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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로 앤서니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 덴버 너기츠 등번호 15번 | ||||
크리스 앤더슨 (2001~2003) | → | 카멜로 앤서니 (2003~2011) | → | 앤서니 랜돌프 (2012~2014) | |
뉴욕 닉스 등번호 7번 | |||||
알 해링턴 (2008~2010) | → | 카멜로 앤서니 (2011~2017) | → | 결번 | |
{{{#fff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등번호 7번}}} | |||||
얼산 일야소바 (2016) | → | 카멜로 앤서니 (2017~2018) | → | 티모테 루와우카바로 (2018~2019) | |
휴스턴 로키츠 등번호 7번 | |||||
조 존슨 (2018) | → | 카멜로 앤서니 (2018~2019) | → | 빅터 올라디포 (2021) | |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등번호 00번 | |||||
에네스 프리덤 (2019) | → | 카멜로 앤서니 (2019~2021) | → | 게리 페이튼 2세 (2022~2023) |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7번 | |||||
벤 멕클레모어 (2021) | → | 카멜로 앤서니 (2021~2022) | → | 트로이 브라운 주니어 (2022~2023) |
}}} ||
카멜로 앤서니 Carmelo Anthony | |
본명 | 카멜로 키엄 앤서니 Carmelo Kyam Anthony |
출생 | 1984년 5월 29일 ([age(1984-05-29)]세) |
뉴욕 주 뉴욕시 브루클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시라큐스 대학교 |
신장 | 201cm (6' 7")[1] |
체중 | 108kg (238 lbs) |
윙스팬 | 213cm (7' 0") |
후원사 | 에어 조던 |
포지션 |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
드래프트 | 2003 NBA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덴버 너기츠 지명 |
소속 구단 | 덴버 너기츠 (2003~2011) 뉴욕 닉스 (2011~2017)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2017~2018) 휴스턴 로키츠 (2018~201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19~2021)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21~2022) |
등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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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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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농구선수. 대학 시절 60년 넘게 우승기록이 없던 시라큐스 대학의 NCAA 토너먼트 우승에 기여한 후 바로 NBA 진출을 선언해 2003년 드래프트에서 덴버 너기츠에 3순위로 지명되었다.별명은 멜로(Melo)[2]
2. 커리어
2.1. NBA에 입성하기 까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인이고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8살때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로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때부터 볼티모어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 선수로서 주목을 많이 받았으며, 지역의 올해의 선수상을 싹쓸이 했다.2002년만해도 카멜로 앤서니는 그때부터 주목받던 1년 후배이자 라이벌인 르브론 제임스처럼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NBA 드래프트를 신청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야오밍외에는 이렇다할 전체 1번이 유력한 유망주가 없었기에 빨리 데뷔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NBA를 선택하는 것이 앤서니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였다.
그러나 카멜로의 선택은 놀랍게도 시라큐스 대학교 진학이었다. 시라큐스 대학교는 NCAA의 전통적인 명문이긴 하지만 경기 스타일은 1976년 짐 뵈하임 감독이 온 이래 2-3 지역 방어 하나만 철저하게 집중하며 수비와 기본기로 이기는 농구에 치중하기를 20년 가까이 바꾸지 않을 정도의 보수적인 스타일로 매년 64강 토너먼트는 진출하지만 늘상 16강 정도에서만 놀며 NBA와는 플레이스타일이 달라 시라큐스 출신은 프로에서 안통한다는 시선까지 있을 정도로 카멜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대학교였다. 그가 다른 농구 명문 대학교를 거절하고 시라큐스를 택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뉴욕에 가까웠기 때문.[3]
