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탁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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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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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스틸 | 존 스탁턴 (John Stockton) - 3265개 (1984~2003)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존 스탁턴 | |
헌액 연도 | 2009년 |
존 스탁턴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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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타 재즈 등번호 12번 | ||||||||||||||||||||||||||||||
칼 닉스 (1980~1981) | → | 존 스탁턴 (1984~2003) | → | 영구 결번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21f> 유타 재즈 No. 12 | |
존 스탁턴 John Stockton | |
본명 | 존 휴스턴 스탁턴 John Houston Stockton |
출생 | 1962년 3월 26일 ([age(1962-03-26)]세) |
워싱턴 주 스포캔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곤자가 대학교 |
신장 | 185cm (6' 1") |
체중 | 79kg (175 Ibs)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드래프트 | 1984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유타 재즈 지명 |
소속 구단 | 유타 재즈 (1984~2003) |
지도자 | 몬태나 주립대학교 코치 (2015~2016) |
등번호 | 12번 - 유타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으로, NBA 팀 유타 재즈의 영구결번. NBA가 선정한 위대한 50인의 농구선수 중 한 명이며 역대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의 기록을 갖고 있다.별명은 "THE POINT GUARD." 별명이 말해주듯이 정석적인 포인트 가드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2. 커리어
2.1. NBA 지명 이전
1962년 워싱턴주 스포캔에서 아버지 잭 스탁턴(1927~2017)과 어머니 클레멘타인 프레이(1930~2006) 사이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각각 아일랜드와 독일계 스위스인으로, 부친 잭은 친구와 함께 술집 'Jack & Dan’s Bar & Grill'을 운영해왔다.청소년 시절에 세인트 알로이시우스 스쿨을 다니다가 곤자가 프리패러토리 스쿨로 전학가면서 야구와 미식축구, 농구에 능한 만능 스포츠맨 기질을 보여주었으며, 학업에서도 열심이었다. 졸업을 앞두던 1980년에 아이다호 대학교와 몬태나 대학교가 추파를 건넸으나 그는 곤자가 대학교를 택했다.(더 스포크맨 리뷰 기사)
곤자가대 재학 후에도 뛰어난 농구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포인트 가드라고 하기에는 사기적인 야투율 57%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어릴적부터 키가 작아서 고민이었던 그는 샤워실 창문을 보며 '저 창문까지만 키가 크면 좋을 텐데...'라고 기도하곤 했는데 그 창문의 높이는 정확히 그의 키인 185cm였다. 대학교 4학년 내내 댄 피츠제럴드(1942~2010)[1]와 제이 힐록 감독에게 농구를 배워가며 꼬박 채운 그는 1984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서를 낸다.
당시 그에 관심을 보이는 프로팀은 거의 없었지만, 4학년을 꼬박 채운 것이 프로팀에서 관심이 없었던 것 때문은 아니다. NBA급 유망주들은 대학에서 1년, 길어야 2년 뛰는 현재 트렌드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유망주들이 최소 2, 3년, 적지 않은 선수들이 4년을 다 뛰었다. 당장 졸업하지 않고 프로 직행해 달라고 소송을 내서 이후 모든 조기 프로직행을 가능하게 한 선수인 스펜서 헤이우드가 196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다. (아이러니한 것은 헤이우드 본인은 이런 혜택을 못 봐서 당시 규정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4년이 지날 때까지 ABA에서 뛰어야 했다.) 실제로 1970년대에는 규정 개정 이후에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졸업하고 프로에 왔으며 1976년에 최초로 고졸직행 선수인 데릴 도킨스가 생각만큼 스타가 되지 못한 이후 20년 동안 고졸선수가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았다. 1980~1990년대 초반까지는 이런 트렌드는 남아있어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전체 1순위들을 보면, 조 베리 캐롤 4학년, 마크 어과이어 3학년, 제임스 워디 3학년, 랄프 샘슨 4학년, 하킴 올라주원 3학년, 패트릭 유잉 4학년, 브래드 도허티 4학년, 데이비드 로빈슨 4학년, 대니 매닝 4학년, 퍼비스 엘리슨 4학년, 데릭 콜먼 4학년으로 11명 중 8명이 대학 4년을 다 다니고 나머지 세 명도 3년을 다닌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1년 전 매직 존슨은 2학년만에 프로에 왔지만 그 전의 마이클 톰슨, 켄트 벤슨, 존 루카스 모두 졸업생이며 매직을 제외한 모든 1970년대 전체 1순위들이 대학에서 최소 3년을 보냈다.[2]
이후 스탁턴은 1984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된다. 16순위는 스탁턴의 커리어에 비해 굉장히 낮은 순위이기 때문에[3][4] NBA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을 만큼 날로 먹은 지명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이는 스탁턴이 어떤 선수가 되었는지 알고 있는 후대의 관점일 뿐이다. 당시의 스탁턴에 대한 기대치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상당히 높은 순위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유타 재즈의 도박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곤자가 대학이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농구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당시에는 완전한 무명에 가까웠고, 스탁턴 역시 무명선수였다. 오죽하면 그가 지명되고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자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해설자가 "관중들이 야유 (booing)를 한 게 아니라 누구냐고 물은(whooing) 거에요"란 개드립으로 위로를 할 정도. 1984 드래프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스탁턴은 애초에 자기가 지명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유럽에서 뛰려고 알아보고 있었다고 한다.[5] 참고로 스탁턴이 지명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표팀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록 그는 최종탈락을 했지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현재 수준의 스카우팅이 이뤄졌다면, 기본기가 매우 뛰어나고 전술이해도가 높으며 운동능력이 좋은 스탁턴은 상당히 부각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1984년 당시보다는 더 주목받았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1984년 당시의 NBA, 그리고 드래프트의 위상이 NBA가 세계적인 인기리그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NBA는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에[6] 팀 전력 보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1라운드 픽의 가치도 그만큼 크다. 이 때문에 NBA 1라운드에 지명받은 신인들은 최소 3년에 천만달러에 가까운 액수들을 보장받고, NBA 팀들은 해외의 아마추어와 프로리그, 미국내의 마이너리그와 모든 대학, 고등학교, 심지어 소문이 도는 유망주들의 경우 중학교까지 스카우터들을 보내 유망주들을 샅샅이 찾아내고 칼같이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장점과 약점이 낱낱이 파헤쳐져 성장가능성까지 고려해 그 가치를 분석한다. 올림픽에 거의 나가지도 못하는 농구 약체국인 한국의 하승진이 고등학교때 NBA 팀들에게 발견되어 한때 NBA 1라운드 감으로 거론되었던 이유, 그리고 만 18세에 맨발 221cm라는 엄청난 스펙에도 결국 2라운드 감으로 추락한 이유이다. 농구 변방의 고등학생임에도 NBA 팀들의 레이더망에 걸렸고, 장점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분석되었기 때문. 물론 NBA 팀들도 완벽한 건 아니라 하심 타빗 같은 삽질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 정도로 철저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1984년 당시는 1970년대 (인기 면에서의) 암흑기를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라이벌 관계로 극복하고 이제 슬슬 인기를 얻어가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NBA는 지금처럼 엄청난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었고, 최초로 드래프트를 TV중계하려고 했던 데이비드 스턴이 방송국에 돈을 주고 해야했을 정도(당연히 현재는 스폰서들이 붙어서 사무국이 돈을 번다.). 이런 판이니 그만큼 스카우트도 철저하게 이뤄지는 편은 아니라 무명대학의 무명 선수인데다 키도 작고, 스탯이나 개인기가 엄청나지 않은 스탁턴까지 눈에 띌리가 없었다. 그나마 올림픽 트라이아웃 덕에 이름이 알려져서 프로에 지명될 수 있었던 것.
