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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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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 1st : 1997-98 · 1999-00 2nd : 1994-95 · 1995-96 · 1996-97ㆍ1998-99ㆍ2001-02 3rd : 1993-94 · 2000-01 | ||
| 1st : 1993-94 · 1994-95 · 1995-96 · 1996-97 · 1997-98 · 1998-99 · 1999-00 · 2000-01 · 200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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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득점 | 러셀 웨스트브룩 (Russell Westbrook) - 18859점 (2008~2019) | |
최다 어시스트 | 게리 페이튼 (Gary Payton) - 7384개 (1990~2003) | |
최다 리바운드 | 잭 시크마 (Jack Sikma) - 7729개 (1977~1986) | |
최다 블락 | 서지 이바카 (Serge Ibaka) - 1300개 (2009~2016) | |
최다 스틸 | 게리 페이튼 (Gary Payton) - 2107개 (1990~2003)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게리 페이튼 | |
헌액 연도 | 2013년 |
게리 페이튼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 {{{#FFD800 [[시애틀 슈퍼소닉스|시애틀 슈퍼소닉스]] 등번호 2번}}} | ||||
브래드 셀러스 (1989~1990) | → | 게리 페이튼 (1990~1991) | → | 빈센트 애스큐 (1995~1996) | |
{{{#FFBE00 [[시애틀 슈퍼소닉스|시애틀 슈퍼소닉스]] 등번호 20번}}} | |||||
퀸틴 데일리 (1990~1991) | → | 게리 페이튼 (1991~2003) | → | 팀 해체 | |
밀워키 벅스 등번호 20번 | |||||
샘 카셀 (1998~1999) | → | 게리 페이튼 (2003) | → | 에릭 스트릭랜드 (2003~2005) |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20번 | |||||
브라이언 쇼 (1999~2003) | → | 게리 페이튼 (2003~2004) | → | 주메인 존스 (2004~2005) | |
보스턴 셀틱스 등번호 20번 | |||||
주메인 존스 (2003~2004) | → | 게리 페이튼 (2004~2005) | → | 댄 디카우 (2005~2006) | |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20번 | |||||
커크 페니 (2003) | → | 게리 페이튼 (2005~2007) | → | 그렉 오든 (2013~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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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드웨인 페이턴 시니어 Gary Dwayne Payton Sr. | |
출생 | 1968년 7월 23일 ([age(1968-07-23)]세) |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오리건 주립대학교 |
신장 | 193cm (6' 4") |
체중 | 82kg (180 lbs) |
윙스팬 | 203cm (6' 8")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드래프트 | 1990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 |
소속 팀 | 시애틀 슈퍼소닉스 (1990~2003) 밀워키 벅스 (200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03~2004) 보스턴 셀틱스 (2004~2005) 마이애미 히트 (2005~2007) |
등번호 | 2번 - 시애틀[1] 20번 - 시애틀 / 밀워키 / 레이커스 / 보스턴 / 마이애미 14번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
가족 | 아들 게리 페이튼 2세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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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별명은 'The Glove'.
2. 커리어
2.1. NBA 입성 이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출신으로, 같은 동네에 제이슨 키드와 브라이언 쇼가 살았다고 한다. 길거리 농구를 하면서 서로 알던 사이였다고. 오레곤 주립대 시절 대학농구계의 명장인 랄프 밀러(1919~2001)[3]와 후임 짐 앤더슨(1937~)[4] 감독의 가르침을 받으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대학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1990년 데릭 콜먼[5]에 이어 1라운드 2픽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된다. 1990년은 유난히 스타급 선수들이 빈곤했던 해로[6] 게리 페이튼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2.2. NBA 커리어
2.2.1.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
96 파이널에서 마사장님과. |
페이튼은 루키 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출장한다. 첫 3년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리그에 적응하며 서서히 스텝업을 하더니 4년차부터 올스타급 가드로 올라서고, 5년차부터는 20+득점 8+어시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톱가드로 발돋움한다. 올스타 9회, All-NBA팀 9회(퍼스트 팀 2회), 9년 연속 디펜시브 퍼스트 팀 선정은 공/수/어시스트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갖춰진 그의 전성기를 반영하는 이력.
