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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10:50:57

뉴욕 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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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428a><colcolor=#fff> 뉴욕 닉스
New York Knicks
창단 1946년([age(1946-01-01)]주년)
연고지 뉴욕주 뉴욕시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1970~)
디비전 이스턴 디비전 (1946~1970)
애틀랜틱 디비전 (1970~)
연고지 변천 뉴욕 (1946~)
구단명 변천 뉴욕 닉스 (1946~)[1]
홈 경기장 구 매디슨 스퀘어 가든 (Madison Square Garden III, 1946~1968)[A]
69연대 무기고 (69th Regiment Armory, 1946~1960)
매디슨 스퀘어 가든 (Madison Square Garden IV, 1968~)[A]
저지 스폰서 Experience Abu Dhabi
구단주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4][5]
사장 리온 로즈 (Leon Rose)
단장 스캇 페리 (Scott Perry)
감독 탐 티보듀 (Tom Thibodeau)
G 리그 제휴 웨스트체스터 닉스 (Westchester Knicks)
로컬 경기 중계 MSG Network
약칭 NYK
파일:뉴욕 닉스 로고.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2회)
1970, 1973
컨퍼런스 우승
(4회)
1972, 1973, 1994, 1999
디비전 우승
(8회)
1953, 1954, 1970, 1971, 1989, 1993, 1994, 2013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732 - (1969-70 시즌, 1992-93 시즌 82경기 60승 22패)[6]
최저 승률 .207 - (2018-19 시즌, 82경기 17승 65패)
최다 승 60승 - (1969-70 시즌, 1992-93 82경기 60승 22패)
최다 패 65패 - (2014-15 시즌, 2018-19 시즌, 82경기 17승 65패)
최고 계약 $212,500,000 - 2024년 OG 아누노비
팀 컬러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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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컬러
파랑색 오렌지색 은색 검은색 흰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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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ion Icon Statement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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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파이널 우승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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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2023,#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70 NBA 파이널 우승팀
1969
보스턴 셀틱스
<colbgcolor=#f58426><colcolor=#fff> 뉴욕 닉스 1971
밀워키 벅스
1973 NBA 파이널 우승팀
1972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뉴욕 닉스 1974
보스턴 셀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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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전성기2.3. 패트릭 유잉의 시대2.4. 암흑기2.5. 암흑기의 끝2.6. 카멜로 앤서니의 시대
2.6.1. 2011-12 시즌2.6.2. 2012-13 시즌2.6.3. 2013-14 시즌2.6.4. 2014-15 시즌2.6.5. 2015-16 시즌2.6.6. 2016-17 시즌
2.7. 이후
2.7.1. 2017-18 시즌2.7.2. 2018-19 시즌2.7.3. 2019-20 시즌2.7.4. 2020-21 시즌2.7.5. 2021-22 시즌
2.8. 새로운 뉴욕의 왕 제일런 브런슨
2.8.1. 2022-23 시즌2.8.2. 2023-24 시즌2.8.3. 2024-25 시즌
3. 영구결번4. 2024-25 시즌 선수단5. 역대 성적6. G 리그 산하팀7. 기타
7.1. 연고지의 가치, '닉스 경기'의 특별함
7.1.1. 연고지 빨?7.1.2.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운명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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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뉴욕 닉스 심볼.svg 뉴욕 닉스의 엠블럼 변천
파일:뉴욕 닉스 로고(1946~1964).svg 파일:뉴욕 닉스 로고(1965~1979).png 파일:뉴욕 닉스 로고(1980~1983).png 파일:뉴욕 닉스 로고(1984~1989).png
1946/47 ~ 1963/64 1964/65 ~ 1978/79 1979/80 ~ 1982/83 1983/84 ~ 1988/89
파일:뉴욕 닉스 로고(1990~1992).png 파일:뉴욕 닉스 로고(1992~1995).svg 파일:뉴욕 닉스 로고(1995~2011).svg 파일:뉴욕 닉스 로고.svg
1989/90 ~ 1991/92 1992/93 ~ 1994/95 1995/96 ~ 2010/11 2011/12 ~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맨해튼. 홈구장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다.

팀명인 '닉스'는 정식 명칭인 '니커보커스'(Knickerbockers)' 의 줄임말이며, 네덜란드 출신의 뉴욕 이민자를 뜻하는 말이다[7]. 그리고 해당 명칭은 19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야구팀의 이름이기도 하다.[8]

2. 역사


팀의 43년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9)

2.1. 초창기

NBA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역사가 깊은 팀이며, 그런 만큼 리그 내에서 선구자이거나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기도 한다. 1946년에 BAA의 원년 멤버로 창단하여 11월 1일에 토론토 허스키스[9]와 NBA 역사상 첫 개막전을 치렀다.[10] 창단 초기에는 딕 맥과이어와 해리 갈라틴을 축으로 1951년부터 3년 연속으로 파이널에 나갔으나, 밥 데이비스와 바비 완저의 로체스터 로열스에게 1번, '거인' 조지 마이칸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에게 2번 무릎을 꿇고 말았다.

1956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건 단판제에서 패배한 뒤 10년동안 플레이오프에 딱 한번 진출하면서 암흑기를 지냈으며, 특히 1962년 3월 2일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전 때 윌트 체임벌린의 100득점 달성의 희생양이 됐다.

2.2. 전성기

1964년 드래프트 때 무명대학 그램블링 스테잇 출신 윌리스 리드를 8번으로 뽑은 뒤 팀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레드 홀즈먼 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해 다시 본격 강팀으로 발돋움하게 되고[11], 이후 월트 프레이저의 급성장은 1969-70 시즌 뉴욕을 파이널로 이끌게 된다.

1970년 벌어진 파이널의 상대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엘진 베일러라든가 제리 웨스트, 그리고 특히 윌트 체임벌린은 우승 좀 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12] 그리고 시리즈는 치열하게 진행되며 7차전을 향했다.

7차전을 앞두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분위기는 어두워져 있었다. 바로 팀의 정점인 윌리스 리드가 6차전의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출장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것.

하지만 이 때, 뉴욕 팬들은 기적을 보게 되었다. 바로 그 윌리스 리드가 절뚝거리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던 것[13]. 거기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 리드가 점프볼을 따내더니, 순식간에 4득점을 따내면서 뉴욕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광분, 아니 그 이상의 분위기로 치닫았다. 비록 리드는 이 4득점을 끝으로 경기장을 나갔지만 시작부터 기세를 잡은 뉴욕은 프레이저가 36득점 19어시스트(!) 뽑아내며 첫번째 우승을 이뤄낸다. 리드의 투혼은 The Jump라고 불리며 닉스팬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윌리스 리드는 사상 최초로 시즌 MVP-파이널 MVP-올스타전 MVP를 싹쓸이하는 대 업적을 세운다.

1971-72 시즌 다시 파이널에 올라 또다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맞붙었지만 졌고, 1972-73 시즌에도 파이널에 올라 이번에도 또 상대는 레이커스. 이번에는 4-1의 스코어로 비교적 가볍게 잡아내며 두번째 우승을 이루게 되었고, 윌리스 리드는 다시 파이널 MVP를 탔다.
파일:external/assets.nydailynews.com/gal-holzman-jpg.jpg
1970년대 초반 닉스의 황금기 멤버들, 이 사진의 6명은 감독까지 전원이 영구 결번되었다.

그러나 1974년에 '캡틴' 윌리스 리드가 무릎 부상으로 은퇴하고 프레이저도 점점 노쇠화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고, 다시 기약없는 암흑기를 향해 걸었다. 1982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사들인 버나드 킹을 중심으로 플레이오프에 얼굴을 내밀긴 했지만 그가 온갖 말썽을 부리고 부상으로 신음했기에 예전처럼 주목할만한 팀은 아니었다. 1984/85 시즌에 킹의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지면서 팀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2.3. 패트릭 유잉의 시대

리드를 능가할 만한 리더를 찾던 닉스는 1985년 드래프트에서 1픽으로 당시 NCAA에서 4년간 조지타운 대학 농구팀을 우승 한 번, 준우승 두 번으로 이끈 패트릭 유잉을 지명해 숙원을 풀었다.[14] 유잉을 중심으로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 닉스는 1988-89 시즌 오랜만에 디비전 1위를 차지하는 등 다시 예전같은 강팀의 면모를 되찾기 시작한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단 하나 있다면, 당시 동부 컨퍼런스는 마이클 조던이 리그를 씹어먹을 포스로 날뛰고 있던 시절이라는 것. 결국 1989년, 1991년 플레이오프에서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만나 탈락했다.[15]

1991년에 데이브 체키츠 사장이 어니 그룬필드 관리부장을 부사장 겸 단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룬필드 신임 단장은 '쇼타임 레이커스'를 만들어낸 팻 라일리를 모셔와 팀의 체질개선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유잉을 중심으로 끈적하기 이를데 없는 수비력을 위주로 하는 팀으로의 변화였다.

유잉을 필두로 존 스탁스, 찰스 오클리 등은 그야말로 깡패같은 수비를 선보이며 갱스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 이렇게 변화된 팀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다시 조던에게 도전하지만 3승 4패로 1승이 모자라 또 미끄러지고 말았다.

1992-93 시즌, 라일리가 시도한 변화는 거의 완성되었고 닉스는 리그 최강의 수비팀으로 거듭났다. 이 시즌 구단 역대 최고승률인 60승 22패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성적 또한 57승의 불스보다 우위였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팀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또다시 조던의 불스에게 도전했지만 첫 2판을 잘 잡아놓고 4판을 내리 깨진 덕분에 2승 4패로 탈락했다. 특히 2승 2패로 맞선 5차전 마지막 포제션에서 찰스 스미스가 2~3초를 남겨두고 연달아 골밑슛을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골수 닉스팬들에게 '망할 놈의 찰스 스미스'라고 까이고 있다.[16][17] 또 닥 리버스와 앤서니 메이슨, 존 스탁스 등 개인기가 뛰어난 이들이 플레이오프 들어 부담감 때문에 유독 볼 핸들링이 좋지 않고 실책도 많아 닉스로서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래서 지금까지 조던에게 깨진 것만 해도 무려 4번이다. 이렇게 번번히 조던의 벽에 막혔지만 1993-94 시즌을 앞두고 조던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시즌 도중 닥 리버스가 무릎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있었으나, 1994년 1월 6일에 토니 캠벨과 1997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댈러스 매버릭스의 최고참이던 데릭 하퍼와 맞바꿔 득점력을 더욱 강화했고, 정규시즌에서 57승으로 동부 컨퍼런스 2위를 차지한 닉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뉴저지 네츠를 3승 1패로 격파했다. 닉스는 이어 조던이 없는 시카고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차례로 4승 3패로 따돌려 정말 오랜만에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상대는 하킴 올라주원휴스턴 로키츠.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있던 닉스는 6차전 스탁스가 시리즈를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슛이 하필이면 올라주원의 새끼손가락에 걸려버리며[18] 결국 7차전까지 끌고 가게 되고 7차전에서 존 스탁스의 3점슛 11번 시도 0번 성공[19]이라는 화려한 삽질 덕분에 통한의 준우승을 거두게 된다. 7차전 스코어가 90-84로 6점차 스코어였음을 감안하면 정말 눈물겨웠는데, 당시 유잉을 빼곤 고른 득점을 올린 선수가 팀 내에 없었다. 스탁스의 경우 게임 막바지에 1점이 절실할 때 한 방 먹여주는 위기에 강한 슈터이긴 하나 슛 성공률의 편차가 컸고, 그렉 앤써니는 슛이 불안정하고 볼 배급도 일정하지 않았다.

1994-95 시즌을 앞두고 오클리의 트레이드 문제가 도마에 오른 바 있었지만 그는 잔류했고, 클리퍼스에서 FA로 풀린 도미니크 윌킨스에 입맛을 다셨지만 윌킨스가 보스턴으로 가면서 득점력 강한 선수 확보에는 실패했다. 드래프트에선 전체 24픽으로 몬티 윌리엄스(노터데임대), 26픽으로 찰리 워드(플로리다 주립대)를 각각 뽑았는데 몬티는 심장 질환이란 약점이 있는 반면, 워드는 썸머리그에서 실력을 처음 인정받아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리버스도 무릎 수술을 받고 복귀했으며 전 시즌에서 풀타임으로 나간 하퍼의 강한 득점력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정규시즌을 55승 27패로 마친 후, 플레이오프에선 2라운드까지 나가서 인디애나와 만나 7차전까지 가서 졌다. 굳이 이걸 적은 이유는 이 시리즈의 1차전에서 일명 밀러 타임의 희생양이 됐기 때문. 자세한 것은 레지 밀러 참조. 밀러 타임을 끝으로 라일리는 계약기간을 1년 앞두고 지휘봉을 내놨다. 1995-96 시즌을 앞두고 후임 감독으로 팻 라일리의 네임밸류에 뒤지지 않는 명장 돈 넬슨이 선임됐다. 그러나 라일리 밑에서 오랫동안 농구를 해왔던 선수들은 라일리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인 넬슨의 시스템에 좀체로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감독과 선수들간의 불화가 생겨 힘겨운 시즌을 치러야 했다. 게다가 전 시즌까지 주전 스몰포워드였던 찰스 스미스를 벤치로 내리고 앤서니 메이슨에게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기며 오펜스의 코어로 삼자 롤이 줄어든 다른 선수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 와중에 당시 닉스의 부동의 주전 슈팅가드였던 존 스탁스마저도 벤치로 내려앉히고 휴버트 데이비스를 주전으로 대신 기용하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무브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넬슨은 구단에 샤킬 오닐을 영입하기 위해 패트릭 유잉을 트레이드시키자고 했다가 구단에서마저 찍히는 바람에 단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34승 25패를 기록한 시점에서 시즌 도중에 경질되고 말았다. 후임으로는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제프 밴 건디가 새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해 플옵 2라운드에서 또 조던의 불스에게 깨졌다. 다행인건 조던한테 깨지는건 이게 끝이다.

조던은 두 번의 은퇴가 있어서 불스에서의 커리어가 13 시즌에 그쳐 13번 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쳤다는 것, 게다가 조던과 유잉의 커리어 초창기에는 두 팀 다 약팀이라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연례행사급으로 붙고, 깨진 셈이다. 조던과 유잉으로 치면 둘이 처음 붙은 89년부터 조던이 은퇴하던 98년까지 십년간 딱 절반인 5번 붙어 유잉이 전패, 그 중 두 번(89년, 93년)은 정규시즌 성적이 더 좋았음에도 업셋당했다. [20]

그러나 분명한 건 피스톤즈가 성장중인 불스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면, 왕조 불스의 가장 큰 적은 닉스였다는 것이다. 92년에는 최전성기 불스를 7차전까지 물고늘어졌으며, 93년에는 조던을 야투율 4할에 그치게 철저히 수비해주며 심지어 첫 두 경기를 따내기까지했다. 96년에도 비록 1승4패에 그쳤지만 동부에서 불스에게 유일하게 승을 따낸게 바로 뉴욕이었다. 심지어 60승을 한 올랜도도 스윕당한 마당에. 게다가 4차전 역시 패했지만 웨닝턴의 위닝샷으로 겨우 이길만큼 혈전이었다. 게다가 조던이 은퇴한 94년엔 드디어 복수에 성공하며 파이널 진출. 만약 97년에 난투극이 일어나 유잉을 포함한 양팀 선수들이 집단으로 징계당해 시리즈 전적에서 밀리던 마이애미 히트가 역전하지 않았더라면 동부 파이널에서 다시 불스와 명승부를 펼쳤을 것이다.

최전성기 닉스는 조던을 괴롭힐 수 있는 운동능력과 체력을 지닌 맨투맨 수비수 (존 스탁스)와 조던의 가장 큰 무기인 돌파를 힘들게 만드는 피지컬한 수비수 (찰스 오클리)와 강력한 블러커까지(패트릭 유잉은 한때 시즌 평균 블럭 4개까지 했다) 있었으며, 자비에 맥대니얼스나 앤서니 메이슨같은 터프가이들도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92시리즈에서 닉스의 주전 가드로 출장하며 조던을 막은 (아직 스탁스는 후보였다) 제럴드 윌킨스는 93 시즌에 마찬가지로 조던에게 매번 깨지던 캐브스가 아예 조던에 대한 대항마로 데려가서 꽤나 괴롭혔다. 물론 괴롭혔다뿐이지 결국 불스가 캐브스를 스윕해버리지만 당시 불스가 가장 약한 것이 운동능력과 기술을 겸비한 센터였는데, 93 동부파이널에서 유잉은 25.8점 11.2리바운드, 비록 1승밖에 못했지만 96 2라운드에선 23.4점 11.2리바운드로 좋은 활약을 했다.

97 동부 파이널 당시 알론조 모닝은 불스를 상대로 평균 15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모닝은 센터치고 단신이라 로드맨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고 롱리와는 사이즈 차이가 너무 커 부담스러워했다. 만약 35세의 나이로 올 NBA 세컨드 팀에 오르며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던 유잉이라면 불스를 더욱 괴롭혀줄 수 있었을 것. 유잉은 중거리 슈팅력과 다양한 득점기술이 있는 센터라 로드맨이 막기는 무리였으며, 롱리가 1인치 크다곤 하나 어차피 파워, 기동력, 기술, 농구센스 모두 유잉이 압도적인 우위라 별 위협이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조던의 불스"에게 5전 전패란 기록이 커서[21] 약체 이미지가 크지만 유잉이 이끌던 닉스는 매우 강력한 팀이었다. 닉스가 역사상 55승을 넘은 적이 5번인데 그 중 세번이 90년대란 점, 그리고 역대 최고 승수인 60승을 기록한 게 우승시즌인 69-70 시즌과 더불어 92-93 시즌이란 점, 닉스가 우승을 차지한 70년대엔 절대강자가 없이 전력이 평준화된 춘추전국시대였다는 점, 90년대 닉스의 앞을 가로막은 팀이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인 마이클 조던의 불스란 점을 생각하면 패트릭 유잉이 이끌던 닉스가 팀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고 주장해볼 수도 있다.

유잉의 입단 직전에 팀을 이끈 건 84-85년 득점왕 버나드 킹이었다. 그러나 킹과 유잉의 막강한 인사이드-아웃사이드 듀오는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데, 85 시즌 막판에 킹이 당시까지 아무도 복귀한 적이 없었던 끔찍한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22] 킹은 87 시즌 후반에 잠깐 복귀했지만 이미 전성기 기량을 잃은 후였고[23] 87 시즌 후반엔 유잉이 부상으로 아웃되었기 때문에 결국 둘은 한 경기도 같이 뛰지 못했다.

유잉은 입단과 동시에 에이스가 되었지만 초창기 닉스는 실력있는 선수도 없는데다가 2년차 때 휴비 브라운 감독이 경질되고 복귀한 센터 빌 카트라이트를 활용하기 위해 유잉이 파워포워드로 출전하는 등 정리가 하나도 안된 상태였다. 즉, 딱히 팀 색깔이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한 것은 바로 87년 부임한 릭 피티노, 그리고 이 해에 드래프트된 센스 넘치는 루키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이었다. 대학 무대에서 이미 상당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다가 프로에 첫 발을 딛은 피티노는 팀을 전반적으로 정비했고, 카트라이트를 벤치로 내리고 전반적으로 로스터를 정비한다. 특히 마크 잭슨은 루키임에도 무려 10.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는데, 이런 잭슨의 재능을 믿고 피티노는 다음 시즌 빠른 페이스를 하게 된다. 88-89 시즌에 닉스는 공격페이스가 리그 3위, 평균득점이 5위였다.[24] 이 시즌 닉스는 52승으로 무려 18년만에 디비전 우승을 거두었고 2라운드까지 올라갔지만, 6번시드였던 조던의 불스에게 업셋당하고 만다.[25]

그러나 피티노가 89년 시즌 후 사임하고 후임 스튜 잭슨 밑에서 90, 91 시즌 연속으로 실망스런 결과를 보게 되고, 잭슨은 91 시즌 도중 경질, 닉스는 1라운드 탈락에 그친다.

유잉 시절의 닉스가 확고한 색깔을 갖게 된 건 위에 언급됐다시피 91-92 시즌을 앞두고 팻 라일리를 영입하면서부터. 이런 수비위주 농구는 제프 밴 건디 시절 초반, 정확히 말하면 유잉이 아직 위력적이던 97, 98 시즌 정도까지만 해도 유지되었는데, 유잉의 기동력이 크게 느려지던 99시즌에 마커스 캠비, 래리 존슨, 라트렐 스프리웰, 앨런 휴스턴 등 젊고 빠른 선수들로 팀의 중심이 옮겨지면서 유잉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유잉 시절 닉스는 (시즌별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폭발적인 공격력은 없는 반면 유잉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씩 득점을 넣어줄 수 있는 롤플레이들로 떼우는 수준이고, 수비로 상대를 박살낸다. 이 시절 가장 강력했던 92-93 시즌 로스터를 보면 평균 24점을 올린 유잉 다음으로 득점 2위가 17점을 넣은 존 스탁스, 그 다음은 12.4점을 넣은 찰스 스미스, 10점 넣은 앤서니 메이슨로 두 자리수 득점원은 이게 끝이다.[26] 파이널에 오른 93-94 시즌은 2위 스탁스가 19점, 3위 찰스 오클리가 11.8점이고 5점 넣던 벤치플레이어 앤서니 보너를 제외하면 필드골 5할 넘는 선수가 없다. 당시 닉스 경기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찰스 스미스나 오클리는 자기만의 고투무브나 1대1 득점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스탁스는 기복이 있었다. 94파이널 당시 유잉의 부진이 컸던 건 유잉 외에 딱히 고득점을 넣어줄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7] 공격 수치상으로 보면 팀을 혼자 이끌던 시절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한심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승후보로 군림한 건 이들의 막강한 수비력 덕분이었다. NBA 수비 트렌드는 90-91 시즌에 플래그런트 파울 처벌 규정이 대폭 강화됨에 따라 80년대 피스톤즈같은 육탄수비가 막혔는데, 팻 라일리 지휘 하에 닉스는 룰의 한계까지 몰아붙히는 매우 거칠고 피지컬한 수비를 했다. 외곽에서 닉스 가드들, 그리고 떡대로 유명한 자비에 맥다니엘스 등은 당시 규제되지 않던 핸드체킹을 적극 활용해 조던같은 선수들을 손을 쓰며 체력을 소모하게 했으며, 돌파시 찰스 오클리, 앤서니 메이슨 같은 떡대들이 거칠게 몰아붙히고, 이들을 전부 다 뚫으면 골밑에선 패트릭 유잉이 끝판왕처럼 버티고 있었다. 즉, 라일리가 짜놓은 수비진은 돌파형 외곽 선수들에겐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94년에 NBA는 공격력 강화 차원에서 핸드체킹룰을 규제하는 1차 개정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후로 예전만큼 피지컬한 수비는 못하게 됐지만 닉스는 강력한 로테이션을 이용한 트랩 수비나 기본적으로 뛰어난 수비력으로 위용을 유지했다. 다만, 아무래도 예전만큼 외곽 선수들을 잡아먹는 수준은 아니었는지 96년 플레이오프에선 전성기가 지난 조던이 오히려 평균 36점, 야투율 44.2%를 기록했다. [28] 대신 공격진 강화를 위해 앨런 휴스턴, 래리 존슨 등을 영입하며 서서히 색깔 변화를 시도한다. 95-96시즌도 원래 돈 넬슨 감독을 영입하며 팀 색깔을 변화하려 했으나 이 양반이 유잉을 트래이드하자는 등 너무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바람에 해고, 라일리의 어시스턴트 코치이던 밴 건디가 나머지 시즌을 임시로 치르면서 (다음 시즌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 색깔이 유지된 것이다. 즉, "막강한 수비와 대충 때우는 수준의 공격으로 진흙탕 농구를 만들어 상대를 질식시키는" 닉스 특유의 농구 스타일은 91-92 시즌부터 95-96 시즌까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96-97 시즌에도 닉스는 예전과 동일하게 로우페이스 수비위주 팀이었지만, 바뀐 룰과 멤버 구성 등으로 이전까지 이들의 투박하지만 강력한 모습과는 달랐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주전에서 식스맨으로 내려간 존 스탁스.[29]

