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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구단주·대표이사 유정근 | 단장 이종열 | 감독 박진만 | 2군 감독 이병규 | 주장 구자욱 | |
경기장 | 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 | 2군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스프링캠프 온나손 아카마 볼파크 | 재활 삼성 트레이닝 센터 | 이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
주요 정보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마스코트 블레오 | 사건 · 사고 | 프랜차이즈 스타 | 삼성 왕조 | 암흑기 (2차) | 통산 기록 일지 | |
관련 정보 | 삼적화 | 여름성 | 이마양 | 채최박 | 조원수박차 | JOKKA 라인 | 곤규엽 | 굴비즈 | 삼나쌩 · 삼상바 클럽 | 기롯삼한 | 라떼동맹 | 임김오 | |
라이벌리 | vs KIA 달빛시리즈 | vs 롯데 클래식 씨리즈 | vs 두산 싸대기 매치 | vs 현대 재계 라이벌 시리즈† | |
영구 결번 | 10 양준혁 | 22 이만수 | 36 이승엽 | |
최종 우승 | 1985 | 2002 | 2005 | 2006 | 2011 | 2012 | 2013 | 2014 | |
현재 시즌 | 삼성 라이온즈/2024년 | |
팬덤 정보 | 응원가(구단 · 선수)|디시인사이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유튜브 LionsTV | 네이버 카페 사자 사랑방 | 팬 게시판 | |
지역 연고 | 경북고 | 대구고 | 상원고 | 포철고 | 경주고 | 강릉고 | 설악고 | 도개고 | 예일메디텍고 | |
기타 |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 나믿가믿|삼팬이지만 인정한다|돈 내놔라 먹튀야|못 참겠어서 왕조 선언합니다|김헌곤 유니버스 | 세이브 조작단 | 오승환/밈 | |
틀 문서 | ||
역대 시즌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역대 1차지명 |응원단|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colbgcolor=#074ca1><colcolor=#fff> 삼성 라이온즈 | |
Samsung Lions | |
창단 | 1982년 2월 3일([age(1982-02-03)]주년) |
법인 설립 | 1982년 3월 5일([age(1982-03-05)]주년) |
법인명 | ㈜삼성라이온즈 |
상장 유무 | 비상장 기업 |
기업 규모 | 대기업 |
구단 사무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야구전설로 1 (연호동)[1]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14 (역삼동)[2] |
주요 라이벌 | - 달빛시리즈 - 클래식 씨리즈 - 싸대기 매치 |
모기업 | 제일기획[3] |
연고지 | 대구광역시 (1982~) |
구단주 | 유정근 |
대표이사 | |
단장 | 이종열 |
감독 | 70 박진만 |
주장 | 5 구자욱 |
영구 결번 | 22 이만수 | 10 양준혁 | 36 이승엽 |
홈구장 변천 | 제1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82~2015)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016~ / 24,000석)[4] |
제2 홈구장 포항 야구장 (2012~ / 12,000석) | |
2군 구장 |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1995~) |
키트 스폰서 | 언더아머[5] |
링크 | | 스토어 | | | | |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 |
KBO 한국시리즈 우승 (8회)[A] | |
1985년[A],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
페넌트 레이스 우승 (9회 / 최다 우승)[8] | |||
단일 리그 | 2001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 ||
전·후기 리그 | 1982년 후기, 1984년 전기, 1985년 통합[9], 1986년 후기, 1987년 통합[10] | ||
양대 리그 | 1999년 매직 | ||
2011년 | |||
포스트시즌 진출 (30회 / 최다 진출) | |||
한국시리즈 | 1982년, 1984년,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24년 | ||
플레이오프 | 1986년, 1988년, 1990년, 1991년, 1993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4년, 2008년, 2010년, 2021년, 2024년 | ||
준플레이오프 |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7년, 2000년, 2003년, 2007년, 2008년 | ||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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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승률 | 0.396 2017년 144경기 55승 5무 84패 | ||
최다 승 | 88승 2015년 144경기 88승 56패 | ||
최다 패 | 84패 2017년 144경기 55승 5무 84패 | ||
최다 관중 | 1,347,022명 2024년[11] | ||
최소 관중 | 177,774명 1988년[12][코로나19] | ||
최고 계약 | 5년 120억 원[14] 2022년 구자욱 | }}}}}}}}} |
1. 개요2. 상세3. 지배 구조4. 구단 디자인5. 홈구장6. 역사7. 팀 컬러8. 팬9. 응원10. 타 구단과의 관계11. 역대 선수 및 인물
11.1. 영구 결번11.2. 삼성의 스타들11.3. 역대 구단주11.4. 역대 사장(대표이사)11.5. 역대 단장11.6. 역대 감독11.7. 역대 주장11.8. 역대 선수 명단11.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11.10. 역대 선수단 및 등번호11.11. 은퇴식
12. 역대 기록13. 지역 연고 학교14. 논란 및 사건사고15. 이야깃거리16. 관련 문서17.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2. 상세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창단한 원년 6개 구단 중 하나로,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원년부터 연고지·모그룹·구단명 모두 변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구단이다.[16]공식 연고지는 대구광역시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경권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여겨진다. KBO 리그의 연고지 개념이 2000년부로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바뀌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대구광역시뿐만 아니라 경상북도까지 포괄했었고,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제도가 존재하던 2014년부터 2022년까지는 강원도 영동 지역 고교에 대한 지명권도 보유했었다. 대구를 연고지로 삼은 것은 1938년 이병철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창업한 삼성상회(현 삼성물산의 전신)가 삼성그룹의 기원이기 때문이었다.
KBO 리그에서 공식적으로 8회의 우승을 차지해 KIA 타이거즈(12회)에 이은 2위에 올라있다. 2010년대 초반에는 5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2011~2015)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2011~2014)을 달성해 언론과 야구 팬덤으로부터 '삼성 왕조'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또한 통산 최다승,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8회),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우승(4년 연속, 2011~2014),[17] 페넌트 레이스 최다 우승(9회),[18] 페넌트 레이스 최다 연속 우승(5년 연속, 2011~2015), 포스트시즌 최다 진출(30회),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진출(12년 연속, 1997~2008) 등 여러 긍정적인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리그에서 유일하게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구단이다.
상징 색은 모기업 삼성을 따른 파란색이며, 과거에는 빨간색(1982~1983, 2016~2023)과 노란색(1984~1994)도 사용했었다.[19] 상징 동물로 사자를 택한 것은 늠름한 백수(百獸)의 왕 사자의 기상으로 프로야구의 선구적인 팀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마스코트 블레오는 팀의 상징 색 블루(Blue)와 만화 <밀림의 왕자 레오>의 주인공 백사자 레오(Leo)[20]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홈구장은 1982년부터 2015년까지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동에 위치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사용했었고, 2016년부터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사용하고 있다.
3. 지배 구조
삼성 라이온즈 지배구조 | ||||
주주명 | 소유주식수 | 지분율 | 비고 | |
(주)제일기획 | 135,000 | 67.5% | ||
CJ제일제당(주) | 29,999 | 15.0% | ||
(주)신세계 | 29,000 | 14.5% | [21] | |
대구광역시 | 5,000 | 2.5% | [22] | |
기타 | 1,001 | 0.5% | ||
합계 | 200,000 | 100.0% |
삼성스포츠단 중 최초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23] 제일기획에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의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대로 특정 한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범삼성가가 지분을 각각 나눠 가졌다.
제일기획 인수 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은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로 분산되어 있었다. 삼성가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상징적 의미로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 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CJ그룹, 신세계그룹까지 포함한 범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
2021년 1월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신세계의 삼성 라이온즈 지분 소유 여부도 논란이 됐다. KBO 규약에 따르면 한 구단이 다른 구단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KBO는 ㈜이마트와 ㈜신세계가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24] 신세계는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보유할 수 있고 이마트는 SSG 랜더스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 결국 신세계는 그룹 산하 야구단이 생긴 이후에도 여전히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관련기사[25]
2015년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삼성스포츠단은 국내 광고 업계 1위이자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일괄 이전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의 운영비를 전액 지출하는 모기업이 아니며, 단지 운영을 전담으로 하는 것이고 구단의 운영비는 삼성 내의 전자나 물산 등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지분 67.5%(12만 9,000주)[26]를 6억 7천만 원[27]에 사들여,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 ##
제일기획 인수 후에는 제일기획, 신세계, CJ제일제당, 이건희가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상속세 납부의 일환으로 이건희가 가지고 있던 2.5%의 지분을 대구광역시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4. 구단 디자인
4.1. 엠블럼/심볼
삼성 라이온즈의 역대 엠블럼 | |||
1982~1988 | 1989~1994 | 1995~2007 | 2008~[28] |
삼성 라이온즈의 역대 심볼 | ||
1989~1994 | 1995~2007 | 2008~ |
4.2. 유니폼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유니폼 문서 참고하십시오.2024 시즌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 | ||
HOME | AWAY | SUNDAY |
VINTAGE 2002 | VINTAGE 1982 | MILITARY |
2024 시즌 유니폼 스폰서 | |||||||||||||||||||||||||||||
파일:맥주켈리로고.png | | ||||||||||||||||||||||||||||
제작사 | 모자 스폰서 | 유니폼 후면 스폰서 | 유니폼 사이드 스폰서 |
4.3. 마스코트
삼성 라이온즈 마스코트 | ||
블레오 | ||
자세한 내용은 블레오 문서 참고하십시오. |
5. 홈구장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 | |||
홈구장 | 제 2구장 | 2군 구장 | 과거 구장 |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 |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29] |
2016년 ~ 현재 | 2012년 ~ 현재 | 1995년 ~ 현재 | 1982년 ~ 2015년 |
6. 역사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7. 팀 컬러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팀 컬러 문서 참고하십시오.8. 팬
8.1. 인기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팬들 |
원년부터 자이언츠, 타이거즈와 최고 인기팀 자리를 삼등분 해왔으며 번갈아가면서 갤럽조사, 시청률 등의 인기 지표에서 1위를 기록하는 팀이다. 삼성은 20세기와 2000년대, 왕조시절, 롯데는 로이스터 시절, 타이거즈는 20세기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2020년대로 들어오면서 한화와 함께 기롯삼한의 일원으로 최고의 인기팀 자리를 겨루고 있다.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이고 리그 출범 후 가을야구 탈락은 몇 번 해봤을 지라도 꼴찌는 유일하게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전통의 강팀으로, 화끈한 타격을 시그니처 이미지로 삼았던 팀이었기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부터 해태 타이거즈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다.#[31][32]
19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의 최대 절정기로 꼽히던 1995년에는 그 열악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썼음에도 총 관중수가 60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33]였다. 프로야구 인기가 절정이었던 2012년에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을 정도인데, 이는 90년대 13,000석이었던 시민야구장 관중석이 고급화로 인해 10,000석으로 줄어들었기 때문.[34]#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35]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다 2004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가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 시기 갤럽 조사에서는 기아의 선호도와 롯데의 선호도를 합한 것 보다 선호도가 높았고 야구팬의 30프로가 삼성팬이었지만[근거필요] 야구 자체의 인기가 떨어져서 관중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그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부흥했지만 선동열식 불펜 야구에 대한 재미의 반감[37]으로 인해 KIA 타이거즈나 롯데 자이언츠 등 타 구단들에 비해 팬 숫자 증가가 상당히 더디었다.
그러나 2011년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불펜 야구뿐 아니라 과거의 공격력 회복을 선언했고, 또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과거 라이온즈 팬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으며 2012년에는 국민타자 이승엽이 복귀함에 따라 과거의 인기를 점차 회복하였다. 삼성 왕조가 건재하던 2015년까지는 명실상부한 KBO 최고의 인기팀이었다. 그 후 삼성 왕조가 무너진 2016년부터 시작된 암흑기로 인해 2020년까지는 구단 인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허삼영 감독 체제의 삼성이 다시 1위 싸움을 하자 폭발적으로 인기가 상승하였다. 2021년 최다관중 1위, 네이버 스포츠 응원 천만, 2021년 올스타전 줄투표 등 원년팀의 화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2016년부터 시작된 오랜 암흑기는 왕조시절보다 오히려 팬덤의 충성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신규 팬 유입 역시 최신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와 김상헌 응원단장의 노력 등으로 인해 증가하고 있다.
2024년 삼성이 3년만에 상위권 싸움을 꾸준히 하자 삼성 경기를 보러가는 관중 수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2024년 8월 12일 기준으로 홈 평균 관중 수가 17,485명으로 LG 트윈스에 이은 2위를 찍었고 원정 평균 관중 수가 16,941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이은 2위를 찍는 등 홈 및 원정 평균 관중 수에서 2위를 찍는 등 어마어마한 인기를 보여주었고, 8월 14일엔 두산 베어스에 이어 시즌 두 번째로 100만 관중을 돌파하면서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인기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심지어 9월에 접어들자 대구 홈 경기는 선예매(시즌권자, 블루회원)에서 이미 24,000석이 모두 매진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22시즌과 2023시즌 끔찍한 부진으로 99688378을 찍었던 클럽이라는 점, 250만의 대구권 인구만으로 1000만이 넘는 수도권 인구에 원정 팬 버프[38] 까지 받는 잠실과 관중 수 1위를 겨룬다는 자체만으로 삼성의 인기가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8.2. 팬층 분포
또한, 같은 경상도인 부산·울산·경남에도 상당한 팬덤이 있다. 주로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부산, 울산, 창원, 거제, 김해, 양산 쪽에 정착하게 된 대경권 출신들이 많다.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가 사직 야구장에서 열리면 3루는 삼성의 팬들이 꽉 들어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41] 마찬가지로 창원 NC 파크 경기때도 3루에 상당히 많은 삼성팬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경상남도에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를 포함해서 거창, 합천, 창녕, 밀양은 경남[42]이지만 대구랑 가까워서 이쪽도 삼성의 팬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도 삼성의 1차지명 연고지이기에 어느정도 팬덤이 있다.
수도권에도 상당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수도권의 팬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대구·경북에서 취학·취업 등의 이유로 수도권으로 간 팬들이다. 이들이 수도권 팬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모부터 대를 이어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는 왕조 시절 호성적으로 인해 삼성을 응원하게 된 팬들이다. 4년 연속 우승이라는 무지막지한 성적으로 인해 강팀을 선호하는 뉴비들은 삼성을 많이 응원했다. 세 번째는 삼성그룹 사원 및 삼성스포츠 팬들이 있다. 특히, 수원을 비롯한 경기 남부[43] 등에 삼성 팬들이 많다. 이들 지역은 모두 삼성 사업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수도권 내 타 종목 삼성스포츠[44] 팬들이 형제구단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한다.
여담으로 처음 야구 입문을 할 때, 본인이 파란색을 선호한다면 삼성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1982년부터 무려 40년 넘게 팀 상징 컬러가 바뀌지 않은 팀이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고정된 팀 상징색과 이로 인한 신규 팬 유입도 분명한 이유 중 하나이다.[45]
8.3. 팬 숫자
삼성의 팬층은 각종 통계 자료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삼성의 팬 숫자를 어림할 때 참고하는 자료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팬 선호도 조사가 많이 거론된다. 조사 결과. 물론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KBO 리그의 주요 인기 팀이라는 자료로 많이 쓰인다.8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시청률 또한 항상 최상위권이었던 팀이다. 199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1년까지는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팬이나 구단이나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고 선수들은 새가슴 성향을 보였으나, 2000년대에 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런 점은 고쳤다. 하지만 2000년대는 김응용, 선동열로 대표되는 해태 출신 감독들의 영향으로 골수팬들이 떨어져 나가 인기가 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46]
1990년대에는 1995년에 홈 경기 총 관중수 62만 3970명으로 최고점을 찍는 등 내내 50만 명 선을 유지했으나 2000년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 2002년에 24만 7698명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19만 587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2002년 월드컵 여파와 이를 잇는 한국 최초의 시민 프로구단인 대구 FC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도 이 상황에 한 몫 했다. 이후 내내 30만 명 선을 유지하다 선동열 감독 마지막 해인 2010년에 45만 5246명으로 40만 명 선을 회복했고 류중일 감독 취임 이후에는 45만 1483명의 2013년을 제외하고 50만명 선을 유지하는 등 인기를 회복했다.#
베이징 뉴비들이 유입되던 2000년대 후반에는 나이 많은 팬들이 많아, 인터넷 상에서는 다른 팬덤에 밀리는 편이였으나, 2011년부터 삼성 왕조가 시작되면서 젊은 팬들의 유입도 많아져,[47]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대구 시민운동장이다. 하지만, 구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많은 누적 홈 관중 수를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구 구장의 상태는 최악이다 보니 그 때문에 관람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설문에서 40%를 넘었을 정도다.#
또한 신규 구장이 건설될 경우 관람을 가겠다는 의견 또한 예측 수요는 거의 현재의 2배 수준.# 결정적으로 삼성의 관중동원 미진이 구장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히 2016년 라이온즈 파크가 새로 지어지면서 관중동원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모습이다.[48] 2016년 시즌 초반, 삼성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 구장 바로 다음가는 관중동원을 기록했다. 2016년 5월 19일 기준으로 추월하였다. 그리고 시즌 중후반 팀의 부진으로 관중 동원력이 크게 떨어졌으나 처음으로 80만 명을 넘기며 총 85만 1천여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며 구단에서 예측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다.
2016년 암흑기의 시작으로 기존 올드 팬층[49]이 굉장히 많이 이탈하였으나[50] 이후 젊은 층의 신규 팬층이 유입되며 팬 수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암흑기로 인하여 팬층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었으나 2021년 시즌 마지막에 미끄러져 3위를 하기 전까지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었던 호성적으로 인하여 올드 팬층이 다시 야구를 찾아보게 되고 신규 팬층도 유입되며 2021시즌 동안에는 사실상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단이었다. 특히나 2021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2003년에 이어 삼성 선수들이 1위를 독식했고, 네이버 스포츠 중계에서는 1000만 응원 돌파라는 미친 신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2021년 시즌에는 KBO 최다 관중 동원 구단이 되었다. 이후 다시 침체기를 겪은 2022년부터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2023시즌에는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상위권의 높은 홈 직관 동원을 뽐내며 확고한 인기구단임을 입증했고,[51][52] 성적이 좋아지기만 한다면 리그 최상급의 인기구단이 될 자질을 갖춘 코어 팬덤이 있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성적이 좋아진 2024 시즌에 사상 첫 시즌 100만 관중 돌파에 이어 최종 130만 관중까지 돌파하면서 그 명제를 입증했다.
2018년 시즌과 2023년 시즌을 빼면 인기 순위 3위 아래로 내려가본 적 자체가 없으며[53] 기롯삼한의 한 축을 차지하는 전통의 지방 인기구단이다.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중복투표가 가능한 올스타가 아닌 야구장 티켓 현장 투표만으로 2003년 올스타전에서 2루수 안경현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을 전부 삼성 선수로 싹쓸이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8.4. 팬덤 성향
삼성 팬층은 2016년 라팍 이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팬층간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2016년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특히 왕조를 달리던 2010년대 전반기에는 선민의식 비슷한 게 느껴졌을 정도. 아무래도 모기업이 국내 최대 기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삼성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경우 다른 구단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했다. 삼성 팬덤 내부에서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거나 삼성 팬도 아닌데 어그로 끈다고 지적했을 정도.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 때 나왔던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우리는 가을야구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54]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다.[55]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 곳 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라팍 이전하고 팬서비스는 전반적으로 시민구장 시절에 비해 양호해졌지만 반대로 성적이 하락하자 올드 팬들 사이에선 팬서비스가 곧 성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최근 모든 KBO구단들이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매년 사인회와 같은 팬서비스성 행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드팬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년부터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전보단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56]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 젊다.[57]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오재일 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58]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또한 왕조멤버들이 하나둘씩 퇴단하면서 팀 케미가 무너지고 성적이 바닥을 찍어서 라팍 시대에선 매진을 보기 드물어졌다.[59]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젊은 팬들이나 여성팬들은 팬 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 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60]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에서 지원은 해주지만 자생을 촉구하는 것도 있고, 야구 팬덤에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고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
하지만 2021년에 6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7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호성적을 기록하자 기존 팬층에 왕조시절 구단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올드 팬들까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로 찾는 것을 보면 관중수입 증대는 곧 성적이 답이라는걸 입증하고 말았다.
