가 다시 V-리그로 복귀할 때 당시 주전세터 이효희가 이적한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로 이적 시켜주는 대신 보상 선수로 신연경을, 보상금 대신에 도로공사로부터 받아올 보상권[97]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게 드래프트와 팀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는데 바로 오거곽(오지영 거르고 곽유화).관련기사
이후 2014 안산 우리카드배 KOVO컵에서 오지영은 당시 국가대표 차출[98]로 빠진 김해란의 공백을 말끔히(덤으로 14-15시즌 도중 김해란이 올스타전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이후에도) 메꾸었지만, 곽유화는 신연경과 정시영에 밀려 백업으로 밀렸다. 게다가 준결승전 당시 신연경이 무릎 부상을 당해 한 시즌을 통으로 날리게 되자 레프트 라인에 단 둘[99]만 있는 상황이라 결국 드래프트에서도 이전 날 혹사로 어깨가 아작난 조송화를 밪춰줄 수 있었던 국가대표 세터 이다영을 포기하고 지명 당일 국제 대회에서 부상을 당했던 차세대 거포 이재영을 지명하게 되었다.
두 시즌 연속 정규 리그 우승을 한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도 오프시즌에 했던 삽질 덕에 고통 받았다. FA였던 이효희를 놓치고 데려온 김사니가 답답한 토스워크를 선보이는 것도 모자라 팀의 원활한 소통을 희석시켰으며, 카리나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데려온 데스티니 후커도 포지션이 라이트라 수비는 아예 포기하고 사기적인 공격력을 보여야 했는데, 초반엔 시동이 안걸리고, 전반기 막판엔 발목 부상으로 속 터지게 했다. 가뜩이나 전반기에 리시브가 안 되고 김희진, 박정아가 국대 후유증으로 달갑지 않은 모습과 같이 어우러져 따로따로 노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채선아에 집중타를 맞으며 리시브 성공률도 낮다.
18-19시즌 앞두고는 주전 리베로로 노란 거르고 한지현 이었는데 한지현을 영입하며 노란을 백목화 트레이드 카드로 썼지만 한지현은 정규 시즌 8경기 만에 팀을 나갔고 백목화는 2019년 들어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며 18-19시즌 4위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이고은 거르고 이나연이라는 희대의 뻘트레이드로 둘다 손해인 루즈-루즈 트레이드 였지만 그나마 3위한 이고은이 승리자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염혜선 거르고 이나연이라는 이정철 감독 희대의 병크로 팀을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는데 노란 거르고 한지현도 모자라 염혜선, 이고은 거르고 이나연, 고예림 거르고 표승주라는 희대의 병크를 19-20시즌에 한꺼번에 터뜨리며 IBK기업은행을 위기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2012년 드래프트에서는 무려 세 팀이나 정미선을 날려먹는 희대의 뻘짓을 저질렀다. 전체 1순위를 차지한 GS칼텍스 서울 KIXX가 이소영을 뽑으면서 대혼란이 벌어졌는데 흥국생명이 이진화, 기업은행이 신연경, 도로공사가 노금란을 지명하면서 현대건설이 정미선을 지명했는데 이 픽이 현대건설에겐 역대급 스틸픽이 된 반면 흥국생명, 기업은행, 도로공사는 희대의 뻘픽이 되면서 세 팀의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물론 정미선도 부상 이후 내리막을 타고 16-17시즌 이후 방출되면서 묻혔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18-19 드래프트에서 정거박을 실현했다. 정지윤 거르고 박혜민을 선택한 것. 야심차에 1순위로 박혜민을 선택했으나, 박혜민(Outside Hitter)이 경기에 출전하는 빈도는 높지 않다. 하지만 차상현의 선택은 2020-2021 시즌의 6라운드에서 복선이 되었다. 정지윤을 이용해 흥국생명을 꺾은, 차도살인(藉刀殺人)의 사례이기도 한데, 정지윤과 박혜민은 차 감독이 청소년대표팀을 맡을 때 지도했던 선수였다. 2021년 4월 28일, GS 박혜민은 인삼공사의 최은지와 맞트레이드 되었다. 최종적으로 정거박은 아니라 정거최(정지윤 거르고 최은지)로 변한 셈이다.
