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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16:28:25

레지 밀러

레지 밀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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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밀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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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75th Anniversary Team
(NBA 75주년 팀)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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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압둘자바 야니스 아데토쿤보 네이트 아치발드 찰스 바클리 밥 쿠지
데이브 코웬스 케빈 듀란트 줄리어스 어빙 조지 거빈 할 그리어
제임스 하든 엘빈 헤이즈 제리 루카스 모제스 말론 케빈 맥헤일
조지 마이칸 스티브 내시 디르크 노비츠키 하킴 올라주원 밥 페팃
윌리스 리드 오스카 로버트슨 데이비드 로빈슨 빌 러셀 존 스탁턴
폴 아리진 릭 배리 래리 버드 윌트 체임벌린 클라이드 드렉슬러
팀 던컨 패트릭 유잉 월트 프레이저 케빈 가넷 존 하블리첵
앨런 아이버슨 매직 존슨 샘 존스 마이클 조던 칼 말론
로버트 패리시 크리스 폴 스카티 피펜 빌 셔먼 아이제아 토마스
네이트 서몬드 웨스 언셀드 빌 월튼 제리 웨스트 제임스 워디
레이 앨런 카멜로 앤서니 엘진 베일러 데이브 빙 코비 브라이언트
빌 커닝햄 스테판 커리 앤서니 데이비스 데이브 드부셔 르브론 제임스
제이슨 키드 카와이 레너드 데미안 릴라드 피트 마라비치 밥 맥아두
레지 밀러 얼 먼로 샤킬 오닐 게리 페이튼 폴 피어스
데니스 로드맨 돌프 셰이스 드웨인 웨이드 러셀 웨스트브룩 레니 윌킨스
도미니크 윌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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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미국 스포츠 사이트 the Athletic에서 NBA 출범 75주년을 기념하여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75명을 발표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카림 압둘자바 빌 러셀 매직 존슨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윌트 체임벌린 래리 버드 샤킬 오닐 팀 던컨 코비 브라이언트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하킴 올라주원 오스카 로버트슨 케빈 듀란트 제리 웨스트 스테판 커리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칼 말론 케빈 가넷 모제스 말론 줄리어스 어빙 데이비드 로빈슨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디르크 노비츠키 찰스 바클리 엘진 베일러 야니스 아데토쿤보 존 스탁턴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아이제아 토마스 릭 배리 드웨인 웨이드 존 하블리첵 크리스 폴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밥 페팃 스카티 피펜 제임스 하든 카와이 레너드 조지 마이칸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제이슨 키드 패트릭 유잉 스티브 내시 밥 쿠지 앨런 아이버슨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엘빈 헤이즈 조지 거빈 클라이드 드렉슬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러셀 웨스트브룩 레지 밀러 게리 페이튼 케빈 맥헤일 폴 피어스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도미니크 윌킨스 레이 앨런 앤서니 데이비스 밥 맥아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드와이트 하워드 데이브 코웬스 얼 먼로 제임스 워디 웨스 언셀드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돌프 셰이스 데니스 로드맨 카멜로 앤서니 빌 월튼 크리스 웨버
<rowcolor=#fff>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빌리 커닝햄 네이트 아치발드 데미안 릴라드 알론조 모닝 할 그리어
<rowcolor=#fff>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알렉스 잉글리시 제리 루카스 피트 마라비치 로버트 패리시 레니 윌킨스
출처 }}}}}}}}}}}}

파일:오륜기(여백X).svg
1996

파일:FIBA 농구 월드컵 로고.svg
1994

베스트팀
파일:NBA 로고.svg
3rd : 1994-95 · 1995-96 · 19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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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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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colbgcolor=#002d62><colcolor=#FFFFFF> 최다 출장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1389경기 (1987~2005)
최다 득점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25279점 (1987~2005)
최다 어시스트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4141개 (1987~2005)
최다 리바운드 멜 다니엘스 (Mel Daniels)
- 7643개 (1968~1974)
최다 블락 저메인 오닐 (Jermaine O'Neal)
- 1245개 (2000~2008)
최다 스틸 레지 밀러 (Reggie Miller)
- 1505개 (1987~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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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www.hoophall.com/57a971c35948f14d9856e5dcd6ca6db7_f596.jpg
레지 밀러
헌액 연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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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밀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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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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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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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 30 No. 31 No. 34 No. 35 No. 529
<rowcolor=#002d62> 조지 맥기니스
(George McGinnis)
레지 밀러
(Reggie Miller)
멜 대니얼스
(Mel Daniels)
로저 브라운
(Roger Brown)
바비 레오너드
(Bobby Leonard)
}}}}}}}}} ||