그러나 이는 완벽한 오산이었다. 시라큐스에 입학한 카멜로는 감독에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만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전술적으로 그린 라이트를 부여받았고, 이 재능을 앞세운 엄청난 공격력으로 슈퍼 신입생 돌풍을 일으키며 NCAA 대학농구판을 싹쓸었다. 1학년때 평균 22.2점 10.0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시라큐스 대학을 NCAA 농구 결승으로 이끌었고 결국은 우승까지 시켰다. 파이널 4 MOP(MVP와 같다.)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로써 1년만에 뉴욕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멜로는 2003년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2.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카멜로 앤서니/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올-NBA 세컨드 팀 2회 (2010, 2013) 올-NBA 서드 팀 4회 (2006-2007, 2009, 2012) NBA 득점왕 (2013) NBA 올스타 10회 (2007-2008, 2010-2017)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4) NBA 루키 챌린지 MVP (2005) NCAA 챔피언 (2003) NCAA 파이널 포 MOP (2003) 2006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일본 동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
4. 플레이 스타일
포스트업의 경우에는 덴버 시절에도 충분히 뛰어났지만, 몸무게를 늘린 뉴욕 시절[4]에는 페이스업만큼이나 쏠쏠하게 써먹었다. 하체 힘이 워낙 좋아서 어지간한 포워드는 쭉쭉 밀려났으며, 특히 미스매치 상태에선 그가 포스트업을 사용할 때는 더블팀이 붙거나 파울로 끊을 수밖에 없었다. 신체능력이 크게 저하되어 페이스업의 위력이 줄어든 이후로는 포스트업의 사용빈도가 눈에 뜨게 늘었다. 흠잡을 게 없는 멜로의 쏠쏠한 공격루트 중 하나.
현 시대 스몰 포워드 대부분이 볼핸들링이 준수한 편이지만 멜로의 볼핸들링은 메인 볼핸들러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정도로 매우 뛰어난 수준이다. 클러치 상황에선 아예 본인이 포인트 가드처럼 볼을 몰고와서 슛을 마무리 지을 정도. 패스 센스도 뛰어나서 가끔 패스로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마땅한 포인트 가드가 없던 뉴욕 시절은 그가 실질적인 포가 롤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야가 넓은 편이 아니고 애초에 전문적인 패서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으며 결정적으로 본인말고 스코어러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었기에 결국 본래의 포지션으로 복귀했다.
돌파 능력도 훌륭하다. 르브론이나 웨이드처럼 최상급 슬래셔들보다야 떨어지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돌파를 할 수 있다. 특히 엘보우에서 공을 잡고 트리플 스렛[5] 자세 이후 퍼스트 스텝으로 돌파하여 마무리 하거나 스핀무브 이후 골밑 마무리는 스텝을 활용한 돌파의 정석이라 부를 정도로 우아하고 훌륭했다.[6]
미드레인지와 3점을 잘 쏘는 편이며 라마커스 알드리지, 케빈 듀란트와 더불어 미드레인지 달인으로 손꼽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3점은 포틀랜드에 들어오면서 36%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골밑 마무리는 아쉬운 편. 손이 작기 때문에 이지샷을 은근히 놓치는 편이다. 본인이 풋백으로 만회를 하기도 하지만 공격 면에서 멜로의 몇 안되는 약점 중 하나. [7]
또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신장 대비 평범한 운동능력. 힘 자체는 빅맨과 견주어도 될 만큼 좋지만 아무래도 동시대 비교대상이 르브론인 경우가 많아 이 부분이 더 두드러진다. 특히 높지 않은 점프. 멜로의 수비 장면을 보면 상대가 올라갈때 공만 긁어내는 수비를 자주 펼치는 편이고, 르브론처럼 공격수를 쫓아가 체이스다운 블락을 하거나 타점 높은 블락과 컨택은 드물다.
그래도 전성기 멜로의 수비력은 평균정도는 했으며 상대의 네임밸류가 높으면 오히려 훌륭한 수비를 보여주곤 한다. 상대에 따라 본인의 수비 의지가 매우 다른 편이며 이는 공격 때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르브론이나 듀란트 같은 선수라면 더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기도 한다. 그래서 별명이 "감성슈터".