3.6. e스포츠
- 진에어 그린윙스 - 쵸거야
- 아마추어 시절 최고의 유망주였던 야하롱과 또다른 유망주였던 쵸비가 함께 진에어 그린윙스의 입단 테스트를 봤고, 진에어는 테스트에서 쿠잔을 상대로 더 뛰어난 활약을 보인 야하롱을 선택했다. 이후에 돌고 돌아 쵸비는 그리핀에 입단하여 만 17세 연령 제한이 지나자마자 시행착오를 거쳐서 LCK를 대표하는 미드라이너로 성장했지만, 야하롱은 멘탈리티 이슈뿐만 아니라 이후의 행적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은퇴한 것도 모자라 2024년 베트남 하노이 호텔 살인 사건에까지 연루되고 말았다. 이 역시 NBA의 그렉 오든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후의 행적을 볼 때 스타크래프트의 이용범과 유사하거나 더 최악의 케이스가 되어버렸는데, 유망주 시점까지의 야하롱은 이미 만 14~15세에 챌린저를 달성했을 정도로 어나더 레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였고, 반면 이 시기의 쵸비는 그리핀 입단 이후 2019년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열기 전까지만 해도 다듬어야할 부분이 많았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라도 진에어에서는 야하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데다가 이후에 큰 사건에 연루되며 몰락한 것까지도 상당히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101]
3.7. 기타
2013년 8월 2일에서 4일까지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간의 3연전 중계를 MBC 스포츠 플러스가 맡게 되었는데 박재홍 해설 위원이 지나친 편파해설로 LG 편을 들어주는 바람에 삼성팬들이 분노, 해설자 갈아치우라고 엠스플 게시판을 초토화 시켜서 3연전이 끝나기도 전에 해설자를 교체시킨 적이 있었다.근데 그게 하필 허구연. 그야말로 빵거돔...
2013년 11월 23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 11회의 자체 청백전 중 4:2로 앞서던 9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칠봉이가 박재홍을 거르고 뒷타자 김성규를 상대했다.
2013년 11월 15일, KIA 타이거즈는 이용규의 FA 계약에 실패하였고, 결국 이용규는 이틀 후에 한화로 이적하였다. 그런데 그날 오후 KIA는 이대형을 대신 영입하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이용규 거르고 이대형 이라 하며 KIA의 호구능력을 칭송하였는데, 이대형이 시즌 결과는 준수한 성적을 냈으며 다른 FA에 비하면 적어도 14년도 기준으로는 성공한 FA 계약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이용규는 비교하기도 힘들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냈기때문에...
2014년 오승환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임창용이 복귀하자, 오승환 걸러놨더니 임창용이 나왔다고 오거임, 돌거뱀으로 쓰이고 있다.
2014년 3월, MBC 스포츠플러스 관계자 및 베이스볼 투나잇 시청자를 중심으로 김거배, 즉 '김민아 거르고 배지현'로 쓰였다. SBS Sports 관계자 및 베이스볼 S 시청자들에게는 배거김. 김민아 아나운서의 결혼과 SBS Sports로의 이적, 그리고 며칠 후 배지현 아나운서 전격
2014년 4월 29일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2루심 나광남 심판은 또다시 믿을수없는 오심들을 작렬. 그후 몸살감기때문에 힘들다며 심판을 교체했는데 그 심판이 또 오심왕 박근영
나광남 심판은 바로 전날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에서도 일반인도 보면 알정도의 명확한 세이프 타이밍에 아웃을 선언
2018 오버워치 컨텐더스 코리아 시즌 2의 메타 벨리움은 시즌 1에서 좋은 기량을 보였던 CCJ를 거르고 해피를 지속적으로 기용했다. 그리고 이는 최악의 한 수가 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의 Gen.G Esports의 미드 라이너는 플라이 거르고 크라운이라는 로스터를 기용했다. 그리고 결과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2018 롤드컵 B조 문서 참조.
야구 오피스물 드라마인 스토브리그에서 나온 드립으로 이거유 즉 '이창권 거르고 유민호' 드립도 있었다. 당초 스카우트 팀장인 고세혁과 차장인 장우석이 1순위로 이창권을 생각했으나, 같은 스카우트 팀 직원인 양원섭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1순위를 유민호로 지명한 것. 이후 이창권은 신인왕을 받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유민호는 팔꿈치 재활로 데뷔 시즌을 모두 보내면서 여기에서는 이거유라는 드립이 맞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고세혁 팀장이 이창권에게 뒷돈을 받고 1순위로 지명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단 사실이 백승수 단장의 추적을 통해 알아냈으며, 이창권의 경우 4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로 나오기에 이거유라는 말이 성립되기 어렵다. 이후 유민호는 재활과 입스 치료까지 다 마친 끝에 2020 시즌 11승 7패 ERA 3.87 9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강두기, 길창주에 이은 3선발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다.
4. 구단 단위 사례
1984년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구단 단위로 이걸 했다. 그야말로 오거롯.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는 일본이 이걸 시전했다. 쿠거한.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한국의 1위와 쿠바의 2위가 확정된 가운데 일단 토너먼트 진출은 확정했으나 아직 순위가 확정되지 않은 미국과 일본이 나란히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일본이 이겨서 3위가 될 경우 쿠바를 준결승에서 만나게 되기에 쿠바보다 덜 까다로운 한국을 상대하고자 져주기 게임을 하게 된다. 근데 미국도 같은 생각으로 경기에 나오면서 연장전까지 경기가 이어졌고 일본은 계획대로 4:2 패배를 당하며 준결승에서 한국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일본은 준결승에서 한국에게 2:6 패배를 당하더니 동메달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미국을 상대로 4:8로 털리며 금메달은커녕 목메달을 따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쿠바를 꺾고 금메달의 영광을 안게 된다.