인디애나 페이서스 등번호 31번
워커 러셀
(1986–1987)
레지 밀러
(1987~2005)
영구 결번
}}} ||
}}} ||
파일:레지밀러2.jpg
<colbgcolor=#002d62> 인디애나 페이서스 No. 31
<colcolor=#fff> 레지널드 웨인 밀러
Reginald Wayne Miller
출생 1965년 8월 24일 ([age(1965-08-24)]세)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UCLA
201cm (6' 7")
체중 88kg (195 lbs)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8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지명
소속 팀 인디애나 페이서스 (1987~2005)
등번호 31번 - 인디애나 페이서스
10번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플레이 스타일4. 수상 내역5. 영상6. 여담

[clearfix]

1. 개요

"왕은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
"A king should never leave his kingdom"

미국의 농구인. NBA 농구선수 생활 18년동안 묵묵히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 된 선수이며, 당대 최고의 오프볼 무브와 3점 슈팅을 자랑하던 3점슛의 대명사였다. 본명은 레지널드 웨인 밀러지만, 보통 레지 밀러(Reggie Miller)라고 부른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레지 밀러/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당대 최고의 오프볼 무브와 3점 슈팅을 자랑하던 선수. 다만 슈팅이 가진 능력의 전부일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1] 전체적으로 평균~평균보다 조금 큰 육각형 슈팅가드에서 3점슛과 오프볼무브 능력이 특히 높은 유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48분 내내 하프코트 전체를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3점슛. 뉴욕 닉스의 전력분석 리포트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 레지 밀러에 대해서 '공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라는 평이 있었다.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스크린을 타고 돌아다니며 순간적인 노마크 찬스를 만들고, 패스를 받아 빠르게 캐치앤슛을 날리는 오프 더 볼 무브(Off the ball move)는 역대 NBA 최고로 평가 받는다. 페이서스와 자주 붙었던 올랜도의 데니스 스캇은 오픈 코트에서 "스크린을 (한 게임당) 39번이나 타는[2] 레지를 내가 안 맡은건 참 다행이었다고 회술한 적도 있다. 특출난 볼핸들러가 없던 인디애나의 팀 전략상 킥아웃 패스보다는 빅맨의 무한 스크린과 밀러의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3점슛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산왕전에서 체력 떨어진 정대만의 플레이와 유사.

이러한 오프더볼 무브로 후대의 3점 슈터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이기도하다.

'동네 한바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은 외곽에 머물러있다가 노마크 상황에서 킥아웃 패스를 받아 오픈 3점을 쏘는 받아먹기와는 달리 높은 BQ, 순발력, 빠르면서 정확한 슈팅 능력이 요구되어 이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선수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역대로 따져봐도 밀러 수준에 가깝게 오프 더 볼 무브를 구사할 수 있다고 평가되었던 슈터는 리처드 해밀턴, 레이 앨런, 카일 코버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플레이 스타일을 슈터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팬들도 꽤 많다. 또한 슈터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던 래리 브라운을 만나서 스타일을 확립한 것도 밀러의 선수시절 행운 중 하나.

풀경기 영상을 보다보면 의외로 1대1 돌파가 많고, 공을 잡고 드리블 치면서 풀업점퍼를 던지는 등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밀러의 핸들링이나 퍼스트스텝 자체는 슬래셔로 이름을 날릴 정도로 뛰어난 편은 전혀 아니었지만,[3] 3점 라인 밖에서 수비수와 1대1로 붙은 상태에서 바로 3점 슛을 올라가는 옵션이 있었다는 점이 돌파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슛을 막기 위해 수비수가 달라 붙으면 '떨어지면 슛, 붙으면 돌파'라는 1:1의 기본에 맞게 수비를 뚫고 들어가고, 여기서 롱2 지점에서 곧바로 풀업점퍼를 던지거나 좀 더 들어가서 러너나 레이업을 던지는 것이 그의 가장 주된 득점 루트였다. 또한 오프볼 무브에서도 오픈찬스에서 3점 슛만 던지는 건 아니고, 스크린을 돌아나와서 패스를 받아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풀업 롱2나 레이업, 러너도 잘했다. 오프볼무브에서 선택지가 워낙 다양하니 수비수들도 미칠 노릇.

