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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 한화 이글스 | SSG 랜더스 | 삼성 라이온즈 | NC 다이노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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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wiz | 롯데 자이언츠 | KIA 타이거즈 | 두산 베어스 | 키움 히어로즈 | |
| 과거 참가 구단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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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인물 | 구단주 구광모 | 대표이사 김인석 | 단장 차명석 | 감독 염경엽 | 주장 박해민 | ||
| 경기장 |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2군 LG 챔피언스 파크 이전 동대문야구장 ·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 | ||
| 우승 | 1990(V1) | 1994(V2) | 2023(V3) | 2025(V4) | ||
| 역대 한국시리즈 | 1983 | 1990 | 1994 | 1997 | 1998 | 2002 | 2023 | 2025 | ||
| 정보 | 구단 역사 | 트레이드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사건·사고 | 암흑기(453566, 6668587667) | ||
| 주요 정보 | 팀 컬러 | 역대 선수 및 인물(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협업, 기타) | 상대 전적 | 팀 응원가(서울의 찬가 · 서울의 모정) | 응원단장 | 엘튜브 | 치어리더 | 제휴카드 | ||
| 역대 시즌 | 역대 시즌 | ||
| 현재 시즌 | LG 트윈스/2026년 | ||
| 영구 결번 | 9 이병규 | 33 박용택 | 41 김용수 | ||
| 팬덤 정보 | LG 트윈스 갤러리 | I love Twins | 유광잠바 | ||
| 라이벌전 | 잠실 시리즈 | 엘 꼴라시코 | 통신사 시리즈 | 엘키라시코 | ||
| 기타 | 방화신기 | 간채골 | 보루갈 | 빅5 | 사랑해요 LG | 엘롯기 | 엘넥한 | 엘롯한 | 헬로키티 | 탈쥐효과 | 추격쥐 | 쥐평 | 엘나쌩 · 엘상바 클럽 | 아워게임 : LG트윈스 | DTD | 이 팀은 솔직히 | 메가트윈스포 | 용택아 나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 올해는 다르다 | 박신홍문 | 오김박 | 상대 전적 | X-존 | }}}}}}}}} |
| | |||
| <colbgcolor=#c30452,#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 |||
| LG Twins | |||
| 정식 명칭 | LG트윈스 프로야구단[1] | ||
| 영문 명칭 | LG Twins Baseball Club | ||
| 창단 | 1982년 1월 26일([age(1982-01-26)]주년)[2] 1990년 3월 15일([age(1990-03-15)]주년)[3] | ||
| 법인 설립 | 1983년 11월 7일([age(1983-11-07)]주년, MBC)[4] | ||
| 법인명 | ㈜LG스포츠 | ||
| 모기업 | LG | ||
| 상장 유무 | 비상장 기업 | ||
| 기업 규모 | 대기업 | ||
| 구단 사무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잠실동)[5] | ||
| 구단명 변천 | MBC 청룡 (1982~1989) LG 트윈스 (1990~) | ||
| 주요 라이벌 | 두산 - 잠실 시리즈 롯데 - 엘 꼴라시코 kt - 통신사 시리즈 키움 - 엘키라시코 | ||
| 운영 법인 | ㈜문화방송 (1983~1985)[6] ㈜엠비씨청룡 (1985~1989) ㈜럭키금성스포츠 (1990~1994) ㈜엘지스포츠 (1995~)[7] | ||
| 연고지 | 서울특별시 (1982~)[8] | ||
| 상징색 | 분홍색 (#C30452) | ||
| 구단주 | 구광모[9] | ||
| 구단주 대행 | 구본능[10] | ||
| 대표이사 | 김인석 | ||
| 단장 | 차명석 | ||
| 감독 | 85 염경엽 | ||
| 주장 | 17 박해민 | ||
| 영구 결번 | 41 김용수 | 9 이병규 | 33 박용택 | ||
| 홈구장 변천 | 동대문야구장 (1982[11], 1988[12], 1989[13])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2026)[예정] 서울올림픽주경기장 (2027~2031)[예정][16] 잠실 돔구장 (2032~)[예정] | ||
| 2군 구장 변천 |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 (1990~2014) LG 챔피언스 파크 (2014~) | ||
| 2군 | LG 트윈스/2군 | ||
| 키트 스폰서 | 프로스펙스 | ||
| 링크 |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
| KBO 한국시리즈 우승 (4회) | |||
| 1990, 1994, 2023, 2025 | |||
| 페넌트 레이스 우승 (4회)[18]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단일 리그 | 1990, 1994, 2023, 2025 | |
| 전·후기 리그 | 1983 후기 | ||
| 양대 리그 | 2000 매직 | }}}}}}}}} | |
| 포스트시즌 진출 (19회)[19]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한국시리즈 | 1983, 1990, 1994, 1997, 1998, 2002, 2023, 2025 | |
| 플레이오프 | 1993, 1995, 1997, 1998, 2000, 2002, 2013, 2014, 2016, 2022, 2024 | ||
| 준플레이오프 | 1993, 1998, 2002, 2014, 2016, 2019, 2020, 2021, 2024 | ||
| 와일드카드 결정전 | 2016, 2019, 2020 | ||
| 볼드체는 승리한 시리즈 | }}}}}}}}} | ||
|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최고 승률 | 0.643 1994년 126경기 81승 45패 | |
| 최저 승률 | 0.365 2008년 126경기 46승 80패 | ||
| 최다 승 | 87승 2022년 144경기 87승 2무 55패 | ||
| 최다 패 | 80패 2008년 126경기 46승 80패 | ||
| 최다 연승 | 10연승 1997년 4월 18일 ~ 1997년 4월 29일 2000년 9월 1일 ~ 2000년 10월 1일 | ||
| 최다 연패 | 11연패 1989년 8월 5일 ~ 1989년 8월 25일 | ||
| 최다 관중 | 1,542,458명 2025년[20] | ||
| 최소 관중 | 239,562명 1988년[21][코로나19] | ||
| 최고 FA 계약 | 6년 124억 원 2024년 오지환 | }}}}}}}}} | |
1. 개요2. 지배 구조3. 디자인4. 홈구장
4.1.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4.2. 2군: LG 챔피언스 파크
5. 역사6. 관중 수 추이7. 팀 컬러8. 팬9. 상세10. 응원11. 타 구단과의 관계12. 역대 선수 및 인물13. 역대 기록14. 역대 캐치프레이즈15. 지역 연고 학교16. 사건 사고17. 여담18. 관련 문서19. 둘러보기1. 개요
| 2025 한국시리즈 통합우승 'THE CHAMPIONS' |
연고지는 서울특별시로, 키움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와 더불어 서울을 연고지로 삼는 세 팀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원년 서울 연고 팀이며, MBC 청룡 시절부터 쭉 서울을 연고로 했기에 3팀 중 가장 오래된 서울 연고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서울 연고 구단이며 종목을 불문하고[23] 리그 창설시부터 서울을 연고로 하여 한번도 다른 지역에 적을 둔 적이 없이 서울연고를 지켜온 유일한 구단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가장 널리 쓰이는 전통의 슬로건이 서울의 자존심.
전신 MBC 청룡을 통해 한국프로야구 1호 승리팀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동시에 서울 구단 최초의 우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24] 홈구장은 송파구 잠실동의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1985년 OB 베어스가 충청도에서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한 후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싼 아마야구 문제로 1986년부터는 두산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신은 MBC 청룡이고, 1990년 1월 럭키금성그룹이 130억 원(현금 100억 원+MBC 프로그램 제작 협찬금 30억 원) 조건에 인수하면서 구단명이 현재의 LG 트윈스로 변경됐다.LG는 1981년 프로야구 출범 구상 당시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 총수였던 구자경 회장이 해외 출장 중이었던 관계로 확답을 내지 못해 놓치고 말았고[25] 결국 리그가 창설된 지 8년 후에 MBC 청룡을 130억원에 인수함으로써 LG의 프로야구 진출은 뒤늦게 성취되었다. 그리고 LG그룹 입장에서는 부산도 좋은 연고지이지만 후에 서울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를 인수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프로야구 출범 당시의 실기가 전화위복이 됐다고도 할 수 있다.
2. 지배 구조
| 주식회사 엘지스포츠 지배 구조 | ||||
| 주주명 | 소유 주식 수 | 지분율 | 비고 | |
| (주)LG | 21,600,000 | 100% | ||
| 합계 | 21,600,000 | 100% | ||
3. 디자인
3.1. 엠블럼/워드마크/심볼
| MBC 청룡-LG 트윈스의 역대 엠블럼 | ||
| | | |
| 1982~1985[26][27] | 1986~1989 | 1990~2005[28][29] |
| | | |
| 2006~2014[30][31] | 2015~2016[32] | |
| | ||
| 2017~현재[33][34][35] | ||
| LG 트윈스의 역대 워드마크 | ||
| | | |
| 1990~2005 | 2006~2014 | 2015~2016 |
| | ||
| 2017~현재 | ||
| MBC 청룡-LG 트윈스의 역대 심볼 | ||
| | | |
| 1982~1985 | 1986~1989 | 1990~2005 |
| | | |
| 2006~2016 | 2017~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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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1990 | 1994 |
| | |
| 2023 | 2025 |
3.2. 상징색
| | |||
| 상징색 | Pantone | RGB | CMYK |
| Red | Pantone 207 C | R165 G0 B52 | C0 M100 Y40 K20 |
| Gray | Pantone 430 C | R109 G110 B113 | C0 M0 Y0 K70 |
| Silver | Pantone 428 C | R167 G169 B172 | C0 M0 Y0 K40 |
| Black | Pantone 426 C | R0 G0 B0 | C0 M0 Y0 K100 |
- 팀 상징색의 경우 MBC 청룡 시절에는 파란색을 메인 컬러, 노란색을 보조 컬러로 사용하였으며 LG 트윈스 시절부터는 검정색을 메인 컬러, 빨간색과 매우 진한 핑크색[36]을 보조 컬러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TV 중계나 스카우팅 리포트같은 서적 등에서는 LG 트윈스를 소개할 때 검정색보다는 진한 핑크색을 주로 사용한다.[37]
- 응원 도구는 노란색 수건 및 클래퍼를 사용한다. 노란색은 럭키금성의 금을 의미하며[38] 창단 초기부터 응원도구의 색으로 사용할 정도로 유서 깊은 아이덴티티 컬러다. 다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는 붉은색 막대풍선을 응원도구로 쓰기도 했다. 원래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썼으나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해태 타이거즈와 막대풍선 색깔이 겹치는 바람에 LG가 색깔을 바꾼[39] 것이다.
- 응원복으로 유광점퍼를 자주 입는 편이다.
3.3. 마스코트
3.3.1. 메인 마스코트
| | |
| 구단이 LG에 인수된 후 처음으로 등장한 마스코트인 쌍둥이 로봇 | 이후 등장한 '팀웍이'와 '근성이'라는 이름의 캐릭터[41] [42] |
| | |
| 2017년 4월 4일, 홈 개막전에 공개된 마스코트 럭키와 스타의 실제 모습[43] | |
| LG 트윈스의 마스코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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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럭키 (왼쪽 타자) | 스타 (오른쪽 투수) |
서울, LG사이언스파크! 국내 최대규모의 과학연구단지로 LG그룹의 우수한 전문 R&D연구원들이 모여있다. 이 곳에서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LG만의 세계 최고 첨단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갖춘 쌍둥이 휴먼 야구로봇 형제 ‘럭키’와 ‘스타’가 탄생하게 되었다. ‘럭키’와 ‘스타’는 탄생과 함께 로봇 최초로 프로야구팀 LG트윈스에 특별선수로 입단, 놀라운 능력과 사람에 가까운 감성으로 야구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신바람 나게 선사하는 중이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
공식 홈페이지 설명
- LG 트윈스의 현 마스코트는 럭키와 스타로 2017년에 처음 공개되었다. 두 캐릭터의 이름은 LG그룹의 과거 명칭이었던 럭키금성(Lucky GoldStar)에서 이름을 따온 듯. 다만 LG 트윈스의 새로운 CI와 로고에 대한 불만의 불똥이 마스코트에까지 튀면서 영 좋지 못한 반응을 얻었다. 두 마스코트의 등번호는 90, 94.[44] 90년대 LG가 우승한 연도에서 유래했다. 컨셉아트는 귀엽게 잘 나온 편이나, 어째 실물로 만들때마다 죽을 쑤고 있다.
- 쌍둥이 캐릭터인 만큼 멀리서 보면 구별하기 힘들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럭키는 유니폼에 네잎 클로버가 그려져 있고, 헬멧을 쓰고 있지만 스타는 유니폼과 얼굴에 별이 그려져 있고, 모자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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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부터 평균 드립의 일환으로 이 둘의 짤방과 함께 온갖 기행 글을 올리는 쥐평 드립이 유명해진 데다 2024년부터는 마스코트들까지 기행에 동참하자 디시 등지에서는 원래 이름보다 쥐평이라고 더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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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스타 | 오른쪽: 럭키[45] |
| 마스코트 탄생 스토리[46] |
3.3.2. 서브 마스코트: TWINS Friends
- 2019년 4월 23일자 KBO 리그 KIA 타이거즈 전 당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출몰한 일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문단 참조. 당시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2:9로 승리하면서 검은 고양이는 당시 캐스터들이 붙여준 '네로'라는 이름으로 마스코트가 되었다. #
- 2020년 4월 창단 30주년 기념으로 해치를 모티브로 한 리뉴얼된 엠블럼과 캐치프레이즈를 발표하면서 '해치'라는 캐릭터를 발표했다.
- 2022년 대형 태풍 상륙을 계기로 신바람에서 모티브를 따온 '윈드'라는 캐릭터를 공개했다.
- 2021년부터 잔망루피가 서브 마스코트에 합류하였다.
3.4.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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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AWAY | SUNDAY | FRI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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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트 스폰서 | 모자 패치 | 유니폼 좌측 견장 | 유니폼 우측 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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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유니폼#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유니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홈구장
4.1.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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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Seoul Sports Complex Baseball Stadium) | |
| LG 트윈스 | |
| 위치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
| 개장 | 1982년 7월 15일 |
| 크기 | 좌우 펜스 100m 좌우 중간 120m 중앙 펜스 125m 펜스 높이 2.6m |
| 잔디 | 천연 잔디[47] |
| 좌석 규모 | 23,750석[48] |
| 더그아웃 | 1루(홈) / 3루(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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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2. 2군: LG 챔피언스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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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챔피언스 파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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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역사#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관중 수 추이
| <rowcolor=#ffffff> 연도별 | 총관중 | 일일 평균 |
| 2025년 | 1,542,458명 | 21,725명 |
| 2024년 | 1,397,499명 | 19,144명 |
| 2023년 | 1,202,637명 | 16,939명 |
| 2022년 | 930,163명 | 12,919명 |
| 2021년 | 116,691명 | 1,621명 |
| 2020년 | 41,437명 | 574명 |
| 2019년 | 1,000,400명 | 13,894명 |
| 2018년 | 1,108,677명 | 15,398명 |
| 2017년 | 1,134,846명 | 15,762명 |
| 2016년 | 1,157,646명 | 15,078명 |
| 2015년 | 1,053,405명 | 14,631명 |
| 2014년 | 1,167,400명 | 18,241명 |
| 2013년 | 1,289,297명 | 20,145명 |
| 2012년 | 1,259,480명 | 18,798명 |
| 2011년 | 1,191,715명 | 18,056명 |
| 2010년 | 1,010,078명 | 15,056명 |
| 2009년 | 975,333명 | 14,778명 |
| 2008년 | 806,662명 | 12,804명 |
| 2007년 | 901,172명 | 14,304명 |
| 2006년 | 718,635명 | 11,407명 |
| 2005년 | 754,888명 | 11,982명 |
7. 팀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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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팀 컬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팬
8.1.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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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한국시리즈 2차전 잠실 홈에서의 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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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한국시리즈 5차전 대전 원정에서의 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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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의 대표적인 인기 구단 중 하나이자, 명실상부 수도권 최고의 인기 구단이다. LG는 2025년 홈 71경기 1,542,458명의 홈관중 기록으로 단일 시즌 최다 홈관중 2위 기록[49]을 보유한 팀이며,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통산 홈 3000만 관중을 돌파[50]한 구단이자,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서 최다인 17번째 100만 관중도 달성하는 등, 현재 KBO 리그를 넘어 한국 프로 스포츠 구단들 중 역대 홈 관중 수 1위 구단 자리를 매번 찍고 있는 대표 인기 구단이다.
한국프로야구 원년부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삼은 덕에 MBC 청룡 당시에도 탄탄한 인기를 구가했고, 1990년 LG 트윈스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에는 청룡 시절부터 이어온 서울 연고지 선점 효과[51], 서울 연고팀 최초의 우승[52]과 1994년의 압도적인 우승 등 KBO 리그에서의 꾸준한 상위권의 성적, 실력과 외모와 인격을 모두 겸비한 훌륭한 선수진 등 인기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며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을 넘어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53] 인기 구단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단일 시즌 관중 동원 100만 명 기록은 1993년부터 기록했으며[54], 또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한 시즌 평균 유료 관중 2만 명을 달성한 단 3개의 구단 중 하나이다.[55] 타 종목에서는 프로축구 FC 서울이 평균관중 2만 기록을 가지고 있으나, 프로야구의 경우 매년 홈에서 60경기 이상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엄청난 기록이다. KBO 리그에서는 44년 역사에 존재했던 12개의 프로구단(쌍방울 및 삼청태현 포함) 중에 단 세 팀만 기록할 정도고, 복수 시즌 기록으로 치자면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단 두 팀만 가지고 있는 기록이니, LG는 자타공인 인기 구단으로서 손색이 없다. 참고로 LG와 롯데는 각각 2013년과 2012년 팬 투표를 통해 프로야구 올스타 전 포지션을 자팀 선수로 채워본 유이한 구단들이기도 하다.[56]
물론 관중 동원 부분에서 LG는 서울을 연고지로 한 덕택에 원정팀 관중도 그날 홈팀 관중수에 포함되는 덕을 꽤 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고[57], 그런 맥락에서 LG와 두산의 관중 수 집계는 일정 정도를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다. LG 팬들은 이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사실 잠실의 공식적인 원정응원석은 3루 내, 외야가 아니라 3루 오렌지석 임에도 불구하고 이전부터 있었던 한국시리즈 잠실 중립경기의 영향과 LG-두산의 공동 사용 때문에 홈 분위기가 도드라지지 않는 구장 특성 등으로 인해 유독 원정팀 팬들이 잠실은 3루 전체를 원정팀의 공간이라고 인지, 이 영상처럼 오렌지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3루 측 좌석에 LG팬들이 자리잡고 응원한다는 것만으로 이를 '비매너'라고 비토하는 경우가 많아서 타 지방구단에 비해 LG 팬덤의 경우 가을야구 정도가 아니라면 3루 내외야에 잘 가지 않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LG 팬들 입장에서는 3루에 앉아서 관중을 홈팀 응원단으로 채우면 '비매너'라는 비난을 받고, 3루를 원정팀 팬들에게 양보하면 'LG 관중은 원정빨', '잠실은 제2의 홈구장'이라는 비아냥이나 들으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는 수준.
또한 통계적으로도 LG의 홈 관중 수가 지방 인기팀들 ’덕‘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한데, 해당 주장이 들어맞으려면 기롯삼한 vs 나머지로 상대팀에 따라 LG트윈스의 평균 관중이 확 나뉘어야 하겠으나, 단적으로 2024년 LG의 경우 주말 3연전에서 각각 KT, NC를 상대로도 잠실에 2만이 훌쩍 넘는 관중을 동원하고, 심지어 키움을 상대로 한 공휴일 경기에서는 주중이었음에도 매진까지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KT를 제외한 전 구단(키움, SSG, NC)과의 매치업에서 매진을 기록했다.[58] 또한 2025년 3루 관중 분포 게시물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선예매 혜택이 있는 연간회원권 가격 인상 이후엔 상대팀을 불문하고 LG 홈팬들의 좌석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서 잠실의 LG 관중 수가 원정팀 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다만 이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인구 분포 구조상 서울보다 비수도권 팀이 자연스러운 팬의 유입이 쉬운 구조이기에[59], 매년 하는 갤럽 프로야구단 호감도 조사에서는 구단 선호도가 기롯삼한에 이은 전체 5위권에 머물고 있어 엘롯기를 리그 최고 인기팀이라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는 일견도 있다. 허나 비수도권팀 팬들이 인용하는 갤럽 여론조사의 인기도같은 경우 오차범위 ±3.1%를 고려하여야 하고 LG, 삼성, 한화의 인기도가 그 안에 형성되어 있어 어느 한 팀의 인기가 더 우세하다 판단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호감도’ 조사이기에 비수도권 팀이 유리한 문항 구성일 수밖에 없다. 지방의 경우에는 서울과 달리 그 지역 연고 구단 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라이트팬의 비중이 높다. 예를 들어 삼성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이만수나 양준혁, 이승엽에서 멈춰있다던지, 아직도 한화를 '빙그레'라고 부르는 등 지금도 야구를 보고 그 구단을 응원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야구 룰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지인을 따라 야구장에 한번 가본 그런 매우 라이트한 경우에도 그러한 조사에서 응답하게 된다면 삼성이나 한화를 택하기 때문이다.
LG는 서울 연고 구단의 특성상 그런 아주 라이트한 팬덤까지 모두 포함한 팬덤 규모는 비수도권 팀에 비해 밀릴 수 있겠으나, 팬덤의 로열티가 상당히 높은 구단으로서 실제로 구단을 응원하러 꾸준히 경기장에 직관을 가고, TV로 중계를 시청하고, 유니폼과 굿즈 소비에 돈을 쓰고, 바쁜 날도 경기 결과 정도는 확인하는, 야구 고관여 팬층은 LG가 여느 비수도권 구단에게도 밀리지 않고 성적 여하에 따라 앞서기도 한다.
당장 갤럽 조사의 경우에도 2024년 갤럽 조사의 경우에는 LG가 삼성을 앞선 조사 결과가 나왔고[60], 데일리스포츠한국에서 2023년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구단 조사에서도 LG는 KIA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인기 지표인 시청률 통계의 경우 가장 최근의 통계인 2025 구단별 시청률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수도권 구단이 유리한 TV 시청률임에도 불구하고 LG가 삼성을 누르고 4위를 차지했으며, 이전의 2021-2022 시즌 시청률 통계를 보면 LG가 평균 시청률과 고정팬 시청률, 생중계 시청자 합계 수 모두 KIA와 롯데에 이은 3위로서 다른 지방 구단보다 앞서는 지표가 나온다.[61][62] 매 경기 네이버 문자 중계창에서 발급받는 "MY 티켓"의 경우 성적이 뒷받침된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으로 KIA와 롯데를 누르고 1위를 기록했으며, 기롯삼한이 오랜만에 힘을 쓰는 2024년에도 너끈히 3위권을 지키고 있다.2022년 2023년 2024년
또한 구단 굿즈 매출 역시 잔망루피, 무너, 코카콜라, 빠더너스. 등 10개 구단 중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마케팅이 가장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구단 중 하나이다 보니 SBS 야구에 산다에 따르면 LG의 경우 타 팀과 매출 단위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또한 키움이 창단 초기에 관중 동원을 위해 발행한 초대권에도 주말 KIA, 롯데, LG전은 매진되는 경우가 많으니 사용 시 사전에 구단에 문의하라는 문구에 들어간 세 구단 중 하나였다.[63]
따라서 이런 점에 비춰볼 때 LG 트윈스는 여타 비수도권 구단에도 밀리지 않고, 성적 여하에 따라서는 삼성, 한화를 넘어설 수도 있는 수준의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수위의 인기 구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64]
8.2. 분포
시대별로 보자면 서울 연고지를 선점하며 인기몰이를 하던 MBC 청룡 시절과 '신바람 야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기도 측면에서 잠실 라이벌 두산을 압도[65] 하며 수도권을 넘어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명성을 떨쳤다. 다만 그 이후에 2003년부터 암흑기가 찾아오고, 이상훈, 김재현 등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부당 대우 등 구단 프런트의 삽질이 이어지며 팬들의 정이 떨어진데다 선수들의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인해 많은 팬들이 실망감에 이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빠질 사람은 다 빠졌던 시기에도 관중 동원 순위에서 3위 정도는 너끈히 찍었을 정도로 여전히 높은 인기는 유지되었다.[66]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 밀려 프로야구의 인기가 많이 떨어져서 연 관중이 불과 200여만 명대에 불과했던 2000년대 초중반 암흑기 때도 총 8개 팀 중 유일하게 평균 관중 1만 명대, 연 70만 관중을 유치하며 전체 리그 관중의 30% 이상을 홀로 동원, 수위의 인기 구단으로 인정받았다.그리고 마침내 2013년, 길었던 암흑기에서 벗어나고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자 지난 10년 동안 야구에 대한 관심을 잠시 줄였던 숨은 LG 팬들도 야구장으로 다시 돌아왔고, LG는 그 해 홈 관중 1,289,297명을 기록하여 2007년 이후 6년만에 관중 동원 1위를 재탈환하였으며, 평균 관중 2만 명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며 1995년에 세웠던 구단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우며 다시금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67] 심지어 올스타전에서는 KIA, 한화 등 수위급 지방 인기 구단과 같은 팀으로 속해있음에도 웨스턴 올스타를 11개 전 포지션 LG로 채우는 화력을 보여주기도 했다.[68] 이어진 2014년에도 LG는 홈 관중 118만명으로 관중 동원 1위를 유지했고, 2015년에도 비록 팀 성적은 9위를 기록하며 부진했음에도 홈 100만 관중 이상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잠실을 가득 메우며 구름 관중을 동원한 데다가 당시에는 리그 최고 수준으로 꼽혔던 응원가 퀄리티, 떼창 응집력까지 더해져 이 시기를 1990년대에 이은 LG 인기의 중흥기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단적으로 2014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손민한(NC) VS 이병규(LG) 이 영상만 봐도 LG의 인기와 LG 팬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1990년대에 형성되어 대를 이어가는 기존의 LG 팬덤을 제외하고는 신생 팬을 유입하는 데 있어 LG가 겪었던 너무나 길고 긴 암흑기 때문에 2010년대에는 이른바 엘롯기로 상징되는 '인기는 많으나 성적은 안 좋은 팀'의 이미지가 있었다. 동시에 2015년부터 잠실 라이벌 두산이 맞이한 최대의 전성기로 인해 대부분의 신생 서울 팬들을 두산에게 빼앗겼었다.[69] 이 때문에 LG 팬들은 젊은 팬덤의 유입이 줄어들어 점점 평균 연령대가 높아졌고, 동시에 팬덤이 고착화되며 KBO 리그에서 롯데 못지않은 강성 및 울트라스 성향이 되었다. 그에 반해 옆집 두산은 반대로 상위권 팀 성적에 힘입어 젊은 팬들의 유입이 많아져 평균 연령대가 낮아졌다[70]
이러한 팬덤 증가에 대해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 2019년 차명석 단장이 부임한 후 그동안의 LG와는 다르게 프런트 자체적으로 구단 라이브 방송인 '엘튜브는 소통하고 싶어서'를 운영하고, MBC SPORTS+의 스톡킹 등의 프로그램에도 10개 구단 최초로 구단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 최고위 수뇌부라 할 수 있는 단장이 출연하는 등 뉴미디어를 이용한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에 이런 증가 추세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거기에 정우영이 22년 만에 신인왕을 차지하고, 이후에도 2020년 홍창기, 2021년 문보경, 2022년 문성주, 2023년 신민재, 2024년 손주영, 2025년 송승기, 김영우 등 젊은 선수들이 1~2년차 이내에 빠르게 1군에 자리잡아 팀의 체급이 늘어나 구단 성적도 2019년부터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면서 꾸준한 우승 컨텐더가 되었기에 신규 팬덤이 유입되고 있고 돌아오는 팬들도 많아지고 있다. 콜라보레이션 유니폼 출시와 같은 다양한 마케팅도 젊은 팬들의 유입을 이끄는 요소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성적이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LG가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까지 성공하자 총 관중 수는 무려 120만을 넘었고 평균 관중 수 역시 16,000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했다. 이는 올해 KBO 리그 총 관중 수 810만 중에서 무려 15%에 해당한다. 이는 암흑기 탈출 이후에는 다시금 많은 새로운 야구팬들이 LG로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또한 두산의 경우 2023년에 LG보다 홈경기 수가 2경기가 더 많은 73경기를 했고, 또 만원 관중을 거의 보장할 수 있는 개막전과 어린이날, 추석 3연전, 광복절이나 석가탄신일 등 공휴일 경기 대부분이 모두 두산의 홈경기로 편성되었음에도 백만 관중에 실패했는데, LG는 홈경기를 두산에 비해 두 경기 덜 치르면서도 10구단 체제 하 최초로 120만 관중을 동원했기에 더욱 의미가 큰 기록이며 실로 서울 야구 1위 팀의 위용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반전된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기가 바로 10월 15일 두산과의 홈 최종전으로, 이 경기에는 만원 관중이 가득 들어찬 가운데 두산의 응원단이 위치한 3루 오렌지석과 그 위 네이비 일부를 제외하고는 3루 외야는 물론이고 3루 내야 블루석, 네이비석, 레드석까지 모두 LG의 노란 물결로 물들여 누가 잠실의 주인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며 서울의 자존심이라는 트윈스 전통의 슬로건을 증명해 냈다. 7회말 두산의 원정 관중들이 대부분 동참하지 않았음에도 7바퀴가 돌아갔던 잠실의 파도타기는 가히 장관이었다.[71]
2023년 정규시즌 후, 대망의 한국시리즈에서도 21년간 한국시리즈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LG팬들이 몰려들어 예매 대기열이 기본 10만에 최대 40만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게 치열한 양상을 보였고[72], 한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티켓 리셀가가 최대 1250만 원에 달하는 등 일면 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열기가 일었다.[73] 경기 내내 잠실은 3루 오렌지석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LG 팬들이 점령하다시피 했고[74] 원정인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도 3루 내외야는 물론이고 홈 응원석이 위치한 1루 응원지정석을 제외한 1루 외야와 1루 스카이석마저 LG 팬들이 차지하면서 대단한 화력을 보여줬다. 또한 한국시리즈 직관 티켓을 얻는데 실패한 팬들이 몰려 한국시리즈를 중계해주는 CGV 영화관 역시 예매 오픈과 동시에 거의 매진, 시리즈 도중 상영관을 6개 더 늘렸고 심지어 중고 사이트에서는 한국시리즈를 볼 수 있는 영화 상영관 티켓마저 암표로 등장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는 구단이 2002년 이후 21년 만에 진출한 한국시리즈인데다 kt가 팬덤 규모로는 최하위권인 팀이어서 가능했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29년 만에 드디어 통합 우승에 성공하면서 각종 미디어와 매스컴의 집중과 함께 급격히 또 팬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2024년부터는 이들도 LG 팬덤의 새로운 구성 요소가 될 듯 하다. LG가 우승권 팀이 되기 전에는 앞서도 언급했듯 기나긴 포스트시즌 공백 탓에 라이트한 성향의 젊은 팬들 유입이 적어 감성적, 순혈주의 성향의 극성 팬 비중이 높았다. 이는 팀을 암흑기때부터 크게 흔드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 젊은 팬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해결되고 있다. 2024년에는 리그 전반적으로 라이트팬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LG 역시 이들에게 입문이 용이한 서울 구단이면서 동시에 디펜딩 챔피언이자 2020년대 대표 강팀 이미지[75]로 어필하면서 종전 롯데가 가지고 있던 한 시즌 홈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며 약 140만 관중이 잠실 LG 홈경기에 입장했다. 또한 2년 만에 정규시즌 1위를 탈환한 2025년에는 다시 150만 관중으로 1년 전 기록을 경신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있었던 신규팬 유입 부족 문제는 사실상 해결되었다. 또한 마침 서울 지역 신규 야구팬 유입의 직접적 경쟁 상대인 키움과 두산의 성적이 최근 들어 좋지 않고 두 팀의 스타플레이어의 유출이나 노쇠화 문제가 뒤따르며 신규 팬덤은 LG로 더욱 이동하는 흐름이 되고 있다. 또다른 라이트 팬덤의 유입 요인은 최강 몬스터즈도 들 수 있는데 멤버 중 LG의 영구결번인 박용택을 비롯하여 정성훈, 서동욱, 박재욱 등 전직 LG 트윈스 출신의 비중이 높은 점도 유입 통로가 되고 있다.