축구 국대경기에서도 위의 두 사례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8년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인도네시아가 이걸 시전했다. 베거싱. 조별 라운드에서 A조 2승을 거두어 준결승 진출을 확정한 인도네시아가 태국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B조에서 2위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한 개최국 베트남의 홈 어드밴티지를 부담스럽게 느껴 일부러 패배하고 조 2위로 준결승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태국도 같은 생각으로 경기에 나오는 바람에 지켜보는 사람이 이 무슨 병림픽이라고 할 정도로 경기가 지저분해졌고 경기 막바지에 인도네시아가 고의로 자책골을 넣어 2:3으로 간신히 패배하고 계획대로 조 2위로 준결승에 가서 싱가포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인도네시아는 준결승에서 싱가포르에게 1:2로 패배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3위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태국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이기긴 했다. 그리고 그 인도네시아를 참교육한 싱가포르는 결승에서 베트남을 꺾고 우승한다.[105]
LCK 2023 서머 플레이오프에서는 KT 롤스터가 이걸 시전했다. KT 롤스터는 당시 정규 시즌 1위로 플옵 2라운드에 직행했으며, 1라운드를 통과한 두 팀 중 한 팀을 2라운드 상대로 지명할 수 있었다. 당시 1라운드를 통과한 두 팀은 각각 한화생명과 T1이었는데, KT 롤스터는 한화를 거르고 T1을 2라운드 상대로 지명했다. 이는 정규 시즌 도중 한화가 더 높은 순위를 기록했으며 1라운드 경기력도 괜찮았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문제는 T1이 부상으로 한동안 휴식을 취했던 페이커의 복귀 이후 경기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티원은 '다전제의 T1'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전제에서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이던 팀이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관계자들이 KT의 한화 지명을 예상했는데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 결국 KT는 2라운드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패하여 패자조로 내려갔으며, 이후 패자전을 통과 후 최종전에서 다시 티원과 붙었지만 다시 한 번 2:3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 실패 및 롤드컵 직행에 실패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선발전 승자전에서 한화에게 완승을 거두면서 롤드컵에 못 가는 상황을 피하긴 했지만 서머 올퍼스트 팀이 파이널에도 가지 못한 오명은 지우지 못하게 되었다.
[1] 이 선택의 공통점은 오승환, 류현진 모두 지명 당시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지명 순위가 밀렸다. 물론 이 둘의 성공 이후로는 선수 선발 시 팔꿈치 수술 경력 같은 것들은 비교적 따지지 않는다.[2] 당시 SK는 신생팀에 대한 어드밴티지로 2차 1순위 지명 때 우선지명 3장을 갖고 있었다. 그 3장으로 모조리 이대호를 걸렀다. 참고로 이대호를 거르고 선택된 나머지 2명은 조형식과 김동건.[3] 물론 이 선택은 류현진의 팔꿈치 수술 경력 탓이기도 했지만, 다음해 안산공고 투수 김광현을 무조건 1차 지명에서 고를 수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간 케이스이기도 하고, 박경완을 대체할 법한 1차 포수 유망주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속사정이 있었다. 이재원이 먹튀로 전락해서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재원이 쌓은 통산 20 sWAR은 1차지명으로서 아주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류현진이 워낙 대단해서 그런 것.[4] 김건한은 나중에 박재홍과 1:1 트레이드로 기아로 이적했다.[5] 일단 이현호는 2020년을 끝으로 은퇴했고, 나머지 둘은 여전히 현역이다. 사실싱 SK의 승리인 셈.[6] 물론 오승환을 거른 팀이 두산을 제외하고도 3팀이 더 있긴 하다. 롯데, LG, 한화가 그 주인공들.[7] 참고로 롯데는 용마고 투수 조정훈을 지명했다.[8] 실제로 계약 불발 사유도 금지약물 복용 이력이 유력하다. 여기에 두산은 그 시즌에 똑같이 금지약물 복용자였던 김재환이 MVP를 수상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2018년 한국시리즈 업셋패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시즌 후에도 금지약물 관련 이슈로 뭇매를 맞아야 했다. 여기에 두산은 그 다음 시즌에도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기도 했고, 한국시리즈에도 세 번을 더 가면서 많이 거론되지는 않는 편.[9] 당초 정황상 뽑으려 했던 선수가 유신고 출신의 포수 강현우였고 이 사실을 안 kt에서 무려 1라운드 2순위로 지명을 한 바람에 팀의 포수 자원 부족을 우려해 과거 조수행 지명처럼 전략적인 픽을 한 것으로 보인다.