2022년에 와서는 2021년의 호성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심각한 부진은 물론이고 경기력도 굉장히 저질스러워지면서 삼성 팬들마저 삼성야구에 크게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팬들이 많아졌다.[61] 부진해진 성적과는 별개로 22시즌 관중 순위 3위를 기록하였고,[62] 홈구장 직관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성적에 관중수가 어느정도 비례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약간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 응원 문화를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아진 영향이 없지는 않은 듯.
2022년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올드팬들과 라이트팬으로 나뉜다. 성적이 더 나빠지기 시작한 2023년부터는 이들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성적을 중시하는 올드 팬덤은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이며,[63] 홍준학 단장을 비롯한 구단 프런트 모두를 극도로 혐오하고 비난하는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팬들도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라이트 팬덤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야구를 즐기면서 보는 팬덤이다. 야구장을 가는 목적도 이기는 경기를 보는 것 보다는 그 현장의 분위기를 즐길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들은 특정 선수 개인 팬덤의 경향이 강하거나 비판의식 없이 경기를 보는 경향이 강해서 골수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64] 홍준학 단장의 마케팅 성공[65]으로 KBO 역사를 통틀어 장기적으로 암흑기를 겪는 구단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성 팬덤보다는 라이트 팬덤이 우세한 구단이 되었다. 물론 서로의 스타일 차이를 인정하며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공존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라치기를 조장하던 홍준학 단장이 퇴진하고 이종열이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리빌딩이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팬덤 분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신구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등 호성적을 기록하게 되면서 홍준학 체제에서의 올드 팬덤과 뉴비 팬덤의 갈등은 사실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덤으로 올드 팬덤, 뉴비 팬덤이 합친 관중 화력은 엄청났으며, 총 관중 수는 무려 134만명에 달했다. 시즌 종료 이후에도 올드 팬덤, 뉴비 팬덤 할 것 없이 모든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 등을 칭찬하는 등 훈훈한 한 해였다. 역시 모든 문제의 해답은 성적 상승임을 또 한 번 증명한 해였다.
8.5. 유명 라이온즈 팬
- 강진주: 트위치 스트리머. 종종 라이온즈파크에서 발견된다.
- 고명환★: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
- 구본길★: 대구 출신. 노는 브로 1화에서 밝혔다. 202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대구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 구본찬★: 경상북도 경주시 출신. 넥센 히어로즈 의 시구 행사 겸 고척 스카이돔에서 있었던 소음 적응 훈련 겸 시연 행사에 참석했을 때 삼성 라이온즈 중심 타자였던 채태인에게 싸인까지 받아가기도 했다.
- 권민지★: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대구광역시 출신이기도 하고, 같은 팀 유서연이 워낙 야구를 좋아해서 같이 삼성 라이온즈 야구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다고 한다.
- 김강우: 어린 시절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까지도 삼성을 응원하고 있다. 2010년 플레이오프, 2024년 플레이오프에서 시구를 했다.
- 김경애★: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선수이자 김영미 선수의 동생. 이승엽의 팬이라고 한다.
- 김구라: 인천광역시 출신임에도 자신은 SK 와이번스의 팬이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아들인 MC그리는 야구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인지 딱히 언급이 없는 듯.
- 김대성(코미디언)★: 대구 출신이며 삼성의 골수팬이라고 한다. 안지만과 경운중 동창.
- 김도영(성우)★: 성우계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삼성팬이다. 선수는 구자욱을 좋아한다.
-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고용노동부 장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출신으로 2012년에 현직 경기도지사 신분으로 대놓고 잠실구장에서 삼성팬 인증을 했다.
- 김민경(코미디언)★: 대구 출신.
- 김부겸★: 제47대 국무총리, 前 수성구 갑 국회의원.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삼빠.
- 김선영(컬링)★: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선수.[66]
- 김성균★: 대구 출신.
- 김신영★: 대구 출신. 구자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는 듯. 본인의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꿈이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 나가서 시구를 하는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다시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면 좋겠다. 옛 영광을 다시 화이팅!!"이라고 말했다.
- 김영미★: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위의 김은정과 함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
- 김원준: 진갑용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그를 스타로 발굴한 곳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기획이었다.
- 김은정(컬링)★: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에이스. 김상수의 열렬한 팬이다.[67]
- 김인섭(레슬링)★: 대구광역시 출신 前 레슬링 선수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들 김재상이 202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참고로 김재상도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구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고, 삼성 라이온즈 1기 어린이 회원이었다.
- 김인태★: 대구광역시 출신. 어렸을 때 이승엽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삼성 라이온즈 리틀야구단 소속이기도 했다.
- 김제동★: 경상북도 영천시 출신. 1990년대 중반부터 삼성 라이온즈 장내 아나운서으로 활동하며 이름값을 축적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 장내 아나운서 시절 가장 친해진 삼성 선수가 무려 이승엽.[68]
- 김초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선수. 팀 내 유일한 비 의성군 출신이기도 하다. 구자욱의 팬.
- 김현철(가수): 앞서 언급한 김원준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오랜 열혈 팬. 이 사람도 진갑용과 친분이 두텁다.
- 김형동★: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 제 21대·22대 안동시·예천군 국회의원. 평소 야구에 관심이 있고 여가 시간마다 즐겨 보는지 구단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해 놓았다.
- 도경동★: 경상북도 및 대구광역시 출신.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금메달 획득 이후 팀원인 오상욱과 박상원이 본인들이 고향인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의 시구, 시타를 했을 때, 도경동은 원태인의 이름이 적힌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따라갔다. 출처
- 러끼★: 트위치 스트리머. 대구 출신. 오승환의 팬이라고 한다.
- 릴카: 치지직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방송인. 2024년 들어 10개 구단 경기를 직관한 후 7월 29일 최종적으로 삼팬이 되었음을 밝혔다.
- 마젠타(QWER)★: QWER 베이시스트, 트위치 스트리머.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
- 미키광수★: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 양준혁, 이승엽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 민효린★: 대구 출신. 야구를 별로 안좋아했으나 시구를 경험한 이후 고향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 박소진★: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출신. 과거 맥심 인터뷰에서 "본인에게 삼성 라이온즈는 어떤 존재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향수(鄕愁)"라고 답했다.
- 박지훈(1976)★: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변호사. KBS N SPORTS의 야구 토크쇼 《합의판정》에 출연하고 있다. 야구 비전문가이지만 삼성팬이라는 것도 밝히며 공개적으로 삼성을 응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박재정(배우)★: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출신. 전 삼성 선수였던 배영수와 경북고등학교 1년 선후배로 알려져 있다.
- 박찬우(축구해설가): 축구해설위원이자 자칭 인테르 전문가. 이스타티비에 출연중이며 본인은 서울태생이지만 아버지가 대구 출신이라 자연스레 삼성을 응원하게 되었다고.
- 박철우(배구)★: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 경북사대부중고교 출신이며 본리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기도 했다고.[69]
- 반효진★: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 출신. 2024년 9월 25일 라이온즈파크에서 시구를 계기로 삼성을 더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 보나★: 대구 출신. 2017년 7월 2일 SBS 인기가요 무대에서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 배말랭★: 대구 출신. 배말랭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
- 서인국: 울산광역시 출신. 야구장에서 종종 포착된다.
- 성시경: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코너 "The 만지다"에서 인증했다. 아버지가 삼성그룹 사원 출신이라 그런 듯.
- 센님★: 경상북도 군위군[70] 출신, 2021년부터 대구대학교와 삼성 라이온즈의 콜라보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대구대학교 입시 박람회가 열렸으며, 그당시 홍보대사였던 센님이 박람회에 참가했고, 박람회가 끝나고 단체 야구 관람을 했는데 이후로 팬이 되었으며, 최애 선수는 원태인이라고 한다.
- 손민수(코미디언)★: 포항시 출신.
- 손예진★: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출신. 종종 야구를 보러 다닌다고 하며,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 손태영★: 대구광역시 출신.
- 송건희: 인천광역시 출신임에도 부친의 영향으로 삼성 라이온즈 팬이 되었다. 2024년 6월 22일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 전구서 시구를 할 예정이었으나 우천취소가 되었다. 이후 8월 25일에 재초청을 받아 시구를 하게 되었다.
- 수민(STAYC)★: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 걸그룹 STAYC 멤버.
- 슈가(방탄소년단)★: 대구광역시 출신이며 방탄소년단의 멤버이다. 트위터 등에 올라오는 작업실 사진에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 본인의 트위터에 유니폼을 입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화양연화 pt.2의 수록곡 중 'Ma City'라는 노래에서 '수혈 받기엔 좀 힘들어 몸 속의 파란 피' 라는 가사를 썼다.
- 아오니 AONI★: 대구광역시 출신이며 유튜브에 직관 브이로그가 올라오기도 했고 영상에 가끔 야구를 시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 안동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삼성팬이라고 밝혔다.
- 안상미★: 인스타그램에 삼성 라이온즈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고 아들이 이승엽 올드 유니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아들의 이름이 이승엽이다.
- 안혜진: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김지찬을 응원하는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고 비시즌 동안 꽤 많은 경기를 직관했다.
- 앤덥★: 수험생 시절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며 버텼다고 한다. 쇼미더머니에서 양준혁 저지를 입고 나온 적이 있다.
- 에스쿱스★: 아이돌그룹 세븐틴의 멤버. 대구 출신으로, 2024년 홍김동전 박인석 PD의 찐팬구역에서 삼성 라이온즈 게스트로 출연했다. 어릴적 삼성의 열렬한 팬이셨던 아버지 옆에서 삼성의 경기를 보고 자랐는데, 2024년에 야구를 보기 시작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입덕을 시작했다고 한다.
- 오언종: 청주총국 지역근무 시절 한화 이글스의 팬이 된 정지원처럼 대구총국에서 지역근무할 때 삼성 라이온즈를 좋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는 아내가 더 좋아하는데, 오언종 본인의 인스타그램이 아닌 아내의 인스타그램에는 딸이 이학주의 응원가를 부르는 동영상이 게재되어 있다.
- 오윤아: 특히 김동엽의 팬인데, 2023년 5월 31일 문학 SSG전에서 김동엽의 홈런 때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러서 스포티비 생중계에 포착이 되었고, 이후 2023년 8월 27일 키움과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하였다.
- 우디(가수): 前 삼성 유격수 김상수의 동생. 2023년 형이 kt wiz로 이적한 후에도 본인은 여전히 삼성팬이다.[71]
- 원흠★: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
- 유승민★: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학창 시절 모교인 경북고 야구부가 대통령배 결승전에 진출하자 수업을 빼먹고 결승전을 보러 서울까지 갔을 정도로 야구를 상당히 좋아한다. 대구 출신이며 자서전 및 여러 미디어에서 삼성 팬이라고 인증하기도 했다. 딸 유담과 함께 야구관람을 하기도.[72] 2021년에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삼성 라이온즈와 비유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 유서연: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인스타 스토리에 삼성라이온즈 경기 시청 인증을 올리고 있다.
- 이기호: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임에도 삼성팬인 흔치 않은 경우다.
- 이동환★: 대구광역시 출신. 농구기자. 한화 이글스와 같이 응원하는 듯 하나 삼성의 호성적 때는 고향 팀의 푸른피가 흐르는 응원모습을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기도 한다.
- 이상훈(1982)★: 경상북도 영주시 출신. 이수지와 더불어 개그 콘서트의 청년가장.
- 이상미★: 경상북도 영천시 출신. 경북대학교 졸업. 2019년 5월 25일 라팍에서 애국가 제창을 했다. 영상
- 이쌍도★: 유튜버
- 이성재: 아버지가 삼성종합건설 사장이었던 이강태 씨다. 그 영향으로 삼성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 이수진(기자): 삼성 홈 유니폼을 입고 고척 스카이돔으로 직관간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있다.
- 이수진(치어리더)★: 현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블루팅커스 치어리더.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 2세대 치어리더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선수로는 영구결번 레전드인 이승엽의 팬으로 알려졌다.
- 이준석: 국민의힘 前 대표이자 현 22대 국회의원. 본인은 서울 출생이나 이준석의 양친이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라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된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대구 지역 공무원이셨던 조부의 영향이 컸다고 2013년에 말한 바 있다. SNS에 삼성 라이온즈에 관한 글을 종종 올릴 정도로 야구를 상당히 좋아하며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일정 중에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직관 인증샷을 올린 적도 있다.
- 이지카이트★: 대구광역시 출신.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 이찬원★: 내일은 미스터트롯 미. 울산 출신이지만 3살 때부터 대구에서 살았다. 데뷔 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구자욱의 팬이다. 2020년에 양준혁과 특별해설을 하기도 했는데 해설뿐만 아니라 아나운서까지 동시에 완벽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유명세를 등에 업고 해설하러 왔다고 비판하던 타팀팬들을 버로우 타게 만들었다. 원태인과도 친분이 있어서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 자주 댓글도 남기는 편. 2024년에도 여전한 팬심을 드러내는 중.[73]
- 이철민★: 대구 출신 배우.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출신.
- 이희준★: 대구 출신. SNL 코리아 시즌 5에서 삼성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모습이 나왔고 마침내 2024년 7월 20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시구를 했다.
- 임효준★: 대구 출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금메달리스트, 500m 동메달리스트. 이승엽을 존경한다고 인터뷰했다.[74]
- 장동건: 연예인 팀에서 투수를 맡고있는 상당한 야덕으로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빠져 SK 와이번스를 응원하기도 했었다.
- 장동우: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 멤버이며 경기도 구리시 출신이지만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2016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시구도 했다.
- 장동윤★
- 장문복★: 가장 삼성다운 한국시리즈 경기로 꼽히는 200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인 6차전을 보고 감명 깊어 팬이 되었다고 한다. 야구를 하는 것도 좋아하며, 주 포지션은 포수.
- 장진(영화 감독): 삼성 라이온즈의 오랜 팬으로, 2012년 한국시리즈 때는 직관 인증샷을 SNS에 남기기도 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성큰 강점기인1992년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 성적 부진에 항의하기 위해 구단 버스 위에 올라간 적도 있다고 한다. 이승엽이 은퇴한 후 방송된 SBS 스페셜 이승엽편에서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 재찬★: 아이돌 그룹 DKZ의 멤버. 어릴 때부터 삼성 팬이었다고 한다. 2024년 8월 28일 키움-삼성 경기를 가족과 직관하여 중계화면에 잠깐 잡힌 장면이 야구팬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 제노(NCT): 2024년 10월 14일 라이온즈 파크에서 플레이오프 2차전 시구를 하게 됐고, 꼭 한 번 서보고 싶었던 라이온즈 파크에서 시구를 하게 되어 설레고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지만 아쉽게도 우천으로 인해 시구는 취소되었다.
- 정웅인: 본인은 충청도 출신이지만 처가가 대구이다. OB와 삼성에 어린이 회원을 신청했는데 삼성만 붙어서 그 때부터 35년간 삼성을 응원해왔다고 한다.
- 조은희★: 전직 서초구청장이자 현재 서초구 갑 국회의원.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출신.
- 조정식(강사)★: 대구 출신. 메가스터디 영어 영역 강사.
-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 그의 지역구에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있다.[75]
- 천하람★: 개혁신당 소속 국회의원. 정치적 연고지는 전라남도 순천시임에도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야구 응원팀은 삼성 라이온즈라고 한다.
- 프로관전러 P.S
- 한수진(배구선수):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2022년 5월 15일 유서연과 선수들과 친하기로 유명한 유튜버 미니쿵저러쿵을 따라 라팍을 갔다가 삼성팬이 되었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 김지찬 응원가에 빠져있다고 한다.
- 홍준표★: 現 대구광역시장. 창녕군 출신으로 경상남도지사에 재직할 때는 NC 다이노스를 좋아하기도 했으나, 대구에서 유년 시절을 주로 보냈던 만큼 삼성 라이온즈 역시 옛날부터 좋아했다고 하며 대구광역시장이 되고 나서는 시장의 자격으로 삼성라이온즈파크에 시구도 자주 하러 갔다. 2024년 플레이오프 2차전 때 김대진 캐스터와 김용국 해설위원이 진행하는 TBC 보이는 라디오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여 구단의 레전드인 장효조 선수를 옛날부터 정말 좋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즘은 김지찬이 한 경기 한 경기마다 날쎄게 플레이 하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 황룡갑★: 상술한 배말랭과 더불어 대구광역시 출신.
- 황현(작곡가)★: 작곡회사 모노트리의 공동대표로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2021년 11월 9일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집관했다.
- 허형규★: 포항시 출신 배우로 선재 업고 튀어에 김영수 역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 시구자로써도 나가며 성덕이 되었다.
9. 응원
야구 인기가 절정이었고, 왕조로 불리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응원 문화로 리그를 주도하는 구단은 아니었다. 시민야구장 시절에는 응원가를 잘 따라하지 않는 아저씨팬들이 홈 내야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응원가의 퀄리티도 영 좋지 않아서 성적에 비해 응원 문화는 뒤떨어진 편이었다.그러다가 2013 시즌부터 김상헌 응원단장이 응원가를 재녹음하면서 응원가 퀄리티가 개선되기 시작했고, 2011~2014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응원석에도 젊은 팬들이 유입되어 응원가를 신나게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가 '응원을 잘 하는 팀'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2016년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이전과 2017년의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좁고 불편했던 시민야구장에서 쾌적하고 팬 친화적인 라팍으로 홈 구장이 옮겨지면서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게 되었고,[76] 응원석인 '블루존'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배정하면서 평일에도 뜨거운 응원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또한 응원가 저작권 사태로 기존의 응원가를 대부분 쓰지 못하게 되자, 김상헌 응원단장이 직접 음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허니크루라는 이름으로 선수와 팀 응원가를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게 삼성 팬은 물론 타 구단 팬들에게도 호평을 얻으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77] 그 결과 라팍은 블루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잔디석 관중들도 응원가를 다 따라 부르는 응원 맛집이 되었다.
2024년에는 드디어 저작권자와 합의되어 팀 응원가인 엘도라도가 부활했다.
9.1. 응원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응원단장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074ca1,#5ea2f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272c,#d3dade | <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최봉준 (1995~1998) | 이시훈 (1999~2000) | 김용일 (2001~2012) ☆ ★ ☆ ★ ★ ☆ ★ ★ | 김상헌 (2013~ ) ★ ★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 삼성 라이온즈 2025 시즌 응원단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응원단장 | 장내 아나운서 | 탑 아나운서 |
김상헌 | 김선미 | ||
치어리더 (블루팅커스) | |||
이수진★ 고정현 김미소 김하연 김유정 이소현 정유미 권가영 차효민 송예은 김다연 | }}}}}}}}} |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치어리더 문서 참고하십시오.
응원단의 이름은 '블루팅커스'이며, 놀레벤트 소속의 치어리더들로 구성되어있다. 대구 라팍 홈 경기에서는 6명, 원정 경기에서는 4명씩 나오며, 2020 시즌과 2021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 경기에서도 4명씩 나오기도 했다. 삼성 구단의 이벤트 대행사인 놀레벤트에 소속되어 있고, 대구경북 출신이 대다수이며,[78] 야구 외 종목의 응원 구단들도 TK 지역에 몰려있다.[79] 2023년에는 멤버 전원이 대경권 출신으로 채워졌다가 2024년 김유정 치어리더가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80] 놀레벤트 전용 인스타그램에 경기의 라인업이 올라온다.
2024시즌부터 KIA 타이거즈처럼 정규시즌 144경기 전경기 응원단 파견이 된다고 결정되었다고 한다.[81]
9.2. 응원가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응원가 문서 참고하십시오.10. 타 구단과의 관계
원년부터 존속한 팀이다 보니 웬만한 팀들과는 다 라이벌리가 어떻게든 엮여 있다. 하다못해 흥참동 신생 구단과도 2010년대 초반 SK, 2010년대 중반 넥센과 우승을 놓고 경쟁을 했고 2021년에는 kt와도 우승경쟁을 하는 등 대결구도가 붙은 적이 있다. 다만 의외로 잠실시리즈나 낙동강 시리즈만큼 확고한 라이벌전은 없으며, KIA 정도를 제외하면 삼성을 최고 라이벌 구단이라고 생각하는 구단은 거의 없는 편이다.과거에는 KIA, 롯데, 지금은 해체한 현대가 라이벌로 가장 자주 꼽혔고 현재는 기존 라이벌이었던 KIA, 롯데에다가 싸대기 라이벌인 두산이 추가되었으며, 2020년대부터는 kt 역시 손에 꼽히는 라이벌이 되었다.[82]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달빛시리즈[83], 같은 경상도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씨리즈를 시작으로[84] 과거 재계 라이벌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라이벌리, 전자업계 라이벌인 LG 트윈스,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 등이 대표적이며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로 싸대기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 00년대 말과 10년대 초에는 SK 와이번스와도 라이벌리가 있다.
kt 역시 라이벌 중 하나로 꼽힌다. 2020년대 들어 서서히 라이벌리가 되더니, 폭발해버린 2024시즌에는 오히려 롯데, 두산보다도 kt를 의식하는 삼성 팬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나 이강철 감독이 야구인생 내내 삼성과 악연으로 엮여있어서 삼성 팬덤 중 그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거기다 박병호 이적까지 겹치며 KIA 타이거즈에 못지않게 사이가 나빠졌다.