위에 언급된 리즈 시절 닉스는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매우 강력했다. 이 팀의 방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마크 잭슨을 91-92 시즌 후 트래이드한 것인데, 당시 27세로 전성기였고 이후에도 준올스타급 커리어를 보낸 선수를 하락세가 완연한 닥 리버스와 롤플레이어인 찰스 스미스를 받아온 것이다. 이후 닉스는 유잉이 팀을 떠날 때까지 존재감 있는 포인트가드가 없었다. 리버스는 80년대엔 좋은 선수였지만 트래이드되기 전 클리퍼스 시절부터 이미 벤치롤로 내려앉았고, 94-95, 95-96 시즌 풀타임 주전이었던 데릭 하퍼는 과거에 훌륭한 선수였지만 전성기가 90년대 초반에 끝난 선수였다. 그리고 잭슨 트래이드 이후 두 시즌간은 리버스, 하퍼, 그렉 앤서니가 로테이션으로 주전 PG로 뛰었다. 그 이후 세대의 크리스 차일즈나 찰리 워드까지도 닉스의 리딩가드는 그야말로 때우는 수준이었다. 당시 뛰어난 리딩가드가 없는 팀이 우승후보가 되는건, 시카고 불스의 트라이앵글처럼 확실한 공격 시스템과 사기급 공격무기(조던)가 없는 이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닉스는 그 이상으로 상대팀 공격을 망가뜨리는데 능했다. 닉스의 발빠르고 운동능력 뛰어난 가드진은 앞선에서 괴롭혔으며, 힘 좋고 터프한 포워드들 (오클리, 메이슨)은 몸으로 대화를 하며 골밑과 외곽을 오가며 선수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들을 다 뚫고 나면 막강 수비수 패트릭 유잉이 골밑에서 반겨주었다.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2020년 현대까지 꾸준히 공격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룰 개정이 이뤄져서 현대 기준으로는 당시 닉스를 상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운데, 이 팀을 상대한다는건 일단 육체적으로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작고 재빠른 스탁스가 손으로 밀고 당기는 걸 제치면 오클리가 육중한 몸뚱이를 들이댄다. 골밑에서 신체접촉도 현재보다 훨씬 신체접촉에 관대했던 만큼 더 거칠었다.[30]

이를 기반으로 한 진흙탕 농구의 끝판왕이 바로 닉스였다. "우리도 못 넣지만 니들은 더 못 넣는다!"로, 이러는 사이 리그 내에서 손꼽히는 빅맨 득점원인, 닉스에서 유일하게 잘 넣는 선수인 유잉이 꾸준히 득점해주는 것. 이로 인해 닉스는 득점을 뻥뻥 올리며 상대를 안드로메다 관광 보내는 경우는 많이 없었지만 (그러기엔 공격력이 빈약했다), 반대로 한 수 위인 상대를 만나도 결코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실제로 95년 플레이오프 당시 1라운드에서 3승 1패로 쉽게 올라간 이후, 7차전-7차전-7차전으로 당시만 해도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경기수인 25경기를 치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엔 골밑이 빈약하고 빠른 페이스로 공격 농구를 하는 공격올인팀들이 유독 서부에 몰려있었는데 [31] 이 팀들의 하드카운터로 작용할 팀이 바로 닉스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애틀은 94 시즌 무려 63승이나 거둔 서부 1위인 막강 로스터였음에도 이들을 상대로 평균 6.8블럭을 기록한 디켐베 무톰보의 덴버를 만나 1라운드 탈락했다. 그런데 (비록 골밑 존재감은 무톰보만 못하지만) 유잉 외에도 뛰어난 수비수들이 있고 전체적인 전력은 월등한 닉스라면 훨씬 더 유리하다. 또한 시애틀의 특기인 강력한 로테이션 수비는 조던처럼 외곽 선수를 괴롭히는데는 최고지만 골밑 매치업이 박살나는 상황에서 유잉을 막는건 역부족이다.[32][33] 게다가 선즈는 팀내 최장신이 208cm였고, 이들이 내세운 마크 웨스트나 올리버 밀러라면 유잉 입장에선 우스운 상대였다.[34] 안타까운 점은 닉스가 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정작 이들이 파이널에 올라갔던 94,99시즌엔 각각 시즌 중 서부 최강의 골밑존재감을 지녔던 로키츠와 스퍼스를 만났다는 것이다.[35]

1996-97 시즌을 앞두고 오프시즌에 앨런 휴스턴과 크리스 차일즈, 벅 윌리암스 등을 FA로 영입했고, 트레이드로 래리 존슨 등을 영입했으며, 신인 지명에서도 시라큐스의 영웅 존 월라스와 켄터키 듀오인 월터 매카시, 단테 존스[36]를 지명하며 순식간에 전력이 급상승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72승을 기록한 불스, 마찬가지로 시즌 초반부터 엄청난 기세로 승수를 쌓은 마이애미 히트와 더불어 동부의 3강을 형성하였으며 60승 달성이 가능한 페이스로 달려나갔다. 비록 정규시즌의 마지막 달인 4월에 주전들의 잔부상으로 하위팀에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57승에 그치긴 했지만, 이나마도 지금 현 시점까지 닉스는 정규시즌 57승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 시즌의 닉스는 그 불스와도 정규시즌에서 4차례 만나 2승 2패로 호각을 이뤘으며, 그 2패조차도 각각 1점차, 2점차 패배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불스의 2년 연속 70승 달성 여부가 달려있었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종료 40여초를 앞두고 존 스탁스의 결정적인 3점슛으로 불스에 패배를 안기며 불스는 이 시즌 69승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모든 농구팬들이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다시 만날 불스와 닉스의 진검승부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닉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에 일격을 당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그 과정이 참으로 기구한데 해당 시즌 61승을 거둔 히트가 시드에서는 57승의 닉스보다 앞서긴 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은 앞서 서술했듯이 불스와도 호각을 이룬 닉스쪽이 한 수 위였다. 그리고 실제로 4차전까지 닉스는 히트를 시리즈스코어 3승 1패로 압도하며 히트보다 한 수 위의 팀이라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런데 5차전에서 히트의 PJ 브라운이 경기도중 닉스의 찰리 워드를 소위 풍차들리듯이 플로어에 메다꽂아 난투극이 벌어졌고[37], 이 와중에 패트릭 유잉, 래리 존슨, 앨런 휴스턴, 존 스탁스 등 주축선수들이 죄다 출장정지 처분을 받고 말았다. 싸움 당사자인 워드도 한 경기, 싸움을 시작한 브라운은 두 경기 징계. 우스운 것은 이들이 난투극 가담이 아닌, 난투극을 말릴 의도라도 벤치에 앉은 선수가 벤치를 이탈했을 때 출장정지를 받게 된다는 규정에 걸려버린 것. 반면 히트는 가해자인 PJ 브라운만 출장정지를 받고 나머지는 전력 누수가 없었다. 당해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중징계였으며, 심지어 모든 선수가 6차전을 결장하면 닉스는 "최소 9명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 뛸 수 있어야한다"는 NBA 규정을 못 지킬 판이었으므로 일단 유잉, 휴스턴, 워드는 6차전 결장, 나머지 두 선수는 7차전을 결장하게 됐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뿐이지 규정상으로 이상한 건 아니었다. NBA는 싸움이 일어났을 시 벤치를 이탈한 선수에게 무조건 1경기 출장정지를 내린다. 공교롭게도 닉스의 주축선수들이 그 순간 모두 벤치에 앉아있었던 것이 불운했을 뿐. 당시 싸움에 적극 참여한 선수는 워드 뿐이었고 유잉은 무심코 벤치에서 일어나 지켜봤을 뿐 싸움에 끼지도 않았고 래리 존슨은 적극적으로 말렸다. 이 때문에 선수노조에서는 징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항의했다. 심지어 당시 유잉은 달려나가려다가 동료 벅 윌리엄스가 급히 붙잡고 "안돼! 여기 있어"라고 해서 뛰어나가지도 않았는데도 벤치공간을 이탈했다고 칼같이 징계를 내린 것. 관련 뉴욕타임즈 기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 이 때문에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물론 브라운도 히트에서 중요한 선수긴 하지만 닉스는 팀 내 기둥인 유잉을 포함해 너무 많은 전력 누수가 있었기 때문. 6차전은 닉스 입장에선 도저히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경기였고,[38] 7차전에서도 스탁스와 존슨이 빠진 전력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당시 스탁스와 존슨은 7차전 or 닉스가 시리즈 승리시 다음 라운드 시카고와의 1차전을 결정하는 선택지가 주어졌는데 둘 다 7차전 결장을 택했다. 두 선수 없이도 히트와 해볼만한 전력이었고, 어차피 우승을 노리는 팀이니 최강 불스와는 풀전력으로 붙고 싶었던 듯. 그러나 한풀이를 하려는 듯 무려 63%야투율로 37점 17리바운드를 퍼부은 유잉, 25점을 곁들인 휴스턴의 활약에도 나머지 선수들이 전부 한자리수 득점에 그치는 (전부 합쳐서 28점) 부진과 더불어,상대팀 히트에선 3점슛 6개를 포함해 38점을 퍼부은 팀 하더웨이의 활약 등으로 결국 패하고 만다.

결국 주전들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닉스는 5차전을 내준데 이어 6, 7차전까지 허물어지며 3승 4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시리즈가 종료되고 유잉은 NBA 사무국이 내린 징계의 형평성을 언급하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 일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규정이 강화되는데 한몫한 게 바로 닉스였다는 것. NBA는 집단 난투극이 잦아지자 싸움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규정을 강화했는데, 결정타로 작용한 싸움 중 하나가 바로 94년 닉스와 불스의 집단 난투극이었다. 당시 시카고에서 열렸고, 닉스-불스 라이벌리의 절정에서 데릭 하퍼와 조조 잉글리쉬로 시작된 싸움에는 엄청나게 많은 선수들이 얽혔는데, 문제는 이게 관중석까지 번졌다는 것. (물론 선수들이 팬들과 싸운 건 아니고 싸우다 관중석까지 밀려난 것) 심지어 직관하러 온 데이빗 스턴 총재는 불과 몇 미터 밖에 있었다. 졸지에 팬들에게 경기 보러 왔다가 험한 꼴을 보게 한 NBA는 강경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의 영향은 아니지만 이듬해부터 NBA는 핸드체킹 금지룰과 3점슛 단축, 노차징 존 등을 공격권장룰을 여럿 도입해 점점 덜 피지컬하고, 공격위주 농구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도입 직후엔 오히려 역효과로 인해 90년대 중후반엔 거의 사상 최악의 느린 페이스 농구가 펼쳐진다. 심지어 3점슛 라인 단축은 세 시즌만에 폐기.

그렇게 닉스를 물리치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히트는 모두의 예상대로 불스에 힘 한번 못쓰고 탈탈 털렸고[39], 닉스와 불스의 진검승부 꿀잼 시리즈를 기대한 농구팬들에게 허탈함을 안겨줬다.

이듬해인 1997-98 시즌은 유잉을 4년 FA 계약으로 잔류시키고, 전 시즌과 이번 시즌에 뽑은 신인급 유망주들을 모조리 포기하며까지 즉시전력감 크리스 더들리와 크리스 밀즈를 영입했다. 전년도 불스와 호각을 이룬 전력을 온전히 보존한 채로 팀의 뎁스를 더하자 이 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는 우승 예상팀으로 2년 연속 디펜딩 챔피언인 불스가 아닌 닉스를 꼽았을 정도로 이 시즌 닉스의 전력은 엄청나게 좋았다. 하지만 시즌이 개막하고 1/3정도 지난 시점에서 유잉이 전치 6개월자리 손목 골절로 시즌아웃 되어버렸고, 닉스의 우승 도전은 언감생심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플옵 1라운드에서 전년도에 척을 진 히트를 만나 난투극까지 불사하며 유잉 없이도 히트를 물리치는 업셋을 달성했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1998-99 시즌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이른바 8번 시드의 기적을 일으키며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하필이면 유잉이 인디애나와의 컨파 도중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상대는 왕조의 기반을 닦아가고 있던 서부 최강 샌안토니오 스퍼스. 새롭게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앨런 휴스턴라트렐 스프리웰로 이루어진 일명 '트윈 테러'가 분전하긴 했지만[40] 시리즈 스코어 1승 4패로 패배, 기적은 준우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1999년, 유타 재즈 부사장이던 스캇 레이든[41]이라는 인물이 팀의 단장으로 부임한다.

2.4. 암흑기

레이든 단장은 일단 첫시즌엔 딱히 나쁘진 않았다. 라트렐 스프리웰에게 5년 62m에 달하는 계약을 안겨주긴 했지만 뭐 당시엔 나쁘지 않은 무브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시즌도 비록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다음 시즌인 2000-01 시즌을 앞둔 2000년 9월 20일. 패트릭 유잉을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이 소식에 뉴욕 팬들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잉이었다. 뉴욕의 심장이라 불리던, 그 유잉을 리빌딩이란 명목으로 트레이드 시켜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서라도, 유잉을 트레이드시키며 제대로 받아온게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뭔가 많이 받아오긴 했는데 그 중 대다수가 전력보탬과는 거리가 먼 선수들이었다. 이 트레이드는 닉스 외에도 시애틀 슈퍼소닉스, LA 레이커스, 피닉스 선즈, 이렇게 4팀이서 신인 지명권을 포함해 무려 16명의 선수가 낀 초대형 트레이드였는데, 유잉을 보낸 대가로 받아온 선수들 중 그나마 네임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은 왕년의 슈퍼스타였던 글렌 라이스, 한때 시카고 왕조의 주전 센터로 유명했던 룩 롱리, 94-95년 휴스턴 로키츠의 2연패 당시 주전 슈팅가드로 활약한 버논 멕스웰, 그리고 96 드래프트 출신으로 레이커스의 백업 센터를 맡았던 트레비스 나이트 정도였다.

일단 글렌 라이스는 전성기 시절 슈퍼스타였지만 닉스로 이적할 당시엔 이미 33세로 전성기를 지나 평범한 선수가 돼 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미 닉스엔 라트렐 스프리웰과 앨런 휴스턴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라이스는 벤치 멤버로 출전해야만 했다. 결국 닉스에서의 첫 시즌은 화려했던 호네츠 시절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인 평균 12득점을 기록하고 시즌 후 바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42] 룩 롱리는 어차피 커리어 내내 평범한 센터였고 시카고 시절 반짝 잘해서 거액 장기계약을 맺었지만 불스를 떠난 직후 제 실력이 들통난, 빼도박도 못하는 먹튀였다. 거기다 은근히 부상이 잦은 데다 이미 서른을 넘겨 더 이상 성장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닉스에선 왼쪽 발목부상에 시달리며 한 시즌만 치른 후 은퇴했는데, 25경기밖에 못 뛰면서 평균 2득점을 기록했다. 트래비스 나이트는 그나마 26세로 젊은 편이었지만 직전 시즌에 평균 1.6득점을 넣는 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닉스에서도 평득이 2점을 넘긴 적이 없었다. 버논 맥스웰의 경우 시애틀에서 부상을 당한 이후 완전히 맛이 가서 전력 외로 분류된 상태였고, 닉스로 이적해서는 프리시즌 도중 방출될 정도로 몸상태가 좋지 못해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닉스를 떠났다.

결론적으로 이 트레이드를 통해 닉스가 얻은 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다. 15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잉의 거대계약을 처리한 것? 어차피 라이스, 롱리, 나이트 셋의 연봉만 합쳐도 유잉이 받는 돈과 똑같았다. 애초에 NBA는 양 측의 연봉 총액이 맞아야 트레이드가 성립한다. 예외규정도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자면 라이스와 유잉의 해당 시즌 활약이 대동소이했으므로 백업 센터 두 명을 추가로 얻은 것 정도? 그러나 이 나이트, 롱리의 활약은 민폐에 가까웠으므로 이조차도 득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유잉을 트레이드하면서 뉴욕 팬들의 마음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남긴 것에 비하면 웬만큼 좋은 선수를 데려오지 않고서야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근데 정작 데려와서 한 번이라도 써먹어 본 건 과거만 화려한 평범한 스윙맨 하나에 폐품급 센터 둘이니 유잉을 보내고 받아온 1라운드픽 2개는 전성기가 한참 지난 마크 잭슨과 그저그런 백업 센터였던 오델라 해링턴을 영입하는데 날려먹고 말았다. 그리고 뉴욕은 유잉이 떠난 이후 10년을 넘도록 50승을 넘기지 못하다가 2012-13 시즌에서야 50승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훗날 트레이드의 진실이 알려지게 되는데, 뉴욕 타임즈에서 2005년에 낸 기사에 따르면 당시 뉴욕이 유잉을 트레이드한 것은 유잉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감독인 제프 밴 건디가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뉴욕 입장에서는 떠날 게 뻔한 선수를 급하게 보내려다 보니 별 방법이 없었던 걸 수도 있다. 관련 기사 다만 기사에도 약간 언급되어 있듯이 유잉이 떠난 이유가 닉스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챔피언십을 따내지 못해 받는 비난과 떨어지는 기량 탓에 팀 기여도는 점점 낮아지는 등, 이런저런 주변 환경 탓에 심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마지못해 떠나고 싶어했다는 쪽이 더 맞는 듯. 훗날 유잉은 인터뷰에서 이 시기를 회고하며 트레이드를 요구한 걸 나중에 후회했다고 털어놨으며, 어떻게든 닉스에서 은퇴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후회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유잉 없이 맞이한 2000-01 시즌. 유잉이 이탈에 이어 오프시즌 FA 최대어 중 하나였던 브라이언 그랜트를 라이벌 마이애미 히트에 뺏기는 악재가 있긴 했지만, 기존 멤버들은 건재한데다 유잉 대신 얻어온 글렌 라이스가 라트렐 스프리웰, 앨런 휴스턴과 트리플 테러를 구축했다. 게다가 제프 밴 건디 감독의 수비전술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연속경기 두자리수 실점 기록을 이어가는 등, 유잉이 빠져 빈약해진 프론트코트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선전하며 전 시즌보다 고작 2승만 줄어든 48승 34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만난 토론토 랩터스에 일격을 당해 10년만에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의 결과를 맞았다. 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이상이 기본이었던 닉스의 조기 탈락이야말로 앞으로 닉스가 겪을 기나긴 암흑기의 전조와도 같았다.

2001-02 시즌 전 래리 존슨과 급작스럽게 이별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고 잔여연봉 지급을 조건으로 바이아웃했다. 이미 예정된 결별이었는지 존슨을 방출하기 전에 파워포워드 클라렌스 웨더스푼을 5년 계약으로 잡았고, 앨런 휴스턴은 무려 6년 100m이라는 초 거대 계약으로 잔류시켰다. 휴스턴이 그 시점에서 뉴욕의 간판스타이긴 했지만, 그제껏 평균 20득점 한번 넘어본 적이 없는 선수에게 총액 100m의 계약은 너무한거 아니냐는 여론이 대세였다. 결론적으로 이게 본격적인 닉스 잔혹사의 서막이 되었다.

2001-02 시즌 초반 제프 밴 건디가 스스로 감독직을 사임했다. 전 시즌보다 현저히 약해진 로스터를 이끌면서도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며 선전하던 와중이었으나 본인은 더 이상 뉴욕 감독직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다며 사임하였다. 어시스턴트 코치인 돈 체니가 감독직을 물려받았으나 연패를 거듭하며 최종 성적 30승 52패로 디비전 꼴찌와 더불어 14년만의 플레이오프 탈락의 수모를 맛봤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마커스 캠비와 마크 잭슨, 7순위 드래프트 픽으로 뽑은 브라질 선수 네네 힐라리오까지 얹어주며 덴버로부터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영입했다. 그 시점에서 맥다이스는 분명 올스타급 파워 포워드이긴 했으나, 직전 시즌 무릎 부상으로 10경기 출전에 그친 상태라 몸상태에 의문부호가 붙어있었다. 결국 우려대로 두 번째 시범경기에서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해 그대로 시즌아웃되었다. 전 시즌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성적으로 역시나 플레이오프 탈락.

2003-04 시즌을 앞두고 수비형 센터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했고, 라트렐 스프리웰을 포기한 댓가로 키스 밴 혼을 얻어오는 등 선수 구성에 나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역시나 성적은 초반부터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했고, 가까스로 재활에서 복귀한 맥다이스가 올스타 기량을 완전히 잃어버린채로 롤플레이어 수준의 활약에 그치는 등 악재가 거듭되자 그간 수많은 삽질을 거듭한 레이든은 결국 짤렸다. 역대급이라는 2003년 드래프트에서 9순위 지명권으로 마이크 스위트니(NBA에서 4 시즌을 뛴 후 은퇴했으며 그중 뉴욕에서 2 시즌 통산 43게임 830득점 기록)를 지명하는 대형 삽질이 그의 마지막 작품과도 같았다. 이 드래프트는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시가 나온 그 드래프트이다. 진정한 패자는 2순위 다르코 밀리시치를 지명한 디트로이트다. 9순위 뉴욕의 스위트니도 망한 지명으로 볼 수 있지만 후순위면서 주전급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많지는 않다. 후순위자들 중 주전급으로 성장했던 선수는 데이비드 웨스트(18픽), 조시 하워드(29픽), 모 윌리엄스(47픽), 카일 코버(51픽) 정도였다.

후임 단장으로 임명된 게[43] 바로 아이제아 토마스. 토마스는 당당하게 레이든의 '잔재'들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고, 감독을 바로 뉴욕 출신의 명장 레니 윌킨스로 교체했다. 그 후 브루클린 출신의 스테판 마버리를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팀을 3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당시만 해도 토론토 단장과 인디애나 감독으로 성과를 낸 실적이 있는 토마스에 대한 지지는 높았다. 심지어 당시 우리나라 농구 월간지에서도 '일 잘하는 단장이 팀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격찬했을 정도였고, 설마 토마스가 삽질을 해봐야 레이든만큼 하겠냐는 여론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후 닉스가 맞이한 것은 레이든보다 더한 재앙 그 자체였다.

토마스는 이후 계속되는 삽질을 통해 레이든의 잔재를 치우긴 커녕 이해할 수 없는 무브를 계속하는 통에 팀의 샐러리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고, 로스터는 망가졌으며 닉스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토마스의 이해할 수 없는 무브는 이듬해 오프시즌부터 바로 나타났다. 시카고 불스로부터 자말 크로포드를 영입해 온 것이다. 이미 팀에는 앨런 휴스턴과 스테판 마버리, 페니 하더웨이 등 공격형 가드가 많은데도 여기에 또 공격형 가드를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맞이한 2004-05 시즌, 전 시즌보다 퇴보한 모습으로 레니 윌킨스는 시즌 도중 경질을 당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33승 49패로 역시나 플옵 진출에 실패.

2005-06 시즌을 앞두고 명장 래리 브라운을 5년 50m이라는 초 거대 계약을 안겨주며 감독으로 선임했고, 시카고 불스로부터 에디 커리를 영입하며 기대감을 안겼다. 지금은 먹튀와 조롱의 대명사가 된 커리이지만 당시만 해도 심장에 관련된 메디컬 이슈를 제외하면 매우 전도유망한 센터였고 실제로 닉스에서도 2년차까지는 쏠쏠한 활약을 해줬다. 닉스가 1라운드 픽을 2개나 포기해 가면서도 자신있게 커리를 영입한 이유가 저 1라운드픽 2개로 커리를 능가할 선수는 뽑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였다. 물론 이는 나중에 엄청난 패착이었음이 드러나지만.[44] 더불어 역대 최고의 먹튀로 빠지지 않는 제롬 제임스를 5년 계약으로 영입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45]

그러나 애시당초 로스터 자체가 빈약해 래리 브라운조차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마버리같은 스타일과 상극이던 브라운 감독의 성향상 더더욱 힘든 부분이 있었다. 결국 23승 59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브라운 감독은 한 시즌만에 해고가 되었다. 사임이 아닌 해고라서 퇴직금 40m은 고스란히 챙겨가셨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실제로 잔여 연봉 전액이 아닌 18.5m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해고를 수용했다. 그래도 딱 1년 감독을 하고 무려 28.5m을 챙긴 셈이니 지금 시점에서 봐도 엄청난 거액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다음 2006-07 시즌부터는 아이제아 토마스 본인이 직접 감독을 겸업하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감독이 된 후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겠다는 욕심으로 팀캐미도 고려하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스티브 프랜시스나 제일런 로즈, 잭 랜돌프 등의 고액연봉 선수들까지 끌고와 로스터는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팀 샐러리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130m까지 치솟지았만 성적은 역시나 두 시즌 동안 33승 49패, 23승 59패에 그치며 투자 대비 성적이라는 측면에선 이 보다 더 최악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팀내 여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로 고소당해 토마스 본인은 물론, MSG 컴퍼니와 구단주 제임스 돌란까지 함께 고소를 당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당시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닉스가 홈 경기를 할 때마다 아이제아를 해고하라는 챈트가 울려퍼졌고 팬들이 단체로 농성을 했으며, 토마스 옆에는 항상 경호요원이 붙어있어야만 했다.