자주 언급되는 '플라퍼'라는 평가도 이 과정에서 파울콜을 대단히 많은 것에서 나온 것으로, 비쩍 마르고 약해보이는 몸에 살짝 외계인스러운 인상이 더해지면서 접촉 이후에 조금만 몸짓을 해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훨씬 심한 접촉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심판들이 매우 잘 낚였다. 마치 감전이 된 듯 팔을 주욱 뻗는 풀업 점퍼 자세도 한 몫 했으며, 그렇게 던진 풀업점퍼를 잘 성공시키고 자유투도 좋았기에 4점 플레이도 많이 성공시킨 편.

사실 밀러가 그저 오프 볼 무브, 스팟 업&무빙 3점만이 특출나다는건 그의 하이라이트 필름만 봤을 때 생기는 오해이다.[4] 밀러는 당대 선수로써는 파격적인 3점 시도수를 자랑했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현시대의 스테판 커리데미안 릴라드 마냥 3점을 경기당 평균 10개씩 던져댈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고, 실제로 커리어 내내 3점 시도는 5개 안팎을 오가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평득 20 이상을 수차례 기록하며 인디애나 페이서스라는 시대를 풍미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외곽을 미끼로 미드레인지 풀업 점퍼, 돌파 후 림어택, 컷인, 자유투 삥뜯기 등 다양한 공격 옵션을 두루 갖춘 덕분이었다.

슛에 대해선 어떤 경지에 오른 선수인 것이 분명했고, 자유투도 대단히 정확했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유투를 잘 넣는 비법에 대해서 밝혔는데 "언제나 똑같은 상태에서 던질 수 있도록, 똑같은 자세로 던지는 것을 매일 연습할 것". 해당 인터뷰에는 당시 인디아나 팀의 자유투 연습 루틴 등, 짧지만 볼만한 내용이 많다.

역시 오프볼러의 명성 때문에 핸들링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으나 사이즈 대비 볼 핸들링은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실수가 적고 안정적인 드리블을 가지고 있었다. 영악하다는 평을 받을 만큼 영리하고 패스도 곧잘하는 선수였기에, 마크 잭슨이 잠시 팀을 떠나서 제대로 된 포가가 없던 시기에는 팀내 어시스트 1위를 하기도 했다. 점프력을 비롯한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주력과 체력만큼은 아주 좋은 편이었기에 그의 장기인 오프볼 무브도 신체적 장점을 잘 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마른 몸과 특급은 못되는 사이드 스텝으로 인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성이 워낙 좋아서 수비에서도 마크맨을 정말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종합하자면 리딩 가드 스타일의 플레이를 거의 하지 않았고 볼을 끄는 타입도 아니라 볼 소유 시간이 매우 짧았고, 의외로 슛을 많이 던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경기 당 슛 시도 회수로 보면 동 시대의 라이벌 조던은 22.9회인데 비해 밀러는 12.6회에 불과하고, 밀러와 곧잘 비교되는 레이 앨런은 15.6회이다. 팀의 넘버원 득점원인 슈팅가드치고 난사 or 볼 호그 기질이 없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인데 그렇게 공을 적게 만지면서도 필요할 때는 반드시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이 그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3회 (1995, 1996, 1998)
파일:NBA-Allstar2021.pngNBA 올스타 5회 (1990, 1995, 1996, 1998, 2000)
파일:FIBA-Logo.png 1994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캐나다 금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파일:HOF-Logo.png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2)