18년에는 삼성과 kt가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쭉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하위권 라이벌이란 인식이 있었으나, 2020년에는 kt가 가을야구가 유력해지고 삼성이 kt에 발목을 잡히면서 통산 전적에서 승패수가 비슷해졌다. 본격적으로 라이벌리가 불붙은 것은 2021년으로, 이 해 삼성과 kt가 선두경쟁을 하며 경쟁구도가 붙었다.[85] 이후 박병호가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며 점점 두 팀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보통 삼성 팬들은 KIA, 롯데를 주로 라이벌로 꼽으며 수도권 구단 중에선 두산, kt를 라이벌로 가장 많이 꼽는다. 또한 이들 중 KIA, kt 팬덤과의 관계는 각자 지역감정과 이강철 감독, 박병호 트레이드 문제로 좋지 않으며, 두산과의 관계는 원래 좋았으나 2023년 이승엽이 두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부터는 다소 좋지 않은 편. 롯데는 경상도 라이벌이긴 하지만 같은 경상도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사이가 다른 팀에 비해 그나마 좋은 편이다.[86] 반면 LG와의 관계는 안 좋은 편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 삼성과 LG 사이 선수 및 코칭스태프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2020년대 들어서는 원만해진 상황.
새롭게 형성될 라이벌리도 있다. 범 삼성가 계열 기업이자 신세계그룹으로 2021년 SK 와이번스의 후신인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이른바 '삼성가 시리즈'가 생기기 때문이다.[87] 다만 SSG 랜더스는 삼성과의 집안 간 라이벌리보다 전통의 업계 맞수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쟁을 더 우선으로 보는 듯하다.
NC 다이노스와도 같은 경상도를 연고지로 두고 있기 때문에 라이벌리가 존재한다. 다만 위에 언급된 사례들과 다르게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훈훈한 분위기가 주로 연출된다.창원 NC 파크에 가장 열정적으로 직관을 가는 원정 팬덤이 바로 삼성 팬덤이기도하다.[88][89]
10.1. KIA 타이거즈 - 달빛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 KIA 타이거즈 {{{+1 {{{#ffffff 'KIA Tigers'}}} }}} |
자세한 내용은 달빛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10.2. 롯데 자이언츠 - 클래식 씨리즈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롯데 자이언츠 {{{+1 {{{#ffffff 'Lotte Giants'}}}}}} |
자세한 내용은 클래식 씨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10.3. 두산 베어스 - 싸대기 매치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 두산 베어스 {{{+1 {{{#ffffff 'Doosan Bears'}}} }}} |
자세한 내용은 싸대기 매치 문서 참고하십시오.
10.4. 현대 유니콘스 - 재계 라이벌 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현대 유니콘스 {{{+1 {{{#fab93d 'Hyundai Unicorns'}}}}}} |
자세한 내용은 재계 라이벌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11. 역대 선수 및 인물
11.1. 영구 결번
<nopad> |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선수명 하단 일자: 영구 결번식 진행일) | ||
<rowcolor=#074ca1> 이만수 (2003. 06. 16.) | 양준혁 (2010. 09. 19.) | 이승엽 (2017. 10. 03.) |
<nopad> |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3인 좌측부터 이승엽, 이만수, 양준혁 |
영구 결번 후보로는 좌타 계보의 원조이자 시대를 상징하는 타자였던 장효조의 10번, 80년대 투수 트로이카의 일원이자 삼성 투수의 상징인 김시진의 29번이 있으며, 이밖에도 원클럽맨으로 꾸준하게 기록을 남기며 팀에 큰 기여를 한 박한이의 33번,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의 21번이 있다.
22번은 뛰어난 성적과 손꼽히는 인기로 80~90년대 삼성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선수인 역대 최고의 우타자 중 하나이자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헐크 이만수의 번호이며, 1997년 은퇴[90] 후 2003년에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영구 결번.
10번은 마찬가지로 리그 올타임급 타자인 양신 양준혁의 번호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적[91]을 남겼기에 영구 결번이 기정사실이었고, 실제로도 삼성 라이온즈의 두번째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더불어 10번은 양준혁 이전 팀 레전드인 장효조의 번호였는데, 양준혁 역시 본인의 등번호와 관련하여 10번은 본인에 앞서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하며 영구 결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고, 팬들 또한 양준혁과 장효조의 공동 영구 결번을 염원한다. 구단에서도 등번호 10번 장효조 포토볼을 내놓는 등 10번과 장효조를 끊지 않고 있다.
36번은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국민타자 이승엽의 번호로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 결번으로 발표되었으며, 2012년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 결번이 되었다.
11.1.1. No.22 이만수
자세한 내용은 이만수 문서 참고하십시오.<nopad> | |
삼성 라이온즈 No.22 | |
이만수 李萬洙 | Lee Man-Soo | |
프로입단 |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
역대 프로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2~1997 / 16시즌 / KBO) |
영구 결번 | 2003년 6월 16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1449 | 4310 | .296 | .388 | .519 | .907 | 1276 | 193 | 7 | 252 | 861 | 625 | 52 | 554 | 490 | 159(2위) | 58.06 |
11.1.2. No.10 양준혁
자세한 내용은 양준혁 문서 참고하십시오.<nopad> | |
삼성 라이온즈 No.10 | |
양준혁 梁埈赫 | Yang Joon-Hyuk | |
프로입단 | 1993년 1차 지명 |
역대 프로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3~1998, 2002~2010 / 18시즌 / KBO) 해태 타이거즈 (1999) LG 트윈스 (2000~2001) |
영구 결번 | 2010년 9월 19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2135 (4위) | 7332 (4위) | .316 | .421 (2위) | .529 | .950 | 2318 (2위) | 458 (5위) | 25 | 351 | 1389 (4위) | 1299 (2위) | 193 | 1278 (1위) | 910 | 165.0 (1위) | 91.06 (1위) |
11.1.3. No.36 이승엽
자세한 내용은 이승엽 문서 참고하십시오.<nopad> | |
삼성 라이온즈 No.36 | |
이승엽 李承燁 | Lee Seung-yuop | |
프로입단 | 1995년 연고구단 자유계약 |
역대 프로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5~2003, 2012~2017 / 15시즌 / KBO) |
치바 롯데 마린즈 (2004~2005)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0) 오릭스 버팔로즈 (2011 / 8시즌 / NPB) | |
영구 결번 | 2017년 10월 3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1906 | 7132 (5위) | .302 | .389 | .572 (1위) | .960 (1위) | 2156 | 464 (2위) | 28 | 467 (2위) | 1498 (2위) | 1355 (1위) | 57 | 953 | 1344 | 149.8 | 73.04 (4위) |
11.2. 삼성의 스타들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프랜차이즈 스타 문서 참고하십시오.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이다.
11.3. 역대 구단주
<rowcolor=#fff>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 이건희 | 1982~2001 | 삼성그룹 회장[92] |
대행 | 김정순 | 1995 | 당시 제일제당 사장 |
대행 | 안덕기 | 1996~1997 |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 라이온즈 4대 사장 |
대행 | 이종기[93] | 1998~1999 | 당시 삼성화재 부회장, 삼성 라이온즈 2대 사장 |
대행 | 이대원 | 2000 | 당시 삼성항공 부회장 |
대행 | 현명관 | 2001 | 당시 삼성물산 회장 |
2 | 2002 | ||
3 | 이수빈 | 2003~2017 | 삼성생명 회장,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장 |
4 | 임대기 | 2017~2020 | 전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겸직 |
5 | 원기찬 | 2020~2023 | 전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
6 | 유정근 | 2023~현재 |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
11.4. 역대 사장(대표이사)
1985년까지는 단장이었다. 대표이사의 직급은 부사장 ~ 사장급이다. 임대기부터는 사장과 구단주 겸직.<rowcolor=#fff>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 이수빈 | 1982~1983년 4월 26일 | 당시 제일제당 사장 |
2 | 이종기 | 1983년 4월 27일~1988 | 당시 중앙일보 사장 |
3 | 편송언 | 1989~1990 | 前 제일기획 대표이사 전무 |
4 | 안덕기 | 1991 | 前 삼성의료기기 사장 |
5 | 김흥민 | 1992~1994 | 前 삼성물산 전무 |
6 | 이광진 | 1995~1996 | 前 삼성중공업 총괄전무 |
7 | 전수신[94] | 1997~1999 | 前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
8 | 한행수 | 2000~2000년 7월 9일 | 前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일신상 이유로 사임 |
9 | 신필렬 | 2000년 7월 10일~2004 | 前 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95] |
10 | 김응용 | 2005~2010 | 감독에서 승진, 최초 야구인 출신 야구단 사장 |
11 | 김인 | 2011~2015 | 前 삼성SDS 사장 |
12 | 김동환 | 2016~2017 | 前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부사장 |
13 | 임대기 | 2018~2020 | 前 제일기획 대표이사[96] |
14 | 원기찬 | 2020~2023 | 前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
15 | 유정근 | 2023~현재 | 제일기획 사장 |
11.5. 역대 단장
1983년까지는 이사와 부단장이 혼용됐고, 1985년까지는 부단장이었다. 단장의 직급은 상무보 ~ 상무 정도이다.<rowcolor=#fff>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 김동영 | 1982 | 前 동방생명 관리이사 |
2 | 김삼용[97] | 1983~1983년 4월 27일 | 한국실업야구 선수(투수) 출신[98] |
3 | 노진호 | 1983년 4월 27일~1983년 11월 | 前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겸 체육부장[99] |
4 | 이달종 | 1984~1985 | 前 중앙일보 사업국장 |
5 | 윤경헌 | 1986~1989 | 前 중앙일보 문화센터국장 |
6 | 조복래 | 1990~1992 | 사무국장에서 승진 |
7 | 지용하 | 1993~1994 | 前 중앙개발 이사 |
8 | 김대훤[100] | 1995~1996 | 前 삼성물산 해외업무실 팀장 |
9 | 김종만[101] | 1997~1999 | 스카우트팀장에서 승진 |
10 | 김재하 | 2000~2010 | 前 제일모직 이사[102] |
11 | 송삼봉 | 2011~2014. 8. 16 | 부단장[103]에서 승진, 건강상 이유로 사임 |
12 | 안현호 | 2014. 8. 16~2016 | 前 삼성스포츠 부장, 최초 사원 출신 단장[104] |
13 | 홍준학 | 2017~2023 | 구단지원팀장에서 승진 |
14 | 이종열 | 2024~ | 구단 역사상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 출신[105] 단장 |
삼성 라이온즈는 전통적으로 구단주의 권한이 단장 선임 권한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상당히 약한 편이며, 단장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하는 운영을 해왔다. 대체로 삼성의 단장은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그의 구단주+GM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팀의 운영을 논하면 보통 단장의 업무를 의미한다.
이종열 이전의 단장들은 거의 전원이 그룹 내 내부승진인사 출신이었으며, 비야구인 출신 전문 프런트였다. 거기다 대부분이 대구광역시 출신인 것은 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안현호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단장들은 논란은 있을지언정 평가가 긍정적인 편이다.
전반적으로 삼성스포츠가 운영이 좋지 않아지기 시작한 시기인 안현호 부임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안현호 이전 단장들은 대다수 평가가 좋았다. 가장 평가가 좋았던 단장은 김재하인데, 이 시기 삼성은 꾸준히 성적이 좋았으며, 지나친 FA 투자로 돈성이라는 오명을 샀으나 이 기간동안 성적 뿐만 아니라 육성까지 신경을 쓰며 2010년대 초 삼성 왕조 시기의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안현호 부임 이후인 안현호와 홍준학은 매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106] 안현호는 단장 관련 업무에서 아무런 장점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으며 홍준학 역시 약팀에 오랫동안 재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빌딩을 경시하며 5년 이상을 무의미하게 날려먹었다. 이 기간동안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이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강팀을 장기적 약팀으로 전락시킨 데에는 이 둘의 무능함이 제일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이 둘은 삼성 라이온즈 팬덤에게 재평가 불가의 금지어 취급을 받고 있다.[107][108]
홍준학의 자진사퇴 이후 새로운 단장으로는 LG 트윈스 선수 출신인 이종열이 부임하였다. 구단 역대 최초의 외부 수혈 단장이자 역대 최초의 KBO 리그 선수 출신 단장으로 부임 직후 팀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어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했던 전임 단장들인 안현호와 홍준학과는 달리 팬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11.6.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74ca1> |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ecd00> 1대 | 2대 | 3대 | 4대 | 5대 |
<rowcolor=#fff> 6대 | 7대 | 8대 | 8대 | 9대 | |
감독대행 조창수 (1997) | |||||
<rowcolor=#fff> 10대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
<rowcolor=#fff> 15대 | 15대 | 16대 | |||
감독대행 박진만 (2022)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0 | |
박진만 朴鎭萬 / Park Jin-Man (2022.10.18.~) |
<rowcolor=#fff>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 서영무 | 1982~1983 | 69승 1무 40패 (0.633) |
2 | 이충남[109] | 1983 | 31승 3무 36패 (0.462) |
3 | 김영덕 | 1984~1986 | 202승 2무 114패 (0.643) |
4 | 박영길 | 1987~1988 | 120승 2무 94패 (0.560) |
5 | 정동진 | 1989~1990 | 123승 7무 110패 (0.527) |
6 | 김성근 | 1991~1992 | 137승 3무 112패 (0.550) |
7 | 우용득 | 1993~1995 | 193승 13무 172패 (0.528) |
8 | 백인천 | 1996~1997 | 120승 10무 120패[110](0.500) |
9 | 서정환 | 1998~1999 | 139승 4무 115패 (0.547) |
10 | 김용희 | 2000 | 69승 5무 59패[111](0.524) |
11 | 김응용 | 2001~2004 | 312승 16무 204패 (0.604) |
12 | 선동열 | 2005~2010 | 454승 13무 380패 (0.544) |
13 | 류중일 | 2011~2016 | 465승 12무 333패 (0.583) |
14 | 김한수 | 2017~2019 | 183승 10무 239패 (0.434) |
15 | 허삼영 | 2020~2022 | 178승 16무 188패 (0.486) |
16 | 박진만 | 2023~ | 139승 3무 146패 (0.488) |
삼성 라이온즈가 99688 이전까지는 꾸준히 강호로 평가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송삼봉 시대까지 나름 괜찮았던 단장들의 평가와 달리 감독들의 평가는 예로부터 과반수가 좋지 않은 편이다. 김성근 이후의 감독들은 혹평받은 인물들이 호평받은 인물들보다 많다.[112] 물론 야구감독 자체가 좋은 소리 듣기 힘든 직업임은 사실이지만, 삼성은 독특하게도 성적을 매우 잘 내면서도 감독이 크게 혹평받고, 나아가 다른 팀 감독들에 비해서도 무능한데 그룹 지원빨, 프런트빨, 팀빨로 성적을 냈다는 소리를 들은 경우가 많다. 물론 삼성의 성적이 99688 이전까지는 좋았을 뿐더러 99688 이전까지는 그냥 강한 팀으로, 99688시기부터는 못하지만 조용히 못해서 딱히 관심은 없는 팀으로 여겨졌기에 삼성 외 타 구단 팬덤은 삼성 감독이 혹평받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통 팀 역대 최고의 감독을 꼽으라면 김응용과 류중일이 제일 많이 꼽힌다. 삼성 최전성기인 2002-2014시즌을 상징하는 감독일 뿐더러[113] 우승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아예 거의 모든 삼성 팬덤이 최고의 감독을 꼽으라 하면 무조건 이 둘부터 거론하며 다른 감독들은 아예 끼지도 못하는 수준. 이 둘 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김응용은 해태 시절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많은 적이 많기에 왕조 시절을 빛낸 류중일이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백인천과 김영덕이 삼성 감독들 중에서 평가가 좋은 편이고, 나머지 감독들의 평가는 나쁘다.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태업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백인천이 삼성에서는 제대로 감독직을 수행했었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승엽을 발견한 것[114]과 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단 한시즌만에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115]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의 선두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뜬금없이 제 3자인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KBO에 공식적으로 조사의뢰를 넣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였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116]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117] 더티 플레이나 빈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118]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었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행진이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119]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120]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정규시즌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때 KIA 팬들은 선동열이 삼성을 두 번이나 우승시켜 줬는데도 싫어한다고 삼성 팬을 깠다. 그러나 KIA 팬들 역시 처음에는 해태 프랜차이즈 선수출신 선동열 감독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지만[121] 우승은 커녕 몇년간 성적이 바닥을 보이자 이제는 KIA 팬들도 대부분 선동열을 깐다.[122] 그리고 하위권을 맴돌던 KIA 타이거즈 성적으로 인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게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23]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동안 감독 순혈주의를 실천하지 않던 삼성은 류중일 이후 감독은 대체로 순혈주의에 걸맞게 선임하는 분위기이다.[124]
한편 홍준학 단장 체제에서 부임한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 감독은 모두 평가가 좋지 않다.[125] 이 시기는 성적도 좋지 않고 리빌딩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 다만, 이 세 감독 위에서 팀을 운영하던 홍준학이 리빌딩을 극단적으로 경시하는 성향임을 참작해야한다는 여론도 있으나, 저 세 감독이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각각 두산, kt, KIA 상대로 극도로 약한 면모를 보여주었다.[126]
11.7. 역대 주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74ca1>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ecd00> 1982~1983 | 1984 | 1985 | 1986~1988 | 1989~1990 |
배대웅 ☆ | 천보성 ☆ | 함학수 ★ | 장효조 ☆ ☆ | 박승호 ☆ | |
<rowcolor=#FFF> 1991~1992 | 1993~1994 | 1995~1996 | 1997 | 1998 | |
김용국 | 강기웅 ☆ | 이종두 | 류중일 | 양준혁 | |
<rowcolor=#FFF> 1999 | 2000 | 2001 | 2002~2003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7ab 75%, #074ca1 25%);" 2004~2008 | |
류중일 | 김기태 | 김태균 ☆ | 김한수 ★ | 진갑용 ☆ ★ ★ | |
<rowcolor=#FFF> 2009 | 2010 | 2011~2012 | 2013~2014 | 2015 | |
박진만 | 강봉규 ☆ | 진갑용 ★ ★ | 최형우 ★ ★ | 박석민 ☆ | |
<rowcolor=#FFF> 2016 | 2017 | 2018 | 2019 | 2020~2021 | |
박한이 | 김상수 | 강민호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오재일 → 구자욱 강민호 (임시 주장) | 구자욱 류지혁 (임시 주장) |
11.8. 역대 선수 명단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역대 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11.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rowcolor=#fff> 연도 | 이름 | 상대 |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982 | 황규봉 | 對MBC |
1983 | 이선희 | 對해태 |
1984 | 김시진 | 對삼미 |
1985 | 김일융 | 對해태 |
1986 | 김시진 | 對청보 |
1987 | 김훈기 | 對해태 |
1988 | 전용권 | 對해태 |
1989 | 진동한 | 對롯데 |
1990 | 김상엽 | 對태평양 |
1991 | 김성길 | 對롯데 |
1992 | 김상엽 | 對롯데 |
1993 | 김상엽 | 對쌍방울 |
1994 | 김태한 | 對롯데 |
1995 | 김태한 | 對LG |
1996 | 김태한 | 對OB |
1997 | 전병호 | 對현대 |
1998 | 조계현 | 對롯데 |
1999 | 김상진 | 對한화 |
2000 | 노장진 | 對SK |
2001 | 임창용 | 對한화 |
2002 | 임창용 | 對LG |
2003 | 엘비라 | 對두산 |
2004 | 호지스 | 對롯데 |
2005 | 배영수 | 對롯데 |
2006 | 배영수 | 對롯데 |
2007 | 브라운 | 對두산 |
2008 | 배영수 | 對KIA |
2009 | 윤성환 | 對LG |
2010 | 윤성환 | 對LG |
2011 | 차우찬 | 對KIA |
2012 | 차우찬 | 對LG |
2013 | 배영수 | 對두산 |
2014 | 윤성환 | 對KIA |
2015 | 피가로 | 對SK |
2016 | 차우찬 | 對두산 |
2017 | 페트릭 | 對KIA |
2018 | 윤성환 | 對두산 |
2019 | 맥과이어 | 對NC |
2020 | 백정현 | 對NC |
2021 | 뷰캐넌 | 對키움 |
2022 | 뷰캐넌 | 對KT |
2023 | 뷰캐넌 | 對NC |
2024 | 코너 | 對KT |
11.10. 역대 선수단 및 등번호
11.11. 은퇴식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74ca1>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은퇴식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color=#000> 순번 | <colcolor=#000> 이름 | <colcolor=#000> 활약 기간 | <colcolor=#000> 날짜 | <colcolor=#000> 비고 |
1호 | 류중일 | 1987년 ~ 1999년 | 2000년 4월 5일 | 구단 최초 은퇴식 | |
2호 | 김현욱 | 1999년 ~ 2005년 | 2005년 6월 2일 | ||
3호 | 김한수 | 1994년 ~ 2007년 | 2008년 3월 30일 | ||
4호 | 김재걸 | 1995년 ~ 2009년 | 2010년 4월 10일 | ||
5호 | 양준혁 | 1993년 ~ 1998년 2002년 ~ 2010년 | 2010년 9월 19일 | 영구 결번 구단 최초 은퇴 경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마지막 은퇴식 | |
6호 | 이승엽 | 1995년 ~ 2003년 2012년 ~ 2017년 | 2017년 10월 3일 | 영구 결번 은퇴 경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첫 은퇴식 | |
7호 | 권오준 | 1999년 ~ 2020년 | 2020년 10월 30일 | 은퇴 경기 |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년 구단 중 하나지만 은퇴식이 많은 편은 아니다. 최초의 은퇴식은 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원클럽맨인 류중일이며 가장 최근에 열린 은퇴식은 22년동안 삼성을 위해 헌신했던 권오준이다.