레이든과 아이제아의 장엄한 삽질의 역사는 이 위키 한바닥을 가득 메워도 모자란 관계로 다음 두 글을 통해 대충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이건 레이든의 삽질이고
이건 아이제아의 삽질이다.

참고로 국내의 한 NBA 커뮤니티에서 2002년쯤 닉스의 샐러리 상황을 분석한 결과 "이 팀은 최소한 2007~8년까지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게시물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일개 팬조차 뻔히 예측할 수 있었던 상황을 소위 전문가 집단이 해결은 커녕 대안 제시조차 못하고 그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2.5. 암흑기의 끝

2008년에 아이제아는 그야말로 도저히 치우기가 불가능할 듯한 똥덩어리들을 남긴채 짤리고, 후임 단장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 사장을 역임했던 도니 월시가 오게 되었다.

월시가 부임했을 당시 뉴욕 팬들은 딱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월시의 유,무능을 떠나서 그만큼 아이제아가 남긴 유산이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기 때문.

어쨌든 월시는 부임하자마자 '팀의 샐러리를 대폭 줄이는 체질개선을 통해 샐러리캡의 여유를 확보하고 2010년 FA시장에서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등 대어를 잡겠다'는 일명 '2010 프로젝트'를 천명하고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돌입하게 된다.

우선 2008-09 시즌을 앞두고 발빠르게 마이크 댄토니를 감독에 선임했고, 듀크대 출신으로 불스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친 포인트가드 크리스 듀혼을 영입하며 '런앤건'이라는 확실한 팀컬러를 부여했다. 전직 GM겸 감독이었던 아이제아의 이도저도 아닌 답답한 농구에 등을 돌렸던 뉴욕의 팬들은 댄토니식 화끈한 공격 농구에 다시 경기장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전 시즌보다 9승이 올라간 32승을 올렸으며, 그 보다 더 고무적인 건 열광적이기로는 NBA 1등을 달리는 뉴욕의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이 굉장한 소득이었다.

그리고 2009-10 시즌. 댄토니 스타일의 농구가 빛을 발해 시즌 초반 9경기에서 6승 3패라는 호성적을 거뒀고, 이 과정에서 고액연봉자들이 좋은 활약을 보인 틈을 타 발빠르게 샐러리를 비워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알 해링턴, 잭 랜돌프, 자말 크로포드, 래리 휴즈, 자레드 제프리스 등의 고액연봉자들을 모두 팔아치우는데 성공했다. 댄토니 체제하에서 태업 논란까지 일으키며 전력 외로 분류된 스테판 마버리를 바이아웃으로 내보냈고, 마찬가지로 몸관리 실패탓으로 전력 외로 분류된 에디 커리와 더불어, 먹튀의 대명사 제롬 제임스까지 처분하는데 성공하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후 2010년 팀의 샐러리는 2007년에 비해 무려 3분의 2가 줄어들었다. 월시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던 일명 똥치우기를 해낸 것이다.

2010년 FA시장에서 비록 르브론 제임스는 놓쳤지만 그래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영입하면서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아마레라는 확실한 팀의 코어가 생기자 2010-11 뉴욕의 성적은 상승곡선을 타게 된다.

2.6. 카멜로 앤서니의 시대

2010-11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덴버의 카멜로 앤서니천시 빌럽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이 때 다닐로 갈리나리, 윌슨 챈들러, 티모페이 모즈고프 등의 유망주를 모두 내줬고 1, 2라운드픽도 각각 두 개씩 넘겨주는 등 출혈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닉스 팬덤에서는 찬반논란이 컸다. 어쨌거나 닉스 입장에서 멜로는 패트릭 유잉 이후로 처음 가져본 리그 Top 10급의 슈퍼스타였으며, 팬들은 아마레와 멜로, 천시가 이끄는 공격 농구에 열광했다. 최종 성적은 42승 40패. 정확히 10년만에 찾아온 5할 승률, 그리고 7년만에 찾아온 플레이오프였다. 비록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헌데 시즌이 끝나고 제임스 돌란 대주주가 월시와 연장계약을 맺지 않으면서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46] 일단 월시가 팀의 자문(고문)역할을 맡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2012년에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운영담당 사장으로 돌아갔다.

2.6.1. 2011-12 시즌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시즌으로 치러지게 되는 대망의 2011-12 시즌, 닉스는 천시 빌럽스를 사면룰로 내보내면서 지난 시즌 우승팀인 댈러스의 수비형 센터 타이슨 챈들러를 사인&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이로써 카멜로 앤서니-아마레 스타더마이어-타이슨 챈들러로 이어지는 막강한 프론트 코트를 구축하면서 우승후보로 급부상하나 했는데, 개막전에서 카멜로 앤서니의 맹활약으로 보스턴 셀틱스를 꺾으며 상큼한 출발을 했으나 천시 빌럽스의 이적으로 인해 매우 약해진 백코트가 큰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개막전에 주전이랍시고 나온게 토니 더글라스에 랜드리 필즈.

닉스의 감독인 마이크 댄토니의 전술은 근본적으로 포인트 가드의 기량과 리딩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데(선즈 시절의 스티브 내쉬나 2010-11 시즌 닉스의 포인트 가드 펠튼) 현재 닉스에서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만 한 포인트 가드가 없는 상황이다. 토니 더글라스는 포인트 가드인 주제에 리딩능력은 없다고 해도 괜찮은 수준인데다 득점해줄 옵션이 두 개나 있는데도 자신이 무리한 슛을 거듭하며 2011-12 시즌 닉스 팬덤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루키인 이만 셤퍼트가 등장해 새로운 희망이 되나 했으나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1번이라기 보다는 듀얼가드 성향이 강한 선수이고, 루키인 관계로 몇 차례의 부상과 경험부족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는 상황.

걱정은 현실이 되어 2월 1일 현재 뉴욕 닉스는 8승 13패로 동부 컨퍼런스 10위로 쳐져있다. 댄토니는 미봉책으로 카멜로 앤서니에게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겨보기도 했으나, 앤서니는 르브론과 달리 올라운더라기 보다는 스코어링에 특화된 선수이고, 패싱 센스가 좋다는 것도 포워드 기준에서 좋다는 것이지 게임 전체를 리딩할 능력은 부족한 편이라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앤서니는 본연의 역할인 스코어링도 제대로 못하고, 리딩도 제대로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으며, 가드와의 2:2플레이가 주무기인 아마레 역시 2:2를 해줄 가드가 없고 아이솔레이션에서의 기량도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뉴욕 닉스 팬들은 시즌 전에는 한가지 옵션 정도로 생각했던 배런 데이비스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 최소한 준수한 포인트 가드의 리딩이 받쳐준다면 네임밸류가 워낙 좋은 만큼 팀이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2월 4일, 뉴저지 네츠와의 경기에서 하위 리그를 전전하던 대만계 가드[47] 제레미 린이 갑툭튀. 그 데런 윌리엄스를 농락, 25점 7어시스트 5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하며 승리로 이끌었다. 처음엔 운이라 생각했지만, 5일 유타 재즈와의 홈경기에는 28점 8어시스트, 8일 워싱턴 위저드와의 원정경기에서는 23점 10어시스트 4리바운드, 이어서 벌어진 LA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선 38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맘바 킬러라는 업적까지 획득! 현지에서는 'Jeremy Lin Show', 'Linsanity'라 부른다고.[48] 쓸만한 포인트 가드가 없어 전술이 삐걱거리던 차에 시야와 드라이브인이 뛰어난 포가가 등장했으니 댄토니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 하지만 린이 닉스에 가지는 가장 큰 의미라 하면은 뉴욕권에서 NBA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

린이 들어온 후 7연승으로 밀워키를 따돌리면서 PO권에 진입, 린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동부지구 7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2위 마이애미 히트에 1승 4패로 패해 탈락.

2.6.2. 2012-13 시즌

2011-12 시즌이 끝나고 로스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랜드리 필즈를 내보내고 린새니티의 주인공 제레미 린과도 계약을 하지 않았다. 랜드리 필즈는 스티브 내쉬 영입을 위한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다가 역시 내쉬를 원하던 토론토가 닉스의 트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제한적 FA였던 필즈에게 3년 20M의 계약을 제시하는 바람에 닉스의 내쉬 영입은 불발되었지만 결국 내쉬가 레이커스행을 택하면서 토론토만 필즈의 오버페이 계약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얼리버드 권한을 인정받아 제한적 FA가 된 제레미 린은 리빌딩을 꾀하던 휴스턴에서 4년 30M에 달하는 거액의 계약을 제시했고, 닉스가 이 계약을 매치하지 않는 대신 영입한건 40에 가까운 제이슨 키드. 그리고 2년 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좋은 호흡을 보였던 레이먼드 펠튼을 다시 영입. 그외 백업으로 여전히 경쟁력있는 센터였던 마커스 캠비와 더불어 커트 토마스, 라시드 월러스 등 노장들을 영입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노망주 파블로 프리히오니를 영입한 것도 이 시즌. 특히 캠비와 토마스는 그 1999시즌 8번 시드의 기적일 일궈낸 주축 멤버들로서 그간 타 팀들을 돌고돌아 커리어의 종착역으로 닉스를 택했다.

필즈와 린의 거액 계약에 매치하지 않는 것은 그간의 뉴욕과 다르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린을 버리고 데려온 게 하필 전해 그야말로 폭망했던 펠튼이라는 것에 대해 삽질이라는 목소리가 컸고, 로스터에 노장들이 너무 많은 게 약점으로 지목돼 시즌전 예상에서는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시즌 직전 또다시 부상을 당한다.

뉴욕으로 돌아온 펠튼의 부활, 클래스를 보여주는 제이슨 키드의 리딩과 롤플레이어들의 클러치 3점슛, 그리고 닉스에서 드디어 에이스 본능에 눈뜬 카멜로 앤서니의 대활약으로 시즌 초반 21승 8패의 엄청난 상승세를 달리며 동부지구 1위를 질주했다. 이 시기 닉스를 대표하는 것은 빠르고 정확한 볼무빙으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며 오픈 3점 찬스를 만들어 점수를 쌓고 리그 최강의 스코어러 카멜로 앤서니의 다재다능한 플레이로 승부를 결정짓는 강력한 오펜스와, 수비 로테이션에 일가견이 있는 마이크 우드슨 감독의 전술로 상대방을 꽁꽁 묶어버리는 디펜스. 레이먼드 펠튼-제이슨 키드-파블로 프리지오니로 이어지는 훌륭한 백코트진이 턴오버를 최소화하고 빠른 볼무빙을 통해 찬스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한 결과였다. 이 시기의 닉스는 심지어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가 빠졌을 때도 그 마이애미 히트를 가비지로 20점차로 관광태우며 저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도 복귀해 골밑에서 끈끈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더 상승세를 타나 싶었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후 핵심 멤버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아웃되며 하락세를 탔다. 거기에다 아마레는 다시 수술로 시즌아웃, 팀 수비의 기둥인 타이슨 챈들러도 부상으로 결장하고 앤서니도 잠시 빠지면서 시즌 중반 17승 18패를 기록하며 이 시기 미친 연승을 달린 마이애미 히트에게 당연히 1위는 빼앗기고 한때 인디애나에도 밀리며 상위 시드까지도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빅맨 기근 상황에서 급히 데려온 케년 마틴이 프론트진의 공백을 메워주고 앤서니가 복귀하며 시즌 막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16승 2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끝냈다. 특히 이 기간에는 카멜로 앤서니가 초인적인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는 4월 한 달간 무려 평균 36.9점을 쏟아 부으며 동부 컨퍼런스 4월의 선수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4월 1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는 개인 최다 동률인 50점을 폭발시켰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세 경기 연속 40점 이상을 기록했다. 심지어 라이벌 르브론 제임스까지 제치고 유니폼 판매 1위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멜로의 생애 최고의 시즌. 2012-13 시즌 뉴욕 닉스의 최종 성적은 54승 28패로 동부지구 2번시드를 받아들고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게 되었다.

54승의 승수는 1996-97 시즌 이후 최고 승률이었으며 1993-94 시즌 이후 처음으로 디비전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이번 시즌 동부 1등이자, 지난 시즌에 본인들을 플옵에서 탈락시킨 66승의 마이애미 히트와의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한 유일한 팀이다. 평균 득실마진은 +46에다 히트 원정에서도 2승을 챙겼을 정도로 제대로 맥여버렸다.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케빈 듀란트를 제치고 이번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고, 2옵션 역할을 수행한 J.R. 스미스는 리그 최고의 식스맨에게 주어지는 식스맨 상을 수상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팀은 보스턴 셀틱스. 비록 라존 론도가 빠져 전력이 약화되긴 했으나 폴 피어스케빈 가넷을 필두로 여전히 저력있는 팀이었지만 확실히 주전 포인트 가드 론도의 공백을 메우지는 못해 뉴욕의 백코트진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렸고, 그로 인해 볼 운반과 앤서니의 수비까지 부담하게 된 피어스의 체력방전 등으로 인해 닉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J.R. 스미스가 3차전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반칙으로 퇴장당한 후, 4차전 징계로 출장 정지를 먹었고, 4차전에서 닉스는 연장승부 끝에 셀틱스에게 졌다. 그 후 "내가 있었으면 진작에 시리즈 끝내고 골프 치고 있었을 거다." 라는 망언을 뱉는 등 다소 해이한 모습을 보여줬다가 보스턴 노장들의 투혼에 5차전도 지고, 6차전에서도 보스턴에게 20-2 런을 당했지만 겨우 진땀승을 거뒀다.

세미파이널에서는 애틀란타 호크스를 4-2로 물리치고 올라온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만났다. 이 과정에서 뉴욕의 안일한 조직력이 도마에 올랐는데, 2차전이 끝난 이후 주전 센터 타이슨 챈들러가 "멜로와 스미스가 너무 이기적이다. 선수들이 패스를 할 생각이 없다." 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J.R. 스미스는 1,2라운드를 통틀어서 야투 성공률 29%를 기록함과 동시에 한 번 악동은 영원한 악동 임을 증명했다. 앤서니 역시 어깨부상 여파와 무리한 슛셀랙션으로 인해 에이스 역할을 못해줬다. 반대로 인디애나는 폴 조지, 랜스 스티븐슨을 필두로 한 젊은 선수진들과 뉴욕과는 상반된 탄탄한 조직력으로 승부하며, 2승 4패로 시리즈 우위도 점해보지 못한 채 쓸쓸히 물러서야 했다.

2020-21 동부 플레이오프 1라운드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 뉴욕은 8년동안 플레이오프 승리는 커녕 무대도 가지 못했을 정도로 긴 암흑기를 보냈다.

2.6.3. 2013-14 시즌

또다시 분주한 오프시즌을 보냈는데, 1라운드픽에 마커스 캠비와 스티브 노박을 묶어 드래프트 1번 출신 빅맨 안드레아 바르냐니와 트레이드했다. 토론토에서는 그야말로 암적인 존재로 취급받던 바르냐니였기에 대체 왜 데려왔나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보낸게 부상으로 별로 나오지도 못한 마커스 캠비와 3점밖에 없는 노박이라 1라운드픽으로 바르냐니를 영입한것이니 손해볼 건 없다는 평가도 있긴 했다. 그리고 메타 월드 피스와 계약하고, 케년 마틴과 J.R. 스미스, 프리지오니와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지만, 여전히 우승후보 1순위인 마이애미, 메가톤급 트레이드로 올해야말로 뉴욕의 주인이 되겠다는 브루클린, 마이애미를 벼랑끝까지 몰아넣었던 소리없는 강자 인디애나, 로즈가 복귀하는 시카고 등 동부의 강호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관건.

막이 열리자 우려했던 바르냐니는 생각보다 잘해주지만 완전히 맛이 간 아마레, 부상으로 누워버린 챈들러와 펠튼, 공격전술의 부재 등 여러 요소가 겹치면서 혹독한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멜로가 애쓰고 있지만 난조에 빠진 팀을 구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고액연봉자들의 약간의 분발과 워낙 엉망진창인 동부 컨퍼런스의 상황이 겹쳐서 플옵 싸움을 할 정도로는 성적을 끌어올린 상태다. 2014 드래프트가 역대급으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어차피 닉스는 픽도 없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하지만 J.R. 스미스가 자신의 동생 방출에 대해 단장을 공개비판하는 등 팀 내부에서도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메타 월드 피스와 비노 우드리히 역시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지나자마자 출전 문제로 트러블을 일으킨 끝에 방출되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8위와의 성적 차이가 5게임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라 플레이오프 진출은 요원해 보인다. 그와중에 레이몬드 펠튼이 불법총기소지 혐의로 조사까지 받게 되면서 팀 분위기는 내려갈대로 내려가버렸다. 그나마 3월에서 4월 경에는 시즌 내내 구설수에 시달리던 J.R. 스미스가 신들린듯한 3점슛 행진과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의 꾸준한 활약에 힘입어 한 때 8연승 행진을 달리며 동부 컨퍼런스 8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애틀란타가 4월 12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닉스는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다.

멜로를 데려옴으로서 1라운드 픽도 없고 그 멜로는 올시즌을 끝으로 옵트아웃해서 FA가 될 수 있는데 본인이 승리를 원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만약 닉스의 밝은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서 설명하지 못하면 멜로가 팀을 떠날 가능성도 꽤 높으며, 그게 실제로 일어날 경우에는 당분간 다시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과거 레이커스 시절 정상급 식스 맨이었던 라마 오덤을 데려오는 무브를 선보였는데, 내년 시즌을 위한 영입이기에 당연히 팀 옵션이 포함된 2년계약을 맺었다.

결국 시즌이 끝난지 며칠 안되어, 마이클 우드슨 감독과 코칭스태프 모두 경질되고 말았다.

2.6.4. 2014-15 시즌

뉴욕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는 명장 필 잭슨이 사장으로 부임했으며, 잭슨 휘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우승 반지를 5개나 차지한 경험이 있고 2014년 플레이오프까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데릭 피셔가 이듬해부터 감독을 맡게 되었다.

팀의 체질개선을 위해 타이슨 챈들러레이몬드 펠튼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시키고 호세 칼데론과 유망주,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아왔다. 시카고나 휴스턴으로의 이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멜로를 꾸준한 설득을 통해 5년간 $124M과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얹어주는 최대한의 대우를 해주면서 팀에 묶어놓는데 성공했다. 마지막 날 데려왔던 라마 오돔은 결국 웨이브시켰다. 더 이상 NBA 무대에서 뛸 만한 기량이 아니라는 평. 이로써 오돔은 큰 이변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필 잭슨은 수하였던 짐 클레몬스를 코치로 초빙해가며 감독 시절에 써먹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사용해보려고는 하는데 시즌 초반 22경기 4승 18패를 찍으며 손발을 맞추려면 갈 길이 멀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접전까지 끌고 가다가 집중력 부족으로 패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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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5 시즌 뉴욕의 팀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 워싱턴 위저즈와의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퀸시 에이시가 존 월에게 하드 파울을 하며 시비가 붙었는데, 다같이 달려들어서 떼어내는 워싱턴 선수들과 비교된다.

1월 10일에는 샬럿 호네츠와 홈경기에서 82-110으로 무기력하게 지며 시즌 '15연패'를 달성했다. 어느새 개막 17연패를 한 76ers를 제끼고 유유히 리그 전체 꼴찌를 달리는 중이다. 관중들은 아예 종이봉투를 뒤집어썼을 지경[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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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투어 경기를 보고 있는 세스크 파브레가스티에리 앙리.)

1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펼쳐진 투어경기에서는 밀워키 벅스에게 79-95로 지며 시즌 '16연패'에 다다른다. 1월 19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를 상대로 99-92로 승리하며 17연패까지는 가지 않았다. 2월 16일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방출했다. 멜로는 올스타전을 끝으로 무릎 수술을 위해 시즌 아웃.

2014-15 시즌 결과는 17승 65패. 닉스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다. 뒤에서 2등인데 다음 시즌 드래프트도 전체 4픽으로 밀리는 등 불운이 계속되고 있다.

2.6.5. 2015-16 시즌

4픽으로는 라트비아산 거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을 선택했다. 선발 직후 쏟아지는 뉴욕 팬들의 야유가 일품.[50]

애틀란타 호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전 시즌 포텐을 터트리지 못한 팀 하더웨이 주니어를 내보내고 받아온 신인 1라운드 픽으로 노터데임 대학교의 신인 제런 그랜트(Jerian Grant, 발음 Jare-n)를 지명했다.[51] 또 2라운드에서는 유럽리그에서 뛰었던 윌리 헤르난고메즈를 선발한다.

오프시즌간 FA 영입 행보를 많은 이들이 기대했지만 굵직한 대어들은 모두 놓쳤다. 뉴욕의 팀 사정상 대어들이 올리가 없으니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트라이앵글과 어울리는 빅맨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렉 먼로와 서로 관심이 있었으나 약한 수비력을 걱정한 필 잭슨이 맥시멈 계약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하였고, 먼로는 밀워키 벅스와 계약했다. 라마커스 알드리지 같은 경우에는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센터 포지션에서 뛰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알드리지가 거절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했다. 대신 쏠쏠한 롤 플레이어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지난 시즌 풍비박산났던 팀을 어느 정도 복구하는데 성공한다. 포틀랜드에서 뛰었던 애런 아프랄로와 로빈 로페즈, 올랜도에서 뛰었던 카일 오퀸, 새크라멘토에서 뛰었던 데릭 윌리엄스, 워싱턴에서 뛰었던 케빈 세라핀을 영입했고, 지난 시즌 좋은 모습을 보였던 루 아문슨과 랜스 토마스는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약한 가드진을 보강하고자 예전에 레이커스에서 뛰면서 코비 브라이언트의 서브로 쏠쏠한 활약을 했던 샤샤 부야치치까지 유럽에서 공수해왔다.

섬머리그에서 4번픽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가 몸싸움에 약한 모습과 긴 슈팅레인지, 우수한 수비력을 번갈아가며 보여주어서 뉴욕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포르징기스가 4번픽으로 뽑힌 이유가 당장의 임팩트보다는 나중에 성장했을 때의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므로 팬들은 이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 (파우 가솔과 비교되기도 했지만 가솔과 비교했을 경우에는 피지컬이 너무 약하다.) 최근 연습 영상을 보면 확실히 기대가 되는 신인임은 분명하다. 좋은 모습을 보이던 모리스 엔도어(Maurice N'dour)를 댈러스 매버릭스에 뺏겨서 무진장 욕을 먹기도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보장된 금액이 큰 매버릭스의 계약을 선택했다고 한다.

ESPN에서 시즌전 예상한 성적은 전 시즌에 비해서 8승이 추가된 25승 57패로 동부 컨퍼런스 14위. 공신력이 전혀 없는 예측[52]이기 때문에 흘려듣는 것이 건강에 좋다. 다들 이거보다는 잘 할거라는 분위기.

블리처리포트에서 조사한 전세계 구단 가치에서 작년보다 하락한 8위를 기록했다. NBA 구단중에는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에 이은 2위. 작년에는 레이커스보다 높은 순위였지만 한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으면서 순위가 하락했다. 레이커스도 못한건 마찬가지인데.[53]

최근 내년 오프시즌에 리키 루비오를 노리고 있다느니, 자말 크로포드 트레이드에 관심이 있다느니 하는 소문들로 인해서 뉴욕팬들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올림픽을 대비해서 Team USA 예비 멤버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영상이 업로드 되었는데, 르브론 제임스, 러셀 웨스트브룩, 그리고 카멜로 앤서니가 포스트에서 공을 잡은 상태로 코치 몬티 윌리엄스를 상대로 공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멜로가 부상에서 복귀했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고무적.