그보다 한해 일찍 팀에 들어온 파워포워드 숀 켐프와의 듀오는 "소닉 붐"으로 불리는 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 중 하나로 꼽혔으며, 소닉스가 90년대 서부 지구 최고의 강팀 중 하나로 군림한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플레이오프는 꾸준히 진출한 반면 플레이오프 성적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 파이널에는 1회, 컨퍼런스 파이널에는 1회 밖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1993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찰스 바클리의 피닉스 선즈에게 3-4로 패배했고, 1996년 파이널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72승 10패 시카고 불스에게 2-4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2.2. 밀워키 벅스 시절
페이튼은 2003년 시즌 중에 레이 앨런 등 5명의 플레이어와 묶인 트레이드로 밀워키 벅스로 이적한다. 벅스에서 잔여 28경기를 치른 후 FA로 풀린 페이튼은 이미 35세로 커리어 막바지에 도달해 있었다. 우승을 위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가기로 결정한 페이튼은 같은 꿈을 품고 온 칼 말론과 함께 반지원정대로 불리는 03-04 레이커스 라인업을 형성한다.2.2.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시절
그러나 게리 페이튼 - 코비 브라이언트 - 칼 말론 - 샤킬 오닐의 무시무시한 네임 밸류를 자랑하던 이 라인업은 2004 NBA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1-4로 털리며 한 시즌만에 해체되고 만다. 페이튼은 기량 하락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맞물려 플레이오프에서 8.0득점 5.4어시스트 FG 36.6%라는 부진한 성적을 찍었다.
2.2.4. 이후
2005년 레이커스는 페이튼을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시켜 버리는데, 보스턴에서 1년간 선발 출장하다가 2006년 마이애미 히트와 1년 계약을 맺고 제이슨 윌리엄스의 백업으로 뛰게 된다. 그런데 이 해 드웨인 웨이드의 대폭발로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우승을 하고 만다! 16년만에 NBA 우승을 차지한 페이튼은 스탯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3차전과 5차전에서 게임 위닝 샷을 넣으며 관록을 입증한다. 우승 후 마이애미에서 1년을 더 뛴 페이튼은 39세의 나이로 은퇴한다.3.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공격력과 최고의 수비력, 수준급의 어시스트 능력과 포지션 대비 매우 우수한 리바운드 능력이 조화된 올어라운드형 포인트 가드였다. 슈팅 능력이 다소 아쉬운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빠지는 부분이 없고, 큰 부상 없이 17시즌을 뛰며 단 25게임을 결장했을 정도로 내구력도 무지막지하게 좋았다.
포인트 가드치고 큰 신장에 빠른 발을 가졌으며, 말라보이지만 힘이 좋아서 돌파 및 포스트업 플레이에 능했다.[7] 포스트업 5초 룰은 흔히 찰스 바클리 룰 내지는 마크 잭슨 룰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게 포스트업을 즐겨하는데다 저들처럼 샷클락을 많이 써가며 집요하게 백다운을 치는 빈도도 꽤나 높았기에 바클리, 잭슨과 함께 해당 룰이 신설되는 데 영향을 주었던 선수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1999-2000 시즌 평균 24.2득점을 비롯해 무려 7시즌 동안 20+ 이상의 평균 득점을 올리는 동시에 8~9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정도로 득점력과 패싱 능력이 모두 우수했다. 지옥같은 수비력이 유명하지만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서도 최상급의 선수였던 셈.
가장 특기할만한 능력은 수비력. 가드 포지션에서 빅맨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올해의 수비수 상을 따낸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8] "마치 글러브로 공을 감싸듯 상대를 잡아버린다"는 의미로 "The Glove"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인 수비력이 좋았으며[9], 대인 수비 못지 않게 팀 수비에도 뛰어났고 손이 크고 빨라서 스틸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1996년 시즌에는 평균 2.9 스틸을 기록, 스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리바운드를 페이튼보다 많이 잡은 포인트가드는 오스카 로버트슨, 매직 존슨, 제이슨 키드, 러셀 웨스트브룩 정도 밖에 없다.