영구 결번 중 한 명인 이만수의 경우 영구 결번식은 커녕 은퇴식 조차 열리지 않았다.[127]
12. 역대 기록
12.1. 팀 성적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성적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포스트시즌 | 최종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삼성 라이온즈 | ||||||||
1982 | 2위/6팀[128] | KS 1-4(1무) 준우승(OB) | 준우승 | 80 | 54 | 0 | 26 | 0.675 |
1983 | 4위/6팀[129] | 진출 실패 | 4위 | 100 | 46 | 4 | 50 | 0.479 |
1984 | 2위/6팀[130] | KS 3-4 준우승(롯데) | 준우승 | 100 | 55 | 0 | 45 | 0.550 |
1985 | 1위/6팀[131] |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132] | 우승 | 110 | 77 | 1 | 32 | 0.706 |
1986 | 1위/7팀[133] | KS 1-4 준우승(해태)[134] | 준우승 | 108 | 70 | 1 | 37 | 0.654 |
1987 | 1위/7팀[135] | KS 0-4 준우승(해태)[136] | 준우승 | 108 | 64 | 0 | 44 | 0.593 |
1988 | 4위/7팀[137] | PO 0-3 탈락(빙그레) | 3위 | 108 | 56 | 2 | 50 | 0.528 |
1989 | 4위/7팀 | 준PO 1-2 탈락(태평양) | 4위 | 120 | 57 | 5 | 58 | 0.496 |
1990 | 4위/7팀 | KS 0-4 준우승(LG) | 준우승 | 120 | 66 | 2 | 52 | 0.558 |
1991 | 3위/8팀 | PO 1-3 탈락(빙그레) | 3위 | 126 | 70 | 1 | 55 | 0.560 |
1992 | 4위/8팀 | 준PO 0-2 탈락(롯데) | 4위 | 126 | 67 | 2 | 57 | 0.540 |
1993 | 2위/8팀 | KS 2-4(1무) 준우승(해태) | 준우승 | 126 | 73 | 5 | 48 | 0.599 |
1994 | 5위/8팀 | 진출 실패 | 5위 | 126 | 60 | 2 | 64 | 0.484 |
삼성 라이온즈 | ||||||||
1995 | 5위/8팀 | 진출 실패 | 5위 | 126 | 60 | 6 | 60 | 0.500 |
1996 | 6위/8팀 | 진출 실패 | 6위 | 126 | 54 | 5 | 67 | 0.448 |
1997 | 4위/8팀 | PO 2-3 탈락(LG) | 4위 | 126 | 66 | 7 | 53 | 0.552 |
1998 | 2위/8팀 | PO 2-3 탈락(LG) | 3위 | 126 | 66 | 2 | 58 | 0.532 |
1999 | 매직 1위/4팀 | PO 3-4 탈락(롯데) | 매직 2위 | 132 | 73 | 2 | 57 | 0.562 |
2000 | 드림 3위/4팀 | PO 0-4 탈락(현대) | 드림 3위 | 133 | 69 | 5 | 59 | 0.539 |
2001 | 1위/8팀 | KS 2-4 준우승(두산) | 준우승 | 133 | 81 | 0 | 52 | 0.609 |
2002 | 1위/8팀 | KS 4-2 우승(LG) | 우승 | 133 | 82 | 4 | 47 | 0.636 |
2003 | 3위/8팀 | 준PO 0-2 탈락(SK) | 4위 | 133 | 76 | 4 | 53 | 0.589 |
2004 | 2위/8팀 | KS 2-4(3무) 준우승(현대) | 준우승 | 133 | 73 | 8 | 52 | 0.584 |
2005 | 1위/8팀 | KS 4-0 우승(두산) | 우승 | 126 | 74 | 4 | 48 | 0.607 |
2006 | 1위/8팀 | KS 4-1(1무) 우승(한화) | 우승 | 126 | 73 | 3 | 50 | 0.593 |
2007 | 4위/8팀 | 준PO 1-2 탈락(한화) | 4위 | 126 | 62 | 4 | 60 | 0.508 |
2008 | 4위/8팀 | PO 2-4 탈락(두산) | 4위 | 126 | 65 | 0 | 61 | 0.516 |
2009 | 5위/8팀 | 진출 실패 | 5위 | 133 | 64 | 0 | 69 | 0.481 |
2010 | 2위/8팀 | KS 0-4 준우승(SK) | 준우승 | 133 | 79 | 2 | 52 | 0.594 |
2011 | 1위/8팀 | KS 4-1 우승(SK) | 우승 | 133 | 79 | 4 | 50 | 0.612 |
2012 | 1위/8팀 | KS 4-2 우승(SK) | 우승 | 133 | 80 | 2 | 51 | 0.611 |
2013 | 1위/9팀 | KS 4-3 우승(두산) | 우승 | 128 | 75 | 2 | 51 | 0.595 |
2014 | 1위/9팀 | KS 4-2 우승(넥센) | 우승 | 128 | 78 | 3 | 47 | 0.624 |
2015 | 1위/10팀 | KS 1-4 준우승(두산) | 준우승 | 144 | 88 | 0 | 56 | 0.611 |
2016 | 9위/10팀 | 진출 실패 | 9위 | 144 | 65 | 1 | 78 | 0.455 |
2017 | 9위/10팀 | 진출 실패 | 9위 | 144 | 55 | 5 | 84 | 0.396 |
2018 | 6위/10팀 | 진출 실패 | 6위 | 144 | 68 | 4 | 72 | 0.486 |
2019 | 8위/10팀 | 진출 실패 | 8위 | 144 | 60 | 1 | 83 | 0.420 |
2020 | 8위/10팀 | 진출 실패 | 8위 | 144 | 64 | 5 | 75 | 0.460 |
2021 | 2위/10팀 | PO 0-2 탈락(두산) | 3위 | 144 | 76 | 9 | 59 | 0.563 |
2022 | 7위/10팀 | 진출 실패 | 7위 | 144 | 66 | 2 | 76 | 0.465 |
2023 | 8위/10팀 | 진출 실패 | 8위 | 144 | 61 | 1 | 82 | 0.427 |
2024 | 2위/10팀 | KS 1-4 준우승(KIA) | 준우승 | 144 | 78 | 2 | 64 | 0.549 |
KBO 통산 43시즌 | V8 | 5491 | 2925 | 122 | 2444 | 0.545 |
KBO 리그 구단들 중 통산 성적이 가장 우수하다.[138][139] 최근 10년을 대단히 부진하게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해놓은 것이 많아서 여전히 통산 성적이 리그 최고 수준이다. 21세기 단위로만 잘라도 두산, SSG 다음가는 3위로, 삼성이 2016년 이후 극도의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140] 암흑기 이전까지의 삼성이 얼마나 강했던 팀이었는지 알 수 있다.
원년 구단이지만 KBO 리그 10개 구단 중에서도, 삼성 프로 스포츠팀 중에서도 유일하게 페넌트 레이스 최하위 기록이 없다.[141][142] 삼성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있는 역대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암흑기 도입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꼴찌로 시즌을 마감한 적이 없다. 2023 시즌 6월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창단 첫 꼴찌의 불명예가 잠정적으로 확정된 상황인듯 했으나 7월 이후 좋은 승률을 거두고 키움이 이정후의 시즌아웃 부상 이후 사실상 리빌딩 및 탱킹 체제에 들어가면서 기어코 꼴찌를 면했다. 본격적으로 암흑기에 들어간 2016년 이후에도 최하위는 안했다. 2016과 2017년은 10위 중 9위를 기록해 버텨내었다. 삼성이 정규시즌에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를 만나 번번이 물을 먹었지만 2002-2014년에는 13시즌 동안 무려 한국시리즈 우승을 7번이나 해내는 등, 김응용 시기 해태 타이거즈와 더불어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강팀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왕조 시절인 2011-2014년에는 유일하게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룬 구단이다. KIA 타이거즈가 해태 시절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적은 있지만, 이 중에 통합 우승은 1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페넌트 레이스 연속 우승은 5연속이었으나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무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고하십시오.
통산 승리 1위[143],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144],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타율 3, 4, 5위(2015년 0.302, 2014년 0.301, 1987년 0.300), 통산 가을야구 진출 횟수 1위(30회)[145] 등 '삼성의 기록은 삼성만이 경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46]
통산 승리 1위[147],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148],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타율 3, 4, 5위(2015년 0.302, 2014년 0.301, 1987년 0.300), 통산 가을야구 진출 횟수 1위(30회)[149] 등 '삼성의 기록은 삼성만이 경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50]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가 본 팀이며[151] KIA 타이거즈와 함께 KBO의 전통적인 강호로 손꼽히는 팀이다. 다만 두 팀의 강력함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타이거즈는 전성기 때의 무지막지한 강함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등 강약의 차이가 극명한 기복이 심하고 악명높은 서정환/정재공 시기 이후부터는 원기옥을 모아서 가끔 우승하는 구단으로 여겨진다면, 라이온즈는 556, 99688378 등 일부 암흑기를 제외하면 우승 아니면 중상위권인 등 중위권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변함없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꾸준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0년대 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라이온즈의 양준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16년부터는 KIA는 중위권-중하위권으로 여겨졌으나 삼성은 여러 요소가 겹쳐지며 크게 몰락하여 하위권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서 두 팀 모두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는데, KIA는 대구 출신 인사들인 이범호, 손승락을 주축으로 리빌딩을 진출하여 김종국-장정석 듀오의 억제기 행각에도 불구하고 우승후보급 전력이 되었고 삼성은 육성에서 계속 삽만 푸다가 단장을 바꾸고 리빌딩 전략으로 수정하며 향후 몇 년 안에 반등을 꾀하고 있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옮기기 이전의 삼성은 과장 좀 보태면 알렉스 퍼거슨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같은 취급을 받았으며 이 시절 소위 말하는 올드 삼성 팬덤은 우승해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나쁘지 않은 시즌이었다'라는 평을 내렸다.[152] 거기다 4위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욕을 먹었고,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는 순간 역사상 최악의 시즌 중 하나 취급을 받으며 온갖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삼성이 5위 이하로 내려간 시즌은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된 2016년 이전까지 34시즌 동안 팬들에게 그나마 암흑기로 불렸던 1994년, 1995년, 1996년과, 5위를 기록한 2009년으로 총 4번이 전부다. 전·후기 리그로 치러졌던 때에도 포스트시즌 탈락은 1983년 단 한 번 뿐. 즉, 1982~2015년까지 삼성이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건 5번이 끝이다. 그러나 여러 문제점이 겹치며 99688378이 시작되고, 아예 홍준학 부임 7년동안에만 그동안 이전까지의 가을야구 진출 실패 기록인 6회를 채우는 등 몰락했다.
1970년대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198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중반기에 잠시 침체기가 있었으나, 후반기부터 부활하여 다시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통산 최다 준우승팀으로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에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 비해 큰 경기에 약한 팀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준우승 10회로 최다 준우승 팀이다.[153]
통산 우승 횟수는 1985년 전·후기 리그 시절의 통합 우승 1회 + 한국시리즈 우승 7회로 총 8회.[154] 일부[155]에서는 1985년 우승을 계산에서 빼기도 하지만, 1985년 삼성이 전·후기 모두 가장 잘해서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며, 사실 KBO의 인증으로 봐도 무엇으로 봐도 엄연한 우승이다.[156]
2002년 한국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회자되는데,[157]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였다. 1, 3, 4차전을 이기고 2, 5차전을 내준 상태에서 홈구장인 대구에 돌아와서 6차전을 치렀는데, 9회말까지 9-6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대로 7차전까지 갈 가능성이 컸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헛스윙만 하던 이승엽이 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고, 다음 타자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쳐서 결국 삼성은 지긋지긋한 준우승의 한을 풀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였다.
다만 이런 영광스러운 날이 있기까지에는 일부 팬들이 '콩성'이라고 부르듯 많은 곡절이 있었다. 준우승만 10회로 이 부문 1위인 비운의 팀. 2002년까지는 삼성도 콩라인에 있긴 있었다.[158]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도 자주 진출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악몽도 여러 차례 겪었다(특히 역전패.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한 대역전패는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두산 베어스에 당한 2001년 한국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양준혁이 삼성에 없고 LG 트윈스에 있었다.). 또한 원년에 한국 야구를 먹여 살린 두 개의 만루 홈런의 주인공이 된 허무한 팀.[159]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운 팀으로,[160]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때는 1994~1996년, 2009년과 2016~18년 단 일곱번. 이는 1990년 플레이오프가 도입된 이래 최소 기록이다. 사실 2000년에 드림 리그 3위로 떨어지며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행진이 3연속에서 멈출 뻔 하다가 '드림 리그는 1부, 매직 리그는 2부' 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성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통에 매직 리그 1위였던 LG 트윈스보다도 승률이 더 높은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자 억지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2000년 포스트시즌에 5팀이나 진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61]
참고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록. 2위 기록 역시 삼성의 1984~1993년의 10년(1985년 통합 우승 포함). 3위까지 와서야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의 1986~1994년의 9년의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스스로 6년 연속 진출에 성공하면서(2010년~2015년) 다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니 이제 기록 경신까지 7년 남았으나 2016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6년으로 멈췄다.[162]
2015년 정규시즌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관련 또 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바로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이다. 이전까지의 최다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 기록은 SK 와이번스의 6연속(2007년~2012년)으로, 2015년 현재 삼성 라이온즈가 역시 6연속(2010년~2015년)으로 타이를 이루고 있다. 이전까지는 5연속 진출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공동 1위에 올라섰는데, 두산 베어스가 2021년에 삼성을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7연속(2015년~2021년)으로 삼성의 기록은 2위가 되었다. 4위는 해태 타이거즈의 1986년~1989년 4연속.
2011~2015년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사상 처음 페넌트 레이스 5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페넌트 레이스 연속 우승은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 2001~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3~2004년 현대 유니콘스, 2005~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7~2008년 SK 와이번스, 2018~2019년 두산 베어스가 2회 연속 우승 기록이 있는데 삼성이 처음으로 5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1989년에 기록한 4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그 기간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1회(1988년)만 달성하였으므로 페넌트 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록은 2013년에 삼성이 기록한 3연패가 유일했으며,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12.1.1. 암흑기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암흑기 문서 참고하십시오.전통의 강호 이미지가 강한 삼성에게도 부진하던 시기는 있었다.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3년간의 순위를 가리킨다. 삼성의 성적이 워낙 좋다보니 타 팀이 보기엔 그저 엄살로 보이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3년간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1996년 당시 기준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순위다. 그러나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고, 이후 2011년 한국시리즈부터 2014년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면서 삼성 왕조를 이룩했다.
1994년부터 삼성이 3년간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주된 원인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을 이끈 주전 멤버들의 노쇠화였다. 1993년 준우승 당시에도 김성래, 류중일, 이만수, 이종두 등 베터랑들 대다수가 30대를 훌쩍 넘긴 노장 축에 속했다. 삼성 입장에서는 분명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대구와 경북지역 아마야구의 침체로 인해 삼성에는 쓸만한 신예가 드물었다. 실제로 1991년 이후 삼성의 1차 지명선수 명단을 보면 이영재(1991년), 감병훈(1994년), 안윤호(1995년), 황성관(1997년), 정성열(1999년)등 1군에서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1996년부터 도입된 고졸 우선지명에도 김헌수, 김성훈, 권영철(1996년) 설재호, 황영구(1997년), 이준민(1998년), 이성훈(1999년) 등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히 마운드에는 쓸만한 선수가 아예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삼성은 미국으로 눈을 돌려 최용희, 최창양 등을 영입했지만 그마저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일설에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대단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이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 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스스로의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에서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고 시인했다. 다시 말해 본인의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업계 라이벌인 LG를 상대로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이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던 다섯 팀[163]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
여담으로 이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인 모 골프 전문 감독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이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해에 6위를 찍었다는 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은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급격한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차근차근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164]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그 외 일각에서는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9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고 2차 암흑기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선감독 재임 시절엔 일단 우승도 두 번 했고,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타팀 팬들 입장에서는 '저게 암흑기라고?'라고 기막혀하는 경우가 대부분. 물론 삼성 시절 선감독의 논란 많은 행적과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 좌절, 양준혁의 급작스러운 은퇴 등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일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감독 재임 시기가 2차 암흑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감독 재임기의 삼성은 우승은 두 번 했지만 관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던 추세였다. [165]
이후 2011년 류중일 감독 선임 이후에는 삼성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침체기에 접어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2015년 이후 고작 1년 후인 2016년과 2017년에 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낮은 최종 순위였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모기업 삼성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인해 구단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위에서 말했듯이 2016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성적도 못 내고, 재미도 없는 제대로 된 암흑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2016년 9위, 2017년 9위를 기록하고, 2018년 시즌 막판에는 혹시나 하는 3년만의 가을야구가 이루어져 순식간에 암흑기 탈출에 성공하나 했으나, 시즌 막판부터 지난해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가 치고 올라오며 5위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삼성은 기아에 밀려 6위라는 순위에 만족해야 했으며, 2019년, 2020년에도 8위에 그치면서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166]
강팀의 엄살로 보일 수 있는 이전까지의 3년짜리 암흑기와는 다르게 2010년대 후반기의 암흑기는 객관적으로도 명백히 하위권에 가라앉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좋든 나쁘든 구단 역사상 팀 분위기가 가장 크게 바뀐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왕조 시절의 멤버가 하나둘 떠나면서 신인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본의 아니게 팬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나마 이 시기의 위안거리가 있다면,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위험했던 낡은 구장을 벗어나 여러모로 쾌적한 새 구장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과 제대로 하위권으로 내려앉은 대가로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이는 2021년 암흑기에서 잠시 벗어나는 데에 알게 모르게 기반으로 작용해주었다.