[10] 실제로 전의산의 경우 그 당시 얼리픽이라는 평가도 꽤 있었던 편이다. 장타력이 뛰어나지만 타격 정확도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었으며, 실제로 프로 입단 후에도 그 문제가 드러나고 있을 정도.[11] 타율 0.273, 53득점 29도루[12] 물론 이종욱의 방출 사유가 정말로 정수성 때문이었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2005년이면 본격적으로 현대그룹이 구단에 대한 투자를 끊기 시작한 시기였다는 점인데, 이 시기부터 구단이 서서히 선수단을 감축하기 시작하면서 이 과정에서 정리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13] 게다가 고교 시절의 잠재력만 놓고 보면 상당히 뛰어났던 오태근도 있었다. 정작 프로에 와서 1할대 타율을 찍고 은퇴했다는 게 아이러니.[14] 여러 번 말하지만 다리는 정말 빨랐기 때문이다. 감이 안 잡힌다면 딱 도루왕 석권 시기의 이대형을 생각하면 된다.[15] 데이비스 항목에도 있지만 오히려 이 용병 덕분에 한화 이글스는 중견수를 수급하는데 매우 소홀히 하게 되고, 데이비스가 떠난 2007년 시즌부터 2013년 시즌까지 매우 눈물나는 중견수 역사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2014년에는 펠릭스 피에를 영입해서 중견수 자리를 채웠고, 15 시즌은 이용규가 부상에서 복귀했다.[16] 데이비드 뷰캐넌이 굉장히 운이 좋았던 케이스로도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 구단들 다수가 보험용삼아 뷰캐넌을 계약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고 실제로도 이 정도의 보험용 계약으로 NPB에 잔류를 할 것이 기정사실로 분류되던 선수였는데, 일본 구단들이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사이에 이걸 삼성이 접촉해서 계약을 성사시키고 냉큼 데려간 것. 그 결과 삼성은 몇 년간 이어진 외국인 선발투수 잔혹사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고, 뷰캐넌은 무려 4년간 삼성의 1선발로 활약했다.[17] 2023 한국시리즈에서 LG 타자들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선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타격 1위가 문보경이었다.[18] 당시 김도환의 경우 타격 성장이 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었고, 이병헌의 경우 프로 입단 전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군복무로 인한 공백 문제도 있었다. 2021년에 김민수가 백업 포수로 두각을 드러냈으나 시즌 후반 들어서는 김도환에게 밀려 2군으로 내려갈 정도로 팀 내 기대치는 꺾였다. 결국 2022 신인 드래프트(2021년 9월) 이후 삼성은 12월 13일, NC와 1대2 트레이드로 김태군을 데려오고 12월 22일 FA 박해민의 보상 선수로 김재성을 지명하며 포수진을 보강한다.[19] 24년도 기준 이렇게 어정쩡한 포수들이 많아졌다보니 25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1학년부터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던 이율예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뽑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20] 사실 니퍼트는 그 해 NPB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이미 니거배를 당한 바 있다. 니퍼트의 뇌진탕 전력 때문에 요미우리는 니퍼트를 거르고 브라이언 배니스터를 택했으나 부상 문제에 도호쿠 대지진 여파로 RUN(…)해버리면서 망했다. 배니스터는 그 이후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피칭 디렉터로 일하는 중이다.[21] 그나마 롯데는 겨우 1년 선배인데다 포지션까지 같은 3루수 한동희의 성장세를 믿고 노시환을 걸렀다. 다행히 한동희는 성공적으로 OPS히터로 커주기 시작하면서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으나, 문제는 서준원이 2023 시즌 개막 직전에 이 사건을 일으키면서 의욕적으로 시즌을 준비한 롯데는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는 거다.[22] 김원형의 별명인 어린왕자와 이숭용의 별명인 뿌리를 연결한 것이다.[23] 다만 김주원 역시 특수한 상황이 있었음은 감안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있었기 전에 김주원 본인이 C팀을 빨리 졸업한 것이 1군 즉전감이 빨리 된 이유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24] 다만 이 지명의 경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도 할 말이 있기는 하다. 당시 투수 최대어가 저스틴 벌랜더, 야수 최대어가 스티븐 드류였는데 스티븐 드류와 제러드 위버의 경우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였고 저스틴 벌랜더는 에이전트였던 아버지인 리차드 벌랜더가 타이거스로부터 받아낸 계약금을 생각하면 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 당시 파드리스의 재정으로는 이 선수들의 계약금을 맞춰줄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고 마침 샌디에이고 연고지 선수여서 지역 프랜차이즈 선수를 기대할 수 있었던 맷 부시로 선회했던 것이다.