2.2. NBA 시절
어쨌든 스탁턴은 이렇게 유타 재즈와 계약했고, 처음 3년은 백업 멤버로 뛰었다. 팀에 리키 그린이라는 주전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스탁턴은 예의 뛰어난 경기운영능력과 패싱능력으로 꾸준히 출전시간을 받았고, 4년차 시즌인 1987-88 시즌. 드디어 주전이 된다. 여기서부터 이사람의 9년연속 어시스트 1인 독재가 시작된다. 그 후로도 꾸준히 출전. 1990년대에는 주로 같은 아저씨 용모의 제프 호네섹과 함께 백코트를 담당했다. 은퇴 시즌인 2002-03 시즌에도 전경기 주전으로 출전하는 꾸준함을 보여주었다.2003년 3월 2일. 2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칼 말론이 우승을 위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했으나, 본인은 명예롭게 은퇴를 선언했다. 유타 재즈를 강팀으로 올려주었고, 구단에 공헌을 많이 한 이 전설에게 구단이 푸대접했을 리가 만무. 그의 백넘버 12번은 유타 재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고, 또한 2005년에는 2m 43cm나 되는 그의 동상을 만들어주었다. 그가 패스를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인데, 스탁턴 본인은 쑥쓰럽다고 했지만, 기쁜 건 어쩔 수 없을 듯. 참조
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올-NBA 퍼스트팀 2회 (1994-1995) NBA 올스타 10회 (1989-1997, 2000) NBA 올스타전 MVP[7] (1993) 올-NBA 세컨드 팀 6회 (1988-1990, 1992-1993, 1996) 올-NBA 서드 팀 3회 (1991, 1997, 1999)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5회 (1989, 1991-1992, 1995, 1997) NBA 어시스트왕 9회 (1988-1996) NBA 스틸왕 2회 (1989, 1992)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9) |
4. 플레이 스타일
퓨어 포인트 가드의 정점. 매직 존슨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는 아니지만, 정통 포인트 가드에게 요구되는 역할인 게임 리딩, 공격 조립 및 패스, 공 관리를 스탁턴만큼 잘했던 선수는 사실상 없었다.[8] 경기운영 능력, 패싱능력, 그리고 경기를 보는 시야가 매우 넓어 까다롭기로 유명한 제리 슬로언도 스탁턴에게 일부 경기운영을 일임하게 했을 정도.그와 함께 뛰었던 동료들은 한결같이 그의 패스는 최적의 상황에서 오기 때문에 받기가 쉽다. 라고 말한다. 그만큼 동료에게 쉽게 또한 원하는 때에 패스를 하는데 있어서는 도사. 사실 그의 패스는 화려한 맛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평범한데도 불구하고 그의 패스를 차단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이 사람의 무서움이 있다.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매직 존슨은 자신의 어깨힘과 푸시능력을 바탕으로 예측불허의 공격적인 파워패스로 상대의 혼과 받는 팀원들의 혼도 같이 빼놓는 스타일이라면, 스탁턴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0.1초도 놓치지 않는 팀원들의 위치 파악력 및 공간감각을 바탕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최적의 상태에서 패스를 찔러넣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9]
파트너 칼 말론의 존재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픽앤롤은 원래 농구에서 할 수 있는 굉장히 뻔한 공격전술 중 하나이지만, 이 둘의 픽앤롤은 수비자들이나 특히나 대처하기 어려운 옵션이었다. 말론과 스탁턴 모두 골밑마무리/중거리슛이 모두 뛰어난 선수들이라 말론의 스크린 이후 발생되는 스탁턴이 말론에게 패스를 주나? - 주면 말론은 중거리를 쏘나 골밑으로 들어오나? - 아니면 스탁턴이 직접 슛을 쏘나 돌파를 하나? - 이도저도 아니면 외곽에 있는 호너섹이나 브라이언 러셀에게 빼줘서 그쪽에서 슛이 나오나? 등등 수많은 선택지가 발생하는데 수비하는 입장에서 저 선택지들을 모두 예측하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설령 예측한다고 해도 막을수가 없다.[10]
역대 최고의 PG 수비수로 평가받는 게리 페이튼의 경우, 자신이 현역 시절 상대한 선수들 중 마이클 조던보다도 존 스탁턴이 수비하기가 힘들었다며 그에 대해 이러한 평가를 했다.##
그는 보통 한 시합에 12개의 슛을 던져 10개 정도를 성공시키고, 자유투도 거의 놓치지 않고 7, 8개 정도를 넣는다. 그걸로 이미 20 득점. 여기에 어시스트를 15개 정도하고서 덤으로 매번 스틸을 4개쯤 하는데다 칼 말론과의 연계에도 항상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그와 매년 7~9번 정도 맞붙어야 했다. 그건 마치 지옥과 같았다.
득점에서도 어느 정도 제 몫을 했다. 유타 재즈에서 1옵션은 당연히 칼 말론이었지만, 언제나 외곽에서 날카로운 칼을 감추고 있었다. 사실 스탁턴의 슈팅모션은 정석에서 약간 벗어나 포구가 오른쪽 어깨에 쏠려있는 특이한 모션이었다.[11] 초기에는 3점슛 성공률이 형편없었으나 4년차부터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고, 은퇴 후 그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8.4%. 자유투 성공률도 대학 시절에는 가드치고는 좀 부족했으나 프로에 와서는 딱 세번 정도 70%대였고 나머지는 모두 80%를 넘겼다. 가장 자유투가 나빴던 시즌은 루키 시즌에 73.8%.
무엇보다 타고난 강심장이어서 중요한 순간에 슛을 성공시킨 일이 많다. 특히 플레이오프의 결정적 순간에는 칼 말론보다 더한 존재감을 보이기도 했다. 레지 밀러 못지않게 빈공간을 찾아내는 능력도 좋아서 순간 그를 놓치는 팀은 지옥을 맛보게 된다. 1997년 플레이오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에서 찰스 바클리를 좌절시킨 통한의 3점슛 버저비터를 성공시킨것도 그였다. 이때 슛을 성공시키고 기뻐하는 스탁턴의 모습이 백미. (참고로, 막판 2분 동안 연속 9득점했다.)영상[12]
타고난 강심장으로 클러치 순간에 종횡무진하며 게임을 지배했다. 1997 NBA 파이널 4차전에서 1승 2패로 뒤지고 있는 상황, 4쿼터 막판에 5점차로 뒤지고 있다가 론 하퍼가 칼 말론의 스크린에 걸리자 주저하지 않고 3점라인 두발짝 뒤에서 3점을 적중시켜 2점차로 줄였다. 이후 조던이 돌파를 시도할 때 스틸해버린 뒤 속공레이업을 시도 -> 조던의 블락에 걸렸으나 파울이 되어 자유투를 얻어냈다. 이후엔 1점차로 지고 있는 순간에 조던이 슛을 놓친 걸 수비 리바운드 후 코트 반대쪽으로 롱패스해 말론의 레이업을 어시스트했다. 당시 4쿼터 막판은 스탁턴의 강심장, 수비력, 운동능력, 어마어마한 시야, 정확한 패스 기술을 모두 응축해서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낮은 득점수치에도 불구하고 스탁턴은 당시 포인트 가드에게 필요한 여러 득점기술을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겸비하고 있던 선수였다. 우선 사이즈에 매리트가 없고 점프력이 평이할 뿐 엄청난 민첩성과 주력, 체력에 체격대비 힘도 좋아 종합적인 운동능력은 충분히 좋은 편이었으며, 여기에 핸들링도 일류인 만큼 빈도가 낮을 뿐 날카로운 돌파를 구사할 수 있었다. 더불어 공간이 나면 언제든 슛을 꽂아넣을 수 있는 슈팅력도 있었다. 그러나 후술한 아이제아 토마스의 평가대로 스탁턴은 가진 스킬셋에 비해 득점을 많이 시도하지 않았으며, 커리어하이 평균득점도 17.2점으로 능력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그 긴 커리어동안 6시즌을 제외하면 전부 시즌 평균 15점 이하로 득점했고, 17점대 3번, 15점대 3번이다. 그가 클러치 타임에 종횡무진하며 내외곽에서 득점을 쏟아붓던 걸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인데 실제로 스탁턴은 최우선적으로 다른 동료들의 득점찬스를 노렸고, 이들이 막히거나 기습적으로 찬스가 날때만 공격을 했다.