여기까지는 모두 전성기때의 이야기. 2014-15 시즌 무릎 부상으로 6개월 넘게 아웃된 이후로 신체능력이 크게 저하되어 극강의 공격 옵션이 모두 약화됐다. 앞서 언급한 트리플 쓰렛에서 돌파의 위력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수비수 입장에서는 돌파 수비에 대한 걱정이 덜어졌다. 남은 공격 옵션은 패스 아니면 슛인데, 잽스텝만 조심하면 되는 상황이라 전반적으로 멜로의 공격력이 줄어든 셈이다. 때문에 포틀랜드에서는 본인이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페이스업보단 포스트업을 자주 하는 편이며 확실히 슈퍼스타로 불리던 예전에 비해선 위력이 많이 감소했다. 그래도 여전히 틈만 나면 20득점을 올릴만큼 슛이 좋기 때문에 팀 승리에 크게 기여하는 날도 종종 나온다. 멜로의 나이와 경력을 생각해 볼때 당장 내일 은퇴해도 놀랍지 않지만, 여전히 팀내 3옵션으로 제 역할을 하는 건 그가 지녔던 클래스가 상당히 높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5. 여담
- 한 때는 르브론 제임스 및 케빈 듀란트와 라이벌리를 형성하여 스포 삼대장, 이른바 릅듀카로 불렸었다. 다만 이는 셋의 개인기량이 스포 포지션에서 Top 3에 꼽히면서 맞대결에서도 서로 물고물리던 시절의 얘기고, 통산 커리어를 보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재는 저 표현을 쓰지 않는다.[8] 커리어 면에선 후배인 카와이 레너드에게도 크게 밀리고 있으며[9], 냉정하게 말해 레너드가 2020년 이후로 우승이나 수상경력에 무언가를 추가하지 않고 누적만 쌓고 은퇴하더라도 멜로보다 훨씬 앞서는 커리어인게 사실이다.[10][11]
- 드래프트 때부터 공격 하나 만큼은 르브론보다 뛰어나다 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객관적인 지표만 보면 르브론보다 앞선다고 보기 힘들긴 하지만[12] 아이솔레이션에 한해서는 르브론과 호각 혹은 그 이상이라는 평을 들을 만은 하다. 주 포지션은 3번 포지션이지만 대학시절에는 3번과 4번을 번갈아가며 뛰었다. 덴버에서도 스몰라인업을 돌릴 때 간혹 4번 포지션으로 뛰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때는 르브론과 동시에 나올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4번으로 뛰었다. 본인은 자기포지션을 3번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4번으로 뛸때도 자기보다 키가 큰 다른 팀의 전문 파워 포워드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열성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 호평을 받았다. 2012-13 시즌 뉴욕에서는 아예 전업 파워포워드로 뛰었다. 존 홀린저같은 미국의 세이버 농덕후들은 아예 멜로를 풀타임 4번으로 돌리라는 의견을 계속 내고 있다. 앞서 나온 대로 멜로의 떡대가 NBA 4번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데다 스피드나 개인기, 슛 레인지등에서 4번들 상대로는 압살 수준이기 때문에 4번으로 뛰면 수비 약점도 어느정도 센터의 도움으로 커버가 되고 공격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고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선지 멜로가 스트레치형 빅맨으로 활용되었어야 했다는 때늦은 몽상을...
- 그완 별개로 르브론과 듀란트와의 맞대결에선 대등하게 싸웠었다. 르브론과는 고교 농구에서 만나 치열한 대결을 벌인바 있으며 (르브론 36점 멜로 34점) 현역 시절에 맞붙은 경기에서도 대부분 대등한 매치업을 벌인바 있다. 팀도 웨스트브룩과 식스맨 제임스 하든 등 뛰어난 선수를 갖춘 우승권 팀인 오클라호마 시티와 골든 스테이트에서 뛴 듀란트나 본인이 빅3를 결성한 마이애미나 클리블랜드 2기에서 뛴 르브론과는 달리 멜로의 덴버나 뉴욕은 본인이 오기전에는 전형적인 약팀이었고 멜로가 합류한뒤에도 멜로를 제외하면 그저 그랬다. 간혹 앨런 아이버슨이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천시 빌럽스 같은 선수들과 뛰었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지만 앨런은 전성기가 끝나가던 시점이었고 멜로와의 시너지도 좋지 못했으며 스타더마이어나 빌럽스도 전성기는 이미 지난 시점이었다. 그 이후로 오클이나 휴스턴에선 멜로의 전성기는 이미 끝난 시점이고 선수 본인의 활약도 최악이었던지라 이득을 보지 못했다. 즉 듀란트나 르브론에 비해서 팀 복이 없었다 라고 볼수도 있다. 물론 오클라호마나 휴스턴에선 선수 본인의 나태함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들은 자업자득이라 볼수 있지만...
