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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12:56:37

레이몬드 펠튼

레이몬드 펠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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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레이먼드펠튼.jpg
레이먼드 버나드 펠튼 주니어
Raymond Bernard Felton Jr.
출생 1984년 6월 26일 ([age(1984-06-26)]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매리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85cm (6' 1")
체중 93kg (205 lbs)
포지션 포인트 가드 / 슈팅 가드
프로입단 2005 NBA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샬럿 밥캣츠 지명
소속팀 샬럿 밥캣츠 (2005~2010)
뉴욕 닉스 (2010~2011)
덴버 너기츠 (2011)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11~2012)
뉴욕 닉스 (2012~2014)
댈러스 매버릭스 (2014~2016)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016~2017)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2017~2019)
등번호 20번 - 샬럿 / 덴버
2번 - 뉴욕 / 댈러스 / 클리퍼스 / 오클라호마
5번 - 포틀랜드

1. 소개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2.2. 샬럿 밥캣츠 시절2.3. 첫번째 뉴욕 닉스 시절2.4. 덴버 너기츠 시절2.5.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절2.6. 두번째 뉴욕 닉스 시절2.7. 벤치 가드로
3. 체포4. 수상 내역5. 플레이 스타일6.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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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NBA의 포인트 가드. 미국 대학농구에서 엘리트 코스에 가까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1] 를 나왔고 이 스타군단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나름 화려하게 NBA에 입성했으나 프로 입성 후에는 기복이 매우 심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저그런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인한 체포경력 및 감독과의 불화로 감독을 해임하게 만든 전력으로 인해 인성 면에서도 심각한 의문을 보이게 만든 선수.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매리언에서 태어났다. 라따 고등학교 농구부의 기록을 갈아채운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입학한다. 거기서 236개의 어시스트와 평균 12점을 기록하며 차세대 포인트가드 중 한명으로 지목받았고 마지막 대학 시즌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정상으로 이끄며 화려하게 대학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특히 마지막 일리노이 대학과의 챔피언쉽에서 동점상황에서 데런 윌리엄스를 상대로 스틸을 거두고 그 이후 일리노이 대학의 미스된 3점슛을 리바운드해서 파울을 얻은 후 자유투를 넣어 팀 승리에 커다란 견인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펠튼은 드래프트에 나서게 되지만, 데런 윌리엄스, 크리스 폴이라는 대형가드들에게 네임벨류가 밀리는 면이 있었고 결국 앤드류 보것(밀워키 벅스), 팀 후배 마빈 윌리엄스(애틀랜타 호크스), 데런 윌리엄스(유타 재즈), 크리스 폴(뉴올리언스 호네츠)에 이은 5순위로 샬럿 밥캣츠에 지명된다.

2.2. 샬럿 밥캣츠 시절

파일:external/www.nba.com/felton_bigbro_300.jpg

밥캣츠에 지명된 펠튼은 루키시즌이었던 2005-06 시즌 평균 30.1분을 뛰며 평균 11.9점 5.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비록 신인왕 순위에서는 전체 4위에 그쳤지만[2] 2년째 시즌을 맞는 신생팀인 밥캣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고, 시즌 후 세컨드 루키 팀에 선정되었다.

루키 시즌을 보낸 이후 펠튼은 밥캣츠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평균 14점씩을 찍어주고 어시스트도 7개로 뛰어오르면서 밥캣츠의 성적을 올리고 팀 동료들을 이끄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괜찮은 주전 포인트가드로 NBA에 정착할 수 있었다. 특히 슈팅가드 제이슨 리차드슨과의 공존이 꽤 괜찮아 신생팀의 한계를 보여주던 밥캣츠 팬들에게 소소한 희망과 재미를 안겨줄 수 있었다. 2008시즌 이후 1라운더 드래프티의 룰에 따라 펠튼은 제한적인 자유계약선수가 되었으나 밥캣츠가 1년 계약을 채결하며 팀에 남았고 그 해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밥캣츠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함에 따라 펠튼도 플레이오프 무대에 서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팀은 올랜도 매직에게 스윕당했고 펠튼은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된다.

2.3. 첫번째 뉴욕 닉스 시절

파일:external/www4.pictures.zimbio.com/Raymond+Felton+New+York+Knicks+v+Denver+Nuggets+5vk_1OJY5mBl.jpg

2년간 1180만불을 받는 조건으로 닉스와 사인했고 한편으로는 피닉스 선즈의 스타였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도 닉스로 이적해왔다. 비록 펠튼은 이해 평균 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웠지지만 펠튼과 아마레는 서로의 호흡이 영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삐그덕거렸고 결국 닉스는 카멜로 앤서니 영입을 위한 샐러리 마련 및 팀에 맞는 가드를 찾기 위해 천시 빌럽스카멜로 앤서니를 데려오는 삼각 트레이드 때 그를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 시켰다.

펠튼은 그 이후 닉스에 돌아온 이후 자신은 그 당시 뉴욕을 떠나기 싫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자신의 직업과 농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었다고 인터뷰 하였다.