사실 전성기 때 14~17점 정도 넣는 게 한계인 선수가 유타같은 우승 후보팀에서 클러치타임의 메인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비교적 평이한 선수가 슛 하나는 좋아서 간헐적으로 클러치 슛을 책임진다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 클러치타임에는 쉬운 오픈찬스가 웬만큼 운이 따르지 않고서야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장 먼저 공을 쥐는 선수는 그 팀에서 1대1 공격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빅맨의 경우 플레이스타일상 골밑과 가까운 득점이 많은데, 클러치타임에선 골밑슛도 기회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빅맨보다는 외곽에 있는 선수들에게 우선적으로 공이 간다.[13] 즉, 대부분의 경우 클러치타임에서 공을 잡는 선수는 팀 내에서 1대1 공격력이 가장 뛰어난 외곽득점원이다. 그런데 유타 재즈에서 이 역할을 맡은 게 바로 스탁턴이었던 것.
당시에는 포인트 가드가 득점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 지금과 비교도 안되게 심했으며 "득점형 가드"의 기준이 20점일 정도였다.[14] 즉, 스탁턴은 어찌보면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 활용될 능력이 충분함에도 패스를 우선하는 본인의 선호도 + 꽉 짜여진 전술을 선호하는 감독 + 듀얼 가드에 대한 시대적 선입견으로 인해 공격적인 플레이를 자제한 케이스라고 볼수도 있다.[15] 만약 그가 더 많은 득점을 올리는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 나섰다면 지금의 사기적인 어시스트 기록은 없었겠지만, 후술되는 아이제아 토마스 말대로 유타는 더 무서운 팀이 됐을 수도 있다.
그의 강심장과 관련하여 그를 자주 상대하였던 아이제아 토마스는 이렇게 말하였다.[16]
"우리는 그가 가능하면 슛을 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패스하기를 바랐다.) 그는 평균적으로 필드에서 50%, 3점슛 라인에서 35% 이상, 자유투에서 80% 이상을 찍던 사람이다. 당연히 그 대신 다른사람이 슛을 쏘면 더 좋았지 않았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도록 유도하였다" 라고 회상하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후에 이렇게 끝을 맺었다. "스탁턴은 패스를 우선으로 하는 전형적인 패스 중심의 포인트 가드였고, 그 선입견에 스스로 사로잡혀 슛을 쏘기보다는 패스를 많이 하였다. 아마 그가 그 강박관념을 버리고 슛을 더 많이 쏘았더라면 그가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이제아 토마스는 클러치 순간에 에이스 칼 말론이 "구멍(weak link)"이였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생각해보라. (상대 입장에서) 스탁턴이 슛을 쏘게 하는 건 큰일 날 일이다. 제프 호너섹이 슛을 쏘게 해도 안된다. 그러나 말론이 슛을 쏘게 할 수는 있다"라고 말했는데, 당시 패널들은 평득 30에 달했던 말론이 구멍이라는 말에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토마스는 말론의 경기력 자체가 구멍이라고 한 게 아니다. 정확히는 말론이 클러치 순간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소 약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는 점을 지적한 것이며,[17] "만약 이 플레이 1998 NBA 파이널 6차전 마지막에서 말론에게 스탁턴이 패스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경기를 이겼을 것이다."라고도 말했다.[18] 추가로 그의 옆에 있던 케니 스미스는 "스탁턴은 드리블 실력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그냥 우리를 돌파하고 게임을 끝낼 수도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안하고 굳이 말론에게 패스를 하거나 잘 알려진 픽 앤 롤을 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방어를 할 수도 있고 게임의 템포도 늦어지게 되니까." 라고 이야기 한적도 있다.[19][20]
평범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수비는 상당히 지능적으로 거칠게 한 선수. NBA 역대 더티플레이어를 언급할때 이 사람도 종종 언급되는 편이다. 데니스 로드맨은 자서전에서 '존 스탁턴은 NBA의 어떤 포인트 가드도 막아낼 수 있다'라고 수비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에게 NBA에서 가장 치사한 가드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선수들은 스탁턴이라고 말할 것이다. 코트에서 존 스탁턴은 온갖 더러운 짓을 뻔뻔스럽게 해댄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팔꿈치 공격을 한다'라고 깐 바 있다. 스티브 커는 과거 ESPN에서 해설자를 하던 당시 NBA Open Court[21] 라는 프로그램에서 각자 현역시절 가장 힘들었던 상대선수를 꼽는 대화 중 스탁턴에 대해 '나는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며,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더러운 후레자식(dirty bastard)'이라고 했다.[22] 영상(18분30초부터)선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수비에서는 정말이지 물불 안 가린다고.
그런 점과는 별개로 손이 빠르고 상대 패스 흐름을 읽는 눈이 아주 좋아서 스틸의 달인이기도 했다. 역대 최다 스틸기록 보유자.