- 뛰어난 기량을 갖추었고, 데뷔도 전국구 스타였던 상태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르브론 제임스와는 달리 초기의 평판이 안 좋았다. 에어 조던 항목에 나와 있는 4쿼터 출전 거부사건 등 프로페셔널리즘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수차례 받아왔고, 총기 소지, 주변 건달 친구 등 갱스터 캐릭터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팬들의 외면을 받아서 올스타전에 한동안 초청을 못 받고 2007년에 겨우 부상선수 땜빵으로 선정되는 등 굴욕도 겪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비판받았다. 턴오버 이후에 코트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아 경기를 중단시키기도 하고 경기에 지고 있는데도 싱글벙글 웃고 있다고 까여서 그 웃음이 조정린과 비슷하다고 해서 거의 반조롱으로 조정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론 저 조정린 호칭은 애칭으로 바뀌었다.[13] 언젠가부터는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남달라졌다. 무엇보다 베이징 올림픽 참가가 그에게 터닝포인트였던 셈.
- 얼굴이 상당히 잘생겨서 비주얼만 놓고 보면 과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르브론 제임스나 케빈 듀란트를 압도하고 있으며 덴버 시절에는 콘로우 헤어스타일과 날렵한 몸매의 간지 스타일로, 한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함께 팬 많기로 쌍벽을 이루는 뉴욕 닉스의 에이스 플레이어로서 국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NBA 선수 중 하나였다. 거기에다 간지나는 점퍼까지 장착하고 있으니... 그러나 커리어 후반에 접어들면서 체중관리의 실패로 그냥 아저씨 몸매가 되어버리면서 뚱서니로 놀림받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말년에 다시 체중관리를 타이트하게 하면서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긴 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도 대표팀에 뽑혔지만 많이 뛰지는 못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참가하여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3회 연속 올림픽 참가 타이 기록(데이비드 로빈슨 : 1988, 1992, 1996)을 세웠고 미국의 금메달에 기여하였다. 특히 2012년 8월 2일 조별예선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단 14분만에 3점슛 10개를 포함 37점을 기록하여 미국 농구 올림픽 대표팀 1경기 최다득점자 기록(종전 기록 : 2004년 스테판 마버리의 31점)을 경신하였다. 참고로 그 경기에서 미국은 156:73의 대승을 거두어 올림픽 전반전 최다득점(78점), 올림픽 1경기 최다득점 (종전 기록 : 1988년 브라질이 이집트를 상대로 달성한 138점), 미국 국가대표팀의 3점슛 성공(29), 필드골 성공(59), 야투율(71%), 최다득점차(83점) 등의 기록을 경신하였다.
- 팀 조던의 일원으로 그의 이름을 딴 시그네쳐 Melo 시리즈가 발매되고 있다. Jordan Melo M13까지 총 13개의 시리즈가 발매되었다. 다만 더이상 안 나오는 것을 보면 멜로의 시그니쳐 시리즈는 이제 끝난 듯 보인다. 다만 팀 조던의 일원으로는 계속 남아있을 듯 하다. 2021년 현재는 에어 조던 시리즈에 시그니쳐 색상이 발매되는 중이다.
- 정치적인 일에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 늘 그래온 사람.