드래프트 당시 야유까지 들었던 신인 포르징기스의 대활약으로 지난 시즌보다 훨씬 팀이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지구의 브루클린, 필라델피아가 완전히 몰락한 것에 비하면 뉴욕 닉스는 이번 시즌에 조금은 희망을 되찾았다고 봐도 될 듯 하다. 한국시간으로 1월 7일 18승째를 올려 일찌감치 작년 승수를 넘어섰다. 승률도 5할 언저리로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위치다.

시즌 초중반, 부진한 카멜로 앤서니에 대한 트레이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구단에서는 언론에게 멜로를 트레이드할 생각이 절대 없다고 코멘트. 뉴욕 언론이 또 한 건 했다.

포르징기스 효과로 인해 팀 전체의 분위기가 조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멜로는 가자미 역할도 잘해내면서 팀을 조율해주고 있고, 포르징기스는 아직 리그 정상급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골밑을 잘 사수해주고 있다. 연패를 자주 당하는 것은 고쳐야 할 부분.

드래프트 당시의 야유가 거짓말인 것처럼, 포르징기스의 저지 판매 순위가 NBA 전체 4위 까지 올라갔다. 기사

그러나 데릭 피셔 감독은 2016년 2월 9일(한국시간) 결국 경질되었다.

피셔 경질 후, 단조로운 공격 패턴, 딸리는 뒷심이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다. 플레이오프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3월 1일 90년대 닉스에서 찰스 오클리, 패트릭 유잉과 함께 활약했던 앤서니 메이슨이 심장마비로 작고했다. 향년 50세. 기사

필 잭슨의 트라이앵글을 찰스 바클리와 레지 밀러가 크게 비판하는 등 팀이 외적인 부분에서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 코비 브라이언트는 필 잭슨을 믿어보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제프 호나섹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2.6.6. 2016-17 시즌

불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호세 칼데론, 제리안 그랜트, 로빈 로페즈를 내주고 가드 저스틴 홀리데이, 데릭 로즈를 얻었고, 조아킴 노아도 4년 72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지난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로즈였기 때문에 이래저래 우려하는 팬들도 있지만 동시에 슈퍼스타가 두명이나 모였기에 사람들의 기대감도 큰 상황.

코트니 리와 4년 4800만 달러로 계약했다. 나름 좋은 계약으로 취급 받는 중으로 노아, 로즈, 포르징기스, 멜로, 코트니 리로 정상적으로 가동만 된다면 괜찮은 라인업을 만들었다. 옵트아웃을 한 애런 아프랄로는 새크라멘토로 떠났고, 이후 브랜든 제닝스를 영입하고, 랜스 토마스와 4년 240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그 외 언드래프티 마샬 플럼리와도 계약을 맺었다. 포워드로 리투아니아의 26살 선수 Mindaugas Kuzminskas 선수까지 영입했다고 한다. 알짜 영입은 잘하고 있다는 평가인데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갈지는 두고볼 일. 그외에도 마이애미에게 찬밥 취급을 당하고 있는 드웨인 웨이드 영입설도 들려오는 등, 뉴욕의 오프시즌은 뜨겁다.(웨이드는 시카고로 이적)

시즌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맞붙었고, 88-117로 화끈하게 털렸다.

계속해서 지다가, 로즈와 노아의 전 소속팀인 시카고 불스와의 대결에서 10점차로 이겼다! 시카고의 홈에서 경기가 열렸고, 최근 시카고가 잘나가고 뉴욕이 부진한걸 감안하면 더욱 이변이다. 포르징기스가 잘했고, 멜로와 노아, 로즈도 준수하게 활약. 로즈는 전성기 시절 속공을 보여주었고 멜로는 로즈와 롤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제몫을 했다. 노아와 로즈가 들어올땐 야유를 받았으나 나갈땐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때 시카고 영웅들의 완전한 퇴장.

12월 7일 기준으로 기록이 12승 9패로, 프리시즌만 해도 근접도 못할 것이라고 점쳐진 동부 컨퍼런스 공동 3위. 분석가들이나 해설자들이 닉스는 이번 시즌도 퇴물들만 모아놓아 폭망할 것이라는 것처럼 얘기한 걸 감안하면 경악스러운 정도. 정말 저번 몇 시즌이라면 절대 못 이겼을 경기들도 이기고 있어서 플옵 희망이 커져 간다. 멜로, 포르징기스, 로즈가 에이스 역할을 나눠서 하고 있고, 카일 오퀸과 저스틴 홀리데이의 대폭발, 유럽 루키들의 쏠쏠한 활약 등등에 힘입어 시즌을 3승 6패로 시작한 후 9승 3패라는 엄청난 상승세를 타는 중. 노아도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고 있지만 폼이 돌아오길 바라자.

그러나 12월 중순 데릭 로즈가 등 부상을 당했고, 기세가 꺽인 뒤, 로즈가 복귀했지만, 6연패를 당하며 16승 17패, 3년 연속 5할 승률 미만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짓더니 2017년 1월 17일 현재 시즌이 약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18승 23패로 하위권을 수성 중인데 무엇보다 이기고 있는 경기를 뒤집혀 지는 경우가 많아져서 닉스 팬들의 뒷목을 제대로 잡게하는 중이다. 최근 12경기에서는 고작 2승에 그치는 등 한 때 동부 컨퍼런스 4위까지 올랐던 순위가 동부 11위까지 추락했다.

여기에 1월 10일에는 데릭 로즈가 일종의 태업 비슷한 것을 시전하면서 선수단 사기도 엉망인 상황.[54] 1월에 필 잭슨의 절친인 한 기자가 멜로를 극딜하는 기사를 써서 화제가 되고 있다. '카멜로는 이제 뉴욕에서 쓸모가 없어졌다' 라는 글과 '필 잭슨은 뉴욕에 와서 맞는 판단만 내렸다' 라는 글을 썼는데, 기자 대신 필 잭슨이 대차게 콩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이 기자는 예전에도 잭슨이 사적으로 한 말을 기사로 그대로 옮기는 일들이 있었는데 (당연히 잭슨이 하라고 시켜서), 당연히 뉴욕 기자들은 저게 잭슨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하는 중. 멜로가 예전만큼은 못하고 있지만 절대 팀의 부진은 멜로 혼자만의 탓은 아니고, 로즈의 이탈, 포르징기스의 부상, 노아의 퇴물 플레이 등등 이유는 많다. 게다가 아주 좋았던 팀 분위기를 12월달부터 '멜로는 볼호그 ㅇㅇ' 라는 식의 언플로 망쳐놓은건 잭슨인데 왜 그 화살을 멜로에게, 그것도 딴 사람 입으로 돌리려고 하느냐 라는 의견이 대부분. 카멜로는 정말 실망했는지, '지네들이 내가 뉴욕에서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하면 걔네들이랑 앉아서 얘기해봐야겠네' 라고 생각도 안하고 있던 트레이드를 억지로 생각해봐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거기에다가 멜로가 잭슨과 미팅을 요청해도 씹힌다는 게 알려졌다. 정말 잭슨이 공식적인 말 한마디 없이 팀 전체를 말아먹고 있는 셈.

1월 17일에 잭슨과 멜로가 면담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가관인 것은 잭슨이 멜로더러 '뉴욕에 남고 싶냐?' 라는 질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멜로 입장에서는 말이 안나올 상황. 자신에게 최고 대우의 계약을 제시하며 팀에 남아줄 것을 부탁한 사장이 가만히 말없이 농구만 한 자신에게 팀에 대한 충성심과 쓸모를 의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너무 빨리 펼쳐진 것. 당연히 멜로는 뉴욕에 남을거라고 대답했고[55], 일은 좀 사그러들고 있다. 하지만 이 일로 잭슨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듯.

2월 9일에는 MSG에서 클리퍼스와 경기 도중 90년대 닉스의 레전드 찰스 오클리가 구단주에게 팀의 성적 부진과 개판인 상황에 대해 항의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와중에 닉스의 광팬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는 멜로의 편을 드는 등 현재 닉스팬들은 필 잭슨과 카멜로 앤서니 두 파로 갈라져서 싸우는 모양새.

후반기 들어서도 딱히 반전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가운데, 2할도 못 찍는 이웃 브루클린에게 1주일 동안 2연패를 하는 굴욕도 맛봤다. 최종 성적은 31승 51패.

시즌 종료 하루 후 사장 필 잭슨이 9월 이후 처음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 기자회견은 많은 닉스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한다. 일단 나오자마자 카멜로 앤서니를 또다시 극딜한다. '우리는 멜로를 중심으로 이기지 못하고 있다. 멜로는 닉스와 맞지 않는 선수이며, 은퇴 후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지기만 하고 이기지 못한 선수라는 딱지를 달고 싶긴 싫을거다. 다른 팀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발언을 했다. 이게 참 어이 없는 말인게, 잭슨이 정말 멜로를 트레이드 하고 싶으면 언론 플레이로 이름값을 올려야하는데, 잭슨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리어 멜로를 깎아내리고 있다. 안그래도 멜로의 계약과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트레이드를 성사시킬 수 있는 상대도 많지 않은데 왜 계속 멜로를 까서 더 타팀이 트레이드에 거부감을 가지게 하냐는 의견이 다수다.

그리고, 멜로와 닉스가 무패행진을 한건 아니지만 잭슨이 오기 전엔 멜로와 닉스는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오랫동안 못해봤던 플옵 시리즈까지 이겨봤다. 이걸 이끈 감독을 가차없이 자르고 팀을 해체한건 잭슨이었고, 닉스는 그대로 플옵권에서 광탈하며 지금의 모습을 쭉 보이고 있다. 포르징기스의 잠재력을 본 데릭 피셔 감독이 잭슨이 사랑하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포르징기스의 3점슛과 픽앤롤 장점을 살리기 위한 전술로 가려고 하자 자신의 제자였던 피셔도 가차없이 잘라버린다. 그러면서 되지도 않는 트라이앵글만 고집하고 퇴물 모으기를 한 잭슨이 멜로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모든 언론은 잭슨을 신나게 까고 있고, 멜로더러 그냥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눌러 앉아버릴 것을 종용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멜로를 최고액 계약을 안겨주며 팀에 잔류시킨 사람이 바로 잭슨 본인이다. 닉스 사장에 취임하면서 당면과제의 최 우선순위가 멜로를 잔류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시카고나 휴스턴으로의 이적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멜로에게 향후 팀의 청사진을 제시함과 더불어 5년 124m와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얹어주며 눌러앉혔다. 멜로도 계약 직후 잭슨 사장의 비전을 신뢰하여 잔류를 택했다는 식으로 말했을 정도였다. 자기가 사장으로 오기 전 이미 저질러진 고액 계약을 똥치우기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애걸복걸하며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주며 눌러앉혀놓고는 이제와서 언플로 딴소리나 하는 모습 때문에 언론도 팬들도 모두 잭슨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는 여러번 코치들이 진행하고 있는 연습을 중단시킨 후 선수들에게 트라이앵글 레슨을 했다든가, 포르징기스가 3점을 쏘면 비겁한 방식으로 득점을 하는 것이라든가, 참 사장으로서 도대체 뭘 하는건지 묻게 되는 말을 수없이 해댔다. 상술한 잭슨의 발언에 멜로는 인스타그램에 '아 그래?ㅋㅋㅋ' 라는 글을 올리고, 멜로를 좋아하고 따르는 포르징기스는 어지간하게 빡쳤는지 잭슨과의 퇴장미팅을 쌩까고 센트럴 파크에서 형들과 놀았다. 라트비아로 돌아가 시즌 시작 전까지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라고.

이런 식으로 정말 잭슨 때문에 폭망해버린 시즌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잭슨이 멜로와 포르징기스를 까면서 포르징기스의 미래까지 우려가 되고있는 상황이다. 멜로가 르브론, 웨이드, 과 함께 젊은 선수들의 우상으로 대우받고 있는데, 잭슨이 그런 멜로에게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닉스에게 결코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선수가 이런 팀으로 오고 싶어할까?

각 리그마다 팀이 2개 이상씩 있는 뉴욕은 보통 한 팀이 죽을 쑤면 나머지 한 팀은 중간이라도 가는데, NBA는 닉스가 내부분열에 네츠는 아예 풍비박산이 나버려서 뉴욕의 농구팬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2.7. 이후

2.7.1. 2017-18 시즌

카멜로, 포르징기스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켰던 필 잭슨이 결국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지속적인 멜로와의 불화는 둘째치고 구단의 미래인 포르징기스와의 마찰이 사임의 가장 큰 이유가 된 듯. 트라이앵글의 '트'자만 봐도 울렁증을 호소하는 뉴욕팬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부상과 결근으로 신뢰를 잃은 로즈와 재계약 협상을 포기했고 결국 로즈는 클리블랜드로 떠났다.

멜로도 결국 트레이드하려고 시도 중인데, 당초에는 휴스턴행이 유력했지만 휴스턴의 라이언 앤더슨 처분 건이 해결되지 않아 진척되지 않던 중 카이리 어빙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면서 팀의 운명을 걸고 멜로 + 알파 ↔ 어빙 딜을 성사시키고자 노력중이다. 그러나 멜로는 당초 클리블랜드행에 관심이 있다는 입장을 바꿔 휴스턴행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휴스턴은 크리스 폴을 영입한지라 전혀 멜로에 관심이 없어 보여 멜로 드라마 시즌 2는 흐지부지 끝날 모양새였다가 결국 카멜로 앤서니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 팀으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추가하면서, 멜로는 곧장 트레이드 되었다.

멜로는 트레이드하기 굉장히 어려운 선수였지만 티켓파워를 노리는 오클라호마시티가 에네스 칸터와 덕 맷더맛, 그리고 시카고 2라운드 픽을 주면서 뉴욕은 성공적인 트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현재는 시즌 초반 가히 MVP급 포스를 뿜으며 경기당 평균 30점씩 때려박는 포르징기스를 중심으로 새로 합류한 베테랑 재럿 잭, 신인 프랭키 닐리키나, FA로 다시 친정팀에 돌아온 팀 하더웨이 주니어, 닉스에서 2년차를 맞는 코트니 리등이 백코트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칸터와 카일 오퀸이 프론트코트에서 받쳐주며 시즌 초반은 일단 순항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반 좋은 행보가 일정빨이라 그렇다는 몇몇 사람들의 예측대로 후반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포르징기스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 칸터 역시 부상으로 빠지면서 이번 시즌도 플옵과는 멀어지는 모양새. 브루클린 네츠도 기를 쓰고 팀을 정상으로 되돌리려고 분투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걸리고 있어 뉴욕시는 이번에도 NBA로는 웃지 못하게 되었다.[56]

최종 성적은 29승 53패.

칸터 대신 오클라호마시티로 간 카멜로 앤서니가 득점마진 -53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삽질에 벤치멤버 출전을 거부하는 등 소란을 일으키고 있어서 칸터 트레이드는 뉴욕의 소소한 승리로 끝났다.

2.7.2. 2018-19 시즌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호나섹을 경질하고 멤피스에서 경질된 데이비드 피즈데일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포르징기스는 이번 시즌도 시즌아웃이 될지도 모른다는 루머와 소속팀과 시즌 내내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던 카와이 레너드가 뉴욕으로 올 지도 모른다는 루머로 비시즌부터 시끌벅적했지만, 트레이드 자원이 여의치 않아 불발되었다.

드래프트에서 9픽으로 워크에틱이 훌륭하다는 평을 들은 케빈 녹스를 지명했고, 2라운드에서 36픽으로 7풋 센터 미첼 로빈슨을 지명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드래프트라는 평. 두 선수 모두 섬머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줘서 팬들의 행복회로를 태우고 있다.

닉스팬들은 3년전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에게 했듯이 폭풍같은 야유로 케빈 녹스를 환영해주었다. 무려 포르징기스의 6번 유니폼을 입고 말이다. 다른 팀팬들은 닉스팬들의 야유를 보고 "녹스는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르징기스 때처럼 진지한 실망의 야유보다는 닉스팬들도 어느 정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의 환영 방식 포르징기스 드래프트 당시에 눈물을 흘렸던 꼬마는 이번에도 녹스를 뽑은 것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아 본레와 마리오 헤조냐를 영입했다. 두 선수 모두 포텐이 생각보다 터지지 못하는 상황. 무디에이와 함께 긁어보는 복권의 의미가 크다.

에네스 칸터의 옵트인으로 샐러리에 유동성이 없어졌다. 노아를 처리하기에 자원이 마땅히 없어서 결국 추가적인 FA영입이나 트레이드도 없이 시즌을 맞을 에정이다.

시즌 시작 전부터 암울한 것이 포르징기스는 12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돌아올 수가 없다고 한다.

일단 시즌 개막전에서는 올해도 탱킹하기로 결심한 애틀랜타 호크스를 27점차로 관광보내고 승리했다.

결국 10월에 노아를 웨이브했다. 3 시즌간 6.4밀이 잡히지만 남겨둬봐야 좋을게 없는 선수였다.

11월 상승세인 피즈데일 감독을 잘랐던 멤피스를 원정길에서 잡고 파죽의 3연승을 했지만, 잠깐이고 하락세가 될 예정이다. 다만, 팀 하더웨이 주니어의 상승세와 언드래프티인 알론조 트리어의 활약이 돋보이며, 노아 본레와 무디에이의 부활조짐이 긍정적이다.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어렵고 팬들도 탱킹하자며 GG를 치고 있는 상황. 홈에서 피닉스에 패하는 등 역시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카고, 애틀랜타, 피닉스, 클리블랜드와 함께 탱킹 경쟁 중이다. 가끔가다가 좋은 경기력으로 몇 번 이기고는 있다. 그럼에도 2019년 신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스, 캐벌리어스와 신나게 탱킹중인데다가, 게다가 1경기 차면 뒤집힐 수 있는 승률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리고 신년 경기였던 1월 24일에는 제임스 하든에게 커리어 하이인 무려 61득점을 기록하는 개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에네스 칸터가 현직 터키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에프 에르도안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등, 별의별 일들로 인해 오히려 좋은 결과보다는 안좋은 결과만 있다.

케빈 듀란트가 차기 시즌에는 돈을 우선 본다는 발언을 꺼내자, 곧바로 올인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브루클린 네츠가 최악의 암흑기 상황에서도 4년만에 팀을 일으켜세우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들어간데 반해(마지막 진출 14-15) 닉스는 네츠보다 2 시즌이나 더 플레이오프 진출을 못하고서도(마지막 진출 12-13) 이번 시즌도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어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결국 1월 31일 팀의 미래라 여겨졌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와 이번 시즌의 에이스였던 팀 하더웨이 주니어, 코트니 리, 트레이 버크까지 몽땅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댈러스에서는 디안드레 조던데니스 스미스 주니어, 웨슬리 매튜스, 미래의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두 장을 받아왔다. 데스주를 제외한 이적생들은 18-19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탱킹으로 시즌 종료 후 맥시멈 FA 매물을 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2명까지 사인이 가능할 정도로 샐러리가 비워진다고 한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경기인 애틀란타전에서 승리하며 지옥같던 18연패에서 간신히 탈출, 전반기를 11승 47패로 마감했다.

후반기에도 팀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으며 결국 시즌 종료 세 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리그 전체 꼴찌를 확정했다. 4월 8일 기준 16승 64패를 기록중이어서 남은 두 경기를 전패한다면 2014-15 시즌 세운 프랜차이즈 최악의 기록(17승 65패)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있다. 잔여 경기는 1승 1패로 마무리하며 프랜차이즈 최소 승리 타이기록을 세우며 시즌을 마쳤다.

시즌이 끝난후에 뉴욕은 지난 시즌 부터 영입에 올인하고 있고 여름에 FA자격을 갖게되는 케빈 듀란트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듀란트가 자신의 영입 조건으로 스타급 FA선수 한명을 같이 영입해 달라는 조건을 걸은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서 여름에 FA가 되는 스타급 선수중에 카이리 어빙도 같이 영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울러서 신인 드래프트 1순위에 당첨이 되면 최대 거물인 자이언 윌리엄슨을 손에 넣겠다는 심산도 있다. 하지만 뉴욕이 1순위에 뽑힐 확률은 14% 정도이고, 전체 1픽이 농구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 또한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결국 2019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3번 픽에 추첨되었다. 1픽을 얻고 윌리엄슨을 이용해 앤서니 데이비스의 트레이드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는데 AD의 소속팀 뉴올리언스가 1픽마저 챙겨가며 뻘쭘한 설레발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AD는 뉴올이 1픽을 뽑아서 자이온을 데려온다 해도 여전히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무조건 뉴올에 트레이드를 요청할꺼라고 한다. 결국 AD는 뉴욕이 아닌 레이커스로 갔다.

2.7.3. 2019-20 시즌

6월 21일 2019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의 지명권으로 듀크 대학교 출신의 슈팅 가드 R.J. 배럿을 지명했다.

케빈 듀란트가 아킬레스건 부상 전까지 영입에 사활을 걸었던 것처럼 보였던 뉴욕은 부상 이후 장기간의 재활을 거칠 듀란트의 몸 상태에 우려를 드러내면서 풀 맥스 계약을 망설였다. 결국 뉴욕이 망설이는 사이 듀란트는 결국엔 뉴욕의 라이벌 팀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을 결정했다. 그런데 듀란트는 뉴욕과의 계약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에이전트가 듀란트에게 뉴욕 이적을 적극 권유했으나, 그나마 닉스를 지탱해줬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팀 하더웨이 주니어마저 떠나고 유망주 밖에 남지 않은 뉴욕의 전력 상태에 의구심을 품어 뉴욕 이적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듀란트는 많은 사람들이 닉스를 '브랜드'로 보고 젊은 선수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지만, 이 선수들은 태어난 이래로 닉스가 잘한 걸 본 적이 없다고 닉스 구단을 강하게 디스했다.[57]

듀란트와 마찬가지로 영입을 시도했던 카이리 어빙도 뉴욕 측이 어빙의 에이스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며 영입을 주저했고, 결국 어빙도 결국 네츠로 이적을 결정지었다. 또한 FA가 된 디안드레 조던도 네츠로 이적하며, 지난 시즌에 탱킹을 감수하면서도 영입을 목표했던 선수들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목표했던 '빅 3'는 모두 놓쳤지만, 7월 1일부로 이적 시장이 열리자 뉴욕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줄리어스 랜들에 3년(2년 보장, 1년 팀 옵션) 6,300만 달러의 계약을 안겨줬고, 이어 타지 깁슨을 2년 2,000만 달러, 바비 포티스를 2년 3,1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이어서 캐치 앤 슛에 능한 3&D 자원인 슈터 레지 불록과 2년 2,100만 달러로 계약했으며, 다음 날인 7월 2일에는 10년 차 베테랑 가드 웨인 엘링턴을 2년 1,600만 달러, 포인트 가드 엘프리드 페이튼과 2년 1,6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먼저 파워 포워드 포지션의 랜들(206cm), 깁슨(206cm), 포티스(211cm) 모두 비슷한 체격을 가진 빅 맨이고 또한 랜들을 제외한 5명의 선수들은 평균 10점대의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듀란트, 어빙보다는 무게감이 덜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자원들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지만, 다수의 준척급 선수들로 선수단을 꾸렸기 때문에, 선발 명단은 다른 팀에 비해 뒤처질 지는 몰라도 벤치 자원은 강력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팀의 멸망에 화난 팬들은 경기장에서 구단주를 경질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이런 팬들을 직원들을 대거 동원해서 강제로 경기장에서 끌어내는 등 그냥 막장이다.

특이한 점으로는, 이번에 영입한 선수들 모두 2년의 계약 기간을 안겨줬는데, 언론과 팬들은 최초 계획이었던 어빙과 듀란트 동시 영입에 실패하자 이들을 위해 비워 놨던 샐러리 캡을 여러 명의 알짜 자원들로 채우며 2년 뒤 후일을 도모하는 행보로 보고 있다. 특히 6명의 계약이 모두 종료되는 2년 뒤에는 야니스 아데토쿤보제임스 하든이 FA가 되기 때문에, 준척급 자원으로 PO 진출을 내다볼 수 있는 성적을 기록하며, 빅 네임의 영입 기회를 노리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어떤 NBA 팬도 뉴욕 닉스 프런트가 저걸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58]

2019년 포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서 5위를 차지하며 또 다시 전체 NBA 구단 가운데 1위를 차지하며 팬들을 슬프게 했다. 자이온이고 뭐고 구단이 거창하게 내세운 대형 FA선수 영입이 죄다 망했는데도 연고지의 위엄으로 또 다시 1위가 되었다. 정말 닉스가 우승이라도하는 날엔 양키스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ESPN에 따르면 프런트의 스티브 밀스가 해고되었고, 대체자로 토론토 랩터스의 유지리를 원한다고 한다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시즌을 또 치르다가 휴스턴 로켓츠의 연승을 끊어내는 멋진 경기를 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기에서 닉스의 슈퍼팬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의 입장을 제한하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또 구설수에 올랐다. [59]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단주 제임스 돌란과 영구결번 레전드 패트릭 유잉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마저 들려왔다. ##

올랜도 버블에 초대받지 못하며 결국 최종성적은 21승 45패, 동부지구 1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편 새로 선임된 사장 레온 로즈가 닉스 부활의 첫번째 초석이될 감독 선임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주요 후보는 제이슨 키드, 케니 앳킨슨, 탐 티보듀라고.