이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은 꾸준함에 있다. 19년간 단축 시즌인 1998-99 시즌(50경기로 단축)과 부상을 입은 1997-98 시즌을 빼고는 모두 전경기(82경기) 선발출전할 정도로 철인. 19년이라고 하면 감이 안 잡힐수도 있으니 경기수로 바꿔 말하자면 나갈 수 있는 1526경기중 딱 22경기 결장했다. 1997-98 시즌에 무릎부상을 당한거 말고는 선수생명에 큰 지장을 준 부상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본인 스스로 몸관리에 엄격했으니 그가 19년간 롱런할 수 있었을 것. 게다가 멘탈도 강해서 아이제아 토마스가 심한 반칙을 했는데도[23] 그는 도발되거나 하는 법 없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고 한다.[24]
스탁턴이 훌륭한 패스와 강심장 슈터, 강철 체력 등이 유명해서 잘 언급이 안되지만 오른손 볼핸들링이 매우 뛰어나서 드리블이 굉장히 뛰어난 선수였다. 그 당시 NBA에서 가장 유명한 체인지 오브 페이스드리블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항상 패스할 곳을 찾는 듯 하다가 순간적으로 드라이브인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리블할 때 일반적인 스탭과 다른 엇박자로 스탭을 밟으면서 드리블을 하기도 하여 스탁턴의 시선과 드리블로 다음 플레이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대놓고 뻔뻔하게 가볍게 런닝을 하며 드라이브인 레이업을 하는데 코트 안의 9명의 선수가 멍때리고 가만히 서서 구경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5. 여담
- 아쉽게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7 NBA 파이널과 1998 NBA 파이널에 올라갔지만 상대는 끝판왕 시카고 불스였다. 물론 그들도 선전했지만 시카고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여담으로 드래프트 당시 시카고 불스에서 2라운드에 지명하려고 폼잡고 있었다. 만약에 그게 성사되었다면 존 스탁턴 + 마이클 조던 백코트진이 가능했다.[25] 물론 스탁턴의 가능성을 알아본 유타 재즈에서 1라운드에 지명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당시 유타 팬들의 반응은 쟤 누구임? 이었다.(참고 자료)
- 은퇴 후 스포캔에서 아버지와 함께 'Jack & Dan's Bar & Grill'을 운영해 왔으며, 특히 아버지는 생전에 유타 경기 때마다 업소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 스몰 마켓인 유타 재즈에서 뛰어서 그런지 실제로 다른 명예의 전당 후보들에 비하여 인지도가 떨어진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때 드림팀의 멤버로 선택된 그는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관광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가 도시를 거니는 동안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 굴욕 아닌 굴욕이 있다. 심지어 한 팬은 스탁턴의 얼굴을 포함한 드림팀 전원의 얼굴이 캐리커쳐로 찍혀있는 티셔츠를 입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스탁턴이 장난스럽게 티셔츠에 찍힌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이 친구 알아요?"라고 하자 이 팬은 "그럼~ 알죠"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오죽 답답했던 그의 아들이 "우리 아빠가 이 선수에요" 라고 말해서 팬이 알아들었다고 한다. 정작 스탁턴 본인은 그런거 그닥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바르셀로나 관광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조
- 실제 성격도 수수한 편이라 다른 선수처럼 도박이나 파티에 나서는 등 화려한 NBA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 덕분인지 선수생활 내내 스캔들에 휘말렸던 적도 없다. 스탁턴이 자서전 "Assisted"에서 공개한 칼 말론이 데뷔할 당시 일화에서도 그의 검소한 면모를 볼 수 있는데, 막 드래프트 되었고, 비교적 촌에 속하는 루이지애나 출신인 말론은 이제 루키 시즌을 마친 스탁턴에게 어디 놀러갈 데가 있는 지 물었다.[26] 이에 스탁턴은 "산으로 드라이브 갈 수도 있고... 동물원도 있지"라고 답했고, 결국 돈도 많은 두 20대 청년들이 유타에 있는 호글 동물원에서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27]. 이외에도 동시대에 뛰었던 크리스 웨버가 회고하기로, 스탁턴은 경기장으로 올 때에도 미니밴에 자녀들을 다 데려와서 내려주고,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와서 그런 활약을 했다고.[28]
위에 언급된 미니밴 일화는 웨버의 과장이 아닌데, 실제로 스탁턴이 1997 파이널 5차전 이후 아이들을 안고 미니밴을 타는 장면이 찍힌 적이 있으며, 같은 미니밴(색깔이 같다)에서 내리는 장면도 찍혀서 공개되었다. 아이들 장난감로 가득찬 미니밴에서 평범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 애들을 내려주는 동네 아저씨를 누가 게리 페이튼을 벌벌 떨게 하고, 클러치 샷 한방으로 찰스 바클리를 좌절시킨 승부사라고 생각할수 있을까.
- 2009년에는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제리 슬로언 감독과 함께 개인자격으로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게리 페이튼은 자신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로 존 스탁턴을 꼽았다. 은퇴후 한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고, 농구에서는 아예 손을 떼고 있는 듯 했지만 2015년에 곤자가 사립고등학교 여자 농구팀에 코치로 부임했다.
- 칼 말론과 농구만이 아닌 인간적으로도 매우 친한 관계이다. 많은 듀오들이 코트 위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주는 것과는 별개로 경기 외적으로는 특별한 친분을 쌓지 않는 비즈니스 관계인 것과는 다르게 말론과 스탁턴은 사적으로도 매우 친밀하다. 위에 언급된 같이 동물원 놀러간 일화도 있고, 은퇴 후 둘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말론은 루이지애나, 스탁턴은 유타 주와 워싱턴 주에 거주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가족 동반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부인과 가족들끼리 친한 사이다. 서로를 잘 알기에 가족 동반 모임에서 말론의 생일에 스탁턴은 낚싯대를 선물했으며 반대로 스탁턴의 생일에 말론은 골프채를 선물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딸들에게 서로 대부를 서줄 정도.[30] 델타 센터에 세워진 서로의 동상 제막식과 명예의 전당 입회식 등에도 같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말론이 아들을 갖고 싶어했을때 아낌없는 조언을 한 이가 스탁턴이며, 말론이 아들을 얻자 가장 먼저 전화했던 상대도 스탁턴이다. 보기 드물게 공사 구분없이 최상의 인생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실 친분과 별개로 둘의 라이프스타일은 꽤 달랐다. 말론은 17세 때 동갑인 여자와 함께 첫 자식을 봤으며, 20세 때는 13세 소녀를 건드려 임신시켰을 정도로 성적으로 문란한 면이 있었다. 또한 몬스터 트럭을 몰고 거대한 바이크를 타고 사냥과 낚시를 즐기는 등 적극적인 문화가 강한 편이다. 반면 존 스탁턴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검소하고 가정적이며, 스캔들에도 휘말린 적이 전혀 없다. 1997 NBA 파이널 당시 경기장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칼 말론은 거대한 바이크를 타고 경찰 에스코트를 받으며 홀로 요란하게 등장했고, 마이클 조던도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홀로 등장했는데, 스탁턴은 미니밴을 타고 와서 아이들을 내려줬다.[31]
- 대표적인 백신 반대론자이며 마스크 착용조차도 거부하고 있다. 결국 이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면서 모교인 곤자가 대학교으로부터 시즌 입장권을 취소당했다.하지만 그는 백명이 넘는 운동선수가 백신을 맞아서 사망했다는 등 근거없는 소리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 선수생활 내내 사생활에서 잡음 하나 없는 모범적인 선수였던 그의 거의 유일한 흑역사.
6. 가족 관계
가족 내력이 스포츠 쪽에서 나름 빵빵한데, 조부 허스트 스탁턴(1901~1967)은 같은 곤자가 대학교 동문으로 1925년 NFL 팀 프랭크포트 옐로재키츠에 입단하여 1926년에 우승컵을 따는 데 공헌했고, 1929년 은퇴 시까지 총 3팀을 전전했다가 이후 아이다호 주 교통국에서 근무했다.1986년에 결혼한 부인 네이다 스테포비치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뒀다. 장남 휴스턴은 몬태나 대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뛴 경력이 있고, 차남 마이클(1989년생)은 솔트레이크 시티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뛰고 2011 드래프트에 신청했다가 탈락하여 독일 레기오넬라 리가(2부 리그) 팀 BG 카를루스헤에서 데뷔한 뒤, 러시아 등지의 유럽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삼남 데이비드는 아버지가 다녔던 곤자가대에서 뛴 이후 2014 드래프트 참가 신청을 했지만 탈락하여 새크라멘토 킹스 산하 NBA G 리그 팀 레노 빅혼스(현 스탁턴 킹스)에서 뛰다가 2015년 2월 새크라멘토와 10일 계약을 맺어 NBA 무대를 처음 밟고 G 리그, 호주 NBL, 유럽 무대 등지를 맴돌았다. 그러다가 2017-18 시즌 도중 아버지의 팀인 유타 재즈와 10일 계약을 맺고 3월 26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유타 소속으로 데뷔했다.[32] 하지만 워낙 아버지가 전설 중의 전설이라 언제라도 아버지와 비교대상이 될 듯. 딸 로라는 곤자가대에서 뛰다가 2020년 독일 여자농구팀 헤르네 TC와 계약했다.
그 외에 형 스티브는 워싱턴 대학교 농구부에서 뛴 경력이 있고, 세 아들 스티브 주니어와 숀, 라일리 3형제는 전부 휘트모어대, 몬태나대, 시애틀 퍼시픽대까지 각각 나왔다.