- 그를 지도했던 조지 칼 감독이 극딜을 했다. 그는 수수께끼같은 선수라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길 좋아하고 나누게 되면 싫어한다고 하였으며,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수비 및 궂은일을 전혀 안 해서 인내심 테스트를 하게 한다 하였다. 그리고 그가 트레이드 됐을 때 물집을 터뜨린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밝혔다. 저 당시만 해도 팬들은 에이 그럴리가라는 반응이었지만 제레미 린과의 갈등과 차별로 의심되는 장면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이제 모든 사람들이 거의 그렇게 생각하는 중.
- 점점 배가 심하게 불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체중관리에 실패한 듯. 그닥 뛰어나지 않고 평균 정도였던 운동능력도 당연하게도 평균 이하로 떨어져버렸다. 오죽하면 패러디물인 갈통점프에서 도넛맨으로 나왔을까...
- 2020년까지도 평균 20득점 가까이는 넣어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그러기엔 기량이 너무 떨어지고 말았다. 나이에 따라 운동능력이 급속도로 노쇠하는 와중에 고질적인 체중관리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고, 비효율적인 플레이와 심각하게 떨어진 수비력[15]이 시너지를 이루어 공수마진이 처참한 상황. 보통 30대 초중반을 넘어서 오는 폼 하락은 영구적인 기량저하라 보는게 타당하며, 이런 경우 필사적으로 몸관리를 하며 운동능력의 저하속도를 낮추고 플레이스타일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멜로는 이 부분에 있어 변명의 여지 없이 실패한 케이스인데... 그 와중에 에고가 지나치게 강해서 벤치로 물러나는 건 극구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팀이나 팬들 입장에선 골머리가 썩는다.[16] 남은 선수기간 동안 유의미한 전력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본인의 마인드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 멜로가 덴버에 오기전 까지 덴버는 디켐베 무톰보 이적 이후 플레이오프 자체도 못 나갔고 맥다이스를 제외하면 스타선수들도 없었던 우울한 농구팀 이였다. 즉 주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팀 상황에서 멜로가 들어오자 수많은 팬들의 관심을 이끌고 팀도 플레이오프 단골이 됐었고 한 때 서부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상당히 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닉스로 이적 전/후에도 계속 멜로에게 집중될 정도로 르브론, 웨이드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1980~1990년대의 공격농구 황금기 이후에 오랫동안 침체되었던 덴버에 멜로가 8년 동안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도 사실. 영구결번 이야기도 가끔 나오긴 한다. 닉스보단 덴버가 좀 가능성이 높은데 NBA 입성 이후 딱 4번 가본 컨퍼런스 파이널 중에 한 번이 멜로의 시대였기 때문. 하지만 멜로가 덴버에서 나가는 과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영결할 확률이 너무 희박하다. 실제로 덴버 구단 측도 이상하게 멜로에 대해서만 의도적으로 기록말살형을 하고 있는 만큼 기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거로 봐야할듯.[17]
- 닉스 시절 NOP와의 어웨이 경기막판 아웃 오브 바운드에서 한 꼬마팬이 경기장에 갑자기 들어와서 멜로에게 안겼고 멜로도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론 훈훈한 장면이었는데 사실 NBA 경기 중 굉장히 보기 드믄 케이스이다. 축구와 달리 관중들이 경기 중 들어오는 사례가 거의 없는데 멜로 팬인 이 꼬마팬은 용감하게 들어와 제대로 팬 인증을 했다.
- 와인을 상당히 좋아하는 선수다.
- 드림팀의 일원으로 유일하게 올림픽에 4회 출전하고 3번의 금메달을 딴 선수이기도하다.
- 현지시간으로 2008년 4월 14일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전력이 있다. 추후 검사 결과 혈중 알콜농도는 0.148로 콜로라도주 기준치의 2배를 넘었으며 이로 인해 2008-09 시즌 2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게 되었다.
- 멤피스와의 와일드카드 전이 끝난 이후 유서프 너키치를 안아주었다. 그 날 경기 시작하기 전 2시간 전에 너키치의 할머니가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돌아가셨다고 한다.
- 멜로의 아들인 키얀도 농구를 하고있는데 멜로하고 슛폼이 똑같다.