2020년 7월 26일 신임 감독으로 톰 티보도를 선임했으며, 계약 기간은 5년이다. # 티보도 감독의 대표적인 단점인 주전 선수 혹사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지만 동시에 닉스에서 가능성만 보여준 채 재능을 꽃피우고 있지 못한 유망주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티보도는 현재 팀 내에서 센터 자원인 미첼 로빈슨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번 드래프트 추첨에서마저 샬럿 호넷츠과 시카고 불스가 4순위 이내를 먹어버리는 닉스 입장에서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며 졸지에 8순위로 밀려났다. 닉스 팬은 이번 드래프트에서 포인트 가드 자원 중 2순위로 꼽히는 타이리스 할리버튼이나 마찬가지로 가드 자원인 킬리안 헤이즈가 제발 8순위까지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뜬금없이 크리스 폴을 데려오기 위해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케빈 낙스와 지명권을 포함한 트레이드를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팬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은 편. 이후 러셀 웨스트브룩과도 연결되기도 했다.

2.7.4. 2020-21 시즌

CBS스포츠에서 향후 5년간 미래가 가장 암울한 NBA 워스트 팀 4위에 선정되었다. 한편 샐러리캡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으로 인해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정해지자 유망주와 픽을 받는 대신 악성 계약을 감수하겠다고 나섰다.# 작년 투맥스 전략이 실패한 이후로도 샐러리 관리는 상당히 잘한 편이기 때문에 운신의 폭은 커진 편.

그런데 정작 톰 티보도 감독이 '윈나우' 무브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때문인지 러셀 웨스트브룩, 크리스 폴 트레이드 등이 언급되었으나 정작 닉스 프런트에서는 너무 큰 대가를 줘야할까봐 거래를 꺼리고 있다고. 그 사이에 크리스 폴은 결국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다.

202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픽으로 홈타운 보이인 오비 토핀을 지명했다. 예상됐던 픽업 트레이드 없이도 준수한 선수를 지명하는 데 성공했다. 공격에 강점이 있지만 수비가 약점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팬들은 제2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지명 직후 토핀은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전문가들은 실망스러운 픽으로 평가하는데 오비 토핀 자체의 포텐셜은 분명히 있으나 문제는 뉴욕 닉스의 빈약한 가드진 탓이크다. 가드진이 휑한 상태에서 또다시 포워드 그것도 파워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를 지명했으니 특히 타이리스 할리버튼이라는 실링이 낮다는 평가는 받지만 그래도 걸출한 가드를 두고 오비 토핀을 지명한 것에 대해 S.A.S는 대놓고 실망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후 타지 깁슨, 엘프리드 페이튼, 웨인 엘링턴 등 스쿼드 플레이어들과의 옵션 발동을 포기하고 바비 포르티스를 웨이브하는 등 샐러리를 추가로 비우고 있는데 같은 시기 보스턴의 고든 헤이워드가 전격 옵트 아웃을 선언하면서 닉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60] 하지만 고든 헤이워드는 4년 120M으로 샬럿 호네츠로 이적했다.

시즌 초반 4승 3패 동부컨퍼런스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다. 야투율이 지난 시즌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3점슛 성공률이 상당히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새로 영입된 멤버들인 알렉 벅스, 엘프리드 페이튼이 외곽슛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알렉 벅스는 3점슛 성공률 66.7%라는 리그 1위의 3점 성공률을 보여주면서 팀의 상승세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에이스인 랜들과 배럿의 호흡도 지난 시즌 보다 좋아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상승세의 한축이다. 랜들이 지난 시즌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볼 소유 시간을 줄이고 팀에서 플레이 메이킹과 볼 핸들러로 변신을 시도한 게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기도하다. 랜들의 평균 어시스트 기록을 보더라도 확실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1월 9일 오클라호마시티전 패배 이후 내리 5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외곽에서 쏠쏠히 포인트를 쓸어 담았던 알렉 벅스가 왼쪽 발목 염좌로 장기 결장으로 빠졌고 페이튼의 기복있는 플레이가 겹쳐졌다. 페이튼보다 더욱 더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이는 베럿도 팀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내려갈 놈은 결국 내려간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1월 18일 보스턴전을 시작으로 주포인 배럿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이더니, 커리를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 있던 골든스테이트를 잡으면서 3연승을 달리고있다. 골든스테이트전에 배럿은 개인 최다인 28득점을 기록하면서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감독이 티성근이라는 별명 답게 주포인 랜들과 배럿의 출전 시간이 리그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혹사를 시키고 있지만 확실하고 짜임새 있는 안정된 수비전술을 바탕으로 공격도 잘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공격 리바운드 1위 로빈슨과 수비 리바운드 1위 랜들의 강력한 타워 라인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서 리그 최소 실점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전반기를 동부 5위로 마무리 했다. 줄리어스 랜들의 올스타 선정은 덤.

3월 17일 브루클린과의 뉴욕 더비에서 112:117로 경기 막판 어빙의 수비로 인한 줄리어스 랜들의 트레블링으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18점 차이나던 스코어를 4쿼터에 엄청난 투지로 따라 붙었다. 그래서 닉스의 광팬인 스티븐 A. 스미스도 패배했지만 경기의 내용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4월 19일 현재 31승 27패. 플옵 진출이 매우 유력하다.

4월 21일 자로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7연승을 거두었다. 최근 한달간 부진에 시달리던 이매뉴얼 퀴클리가 경기 전반의 경쟁력을 실어주었고, RJ 배럿이 6개 3점포함 24점을 쏟아내며 승리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는 동부 컨퍼런스 4위였던 애틀란타 호크스를 홈에서 연장 끝에 제압하며, 8연승을 기록하며 33승 27패, 애틀랜타를 끌어내리며 동부 4위로 올라갔다. 이 경기 이후 줄리어스 랜들의 "New York. We here!" 는 모든 뉴욕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토론토까지 잡아내면서 파죽의 9연승을 달성했다.

4월 27일 서부 컨퍼런스 2위팀인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에서 에이스 줄리어스 랜들의 부진과 함께 클러치 구간에서 크리스 폴에게 연속 득점을 당하며 110:118로 아쉽게 패해 10연승 도전에 실패했다. 그래도 다음날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를 113:94 가비지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연패까지 가진 않았다.

5월 6일 스페인 리가 ACB 바스코니아에서 뛰고 있던 아르헨티나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인 루카 빌도자를 4년간 1,360만 달러의 금액으로 영입했다.[61]

5월 16일 샬럿 호네츠와의 홈 경기에서 연장접전끝에 118-109 승리를 거두었고, 같은 날 마이애미 히트밀워키 벅스에게 패배해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승리를 할 경우 자력으로 동부 컨퍼런스 4위를 확정 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5월 17일에는 이미 동부 7위를 확정지어 플레이 인 토너먼트를 대비해 주전들 대거휴식을 준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무난히 홈에서 앞서가다가 마지막 보스턴의 추격에 살떨리는 경기를 펼쳤지만, 끝내 리드를 지켜내고 96-92 신승을 거두며 41승 31패로 동부 컨퍼런스 4위를 확정지었다. 1라운드에서는 동부 컨퍼런스 5위인 애틀랜타 호크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 신이난 닉스 팬들은 덤. 그 열기를 입증하듯이 1차전이 열릴 MSG에서 벌써 최하급자리가 천달러를 넘었다.

한편 정규시즌 데릭 로즈가 식스맨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실제 수상은 조던 클락슨에게 돌아가면서 이름이 오른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팀의 에이스 줄리어스 랜들이 부진 했고 데릭 로즈의 힘으로 간신히 2차전 1승을 가져왔지만 결국 에이스 맞대결에서 완패하며 탈락했다. 닉스 광팬인 스파이크 리는 허탈하게 주저앉았고 하필 승부가 난 5차전의 해설위원은 그의 숙적이자 닉스 킬러로 명성이 자자했던 레지 밀러였다. 아울러,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TNT의 캐스터 마브 앨버트의 마지막 MSG 경기 중계이기도 했다.

정규시즌 종료 이후 줄리어스 랜들이 All-NBA 세컨드 팀에 들어갔다. 팀으로서는 무려 카멜로 앤서니 이후 8년만의 All-NBA 멤버 선정 및 세컨드 팀 수상이다.

2.7.5. 2021-22 시즌

NBA 원년팀으로서 창단 75주년을 맞는 시즌.[62] 오프시즌 무브로는 20-21 시즌 닉스의 위닝 시즌을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 줄리어스 랜들과 4년 117M에 연장 계약을 맺었다. 지난 시즌 쏠쏠한 활약을 펼친 데릭 로즈와는 3년 43M, 알렉 벅스널런스 노엘도 각각 3년 계약에 30M 수준으로 잔류시켰다. 신규 영입으로는 에반 포니에를 4년 78M에 데려왔고 오클라호마에서 방출된 켐바 워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이로서 그간 빅네임 슈퍼스타급 영입을 위해 텅텅 비우다시피 관리해왔던 캡스페이스가 거의 소진되었는데, 이 탓에 닉스 팬덤에선 이 무브들이 최선이었는지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닉스가 이번 오프시즌에 전력보강을 위해 열심히 움직인것은 맞나 에반 포니에한테 너무 많은 돈을 썼고, 만약 닉스가 스몰마켓 팀이라면 납득이 가는 무브들이겠으나 닉스는 명실상부 NBA최고의 빅마켓 팀중 하나다. 닉스의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은 오프시즌이였다.

10월 4일 루카 빌도자를 웨이브 공시했다. 섬머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빌도자의 발목 부상때문에 웨이브 공시한 것이다.

보스턴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2차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을 선보인 끝에 승리를 거뒀고 이후 10월을 4승 1패로 마치며 시즌 극초반이지만 시카고 불스, 샬럿 호네츠와 함께 동부 컨퍼런스 선두권을 형성하며 순항 중이다. 랜들이 작년처럼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배럿도 무난히 성장세를 지속 중. 오프시즌 영입생 중에서도 켐바 워커가 샬럿 시절의 기량이 어느 정도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에반 포니에도 무난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작년의 깜짝 4위가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시위하고 있다. 다만 무난히 이길만한 점수차를 갖고도 4쿼터만 돌입하면 단체로 정신줄을 놓고 경기를 박빙 모드로 다시 몰아넣어서 심장이 쫄깃하다는 팬들의 불평도 있는 편.

하지만 26경기 정도를 치른 시점에는 동부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현 선발 멤버들이 로테이션 멤버들보다 좋지 않은 수비력과 100 포제션 당 득점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톰 티보도 감독은 계속해서 비슷한 선발 라인업을 고집하고 있다. 공 회전율 또한 좋지 않은데, 동/서부 컨퍼런스 1~4위 팀들에는 평균 5+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는 가드들이[63] 있는데 현재 닉스는 포워드인 랜들과 1순위 선발 가드도 아닌 데릭 로즈가 팀 내 어시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로 수비가 정비되면서 승리를 다시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전반기 성적이 안좋았던지라 플레이인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 필요한 컨퍼런스 10위와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결국 3월 5일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에서 버저비터 역전패를 당하면서 남은 경기가 7경기인데 8위 브루클린과의 승수차가 7이 되며 플레이오프 직행은 불가능이 확정되었다. 10위 샬럿과의 승수차도 6이므로 샬럿이 1승하거나 닉스가 1패하면 닉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이 완전 확정된다.

3월 6일 샬럿이 샌안토니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닉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다.

2.8. 새로운 뉴욕의 왕 제일런 브런슨

2.8.1. 2022-23 시즌

비시즌동안 많은 썰이 끊이지 않았으며 주로 디존테 머레이, 제일런 브런슨 등과 연결이 되며 앞선을 보강하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머레이는 애틀랜타에 갔지만, 제일런 브런슨을 4년 104M[64], 그리고 이자이아 하르텐슈타인을 영입했다.

이후에는 도노반 미첼 트레이드에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유타 재즈쪽에서 닉스가 생각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에셋[65]을 요구하면서 8월초 들어서는 소식이 잠잠해졌다. 결국 뉴욕과 합의를 보지 못한 유타는 다른 구단으로 발길을 돌렸고, 미첼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유타는 미첼을 트레이드해 콜린 섹스턴, 오차이 아바지, 라우리 마카넨과 1라운드 지명권 3장, 스왑 권리 2장을 얻어왔다.

그리고 RJ 배럿4년 120M 규모의 재계약을 맺으면서 미첼 트레이드는 사실상 포기한 셈이 되었고, 이후 미첼이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되면서 닉스는 올스타 경력없는 1억 달러 백코트 듀오를 결성하게 되었다.비올스타 2명 한테 2억 달러를 태우는 닉스 프런트의 위엄

그러나 제일런 브런슨 영입덕에 플레이오프 경쟁을 하고 있다.

스텝업한 RJ 배럿, 20-21 시즌 폼을 되찾는 줄리어스 랜들, 제일런 브런슨의 활약이 합쳐져 팀이 8연승을 달린적 있다. 섬머리그에서 활약하다 이젠 팀의 주전 슈팅가드로 성장한 쿠엔틴 그라임스이매뉴얼 퀴클리, 마일스 맥브라이드와 팀의 덩커 제리코 심즈까지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동부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8연승 이후 바로 5연패를 달리며 다시 원래 닉스같은 행보를 보여줬다.

43경기 소화한 시즌 반 정도 진행한 시점에선 24승 19패 동부지구 6위를 달리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바로밑에 인디애나와 시카고가 23승 20패로 바짝 추격하고있는 형국.

트레이드 기간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캠 레디시와 1라운드 지명권 1장을 내주고 조시 하트를 영입했다. 팬들의 반응은 결국 케빈 녹스 2세에 1라운드 지명권 2장이 하트가 된 것이냐며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동시에 티보도 체제에서 아웃된 레디시에서 티보도가 원했던 하트의 영입은 나쁘지 않다는 평도 존재한다. 기뻐하는 대학동기 브런슨은 덤이다

2월 14일 브루클린 넷츠와의 경기에서 빌라노바 듀오인 브런슨과 하트가 각각 40득점, 27득점을 폭발시키며 팬들은 2경기만에 하트의 영입을 재평가하고 있다. 59경기 소화한 현재 32승 27패 동부지구 7위를 달리고 있는데, 하트의 가세로 플레이오프 직행도 노려볼만한 상황이다. 현지시간 3월 3일 경기에서 랜들의 클러치 3점으로 마이애미 히트를 꺾고 8연승을 기록했다. 하트 영입 이후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으며, 랜들과 브런슨이 매 경기마다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4위 캐벌리어스와도 1게임차라 플레이오프 직행을 넘어 상위시드까지 노려볼만한 상황.

3월 6일(현지 날짜 3월 5일), 원정팀의 무덤 TD 가든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31:129, 단 2점 차의 짜릿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정규시즌 상대전적 3승 1패로 기분좋게 마무리하였으며, 바로 아래 브루클린 네츠와 승차를 2경기까지 벌려 동부지구 5위 자리를 확실히 꿰찼다. 다음 일정은 만년 탱킹팀인 동부 14위 샬럿 호네츠와 홈 대결로서 큰 이변만 없다면 무난히 1승을 또 챙겨 10연승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샬럿 호네츠를 상대로 105-112로 패배하며 눈앞에서 10연승을 놓쳤다.

3월 29일 히트와의 경기에서 랜들이 부상을 당했으며, 2주후에 재검진 예정이다.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는 팀 입장에서는 비상인 상황.

4월 3일(현지 날짜 2일) 워싱턴 위저즈를 꺾으면서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했다. 남은 경기결과에 관계없이 최소 6위는 보장인 셈이다.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

4월 5일 인디애나와의 경기에서 제일런 브런슨, RJ 배럿, 줄리어스 랜들이 다 빠진 상황에서도 오비 토핀, 이매뉴얼 퀴클리, 쿠엔틴 그라임스가 각각 30점 이상 올리면서 승리하였다. 이걸로 5연승째.

최종적으로 정규 시즌 47승 35패로 동부 컨퍼런스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1R 상대는 4번 시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만나게됐다.

정규시즌 상대전적이 3승1패여서 많은 스포츠 패널들이 업셋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고, 실제로도 그렇게 전개되었다. 미첼 로빈슨은 무려 29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면서 올해 최고의 디펜스팀이던 클리블랜드 빅맨진을 바보로 만들었고, 수비 전술 하나는 nba에서 원탑인 티보도 감독의 수비 로테이션 전술이 제대로 먹혀들면서 클리블랜드에게 진짜 수비팀이란 무엇인지 한 수 가르쳐주는 시리즈 전개가 됐다.

정규시즌 막판 입은 발목부상 및 플옵만 돌입하면 작아지는 랜들은 이번에도 부진했지만,[66], 토핀이 그 자리를 잘 메워줬고,[67] 올스타 무경력 출신 1억 계약으로 조소받던 제일런 브런슨은 혜자계약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면서 시리즈 내내 클리블랜드 백코트진을 융단폭격. 2차전까지 끔찍한 공격력을 보여주던 R.J. 배럿도 3차전부터 대각성하면서 힘을 보탰고, 조쉬 하트와 아이제이 하텐슈타인 등 식스맨도 힘을 보태면서 시리즈 내내 큰 위기상황도 없이[68] 가볍게 4승 1패로 클리블랜드를 업셋시키고 플레이오프 2R 진출. 21세기 이후 두번째이자 카멜로 앤서니 시대이던 12-13 시즌 이후 무려 십년만의 플레이오프 2R 진출이라는 경사를 누리게 됐다. 2라운드 상대는 1번시드 밀워키를 업셋시키고 올라온 마이애미 히트.

여담으로 뉴욕은 닉스의 10년만의 플레이오프 승리로 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한동안 브루클린 네츠에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겨 밀려났던 분위기를 이번 1라운드 승리로 반전시킨 분위기다. 만약 닉스가 2라운드 마저 통과한다면 확실한 ‘닉스 타운’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될 전망이다.

2라운드 상대는 90년대 라이벌리로 유명했던 8번 시드 마이애미 히트를 만났는데 1차전을 패배하며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잃었고, 2차전도 지미 버틀러가 없는 히트에게 고전했지만 4쿼터 브런슨의 3점 & 상대의 파울로 자유투 하나가 나온 4득점 장면 이후 브런슨 쇼타임이 작렬해 111-105로 승리했다. 그러나 원정 3, 4차전을 잇달아 내줬고, 홈에서 열린 5차전은 브런슨과 그라임스가 48분 풀타임을 뛰면서까지 간신히 잡아냈으나, 6차전에서는 41득점의 괴력을 발휘한 브런슨의 활약이 무색하게 나머지 팀원들이 전혀 받쳐주질 못해 결국 패배해 2승 4패로 탈락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10년 전 플레이오프 2라운드와 판박이처럼 동일한 패-승-패-패-승-패 순의 경기 결과와 함께 탈락하고 말았다.

2.8.2. 2023-24 시즌

오프시즌 잠잠하던 닉스가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골스에서 단테 디빈첸조를 4년 50밀이라는 혜자 계약에 대려오며 브런슨-하트-디빈첸조 빌라노바 트리오를 재결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티보도 감독과 언쟁이 있었던 오비 토핀이 결국 2라픽 2장+6.8m 규모의 TPA를 대가로 페이서스에 트레이드 되었는데, 플옵에서의 부진으로 민심을 잃은 랜들 트레이드는 커녕 포지션 경쟁자이자 확실한 포텐셜을 보여줬던 유망주를 충분한 출전시간도 주지 않고 고작 2라픽 2장으로 보내버리는 선택에 팬들은 분노하고 있다. 하여간 팬들은 물론이고 이 어르신이 미워할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한국 시간으로 12월 30일에는 RJ 배럿이매뉴얼 퀴클리, 그리고 2024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을 대가로 해서 OG 아누노비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아누노비 영입 효과로 2024년 들어 13승 2패 리그에서 가장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상승세는 계속되어, 2월 2일 기준 32승 17패로 무려 동부 3위이며, 2위 밀워키를 0.5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다. 9연승을 기록 중이며, 2024년 성적은 15승 2패에 달한다. 아누노비의 영입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고, 지난 시즌 영입되고부터 팀 1옵션으로 각성한 제일런 브런슨이 매 경기 30~40득점을 기록하는 괴물같은 활약을 보이는 중. 결국 브런슨이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뉴욕 팬들에게는 모처럼 꿈과도 같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랜들또한 어느정도 살아나며 어느 때보다도 NBA 우승이 가까워 보이고, 특히 르브론 제임스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있어 닉스가 르브론을 노린다면 영입될 수 있는 확률도 아주 없는건 아니다.

특히 1월 하순부터 부상자가[69] 속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노바 트리오 및 롤 플레이어들의 맹활약으로 잘 버티는 듯 했으나 2월에 흔들리며 동부 5위에 위치하고 있다.

4월 들어 최근 5경기 1승 4패를 박음과 동시에 랜들도 시즌아웃이 확정 되며 올해도 망한듯 했으나 4월 13일 기준 NBA 공홈 기준 10경기 동안 제일런 브런슨의 차력쇼에 힘입어 팀 OFFRTG 1위 와 DEFRTG 24위 를 달리며 밀워키 벅스와 2위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밀워키가 패배, 뉴욕이 승리해야 동부 2위가 가능하다. 밀워키와 뉴욕이 모두 패배해도 밀워키에게 뉴욕이 상대전적이 밀려 동부 3위가 된다.

그러나 밀워키 패배, 뉴욕 패배, 클리블랜드 승리가 되면 클리블랜드가 센트럴 지구 우승팀 자격으로 동부 2위, 밀워키가 뉴욕에 상대전적이 앞서 3위, 뉴욕이 4위가 되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수 있다.

경우의 수는
밀워키 패 뉴욕 승 클리블랜드 패
밀워키 패 뉴욕 승 클리블랜드 승
밀워키 승 뉴욕 승 클리블랜드 승
밀워키 승 뉴욕 승 클리블랜드 패
밀워키 승 뉴욕 패 클리블랜드 패
밀워키 승 뉴욕 패 클리블랜드 승
밀워키 패 뉴욕 패 클리블랜드 패
밀워키 패 뉴욕 패 클리블랜드 승

2024년 4월 15일[70], 시카고 불스와의 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20-119로 승리하면서 동부 2위를 확정지으며[71]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이 아재께서 몹시 흥분하신다[72]. 정규시즌 50승 고지를 밟은것과 동부 2위를 기록한 것 모두 카멜로 앤서니의 득점왕 시즌이었던 2012-13 시즌 이후 최초다. 다민 디비전 타이틀은 같은 디비전에 동부 1위 보스턴 셀틱스가 있어 획득하지 못했다.

2024년 4월 20일[73] 플레이 인 토너먼트 7시드 결정전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물리치고 7번 시드를 차지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2024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 1차전을 홈에서 갖는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1차전에서 조쉬 하트의 클러치 3점이 연달아 터지며 접전 끝 승리를 챙겼다.

2차전에서는 경기 종료 1분 전까지 5점차로 지고 있었으나, 클러치 3점 두 방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챙기며 시리즈 2-0 리드. 플레이오프에서 첫 두 경기를 다 이긴 것도 12-13 시즌 플레이오프 이후 처음. ??:KD 뉴욕 안 온거 후회하지?[74]

3차전에는 조엘 엠비드의 50점 퍼포먼스에 경기를 내줬다. 별개로 1쿼터에 엠비드가 미첼 로빈슨에게 비상식적이고 더러운 파울을 범했는데 플래그 2 + 추가 징계 감임에도 플래그 1만을 받았다.