7. 스탁턴의 누적 기록
존 스탁턴이 한 시기를 지배한 선수가 아닌데다 화려한 선수가 아니라서 자주 간과되는 면이 있지만, 스탁턴의 어시스트 기록은 명실공히 넘사벽이라고 불릴 만한 어마어마한 기록이다.일단 커리어 통산 15,806 어시스트란 기록은 실로 충격과 공포의 수치이다. NBA 역사상 1만 어시스트를 넘긴 선수는 단 여섯 명 뿐이며 2위 제이슨 키드의 기록이 12,091개인데, 키드의 기록은 스탁턴의 4분의 3(76.5%)밖에 되지 않는다. 즉, 근처에도 못왔다는 소리다.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득점에 비유해보자. 2024년 기준 통산 득점 2위는 카림 압둘자바의 38,387점이고 통산 득점 1위 르브론 제임스는 40,474점으로 1위의 94.8%에 달한다. 르브론 이전에 카림의 득점기록 경신에 실패한 칼 말론,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매우 근접한 기록을 남기기는 했다. 하지만 어시스트는 후보조차 보이지 않는다.[33]
어시스트의 경우 후보군 자체가 사실상 없다. 11,894개로 현역 중 1위이고 통산 3위인 크리스 폴이 그나마 가장 가깝지만, 이 수치는 스탁턴의 75%에 불과하다. 커리어 평균 수치조차 9.4개로 10.5개인 스탁턴에 크게 못 미치는 폴이 스탁턴을 따라잡으려면, (2023-24 시즌 기준 19년 차이며 만 38세인 그가) 24년차가 될때까지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매년 평균 10어시스트씩 기록해야 한다. 따져볼 것도 없이 불가능한 가정이다.[34] 폴이 NBA에서 24번째 시즌까지 뛰면서 남은 기간동안 계속해서 전성기급 스탯인 10어시스트를 기록할 확률은 까놓고 말해 없다.
선패스 후득점 마인드가 투철한 퓨어 포인트 가드가 점점 사라져가는 와중[35]에 스탁턴의 기록에 근접할 후보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36] 무엇보다 정통 포인트가드의 시대가 지나고 현재 어시스트 최상위권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탁월한 득점력과 어시스트 능력을 겸비한 선수들이다. 2021-22 시즌 어시스트 2위를 달리고 있는 제임스 하든은 원래 득점위주 선수였으며 커리어 평균 어시스트는 6.8개에 불과하다. 현역 중 통산 어시스트 2위는 다소 생뚱맞게도 11,009개의 르브론 제임스인데, 평균이 7.4개로 따져볼 필요도 없이 불가능이다.[37] 그 다음은 9,468개의 러셀 웨스트브룩이고 그 밑으론 8천개를 넘은 선수조차 없으니 현역 중에는 사실 기록 경신 여부를 고려해볼 의미조차 없다.
통산 기록의 사기성을 살펴봤으니 이제 시즌 기록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스탁턴을 논할때 "꾸준함"을 가장 크게 보지만, 그의 단기 임팩트 역시 사기급이다.
일단 스탁턴은 NBA역사상 누구보다 많은 9개의 어시스트왕을, 그것도 연속으로 차지했다.
NBA 역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로 시즌 어시스트왕에 오른 선수들을 보면
순위 | 연도 | 선수 | 개수 |
1 | 1990년 | 존 스탁턴 | 14.5 |
2 | 1991년 | 존 스탁턴 | 14.2 |
3 | 1985년 | 아이제아 토마스 | 13.86 |
4 | 1988년 | 존 스탁턴 | 13.76 |
5 | 1992년 | 존 스탁턴 | 13.73 |
6 | 1989년 | 존 스탁턴 | 13.63 |
7 | 1979년 | 케빈 포터 | 13.4 |
8 | 1984년 | 매직 존슨 | 13.06 |
9 | 1986년 | 매직 존슨 | 12.6 |
10 | 1994년 | 존 스탁턴 | 12.57 |
추가로 다른 선수들의 시즌 기록과 비교해보면
1. NBA 역사상 단일 시즌 1천 어시스트[38]를 돌파한 선수는 단 세 명 뿐이며 스탁턴은 당연히 그 중 한 명이다.
2. 단일 시즌 1천 어시스트를 두 번 이상 기록한 선수는 스탁턴 뿐인데, 그는 무려 7번이나 1천 어시스트를 돌파했다.
3. 단일 시즌 1천1백 어시스트를 돌파한 선수는 스탁턴 뿐인데, 그는 무려 5번이나 1천1백 어시스트를 돌파했다.
3. 단일 시즌 1천1백 어시스트를 돌파한 선수는 스탁턴 뿐인데, 그는 무려 5번이나 1천1백 어시스트를 돌파했다.
스탁턴의 통산 평균 어시스트 10.5개도 사실 따지고 보면 충격과 공포의 수치인데, NBA 역사상 통산 평균 10어시스트를 넘긴 선수는 존 스탁턴과 매직 존슨(11.19)뿐이다. 게다가 스탁턴은 경기수가 매직의 1.5배가 넘을 정도로 오래 뛰면서 평균을 많이 깎아먹었는데도 이정도다. 실제로 매직과 동일한 경기수를 뛴 시점에서 보면 스탁턴의 평균 수치가 더 높다. 이는 매직이 1991년 은퇴할 당시를 기준으로 잡아도, 1996년 은퇴할 당시를 기준으로 잡아도 마찬가지. 또한 1997-98 시즌 종료 기준으로 스탁턴의 어시스트 수치는 매직보다 2000개 넘게 많았는데, 이때만 해도 스탁턴의 평균이 매직보다 0.1 정도 높았다.
물론 두 선수의 업적이나 선수로서 종합적인 기량을 비교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매직의 압승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능력"만큼은 매직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스탁턴이 페이스가 빠른 1980년대에도 뛰었기에 이득을 봤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그는 동일한 페이스에서 뛴 동시대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39] 일례로 스탁턴의 커리어 초창기는 무려 매직 존슨의 전성기와 겹친다. 매직은 1983-84 시즌부터 1990-91 시즌까지 꾸준히 12~13개 사이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1987-88 시즌부터 스탁턴의 존재로 인해 콩라인이 되어야 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매직은 역대 가장 높은 평균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란 점에서 스탁턴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40] 게다가 존 스탁턴은 무려 역대 최다인 9회나 어시스트 1위에 올랐다. 역대 2위는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밥 쿠지의 8회이고 그 외에는 스티브 내시 & 제이슨 키드 & 오스카 로버트슨 & 크리스 폴이 공동 3위로 5회씩이다. 게다가 스탁턴의 유타 재즈는 내시, 키드, 쿠지, 매직과는 달리 페이스가 빠른 "달리는 농구"를 한 게 아니라 철저히 짜여진 지공 위주의 "하프코트 오펜스" 위주의 운영을 했다.
스틸 같은 경우 단기 임팩트는 어시스트만큼 사기적이지는 않다. 두 번 스틸왕을 차지했다지만 크리스 폴은 무려 6회 스틸왕을 기록했고, 이외에도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을 포함한 총 8명이 두 번 이상 스틸왕을 차지했다. 커리어 평균 스틸 역시 2.17개로 역대 8위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최대 장점인 꾸준함이 빛을 발한다. 그의 통산 스틸 3,265개는 2위 제이슨 키드를 무려 580개 차이로 여유있게 제치고 있는데, 이 격차는 2위 키드와 9위 하킴 올라주원과의 격차와 비슷하다. 즉, 여기서도 압승.