- 13-14 시즌 샬럿과의 홈경기에서 기록한 62득점은 본인의 커리어 하이 득점이자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기록된 개인 최고 득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 경기에서의 멜로의 기록(62득점 13리바운드 0어시스트 0턴오버)은 NBA에서 턴오버 없이 기록된 역대 최고 점수이며, 어시스트 없이 기록된 점수 중 역대 3위이기도 하다.[19]
- 카멜로 앤서니가 은퇴를 선언하고 하루 뒤, 그의 데뷔팀 덴버 너기츠가 역사상 첫 NBA 파이널 진출을 확정지었다. 덴버의 1옵션과 2옵션인 니콜라 요키치는 멜로와 같은 등번호를 달고 있으며, 자말 머레이는 멜로의 뉴욕 트레이드 때 얻은 픽으로 덴버가 드래프트한 선수이다.
- 2024년 1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덴버 너기츠가 자신이 달던 15번을 니콜라 요키치한테 준 것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지우려고 하는 책략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요키치는 세르비아 시절부터 15번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20] 덴버에서 번호를 보전시켜준 것이며, 요키치는 멜로가 팀을 나가고 3년이 지나서야 들어온 선수로 41픽으로 뽑힌 선수라 전혀 차세대 스타감도 아니었기 때문에, 덴버에서 멜로 번호를 의도적으로 요키치에게 줬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또한 덴버가 의도적으로 멜로의 번호를 요키치에게 줬다고 해도 덴버가 멜로에게 빚이 있을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 발언으로 안그래도 낮았던 멜로의 덴버 영구 결번의 가능성은 더 낮아졌고, 뉴욕 닉스는 선수 영구 결번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운 팀이기 때문에 NBA 구단 중 멜로를 영구 결번 해줄 팀은 없을 듯 하다.
[1] 맨발 기준 201cm (6' 7") / 착화 기준 203cm (6' 8")[2] 라멜로 볼 이전의 멜로는 카멜로 앤서니였다.[3] 지도상으로는 뉴욕 시티와 정반대에 위치한 시라큐스이지만 뉴욕 시티 내에 캠퍼스가 있는 학교(NYU 등등)들은 운동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뉴욕 주 출신 스포츠 유망주들은 뉴욕 주 내에 진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시라큐스가 농구로 제법 강하긴 하지만 전술한 이유 + 사립대의 높은 등록금 때문에 NBA 특급 유망주들이 오기를 꺼리는 곳이다. 그나마 시라큐스 대학은 농구 장학금 제도가 있기 때문에 유망주들을 끌어올 수는 있지만, 앞서 언급된 뉴욕 대학교 같은 경우 농구 장학금 자체가 없어서 팀 성적이 극악으로 안 나오다가 재정난 때문에 1970-71 시즌을 마지막으로 아예 1부 리그 팀을 없애버렸다. 다만 대학농구에 대한 투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아주 옛날에는 그래도 NCAA 4강에 두 번이나 올라갔는데, NBA의 레전드 빅맨이던 돌프 셰이즈가 재학 중이던 1945년에는 준우승까지 차지한 적이 있다.[4] 이른바 '뚱써니'라고 불린다.[5] 상황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용어인데, NBA에서는 보통 슛, 돌파, 패스 3지선다가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6] 멜로는 전체적인 스피드 보다 퀵니스가 굉장히 빨랐고 퀵니스 하나만큼은 르브론이 부럽지 않았다.[7] 풋백 득점을 하는 것이 별것 아닌것 같아도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NBA 골밑 에서 슛한 이후에 바로 뛰어올라 리바운드 하고 다시 득점에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상술했듯이 그의 퀵니스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주는 부분이다.[8] 당장 릅은 NBA 올타임 NO.1 스몰포워드라는 평을 받고, 듀란트 또한 릅-버드에 이은 역대 스몰포워드 3위 정도에 해당되는 위치이다. 