5. 영상

커리어 Top 10 Moment

10위 : 1992년 정규 시즌 vs. 샬럿 호네츠, 커리어 하이 득점 게임. 57pt 5rb 8ast를 기록.
9위 : 2005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3차전 vs.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게임 위닝 샷
8위 : 2000년 NBA 파이널 3차전 vs. L.A. 레이커스, 33득점
7위 : 2000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vs. 밀워키 벅스, 1점차로 페이서스가 신승한 가운데 밀러는 플레이오프 커리어 하이 41점을 기록하며 4쿼터 페이서스 득점 25점 중 18점을 올림.
6위 : 1998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4차전 vs. 뉴욕 닉스, 경기 종료 5초를 남기고 동점 3점 슛을 꽂으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가져가고 총 38점을 득점하며 페이서스를 승리로 이끔.
5위 : 2000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vs. 뉴욕 닉스, 3쿼터까지 62-62 동점이었으나 4쿼터를 31-18로 페이서스가 압도하며 NBA 파이널 진출. 밀러는 총 34점 중 4쿼터에만 17점을 득점.
4위 : 2002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vs. 뉴저지 넷츠, 40피트짜리 버저 비터 동점슛으로 1차 연장을 만들고, 1차 연장 종료 3초전 동점 드라이브 인 덩크를(그것도 In Your Face로) 성공시켜 2차 연장을 만들어냄. 밀러는 총 31점을 득점하였으며, 옥에 티는 2차 연장에서 졌다는 것.
3위 : 1998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vs. 시카고 불스. 경기종료 0.7초 전 인바운드 패스를 받고 턴어라운드 역전 3점 슛.
2위 : 1995년 동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 1차전 vs. 뉴욕 닉스, 유명한 8.9초 동안 8점 퍼포먼스.
1위 : 1994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 vs. 뉴욕 닉스, 위에서 언급한 'Spike who?' 경기로, '4쿼터에만 25점' 퍼포먼스.


마지막 경기 하이라이트. 이렇게 명예로운 은퇴 경기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5]


Thank You Reggie!

6. 여담

파일:attachment/레지 밀러/miller2.jpg
영상을 끝까지 보면 알겠지만 슛을 성공시킨 레지 밀러 이하 모든 선수들과 관중들이 흥분하고 펄쩍펄쩍 뛰고 있었지만 당시 감독인 래리 버드는 얼굴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냉정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왜냐하면 이 골을 성공시켰을 때 아직 0.7초가 남아있었고 불스는 바로 작전타임을 불렀기 때문. 이 상황에서 불스가 할 작전은 누구나 다 아는 그거. 플레이가 재개되고 당연하게 공은 그분의 손으로 들어갔으나 림이 그분이 쏜 슛을 외면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 래리 버드의 냉철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물론 한참 지난 후에 TV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되어서 그렇지 실제 밀러와 조던이 붙게 되는 경우 서로 간의 매치업에서 서로 트래쉬 토킹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매우 많다. 닉스가 라이벌로 계속 언급되기는 하지만 사실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밀러의 페이서스와 디비전, 같은 지구에 속해있기 때문에 지겹도록 붙은 팀 중 하나인데 밀러와 조던은 포지션이 같기에 당연히 자주 부딪치고 그만큼 싸우기도 상대할 일도 많았다.