이 분야도 마찬가지로 현역 중 압도적인 1위이자 스탁턴에 가장 가까운 후보가 바로 크리스 폴이다. 일단 평균 스틸 분야에서 스탁턴은 2.2개로 역대 8위, 폴은 2.06개로 12위에 올라있다.
그래도 현역 선수중 경기당 스틸 및 누적 스틸이 가장 뛰어난 선수인 만큼 크리스 폴이 스탁턴의 기록을 깨는 경우를 계산해보자.
크리스 폴의 커리어 평균 스틸은 2.06개 이며, 누적은 2,614개 이다. 크리스 폴이 앞으로 매 시즌 결장하지 않고 경기당 2개의 스틸을 한다고 가정할 때, 약 4시즌이 필요하며, 경기당 1.5개를 기록할 경우 약 6시즌 동안 선수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2014-15 시즌 이후 7시즌 동안 스틸을 2개 이상 기록한 시즌이 3시즌이며, 스틸에서 역시 하락세를 보이며 23-24시즌에 1.2개를 기록한 크리스 폴이 갑자기 회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시스트 부분에서 다뤘듯 기량 회춘도 회춘이지만, 결장 없이 모든 경기에 출장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크리스 폴 외에도 출장경기 수에서 2023-24시즌 종료 기준 1,492경기로 스탁턴의 1,504경기를 빠른 시일 내에 추월할 것이 확실시되는 괴물 르브론은 평균이 1.52개로 너무 낮아 불가능하고[41], 그 외에는 도전가능한 후보군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역 2위인 르브론이 2,275개인데 3위인 러셀 웨스트브룩은 1,849개에 불과한데다 15-16시즌을 마지막으로 평균 스틸이 2.0개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균 스틸 수치로 봐도 폴 외에 통산 평균 2개 이상 스틸을 하고 있는 선수는 없다. (2위 카와이 레너드가 1.72개)
사실 어찌보면 시대의 변화로 (원래 사기급이었던) 스탁턴의 기록이 더욱 언터쳐블의 영역으로 갔다고 할 수 있다. 현 트렌드는 멀티포지션과 핸드체킹 금지로 수비와 접촉이 훨씬 줄어든 시대이다. 그런데 정통 포인트가드 포지션이 없어진다는 건 스탁턴처럼 무지막지한 어시스트 수치를 커리어 내내 쌓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고[42][43], 수비와 접촉이 적어졌다는 건 그만큼 스틸을 쌓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1980년대만 해도 마이클 조던을 포함해 한 시즌에 스틸 3개를 넘기는 선수들이 종종 등장했으나, 현재는 스틸 2개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다. 당장 2021-22 시즌 막판인 현재 스틸 2개를 넘기고 있는 선수는 단 한명이고, 그 조차도 딱 2.0개이다. 그런데 하필 이 두 분야에서 말도 안되는 실적을 쌓은 스탁턴의 기록이 깨질 확률은 한없이 적다.
통산 953승으로, 2015년 11월 3일 팀 던컨에게 경신되기 전까지 NBA 통산 개인이 한 팀에서 쌓은 승수 1위에 올라있었다.
농구 선수의 종합 평가 지표라 할 수 있는 VORP(Value Over Replacement Player)가 2023년 기준 통상 3위(배스킷볼 레퍼런스 기준)로 그보다 높은 선수는 르브론 제임스와 마이클 조던 밖에 없다.
8. 참고 자료
- http://www.nba.com/history/records/regular_assists.html
-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National_Basketball_Association_career_assists_leaders
-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National_Basketball_Association_season_assists_leaders
-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leaders/ast_per_g_career.html
-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leaders/stl_career.html
-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leaders/stl_per_g_career.html
-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National_Basketball_Association_career_steals_leaders
9. 관련 문서
[1]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젊은 시절 세인트 이그나티우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중간에 산타클라라 대학교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학업을 마쳤다. 졸업 후 대니얼 머피 고등학교 감독을 시초로 농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 1968년 아치비숍 미티 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산타클라라 대학교 코치로 대학농구 무대에 처음 진출했다. 이후 곤지가 대학교와 산타클라라대를 왕복하며 캐롤 윌리엄스와 아드리안 부온크리스티아니 감독 옆을 각각 보좌했다. 1978년 곤자가대 체육부장 겸 농구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1981년 제이 힐록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긴 이후 체육부장직에 전념하다가, 1985년부터 농구부 감독을 다시 겸해 임기 12년간 NCAA 전국대회 진출 1회(1995), NIT 진출 2회(1994, 1996)를 각각 일궈냈고, 후임 감독들인 댄 먼슨과 마크 퓨, 전 샌디에이고 대학교 감독 빌 그리어가 그의 밑에서 코치로 일할 적 그의 영향을 받았다.[2] 1993 드래프트 1순위인 크리스 웨버가 화제가 된 것도 매직 존슨 이후 최초의 저학년(underclassman) 1순위였기 때문.[3] 만약 1984 드래프트에서 선수의 미래를 미리 알고 지명한다면,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당연히 조던 1픽에 올라주원, 바클리, 스탁턴이 2~4픽을 차지할 것이다. 물론 올라주원을 지명한 휴스턴 로키츠는 미래를 알아도 올라주원을 또 1픽으로 지명할 거라고 단언했지만, 그렇다 해도 순번이 좀 달라질 뿐 1~4픽이 올라주원, 조던, 바클리, 스탁턴 4명일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저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좀 그런게, (진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어떤 바보가 자기 팀 레전드를 두고 "우리가 미래를 알았다면 저 친구 말고 조던을 뽑았을텐데..."라고 하겠는가?[4] 사실 스탁턴 말고도 커리어 대비 지명순번이 낮았던 슈퍼스타들은 많이 있다. 당장 비슷한 시기의 선수만 따져봐도 클라이드 드렉슬러(14순위)와 칼 말론(13순위)도 이 분야에서 꽤 유명인사들. 다만, 랄프 샘슨 말고는 동기 중 명전 멤버가 없는 드렉슬러, 명전 자체는 동기 중 4명이 올라갔으나 나머지 셋 중 더 낮은 순번도 있었던(조 듀마스, 18순위) 칼 말론과 달리 스탁턴은 동기 중 3명이 같이 들어갔는데 나머지 셋과 달리 혼자 16픽이라서(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는 각각 1, 3, 5픽)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더 강한 면이 있다.[5] 여담으로 드래프트 당시 스탁턴이 야유받았다는 사실은 30년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타팀 팬들이 유타 재즈 팬들을 농알못이라 놀리는 용도로 애용하고 있다. 링크된 영상의 댓글들만 봐도...[6] 2018년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현재 모든 팀이 10억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평균 16.5억달러이다. 