LG는 팜 시스템 구축을 통해 2020년대 들어 수많은 신인급 선수들이 1군에 빠르게 자리잡으면서 팬들에게 유입이 될만한 요소들이 많다. 게다가 김현수, 박해민, 박동원 등 고액 FA로 영입되는 선수들도 LG에서 데뷔한 프랜차이즈 선수 못지않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인기가 많다.[76] 적어도 2020년대 이후로는 라이트한 성향의 팬덤의 유입도 상당한 편인데 이들은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야구장에서 응원 문화를 즐기고 오거나 경기는 귀찮아서 하나하나 잘 챙겨보지 않아도 응원팀은 LG라고 밝히는 성향이다. LG 프랜차이즈 스타인 홍창기의 응원가가 컬트적 인기를 얻다가 2025년 들어 선수 응원가로는 최초로 TJ 노래방에 수록된 것도 인기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2010년대까지 신규 팬 유입에 어려움을 겪었던 다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배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런 점도 이제는 거의 해결되어가는 추세다. LG가 전성기를 맞았던 1990년대에는 자체 팜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와 국가대표를 다수 배출하며 인기팀 반열에 올랐지만[77]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는 최대 라이벌 두산이 다수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고, 또 다른 서울 연고 구단인 키움이 이정후, 김하성을 배출할 때 LG 내부에서는 박용택 이후로 성장한 슈퍼스타가 사실상 없었고, 2009 WBC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봉중근 이후로 국가대표에서 맹활약한 LG 선수가 없는 것도 신규 팬층을 유입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78]
그러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오지환이 맹활약하며 오랜만에 LG 프랜차이즈 출신이 국가대표 경기에서 맹활약했고, 2023 WBC에서도 최다 6명이 국대에 승선하면서 이런 흐름에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또한 LG 순혈인 고우석이 2023 시즌 종료 후 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진출에 성공하면서 첫 메이저 리그 포스팅에도 성공했다.[79] 2024 프리미어 12에서도 국가대표팀에 전 구단 중 최다[80]인 6명[81]이 승선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이 대회에서 골고루 대활약을 펼치면서 언론에서 국대 트윈스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지난 2000년대나 2010년대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상황이 뚜렷하게 나아지고는 있다.
2026 WBC에서도 압도적 다수인 7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하며[82][83] 위에 서술했던 내용들도 다 옛말이 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팬들이 국대에 우리 선수가 너무 많이 가서 시즌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국대 트윈스 칭호가 점점 익숙해지는 중.
팬층은 연고지 서울을 위주로 수도권 전체에 넓게 펴졌다. 수도권을 대표하는 구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편. 특히 SRT 수서역을 기준으로 동서울과 동부 경기권은 LG의 핵심 팬덤 분포지역이다. 서울의 행정구역을 보면 동서울을 기준으로 야구장과 종합운동장 인근인 송파구를 포함해서 서초구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이외 노원구, 도봉구, 동대문구, 은평구, 중랑구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강’(江)자가 붙는 자치구인 강북구, 강서구, 강남구, 강동구 두산과 비슷하나 소폭 우위에 놓여있다. 서울 토박이나 경기도 북부지역 출신 비중이 높은 편인 강북 지역은 LG 팬덤이 많은 편이다. 참고로 현재 서울의 인구가 동남부서울만 아니라 서북부서울에 해당되는 SSG 랜더스의 연고지인 인천광역시와 인근인 부천시를 포함해서 경기도로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어차피 수도권은 서로 가깝고 교통도 편리하므로 LG 팬심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84][85]
비수도권으로 팬 분포를 보자면, 모기업 LG화학 공장이 있는 충청북도 청주시[86], 충청남도 서산시[87]만 아니라 영남에도 경상북도 구미시[88]의 LG이노텍 구미공장에 이어 경상남도 창원시에 큰 규모로 위치하고 있는 LG전자 창원공장[89], 그리고 같은 모기업의 형제 농구단으로 KBL의 대표 인기 프로농구단인 창원 LG 세이커스가 자리잡고 있기에 경상남도의 특례시로 승격한 창원시[90]에도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팬덤 연고지이지만 회사 창업주 연고이자, 전자공장의 큰 존재감으로 인해 이왕이면 야구와 농구를 모두 LG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이 보이며, 실제로 창원NC파크 원정석에도 창원-마산의 LG팬들이 꽤 많이 있다.[91]
2020년부터는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MLB가 연기되고 대신 KBO 리그가 ESPN의 전파를 타면서 은근히 인기를 불려나가는 중이다. 원래부터 KBO 리그에 관심이 있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KBO 리그 팀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미국 시청자들 입장에선 무언가 자신의 시선을 확 잡아끌거나 자신과의 연관성이 있는 팀을 선택하여 응원을 하려 하는데, 가전시장에서 입지가 탄탄한 LG다 보니 집안에 LG제 가전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내가 LG제품 많이 쓰니까 LG나 응원해 볼까"라며 선택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 마침 성적도 꽤 잘 나오자 이들이 고정 팬이 되어가고 있는 것. 여기에 같은 구단명을 가진 미네소타 트윈스의 팬들이 LG 팬이 된다거나 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92] 덕분에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한지붕 라이벌인 두산의 팬들과 서로 잠실의 주인은 우리라며 싸우거나[93], 판매 상품군이 비슷한(가전과 스마트폰) 삼성 팬들과 라이벌리를 세우기도 하는 등 미국 팬들 나름의 즐기는 법을 찾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모습에 한국 팬들이 정보도 없었을 텐데 저런 걸 어떻게 이렇게 빨리 파악했나 혀를 내두르기도 하는 중이다.
8.3. 성향
팀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 이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가 바로 원정 경기 관중 결집력인데, LG는 연고지인 서울은 물론, 전국 각 지역으로 팬덤이 많이 퍼져있고 특히 LG는 팬 동호회 문화가 꽤 활성화되어 있어 서울에 거주하면서도 각 지역으로 단체 원정 응원을 가는 팬들이 꽤 많다.[94] 그래서 평일 비수도권 원정이더라도 중계를 틀면 LG의 공격 때는 언제나 원정 팬들의 LG 응원 소리가 들리고는 한다. 2014년 10월 17일 사직 원정[95] 거기에 2020년대 들어서는 구단에서 주말에는 비수도권 원정경기에도 응원단을 파견하면서 원정 규모가 상당히 늘었다. 2023년 7월 8일 사직 원정 2025년 3월 29일 창원 원정무엇보다도 포스트시즌에 접어들면 더욱 더 화력이 거세지는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2014년 마산에서 치러진 2014년 준플레이오프 1·2차전이었다. 시리즈 당시 커뮤니티와 관련 기사에는 서울역과 고속도로 휴게소에 온통 유광잠바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전언이 쏟아졌고, 경기장에서는 홈팀 NC를 누르고 원정 응원석인 3루 내야뿐만 아니라 3루 외야 쪽까지 전부 LG를 응원하는 상징인 노란 수건으로 뒤덮어 버렸다. 그 후에 장소를 옮겨 홈인 잠실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 4차전에서는 3루 원정 응원단상 앞인 220·221블록을 제외한 3루 내야석 전체와 3루 쪽 외야까지 전부 LG 팬들로 점령해 버렸다. 당시 김경문 NC 감독부터 이호준, 김태군 등 상대 선수진과 코치진들마저 감탄했을 정도. 물론 당시 NC가 1군 진입 2년밖에 되지 않았던 신생 구단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왕년의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던 LG 팬덤이 아직도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줬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9년이 지난 2023년에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NC 팬들 입장에서도 원정 응원이 꽤나 강렬했던 듯.
이러한 흐름은 2025년 한국시리즈에서 절정에 달해, 19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당해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복병 한화 이글스를 상대한 대전 원정에서 3루 응원석 뿐만 아니라 중앙 3루, 2층, 3층마저, 그야말로 대전 3루 전역을 전부 노란 수건으로 뒤덮는 장관을 연출했다. 우승을 결정지은 5차전 뿐만 아니라 대전 원정 내내 홈팀과 엇비슷한 응원전을 보여주면서 수위의 인기구단임을 증명했다. 2025 한국시리즈 대전 경기는 모두 평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LG 팬들의 팀에 대한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확인할 수 있다.
LG 팬덤의 성향 중 하나는 1990년대부터 데이터 야구를 강조해온 구단답게 세이버메트릭스 등 데이터에 매우 밝은 팬들이 많다는 것.[96] 이는 올드 팬덤이나 젊은 팬덤 모두 해당이다. 특히 리빙 레전드가 되고 있는 오지환에 대하여 삼진 많다는 이유로, 실책 많다는 이유로 깎아내리고 저평가하려는 타팀 팬들이나 기자들에게 대처하기 위해 LG 팬덤은 다른 팬덤보다도 더욱 세이버 스탯 등 데이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97] 이 때문에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기 좋은 수치, 예를 들면 타자가 타율 좋고 도루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투수가 승리가 많다는 이유로 좋은 선수라고 하지 않는다.[98] 컨택 능력이 낮고, 볼삼비가 안좋고 타출갭이 떨어지는 타자[99]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이 때문에 감독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타자[100]나 수비 스탯이 완전히 망가진 선수를 주구장창 주전으로 기용하려고 한다거나 엔트리를 잡아먹는, 즉 데이터를 거스르려는 운영을 할 때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상당하다. 2023년 우승한 시즌조차도 염경엽 감독의 운영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이유도 도루자, 견제사, 주루사 등 지나친 주루 플레이 미스로 팀 주루 WAA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고 이를 팬덤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응원 도구로는 현재 노란색 응원수건(8,000원)이 사용된다. 또한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입으로 불어서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응원도구(일명 '막대풍선')를 사용한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노란색 응원방망이를 사용했는데, 1997년 가을부터 응원방망이 색깔이 현재의 빨간색으로 바뀌었다.[101] 가끔 노란색 응원수건과 비슷한 크기의 노란색 응원종이와 클래퍼를 경기 도중 나눠줄 때가 있었는데, 2023년부터 KBO와 프로야구 10구단이 맺은 환경 보호 협약에 따라 막대풍선과 같이 사라졌다. 다만 아직 그 이전에 나눠준 클래퍼를 보관하고 있다가 개인적으로 들고 와서 응원에 사용하는 팬들은 꽤 있다. 또한 유니폼 못지 않게 많이 입는 응원복으로 LG 팬들의 한이 서린 점퍼이자 영혼의 친구, 가을의 상징 유광점퍼가 있다.
한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LG 홈경기를 가 보면 현재 LG의 줄무늬 유니폼 외에도 파랑+노란색의 잠바나 모자를 쓰고 있는 팬들이 많은데, 이것은 옛날 LG의 전신 MBC 청룡의 유니폼이다. LG 구단에서는 자체적으로 청룡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팬들이 주문제작 등을 통해 청룡 관련 상품들을 소유하고 있고, 임찬규가 플레이어 유니폼을 맞출 때 MBC 청룡 색깔로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102]
팬층이 다양한 연령대에 팬층이 골고루 분포해있다보니 같은 팬덤 내에서 팀 운영 관련하여 커뮤니티 키보드 배틀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장년 팬층이 이용하는 쌍둥이마당(쌍마)이나 엠엘비파크의 분위기와 젊은 팬층이 이용하는 LG 트윈스 갤러리의 팬 성향과 분위기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며 갈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는 중이다. 차명석 단장 부임 이후에는 유튜브 등을 통한 구단 차원의 소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팬들도 있으나, 동시에 지나친 감성팔이 위주의 구단 운영에 반감을 가지는 여론이 젊은 팬들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으며, 2024년 들어 KBO 리그의 인기가 급증한 가운데 젊은 팬들이 응원지정석인 오렌지석 유입을 막는 선선예매 제도나[103] 진부한 경기장 이벤트 등 프런트의 부족한 마케팅 실력에 대한 성토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응원석 문제의 경우는 2025년 연간회원 전면 개편을 통해 장기 회원의 선선예매 혜택에서 오렌지석이 제외되며 해결되었다.
8.4. 유명 트윈스 팬 목록
- 가온(Xdinary Heroes): 라이브 방송에서 어릴 적부터 엘지 트윈스의 팬[104]임을 밝혔다. 2025년 9월 12일 NC전의 시구자로 섭외되었으나, 아쉽게도 경기가 우천 취소되었다.
- 간미연: 원래는 두산 베어스 팬이었는데 채리나 때문에 갈아탔다고 밝혔다.
- 감스트: 그 전까지는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 없었으나, 2021년경 우승을 못했던 팀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팀을 응원하고 싶다고 했고 그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LG를 선택했다. 2023년 한국시리즈 2차전을 당시 여자친구인 뚜밥과 직관을 오기도 했다.
- 강병욱: 전 응원단장 및 LG 사원. 2005-2006 시즌 형제 농구팀인 LG 세이커스의 응원단장을 시작으로 엘사심을 보여주었다.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응원단장으로 5년을 맡았다. 그리고, LG 트윈스 응원단장으로 2년간 활약했다. 이후 LG생활건강에 입사하면서 팬심과 애사심을 모두 보여주었다.
- 강수진(KBS 성우)
- 강우석[105]
- 경리: 시구만 하면 이긴다는 소문이 있다. 시구하면서 응원하게 된 경우.#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3년 7월 21일에 그 징크스가 깨지고 말았다. 2025년 4월 11일 잠실 두산전에 직관을 온것이 확인되었다. 박동원 역전 쓰리런에 3점 냈다며 좋아한것은 덤.
- 고유진
- 고현정: 배우 장동윤이 고현정과 변영주 감독이 LG팬이라고 라디오에서 밝힌 사실이 있다.[106]
- 공명(배우): 시구를 계기로 팬이 되었다고 한다. LG트윈스의 우승을 축하한다고 SNS에 남기기도 했다.
- 공형진: LG의 레전드 선수인 야생마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을 정도로 광팬이다. LG의 광팬이지만 필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이 때문에 직관을 오는 것을 싫어하는 팬이 많다. 마지막 경기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가렸던 2013년 10월 5일 두산전에서는 계속 지고 있다가 공형진이 퇴장한 후에야 팀이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그리고 그 해 플레이오프 3, 4차전 모두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팬들이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는데, 결국 우려대로 LG는 두 경기 모두 패배하며 역대급 시즌을 허무하게 마무리하고 말았다.
- 곽윤기: 시구 때 가을 야구 가자며 팬심을 드러냈다.
- 구교환
- 구성환
- 구준엽: 경기 종료 후 응원단상에서 DJ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그 경기가...
- 규빈(가수): 2024년 7월 21일 시구를 하면서 성덕이 됐다.
- 기현: 2023년 6월 16일, 같은 멤버 주헌과 시구에 참여한 적 있다. 또한 이후 공식 팬카페를 통해 LG의 팬임을 언급한 적 있다.
- 김광수(강사): 강의 중 친구들은 대부분 KIA 타이거즈 팬이지만 본인은 MBC 청룡 때부터 응원했다고 한다.
- 김나예: 본인이 LG 팬임을 밝혔다.
- 김동욱
- 김동원: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 선수 곽한영으로 출연한 배우. LG의 암흑기를 모두 지켜본 팬이라고 한다.
- 김민설: 배우 및 아나운서. 고척 스카이돔 원정 직관 사진이 있다.
- 김민종: 2024 KBO 플레이오프 3차전 시구자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엘린이었다고 본인이 이야기했다.
- 김보현: 모델 겸 유튜버.
- 김세의: 뜬금없이 박용만을 비난할 정도로 극성 LG 팬이다. LG 유니폼을 입고 방송하기도 하였다. # 다만 최근에는 정용진의 영향으로 인해 SSG 랜더스도 같이 응원하는걸로 보인다.
- 김세인
- 김소연: MBC 청룡 시절부터 팬이었으며, 최애 선수가 이병규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소연이 데뷔한 1994년에 LG가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2015년부터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했는데, 재밌게도 라이벌 팀 두산 팬인 곽시양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9월 27일 잠실 야구장에서 함께 LG와 두산의 경기를 직관했는데, 그날 두산의 선발투수 유희관은 1.2이닝 동안 LG 타자들에게 난타당하며 8실점 후 강판되었고 경기는 LG가 10:3으로 승리했다. 당시 두 명의 표정이 대비되는 사진이 퍼지기도 했다. 또한 2025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 김수영
- 김시아 & 김보민 자매: 아역배우 자매들. 어렸을 때부터 자주 LG의 야구를 봤다고 하며, 부모님이 LG 팬이라고 한다.
- 김여운: 코미디언. 코미디빅리그에서 LG의 골수 팬임을 밝혔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겸 목사. 김용민의 뉴스관장에서 직접 밝혔다.
- 김용준
- 김은희: 드라마 시그널의 대본 작가로, 인터뷰에서 밝혔다. 2023년 9월 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시구도 했다. 참고로 남편은 두산 팬으로, 장항준이 수입이 더 많던 시절엔 김은희가 두산 쪽 자리에 앉아 혼자 응원하다가 수입이 역전되고 나선 그 반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같이 직관은 잘 안 한다고 했으나 2023년 10월 8일 두산과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장항준이 시구에 나서자 같이 직관을 가긴 했는데, 남편이 시구를 했던 두산과 롯데의 경기에도 LG 모자를 쓰고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대쪽같은 팬심을 보여줬다. 2023년에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이후 엘튜브에서 제작한 기념 다큐 '29년의 바람 - 새바람을 일으키다'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 김이나
- 김이서: 다만 결혼은 KIA 타이거즈 포수 한준수와 함으로써 이제 아닐 가능성이 있다.
- 김인이
- 김인호: LG의 대표 응원가인 서울의 아리아 직캠 영상에 댓글을 달았고, 방송 컨텐츠로도 직관을 자주 가는 것을 보면 찐팬인 듯 하다.
- 김장(성우)
- 김정환: 2021년 8월 29일 시구자로 내정되었는데, 어릴 때부터 LG의 찐팬이었다고 밝혔다.
- 김준선: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응원가로 자신의 대표 히트곡 아라비안 나이트를 개사한 응원가를 직접 불러서 쾌척했을 정도다. 다만 또 다른 가르시아가 영입되었을 때는 저작권이 걸려 응원가를 쓰지 못했다.
- 김진아: 처음 야구장에서 응원한 팀이 LG였다는 영향으로 현재도 응원한다고 한다.
- 김초롱(아나운서): 시구 때 중계에서 오랜 LG 팬이었음이 알려졌다.
- 김태희: LG그룹 전속모델의 영향으로 가끔 잠실을 찾는다. 그러나 2012년 이후로는 야구장에서 모습이 안 보인다.
- 김택용: 자신의 개인 방송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밝혔다.[107]
- 김판기
- 김학래: 원래는 자신의 고향팀 한화 이글스의 팬이었는데, 서울로 상경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LG의 경기를 더 많이 보다보니 LG 트윈스의 팬으로 자리잡았다고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밝혔다.
- 김한국
- 김한규: 現 제주시 을 국회의원.이쪽은 아예 임찬규와도 닮은꼴이다.
- 김한나: 소울리스좌로 유명한 에버랜드 캐스터로, 본인의 유튜브 등을 통해서 LG 팬임을 인증했다. #
- 김한별: 광주 지상파인 KBS광주방송총국 전직 아나운서이며 서울 출신이다.
- 김현식
- 김현우
- 김현지
- 김현태[108]
- 김형준(기자)
- 나가이 마오
- 나다: 인스타에 홍창기 유니폼을 입고 잠실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 남궁혜미: 치어리더를 그만두고 나서도 LG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 노윤주: 방송인. SPOTV 메인 아나운서. 스포츠 캐스터로 알려졌으며 입사 이전 체육대학 출신이다. 체육대학을 전공하면서 스포츠 팬으로도 활동 중이다. 휴무 때 잠실 야구장에 직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09] 추가로 농구도 좋아하는 방송인으로 형제 농구팀인 창원 LG 세이커스의 팬으로도 알려졌다.
- 다현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팀이 29년만의 우승했을 당시 경기장에 그가 작곡한 노래 축배가 나왔다.
- 데니 안: 봉중근과 큰 이병규의 열렬한 팬이다. 20세기 미소년에서 매니저와 같이 두산전을 관람하는 것이 방송되었다. 경기 관람 전에 봉중근을 직접 봤는데 걸그룹 멤버를 보는 것보다 더 떨렸다고 한다. 헌데 유광잠바 조공 논란에 휩싸이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금지어 취급이다.
- 뚜밥: LG 팬인 전 남자친구 감스트의 영향으로 입덕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야구에 큰 관심을 두지 않다가 감스트와 함께 직관한 인생 첫 야구 경기가 4:0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박동원의 홈런으로 극적으로 역전한 한국시리즈였기에 순식간에 LG 광팬이 되어버렸다. 감스트보다 LG 관련 지식이 더 많은 것은 덤.
- 랩퍼성큰
- 레오 란타: 레오티비로 알려진 핀란드 유튜버. 유튜브에 엘지 유니폼을 입고 직관을 간 사진이 올라왔다.
- 루코: 유광잠바를 입고 유튜브 방송을 하기도 했으며, 2020년부터 종종 트위치에서 LG 중계 방송을 한다.
-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이다. 원래는 평범한 LG 팬으로 하이텔 시절 LG 야구에 대한 글을 게시하다가 LG 프런트로 채용되고, 이후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여러 보직을 거쳐 단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 류승룡: MBC 청룡 시절 개막전 만루홈런 경기를 직관 갔어다고 밝혔으며 백인천 감독을 포함 서용빈, 이종도 선수로 인해 아직까지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2025년 7월 10일 미키마우스와 함께 시구를 하며 성덕이 되었다.
- 마이곰이: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LG를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 마이린: 본인이 직접 LG를 응원한다고 밝혔다.
- 무적핑크: 2013년 도중 블로그에 '엘지망가'라는 LG 관련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 문빈: 2018년에 같은 팀 동료 차은우와 시구 시타를 맡은 이후로 팬이 되었다고 한다.
- 문상민: 야구를 매우 좋아한다고 하며, 본인의 SNS에도 LG 직관을 간 모습을 꽤 자주 올린다. 다만 고향은 청주라 마음속에 한화도 있다고.
- 문상훈: 출연한 한 유튜브 채널에서 밝혔다. 같이 출연한 장항준은 두산 팬이다. 그 후 2023년 9월 23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시구를 했다. 야생마 이상훈을 따라하려 스파이크를 신은 채로 마운드를 향해 달려나가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그 후에는 본인의 플랫폼인 “빠더너스”와 LG 트윈스 간의 콜라보가 이뤄지며 다양한 굿즈를 내놓고 있다.
- 명재현: 이주헌과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고, LG 팬임을 밝혔다.
- 미연
- 박규원
- 박건욱
- 박병은
- 박성웅: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LG 팬인 걸 밝히지 못한다고 울분을 토하였다. 이후 LG의 명예 선수로 위촉되었으며, 구단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면서 대표 팬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어깨 근육 파열 부상이 있음에도 유광잠바를 입고 부상 투혼 시구에 나서기도 했다.
- 박보미: SNS에 LG 팬 인증 포스트가 많다.
- 박상면: 2013년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에서 한화가 넥센을 이겼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 환호하던 LG 팬으로 중계 영상에 잡혔다.
- 박승희: 인스타그램 질문에서 팬의 질문에 시구했었던 팀이 LG라 응원할 것이라고 밝혔고 결혼해서 남편이 LG 팬이라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 박신영: 페이스북 업로드를 한창 꾸준히 하던 2010년대 초중반에 LG의 팬임을 프로필을 통해 공개했다.
- 박용우: LG 팬이지만 예외로 삼성의 양준혁이 우상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 박용진: 2025년 들어 박용택과 찍은 영상 등 LG 관련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 박완규: 밴드 부활의 보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LG 팬이라고 밝혔다.
- 박정훈: TV조선, 채널A 기자출신 정치인
- 박종윤: 2021년 8월 23일 첼시 FC와 아스날 FC의 경기를 입중계하던 도중에 본인이 밝힌 사항이다. 시청자의 "아스날 팬이면서 한화 팬이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에 자기는 LG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현 시점에서는 여러 사정으로 야구를 열심히 보진 않지만 어릴 때 유광잠바를 입고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 몇 번 간 적이 있다고 밝혔다.
- 박재범
- 박준희
- 박항서
- 박지현 : 前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2023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구형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직관했다. 이후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개인 SNS에 축하 메세지를 업로드했다.
- 변영주: 배우 장동윤이 자신은 삼성라이온즈의 팬이고 감독인 변영주는 LG팬이라 여유가 넘친다며 고현정도 LG트윈스 팬이라 두분이 자길 놀린다고 말했다.
- 배기성: 응원가 무적의 LG와 서울의 모정을 불렀다.
- 배슬기
- 배인혁: 어린 시절부터 LG 트윈스의 골수 팬으로, 학창 시절에는 음악보다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는 동창의 증언도 있다.[110] 현재도 팬심은 열렬하며,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야구 경기 관람 인증샷도 올렸고 인스타그램에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는 스토리도 올렸다.
- 배재학: 페이스북에 직관 인증을 했다.
- 백성문
- 백호
- 복고맨
- 사뮈
-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교수. MBC 청룡 시절때부터 응원하면서 청룡 어린이 회원 출신이다.
- 서연정: KLPGA 프로. 2022년에 김해림 프로와 시구, 시타를 진행했고, 그외에도 대회를 할 때 '무적 LG'가 써있는 부채를 들고 있기도 했고 평소에도 LG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특히 2023년에 본인이 첫 우승을 했을 때는 LG의 주요 선수들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 설연: 최근 헬로키티 유니폼을 입고 직관 다녀온 영상을 유튜브 틱톡 등에 업로드하였으며 한 누리꾼이 무적엘지라고 쓴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 소리
- 손연재: 2012년에 시구를 한 이후 팬이 되었다고 한다.
- 송창의: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해 스크린 야구장을 갔는데 그때 LG 유니폼을 입으며 팬심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 석주엽
- 손문선: 본래 야구를 보지 않았으나 심수창과 함께 직관을 와 LG로 입문하게 되었다.
- 손성희: 버즈 기타리스트.
- 수호: 시우민과 같이 LG 팬이다.
- 시우민: LG 트윈스 어린이 팬 출신.
- 신동욱
- 신소율: 대부분의 연예인 등 유명인사 팬들은 프라이버시 때문에 테이블석에 앉는 편인데 신소율은 일반석으로 시즌권을 잡는다. 실제로 목격담도 많고 주변에 있는 관중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경우도 자주 있다.
- 신혜성: 방송에서 가끔씩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다닌다.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이민우는 두산 팬이다.
- 심양홍: 후배 개그맨 김은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야구장에 가려고 식장에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와서 밝혀졌다.
- 심용환 : MBC 청룡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이상훈, 김용수, 김동수 등을 좋아했다고 하고 2023년 JTBC 뭐털도사에서 오지환이 MVP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해서 맞추었다.
- 썰그
- 아웃사이더: 여담으로 매형이 이상훈이다.
- 안재욱: 2008년 공형진과 함께 LG 트윈스 명예선수로 위촉된 적이 있다. 그 뒤에도 LG 팬 인증을 여러 번 하였다.
- 앤디: 2016년 10월 14일 LG 넥센 PO 중계 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
- 양동근
- 양종철: 2001년 사망한 개그맨. MBC 청룡 시절부터 골수팬으로 유명했다.
- 양홍석: 농구선수. FA로 창원 LG 세이커스에 이적하면서 시구를 했다. 추가로 LG 트윈스 어센틱 유니폼을 가지고 있으며 창원 홈경기 때 라커룸에 걸어놓을 정도다. 원래 야구 팬이었으며 MLB의 일본인 이도류라 불리는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팬이다.
- 여진구: 2012 시즌에 야구장을 직관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지금도 응원 중이라고 한다. 다만 2015년에 넥센 히어로즈에서 시구를 한 적이 있다가 2023년 다시 11년 만에 LG에서 시구를 했다. 하지만 2024년 다시 키움 히어로즈에서 시구를 하였다.
- 여의주
- 연윤근: 록 밴드 체리필터의 베이스 담당. 과거 문선재의 응원가였던 오리 날다가 문성주의 응원가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LG팬임이 밝혀졌다. 문성주가 사용하는 조건으로 해당 곡을 사용하도록 한 것.
- 예스리아: 남편 지오도 LG 팬이다.[111] 구단 인스타에 자주 댓글을 남기며 팬심을 직접 드러내기도 한다.
- 오리갑
- 옥냥이: 트위치 스트리머로 LG의 팬일 뿐만 아니라 야구 지식도 많이 있는 것을 더쇼 방송을 통해 알 수 있다. 2020년부터 가끔씩 LG 경기를 트위치에서 중계한다.
- 우수한: 2021년에 새로 합류한 치어리더. 어릴 때부터 엘지를 응원한 엘린이라고 하며 소사와 고우석 게시물 등에 좋아요를 누르고 마침내 엘지 치어리더가 되며 성덕이 되었다. 그러나 2023년 치어리더 활동을 재개하면서 엘지가 아닌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빛이 바랬다.
- 원석연: 농구 기자지만 겨울에 농구로 번 돈을 여름이 되면 야구에 모두 쓴다는 LG의 오랜 팬이다. 임찬규가 커리어 첫 완봉승을 거둔 날 올린 인스타 글이 많은 곳에서 화제가 됐다. #
- 원슈타인
- 유기상: 농구선수. 서울 출신. 창원 LG 세이커스 스타 플레이어. 23-24 시즌 신인왕. 승리수훈 인터뷰 때 응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박해민 선수의 유니폼을 선물받았다.
- 유라: LG에서 시구를 하다가 정이 가면서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
- 유수현: 프로야구 응원팀 콘텐츠에서 서울에 산다며 LG를 골랐다. 그 후 릴스에 야구와 LG에 관련된 콘텐츠를 꾸준히 업로드 하고 있다.
- 유연석: 별로 관심이 없었다가 드라마에서 자기가 뛰었다는 설정으로 정이가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다만 지금은 별 관심이 없는듯하다.
- 유연조
- 유희열: 라디오에서 LG 트윈스의 팬임을 밝혔다. 두산 팬인 김장훈과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으르렁거린다고 한다.
- 유현준
- 유호정: 인스타에 직관 사진이 있다.
- 윤박: 능력자들에서 팬인 것을 밝혔다. 또한 LG 관련 굿즈도 많이 산다고 하며, 아예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LG 트윈스 의류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2023년 5월 30일 잠실 롯데와의 경기에서 직관을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 윤보미: Apink의 멤버. LG에서만 시구를 6번 했다. 2014년, 2015년, 2017년, 2018년, 2020년, 2021년. 또한 유튜브 딩고 채널 수고했어 오늘도 모닝콜 미션으로 한 팬과 스크린 야구장에 갔는데 고른 팀이 LG였다.
- 윤서인: 극우 성향의 만화가. 조이라이드 연재 당시에도 종종 LG 이야기를 하였다. 다만 2021년부터 인스타그램 맞팔로우 관계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SSG 랜더스를 응원하러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 간 것을 유튜브에 올려 응원팀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SNS에 골프 친 사진을 올릴 때도 SSG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LG 유니폼을 입고 잠실 직관을 간 영상을 올리며 "LG 팬인데 SSG도 응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기에 응원 팀을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다.
- 윤소은: 전 치어리더. 치어리더를 그만두고 나서도 직관을 오는 등 애정이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윤종신: 케이블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윤종신 편에서 참가자 중에 LG 트윈스 유광잠바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MC의 질문에 윤종신은 LG 팬 인증. 그러나 1990년대부턴 야구를 잘 안 본다고 한다. 여담으로 유광잠바를 입고 나온 이 참가자는 최후의 1인으로 선택됐고 실력자였는데, 정체는 바로 LG 트윈스의 민족의 아리아를 포함한 여러 선수 응원가를 부른 황석빈 씨였다. 또한 잠시 NC로 갈아탔다고 밝힌 후 한 시구에서 어릴 때부터 응원했던 팀이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 은지: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나인뮤지스의 현아, 경리에게 LG 트윈스 팬을 전염시켰다. SNS에서 LG 트윈스 팬을 여러 번 인증하였다.