4차전에서 브런슨이 1984년 버나드 킹이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전에서 세운 46득점을 갱신한 47득점을 기록하면서 시리즈 3승 1패로 2라운드에 한 경기를 앞둔 상황이다. 이분에게 생기가 돌아왔다#

5차전에서 25초를 남겨두고 6점 차로 앞서 있어 2라운드 진출 직전이었으나 타이리스 맥시가 혼자 7점을 만들어내는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연장 승부에 돌입했고, 연장에서 엠비드의 수비에 공격이 막혀버리며 패배했다.

6차전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하며 4-2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상대는 밀워키를 꺾고 올라온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90년대 닉스의 대표적인 플레이오프 라이벌이었던 팀이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 1차전 빌라노바 트리오가 92점을 합작하며 벤치에서만 46점을 지원해준 상대를 접전 끝에 꺾었다. 다만 클러치 타임에서 2개의 판정 이득을 봤다.

2차전 브런슨이 전반 부상으로 빠졌지만 후반전 돌아왔고, 3쿼터와 클러치 타임에서 우세한 경기력을 보이며 시리즈를 2-0으로 리드했다. 다만 수비의 핵심이자 이 날 28점을 기록한 아누노비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며 남은 시리즈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3차전운 아누노비가 없는 상태에서도 끝까지 원포제션 게임을 만들며 선전했으나 경기종료 16초전 앤드류 넴하드에게 역전 롱3를 얻어맞고 아깝게 패하더니, 4차전은 초반부터 정신없이 털린 끝에 89:121로 가비지 완패를 당하며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5차전에서 브런슨이 47점을 폭격하는 대활약 끝에 121:91로 대승을 거두며 3승을 선점했다.

하지만 6차전, 7차전에 결국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며 연달아 두 경기를 내주며 4-3으로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이 아쉽게 좌절되었다. 아누노비 같은 주축 선수의 결장은 물론 마지막 두 경기에서 브런슨과 하트가 모두 컨디션 난조를 겪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듯 하다.

2.8.3. 2024-25 시즌

시즌이 끝나고 미칼 브릿지스를 1라운드 픽 5장과 보얀 보그다노비치를 주고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기어이 빌라노바 닉스를 완성시켜 버렸다. 이에 더해 지난 시즌 후반기 상승세의 주역이었던 아누노비도 붙잡는 데에 성공했고, 팀 1옵션 제일런 브런슨과 감독 탐 티보듀와의 연장계약도 성공하며 성공적인 오프시즌을 보내는 중.

준수한 포워드 겸 빅맨 프레셔스 아치우와와도 재계약 했다.

오프 시즌 막바지에 칼앤서니 타운스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대가는 줄리어스 랜들, 단테 디빈첸조[75] 그리고 1라운드 보호픽. 랜들과 언해피를 띄우던 디비첸조 처리와 동시에, 아이재아 하텐슈타인의 빈자리를 무려 KAT로 채웠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트레이드라 볼 수 있으나 4년 234m 계약이 남아있는 타운스가 과연 돈값을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PG 제일런 브런슨
SG 미칼 브리지스
SF 조시 하트
PF OG 아누노비
C 칼앤서니 타운스

2~4번은 모두 스위치가 가능하며,수비와 공격 모두 엄청난 BEST 5가 형성 되었고 우승후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NBA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어 109-132 대패를 당했다. 닉스의 야투율도 나쁘지 않았지만 믿었던 브리지스/아누노비 윙 디펜더 듀오가 테이텀/브라운듀오에게 털렸고 브리지스의 전반 무득점과 아누노비의 부진 거기에 보스턴의 미친 3점감이 더해지면서 35점차까지 벌어졌으며 NBA 단일경기 3점 신기록을 허용했다. 그나마 보스턴의 가비지 멤버들이 30번째 3점을 시도하다 결국 안들어가서 그나마 점수차를 좁혔다.

10경기가 넘어가며 슬슬 수비 호흡이 맞아가고 브런슨-타운스가 활약하기 시작해 폭발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타운스가 사실상 1옵션이다.

3.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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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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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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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DeBusschere)
빌 브래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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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유잉
(Patrick 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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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Hol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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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닉스의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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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2 15 1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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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4 33 613
데이브 드부셔 빌 브래들리 패트릭 유잉 레드 홀즈먼






뉴욕 닉스의 파이널 MVP
1970년 파이널 1973년 파이널
윌리스 리드

4. 2024-25 시즌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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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시즌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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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428a><colcolor=#fff> 감독 탐 티보듀
코치 모리스 칙스 · 릭 브런슨 · 대니얼 브래디 · 마크 브라이언트 · 대런 어먼 · 앤디 그리어 · 다이스 요시모토
가드 1 카메론 페인 · 2 마일스 맥브라이드 · 9 케빈 맥컬러 주니어TW · 11 제일런 브런슨 · 13 타일러 콜렉 · 26 부 부이TW
가드-포워드 3 조쉬 하트 · 4 파콤 다디에 · 25 미칼 브리지스
포워드 00 제이콥 토핀TW · 8 OG 아누노비 · 37 맷 라이언
포워드-센터 5 프레셔스 아추와 · 32 칼앤서니 타운스
센터 20 제리코 심즈 · 23 미첼 로빈슨 파일:부상 아이콘.svg · 55 아리엘 후크포르티
* TW - 투웨이 계약
다른 NBA 팀 선수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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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탈락
연도 정규시즌 순위[76]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46-47 3위/6팀 준결승 진출 동부 디비전 뉴욕 닉스 60 33 27 .550
1947-48 2위/4팀 8강 진출 48 26 22 .542
1948-49[77] 2위/6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60 32 28 .533
1949-50 2위/6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68 40 28 .588
1950-51 3위/6팀 준우승 66 36 30 .545
1951-52 3위/5팀 준우승 66 37 29 .561
1952-53 1위/5팀 준우승 70 47 23 .671
1953-54 1위/5팀 디비전 라운드 로빈 진출 72 44 28 .611
1954-55 2위/5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72 38 34 .528
1955-56 4위/4팀 디비전 타이브레이커 진출 72 35 37 .486
1956-57 4위/4팀 탈락 72 36 36 .500
1957-58 4위/4팀 탈락 72 35 37 .486
1958-59 2위/4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72 40 32 .556
1959-60 4위/4팀 탈락 75 27 48 .360
1960-61 4위/4팀 탈락 79 21 58 .266
1961-62 4위/4팀 탈락 80 29 51 .363
1962-63 4위/4팀 탈락 80 21 59 .263
1963-64 4위/4팀 탈락 80 22 58 .275
1964-65 4위/4팀 탈락 80 31 49 .388
1965-66 4위/4팀 탈락 80 30 50 .375
1966-67 4위/5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1 36 45 .444
1967-68 3위/6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2 43 39 .524
1968-69 3위/7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2 54 28 .659
1969-70 1위/7팀 우승 82 60 22 .732
1970-71[78] 1위/4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동부 컨퍼런스 82 52 30 .634
1971-72 2위/4팀 준우승 82 48 34 .585
1972-73 2위/4팀 우승 82 57 25 .695
1973-74 2위/4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49 33 .598
1974-75 3위/4팀 1라운드 진출 82 40 42 .488
1975-76 4위/4팀 탈락 82 38 44 .463
1976-77 3위/5팀 탈락 82 40 42 .488
1977-78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1978-79 4위/5팀 탈락 82 31 51 .378
1979-80 4위/5팀 탈락 82 39 43 .476
1980-81 3위/5팀 1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1981-82 5위/5팀 탈락 82 33 49 .402
1982-83 4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4 38 .537
1983-84 3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7 35 .573
1984-85 5위/5팀 탈락 82 24 58 .293
1985-86 5위/5팀 탈락 82 23 59 .280
1986-87 5위/5팀 탈락 82 24 58 .293
1987-88 3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8 44 .463
1988-89 1위/6팀 2라운드 진출 82 52 30 .634
1989-90 3위/6팀 2라운드 진출 82 45 37 .549
1990-91 3위/6팀 1라운드 진출 82 39 43 .476
1991-92 2위/7팀 2라운드 진출 82 51 31 .622
1992-93 1위/7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60 22 .732
1993-94 1위/7팀 준우승 82 57 25 .695
1994-95 2위/7팀 2라운드 진출 82 55 27 .671
1995-96 2위/7팀 2라운드 진출 82 47 35 .573
1996-97 2위/7팀 2라운드 진출 82 57 25 .695
1997-98 2위/7팀 2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1998-99 4위/7팀 준우승 50 27 23 .540
1999-00 2위/7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50 32 .610
2000-01 3위/7팀 1라운드 진출 82 48 34 .585
2001-02 7위/7팀 탈락 82 30 52 .366
2002-03 6위/7팀 탈락 82 37 45 .451
2003-04 3위/7팀 1라운드 진출 82 39 43 .476
2004-05 5위/5팀 탈락 82 33 49 .402
2005-06 5위/5팀 탈락 82 23 59 .280
2006-07 4위/5팀 탈락 82 33 49 .402
2007-08 5위/5팀 탈락 82 23 59 .280
2008-09 5위/5팀 탈락 82 32 50 .390
2009-10 3위/5팀 탈락 82 29 53 .354
2010-11 2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2 40 .512
2011-12 2위/5팀 1라운드 진출 66 36 30 .545
2012-13 1위/5팀 2라운드 진출 82 54 28 .659
2013-14 3위/5팀 탈락 82 37 45 .451
2014-15 5위/5팀 탈락 82 17 65 .207
2015-16 13위/15팀 탈락 82 32 50 .390
2016-17 12위/15팀 탈락 82 31 51 .378
2017-18 11위/15팀 탈락 82 29 53 .354
2018-19 15위/15팀 탈락 82 17 65 .207
2019-20 12위/15팀 탈락 66 21 45 .318
2020-21 4위/15팀 1라운드 진출 72 41 31 .569
2021-22 11위/15팀 탈락 82 37 45 .451
2022-23 5위/15팀 2라운드 진출 82 47 35 .573
2023-24 2위/15팀 2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rowcolor=#373a3c> NBA 통산 78 시즌 V2 6105 2974 3131 .487

6. G 리그 산하팀

파일:Westchester_Knicks.png
<colbgcolor=#1d428a><colcolor=#fff> 웨스트체스터 닉스
Westchester Knicks
설립연도 2014년([age(2014-01-01)]주년)
역사 웨스트체스터 닉스 (2014년~현재)
연고지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애틀랜틱 디비전
홈구장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센터[79]

7. 기타

파일:더 디비전 뉴욕 농구팀.jpg}}}||
파일:가든이 낙원이었을 때.jpg
||
파일:이놈의 닉스놈들아아아아.jpg
"뉴욕 닉스가 우승할 때 저는 3살이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전 올해 51살입니다."
- 뉴욕 닉스가 비시즌에 또 대삽질을 하자 절망한 스티븐의 넋두리

7.1. 연고지의 가치, '닉스 경기'의 특별함

NFL그린베이 패커스가 미국에서 연고지의 가치차이도 뛰어넘어 미식축구라는 스포츠의 종목 자체의 가치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라고 한다면[106] 뉴욕 닉스는 스포츠에서 연고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이다.

뉴욕의 많은 인구, 거대한 경제규모 (즉, 부유한 관객들과 강력한 구매력), 그리고 연예계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스포츠 연고지로선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입지를 갖고 있다. 닉스는 200년대 이후 잘하다 망하는걸 거의 20년째 반복하고 슈퍼스타도 카멜로 앤써니정도 말고 없었다라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연고지 밖에 없는 팀인데, 그 티켓 파워가 아직까지도 리그 전체에서 가장 핫하다는 점[107]에서 정말 연고지가 스포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뉴요커가 농구장에 안 오면 NBA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위의 2017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가 나올 당시 뉴욕은 31승으로 플레이오프도 못 나간 팀이었는데 가치는 NBA 1위다. 참고로 저때 NBA 2위는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 탈락(26승)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였으며, 우승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26억달러로 닉스보다 7억달러나 적다. NBA 구단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4구단 중 골든스테이트를 제외하면 뉴욕, LA, 시카고로 이 순서대로 그대로 미국의 3대 도시이다. NBA구단 가치에서 연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도 닉스와 같은 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려운데, 레이커스는 2010년대 중반, 코비 브라이언트의 노쇠화 이전까지는 구단의 암흑기가 거의 없었던 리그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레이커스도 연고지 가치가 매우 큰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NBA 역사상 최고의 성적 + 수 많은 올타임 레전드급 선수들과 함께한 역사 + 성적과 역사를 통해 얻은 인기와 명문구단 이미지도 비중이 작지 않다.

구단의 가치는 뉴욕 빨이라고 쳐도, 닉스 경기에 항상 수많은 유명인과 관중들이 찾아오고 티켓 값이 그렇게까지 비싼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닉스 경기 자체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

닉스 경기를 코트사이드(코트 바로 옆에 바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선수들을 코앞에서 관람하는 것)로 관람하는 것은 부유한 사람들이 즐기는 럭셔리한 놀이문화 중 하나라고 인식되며, 경기장에 넘쳐나는 연예인들, 뉴욕 경기장의 상징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108], 뉴욕이란 주목도[109]로 인해 닉스 경기 자체가 마치 콘서트같은 화려한 이벤트로 취급받는다.

즉, "닉스 경기" 자체가 단순히 프로농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2014년 1월에 뉴욕 타임즈보도한 바에 따르면 닉스 경기에서 맨 앞의 6자리는 항상 톱스타들과 그들의 동행에게만 주는 Celebrity Row라고 알려져있는데, 기사가 다룬 경기에선 여기에 배우 데이비드 듀코브니[110], 뮤지션 폴 사이먼, 그리고 모델 케이트 업튼이 초대되었다고 한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 측에 따르면, 팬들을 열광시키게 하는 소위 "A급 인사"라면 경기장 측에서 자리를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이기든 지든, 그게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죠.(Win or lose, it’s one of the reasons people come to the games)"라고 한다. [111]

또한 자주 경기장을 찾는 유명인사들은 별개의 입장로, 엘리베이터, VIP 클럽하우스, 최고급 뷔페 등 혜택이 있다고. 이 중 농구 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이는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로, 레이커스의 잭 니콜슨과 더불어 유명인사 NBA 팬의 양대산맥으로 꼽힌다.

물론 이런 유명인사들은 항상 영상과 사진 촬영에 임해줘야하는 불문율이 있다. 이런 의무를 여러 차례 거절해서 클럽하우스 출입이 금지된 유명인사는 우디 앨런이 있는데[112], 앨런 정도 거물에게 퇴짜를 놓는다는 점에서 매디슨스퀘어가든의 자존심과, 닉스경기가 얼마나 프리미엄 이벤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코트사이드 좌석, 특히 중요한 경기의 코트사이드 좌석의 경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앉을 수 없다. 천문학적인 가격도 가격이지만, 닉스 경기란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속된 말로 "물관리"를 하기 때문에 소위 말해 "급이 되는" 이들만 앉을 수 있는 자리란 것.[113] 쉽게 말해 사람들이 "닉스 경기는 특별한 것"이란 인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는 자리란 소리.

참고로 저 기사가 나올때 닉스의 성적은 15승 26패, 시즌 최종성적은 37승으로 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었다. 그런데도 저럴 수가 있는 건 이미 닉스 경기는 뉴욕관광의 명물이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닉스경기의 프리미엄화가 이런 성향을 어느 정도 부추긴 것도 있다. 닉스경기의 관람객 중에는 실제로 농구광팬들이 많긴 하지만, 자신의 재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A급 연예인들, 부자들, 뉴욕에 관광와서 "그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스포츠경기 보러 온 수많은 관광객들도 많다. 즉, 이들은 닉스가 이기러 보는 것보다는 닉스 경기를 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잘하든 말든 상관없이 보러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LA도 마찬가지) 그런데 밀워키나 오클라호마씨티같은 소도시는 거주하는 슈퍼스타들이나 부자들의 수도 적고, 외부 관광객의 수도 적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농구팬들, 특히 지역주민들이다. 팬들은 당연히 팀이 맨날 지면 보러올 맛이 적어지기 때문에 경기력에 따라 입장수익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브루클린 네츠가 빨리 뉴욕시로 들어왔다면 경쟁자의 존재로 어느정도 상쇄가 되었겠지만 네츠는 닉스의 등쌀에 유랑생활을 하다가 뉴욕시에 온 역사가 짧아 뉴욕 프리미엄은 닉스가 모두 흡수. 성적이 안 나와도 구단가치 흥행은 리그 최고라 프런트가 개판을 치는 닉스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114]

TNT의 '오픈 코트'에서도 아예 한 회를 '뉴욕의 농구'에 할애하여 다루었다. 뉴욕의 농구 선수들도 MSG에서 농구를 하는 것을 하나의 꿈으로 여기고 있고 마이클 조던도 뉴욕 경기에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 등 MSG는 하나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여러모로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양키스 게임과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닉스 게임은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양키 스타디움에는 승리의 기억이 많고 MSG에는 패배의 기억이 많을 뿐.

워낙에 성적이 안 좋은 기간이 길어 리그의 최고가치를 가지면서 전국적인 인기도 누리고 있는 댈러스 카우보이스뉴욕 양키스와 다르게 전국구 인기 구단은 아닌 것.

이러한 도시 자체의 문화가 되어버린 팀 + 오래된 역사 + 안 좋은 성적 + 최악의 구단주 + 팬들의 자존심은 높음 + 맨해튼의 유일한 팀+ (보스턴이 뉴욕보다 훨씬 잘함)이 결합되어 뉴욕팀 중에서도 굉장히 강성에 속하는 응원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MSG에서 스파이크 리를 필두로한 뉴욕 관중들의 야유와 독한 응원은 지금도 계속되고있으며 이 응원에 위축되는 선수들도 적지 않지만, 오히려 자극을 받아 닉스를 두들겨 팬 것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있는데 이들이 마이클 조던[115]과 '닉스 킬러' 레지 밀러다.[116] 닉스와 같은 동부에 속한 워싱턴의 에이스였던 길버트 아레나스는 MSG에 원정경기를 뛰러 오는 다른 팀의 에이스 선수들은 닉스를 박살내어 시끄러운 뉴욕 홈관중들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 것을 무척 즐겼다고 돌아보았다. 초반부터 닉스를 박살내버리면 이 관중들이 홈팀에게도 야유를 하기 때문에 닉스 선수들이 기가 죽어서 역전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내려 오는지 애틀랜타 호크스트레 영도 신인티를 막 벗어나는 시즌에 닉스를 플레이오프에서 박살내버렸다.

7.1.1. 연고지 빨?

뉴욕 닉스는 썩어버린 집단입니다!
썩어버린 집단은 내부에서 바꿀 수가 없어요!
- ESPN 해설가 맥스 켈러맨 (前 닉스팬[117])
많은 사람들이 닉스를 '브랜드'로 보고 젊은 선수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지만, 이 선수들은 태어난 이래로 닉스가 잘한 걸 본 적이 없다.#
- 케빈 듀란트[118][119]

다른 메이저 스포츠인 MLB[120], NFL[121], NHL[122], 심지어 MLS[123]에도 뉴욕의 이름을 쓰는 구단이 2개씩 있다.[124] 즉 다른 종목은 최대 시장인 뉴욕을 어떻게든 나눠가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NBA에서 뉴욕의 이름을 쓰는 팀은 닉스뿐이다.[125]즉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의 농구팬들을 독점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팀이다. 부진한 팀 성적에도 거의 매년 NBA 구단가치 1-2위를 찍고 있으니 뉴욕 프리미엄을 얻고는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뉴욕이 1위를 놓친건 이들이 사정없이 추락하고, 미국 제2의 시장인 LA 레이커스가 2년 연속 우승한 2000년대 후반 정도. 뉴욕 연고란 점 때문에 한동안 바닥을 기면서도 팀 연봉으로 1억 달러가 훌쩍 넘는 돈을 지불했던 적도 있으니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 뉴욕 프리미엄과 높은 인기 덕분인지 닉스는 최근 성적이 바닥이지만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비싼 티켓 가격을 자랑하고 있다.

닉스가 현재같은 위치를 갖고 있는건 연고지 빨이 크지만, 현지에서의 인기는 굉장히 높다. 뉴욕 양키스를 제외하곤 가장 인기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뉴욕에선 미식축구, 아이스하키보다 농구, 야구가 입지가 좋다. 미국의 NBA팬들 대부분은 그냥 우리 동네에 팀이 있기 때문에 응원하는 게 아니라 평생 응원팀을 바꾸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미국인들과 얘기할 때 "What's your team"이라고 하면 지금 응원하는 게 아니라 네가 계속해서 응원해온 팀이 어디냐는 소리. 물론 슈퍼팀 시절의 마이애미 히트나 4년간 세 번 우승하던 시절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처럼 잘 나가면 단기간에 팬이 폭발적으로 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잘 나가니까 갑자기 응원하기 시작한(영어로 jump on the bandwagon이라고 한다) 팬이라 성적이 떨어지면 쭉 빠지고,골수팬들은 팬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닉스는 NBA초창기 때부터 꾸준히 뉴욕에서 있으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은 팀이다. 특히 현재 NBA 미디어에서 목소리가 큰 5~60년대 초반생들은 70년대 닉스의 황금기를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사람들이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그 다음 세대의 어린 시절엔 유잉의 닉스가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고작 몇년 전에 뉴욕에 자리잡고 별다른 황금기도 없던 네츠가 이런 위상을 가지려면 최소 십수년간은 꾸준히 강팀으로서 위용을 보여야 한다. 물론 슈퍼팀을 꾸리면 단기간의 인기는 누릴 수 있겠지만 뉴져지 시절에 길기 때문에 "브루클린 네츠"로서 이미지도 아직 희미한 편. 비록 침체기가 너무 길긴 하지만 뉴욕 닉스의 역사와 이미지는 1,2년만에 세워진게 아니다. 닉스는 아무리 망해도 강한 지지를 받는다. 물론 이와 별개로 밑에 나오는 것처럼 미친 티켓 가격이나, 망하는 팀 경기가 화려한 이벤트 취급받는거는 뉴욕+매디슨 스퀘어 가든 프리미엄이다. 포인트는 닉스가 뉴욕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잡는데는 수십년에 걸렸으며, 새로운 팀 하나 이사왔다고 금방 바뀌는 게 절대 아니란 것.

7.1.2.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운명

현재 매디슨 스퀘어가든은 NBA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오래된 경기장이다. NBA는 1990년대에 수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불스의 시카고 스타디움, 보스턴의 보스턴 가든, 레이커스의 더 포럼(그레이트 웨스턴 포럼) 등 오래된 경기장들이 헐리거나 팀들이 새 경기장을 지어 이사해갔다. MSG보다 1년 전에 지어진 포럼은 99 시즌까지 쓰이다가 레이커스가 신축 스테이플스 센터로 옮겼고, 75년에 지어진 로키츠의 더 서밋은 현재 교회가 됐으며, 28년, 29년에 지어진 보스턴 가든과 시카고 스타디움은 90년대에 나란히 철거되었다. 워리어즈가 66년에 지어진 오라클 아레나를 떠나 2019년에 체이스 센터로 둥지를 옮기면서 60년대에 지어진 경기장은 현재 가든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두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경기장은 1990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두번째 시즌부터 쓰인 타깃 센터로, 역사가 20년도 넘게 차이 난다.[126] 즉, 현재 NBA에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제리 웨스트, 줄리어스 어빙, 카림 압둘자바 등이 직접 경기를 치른 NBA경기장은 매디슨 스퀘어가든 뿐이다.