마이클 조던을 가장 잘막았던 선수 중 하나로 유명하며[10], 1996년 파이널에서 시애틀이 처음 3차전에서 내리 털리자 페이튼이 나서서[11] 조던을 23점/26점/22점으로 묶었다. 특히 6차전에서 조던은 5-19의 필드골과 22점을 기록했으며 이는 조던의 파이널 커리어 로우. 물론 팀 차원에서 조던을 집중적으로 견제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이지만, 어쨌건 1996 파이널에서 조던은 평균 27.3, 야투율 0.415, 파이널 gmsc 18.5로 상당히 고전했다.[12] 96년 파이널을 제외하면 조던의 각 파이널 시리즈들의 평균득점은 30점을 상회한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부분.[13]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조던을 직접적으로 막기보다는 좀 더 많이 움직이게 하고 슛도 터프샷을 강제시키면서 조던을 육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해지게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페이튼의 대인마크능력과 당시 소닉스 로테이션 수비가 조던을 괴롭혔음은 명확하다. 게리 페이튼이 1차적으로 조던에게 붙었지만 조던이 볼만 잡으면 나머지 소닉스 선수들이 일제히 견제하고, 3점라인 안쪽으로 돌파해들어가면 득달같이 더블/트리플팀해가는 엄청난 팀수비로 조던의 움직임을 봉쇄했던 것.[14][15][16]
조던을 가장 잘 막은 팀은 배드 보이즈 피스톤즈, 팻 라일리, 유잉이 이끄는 92, 93년 닉스 정도인데 두 팀 모두 강력한 골밑존재감이 있었다. 닉스는 앤서니 메이슨, 찰스 오클리 등 탄탄한 수비력을 가진 포워드들과 리그 최고 수준의 센터 패트릭 유잉이, 배드 보이즈는 유잉 수준의 림 프로텍터는 없었지만 마혼, 레임비어, 로드맨, 존 샐리, 제임스 에드워즈로 이어지는 터프하고 더티한 육탄공세가 있었다. 그런데 소닉스는 운동능력에 비해 수비력이 안 좋은 켐프와 볼 것도 없는 수준의 센터들만 갖고 조던을 막았는데 이는 그가 골밑까지 돌파할 수 없게 막은 소닉스의 가드, 포워드들의 공이었다. 게다가 94년 핸드체킹룰 개정 이후 이전처럼 거칠게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막은 것. 아무리 조던의 컨디션이 안 좋고 시카고 공격진이 비교적 약했더라도 이는 놀라운 성과였다.[17]
다만 단점도 있었는데, 일단 가드치고 슈팅이 별로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는 것. 자유투가 평균 70% 대였고 점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었으며, 특히 3점슛이 별로 좋지 않았다. 본인도 3점이 안 좋다는 걸 잘 알았는지 데뷔 초에는 아예 3점을 던지지 않아 데뷔 후 네 시즌 동안 3점 시도가 경기당 1개 미만에 그쳤을 정도. 그러다가 데뷔 다섯 번째 시즌인 94-95 시즌에 3점 라인이 단축된 것을 계기로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3점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때 3점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3점 라인 단축이 폐지된 이후에도 몇년간 제법 많은 3점을 던졌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도 성공률은 썩 좋지 않았고, 선수 생활 후반기에는 그냥저냥 평범한 포가 수준으로 3점을 시도하게 되었다. 결국 통산 성공률은 .317(경기당 2.7개 시도, 0.8개 성공.), 경기당 시도수는 당시 평범한 포가 수준이고, 성공률은 페이튼이 뛰던 당시 리그 평균인 .350 대에 못 미치는 수준. 그래도 페이튼은 포스트업을 비롯해 3점 라인 안쪽에서의 득점 능력이 충분히 있는 선수였고, 2010년대 중반 이후처럼 누구나 3점을 던지고 못 넣는 선수에게는 섀깅하는 그런 시대의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흠 잡힐 정도는 아니었다.[18]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NBA 챔피언 (2006) 올-NBA 퍼스트 팀 2회 (1998, 2000) NBA 올해의 수비수상 (1996) NBA 올스타 9회 (1994-1998, 2000-2003) 올-NBA 세컨드 팀 5회 (1995-1997, 1999, 2002) 올-NBA 서드 팀 2회 (1994, 2001)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9회 (1994-2002) NBA 올-루키 세컨드 팀 (1991) NBA 올해의 스틸왕 (1996)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3)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
5. 트래쉬 토크
한 가락한다는 선수들이 잘한다는 트래시 토커 중에서도 거의 탑을 차지하는 선수. 역대 테크니컬 파울 숫자 랭킹에서 제리 슬로언, 라쉬드 월러스에 이은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벌금을 2만 달러씩 물기도 했다. "최고의 트래쉬 토커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에 조던, 버드와 원탑을 다툴 정도. 대부분 1위를 차지하고는 한다.다음은 유명 선수들의 평과 일화
존 스탁턴 : 입에 모터 달았냐? 그만 좀 하지?