- 은혁
- 이강인: 파리 생제르맹 FC 소속의 축구선수. 어릴 때 LG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이 있어 이강인이 LG 팬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슛포러브에서 LG 팬임을 직접 인증했다. 자가격리 기간 즐겨봤다고 한다.
- 이규호
- 이광섭
- 이동건
- 이명학
- 이문세: 마찬가지로 LG의 명예선수.
- 이민혁: 비투비 멤버. 온 가족이 LG의 팬이라고 한다.
- 이빈
- 이상윤
- 이성진: 2018년 여름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원래는 OB의 팬이었으나 LG의 선수였던 서용빈, 전승남과 친분이 생겨 LG로 환승했다고 밝혔다. 본인이 속한 연예인 야구단인 '재미삼아'가 LG와 자매 결연을 맺으며 많은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 이순민: 축구선수. 부인, 장모가 LG 팬이다. 재활 중인 2025년 소속팀의 FC 서울 원정경기로 서울을 찾았는데 이때 LG의 홈경기에 방문하여 홍창기와 유니폼을 교환하였고, 자신도 LG 팬임을 드러냈다.
- 이승기: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사직구장 편에서 본인이 LG 트윈스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고 2024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 이승우: 인터뷰에서 박용택과 이병규의 팬이라고 밝혔다. #
- 이승원
- 이연수: MBC 청룡 어린이합창단 출신이라고 하며, 이때 인연이 돼서 지금도 LG 트윈스 열혈 팬이라고 한다. 백인천과 이종도를 아저씨라고 부를 정도.
- 이영돈: 황정음과 결혼한 전직 프로골프선수.
- 이영자
- 이윤아: 더그아웃 매거진의 인터뷰에서 집이 잠실 근처라서 자연스럽게 LG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후 화곡 근처로 이사한 후에도 SNS에 LG가 져서 서운해 했던 글을 보면 지금도 LG 팬인 것을 알 수 있다.
- 이윤열: 유명한 프로게이머 중에 하나인 이윤열은 자신이 LG 트윈스의 팬이라고 밝혔다. #
- 이재희: 게스트로 나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모님의 영향으로 엘린이 출신임을 밝혔고, 응원가도 부르는 등 모태 엘팬임을 인증했다. 또한 2023년 12월 2일에 열린 LG 트윈스 러브기빙페스티벌에 Weeekly 멤버 전원이 초대되어 축하공연을 하며 성덕이 되었다.
- 이적: 히든싱어 출연 시 LG 트윈스 팬임을 밝힌 바 있다.
- 이종혁: LG 트윈스의 오랜 팬으로 알려져 있다. 2022 플레이오프 때도 시구를 했고, 2023 한국시리즈 때는 2차전에 중계방송에 직관을 온 것이 포착되었다. 2025년 LG 트윈스가 우승하던 날 티빙 편파중계에도 참여했다.
- 이지영: EBS와 이투스에서 사회탐구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꿈은 한때 최초의 여자 야구 해설자였다고 한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LG 트윈스와 관련된 글이 많으며, LG 트윈스가 V3를 달성했던 2023년 한국시리즈 5차전 당시 TV 중계화면에 직관을 온 것이 잡히기도 했다.
- 이창용: 2023년 한국시리즈 5차전을 직관한 팬이라고 한다. 2025년 LG 트윈스 개막전 애국가 제창에 초청되며 성덕이 되었다.
- 이현: LG 어린이 회원 출신이며, 과거에 어머니가 LG 트윈스 구단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그 때문에 팬이 되었다고 한다. 2025년 7월 20일 롯데전에서 시구했다. 초등학생 때 여동생과 함께 이형종, 양석환과 함께 찍은 사진이 발굴되기도 했다.
- 이희은: 직접 피팅 모델도 하는 쇼핑몰 '리히', 인터넷 화보 스튜디오인 '리히 익스프레스'의 CEO. 연간권자다. 2000년부터 연간회원에 가입한것을 인증하기도 했으며, 매년 수십회 이상 직관을 즐기는 찐팬 오브 찐팬. 2023년에는 LG의 29년 만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기념하며 리히의 모든 상품을 29% 할인, 리히 익스프레스의 모든 화보 가격을 2,900원으로 통일하는 특별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
- 이희진 : MBC 청룡 때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 인호진
- 임시현: 2024년 파리 올림픽 3관왕인 양궁선수. 사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시구 제안을 했으나 전국체전 준비 때문에 부득이하게 거절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시구를 함으로써 의리를 지켰다. 나중에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문답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그 전부터 팬이었다고 하는데, 이후 9월 8일자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또 직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임하늘: 2014 미스 춘향 진. 광주 지역 지상파 kbc 광주방송(광주전남 SBS) 아나운서였다.
- 장혁진
- 장혜리
- 전상규: 락밴드 와이낫의 보컬이자 LG 트윈스 팬 팟캐스트 "야잘잘"의 호스트.
- 전소미
- 전현무: 본인이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구를 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다만 그 경기 결과는 0:10으로 완패했다. 그 이후에도 시구만 3번을 더 왔는데 모두 패하면서 전적 4전 4패를 거둬서 LG팬들 사이에서는 진짜 팬이라면 시구는 더 이상 오지 말라며 아우성이다. 얄궂은 우연이 전 연인인 한혜진이 과거 LG 소속이던 차우찬과 교제했던 적도 있었다.
- 전현희: 제 22대 국회의원. LG 트윈스가 2025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자 축하의 의미를 담은 영상을 게시하였다.
- 정다혜: 치어리더. 전 LG 트윈스 응원단 및 전 LG 트윈스 치어리더 팀장. 현재는 농구와 축구 그리고 배구에서 치어리더로 활약중이다. 2015년에 LG 트윈스 응원단에 입단하며 팬들에게 잠실 성유리라는 별명을 지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LG 트윈스 치어리더 팀장을 통해 잠실 홈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속사 이적으로 인해 2022 시즌을 끝으로 새 소속사로 떠나면서 팬으로 남게 되었다. 후배 치어리더들은 대신 한화 이글스로 진출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응원했던 선수로 훈남인 타일러 윌슨의 팬으로도 알려졌다.
- 정보윤: 당구선수.
- 정샘물
- 정승제: 수업 시간에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한 잠실은 LG땅을 부르고 이어서 "서울의 아리아"까지 부를 정도로 진성 LG 팬이다. LG가 V3를 확정지었던 2023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 직관을 와서 같은 회사의 이지영 강사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 정용검: 프리랜서 아나운서. 특히 농구캐스터로 유명하다. 초1때 쌍둥이 형과 쌍둥이 마스코트가 되기도 했는데 그때를 계기로 팬이 됐다. 둘이 같이 시구와 시타를 하기도 했는데 정용검은 KBO를 중계하는 현직 아나운서인 만큼 중립유지를 위해 시구 종료 후 바로 저지를 벗었다.
- 정유빈
- 정우성
- 이수날: 슛 포 러브 경희대 구너라 알려진 그 분 맞다. LG 트윈스 공식 계정을 팔로우 중이고, 2017년 11월 26일, 2018년 1월 1일자 게시물 댓글에서 트윈스 팬임을 인증하였다.
- 정일우: “어린 시절부터 LG 트윈스 팬이었는데, 시구를 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다. 성덕이 된 기쁨을 승리의 요정이 되어 보답하고 싶다. LG 트윈스 선수들 모두 부상없이 이번 시즌 끝까지 좋은 경기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멋진 시구를 해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 정재웅: SNS에서 오랜 LG 팬임을 증명했다.
- 정재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형 정재웅과 같이 LG 팬이다.
- 정준하: 기사 참조. 실제로 정준하가 주장을 맡은 연예인 야구단 한(恨)은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바탕으로 만든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정작 이숭용과의 친분으로 현대 유니콘스 홍보대사가 된 것은 아이러니. 시구는 또 두산에서 했다.
- 정지소
- 정찬우: 아이돌 그룹 iKON의 멤버. 게시물에 LG 유니폼과 LG 응원도구들을 깔아놓고 사진을 찍어 인증하였다. 이동현의 은퇴식 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또한 숙소에서도 혼자 야구를 볼 정도로 매우 좋아한다. 심지어 진 경기도 다시 보는 정도로 좋아한다. 밸런스 게임에서도 전부 다 LG 관련 질문을 골랐을 정도다. 또한 2023년에도 시구를 하며 성공한 덕후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다. 한때 LG 트윈스 인스타 계정이 팔로우하는 유일한 연예인이었으나 지금은 왜인지 모르게 언팔 당했다.
- 정호영(셰프) : 2023년 LG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자 인스타그램에 유광점퍼를 입은 사진을 올리며 엘밍아웃. 2025년 LG 트윈스가 우승하던 날 티빙 편파중계에도 참여했다.
- 조수애: 다만 결혼은 두산그룹 사람과 했다.
- 조우종
- 조이현 : 2019년에 모모랜드 출신 낸시와 직관을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 조한철: 인터뷰에서 MBC 청룡 때부터 응원하던 찐팬이라고 밝혔다. 2024년 4월 17일 롯데와의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는 일을 두고는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
- 종섭: 피원하모니의 멤버. SNS에 LG트윈스의 경기를 직관하고 승리의 요정 이라고 쓰며 팬임을 밝혔다.
- 주영훈: LG의 응원가를 작곡할 정도로 열성 팬이다.
- 준: 거의 대부분 출연한 모든 방송에서 누가 묻지 않아도 먼저 LG 팬임을 스스로 언급한다.
- 지조: 다른 팀에서 여러 번 시구 제의가 들어왔지만 LG가 아니라서 거절했다고 한다.
- 진세민: 프리랜서 아나운서. 스포츠 기준으로 2023년 SPOTV 인턴쉽 및 2024년 쿠팡플레이 스포츠 아나운서. 2022 미스춘향 출신인 아나운서로 2002년생이지만 LG 팬을 한 지 10년차라고 한다. 인스타그램에 직관 인증샷이 올라와 있고, 야구 하이라이트 스토리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데뷔 전부터 찐팬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2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서울 시리즈 인터뷰로 인해 LG 팬들만 아니라 KBO 야구 팬 전체가 알아볼 정도다.
- 진세연
- 차준환 : 2023년에도 LG 시구를 했고, 2025년 두 번째 시구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LG 팬임을 밝혔다.#
- 창모: 2023년 LG가 통합우승을 한 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중학생 때부터 팬이었음을 밝혔다.
- 채리나: 본인의 SNS에 LG 트윈스 직관 경기를 자주 올리며, 남편 박용근이 LG 출신이다.
- 채주화
- 최강창민: 촬영 중에도 DMB로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팬이다. 이후 아는 형님 2024년 1월 13일 분에서 국민학교 입학 때부터 팬이었고 이후 29년 만에 우승하자 진심으로 감격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우승 후 오지환이 본인이 MC를 맡고 있는 '구해줘 홈즈'에 게스트로 나오자 유광잠바를 입고 와서 거의 팬미팅을 했다.
- 최동훈: 전 응원단장. 엘린이 출신으로 유명하다. 2015년~2018년 LG 트윈스 응원단장으로 활약했으며 2017년~2019년 2년간 형제 농구팀인 LG 세이커스 응원단장으로 활약했다. 열광적인 모습으로 인해 팬심만 아니라 팬덤도 엄청났다.
- 최민식: 1999년 개막 때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직관했다.
- 최수호: 미스터트롯2 전체 5위 트로트 가수. 2024년 5월 25일 경기에서 시구를 하였고, 이 후 모태 LG 트윈스 팬이라고 직접 밝혔다.[112]
- 최슬기: 아프리카TV에서 스트리머로 활동한 당시 LG 트윈스 편파 중계 방송을 하였다.
- 최웅: 대구 출신이지만 LG 트윈스 팬이라고 한다.
- 최정원
- 최준용(배우)
- 최태성: 한국사를 대표하는 역사 강사. 2016년 세계사 수업 당시 MBC 청룡 원년 팬이라고 밝혔다. 2018년 7월엔 잠실 NC 다이노스전을 직관갔다가 LG 트윈스의 팬인 교사 시절 제자와 트윈스 샵에서 만났다. 라이벌 두산 베어스의 팬인 제자와 상담 도중 올해는 LG가 우승할 것이라고 하면서 두산 팬들에게 빅엿을 날리기도 했다. 2016년의 일이다. 또한 본인의 트위터에 16시즌 와일드카드 2차전 경기 직후 끝까지 공을 잡고 송구를 한 KIA의 김호령을 칭찬하기도. 참고로 2016 시즌은 두산 베어스가 우승한 연도이다.
- 최한나
- 최한빈(더윈드)
- 최현우
- 최효종: 코미디언.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 민병헌과 사촌 지간이라고 한다.
- 최훈: 자타공인 LG 광팬 중 한 명이어서 이로 인해 생긴 별명이 쥐훈. 다만 2013년 말 이후로는 SK에 보다 치중한 모습을 보여서 솩훈이라 까이고 있다. 하지만 이만수 체제 붕괴 이후로는 그냥 구색 취급. 오히려 한화 쪽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 캐스터안: 아프리카 TV 파트너 스트리머. 아예 LG 트윈스의 캐스터로 재직했었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LG 팬이었다고 한다.
- 타이미: 마찬가지로 LG 팬인 래퍼 아웃사이더와 함께 '엘팬의 북소리' 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 타카피: 치고 달려라를 부른 락 밴드. 이 밴드 노래 중 MBC 청룡을 추억하는 동명의 노래가 있다.
- 표예진: 17년 8월 5일 시구 후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하였다.
- 테라다 타쿠야
- 하리무: 원밀리언 크루 소속 댄서.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에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 좋아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도 엘지팬이다.
- 하정우: 어린 시절 럭키금성 어린이 회원이었다고 한다. 시사회 때 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요청하자 "저는 서울 팀에서만 시구할 겁니다"라고 단칼에 거절한 적이 있어 두산 팬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히기도 했다. 아직은 시구를 한 적이 없고, LG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꼭 가겠다고 한다. 참고로 이 항목은 기분이 나빴던 한 두산 팬이 'LG에서만 시구할 겁니다'라고 내용을 거짓으로 바꾼 적이 있으나 실제로는 서울 팀이라고 발언했다. 다만 슈퍼스타 감사용 출연 당시 두산의 OB 선수 역할로 출연했을 당시 표가 날 정도로 불편한 표정을 지었던 걸 보면 정말 LG 팬임은 맞다. 티빙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아워게임: LG트윈스>의 나레이션을 맡기도 하였다.
- 한명재: 특집 방송 때 커밍아웃
- 한수아: 오랜시간 팬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2024년 시구를 하며 성덕이 되었다.
- 한지혜
- 허각
- 허영만: 전라남도 여수시 출생이다 보니 같은 전라도를 연고로 하는 해태/KIA 역시 응원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MBC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LG 그룹과도 친분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식객 등의 작품을 보면 LG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113] 하지만 정작 시구는 두산 경기에서 했다.
- 허일영: 농구선수. 역대 프로농구 3개팀 우승. 창원 LG 세이커스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우승의 주역이자 파이널 MVP. 2024-2025 시즌 형제 야구팀의 시구로 팬심이자 애사심을 보여주었다. 팀의 후배 홍창기와 함께 대학동문으로 알려졌다.
- 허정민: 문차일드 출신 배우. 엘린이였다고 한다.
- 현주엽: 전 농구인. 현 예능인. 고향은 서울. 형제 농구단인 창원 LG 세이커스의 창단 시절부터 팬이었다. FA 때 현역 말미를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보냈다. 은퇴 이후 8년 만에 창원 LG 세이커스의 7대 감독으로 활약했다. LG 농구 감독 부임 이후 시구를 했다. 하지만 선수 시절 말년의 전성기 시절에서 내려오면서의 아쉬운 활약에 그쳤다. 더 중요한 건 감독 재임 시절 구단 역대 최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LG 세이커스 팬들에게는 금지어다.
- 홍경민: 2013년 LG 트윈스 명예선수로 위촉된 적 있다. 최근에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 직접 LG 선수 응원가를 제작한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중 몇 개가 실제로 쓰이고 있다. 허나 응원가의 평은 홍창기의 응원가 빼고 다 시망이라 쓴소리를 듣고 있다.[114]
- 홍나실: YTN 기상캐스터.
- 홍서범: 유자식 상팔자에서 조갑경과 자녀들이 밝히길, LG가 졌거나 지고 있으면 가족들이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한다.
- 홍인혜: 웹툰 작가이자 시인.
- 홍지윤
- 황정음: 가끔 잠실 야구장을 찾는다.
- JinE
9. 상세
|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 |
| 2002 시즌 경기 시작 영상 |
| 2025 시즌 경기 시작 영상 |
| 매년 영상은 바뀌지만 이 BGM만큼은 창단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115][116] |
| |
| 1990년 3월 1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LG 트윈스 창단식 |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팀 최초의 서울 연고팀으로서 럭키금성그룹이 1982년 창단한 문화방송의 MBC 청룡을 1990년 1월 18일 150억원에 야구단 지분을 인수한 뒤 그 해 3월 15일에 럭키금성프로야구단으로 재창단하며 LG 트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고나 유니폼은 이름도 그렇고 미네소타 트윈스와 매우 흡사하다. 구단명인 LG는 모기업 이름인 Lucky(럭키) + Goldstar(금성)의 약자였고[117] 쌍둥이 형제를 뜻하는 애칭 '트윈스'는 그룹의 심장인 여의도 LG트윈타워[118] 사옥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에도 같은 애칭의 야구단이 있으므로 야구단 이름으로 못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119]
1990년 인수 첫 해에 순위 변동이 심했지만[120] 여름에 들어서면서 순위 상승을 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 해태와 근소한 차이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해 시즌의 돌풍을 일으키며 화려한 데뷔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이 내려앉고 이후 이광환 체제로 들어서면서 세대교체와 자율야구를 도입하는 과정에 약간의 진통을 겪다가 1993년부터 포스트시즌에 계속 진출을 하면서[121] 90년대 포스트시즌의 단골 손님으로 입지를 굳혔다. 물론 가을야구에 실패한 시즌도 있었지만 이듬해엔 보란듯이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정도로 저력이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성적은 6668587667(2003~2012년)으로 좋지 않았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가 가지고 있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122] 이 기간에 성적은 성적대로 못내고 육성도 육성대로 못하고 투자는 투자대로 실패하며 1990년대의 신선하고 선진적인 이미지는 상실하고 사람들의 조롱거리, 웃음거리 신세로 전락했었다. 기나긴 암흑기 끝에 2013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드디어 11년만에 비밀번호를 깼다. 그리고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7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14년 구리 2군 구장을 벗어나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가 세워졌다. 비밀번호 종료 이후 2018년까지 세대교체 등 변화로 인한 불안정한 전력으로 인해 과도기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9년 이후에는 젊은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4년 통합 정규시즌 승률 1위 등 육성과 투자를 동반한 꾸준한 강팀이 되고는 있으나 아직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2022년에는 87승과 6할대 승률로 드디어 94년에 기록한 최다승 기록[123]을 28년만에 갈아치웠으나 한국시리즈 진출 적기라 평가받던 상황에서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해 20년째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2023년에 9경기나 남기고 29년 만에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확정짓고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통산 3번째 우승에 도전했으며, 마침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과 통합 우승을 이루었다. 더불어 2년 뒤, 다시 한 번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구단의 두 번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20년 4월에 구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와 기념 엠블렘을 발표했다. 엠블렘은 서울의 상징 동물인 해치를 모티브로 하여 트윈스의 T와 숫자 30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캐치프레이즈는 LG 트윈스/2020년 문서 참조.
10. 응원
| <nopad> |
| 2014 준PO 3차전 8회말 대타 이병규 응원[124] 영상 04:22-06:02[125] |
| <nop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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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응원가#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응원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990년대에 최초로 막대풍선 응원을 도입하고, 선수별 응원가를 도입하는 등 지금의 KBO 리그 응원문화의 초석을 닦은 팀이며, 대학 응원가나 여러 명곡들을 활용해 수작으로 평가받는 응원가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하필 이 무렵 초대형 암흑기에 빠져있던 바람에 로이스터 감독 시대를 맞은 롯데 자이언츠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조지훈 단장의 명작들이 주목 받아버렸다. 당시 LG는 암흑기에 직면해있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강병욱 응원단장과 오명섭 응원단장이 오랫동안 불린, 또 지금 현재도 불리고 있는 박용택, 정성훈, 이진영[126], 이택근[127], 오지환, 유강남 등의 응원가를 내놓으며 전성기를 맞은 롯데의 응원가에도 밀리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 당시에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응원가 원탑 자리를 놓고 몇 년째 롯데와 다투기도 했었다. 이때 만들어진 응원가들이 대부분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며 포지션이나 비슷한 캐릭터의 후배 선수들이 대대로 내려 받는 전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유지현의 응원가는 차세대 대형 유격수로 입단한 박경수가, 조인성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의 후배 포수가 물려받았고, 손인호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손주인이 물려받았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로 페타지니의 응원가는 스나이더와 히메네스에게 대물림되었다.[128] 또한 야잘잘 이형종은 단어의 창시자인 이진영의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또한 선수가 타 팀으로 이적할 경우에는 응원가를 아직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실제로 2012년 FA로 SK에 이적한 조인성이 LG시절 응원가를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LG 구단 측에서 단호하게 거절했고, 2015년에는 KIA를 거쳐 KT로 이적한 이대형이 LG 시절 응원가를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을 때에는 승낙했다는 말이 기사화까지 됐지만 결국 안 쓰게 되었다. 사실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문율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처사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저작권 문제도 얽혀 있어서 응원가를 내주고 싶어도 마음대로 내줄 수도 없다고 한다. 다만 장성호처럼 네 구단에 걸쳐 한 응원가를 사용한 사례도 있고, 홍성흔[129], 박병호[130]처럼 선수 요청으로 이적 전 응원가를 그대로 쓰게 된 사례도 많아서 타팀 팬들은 이를 아쉬워한다. 2022년 오프시즌에 타 팀으로 이적한 채은성과 유강남의 경우, 채은성은 LG 마케팅 팀에서 한화에 응원가를 넘겨줄 생각도 있었지만 선수 본인이 고사하며 무산되었고[131], 유강남은 LG 구단에 자신의 응원가를 가져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저작권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무산되었다.
10.1. 응원단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c30452> | LG 트윈스 2026 시즌 응원단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장내 아나운서 | 응원단장 | 부응원단장 |
| MC 황건하 | 勝 이윤승 | 勝 김태리 | |
| 치어리더 | |||
| 3 계유진 · 10 신서윤 · 11 고애리 · 12 진수화 · 20 차영현 [[팀장| ★ ]] · 25 박예은· 32 이주은 · 52 임혜진 · 57 우혜준 |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c30452><tablebgcolor=#c30452> | LG 트윈스 역대 응원단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50403 | <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 정석진[1] (1993~1998[2]) ★★☆☆ | 홍경선 (1999~2005) ☆ | 남성훈 (2006~2008) | 강병욱 (2009~2010) | |
| <rowcolor=#fff> 5대 | 6대 | 7대 | 8대 | |
| 오명섭 (2011~2014) | 최동훈 (2015~2018) | 김정석 (2019~2020) | 이윤승 (2021~ ) ★★ | |
| [1]: LG 트윈스의 1990년대 전성기의 응원단장. 경기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그가 응원단상에서 나미의 '빙글빙글' 노래에 맞춰서 췄던 춤을 기억하고 있는 올드 팬이 많다. 대부분 구단에서 쓰고 있는 "박수 5번(짝짝 짜자작) OO~O 안타!" 응원 구호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고 훗날 '열광체조'라는 이름으로 바뀐 '열광' 응원(무릎 두 번, 박수 두 번, 돌리고~ LG!)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1990년대 KBO 리그 응원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라고 해도 된다. 가끔 LG 트윈스가 올드팬들을 위한 행사를 하면 등장해서 1이닝 정도 응원을 이끈다. [2]: 실제로는 MBC 청룡 시절인 1988년 개막전 3연전에서 응원을 시작했다. 전 경기에 출장하며 응원을 주도한 건 1993년부터다. | ||||
| | |
| 2025 시즌 LG 트윈스 응원단 | |
| 응원단장 | 이윤승 |
| 부응원단장 | 김태리 |
| 장내 아나운서 | 황건하 |
| 치어리더 | 차영현★, 임혜진, 이진, 진수화, 우혜준, 박예은, 계유진, 이주은, 신서윤, 고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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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치어리더#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치어리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025년 현재 응원단장은 이윤승이며, 장내 아나운서는 2016 시즌까지 허지욱이 맡았다가 2017 시즌부터 황건하가 새로 맡게 되었다.
1993년에 임명된 정석진 초대 LG 응원단장은 현대적 의미의 응원단장의 효시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임갑교, 김창규 응원단장이나 롯데 자이언츠 비공식 응원단장이던 탤런트 유퉁 같은 경우에는 응원 레파토리가 337 박수 같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홈 관중들이 흥분하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이에 비해 정석진 단장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선수 공통 등장곡, "박수 5번(짝짝 짜자작) OO~O 안타!"로 대표되는 타자 공통 응원구호, 나미의 '빙글빙글'에 맞춘 율동 응원, '열광'과 같은 각종 리듬 응원을 만들면서 요즘 세대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응원단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근까지도 LG 트윈스가 올드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하면 등장해서 1이닝 정도 응원을 이끌었던 적이 있다.[132]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응원단장을 지낸 홍경선 전 응원단장은 KBO 최초로 라인업에 있는 모든 선수에게 개인 응원가를 만든 장본인이다. 대표작으로는 류지현, 김재현, 이병규[133] 응원가가 있고, LG의 상징적인 리듬 응원인 셀리오와 풀카운트 응원의 원조인 '안! 타! 이야~'를 정착시킨 것도 이 분이다.[134]
이후 남성훈[135] 단장 시대를 거쳐 2009년 강병욱 응원단장이 들어오면서 박용택, 이대형, 조인성, 이진영, 정성훈, 이택근 등 명작으로 평가 받는 선수 응원가를 줄줄이 내놓았고, 생목으로 응원을 유도하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LG 팬들에게 '응원요정'이라는 애칭과 함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 시즌 후 LG생활건강 입사가 확정되면서 응원단장 직에서 물러났고, 최종전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LG 팬들도 따라 울었다.
강병욱 단장 후임으로 들어온 오명섭 응원단장은 재임기간 전임자의 그늘에 가려 저평가되다가 나중에 오는 후임의 삽질로 재평가를 받은 케이스. 선수 응원가 중 대표작으로는 오지환과 유강남의 응원가[136]가 있는데, 재임 당시에는 가사에 "무! 적! L! G! ○○○!"이 너무 많다고 비판을 받았다. 또 팀 응원가로는 고대와 연대 응원가를 차용하여 만들었는데,[137] 최고였던 현장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들은 '대학 응원가 좀 그만 가져오라'며 비판했다. 2013년 드디어 길고길었던 암흑기를 탈출하는데 성공하며 많은 LG 팬들이 응원가들을 야구장에서 함께 부를 수 있게 되었고,[138] 2014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상대 홈구장에서 응원전을 압도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LG 팬들의 응원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단, 2013년과 2014년 들어 그동안 사용해 오던 타자 공통 등장곡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KIA 타이거즈와 같은 노래를 공유하는 'LG 없이는 못 살아' 역시 사실상 사장되면서 성적과 별개로 팬들이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4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된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팬들이 'LG 없이는 못 살아'를 부르려 할 때 앰프로 '사랑한다 LG'를 틀었다는 이유로 팬들의 눈 밖에 나면서 2015 시즌을 앞두고 교체되었다.[139]
최동훈 응원단장이 들어온 2015년부터를 LG 응원의 암흑기로 보는 팬들이 많았으나, 후임 응원단장들의 삽질과 최동훈 본인의 재평가로 강병욱, 오명섭, 최동훈으로 묶는 일이 대부분이다. 특히 2025시즌 외야 응원전과 한국시리즈 응원전에서의 활약으로 최동훈 본인의 평가가 더 좋아졌다. 물론 최동훈도 처음에는 부정적 평가를 들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는지 2016년, 팬들로부터 응원가를 모집하는 등 변화의 노력은 보였으나... 시범경기에서 공개한 응원가들의 퀄리티는 여전히 처참했던 데다가, 서울 메들리나 서울의 찬가 등을 틀지 않고 새로운 단체 응원가만 주야장천 트는 바람에 [142], 경기 종료 후 밤 11시가 넘도록 최동훈은 LG 트윈스 갤러리와 I love Twins에서 미친 듯이 까였다. [143] 다행히도 최동훈 응원단장이 서울응원가를 틀어달라는 피드백을 수용하고 새로운 응원가들 중에 몇 개가 재평가 받아 불만의견은 많이 잦아든 상태. 오히려 유일하게 욕을 먹지 않은 FOREVER LG와 양석환의 새 응원가, 채은성의 응원가 등이 최동훈 단장의 명작으로 평가받으며 호평 등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 공개 됬을때 욕을 바가지로 처먹은 황목치승의 응원가도 재평가되며 호평을 받고 있다.그러나 2017년부터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며 고퀄리티의 응원가 몇 개가 폐기되는 악재를 맞이했다.[144] 2018년부터는 박용택의 응원가가 저작권 문제로 교체됨과 함께 선수별 등장곡이 사라지며 예전의 응원문화는 완전히 리즈시절이 되었다.
다만 이점은 최동훈의 임기가 KBO 응원가 저작권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시기이기도 했기에 이 점은 본인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상당히 운이 좋지 않았다. 다만 그런 점을 제외하고도 최동훈 단장은 응원가는 잘 만들진 못해도 피드백을 잘 수용하고 좋은 응원가가 꽤 있었다.[145]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넓은 응원범위를 보여주며[146] 응원가 트는 타이밍을 잘 잡고 랜덤하게 재밌는 응원이라도 보여줬으니...[147]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오명섭 수준은 해주었던 최동훈 시대와는 다르게, 김정석 단장으로 온 이후엔 삽질놀이가 시작되며 응원가 퀄리티가 심하게 떨어졌으며 응원에 대한 리듬, 그리고 응원가를 트는 타이밍 또한 전혀 못맞추고 있어서 더더욱 까이며 평이 매우 안 좋아졌는데, 최동훈은 피드백이라도 잘 수용했지만 김정석은 피드백은 싹 무시하고 본인의 응원법만 따른다. 심지어 김정석 본인의 팬들[148]하고 인스타 DM으로 친목질도 하는데 응원 관련 피드백은 아예 읽지도 않는다. 본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는 듯하다.[149] 하지만 응원가 수준을 떠나 김정석 본인의 응원 스타일부터 문제라는 평이 대다수이며 특히 경기 흐름에 상관없이 응원가만 주야장천 틀어제끼는 이른바 정석쇼는 거의 분자단위로 까이는 수준이다.[150][151] 이처럼 LG 트윈스의 응원이 점점 퇴보하고 있어서 옛날 응원이 그립다는 올드팬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2019년 LG의 호성적에도 홈관중이 오히려 줄어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2020년에도 이어졌다. 코로나 19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다가 3주 동안 제한 관중 입장을 시행했을때도 반응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그래서인지 LG 트윈스 역대 최악의 응원 암흑기가 왔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2021년부터 이윤승 응원단장 체제로 가게 됐다.