2.4. 덴버 너기츠 시절

파일:external/www4.pictures.zimbio.com/Raymond+Felton+Oklahoma+City+Thunder+v+Denver+r1xhP4BmPK9l.jpg
대학 후배이자 주전 가드였던 타이 로슨과 함께.

너기츠로 이적한 펠튼은 팀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후배인 2년차 포인트 가드 타이 로슨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펠튼은 주요 식스맨 및 로슨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팀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케빈 듀란트, 러셀 웨스트브룩이 이끄는 오클라호마 시티 선더에게 1승 4패로 또다시 패배하고 만다.

2.5.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절

파일:external/a.espncdn.com/nba_g_felton11_576.jpg
살이 푹푹 쪘던 시절

하지만 펠튼의 연봉이나 닉스에서 보여준 성적은 주전으로 뛰기 충분했으므로 결국 너기츠는 베테랑 포인트가드 안드레 밀러와 조던 해밀턴에 대한 권리를 받는 조건으로 펠튼을 트레일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 시킴으로서 포틀랜드에서 2011-12 시즌을 맞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펠튼은 감독이었던 네이트 맥밀란과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맥밀란 감독은 시즌 도중 물러나고 만다.

2011-12 시즌 그의 성적은 평균 31.8분 출장에 평균 11.4점에 6.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루키시즌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그나마도 루키시즌에는 거의 식스맨으로 경기에 출장하였기 때문에 주전으로서는 생애 최악의 시즌이었던 셈이다.

2.6. 두번째 뉴욕 닉스 시절

파일:external/dailyknicks.com/8142862.jpg
펠튼은 2012년 7월 다시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 되는데, 이는 제레미 린과의 재계약 시 샐러리 초과의 부담을 안게 된 닉스가 린 대신 선택한 차선책으로 보인다. 닉스로 다시 오게 되면서 포틀랜드 시절 몸무게 문제 때문에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고 말하면서 몸무게 감소를 시작해 약 7kg 정도를 감량시켰다고. 또한 닉스로 트레이드 되어 온지 얼마 안되어 3년간 1000만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연장하였다. 이리하여 린세니티를 대신할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게 된 펠튼이지만 12월 중순에 손목부상을 안게되고 그걸 참고 몇경기를 뛰었지만 결국 4-6주를 결장하면서 2012-13 시즌을 마친다.

2013-14 시즌에 들어오면서 팀은 토론토 랩터스로부터 안드레아 바르냐니를,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방출된 메타 월드 피스 등을 데려오는 등 성적을 위해 애를 썼지만 닉스의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 치고 있고 그 역시 평균 10점이 간신히 넘어가는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찍으면서 닉스 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그나마 동생 방출로 인해 징징거리는 J.R. 스미스와 펠튼보다 훨씬 거대한 샐러리를 드시고 계시면서도 부상 치례를 하고 돌아와서도 선즈 시절의 폭발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더 욕을 먹어서 그나마 펠튼의 지분은 적은 편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멜로의 재계약을 위해서 그리고 드래프트 픽이 없는 빅마켓 뉴욕 특성상 성적을 위해 토론토 랩터스카일 라우리를 데려오기 위한 목적으로 샐러리 균형을 맞추기 위해 펠튼이 토론토로 트레이드 된다는 설도 있었지만 유아무야 되었다. 거기에 뉴욕에서 사고까지 하나 쳤는데, 내용은 아래 문단 참고.

아무튼 경기에 복귀해서 뛰고 있지만 이러한 자신의 주변 상황 덕분인지 그 사고 직후 출전한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2득점, 5 어시스트, .143%의 슛 성공률을 보이며 완전히 주저 앉아버렸고 그 이후로도 리딩이면 리딩, 돌파면 돌파, 득점이면 득점 에서 닉스의 민폐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아마레에 관한 비판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결국 블락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치가 12-13 시즌에 비해 많이 하락해버리면서 신인시절의 기록에 근접해버렸고 특히 평균득점 9.7점은 커리어 로우의 기록이다. 한마디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데다가 물의도 일으켰기 때문에 더이상 닉스에서의 선수생활은 어려워 보였다.

2.7. 벤치 가드로

파일:external/a.espncdn.com/nba_g_felton11_1296x729.jpg

결국 2014년 드래프트 하루 전날 타이슨 챈들러와 함께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챈들러+펠튼이 댈러스로 가고 호세 칼데론+사무엘 달렘베어+셰인 라킨+웨인 엘링턴+2014년 드래프트 34,51번 픽을 뉴욕이 받는다. 이적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는 "나는 아직 엘리트 포인트가드라고 생각하며 팬들에게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댈러스에서 더 많은 기회를 받기를 고대한다." 라는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를 했다. 과연 그 호언장담이 들어맞을지?

현실은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적다.

우선, 하단에 나와있는 닉스 시절의 총기 소유 문제로 인해 NBA 사무국으로부터 4게임 출장정지라는 처벌을 받고 시즌을 시작하였으나 프리시즌 중에 생겼던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시즌 첫 31경기를 결장하였고 12월 28일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와의 경기에서야 매버릭스 유니폼을 입고 첫 게임을 가졌다.