5년 전(2013년)과 비교해도 평균 팀 가치가 3배 이상 차이.[7] 칼 말론과 공동수상[8]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 매직 존슨은 사실 PG 역할 외에 로우포스트 득점력, 리바운드 등 다른 포지션의 역할까지 잘해 올라운더의 강점을 가졌던 선수이다. 역대 포인트 가드 랭킹에서 스탁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테픈 커리는 리딩 및 볼 운반보다 막강한 득점력, 특히 역대 최고의 3점 슈터로써의 강점이 빛나는 선수이다. 개인의 득점에 집중하는 대신 경기 운영과 패스 위주의 정통 포인트 가드로써의 역량에만 집중했는데도 스탁턴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준 선수는 그 누구도 없었으며, 이는 역대 최다인 9회 어시스트왕이란 실적이 보여준다. 그나마 크리스 폴이 역대급 볼키핑과 경기 운영으로 손꼽히지만, 폴은 정확히 말하자면 본인의 득점 위주로 경기를 푸는 경우도 많아 듀얼 가드에 가깝다.[9] 받기 쉬운 패스를 찔러주는 것 역시 중요한 능력인데, 매직의 패스는 종종 팀원들의 허를 찔러 실책이 나는 경우도 잦아 매직은 포인트 가드 기준으로도 실책이 역대 가장 많은 선수 중 하나이다. 같은 팀이었던 제임스 워디도 처음엔 매직의 패스가 너무 빠르고 강해서 이걸 못 받곤 했다. 또한 비슷하게 파워패스를 찔러주던 마이클 조던의 경우, 너무 빠르고 강하게 패스를 해줘 리액션이 늦은 빌 카트라이트는 이걸 못 받곤 했다. 이 때문에 초반에 갈등도 있었지만, 둘이 화해한 이후 받기 쉽게 조던이 주기 시작했다고. 어쨌든 누구든 받기 쉽게 패스를 주는 건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10] 바로 이 요인이 게리 페이튼이 스탁턴을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으로 고르는데 한 몫했다. 다른 선수들은 그냥 막거나 도발하면 되지만 스탁턴은 무반응으로 임한뒤 상대방을 헷갈리게 해 예측이 힘들게 했기 때문에. 아이제아 토마스처럼 아예 폭력에 가까운 파울로 스탁턴의 기를 꺾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때는 몸 전체가 인간흉기 수준인 파트너 칼 말론이 확실하게 보복을 해주어서 그것도 소용없었다. 실제로 토마스는 스탁턴에게 하드 파울을 했다가 말론의 말꿈치로 보복당해 이마를 꼬매는 수술도 받았다.[11] 최근에는 카이리 어빙이 네츠 이적 후 3점 한정으로 오른쪽 어깨쪽에서 슛을 던지고 부상 복귀 후 클레이 탐슨도 오른쪽으로 조금 쏠려있다.[12] 주득점원인 말론이야 클러치에 약하니 그렇다고 쳐도, 마찬가지로 한 클러치하고 유타 재즈 최고의 슈터였던 제프 호너섹이 있음에도 중요한 슛은 당연한 듯 스탁턴의 몫이었다. 또한 1998 NBA 파이널 6차전에 마이클 조던이 역전슛을 성공시키고 난 뒤 이에 반격하는 유타의 마지막 전술이 스탁턴의 3점슛이었다. 그를 마크하던 론 하퍼가 스크린에 완전히 걸리지 않아 그 긴 팔로 견제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조금 짧았을 뿐이지, 슛의 방향은 정확했다.[13] 샤킬 오닐의 경우 실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는 골대에서 멀어지면 거의 득점을 못하는 선수였고, 시간이 촉박한 클러치타임에서는 골밑까지 가기 매우 어려운데다가 자유투란 폭탄이 있기 때문에 원샷 플레이를 노리는 클러치라인업에서는 오히려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비슷한 케이스가 2013 NBA 파이널 6차전에서 팀내 최고의 빅맨인 팀 던컨을 빼고 기동력을 강화한 그렉 포포비치의 결정인데, 높이 부족으로 상대팀의 크리스 보시에게 공격 리바운드를 허용하는 바람에 패배하고 말았다. 물론 애초에 공격리바운드는 잡기 매우 어렵고 크리스 보시를 포함해 마이애미 선수들 중 딱히 리바운드 스페셜리스트도 없었기 때문에 포포비치의 결정은 상당히 타당했다. 운이 안 따랐을 뿐.[14] 현재는 아예 포인트 가드 득점왕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며, 00~20년대 S급 가드치곤 리딩 우선에 가까운 크리스 폴도 평균 20점을 몇번 넘겼다.[15] 실제로 그는 커리어 하이 득점이 34점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득점만 노린 게 아니라 16어시스트를 같이 기록할 정도로 패스에도 공을 들였을 때 나온 기록이었다.[16] 여담이지만 아이제아 토마스는 선수 출신답게 해설할 때도 다른 캐스터들이 짚지 못하는 점을 날카롭게 짚기로 유명했다. 예로 마이클 조던의 경기를 해설할 때도 상대 캐스터인 밥 코스타(그 유명한 1998 NBA 파이널을 해설한 인물)가 조던의 예술적 움직임을 지적할 때 토마스는 "That's the strength of Michael Jordan"이라고 조던이 공수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해주는 그의 상체힘을 지적했다. 정작 코스타의 멘트가 더 인상적이었던 지라 조던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에서 훨씬 많이 언급되지만.[17] 1997 NBA 파이널에서 마지막 순간에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자유투 두개를 놓치거나 1998 NBA 파이널 막판에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른 것이 그 예시.[18] 실제로 스탁턴은 경기 막판에 결정적인 빅샷을 잘 넣기로 유명한 만큼 이때 득점을 해 3점차로 벌렸으면 진짜로 경기가 그대로 끝났을 수도 있다.[19] 한 예로 슬램덩크에서 서태웅이 1:1로만 승부를 하려고 했을때 그 공격방식이 너무 뻔했기에 그에 대한 방어가 되어 있었는데, 이와 정반대로 스탁턴은 너무 패스 위주로 하다보니 수비수들도 스탁턴이 뛰어난 온 볼 공격력을 가졌어도 직접 득점하는 걸 자제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더 방어하기가 쉬웠다는 말.[20] 세팅된 상황에서 공격전술을 이행하면 한 템포가 늦춰져 수비에서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실제로 98 파이널 6차전에서 라스트 샷 직전 재즈 공격권에서 스탁턴은 말론에게 엔트리 패스를 하면서 재즈 특유의 하프코트 모션 오펜스를 시작했는데(말론의 포스트업 이후 1대1득점을 하거나 3점라인으로 빠진 호너섹이나 스탁턴 등 슈터들에게 킥아웃하거나, 공을 돌려 스크린을 해주며 쉬운 득점 기회를 만드는 패턴), 이를 간파한 조던이 기가막힌 더블팀 타이밍을 잡아 말론의 공을 기습스틸할 기회가 생겼다. 반대로 이때 공격권을 가져온 조던은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세팅하지 않고 타임아웃조차 포기하며 1대1 아이솔레이션 플레이를 했고, 재즈 역시 1대1 수비로 맞설 수 밖에 없었다. 존 스탁턴 역시 조던이 했던 것처럼 3점 라인 밖에서 시작하는 아이솔레이션 플레이가 가능했던 선수였으며, 매치업 상대가 스탁턴에 비해 민첩성에서 불리한 론 하퍼였기에 말론의 스크린을 타고 돌파하거나 풀업점퍼를 던졌으면 높이가 낮은 불스 입장에선 상당히 막기 어려운 옵션이었다.[21] 시즌제 프로그램으로 찰스 바클리, 크리스 웨버, 레지 밀러, 샤킬 오닐, 케니 스미스, 스티브 커 등 NBA의 레전드들이 등장해서 다양한 주제에서 대화를 나누는 예능 겸 토크쇼.[22] 스티브 커는 항상 이 토크쇼에서 진중하면서도 객관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편이었는데, 저 욕설 한방에 다른 패널들은 다 뒤집어졌다.[23] 그런데 막상 스탁턴의 명예의 전당 입성식 때 소개를 한 것이 아이제아 토마스이다. 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은 듯 하다.[24] 그 대신 칼 말론이 그 악명높은 팔꿈치 어택으로 말 그대로 보내버렸다.#[25] 이건 네임밸류를 떠나 그야말로 꿈의 조합이다. 