이윤승 응원단장 체제에서 LG 응원가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다. 응원가가 처음 나왔을 때의 반응은 시큰둥해도 적절한 추임새를 넣고 많은 홈관중들이 떼창을 하다보니 시간이 지나고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스틴 딘의 응원가는 팬덤에 관계없이 명곡으로 자리잡을 정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등장곡이 부활한 2022년 이후로는 자팀, 타팀 할거없이 LG 응원은 전체적으로 고퀄리티라는 좋은 평을 받았다. 다만 2024 시즌 들어 응원 유도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 욕먹는 이유 중 하나가 예전 엘지의 육성응원은 주로 치어리더 없이 단장 혼자 유도할 때 많았는데, 이윤승 단장체제부터는 늘 치어리더가 올라와 있어 그럴수도 있다. 실제로 응원단장 혼자 올라와 응원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리고 2025년, 천성호의 응원가가 나오자마자 김정석의 응원가 뺨치는 평가를 받으며
이처럼 홍경선 단장 이후 LG 응원단장들은 짧으면 2년, 길면 4년 정도 활동하다가 교체되었는데, 강병욱 전 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응원단장들은 마지막 해 팬들의 평판이 좋지 못했고, 유난히 극성팬이 많아 팬들의 눈치를 많이 살펴야 하는 구단의 속성 때문에 응원단장들이 하나 같이 못 버티고 단명하고 있다.[152]
인천 랜필, 고척, 수원 위팍 등 수도권 원정경기는 주중 시리즈라도 원정 응원단을 파견한다. 비수도권 원정경기는 2020년까지 응원단 파견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2021년 이윤승 응원단장 부임 이후 후반기 창원, 대전, 부산 사직 원정에 응원단을 파견하고 2022년에도 개막전부터 광주에 응원단을 파견하는 등 지방 원정경기에서도 응원단을 파견하는 행보를 보였다. 2023년 5월에는 대구까지 응원단 파견이 예정되며, 이로써 전국 모든 구장에 방문이 완료되었다.[153]
2024년 현재 응원단 파견 현황을 보면 수도권 원정 경기는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응원단을 파견하고 비수도권 원정 경기는 주중에는 응원단이 파견하지 않지만 주말에는 응원단을 파견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시즌의 명운이 걸린 잔여경기 때에는 주중, 주말, 수도권, 비수도권 관계 없이 모든 경기에 응원단을 파견하는 분위기다. 자세한 건 구단 공식 인스타그램의 월간 뉴스를 참고하면 된다.
2025년 또한 현재 응원단에서 부응원단장 김태리를 영입했다. 그리고 KIA, 삼성, 롯데에 이어 네번째이자 수도권 구단 중 최초로 전 경기 응원단 파견을 확정했다.
10.2. 커뮤니티
11. 타 구단과의 관계
유독 라이벌 구단들이 많은 편이다. 공식적인 매치명이 형성된 두산, 롯데, KT, 키움 이외에도, 다른 구단들과 상황에 따라 소소하게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여 모든 구단이 라이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특히 LG가 비밀번호를 탈출한 2013년 후반기, 일부 몰상식한 LG 팬덤의 추태와 문선재, 리즈 등 경기 중 사건사고가 겹치자 타팀 팬덤에서 연합하여 온갖 커뮤니티와 댓글 등에서 안티 LG 여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LG가 최하위로 처지고 한화와 벤치클리어링을 했던 2014년 초반과 오지환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문제로 시끄러웠던 2018년에 안티 LG 여론은 극에 달했다. 2020년 박용택의 은퇴 투어 불발 논란도 어떻게 보면 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2019년부터 팀이 안정화되고 꾸준한 호성적을 바탕으로 팬덤의 세대교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강성 팬들의 비중이 감소, 29년 만에 우승에 성공하고 어느 정도 강팀의 반열에 오른 현 시점에서의 LG는 예전만큼 타 팀에 어그로 끌리는 일은 크게 줄어들었다.LG 팬덤에서 가장 라이벌로 꼽는 구단은 역시 같은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두산 베어스이다. 그 외에도 극소수지만 키움, SSG를 라이벌로 꼽는 팬들도 있으며, 2020년대에 LG가 강팀으로 올라선 뒤에 유입된 팬덤은 LG와 같은 기간에 호성적을 거두고 포스트시즌에서 2년 연속으로 만난 kt를, 올드 팬덤은 KIA를 라이벌로 뽑기도 한다. 롯데와의 매치업도 매우 치열하지만 병맛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인해 붙여진 측면이 강하며 실제 두 팬덤의 관계는 나쁜 편은 아니다.
구단 각각의 상대 전적은 LG 트윈스/상대 전적 참조.
11.1. 두산 베어스 - 잠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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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LG Twins | 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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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잠실 시리즈#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잠실 시리즈#|]]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1.2. 롯데 자이언츠 - 엘 꼴라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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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LG Twins |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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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엘 꼴라시코#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엘 꼴라시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1.3. kt wiz - 통신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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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LG Twins | KT 위즈 kt wi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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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통신사 시리즈#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통신사 시리즈#|]]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1.4. 키움 히어로즈 - 엘키라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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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LG Twins | 키움 히어로즈 Kiwoom Hero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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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엘키라시코#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엘키라시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1.5. 기타
최근에는 단군 매치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두산과 KIA의 매치업이 주목받지만, 냉정히 보면 LG와 KIA, 더 나아가서는 MBC-LG와 해태의 라이벌리가 훨씬 유명하며 유서가 깊다. 사실 진정한 라이벌리는 이쪽이며, 공식 타이틀이 붙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수준. KIA 팬덤과의 관계는 1990년대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좋지 않은 편으로, 일부 LG 팬들은 같은 잠실을 쓰는 숙적 두산보다도 KIA를 더 싫어하는 경우가 꽤 있을 정도다. [154]두 팀의 라이벌리는 1983년 한국시리즈 매치업부터 역사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두 팀은 여러모로 비교할 요소가 많았는데 서울 구단이면서 부유하고 세련된 이미지, 신인들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앞세우며 신흥 강팀으로 떠오른 LG와,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에 비교적 가난한 이미지, 그럼에도 기라성같은 스타 플레이어들, 엄격한 규율과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왕조를 이룩한 전통의 명문 구단 해태라는 완전히 상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완전히 다른 색채로 상위권에서 자주 맞붙으니 당연히 라이벌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과거 스포츠 방송에서도 멘트를 들어보면 이 두 팀 간의 잠실 경기가 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로 꼽힐 만큼 맞수로 꼽혔고, 조계현-이강철-선동열-이대진과 김태원-정삼흠-이상훈-김용수라는 최고의 투수 라인업은 연일 구름관중을 모았다.[155] 이 매치업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 1997년 한국시리즈. 결과는 해태의 우승이었다.
그 이후 2000년대 들어서도 LG 팬덤과 KIA 팬덤 간에는 'LG/KIA 없이는 못살아' 응원가 공유 문제, 또 KIA 팬덤의 '고래사냥' 응원가 사용 문제(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가 있었다. 이 두 팀은 2002년 PO에서도 맞붙었는데, 이 리벤지 매치에서는 LG의 승리. 당시 PO 5차전 KIA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부 KIA 관중들이 무등구장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있었고, 원정 LG팬들과 TV 중계로 시청하던 LG팬들이 이를 경악하며 지켜보던 일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이 두 팀이 나란히 하위권을 전전하며 롯데와 함께 엘롯기 트리오를 결성했고, 이 때에는 그리 라이벌리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9년 KIA 우승 때 트레이드로 데려온 김상현이 홈런왕과 MVP를 차지했고, 그 해 KIA가 LG를 철저히 압살하는 일이 벌어지자 두 팀의 팬덤이 다시 불타오르기도 했다.[156] 그 이후 LG에서 도망치듯 사임한 김기태 감독이 KIA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라이벌 관계에 불을 지폈다. 또 2016년에 KIA 응원단이 잠실 원정에서 원정팀 응원단용 팔찌를 무단으로 양도하여 이를 적발한 LG 측 시큐리티가 제지하려 하자 KIA 팬들이 시큐리티를 폭행했던 2016년 잠실 야구장 폭력 사태, 2019년 정우영의 신인왕 등극 때 KIA 일부 팬덤의 집요한 문제제기[157], 2020년 김민성과 나주환의 신경전 등의 사건으로 지금도 양측 상호 간의 감정이 좋지는 않다.
다만, 2020년 박용택 은퇴투어 논란 당시 기아 구단과 양현종 선수가 자발적으로 고별식을 준비해주면서 두 팬덤 간의 관계가 꽤 호전되었다.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들이자 그 팬덤들도 강성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구단들인 만큼 그 후로도 맞대결이 있을 때마다 서로 간에 으르렁대곤 하지만, LG 팬들도 저 이후로 양현종 이야기가 나올 때는 당연히 보답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는 한다. 2020년대 들어 LG와 KIA 모두 젊은 팬들의 유입이 늘며 이전 1990년대처럼 관계가 과격하지는 않다.
특이한 점이라면 두 팀은 우승과 관련된 징크스를 서로 가지고 있다. 먼저 KIA는 우승을 할 때 그 해 LG를 페넌트레이스에서 압도하며 우승하는 징크스가 있다.[158] 또한 LG는 우승 전 해 타이거즈의 주축 선수를 영입하면 우승하는 징크스가 있다.[159]
전자 라이벌로 1990년대말과 2000년대초 그리고 2020년대에 포스트 시즌에서 맞대결을 했던 삼성 라이온즈도 KIA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역사적으로 얽혀있는 편이다.
일단 재계 라이벌이라는 구도도 있는 편이고, 1990년 우승과 2002년 우승 등 서로가 서로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맞대결 사례도 있다. 또한 1997년 일명 부정배트 사건[160]과 그 해 PO에서의 치열한 승부는 두 팀의 라이벌리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 이 두 팀은 다음 해 PO에서도 다시 맞붙었고, 정점을 찍은 것이 2002 한국시리즈였다. 이 시리즈는 두 팀의 역사를 완벽하게 바꾼 시리즈가 됐다. 한편 이 후에도 삼성과 LG는 2003년 노장진과 김재현의 빈볼 시비[161]와 이로 인해 발생한 서승화-이승엽 주먹다짐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있었기도 했다.
이후 두 팀의 처지가 완벽히 상반되며 라이벌 의식은 희미해졌지만, 오랜만에 LG가 암흑기를 청산한 2013년, 삼성과 선두 싸움을 펼치며 다시 라이벌리가 달아오르게 되는데, 당시 문선재의 잘못된 베이스 커버로 인해 조동찬이 크게 다치는 사건과 배영섭을 향한 리즈의 헤드샷 사건으로 인해 두 팬덤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다만 그 이후에는 별다른 라이벌리는 없었고, 오히려 두 팀의 선수, 코칭스탭이 활발히 왕래하는 탓에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2024년 PO를 앞두고 두 팀의 구장 차이[162], FA 이적한 최원태가 LG를 향해 인사하지 않으며 발생한 가벼운 신경전 등이 있지만 이 정도는 특별히 큰 이슈는 아니기에 두 팀의 라이벌리까지 커질 사안은 아니다.
그러다 2025년 9월부터 양팀의 맞대결이 거의 마무리되고 본의 아니게 잔여 일정상 서로의 승리가 곧 자팀에게 유리한 상황이 형성되자 LG팬과 삼성팬들이 일명 ‘가전 동맹’, ‘사채 놀이’ 등 호칭을 붙이며 야구를 시청하는 일종의 밈이 형성되었고, 결론적으로 LG가 5강 경쟁팀들을 잡아내며 삼성이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삼성이 한화 상대 승리를 거두며 LG가 1위에 오르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며 양팀 팬덤의 관계가 매우 돈독해졌다. 이로 인해 한화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기간 중 삼성을 응원하는 LG팬들이 다수였으며,[163] 심지어 김영웅이 PO 4차전에서 극적인 연타석 홈런을 기록,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가자 당일 한국시리즈 대비 평가전을 관람하던 LG팬들이 김영웅의 응원가와 삼성의 대표 팀 응원가인 엘도라도를 열창하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화가 혈투 끝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삼성과의 연결 고리는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이후 한화 이글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삼성 주축 선수인 이재현과 구자욱 등을 비하하는 뉘앙스의 영상을 게재한 것이 큰 논란을 일으키며 삼성팬들이 매우 분노했고, 이로 인해 한국시리즈에서 LG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등 삼성 팬덤과 LG 팬덤의 관계는 두 팀의 창단 이래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화 이글스와는 화학 라이벌에 엘넥한 시절부터 유독 경기 도중 감정 소모도 어지간히 많았다.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는 LG가 유독 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로 인해 한화의 긴 암흑기와 LG의 최근 선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대전적에서는 한화가 소폭 우위를 점할 정도이다.
한화와 LG 모두 극성 팬덤이 많은 구단들이다보니, 순위싸움이 겹치는 해마다 크고 작은 트러블이 발생한다. 2014년 두 팀이 8,9위로 쳐진 상황에서 그 유명한 정근우와 정찬헌의 벤치 클리어링 사건이 있었고, 2015년과 16년에는 서로 끝내기 경기를 자주 주고받으며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다만 그 이후 2018년 짧은 가을야구 이후 침체기에 접어든 한화와 가을야구 단골이 된 LG의 처지가 상반되며 두 팀의 라이벌리는 살짝 옅어졌다. 물론 그럼에도 2020년부터 LG의 우승 도전을 항상 막은 구단이 바로 한화였고, 특히 22년에는 다승왕 켈리가 등판한 두 번의 한화전 모두 빈공 끝 패하며 결국 1위에 오르지 못했다.
2023년을 앞두고 채은성의 한화로의 FA 이적으로 두 팀의 접점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여전한 두 팀의 순위 차이 때문에 별다른 라이벌리는 없었다. 두 팀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불타는 시즌이 바로 2025년. 두 팀이 사실상 처음으로[164] 선두 싸움을 전개하며 팬덤 간 자존심 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165], TJB 대전방송 국장의 문보경 비하 발언과 모 유튜버의 일명 버스 전복 발언 등 일부 한화팬들의 발언이 논란이 되며 두 팬덤이 불타올랐다. 9월말 운명의 3연전 맞대결에 이어 LG 기준 최종전까지 타이브레이커 1위 결정전 성사 가능성이 있었으며 두 팀의 팬덤은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9월 27일 LG가 한화를 이겨 LG의 정규시즌 매직넘버가 1이 되고 10월 1일 마무리 김서현이 문학 SSG전에서 9회말 2아웃 3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충격적으로 무너지면서 타이브레이커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한화 팬들의 상실감은 매우 컸을 정도. 그리고 1994년 이후 31년 만의 포스트시즌 동반 진출에 성공한 양 팀이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쳤고 LG가 4승 1패를 기록하며 2년 만의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2025년 우승경쟁으로 인해 LG는 한화 팬덤에선 악당 취급을 받는 구단이 되었다.
구 SK 와이번스와는 통신사 시리즈로 꼽히며, LG와 가장 우호적인 관계로 간주된다. 두 팀은 김성근 감독 및 레전드 김재현을 공유한 사이였다. 트레이드 등 선수교류도 많았으며 서로 윈윈했다. 같은 경인 시리즈를 형성하는 두산과 SK의 맞대결은 잦은 순위 경쟁 및 포스트시즌 맞대결로 라이벌 관계를 이루는 것과 반대로 LG와 SK의 맞대결은 '스크루지 동맹'이라는 말이 나오며 비교적 프렌들리한 성격의 시리즈였다.
그러다 LG의 전력이 강화된 2010년대 들어 2012년 '포기태' 사건으로 시끄럽더니 2016년에는 류제국과 김강민 주장끼리의 벤치클리어링 및 LG에서 SK로 이적한 선수들의 활약 등으로[166] 양팀 팬간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SK와는 2019년 이전까지 SK의 전성기와 LG의 암흑기가 겹친 탓에[167] 단 한 번도 동반 포스트시즌 진출이 없었고 지금까지 포스트시즌 맞대결이 없다. SSG로 넘어온 뒤에는 2022년 우승 경쟁 라이벌로 꼽혔고 페넌트레이스에서 SSG는 1위, LG는 2위를 했으나, LG가 플레이오프에서 업셋당하면서 한국시리즈 및 통산 첫 포스트시즌 맞대결은 물거품이 되었다.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SK에서 온갖 흑역사를 남기고 떠난 염경엽 감독이 LG로 부임하면서 SSG 팬덤은 이를 조롱하거나 걱정하는 반응이었다. 정작 2023년 LG는 SSG와의 맞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전반기 선두권에서 경쟁했다. 그리고 6월 문학에서의 맞대결에서 패배 없이 2승을 가져온 것을 기점으로 SSG로부터 1위를 빼앗은 다음 시즌 끝까지 더 이상 1위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반대로 SSG는 9월까지 최악의 추락을 겪었고 10월 쓱토버로 3위로 올라갔지만 준PO에서 NC에 업셋을 허용하는 엔딩을 맞았다. SSG가 김원형을 경질하고 이숭용을 감독으로 선임해 사실상 리빌딩/리툴링 체제를 맞이하면서 LG는 SSG전에서 계속 루징시리즈 허용 없이 강세를 보이면서 별다른 라이벌리를 형성하지 않았다. 더불어 경헌호 코치가 LG에서 SSG로 이적했다. 그리고 2025년 10월 1일 SSG가 이율예의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2위 한화를 잡아 LG의 정규시즌 1위 확정을 이끌어내면서 LG 팬덤은 SSG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상 2025년을 기준으로 LG와 가장 우호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9번째 구단으로 모기업 최고위층의 고향인 창원시 연고 야구단 NC 다이노스와도 형제 농구단으로 인해 창원 더비가 성사되었다.[168] 게다가 NC의 첫 가을야구 상대팀은 LG였으며 2014 준PO에서는 LG가 경험이 부족한 NC를 상대로 3승 1패로 이기며 한수 가르쳐 줬으나, 2년 뒤에는 PO에서 거꾸로 교육을 잘 받은 NC가 3승 1패로 복수, 창단 첫 KBO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2019년까지 양팀의 통산 맞대결 전적은 정확히 5할일 정도로 팽팽한 승부를 벌였다.
LG와 NC는 팽팽한 전적에 걸맞게 서로의 우승 시즌에 각팀의 우승을 가장 껄끄럽게 만든 상대이기도 했다. 우선 2020년 NC의 우승 당시에 NC는 LG 상대 4승 3무 9패에 그칠 정도로 LG를 상대로 가장 고전했었다. 공교롭게도 NC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확정 당시 상대팀이 LG였다. 그 이후 2023년 LG의 경우, NC를 상대로 6승 10패에 그치며 그 해 상대 구단 중 가장 좋지 않은 전적을 보였고, 2025년 LG의 경우 전 구단 상대 전적 우세라는 10개 구단 체제 최초의 기록에 도전했으나 NC를 상대로 동률인 8승 8패를 기록하며 실패했다. 이로 인해 양 팀의 팬덤은 서로를 까다로운 상대로 여기는 경향이 매우 크다.
두 팀은 NC의 21세기 첫 우승 시즌인 2020년과 LG의 21세기 첫 우승 시즌인 2023년에 서로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또 다른 라이벌 구도를 드러냈다. 한편 2022년 방출된 김진성이 LG 유니폼을 입고 불펜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이호준 타격코치가 LG로 가면서 접점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호준은 2024년을 마치고 N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2. 역대 선수 및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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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역대 선수 및 인물#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역대 선수 및 인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3. 역대 기록
13.1. 구단 성적
| | 우승 |
| | 준우승 |
| | 포스트시즌 진출 |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 LG 트윈스 역대 성적 |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 MBC 청룡 | |||||||
| 1982 | 3위/6팀[169] | 3위 | 80 | 46 | 0 | 34 | 0.575 |
| 1983 | 1위/6팀[170] | 준우승 | 100 | 55 | 2 | 43 | 0.561 |
| 1984 | 4위/6팀[171] | 4위 | 100 | 51 | 1 | 48 | 0.515 |
| 1985 | 5위/6팀[172] | 5위 | 110 | 44 | 1 | 65 | 0.404 |
| 1986 | 3위/7팀[173] | 3위 | 108 | 59 | 8 | 41 | 0.590 |
| 1987 | 5위/7팀[174] | 5위 | 108 | 50 | 7 | 51 | 0.495 |
| 1988 | 6위/7팀[175] | 6위 | 108 | 40 | 4 | 64 | 0.385 |
| 1989 | 6위/7팀 | 6위 | 120 | 49 | 4 | 67 | 0.423 |
| LG 트윈스 | |||||||
| 1990 | 1위/7팀 | 우승 | 120 | 71 | 0 | 49 | 0.592 |
| 1991 | 6위/8팀 | 6위 | 126 | 53 | 1 | 72 | 0.425 |
| 1992 | 7위/8팀 | 7위 | 126 | 53 | 3 | 70 | 0.433 |
| 1993 | 4위/8팀 | 4위 | 126 | 66 | 3 | 57 | 0.536 |
| 1994 | 1위/8팀 | 우승 | 126 | 81 | 0 | 45 | 0.643 |
| 1995 | 2위/8팀 | 3위 | 126 | 74 | 4 | 48 | 0.603 |
| 1996 | 7위/8팀 | 7위 | 126 | 50 | 5 | 71 | 0.417 |
| 1997 | 2위/8팀 | 준우승 | 126 | 73 | 2 | 51 | 0.587 |
| 1998 | 3위/8팀 | 준우승 | 126 | 63 | 1 | 62 | 0.504 |
| 1999 | 매직 3위/4팀 | 매직 3위 | 132 | 61 | 1 | 70 | 0.466 |
| 2000 | 매직 1위/4팀 | 매직 1위[176] | 133 | 67 | 3 | 63 | 0.515 |
| 2001 | 6위/8팀 | 6위 | 133 | 58 | 8 | 67 | 0.464 |
| 2002 | 4위/8팀 | 준우승 | 133 | 66 | 6 | 61 | 0.520 |
| 2003 | 6위/8팀 | 6위 | 133 | 60 | 2 | 71 | 0.458 |
| 2004 | 6위/8팀 | 6위 | 133 | 59 | 4 | 70 | 0.457 |
| 2005 | 6위/8팀 | 6위 | 126 | 54 | 1 | 71 | 0.432 |
| 2006 | 8위/8팀 | 8위 | 126 | 47 | 4 | 75 | 0.385 |
| 2007 | 5위/8팀 | 5위 | 126 | 58 | 6 | 62 | 0.483 |
| 2008 | 8위/8팀 | 8위 | 126 | 46 | 0 | 80 | 0.365 |
| 2009 | 7위/8팀 | 7위 | 133 | 54 | 4 | 75 | 0.406 |
| 2010 | 6위/8팀 | 6위[177] | 133 | 57 | 5 | 71 | 0.429 |
| 2011 | 6위/8팀 | 6위 | 133 | 59 | 2 | 72 | 0.450 |
| 2012 | 7위/8팀 | 7위 | 133 | 57 | 4 | 72 | 0.442 |
| 2013 | 2위/9팀 | 3위 | 128 | 74 | 0 | 54 | 0.578 |
| 2014 | 4위/9팀 | 4위 | 128 | 62 | 2 | 64 | 0.492 |
| 2015 | 9위/10팀 | 9위 | 144 | 64 | 2 | 78 | 0.451 |
| 2016 | 4위/10팀 | 4위 | 144 | 71 | 2 | 71 | 0.500 |
| 2017 | 6위/10팀 | 6위 | 144 | 69 | 3 | 72 | 0.489 |
| 2018 | 8위/10팀 | 8위 | 144 | 68 | 1 | 75 | 0.476 |
| 2019 | 4위/10팀 | 4위 | 144 | 79 | 1 | 64 | 0.552 |
| 2020 | 4위/10팀 | 4위 | 144 | 79 | 4 | 61 | 0.564 |
| 2021 | 3위/10팀 | 4위 | 144 | 72 | 14 | 58 | 0.554 |
| 2022 | 2위/10팀 | 3위 | 144 | 87 | 2 | 55 | 0.613 |
| 2023 | 1위/10팀 | 우승 | 144 | 86 | 2 | 56 | 0.606 |
| 2024 | 3위/10팀 | 3위 | 144 | 76 | 2 | 66 | 0.535 |
| 2025 | 1위/10팀 | 우승 | 144 | 85 | 3 | 56 | 0.603 |
| 2026 | 위/10팀 | 0위 | 0 | 0 | 0 | 0 | 0.000 |
| KBO 통산 44시즌 | V4 | 5635 | 2753 | 134 | 2748 | 0.501 | |
- LG의 MBC 청룡 시절 통산 성적은 394승 27무 413패(승률 0.488)로 승패마진은 -19이다. 1990년 LG 트윈스가 된 이후에는 2024년까지 35시즌 동안 2274승 104무 2279패로 승패마진 -5를 기록하고 있었다. 2025년 개막전 이후 LG가 3월 27일까지 개막 5연승을 거두면서, 2006년 이후 약 19년 만에 LG 트윈스 한정 5할 승률에 복귀했고, 8월 9일 잠실 한화전 승리로 65승 2무 41패를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통산 5599전 2733승 133무 2733패를 기록해 2005년 8월 6일 이후 무려 20년 만에 마이너스 승패마진을 청산했다. 2025시즌 종료 기준으로 LG 트윈스의 이름으로 치룬 경기에서 2359승 107무 2335패(승률 0.503)를 기록 중, 승패마진 +24를 마크 중이다.
- 6668587667의 기나긴 암흑기를 맞기 이전 LG의 통산 승패마진은 양수였다. 정확히는 2004년까지 승패마진이 양수였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2005년에 음수에 진입했으며, 이후 2006년과 2008년에 두 번이나 최하위의 수모도 겪는 등 암흑기가 길어지면서 결국 2010년에 통산 승패마진이 마이너스 세 자리 수에까지 이르게 됐다. 2010년대에도 대체로 승패마진이 음수인 시즌이 많아지며 2018년 종료시점까지 LG 트윈스의 통산 승패마진은 -143까지 밀려났다. 그러나 암흑기를 탈출한 2013년 이후 지난 12년간 887승 35무 774패 승률 0.534를 기록하며 승패마진을 꾸준히 줄여왔고, 특히 본격적으로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자 상위권 팀으로 우뚝선 2019년 이후에는 2025년까지 7시즌 동안 564승 28무 416패 승률 0.576을 기록하며 암흑기에 까먹은 승패마진을 많이 메울 수 있었다.[178] 승률로 보면, 2018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MBC 청룡 시절을 포함한 팀 통산 승률은 0.484였는데, 6년 반 동안 1푼 6리를 올려서 0.500까지 통산 승률을 끌어올렸다. 2012년 종료 기준으로는 통산 승률이 0.481에 불과했다.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고.