하지만 이미 댈러스의 1,2번 계획은 몬타 엘리스와 호세 바레아의 공존으로 결정된 상황. 그나마도 데빈 해리스에 밀리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라존 론도가 영입되면서 펠튼의 자리는 더더욱 없어졌고 결국은 가비지 멤버로 나오는 신세로 전략하였으며 그나마도 그러한 가비지 스텟마저도 쌓지 못하면서 쉐도우 점수가 0에 해당하는 가비지 멤버가 되어버렸다. 슛 성공률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록에서 엄청난 커리어 로우를 기록중.

하지만 2015-16 시즌 들어 릭 칼라일의 농구에 잘 녹아들었고 가끔은 영웅이 되는 경기도 있는 편이다. 꽤 준수한 가드로서 자신의 맡은바를 잘 수행해냈다.

파일:external/clutchpoints.com/raymond-felton.jpg
16-17 시즌에 클리퍼스, 17-18 시즌에 썬더로 옮겨다니며 벤치 포인트 가드로 활동하고 있다.

3. 체포

파일:external/a57.foxnews.com/Raymond%20Felton%20Arrest-2.jpg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선 펠튼.

현지시각 2014년 2월 25일 펠튼은 뉴욕 자신의 집에 뉴욕 주에 신고하지 않은 총 3정을 소지하고 있다가[3]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미 그 전날 펠튼의 아내의 변호사가 그 실탄을 들고 멘해튼 경찰서에 찾아와 신고해서 그 총기의 정체를 알았다고. 펠튼의 아내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1주일 전에 펠튼과 이혼하고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한편 펠튼이 소유했던 불법 총기는 실탄 18발이 들어가 있었던 총기라고 하며 $25000 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고 재판공판이 시작되지 않아서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전가능하며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올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재판이 열리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2013-14 시즌은 끝까지 무리 없이 뛰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건으로 바람잘일 없었던 닉스에 마지막으로 제일 큰 빅엿을 날린 상황인건 분명하다. 그리고 무리없이 댈러스로 트레이드 된 것을 보면 큰 일 없이 사건은 마무리되고 있는 듯. 그리고 2014-15 시즌 개막전을 포함한 4경기 출장정지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세컨드 팀 (2006)

5. 플레이 스타일

픽앤롤 만큼은 상위권에 들어가며 이 픽앤롤 상대를 뚫고 넣는 슛 마무리도 깔끔한 편이다. 본인이 마무리 짓는것도 있지만 이 픽앤롤로 상대방 수비를 흔들고 팀 동료들에게 찔러주는 역할도 좋은 포인트가드로, 미들 및 골밑에서 강력한 선수가 옆에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배가 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선수들과의 접촉을 기피하지 않는 적극적인 선수기 때문에 그만큼 상대방이 소극적이면 당황하게 만들면서 좋은 효과를 일으키고 에너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큰 무대에서도 별로 떨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잘 해낼수 있으며 가끔 보여주는 기습적인 장거리 슈팅도 있다. 즉, 픽앤롤과 아이솔레이션으로 무장한 펠튼의 공격력은 괜찮은 수준이며 공격 농구를 추구하는 팀에는 아주 잘 맞는 옵션이다.

문제는 이 픽앤롤 외에는 NBA 내에서 평균 이상급이라고 할만한 기술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슛에 대한 기복이 심하며 이는 3점슛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점슛이든 3점슛이든 자유투든 성공률이 일정한 편이 아니며 그 성공률도 평균 이상으로 스테판 커리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는게 문제. 또한 이러한 적극적인 성격은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는데 그만큼 턴오버도 많아지고 무리하게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공을 많이 가지고 노는 플레이를 즐겨하는 날것 그대로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이며 따라서 BQ능력이 조금 부족한 선수이다. 또한 밥캣츠 말기부터 시작되어 포틀랜드, 그리고 닉스의 두번째 시절을 거치면서 잔부상도 많아지고 있다는것도 문제이며, 멘탈 면에서도 지적을 받았었는데 이번 불법총기 사용으로 인해 빵 터져버렸다.

6. 이모저모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편에서 박진영에게 까이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 2013년 12월 3일 우리동네 예체능 방영분에서 예체능 선수들은 전주 KCC 이지스와의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그 경기 이후 예체능 팀의 박진영과 이정진이 이지스 선수들(김민구, 강병현 등)과 농구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박진영이 펠튼은 요새 못한다고 대놓고 말해버렸고 그것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사실 박진영은 NBA 직관도 많이했고 예체능에서도 나와있지만 본인 집 마당에 농구코트를 설치해놓고 농구를 하는 등 농구를 좋아하는 편이다.

2014년 2월 중순 아내랑 이혼했다. 그리고 그 아내의 고발로 그의 불법 총기 소유가 들통났다.

롤 모델은 선수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 삼촌 등 가족 및 친척 일가라고.


[1]마이클 조던의 모교 맞다.[2] 신인왕은 크리스 폴이 수상한다.[3] 펠튼의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등록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뉴욕 주의 법에 따라 아무리 다른 주에서 신고가 되어있는 총기라도 뉴욕 주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뉴욕 주에서 총기를 소지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