12.1.2. 팀 전력
전력 순위가 중간 이상인 경우, 굵은 글씨삼성 라이온즈 역대 팀 전력 (스탯티즈 팀 WAR 기준) | ||||||||
연도 | 정규시즌 승률 | 정규시즌 순위 | 투수 전력 | 순위 | 타자 전력 | 순위 | ||
1982 | 0.675 | 통합 2/6 | 21.11 | 1/6 | 18.61 | 2/6 | ||
1983 | 0.479 | 통합 4/6 | 15.08 | 4/6 | 23.31 | 1/6 | ||
1984 | 0.550 | 통합 2/6 | 17.60 | 2/6 | 24.07 | 1/6 | ||
1985 | 0.706 | 통합 1/6 | 25.23 | 1/6 | 29.97 | 1/6 | ||
1986 | 0.654 | 통합 1/7 | 16.33 | 5/7 | 30/54 | 1/7 | ||
1987 | 0.593 | 통합 1/7 | 14.54 | 6/7 | 37/97 | 1/7 | ||
1988 | 0.528 | 통합 4/7 | 13.52 | 5/7 | 26.25 | 2/7 | ||
1989 | 0.496 | 4/7 | 12.03 | 7/7 | 28.76 | 2/7 | ||
1990 | 0.558 | 4/7 | 14.33 | 6/7 | 27.23 | 2/7 | ||
1991 | 0.560 | 3/8 | 18.28 | 5/8 | 29.69 | 3/8 | ||
1992 | 0.540 | 4/8 | 17.53 | 7/8 | 26.53 | 4/8 | ||
1993 | 0.599 | 2/8 | 21.55 | 3/8 | 38.88 | 1/8 | ||
1994 | 0.484 | 5/8 | 21.41 | 5/8 | 27.19 | 2/8 | ||
1995 | 0.500 | 5/8 | 17.63 | 6/8 | 23.08 | 4/8 | ||
1996 | 0.448 | 6/8 | 14.20 | 7/8 | 23.56 | 4/8 | ||
1997 | 0.552 | 4/8 | 17.72 | 6/8 | 38.92 | 1/8 | ||
1998 | 0.532 | 2/8 | 16.21 | 6/8 | 28.20 | 2/8 | ||
1999 | 0.562 | 통합 3/8 | 24.11 | 3/8 | 26.99 | 4/8 | ||
2000 | 0.539 | 통합 3/8 | 23.36 | 5/8 | 27.09 | 3/8 | ||
2001 | 0.609 | 1/8 | 25.57 | 1/8 | 27.89 | 1/8 | ||
2002 | 0.636 | 1/8 | 25.54 | 1/8 | 38.22 | 1/8 | ||
2003 | 0.589 | 3/8 | 22.77 | 3/8 | 37.22 | 2/8 | ||
2004 | 0.584 | 2/8 | 27.09 | 1/8 | 26.73 | 3/8 | ||
2005 | 0.606 | 1/8 | 26.24 | 2/8 | 26.13 | 2/8 | ||
2006 | 0.593 | 1/8 | 23.47 | 4/8 | 23.65 | 4/8 | ||
2007 | 0.508 | 4/8 | 22.85 | 4/8 | 20.97 | 7/8 | ||
2008 | 0.516 | 4/8 | 19.63 | 5/8 | 21.64 | 5/8 | ||
2009 | 0.481 | 5/8 | 20.30 | 5/8 | 26.27 | 2/8 | ||
2010 | 0.594 | 2/8 | 28.95 | 2/8 | 28.84 | 3/8 | ||
2011 | 0.612 | 1/8 | 29.59 | 1/8 | 25.18 | 4/8 | ||
2012 | 0.611 | 1/8 | 28.68 | 1/8 | 33.80 | 1/8 | ||
2013 | 0.595 | 1/9 | 24.31 | 2/9 | 29.91 | 2/9 | ||
2014 | 0.624 | 1/9 | 28.70 | 1/9 | 29.92 | 2/9 | ||
2015 | 0.611 | 1/10 | 14.06 | 8/10 | 33.76 | 1/10 | ||
2016 | 0.455 | 9/10 | 12.55 | 8/10 | 22.21 | 4/10 | ||
2017 | 0.396 | 9/10 | 6.74 | 10/10 | 16.81 | 8/10 | ||
2018 | 0.486 | 6/10 | 18.08 | 4/10 | 19.89 | 7/10 | ||
2019 | 0.420 | 8/10 | 11.40 | 10/10 | 17.27 | 8/10 | ||
2020 | 0.460 | 8/10 | 19.06 | 4/10 | 15.78 | 8/10 | ||
2021 | 0.563 | 2/10 | 19.52 | 4/10 | 21.87 | 7/10 | ||
2022 | 0.465 | 7/10 | 13.54 | 7/10 | 20.57 | 6/10 |
- 팀 타격이 하위권에 처진게 2000년대 중반이 처음일 정도로, 전통적인 타격의 팀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2002년에 처음 달성한 것은 프로 출범 후 몇해를 제외하고는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던 투수력 때문이었다.
- 2011년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고, 전임 선동열 감독과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가 닦아놓은 투수 전력에, 류중일 특유의 선발 야구와 빅볼이 결합하면서 완벽한 투타 밸런스가 갖춰지고, 2015년까지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 삼성 왕조의 몰락이 도박 사건 때문이었다고 많이 알려져 있으나, 2015년의 투수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도박 사건이 아니었어도 몰락이 어느정도 예고 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배영수와 권혁이 이탈하고 장원삼의 노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두 용병 피가로와 클로이드도 전년도 밴덴헐크와 마틴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결국 2016년 삼성은 전년도의 투수력이 보강되지 못한 상태에, 박석민 나바로 채태인의 이탈과 KBO 역사상 역대 최악의 용병 운까지 겹치며 처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 2021년은 전년도 전력에 오재일과 호세 피렐라가 합류하며 타선이 크게 보강되었다. 이로 인해 다른 팀에 앞서지는 못해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타선이 완성되었고, 전년도에 이미 정상 궤도에 올라와있던 투수력과 함께 큰 시너지를 일으켜, 선두경쟁까지 하게 되었다.
- 99688378로 대표되는 암흑기 기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타선이었다. 토종 투수진의 육성 실패와 더불어 낮은 타선 득점력으로 인하여 시즌 운영을 어렵게 가져갔다.
12.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 |||||||
구단 | 개별 경기 전적 | 합계 | |||||
두산 베어스 | 1982 KS: 1승 1무 4패 1986 PO: 3승 2패 2001 KS: 2승 4패 2004 PO: 3승 1패 2005 KS: 4승 2008 PO: 2승 4패 2010 PO: 3승 2패 2013 KS: 4승 3패 2015 KS: 1승 4패 2021 PO: 2패 | PO 3승 2패 KS 2승 3패 개별 경기 합계: 23승 1무 26패 | |||||
롯데 자이언츠 | 1984 KS: 3승 4패 1991 준PO: 2승 1무 1패 1992 준PO: 2패 1999 PO: 3승 4패 2000 준PO: 2승 1패 2008 준PO: 3승 | 준PO 3승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13승 1무 12패 | |||||
KIA 타이거즈 | 1986 KS: 1승 4패 1987 KS: 4패 1990 PO: 3승 1993 KS: 2승 1무 4패 2024 KS: 1승 4패 | PO 1승 KS 4패 개별 경기 합계: 7승 1무 16패 | |||||
한화 이글스 | 1988 PO: 3패 1990 준PO: 2승 1991 PO: 1승 3패 2006 KS: 4승 1무 1패 2007 준PO: 1승 2패 | 준PO 1승 1패 PO 2패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8승 1무 9패 | |||||
현대 유니콘스 | 1989 준PO: 1승 2패 2000 PO: 4패 2004 KS: 2승 3무 4패 | 준PO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3승 3무 10패 | |||||
LG 트윈스 | 1990 KS: 4패 1993 PO: 3승 2패 1997 PO: 2승 3패 1998 PO: 1승 3패 2002 KS: 4승 2패 2024 PO: 3승 1패 | PO 2승 2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13승 15패 | |||||
쌍방울 레이더스 | 1997 준PO: 2승 1패 | 준PO 1승 개별 경기 합계: 2승 1패 | |||||
SSG 랜더스 | 2003 준PO: 2패 2010 KS: 4패 2011 KS: 4승 1패 2012 KS: 4승 2패 | 준PO 1패 KS 2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8승 9패 | |||||
키움 히어로즈 | 2014 KS: 4승 2패 |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4승 2패 |
- 페넌트 레이스에 강했던 삼성 라이온즈인 만큼 통산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 또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는 KBO 리그 원년부터 존재했었고, 또 현재까지 존속 중인 모든 구단과의 포스트시즌 대결 기록 작성이 가능한 유일한 구단이기도 하다.[167] 왜냐하면 현존하는 타 구단은 지금은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없기 때문이다.[168][169]
12.2.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성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12.2.1. 통산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통산 1위.삼성 라이온즈 역대 투수 | |||
부문 | 이름 | 기록 | 삼성 소속 시즌 |
등판경기 | 오승환 | 726경기 | 2005~2013 2019~현재 |
선발 등판 | 윤성환 | 305경기 | 2004~2020 |
완투 | 김시진 | 61경기 | 1983~1988 |
완봉 | 김시진 | 14경기 | 1983~1988 |
평균자책점 | 김시진 | 2.73 | 1983~1988 |
승리 | 윤성환 | 135승 | 2004~2020 |
패전 | 윤성환 | 106패 | 2004~2020 |
세이브 | 오승환 | 427세이브 [170] | 2005~2013 2019~현재 |
홀드 | 안지만 | 177홀드 | 2002~2016 |
이닝 | 윤성환 | 1915이닝 | 2004~2020 |
피안타 | 윤성환 | 2042개 | 2004~2020 |
피홈런 | 윤성환 | 212개 | 2004~2020 |
탈삼진 | 윤성환 | 1357개 | 2004~2020 |
볼넷 | 배영수 | 630개 | 2000~2014 |
몸에 맞는 공 | 임창용 | 108개 | 1999~2007 2014~2015 |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자 | |||
부문 | 이름 | 기록 | 소속 시즌 |
출장경기 | 박한이 | 2127경기 | 2001~2019 |
타율 | 구자욱 | .318 | 2012~현재 |
출루율 | 양준혁 | .419 | 1993~1998 2002~2010 |
장타율 | 이승엽 | .572 | 1995~2003 2012~2017 |
타석 | 박한이 | 8712타석 | 2001~2019 |
타수 | 박한이 | 7392타수 | 2001~2019 |
안타 | 박한이 | 2174개 | 2001~2019 |
2루타 | 이승엽 | 464개 | 1995~2003 2012~2017 |
3루타 | 구자욱 | 56개 | 2012~현재 |
홈런 | 이승엽 | 467개 | 1995~2003 2012~2017 |
타점 | 이승엽 | 1498타점 | 1995~2003 2012~2017 |
득점 | 이승엽 | 1355득점 | 1995~2003 2012~2017 |
도루 | 박해민 | 318개 | 2012~2021 |
사사구 | 양준혁 | 1134개 | 1993~1998 2002~2010 |
볼넷 | 양준혁 | 1043개 | 1993~1998 2002~2010 |
몸에 맞는 공 | 김한수 | 148개 | 1994~2007 |
삼진 | 이승엽 | 1344개 | 1995~2003 2012~2017 |
병살타 | 박한이 | 156개 | 2001~2019 |
12.2.2. 단일시즌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단일시즌 1위 기록.삼성 라이온즈 투수 | |||
부문 | 이름 | 기록 | 시즌 |
등판경기 | 임창용 | 71경기 | 1999 |
임현준 | 2019 | ||
선발 등판 | 김진웅 | 31경기 | 1999 |
팀 아델만 | 2018 | ||
완투 | 김시진 | 17경기 | 1983 |
완봉 | 김시진 | 5경기 | 1983 |
평균자책점 | 김시진 | 2.00 | 1985 |
승리 | 김시진 | 25승 | 1985 |
김일융 | |||
패전 | 이선희 | 13패 | 1983 |
김진웅 | 1999 | ||
윤성환 | 2019 | ||
백정현 | 2022 | ||
세이브 | 오승환 | 47세이브 | 2006 |
2011 | |||
홀드 | 안지만 | 37홀드 | 2015 |
이닝 | 김시진 | 269⅔이닝 | 1985 |
피안타 | 김성길 | 219개 | 1989 |
피홈런 | 장원삼 | 29개 | 2015 |
탈삼진 | 김시진 | 201개 | 1985 |
사사구 | 김시진 | 136개 | 1985 |
볼넷 | 김시진 | 121개 | 1985 |
몸에 맞는 공 | 임창용 | 24개 | 2002 |
삼성 라이온즈 타자 | |||
부문 | 이름 | 기록 | 시즌 |
타율 | 장효조 | .387 | 1987 |
출루율 | 장효조 | .469 | 1983 |
장타율 | 이승엽 | .733 | 1999 |
타석 | 박해민 | 649타석 | 2018 |
타수 | 박해민 | 576타수 | 2018 |
안타 | 최형우 | 195개 | 2016 |
2루타 | 최형우 | 46개 | 2016 |
3루타 | 구자욱 | 13개 | 2016 |
홈런 | 이승엽 | 56개 | 2003 |
타점 | 이승엽 | 144타점 | 2003 |
최형우 | 2016 | ||
득점 | 이승엽 | 128득점 | 1999 |
도루 | 박해민 | 60개 | 2015 |
사사구 | 이승엽 | 124개 | 1999 |
볼넷 | 이승엽 | 112개 | 1999 |
몸에 맞는 공 | 박석민 | 27개 | 2012 |
삼진 | 김영웅 | 155개 | 2024 |
병살타 | 김한수 | 23개 | 2004 |
무안타 | 김헌곤 | 43타석 | 2022 |
12.2.3. 타이틀 홀더
12.2.3.1. 타자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격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83 | 장효조 | 외야수 | .369 |
1984 | 이만수 | 포수 | .340 |
1985 | 장효조 | 외야수 | .373 |
1986 | 장효조 | 외야수 | .329 |
1987 | 장효조 | 외야수 | .387 |
1993 | 양준혁 | 1루수 | .341 |
1996 | 양준혁 | 외야수 | .346 |
1998 | 양준혁 | 지명타자 | .342 |
2016 | 최형우 | 외야수 | .376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출루율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83 | 장효조 | 외야수 | .469 |
1984 | 장효조 | 외야수 | .422 |
1985 | 장효조 | 외야수 | .460 |
1986 | 장효조 | 외야수 | .436 |
1987 | 장효조 | 외야수 | .461 |
1988 | 김성래 | 2루수 | .459 |
1993 | 양준혁 | 1루수 | .436 |
1998 | 양준혁 | 지명타자 | .450 |
1999 | 이승엽 | 1루수 | .458 |
2006 | 양준혁 | 지명타자 | .446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장타율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83 | 장효조 | 외야수 | .618 |
1984 | 이만수 | 포수 | .633 |
1987 | 이만수 | 포수 | .579 |
1993 | 양준혁 | 1루수 | .598 |
1996 | 양준혁 | 외야수 | .624 |
1998 | 이승엽 | 1루수 | .621 |
1999 | 이승엽 | 1루수 | .733 |
2002 | 이승엽 | 1루수 | .689 |
2011 | 최형우 | 외야수 | .617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다안타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83 | 장효조 | 외야수 | 117 |
1996 | 양준혁 | 외야수 | 151 |
1997 | 이승엽 | 1루수 | 170 |
1998 | 양준혁 | 지명타자 | 156 |
2002 | 마해영 | 지명타자 | 172 |
2003 | 박한이 | 외야수 | 170 |
2016 | 최형우 | 외야수 | 195 |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홈런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83 | 이만수 | 포수 | 27 |
1984 | 이만수 | 포수 | 23 |
1985 | 이만수 | 포수 | 22 |
1987 | 김성래 | 2루수 | 22 |
1993 | 김성래 | 1루수 | 28 |
1997 | 이승엽 | 1루수 | 32 |
1999 | 이승엽 | 1루수 | 54 |
2001 | 이승엽 | 1루수 | 39 |
2002 | 이승엽 | 1루수 | 47 |
2003 | 이승엽 | 1루수 | 56 |
2007 | 심정수 | 외야수 | 31 |
2011 | 최형우 | 외야수 | 30 |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점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83 | 이만수 | 포수 | 74 |
1984 | 이만수 | 포수 | 80 |
1985 | 이만수 | 포수 | 87 |
1987 | 이만수 | 포수 | 76 |
1993 | 김성래 | 1루수 | 91 |
1994 | 양준혁 | 지명타자 | 87 |
1997 | 이승엽 | 1루수 | 114 |
1999 | 이승엽 | 1루수 | 123 |
2002 | 이승엽 | 1루수 | 126 |
2003 | 이승엽 | 1루수 | 144 |
2007 | 심정수 | 외야수 | 101 |
2011 | 최형우 | 외야수 | 118 |
2016 | 최형우 | 외야수 | 144 |
2017 | 러프 | 1루수 | 124 |
삼성 라이온즈 역대 득점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1998 | 이승엽 | 1루수 | 100 |
1999 | 이승엽 | 1루수 | 128 |
2000 | 이승엽 | 1루수 | 108 |
2002 | 이승엽 | 1루수 | 123 |
2003 | 이승엽 | 1루수 | 115 |
2006 | 박한이 | 외야수 | 89 |
2021 | 구자욱 | 외야수 | 107 |
2022 | 피렐라 | 외야수 | 102 |
삼성 라이온즈 역대 도루왕 | |||
연도 | 이름 | 포지션 | 기록 |
2014 | 김상수 | 유격수 | 53 |
2015 | 박해민 | 외야수 | 60 |
2016 | 박해민 | 외야수 | 52 |
2017 | 박해민 | 외야수 | 40 |
2018 | 박해민 | 외야수 | 36 |
12.2.3.2. 투수
삼성 라이온즈 역대 다승왕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85 | 김시진 | 25 | |
김일융 | |||
1987 | 김시진 | 23 | |
2004 | 배영수 | 17 | |
2009 | 윤성환 | 14 | |
2012 | 장원삼 | 17 | |
2013 | 배영수 | 14 | |
2021 | 뷰캐넌 | 16 | |
2024 | 원태인 | 15 |
삼성 라이온즈 역대 평균자책점왕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99 | 임창용 | 2.14 | |
2002 | 엘비라 | 2.50 | |
2014 | 밴덴헐크 | 3.18 |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탈삼진왕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85 | 김시진 | 201 | |
1993 | 김상엽 | 170 | |
2005 | 배영수 | 147 | |
2014 | 밴덴헐크 | 180 | |
2015 | 차우찬 | 194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세이브왕 | |||
연도 | 이름 | 기록 | |
1982 | 황규봉 | 11 | |
1985 | 권영호 | 26 | |
1999 | 임창용 | 38 | |
2004 | 임창용 | 36 | |
2006 | 오승환 | 47 | |
2007 | 오승환 | 40 | |
2008 | 오승환 | 39 | |
2011 | 오승환 | 47 | |
2012 | 오승환 | 37 | |
2015 | 임창용 | 33 | |
2021 | 오승환 | 44 |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홀드왕 | |||
연도 | 이름 | 기록 | |
2006 | 권오준 | 32 | |
2009 | 권혁 | 21 | |
2015 | 안지만 | 37 |
13. 지역 연고 학교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서, 지역 내에 3개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다.다만 실질적으로는 대구경북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경상북도 소재의 고교들도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과거 1차지명이 있던 시절에는 강원도 영동 지역[171]의 강릉고등학교, 설악고등학교까지 삼성이 우선 지명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두 학교는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팜이 열악해 대부분 타 지역(주로 수도권)에서 진학 또는 전학한 선수들이 주축이라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172]참고로,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은 다음과 같다.
- 경주상업고등학교 : 1983년 창설, 1985년에 해체되었으며, 지명 대상이긴 했지만 해당 야구부에서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 2003년 창설, 2009년 해체되었다. 홍효의, 추승민 정도가 있지만 프로야구에서 눈에 띄게 활동한 사례는 없다.
- 대건고등학교 : 1970년 창설, 1977년 해체되었다. 대건고 출신 선수로는 권영호, 박승호, 허규옥, 장태수가 있으며, 해체 당시 선수들은 모두 충암고등학교로 전학가 충암고의 우승멤버가 되었다. 이 때 충암고의 우승 멤버가 된 대건고의 마지막 멤버가 조범현이다.
- 성광고등학교 : 1981년 창설, 1989년 해체되었다. 유명 선수로는 이상목이 있다.