13.1.1. 역대 상대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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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상대 전적#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상대 전적#|]]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3.1.2.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별 전적 | ||
| 상대 구단 | 세부 승패 | 시리즈 승패 |
| KIA 타이거즈 | 1983 KS: 1무 4패 1997 KS: 1승 4패 2002 PO: 3승 2패 2016 WC: 1승 1패 | WC 1승 PO 1승 KS 2패 개별 경기 합계: 5승 1무 11패 |
| 삼성 라이온즈 | 1990 KS: 4승 1993 PO: 2승 3패 1997 PO: 3승 2패 1998 PO: 3승 1패 2002 KS: 2승 4패 2024 PO: 1승 3패 | PO 2승 2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15승 13패 |
| 두산 베어스 | 1993 준PO: 2승 1패 1998 준PO: 2승 2000 PO: 2승 4패 2013 PO: 1승 3패 2020 준PO: 2패 2021 준PO: 1승 2패 | 준PO 2승 2패 PO 2패 개별 경기 합계: 8승 12패 |
| 현대 유니콘스 | 1994 KS: 4승 1998 KS: 2승 4패 2002 준PO: 2승 | 준PO 1승 KS 1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8승 4패 |
| 롯데 자이언츠 | 1995 PO: 2승 4패 | PO 1패 개별 경기 합계: 2승 4패 |
| NC 다이노스 | 2014 준PO: 3승 1패 2016 PO: 1승 3패 2019 WC: 1승 | WC 1승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합계: 5승 4패 |
| 키움 히어로즈 | 2014 PO: 1승 3패 2016 준PO: 3승 1패 2019 준PO: 1승 3패 2020 WC: 1승 2022 PO: 1승 3패 | WC 1승 준PO 1승 1패 PO 2패 개별 경기 합계: 7승 10패 |
| KT 위즈 | 2023 KS 4승 1패 2024 준PO: 3승 2패 | 준PO 1승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7승 3패 |
| 한화 이글스 | 2025 KS 4승 1패 |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4승 1패 |
| 역대 포스트시즌 구장별 전적 | ||||
| 홈 경기 | ||||
| 잠실 | 34승 - 27패 | |||
| 중립 경기 | ||||
| 잠실 | 1승 - 1무 - 5패 | |||
| 원정 경기 | ||||
| 잠실두산 | 5승 - 5패 | 광주무등 | 2승 - 4패 | |
| 사직 | 0승 - 2패 | 마산 | 2승 - 2패 | |
| 대구시민 | 7승 - 4패 | 대구라팍 | 0승 - 2패 | |
| 수원현대 | 1승 - 0패 | 수원KT | 3승 - 1패 | |
| 목동 | 1승 - 1패 | 고척 | 1승 - 5패 | |
| 인천도원 | 2승 - 3패 | 대전신 | 2승 - 1패 | |
- SK-SSG와는 아직 포스트시즌에서 만난 적이 없다.[179]
-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이전 단계에서 LG를 꺾은 팀은 준우승한다는 무시무시한 징크스가 있다.[180]
- 와일드카드 결정전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181]
13.2.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MBC-LG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 굵은 글씨는 리그 전체 1위 기록이다.13.2.1. 통산
| <colbgcolor=#c30452> LG 트윈스 투수 | |||
| 부분 | 이름 | 기록 | MBC-LG 소속 시즌 |
| 출장 | 류택현 | 736경기 | 1999~2010 2012~2014 |
| 선발 | 임찬규 | 232경기 | 2011~ |
| 완투 | 정삼흠 | 50완투 | 1985~1996 |
| 완봉 | 정삼흠 | 11완봉 | 1985~1996 |
| 평균자책점 | 김용수 | 2.98 | 1985~2000 |
| 승리 | 김용수 | 126승 | 1985~2000 |
| 패전 | 정삼흠 | 121패 | 1985~1996 |
| 세이브 | 김용수 | 227세이브 | 1985~2000 |
| 홀드 | 류택현 | 122홀드 | 1999~2010 2012~2014 |
| 이닝 | 정삼흠 | 1894⅔이닝 | 1985~1996 |
| 탈삼진 | 김용수 | 1145개 | 1985~2000 |
| 피안타 | 정삼흠 | 1784개 | 1985~1996 |
| 피홈런 | 정삼흠 | 148개 | 1985~1996 |
| 볼넷 | 정삼흠 | 663개 | 1985~1996 |
| 사구 | 정삼흠 | 127개 | 1985~1996 |
| <colbgcolor=#c30452> LG 트윈스 타자 | |||
| 부분 | 이름 | 기록 | MBC-LG 소속 시즌 |
| 출장 | 박용택 | 2237경기 | 2002~2020 |
| 타율 | 홍창기 | 0.311 | 2016~ |
| 출루율 | 홍창기 | 0.428 | 2016~ |
| 장타율 | 김재현 | 0.467 | 1994~2004 |
| 타석 | 박용택 | 9138타석 | 2002~2020 |
| 타수 | 박용택 | 8139타수 | 2002~2020 |
| 안타 | 박용택 | 2504안타 | 2002~2020 |
| 2루타 | 박용택 | 441개 | 2002~2020 |
| 3루타 | 오지환 | 63개 | 2009~ |
| 홈런 | 박용택 | 213개 | 2002~2020 |
| 타점 | 박용택 | 1192타점 | 2002~2020 |
| 득점 | 박용택 | 1259득점 | 2002~2020 |
| 도루 | 이대형 | 379도루 | 2003~2013 |
| 볼넷 | 오지환 | 822개 | 2009~ |
| 사구 | 채은성 | 100개 | 2009~2022 |
| 삼진 | 오지환 | 1611개 | 2009~ |
| 병살타 | 박용택 | 177개 | 2002~2020 |
13.2.2. 단일 시즌
| LG 트윈스 투수 | |||
| 부분 | 이름 | 기록 | 시즌 |
| 등판경기 | 류택현 | 85경기 | 2004 |
| 선발등판 | 소사 | 33경기 | 2016 |
| 완투 | 오영일 | 14완투 | 1984 |
| 완봉 | 하기룡 | 4완봉 | 1982 |
| 이길환 | 1983 | ||
| 평균자책점 | 김용수 | 1.67 | 1986 |
| 승리 | 이상훈 | 20승 | 1995 |
| 패전 | 정삼흠 | 16패 | 1988 |
| 세이브 | 고우석 | 42세이브 | 2022 |
| 홀드 | 정우영 | 35홀드 | 2022 |
| 이닝 | 오영일 | 239⅔이닝 | 1984 |
| 탈삼진 | 리즈 | 188개 | 2013 |
| 피안타 | 소사 | 258개 | 2016 |
| 피홈런 | 차우찬 | 27개 | 2018 |
| 볼넷 | 루카스 | 108개 | 2015 |
| 사구 | 임찬규 | 24개 | 2017 |
| LG 트윈스 타자 | |||
| 부분 | 이름 | 기록 | 시즌 |
| 타율 | 백인천 | 0.412 | 1982 |
| 출루율 | 백인천 | 0.497[182] | 1982 |
| 장타율 | 백인천 | 0.740 | 1982 |
| 타석 | 홍창기 | 651타석 | 2021 |
| 타수 | 박해민 | 570타수 | 2022 |
| 안타 | 이병규 | 192안타 | 1999 |
| 2루타 | 이병규 | 43개 | 1999 |
| 3루타 | 박흥식 | 9개 | 1987 |
| 홈런 | 라모스 | 38개 | 2020 |
| 타점 | 오스틴 | 132타점 | 2024 |
| 득점 | 이병규 | 117득점 | 1999 |
| 도루 | 이대형 | 66도루 | 2010 |
| 볼넷 | 홍창기 | 109개 | 2021 |
| 사구 | 송구홍 | 22개 | 1996 |
| 홍창기 | 2023 | ||
| 삼진 | 오지환 | 146개 | 2018 |
| 병살타 | 박용택 | 21개 | 2018 |
| 유강남 | 2018 | ||
| 2019 | |||
13.3. 타이틀 홀더
13.3.1. 타자
| LG 트윈스 역대 타격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1982 | 백인천 | 지명타자 | .412 |
| 1988 | 김상훈 | 1루수 | .354 |
| 2001 | 양준혁 | 지명타자 | .355 |
| 2005 | 이병규 | 외야수 | .337 |
| 2009 | 박용택 | 외야수 | .372 |
| 2013 | 이병규 | 외야수 | .348 |
| 2018 | 김현수 | 외야수 | .362 |
| LG 트윈스 역대 최다안타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1982 | 백인천 | 지명타자 | 103 |
| 1986 | 이광은 | 외야수 | 124 |
| 1999 | 이병규 | 외야수 | 192 |
| 2000 | 이병규 | 외야수 | 170 |
| 2001 | 이병규 | 외야수 | 167 |
| 2005 | 이병규 | 외야수 | 157 |
| LG 트윈스 역대 타점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2024 | 오스틴 | 1루수 | 132 |
| LG 트윈스 역대 득점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1982 | 백인천 | 지명타자 | 55 |
| 1983 | 이해창 | 외야수 | 65 |
| 1984 | 이해창 | 외야수 | 62 |
| 1986 | 김재박 | 유격수 | 67 |
| 1987 | 이광은 | 외야수 | 66 |
| 2001 | 이병규 | 외야수 | 107 |
| 2005 | 박용택 | 외야수 | 90 |
| 2023 | 홍창기 | 외야수 | 109 |
| LG 트윈스 역대 도루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1985 | 김재박 | 유격수 | 50 |
| 2005 | 박용택 | 외야수 | 43 |
| 2007 | 이대형 | 외야수 | 53 |
| 2008 | 이대형 | 외야수 | 63 |
| 2009 | 이대형 | 외야수 | 64 |
| 2010 | 이대형 | 외야수 | 66 |
| 2025 | 박해민 | 외야수 | 49 |
| LG 트윈스 역대 출루율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1982 | 백인천 | 지명타자 | .497 |
| 2009 | 페타지니 | 지명타자 | .468 |
| 2021 | 홍창기 | 외야수 | .456 |
| 2023 | 홍창기 | 외야수 | .444 |
| 2024 | 홍창기 | 외야수 | .447 |
| LG 트윈스 역대 장타율왕 |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 1982 | 백인천 | 지명타자 | .740 |
13.3.2. 투수
| LG 트윈스 역대 다승왕 |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94 | 이상훈 | 18 |
| 1995 | 이상훈 | 20 |
| 1998 | 김용수 | 18 |
| 2001 | 신윤호 | 15 |
| 2022 | 켈리 | 16 |
| LG 트윈스 역대 평균자책점왕 |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83 | 하기룡 | 2.33 |
| LG 트윈스 역대 탈삼진왕 | ||
| 연도 | 이름 | 기록 |
| 2003 | 이승호 | 157 |
| 2013 | 리즈 | 188 |
| LG 트윈스 역대 세이브왕 |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86 | 김용수 | 26 |
| 1987 | 김용수 | 24 |
| 1989 | 김용수 | 22 |
| 1997 | 이상훈 | 37 |
| 2003 | 이상훈 | 30 |
| 2022 | 고우석 | 42 |
| LG 트윈스 역대 홀드왕 | ||
| 연도 | 이름 | 기록 |
| 2007 | 류택현 | 23 |
| 2017 | 진해수 | 24 |
| 2022 | 정우영 | 35 |
| LG 트윈스 역대 승률왕 |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83 | 이길환 | .682 |
| 1995 | 이상훈 | .800 |
| 1998 | 김용수 | .750 |
| 2001 | 신윤호 | .714 |
| 2013 | 류제국 | .857 |
| 2021 | 수아레즈 | .833 |
13.3.3. MVP 및 신인왕
| 역대 LG 한국시리즈 MVP | |||
| 1990 MVP | 1994 MVP | 2023 MVP | 2025 MVP |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 No.41 김용수 | No.10 오지환 | No.22 김현수 | |
| 역대 MBC-LG 신인왕 | ||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 1986년 | 1988년 | 1990년 |
| No.28 김건우 | No.36 이용철 | No.12 김동수 |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bgcolor=white> |
| 1994년 | 1997년 | 2019년 |
| No.6 류지현 | No.9 이병규 | No.59 정우영 |
- 프로야구 전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시즌 MVP를 배출한 적이 없다.[183] 가장 MVP에 근접한 사례는 4할타자 백인천(1982), 좌완 최초 20승 이상훈(1995)[184], 해당 시즌 다승+구원+승률 3관왕 신윤호(2001).[185]
- MVP가 한 명도 없는 것에 반해 신인왕은 상당히 많이 배출한 구단 중 하나이다. MBC청룡에서 김건우와 이용철[186] 2명을 배출했고, 1990년대 LG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플레이어인 김동수, 류지현, 이병규 등은 모두 신인왕 출신이다. 그 이후 한동안 맥이 끊겼었던 신인왕 계보는 2019년 정우영이 잇게 된다. [187]
13.4. 골든글러브
| 역대 MBC-LG 골든글러브 수상자 | |||
| 포지션 | 이름 | 수상연도 | 비고 |
| 투수 | 이상훈 | 1995년 | [188] |
| 신윤호 | 2001년 | [189] | |
| 포수 | 김용운 | 1982년 | [190] |
| 김동수 | 1990년 | [191] | |
| 1993년 | |||
| 1994년 | |||
| 1995년 | |||
| 1997년 | |||
| 조인성 | 2010년 | ||
| 1루수 | 김용달 | 1982년 | [192] |
| 김상훈 | 1990년 | ||
| 서용빈 | 1994년 | ||
| 오스틴 | 2023년 | [193] | |
| 2024년 | |||
| 2루수 | 박종호 | 1994년 | |
| 신민재 | 2025년 | ||
| 3루수 | 이광은 | 1984년 | |
| 송구홍 | 1992년 | [194] | |
| 한대화 | 1993년 | [195] | |
| 1994년 | |||
| 유격수 | 김재박 | 1983년 | [196] |
| 1984년 | |||
| 1985년 | |||
| 1986년 | |||
| 1989년 | |||
| 류지현 | 1998년 | [197] | |
| 1999년 | |||
| 오지환 | 2022년 | [198] | |
| 2023년 | |||
| 외야수 | 이광은 | 1985년 | [199] |
| 1986년 | |||
| 1987년 | |||
| 김재현 | 1994년 | [200] | |
| 1998년 | |||
| 이병규 | 1997년 | [201] | |
| 1999년 | |||
| 2000년 | |||
| 2001년 | |||
| 2004년 | |||
| 2005년 | |||
| 이대형 | 2007년 | [202] | |
| 박용택 | 2009년 | [203] | |
| 2012년 | |||
| 2013년 | |||
| 김현수 | 2020년 | ||
| 홍창기 | 2021년 | [204] | |
| 2023년 | |||
| 지명타자 | 양준혁 | 2001년 | [205] |
| 이병규 | 2013년 | [206] | |
| 박용택 | 2017년 | ||
- 전 포지션에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다.[207] 가장 많이 배출한 포지션은 외야수로 총 18회, 가장 적은 포지션은 투수와 2루수로 총 2회이다.
- KBO 구단 중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208]
- 가장 최근에 배출된 포지션 별로 배치하면 2루수(2025) - 1루수(2024) - 외야수, 유격수(2023) - 지명타자(2017) - 포수(2010) - 투수(2001) - 3루수(1994)이다.
- 이병규가 외야수로 6회, 지명타자로 1회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팀 내에서 가장 많은 7개를 수상했다. 2회 이상 수상한 선수는 김재박, 김동수(각 5개), 이광은, 박용택(각 4개), 한대화, 류지현, 김재현, 오지환, 홍창기, 오스틴(각 2개)이다.
14. 역대 캐치프레이즈
| 역대 캐치프레이즈 | |
| | |
| 2025 KS | |
| THE ROAD TO CHAMPIONS | |
| 연도 | 슬로건 |
| 1985 | 화끈한야구 승천하는 MBC[209] |
| 1995 | 해냈다 V2! 또 해낸다 V3! |
| 1996 | 확실한 V3! 감동의 96 |
| 1997 | 폭발적인 힘! 질주하는 무적LG! |
| 1998 | 도전과 변화! 질주하는 무적LG! |
| 1999 | 팬사랑 LG 10년! 팬과 함께 V3! |
| 2000 | 새천년 신화창조! 새바람 무적LG! |
| 2001 | 꿈의 실현 V3! 도전하는 무적LG! |
| 2002 | 다시 뛰는 무적 LG! 팬과 함께 V3! |
| 2003 | 변화와 도전! 신바람1등 LG! |
| 2004 | 제 2창단 새출발! 으랏차차 무적LG! |
| 2005 | Powerful LG! Dynamic Twins! |
| 2006 | Team First! Team Play! Teamwork! |
| 2007 | 변화와 도전! 신바람 무적 LG! |
| 2008 | 다시 부는 신바람! 팬과 함께 V3! |
| 2009 | 야구사랑 서울 LG! 팬사랑 LG 트윈스! |
| 2010 | 근성의 LG! 팀웍의 트윈스! |
| 2011 | |
| 2012 | 미리 먼저 생각하고, 일찍 앞서 준비해, 제대로 실행하자! |
| 2013 | 승리를 향한 열정! 새롭게 뛰는 2013! |
| 2014 | 승리를 향한 열정! 더 높은 곳을 향한 2014![210] |
| 2015 |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더 높은 곳을 향한 2015! |
| 2016 | 혁신의 바람, 서울 LG 트윈스! |
| 2017 | 서울은 LG, 승리는 트윈스![211] |
| 2018 | |
| 2019 | |
| 2019 PS | 무적 LG! Road to WIN!! |
| 2020 | 무적 LG! 끝까지 TWINS! |
| 2021 | |
| 2022 | |
| 2022 PS | UNSTOPPABLE TWINS!! |
| 2023 | 무적 LG! 끝까지 TWINS! 승리를 향해, 하나의 트윈스! |
| 2023 KS | BE THE ONE[212] |
| 2024 | 무적 LG! 끝까지 TWINS! 승리를 향해, 하나의 트윈스! |
| 2024 PS | RE:RISE! |
| 2025 | 무적 LG! 끝까지 TWINS! 승리를 향해, 하나의 트윈스! |
| 2025 KS | THE ROAD TO CHAMPIONS[213] |
| 2026 | 2026년 슬로건 |
15. 지역 연고 학교
-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서 지역 내의 고등학교 야구부는 아래와 같다.
- 과거 1차 지명이 있던 시절에는 서울 연고 야구단인 키움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세 곳이 지역 연고 학교를 합동 관리했다. 특이한 건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고등학교도 서울 3개 구단의 우선 지명 가능 학교로 포함이 되었다.[214]
| 지역 연고 학교 | |
| 고교명 | 대표적인 선수 |
| 경기고등학교 | 오지환, 이동현 |
| 경기상업고등학교 | |
| 경동고등학교 | 백인천, 최동환 |
| 덕수고등학교 | 류제국 |
| 배명고등학교 | 심수창, 유영찬 |
| 배재고등학교 | 김태원, 노찬엽, 이광은 |
| 서울고등학교 | 김동수, 유강남, 이상훈, 정우영, 이형종, 김영우 |
| 서울동산고등학교 | |
| 서울디자인고등학교 | |
| 서울자동차고등학교 | |
| 서울컨벤션고등학교 | |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 김건우, 서용빈, 송구홍, 김대현, 김영준, 송찬의 |
| 성남고등학교 | 박종호, 이정용, 이주헌, 차명석 |
| 신일고등학교 | 김재현, 박해민, 봉중근, 김현수, 문보경, 조인성 |
| 우신고등학교 | |
| 장충고등학교 | 이병규, 이종열, 구본혁 |
| 중앙고등학교 | 이종도 |
| 청원고등학교 | 김용수 |
| 충암고등학교 | 김기범, 류지현, 고우석 |
| 휘문고등학교 | 류택현, 박용택, 우규민, 이민호, 임찬규 |
16.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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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LG 트윈스/사건사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사건사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7. 여담
- KBO 리그를 비롯한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리그 최초의 서울 연고 구단이다.[215]
- 국내 스포츠리그 중 지역 연고성이 가장 강한 KBO 리그 중에서도 연고지 서울을 매우 강조해서 지역주의가 부산에 연고지를 둔 롯데보다도 심하다.[216] 이는 LG 트윈스가 MBC 청룡부터 연고지를 OB 베어스보다 더 빨리 잡았기에 영향이 크다.[217] 때문에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 홈경기에 서울 유니폼으로 경기를 진행한다든지[218], 서울과 관련된 응원가도 동일 연고지 구단인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사실상 응원가를 싹쓸이했다.[219] 이 때문에 야구계의 서울 공화국이 연상된다거나 서울 출신이라면 무조건 LG 트윈스 팬이 돼야 한다는 드립이 돌고 있으며 두산전 승리에 관한 스포츠 댓글에서는 강성팬들이 '두산은 원래 충청도 구단이다', '두산 잠실에서 방 빼라', '잠실의 주인은 LG 트윈스이다'라는 공격성 댓글이 심심차게 보였다[220]. 당장 이 문서와 응원가 문서에 '서울'이 몇 번 쓰였는지 검색해봐라. 이와 같은 서울구단의 정통성과 마케팅으로 인해 서울 토박이[221]들은 다른 서울 연고 팀보다 LG 팬인 경우가 많다.[222]
- 1994년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까지 29년의 시간이 걸렸다. 1992년 이후 우승이 없는 롯데 자이언츠 다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햇수가 길다. LG가 마지막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해에 일어났던 일은 1994 FIFA 월드컵 미국, 성수대교 붕괴 사고[223], 지존파 사건이다. 그해 여름은 찜통 더위로 손꼽히며, 오렌지족과 X세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던 시절. LG가 한국 시리즈에 마지막으로 오른 것도 2023년에 21년 만에 다시 진출하기 전까지는 2002년이었다.[224]
- 그럼에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2023년 우승 전의 우승을 모두 90년대에 이뤄냈다는 점. 일본만 보더라도 80년대 이후 우승을 못한 팀들이 둘이나 있으며 메이저리그는 대한민국 근대사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팀은 물론 월드시리즈는 고사하고 리그 우승도 없는 팀도 있는가 하면 무려 40년 동안 우승도 못한 채 지금까지 견디는 구단도 있다.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하는 구단임에도 2023년이 돼서야 안방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90년에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94년에는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열렸으며 이곳에서 LG가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 두 곳은 철거되었거나 철거 예정이다.[225] 그리고 2018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1회 이상 기록한 8개 구단(해체된 현대 유니콘스 포함) 중에서 가장 늦게 잠실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구단이다.[226][227] 또한 2023년 이전까지 LG의 두 번의 우승 모두 상대팀 감독이 정동진이었다.
-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서울 쌍둥이의 모델이 되었고, 성동일이 구단 코치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1994년은 바로 LG 트윈스가 우승을 한 해이고, 드라마에서도 이걸 충실히 재현했다. 성동일은 기뻐하면서 인삼주를 담그면서 다음 해에도 우승하면 기념으로 따서 마신다고 했지만 작중 2013년 현실 파트에서 집들이 하러 모인 등장인물들이 몰래 따서 마셨다. 따서 마신 뒤에 성동일도 못참았는지 따서 마신다고 인삼주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고증을 중요시 여긴 드라마의 특성상 웬만한 회사나 팀의 명칭은 실명 그대로 등장한 것에 반해 유독 LG 트윈스만 가명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는 한다. 그것도 중요 배역 인물이 코치로 뛰고 있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제작진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기는 했다. 요약하자면 기나긴 비밀번호를 찍을 만큼 오랜 기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트윈스가 하필이면 포스트 시즌 기간에 방송할 드라마에 구단명이 나오는 걸 꺼렸다는 이야기다. 만약 진출에 실패했는데 드라마에서 94년 우승을 들먹이면 욕을 몇 배로 얻어먹을 거라 생각한 모양.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드라마가 방송된 2013년, LG 트윈스는 정규 시즌 2위를 달성하며 비밀번호의 악몽을 씻어냈다. 만약 구단명 사용을 허락했다면 드라마와의 시너지 효과를 훨씬 더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
- 해체된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를 제외하면[228] KBO 리그 출범 이후 MBC-LG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홈런왕과[229] MVP 수상자를 낸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홈런왕은 소총타선 이미지+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없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230] MVP의 경우 MBC 시절인 1982년 시즌에 4할 타율을 달성한 백인천과 1995년 시즌에 20승을 달성한 이상훈이 높은 가능성을 보였지만,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 버프와 선발 22연승, 홈런왕+100타점의 박철순과 1995년 한국시리즈 역전 우승과 잠실야구장 홈런왕 김상호에게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LG팬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한다. 공교롭게도 그 해 MVP 선수를 배출한 팀이 모두 OB-두산이다. 2001년에는 16승 다승왕 신윤호가 MVP에 근접했고 1차 투표에서 홈런왕 이승엽을 앞서기도 했지만 2차 인지도 투표에서 역전당하며 아쉽게 MVP에 실패했다.
- 인디밴드 로맨틱펀치의 노래 TGIF(Thank Girl, It's Friday!)에 '이룰 수 없는 이루어질 리 없는 트윈스의 우승에 건배를'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로맨틱펀치의 보컬 배인혁은 LG의 골수팬이라고 한다.
- 잠실야구장 좌석배치도 및 좌석/블럭별 뷰 여기에 들어가면 잠실야구장 좌석별 배치도 및 좌석별 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두산 베어스와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관계로 한 시즌에 LG와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최종 순위에 따라 다음 해[231] 홈개막전의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만약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LG보다 잘하게 될 경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 개막전을 어웨이로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2년 전 상위권을 먹어도 남의 집에서 첫 경기를 치른 경우가 많다.[232][233] 개정된 2024년은 직전 해 두산이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면서 홈개막전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 2010년대에 진출한 포스트시즌인 2013시즌 플레이오프, 2014시즌, 2016시즌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그리고 2019년 준플레이오프까지 모두 3:1로 결정났다. 그것도 1차전을 이긴 팀이(2013 플레이오프 두산, 2014 준플레이오프 LG, 2014 플레이오프 넥센, 2016 준플레이오프 LG, 2016 플레이오프 NC, 2019 준플레이오프 키움) 진출했다.
- 삼성 라이온즈가 외국인 투수를 심각하게 못 뽑는 팀이라면 이 팀은 외국인 타자를 정말로 매우 심각하게 못 뽑는 팀이다. 투수 쪽에서는 해리거를 시작으로 좋은 선수들이 꽤 많이 왔지만 외국인 타자 분야에서 수위급 선수는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루이스 히메네스 그리고 오스틴 딘 이 세 명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도 된다. 정말 이렇게까지 못 데려와도 되는 건가?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외국인 타자 분야에서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쓰고 있으며 오죽 쭉정이들만 데려왔으면 2016년부터는 비하 별명이 이어질 정도까지 되었다. RUN니 - '그 쿠바새끼' - 하얀 가르시아 메이저에서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선수들 조차 모두 실패했으니 정말 답이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2019년 조셉을 웨이버 공시하고 데려온 카를로스 페게로가 타격에서 어느 정도 나쁘지 않았고, 2020년에 합류한 로베르토 라모스는 구단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며 오랜만에 수준급 외국인 타자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라모스의 허리 부상으로 새로 영입한 저스틴 보어는 기대 이하의 실력으로 팬들을 실망시켰고, 그 다음해에 새로 영입한 리오 루이즈마저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루이즈 대신 영입한 로벨 가르시아는 굉장히 기대가 많이 됐지만 타석에서 삼진만 당하며 LG의 외국인 타자는 또 망했다. 결국 보루갈이라는 문서가 생성되었다. 2023년부터는 30홈런, 타점왕, 한국시리즈 우승 등의 타이틀을 거뭐진 최고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 덕분에 외국인 타자 잔혹사가 끝나게 되었다.
-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에서 강윤과 박하늘이 이 구단의 팬으로 등장한다.
- 레전드 등번호인데도 후배들이 망치는 번호들이 유명한데 김재박-김재현의 7번[234]과 이길환[235]의 11번[236]이 있다. 현재 7번은 이영빈, 11번은 함덕주가 사용중이다.
- 이에 반해 안정적으로 좋은 등번호가 된 번호로는 김용수의 41번[237], 미스터 청룡 김상훈 - 해결사 한대화 - 적토마 이병규의 9번과 박용택이 오래 사용한 33번이 있다. 이 세 번호는 모두 영구 결번이 되었다.
- 그 외에 좋은 선수들이 많았던 등번호로는 정삼흠 - 이승호 - 우규민 - 임찬규의 1번, 백인천 - 김동수 - 오지환 - 문보경의 2번, 이동현 -백승현- 정우영의 18번, 이상훈 - 봉중근 - 김윤식의 47번, 봉중근 - 홍창기의 51번 등이 있다.
- 그리고 LG에게 있어서 25번은 다른 의미로 영구 결번을 시켜야 할 정도로 저주가 걸린 번호다.[238][239][240] 2026년 현재에도 다를건 없어서 배재준이 달고 있다.
- LG 트윈스를 꿋꿋이 지탱했던 선수들 중에 유독 1971년생이 많다. 야생마 이상훈, 유지현, 서용빈, 최동수 등이 있다.[241]
- TWINS를 뒤집어서 보면 SNIM⊥, 즉 스님⊥처럼 보인다. 이는 2017년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로고 및 폰트 디자인 변경으로 인해 더 부각되었다.
- LG에게는 9월 9일과 10월 9일 한글날이 길일이다. 9월 9일은 2010년대 대부분의 경기를 이겼으며, 2016년과 2017년은 두산전 승리였다.[242] 또한 1993년 9월 9일은 김태원이 KBO 역대 8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날이며, 1994년 9월 9일은 2위였던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2021년 9월 9일에도 한화를 상대로 4연패를 끊었고 2022년 9월 9일은 키움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선두 추격의 희망을 이어갔다. 그러나 2023년에는 광주에서 KIA에 더블헤더 2패를 당하면서 징크스를 이어가지 못했다. 10월 9일 한글날은 2014년 -16의 승패마진을 극복하고 KIA에 대역전승으로 정확하게 승률 5할을 맞췄으며 2019년에는 키움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유일한 1승이 나왔다. 2020년에는 케이시 켈리의 완봉승으로 NC의 팀 144경기 연속 득점기록을 중단시키며 4:0 승리를 거뒀다. 2021년에는 엘나쌩의 끝판왕 고영표를 극복해내며 선두경쟁팀 KT를 6:1로 꺾었다. 하지만 2023년에는 롯데에게 8:1로 패배했지만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2군 선수들 위주로 경기를 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김범석이 데뷔 첫 홈런을 친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LG가 오랜 암흑기 탓에 이 날짜에 경기가 잡힌 적이 거의 없다. 과거의 기록을 더 찾아보면 1998년 OB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8 끝내기 역전승을 기록한 바 있으며, 1995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4:3으로 승리했다. 2023년까지 유이한 이 날짜 패배는 1993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5:1 패배와 2023년 롯데 자이언츠전 패배이다. 하지만 2024년에는 kt wiz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11회말 실책성 플레이를 저지르며 5:6으로 패배해 5차전까지 가야 했다.
- 반대로 LG에게는 4월 30일, 9월 19일과 10월 30일이 흉일이다. 2019년 9월 19일은 4위 매직넘버 3을 한번에 소멸할 수 있는 날이었지만 NC에 역전패로 인해 4위 확정이 일주일 더 늦어졌고 타선과 불펜이 포스트시즌까지 고전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옆집 두산 베어스는 이 날 선두 SK와의 더블헤더를 쓸어담으며 대역전 우승의 시발점이 되었던 날이다. 또한, 2018년 9월 19일은 5강 안정권으로 접어드는 찰나에 7연패 중이었던 롯데를 만나 전날 이미 윌슨을 내고도 패한 상황에서 이 경기를 통해 5강의 희망을 사실상 날려버리고 8위까지 추락해버린 원인이 된 날이며, 2017년 9월 19일은 역대 워스트 경기 다섯 손가락안에 꼽을 수 있는 역사에 남을 막장경기로 5강 희망을 사실상 접어버린 날이다. 2013년 9월 19일은 추석 연휴 SK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로 이 경기에서 완패를 당하고 스윕에 실패하면서 선두를 달리며 좋았던 분위기가 다소 꺾였고 1위 자리를 삼성에게 반 게임 차로 위협받았으며 결국 다음날 선두를 내주고 우승에 실패한 계기가 된 날이었다. 또한 LG로 구단명을 변경한 이래 9월 19일의 전적은 무려 3승[243] 13패(승률 0.188)이며 해당일 경기가 많아지는 2001년부터로 한정하면 2승 10패(승률 0.167)라는 절망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2020시즌은 9월 19일이 주말이지만 이 날 만큼은 비가 오기를 바래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위권 추락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이날 두산을 상대로 멋지게 승리를 거두며 9월 19일과의 악연은 종지부를 찍을수 있게 되었다. 2021년에도 KIA를 상대로 3연패를 끊으면서 9월 19일 처음으로 연승을 거두게 되었다. 2022년에는 경기가 없었고 2023년에는 KIA, 2024년은 롯데를 상대로 승리해 4연승을 거둬 징크스를 옛날일로 만들고 있다. 한편 1998년 이후 10월 30일 역시 흉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20년-2021년 10월 30일에 최종전에서 패배하는 비극을 맞았는데 2020년에는 해당 경기 패배로 2위였던 팀이 4위로 추락하는 대참사를 맞았으며 2021년에는 롯데에게 덜미를 잡힌데다가 1위 경쟁팀 삼성과 KT가 나란히 승리하며 롯데전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그대로 3위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30일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넥센에게 패배하며 1승 2패로 밀리게 되었고 1998년 10월 30일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현대 유니콘스에게 우승을 내줬다. 이날 유일하게 좋은 기억은 2002년 10월 30일 플레이오프 4차전으로 KIA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기적적인 2승 2패를 맞추게 된 것 뿐이다. 2022년은 플레이오프 5차전이 10월 30일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키움을 상대로 4차전에서 피업셋으로 끝나면서 흉일을 맞이할 필요도 없이 비참하게 끝났다. 그러나 2025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한화를 상대로 대전에서 4:1로 끌려가던 9회초에 타자일순으로 6득점하며 3승 1패를 만드는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지독한 징크스를 극복해내는데 성공했다. 2021년부터는 4월 30일도 흉일이 되었는데, 4월 30일 경기에서 5년 연속 패배를 당했고 특히 2021년~2023년에는 4월 30일이 낀 시리즈에서 3년 연속 스윕패를 당했다.[244]
- 1990년 LG 트윈스로 구단명을 교체한 후 현재 진행형으로 2025년까지 36년 연속으로 10승 투수 한 명씩은 배출했다.[245] 심지어 6668587667의 암흑기에도 10승 투수 하나씩은 배출했으며, 불펜 혹사가 극에 달했던 김성근 재임시기인 2002년에도 장문석이 구원으로만 10승을 기록했다. 1999년에는 손혁이 아슬아슬하게 10승 투수가 되었다.[246][247]
- 코로나19로 한국 야구에 관심이 많아진 미국 네티즌과 기자들 사이에서는 로스엔젤레스 다저스와 닮은 구단으로 분류되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우승 한 번 없었던 점(다저스 1988~2020, LG 1994~2023), 플옵에서 아둥바둥거려도 결국 비참하게 광탈하는 점(특히 믿었던 투수가 개박살나면서)을 고려한 모양. 같은 구장 두산은 은근히 우승 많이 한다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48], 같은 연고 키움은 선수 잘 키우지만 거지라고 탬파베이 레이스와 닮았다고 언급되었다[249].
- 10년의 긴 암흑기를 겪었음에도 통산 승률은 0.500로 같은 긴 암흑기를 겪었던 롯데 자이언츠(0.470)와 한화 이글스(0.461)보다 통산 승률이 훨씬 높다.[250]21세기 들어 생긴 약팀 이미지에 비해 의외로 꼴찌 횟수는 2006년과 2008년 2회로 적으며[251] 역대 한 시즌 최다패 기록이 2008년의 80패이다.[252] 즉, 통산으로 놓고보면 압도적으로 잘한 시즌이 많지는 않지만, 거꾸로 압도적으로 못한 시즌도 별로 없는 구단. 그러나 암흑기를 청산한 2013년 이후 점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2019년부터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이제는 약팀의 이미지도 점차 희미해졌다. 2020년대에 입문한 팬들에게 LG는 오히려 준수한 성적이 보장되는 강팀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있고 팀이미지가 강인한 느낌의 팀인지라 팬들이 활동에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매우 넘치는 모습이다.또한 순위싸움이 적극적일때는 야구 커뮤니티나 댓글 등에서
타팀팬과 많이 싸운다. - KBO의 황금 세대 드래프트에서의 실적이 영 좋지 못한 징크스가 존재한다. 2006년 드래프트의 경우 LG에서 지명한 선수들은 대부분 좋지 못한 성과를 남겼으며 차우찬의 경우 FA로 사왔다.[253] 2012년 드래프트는 다른 구단들은 주전급 선수가 한 명씩은 있는 반면 LG는 최성훈이 최후의 생존자로 남아있다가 그마저도 삼성으로 이적했다. 베이징 키즈 1세대인 2018년 드래프트는 다른 구단에 비해 조금 아쉽다는 평을 들었으나 이재원과 무려 10라운드 출신인 문성주 등이 터지면서 2022년 이후에는 그래도 나아졌다는 평가다. 2022년 드래프트도 야수가 강세인 드래프트에서 당시 뎁스가 두터웠던 투수 위주로 뽑는 의아한 행보로 인해 2024년 기준으로는 별 성과가 없으나 아직 3년차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반면 황금 세대와는 거리가 먼 1994년 드래프트는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드래프트였고 1997년 드래프트도 이병규 뿐 아니라 여러 준수한 선수들을 얻는데 성공했으며[254] 2011년 드래프트에서는 다른 구단들의 선수들이 상당수가 방출된 가운데 주전포수이다가 2023년 럿데러 이적한 유강남과 3년 연속 10승 에이스 선발 투수임찬규를 건지면서 상당히 선방하고 있다. 그리고 베이징 키즈 2세대이지만 2018년에 비해서는 조금 평가가 낮은 2019년 드래프트에서는 신인왕, 홀드왕에 강력한 투심을 가진 정우영, 최강 불펜진의 일원이였자 2023년 선발로 전환해 좋은 성적을 내고 전역해 2025년 복귀한 이정용, 20홈런 거포 주전 3루수문보경 등이 대박을 치면서 94년 이후 21세기 LG의 최고의 드래프트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드래프트된 선수들 모두 1군에 출전한 적이 있다.