이렇든 NBA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든이지만 계속 닉스의 홈구장으로 쓰일 수 있을지 현재 운명이 불투명한 상태다. 원래 닉스의 구단주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 도시계획 위원회(City Planning Commission)이 1963년에 새로운 MSG 건설 허가를 내렸을 때부터 50년간 운영 허가를 받았고, 이 허가가 2013년에 만기되었을 때 뉴욕시로부터 10년간 연장을 받은 상태다. 뉴욕시는 MSG 가든 아래 위치해있는 펜실베이니아역(뉴욕) 리모델링을 위해 가든을 철거하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현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MSG 가든 건물을 건설해 나가라는 게 계획인 것.[127]

그러나 닉스 측에서는 2021년 현재 구장을 옮기거나 신축에 대한 어떤 계획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NBA급 경기장의 건설기간이 2년 정도 걸린다는 걸 생각할 때 2023년까지 새 구장을 지어 나가기엔 이미 늦었다. 만약 억지로 옮기게 된다면 현재 뉴욕에는 NBA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수용인원이나 시설을 갖춘 실내구장이 없기 때문에 브루클린 네츠의 바클레이 센터에 일시적으로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다. WNBA의 뉴욕 리버티 같은 경우 라디오 시티 뮤직 홀 같은 공연장에서 경기를 치른 적도 있지만 애초에 수용규모가 6천명도 안되는 공연장이라 인기없는 WNBA 경기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뉴욕 현지에서 철거를 요구하는 운동가들과 갈등이 진행중인데, 이 때문에 맨해튼 교통국에서는 4월에 MSG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펜 역을 재건축하는 방안을 내놓은 상태. 그러나 시 측에선 기존의 방안대로 경기장을 완전히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현재 구단주 돌란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옮길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 적혀있다시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그 자체만으로 프리미엄이 붙는 공간이고, NBA에서 유일하게 '역사적인' 구장이기도 하기 때문. 실제로 닉스는 2013년에 무려 10억달러를 들여 경기장을 리노베이션했는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10년만에 철거할 경기장에 저 돈을 들일 이유가 없다. 액수만 보면 얼마나 큰 금액인지 감이 안 올 수가 있는데 2012년에 개장한 브루클린 네츠의 홈구장 바클리스 센터의 신축에 똑같이 10억달러가 들어갔으며, 이 액수는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기장 14위에 해당된다. 2019년에 개장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최신식 홈구장 체이스 센터도 준공비는 5억 달러 수준이다. 어쨌거나 웬만한 경기장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신축할 돈을 리노베이션에 퍼부은 셈이다. 실제로 리노베이션 계획에 따르면 모든 기계장비들을 싹 갈아엎고 구조 보강에 디자인 보강까지 포함되었다. 조명, 좌석, 전망, 전광판, VIP용 스위트룸, 클럽, 팬들이 쓰는 공간 등을 전체적으로 싹 갈아엎었기 때문에 껍데기만 그대로고 신식 구장 수준이라 안전이나 시설 문제로 태클을 걸 수도 없게 됐다.[128][129] 현재 경기장의 소유권은 닉스를 소유하고 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에게 있기 때문에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강제로 쫓아낼 순 없고, 다만 이곳에서 NBA경기를 열지 못하게 될 뿐이다. 건물 주인인 돌란이 배째란 식으로 나설 경우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게 된다.

