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0b2aa> 이름 | 박신영(Park Shin Young) |
출생 | 1984년 11월 24일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1] | |
원적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2] |
신체 | 180cm, 78kg, A형 |
학력 | 휘문고등학교 (졸업) 서울사이버대학교 (학사) 서강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
가족관계 | 부모님, 배우자[3] |
데뷔 | 2001년 KTF 매직엔스 입단 |
소속 | KTF 매직엔스(現 kt 롤스터) → 슈마 GO (現 CJ 엔투스) |
종족 | 저그 |
ID | SoNiC)BlacK |
별명 | 리치저그, 박장인, 마우스 깎는 노인 |
병역 | 경찰청 의무경찰 수경 만기전역 |
링크 | 트위터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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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2. 전적
박신영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2전 0승 2패 (0.0%) | 21전 13승 8패 (61.9%) | 23전 13승 10패 (56.5%) |
vs 저그 | 2전 1승 1패 (50.0%) | 26전 11승 15패 (42.3%) | 26전 12승 16패 (42.9%) |
vs 프로토스 | 3전 1승 2패 (33.3%) | 7전 4승 3패 (57.1%) | 10전 5승 5패 (50.0%) |
총 전적 | 7전 2승 5패 (28.6%) | 54전 28승 26패 (51.9%) | 61전 30승 31패 (49.2%) |
3. 성적
3.1. 개인 리그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 2001년 10월 춘천게임경진대회 스타크래프트 개인전 3위
- 2001년 12월 2001 국제게임챔피언십 스타크래프트 8강
- 2002년 6월 리복배 KPGA 투어 2차 리그 3위 (vs 조용호 3:2)[4]
- 2002년 10월 WCG 2002 국가대표 선발전 스타크래프트 8강
- 2003년 2월 제3차 GhemTV 스타리그 8강[5]
- 2003년 3월 KTEC배 KPGA 투어 위너스 챔피언십 4위
- 2004년 1월 하나포스 센게임 MSL 16강[6]
3.2. 팀 단위 리그
- 2004년 2월 LG IBM배 MBC GAME 팀리그 3위
- 2004년 2월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
- 2004년 7월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4위
- 2004년 8월 Tucson배 MBC GAME 팀리그 준우승
- 2005년 1월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3위
- 2005년 3월 MBC MOVIES MBC GAME 팀리그 우승
4. 활동
휘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2001년 KTF 매직엔스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였다.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다 그렇듯이 굉장히 주목받는 신인 저그유저 중 한 명이었으며, 데뷔 초 2002년 리복배 KPGA 투어 2차 리그 3위, 2003년 KTEC 위너스 챔피언쉽 4위라는 실적을 올린다. 문제는 저것으로 끝이었다는 것.이후로는 전형적인 '연습실 본좌'의 모습만을 보여주며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온게임넷에서는 2002~2003년 챌린지리그를 전전했을 뿐 스타리그에는 올라오지 못했으며, 2003년 하나포스 센게임 MSL에서 16강에 오른 것을 끝으로 MSL에도 올라오지 못했다. 2004년 초에 KTF를 떠나 GO로 이적했지만, 이적 후에도 딱히 임팩트있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2004년 투싼배 MBC게임 팀리그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고 마는데, 플러스(화승 오즈의 전신)과의 경기에서 선봉으로 출전했다가 전설의 1시간 20분 세팅 사건을 일으킨 것.[7] 막상 경기에서는 플러스의 은가이 박성준에게 10여분만에 패하며 더 빈축을 샀다. 애시당초 경기 시간 짧은 저저전이니까... 그리고 '박장인', '마우스 깎는 노인' 이란 불명예스런 별명이 따라온 건 덤. 사실 이건 세팅을 1시간 동안 했다기보단 PC 문제가 얽힌 상황이라 본인은 좀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박신영이 딱히 세팅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으니. 하지만 1시간 20분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고 같은 팀에 진정한 세팅 장인이 존재했던 탓에, 쌍으로 자주 언급되곤 했다.