- 해태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와의 트레이드가 많았다. 차동철, 오희주, 한대화, 신동수, 송인호, 송유석, 동봉철, 최향남, 김동호, 박철웅, 안상준, 양준혁(이상 해태), 김상현, 이원식, 소소경, 마해영, 최상덕, 서동욱, 강철민(이상 기아) 등이 쌍둥이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유석이 해태와 다르게 LG는 주장을 선수단 투표를 통해 선출하며, 구단에서 주장에게 판공비가 나왔다고 말했다. 90%가 넘는 득표율로 주장으로 당선된 송유석은 반도패션 상품권을 모아서 신인급이나 2군 선수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 축구 커뮤니티 등지에서 KBO의 아스날로 통한다. 같은 수도팀을 연고로 하고 마지막 우승 당시 LG는 투수 분업을 비롯한 자율 야구, 아스날은 벵거볼로 시대를 선도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팬층이 넓은데다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매년 우승의 근처도 가지도 못하고 4위권에서만 머문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매년 승부처에서 고비를 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튜버인 정이수가 아스날 및 LG팬으로 유명하다. 일단 LG 트윈스는 2023년 29년 만에 통합우승에 성공하며 아스날보다 먼저 숙원을 풀어냈다. 2022-23 시즌 막판에 뒷심 부족으로 아쉽게 리그 우승을 놓친 아스날은 2023-24 시즌 리그 종료까지 리그 10경기 남긴 28R 기준으로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올라있는데 무패우승에 성공한 2003-04 시즌 이후 20년 만의 숙원을 풀어낼 경우 LG와의 평행이론이 완성되나 아스톤 빌라전 패배로 인해 한끝차로 준우승하면서 아직까지는 한국시리즈 우승 전 LG의 포스트시즌 잔혹사와 비슷한 모습이다.
- 유니폼은 홈의 경우 흰색 바탕에 검은색 스트라이프 유니폼이고 어웨이의 경우 검은색 유니폼으로 검은색이 주를 이루지만 방송사에서 나타내는 스코어보드에서는 LG를 주로 빨간색 계열로 표시한다. 응원도구의 경우 빨간색과 노란색이 주를 이룬다.
- 경기고 & 신일고 & 충암고 & 휘문고 & 서울고 쪽에서 레귤러를 많이 배출해냈지만 유독 배명고 & 덕수고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 특히 배명고 출신은 LG에 거의 없는대신 두산에 몰려있고 비슷하면 배명고 출신들을 지명 안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 물론 LG에 배명고 출신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프로에서 족적을 남기지 못했거나 무명들이 대부분. 그나마 성적을 좀 남겼던 배명고 출신 선수가 바로 심수창. 스톡킹에 나오는 그 쉼창 맞다. 그러다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중 하나가 되고 2024년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은 유영찬이 배명고 출신으로 LG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선수가 되었다.
- 선린인터넷고와의 궁합은 매우 좋지 않다. 그나마 1994년 신인 3인방 중 하나인 서용빈이 있지만 플레이 스타일상의 한계와 부상과 병역 관련 문제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많은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코칭스태프로서 엄청난 흑역사를 썼다. 송구홍이 1992년 20-20을 기록했지만 방위병 등의 문제로 오래 활약하지는 못했다. 최근 들어 선린 출신 LG 선수는 1차지명 김대현과 김영준이 있는데 2019년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으나 2024년 37경기 출장해 5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것 말고는 출전기록도 별로 없다. 심지어 2025년애는 단 1경기도 출정하지 못했고 1군 콜업도 단 1번도 하지 못했다. 2025년 들어 만년 유망주 소리를 듣던 송찬의는 개막 이후 어느 정도 기회를 받았으나 이를 살리지 못하고 두산전 중요한 8회 견제사로 감독의 신뢰를 잃으며 2군으로 내려갔다. 사실상 선린과 LG는 나쁜 상성임을 보여주었다.
- 2023년의 우승으로 미네소타 트윈스보다 먼저 21세기 우승을 이뤄낸 구단이 되었다. 미네소타는 1987년, 그리고 1991년 우승 이후 아직까지 우승이 없다. LG보다도 우승기록이 더 먼저인 것과 비교하면 아이러니한 일.
-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듬해인 1995년에 구본무 회장은 아와모리 소주 세 병을 사 온뒤 다음 우승 때 따기로 했다. 소주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자. 또한 롤렉스 시계도 사서 우승 MVP 선수에게 주기로 했는데, 이 선물들은 무려 29년 동안이나 봉인되어 있다가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 우승 'MVP'가 된 오지환이 故 구본무 회장이 선사한 금고에 보관되고 있던 롤렉스 시계를 가져가게 되었는데, 막상 받게 되니 "선대 회장님의 유품이나 다름없어 갖기엔 부담이라며 "이 시계는 구광모 회장님을 드리고, 나는 다른 시대에 맞는 시계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했다. #
- 아즈망가 대왕이 한국에서 로컬라이징 되면서 윤나라가 좋아하는 야구팀으로 나오는데, LG가 이번에 우승한다고 하자 롯데 자이언츠 팬인 양소란이 이번에는 롯데가 이길 것이라며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해당 방영분이 2003년 방영분인데 그로부터 20년 뒤 LG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면서 만화의 내용이 현실이 되었다.[255]
- 플레이오프에서는 여러 차례 업셋을 당했지만, 한국시리즈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단 한 번도 업셋을 당하지 않았다. LG는 1990년, 1994년, 2023년, 2025년에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는데 이렇게 진출한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이 기록을 유지 중이고, 2015년 10개 구단 체제가 확립되고 신설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2016년, 2019년, 2020년에 진출했는데, 모두 승리를 차지하며 단 한 번도 업셋을 당하지 않았다. 단, 이는 저 세 시즌을 모두 정규리그에서 4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기록으로, 현행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규칙은 정규 리그 4위 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를 주고 1차전 홈구장 개최라는 어드밴티지까지 같이 주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업셋당할 수 없기에 가능한 것이다.[256][257]
- 2025년 3월 30일 두산이 2승 6패로 단독 10위로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LG는 10개 구단 체제가 시작된 2015년 이래 시즌 도중에도 단독 10위를 해본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258] 10개 구단 체제에서 kt와 NC, 롯데, 한화, 키움이 최하위 시즌을 겪었으며 구단 통산 최하위 시즌이 없는 삼성조차도 2016, 2017, 2021, 2023년에 시즌 도중 10위를 경험했다.[259] KIA는 2019년과 2021년, 2023년 시즌 도중 10위를 기록했고, SSG는 전신인 SK 시절인 2020년 시즌 도중 10위를 기록했다. LG는 단독 최하위 기록도 2014년 6월 11일로 당시는 KT의 1군 참가 전으로 9위였다. 해당 시즌은 승패마진 -16을 극복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 2020년대 들어서는 타 팀에도 잘 생긴 선수가 늘어 덜 부각되는 편이지만, 역사적으로 LG는 잘생긴 선수가 많은 팀이라는 인식이 있다. 과거 실력과 외모를 모두 겸비했던 1994년 신인 트리오 류지현, 서용빈, 김재현을 필두로 그 이후에도 이대형, 박용택, 심수창 등 잘 생긴 선수가 많았다. 다만 암흑기 시절에는 잘 생긴 선수들이 많은데 야구를 못 하니 소위 도련님 야구라 불리며 욕을 배로 듣게 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도 타 팀에 비해선 잘 생긴 선수가 많은 편이다. 2026년 현재는 정우영,백승현, 이정용,홍창기 정도가 팀 내 비주얼로 꼽히는 편이다.
- 역대 네 차례의 정규 시즌 우승 과정에서 유독 인천광역시와 인연이 깊다. 네 번의 우승 모두 결과가 인천 연고팀의 도움 덕분에 우승을 차지했거나 인천에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 1990년 - 김동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시즌 최종전을 이겼지만 우승을 확정하려면 경쟁팀 해태가 져야 했다. 다행히(?) 해태가 태평양과의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원정 더블헤더 경기에서 1승 1패를 하는 바람에 LG의 우승이 확정됐다. LG 선수단은 당시 선수단 납회식을 하고 있었던 서울 역삼동 반도 유스호스텔(現 GS강남타워)에서 해태의 패배 소식을 듣고 우승의 축배를 들었다.
- 1994년 - 유일한 자력 우승 확정 사례. 이 당시 LG는 태평양과의 인천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스스로 우승 매직넘버를 지웠고 그라운드에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 2023년 - 당시 LG의 정규 시즌 우승을 위해서는 2위 kt와 3위 NC가 모두 져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2위 kt는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KIA에 패했고 3위 NC도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SSG에 역전패를 당하는 바람에 LG의 우승이 확정됐다. LG 선수단은 원정 경기 출전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던 버스 안에서 우승 확정 소식을 들었다.
- 2025년 - LG가 NC와의 홈 최종전에서 패하면서 자력 우승 가능성을 스스로 날려먹었으나 2위 한화가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SSG에 9회 3점차로 앞서고 있고 2아웃을 잡은 상황에서 내리 4점을 내주는 믿기 힘든 역전패를 당하면서 LG 우승이 확정됐다. LG 선수단은 경기 종료 후 해산했는데 일부는 경기장에 남아서 락커룸 내 TV로 한화와 SSG의 경기를 시청했고[260] 일부는 아예 귀가하려던 경우도 있었다.[261] 그리고 우승 확정 이후 부랴부랴 잠실구장으로 다시 모여서 늦게까지 경기장에 남아 있던 팬들과 우승 파티를 즐겼다.
- 일본프로야구 팀 중에서는 한신 타이거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비슷한 점이 많다. 거대한 강성 팬덤 보유와 2023년에 우승한 것은 한신과, 1990년대에 강렬한 전성기를 보냈던 수도 연고 구단인 것은 야쿠르트와 비슷하다.
17.1. 모기업 이름을 바꾼 야구단
사실 LG그룹은 KBO 리그에 더 일찍 참가할 수도 있었다. MBC가 추진하던 프로야구 창설 TF에서 럭키금성그룹에 "부산·경남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3세대 경영인 형제들도 모두 부산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LG그룹의 뿌리이기도 한 락희화학 공업사 공장이 부산 온천동에 있기도 했다.이 때 당시 외유 중이던 구자경 회장 대신 이헌조[262]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지금 오너가 부재중이니 돌아오신 후에 협의 후 확답하겠다"며 답변을 미뤘고[263] 당시 KBO는 프로야구 창단 목표일까지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서울 연고를 고집하던 롯데그룹을 부산으로 보내버리며 프로야구 원년 연고지 배치를 마무리지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이 귀국하여 이헌조 실장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무릎을 치며 "야이 문디야, 우리가 그냥 하겠다고 받아 들였어야 안카나!"[264] 라며 대노하며 이 실장을 나무랐다고 한다. 능성 구씨 집안 가풍상 아랫사람을 나무랄 때도 조용히 타이르는 식이었고 구자경 회장 또한 성품이 온화했다는 이야기를 감안한다면 이 당시 프로야구단 창단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구 회장이 상당히 격분했음을 알 수 있다.[265] KBO 리그는 구단주 회의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번 때를 놓치면 마음대로 참여할 수도 없다.[266] 그래서 꿩 대신 닭격으로 만든것이 프로축구 럭키금성 황소를 창단했다는 후문이었다.[267] 사실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과 씨름단 창단 이후로도 럭키금성그룹은 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였는데, 삼미와 청보에서 야구단을 매물로 내놓을 때 인수하려 하기도 했고 제 7구단 창단 논의가 있을 때도 거기에도 참여했지만 수위권의 재벌그룹이었는데도 인수 협상에서 금액 문제로 마찰이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계속 무산되었는데, 마침 MBC가 1989년 시즌 종료 직후에 구단을 포기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거하게 돈들여 인수한 것이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 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xx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268] 구단명을 럭키의 L과 금성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269] 반도패션, 호남정유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에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후 LG 유니폼이 바뀐해인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뚝섬 돔 경기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축구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현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84년에 그룹 계열사인 LG애드가 발족한 것을 보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다만 최초는 LG애드나 LG카드에게 내어줬을지언정, LG라는 그룹명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90년대 초반 LG 트윈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그룹이 야구단을 자신들의 가장 큰 홍보 수단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2017년 구단 CI와 워드마크가 바뀐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송구홍 단장이 밝힌 바로는 2017년 LG 그룹 70주년을 기념해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송구홍 단장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라며 얼버무리긴 했지만 자신이 단장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 온 작업이었다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그룹 윗선에서 직접 개입했을 확률이 높다.
17.2. 서울 SK 나이츠와의 평행이론
똑같이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270] 프로농구단 서울 SK 나이츠와는 평행이론이라고해도 좋을만큼 여러 모습이 매우 똑같다. 우선 두 팀 모두 리그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기 흥행 구단이다. 여기서 더 소름 돋는 것은 성적이나 팀의 면면을 볼 때 똑같은 점이 심하게 많다는 점이다. 그 평행이론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렇다.- 2002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대구광역시 연고팀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삼성 라이온즈, 대구 동양 오리온스)
- 그 이후 2013년까지 10년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SK는 10년 동안 1회 진출)
- FA로 스타선수를 영입해도 죄다 먹튀가 되는 흑역사[271]
- 팀 플레이가 없고 철저하게 개인주의가 만연한 모래알 팀이라는 소리를 들음
- 2012년부터 형님 리더십을 표방하는 감독이 암흑기를 탈출시킴 (문경은, 김기태)
- 암흑기를 탈출시킨 흑인 선수가 2013년 인성논란으로 곤욕을 치름 (애런 헤인즈, 레다메스 리즈)
-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짧은 황금기
- 2018년 후반기 동반 멸망[272]
- 2019년 부활[273]과 그 이후 포스트시즌에 단골 출전했다.
- 공휴일 더비마다 같은 연고팀에게 참패[274]
- 2020년대에 유망주 육성이 성공하며 완연한 강팀으로 자리잡음
- 2020년대 포스트시즌에서 하위팀에게 업셋 허용
- 2020년대 우승
대략 2015년 초반까지는 두 팀이 그야말로 닮은 꼴인 팀이었다. 이후 2016년 LG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평행이론은 끊어졌고 2018년 SK 나이츠가 우승하면서 두 팀의 암흑기 동반역사는 끝을 맺었다. 근데 2018년 하반기부터 또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LG 트윈스가 2018년 우승한다면 평행이론이 또 다시 증명될 지도 모른다. 가을야구에도 진출하지 못하며 평행이론은 완전히 깨졌지만, SK도 18-19 시즌을 사실상 망치며 또 평행이론이 증명될 가능성이 생겼으며, 그 이후에는 두 팀이 포스트시즌에 꾸준하게 진출하면서 평행이론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이후 2022년 SK가 먼저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사이 LG는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하며 한국시리즈에 나가보지도 못했고,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LG가 통합우승을 했지만, 2023-24 시즌에서 SK가 6강 플레이오프에서 0승 3패로 업셋당해 무너지면서 평행이론이 또 깨졌다.
LG와 SK의 시즌 말아먹는 패턴은 의외로 다른데 LG는 비시즌에 기대를 가지게 하다가 시즌부터 얄팍한 선수층으로 번번히 무너진다면 SK는 비시즌에 판을 깔기만 하면 무조건 망하는 패턴이다. 그나마 암흑기를 도중에 한 번 끊거나 무너지기 전에 우승을 추가하는 등 한동안은 SK가 앞서 있긴 했으나 LG가 2020년대 들어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면서 7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 연속 진출 기록을 유지 중이고 그 기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도 두 차례나 하면서 SK의 우승 횟수를 넘어섰다.
17.3.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평행이론
연고지는 다르지만 같은 스포스 계열인 LG스포츠팀이다. 엮이는 부분도 있고 객관적으로 비슷한 부분도 있다. 평행이론을 따져본다면 이렇다.- 2001년 농구와 2002년 야구 모두 삼성스포츠팀들에게 우승을 허용을 했다. (2001년 수원 삼성 썬더스, 2002년 삼성 라이온즈)
- FA로 스타선수를 영입해도 대다수 먹튀가 되는 흑역사[275]
- 팀 플레이가 없는 모래알 팀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276]
- 시즌 중 사퇴는 없지만 감독 교체가 잦아지면서 독이 든 성배이자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들었다.[277]
- 7번을 달았던 선수가 언급하기 어려운 선수가 됨 (조우현, 김재현)[278]
-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짧은 황금기였다.[279]
- 2019년 부활[280][281]
- LG 출신 스타 플레이어의 감독사 시대 (00-01 정규리그 MVP 조성원[282], 94 신인왕 류지현)
- 리빌딩(재건)을 기다려주지 않는 팀들
- 2022년에 오랜만에 오른 2위, 그리고 피업셋을 당했다.[283]
- 2020년대에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 하위팀한테 피업셋을 당했다.[284]
- 2019년부터 포스트시즌에서 LG를 상대하거나 이기고 올라간팀은 준우승 한다는 징크스가 있다.[285]
- 길었던 21세기 첫 우승까지의 기간.[286]
- 1년 차이로 우승과 오랜 기다림 끝에 우승 : 2023년 한국시리즈 LG 트윈스 우승, 2024-25 KBL 챔피언결정전 창원 LG 세이커스 우승[287]
- LG스포츠의 21세기 첫 우승 감독 모두 SK스포츠 소속 경력 보유. [288]
- 2025년 LG 스포츠단 챔프전 나란히 우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LG 트윈스가 2025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LG스포츠는 2025년 파이널을 모두 우승하게 되었다.
17.4. 해설위원 & 단장 사관학교
방송계에는 LG 트윈스 선수의 경력을 거친 해설위원이 상당히 많다. 표준어에 익숙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방송 적응에 아무래도 유리하게 작용할 만하다. 1990년대 인기 절정을 달렸던 LG가 미디어에 자주 부각되는 대표 구단이라는 점도 이들에 대한 방송사의 수요가 많아진 이유로 분석된다.2010년대 이후로는 선수 시절이나 프런트 시절 LG를 거친 해설위원들이 더 많아졌는데 2025년 현재 KBS N SPORTS의 박용택, MBC SPORTS+의 이상훈, 김선우, 허도환, SPOTV의 이대형, 이동현, SBS Sports의 최원호, 이택근까지 8명의 해설위원이 LG 트윈스에서 뛰어본 경력을 갖고 있다. 과거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인물까지 넓혀보면 안치용, 봉중근, 심재학, 이종열, 김용수, 이병규, 김재현, 차명석, 서용빈, 손혁, 양준혁, 정성훈, 김동수, 김용의, 김정준, 류지현, 현재윤, 이병훈, 이성우, 심수창 등 LG 출신 해설위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20년대 들어서는 단장에도 LG 출신이 많아졌는데 2025시즌 기준으로 KIA 타이거즈 심재학, 삼성 라이온즈 이종열, LG 트윈스 차명석, SSG 랜더스 김재현, kt wiz 나도현, 한화 이글스 손혁 등 10개 구단 중 총 6개 구단 단장이 LG 트윈스와 인연이 있는 단장들이다.
17.5. 마케팅
- 2014년부터 산리오와 제휴를 맺고, 헬로 키티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판매하는 헬로 트윈스라는 쇼핑몰을 개설했다.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도 매장이 있다.
- 2016년부터는 무려 스타워즈와 어벤져스와의 컬래버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스타워즈는 시범경기 때 매장에 나왔고, 어벤져스는 5월에 출시. 트윈스샵이 아니라 헬로 트윈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5월부터는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와의 컬래버레이션도 진행되었다.
- 2019년에는 미니언즈와 컬래버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 2020년부터는 무려 카카오프렌즈와의 컬래버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2020년 8월 현재는 레플리카, 모자, 인형만 예약 판매로 출시된 상태며 차후 키링, 에코백 등이 추가될 예정. # 이로써 LG 트윈스는 KBO에서 컬래버레이션의 명가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게 되었다.
- 2022년 6월에는 피티코퍼레이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인 단순생활과 넥밴드 선풍기, 무드등, 블루투스 스피커 등 컬래버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단순생활 트윈스 2022년 LG 트윈스 슬로건인 'Twins Everywhere' 아래 야구장을 넘어 일상을 다채롭게 꾸밀수 있는 LG 트윈스 생활용품을 선보이며 '생활 속의 트윈스'로 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
- 2022년 7월에는 코카콜라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였다. 유니폼, 유광점퍼, 써머백, 모자, 아이싱티, 기념구,핸드폰 케이스, 러기지택, 기타 잡화류 등을 출시한다. 각 품목은 레드, 블랙 컬러를 메인으로 LG트윈스와 코카-콜라 브랜드의 로고가 다양하게 적용되었다. 보도자료 스토어샵
- 2024년 웹툰 마루는 강쥐 캐릭터 마루와의 콜라보를 진행하여 유니폼과 응원배트를 비롯한 굿즈를 출시했고 젊은 층 팬들에게서 반응이 좋았다. 또한 마루 인형탈의 시구도 함께 진행하였다.
- 2025년 인기 캐릭터 최고심과의 콜라보를 진행한 바 있다. 팬들로부터 감다살이라는 평을 받았고, 굿즈가 정말 빨리 품절되어 플레이어 키링은 8000원 짜리였으나 1-2만원에 프리미엄를 붙여 구하는 사람이 생기는등 반응이 좋았던 콜라보이다. 현재는 물량이 풀려 엘지 콜랩샵에서 구할수있다. 최고심 인형탈 시구 함께 진행 하였다.
- 2025년 패션브랜드 블루밍테일과콜라보를 진행했다. 고양이 네로 키링이 귀여워 반응이 좋다.
- 2025년 5월 헬로 키티와 재 콜라보를 진행하였다. 지금껏 했던 콜라보중 반응이 역대급이라 팝업스토어 대기줄을 새벽부터 서는 사람이 생길정도.. 온라인 콜랩샵에서도 거의 즉시 품절되는 바람에 더 구하기 어려워졌다. 헬로키티 인형탈의 시구도 예정되어있었으나, 경기 우천취소로 덩달아 함께 취소되었다.
- 2025년 7월 28일,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공식 캐릭터 뿔바투와 콜라보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공개됐다. 8월 중 콜라보 상품이 출시될 예정이며, 7월 29일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리더 수빈이 콜라보 유니폼을 착용하고 마운드에 올라 시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
- 2025년 8월 8일부터 8월 10일까지 넥슨에서 출시한 게임인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콜라보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공개되었다. 트윈스 TV 영상[289]
17.5.1. PLCC 카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PLCC#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LG 트윈스/PLCC#|]]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7.5.2. 도서
- <볼수록 만만한 야구 -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 / 저자(김윤정) /2010년 5월 /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축구편(FC 서울[290]), 농구편(서울 SK 나이츠[291]), 골프편과 함께 출간되었다. 2011년을 기준으로 스토리가 흘러가며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은 어린아이와 에이스 투수가 만나 야구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학교 도서관이나 중고책방에서 가끔 눈에 뜨인다.
-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 저자(김은식) / 2013년 11월 / 표지부터 정의윤이 등장해 기분이 나빠진다. 속지에도 큰 그림으로 또 나오기 때문에 기분이 또 나빠진다. 그 것만 빼면 MBC 청룡과 LG의 신바람 야구와 리즈 시절을 보고 싶으면 좋은 책이다.
- <10년을 기다린 LG트윈스 스토리> / 저자(안승호, 김식) / 2013년 10월 / 10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끈 김기태 감독이 2014년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면서 흑역사가 되었던 책이다.
- <김기태의 형님 리더십> / 저자(남도현, 정철현) / 2013년 8월 / 마찬가지로 10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끈 김기태 감독이 2014년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면서 사건 이후에는 흑역사가 되었던 책이다.
- <봉중근의 야구공 실밥 터지는 소리> / 저자(봉중근) / 2013년 1월 / 봉중근의 LG 선수시절과 선수단들의 분위기 등이 담겨져 있는 암흑기 시절 이야깃거리들이 많이 있다.
- <오늘도 택하겠습니다> / 저자(박용택) / 2021년
- <승리의 함성을 다 같이 외쳐라> / 저자(윤세호) / 2023년 10월 / LG트윈스 담당 기자 윤세호가 29년 만 정규시즌 우승을 맞이하여 2011년 박현준의 승부조작 사건부터 2023년 10월 정규시즌 우승까지의 시즌 기록과 일대기 등을 적은 책이다.
- <야구선수 임찬규 - 낭만투수 에이스 성장기> / 저자(임찬규, 윤세호) / 2025년 10월
-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 / 저자(염경엽) / 2025년 11월 / 2020년대 최초 2회 우승팀 감독 염경엽의 인생 솔루션과 조언 자신의 감독 커리어 등을 쓴 책이다.