[25] 사실 히로시마에서 재계약에 실패해서 오릭스에 가서 뛴 마지막 1년은 제대로 먹튀긴 했다. 그래도 히로시마에서는 4년간 준수한 용병투수였으니.[26] 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감독.[27] 그 중간에 디트로이트, 에인절스 등을 거쳐 샌디에이고로는 1999년부터 뛰었다.[28] 여담으로 필 네빈은 박찬호가 텍사스에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던 당시 트레이드 상대였다.[29] 데릭 지터가 지명을 받을 당시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이었지만 1993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지명의 여파로 1993시즌 종료 후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30] 정작 이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노리고 있었던 타겟은 존 그레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레이가 신체검사에서 애더럴 양성반응을 보인 것이 확인되었고, 그 때문에 마크 어펠로 선회를 한 것. 제프 르나우 단장이 처음부터 1픽으로 투수를 지명할 예정이었다고 한다.[31] 08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이후 11년 보스턴으로 이적. 12년부터 불펜에서 괜찮은 성적을 내고,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거쳐 2014 시즌 후 FA로 4년 3600만달러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한다. 선발로써는 실패했으나 불펜 전향 후 리그 최정점의 기량을 보여주는 중.[32] 당시 다저스는 제발 우리가 커쇼를 지명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빌었을 정도인데 결국 디트로이트가 다저스는 커쇼를 지명, 샌프는 린스컴을 지명하게 도와준 격.[33] 여기를 참고.[34] 물론 클레멘트는 당시 뽑힐땐 평가가 준수했다. 참고로 이해 시애틀이 거른 선수가 라이언 브론, 앤드류 맥커천, 제이 브루스, 자코비 엘스버리, 맷 가자 등이다.[35] 헤이워드 외에도 1라운드에서만 데빈 메소라코, 크리스 위드로, 릭 포셀로 등을 포기했으며, 뒤로 가면 지안카를로 스탠튼, 앤서니 리조, 야스마니 그란달, 크레이그 킴브럴 등이 있었다.[36] 이후 그나마 맷 더피를 받고 맷 무어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어느 정도 복수에 성공하긴 했다.[37] 하지만 콜은 양키의 제안을 거부하고 대학으로 갔고 3년 후 피츠버그의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38] 출신지 보스턴. 대놓고 자신의 꿈이 보스턴의 주전 3루수라고 할 정도였다.[39] 논웨이버 데드라인의 마감시한은 보통 현지시간으로 7월 31일, 웨이버 데드라인의 마감 시한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포스트시즌에 등록이 가능한 선수는 9월 1일 이전에 구단에 등록이 된 선수로 한정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8월 31일까지로 취급된다.[40] 물론 논웨이버 데드라인 당시에도 저스틴 벌랜더가 매물로 이슈가 되긴 했다. 하지만 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7월까지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던 벌랜더를 최저점의 가치에서 파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NFS를 선언하면서 판을 접었고, 8월에 극적으로 반등에 성공하자 웨이버 데드라인에 다시 판을 연 것이다. 이 당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팀이 시카고 컵스였는데, 시카고 컵스 또한 벌랜더의 큰 연봉을 부담스러워했고 구단이 사치세를 내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결국 영입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후 시카고 컵스는...[41] 당시 저스틴 벌랜더는 연 2800만 달러라는 큰 규모의 연봉을 받고 있었고, 반년 매물이 아니라 2019년 시즌까지 연봉을 부담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페이롤 문제에 굉장히 민감한 상황이었던 다저스와 컵스가 괜히 영입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42] 여담으로 이 당시 저스틴 벌랜더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분석실에 있던 초고속 카메라로 슬라이더의 문제점을 잡은 것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던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43] 결국 이 트레이드가 빌미가 되어서, 2019년 시즌부터는 웨이버 트레이드가 완전히 폐지되고 모든 트레이드의 마감 시한이 기존 논웨이버 트레이드 마감 시한인 미국 동부 시간으로 7월 31일 오후 4시까지로 개정되었다.