커리어 내내 MVP는 커녕 퍼스트팀에도 들어본 적이 없고 세컨 2회, 서드 4회에 그친 멜로와는 수상실적만 봐도 아득히 차이가 난다.[9] 이 때문에 '릅듀카'의 '카'가 멜로가 아닌 레너드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다만 릅듀카의 원조는 멜로가 맞으며 그가 릅듀카 라인에서 탈락한 이유는 기량 하락 때문이다.[10] 전성기때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실적면에선 저 셋에게 비할바는 아니라는게 현실이며, 커리어 전반으로는 비교 자체가 저들에게는 실례일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카와이의 유리몸 기질과 앤서니의 누적 우위를 들먹이며 '카와이와의 비교는 멜로에게 실례다.'라는 말이 있는데, 막상 둘의 커리어를 비교해보면 넌센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와이는 파이널 MVP 2회와 올-NBA 퍼스트 팀 3회, 디포이 2회 및 다수의 디펜시브팀 수상 등 멜로에겐 없는 굵직굵직한 경력들이 넘치기 때문.[11] 전성기 기준으로도 수비력이 평균을 넘긴 적이 없는 멜로로썬 디포이나 디펜시브팀은 논하는 것 부터가 무리수이고, 우승 근처에도 간적이 없으니 파엠 또한 구경도 못해본 수상이다. 저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건 퍼스트팀과 시엠 정도인데, 하필 르브론과 듀란트라는 역대 한손에 꼽히는 포워드들과 경쟁하느라 결국 한번도 받지 못했다. 아무리 멜로의 올느바팀 선정 횟수나 누적이 앞선다지만 카와이가 멜로보다 8년이나 늦게 데뷔한 젊은 선수임을 감안해야 하고, 제 아무리 누적 우위가 있다 해도 카와이가 토론토 랩터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루어내고 두번째 파이널 MVP를 달성한 시점에서 둘 사이의 클래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팬은 없다.[12] 가장 큰 이유는 우선 멜로의 전성기가 빨리 저물었고 덴버 시절에 본인이 이런저런 이유로 스텟을 깎아먹은게 제일 크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무조건 릅보다 더 뛰어나다고 단정지을수 없는건 사실.[13] 불어난 살 때문이기도 한데, 데뷔 초에는 날렵한 체형이었는데 갈수록 살이 불어가더니 결국은 이런 별명을 얻게 되었다.[14] 넷 다 드림팀에서 같이 뛴 적도 있고 사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NBA 같은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한 곳에서 유별나게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 넷 중 한명은 커리어가 끝나기 전에 한번 서로 뭉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15] 당연하지만 체중관리 실패와 수비력 하락은 직결되어있다. 현대 NBA의 트렌드가 계속되는 스위치를 통해 수비에서 구멍인 선수를 집중공략하는 전략인데, 수비 스위치를 지속적으로 하려면 체력과 순발력이 필수고, 체중관리 실패는 결국 둘 다 막장화되어간다는 의미다보니...[16] 동세대 라이벌인 드웨인 웨이드가 자진해서 벤치행을 결정한 것 과는 대조적[17] 만약 영구결번이 된다고 해도 단독 영구 결번은 아닐 것이다. 현재 앤서니의 번호였던 15번을 덴버의 에이스 니콜라 요키치가 쓰고 있는데 이 선수의 커리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요키치는 2024년 현재 3번의 MVP 수상, 덴버의 창단 첫 우승에 파이널 MVP 수상까지, 덴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요키치는 영구 결번이 사실상 확정이기에 앤서니가 된다면 공동 영구 결번일 듯 하다.[18] 이 때 멜로가 포틀랜드에 있어서 릴라드와 맥컬럼, 그리고 르브론도 이름을 같이 언급했었는데, 아들 그리는 르브론만 알고 나머지는 몰랐다(…).[19] 이 부문 1위는 윌트 체임벌린인데 73득점 36리바운드 0어시스트를 한 적이 있다.[20] 세르비아에서는 유니폼 사이즈 크기에 따라 1~15번까지 번호를 주는데, 요키치는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팀에서 제일 컸기 때문에 항상 15번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