실제로 멋대가리도 없고 불편한 펜 역을 갈아엎자는 계획은 뉴욕에선 벌써 30년째 계속 나오고 있는 말이었으나, 닉스가 워낙 인기가 있고 MSG가 뉴욕시민과 NBA팬들에겐 상징적인 존재이기에 딱히 손을 못 대고 있었다. 심지어 63년 당시엔 뉴욕 기반 스포츠 팀들이 땅값 싼 뉴저지로 옮겨가는 추세였고 닉스/레인저스 역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에 MSG 측에선 부동산 보유세를 한푼도 안 내는 방식으로 협의가 된 상태이다. 만약 정상적으로 냈다면 5억5천만 달러 이상을 세금으로 냈어야 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현재로선 닉스가 2023년에 방을 뺄 가능성이 희박하다. 돌란이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10년 안에 헐어버릴 경기장을 레노베이션 하는데 거의 새 경기장 하나 건축비용만큼의 돈을 쓸리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 배째고 어쩔 수 없이 시에서 다시 연장을 하거나, 경기장을 유지하고 펜 역을 재건축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2023년 7월에 뉴욕 시 계획 위원회에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2033년까지 현재 위치에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와 관해 MSG 운영진 측은 지하철 운영을 담당하는 암트랙 측에 전적으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이로서 MSG 이전 문제 논의는 또 10년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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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식 명칭은 '뉴욕 니커버커스'이지만, 언론이나 구단 측에서는 '닉스'를 많이 쓴다. 로고에는 60년에도 팀명이 들어가면 항상 Knick라고 표기되었지만, 당시에는 중계방송 도중 처음 소개할 때 풀네임인 "New York Knickerbockers"라고 하고 중계도중엔 약칭인 닉스라고 지칭하곤 했다. 그러나 점점 풀네임을 쓰는 빈도수가 줄어들어 현재에 와서는 6,70년대 농구인들이 가끔 언급하는 정도고, 젊은 세대는 아예 닉스가 약칭이란 걸 모르는 팬들도 많다. 약칭으로 널리 알려진 오클랜드 As와 다른 점인데, 니커보커스란 단어 자체가 현재 거의 쓰이지 않아 미국인들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단어이기 때문.[A] NHL 뉴욕 레인저스와 공용[A] NHL 뉴욕 레인저스와 공용[4] 제임스 돌란(James Dolan)이 소유하고 있는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지주회사. 제임스 돌란은 MLB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소유주 래리 돌란의 조카이기도 하며, 한때 뉴욕의 케이블TV 회사였던 케이블비전을 경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5] 정확히 말하면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의 대주주가 제임스 돌란을 포함한 돌란 가문인데, 이들이 투표권의 71.1%를 갖고 있으며 이들 중 제임스 돌란이 대표이자 회장(executive chariman) 겸 CEO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고, 당연히 이 회사가 소유한 닉스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구조가 좀 복잡하긴 하지만 그냥 닉스의 구단주=제임스 돌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6] 70 시즌은 우승, 93 시즌은 컨퍼런스 결승에서 조던의 불스에 패배.[7] 뉴욕이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로 부터 가져오기 전까지는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렸었다.[8]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었고 이름에서 나타나듯 네덜란드령이었다. 그랬다가 잉글랜드에서 땅 뺏어서 당시 국왕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의 영지 이름을 따 뉴욕(New York)으로 개명한 것이다.[9] 허스키스는 이후 해체됐으며, 지금은 토론토 랩터스가 얼터 유니폼으로 토론토의 첫 농구팀을 기리고 있다. 농구의 창시자인 네이스미스 박사가 캐나다계 미국인이었던지라 NBA는 초창기부터 캐나다의 국가를 경기 전에 트는 등, 나름 예우를 했다.[10] 경기는 68-66으로 닉스가 승리했다. 즉 뉴욕 닉스는 NBA 최초의 승리팀이라는 이야기. 96-97 시즌에 50주년 기념으로 닉스와 랩터스가 다시 개막전을 열었는데 닉스가 또 이겼다.[11] 그리고 1967년 드래프트 때 2라운드 17번으로 필 잭슨을 뽑았다.[12] 이때 당시 베일러는 NBA 12년차로 8번째 결승 진출이었고, 웨스트는 10년차였고 7번째 결승 진출이었는데 모조리 준우승이었다. 그리고 체임벌린은 데뷔 이후 계속해서 빌 러셀과 보스턴 셀틱스에게 당하다가 67년에 딱 한번 우승하긴 했는데, 68년에 보스턴보다 더 뛰어난 팀 전력을 갖추고 시리즈 전적 3-1로 앞서다가 역전당했다. 이 셋은 68년 당시 리그 최고의 가드/포워드/센터라 불릴만했는데(실제로 68년에 베일러는 베스트 5격인 퍼스트 팀, 윌트는 MVP, 웨스트는 세컨드 팀에 올랐다), 러셀과 보스턴에게 하도 당하는 게 분통터졌는지 다음 시즌에 체임벌린이 레이커스로 합류해 셋이 뭉치는 초대형 사건을 터뜨린다. 90년대로 따지면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존 스탁턴이 뭉치는 격이며 현재로 따지면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가 뭉치는 꼴이다. 문제는 그러고도 69년에 보스턴에게 졌다. 빌 러셀은 이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13년 동안 11개의 우승방지를 얻으며 화려하게 은퇴하게 되었다. 이 정도 되니 우승을 향한 이들의 열망은 어마어마했고, 이에 이듬해에도 결흥에 진출한 것.[13] 워밍업 복장으로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장면은 현재에도 NBA 관련 오프닝에도 삽입되는 장면이다.[14] 패트릭 유잉은 신입생이던 82년에 호야스를 NCAA결승까지 이끌었으나 준우승, 2학년 때는 2라운드 탈락, 3학년 때 우승, 4학년 때는 역대급 업셋의 희생양이 되며 다시 한번 준우승에 그쳤다.[15] 89년은 상당히 아쉬운데 당시 동부는 무려 63승을 거둔 피스톤즈가 단연 최강이었고, 그 뒤를 57승 캐브스, 닉스가 51승을 거두었으나 캐브스와 피스톤즈가 같은 디비전이라 디비전 1위 자격으로 닉스에게 2번시드가 주어졌다. 불스는 찰스 오클리-빌 카트라이트 트레이드 여파로 인한 포워드진 정리와 포인트가드 문제를(결국 조던이 포인트가드로 올라오기까지 한다) 해결못하고 47승, 6번 시드에 그쳤다. 그러나 1라운드에서 57승 클리블랜드를 업셋하고 닉스까지 업셋해버린 것. 그러나 91 시즌엔 팀이 완연히 하락세를 보이며 8번시드에 그쳐 불스에게 힘도 못 쓰고 스윕당했다.[16] 이때 스미스는 매치업 상대였던 호러스 그랜트에게 한번, 헬프 들어온 마이클 조던에게 한번, 스카티 피펜에게 뒤에서 두번까지 총 네번 블럭을 당했다. 이 때문에 이 경기는 골수 닉스팬들에게 "찰스 스미스 경기"로 불린다. 물론 이보다 더 악명이 높은 것은 후술되는 94년 파이널 7차전, 일명 "존 스탁스 경기"이다.[17] 이때 닉스는 그야말로 우승의 적기였다. 31세 생일을 얼마 남겨두고 있던 유잉이 아직 기량이 꺾이기 전이었으며, 유잉 시대 최고의 정규시즌 성적이었고, 게다가 결승 상대는 하필 골밑수비가 유독 약한 피닉스 선즈였다. 5차전 패배가 뼈아픈 것은 이 시즌 닉스는 홈에서 유독 강한 팀이었단 것 때문이다. 93닉스는 홈에서 무려 37승 4패 (90.2%), 23승 18패로 56%에 그친 원정 승률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실제로 5차전 전까지 홈 27연승을 거두고 있었고 불스를 상대로 홈 2연전을 따냈다. 또한 플레이오프 1,2라운드에서 1패씩 안은 것 둘 다 원정패였다. 즉 만약 5차전을 살아남았고 7차전까지 갔다면 (조던의 괴물모드가 발동하지 않는 이상) 홈에서 최종전을 치르는 닉스의 승산은 굉장히 높았다. 그러나 유잉의 맹활약 (33점)에도 불구하고 팀 전체가 극악의 자유투 부진 (57%)에 시달렸고, 막판 스미스의 4연속 피블럭 때문에 안 그래도 우승후보치곤 원정에서 좀 약한 닉스가 시카고 원정에서 엘리미네이션 게임을 치르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 닉스의 93플옵 최종 원정성적은 결국 2승5패였다. 반면 닉스의 안방불패 신화에 종지부를 찍은 불스는 93년플옵에서 원정에서 7승2패 (홈 8승2패)를 거둘 정도로 원정에서 유독 강한 팀이었다.[18] 이 것이 뉴욕에겐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 원래 기복이 심하기로 유명한 스탁스는 이때 폭발해 휴스턴의 질식수비에도(뉴욕과 휴스턴은 디펜스 레이팅에서 나란히 리그 1,2위를 차지한 최강의 수비팀이었다) 27점이나 넣으며 맹활약 중이었다. 저때 3점슛을 넣었다면 닉스의 우승과 함께 스탁스는 파이널 MVP도 꽤 가능성이 컸다. 6차전까지 스탁스는 19.3점, 유잉은 19.2점을 올리고 있었지만 야투율에서 42%, 35.7%로 앞서고 있었다. 물론 유잉은 12.8리바운드에 무려 4.7블럭을 올리고 있었지만 공격에서 매치업 상대에게 압도당한 것이 워낙 컸고, 최종전에서 스탁스처럼 맹활약한 선수는 아무래도 득표에서 유리하다. 실제로 88년 파이널 당시 에이스 매직 존슨은 21.1점 5.7리바운드 13어시스트로 22점 7.4리바운드 4.4어시스트를 올린 제임스 워디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음에도 워디가 MVP를 탔고, 여기엔 워디의 7차전 36점 16리바운드 10어시스트 맹활약이 한몫했다.[19] 전체 파이널로 치면 스탁스의 슛 성공률은 36%(106번 중 39골)였다.[20] 89년은 팀내 넘버투인 오클리를 트래이드하고 카트라이트,그랜트, 피펜을 주전으로 올리고, 시즌 내내 적당한 PG를 못 찾아 결국 조던을 PG로 쓰는 등 팀 전체가 오락가락했으며, 93년엔 매너리즘과 조던의 도박스캔들로 인해 분위기가 안 좋았다.[21] 패트릭 유잉은 평생 단 한번도 조던의 팀을 토너먼트에서 탈락시킨 적이 없다. 대학시절 유일한 맞대결은 UNC의 승리로 끝났고, 불스를 이긴 94 시즌엔 당연히 조던이 없었고.[22] 킹이 85년 3월에 부상을 당한 뒤 코트 위에 다시 선 것은 87년 4월, 2년도 넘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23] 하지만 킹은 워싱턴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부활. 이후 전경기 출전도 이뤄내고 90-91 시즌에는 평균 28.4점을 넣으며 올스타전에도 복귀하는 등 훌륭한 말년을 보낸다. 닉스가 87년 이후 아무 대가 없이 그를 방출한 것과 90-91 시즌에 38승에 그치며 1라운드 탈락한 걸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24] 이때 아직 젊고 운동능력이 살아있던 유잉조차도 달리는 농구를 했다. 유잉 개인으론 페이스가 빠르던 89 시즌에는 평균 22점, 페이스/평균득점이 둘 다 리그 12위로 떨어진 89-90 시즌에 오히려 기량이 절정에 오르며 28.6점, 리그 3위를 기록했다. 같은 90 시즌에 평균 블럭슛 4개, 필드골 성공률 55.1%(각각 리그 2위, 6위)까지 기록하며 라이벌 하킴 올라주원을 제치고 올 NBA퍼스트팀 센터에 올랐으니 의심할 여지없는 유잉의 리즈 시절.[25] 릭 피티노는 이때 성공 덕분인지 97년에 보스턴 셀틱스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으로 2001년에 사임하기 전까지 102승 146패란 실망스런 성적만 남기고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26] 이 시즌의 팀 전체 세부 스탯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하다. 60승이나 거둬 동부 1위, 전체 2위의 높은 팀성적임에도 득점은 27개 팀 중 24위, 오펜스 레이팅(경기 페이스를 감안해 공격권 100번당 팀이 득점한 횟수)는 리그 22위에 그쳤다. 그러나 수비에선 디펜스 레이팅 리그 1위, 실점도 리그에서 가장 적었다. 즉, 평범한 것도 아니고 리그 하위권인 공격능력(27개팀 중 22위면 100명 중 81등한 꼴이다)에도 막강한 수비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팀이었던 것.[27] 존 스탁스가 팀공격을 캐리했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당시 스탁스는 평균 17.7점, 야투율 36.8%에 그쳤고, 맹활약이라고 할만한 건 6차전 27점 정도였다. 유잉이 시리즈 평균 18.3점, 야투율 36.3점으로 오히려 근소하게 나음에도 사람들이 "유잉이 끔찍하게 부진하고 스탁스가 오히려 잘했다"고 기억하는건, 평상시 유잉은 저 정도 기록을 낼 선수가 아니지만 스탁스의 기량으로 저런 수비를 당하며 저런 기록을 낸 건 상당히 잘 한 것이기 때문.[28] 조던치곤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93 시즌의 조던이 닉스를 상대로 32점/야투율 40%를 기록했다. 가벼운 손목 부상이 있긴 했지만 1,2차전 당시 조던은 레이업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로 닉스는 그를 괴롭혔다.[29] 유잉 본인으로 보면 팀이 변화를 겪은 뒤 96-97 시즌에도 올NBA세컨팀에 오르는 등 슈퍼스타였고 팀의 확고부동한 에이스였다. 98 시즌에도, 그리고 99 시즌이나 99-00 시즌에도 팀의 중심이자 주전센터였다. 그러나 유잉의 뛰어난 실력과 별개로 팀 색깔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가운데 기동력이 느려진 유잉은 잘 맞지 않는 조각이었다. 물론 이와 별개로 패트릭 유잉 항목에 나와있는 "유잉 무용론"은 개소리다. "실력이 있지만 팀 색깔에 안 맞는다"와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다"는 전혀 다른 소리다.[30] 91-92 시즌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였고 훗날 감독이 된 제프 밴 건디는 '(자비에) 맥대니얼과 (찰스) 오클리, (앤서니) 메이슨을 데리고 있었을 때 우리가 모든 경기를 이기진 못했지만 모든 싸움은 이겼다'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팀은 터프하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닉스는 지나치게 거칠어서 리그 규정까지 바뀔 정도였는데, 92-93 시즌 도중에는 싸움이 일어났을 때 (경기를 뛰고 있지 않아) 벤치를 뜬 선수에게 기존에 벌금 500달러를 매기던 규정을 대폭 강화해 2500달러, 팀에게도 5천 달러를 추가로 매기는 규정을 차기 시즌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그렇게 한 시즌을 치르고 난 94플레이오프 도중 강화된 규정에도 닉스와 불스 사이 대규모 난투극이 일어나자 오프시즌에 한번 더 규정을 강화해 1경기 출장정지로 한 것. 물론 리그 사무국에서 "닉스 때문에 개정한다"고 한 적은 없지만, 당시 싸움을 압도적으로 많이 하고 가장 거칠었던 팀이 닉스였으며, 규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로드 쏜 부총재는 '휘슬 후 불필요하게 신체접촉을 하는' 선수의 예시로 앤서니 메이슨을 들기도 했다.[31] 런 TMC 트리오의 골든스테이트, 숀 켐프-게리 페이튼의 시애틀, 찰스 바클리-케빈 존슨의 피닉스 등.[32] 실제로 96년 파이널 3차전에서 룩 롱리는 플레이오프 커리어 하이 (19점)을 찍는 등 평소보다 훨씬 활약했다. 당시 경기를 보면 안 그래도 수비가 좋은 편은 아닌 켐프가 롱리의 거대한 덩치에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있다. 롱리만 해도 이 정도였는데, 만약 실력으로 상대도 안되는 패트릭 유잉이 상대였다면 롱리는 96파이널 통틀어 11.7점을 기록해 97,98 파이널 기록인 6.8점, 5.5점보다 훨씬 잘했다. 96시즌 시애틀은 디펜스 레이팅이 리그 2위일 정도로 뛰어난 수비팀은 반면, 97유타는 리그 8위, 98유타는 17위에 불과했다. 소닉스가 재즈보다 수비를 훨씬 잘하는 팀이었음에도 이 팀은 사이즈가 작았기 때문에 롱리가 이 팀을 상대로 평소보다 수월하게 플레이한 반면, 재즈엔 롱리와 사이즈가 비슷한 그렉 오스터텍이 있었기에 별 활약하지 못한 것. 그만큼 사이즈는 중요하다.[33] 실제로 켐프와 키가 같고 수비력은 넘사벽인 모닝도 유잉 상대로 많이 고전했다. 유잉이 35세, 모닝은 27세이던 97년 플레이오프 매치업에서 유잉은 23.7점 11.5리바운드 2.2블럭 야투율 48.8%로 19.1점 9.1리바운드 2.9블럭 야투율 40.2%을 기록한 모닝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앞섰다. 해당 시즌 이들의 정규시즌 성적과 비교하면 유잉은 득점, 리바운드가 소폭 상승하고 야투율은 그대로였지만, 모닝은 득점, 리바운드가 소폭 하락하고 야투율은 53.4%에서 대폭 하락했다.[34] 선즈의 슈퍼스타이자 MVP였던 찰스 바클리는 수비력이 좋은 선수는 아닌데다가 유잉과 키 차이가 6인치나 나기 때문에 바클리가 유잉과 매치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바클리의 힘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백다운해 들어가는 건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만, 유잉이 신장 차이로 쉽게 득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 정도로 키 차이가 난다면 위치만 잘 잡아도 골밑에서 레이업이나 훅슛으로 이지샷 기회가 난다. 단신 수비수 입장에선 볼을 잡기 어렵도록 프론팅하거나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야 하는데, 바클리는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수비하는 선수였지 수비센스가 좋은 선수도, 수비할 때 활동량이 많은 선수도 아니었다. 게다가 유잉은 샤킬 오닐처럼 로우포스트로만 밀고 들어가는 선수도 아니고 포스트업 페이더웨이와 중거리슛이 강한 선수였다. 애초에 바클리는 파워포워드치고도 단신이라 센터수비를 맡는 일이 거의 없었다.[35] 99시즌 스퍼스는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을 보유했으며, 닉스는 오히려 유잉까지 잃었다. 94년 로키츠는 당시 전성기였던 하킴 외에 한때 올스타였던 오티스 쏘프가 파워포워드에서 보좌했다.[36] KBL에서 뛰었던 그 단테 존스다. 다만 데뷔 시즌 발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2년차 시즌인 97-98 시즌 직전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어 닉스에서는 1경기도 뛰지 않았다.[37] 아이러니한건 브라운은 당시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로 매너가 좋고 사생활도 깨끗한 모범적인 선수였는데, 딱 한번 싸움으로 징계받은 것이 이 경기였다는 것이다. 당시 자유투 리바운드를 준비하던 브라운에게 워드가 거의 몸통박치기 수준으로 들이댔는데, 둘의 키 차이가 워낙 커 몸을 구부린 워드가 브라운의 무릎 쪽에 압박을 가해 무릎이 꺾일 뻔했다. 위험한 플레이에 화가 난 브라운이 워드를 집어던졌지만 싸우러 덤벼들진 않았는데, 뒤에서 따라온 존 월러스가 브라운을 밀어버리고 넘어진 워드가 태클을 걸면서 두 선수가 뒤엉켜버렸고, 양팀 전원이 달려들며 난투극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38] 그럼에도 최종 점수는 90:95로 5점차 패배였다. 아무리 홈 경기의 이점이 있었다고 해도 주전 세 명이 빠져나간 경기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선전한 경기였다.[39] 히트는 상성이 불스와 안 좋았다. 불스를 괴롭힐 수 있는 건 작고 재빠른 가드나 사이즈와 기술을 겸비한 센터인데, 당시 제2의 전성기를 맞던 팀 하더웨이는 슬슬 노장의 반열에 들던 선수라 스피드를 많이 잃었으며, 모닝은 파워포워드의 사이즈를 지닌 선수인데다 엄밀히 따지면 득점이 주특기도 아니었다. 결국 하더웨이는 야투 3할대로 17점, 모닝은 15점에 그치며 맥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웬일로 불스 에이스 조던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는데도 맥없이 패했다. 불과 1년전에 불스를 상대로 평균 23점을 기록한 유잉, 기량이 한창 올라오던 휴스턴 등이 있었다면 재밌는 승부가 됐을 듯.[40] 재밌게도 상대팀의 던컨과 로빈슨 듀오는 '트윈 타워' 라고 불렸다.[41] 그의 아버지가 전 유타 재즈의 사장이었던 프랭크 레이든. 구단 감독부터 시작해 단장, 사장까지 역임하며 유타 재즈를 강팀으로 만드는데 일조했고 감독 시절에는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했던 유능한 인물이다. 아들 역시 재즈에서 코치 겸 스카우터부터 시작하여 부사장까지 역임해 아버지를 도와 서부의 강호로 만드는 데 일조했으나 나중에 닉스로 오면서 아버지의 명성에는 못 따라갔다.[42] 이 때 받아온 선수가 샌던 앤더슨과 하워드 아이즐리였는데, 저 둘은 유망주도 아닌 평범한 롤플레이어였고 그나마도 당시 라이스의 계약이 2년 남은데 반해 저 둘은 무려 6년 계약이 남아있었다. 영입 당시에도 저 둘의 계약기간이 많이 남은데 대해 불안해하는 닉스팬들이 많았는데,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되어 저 둘의 샐러리는 2000년대 후반까지 닉스의 샐러리 유동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43] 반면 전임인 스캇 레이든은 2005년부터 7년간 유타 재즈의 코치를 맡다가 이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부단장을 거쳐 2016년부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단장이 되었다.[44] 이 포기한 픽 2개로 뽑힌 선수가 라마커스 알드리지조아킴 노아였다. 패착 정도가 아니라 패망 수준.[45] 일각에선 제롬 제임스의 몸값이 연 6m 수준으로 싸니 먹튀라고 하기엔 애매하지 않느냐며 주완 하워드나 길버트 아레나스처럼 몸값 비싸고 활약을 못 해주는 선수가 먹튀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적어도 저들은 경기를 뛰기라도 했지 제롬 제임스는 경기를 안 뛰고 그냥 놀았다. 출장 경기수로 따져 연봉을 일당으로 계산시 제롬 제임스가 거의 넘사벽의 먹튀가 맞다.[46] 덕분에 돌란 대주주는 트위터에 한바탕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47] 양친이 모두 대만 화교이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거기에 하버드 출신에 기독교도.[48] 3일짜리 논개런티 계약으로 거취가 불분명해서 팀 동료네 소파서 잘 정도였는데, 이제 남은 시즌까지 8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49] 미국에서 종이봉투를 뒤집어쓴다는 건 너무 창피하다는 뜻이다.[50] NCA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켄터키의 윌리 컬리-스타인, 듀크의 저스티스 윈슬로우, 위스콘신의 프랭크 카민스키 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스페인 리그에서 그저그런 활약을 보인 포르징기스를 뽑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51] 정확히는 호크스가 지명이지만 그 전에 이미 픽이 트레이드 된 상태였다. 제런의 경우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에서 활약했던 호레이스 그랜트의 조카이자 필라델피아 76ers의 포워드 제라미 그랜트(Jerami Grant)의 형이다.[52] 트위터 답변들과 ESPN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백을 랜덤으로 뽑아서 순위를 매기게 한 다음에 평균낸 것이다.[53] 10년 전까지만 해도 레이커스는 그래도 플옵에는 진출하는 팀이었고, 닉스는 바닥권팀이었음에도 닉스의 가치가 더 높았다.(레이커스의 가치가 1위로 올라선 것은 코비 중심으로 개편된 팀이 우승하고부터이다.) 아무래도 브루클린 네츠가 오면서 예전에 비해 뉴욕 프리미엄을 덜 받는 것으로 보인다.[54] 정확한 사인은 가정사 문제로 인한 무단결근이다. NBA는 이유를 막론하고 허가없이 팀을 무단이탈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로즈에게 2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55] 어차피 멜로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계약서에 삽입했기 때문에 멜로가 승인하지 않는 이상 트레이드는 불가능하다.[56] 뉴욕 양키스지안카를로 스탠튼을 영입하면서 애런 저지와 함께 양대리그 홈런왕들을 수집하는 등 제대로 악의 제국으로 부활하려는 면모를 보이고, 뉴욕 메츠 역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뉴욕 레인저스뉴욕 아일랜더스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 자이언츠뉴욕 제츠는 두 팀 모두 무너져버리면서 17-18 시즌 뉴욕은 농구와 미식축구로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57] 듀란트는 패트릭 유잉의 시대를 본 선수들이지만, 유잉의 시대 이후 닉스는 쭉 지지부진했다.[58] 애초에 닉스는 패트릭 유잉 시절 이후 거의 매년 FA시장을 노려왔으나 제대로 된 적이 없다.그나마 2010시즌의 슈퍼스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도 젊고 유망한 선수들 다 놓치고 플랜B 로 영입한 것이나, 부상 병력이 심한데다 하락세에 접어든 선수였기에 오래 써먹지도 못했다. 문제는 아마레 영입이 당시 닉스 기준으론 대박에 가까웠다는 것. 세계 최고의 연고지에 전통도 있고, 돈도 잘 써서 대형 선수들이 한번쯤 고려하는 행선지인데도 이 모양이라는 걸 프런트가 정말 일을 심각하게 못한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59] 28년 동안 닉스의 경기에 입장할 때 VIP관객 출입구 대신 직원 출입구를 써오던 스파이크 리를 경비원들이 제지한 것. 스파이크 리는 이런 걸 지시할 수 있는 것은 구단주인 돌란 뿐이라면서 "나를 찰스 오클리처럼 취급하는 것이냐"[131]면서 분노했다.[60] 다만 페이튼이 팀을 떠나면서 팀 내 볼 핸들러가 0명에 가까운 상황인데, 헤이워드나 밴블릿 영입과는 별개로 신인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볼 핸들러 영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61] 포인트가드로 리가 ABC에서 4년간 평득 10.3점을 기록했었다. 2020시즌 스페인 ACB 리그 결승전 MVP였으며 바르셀로나와의 타이틀 매치에서 17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62] 그 탓에 이번 시즌 한정으로 나이키에서 특별 제작한 75주년 기념 클래식 유니폼을 병행해서 입는다. 덤으로 닉스처럼 원년팀인 골든스테이트와 보스턴도 이번 시즌 75주년 유니폼을 입는다.[63] 카일 라우리, 스테판 커리, 제임스 하든 등등[64] 이 영입으로 제일런 브런슨은 비올스타 출신으로는 최초로 1억달러 계약을 따내며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되었다.[65] 들리는 바에 의하면 1라운드 지명권 6장을 요구했다고 한다.[66] 5차전에서 드디어 괜찮아지나 싶었으나 2쿼터 도중 발목을 다시 접질리면서 조기아웃(…)[67] 4차전 막판 티보도 감독은 아예 부진한 랜들 대신 토핀을 코트 위에 계속 뒀을 정도. 그리고 삐진 랜들은 포스트 게임 인터뷰 거부하고 귀가[68] 데릭 로즈의 경우에 1월 이후 아예 전력 외 판정을 받고 경기에 뛰질 않았는데, 3차전에서 4쿼터에 20점차 이상으로 경기가 가비지로 터지자 MSG의 관중들이 입을 모아 Derrick Rose를 연호했고 점수차 상관없이 주전 굴리기로 유명한 티보도 감독조차 로즈를 5분 정도 뛰게 해주는 팬서비스(?)까지 있었을 정도. 그 와중에 비슷한 처지면서도 벤치만 달군 포니에 안습[69] 아누노비, 랜들 등[70] 한국시간.[71] 밀워키와 클리블랜드가 각각 올랜도 매직샬럿 호네츠에 패함. 단 클리블랜드는 플레이 인에 대비하여 후반전에 주전을 뺀 이유가 있다.[72] #(1분께).[73] 미국 현지시간.[74] KD의 현 소속팀인 피닉스 선스는 28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게 패해 4전 전패로 시즌을 마감했다.[75] 이 트레이드로 상술한 빌리노바 닉스는 1경기도 뛰지 못하고 해체됐다.[76] 디비전 순위가 의미가 없어진 2015-16 시즌부터는 컨퍼런스 순위 기재.[77] 이 시즌까지는 NBA가 아니라 BAA였다.[78] 이 시즌 부터 서부, 동부 컨퍼런스로 구분되었다.[79] WNBA 뉴욕 리버티와 홈구장 공유.[80] ESPN The Magazine's Ultimate Standings. 전미 4대 프로스포츠에 소속된 총 122개 구단을 대상으로 매년 운영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평가 지표는 티켓 및 주차 등의 가격(Affordability 12.2%), 감독의 운영 능력(Coaching 2.8%),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Fan relations 27.2%), 프랜차이즈 스타 및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태도(Ownership 12.8%), 선수단 가치(Players 14.7%), 홈 경기장 시설&편의성&프로모션(Stadium experience 11.7%),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의 우승 경쟁력(Title track (3.9%), 팬들이 지불한 금액 만큼의 가치를 제공하는가(Bang for the buck (14.7%) 총 7가지이며, 포브스 지에서 발표하는 구단가치와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샌안토니오 스퍼스. 이 팀은 NBA 내에서도 손꼽히는 스몰 마켓이다.[81] 닉스의 홈경기때마다 코트 바로 앞의 좌석, 그러니까 TV 중계 카메라 앵글을 기준으로 왼쪽 골대 바로 아랫지점 코트의 맨 앞좌석에 그의 자리가 있다.[82] 라디오 스포츠 채널 방송이나 지역신문 스포츠 코너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뉴욕에서 프로스포츠 선수로 뛴다는 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뉴욕 양키스의 예만 들어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을 경우 무진장 까이는 것은 기본이다. 팬들은 물론이지만, 진행자나 담당기자들이 자료를 들고 까는 모습은 정말이지 몸서리가 쳐질 정도. 그래서 한때 뉴욕 레인저스 단장으로 재직한 로저 닐슨(Roger Nielsen) 같은 경우는 통근 중에는 아예 라디오 스포츠 채널은 아예 안 들었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하다 못해 일라이 매닝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라디오나 신문에서 일제히 "너님은 왜 위대한 형의 발톱의 때만도 못함?"이라며 노상 씹었다. 팬들은 일라이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벌써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심지어 라디오 진행자들 역시 뉴욕에서 선수 생활을 하려면 보통 강심장 아니고는 못 견뎌낸다고 대놓고 말한다.[83] 유잉은 15년 동안 뉴욕을 굳건히 지켜온 선수였지만 선수생활 말년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떠났다.[84] 이런 뉴욕 언론이 유일하게 까방권을 준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데릭 지터.[85] 유잉은 뉴욕에서 선수를 한다는 것은 현미경 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유잉은 선수 시절 이러한 뉴욕 언론을 철저하리만치 무대응으로 일관해 결국 언론이 먼저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게 했다.[86] 유잉이 센터로서 골밑을 지켜주고 찰스 오클리, 앤서니 메이슨 등의 포워드들의 피지컬이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형적인 마초 농구가 팬들의 눈길을 끌었던 시기다.[87] 현재는 이런 애증 섞인 팬덤도 많이 사라졌다. 위에 언듭된 것처럼 실질적으로 닉스가 팬덤이 대거 유입될만큼 꾸준히 잘했던 것은 유잉 시대가 마지막이다. 유잉 시대에 영입됐을 어린 팬들도 현재 30대가 훌쩍 넘을만큼 세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닉스가 꾸준히 멋진 모습을 보인 적도 거의 없고 연고지도 아닌 한국에서 팬덤이 유입될 계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팬덤이 사라져가는 추세. 본토인 미국에서도 맥스 켈러맨처럼 등을 돌리는 골수 팬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어쩔수 없다.[88] 닌자 거북이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프랜차이즈다.[89] 윤세호 기자의 경우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한 영향인지 뉴욕 메츠뉴욕 자이언츠도 함께 응원하고 있다. 가끔 SNS에서 닉스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답답해할 지경.[90] 2020년 12월 31일자 강한나의 볼륨을 높여요에 고정 게스트로 나와서 사연을 읽어주다가 읽게 된 사연이 "9살 때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팬인데, 입덕하고 한 번도 우승을 못 보다가 입덕한 지 23년만에 우승을 봐서 기쁘다"라는 내용이였다. 이 사연을 읽은 뒤 9살 때부터 닉스의 팬이라는 것을 본인이 직접 밝혔는데, 본인 왈 만년 꼴찌라고 셀프 디스를 시전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고, 닉스는 우승을 못할 것 같다면서 다저스의 우승이 엄청 질투가 났다고 했을 정도. 당시 사연 자체는 좋아하는 미국 야구 팀이라고만 언급이 되었지만 올해에 드디어 우승을 봤다는 걸 봐서는 그냥 대 놓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라고 봐도 될 정도.[91] 다만 이렇게 보기는 힘들다. 지금처럼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일 때 김정은이 미국에 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가 미국에 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비핵화 과정에 어마어마한 진전이 이뤄진 후에야 가능해진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김정은은 지금같은 독재자가 아닌 과거에 냉전을 종식시킨 공헌자 중 하나로 인정받던 고르바초프처럼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정은이 MSG에 온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건이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기 때문에 닉스는 환영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현재 북한과 김정은의 행보로 보면 이뤄질 확률이 매우 희박한 일이지만, 지금처럼 막장 독재국가의 지도자로 남을 경우 미국이 입국을 허가할 리가 만무하니 어쨌거나 걱정할 일은 없다.[92] 팻 라일리의 이적으로 두 팀의 관계가 험악하다. 라일리는 닉스 프런트에 전권을 요구했는데 닉스는 거절했고 히트가 오히려 받아들이면서 그 쪽으로 가버린 것. 닉스의 주전가드 팀 하더웨이 주니어의 아버지 팀 하더웨이(마이애미 히트 영구결번)는 인터뷰에서 이 라이벌 질문을 많이 받는다.[93] 뉴욕과 보스턴의 전통의 라이벌. 리그 원년(1946년)부터 유일하게 연고지를 옮기지 않은 팀들이라 자존심도 엄청나게 높다.[94] 90년대 마이클 조던과 패트릭 유잉과 상남자들이 대결했던 라이벌전. 이 시기 닉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불스를 잡은 건 조던이 야구를 하러갔던 93-94 시즌이 유일했다. 조던의 가장 큰 피해자도 닉스.[95] 스파이크 리레지 밀러의 설전으로 대표되는 라이벌전. 페이서스는 1990년대 후반 엄청난 강팀이었고 닉스와는 플옵에서 "또 너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주 충돌했다.[96] 네츠가 창단하자마자 시작된 라이벌전. 네츠가 브루클린에 입성하면서 뉴욕시 라이벌이 되었다.[97] 2020년 MLB 올스타전 때 오타니 쇼헤이가 공식 석상에서 본인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항상 통역을 대동하고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비난했다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고 사과하면서 꼬리를 내린 그 사람이다. 여러모로 모두까기인형 성향의 인물로 가장 사랑하는 팀인 뉴욕 닉스를 포함한 그 어느 소재도 과감하게 까는 인물이지만 오타니 비난의 경우에는 억까 혹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98] 방송용 과장 리액션도 굉장히 풍부한 스티븐 A. 스미스가 진심으로 사적으로 신나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닉스가 잘할 때'와 '카우보이스가 망할 때'[99] 재미있는 점은 스미스는 94년 NBA 파이널 당시 휴스턴 소속으로 닉스를 꺾고 우승을 한 바 있다.[100] 이로 인해, 돌란은 클리퍼스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구팬으로부터 견공자제분 취급을 받고 있다. 여기에 닉스가 성적도 좋은 강팀이라면 모를까 호구나 다름없는 신세인 와중에 쓸데없는 가오만 내세우니 좋아할리 없다.[101] 특히 클리퍼스는 발머가 구단주로 오면서 플옵에 연중행사로 가는 팀으로 변모했다. 닉스와는 천지차이.[102] 80년대 슈퍼볼 우승만 3번을 하며 전성기를 달리던 워싱턴에 어마어마한 암흑기를 불러온 인물이다.[103] 에인절스를 윈나우 탱킹, 슈퍼스타의 전성기만 낭비하는 팀이라는 웃음거리로 만든 인물이다.[104] 구단주가 너무 막장이라서 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미. 구단주가 제일 높은 사람이므로 팀이 정상화되기 힘들다.[105] 참고로 닉스는 뉴욕 연고지 팀들 가운데 뉴욕 제츠 다음으로 최장기간 리그 우승이 없는 팀이다. 마지막 우승이 1972-73 시즌이었으니 2022년 기준으로 50년, 반세기나 되는 기간이다.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MLB 해적떼들보다도 6년 앞서 우승한 이후 21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우승을 못하고 있는거다. 그나마 제츠는 정신을 차리고 구단 운영진을 재정비하고 선수단을 물갈이하여 우승을 위해 노력이라도 하고있는 반면, 닉스는 매시즌마다 눈썩고 뼈썩는 병신같은 모습만 보여 팬들의 주름살이나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한줌 남은 팬들마저도 맥스 켈러맨과 같이 등을 돌리거나 '그나마 좀 낫다'고 보이는 강 건너 옆 지역구 팀으로 전향하는 분위기라 희망도 없다..[106] 상식적으로 메이저 프로스포츠 팀을 운영하기 어려운 규모의 소도시를 본거지로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하면서 충분히 이익을 내고 구단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에서 미식축구가 차지하는 위상을 증명하는 좋은 예시가 되고 있으며 본 항목의 뉴욕 닉스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107] 닉스 홈경기를 보면 플레이오프는 당연하고 정규시즌에서도 사실상 관중석이 다 찬다.[108] 맨해튼 한복판에 있다. 맨해튼에 있는 유일한 스포츠 경기장.[109] 아무리 성적이 안 좋아도 닉스는 전국적으로 나가는 TV중계가 잡힌다.[110] 미드 X파일에서 멀더 요원역을 맡았던 그 배우 맞다.[111] 매디슨 스퀘어 가든 측에서 이런 유명인사들과 접촉하고, 별로 안 유명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경기관람을 하고 싶다는 유명인사들이 겹칠 때 누구에게 자리를 줄지 결정하는 팀이 있다고 한다. 물론 위에 언급된 Celebrity Row에 앉는 것은 그야말로 톱급 인사들이고, 웬만한 유명인사들은 좋은 자리에 앉아도 코트사이드는 무리라고. 예를 들어 2014년 당시 WBC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미구엘 코토는 다섯 번째 줄, 뉴욕 레인저스 선수들은 열입곱 번째 자리에 배치되었다고 한다.[112] 물론 경기를 못 본다는 게 아니라. 클럽하우스 출입이 금지.[113] 간단히 말해, 웬 듣보잡 졸부가 비싼 돈을 내고 코트사이드 자리에 앉았다고 치자. 그를 본 사람들은 "어? 유명인인가?"라고 검색을 해볼테고 그가 돈밖에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유명인들만 앉는" MSG 코트사이드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기장에 오려고 했던 A급 스타들도 "뭐야, 돈만 있으면 개나소나 오는 자리였어?"라고 해 안 올 확률이 높고, 이 자리를 별볼일 없는 연예인들에게 주거나 일반인들로 채우기 시작하면 프리미엄 브랜드는 사라진다. 결국 그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어필할 요소가 농구 자체밖에 없게 되니,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이 망하면 흥행에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물론 뉴욕이란 연고지가 워낙 특별하고, 뉴욕 연고 팀이란 자체가 크니 다른 마켓처럼 망하진 않겠지만 지금처럼 "특별한" 이미지는 사라질 것이다.[114] 이는 뉴욕빨도 있지만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란 이름값도 크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경우, "가든에서 열린 경기의 최고 득점자"가 될 경우 (즉 닉스 홈경기에서 최고 득점자) 언론 주목도가 엄청나다. 물론 초고득점은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다른 팀의 경우 "~가 최다득점" 혹은 "~를 상대로 최다득점" 이런식으로 되는데 최근 제임스 하든이 61점을 넣었을 때처럼 (심지어 이건 신기록도 아니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점!"이란 헤드라인이 많다. "~가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70점!" 이런 헤드라인이 있는가? 다른 모든 경기장은 명명권 수익 연간 몇백만달러 얻겠다고 기업 이름을 붙인, 말 그대로 경기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팀과 도시가 사용하는 공간일 뿐 어떤 의미도 없다. 그러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그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고 뉴욕의 상징 중 하나이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이 특별한 경기장을 쓰는 닉스와, 돈 더 주는 기업이 나오면 언제든 이름이 바뀔 "바클레이 센터"를 쓰는 네츠는 프리미엄 면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115] 조던은 항상 MSG에서는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으며 본인이 리그를 지배하는 동안 닉스를 계속해서 플레이오프 대결에서 떨어뜨렸다.[116] 얼마나 밀러가 닉스전에서 잘했는지 스파이크 리와 밀러는 서로 아치 네메시스가 되어버렸을 정도다.[117] 맨해튼 출신으로 닉스의 오랜 팬이었으나 제임스 돌란이 팀을 팔지 않는한은 닉스팬을 하지 않겠다면서 떠나버렸다. 레이커스로 팀세탁하고 네츠를 서브팀으로 신경쓰고 있어 스티븐 A. 스미스가 배신자라고 화내는 중.[118] 브루클린 네츠 이적 즈음에 팟캐스트에서의 발언으로 왜 뉴욕 닉스가 최고의 연고지와 널럴한 샐러리캡에 빵빵한 자금을 갖추고서도 FA에서 대형 선수들을 모조리 놓치고 있는 지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 발언 이후에도 닉스는 계속해서 대형FA들이 오지 않는 곳이 되었고 20-21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오랜만에 진출해놓고서도 FA 시장에서 레이커스와 네츠에 선수들이 모이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만다. 그리고 2023년 5월 18일 기준으로 한국 프로농구팀의 안양 KGC인삼공사가 이정현, 이재도, 전성현, 문성곤, 오세근 등의 대형 FA를 잇달아 놓치는 등 닉스와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119] 듀란트의 발언 당시 닉스가 연속으로 2라운드 이상 진출한 것은 99-00 시즌이 마지막이었다. 2010-11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특히 13닉스는 54승 을 거두고 13년만에 2라운드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뒀지만 이 팀은 바로 그 다음 시즌에 37승으로 추락하고 7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했다. 즉 닉스가 NBA를 호령하던 강팀으로 통용되던 것은 동부 파이널까지 진출한 00 시즌이 마지막이었으니 90년대 중반이나 후반 이후 태어난 어린 선수들은 닉스와 강팀이란 단어는 백만광년쯤 떨어져 있다. 오히려 88년생 듀란트는 닉스가 강팀으로 군림하던 유잉 시대를 보고 자란 마지막 세대.[120]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121] 뉴욕 자이언츠, 뉴욕 제츠. 다만 이 둘이 함께 쓰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은 신구장을 지을 때 뉴욕 땅값이 비싼 바람에 뉴저지 주(...) 북부에 위치해 있다.[122] 뉴욕 레인저스, 뉴욕 아일런더스[123] 뉴욕 레드불스, 뉴욕 시티 FC[124] NHL의 뉴저지 데블스도 범위를 넓게 잡으면 뉴욕 생활권 안에 들어있다. 즉 뉴욕 생활권에는 NHL 구단이 무려 3개나 있다는 것.[125] 2012년 뉴저지 네츠가 연고지를 브루클린으로 이전하면서 뉴욕 유일의 NBA 팀이라는 타이틀은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리그에서 뉴욕의 이름을 쓰는 유일한 팀이다.[126] 그 타깃 센터 역시 2024년 기준 역사가 30년을 훌쩍 넘은 오래된 경기당으로, 2017년에 1억4천5백만 달러를 들여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다.[127]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현재 건물은 매디슨 스퀘어가든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네번째 건물이다. 첫번째 MSG는 무려 1879년에 지어졌다. 이전 버전의 MSG들은 모두 철거된 상태.[128] 닉스는 1991년도에도 2억 달러를 들여 MSG를 싹 고친 적이 있다.[129] 사실 오래 전부터 마천루가 즐비했던 뉴욕에는 MSG보다도 훨씬 오래된 고층건물들도 많다. 플랫아이언 빌딩은 지은지 100년도 넘었으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1930년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아직까지 현역이다. 게다가 초고층 오피스 빌딩들은 상주인원이 하루 대부분 시간동안 꽉 들어차 있지만, MSG는 공연장/경기장이란 특성상 상주인원이 비교적 적고 저층빌딩인데다가 거의 비어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유지보수도 상당히 용이하다. 다른 팀들의 경우 다 낡은 경기장을 전부 뜯어고치는 것보다 허물고 새로 짓는 게 효율적이지만, MSG의 경우 경기장의 그 자체의 가치가 워낙 압도적이라 닉스가 백년 넘게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웬만큼 새로운 경기장 건설비만큼의 수리비를 들여 주기적으로 고치고 있으며, 설령 먼 훗날 신구장을 짓는다고 해도 MLB의 뉴욕 양키스양키 스타디움이라는 명칭과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해 신구장을 지었던 것처럼 MSG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130] 사실 위에서부터 읽어보면 알겠지만 닉스 입장에선 옮길 메리트도 크게 없고, 아쉬운 점도 없기 때문에 10년 뒤에 또 뭉개다 어영부영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MSG 유지의 가장 큰 걸림돌인 펜 역 재건축 사업이 2033년까지 마무리된다면, 시 입장에서도 굳이 철거시킬 이유가 없어진다. 단순히 경기장이 아닌 뉴욕의 랜드마크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 뉴욕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많아 랜드마크 유지 위원회란 정부 기관이 따로 있는데, MSG는 아직 공식적으로 랜드마크라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랜드마크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MSG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역사적 가치도 더 커지게 된다.


[131] 90년대 닉스의 레전드인 찰스 오클리는 처참한 운영을 하는 구단주에게 경기 중에 강하게 항의하다가 닉스 경기 출입금지처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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