[44] 사실 2019년 드래프트는 시간이 오래 지난 2023년 시점에서는 2016년 이래 최고의 풍년 드래프트로 평가받는다. 즉 다른 드래프트에 비하면 유독 성공한 드래프트인지라 삽질을 하더라도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45] 잭 휠러가 포텐을 터트리긴 했지만 이미 카를로스 벨트란 트레이드로 자이언츠를 떠난 후였고, 그나마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고 골드 글러브도 받은 조 패닉이 가장 나은 편이다.[46] 이쪽도 자니 벤치 상 (현재의 이름은 버스터 포지 상) 수상자로 큰 기대를 모은 뒤에 2018년 1라운더로 전체 2순위로 지명된 대형 포수 유망주였지만, 빅리그에서는 공수 모두에서 가히 절망적인 기량 하락을 보여주다가 결국 2024 시즌 초에 DFA된 뒤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되는 운명을 맞이했다.[47] 물론 대졸vs고졸이기 때문에 지명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KBO처럼 고졸만 줄창 선호하는 리그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오릭스가 그렇게까지 타자 뎁스가 좋은 팀이 절대 아니다. 슌타를 1년 차부터 개막 엔트리에 넣은 것을 보면 분명 오릭스도 즉전감 선수를 원했다는 것이니.[48] 주니치 드래곤즈 1라운더로 2020년 센트럴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49] 이는 훗날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부임한 김도훈도 비슷한 전술을 구사하며 우승 스쿼드로 번번이 준우승밖에 달성하지 못하며 울산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50] 하지만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작 이 MSN 라인은 2014-15 시즌에 트레블이라는 금자탑을 쌓긴 했어도 라리가의 샐러리 캡 규정과 당시 구단의 주급 이슈 등을 포함한 바르셀로나의 재무적인 이슈로 인해 단 3시즌밖에 제대로 가동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네거괴 자체도 바이에른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브레누의 전례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구단의 재무 관리상 문제로 영입에 나서지 않은 것이 더 큰 이유이기 때문.[51] 다만 김병수의 경질은 삼성그룹 내에서조차 부정적인 반응이 따라왔을 정도로 당시에 굉장히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52] 물론 이 선택은 성공이었다.[53] 단, 이는 한참 후대의 관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냉정히 말해 그 당시 바클리와 스탁턴이 전체 2번 감은 아니었다. 바클리는 체격 및 체형 문제가 컸고, 스탁턴은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고 드래프트 때 전체 16번째로 지명 받았을 때도 야유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54] 1픽 블레이크 그리핀, 3픽 제임스 하든, 9픽 더마 드로잔 등이 드래프트 동기다.[55] 사실 블레이크 그리핀도 충분히 이 사례에 해당될 만 한게, 클리퍼스 시절 신인왕을 수상하며 리그 최정상급 빅맨으로 군림했지만, 하필 드래프트 동기가 역대급 선수들로 뽑히는 커리, 하든이라서..[56] 제일 낮은 순위의 mvp이다.[57] 펄츠는 2020년부터 올랜도의 주전 가드로 나름 자리를 잡았고, 론조는 한때 레이커스의 미래라고 불렸을 만큼 출장할 때 만큼은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카고 불스로 나름 거액의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58] 정작 나이너스는 이후로 로저스와 패커스를 포스트시즌에서만 4번 만나 전승하며 완벽하게 호구를 잡은 모습을 보여주었다.[59] 그나마 위안(?)이라면 나이너스가 바로 다음에 지명한 DE 솔로몬 토마스는 나이너스가 슈퍼볼에 간 시즌에서도 혼자 삽을 푸는 등 트루비스키만도 못한 활약을 펼친 최악의 버스트(bust)라는 것.[60] 트루비스키와 똑같이 전체 2픽을 얻고 완전히 몰락한 페이튼 매닝 다음에 뽑힌 라이언 리프라던지, 클리블랜드의 재창단 이후 전체 1번으로 뽑힌 팀 카우치라던지, 역대 최악의 버스트 자마커스 러셀(2007년 전체 1번)이라던지, 인터셉션의 황제 블레이크 보틀스(2014년 전체 3번)라던지.[61] 다만 2021-22 시즌에는 부침을 겪었다. 그래도 정상급이지만..[62] 10픽[63] 12픽[64] 캐롤라이나 팬서스[65] 미네소타 바이킹스[66] 뉴올리언스 세인츠[67] 잭슨빌 재규어스 지명. 이후에 잭슨빌이 1년 반짝 후 다시 하위권으로 회귀하면서 방출 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입단.[68] 상위픽으로 뽑은 쿼터백이 망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전체 3픽에서 2픽으로 올라가기 위해 쓸데없이 대가를 너무 많이 치렀고, 그렇게 뽑은 선수는 망했는데 동 포지션에 리그를 대표하는 초특급 선수가 등장했고, 마홈스를 키운 캔자스의 헤드코치 앤디 리드와 대비되는 시카고의 헤드코치 맷 내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11시즌동안 스타팅 쿼터백 13명을 기용하는 구단주의 참담한 구단 운영능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평가를 안 좋게 할 만한 요소가 너무 많다.