물론 가장 적절한 건 쌍방퇴장이었겠지만 이유없이 조던만 봐준 건 아니다. NBA는 주먹을 실제로 휘두르지 않는 이상 싸움으로 인한 퇴장을 잘 주지 않는데 이는 스타들이 퇴장당하면 흥행에 지장을 주기 때문. 저 상황에선 레지가 밀고 나서 조던이 다시 와서 미는 것으로 멈췄으면 레지가 더 잘못한게 맞고 해설자들도 여기까진 "밀러가 시작했군요"라고 강조를 하며 밀러의 잘못을 지적하고 조던이 되받아 치며 밀때는 "여기까진 괜찮아요!"라고 한다. [9] 하지만 슬로모션으로 보자 선수들이 뜯어말리는 과정에서 조던이 먼저 주먹을 휘둘러 밀러의 얼굴에 맞았고, 밀러도 주먹을 휘둘렀으나 빗나갔다. 밀러의 경우 즉시 퇴장은 아니고 싸움과 조던을 밀 때 엘보우 사용에 의해 테크니컬을 두개 받아 퇴장당한 것. 엘보우 사용시 그 자체만으로 파울이다. 두 선수가 주먹을 휘두른 건 얼핏 보면 안 보이기 때문에 주먹이 오갔다는 걸 모르고 판정했기에 밀러가 팔꿈치 사용+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중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위에 언급했다시피 주먹이 실제로 나간 이상 싸움으로 즉시퇴장 조치가 맞으며 잘못된 판정이 맞다. 심지어 조던은 먼저 주먹을 휘둘렀고, 주먹이 밀러의 얼굴에 닿았기 때문에 백프로 퇴장감이다. 이것 때문에 처음엔 밀러에 대해 주목하던 해설진이 주먹질을 보고 이걸 강조하다가 결과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당시는 심판들이 리플레이를 보고 판정하는게 아니라 셋이서 육안으로 본 내용을 갖고 상의해 결과를 해 오심이 나온 것. (2021년 현재는 이런 경우 고화질 리플레이를 보고 판정한다). 굳이 따지자면 슈퍼스타 콜이라기보단 오심으로 보인다. 과거에 조던이 싸우거나 심판을 우발적으로 들이받았을때는 퇴장과 징계를 받았기 때문.
실제로 조던은 저 싸움 때문에 1경기 징계를 받아 다음 경기에 결장했고, 밀러는 징계 없이 다음 경기인 미네소타전에 출장했다. 즉, 심판들이 조던의 펀치를 못 봐서 오심이 나왔을 뿐 제대로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둘 중 조던 한명에게만 징계를 줬기 때문에 조던을 봐준 것은 확실히 아니다.
* 특이하게도 NBA 선수가 아닌, 영화감독이자 닉스의 광팬인 스파이크 리와의 설전은 유명하다. 레지 밀러 전성기의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항상 1위를 고수하던 조던의 불스에 밀린 콩라인이자 동부 파이널에서 시카고와 상대하기 위한 한 자리를 놓고 패트릭 유잉이 이끌던 같은 컨퍼런스의 뉴욕 닉스와는 그야말로 불스보다도 더 처절하게 치고 받고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닉스의 광팬인 스파이크 리는 닉스의 홈경기가 있을때마다 항상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관중석 앞자리에서 페이서스의 에이스 레지 밀러를 도발했고, 그러면 밀러는 이에 지지 않고 슛을 던져 성공시킨 후 스파이크를 데꿀멍시키는게 주 패턴. 인터뷰에서 가끔 스파이크 리를 언급하는 걸 보면 애증의 관계인 듯. 심지어 1994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스파이크리와 경기 중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인디애나가 이기면 스파이크 리가 밀러의 아내[10]를 본인의 영화에 출연시키기로, 닉스가 이기면 밀러가 당시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마이크 타이슨을 면회하기로 했다고.[11] 결국 닉스가 인디애나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자, 밀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교도소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3시간이나 기다렸지만, 타이슨이 면회를 거부해 만나지는 못했다고.... [12]
그리고, 이때 당한 굴욕을 잊지 않고 다음해 복수한다. 코트에서는 그렇게 치고 박고 싸웠던 스파이크 리였지만 이 둘의 개인적인 사이는 꽤나 좋다. 밀러의 마지막 시즌에 뉴욕에 방문하자 축하해주기도 하고 해설자 시절에도 종종 등장하여 장난치기도 하며, 2019년에 리가 블랙클랜스맨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자 자신의 공식 계정으로 그를 축하해주기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한다.