조던이 스코어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탁턴이 리딩을 맡는 한편, 조던이 수비를 몰고 빼주는 패스를 받아 3점을 던지거나 적재적소에 직접 돌파를 해서 득점을 지원해주는 등 조던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고 시너지를 낼 능력이 있는 선수였기 때문. 더불어 조던은 톱급 백코트 수비수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덩치가 있다보니 나이가 들수록 키작고 재빠른 유형의 가드를 길게 전담마크하기엔 부담이 있는 편이었는데, 스탁턴은 뛰어난 PG 수비수인 만큼 그런 유형의 가드를 잘 막는 선수였다.[26] 모르몬 교도의 비율이 많은 솔트레이크 시티는 놀 곳이 없는 곳으로도 유명하다.[27] http://nesn.com/2013/11/john-stockton-karl-malone-went-to-zoo-together-first-time-they-hung-out-as-utah-jazz-teammates/[28] 한국에서는 많지 않지만, 미국에서의 미니밴에 대한 인식은 아저씨 아줌마가 애들 데리고 다니기에 최적인 차로 인식되어 있다. 오죽하면 미니밴의 이명은 Mom Car. 그만큼 스탁턴의 코트 밖에서의 모습은 그냥 아저씨.[29] https://www.youtube.com/watch?v=0QqLxebQgMU[30] 대부는 가장 가까운 친구여야 부탁하고 세울 수 있는 관계이다.[31] 사실 절친들끼리 라이프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스카티 피펜은 조던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느라 젊은 시절엔 여자도 많이 만나고 거액이 걸린 도박도 즐겼지만 그의 절친인 호레이스 그랜트는 아내를 꼭 원정경기에 동반하고 조용하게 살았다. 다만 이와 별개로 서로의 들러리를 서며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둘은 젊은 나이에 이혼하는 아픔을 둘 다 겪었다.[32] 여담으로, 이 경기는 SPOTV에서 중계하여 한국 NBA 팬들이 손쉽게 레전드 아버지의 팀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데이비드를 손쉽게 볼 수 있었다.[33] 참고로 키드의 기록이 스탁턴의 76.5%인 것을 압둘자바의 득점으로 환산하면 29,367점에 불과하다. NBA에서 통산 3만점을 넘은 선수는 총 7명으로, 8위 샤킬 오닐이 28,596점이다.[34] 폴은 23-24시즌 평균 6.8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출장 경기수도 58경기에 그쳤다. 애초에 폴은 19년 커리어 동안 10어시스트를 넘긴 적이 7번에 불과한데 은퇴할때까지 10어시스트를 6년 연속 넘긴다는 것도, 올시즌 전까지 (단축시즌 제외하고) 평균 68.6경기씩 밖에 못 뛴 폴이 5년 연속 전경기 출장한다는 것도 말도 안되는 가정이다.[35] 현재 NBA 탑을 달리는 스테판 커리, 데미안 릴라드 등은 모두 소위 말하는 '공격형' 포인트 가드다. 특히 커리와 릴라드는 나란히 2020-21 시즌 기준 평균 득점 3,4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 평균 득점 역시 30점에 가깝다.[36] 패스 능력을 인정받으며 한때 3시즌 연속 10+어시스트를 기록했던 포인트 가드 존 월도 부상과 기량 저하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으며, 3년 연속 11어시스트 이상을 찍으며 최근 몇년간 가장 높은 어시스트 수치를 기록한 라존 론도는 2012-13 시즌 무릎전방십자인대 파열을 당한 이후 유리몸이 되었고, 2024년에 은퇴 만큼 기록 경신이 불가능해졌다.[37] 르브론은 비상식적인 몸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4만점-1만리바운드-1만 어시스트란 전대미문의 영역에 도달했고 2023-24시즌에 1만1천 어시스트를 돌파했지만, 만 40세가 된 그가 현재 커리어 평균(7.4개)을 유지한다고 쳐도 스탁턴의 기록을 깨려면 2,135경기를 뛰어야 한다. 좀 더 와닿게 설명하면 21시즌간 1492경기를 뛴 그가 앞으로 643경기를 현재 기량을 유지하며 전경기 출장하며 최소 48세 때까지 뛰어야 한다는 것. 아무리 르브론이 대단해도 인간에게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38] 시즌 82경기를 전부 다 뛴다고 해도 경기당 12~13 어시스트를 기록해야만 가능한 기록이다.[39] 수치상으로는 물론 득을 본게 있다. 시대에 따라 특정 스탯이 더 잘나오는 시기가 분명 있기 때문. 예를 들어 1980년대에는 시즌 4블럭을 기록하는 선수들이 한 시즌에 두명 이상 나온 적도 있는데, 3블럭 하는 선수들조차 거의 안 나오는 현대 선수들의 수비력이 이들보다 현저히 못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위에 언급된 폴의 예시도 있다. 반대로 득점가뭄이던 1997-98 시즌에 28점을 기록한 마이클 조던이 현대에 38분씩 뛰며 28점을 올리는 선수 수준과 같다고 볼 수도 없다. 즉, 13, 14개씩 해대던 배경에는 그가 어시스트 갯수가 상대적으로 많던 시기에 뛰었다는 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9년 연속 어시스트 왕이란 것. 게다가 무려 12개씩 어시스트를 뽑아내던 매직을 제치고 어시스트왕이었다는 점이다. 즉, 상대적으로 어시스트가 적은 현대에 뛰면 12~14개가 아닌 11~13개 정도로 어시스트왕에 오를지언정, 그가 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역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즉, 다른 시대에 뛰었어도 수치가 좀 적을 지언정 압도적인 어시스트 능력을 보였을 것이다.[40] 매직이 5년동안 4번 어시스트왕을 차지했던 기간의 평균 어시스트는 12.1개였는데, 존 스탁턴에게 매년 밀렸던 4년간(1987-88 시즌부터 은퇴했던 1990-91 시즌까지)의 평균 어시스트 기록은 오히려 소폭 올라서 12.2개였다. 즉, 매직 본인은 가장 활발하게 어시스트를 뿌리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스탁턴에게 밀렸던 것.[41] 르브론은 2023-24시즌 종료 시점 기준 2,275개의 스틸을 기록하고 있으며, 23-24시즌에 스틸 1.3개, 2019-20시즌부터 5시즌동안 평균 1.1개를 기록하고 있다. 르브론이 은퇴할 때까지 계속 1.1개를 전경기 출장하며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스탁턴의 기록을 깨기까지 11시즌이 필요하다. 즉 32번째 시즌에 51세가 될때까지 저 수치를 계속 기록해야 깬다는 소리니 당연히 가능성이 없다.[42] 물론 트렌드와 상관없는 어시스트왕만 하더라도 9년 연속을 했으니, 순수하게 그의 어시스트 뽑아내는 능력만 봐도 역대 원톱급이 맞다.[43] 이 트렌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선수가 바로 위에 언급된 하든이다. 하든은 언제든 두자리수 어시스트 시즌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이고 어시스트왕도 했었지만, 필요에 따라 득점 위주나 어시스트 위주로 변신할 수 있는 선수라 통산 어시스트가 6.8개, 주전으로 올라온 휴스턴 시절부터만 따져도 8.1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가장 높은 커리어 평균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들 목록을 보면 스탁턴과 매직 존슨만이 두자리수를 기록했으며, 위에 언급된 크리스 폴(9.5개) 다음이 러셀 웨스트브룩으로 8.4개, 라존 론도가 7.9개에 리키 루비오가 7.6개이다. 그 다음이 르브론 제임스와 하든. 폴이 2005년 데뷔 선수란 걸 생각하면 사실상 현 세대는 커리어 통산 7,8개대가 최상위권이란 얘기다. 커리어 8개로 스탁턴의 기록을 깨려면 23시즌동안 전경기 출장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