[69] 물론 필 심즈같은 예외 사례도 있었다. 그는 2018년 드래프트 QB 순위를 라마-앨런-메이필드-다놀드-로젠 순으로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2020년 드래프트에서는 대부분이 저평가를 하던 저스틴 허버트를 높게 평가했다.[70] 사실 제츠에 가려졌지만, 뉴욕 자이언츠 또한 제츠와 비슷한 처지인게 일라이 매닝이 노쇠하여 새로운 쿼터백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전체 2픽이라는 최상급 순위의 픽으로 러닝백 세이콴 바클리를 뽑았는데, 그는 데뷔 시즌에만 반짝하고 부상에 골골대는 유리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팀에서 쫒겨나버린 다놀드보다야 낫지만 앨런과 잭슨을 생각하면 아쉬운 건 매한가지. 그들이 1년 뒤 뽑은 다니엘 존스의 애매함도 이를 가중시킨다.[71] 전체 1픽 클리블랜드도 결국 메이필드를 포기하고 1라운드픽 3장을 지불하고 드션 왓슨을 데려오며 자신들이 실패했음을 선언하였다. 그나마 이쪽은 QB 빼면 팀은 건실한 편이라 불행 중 다행.[72] 팬서스는 2023 드래프트의 1,2라운드 픽, 2024 드래프트의 1라운드 픽, 2025 드래프트의 2라운드 픽도 모자라 팀의 No.1 리시버인 DJ 무어까지 건네줬다.[73] 전술한대로 전체 꼴찌를 해도 전체 1픽은 베어스 몫이다. 그리고 베어스는 이 전체 1번으로 케일럽 윌리엄스를 지명했다.[74] 물론 NFC 남부가 9승 8패만 해도 지구우승이 가능할 정도로 역대급 농어촌으로 몰락했지만 팬서스는 오히려 그 농어촌에서도 가장 약한 로얄젤리가 되었다[75] 팬서스가 1픽을 얻기 위해 1라운드 픽 포함 다수의 픽을 베어스한테 던져줬다 .그뿐만 아니라 CMC, D.J. 무어같은 팀의 주요 웨폰들까지 타팀에 보내버렸다.[76] 이승준, 이동준, 오용준, 이정석[77] 이 당시에는 워낙 말도 안되는 거래라서 혹시 후속 합의가 따로 있는게 아니냔 말까지 나왔는데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변거박 사태가 워낙 충격적이라 기자들마저도 보통 KT의 실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변거박 그 자체만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이미 드래프트 당일 전에 KT가 1순위를 확정지은 후 서동철 감독이 인터뷰에서 유력 1픽 후보 변준형에 대해 "제일 잘하는 선수라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대학 무대에서 기량 성장에 있어 정체된 느낌이 있다. 주변에서 이러한 평가를 자주 듣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신인픽할 때 실력 뿐만 아니라 인성도 보겠다."라는 뜬금없는 발언#을 하면서 KT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래도 설마하는 심정으로 드래프트 날을 기다렸으나 결국...[78] 또한 한희원은 18-19 시즌 나올 때마다 삽을 펐지만 19-20 시즌에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면서 상무 입대를 했다. 김윤태는 18-19 시즌 종료 이후 FA로 5년 계약을 맺었지만, 19-20 시즌은 백업으로는 1인분, 주전으로는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다가 20-21 시즌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경기력마저 박살났고 6연패 기간 도중 농구판 족발게이트 사건을 일으키면서 KT팬들에게 금지어로 굳어졌다.[79] 선수들 사이에서도 용어가 유명(?)해졌는지, 2019 농구영신을 앞두고 찍은 KBL TV 유튜브 영상에서 팀 동료인 허훈이 박준영 옆에서 변거박을 운운하면서 그를 놀리기도 했다. ???: 허훈의 인성이 여기서 이렇게 드러나네요[80] 이 당시에 허재는 아내와 이혼 직전까지 몰릴 정도로 다투게 되었다고. 허웅도 당시에는 농구를 그만둘까 생각할만큼 서운했지만, 허웅이 데뷔 시즌부터 좋은 기량을 보여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해하고 나중에는 감독으로 내린 아버지의 결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81] 참고로 허재는 허웅과 허훈 모두에게 농구를 일찍 시켜주지 않은 것을 굉장히 후회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나머지 둘 다 농구를 그만큼 늦게 시작한 것이 아이러니.[82] 김국찬, 박지훈, 김세창, 리온 윌리엄스 <-> 이대성, 라건아[83] 사실 안영준과 김낙현이 팀 핵심으로 성장해서 그렇지 지명 당시에는 KCC가 지명을 잘했다는 평이었던 드래프트 중 하나였다. 그럴 것이 안영준을 뽑는다 하더라도 팀에 이미 한살 어린데다가 고졸로 드래프트 되어서 이미 프로 짬밥이란 짬밥은 다 먹은 주전 포워드인 송교창이 있었고 2번 자리에는 FA로 거금을 들여 영입한 이정현이 있어서 당장 뛰기에는 어려웠을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얼리 드래프트 대상인 데다가 당시 허훈 다음 가는 1번이라는 유현준을 먼저 지명했고 김국찬은 이정현의 장기적인 후계자로 보고 뽑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부상으로 인해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면서 KCC의 플랜이 꼬여버렸고, 결국 KCC의 선택은 샐러리 캡까지 터뜨리면서 강행한 현질.[84] 그리고 정성민은 한 시즌만에 현대캐피탈로 트레이드되었다. 