18. 관련 문서
- MBC 청룡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잠실 시리즈
- LG 챔피언스 파크
- 1983년 한국시리즈[292]
- 1990년 한국시리즈
- 1994년 한국시리즈
- 1997년 한국시리즈
- 현대자동차 아토스배 199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 삼성증권배 200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 2023 신한은행 SOL KBO 한국시리즈[293]
- 2025 신한 SOL Bank KBO 한국시리즈
- LG 트윈스/트레이드
- 사랑해요 LG
- 유광잠바
- 엘롯기
- 두엘롯
- 엘넥한
- 엘롯한
- 엘 꼴라시코
- 엘키라시코
- 오리갑
- 6668587667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 이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안됩니다
- 탈쥐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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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화신기
- 보루갈
- 윤세호
- 엘나쌩 클럽
- 아워게임 : LG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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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 | 삼미 슈퍼스타즈[1] | 삼성 라이온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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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태 타이거즈[2] | MBC 청룡[3] | OB 베어스[4] | |
| [1] 舊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전신. [2] 現 KIA 타이거즈의 전신. [3] 現 LG 트윈스의 전신. [4] 現 두산 베어스의 舊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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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 | | OB 베어스 | ★ 1회 | |
| 1983 | | 해태 타이거즈 | ★ 1회 | |
| 1984 | | 롯데 자이언츠 | ★ 1회 | |
| 1985 | | 삼성 라이온즈 | ★ 1회 | |
| 1986 | | 해태 타이거즈 | ★ ★ ★ ★ ★ 5회 | |
| 1987 | ||||
| 1988 | ||||
| 1989 | ||||
| 1990 | | LG 트윈스 | ★ 1회 | |
| 1991 | | 해태 타이거즈 | ★ ★ ★ ★ ★ ★ 6회 | |
| 1992 | | 롯데 자이언츠 | ★ ★ 2회 | |
| 1993 |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7회 | |
| 1994 | | LG 트윈스 | ★ ★ 2회 | |
| 1995 | | OB 베어스 | ★ ★ 2회 | |
| 1996 |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 ★ 9회 | |
| 1997 | ||||
| 1998 | | 현대 유니콘스 | ★ 1회 | |
| 1999 | | 한화 이글스 | ★ 1회 | |
| 2000 | | 현대 유니콘스 | ★ ★ 2회 | |
| 2001 | | 두산 베어스 | ★ ★ ★ 3회 | |
| 2002 | | 삼성 라이온즈 | ★ ★ 2회 | |
| 2003 | | 현대 유니콘스 | ★ ★ ★ ★ 4회 | |
| 2004 | ||||
| 2005 | | 삼성 라이온즈 | ★ ★ ★ ★ 4회 | |
| 2006 | ||||
| 2007 | | SK 와이번스 | ★ ★ 2회 | |
| 2008 | ||||
| 2009 |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10회 | |
| 2010 | | SK 와이번스 | ★ ★ ★ 3회 | |
| 2011 | | 삼성 라이온즈 | ★ ★ ★ ★ ★ ★ ★ ★ 8회 | |
| 2012 | ||||
| 2013 | ||||
| 2014 | ||||
| 2015 | | 두산 베어스 | ★ ★ ★ ★ ★ 5회 | |
| 2016 | ||||
| 2017 |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11회 | |
| 2018 | | SK 와이번스 | ★ ★ ★ ★ 4회 | |
| 2019 | | 두산 베어스 | ★ ★ ★ ★ ★ ★ 6회 | |
| 2020 | | NC 다이노스 | ★ 1회 | |
| 2021 | | kt wiz | ★ 1회 | |
| 2022 | | SSG 랜더스 | ★ ★ ★ ★ ★ 5회 | |
| 2023 | | LG 트윈스 | ★ ★ ★ 3회 | |
| 2024 |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 12회 | |
| 2025 | | LG 트윈스 | ★ ★ ★ ★ 4회 | |
| 2026 | - | - | - -회 | }}}}}}}}} |
[1] 1995년 그룹명을 공식적으로 LG로 바꾸기 전인 럭키금성 시절에는 럭키금성 프로야구단 LG 트윈스였다.[2] 전신인 MBC 청룡의 창단일이자 청룡-트윈스 프렌차이즈 역사가 시작되는 날로 간주된다.[3] KBO에서 인정하는 LG 트윈스 구단 창단일.[4] 현재의 운영 법인인 (주)LG스포츠(구단 인수 당시 럭키금성스포츠)의 설립일. MBC 청룡 구단과 별개로 1983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 창설 때 만들어졌다. 1990년 럭키금성그룹에서 기존 MBC 청룡의 법인으로부터 야구단의 사업권을 인수하며 축구단과 함께 운영을 맡았으며, 축구단은 GS로 넘어갔지만 FC 서울은 GS에서 별도 법인을 만들었고 야구단과 농구단 운영을 위한 LG스포츠 법인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MBC 청룡 시절 MBC 측에서 설립한 기존 법인의 설립 일자는 1985년 8월 5일. 구단 매각 후 MBC 청룡의 법인은 매각 대금을 완불한 1993년까지 존속했다가 MBC 아카데미에 흡수됐다.[5]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루 측. 1루 측에는 두산 베어스의 구단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6] 독립 법인화 이전까지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했다.[7] 법인명 변경.[8] MBC 청룡을 인수해서 기록을 이었기에 최초의 서울 연고 프로스포츠 구단으로 인정받는다. OB 베어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한 것은 1985년부터이다.[9] 제4대 LG 회장.[10] 범LG가 기업인. 희성그룹 회장이자 한국야구위원회 전 총재. 구단주 구광모 회장의 생부.[11]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끝날 때까지 사용했다.[12] 1988 서울 올림픽 기간 동안 홈구장으로 사용했다.[13] 198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기간 동안 홈구장으로 사용했다.[예정] [예정] [16]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의 리모델링이 완료된 후 5년 동안 임시 야구장으로 활용한다.[예정] [18] 단일 리그 기준.[19]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중 (2019~)[20]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21,725.[21]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4,436명.[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시즌은 제외.[23] 축구, 농구, 배구 등은 리그의 사정이나 경기장 사정 등의 사유로 전, 현 서울연고 팀들이 서울 밖에 자리를 잡았던 시기가 있다.[24] 1990년 우승으로 달성. 두산은 OB 베어스 시절 1982년 우승 기록이 있으나 당시에는 연고지가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충청도 일원이었기에 서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25] 구인회 LG 창업주가 경상남도 출생이고 그룹 창업지가 부산직할시이기에 부산 연고를 제의받았다. 그런데 구자경 회장의 해외 출장으로 이원조 당시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구자경 회장이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확답을 주지 못했고, 귀국 후 보고를 받은 구 회장은 기조실장에게 왜 승낙을 안 했냐고 심하게 책망했다. 당시 KBO에서는 서울 연고를 주장하는 롯데 자이언츠에게 "자꾸 그러면 부산을 LG한테 주고 리그 창설에서 아예 배제하겠다"라고 협박해서 굴복시켰다. 만약 이때 롯데가 서울 연고 주장을 철회하기 전에 LG가 부산 연고지 팀 창단을 먼저 받아들였으면 부산 연고의 구단을 선점할 수도 있었다.[26] 좌측의 엠블럼은 1982년 출범 당시 디자인이며 보도국 소속 디자이너이던 권혁준이 제작했다. 1986년에 서울그라픽센터의 권명광 (홍익대학교 15대 총장) 교수팀에 의해 우측과 같은 청룡 문양 형태의 엠블렘으로 변경되었다. 폰트 역시 1986년 MBC CI 변경에 맞춰 이른바 문화방송체로 변경되었으며 이 서체는 당시 유니폼의 선수들 이름에까지 사용된다. 아래 유명선수들 항목의 김용수 사진에 MBC 청룡 시절 유니폼 뒷모습을 볼 수 있다.[27] 참고로 디자이너 권혁준은 1967년 KBS 미술부에 입사하여 1972년 KBS부산 TV 개국 당시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1973년 MBC로 이직하여 1981년부터 1년여 간 춘천MBC의 ID 영상용 카드, 공익 스팟, CM 카드, 세트 디자인 등을 맡았으며 1992년부터 2년 동안 보도국 보도미술부 스포츠그래픽담당 부장을 지냈다. 1994년 영상미술국 미술2부 부장을 끝으로 명예 퇴직했다.(출처: MBC 사우회보 제57호(2020년 1월 15일자) 5면)[28] 1994년까지는 상단에 'LUCKY-GOLDSTAR BASEBALL CLUB', 하단에 '럭키금성 프로야구단'으로 기재되어 있다가 1995년부터 이미지와 같이 바뀌었다. 이후 2006년 전지훈련/시범경기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구단 로고와 유니폼의 교체는 2006년 3월 17일 이루어졌다. # #[29] 'LG'로서의 첫 번째 엠블럼이자 신바람 야구로 대표되는 1990년대 LG의 첫 번째 전성기를 상징하는 엠블럼이다.[30] 당시 마스코트인 근성이와 팀웍이가 그려진 엠블럼도 있었다. 2번째 사진이 그 엠블럼.[31] 이 엠블럼을 달고 LG는 기나긴 10년 암흑기를 겪으면서 고통의 엠블럼이였지만 2013, 2014년에는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기적과 감동의 로고가 되기도 하였다.[32] 모기업인 LG가 로고 글꼴을 교체하면서 같이 바뀌었다.[33] 참고로 LG 로고가 구 로고로 되어있는 엠블럼도 있는데, KBS N SPORTS나 네이버 스포츠 등지에서 간혹 사용되는 중이다. 그룹 폰트는 일찍이 2015년부터 바뀌었으므로, 구 LG 로고를 사용한 형태의 엠블럼은 LG 트윈스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신 그룹 폰트가 적용된 구 엠블럼이 바로 윗칸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된다. 다만, 어찌 된 일인지 2025년 현재도 공식 홈페이지 모바일 버전에서는 LG 로고가 구 로고로 되어 있는 엠블럼을 사용 중이다. 아마도 모기업 LG가 로고 글꼴을 변경하기 이전에 해당 로고를 제작해 놨다가 이후 로고가 변경되고 수정 후 출시하는 과정에서 섞인 것으로 보인다.[34] 어떨 때에는 트윈스 글자가 하얀색으로 바뀌어 있는 엠블럼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으로는 2017년 유광잠바가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유광잠바에도 LG 트윈스의 기본 엠블럼이 사용되고 있다.[35] 이 엠블럼을 달고 LG는 오랜 암흑기를 청산하고 가을야구 단골팀이 된 데 이어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우승을 두 번 하여 2020년대 상반기 최강팀으로 군림하며 창단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36] 2006년 유니폼 변경 때 도입했다. 마침 전지현이 나온 '라네즈 걸' 광고 캠페인 '핫핑크로 말해요'가 뜨던 시절이라 이 시절 한정으로 '핫핑크 유니폼'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만 연분홍색보다는 채도가 다소 낮은 분홍색을 쓴다.[37] 옆집 두산은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을, 2015년 1군에 진입한 kt wiz가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진한 핑크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38] 과거 금성사 대리점 간판에도 노란색이 들어가는 등 LG는 노란색과 인연이 깊다.[39] 해태 때문에 막대풍선 색깔을 바꾼 팀이 하나 더 있는데 현대 유니콘스다. 현대도 창단 당시에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썼으나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막대풍선 색깔이 겹치게 됐고 결국 현대가 이후부터 하얀색 막대풍선을 해체될 때까지 썼다.[40] 가운데 여자는 2014년 4월 1일 경기에 시구를 하러 온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박승희.[41] 그러나 공개후에도 반응은 영 좋지 못했고, 몇몇 팬들 사이에선 오리갑을 마스코트로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암흑기 당시에는 팀 상황이 워낙 시궁창이어서 야구팬들 사이에선 마스코트 이름만 근성과 팀웍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비웃기도 했다.[42] 이후 여성 쌍둥이 마스코트도 등장했는데, 각각 이름은 '행복이'와 '사랑이'였다.[43] 홀쭉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웬 뚱땡이가 되었냐는 의견이 많았다.[44] 2023년 LG가 3번째 우승을 거둔 뒤 2024시즌부터는 등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45] 2018년부터 야구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습이다.[46] 여담으로, 탄생 스토리가 있으나 평은 좋지 않다. 대부분 팀웍이 근성이 돌려내라, 이게 LG 공식 유튜브냐는 등등... 하이라이트는 끝내기 홈런.[47] 단, 2012년부터 포수석 뒤 홈플레이트 뒷부분 및 파울 존 부근 워닝 트랙은 인조 잔디 적용.[48] 휠체어 전용 40석 포함, 최대 25,000명 수용 가능[49] 2024시즌에 홈 73경기 1,397,499명을 동원하며 종전 최다 기록이었던 2009년 롯데 자이언츠의 1,380,018명을 2위로 밀어내며 역대 최다 홈관중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1년 만에 삼성에게 추월당했다. 여담으로 역대 최다 홈관중 기록의 1-4위가 모두 2025년에 나왔는데, 앞서 언급했듯 25 삼성이 1위, 25 LG가 2위이며, 역대 3위는 25 롯데, 4위는 25 두산이다. 종전 최다기록이었던 24 LG의 기록은 2025시즌 종료 후 기준으로 역대 5위 기록이며, 09 롯데는 역대 6위 기록이 되었다.[50] 2019년 4월 21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에서 달성.[51] 서울은 프로 스포츠 최대 빅마켓으로, 서울을 연고로 삼은 프로 스포츠 구단들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종목을 불문하고 늘 리그의 대표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한다. 당장 K리그1의 FC 서울, KBO의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KBL의 서울 SK 나이츠 모두 서울을 연고로 한 인기 구단들이다. 물론 KBO의 키움 히어로즈, K리그2의 서울 이랜드 FC, KBL의 서울 삼성 썬더스, V-리그의 서울 우리카드 우리WON처럼 예외는 늘 있다.[52] LG의 1990년 우승 이전까지 모든 우승은 지방 연고팀이 차지했다. OB 베어스의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우승은 대전 연고일 때의 일이다.[53] 1998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LG트윈스는 전국에서 약 12%의 선호도를 기록, 해태 타이거즈에 이은 최고 인기구단이었다.[54] 국내 구단 중 최초로 단일 시즌 관중 동원 100만 명 기록을 세운 팀은 롯데 자이언츠로, 1991년에 100만 1,920명의 관중을 동원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100만 관중을 동원했다.[55] 1995년 20,076명, 2013년 20,145명, 2025년 21,725명으로 3번 달성하였다. 나머지 두 팀은 2008~2009, 2011~2012, 2025년의 롯데 자이언츠와, 2025년 삼성 라이온즈.[56] 후술할 LG vs 삼성, 한화의 인기도 논쟁에 있어서, 올스타전 투표 관련해서도 2021 올스타전 투표 당시 삼성이 드림 올스타를 싹쓸이했다는 것이 LG보다 삼성이 인기가 많다는 근거로 제기되었는데(즉 성적이 잘 나올 때는 이런 화력을 보여주는 팀이기에 삼성, 한화가 부진하고 LG가 성적이 좋은 최근 통계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하는 주장으로 일리는 있다.), 물론 당시 3차 중간 집계에서 삼성 선수들이 전체 12개 포지션 중 11개의 포지션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LG도 상대인 나눔 올스타에서 8개 포지션 1위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삼성만 해당 시즌에 화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고(3차 중간 집계까지 나눔 1루수 투표 1위는 비록 웨이버 공시되어서 그렇지 LG의 로베르토 라모스였다.), 이 수치는 무엇보다 올스타전이 최종 취소되어버려 투표가 끝까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최종 결과가 아님을 고려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LG는 앞서 언급했듯 삼성이 속한 드림 올스타보다 더 줄세우기가 어려운 나눔(당시 서군) 올스타를 11개 전 포지션 LG(당시에는 불펜과 마무리가 구분되지 않아 11개 포지션이었다.) 선수로 줄세우기했던 적이 2013년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삼성이 LG보다 인기가 많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할 것이다. 또 한화 역시 2018년에는 나눔 올스타 10개 포지션에서 팬 투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LG와 같이 전 포지션을 자팀 선수로 채워본 적은 없다.[57] 기롯삼한과 같은 비수도권 인기팀들이 상대일 경우 원정석 쪽은 원정팀 팬으로 가득 차곤 하는데, 이들 또한 LG의 홈 관중 수로 계산되기 때문이다.[58] KT를 상대로는 25.05.18. 경기에서 23,029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아쉽게도 매진에 약 720명 정도가 부족했다.[59] 이미 서울은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팀만 3팀인데다, 인구도 경인 지역으로 빠르게 유출되면서 나날이 급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비수도권에서 상경한 케이스도 많고, 특히 부모님이 비수도권 출신인 경우에는 비수도권 구단을 응원하는 경우도 많으니 LG는 사실상 다른 9개 구단들과 수도권 팬덤을 나눠먹어야만 하는 운명일 수밖에 없다. 반면 비수도권의 경우에는 충청권=한화 이글스, 호남권=KIA 타이거즈, 대경권=삼성 라이온즈, 부울경=롯데 자이언츠와 같이 거의 고정되어 있다.[60] 202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것과 동시에 삼성이 2023년 시즌을 심하게 망쳐버린 영향이 있다.[61] 다만 시청률 통계는 성적, 플랫폼 등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팬덤 규모와의 연관성에 있어서도 분명 상관관계는 있으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닌 바, 경향성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특히 전체 평균 시청률이 아니라 '시청률 TOP 30, TOP 50 경기' 등으로 돌아다니는 통계도 한계가 있는 것이, 2022년이나 2023년과 같이 TOP n경기 시청률 통계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된 한화 등이 또 전체 평균 시청률은 LG에게 밀리는 등의 경우가 종종 나오며, 또한 TV 시청률이 비수도권에 비해 떨어지고 TV가 아예 없는 1인가구도 많은 수도권의 특성 상, 주요 팬베이스를 비수도권에 둔 구단들이 TV 시청률 지표에 있어서 유리하기 때문이다.[62] 실제로 2022 TV 및 네이버 중계 시청률을 보면 TV에서는 최하위 시청률을 기록한 KT위즈가 네이버 중계에서는 비수도권 구단인 NC다이노스를 제쳤으며, 역시 TV중계로는 전체 4위인 한화 이글스가 네이버 중계의 경우 7위까지 하락한데 비해 두산 베어스의 경우 네이버 시청률에서 5위까지 상승하는 등 뉴미디어 중계는 수도권 구단이, TV 중계 시청률은 비수도권 구단이 유리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수도권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청률 3~5위에 랭크되는 LG의 팬덤 규모 역시 다른 지방 구단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63] 이는 2026년에 키움 히어로즈가 연간회원을 모집하면서 특전으로 주중경기 할인권을 제공하는데 할인권 사용 대상 팀 중에 두산 베어스가 포함되면서 본의 아니게 흥행참패동맹 신규회원이라는 오명을 쓴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64] 2009년 기아 우승과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2013년 LG의 암흑기 청산으로 완전히 끝난 엘롯기 시대에도 불구하고 '엘롯기'라는 말이 계속 인기구단을 뜻하는 단어로 2026년 현재에도 야구판에서 사용되고 있고, 특히 2010년대 후반 이후로 급격히 불어난 삼성과 한화의 팬덤 규모로 인해 '기롯삼한'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음에도 '엘롯기'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 것이다.[65] 실제로 1998년 갤럽 조사에서 LG는 12%의 인기도로 20%의 해태에 이은 2위를 기록했으며, 5%의 두산과는 2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66] 팀 순위는 6668587667을 찍어도 같은 시기 관중 집계 순위는 1112133332이다. 다시 말해서 3위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는 소리. 잠실 야구장이 원정 팬들도 많은 야구장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저런 노답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중 동원을 기록했다는 점은 LG 팬들의 충성도가 실로 대단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67] 당시에는 신생팀인 NC의 1군 진입 첫 해로, 9구단 체제로 진행되어 예년보다 적은 128경기로 진행되어 홈 경기가 64경기 밖에 되지 않았었음에도 불구하고 128만명의 관중을 동원했을 정도로 당시 잠실 야구장에서는 LG팬들로 가득 찼었다.[68] 주연 배우였던 성동일과 유연석이 각각 LG의 코치와 투수로 설정된 응답하라 1994에서도 이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해당 드라마가 2013년에 방영되면서 "그래도 오랜만에 정규리그 2등인데, 쌍둥이 팬들은 올해 충분히 행복했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LG였기 때문에 배경이 LG로 설정된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성적과 팬덤 모두 OB 베어스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을 대표하는 팀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1970년대생으로 설정되었는데, 이들 세대는 LG 팬덤의 강력한 주축이기도 하다.[69]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2015년, 2016년에 연속으로 관중 동원이 밀리면서 팬이 무조건 많다고 확언하기도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2015년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밀려서 그랬다면, 2016년은 중반에 8위로 곤두박질을 쳐버렸기 때문이라 봐야 한다. 한편 관중 수 말고 시청률은 LG가 조금 앞서는데(2016 시즌 닐슨코리아 기준 LG는 0.925, 두산은 0.799. 그런데 TNmS 기준으로는 LG 0.787, 두산 0.761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지라 시청률 분석은 오차가 심하다.), 이를 두고 아직 LG가 팬이 더 많은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고 반대로 두산은 젊은 층이 주류라 저녁 시간대에 시청률 주도권이 없으며, 야구를 시청하는데 있어서 인터넷 등의 다른 매체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판단은 자유.[70] 이는 그만큼 성적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두산의 경우 팀 컬러가 상위권 우승후보라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나타내는 덕분에 젊은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 이에 반해 LG는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진출한 것이 2002년이었고,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4년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었기에 당시 젊은 팬들 입장에서는 LG를 약팀으로 인식해 유입에 크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실례로 당시 LG 팬들 상당수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이나 아니면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팬이 되었던 세대들, 그리고 그 세대로부터 팬심을 물려받은 자녀들이었다.[71] 그리고 적잖은 두산 팬덤이 이 충격적 광경에 당황했는지 두산 팬 커뮤니티에서는 2020년대 들어 LG와 반전된 성적, 그리고 신규 팬 유입을 LG에 뺏기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고, 두산 구단에서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구단 홈페이지를 리뉴얼하고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없었던 구단 공식 앱을 출시하는 등 당면한 마케팅 문제를 인지한 모양새이다.[72] 어렵기로 소문난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 이상급이었다는 말도 많았다.[73] 물론 5인 테이블석이라 인당 250만 원 꼴이지만 아주 비상식적인 금액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74] 상대였던 KT의 고영표마저 인터뷰에서 "일방적인 응원, 부정하지 않겠다."며 인정했을 정도였다.[75] 실제로 2024년에 야구에 입문한 릴카 역시 야구 입문 특집 컨텐츠를 제작하면서 여러 차례 ”LG 하면 야구 잘하는 강팀 이미지가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LG는 리그 평준화로 인해 롯데 자이언츠를 제외한 9개 구단이 모두 최소 한번 이상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경험이 있으며, NC, KT, SSG, 기아가 각각 한 번씩 우승하는 등 리핏이 나오지 않고 있는 2020년대에 유일한 2회 우승 구단이며, 통산 승률 1위 구단이자 유일하게 2020년대 전 시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구단이기도 하다.(2019년부터 7시즌 연속 진출, 진행중)[76] LG 야구를 라이트하게 보는 팬덤에서는 박해민의 인기가 의외로 상당히 높다. 타격 부진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면 이에 반발하는 개인 팬덤도 있을 정도. 박동원은 우승 포수에 모범 FA인데다 엘튜브에서 딸 채이 관련 컨텐츠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77] LG의 인기가 높았던 1990년대에는 류지현과 김동수, 그리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의 주역이었던 이상훈과 이병규 등이 대표팀에서 활약했었다.[78] 2019 WBSC 프리미어 12 기준으로 대표팀의 주축으로 김현수, 차우찬이 있으나 전부 외부 FA 출신이고, LG 순혈로는 고우석이 국가대표로 나왔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79] 이상훈의 경우에는 일본을 거쳐서 간 것이기에 LG에서 바로 포스팅으로 간 사례는 아니다.[80] 삼성의 경우에는 단 한명의 국가대표도 배출하지 못하기도 했다.[81] 박동원, 신민재, 홍창기, 문보경, 유영찬, 임찬규. 손주영은 부상으로 엔트리 제외. 이 중 박동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는 모두 사실상 LG 순혈 선수이기도 하다.[82] 역시 박동원과 박해민을 제외한 모두가 LG 순혈 프랜차이즈다. 호주 대표팀으로 선발된 라클란 웰스까지 합치면 팀에서 WBC 국가대표로 선발된 인원은 8명이고, 현재는 미국에서 뛰며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리고 있는, 역시 LG 프랜차이즈인 고우석 또한 엔트리에 승선했기에 LG팬들은 이번 WBC에서 거의 10명에 가까운 LG 선수단을 볼 예정.[83] 참고로 롯데와 키움은 단 한 명의 국가대표도 배출하지 못했다.[84] 고양시, 파주시, 의정부시 등 경기 북부 지역에서는 SK-SSG가 우세하며 두산과 엇비슷하지만 딱히 접점이 없는 경기 남부인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 이천시, 여주시의 경우 두산이 있지만 LG 팬덤이 훨씬 더 우세한 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광명시는 서부 경기권으로 인해 SK-SSG의 팬 베이스인 인천광역시, 부천시, 김포시, 시흥시와 가까우며 이외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과천시의 경우 SK-SSG와 KT와 경합을 보이고 있다. 대신 동부 경기권으로 보면 구리시, 남양주시,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등은 확실히 LG 팬덤이 다수이며 우세에 놓여있다. 특히 동대문야구장이 없어진 후로 경기도 동북부에서는 잠실이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가장 근접한 동네의 야구장이므로 LG 외의 선택지는 옆집 두산 정도일 뿐이다. 즉 뜬금없이 인천 문학의 SK-SSG, 목동-고척의 키움, 수원의 kt를 응원할 연고 명분은 낮은 편이다. 참고로 kt 연고권인 수원을 포함해서 용인과 화성의 경우 모기업 사업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 팬덤이 우위에 있다.[85] 예를 들어 2023년에는 개막전과 10월 2일 경기에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경기를 매진시킬 정도로 경기도에서도 서울에서 원정 응원이 포함된 LG 팬덤은 매우 큰 편이다. 수도권 연고 구단으로는 유일하며 지방구단들인 KIA, 한화, 롯데에 이어 수원경기를 매진시킨 4번째 원정팀이 되었다. 또 다른 수도권 구장인 인천 SSG 랜더스필드 역시 서울 잠실에서 원정응원을 하는 열성적인 팬들로 인해 8월 19일 경기에서 매진을 달성했다. 마찬가지로 수도권 연고 구단으로서는 유일하고, 지방팀을 포함해도 KIA와 롯데 그리고 한화 다음으로 통산 4번째로 기록되었다. 참고로 2023 시즌 문학경기에서의 매진은 이 네 팀만 기록하였다. 2024 시즌은 문학에서의 매진은 실패했으나 2025 시즌은 무려 4번이나 매진을 달성했다.[86] 흥덕구 송정동에 청주공장과 청원구 오창읍에 오창공장이 있어 여기도 팬층이 두텁다.[87] 여기에는 대산읍에 1990년대부터 조성한 대산석유화학단지에 대산공장이 있을 뿐더러 서해안고속도로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수도권과도 상당히 가깝고 교통편도 좋아서 LG화학 대산공장 임직원들이 LG 트윈스 팬을 겸한 경우가 상당하며, 1년에 몇 번 씩 잠실 홈경기에 단체 관람을 하기도 해 두산보다 팬을 더 많이 보유할 정도이다. 대산석유화학단지에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HD현대오일뱅크가 지곡면 서산오토밸리에는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SK온 등의 굵직한 대기업(롯데, 한화, 현대자동차그룹, SK)이 입주해 있어 팬층이 양분되어 있으며, 사실상 저 5개의 대기업이 서산 경제의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고 있다.[88] 전자업계 라이벌인 삼성의 공장도 있지만 LG의 대구경북 핵심 사업이 있다. 이로 인해 대구에도 의외로 팬들이 있다.[89] 1970년대 첫 등장한 전자공장으로 성산구 지역의 성산동과 가음정동에 큰 규모로 있으며 현재 창원시의 전체 경제를 먹여살리고 있다.[90] 통합 전 창원시로 행정구역을 보면 구 창원시 일대인 현재의 성산구 대다수와 의창구 일부가 해당된다.[91] KBO리그 9번째 구단이 된 창원 연고 첫 프로야구팀인 NC 다이노스의 실제 연고지는 구 마산시에 해당되는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다. 이외 진해시의 후신인 진해구가 있는데 여기는 창원과 마산만 아니라 부산과 인접한 바람에 야구 팬들이 엇갈리는 동네다.[92] 그러나 미네소타는 스몰마켓이라 이 영향이 크다고 보긴 어렵다.[93] 한 도시에 2개의 연고팀을 둔 지역은 의외로 홈라이벌전이 꽤 강한 곳이 미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LG-두산 라이벌전도 이들에게 쉽사리 받아들여지는 게 이상하지 않다.[94] 그를 방증하듯 나무위키 마산역 문서에는 꽤나 오래 전부터 "LG 트윈스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마산역 광장에 유광잠바의 물결이 넘실거린다."라는 설명이 존재했다.[95] 포스트시즌 진출이 달린 시즌 최종전이지만 평일 원정에 응원단이 파견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96] 하이텔 쓰던 시절 LG 야구 관련 글들을 올리다가 LG 야구단 프런트가 되고 이후 SK로 이적하여 여러 보직을 거쳐 단장 자리까지 오른 류선규 SSG 전 단장의 사례도 있다.[97] 하지만 반대로 세이버메트릭스에 익숙했던 LG 팬덤이기에 지명 후부터 정말 많은 기대를 받았던 오지환이 클래식 스탯상으로나 세이버상으로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커리어 초창기(특히 공격 부문에서)에는 오지환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2018년의 경우 세이버상으로 확연히 나타난 타격 부진과 더불어 각종 논란으로 인해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팀으로 복귀한 이후 DTD의 원흉이 되자 이때는 LG 팬들조차 오지환에게 가차없이 비판을 가했던 시기이기도 했다.[98] 대표적인 사례가 타자로는 이대형이 있고, 투수로는 이민호가 있다. 이대형이 도루왕을 밥먹듯이 하던 시절에도 너무 낮은 출루율과 장타율로 인해 생산성이 매우 떨어지는 이대형을 좋지 않게 보는 팬들이 많았으며, 이민호는 12승 투수임에도 규정이닝에 한창 모자란데다 5점대의 ERA에 마이너스 WAR을 찍으면서 팬덤의 반응은 냉담했다.[99] 대표적으로 이대형, 양석환, 강승호[100] 대표적으로 박해민. 다만 2024년 최악의 부진을 겪은 뒤 FA 마지막 해인 2025년 커리어 최고의 출루율로 세이버상으로 커리어하이를 세우자 비판 의견은 쏙 들어갔다.[101] 응원방망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색깔이 바뀐 건 해태 타이거즈와 붙었던 1997년 한국시리즈 때문이다. 해태 구단은 당시 홈인 광주에서는 빨간색 막대풍선을, 원정경기에서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는데(지금은 모두 노란색), 그러다보니 해태의 원정, LG의 홈인 잠실 경기에서는 두 팀의 응원방망이 색깔이 겹치게 되었다. 이에 LG가 그룹의 상징 색깔이기도 한 빨간색으로 응원방망이 색깔을 바꿨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102] 2024년 청룡의 해인 갑진년을 맞아 재출시.[103] LG는 10년 이상 연간회원을 하는 장기 회원들에게 선예매보다 하루 더 빨리 예매가 가능하게 하는 선선예매 제도를 시행중에 있는데, 문제는 장기회원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아저씨팬들이 대다수여서 오렌지석 거의 대부분을 젊은 팬들이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 젊은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104] 인스타 라이브에서 팬들에게 럭키 금성, 엘지 트윈스로 오라며 야구단을 영업하기도 했다.[105] #[106] 다만 그녀의 전 남편은 현재 SSG 랜더스의 구단주인 정용진이다.[107] 공교롭게도 김택용의 별명인 김용택이 LG의 레전드 선수이자 별명 부자인 박용택의 이름과 비슷해서 크로스오버로 엮이기도 한다.[108] 아들들은 두산 베어스를 응원한다고 유튜브에서 밝혔다.[109] 스포츠 타임 베이스볼에서도 유독 노윤주 아나운서가 LG 트윈스의 승리를 자주 예측했다.[110] 모교는 야구부가 명문으로 유명한 신일고등학교다.[111] 원래는 롯데 - NC 팬(NC 창단 이전에는 롯데를 응원했고 NC 창단 이후에는 두 팀 모두 응원)이었으나 결혼하고나서 갈아탄듯하다.[112] 그가 태어난 해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하였고, 한국시리즈 등장까지 무려 21년이란 시간을 거쳐 끝내 우승을 했다.[113] 식객 중에서 전라도 출신 인물이 서울로 상경한 아들에게 “전라도 놈이 KIA를 응원해야지. 왠 LG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찌보면 작가 본인에게 하는 말이 될 것이다.[114] 홍창기가 현재 LG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성장함과 동시에 응원가 특유의 중독성 덕에 LG를 상징하는 응원가로 자리잡았고, 우스갯소리로 흔들린 우정 이후 홍경민의 대표곡이 ‘홍창기 응원가’라는 말이 생겨났다.[115] 연예가 중계 예고음악 뒷부분에 이 음악과 거의 같은 멜로디가 나오지만 듣기 어렵다.[116] 영상 중간에 나오는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 구호는 1995년 시즌부터 들어갔으며 그전에는 럭키금성 프로야구단 LG 트윈스!라는 구호를 사용했는데 럭키금성그룹이 LG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지금의 구호를 사용하게 되었다.[117] LG 트윈스의 모기업인 럭키금성은 1995년 1월 1일부터 LG로 그룹명을 공식 변경했는데 그 전에도 LG라는 이름은 1984년부터 그룹 내에서 종종 쓰였다. LG애드, LG카드 등이 그 사례. 참고로 당시 그룹 회장이었던 구자경은 럭키금성을 두 글자로 줄인 '럭금'이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했고 LG라는 표현을 좋아했다고 한다.[118] 야구단 창단 당시에는 63빌딩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119] 참고로 LG는 건물, 마스코트에 쌍둥이를 좋아하는데, 구씨와 허씨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허씨 일가는 GS그룹으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에 LG와 LG 트윈스는 구씨 일가 소유지만 매우 드물게 진통없이 매우 좋게좋게 헤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양 그룹 간의 교류는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양 구단이 각각 서로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스포츠에는 구단 창단을 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LG는 야구와 농구, GS는 축구와 여자 배구를 소유.[120] 그 해 6월 즈음엔 꼴찌로 내려앉기도 했었다.[121] 1994년 시즌의 화려했던 모습도 이 시기에 보여준 것이다.[122] 물론 롯데의 4년 연속 꼴찌라는 처참한 기록은 못 깼으며 현재까지도 안 깨지고 있다.