- 영남고등학교 : 1968년 창설, 1974년 해체되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있었으나, 삼성 창단 시에는 아무도 창단 멤버로 지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 2013년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같은 재단의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되었다. 포철공고의 역사는 포철고에 이관되어 있으므로, 위의 해당 문서 참조.
14. 논란 및 사건사고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15. 이야깃거리
- 모기업 삼성 또한 KBO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0년부터 KBO에서 메인 스폰서를 도입했는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증권,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삼성전자에서 메인 스폰서를 맡아왔다.
- 타자와 포수가 쓰는 헬멧에는 양 옆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이름이 새겨져있다.
- 90년대말에서 00년대에만 해도 FA로 스타선수를 영입하면서 KBO 리그의 뉴욕 양키스라는 별명이 있다. 야구 팬들과 야구 언론사에서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스타를 사니 이런 별명을 안겨주었다.
-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1985년 한국시리즈를 무산시켰다.
- 최초의 한국시리즈, 최초의 플레이오프, 최초의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경험한 팀이다. 최초의 한국시리즈와 플레이오프 상대 팀은 모두 OB 베어스였으며, 최초의 준플레이오프 상대 팀은 태평양 돌핀스이다. 최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그 해 페넌트레이스 성적이 너무 좋아서 경험하지 못했다.
- 포스트시즌 한정 전승준과 포스트시즌 한정 전패준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포스트시즌 한정 전승준은 1990년, 포스트시즌 한정 전패준은 1987년).[173]
- 삼성에서는 개념이었던 감독이 타 팀에 가서는 역대급 막장이 되거나, 그 반대로 딴 팀에서는 명장인데 삼성에서는 도무지 적응 못하고 말아먹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백인천. 김응용도 한화에 가서는 막장 운영을 보여주며 커리어의 마지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류중일 감독도 LG 감독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 대열에 합류 중... 이었다가 2019 시즌에 살아났다. 또 21세기 들어 SK 감독 시절에 한해 김성근은 삼성에서는 흑역사급 추태만 보여준 희한한 경우이긴 한데, 삼성 감독 시절 이전에도 투수 혹사로 악명 높은 감독이었으니 예외가 있다면 정동진 감독인데,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렸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시절 때와 마찬가지로 LG한테 4대0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 소속 선수가 한국프로야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우면 팀이 지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프로야구 1호 홈런, 1호 타점은 1호 패전과 같이 나와버린 건 유명하고, 아시아 리그 신기록으로 인해[174] 허용투수 딱지가 박힌 그 분도 그 경기 승리투수이다. 단, 예외적으로 양준혁이 2000안타를 기록했을 때에는 팀이 이겼다.(6대1로 승리, 상대는 두산 베어스) 물론, 기록의 성립 조건 중 하나가 팀의 승리일 때도 예외이다. 권영호의 프로 통산 첫 100세이브, 김시진과 이상목의 개인 통산 100승 등, 공교롭게도 100승을 올린 두 명의 등번호가 모두 29번이다.
- 팀의 우승을 이끈 라인도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이만수-김시진-장효조로 유명한 통합우승 트리오와 이마양, 최채박, JOKKA, KBO 포스트시즌 한정 철벽의 수비라인이었던 김재걸-박진만-신명철 트리오 같은 식.
- KBO 역사상 두 번밖에 없는 디펜딩 챔피언을 2위로 내리고 우승한 전년 2위팀이다. 1984년 롯데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이듬해 롯데를 2위로 내린 것도 모자라 한국시리즈 행 사다리를 걷어찼으며, 2010년에는 SK에게 한국시리즈에서 0-4로 압살당했지만 다음해 한국시리즈에서 꺾고 우승했다.
-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된 그림판 마스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잘 나온 디자인이다. 물론 여러 스포츠에서 우려먹긴 했지만(농구, 배드민턴, 럭비단, 배구단)... 2008년부터 팀 로고와 색상이 바뀌었어도 디자인은 그대로인 듯. 가히 본좌급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캐릭터 디자인은 비슷하나 전기형(1995년~2007년)은 원정 유니폼 색과 같은 파란색, 후기형(2008년~2015년)은 짙은 하늘색이다. 전기형 마스코트는 2002년, 2005년~2006년, 후기형 마스코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1995년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5회와 6회의 대량 득점으로 역전했다가 재역전패를 거둔 바 있다. 그 당시 7회에 11점이나 실점했는데, 이닝 점수를 두 자리로 찍을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11 대신 B라는 글자가 찍혔었다. 2008 시즌에도 SK 와이번스한테 0-18로 처참하게 패배했는데, 8회에 11점을 실점하는 바람에 전광판에 B가 찍히는 진풍경을 13년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는 B성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었다.[175] 2013년 6월 6일에는 이닝별 점수는 아니고 총 사사구 수 11개를 기록하며[176] 또 전광판에 B를 띄웠다. 최신식 전광판이 있는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 시즌부터는 이 광경을 볼 수...있다! 3루측 띠전광판이 예전 시민구장 방식을 따르는지라 유일하게 점수판에 알파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왕조시절의 선수들이 전부 개그 본능이 충만하다. 대표적인 개그맨 박석민을 시작으로 채태인, 정인욱, 안지만, 진갑용 등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입담이 좋고 성격이 밝다. 외모에서도 날카롭거나 잘생긴 선수들은 딱히 없고 개구장이 같이 정감가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수들과 외부 영입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덕분에(?) 당시 8개 구단 팀들 중 가장 팀 분위기와 팀워크가 좋았던 팀들 중 하나로 뽑힌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개그 라이온즈.
- 개그 라이온즈라는 별명에 걸맞게 마스코트인 사돌이와 사순이(블레오)의 엽기 행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선수들의 외모가 역변하는 것을 삼적화라고 한다. 해당 문서 참조.
-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거의 없었지만, 옛날에는 빈볼 시비가 여러 차례 있긴 있었다.(배영수-펠릭스 호세, 이승엽-서승화)
-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삼성은 1985년 통합 우승 기념 올드 유니폼을 입었는데 초반에는 한화가 2-1로 승기를 잡을 듯했으나 실책과 투수의 폭투로 인해 2-2 동점, 박한이의 역전타로 4-3으로 승리했다. 올드 유니폼은 의외로 예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후로 올드 유니폼 데이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스터리.[177] 왜 안 하는가 의문이 들겠지만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하지 않아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2008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9년, 2020년, 2022년, 2023년 다 끝이 좋지 않았다. 특히 라팍으로 옮긴 이후인 2016년부터는 8위 이하의 성적으로 끝내서 올니폼에 혐오감을 느끼는 팬마저 많아졌다. 야구계의 저주들에서 올드 유니폼의 저주 참고.
- 오래된 특징으로 유독 외국인 투수와 신인 투수에게 약하다. 외국인 투수에게 약했던 역사는 꽤 오래되어서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내내 약했으며[178] 소위 말하는 먹튀급 선수를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 성적이 안 좋았던 투수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신인이나 1군 등판 경력이 거의 없어 처음 만나는 투수들에게도 약점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이승우, 강철민, 송창식, 유희관 등. 특히 강철민은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며 송창식도 버거씨병 이후 복귀해서 첫 승리를 삼성에게 따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좀 심각한 수준. 하지만 두 번째로 만나면 얄짤없다. 그래서 감독들이 삼성 상대 첫 경기를 치른 투수들을 다시 올리면서 "저번에 잘 던졌으니 삼나쌩이겠지"라며 방심하다가 역관광당하는 사례도 많다.[179] 팬들 중에서는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같은 에이스 투수에게도 물론 약하다면서 종특으로 꼽는 사람도 있는데 [180] 그리고 애초에 잘하니까 에이스인 것이고 특정팀에 유독 털리면 에이스 소리 못 듣는다. 류현진이 특정팀에 특별히 약했던가? 다시 말해 에이스니까 강한 거지 삼성이라서 에이스가 이긴 게 아니란 소리.
- 한때 응원단이 최대 약점이라 불렸던 적이 있다. 배영수와 입단동기인 치어리더 노숙희가 2013년까지 활동했을 정도로[181] 구단에서는 치어리더 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박채경과 김순희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치어리더도 있었으나 몇 년 후, 한 명은 결혼을, 한 명은 유학을 떠나며 치어리더에서 은퇴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LG 트윈스 → SK 와이번스의 강윤이,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심지어 넥센 배트걸 민수진과 롯데 배트걸 신소정도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삼성 치어리더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 때 삼성 치어리더는 SSAT 성적순[182]으로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이수진을 비롯한 새로운 치어리더들의 등장으로 삼성팬들은 드디어 잔혹사가 끝났다며 기뻐하고 있다. 또한 응원가는 김용일이 응원단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스포츠쟈키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어 여전히 현 응원단장 옆에서 활동하며 희망이 보이질 않고 있다...가 2016년 시즌 종료 후 그만두었다.[183] 1990년대까지는 김한수 등의 괜찮은 응원가도 있었으나, 응원단장 김용일의 장기집권으로 흑역사가 되었다. 팀 응원가에 대해서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도 괜찮다는 평이 있으나, 선수 응원가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수준이다. 그나마 2013 시즌에 모든 선수 응원가가 재녹음되면서 채태인, 최형우 등 일부 선수 응원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KBO 전체 수준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진다는 평이 다수다.
- 전 응원단장인 김용일이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용일 문서 참조.
- 대구 지역을 연고로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여름에 승률이 좋다. 다른팀은 퍼질 때 "대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듯 선수들이 체력 저하 없이 멀쩡하게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오죽하면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다 죽었다"는 구단 관계자의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며 이를 빗대서 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법칙은 2013년 들어 깨지나 싶었으나, 개막 한 달동안 단 3승밖에 못 거두며 최하위를 맴돌았던 2017 시즌 여름 6월 월간 승률 5할을 찍고 분위기 전환에 성공하며 뜬금없이 부활했다.
- 다른 팀 선수들 프로필 사진은 홈 유니폼을 입고 찍으나[184], 라이온즈만 원정 유니폼을 입고 찍는다.
- 2018년 전반기 기준 유일하게 모기업 외 유니폼 스폰서가 없는 프로야구단, 아니 프로스포츠단이었다. 다른 팀은 유니폼만이라도 비 모기업 제품을 쓰지만 삼성 라이온즈만 광고 패치는 물론이고, 유니폼과 모자 및 의류 제작사까지 삼성 계열사 것이다. 다른 삼성스포츠단의 경우에는 과거에 자사 용품사(라피도)를 쓰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사라졌고,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이후에는 외부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또한 2020 시즌부터 유니폼 제작사가 벡스에서 언더아머로 바뀌면서 이 특이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 나무위키 내에서는 삼성팬이 의외로 초강성팬덤 중 하나다. 대구아재 문서 참고.
- 올드 멤버 중에서 유독 대구 지역 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출신이 많다.[185] 이에 해당하는 선수들로는 류중일(경북고-한양대), 장효조(대구상고-한양대), 이만수(대구상고-한양대), 김성래(대구상고-한양대), 김용국(대구상고-한양대), 김현욱(경북고-한양대), 성준(경북고-한양대), 오대석(대구상고-한양대) 등이 있다. 한편 이승엽도 경북고 졸업이후 한양대 진학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현재는 대다수가 고교 졸업이후 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경우가 많아 지면서 스쿼드에서 대구 지역 고교 - 한양대 출신의 선수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최채흥(상원고-한양대)이 등장하여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박해민이 한양대 출신[186] 선수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2021시즌 종료 이후 FA로 LG 트윈스에 이적했다.
- 외국인 선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출신 선수를 많이 영입한다. 타일러 클로이드를 시작으로 하여 다린 러프, 벤 라이블리, 데이비드 뷰캐넌, 호세 피렐라까지. 혹자들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한국지부라고(...)[187]
- 상대적으로 2루수가 취약한 포지션이다. 김성래, 강기웅을 제외하면 그나마 정경배, 신명철이 돋보였으나 유리몸 조동찬이나 백업 수준의 김재걸, 박정환같은 그저그런 선수들도 2루수였다. 공수겸장인 야마이코 나바로가 삼성 통합우승 시절 드디어 이 자리를 매웠으나 그마저 떠나고 난 이후는 뭐...... 2019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이학주와 김상수가 번갈아 유격수-2루수를 보고 있었고 결국 김상수가 그 해부터 2루수로 낙점되었다. 그래도 김상수가 2019년 약간의 반등 후 2020년 리그 상위권 2루수가 되나 싶었지만 2021년 공격력에서 망하면서 아직 최상급 2루수 배출은 숙제로 남게 되었다.
- 과거 이 항목에도 몇번 있다가 지워졌지만, 타자조 일부의 팬서비스가 좋지 않기로 악명 높았다[188]. 차차 개선되어야 할 부분. 실제로 2017 시즌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당시 임시 주장[189]이던 박해민이 향후 팬서비스 개선에 힘쓰겠다고 홈구장 경기 종료후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아졌다. 과거 예전 감독이였던 류중일의 황태자 김상수의 경우 팬서비스 및 사회공헌도 찬사를 받는 중.
- 한 때 개념 운영으로 칭송받던 팀이었으나 라팍으로 옮긴 후 막장운영으로 비판받고 있다. 합리화를 외치며 선수들을 안 잡아 전력이 급락했고[190], 한정판 물품 무한 재판매로 크게 비판을 받기도 했고, 성적 나쁘다는 핑계로 팬 행사를 안 하기도 했으며, 선동 금지라는 핑계로 현수막을 제지하기도 했다. 점차 나아지는가 싶더니 2018년 스페셜 유니폼 데이를 취소하는 등 아직 막장기가 남아 있다.
- 이 팀을 거쳐간 투수들 중 NPB로 진출한 임창용, 오승환은 한결같이 악성 안티 요미우리 성향이 높은 팀으로 가게 됐다. 그리고 투수로 입단했던[191] 이승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갔다.
- 창립 멤버 구단들 가운데 KBO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장 늦다. OB 베어스가 전신인 두산 베어스가 리그 원년인 1982년도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고[192] 삼성과 더불어 '진골' 창단 멤버인 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첫 우승을 이뤄냈으며[193], 해태 타이거즈가 전신인 KIA 타이거즈도 1983년 첫 우승을 달성한 반면,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무려 2002년, 그러니까 21세기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셈이다. 구단의 첫 우승이 1985년이지만[194] 이 당시엔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이었던 관계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진짜 우승으로 간주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195]. 넓게 적용해 MBC 청룡이 전신인 LG 트윈스까지 창립 멤버로 쳐준다면 트윈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1990년이므로 제일 늦은 것이다. 심지어 1986년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한 두산(당시 OB)의 공백을 메우고자 충청권을 연고로 창단된 한화 이글스(창단 당시에는 빙그레 이글스) 조차도 삼성보다 3년 먼저인 1999년, 창단 13년만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 우승을 확정지은 지역은 3개로, 오래된 순서대로 부산광역시(1985), 대구광역시(2002, 2013), 서울특별시(2005, 2006, 2011, 2012, 2014)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상대는 총 8팀으로, 한국시리즈 나가봤다는 팀들은 웬만하면 삼성과 최종우승을 놓고 다투었다고 보면 된다. 2022년 기준으로 삼성과 못 만난 한국시리즈 경험구단은 2010년대 신생구단들인 NC 다이노스와 kt wiz다.[196]
- 2006년 한국시리즈를 제외하고 항상 3루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와 우승 순간을 만끽했다. 1루에서 우승했다고 뛰어나오는 일은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를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볼 일이 없다.[197]
- 의외로 잘했던 선수들 중에 호남 출신 선수들이 꽤 많다. 박충식, 임창용, 오승환, 최형우, 차우찬 등등... 클래식 라이벌이라는 롯데 자이언츠[198]와는 반대되는 부분이다.
- 21세기 들어서 對삼성 경기 이후 상대팀 감독의 경질 또는 사퇴 소식이 잦아지면서[예시] 다른 의미로 감독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 팀 자체 징계가 타 팀에 비해 상당히 세다. 2011년 6라운드 4순위로 지명되었던 김준희는 경기도 치르기 전에 음주운전을 저질러 바로 임의탈퇴당했고, 정형식도 사람은 안 쳤다만 음주운전 사실을 선수가 은폐했다 걸려서 바로 임의탈퇴당했다. 도박 사건에 연루된 임창용은 벌금형 선고 즉시 방출, 안지만은 도박 사건 연루때는 재판을 못 해서 살았긴 했다만, 얼마 뒤 도박사이트 개설 가담이 걸려서 즉시 계약 해지를 당하고 계약금 중 일부인 21억원을 구단에 도로 내놔야 했다.
- 팀의 레전드급 선수들 대부분의 말로가 별로 좋지 않다. 그나마 현재까지 처지가 양호한 사람은 양준혁[200]이나 류중일,[201] 권오준 정도밖에 없고, 그 외의 인물들은 팀과 마찰을 빚어 말년 커리어가 꼬였거나, 이전의 언행 등이 문제가 돼 은퇴 전후로 여론이 나빠지는 등 커리어 끝을 좋게 맺은 경우가 별로 없다. 삼성의 원조 에이스 김시진과 타격의 달인 장효조는 선수협 파동으로 구단 눈 밖에 나버려 롯데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뒤 그곳에서 쓸쓸하게 유니폼을 벗었으며, 당대 최고의 포수 이만수 역시 말년에 본인의 대우 때문에 구단과 마찰을 빚고 결국 은퇴식 하나 없이 쫒겨나듯 방출당한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심지어 은퇴 후에도 자비를 들여 코치 연수를 가야 했고, 어찌어찌 영구 결번은 됐으나 이마저도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난 2003년에야 이뤄졌다. 심지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코칭스태프로 일하던 중 삼성의 코치 제의를 받아들이고 귀국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삼성 측에서 코치 제의를 없던 일로 해버리는 해프닝까지 있었다.[202] 삼성 왕조의 배터리를 책임졌던 진갑용의 도핑 전력과 안지만의 원정 도박 의혹 및 불법 인터넷 도박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구단 역대 최고의 3루수로 평가받는 김한수는... 감독 시절의 처참한 팀 성적으로 이제는 오히려 삼성빠들의 금지어가 돼 버렸다. 한때 간첩도 안다는 말까지 있었던 국민타자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를 갖고 본인의 은퇴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쳐내는 등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했지만, 현역 시절 본인의 희소성 발언 때문에 은퇴 이후 한때는 호날두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여론이 나빴으며[203], 또 불혹에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삼성의 선발진을 지탱해준 황태자 윤성환과 차기 영구 결번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끝판대장 오승환 역시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여론이 안 좋은 상태다. 결국 윤성환은 또다시 원정 도박 스캔들로 방출되었고 추후 승부조작 사실까지 드러나고 말았다. 비록 팀을 떠났지만 삼성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던 박석민마저 2021년 NC 다이노스 원정숙소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그간의 이미지에 큰 흠집을 내고 만 상황. 하지만 이중에서도 정말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사례는 바로 박한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8번의 우승 중 무려 7번을 함께하며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던 그였으나, 딸의 등교를 위해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낸 것이 그만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걸리고 말면서 영구 결번은커녕 은퇴식도 못 치르고 불명에 은퇴하면서 팀의 레전드로서는 최악의 결말을 내고 말았다.
- KBO 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연고지 지방자치단체가 구단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초대 라이온즈 구단주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2.5%(5000주)가 이 회장 별세 후 유산 상속 과정에서 대구광역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것은 삼성 측이 대구시에 무상 기부한 것이다. 유족 중 장남이자 열혈 삼빠 중 한 명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단 지분을 받지 않고 대구시에 넘긴 것은 "대구가 삼성의 발상지였고 대구시민의 사랑 덕분에 라이온즈가 명문 구단이 될 수 있었던 만큼 지역 사회에 이를 넘기는 것이 맞다"는 이 회장의 뜻을 유족이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LG의 9월 9일, 한글날이 길일인 것처럼 삼성에도 길일이 하나 존재하는데 바로 6월 2일이다. 1999년부터 이날 승률이 굉장히 좋은 편으로 2002년, 2005년, 2010년, 2011년에만 패배했으며 2012년부터는 아예 전승이다.[204] 특히 연승 가도를 달리는 2012년부터는 의미 있는 승리가 많다.[205] 또한 2021년에는 팀의 레전드나 다름 없던 윤성환의 악행이 밝혀지면서 졸지에 홍준학 단장이 재평가 받아 경기 외적으로 길일이 되기도 했다.