페이튼 : 영감님이 내 젊은 혀가 부럽나봐?
페이튼 : 영감님이 내 젊은 혀가 부럽나봐?
마이클 조던 : 페이튼의 아가리에 농구공을 쳐넣고 싶었다.
샤킬 오닐 : 그 양반의 트래쉬 토킹은 최고수준이라 코트에 있는 그 누구도 가급적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더 미친 사실은 그 양반은 코트 밖에서도 최고의 트래쉬 토커였다는 거.
케빈 가넷 : GP는 이쪽 베이스라인에서 저쪽 베이스라인으로 갈때까지 쉴새없이 트래쉬 토킹을 하는데 그 와중에 공격지시도 하고 득점도 하고 스틸도 하고 할거 다 한다. GP는 그냥 트래쉬 토크 마스터다.
2004년에 방한하여 행사를 갖기도 했는데, 동행했던 손대범 편집장의 후일담에 따르면 인터뷰 끝나고 탁구를 몇 게임 쳤는데 거기서도 쉴새없이 나불댔다고 하니 상대와 종목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트래쉬 토커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자기 아들 게리 페이튼 2세에게도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되게 질책을 해서 2세가 경기장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6. 기타
- 현역 시절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로 마이클 조던이 아닌 존 스탁턴을 꼽고 있다.## 조던은 투쟁심의 화신같은 인간이라 트래쉬 토크가 쉽게 먹혀들고 이 경우 결과야 어쨌든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대응이 편해지는데 비해 스탁턴은 아무리 떠벌려도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고. 오히려 묵묵히 파울을 유도해서 자기를 벤치로 내쫓아버린 뒤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매우 거슬렸다고 한다. 조던은 1:1만 집중해서 막으면 되지만 스탁턴은 슛과 자유투가 워낙 좋은데다가 패스까지 너무 좋아서 너무 신경쓸게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같은 서부 컨퍼런스 소속이라 매년 7~9번 정도 상대해야 해서 조던보다 더 상대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조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이건 내 의견이야" 라고 강조하기도......[19] 단순히 조던에 대한 열폭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스탁턴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은 페이튼만은 아니며, 나름 그 이유도 타당한 편이다.[20]
- 스탁턴 또한 얼굴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빠르고 힘이 좋은 강골의 선수였다. 나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부상 후 수술로 기동력을 잃기전까지(대략 97-98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뛰어난 슈터였음에도 외곽을 노리기보단 공격적으로 돌파를 할 정도로 피지컬적 접촉에 자신과 강점이 있었다. 8-90년대에는 2010년대 이후보다 신체접촉에 관대했기 때문에 스틸의 달인들이 거친 수비를 해 뺏는 경우가 많았는데[21] 스탁턴 역시 이 분야에서 남 부럽지 않은 강자다.[22] 즉, 페이튼이 조던을 막을 경우 민첩함에서 우위인데다 시애틀 특유의 팀수비 덕분에 조던의 돌파나 골밑 쇄도를 견제하고 외곽 위주로 풀어가도록 할 수 있었다. 조던의 중거리 슈팅력은 역대급이지만, "돌파하는 조던"보다 "슛 쏘는 조던"이 상대하기 낫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러나 작은 덩치로 조그만 틈만 나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존 스탁턴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외곽을 강요할 경우 슛거리가 길기 때문에 외곽에서도 넣을 수 있으며, 더블팀이 들어오는 순간 귀신같이 오픈된 선수를 찾아 빼준다는 점에서 상대하기 더 까다로운 것. 물론 조던이 스탁턴보다 훨씬 위력적인 선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상성 상으로 조던의 가장 강한 무기에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했던 페이튼 입장에선, 조던만큼 강력하진 않지만 더 다양한 옵션이 있던 스탁턴이 더 까다로울 수 있는 것이다.