2017-18 시즌에는 다시 대한항공으로 팀을 옮겨 곽승석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고 팀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85] 노재욱은 사실 트레이드 이후 최태웅 감독이 뜯어고쳐서 15-16시즌 성장한게 크다. 그리고 오재성 지명의 이면에는 신영철 감독과 곽동혁의 악연이 크게 작용했다.[86] 이유는 당시 현대캐피탈이 2순위 지명권이었기 때문. 한마디로 현대캐피탈은 정한용을 무려 두 번이나 걸렀다.[87] 물론 정한용 거르고 정태준도 되지만 보통 앞순위에 뽑힌 홍동선을 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는 편.[88] 이건 사실 구슬 장난으로 인하여 배유나가 인삼이 아닌 GS로 가서 생긴 후폭풍이다. 만일 그랬다면 정대영을 영입한 상황이었지만 GS가 양효진을 픽했을지도.[89] 이영의 경우는 귀화 문제로 인하여 시즌 중후반에서야 선수 등록이 되어 이영을 빼면 사실상 제일 적다. 결국 2015-16 시즌 이후 구슬 장난의 주인공인 배유나를 영입하면서 센터 문제를 해결한다.[90] 현대에는 바로 한송이의 언니인 한유미가 있기에 적응도 빨리되고 파괴력도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팬들이 바라던 자매가 같은 팀에서 뛰는 것을 막은 건 쉴드 칠 꺼리가 없다.[91] 당시 현대건설 세터로 한수지, 염혜선, 김재영(김수지의 동생)에 밀렸다.[92] 이 당시 이숙자, 정대영의 이적 공백을 못 메꾸고 11연패를 기록하며 꼴찌를 했다.[93] 1~3순위는 추첨인데 전시즌 성적 상 꼴지인 6위가 50%, 5위 35%, 4위 15%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4위였던 도로공사가 트레이드로 6위였던 인삼공사의 지명권을 가져왔기 때문에 실제로는 65:35 싸움.[94] 참고로 이와 비슷했던 사례가 2007년에도 있었다. 당시 꼴지 바로 위인 4위 였던 GS칼텍스 서울 KIXX가 운 좋게 그걸 픽해서 김연경의 초(안산서초등학교), 중(원곡중학교),고교(수원 전산여고) 직속 후배이자 후계자로 거론되던 거포 유망주 배유나를 지명한 적이 있다. 문제는 현재 당시 드래프트서 뽑은 선수 중 최고의 선수는 준우승 팀이 뽑았던 4순위 선수라는 거. 게다가 2라 픽도 다른 팀에서 터져서 그렇지 둘 다 같은 팀에 있었으면?[95] 이후 이재영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국체전 출전 당시 부상을 당했기 때문.[96] 당시 대구여고는 24회 CBS배 고교배구 대회에서 단 10명으로 뛴 악조건 속에서 우승을 했다.기사[97] 이효희가 도로공사로 이적했기 때문[98] 반대로 남자부는 국가대표 선수 중 군 복무 중이었던 신영석, 한선수, 박상하외엔 전부 소속 팀에 복귀해서 코보컵도 뛰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가뜩이나 국제대회가 많아 힘든 선수들의 몸을 추스릴 시간도 날려먹어 결국 남자 배구만 인천 아시안 게임 프로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노골드를 초래했다 공빨에 홈빨도 있었는데도 이랬다(사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군팀 소속이 아니고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이었던 한선수의 무리한 대표팀 발탁이었지만. 결국 한선수는 2015년에는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농구는 왜 골드냐고? 유재학이 있는데[99] 신연경 빼면 지난시즌 개막장 날개로 악명 높았던 박성희와 곽유화 밖에는 레프트 등록 선수가 없었다.[100] 21세기 초반 전성기 시절 선수 중 한유미만 빼고는 흥국서 뛰었다. 문제는 아주 추잡하게 헤어지거나 아니면 커리어 내내 부상으로 고생만 한다[101] 당시 진에어 그린윙스의 감독으로 있었던 한상용 감독이 푼 뒷이야기에 따르면, 쵸비와 야하롱이 동 시기에 진에어 입단 테스트를 봤었는데, 프로팀에 들어가지도 않은 야하롱이 당시 진에어의 미드였던 쿠잔을 상대로도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이거나, 오히려 군데군데 앞서는 모습도 보였던데 반해, 쵸비는 오히려 쿠잔에게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나버리며 쿠잔 본인이 '내가 이런 선수보다 못한것 같으면 주저 않고 프로게이머 은퇴하겠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간접적이긴 해도 그 당시 야하롱과 쵸비의 당시 격차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정도의 평가였으니 진에어가 당시에 쵸비 대신 야하롱을 선택했던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102] 엄밀히 말하자면, 양 당사자간 방송사(직장) 이적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을 뿐, '트레이드'는 아니다. 특히 배지현 아나운서의 경우, SBS Sports 퇴사 후 프리랜서 상태에서 MBC 스포츠플러스에 전격 영입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103] 귀요미김선신 아나운서는 1987년 1월 출생으로, 5일차 동갑내기인 배지현 아나운서(금,토,일 주말3연전)와 함께 '베투'(화,수,목 평일3연전) 진행.[104] 단 이쪽은 결과적으로 루차불이 지우의 포켓몬으로 맹활약한 데다 후속작에서 루카리오가 엔트리로 들어왔다.[105] 그리고 이 당시 인도네시아와 태국이 져주기 게임을 했던 댓가는 어마어마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