- 신인선수들 같은 경우 입단 후 무조건 일정기간[206] 경산 볼파크에서 숙소생활을 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 동안 1군 출전 시, 구단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된다.
- KBO 원년 때부터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작은 축에 들어가는 팀이었다.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등이 활약했던 1980년대부터 팀의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다른 팀들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현재도 김상수나 김헌곤같은 다소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포진되었고 김지찬, 김성윤같은 160대 초반 선수가 있어서 평균 신장으로는 여전히 작은 축에 들어간다. 공교롭게도 삼성 뿐만 아니라 연고 지역인 대구도 대한민국 지역 중에서는 평균 신장이 최하위권에 있는 지역이다. 물론 평균 신장이 큰 수도권과 최대 1~2cm 정도 차이라서 크게 의미는 없다.
- 일본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진 구단이다. 스프링캠프는 매년마다 일본 오키나와현으로 가고 카도쿠라 켄은 삼성에서 선수와 코치로 모두 활동하였다. 2010년대 왕조를 이끈 코치인 오치아이 에이지도 역시 유명하다. 팀 레전드인 임창용, 이승엽, 오승환도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 활약했으며 알프레도 피가로, 아롬 발디리스, 재크 페트릭, 데이비드 뷰캐넌, 호세 피렐라, 알버트 수아레즈, 데이비드 맥키넌 등 일본프로야구 경험이 있는 용병 선수를 선호하는 편이다.
- 의외로 야구의 인기가 저조한 국가인 중국에서도 삼성이라는 이름값 덕분에 인지도가 좀 있는 KBO 구단이기도 하다.
- 2010년대 후반부터는 구속이 비교적 느린 투수를 더 선호하는 유일한 KBO 구단이 되었다. 실제로도 2022년 팀 평균 구속에서 다른 팀들은 143~148km/h를 오가는데 삼성은 유일하게 140km/h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 왕조 시절엔 임창용, JOKKA 라인 투수들 등 파이어볼러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지만 당시의 삼성은 윤성환, 배영수, 장원삼 등 리그에서 손꼽히는 피네스 피처들도 많이 보유했었기에 그저 당시엔 투수코치의 역량이 현재 투수코치에 비해 더 높았었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 현재까지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kt wiz와 더불어 팀 창설일부터 지금까지 구단명이 바뀌지 않은 팀이다. 또한 최근에 두산 베어스가 하계 원정 유니폼으로 회색 유니폼을 내놓으면서 신생팀 축에 속하는 NC와 kt를 제외한 기존 8개 구단 중 2023년 현재 한 번도 회색 유니폼을 출시 및 착용해본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 됐다.
- 유달리 동명이인이 많은 구단이다. 투수 김상수와 타자 김상수, 타자 이영욱과 투수 이영욱, 우완 이승현과 좌완 이승현, 투수 김태훈과 타자 김태훈이 한 팀에서 같이 뛴 적이 있다. 타자 이영욱과 김상수는 투수 동명이인이 다른 팀에 있을 때 상대하여 홈런을 친 경력이 있는데 KBO에서 이 두 타자만이 갖고 있는 진기록이다.
- 2024년 기준 KBO 리그의 최장신 선수와 최단신 선수가 모두 이 구단에 소속되어 있다. 최장신은 198cm의 데니 레예스, 최단신은 163cm의 김지찬이다.
16. 관련 문서
- 곤규엽
- 굴비즈
- 김용일(1977)
- 김상헌
- 김헌곤 유니버스
- 사자 사랑방
- 사자후
- 삼적화
-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 삼성 라이온즈/2군
- 삼성 라이온즈/응원가
- 삼나쌩 클럽
- 콩라인
- 삼성스포츠
- 이마양
- JOKKA 라인
- 왕조(스포츠)
- 조원수박차
- 제일기획
- 채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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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OB 베어스 | ★ 1회 | ||
1983 | 해태 타이거즈 | ★ 1회 | ||
1984 | 롯데 자이언츠 | ★ 1회 | ||
1985 | 삼성 라이온즈 | ★ 1회 | ||
1986 | 해태 타이거즈 | ★ ★ ★ ★ ★ 5회 | ||
1987 | ||||
1988 | ||||
1989 | ||||
1990 | LG 트윈스 | ★ 1회 | ||
1991 | 해태 타이거즈 | ★ ★ ★ ★ ★ ★ 6회 | ||
1992 | 롯데 자이언츠 | ★ ★ 2회 | ||
1993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7회 | ||
1994 | LG 트윈스 | ★ ★ 2회 | ||
1995 | OB 베어스 | ★ ★ 2회 | ||
1996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 ★ 9회 | ||
1997 | ||||
1998 | 현대 유니콘스 | ★ 1회 | ||
1999 | 한화 이글스 | ★ 1회 | ||
2000 | 현대 유니콘스 | ★ ★ 2회 | ||
2001 | 두산 베어스 | ★ ★ ★ 3회 | ||
2002 | 삼성 라이온즈 | ★ ★ 2회 | ||
2003 | 현대 유니콘스 | ★ ★ ★ ★ 4회 | ||
2004 | ||||
2005 | 삼성 라이온즈 | ★ ★ ★ ★ 4회 | ||
2006 | ||||
2007 | SK 와이번스 | ★ ★ 2회 | ||
2008 | ||||
2009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10회 | ||
2010 | SK 와이번스 | ★ ★ ★ 3회 | ||
2011 | 삼성 라이온즈 | ★ ★ ★ ★ ★ ★ ★ ★ 8회 | ||
2012 | ||||
2013 | ||||
2014 | ||||
2015 | 두산 베어스 | ★ ★ ★ ★ ★ 5회 | ||
2016 | ||||
2017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11회 | ||
2018 | SK 와이번스 | ★ ★ ★ ★ 4회 | ||
2019 | 두산 베어스 | ★ ★ ★ ★ ★ ★ 6회 | ||
2020 | NC 다이노스 | ★ 1회 | ||
2021 | kt wiz | ★ 1회 | ||
2022 | SSG 랜더스 | ★ ★ ★ ★ ★ 5회 | ||
2023 | LG 트윈스 | ★ ★ ★ 3회 | ||
2024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 12회 |
KBO 리그 역대 왕조팀 | |
★★★★ 1986~1989 해태 타이거즈 (해태 왕조) | ★★★★ 2011~2014 삼성 라이온즈 (삼성 왕조) |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 |
다른 틀 둘러보기: 일본프로야구 역대 왕조팀 ·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대 왕조팀 한국프로축구 역대 왕조팀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대 왕조팀 LCK 역대 왕조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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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메카피온 | 이월드 | ㈜삼성라이온즈 | |
신세계백화점 대구법인(지역 법인 형태) |
[1] 대구 사무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내.[2] 서울 사무실, 삼성화재 역삼빌딩 20층.[3] 2014년부터 삼성 내의 프로 스포츠단을 인수하기 시작해 2016년 1월 1일부로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4] 최대 29,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5] 삼성물산 산하에 패션 브랜드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좀 의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빈폴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스폰서를 했지만 2019년부터 물러났고, 2021년 2월을 끝으로 스포츠웨어 사업을 접어서 스폰서를 할 수 없다.[A] 1985시즌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 (KBO 공식 기록 명칭은 '전·후기 통합 우승')[A] [8] 단일 리그 기준.[9] 전기, 후기 리그[10] 전기, 후기 리그[11]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8,452명.[12]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3,292명.[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예외.[14] 연봉 총액 90억원, 옵션 30억원.[15] 2015년까진 삼성 라이온즈도 삼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였고 최대주주는 삼성전자였으나,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됐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 운영만 전담하고, 구단 운영비는 여전히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이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 또한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범삼성가인 CJ제일제당(15%), 신세계(14.5%)도 구단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건희 전 회장이 보유했던 지분(2.5%)은 2020년 사망 이후 대구광역시에 모두 기부됐다.[16] 이는 삼성과 롯데의 맞대결이 '클래식 씨리즈'로 불리는 이유다.[17] 1986~1989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와 동률.[18] 단일 리그 기준. 전·후기 리그, 양대 리그 기록까지 포함하면 17회인데 이 역시 리그 최다.[19] 1982년 창단 당시 삼성전자의 로고가 빨간색이었기에 삼성 라이온즈도 한동안 빨간색 위주의 유니폼을 입었었고, 1984년부터 1994년까지 보조 색으로 사용된 노란색은 이건희 전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이후 빨간색은 2016년 유니폼 디자인 변경과 함께 보조 색으로 부활했지만, 공교롭게도 암흑기와 맞물려 지속적인 혹평을 받은 끝에 2024년 개막을 앞두고 사라졌다.[20] 일본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21] 정용진의 이마트가 아니라, 정유경의 신세계백화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신세계그룹이지만 별도의 법인이다.[22] 이건희 사후 대구광역시에 기부.[23] 야구단이 독립법인화 된 후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법인회사로 전환했으며 그 외 다른 스포츠단들은 전부 모기업의 부서로 포함된다.[24] 같은 그룹 내에 있지만 두 회사의 최대주주도 다르다. 이마트는 이명희의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는 장녀인 정유경이 최대주주다.[25]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선례가 있는데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를 출범시켰을 때 같은 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현대 유니콘스 지분을 보유했다.[26]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 등.[27] 아무리 야구단이 적자를 본다고 해도 지분 67.5%를 6억 7천만 원에 시장에 내놨다면 아파트를 팔고 빚을 내서라도 살 국민들이 넘쳐날 것이다. 계열사 간의 거래였기에 가능했던 일.[28] 2007년 공개된 한화 이글스의 現 엠블럼 다음으로 오래된 엠블럼이다. 올해로 [age(2007-01-01)]년차 엠블럼으로 삼성 구단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되고 있다.[29] 현재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시관과 사회인야구장으로 활용된다. 바로 옆에 대구 FC의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있다.[30] 롯데 자이언츠의 제2구장인 문수 야구장은 2014년에 지어졌지만 제1구장인 사직 야구장이 1986년 개장했다. 아울러 한화 이글스는 제1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와 제2구장인 청주 야구장이 모두 20세기에 지어졌다.[31]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경북 출신이었다.[32] 대구·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 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33] 정확한 총 관중 수가 62만3970명이고 평균 관중이 무려 9904명에 달했다. 이는 2011년 관중 수보다 무려 10만 명(20%)이나 많은 수치이고 1995년의 평균 좌석 점유율이 무려 76.2%에 달했다. 외야 관중석 일부를 빼고는 빈자리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34] 그리고 그 10,000석조차 2010년대에는 9,200석으로 줄어들었다.[35] 그러나 대구광역시는 월드컵 특수에도 축구가 생각보다 힘을 못 쓴 도시 중 하나였다. 같은 시대에 대구 오리온스에 김승현이라는 거물 가드가 들어오면서 농구 인기가 엄청날 정도로 올라가버려 대구 축구의 리즈 시절은 10여 년 뒤로 미뤄졌다.[근거필요] 갤럽 조사 링크, 기사 링크 등.[37] 과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선동열식 야구는 말 그대로 정반대인 만큼 기존 팬들의 반감을 샀고, 재미있는 야구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신규 팬 유입도 적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가면서 더더욱 심해졌다.[38] 삼성과 서울 연고 구단의 맞대결 직관을 가보면 이를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잠실에서의 맞대결에선 홈 원정 관중 비율이 거의 동률을 이루지만, 대구 경기에선 90% 이상을 홈팬들이 채운다.[39] 라팍과 경산 시내 간의 거리가 대구 구 도심 또는 성서지역 간의 거리보다 더 가까우며, 대구 도시철도 2호선으로 라팍과 연결되어 있다.[40] 이 쪽은 삼성전자, 삼성SDI의 연구소, 공장이 밀집한 곳으로 삼성의 영향력이 강하다.[41] 사직은 원정팬의 무덤으로 불릴만큼 홈팬들의 세력이 막강한데, 이러한 열기에 그나마 맞불을 놓을 수 있는 구단은 삼성과 기아, 바로 옆 연고지인 NC 정도밖에 없다.[42] 특히 밀양시는 대구와 부산, 창원 모두 가까워서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팬들도 많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야구 팬덤이 많이 갈린다.[43] 화성, 용인, 평택[4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 삼성 썬더스,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45] 삼성 라이온즈의 열혈팬들과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스스로 파란 피가 흐르고 있다고 표현할 만큼 파란색은 삼성 라이온즈의 상징색 역할을 하고 있다.[46] 이들은 1980-90년대에 삼성 골수팬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장본인들이고, 그들이 삼성을 지배하고 있어서 당연히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정점을 찍었는데 요미우리 경기 시청률이 훨씬 높았다.[47] 그래도 여전히 아저씨풍이 10개 구단들 중 가장 강력하다.[48] 군인 팬들도 있는데, 공군에서도 제11전투비행단, 공군방공포병학교에서 많이 보러 간다. 부대에서도 야구 이야기하면 삼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편.[49] 일명 대구아재로 불리는 중년 남성 팬들이다. 이들은 팬서비스보다 성적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50] 2016~2020년의 일명 99688 기간은 구단 40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어서 특히 과거 명문 이미지에 익숙하던 팬들은 현타가 오기 쉬웠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지방구단이 관중 수가 중간은 갔다는 게 위안거리.[51] 전상일 기자가 이를 두고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52] 다만, 이로 인하여 KBO 리그를 통틀어 무능함의 끝을 보여준 단장인 홍준학이 유임될 것이라는 단점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시즌 중반 홍준학이 사퇴하며 없는 점이 되었다.[53] 2018년에 한화가 가을야구에 진출하며 삼성의 인기를 잠시 능가했었고 2023년에는 삼성이 역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동안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해버렸다.[54] 이런 분위기는 2010년대 후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어느 정도 자정이 이루어졌다.[55]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왕조 시절까지는 리그에서 가장 여성팬 비중이 낮은 구단이었다. 그래서 삼성 관중측을 비추면 비교적 시꺼먼 남정네가 득시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관중수입의 절대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왕조시절에는 아재팬들로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장을 쉽게 채웠다.[56] 사실 구단이 일부러 이러한 팬들 확보를 위해 뛰어든 것이 아니라 직관을 가지 않는 이상 TV중계로만 야구를 접하던 시대에서 점차 핸드폰이나 SNS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57] 구자욱이 야수 중에 고참급이지만 93년생으로 젊은 편이다.[58] 심지어 마케팅 팀장의 팬 무시 등으로 프런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실 이 사건도 팀 성적이 개판이라서 일어난 거다. 왕조시절 성적이었으면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재팬들은 성적이 장땡이기 때문이다.[59] 다만 이는 시민야구장과 라이온즈파크의 수용 인원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60] 당장 2018~2021 시즌 팀 슬로건도 "NEW LIONS!"이다.[61] 오죽하면 7월에 와서는 심각한 부진이 연이어 계속되자 트럭 시위까지 열렸을 정도였다. 사실 이는 부진한 성적을 규탄하는 성격도 있었지만 특정 선수를 고집스럽게 기용하는 감독에 대한 항의성이 더 짙었다.[62] 1,2위는 각각 SSG,LG로 순위와 일치한다.[63] 이들 중에는 도박 사건, 우승 실패라는 대형 악재가 겹친 2015년부터 야구를 멀리하고 있다가 팀이 2021년에 반등하자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게 돌아온 바로 다음 시즌에 팀이 다시 침체에 빠졌으니 좋게 볼 리가 없다.[64] 정작 홍준학 단장은 팬들을 보는 시선이나 운영에서 문제가 있을 뿐이지 티켓값을 유지시키고 포퓰리즘적인 운영을 하는 등 라이트 팬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65] 물론 스케치북 검열이라는 병크가 있었으나 굿즈 판매나 굴비즈 마케팅은 잘했다.[66] 선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시민구장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67] 본인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원정 김상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상수 유니폼 개시가 새 컬링 유니폼 개시 순간보다 더 설렌다"고(...) 삼밍아웃을 해버렸다.[68] 이후 이승엽의 은퇴식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69] 그런데 2017년 9월 5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에 초청되어 신진식 감독이 시구를 맡았고 박철우 선수가 시타를 맡았는데, 신진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반면 박철우 선수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팀 삼성화재가 대전 연고팀인 만큼 대전 연고팀끼리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이뤄진 시구라서 그랬다. 영상[70] 現 대구광역시 군위군[71] 애초에 김상수도 친정팀 삼성에 대한 애정을 지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ㅊㄱㅅㅅㅅㄹㅎㄹㄹ--------[72] 딸 유담도 삼성팬이다.[73] 평소에는 빨간 하트를 남발하지만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서만큼은 파란색 하트를 쓴다.[74] 삼성은 그 날 연장전 패라는 혈압오르는 경기력을 보였다. 덤으로 그담날과 다다음날 시구는 올림픽 출전한 TK출신인 원래 시구자들이 각각 스케줄과 경북대학교병원 입원 때문에 나가리행.[75] 사실 원래 지역구는 옆 지역구인 수성구 을인데 21대 총선 때 옆 지역구인 수성구 갑으로 옮겨 당선되었다.[76] 상술된 내용처럼 이 무렵부터 성적과 상관 없이 야구 경기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난 것도 한 몫을 했다.[77]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시절 이학주의 응원가와 일명 '짭도라도'로 불린 팀 응원가 '승리를 위해'.[78]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의 대들보였던 노숙희 놀레벤트 팀장, 2010년대 쌍두마차 중 한 명이었던 이연주 전 치어리더도 대구 출신이다. 현재 팀장인 이수진 치어리더는 구미시 출신.[79] 대구, 경북지역 행사에도 놀레벤트 소속 치어리더들이 많이 참여한다.[80] TK 출신 치어리더들이 타팀으로 이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2016~17년에 블루팅커스로 활동하던 서유림 치어리더가 한화로, 2018~19년에 활동하던 박현영 치어리더가 SSG로 이적한 사례가 있다.[81] 다만 KIA는 광주의 역사적 이유로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는 날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44경기에 모두 응원단이 파견되는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고 볼수 있다.[82] KIA 입장에서도 보통 삼성을 최고 라이벌로 자주 꼽는 편이다. 단 롯데는 NC가 가장 압도적 라이벌 구단이며, 삼성은 KIA와 함께 그 뒤로 꼽힌다. 두산은 LG 트윈스나 SSG 랜더스가 더 확실한 라이벌전이다. 보통 두산에 있어서 지방 구단 중 대표적 라이벌리가 싸대기 매치이다.[83] KIA는 일부 극성 삼성 팬이 김영웅을 김도영에 어느 정도 비교하다가 성적 차이가 심각하게 벌어지며 원래 지역감정으로 사이가 나빴는데 더 안 좋아졌다.[84] 구자욱 사구 사건 이후 롯데에 대한 인식이 다소 험악해지기는 했으며, 이후 박건우도 사구로 이탈하자 삼성 팬덤 역시 분노한 NC 팬덤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85] kt가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지만 상대전적은 삼성이 압도우위이다. 작년에는 삼성이 kt에게 압도적으로 썰린 것과는 정반대. 그런데 kt가 타이브레이크에서 쿠에바스의 호투로 삼성을 이기더니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썰어버리며 우승에 성공했다.[86] 물론 이것도 지역주의가 상당히 사멸한 요즘 팬덤이나 그렇지, 올드 팬덤 사이에서는 기롯삼 지방 3구단 팬덤 사이가 모두 매우 험악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구단들끼리 열린 시리즈에서 폭력사태도 꽤 자주 일어났고 일단 패하거나 하면 후폭풍이 거셌을 정도.[87] K리그1에 존재하는 현대가 더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그룹 현대자동차그룹과 울산 HD FC의 모그룹 HD현대(舊 현대중공업그룹), 삼성 라이온즈의 모그룹 삼성그룹과 SSG 랜더스의 모그룹 신세계그룹은 엄연히 다른 기업이지만 나란히 창업자가 똑같고 현재도 기업 총수 간의 친인척 관계(정의선-정몽준, 이재용-정용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88] 삼성팬들이 원정을 갈때면 창원NC파크의 네이비색 인테리어, 삼성 원정 팬들의 파란색 물결, NC 홈팬들의 하늘색 물결이 어우러져 꽤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89] 반면 롯데와는 KBO의 대표적인 앙숙관계로 진정한 더비 매치의 격렬한 양상을 보인다.[90] 구단과 좋은 모양새로 헤어지지 못하고 방출된지라 은퇴식은 치르진 않았다.[91] 은퇴 시점 통산 9개 부문 1위.[92] 구단주 취임 당시는 삼성그룹 부회장이었고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망 이후 회장이 된다.[93] 이병철의 넷째 사위이며 이건희와는 매형-처남 관계였다. 자세한 인물 이야기는 범 삼성가 항목 참조.[94]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 때 입당해 16대 총선에서 수원 팔달 선거구에 출마, 남경필과 겨뤘으나 낙선한 뒤 곧바로 정계에서 은퇴했다.[95] 구단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다.[96]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임.[97] 중학생이던 1957년에 동인천중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야구사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98]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힌 적이 있으나 은퇴 후 한동안 야구계에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게다가 부산 출신이라 대구·경북 연고인 삼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김삼용이 부단장이 된 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추천했기 때문(김삼용과 천신일은 중, 고교 동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팀 성적을 빌미로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아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 잡음만 일으키다 결국 잘렸다.[99]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1985년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100]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18년간 감독을 했으며 해설가로도 유명했던 김계현의 아들.[101]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 프런트 중 한 명으로, 선수단 매니저로 프런트 활동을 시작했다.[102] 1999 시즌이 끝나고 취임. 상무보에서 시작해서, 2002년 1월 상무, 2005년 1월에 전무로 승진했고, 2009년 12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0년 12월에 용퇴했다.[103] 2006년 신설됐는데, 송삼봉이 부단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후 후임 부단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104] 삼성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이 삼성 라이온즈였다.[105] 야구인 출신으로는 2대 단장을 맡았던 실업야구 출신 김삼용 단장이 있었다.[106] 사실 이것도 매우 점잖게 말해서 이 정도인거지 올드 삼성 팬덤에게 있어서 저 두 이름은 쌍욕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라이온즈의 역적 중의 역적으로 취급받는다. 후술하겠지만 삼성 감독들 중 상당수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는데도 정작 이 둘보다 심하게 욕을 먹는 감독은 없다. 