- 누구도 부인 못하는 레전드이지만 현재 그는 아무 구단에서도 영구결번되어있지 않다. 이는 그가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연고지 이적을 하고 프랜차이즈의 권리 일체를 포기한 상황이라[23] 실질적으론 소닉스의 후계자이지만, 명목상 전혀 다른 구단이 되었기 때문이다.[24] 즉 실질적으론 연고지 이전이지만 명목상으론 소닉스는 2008년에 해체했고 썬더는 2008년에 만들어진 셈이다. 썬더는 페이튼에게 영구결번을 제의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그는 거절했다. 만약 시애틀에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를 제대로 잇는 구단이 창단된다면, 그 팀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20번으로 영구결번이 될 확률이 높다. 마침 2024년 다가오는 신규 창단팀 승인지역으로 라스베가스와 더불어 시애틀이 확정났으니 머지 않았다.[25]
- 그의 모습을 본뜬 레고 미니피겨가 레고 스포츠 시리즈 3562 제품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다.
- 2004년과 은퇴 후인 2012년에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다.
- 아들인 게리 페이튼 2세도 농구선수이며 주요 로테이션 멤버로 2022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우승에 기여한 우승멤버 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역대 5번째 NBA 우승을 경험한 부자가 되었다.[26] 또 아들이 한창 활약할 때 열심히 직관하며 좋은 계약을 따야한다고 어필하기도 했다. 실제로 페이튼 2세는 3년 28m의 좋은 계약을 받고 포틀랜드로 이적했다.
[1] 루키시즌때만 사용[2] 마커스 스마트가 2022년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유일한 포인트 가드 수상자였다. 참고로 페이튼은 올해의 수비수상 발표 다음 날 직접 보스턴의 훈련장에 찾아가 스마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3] 캔자스 주 샤누트(Chanute) 출신으로 캔자스 대학교 재학 시절 동문인 아돌프 러프와 딘 스미스처럼 명장 포그 앨런의 직계 제자들 중 하나였다. 위치타 주립대학교에선 네이트 보우먼, 아이오와 대학교에선 1979년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우승멤버로 알려질 존 존슨 및 프레드 브라운을 각각 길렀으며, 1970년부터 19년간 오레곤 주립대학교를 지휘하며 페이튼 외에 스티브 존슨과 A.C. 그린도 육성했고 동교 전설의 명장 슬래츠 길(1901~1966)의 통산 359승에 이은 2위 기록인 342승을 기록했다. 특히 1980-81 시즌에는 26승 1패를 찍고 NCAA 토너먼트에서 2번 시드를 얻어서 '오렌지 익스프레스'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1979년부터 4년간 발생한 선수들의 무료 시즌티켓 구입 및 금지된 혜택 수령 등 부정행위가 NCAA로부터 적발되어 1979-80 시즌부터 총 3시즌 간의 기록이 말소되는 안 좋은 일도 있었다. 1988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2006년 미국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고, 그가 몸담았던 오리건 주립대 측은 홈 구장인 길 콜로세움의 농구 코트명을 '랄프 밀러 코트'로, 홈 구장 남쪽 길거리를 '랄프 밀러 드라이브'로 각각 명명하면서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4] 전술한 오레곤 주립대 역사상 전설의 감독이던 슬래츠 길의 직계 제자로, 1960년 졸업 후 수습 코치로 시작해 1965년부터 24년간 정식 코치를 거쳐 1989년부터 6년 동안 감독까지 맡은 진골 지도자였으며, 페이튼 외에 브렌트 배리도 가르쳤다.[5] 94년 드림팀 2에 선발되었을 정도로 유망했다. 물론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스탯도 좋았다. 필라델피아, 샬럿 등지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6] 콜먼과 페이튼을 제외하면 1라운드는 데니스 스캇, 켄달 길, 타이론 힐, 엘든 캠벨, 2라운드는 토니 쿠코치, 세드릭 세발로스, 안토니오 데이비스 정도가 있다. 