[1] 삐쩍 마른데다 은퇴 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이미지가 더 강해진 감이 있다.[2] 물론 숫자는 스캇이 생각나는 대로 말한 숫자. 20년이 넘게 지난 현대 농구에서는 지금보다 공격작업이 훨씬 치밀해져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스테판 커리같은 선수는 밀러처럼 오프더볼 무브로 3점 슛을 던지기 위해 한 플레이에만 3번 스크린을 타기도 하고, 경기 전체로 치면 스캇이 말한 숫자의 2배 정도는 타게 된다.[3] 동시대 정상급 슈팅 가드들인 마이클 조던, 클라이드 드렉슬러, 미치 리치몬드 등과 비교하면 더더욱 두드러진다.[4] 90년대는 '전문 슈터' 역할만으로 스타가 될 순 없는 시대였다. 3점슛이 팀전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대나 그 이후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득점은 3점 라인 안쪽에서 이뤄졌다. 마크 프라이스나 레지 밀러처럼 정교한 슈터들도 기본적으로 다양한 득점루트를 구비할 수 밖에 없었다. 진짜로 옵션이 슛 밖에 없는 스티브 커나 크렉 하지스 같은 경우는 아무리 슛이 뛰어나도 백업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5] 4쿼터 교체장면은 9분 30초부터 볼 수 있다.[6] 밀러는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그래 마이클, 내가 민 게 맞네. 근데 자네도 그런 적 많잖아? 쌤쌤이지." (Yeah michael I did push you,too. but i've seen you doing it so many other times to so many other players. I figured it was OK.) 라고 이 플레이가 파울이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다만 조던과의 차이점이라면 조던은 가드치고 힘이 굉장히 세고 체격이 탄탄해 심판 몰래 한손으로 슬쩍 밀쳐도 수비수들이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92-93 파이널에서 속공상황서 스핀무브후 선즈의 마크맨 대니 에인지를 한 손으로 가볍게 치워버리고 골밑 돌파를 성공시키는 장면이 대표적.) 밀러같은 경우 본인보다 무겁고 힘이 월등한 조던을 떨쳐내기 위해 누가봐도 대놓고 밀었다. 밀러는 후에 은퇴선수들이 모여 수다떠는 nba open court란 방송에서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웬만해서는 공격자 파울이 불리지 않는다는 걸 염두에 뒀다"고 설명한 바 있다.[7] 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코치이자 얼마전까지 전주 KCC 이지스 코치를 역임했다.[8] 가장 인기 댓글의 표현이 재미있는데 "레지가 퇴장당한 이유는 조던의 주먹을 얼굴로 때려서다" 라고"[9] 진짜 괜찮은게 아니라 퇴장감이 아닌것.[10] 현재의 기준에서는 전처. 밀러 부부는 2001년에 이혼했다.[11] 당시 타이슨은 강간죄로 92년 4월부터 인디애나주 플레인필드의 교도소에 수감중이었다.[12] Jimmy Kimmel Live에서 본인이 비화를 직접 밝혔다.[13] 물론 심하게 받은게 아니라 꿀밤을 맥인거처럼 톡 쳤다.[14] 사실 실제 장면을 보면 스탁스가 폭발해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신경전을 벌이다가 한대 툭 친 것에 가까웠다. NBA에서 싸움은 즉시 퇴장이지만 신경전과 가벼운 접촉은 테크니컬 파울 정도에 그친다. 위에서 언급된 조던과 밀러의 싸움도 밀러가 테크니컬 누적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주먹이 안 나갔다면 테크 하나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탁스의 컨택은 즉시퇴장 판정을 주긴 좀 애매했다. 그런데 문제는 밀러가 작정하고 이를 노렸다는 것. 스탁스가 치자마자 무슨 황소에 들이받힘마냥 뒷걸음을 치더니 두 손을 들고 특유의 억울한 표정으로 기가막히다는 듯 심판들을 바라봤다. 참고로 닉스의 리더 패트릭 유잉은 밀러의 속셈을 알고 있었기에 바보짓하지 말라고 계속 스탁스에게 경고했는데 그가 결국 사고를 치자 정말 불같이 화를 냈다.[15] 저메인 오닐은 1996년 드래프트 당시 코비와 함께 초고교급 선수로 주목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스타군단 포틀랜드에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인디애나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인디애나에서 꽃을 피웠다. 레지 밀러가 팀내 발언권이 큰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오닐의 영입을 반대하고 다른 베테랑을 영입하라고 할수 있었는데 밀러는 오히려 오닐이 성장할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훗날 오닐은 레지 밀러의 한경기 최고득점이자 팀의 한경기 최고득점 기록인 57득점을 깨지 않고 딱 55점만 넣고 벤치로 들어가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16] 반면 두 팀에서 다 뛰어본 바클리는 92년이 더 낫다고 주장해서 오닐을 도발하고는 한다.[17] 밀러가 인디애나를 떠나려고 했던 적은 딱 한번 있었는데 그것도 개인적인 문제였지 (방화범이 멀쩡히 구설수 없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그의 집에 불을 질렀고, 그의 부인은 더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로 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 방화 배후에는 밀러의 부인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작은 도시인 인디애나가 질려서 로스앤젤레스로 가고 싶은데 남편이 가지 않자 이런 극적인 방법을 썼다는 이야기가...) 그마저도 우승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계속 인디애나에서 이기고 싶어했다.[18] 놀랍게도 은퇴 후 몇 년 뒤인 07-08시즌의 보스턴에서도 러브콜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보스턴은 막강한 우승권이었고 또 실제로 우승을 하게 되는 팀이었는데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인디애나와의 의리를 지켰다.[19] SNS에 자전거 라이딩 하는 장면을 많이 올리고 있다.[20] 또한 많은 댓글에는 레지의 아들이 커리와 많이 닮았다는 댓글도 보인다.[21] 2022년 3월 현재 제임스 하든이 레지 밀러의 기록을 넘으면서 4위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