[123] 81승[124] 2010 준PO 이대호 응원, 2011 정규시즌 이종범 응원과 더불어 선수 개인 응원으로는 역대 최고의 함성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장면이 더욱 인상 깊은 이유는 앞 두 개와 달리 응원가가 앰프가 없는 오로지 육성이라는 점이며, 당시 최고의 베테랑 투수 중 한 명인 손민한이 이 엄청난 함성으로 인해 멘탈이 흔들려 결국 와일드피치로 인해 실점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관중이 낸 1점이라는 레전드 장면으로 평가받는다.[125] 첫 번째 등장곡(라뱅 쓰리런-Fresh Boyz) - 두 번째 등장곡(I was born to love you-Queen) - 선수 응원가 - 안타 구호로 이어진다.[126] 2009년 주니치로 이적한 이병규 응원가를 물려받았다가 2010년 이병규의 복귀로 지금의 응원가가 나왔다.[127] 2012년 이택근의 FA 이적 후에는 윤요섭, 윤요섭의 이적 후에는 이천웅에게 넘어갔다.[128] 그 이전에 2010 시즌, 오카모토 신야가 시즌 초에 좋은 모습을 보일 때 잠시 사용하기도 했고, 2013 시즌엔 팀 응원가로 쓰기도 했었다.[129] 롯데 → 두산[130] 키움 → KT → 삼성[131] LG에서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발언으로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2025 시즌 문정빈의 응원가로 재활용되었다.[132] 2010년 6월 19일 홈 누적 관중 2000만 명 돌파 이벤트, LG의 13년만의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한 2013년 10월 5일 시즌 최종전 등[133] 엘~지의 이병규!로 유명한 그 응원가.[134] 단, 풀카운트 응원의 경우 원래 'L! G! 이야~' 구호로 시작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 안! 타! 내지는 홈! 런!으로 바뀐 것이다.[135] 롯데 응원단장을 맡다가 LG로 넘어왔지만 응원가를 틀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하고 멘트에 치중한 응원 스타일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136] 유강남이 주전으로 도약한 것이 최동훈 단장 시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최동훈 단장의 응원가로 알려졌지만, 사실 2012년 입단과 함께 만들어진 응원가이다.[137] '사랑한다 LG'는 연대 응원가 '사랑한다 연세', '승리의 노래'는 고대 응원가 'Forever', '서울의 아리아'는 고대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와 원곡이 같다.[138] 특히 이 시기에 나온 현재윤, 정주현, 문선재 응원가가 고퀄이었다는 평이 다수였으며 최경철, 김용의 응원가도 괜찮았다는 평이 많았다. 거기에 응원단장 본인의 응원 유도력도 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으로 응원 열기가 강병욱 때와 거의 비슷하게 올라왔었다. 이럼에도 재임 시기에 팬들에게 응원력이 저평가되었지만 2015년부터 후임 단장들의 답 없는 응원유도와 응원가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실제로 이 시기에 평소 응원 목소리가 작았다가도 오명섭이 만든 팀/선수 응원가때는 목소리가 커질 정도로 오명섭이 만든 응원가가 떼창하기에 좋았다는게 지속적으로 입증된게 재평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139] 단, 당시 KIA 김주일 응원단장이 짬밥을 내세워 LG 측에 이 응원가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 추후에 밝혀졌다.[140] 근데 그 최후의 결투가 추후에 오명섭 단장의 작품이라는게 드러났다. 정확히는 구단이 선정한 곡에 오명섭 단장이 가사를 쓴 것. 즉, 최동훈 단장 시기에 공개된 응원가지만 최동훈의 작품이 아니다.[141] 양석환과 임훈의 응원가에 대해서는 동요같이 유치하다는 지적이 많다. 양석환 응원가는 여자 팬들 사이에선 어느 정도 호평이 나왔으나 기존 팬들에게는 응원가가 장난이냐는 평까지 들었다. 또 임훈의 응원가는 사실 2011년에 심광호의 응원가로 딱 몇번 쓰였던 곡인데, 이 당시에도 반응이 처참해서 몇 번 쓰이지도 못하고 사장되었던걸 약간 수정한터라 반응이 좋기 쉽지 않았다.[142] 서울 관련 응원가들은 LG의 자존심이라고 불릴 만한 곡들이기에 팬들의 불만이 더욱 컸다.[143] LG 트윈스 갤러리, 아이 러브 트윈스가 서로 간에 거의 의견이 안 맞는 커뮤니티인 것을 감안하면 두 커뮤니티에서 위아더월드로 까인 최동훈의 응원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144] 정성훈, 작은 이병규, 조윤준, 윤진호, 정상호의 응원가 등이 저작권 사태로 인해 변경되거나 폐기되고 말았다.[145] forever lg, 라인업송, 채은성, 양석환 응원가 등.[146] 오명섭의 고정화된 범위를 넘어 내야 전체와 가끔은 외야도 유도하는 등 굉장히 범위가 넓다.[147] 특히 이 최동훈의 열정 부분은 그 전설의 강병욱 뺨치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48] 얼굴이 잘 생겨서 얼빠들이 많다. 그래서 오렌지석 206블록에 가면 얼빠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오렌지석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149] 하지만, 김정석이 원주 DB 프로미에서 보인 응원 퀄리티, 유도 스타일이 전부 LG에서 보인 것과 일치하고 기성곡으로 응원가를 계속 만드는 등 이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후임인 이윤승 단장이 오면서 응원 스타일이 또 한번 바뀌면서 확실히 증명되었다.[150] 오죽하면 2015년의 임기 초기의 최동훈도 욕은 먹었으나 동훈쇼라는 말은 없었다.[151] 실제로 고작 1점 냈는데 아파트나 여행을 떠나요를 틀어서 야구장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적이 있다.[152] 2024년 기준으로 수도권 팀들의 응원단장은 대다수 장수했다. 현재 옆집 두산의 한재권 응원단장이 11년차, kt의 김주일 응원단장이 10년차이다.[153] 단, 일부 지방팀의 제2 홈구장인 청주, 포항, 울산 제외다. 2023 시즌 주말 미파견의 경우 8월 25일~27일 주말 NC전 창원 원정은 LG 트윈스 응원단의 최강야구 일정 때문에 응원단 파견이 되지 않았다. 예외로 2024 시즌 8월 3일의 경우 울산에서 주말 원정으로 인해 응원단이 파견되었다.[154] 이러한 라이벌리 관계로 인해 전라도 지역에서의 LG 팬덤은 충청도, 경상도에 비하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다.[155] 특히 조계현은 LG 킬러로 유명했는데, 당시 신인 이병규가 데뷔전에서 조계현 상대 맹타를 휘두르며 MVP로 선정되었고, 당시 인터뷰에서 신인이라고 봐주지 말고 성의있게 승부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두 팬덤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156] 전설의 심수창-조인성 말 싸움 사건이 2009년 KIA와의 경기 중 발생한 것이다. 당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선수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157] 당시 나무위키 문서에 수정 전쟁이 있었다.[158] 2009, 2017, 2024년 모두 그랬다. 공교롭게도 이 3개년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LG가 상대전적에서 우세를 가지고 간다.[159] 1990년 차동철, 1994년 한대화, 2023년 박동원, 2025년 장현식을 해태-KIA에서 영입했고 그 시즌 모두 통합 우승했다. 이로 인해 LG 우승을 위해서는 호랑이 기운이 필요하다는 소소한 드립도 나온다.[160] 1997년 LG가 삼성에 그 당시 최다 스코어 차이인 27-5로 완패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LG가 삼성이 부정배트를 사용했다며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KBO가 전수조사를 했지만 LG의 어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161]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노장진 상대 김재현이 역전 적시타를 기록했었는데, 그 다음 해 정규 시즌에서 노장진이 모처럼 복귀한 김재현 상대 투구 중 부상부위인 팔꿈치를 정확히 가격하는 빈볼을 던졌던 바 있다.[162] 가장 타자 친화적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가장 투수 친화적인 잠실야구장으로 인해 두 팀의 팀컬러는 완전히 달랐고 이로 인해 팬들의 언쟁이 있었다.[163] 물론 LG의 입장에서 와일드카드부터 올라오는 삼성이 한국시리즈로 올라오는 것이 전략상 유리하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164] LG와 한화의 이름으로는 처음이다. 한화의 전신 빙그레 시절인 1990년에 선두 싸움을 펼친 것이 두 팀의 이전까지의 유일한 선두권 경쟁 사례였다.[165] 특히 LG 주장 박해민은 한화를 만났다 하면 호수비 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일부 한화 팬들은 박해민의 대전 성심당 출입 금지 드립을 쳤다.[166] 대표적으로 7월 2일 정의윤과 최승준의 탈투탈 경기. 하지만 최승준이 2016년 반짝 활약 이후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진해수가 LG에서 핵심 왼손 불펜으로 자리잡아 사그라드렀다.[167] 그리고 LG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포스트시즌에 나갔던 2000년, 2002년, 2013년, 2014년, 2016년에 기묘하게도 SK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168] 상기했듯이 창원에는 LG 전자 창원공장 뿐만 아니라 형제 농구단 창원 LG 세이커스의 존재로 인해 창원에도 LG 팬들이 꽤나 많이 있다. 이 사례는 부산광역시 연고 롯데 자이언츠, 대전광역시 연고 한화 이글스, 그리고 광주광역시 연고 KIA 타이거즈 다음으로 팬층이 상당히 많은 사례다.[169] 전기 3위, 후기 3위[170] 전기 3위, 후기 1위[171] 전기 3위, 후기 3위[172] 전기 5위, 후기 6위[173] 전기 4위, 후기 3위[174] 전기 5위, 후기 4위[175] 전기 7위, 후기 6위[176] 매직리그 팀들이 모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기에 매직리그 팀들의 순위변동은 없다.[177] 현재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경우 승률 .445로 KIA의 .444에 앞서 5위이나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하던 당시 규정으로 인해 6위가 되었다. KIA는 2년 연속 당시 승률 규정의 혜택을 보았다.[178] 특히 구단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던 2022년과, 29년만의 통합 우승 시즌인 2023년엔 2년 연속으로 6할대 승률을 기록, 덕분에 2024년 종료 기준으로 승패마진이 -24까지 줄어들었다.(2021년 종료 시점 -96, 2022년 종료 시점 -64, 2023년 종료 시점 -34)[179] 두 팀의 전성기는 미묘하게 달랐다. 2000년대 초반은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SK는 최하위를 전전했다. 그 이후 LG가 긴 암흑기에 빠진 반면, SK는 왕조 시절을 구가하며 서로 가을 야구에서 만나지 못했다. 2010년대 중반에는 LG가 암흑기를 탈출하며 가을 야구에 진출했지만, SK가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며 만나지 못했고, 2017~2018년은 SK가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LG는 2년 연속 탈락했다. 2019년과 2022~2023년, 2025년은 나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음에도 매치업은 성사되지 못했다.[180] 1993년 삼성 라이온즈, 1995년 롯데 자이언츠, 2000년 두산 베어스, 2013년 두산 베어스, 2014년 넥센 히어로즈, 2016년 NC 다이노스, 2019년 키움 히어로즈, 2020년 두산 베어스, 2021년 두산 베어스, 2022년 키움 히어로즈, 2024년 삼성 라이온즈는 모두 LG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그 해에 준우승에 머물렀다.[181] 한때 준PO 전승 기록도 가지고 있었지만 2019년 키움 히어로즈에 져 탈락하게 되며 기록은 사라졌다.[182] 바뀌기 전의 계산법으로는 0.502이다.[183] 본래는 원년 팀 중에서만 없었으나, 2020년에 kt wiz에서 멜 로하스 주니어를 배출하면서 이제는 10개 구단 중 LG만이 MVP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LG의 MVP 배출이 이야기 떡밥으로 많이 언급된다.[184] 이 중에서도 단연 95년 이상훈이 가장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MVP를 수상한 김상호의 성적이 별나지도 않았는데 당해 한국시리즈 팀의 역전우승과 잠실홈런왕 타이틀이 크게 작용했다. LG입장에서는 다 잡았던 정규시즌 우승과 이상훈 MVP를 놓친 무척이나 씁쓸한 한 해가 되었다.[185] 이 해도 무척이나 아쉬운 것이, 신윤호는 1차 투표에서는 이승엽을 앞섰으나 인지도 차이로 결선 2차투표에서 이승엽에게 역전당하며 투수 3관왕을 하고도 MVP 수상에 실패했다. 이승엽마저 수상소감에서 "이런 성적으로 받아서 부끄럽다."라고 했을 정도이다.[186] 신인왕이지만 LG에게는 거의 흑역사에 가까운데 LG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만 반복하면서 방송출연 때마다 1988년 신인왕이라고 꼬박꼬박 소개문구에 넣는다.[187] 그 사이에 아깝게 신인왕이 되지 못한 선수로는 2002년 박용택, 2011년 임찬규, 2025년 송승기 등이 있다.[188] 다승, 승률 2관왕[189] 다승, 세이브, 승률 3관왕[190] 베스트 10: 이만수[191] 3년 연속 수상(93-95) / 99년은 삼성 소속으로 수상[192] 베스트 10: 김봉연[193] 2년 연속 수상(23-24) / 24 : 타점왕[194] 20-20 기록[195] 2년 연속 수상(93-94) / 93: 골든글러브 수상 직전 트레이드로 인해 수상은 LG 소속[196] 4년 연속 수상(83-86) / 85: 도루왕 / 86: 최다 득점[197] 2년 연속 수상(98-99)[198] 2년 연속 수상(22-23) / 22: 20-20 기록[199] 3년 연속 수상(85-87) / 86: 최다 안타 / 87: 최다 득점[200] 94: 20-20 기록[201] 3년 연속 수상(99-01) / 97: 신인왕 / 99: 30-30 기록 / 99-01, 05: 최다 안타 / 01: 최다 득점 / 05: 타격왕[202] 도루왕[203] 2년 연속 수상(12-13) / 09: 타격왕[204] 21, 23: 출루율 1위 / 23: 최다 득점[205] 타격왕[206] 타격왕[207] 아직 전 포지션에서 골든글러브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은 SSG, 키움, KT 3개 구단이다.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원년 5개 구단과 해체된 현대, 신생 구단인 NC는 모두 전 포지션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다.[208] MBC-LG 9회(김재박 5회, 류지현 2회, 오지환 2회)이며 히어로즈(8회), 해태-KIA(7회)/삼성(7회), OB-두산(5회), 빙그레-한화(3회), 롯데(2회)/삼미-청보-태평양-현대(2회) 순이다.[209] # MBC 청룡의 캐치프레이즈[210] 김기태 감독이 시즌 초 중도사퇴한 후에는 양상문 감독이 직접 내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211] 2018년 개막전에는 ‘오프닝 시리즈: 우리들의 꿈’ 슬로건 사용[212] 한국시리즈 우승 슬로건: PERFECT ONE[213] 한국시리즈 우승 슬로건: THE RETURN OF CHAMPIONS[214] 제주고는 특성상 타 지역 전학생이 많아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2014년도에 제주고 출신임지섭(용마고에서 전학)의 1차 지명이 가능했던 것은 전학 시기가 1차 지명 부활 이전이어서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215] 이러한 이유로 서울 연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며 유니폼이나 응원가 등에서도 서울을 매우 강조한다. 팀의 슬로건 또한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 실제로 서울 출신이거나 지방에서 상경한 많은 유명인들이 LG 트윈스를 통해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심지어 서울 토박이이자 두산 베어스 원클럽맨이었던 유희관도 LG의 야구를 보면서 야구에 입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216] LG가 프로야구 창설 과정에서 부산 연고 구단으로 리그 참여 제의를 받았던 걸 생각하면 묘한 부분이다.[217] 그래서인지 LG가 성적이 좋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두산이 LG보다 성적이 좋던 시절에도, 예전부터 미디어에서는 주로 두산이나 키움보다는 LG를 서울 대표 구단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타팀팬들도 대부분, LG에 특별한 악감정이나 혹은 두산에 특별한 호감을 가지지 않는 한 대체로 LG를 서울 대표 구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218] 서울 유니폼도 서울 3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출시했다.[219] 이에 질세라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는 각각 '서울두산 승리하리라', '영웅 출정가', '기를 높여라'라는 응원가로 카운터를 시작은 했지만 서울과 관련한 응원가 수는 LG 쪽이 아예 넘사벽으로 많다.[220] 하지만 두산이 무슨 야반도주나 얌체같이 갑자기 서울로 와 자리잡고 서울 구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원래 두산이 서울 연고를 마음에 두고 있던 와중에 리그 창설을 주도했던 MBC의 서울 선점에 따라 지역안배 차원에서 전혀 기업 연고가 없던 충청 연고를 임시로 배정받았고 이 역시 ‘3년을 지낸 후 서울 이전’란 조건이 처음부터 붙어있었던 것이기에 두산 입장에선 억울한 감이 있다. 다만 원래 두산이 서울로 연고를 이전한 뒤에 사용하기로 되어있던 구장은 동대문운동장이었고, 두 팀의 잠실 동거는 아마야구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86년-88년 3년 시한으로 시작된 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터라, 원년부터 단독으로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다가 졸지에 수십년간을 두산과 같이 쓰게 되며 제 집을 공유하게 된 LG팬들의 짜증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221] 외지에서 서울로 이사왔거나 같은 수도권인 경기도나 인천은 제외[222] 아래에서도 서술했지만 만일 구자경 회장이 출장을 가지 않았었더라면 LG 트윈스의 연고지는 서울이 아닌 부산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LG 역시 구단 창단 제의(부산 연고)를 받았었으나 당시 구회장이 출장 중이었던 관계로 확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구회장이 이헌조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통해 이를 보고받은 후 이실장에게 ‘한다고 했어야지 왜 주저했느냐’며 호되게 질책했지만 당시 국내 대기업의 사풍상 최고경영자의 승락없는 사업추진은 월권행위로 간주되는 분위기에서 이실장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물론 LG가 아니어도 훗날 다른 대기업이 서울 연고구단을 창단할 수도 있었으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지만 이러한 뒷배경으로 인해 서울의 성골 구단이란 위치에 있게 된 것 만은 사실이다.[223] 끔찍했던 이 사고는 한국시리즈 기간 중 발생한 사고였다.[224] 한일 월드컵이 열린 후 무려 5번이나 월드컵이 열렸다.[225] 이 외에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가 남의 집에서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226] 사실 이것은 2015년까지(실제 규정의 적용은 2014년까지) 있었던 잠실 중립 경기 규정이 가장 큰 이유다. LG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한국시리즈 진출팀 중 어느 한 팀이라도 홈구장의 수용인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5~7차전을 무조건 잠실에서 했기 때문에 잠실에서 한국시리즈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립 구장 경기문서 참조.[227] 이 규정 때문에 의외로 자신들의 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LG나 두산을 제외한 다른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자신들의 홈에서 우승하려면 정규리그 우승팀이 중립경기가 적용되지 않는 매치업에서 최소 6차전을 가거나(1998년과 2000년의 현대, 2002년과 2013년의 삼성, 2007년의 SK), PO를 거치고 올라와서 4연승으로 끝내거나(1987년의 해태), 아니면 PO를 거친 팀이 중립경기가 적용되지 않는 매치업에서 5차전 이내에 끝내야만 하는데, 모두 확률상 낮은 일이기 때문. 실제로 LG를 제외한 7개 구단 모두 우승컵을 가장 많이 들어올린 구장은 잠실이었다.[228] 쌍방울은 김기태가 홈런왕을 차지하기는 했다.[229] 홈런왕 배출에 가장 근접했던 기록은 2020년 라모스의 38홈런이다. 그 해 홈런왕은 46홈런를 기록한 KT의 로하스가 가져갔고, 라모스는 시즌 막판 부상으로 결국 홈런 2위에 만족해야 했다.[230] 물론 구장이 큰 것도 있지만 구단 자체가 홈런과 담쌓은 팀컬러인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같은 구장을 쓰는 두산은 약물 전적이 있는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두 번이나 잠실 홈런왕을 배출했고 선수 개인 기록으로도, 팀 통산 홈런으로도 LG에 비해 상당히 우위에 있다.[231] 2010~2023년까지는 2년 후.[232] 2013년에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지만 두산에게 지는 바람에 순위에서 밀려 2015년 개막전을 KIA의 홈구장에서 치러야 했다. 홈에서 치렀다면 당하지 않았을 역전 끝내기 패배도 있었으니 이게 어쩌면 2015시즌을 시작부터 꼬이게 만든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233] 따라서 2007년 이후 9년 만에, 자력으로는 2003년 이후 13년 만인 2016년 시즌에 잠실 홈개막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2014시즌에 LG가 두산의 탈락 확정을 직접 만들어내고 LG는 4강에 합류하면서 성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LG가 가을야구에 진출했어도 두산에게 순위에서 밀린 탓에 계속 홈개막전을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며 2021년의 경우 리그 순위에서 두산보다 앞섰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LG를 제치고 한국시리즈에까지 진출한 바람에 최종 순위에서 두산에게 밀리면서 2023년 개막전마저 원정에서 시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외라면 2020년 개막전은 코로나 사태 여파로 여느해보다 늦은 5월에 시작하면서 어린이날 시리즈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 2020년 어린이날 시리즈의 경우 LG가 홈 차례이기 때문에 운좋게도 LG가 홈개막전을 치를 수 있었다. 2018년 KBO 리그 개막전부터는 기존 방식과 다르게 2년 전 상위팀의 경우 각 팀의 홈구장에서 개막을 하지만, 상대팀의 경우는 흥행을 고려해 KBO 측에서 임의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18년 개막전은 LG가 NC의 홈구장에서 치르게 되었다.[234] 김재박은 본인 잘못도 매우 크다.[235]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원년 개막전 선발투수였다. 즉, KBO 리그의 역사가 그의 손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236] 어찌보면 7번보다 최악의 번호이다. 승부조작을 한 박현준과 우완 선발 에이스였으나 사생활 문제가 심각했던 투수의 번호였다.[237] 신계석이 2시즌 사용한 이후에 김용수가 사용했다.[238] 90년대 후반에 동봉철, 정영규 등 트레이드로 들어온 저니맨들이 달기 시작하다가 2000년대 초반에는 주로 외국인 선수들이 달았는데 초창기 외국인 선수 중에서는 한화의 첫 우승 주역 중 한명이었지만 엘지에서는 코치진과의 불화로 중도 퇴출 된 댄 로마이어, 메이저리그 경력이 화려했지만 엘지에서는 노쇠화로 별 볼일 없는 성적을 냈던 알 마틴이 대표적[239] 그리고 차세대 거포로 기대를 모았던 박병호부터 본격적으로 25번의 저주가 시작된다. 그와의 트레이드로 들어온 승부조작 투수, 63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장타를 쏠쏠하게 날려주다가 25번으로 바꾼 이후 타팀가서 터진 최승준, 대타로 쏠쏠한 활약 해주다가 25번을 한시즌 달았던 서상우, 경찰청 시절 퓨처스를 씹어먹으며 또 하나의 우타거포를 기대했지만 25번을 달자마자 음주운전이후 팀을 떠난 윤대영, 귀한 몸 대접을 받으며 엘지에 와서 25번을 달았지만 한시즌만에 번호를 바꾼 김민성, 역시 한시즌만 달고 번호를 바꾼 내야 유틸리티 구본혁, 다주자 대수비로 2022년까지 있었던 이상호, 그리고 트리플A에서 맹활약하며 시즌 중 대체선수로 기대하고 영입했다가 정규시즌이 채 끝나기전에 방출되며 지독한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이어간 로벨 가르시아로 방점을 찍었다.[240] 그나마 2002~2003시즌에 뛰면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고 재계약까지 성공했던 매니 마르티네스가 25번을 달고 유일하게 그럭저럭 밥값을 했다.[241] 심지어 뒤에 언급한 3명은 모두 1994년 입단 동기이다.[242] 2017년 9월 9일의 승리는 이 시즌 홈경기 두산전 유일한 승리였으며, 두산에게 다시 승리하기 까지 이 날 이후로 1년이 넘게 걸렸다.[243] 1993년, 2002년, 2010년. 즉 마지막 승리가 10년전이다.[244] 그것도 그냥 스윕패가 아니다. 2021년에는 6년만에 삼성전 스윕패를, 2022년에는 10년만에 잠실 롯데전 스윕패를, 2023년에는 6년만에 잠실 KIA전 스윕패를 당했다. 그나마 2024년은 4월 30일만 패배하고 나머지 경기를 승리하면서 위닝 시리즈를 거뒀다. 2025년에는 4월 29일, 4월 30일 2경기 모두 패배해(5월 1일은 우천취소.) 5연패로 이어져 2위와 0.5게임 차까지 좁혀지기도 했다.[245] 마지막으로 10승 투수 배출에 실패한 시즌은 MBC 청룡 말년인 1989년이다. 그리고 그 시즌이 MBC-LG가 유일하게 1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한 유일한 시즌이다. 이 시즌의 최다승은 김기범과 이용철이 7승을 하는데 그쳤으며 성적도 반 경기 차로 간신히 꼴찌를 면할 정도로 당연히 좋지 못했다.[246] 두산은 우승했던 01년과 7위를 기록한 03년, 9위로 추락한 22년에 10승 투수 배출에 실패했고, 키움(당시 넥센 히어로즈)은 꼴찌한 11년에 10승 투수가 없었다. SSG는 02년과 06년, 21년, 23년에 10승 투수가 없었으며 KIA는 05, 07, 13년에 10승이 없었다. 삼성은 96년, 18-19년 10승 투수 배출 실패, 롯데는 02-04, 19년, NC는 18년, 한화는 12-14년과 16년, 22년, KT는 16-18년 10승 투수가 없었다.[247] 원래 이 부분 최다 기록은 빙그레-한화의 26년 기록이었다. 창단 원년이던 1986년부터 2011년까지 꼬박꼬박 10승 투수 한 명씩은 적어도 나왔다. 류현진이 에이스의 모습을 보였음에도 온갖 불운이 겹쳐 시즌 마지막 경기 10이닝 1실점에도 불구 10승에 실패한 2012년에 이 기록이 중단된 것이다.[248] 다만 두산은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이 삼성에 이은 3위다. 카디널스는 악의 제국에 이은 월드 시리즈 최다 우승팀 2위를 기록 중.[249] 그런데 트윈스란 구단명 때문에 미네소타 트윈스 팬들의 유입도 생겨났다. 더욱이 미네소타 역시 199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이 마지막이고 포스트 시즌 18연패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포스트시즌에서 약한 구단이라 어떻게 보면 동병상련이기도 하다. 단 미네소타는 LG보다도 먼저 우승을 이뤘다(1987년), (1991년)[250]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구단은 LG와 한화가 유이하다. 그러나 LG는 6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으며, 이는 연속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 3위의 기록이다. 게다가 이는 현재진행형이다.[251]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와 현대 유니콘스를 포함하여 20세기에 창단한 8개 구단 중 KIA 타이거즈와 함께 최소 꼴찌횟수 공동 2위이다. 1위는 꼴찌 시즌이 없는 삼성 라이온즈.[252] 팀 역대 한 시즌 최다패 횟수만 나열했을 때 80패로 가장 적다. 똑같이 구단 최다패 기록이 1990년 80패였던 두산은 2022년 82패로 경신했고 꼴찌가 없던 삼성도 2017년 84패를 기록했으며 2011년 80패가 최다였던 키움도 2023년에 83패를 기록했다.[253] 김현수도 이 드래프트 세대지만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기 때문에 해당 드래프트와는 무관하다.[254] 김민기, 전승남, 장문석, 안재만, 손지환을 이 드래프트에서 얻었다. 1차 지명인 이병규가 역사에 남을 레전드로 일본 진출까지 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저 선수들 역시 투타 양면으로 LG의 한 축이 되어 오랫동안 무난하게 활약했다. 비록 손지환은 타 팀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했지만 그래도 가는 팀마다 제 몫을 해 내며 본인이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기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긴 했다.[255] 일본 원판에서는 두 팀이 각각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로 나오는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시리즈에서 2012년 이후 우승소식이 없는 반면 한신 타이거즈는 2023년에 우승을 하게 되면서 한국과 반대로 되었다.[256] 실제로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제도가 생긴 이후로 2023년까지 단 한 번도 리그 4위 팀이 5위 팀에게 업셋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또한 현 포스트시즌 방식이 정착된지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업셋이 단 5차례밖에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플레이오프나 준플레이오프에 비해 업셋 확률이 매우 낮다.[257] 하지만 2024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위 두산이 5위 KT에게 업셋당하면서 와일드카드 결정전 최초의 업셋 기록이 탄생했다.[258] 2015년과 2018년 개막 3연패로 시작한 적이 있으나 2015년은 kt가 개막 11연패, 2018년은 롯데가 개막 7연패를 했기에 단독 10위를 기록하지는 않았다.[259] 2021년 1위 타이브레이커를 치렀으나 개막 4연패 때 10위였다.[260] NC와 LG의 경기는 밤 10시 정각에 끝났지만 한화와 SSG의 경기는 인천에 내린 소나기로 인해서 1시간 늦게 시작했다. 그리고 LG의 경기 종료 후 56분이 지나서야 결과가 나왔다.[261] 주장 박해민은 아내와 함께 경기 후 집으로 가다가 차를 돌려서 야구장으로 복귀했고 구본혁은 아예 집에 갔다가 다시 야구장에 왔다고 한다.[262] 금성사 창업 멤버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에 별세.[263] 2000년대 이후에야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나 메신저 등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연락이 가능하지만, 이때는 휴대폰 해외로밍은 커녕 삐삐보급조차도 제대로 안되던 시절이었고, 휴대폰 해외로밍도 200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다.[264] 표준어로는 야 이 사람아! 우리가 그냥 하겠다고 받아들인다고 말했어야지![265]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상하조직 구조상 실장이 회장의 승낙없이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알겠지만 프로구단의 운영이란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윗선의 승락없이 움직였다간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명백한 월권행위로 책임자가 문책으로 목이 달아나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구자경 회장도 그걸 모르진 않았겠지만 아쉬움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화를 저렇게까지 낸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266] 이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미국의 메이저 리그 역시 마찬가지여서 신생팀 창단은 물론,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까지 구단주들의 승인이 없이는 실행되지 못한다. 그 돈 많던 현대그룹이 90년대 초반 프로야구 신생구단 창단(즉 제 9구단)을 시도하자 나머지 8개 구단주들의 반대와 견제로 새로운 리그를 창설할 뻔한 일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267] 조금 비슷한 사례로 프로야구 출범 당시 인천·경기·강원 지역 연고 프로야구단 창단을 현대그룹에 제의를 했다가 정주영 회장이 서울 올림픽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며 거절했는데, 막상 프로야구가 출범 첫 해부터 인기를 끌자 이러한 결정을 후회하면서 이듬해 현대 호랑이 축구단을 창단해 프로축구에 진입했다.[268] 구자경 당시 회장이 '럭금'이라고 축약해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진다.[269] 그룹에서는 1984년 그룹 계열 광고 회사 LG애드에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소비자들에게 LG라는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럭키금성그룹에 인수된 코리안익스프레스 카드가 LG카드로 이름을 바꾼 직후부터다.[270] 서로의 홈구장이 걸어서 3분 거리이다. 다만, LG 트윈스는 창단 첫해부터 줄곧 서울 연고였던 반면, 서울 SK 나이츠는 청주시에서 서울특별시로 이전했다.[271] 서울 SK는 2017년까지 이어지던 FA 먹튀들에 질려버린 나머지 2018년 안영준을 비롯한 드래프트로 뽑은 젊은 선수들로 우승했다. 유일한 FA 선수 정재홍은 정규시즌 주전 가드 김선형이 1년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던 도중 백업 역할을 하며 SK의 우승에 일조했다.[272] 사실 2017-18 시즌 SK는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동반 역사가 드디어 끊어지나 했지만, 문제는 차기 시즌 겨울에 완전히 망했다.[273] 2018-19시즌, 2018년에는 완전히 꼴아박던 SK는 2019년이 되자마자 갑자기 상승세를 타면서 뒷북이기는 하지만 20승까지는 찍었고, LG는 2019년 투타가 잘 맞아들어가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또한 SK 나이츠도 2019년에 시작한 시즌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다.[274] LG는 어린이날 더비 제발 그만하자고 팬들이 구단에게 애원하고 있는 상황이고 SK는 홈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더비에서 4년 연속 삼성에게 졌다.[275] 대표적으로 세이커스에서는 강대협, 조성민, 전형수, 김현중, 서장훈, 강병현이 있고, 트윈스에서는 박명환, 진필중, 홍현우, 차우찬, 정상호, 정현욱이 있다.[276] 이 부분은 서울 SK 나이츠와도 평행이론이기도 한다.[277] 창원 LG 세이커스 : 박종천 (시즌 종료 후 사퇴), 신선우 (KBL 챔피언 실패 이후 계약종료), 강을준 (재계약 검토 중 회선 -> 김진 창단 첫 KBL 정규리그 우승 견인), 현주엽 (역대 최저성적으로 인한 재계약 불발), 조성원 (창단 최초로 10위 및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실패 이후 2+1 계약형태로 인한 사퇴) / LG 트윈스 : 이순철 (시즌 중 사퇴), 김재박 (KBO 포스트시즌 탈락 이후 계약종료), 박종훈 (3+2의 5년 계약 중 2년 종료 후 사퇴/김기태와 양상문으로 KBO 포스트 시즌 진출), 류중일 (3년 계약 종료 및 KBO 챔피언 실패 이후 계약종료), 류지현 (2년 계약 종료 및 KBO 챔피언 실패 이후 계약종료)[278] 다만 조우현은 이적 첫 시즌에는 16번을 달았었다.[279] 창원 LG 세이커스 : 2013-14 시즌 정규시즌 1위(챔피언결정전 준우승), 2014-15 시즌 정규시즌 4위(4강 플레이오프 탈락) / LG 트윈스 : 2013 시즌 정규시즌 2위(플레이오프 탈락), 2014 시즌 정규시즌 4위(플레이오프 탈락)[280] 2018-19시즌에는 2017-2018 시즌 창단 이후 역대 최저성적 동률로 완전히 꼴아박던 LG 세이커스가 2019년이 되자마자 갑자기 상승세를 타면서 뒷북이긴하지만 30승까지 찍으면서 2014-2015 시즌 플레이오프 4강 이후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LG 트윈스는 2019년 투타가 잘 맞아들어가며 79승으로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더니 2020년에도 79승으로 2년 연속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모두 우승에는 실패하게 된다.[281] 다만 그 이후 창원 LG는 다시 포스트시즌에 3년동안 진출을 못했지만, LG 트윈스는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29년만에 통합우승까지 이뤄냈다., 물론 창원 LG도 2022-23 시즌부터는 포스트시즌에 3회 연속으로 진출하기도 했으며 끝내 2025년 챔프전에서 SK를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이뤄낸다.[282] 다만 조성원은 LG보다 현대-KCC 출신 레전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조성원의 후임으로 조상현으로 교체되었으며 오리온에서 코치를 했으나 실제로 SK 선수 출신 이미지가 강하다.[283] 심지어 LG를 상대로 업셋을 한 구단이 결승전에서 나름 치열한 접전끝에 준우승을 한 것까지 똑같다(...), 2022년 한국시리즈 : 키움(2승 4패 준우승), 2022-23 KBL 챔피언결정전 : SK(3승 4패 준우승)[284] 창원 LG는 2022-23, 2023-24 시즌에 각각 SK와 KT 상대로 피업셋을 당했고(3패, 2승 3패), LG 트윈스는 2021년, 2022년에 각각 두산과 키움을 상대로 피업셋을 당했다(1승 2패, 1승 3패), 게다가 저 네 팀 모두 결승전까지 올라가서 준우승을 했다.(2021년 한국시리즈 : 두산 준우승, 2022-23 KBL 챔피언결정전: SK 준우승, 2022년 한국시리즈 : 키움 준우승,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 kt 준우승)[285] 2019/2022년 키움, 2020/2021년 두산, 2023년 KT, 2024년 삼성, 2025년 한화가 있다. 창원 LG 세이커스는 2019년 전자랜드, 2023/2025년 SK, 2024년 KT가 있다.[286] LG 트윈스는 1994년 두 번째 우승 이후 29년이 걸렸으며, 창원 LG는 1997년 KBL 창단 이후 28년이 걸려 첫 우승을 했다.[287] 심지어 두 팀 모두 잠실에서 우승을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트윈스는 홈이고 세이커스는 원정이었다.[288] 염경엽은 SK 와이번스의 단장과 감독을 맡은 적이 있었으며, 조상현은 서울 SK 나이츠의 스타 선수로 활약했던 시절이 있었다.[289] 원래 귀멸의 칼날 극장판 홍보 콜라보도 있었으나 광복절을 일주일 앞두고 우익 관련 논란으로 취소되었다.(정확히는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의 비난에 무산된것에 가깝다 사건사고 참고)[290] 서울 이랜드 FC는 창단 전이었으며 FC 서울의 모기업인 GS가 범 LG가이다.[291]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292] MBC 청룡 당시 나갔던 한국시리즈이자 창단 첫 한국시리즈.[293]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이자 21세기 2번째 한국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