이 중 올스타가 된 선수는 안토니오 데이비스, 그것도 단 한 번이다. 그래도 주전급 선수들이긴 하기 때문에 완전 망한 해는 아니지만, 스타급이 적었던 게 사실. 게다가 콜먼은 제2의 칼 말론이 될 거란 기대를 받았지만 나태함과 끊임없는 부상 때문에 재능 대비 아쉬운 커리어를 보냈다.[7] 특히 하체가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의 대인 수비 원동력도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클 조던과의 매치업을 보면 포스트업의 귀재였던 조던과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호리호리하지만 역대급 수비능력을 보유한 케빈 가넷과 비슷한 케이스.[8] 페이튼 이후 2021-22 시즌 마커스 스마트가 수상하기 전까지 아무도 수상하지 못했다.[9] 1993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유래.[10] 이외에도 조 듀마스가 자타공인 마이클 조던을 잘 막아세운 선수로 꼽힌다.[11] 당시 조던도 등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긴 했지만, 페이튼 역시 허벅지 부상중이었다. 이 탓에 3연패를 하기 전까지는 감독이 조던과의 매치업을 허락해주지 않았다고.[12] 당장 2014 NBA 파이널에서 카와이 레너드에게 '락다운'을 당했다고 평까지 받았던 르브론이 해당 시리즈에서 평득 28.2, 야투율 0.571, 파이널 gmsc 22.5 정도를 기록했다. 물론 마이애미는 공격농구 시대의 팀이라 팀 야투율이 53.7%인 반면 시카고는 45.4%에 그치는 등 전체적으로 야투율이 96년이 훨씬 낮았기 때문에 다른 시대에 뛴 선수를 언급하려면 이를 감안하고 보는 것이 맞다. 어쨌거나 레너드가 르브론을 괴롭힌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시애틀의 팀수비가 최강의 공격팀이기도 했던 시카고를 애먹였으며, 그 중심에 있는 페이튼 역시 조던을 엄청나게 괴롭혔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13] 물론 조던은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진이 페이튼 때문이 아니라고 우겼지만, 경기 내내 페이튼을 상당히 귀찮아 했던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운동실력도 운동실력이지만 말빨로도 밀리지 않는 페이튼은 조던에게 있어 상당히 귀찮고 짜증나는 상대였을 것이다.[14] 해당 영상 당시 조던이 당한 수비. 이 정도로 집중수비를 당하니 다른 선수들이 오픈되어 조던이 볼을 빼줬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불스 선수들은 안정적으로 슛을 넣어줄 수 있는 선수가 쿠코치 정도밖에 없었다. 2옵션 피펜은 부진에 빠져 집중수비에 시달리는 조던보다도 더 낮은 3할대의 성공률을 기록했고, 론 하퍼는 슛거리가 짧았다. 유일하게 평상시보다 활약한 건 시애틀의 저질 센터진과 매치업된 룩 롱리였지만 그래봐야 롱리였다.[15] 당시 불스는 팀공격이 잘 풀리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통해 물 흐르듯 공격이 이뤄졌지만, 조던을 제외하고 자기 득점을 스스로 만들어낼 선수가 거의 없다는 이유 때문에 한번 팀공격이 안 풀리면 조던의 아이솔레이션을 비롯한 히어로볼에 의존해야 했다. 문제는 당시 소닉스의 수비는 조던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16] 95-96 시즌 당시 수비레이팅 1위는 불스, 2위는 소닉스였는며 소닉스에 올디펜스 팀 멤버가 페이튼 단 한 명 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성과였다. 당시 시애틀엔 수비력 자체가 좋은 선수는 많이 없었지만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기계처럼 돌아가는 강력한 로테이션 수비가 있었다. 즉, 3차전부터 리그 최강의 맨투맨 수비수 페이튼이 자기 공격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조던에게 붙어 공을 잡기 전부터 악착같은 디나이로 괴롭혀 안 좋은 위치에서 잡도록 했고, 볼을 잡아도 포스트업 시 탄탄한 하체와 강한 힘으로 잘 밀려나지 않고, 조던이 돌파시 더블&트리플 팀이 항상 붙어 어렵게 하는 걸 볼 수 있다. 조던이 다른 동료에게 킥아웃해주면 바로 커버 들어가는 로테이션은 덤. 