이들만큼이나 팀에 악영향을 끼친 김한수와 박진만은 선수 시절 내내 KBO 올스타급이었고 삼성 소속으로 맹활약했다.[107] 보통 원래부터 약했던 집단을 말아먹는 것보다 강했던 집단을 망쳐서 회생 불가에 가까울 정도로 초토화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낮은 평가를 받는다. 당장 발전 가능성이 높았던 중국과 아르헨티나를 망친 마오쩌둥과 호르헤 비델라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안현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사례에 해당하며, 홍준학같은 경우 조금 애매하기는 하나 전반적인 시스템 붕괴와 육성 실패, 장기적 부진이 있었다는 것은 데이터상으로 확인 가능하다.[108] 공교롭게도 이 둘은 운영 방침은 완전히 다르지만 1965년생 동갑내기이며, 다른 계열사나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를 해온 전임 단장들과 달리 평사원 출신으로 시작해서 단장 자리에 오른 레전드이다. 야구단 운영만 잘했어도 둘 다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불렸을 것이다.[109]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110] 조창수 감독대행 성적 포함[111] 장효조 감독대행 성적 포함[112] 서정환, 선동열,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은 삼성 팬덤에게 상당한 졸장으로 취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다 김성근, 서정환, 선동열은 암흑기 이전 감독이며 승률도 5할 5푼을 찍었는데도 심하게 욕을 먹는다. 이 때문인지 재임 기간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응용, 류중일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기도 하다. 물론, 저들도 대부분 안현호, 홍준학 전 단장보다는 평가가 좋은데 그 이유는 감독 중 최악으로 평가받는 김한수와 박진만도 선수 시절에는 삼성 소속으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113] 단, 2005-2010시즌에 있었던 선동열의 평가는 나쁘다. 이는 선동열이 전력빨로 성적을 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며 삼성 감독직에 앉아서 여러 망언과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리빌딩 자체로는 매우 좋은 평을 받는다.[114]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115]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당시 최강급으로 평가 받았다.[116]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117]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118]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만수의 전성기를 본 사람들이 50이 넘어가는 나이가 된지라 더더욱.[119]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120]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121] 일부 팬들은 종신감독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122] 사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종범까지 위에 언급한 양준혁처럼 은퇴시켜 버렸던것도 안티가 많아지게 된 원인중 하나다.[123] 전년도 한국시리즈 혈투를 벌인 팀이 작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4번타자와 주전 국대 유격수를 사왔다. 그래서 2005-2006년은 사실상 독보적 우승 전력이었다.[124] 박진만 이전까지 세 명은 모두 평생을 아주 오랫동안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종사했으며, 류중일과 허삼영은 대구 사람이기까지 하다. 박진만 역시 인천 야구 레전드 이미지가 강하지만 영광의 현대 시절을 뒤로하고 선동열 시기 삼성에서 몇 년을 뛰며 2005년, 2006년 우승에 공헌하는 등 삼성 선수로써도 슈퍼스타로 불릴 만한 활약을 보여주었다.[125] 그나마 허삼영 정도가 평가가 최악은 아닌 정도이지만, 팀 역사를 통틀어서 낮은 평가를 받는 선동열이나 김성근보다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보기도 힘들다. 나머지 둘은 리그 전체적으로 전문가들이나 팬덤이나 호평하는 여론이 거의 사멸한 상태이며, 단순히 삼성을 넘어서 타 팀 팬덤도 근 몇 년간 KBO 리그에서 상당히 무능했던 감독을 언급할 때 끼워주는 편일 정도로 평가가 좋지 않다.[126] 단순히 못하는 것을 넘어서 같은 기간 해당 팀 상대로 리그에서 가장 약한 감독 중 하나였다. 김한수 두산전 2017-2019년 3년간 10승 달성, 허삼영 kt전 2020/2022년 각각 4/5승 달성과 2021년 타이브레이크 1:0 패, 박진만 KIA전 2023-2024년 도합 9승 20패 기록.[127]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과 LG 트윈스의 김용수가 있는데 최동원은 사후에 영구 결번식이 거행되었으나 김용수는 공식 은퇴식은 없었어도 현역 시절에 영구 결번식이 미리 거행된 적이 있다.[128] 전기 2위, 후기 1위[129] 전기 2위, 후기 1위[130] 전기 1위, 후기 5위[131] 전기 1위, 후기 1위[132] 당시 규정상 전·후기 모두 1위 차지하면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 우승이었다. 그 해 준우승은 삼성 제외 팀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롯데 자이언츠.[133] 전기 1위, 후기 4위[134] 한 팀이 전·후기 모두 2위 내에 들면 한국리리즈에 선착한다는 규정으로 전·후기 모두 2위를 기록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선착하고(...) 삼성은 OB와 플레이오프를 치뤄야 했다.[135] 전기 1위, 후기 1위[136] 1985년과는 달리 통합 우승은 하지 못했고 2위팀간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긴 팀과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해야 했다. 결국 플레이오프 5경기를 치르고 8일 동안 긴 휴식을 취한 해태에게 스윕당했다.[137] 전기 5위, 후기 2위[138] 보통 삼성과 제일 많이 비견되는 구단인 KIA의 경우, 20세기로 한정할 시 해태의 성적이 조금 더 나으며,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으로 바꿀시 격차가 더 벌어지나 해태가 김응용 감독 말기에 모기업의 부도로 휘청이고 이후 KIA로 전환되고 난 뒤에 악명높은 정재공-서정환 체제를 겪은 다음에는 원기옥을 모은 뒤 몇 년에 한 번씩 우승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중하위권을 맴도는 애매한 구단으로 전락했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손승락의 육성 성공으로 전력이 극도로 강화되었으나, 김종국의 무능으로 5-6위를 기록하며 한심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래도 전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김응용 이래 가장 전력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139] 이들 다음으로 성적이 우수한 두산의 경우 OB 시절에는 리그 상위권 구단으로 보기는 힘들었고, 이후에도 우승을 간간이 하는 등 나름 강호 취급을 받았으나 본격적인 전성기는 김태형 부임 이후에 열렸으며 이 기간 동안의 선전으로 우승을 3회 추가하는 등 삼성, KIA 다음가는 수준의 통산 성적을 쌓아올렸다.[140] 두산은 이전까지도 꽤 강한 팀이었으나, 오히려 그때부터 엄청난 성적을 올리며 21세기 최고 승률을 달성하게 된다. SSG의 경우 김성근 시절이 유명하나 힐만 시절 우승과 2022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등 탄탄한 베테랑진을 바탕으로 잠깐 빼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 말고도 NC 역시 강팀이기는 한데, 아직 우승이 한 번이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이 더 많다. 참고로 99688378을 찍은 뒤의 삼성과 NC의 21세기 승률이 거의 같다.[141] 이 기록은 팬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록 중 하나다. 원년팀인 삼미부터 청보 태평양 현대가 한 역사로 묶이는 만큼 12년간 현대 유니콘스가 존재할때 최하위를 한적이 없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삼청태는 모두 최하위를 해봤다. MBC 청룡의 경우에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존재한 팀이라, 전기리그 꼴찌(전후기 통합 승률은 뒤에서 2위)를 해봤고, 해태 타이거즈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꼴찌를 안 했지만, 양대리그 시절 드림리그 꼴찌를 했다.[142] 삼성 스포츠 쪽을 보면 서울 썬더스는 원년부터 꼴찌로 추락했고, 용인 블루밍스는 2019-20 시즌 코로나바이러스에 발이 묶여 최하위, 대전 블루팡스는 2020-21시즌 꼴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23시즌 최하위로 1부 리그에서 쫓겨났다.[143] 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500승을 달성했다. 2021년 9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통산 2700승을 달성하여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144]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마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의 OB 베어스로 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 했다.[145] 참고로 이 기록이 대단한 것이 2016-2023시즌 8개 중 오직 2021시즌만 진출하고 나머지 시즌 모두 하위권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횟수 1위이다. 참고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은 두산 베어스가 맹추격하고 있으나 아직 25회로 삼성과 동률이라도 되려면 최소한 4년이 더 걸린다. 그리고 두산 역시 김태형이 나가고 난 뒤에는 고정 가을야구가 애매하다.[146] 2017년까지는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이마양 시절 홈런 213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2017년에 SK 와이번스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서 무려 234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 기록을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나게 됐다.[147] 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500승을 달성했다. 2021년 9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통산 2700승을 달성하여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148]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마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의 OB 베어스로 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 했다.[149] 참고로 이 기록이 대단한 것이 2016-2023시즌 8개 중 오직 2021시즌만 진출하고 나머지 시즌 모두 하위권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횟수 1위이다. 참고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은 두산 베어스가 맹추격하고 있으나 아직 25회로 삼성과 동률이라도 되려면 최소한 4년이 더 걸린다. 그리고 두산 역시 김태형이 나가고 난 뒤에는 고정 가을야구가 애매하다.[150] 2017년까지는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이마양 시절 홈런 213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2017년에 SK 와이번스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서 무려 234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 기록을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나게 됐다.[151] 17회로 리그 최다. KBO는 창단 42년이 되었으므로 2년반에 1번 꼴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셈이다. 게다가 이것도 2010년대 후반부터 말아먹어서 그렇지 2015년까지는 2년 중 한 번 진출 꼴이었다.[152] 실제로 대구와 경북 지방의 '야구팬은 아니지만 굳이 응원하라면 고향 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는 매년 10월 말에 지상파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니까 원래 야구는 10월 말까지 하는 스포츠라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정도였다.[153] 2위는 두산 베어스의 9회.[154] 코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7회로 역시 2위다.[155] 당시 삼성 구단에서도 1985년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제대로된 우승으로 여기지 않아 선수단에 대한 포상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계속된 채찍질이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지나친 부담감으로 구단을 짓누르게 되었다. 물론 이후 2005년 우승 당시 사용한 V3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삼성 구단에서도 1985년 통합 우승을 정식 우승의 역사로 여기고 있다.[156]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면서 몇몇 분탕꾼들이 V7 대신 V6(+1)이라는 문구로 1985년 통합 우승을 평가절하 하지만 KBO에서는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므로 V7이 맞다. 몇몇 언론들이 이런 기사들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157] 보통 최고의 한국시리즈로는 1984년, 2002년, 2004년, 2009년을 꼽는다. 이들 중 세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 축을 맡았고, 삼성이 우승을 차지한 건 2002년 한 번이었기에 현재까지도 삼성 역사상 최고의 한국시리즈로 평가받는다.[158]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 있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159]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만루 홈런을 모두, 그것도 이선희가 허용하였다.[160] 이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깬 감독이 2009년 당시 선동열 감독. 별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2009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2015시즌까지 총 19시즌 연속이 된다.[161] 물론 와일드 카드 제도가 생기기 전 KBO에서 유일한 사례. 반대로 1995년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4위에 올랐지만 3위인 롯데 자이언츠와 4.5게임차로, 4위와 3위의 승차가 3.5게임 이상 벌어지면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않는다는 당시 KBO 규정에 따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3팀으로 치러졌으며 단일 리그(1989~1998, 2001~) 기준으로는 이 또한 KBO에서 유일한 사례.[162] 포스트시즌 최장 진출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0년대 후반에 강호로 도약한 SK 와이번스가 2007~2012년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동시에 한국시리즈 최장 연속 진출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3년에 귀신같이 몰락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사례와, 암흑기를 벗어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 단골이 된 롯데 자이언츠도 5년 연속이 전부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롯데 자체적으로는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지만, 대신 1999년 이후로 한국시리즈에 가장 오래 진출을 못하고 있다.[163]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164]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삼성 야구를 본 삼성 팬들.[165] 여기에는 선동열의 야구 스타일이 삼성 특유의 장타 위주의 화끈한 빅볼야구 대신 1점 내고 한 점도 안 내주며 최대한 투수진을 쥐어짜내 승리하는 스몰볼야구 스타일인 것도 한 몫 했다. 실제로 선동열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했을 당시에도 삼성의 골수팬들에게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 이후 2009 가을야구 실패 및 2010 시즌 양준혁 강제 은퇴 및 베테랑 홀대, 한국시리즈 셧아웃 패배로 경질되면서 우승감독임에도 금지어로 불릴 정도로 선동열의 이미지는 삼성팬들에게 매우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삼성의 시스템이 선동열을 우승시켜준거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166] 정작 비슷하게 2000년대 후반 왕조 시기를 경험한 SK는 왕조시기를 구축한 김성근을 경질하고 난 이후 이만수 감독체제(정확히는 감독대행 시절도 포함)에서 한국시리즈 2회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김용희 감독체제에서 3년만의 가을야구 진출 성공 및 정경배를 기용하여, 스몰볼 야구 스타일이 아직 남아있던 SK를 빅볼야구 스타일로 자리매김 하는데 기여하여 힐만감독 체제에서 8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등극하는 등, 왕조 시기에 내려와서도 여전한 저력을 보여주었다.[167] NC 다이노스와 kt wiz와의 맞대결이 아직 없다.[168] 삼성 라이온즈 외에 현대 유니콘스가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있었지만 현대는 2007년 팀이 해체되었다.[169] 이외에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도 현대 유니콘스와 대결한 역사가 있으나,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붙은 적이 없다.[170] 한미일통합으로는 522세이브다[171] 영동 지역(강릉시의 강릉고등학교, 속초시의 설악고등학교)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연고 구단 및 1차 지명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영서지역은 한화 이글스가 담당한다.[172] 유일하게 해당 지역 출신으로 1차 지명을 받았던 김영한은 그래도 해당 지역에서 쭉 운동을 했던 선수였다.[173]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174] 이후 도쿄 야쿠르트의 발렌틴이 경신했다.[175]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176]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177]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을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178]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전 두산 베어스, kt wiz 소속 더스틴 니퍼트도 삼성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 팬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니퍼트는 한국시리즈에서 이겨 보기라도 했지만 삼성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해민 삼행시로 '해로운 미국인 니퍼트'가 선발되는 등 드립소재로도 많이 써먹는 편.[179]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 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 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180]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181]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치어리더 팀장으로 있다.[182] 실제로 각 구단에서 응원단은 외부 이벤트기업과 계약하여 SSAT는 드립으로 봐도 된다.[183] 현재는 V-리그 여자배구단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184] 한화도 2018년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나 주황색도 엄연한 홈 유니폼이다.[185] 최근에는 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 예가 조무근.[186] 박해민은 서울 토박이로 영중초, 양천중, 신일고, 한양대학교를 거쳐서 전부 서울에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리그에서 우수타자 상을 받았다.[187] 의외로 이 계보는 90년대 해외파 선수로 삼성 역사상 당당히 흑역사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최창양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창양은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188] 왕조 당시만 해도 김상수 한 명 사인 받았으면 다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반면 투수조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팬서비스는 확실하다.[189] 김상수가 지속된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다.[190] 그러나 2017년 이원석을 저렴한 가격에 잡고 저비용 고효율 FA라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191] 삼성 오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접고 타자를 시작했다.[192] 그 제물이 바로 삼성이었다.[193] 이 역시 삼성.[194] 이를 이룬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195] 사실 구단 자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구단 역사에 포함시킨것.[196] 2020년이 돼서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kt는 그렇다 치더라도, NC는 역사에 비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상당히 많은 편이였음에도 삼성과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이는 NC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삼성의 암흑기와 묘하게 겹치기 때문인데, 삼성과 NC가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4시즌과 15시즌에도 직접 맞붙지는 못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삼성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13,21) NC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 (16~17,19~20,23) 둘 다 떨어졌다(18,22).[197] 이건 KIA도 마찬가지라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1루에서 뛰어나올 일은 더 이상 없다.[198] 특별히 잘했던 호남 출신 선수들은 없었다. 유망주라 데려왔더니 망한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예시] 2002년 KS 패배 이후 LG 김성근 감독 경질, 2011년 8월 19일 문학 삼성전 9:0 패배 이후 SK 김성근 감독 경질, 2013년 KS 패배 이후 두산 김진욱 감독 경질, 2014년 4월 22일 대구 삼성전 1:8 패배 이후 LG 김기태 감독 사퇴[207], 2016년 10월 8일 문학 삼성과의 최종전 이후 SK 김용희 감독 재계약 불발[208], 2017년 5월 21일 대전 삼성전 8:7 패배 이후 한화 김성근 감독 경질, 2018년 6월 3일 마산 삼성전 8:7 패배 이후 NC 김경문 감독 사퇴, 2021년 5월 9일 대구 삼성전 6:8 패배 이후 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 2023년 5월 11일 대전 삼성전 4:0 승리 이후 한화 수베로 감독 경질.[200] 아이러니하게도 양준혁 역시 선수 시절 중간에 해태-LG로 트레이드됐다가 돌아오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었고, 은퇴하는 모습도 당시 감독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 은퇴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게 좋은 결말을 맺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아예 은퇴식조차 안 열어주고 방출시켜버린 이만수와는 달리 은퇴경기라도 성대히 열어줬다.[201] 삼성 구단 창단 후 첫 은퇴식의 주인공이고, 은퇴 후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오르는 등 그야말로 성골 그 자체의 모습이다.[202] 2003년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코치로 일하던 이만수에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했고, 이에 이만수는 즉시 화이트삭스에 사표를 낸 뒤 미국에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모두 처분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발권해뒀다고 한다. 그런데 돌연 삼성 쪽에서 코치 제의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붕 떠버릴 뻔했고, 그나마 이러한 사정을 들은 화이트삭스 구단에서 재계약을 해줘서 다행히 잘 풀렸지 하마터면 삼성 때문에 지도자 경력마저 망칠 뻔했다.[203] 물론 이승엽은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미지가 어느정도 희석된 덕분에 이 문단에 적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좋은 편이다.[204] 단 1999년 이전에는 특출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94~6년에는 삼성의 556 암흑기와 맞물려 3연패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1996년 현대와의 경기는 신인 외야수 장정석에게 만루홈런을 맞은데다가 정명원과 이승엽의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진 끝에 패배하며 역대 6월 2일 경기 중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205] 2012년 두산과의 막장 경기 끝에 5할 승률을 기록, 2013년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의 기적 끝에 승리, 2015년 롯데와의 포항 야구장 경기에서 안지만의 150홀드 기록, 2017년 KIA전 최충연의 첫승, 2020년 LG전 원태인의 무실점 투구, 2021년 SSG전 난타전 끝에 김지찬의 공수 맹활약으로 승리 등[206] 고졸 3년, 대졸 2년