그 후로는 팀플레이 멤버로 주로 출전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8] MSL 서바이버 리그에 잔류해 있었는데, 그 출전도 포기한 전격적인 은퇴. 군문제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우려 등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5. 은퇴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시절 서울사이버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교에 진학해 틈틈이 학점을 따두기도 했고 졸업까지 했으나, 처음에는 군대 문제로 인해 병역 연기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9] 경찰청 의무경찰 만기전역 후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프로게이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데, 2008년 6월 아버지의 권유로 영국으로 건너가, 아버지의 대학교 동창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영국 대학교 내에 개설된 랭귀지 코스를 통해 영어를 익혔다. 2009년 5월 귀국해 경기도 용인시의 어느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2010년 3월부터 학사편입 시험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11년 2월 11일 마침내 서강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에 편입학했다는 기사가 떴다!선수 시절엔 가수 리치를 닮은 깔끔한 외모로 GO 미남수맥을 책임진 게이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서지훈, 박태민[10]과 KTF 시절 같은 팀원이었던 홍진호, 김정민[11]과는 굉장히 친했으며 지금도 친분이 두터운 듯 하다.
6. 근황
롤러와에서 김동수가 이야기하길, 프로게이머 은퇴 후 정말 죽을 정도로 공부해서 서강대학교에 들어갔고, 2012년 기준 NHN에 입사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도 사이버대학으로 틈틈히 공부를 하며 학점을 챙겨뒀다고 하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 후 EA코리아로 옮긴 뒤, 2019년 현재 LG로 이직했다고 한다.2014 롤챔스 서머 16강 IM #2와 삼성 갤럭시 화이트와의 경기에서 인터넷문제로 경기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e스포츠계의 원로(?)들끼리의 만담에서 언급됐는데 현재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LG 트윈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직관 인증샷이 가끔 개인 SNS에 올라온다고.
2019년 초 차재욱 선수가 운영했던 음식점에서 있던 GO-CJ 선수들 모임에서도 참여했다.
코리아 스타크래프트 리그 시즌4 온라인 예선에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이디는 Onion_King. 안타깝게도 온라인 예선 결승에서 아마추어 저그 유저인 정윤채 선수에게 패배해 오프라인 예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진용진의 유튜브에 서울사이버대학교 출신 성공한 사람으로 출연하였다.[12] 어찌되었든 프로게이머로도 이름을 알렸고 4강이라는 호성적을 남긴 만큼 성공했고, 그 이후에 공부로도 성공했으니 인생의 승리자.
[1] 와이고수 기록실.[2] 서산뉴스에 따르면 부모님의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이라고 하며, 2011년 2월 현재 할머니와 부모님, 삼촌들이 여전히 서산시에 거주한다고 한다.[3] 결혼한 건 확실.[4] 4강에서 이윤열에게 1:2 패배[5] 1승 2패 탈락[6] 이병민, 김현진에게 연달에 패배하고 탈락[7] 변형태에 따르면 모니터 주사율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숙소에서 모니터를 가져왔다고 한다.[8] 시스템 상으로는 이 이후에도 무소속 프로로 남아있다가, KeSPA의 규정 개정으로 2008년 3월에 프로 자격이 취소된 것으로 나왔다. #[9] 프로게이머들이 학력을 공개하는 경우가 적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프로게이머들은 사이버대에 많이들 진학한다. 주된 목적은 병역 연기를 위한 것이고, 고졸로 남긴 싫어서 사이버대라도 가는 케이스도 있다.[10] 참고로 셋 모두 동갑이다. 정확히 서지훈은 빠른 85, 나머지는 84년생으로 생일도 얼마 차이 안 난다. 그리고 서지훈이 KTF에 입단하도록 권유한 것도 박신영이라고 한다.[11] 홍진호와는 같이 투샷을 찍은 사진이 많았으며, 은퇴한지 오랜 시간 후에 김정민의 유튜브 채널에 와서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12] 전술했듯이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서울사이버대에 다니면서 학점을 챙겨 졸업을 했고, 그것이 후일 서강대 입학에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