즉, 리그 최강의 수비수와 리그 최강의 로테이션 수비가 합쳐진 성과인 것이다.[17] 후에 게리 페이튼은 4차전이 아닌 1차전부터 조던 대인수비를 했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0-3으로 뒤지고 있던 4차전마저도 당시 시애틀 감독 조지칼은 페이튼의 조던 대인마크를 탐탁지 않아 했는데(아마도 허벅지부상을 달고 있었던지라 불안했던 모양) 페이튼이 이번만큼은 감독님이 거부하셔도 제 뜻대로 할거에요. 라며 도전한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1차전부터 막았다고 해서 그 시리즈를 이겼을거라고 장담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시도는 했어야 했다고...[18] 페이튼의 3점 슛은 수비하는 입장에선 굳이 용을 써가며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냥 던지라며 대놓고 버려두기는 뭣 한, 다시말해 좋다곤 못 해도 없는 취급은 할 수 없는 정도의 옵션이었다.[19] 실제 그의 명예의 전당 연설에 그것과 관련된 댓글이 굉장히 많다.[20] 주로 1:1을 막으면 되는 조던과는 달리 스탁턴은 틈만나면 패스질을 해대서 더 힘들었다고. 물론 조던이 페이튼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인 점은 명확하지만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봐도 조던을 가장 잘 막았던 선수들은 190 언저리의 재빠르고 강골인 포인트 가드들이었다. 조던은 수비를 달고 쏘는 페이더웨이 등의 옵션에도 능했지만, 가장 위협적인 옵션은 특유의 민첩함으로 수비를 제껴놓고 넣는 풀업과 골밑 마무리였다. 이 때문에 그의 파워를 기본적으로 견딜 수 있다면 작고 재빠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그를 더 잘 막았다. 현대 농구로 비유하자면 오히려 카와이 레너드같은 선수들보다 토니 앨런같은 선수들이 더 잘 막을 스타일. 다만 조던의 Head to head 매치업 기록을 보면 그를 가장 잘 막았다던 조 듀마스를 상대한 평균 득점은 30점, 마찬가지로 페이튼이 뛰던 시절 소닉스를 상대로 한 그의 커리어 평균도 30점이다. 또한 소닉스는 페이튼이 아닌 허시 호킨스 등을 그에게 붙힐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소속 컨퍼런스가 달라 1년에 2번, 파이널에서 만나서 끝까지 가봐야 9번이 최대인 조던과 달리 같은 서부컨퍼런스 소속인 스탁턴은 1라운드가 아니라면 최대 11번까지 만나는 상대였다. 그리고 스탁턴은 본인 공격 옵션뿐만 아니라 스크린을 걸고 롤이나 팝을 하는 파트너가 역대 NBA 통산 득점 3위의 빛나는 칼 말론이었다.[21] 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역대 평균 스틸 1위에 빛나는 알빈 로버트슨 역시 작은 덩치에도 힘이 장사였다고 동시대 선수들이 회고할 정도.[22] 심판 몰래하는 더티플레이에도 능한 선수였는데 2년 연속 파이널에서 그를 만난 스티브 커가 패널 시절에 그를 존경하지만 그는 개새끼야라고 농담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23]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 권리는 시애틀 시가 소유하고 있다. 2013년에 시애틀 연고의 사업가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새크라멘토 킹스를 매입하여 슈퍼소닉스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구단주 회의에서 부결되어 무산되었다.[24] 페이튼은 다른 구단에서도 뛰었지만 전성기가 다 지나서 소닉스를 떠난데다가 소닉스를 제외하면 각 구단에서 짧게 뛰었기 때문에 그 업적만으로 영구결번되기엔 부족하다.[25] NBA는 프랜차이즈 권리를 중요시여기기 때문에 샬럿 호네츠의 경우처럼 구단이 연고 이적&프랜차이즈 권리를 포기했다가 원 연고지에 새 구단이 생길 경우 원래 팀의 역사를 이어받은 적이 있다. 게다가 소닉스는 우승에 파이널 진출도 여러 번 한 명문구단이었기 때문에 그 역사를 포기할 확률은 거의 없다. 시애틀에 구단이 생긴다면 호네츠처럼 이름부터 이어받거나, 최소한 그 역사는 이어받을텐데 새로이 영구결번될 소닉스 레전드 0순위는 바로 페이튼이다.[26] 페이튼은 2006년 마이애미, 페이튼 2세는 2022년 골든스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